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고린도전서 주석 · 매튜 풀

8장 지식보다 사랑, 형제를 위한 절제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고린도전서 8장 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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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우상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신자는 그 지식과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 지식은 사람을 부풀게 하지만 이웃을 향한 사랑은 형제를 세운다.
  • 참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만물은 성부에게서 나고 성자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 모든 신자가 이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약한 형제는 강한 자를 보고 양심을 거슬러 먹다가 넘어진다.
  • 그 자체로 금지되지 않은 일이라도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은 죄다. 그러니 자유를 내려놓아야 한다.

1. 사랑이 지식보다 낫다1~3절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우상 제물 문제를 다루며 지식보다 사랑을 앞세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편지로 물어 온 새 문제에 답하기 시작한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는 문제다.

풀은 당시 관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가축을 우상에게 바치면 제관은 일부를 제단에서 태웠다. 나머지는 바친 사람에게 돌려주거나 제관이 차지했다. 그 고기로 신전이나 집에서 잔치를 벌였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그래서 질문은 두 가지였다. 신전이나 이교도의 집 잔치에 초대받으면 가서 먹어도 되는가? 시장에서 파는 제물 고기를 사 먹어도 되는가? 일부 신자들은 우상이 나무나 돌에 불과해 아무것도 더럽힐 수 없으니 괜찮다고 여겼다.

바울은 그들에게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지식 때문에 우쭐해져서 자기는 틀릴 리 없다고 여기다가 죄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여기서 '사랑'은 하나님 사랑일 수도 있지만, 풀은 이웃 사랑으로 본다. 아는 자는 자기 영혼만이 아니라 형제의 영혼도 살펴서 그를 세우는 쪽으로 행동해야 한다.

  • 우상의 제물우상에게 바친 뒤 제관이나 바친 사람 몫으로 돌아와 잔치나 시장에서 먹게 된 고기
  • 사랑하나님 사랑으로도 볼 수 있으나 풀은 여기서 이웃 사랑으로 본다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다 안다고 자부하는 자는 아직 바르게 알지 못한다

자기 지식을 자랑하며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그는 머리로는 알지 몰라도, 그 지식이 그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지식은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의 덕을 위해 써야 한다. 겸손하지 않으면 지식을 그렇게 쓸 수 없다. 이런 목적으로 쓰지 못한다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풀은 지식이라는 달란트를 보자기에 싸서 묻어 두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하나님에 관해 많이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 알려지고 인정받는 것이 훨씬 큰 유익이다. 많이 알던 사람도 마지막 날에 '나는 너를 모른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께 인정받는다.

풀은 성경에서 '안다'가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고 설명한다. 개역개정이 이 말을 '알아주신다'로 옮긴 것도 이 뜻을 살린 것이다.

  • 알아주시느니라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시인하고 인정하신다는 뜻
함께 볼 말씀마 7:23 · 요 17:3 · 롬 7:15

2. 한 하나님과 한 주를 아는 자에게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4~6절

4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뿐이다

우상은 나무나 돌이나 흙으로 빚은 형상일 뿐이다. 신의 능력이나 속성이 없고, 자신이 나타낸다는 신을 대표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다'.

풀은 히브리어에서 '우상'이라는 말이 '아무것도 아님'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고 설명한다. 이 구절을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우상은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거룩하게도, 부정하게도 만들 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뿐인 줄 안다'는 말도 두 갈래로 읽힌다. 하나는 아는 체하는 자들이 당당하게 하던 말을 바울이 꼬집으며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그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인정하고 바울이 자기 말로 다시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 우상신적 능력도 대표성도 없는 만들어진 형상. 히브리어 어원도 '아무것도 아님'과 이어진다
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하늘과 땅에 '신'이라 불리는 것은 많다

'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많다. 이교도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들이 있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부르신 존재들도 있다.

