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고린도전서 주석 · 매튜 풀

10장 광야의 경고와 성도의 자유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고린도전서 10장 1~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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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큰 특권을 받은 성도도 넘어질 수 있다면, 우상 숭배를 어떻게 피하고 받은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 옛 이스라엘은 성례의 모형을 모두 누렸지만 죄 때문에 광야에서 멸망했다. 특권이 심판을 막아 주지 않는다.
  • 그들의 이야기는 말세의 우리를 깨우치려고 기록되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일이다.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을 겸할 수 없다.
  • 허락된 일이라도 하나님의 영광, 남의 유익, 거치지 않음을 기준으로 행해야 한다.

1. 특권을 누리고도 멸망한 광야 세대1~5절

1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구름 아래, 바다 가운데를 지난 조상들을 기억하라

고린도의 많은 신자들은 받은 지식과 은사와 특권 때문에 마음이 높아졌다. 이방인 가운데 그리스도께 돌아온 첫 열매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그래서 자신을 엄히 살필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았다. 바울은 이 헛된 자만을 깨뜨리려고 유대 교회의 본보기를 내세운다.

모세 시대의 유대인은 육신으로는 고린도 신자들의 조상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유일한 백성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조상이다.

이스라엘 진영 전체가 큰 특권 아래 있었다.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았고, 갈라진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다.

  • 우리 조상들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다는 뜻의 조상
함께 볼 말씀출 13:21-22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받은 세례

첫째 난점은 '모세'가 무엇을 가리키느냐다. 어떤 이들은 모세라는 인물로 보고, 어떤 이들은 모세의 율법이나 가르침으로 본다. 인물로 보는 이들도 전치사 에이스의 풀이를 두고 갈린다. '모세에 의해서'(행 7:53, 19:3과 같은 용법), '모세의 인도 아래서', '모세와 합하여'(모세를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봄, 갈 3:19), '모세와 더불어', '모세까지도' 등의 해석이 있다. 율법으로 보는 이들은 눅 16:29, 행 15:21을 근거로 든다. 그들은 백성이 모세를 믿고 그 인도를 따라 바다와 구름 아래를 지났다는 뜻으로 읽는다.

둘째 난점은 '세례'의 뜻이다. 구약은 구름이 비를 쏟아 그들을 씻겼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견해가 나왔다. 구름이 실제로 비를 내렸다는 견해(시 68:7-9)가 있다. 세례를 자랑하는 고린도인에게 옛 이스라엘의 특권을 세례에 빗댔다는 견해도 있다. 원수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인치는 세례의 예표라는 견해도 있다.

풀이 가장 유력하게 보는 견해는 이렇다. 물이 양옆에 벽처럼 서 있었어도 밖에서 보면 백성이 물속에 잠긴 듯했다. 그래서 바울이 잠김 세례에 빗대어 말했다는 것이다. 풀은 구름이 실제로 비를 뿌려 세례 같은 모습을 연출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 에이스뜻이 여럿인 전치사. '~에 의해', '~안에서', '~와 합하여' 등으로 풀이가 갈린다
함께 볼 말씀행 7:53 · 갈 3:19 · 눅 16:29 · 시 68:7-9
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 만나를 먹었다

광야에서 멸망한 자들도 가나안에 들어간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만나를 먹었다. 그 만나는 지금 우리가 먹는 참된 신령한 음식의 모형이었다.

만나를 '신령한 음식'이라 부르는 이유는 넷이다. 신령한 존재들이 사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적으로 만들어졌다. 천사들의 사역으로 나뉜 천사의 양식이었다. 무엇보다 하늘에서 온 참 떡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냈다.

  • 신령한 음식하늘에서 이적으로 온 만나. 참 떡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
함께 볼 말씀요 6:31 · 요 6:32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따라온 신령한 반석, 그 반석은 그리스도

살아서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만이 아니라 멸망한 자들도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셨다(출 17장; 민 20장). 이 물은 이적으로 생겼고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그래서 '신령한 음료'다.

반석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성찬의 떡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반석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표징이었다.

'따랐다'는 것은 반석에서 솟은 물이 백성을 따라갔다는 뜻이다. 구약에는 이 내용이 없지만, 신약이 분명히 말하면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40년 동안 어디서 물을 얻었겠는가? 가데스에서 다시 반석을 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백성을 시험하려고 물을 잠시 끊으셨을 가능성이 크다.

