큐리탄
고린도전서 주석 · 매튜 풀

15장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고린도전서 15장 1~5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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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그리스도께서 정말 부활하셨다면, 죽은 성도의 몸도 반드시 다시 살아나는가?

  • 그리스도의 부활은 많은 증인이 확인한 사실이며, 모든 사도가 한결같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다.
  •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첫 열매로 살아나셨으므로 그분께 속한 지체들도 그분이 오실 때 차례대로 부활한다.
  • 부활의 몸은 지금의 몸과 같은 몸이지만, 씨앗과 싹처럼 성질이 달라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며 신령하다.
  • 부활의 소망이 사망을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하므로, 성도는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하므로 우리의 부활도 확실하다1~19절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바울이 전한 것은 너희가 받고 선 복음이다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기 전에 고린도 교회가 죽은 자의 부활을 잘못 알고 있는 문제를 다룬다. 순서로는 마지막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다.

몸의 부활은 이성만으로는 충분히 입증할 수 없는 신앙의 조목이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와 지혜자가 이를 부정했고, 아덴의 철학자들도 바울의 부활 설교를 비웃었다(행 17:18). 고린도 교인 중 일부도 이런 사상에 물들어 몸의 부활을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자신이 전한 것이 '복음'이었음을 못 박는다. 그들은 그 말씀을 하나님의 진리로 믿고 받아들였다. 일부는 미혹되었지만 대부분은 지금도 그 고백 위에 굳게 서 있다.

함께 볼 말씀행 17:18
2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복음을 굳게 지키면 구원의 길에 있다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그들이 이미 구원의 길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가진다는 요한복음의 말씀과 같은 의미다(요 3:18, 36).

그러나 들은 말씀을 기억하고 붙들지 않는다면 구원의 길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런 믿음은 헛된 믿음이어서 영혼을 구원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 헛되이 믿음말씀을 붙들지 않아 영혼 구원에 아무 쓸모가 없게 된 믿음
함께 볼 말씀요 3:18 · 요 3:36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은 받은 계시이며 성경의 성취다

바울은 부활을 신앙의 주된 조목으로 전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았거나(갈 1:12) 아나니아를 통해 받은 것이다(행 9:17).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은, 그분이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대신 받아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뜻이다(롬 4:25).

이 대속의 죽음은 구약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이사야는 그가 우리 허물 때문에 찔린다고 했고(사 53:5), 다니엘은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질 것을 예언했다(단 9:26).

함께 볼 말씀갈 1:12 · 롬 4:25 · 사 53:5 · 단 9:26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장사와 사흘 만의 부활도 구약에 예고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뿐 아니라 장사되심과 부활도 구약에 계시되어 있었다. 다만 다소 희미하게 나타나 있었다. 요나와 이삭이 이를 보여 주는 모형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분의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예언했다(시 16:10). 사도행전은 이 예언이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을 확인한다(행 2:31; 13:35).

그러므로 신약과 구약의 가르침은 서로 일치한다. 차이가 있다면 구약은 베일에 싸인 듯 희미하게 담고 있고, 신약은 더 온전하고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함께 볼 말씀시 16:10 · 행 2:31 · 행 13:35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게바와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복음서에는 주님이 베드로에게 따로 나타나신 기사가 없다. 그러나 엠마오의 두 제자가 돌아와 주께서 '시몬에게 보이셨다'고 전한 일이 있다(눅 24:34). 그 시몬이 베드로라면 이 구절과 맞아떨어진다. 풀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일은 요 20:19-20에 나온다. 그때 유다는 이미 죽었고 도마도 없었다. 그런데도 '열둘'이라 부른 것은 하나님이 사도의 수를 열둘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요셉을 죽은 줄 알면서도 야곱의 아들들이 스스로를 '열두 형제'라 부른 것과 같다(창 42:13).

어떤 이들은 그 자리에 나중에 유다 대신 뽑힌 맛디아가 있었으리라 보는데, 풀은 이것이 꽤 개연성 있다고 본다. 다만 도마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함께 볼 말씀눅 24:34 · 요 20:19-20 · 창 42:13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오백여 형제에게 한꺼번에 나타나셨다

이 일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 후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겠다고 약속하셨다(마 26:32; 28:7). 그곳에서 많은 제자와 큰 규모의 만남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 구절은 그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그 오백여 명 가운데 대다수가 아직 살아 있어 부활을 증언하고 있다고 말한다. 죽은 사람은 일부일 뿐이다.

함께 볼 말씀마 26:32 · 마 28:7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야고보와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다

야고보에게 나타나신 일은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서는 앞에서 말한 것 외에도 주님이 사도들에게 두 번 더 나타나셨다고 전한다.