하늘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군대', '천군',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린다. 땅의 왕들도 '신들', '지존자의 아들들'로 불린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기 권세의 상당 부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함께 볼 말씀창 32:2 · 눅 2:13 · 욥 1:6 · 시 82:6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만물은 성부에게서 나고 성자로 말미암는다

이교도가 무엇을 믿든, 그리스도인에게 참 하나님은 한 분뿐이다.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계시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신성의 원천으로서 자기 신성을 다른 두 위격과 나누신다. 만물의 첫째 원인도 성부시다.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다'는 두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성부의 영광을 위해 지음받았다는 뜻일 수 있다. 또는 행 17:28처럼 우리가 그분 안에서 존재한다는 뜻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의 둘째 위격이시다. 풀은 한 학자의 견해를 소개한다. 바울은 성부를 함께 언급하는 곳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고 '주'라 부른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성부를 뺀 만물 위에 뛰어나심을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그 학자는 본다(고전 15:27).

'만물이 그로 말미암았다'는 요 1:3과 같은 뜻이다. 성부에게서 나고 성자로 말미암는다는 표현은 삼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순서를 보여 준다. 우리도 성자로 말미암아 지음받았고 속량받았다.

  • 아버지신성의 원천이시며 만물의 첫째 원인이신 성부
  • 주성부를 제외한 만물 위에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을 드러내는 칭호
함께 볼 말씀행 17:28 · 고전 15:27 · 요 1:3

3. 지식을 함부로 써서 약한 형제를 넘어뜨리는 것은 죄다7~13절

7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모두가 이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약한 양심이 더럽혀진다

어떤 이들은 참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제물이 그것 때문에 부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아는 것은 아니다.

복음을 오래 배웠어도 우상에 대한 미신이 아직 남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제물이 우상 때문에 더럽혀졌다고 여기면서도 꺼림칙한 마음으로 먹는다. 그래서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진다.

풀은 이 원리를 로마 가톨릭의 성상 숭배와 성인 기도에 적용한다. 학식 있는 이들은 성상을 보며 하나님께 예배할 뿐이고 성인에게는 중보만 부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식이 없는 많은 신자는 이를 보고 실제로 성상과 성인을 섬기게 된다. 그러니 이 역시 옳지 않다. 아는 자에게는 문제없어 보이는 일이 모르는 자에게는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이다.

  •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제물이 부정하다고 믿으면서도 먹어 자기 양심을 거스르는 상태
8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음식 자체는 우리를 하나님께 낫게도 못하게도 하지 않는다

풀은 이 절이 제물 먹기에 거리낌 없던 신자나 교사들의 주장을 바울이 옮겨 온 것이라고 본다. 무엇을 먹든 안 먹든 그것으로 하나님께 칭찬받거나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논리다.

바울 자신도 하나님 나라가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다고 분명히 가르친 바 있다(롬 14:17).

함께 볼 말씀롬 14:17
9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희 자유가 약한 자를 넘어뜨리지 않게 조심하라

여기서 '자유'로 옮긴 헬라어 엑수시아는 실제 권리라기보다 '자기가 가졌다고 여기는' 권리나 자유를 가리킨다. 풀은 흠정역이 이를 '권리'가 아니라 '자유'로 옮긴 것을 잘한 번역이라고 평가한다.

다음 절은 신전에 앉아 먹는 일을 다룬다. 그런데 고전 10:21에 따르면 그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일이어서 정당한 권리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절에서 바울은 일단 먹는 일 자체로는 사람이 잘못되지 않는다는 점만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곧 이 행위가 형제 사랑의 의무를 어기므로 결코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밝힌다.

  • 엑수시아(자유)실제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가졌다고 여기는 권리나 자유
함께 볼 말씀고전 10:21
10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강한 자의 모습이 약한 자를 담대히 죄짓게 한다

신전에서 제물을 먹는 일이 그 자체로 죄가 아니라고 해 보자. 풀은 사실은 죄라고 덧붙인다. 그렇더라도 그 일은 약한 형제 앞에 걸림돌을 놓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죄가 된다.

약한 자는 스스로는 그것이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강해 보이는 사람이 거리낌 없이 먹는 것을 보면 괜찮다고 여기고 대담하게 따라 하게 된다.