신학자들은 반석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비를 이렇게 정리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흔들리지 않는 터다. 반석이 맞은 뒤에야 물이 나왔듯 그리스도도 맞으신 뒤에야 은택이 흘러나왔다. 물이 씻기고 살렸듯 그리스도의 피는 죄책을 씻고 영적 생명을 준다. 반석의 물이 가나안까지 모든 세대를 먹였듯, 그리스도의 공로는 택한 자들이 모두 하늘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미친다.

  •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하나님이 정하신 표징으로서 그리스도를 나타냈다는 뜻
함께 볼 말씀출 17:6 · 민 20:7-8 · 사 28:16 · 벧전 2:6
5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러나 그들 다수는 광야에서 멸망했다

'다수'는 스무 살 이상 성인으로 이루어진 그 세대 전체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다. 실제로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민 14:28-30; 26:64-65).

멸망한 자들 가운데 다수는 악한 자들과 함께 불평했어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아 구원받을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광야에서 심판을 받았다. 이것은 큰 특권에 참여했다고 해서 심판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바울은 이것으로 고린도인들에게 경고한다.

함께 볼 말씀민 14:28-30 · 민 26:64-65

2. 그들의 본보기는 우리를 위한 경고6~12절

6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일은 악을 즐기지 않게 하는 본보기

'본보기'로 번역된 말은 모형 또는 모본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신 일을 보면,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임을 배운다.

그들은 큰 특권을 누렸다는 점에서 우리의 모본이다. 동시에 우리가 똑같이 행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미리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모본이다. 그들은 애굽의 고기 가마와 파와 마늘을 그리워했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나님은 그 악한 욕망에 맞는 심판을 내리셨다.

  • 본보기모형·모본.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다루실지 보여 주는 예
함께 볼 말씀민 11:4-5 · 민 11:33 · 민 14:2-4
7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처럼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스라엘은 모압 여자들과의 음행으로 시작했다. 그 뒤 그들의 제사에 초대받아 먹고 그 신들에게 절하게 되었다(민 25:1-2). 우상 숭배란 창조주 대신 피조물에게 절하는 것이다. 또는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창조주라 하며 절하는 것이다.

인용된 말씀은 금송아지 사건을 기록한 출 32:6이다. 그들은 제사 뒤에 잔치를 벌여 먹고 마시며 놀았고,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었다. 스데반도 그들이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했다고 말한다(행 7:41).

함께 볼 말씀민 25:1-2 · 출 32:6 · 행 7:41
8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음행하다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다

이 사건은 민 25:1-9에 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게 되자, 모압 여자들로 그들을 타락시키라고 발락에게 조언했다. 여자들은 먼저 음행으로 꾀고, 이어서 우상 숭배로 이끌었다. 하나님은 역병을 보내셨다.

모세는 이만 사천 명이라 하고 바울은 이만 삼천 명이라 한다. 어떤 이들은 모세가 전체 수를, 바울이 하루에 죽은 수를 말했다고 본다. 풀은 다르게 본다. 성경은 수를 대략 말하는 일이 흔하다. 사람들이 두 수를 다 말했을 것이고, 바울은 작은 쪽을 택한 것이다. 모세의 수에는 음행 없이 우상 숭배만 한 사람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만 삼천 명이 죽은 것은 확실하다.

함께 볼 말씀민 25:1-9
9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리스도를 시험하다 뱀에게 멸망했다

여기서 '시험'은 유혹이 아니라 시험해 본다는 뜻이다. 말씀을 믿지 않고, 그것이 사실인지 눈앞에 증명해 보시라고 하나님께 도전한 것이다(시 78:18-20). 더 넓게는 하나님을 도발하여 노하시게 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경고를 믿지 않고 벌을 직접 겪을 때까지 죄를 짓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다.

헬라어 본문에는 '그리스도를 시험하다가'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 전 선재를 보여 주는 주목할 만한 증거다. 같은 분을 시 106:14은 하나님, 또 여호와라 부른다. 그리스도께서 그때 계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 그분을 시험할 수 없었다.

뱀은 민 21:6-9의 불뱀이다.

  • 시험하다유혹이 아니라, 하나님께 증명해 보이라고 도전하는 것
함께 볼 말씀시 78:18-20 · 시 106:14 · 민 21:6-9
10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원망하다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했다

원망은 싫고 못마땅하여 불평하고 험한 말을 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자주 지은 죄였다(출 15:24; 16:7-8; 민 14:27; 16:11, 41).

이 구절은 그들이 원망한 모든 경우를 가리킬 수 있다. 또는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원망한 일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 일로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 스무 살 이상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민 14:1-3, 26-30).