8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맨 나중에, 조산아 같은 바울에게도 보이셨다

'맨 나중'은 사도들 중 마지막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풀은 부활하신 주를 본 모든 사람 중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본다. 스데반 이후로 주를 본 사람은 바울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행 7:56).

사도행전 9장은 바울이 음성을 들었다고만 전한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눈으로 본 증인으로 세우므로, 그가 주를 직접 보았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그가 눈이 먼 것도 주님을 본 다음의 일이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열두 사도 밖에서 덧붙여진 사도라는 뜻일 수 있다. 성령 강림 뒤 교회를 박해하다가 늦게 회심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또는 그의 회심이 달이 차지 않은 출산처럼 갑작스러웠다는 뜻일 수도 있다.

  •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추가된 사도, 늦은 회심, 또는 갑작스러운 회심을 가리키는 표현
함께 볼 말씀행 7:56 · 행 9:4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교회를 박해했기에 사도라 불릴 자격도 없다

바울은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10절). 복음을 일루리곤까지 두루 전했고(롬 15:19), 방언도 누구보다 많이 말했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자'는 명예나 은사나 수고가 가장 적다는 말이 아니다.

그 뜻은 자신이 사도라는 이름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가 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이다(행 9:1-3).

함께 볼 말씀롬 15:19 · 행 9:1-3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의 나 됨과 수고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교회를 박해하던 자가 긍휼을 입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 덕분이다. 그는 그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었고 갚을 능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 임한 은혜가 헛되지 않아 열매를 맺었다.

그는 동료 사도 누구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 모든 사도의 수고를 합한 것보다 많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그 수고의 모습은 롬 15:19과 고후 6:4-10에 나온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이룬 일로 자랑한다고 오해받지 않도록, 이 모든 것이 자기와 함께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덧붙인다.

이 절에서 '은혜'는 두 뜻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앞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생겨나 그 안에 심긴 거룩한 성품이다. 뒤의 은혜는 하나님의 값없는 호의 자체다.

바울의 행위에는 인간적 요소도 조금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미미했으므로 모든 열매를 은혜에 돌린다. 은혜는 그를 움직이고 돕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막으면서 모든 수고에 두루 관여했다.

  • 은혜(앞부분)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와 바울 안에 심긴 거룩한 성품들
  • 은혜(뒷부분)하나님의 값없는 사랑과 호의 그 자체
함께 볼 말씀롬 15:19 · 고후 6:4-10
11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모든 사도가 같은 부활을 전했고 너희도 믿었다

'나나 그들이나'는 바울이든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한 다른 어떤 사도든 상관없다는 뜻이다.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한결같이 전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가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만 전하지 않았다. 의롭다 하시려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도 전했다. 고린도 교인들도 십자가에 죽으신 분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분을 믿었다.

베드로(행 2:31; 10:40), 스데반(행 7:56), 바울(행 13:37; 17:31)이 모두 이렇게 전파했다.

함께 볼 말씀행 2:31 · 행 10:40 · 행 13:37 · 행 17:31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부활이 전파되었는데 어찌 부활이 없다 하는가

바울은 증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탄탄히 세웠다. 이제 그 사실을 근거로 죽은 자의 부활도 반드시 있다는 논증으로 넘어간다. 먼저 교회 안에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압박한다.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한 후메내오와 빌레도(딤후 2:17-18), 영지주의 이단 케린토스, 부활을 부정한 사두개인,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부정한 바리새인, 이교 철학에 물든 그리스도인 등이다.

풀은 그들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본다. 다만 그런 자들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함께 볼 말씀딤후 2:16-18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 부활이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 논증에는 몇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서 우리 몸의 부활을 보여 주는 첫 사례다(20절).

둘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다. 머리가 살아났는데 지체가 영원히 죽음에 붙잡혀 있을 수는 없다. 머리는 지체에 감각과 생명과 움직임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셋째, 부활의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승리이며, 죽은 자들이 그분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게 하고 그분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가 되시기 위한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이 목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장의 주된 대상은 믿는 자의 부활이다. '머리'라는 논증은 악인의 부활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심판주가 되신다는 사실은 악인도 부활할 것을 증명한다.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그리스도가 살아나지 않았다면 전파도 믿음도 헛되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사도들이 전한 것도, 고린도 교인들이 믿은 것도 헛되고 거짓된 것이 된다. 전한 내용도 믿은 내용도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이었기 때문이다.