'담력을 얻어'로 옮긴 헬라어는 신약에서 보통 '덕을 세우다'로 번역되는 말이다. 선이든 악이든 무언가에 점점 능숙해진다는 뜻이다. 풀은 신약에서 이 말이 나쁜 뜻으로 쓰인 곳은 여기뿐이라고 지적한다.

교훈은 이렇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라도 그것을 쓰는 일이 남에게 올무가 되어 그 영혼을 해친다면, 쓰지 않는 것이 선한 신자의 본분이다.

  • 담력을 얻어본래 '덕을 세우다'로 쓰이는 말. 여기서만 악에 담대해진다는 나쁜 뜻으로 쓰였다
11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네 지식이 그리스도께서 위해 죽으신 형제를 망하게 한다

'네 지식으로'는 네 지식이 빌미가 되어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지식을 주신 목적은 남을 유익하게 하고 구원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지식으로 형제의 영혼을 망하게 한다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멸망한다'는 약한 자가 자기 양심의 판단을 거슬러 행하다가 죄에 빠진다는 뜻이다. 롬 14:23 말씀대로, 확신 없이 의심하며 먹는 것은 죄다. 죄라고 여기면서도 먹는 것은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한 형제도 참된 신자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어 죽으셨다. 그런 형제를 자기 자유를 남용해 죄에 빠뜨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크게 거스르는 일이다.

  • 멸망하나니자기 양심을 거슬러 행함으로 죄에 빠지는 것
함께 볼 말씀롬 14:23
12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약한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함은 그리스도께 죄짓는 것

죄는 본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짓는 것이다. 다만 이웃에 대한 의무를 다룬 법을 어기면 그것을 형제에게 짓는 죄라고 부른다.

약한 형제는 강한 자를 보고 죄라고 여기는 일을 대담하게 행한다. 그러면서 자기 양심을 다치고 더럽힌다. 바울은 이를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한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법을 어기는 일이다. 약한 자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도 거스르는 일이다. 자유를 조금만 양보하면 형제를 지킬 수 있다. 그런데도 그 작은 자유를 이기적으로 써서 형제를 멸망의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 형제에게 죄를 지어형제에 대한 의무에서 하나님을 거슬러 죄를 지었다는 뜻
13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형제가 넘어진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

바울의 뜻은 이렇다. 제물을 먹는 것이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니어도, 그 일이 형제를 넘어뜨린다면 나는 하지 않겠다. 어떤 이들은 '음식'을 모든 고기로 넓혀 읽는다. 그렇게 보면 형제를 위해 떡과 채소만 먹겠다는 말이 된다. 풀은 이를 고기를 끊어야 할 경우가 실제로 있다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형제가 죄짓지 않도록 선한 신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 주는 말이다.

주님께서 실족하게 하는 눈과 손을 빼고 찍어 버리라고 하신 말씀(마 5:29-30)도 같은 취지다. 나나 남을 죄짓게 할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풀은 8장 전체를 이렇게 정리한다. 하나님의 법이 허용한 일이라도 형제를 죄짓게 하는 빌미가 된다면, 그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므로 하지 말아야 한다.

풀은 두 질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윗사람이 명령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따르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위협받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러나 풀은 이런 문제를 따지는 것이 본문 해설의 범위를 넘는다며 다루지 않는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런 처지에 있지 않았고, 다른 고기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실족하게 한다면형제가 걸려 넘어져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
함께 볼 말씀마 5:29-30

복습 문제

풀은 1절의 '사랑은 덕을 세운다'에서 사랑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나님 사랑으로 볼 수도 있지만, 풀은 이웃 사랑으로 본다. 아는 자는 자기 영혼만이 아니라 형제의 영혼도 세우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6절에서 만물이 성부에게서 나고 성자로 말미암는다는 표현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삼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순서를 보여 준다. 성부는 신성과 만물의 원천이시고, 만물과 우리는 성자로 말미암아 지음받고 속량받았다.
그 자체로는 금지되지 않은 일이 왜 죄가 될 수 있는가?
그 일이 약한 형제에게 걸림돌이 되어, 그가 자기 양심을 거슬러 대담하게 죄를 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형제 사랑의 법과 형제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스르는 죄다(8:10-13).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8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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