  • 원망못마땅하여 불평하고 험담하는 것
함께 볼 말씀출 15:24 · 민 14:1-3 · 민 14:26-30
11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말세의 우리를 깨우치려고 기록되었다

하나님이 그 일들을 섭리하신 목적은 그들의 죄를 벌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후대 사람들이 그런 죄를 짓는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일들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목적도 있다. 읽고 듣는 사람들이 그런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두려워하며 경고를 받게 하려는 것이다.

'말세'라는 표현은 사도들이 흔히 자기 세대에 종말이 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것은 그 생각이 분명한 계시가 아니라 그들의 생각이었음을 보여 준다. 주님도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마 25:13). 그러므로 종말의 날을 지나치게 캐묻지 말아야 한다. 사도들은 종말을 앞둔 사람처럼 살았지만 날짜를 정해 말하지는 않았다.

  • 말세사도들이 자기 세대를 종말 직전으로 여겼던 표현
함께 볼 말씀마 25:13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바른 판단에, 하나님의 은총에, 거룩한 삶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롬 5:2). 그는 실제로 서 있을 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조심해야 한다.

착각이라면 반드시 넘어진다. 실제로 서 있다 해도 한순간에 그릇된 생각이나 방탕에 빠져 진노를 부를 수 있다. 큰 특권을 가진 사람도 앞의 유대인들처럼 멸망할 수 있다.

참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거듭난 사람은 총체적이고 최종적으로 넘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크게 넘어져 마음의 평화를 잃고 혹독한 징계를 부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지만(벧전 1:5), 계속 서 있으려면 하나님이 정하신 수단과 방편을 부지런히 써야 한다.

함께 볼 말씀롬 5:2 · 벧전 1:5

3. 감당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13절

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미쁘신 하나님은 피할 길을 내신다

'시험'은 본래 무엇이 참인지 알아보려고 시험해 보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 말은 환난을 뜻하기도 하고(약 1:2; 벧전 1:6),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시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창 22:1-2). 이 둘은 그 자체로 선하다. 반면에 새로워지지 않은 욕심이나 마귀나 악인이 일으키는 시험도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죄악된 유혹이다. 풀은 여기서 선한 시험과 악한 유혹을 모두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한다.

바울은 앞에서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이제는 위로한다. 그들이 공통된 시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시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이다. 미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셨고,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시험은 겪게 하지 않으신다.

실제로 시험을 당하면 하나님은 피할 길을 내신다. 그들이 시험에 져서 완전히 무너지게 하지 않으신다. 해악이 계속 짓누르도록 두지도 않으신다. 조심하며 죄와 싸우려고 마땅히 애쓰는 이들이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 시험본래 '시험해 봄'. 여기서는 선한 시련과 악한 유혹을 모두 포함한다고 봄
  • 안트로피노스'사람에게 속한', 곧 사람이 감당할 만한
함께 볼 말씀약 1:2 · 창 22:1-2 · 고후 1:18 · 살후 3:3

4. 우상 숭배를 피하라: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14~22절

14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그러므로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모든 죄를 피해야 하지만, 우상 숭배는 가장 멀리해야 한다. 모든 죄 가운데 가장 큰 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흔히 우상 숭배를 음행에 빗댄다. 하나님도 이 죄에 특히 진노를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이 죄를 미워해야 한다.

우상 숭배는 본래 피조물을 경배하거나, 피조물을 매개로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의 죄에 참여하는 길이 여럿이듯,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길도 여럿이다. 고린도인들은 남이 우상 숭배를 하더라도 거기에 끼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이것이 고린도인과 어떤 관계인지는 20절에서 다룬다.

15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지혜 있는 자들아, 스스로 판단하라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너희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 원리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내가 이제 할 말을 스스로 따져 보라.

16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축복의 잔과 떼는 떡은 그리스도께 참여함

해석자들은 여기서 바울이 성찬에 함께 참여하는 일을 말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잔을 '축복의 잔'이라 부르는 이유는 둘이다. 그 잔에 참여하며 아들을 주신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송축하기 때문이다. 또 그 잔을 거룩한 용도로 구별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복을 비는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잔'은 거기 담긴 포도주를 뜻한다. 또한 그 잔을 믿음으로 마시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때 그리스도는 자신과 은혜를 주시고, 우리는 마음을 그분께 드린다. 그리스도와 믿는 자 사이에 서로 오가는 교통이 일어난다.

떡도 마찬가지다.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제정과 모범을 따라 떡을 떼어 나눈다. 믿는 자가 그 떡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통하고 교제하는 일이다.