15-16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은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다

앞 절의 내용을 반복해 강조한다. 다만 '전파하다' 대신 '증언하다'라는 말을 쓴다. 사람에 대해 거짓 증언하는 것도 제9계명을 어기는 중죄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거짓 증언하는 것은 훨씬 무거운 죄다.

'증인'은 그리스도께서 처음 사도들에게 붙이신 칭호다(행 1:8). 이후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흔히 증인이라 불렸고, 바울도 자신을 증인이라 했다(행 22:15; 26:16).

가장 엄밀한 뜻의 증인은 부활하신 주를 직접 본 사도들이다. 넓은 뜻에서는 그 증언을 듣거나 성경에서 읽고 부활을 전하는 모든 사역자가 증인이다. 부활이 없다면 이들 모두가 거짓을 하나님의 진리라 증언한 셈이 된다.

  • 증인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주신 칭호. 넓게는 부활을 전하는 모든 사역자
함께 볼 말씀행 1:8 · 행 22:15 · 행 26:16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부활이 없다면 너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 죄책과 정죄하는 죄의 권세 아래 본래 상태 그대로 있게 된다.

죄 사함은 그리스도를 믿어야 얻는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으로 참 사람이심을 보이셨다. 그리고 부활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어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다(롬 1:4). 그러니 부활이 없으면 믿음의 대상이 무너지고, 믿음은 헛것이 된다.

함께 볼 말씀롬 1:4
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도 망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를 '그리스도를 위하여'로 보아 순교자만 가리킨다고 한다. 풀은 이 말이 모든 신자에게 해당하므로 그렇게 좁힐 근거가 없다고 본다.

부활이 없다면 죄 사함을 위해 믿을 대상이 사라진다. 그러면 모두가 자기 죄를 안고 죽을 수밖에 없다. 열렸다고 믿었던 구원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는 셈이다. 그리스도가 먼저 하늘에 들어가 처소를 예비하신 것도 아니게 된다.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세상 소망뿐이라면 우리가 가장 불쌍하다

바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지체인 신자들의 부활을 논증한다. 신자가 모든 사람 중 가장 불쌍한 자라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러나 부활이 없다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이 점은 30-31절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사도와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많은 고난을 받는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내세의 소망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몸은 살아나지 않아도 영혼은 영광 중에 살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풀은 세 가지로 답한다. 첫째, 부활은 본래 몸에 관한 것이다. 둘째, 몸의 부활을 부정한 자들은 영혼 불멸도 부정했다. 셋째, 하나님은 부활 없이 죽음만으로 구원받게 정하지 않으셨다. 세상 끝에 영혼과 몸이 다시 합하여 함께 영광을 받도록 정하셨다(벧전 1:3).

함께 볼 말씀벧전 1:3

2.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차례를 따른 부활20~23절

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바울은 다시 그리스도의 부활로 돌아와 그분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 부른다. 여기서 '잠자는 자'는 신자를 가리킨다. 성경은 보통 불신자의 죽음을 잠이라 부르지 않는다. 또 골 1:18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먼저 나신 이'라 한다. 풀은 이 견해를 따라, 그리스도가 모든 부활하는 자가 아닌 신자들의 첫 열매라고 본다.

악인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심판 때 공의를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로 일어난다.

그리스도 이전에도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첫 열매인가? 풀은 네 가지로 답한다. 그분은 자기 능력으로 살아나신 첫 분이다. 다시는 죽지 않는 첫 분이다. 위엄에서 첫째이신 분이다. 그리고 지체들의 부활 길을 여신 분이다. 율법에서 첫 열매를 드리면 나머지 곡식이 거룩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 첫 열매자기 부활로 지체들의 부활 길을 열고 그것을 보증하는 분
함께 볼 말씀골 1:18
21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사망도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다

아담은 부모 없이 하나님께 직접 지음받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불린다(눅 3:38). 그 한 사람 때문에 인류는 이생에서 유한함과 병과 죽음에, 내세에서는 영원한 죽음과 비참에 매이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한 독생자가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죽었다가 살아나게 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신자들이 부활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분은 죽음으로 마귀를 멸하고 죽음의 두려움에 매인 자들을 풀어 주신다(히 2:14-15).

함께 볼 말씀눅 3:38 · 히 2:14-15
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 안에서 죽듯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생에서 죽음과, 죽음의 전조인 온갖 작은 죽음과 비참에 매인다(롬 8:36). 내세에서는 죄의 삯인 영원한 죽음에 매인다(롬 6:23).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분의 공로와 부활로 산다. 그들은 그분 안에서 택함받고 그분께 주어져 믿음으로 접붙여진 자들이다. 그들은 이생에서 영적으로 살고(요일 3:14), 내세에서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간다.