  • 축복의 잔하나님을 송축하고, 복을 빌어 구별한 성찬의 포도주 잔
  • 참여함그리스도와 믿는 자 사이에 서로 오가는 교통
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한 떡에 참여하므로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다

신자는 수가 많아도 한 몸이다. 성찬의 떡은 많은 낟알이 모여 된 한 덩이다. 포도주는 많은 포도알이 모여 된 하나다. 신자들은 그것을 나누어 함께 먹음으로써 자신들이 한 몸임을 선언한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추악한 죄인이 함께 참여하면 신자도 그와 한 몸이 되므로 그런 성찬은 불법이라고 주장해 왔다. 풀은 이 논리를 의심한다. 여기서 한 몸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아니라 보이는 교회이고, 보이는 교회에는 선인과 악인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추악한 죄인은 성찬에서 배제되어야 하고 불신자는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참여했다고 신자가 자신을 그런 자라고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성찬 참여는 특정한 보이는 교회의 지체임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바울이 이 말을 하는 취지는 따로 있다.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는 자는 같은 이치로 우상 숭배자들과 한 몸임을 선언하게 된다는 것이다.

  • 한 몸여기서는 보이는 교회의 지체 됨을 가리킨다고 풀은 본다
18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제물을 먹는 자는 제단에 참여하는 자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은 야곱의 자손 전체, 곧 유대 교회를 말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성령을 따라 난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갈 6:16).

유대 교회에서 하나님의 제단에 드린 제물을 먹는 사람은 자신이 그 교회의 지체이며 그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했다. 마찬가지로 우상의 신전에서 제물을 먹는 고린도인은 그 우상과 그 예배를 시인하는 셈이다.

  •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야곱의 혈통 전체, 곧 유대 교회
함께 볼 말씀갈 6:16
19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우상이나 제물이 무엇이라는 말이 아니다

바울은 앞의 말(8장)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밝힌다. 우상은 신이 아니다. 우상은 제물을 거룩하게 하거나 더럽힐 수 없다. 제물이 신자의 양심을 더럽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우상 숭배자들과 함께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는 너희의 행위다. 너희를 더럽히는 것은 우상이나 제물이 아니라 그 행위다.

20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귀신에게 제사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실제로는 귀신에게 제사했다. 우상 뒤에서 기도에 응답하는 척하며 우상을 참 신처럼 믿게 하고, 신탁을 받았다고 여기게 만든 것이 악한 천사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경배 행위를 의도가 아니라 실제 행위로 판단하신다. 일부러 피조물을 경배하려는 우상 숭배자는 거의 없다. 우상 숭배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하느냐로 정해진다.

풀은 이것을 성상 앞에 절하는 교황주의자들에게 적용한다. 그들은 의도가 없다며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하고, 일부 개신교도도 그렇게 그들을 옹호한다. 그러나 피조물을 세워 놓고 그 앞에서 창조주를 경배해도 된다는 말씀은 성경에 없다. 창조주를 경배한다고 강변해도 소용없으니, 그들은 마지막 날의 판결을 두려워해야 한다.

바울의 결론은 이렇다. 그런 행위로 참되신 하나님 대신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 귀신우상 배후에서 사람을 속이는 악한 천사들
21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할 수 없다

'주의 잔'은 믿음의 모든 행위로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것 전체를 뜻할 수 있다. 좀 더 좁게는 성찬에서의 교통을 뜻할 수도 있다. '주의' 잔이라 부르는 이유도 둘 중 하나다. 주께서 제정하셨기 때문이거나,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때문이다(고전 11:26).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는 자는 성찬에 나와도 선한 양심으로 바르게 마실 수 없다. 그러니 그리스도와 교통할 수 없다.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도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우상을 숭배하는 무리를 참 교회라 할 수 없고, 우상 숭배자를 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우상 숭배는 마음을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갈라놓는다. 그런 무리를 교회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라 하신 자들에게 '암미'(내 백성이다)라 하는 것과 같다.

  • 주의 잔그리스도와의 교통, 특히 성찬에서의 교제
함께 볼 말씀고전 11:26
22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주를 질투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더 강하냐

'노여워하시게 하다'의 원뜻은 '질투하시게 하다'이다. 사람의 질투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경쟁자를 못 견디는 격한 감정이다. 하나님께 쓰일 때는 절제 없는 감정이 아니다. 하나님께만 드릴 경배를 피조물에게 드리는 것에 대한 의롭고 합당한 진노를 뜻한다(사 42:8).