뒷부분의 '모든 사람'은 오직 신자를 뜻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과 이어지는 문맥이 이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악인의 부활을 증명하지도 않고 배제하지도 않는다. 신자가 영생으로 부활하는 것만 다룬다.

함께 볼 말씀롬 8:36 · 롬 6:23 · 요일 3:14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리스도가 먼저, 그다음 그분께 속한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자 부활의 근거라면 왜 그때 모든 성도가 함께 일어나지 않았는가? 바울은 이 반문을 미리 내다보고 부활의 '차례'를 말한다. 이 차례는 시간 순서일 수도 있고 위엄의 순서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가장 먼저 살아나 다시 죽지 않는 첫 열매가 되도록 정하셨다. 그다음에는 믿음으로 그분께 접붙여진 지체들이 그분이 다시 오실 때 부활한다.

재림 때에도 먼저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그다음 살아 있는 자들이 뒤따른다(살전 4:16-17).

함께 볼 말씀살전 4:16-17

3. 원수를 복속시키고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심24~28절

24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마지막에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신다

'마지막'은 신자들이 겪는 환난의 끝, 사역의 끝, 세상의 끝 등으로 볼 수 있다. 풀은 뒷부분과 연결해 볼 때 그리스도의 중보적 나라의 끝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까지 아버지를 대신해 이 나라를 다스리신다.

그때 그리스도는 생명과 음부와 사망의 열쇠를 아버지께 바치신다. 그러나 그분의 나라가 아주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사야는 그 나라가 무궁하다고 예언했다(사 9:6-7).

원수들 틈에서 교회를 다스리는 중보의 나라는 그친다. 그러나 성부, 성령과 함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본질적인 나라는 영원하다. 나라를 바친다는 것은 아들이 열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교회를 다스리고 원수를 복속시키는 경륜의 단계가 끝났다는 뜻일 뿐이다.

그때 땅의 군왕들의 통치와 권세, 선한 천사들의 사역, 악한 천사들의 능력이 모두 그친다. 교회의 원수가 모두 복속되고, 싸우는 교회의 일도 끝난다.

  • 중보의 나라이 세상에서 원수들 가운데 교회를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나라로, 마지막에 아버지께 바쳐진다
  • 본질적인 나라성부·성령과 함께 만물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함께 볼 말씀사 9:6-7
25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모든 원수를 발아래 둘 때까지 왕 노릇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복음과 백성의 모든 원수를 복속시킬 때까지 다스리시도록 작정하셨다. 그 원수는 그분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 악에 처한 세상, 마귀와 그 졸개들이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바울은 이를 시 110:1로 증명한다.

여기서 '까지'는 그때 그리스도의 통치가 끝난다는 뜻이 아니다. 중보의 나라는 그치지만, 그리스도는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계속 다스리신다.

함께 볼 말씀시 110:1
26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맨 나중에 멸망할 원수는 사망이다

사망이 원수라면 멸망당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는 방식으로 사망을 멸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모든 원수를 멸하실 때까지 다스리신다는 사실이 곧 신자의 부활을 증명한다.

사망은 지체들의 몸과 영혼이 다시 합하는 것을 막고 있다. 몸의 머리이기도 하신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것도 막는다. 사망이 멸망하면 부활을 막던 장애물이 사라진다.

27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복종시키신 분 자신은 예외다

바울은 시편 8편을 간접 인용한다. 시인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특권을 찬양했다. 그러나 이 시편의 말씀이 결국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여기와 히 2:6-8의 적용이 보여 준다.

'만물을 발아래 두셨다'는 긍정 명제는 범위가 매우 넓다. 그래서 히 2:8은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부정형으로 풀어 설명한다.

삐뚤어진 자들은 아버지도 아들에게 복종한다는 말이냐고 트집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만물을 복종시키신 분 자신은 그 만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함께 볼 말씀시 8:6 · 히 2:6-8
28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아들도 복종하여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신다

아들이 아버지께 복종한다는 말은 본질이나 권세가 열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중보의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는 뜻이다. 또 중보자로서 하신 모든 일이 아버지의 이름과 권세로 이루어졌고, 성육신하신 아들이 아버지께 순종하셨음을 보여 준다.

칼빈주의 신학자 파레우스는 이렇게 비유했다. 왕이 외아들을 국정에 참여시켰다가, 반란이 일어나자 아들에게 군대를 맡겨 진압하게 한다. 아들은 일을 마치고 군대 지휘권을 돌려드린다.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는 여전히 지닌다.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은 그때 하나님이 만물을 완전히 다스리시고, 그분의 영광이 모든 택함받은 자에게 충만해진다는 뜻이다.

지금도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아니시냐는 물음에 풀은 두 가지로 답한다. 지금은 원수들이 그분을 주로 대접하지 않는다. 또 통치 형태가 바뀐다. 지금은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해 다스리시지만, 그때는 삼위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드러난다.

4. 부활이 없다면 목숨 건 수고도 헛되다29~34절

29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부활이 없다면 죽은 자를 위한 세례가 무슨 소용인가

풀은 이 절을 대단히 어려운 본문이라 한다. '세례'는 본래 담그다, 씻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보통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성례를 가리키고, 비유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마 20:22-23)이나 성령의 정결케 하심을 뜻하기도 한다. 마지막 뜻은 여기 맞지 않는다.

로마교회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한 금식이나 기도 같은 행위로 보지만, 성경에 그런 용례는 없다. 씻음으로 보는 이들은 시신을 씻는 관습을 말한다(행 9:37). 그러나 이것이 부활 신앙을 드러내는 종교 예식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성례로 보는 이들 사이에도 견해가 갈린다. 세례 전에 죽은 학습자를 대신해 받은 세례, 임종 직전의 병상 세례, 죽음이 가까울 때 받는 세례(칼빈의 견해), 순교자 무덤에서 받은 세례 등이다. 풀은 이런 관습이 사도 시대부터 있었다는 데 의문을 품는다.

풀이 더 유력하게 보는 설명은 둘이다. 하나는 30절과 연결해 주님이 말씀하신 피의 세례, 곧 죽음을 무릅쓴 고난으로 보는 것이다(마 20:22-23). 다른 하나는 세례가 하나님의 언약을 인친다는 데서 출발한다. 세례가 베풀어질 때마다 그 언약은 죽은 성도까지 포함한 온 교회에 확증된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므로 잠든 자들도 부활의 약속 안에 살아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눅 20:37-38). 풀은 최종 선택을 독자에게 맡긴다.

  • 세례본래 '담그다, 씻다'. 성례 외에 고난을 가리키는 비유로도 쓰인다
  • 휘페르 톤 네크론'죽은 자들을 위하여'. 이 전치사의 뜻이 해석의 관건이다
함께 볼 말씀마 20:22-23 · 행 9:36-37 · 눅 20:37-38
30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부활이 없다면 왜 늘 위험을 무릅쓰는가

신자에게 영생의 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그들이 매 순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는 이유는 부활에 대한 확고한 소망 때문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 모든 수고는 헛수고가 된다.

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너희에 대한 자랑을 걸고 말한다, 날마다 죽노라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은 해석이 갈린다(흠정역은 '너희의 기뻐함'). 바울이 그들을 회심시킨 데서 얻은 기쁨이라는 견해가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가진 기쁨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많은 이가 바울을 멸시했으므로 가능성이 낮다. 그들이 바울을 깎아내리며 자기를 자랑한 것을 고난의 예로 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나님을 증인으로 부르지 않으므로 이것은 맹세가 아니다. 말이 참됨을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 선지자들이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불렀듯, 바울은 그들 가운데 진실로 그리스도를 기뻐한 자들의 기쁨을 증인으로 세운다. 그 기쁨은 그의 사도직을 인치는 것이었다.

'날마다 죽노라'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실제로 여러 번 죽을 뻔했다(고후 11:23; 롬 8:36). 그 고난이 그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음과 같은 경험을 하게 했다.

함께 볼 말씀고후 11:23 · 롬 8:36
32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부활이 없다면 맹수와 싸운 것이 무슨 유익인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는 말을 실제 형벌로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그런 기록이 없고, 그 형벌은 노예나 흉악범에게 내리는 것이었다. 로마 시민인 바울이 받았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므로 짐승 같은 자들과의 싸움을 비유로 말한 것으로 보는 편이 낫다.

이것은 데메드리오 소동(행 19:24-41)이 아니다. 고후 1:8-9에 짧게 언급된, 살 소망까지 끊어진 아시아에서의 환난으로 보인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사람들이 맹수와 싸우듯이 싸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부활이 없다면 몸을 원수의 분노에 내맡긴 것이 아무 유익도 없다. 그렇다면 소망 없는 쾌락주의자들처럼 짧은 인생 '먹고 마시자' 하며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함께 볼 말씀행 19:24-41 · 고후 1:8-9
33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악한 사귐은 선한 행실을 망친다

교회 안 철학자들은 타고난 이성을 근거로 신앙의 조목을 공격했다. 그들의 말을 말장난으로 가볍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계속 듣다 보면 그 악한 말이 행동을 물들여 행실을 타락시킨다.