그래서 신학자들은 질투라는 하나님의 속성이 외적 경배를 다루는 둘째 계명과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다(출 20:4-6). 여러 본문이 같은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자신과 피조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그런 자들에게 불같은 진노를 내리신다(출 34:14; 신 4:24).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보다 강하다고 착각하는 자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맞설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울은 우상의 신전에서 제물을 먹는 것이 우상 숭배임을 확실히 새긴다. 그런 다음 8장에서 말했던 형제 사랑의 문제로 돌아간다.

  • 질투하나님께만 드릴 경배를 피조물에게 줄 때 나타나는 의로운 진노
함께 볼 말씀사 42:8 · 출 20:4-6 · 출 34:14 · 신 4:24

5. 허락된 일도 남의 유익을 살펴서23~30절

23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하지는 않다

'모든 것'을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로 좁혀 보면, '모든 것이 가하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바울은 방금 신전에서 제물을 먹는 것이 귀신과의 교제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은 성경의 흔한 용법대로 '많은 것'으로 읽는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아 그 자체로는 가한 일이 많다. 그러나 구체적 사정에 따라 남에게 해가 되면 유익하지 않다.

뒷부분은 '유익'의 뜻을 풀어 준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복음을 진보시키거나 그리스도인 개인의 믿음과 거룩함을 돕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익한 것이 아니다.

  • 덕을 세우다복음의 진보, 또는 신자의 믿음과 거룩함에 도움이 되는 것
24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자기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라

자기 즐거움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의 의무다. 사랑은 남을 해치면서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전 13:5).

어떤 일에 불경이나 우상 숭배의 요소가 전혀 없어 보여도, 그 일로 형제가 해를 입는다면 사랑 때문에 그만두어야 한다.

함께 볼 말씀고전 13:5
25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묻지 말고 먹으라

정육점 주인이 팔기 전에 고기 일부를 우상에게 바쳤을 수 있다. 제물의 남은 몫을 받은 제관이나 제사자가 시장에 내다 팔았을 수도 있다. 바울은 그 고기의 출처를 따지지 말고 사서 먹으라고 한다. 우상에게 바쳐졌어도 고기 자체가 부정하지 않고, 먹는 것도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묻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양심을 위하여'는 둘로 풀이된다. 첫째는 약한 형제의 양심이다. 강한 신자가 물어서 제물인 줄 알고 먹으면, 보던 약한 형제가 따라 먹다가 양심을 거슬러 죄를 지을 수 있다. 둘째는 자기 양심이다. 알고 먹으면 나중에 돌아볼 때 거리낌이 생길 수 있으니, 묻지 말고 먹는 것이 좋다.

26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이다

시 24:1의 인용이다. 땅은 하나님 곧 주 그리스도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쓰도록 만물을 거룩하게 하셨다. 우상은 어떤 음식도 더럽힐 수 없다.

더럽히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신전에서 우상 숭배자들과 앉아 막 바친 제물을 함께 먹는 행위다. 의식이 끝나 제물이 일반 용도로 돌아와 시장에 나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 섭리로 그분 손에서 받는 음식일 뿐이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딤전 4:4).

함께 볼 말씀시 24:1 · 딤전 4:4
27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불신자의 초대를 받으면 묻지 말고 먹으라

제물을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우다. 이방인 이웃이 자기 집 식사에 초대한 경우다.

어떤 이들은 제단의 제물이 아닌 친교 잔치에 신전으로 초대받은 경우도 여기 포함된다고 본다. 풀은 그것이 포함되는지, 또 신전에서 제물 아닌 고기로 잔치하는 일이 있었는지 의심한다.

이웃 집에서 차려 준 음식을 먹는 것은 합법적이다. 그래도 바울은 여기서도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라고 덧붙인다.

28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제물이라고 알려 주면 그를 위해 먹지 말라

일반 용도로 돌아온 제물을 먹는 것은 불경이 아니고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가 그것이 제물이라고 알려 준다면, 알고 먹는 것은 형제 사랑을 저버리는 일이다. 그 형제 앞에 걸림돌을 놓아, 그가 불법이라 여기면서도 따라 먹으며 양심을 거스르게 할 수 있다. 또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나중에 양심에 거리낌이 생길 수 있다.