이 말은 이교 시인에게서 나왔거나 그 글에 담긴 것이다. 그래도 그 안에는 많은 진실이 들어 있다.

34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깨어 의를 행하라,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있다

성경은 죄를 잠에 비유한다(롬 13:11; 엡 5:14). 잠든 사람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듯 죄인은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다. 또 잠든 사람이 걱정 없이 편하듯 죄인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안일하게 산다. 그러므로 '깨어 있다'는 것은 회개한 상태를 말한다.

악을 피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의를 행해야 한다. '의'란 마음과 삶이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모든 영적 바름이다. 죄는 그 기준에 어긋나므로 굽은 길이라 불린다.

사역자들이 말씀을 가르쳤는데도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구원의 지식이 없는 자들이 있었다. 이는 부끄러운 일이며, 바울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렇게 말한다.

  • 깨어죄의 잠에서 깨어난 것, 곧 회개한 상태
함께 볼 말씀롬 13:11 · 엡 5:14

5.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가: 부활의 방식35~50절

35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죽은 자가 어떻게, 어떤 몸으로 살아나는가

이성으로 납득되지 않으면 계시만으로는 믿지 않겠다는 철학자들이 이렇게 묻는다. 썩어 흙이 되어 흩어진 몸이 어떻게 살아나는가? 같은 몸이 아니라면 어떤 몸을 입는가? 지금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몸인가, 다른 몸인가?

36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씨는 죽어야 살아난다

주님은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마 5:22). 바울이 '어리석은 자여'라고 한 것은 분노와 멸시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사도의 권위로 엄하게 책망한 것이다.

그는 사람의 부활을 의심하기 전에 밭에 뿌린 씨가 어떻게 살아나는지부터 물었어야 했다. 씨는 흙 속에서 먼저 썩어야 싹이 난다.

함께 볼 말씀마 5:22
37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뿌리는 것은 장래의 모습이 아닌 알맹이다

사람은 줄기도 잎도 없는 씨알을 뿌린다. 그러나 씨가 썩었다가 살아날 때 나오는 것은 처음 뿌린 그 씨알의 모습이 아니다.

38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이 각 씨에 뜻대로 형체를 주신다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각 씨에 그 본성에 맞는 몸을 주신다. 뿌린 씨와 나온 몸은 성질도 모양도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그 몸이 그 씨에서 나왔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39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육체도 종류마다 다르다

육체는 모두 몸이지만 존귀함과 탁월함의 정도가 다르다. 사람, 짐승, 물고기, 새의 육체가 서로 다르다. 그래도 모두 몸이고 육체다.

우리가 고기와 생선을 구별해 부르는 것은 말버릇일 뿐이다. 성경은 '물고기의 육체'라는 표현도 쓴다(레 11:10-11).

함께 볼 말씀레 11:10-11
40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하늘의 형체와 땅의 형체는 영광이 다르다

하늘에 속한 형체는 해와 달과 별이다. 땅에 속한 형체는 사람, 짐승, 새, 물고기, 원소, 돌 등이다.

두 부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여러 원소로 이루어진 땅의 몸보다 하늘의 몸의 영광이 훨씬 크다.

41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해·달·별,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

하늘의 몸들 사이에도 영광의 차이가 크다. 달은 해만 못하고, 별은 해나 달보다 훨씬 못하다. 별과 별 사이에도 영광이 다르다. 그러나 종류와 성질은 달라도 모두 '몸'이라는 점은 같다.

42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산다

부활도 이와 같다. 성도의 부활의 몸은 지금의 몸과 성질과 상태가 크게 다르다. 그러나 같은 몸이다. 씨가 썩어 다른 모습으로 살아나도 같은 것인 것과 같다. 하늘과 땅의 몸이 다르듯, 흙으로 된 지금의 몸과 부활의 몸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바울은 그 차이를 하나씩 설명한다. 먼저 '썩을 것으로 심는다'는 것은 몸이 죽어 땅에 묻혀 썩는 것을 말한다. 그 몸은 다시 살아날 때 더는 부패하지 않는 몸이 된다(52절).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이 영광으로, 약한 것이 강하게 산다

죽은 시신보다 흉한 것은 없다. 그러나 다시 살아난 몸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이 땅에서 지녔던 결함과 기형은 사라지고 가장 완전한 상태로 부활한다.

의인은 별처럼, 해처럼 빛나고(단 12:3; 마 13:43),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처럼 변한다(빌 3:21). 각 부분이 완전해지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영혼이 큰 기쁨 속에 온전해진다. 이 셋이 몸을 아름답게 한다. 신학자들은 그 아름다움의 상당 부분이 하나님을 온전히 뵙고 그 영광이 비치는 데서 온다고 말한다.

묻힐 때의 몸은 쉽게 상하는 약한 몸이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어떤 연약함도 없는 강한 몸이다.

함께 볼 말씀단 12:3 · 마 13:43 · 빌 3:21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산다

'육의 몸'은 모든 생물이 타고나는 몸이다. 혼의 작용으로 유지된다. 혼은 먹고 소화하고 영양을 나누는 기관과, 지각하고 판단하는 기관을 움직여 몸을 지탱한다.

'신령한 몸'은 영적인 물질로 된 몸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 뜻이라면 말 자체가 모순이다. '신령하다'는 것은 몸의 특질과 상태를 가리킨다. 부활한 자는 장가가고 시집가지 않으며 다시 죽지 않고 천사와 같다(마 22:30; 눅 20:35-36).

그 몸은 아름답고 썩지 않으며 연약함이 없다. 굶주림, 목마름, 추위, 더위에 상하지 않는다. 먹고 마시고 입고 약을 쓸 필요가 없고, 혼인하지 않는다. 영처럼 자유롭고 민첩하게 움직인다(살전 4:17). 성도는 이런 몸을 입고 온전한 마음으로 모든 신령한 일을 완벽하게 행한다.

  • 육의 몸혼의 작용으로 영양과 지각이 유지되는, 타고난 몸
  • 신령한 몸재료가 영이라는 뜻이 아니라, 천사처럼 썩지 않고 연약함이 없는 새 특질을 지닌 몸
함께 볼 말씀마 22:30 · 눅 20:35-36 · 살전 4:17
45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첫 아담은 생령,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

앞부분은 창 2:7의 말씀이다. 아담은 흙으로 지어졌지만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로 육적 생명을 얻어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말세에 오셔서 인류의 마지막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다. 아담이 자연적 출생의 첫 사람이라면, 그리스도는 은혜와 중생의 머리로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다.

그렇게 되신 때는 연약한 몸으로 태어나신 때가 아니다. 같은 몸이지만 훨씬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때다. 그분은 그 몸으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사람의 영혼을 살리시고,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죽을 몸을 무덤에서 일으키신다.

  • 마지막 아담말세에 오셔서 은혜와 중생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
함께 볼 말씀창 2:7
46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먼저 육의 사람, 그다음 신령한 사람이다

시간 순서로는 육적인 아담이 먼저고 영적인 아담이신 그리스도가 그다음이다.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먼저 육의 몸으로 태어나 자라고 죽는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다음에 더 탁월한 특질을 지닌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47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첫 사람은 흙에서,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첫 사람 아담은 땅의 흙으로 지어졌으므로 흙에 속한 자다(창 2:7).

그리스도의 기원은 다르다. 그분의 몸은 동정녀의 태에서 형성되었지만, 그 잉태는 그녀를 덮은 성령으로 말미암았다. 신성으로는 영원 전부터 아버지에게서 나셨다.

함께 볼 말씀창 2:7
48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흙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는 각기 그 머리를 닮는다

아담이 땅의 몸을 지녔듯 그의 모든 자손도 땅의 몸을 지닌다. 그리스도가 부활 후 하늘의 몸을 지니셨듯, 그분을 믿는 모든 자도 부활 때 하늘의 몸을 입는다.

49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신자는 육신으로는 첫 아담의 자손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아담과 같은 몸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활 때에는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의 형상, 곧 부활하신 그분이 입으신 몸을 입게 된다.

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썩을 혈과 육은 그대로 하나님 나라를 받지 못한다

'혈과 육'은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죄나 새롭게 되지 않은 본성을 뜻하지 않는다. 연약하고 썩고 죽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몸을 가리킨다. 엡 6:12와 히 2:14도 같은 뜻으로 쓴다.

혈과 육 자체는 결국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몸은 영화롭게 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상태 그대로는 받지 못하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썩는 것이 썩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의 몸은 42절 말씀처럼 썩을 것으로 심겨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혈과 육죄가 아니라 연약하고 썩을 지금 상태의 몸
함께 볼 말씀엡 6:12 · 히 2:14

6. 마지막 날 산 자와 죽은 자의 변화, 사망에 대한 승리51~57절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순식간에 다 변화된다

재림 때 아직 살아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었다. 바울은 '비밀'을 알려 주겠다며 말문을 연다. 이 단어는 롬 11:25; 16:25 등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어떤 이들은 '다 잠잘 것이 아니요'를, 모두 죽기는 하되 오래 잠들지 않고 곧 살아난다는 뜻으로 본다. 어떻든 우리의 썩을 몸은 잠시 죽었다가, 또는 하나님의 다른 역사로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

이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나팔이 사람을 불러 모으듯 죽은 자를 무덤에서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또는 시내산의 나팔 소리 같은 하나님의 음성으로(출 19:16-19) 이루어진다.