흠정역에는 이 절에도 시 24:1의 구절이 들어 있다. 여기서는 26절과 다르게 쓰인다. 26절은 시장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 근거였다. 여기서는 땅에 먹을 것이 많으니 굳이 그 제물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함께 볼 말씀시 24:1
29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남의 양심 때문에 내 자유가 판단받지 않게

28절에서 이미 그들 자신의 양심도 말했다. 그러므로 '너희의 것이 아니요'는 '너희 양심만이 아니라'로 읽어야 한다. 성경은 부정어를 '오직 그것만은 아니다'라는 제한된 뜻으로 자주 쓴다. 요 4:42에서는 '네 말만 듣고서가 아니라'는 뜻이고, 요 6:38에서는 '내 뜻만 행하려 함이 아니라'는 뜻이다.

뒷부분의 뜻은 이렇다. 그런 상황에서 먹으면, 너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 안에서 죄 아닌 일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남의 양심을 거슬렀기에 그들은 너희를 죄인으로 판단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눈에 선한 일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한다(롬 12:17; 빌 4:8).

함께 볼 말씀요 4:42 · 요 6:38 · 롬 12:17 · 빌 4:8
30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감사하며 먹을 것을 왜 비방받으며 먹겠나

'감사함으로'로 번역된 카리스는 감사를 뜻하기도 한다(눅 6:32). 남들은 지식이 없어 꺼려도, 나는 만물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임을 알기에 감사하며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굳이 비방을 받아 가며 먹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 고기를 먹는 것이 형제에게 해가 되어 비방을 받는다면, 말로는 감사해도 실제로는 자유를 남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고 그분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 된다. 먹을 것이 세상에 널려 있으니, 형제 앞에 올무를 놓을 까닭이 없다.

  • 카리스은혜. 여기서는 '감사'의 뜻
함께 볼 말씀눅 6:32

6.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31절

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엇을 하든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지막 세 절은 명령도 금지도 없는 일에서 자유를 쓰는 세 규범을 준다. 첫째 규범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이다. 제물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의 모든 행위에 적용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지으셨다(잠 16:4). 사람은 자기 목적을 최고라 여겨도 틀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그분의 영광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고 행하는 최고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요 17:4, 6).

이 규범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다. 결혼, 음식, 옷처럼 자유가 많아도, 구체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의 진보와 신앙의 평판에 가장 도움이 되게 써야 한다. 그래서 같은 일이 상황에 따라 합법이 되기도 하고 불법이 되기도 한다.

함께 볼 말씀잠 16:4 · 요 17:4 · 요 17:6

7. 바울을 본받아 아무에게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32~33절

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유대인·헬라인·교회 누구에게도 거치지 말라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아프로스코포이 기네스테)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남이 죄를 짓거나 걸려 넘어질 빌미를 주지 말라는 뜻이다.

당시 모든 사람은 유대인, 헬라인(이방인), 하나님의 교회(그리스도인) 가운데 하나에 속했다. 그러니 이는 모든 사람에게 거치지 말라는 말이다. 불신자의 기분을 전혀 상하지 않게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죄의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하물며 한 몸의 지체인 형제에게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 아프로스코포이 기네스테남에게 죄나 넘어짐의 빌미를 주지 말라
33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나처럼 많은 사람의 구원을 구하라

'모든 일'은 하나님이 자유에 맡기신 일들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생각이나 기분을 만족시키지 않았다. 모든 일에서, 특히 남의 영원한 구원에 닿는 일에서 남의 유익을 구했다.

바울은 선한 목자처럼 양 떼 앞에서 걸으며 본을 보였다. 이 절은 셋째 규범을 준다. 자유가 있어도 남의 영적 유익과 구원을 따져, 해는 가장 적고 유익은 가장 큰 쪽을 택하라는 것이다.

복습 문제

풀은 이스라엘이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표현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물이 양옆에 벽처럼 서 있었어도 밖에서 보면 백성이 물속에 잠긴 듯했다. 그래서 바울이 잠김 세례에 빗대어 말했다는 견해를 가장 유력하게 본다. 구름이 실제로 비를 뿌렸을 가능성도 크다고 덧붙인다.
9절의 '주(그리스도)를 시험하다가'는 무엇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하는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 전 선재를 보여 준다. 같은 분을 시 106:14은 하나님, 여호와라 부른다. 그리스도께서 그때 계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 그분을 시험할 수 없었다.
31~33절에서 풀이 정리한, 자유를 사용하는 세 규범은 무엇인가?
첫째,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둘째, 유대인·헬라인·교회 누구에게도 죄의 빌미를 주지 말라. 셋째, 바울처럼 남의 영적 유익과 구원을 따져 가장 유익한 쪽을 택하라.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10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