  • 비밀전에 감추어졌다가 이제 하나님이 알려 주신 진리
함께 볼 말씀롬 11:25 · 롬 16:25 · 출 19:16-19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에 죽은 자는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된다

주님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 택하신 자들을 모으겠다고 하셨다(마 24:31). 바울도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주께서 강림하신다고 했다(살전 4:16-17).

그 소리가 나면 죽은 성도들은 썩을 몸이 아닌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일어난다. 그때 살아 있는 성도들도 변화되어 썩지 않는 상태가 된다.

함께 볼 말씀마 24:31 · 살전 4:16-17
53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음을, 죽을 것이 죽지 않음을 입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썩을 혈과 육을 입은 채로는 영화롭게 되지 못하도록 정하셨다. 그래서 이 썩을 몸을 썩지 않는 몸으로 바꾸신다.

두 몸은 실체로는 같고 성질만 다르다. 이 죽을 몸이 죽지 않음과 썩지 않음을 입는 변화를 거친 뒤에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그때 사망이 삼켜진다는 말씀이 이루어진다

그때 사망에 대한 영원한 승리가 이루어져 성도는 더 이상 죽지 않는다.

바울은 사 25:8과 호 13:14을 인용한다. 그날에는 이 두 본문이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온전하고 탁월하게 성취될 것이다.

함께 볼 말씀사 25:8 · 호 13:14
55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 승리와 독침이 어디 있느냐

바울은 그 복된 날을 바라보며 사망에 대한 승리를 비유로 외친다. 그날 사망은 독침 빠진 말벌 같아서 신자를 해칠 수 없다.

아담 이래 모든 육체를 정복하고 약탈한 사망(또는 무덤, 음부)이 이제는 정복당하고 약탈당한다. 그러니 그 승리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56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사망의 독침은 죄, 죄의 힘은 율법이다

죄가 없다면 사망은 사람에게 아무 권세도 없다. 죄가 사망에게 사람을 해칠 권세를 준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율법이 없으면 범법도 없다. 율법은 죄책을 없애 주지 못한다. 오히려 부패한 본성이 금지된 것에 더 끌리게 만들어 죄에 힘을 더한다(롬 7:8).

함께 볼 말씀롬 6:23 · 롬 7:8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리스도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가 죄와 사망을 이기는 것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덕분이다. 그분은 죽음으로 우리를 죄책과 죄의 권세에서 건지셨고, 사망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

7.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라58절

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라, 수고는 헛되지 않다

바울은 몸의 부활을 증명한 뒤, 그것을 근거로 거룩한 삶을 권하며 강론을 마친다. 그 삶을 '주의 일'이라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분께 직접 영광 돌리는 일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견실하라'는 변덕이나 충동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하지 말고 꾸준히 바른 길로 행하라는 뜻이다. '흔들리지 말라'는 위험이나 보상이나 거짓 교사의 유혹 때문에 기본 신조, 특히 부활 신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유는 그들의 수고가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로 반드시 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상을 위해 섬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모세처럼 상 주심을 바라보는 것은 합당하다(히 11:26). 썩을 몸이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변하여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보다 더 큰 상은 없다.

  • 견실하며변덕이나 치우침 없이 꾸준히 바른 길로 행함
  • 주의 일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해 그분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삶
함께 볼 말씀히 11:26

복습 문제

풀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신자의 부활이 반드시 따라 나오는 근거로 무엇을 드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다. 또 머리가 살아났는데 지체가 영원히 죽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부활은 죽음을 이기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가 되시려는 목적을 지닌다(13절).
그리스도가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신다'(24, 28절)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열등하다는 뜻인가?
아니다. 원수들 가운데 교회를 다스리던 중보의 나라가 그 경륜을 마치고 그친다는 뜻이다. 성부·성령과 함께 만물을 다스리는 본질적인 나라는 영원하다.
'신령한 몸'(44절)은 영으로 만들어진 몸이라는 뜻인가?
아니다. 그런 뜻이라면 말 자체가 모순이다. 같은 몸이지만 천사처럼 썩지 않고 연약함과 굶주림이 없으며 자유롭고 민첩한 새 특질을 지닌 몸이라는 뜻이다.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15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