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고린도전서 주석 · 매튜 풀

12장 한 성령의 여러 은사와 한 몸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고린도전서 12장 1~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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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서로 다른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한 몸으로 서로를 섬기는가?

  • 성령이 아니면 누구도 진심으로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없다.
  • 은사·직분·사역은 여러 가지지만 그 근원인 성령, 주, 하나님은 한 분이다.
  • 은사는 각 사람에게 성령의 뜻대로 나뉘며 자랑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이므로 지체들은 서로 멸시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함께 돌봐야 한다.

1. 성령으로만 예수를 주라 고백함1~3절

1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신령한 은사에 대해 모르지 않기를 바란다

헬라어 본문은 그냥 '신령한 것들'이다. 흠정역은 여기에 '은사'를 보충해 '신령한 은사들'로 옮겼다. 원문만 보면 신령한 직분이나 사역까지 포함할 수 있고, 실제로 바울은 뒤에서 그것들도 다룬다. 그러나 이 장의 중심이 은사이므로 뛰어난 해석자들은 흠정역 번역을 지지한다.

신령한 은사란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신령한 일을 하도록 주신 능력이다. 고린도 교회는 이런 은사가 넘쳤고, 그만큼 은사를 남용하는 잘못도 많이 저질렀다.

'모르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은사를 풍성히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라는 뜻(고전 1:5),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바르게 쓰는 법을 알라는 뜻, 그리고 그들이 은사를 잘못 써 온 사실을 깨달으라는 뜻이다.

  • 신령한 것원문은 '신령한 것들'이며, 흠정역은 '은사'를 보충해 번역했다
함께 볼 말씀고전 1:5
2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이방인 시절엔 말 못 하는 우상에게 끌려다녔다

그들은 태생으로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다만 신앙과 예배로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은 우상의 제사장이나 이웃의 본을 따라 우상에게 끌려갔다. 우상은 무언가 말하고 앞일을 알려 주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었고, 귀신이 우상인 척 말한 것이었다.

'끄는 그대로'는 이성의 안내를 받지 않고 남에게 맹목적으로 끌려갔다는 말이다. 바울이 이 과거를 떠올리게 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받은 좋은 은사가 회심한 뒤 그리스도의 영에게서 온 것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회심 전 그들은 짐승처럼 끌려다니던 자들이었다.

함께 볼 말씀고전 1:5-6
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이 아니면 누구도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

그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 기독교를 모독하며 그리스도를 저주받을 자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한다. 바울은 이 차이를 근거로, 그들의 은사가 하나님의 영에게서 왔음을 증명한다. 성령과 아들은 한 하나님의 위격이시므로, 성령의 감화로 말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저주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방인은 악한 영으로 행하고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예수는 주'라는 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마음으로 믿지 않고 입으로만 하는 고백이다. 가룟 유다나 가야바도 그렇게 말했다. 이것도 거듭나게 하는 은혜가 아닌 성령의 일반적 은사로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입으로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해 왔다는 것 자체가 성령의 감화를 받아 왔다는 증거다.

둘째는 믿음과 사랑과 순종으로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구원에 이르는 고백이다. 이 고백은 성령이 사람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성경은 어떤 동사로 행위만이 아니라 그 행위가 바르게 이루어진 결과까지 나타내곤 한다. '듣다'는 청종하고 믿는 것까지 포함한다. '부르다'(롬 10:13)와 '시인하다'(요일 4:15)도 같은 예다. 그래서 여기의 '말하다'도 믿음과 사랑과 순종이 따르는 고백을 뜻한다.

  • 예수를 주시라 함믿음·사랑·순종이 따르는 참된 고백
함께 볼 말씀롬 10:13 · 요일 4:15

2. 은사·직분·사역의 다양함과 한 근원4~6절

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한 분이시다

은사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재능이다. 그 일은 자연적일 수도, 정신적일 수도, 영적일 수도 있다.

능력이 생기는 길은 셋이다. 아기가 먹고 우는 것처럼 통상적 섭리로 자라는 것, 말과 글과 학문처럼 배워서 얻는 것, 밖에서 부어지는 것이다.

믿음과 사랑 같은 참된 신령한 능력은 전적으로 위에서 부어진다. 기도와 설교의 능력은 성령의 감화 아래 하나님이 주신 방편을 써서 얻는다. 방언, 예언, 치유는 전적으로 부어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이런 은사는 특히 복음 초창기에 강하게 나타났다.

바울이 '은사'라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위에서 부어진 능력이다. 그 종류는 여럿이지만 모두 한 분 성령에게서 흘러나온다.

  • 은사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위에서 부어진 능력
5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직분은 여러 가지나 섬기는 주는 같다

교회에는 장로와 집사처럼 여러 직분과 사역이 있다. 어떤 자리에서 일하든 모두 교회의 큰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섬긴다.

6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사역은 다양하나 모두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같다

행위가 능력과 다르듯 직분과 사역은 은사와 다르다. 일하게 하는 능력이 은사이고, 그 능력을 써서 하는 일이 직분과 사역이다.

직분은 교회에서 늘 지속적으로 맡는 일이다. '사역들'로 번역된 말은 병 고침이나 방언처럼 통상적 수단 없이 이루어지는 이적적 일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교회를 처음 세우실 때 믿지 않는 자들을 교회로 이끄시려고 몇몇 사람에게 이런 능력을 주셨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들 모두 안에서 일하시며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한 하나님이시다.

  • 에네르게마타'사역들'. 통상적 수단 없이 행하는 이적적 일

3. 유익을 위해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은사7~11절

7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을 위한 것이다

은사를 '성령의 나타나심'이라 부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능력이 성령에게서 왔고, 우상을 섬기던 때에는 없던 것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또한 은사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다(행 1:4; 요 16:7-8; 엡 4:8).

'각 사람에게'라는 말은 모두가 같은 은사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은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우쭐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는 데 써야 한다. 하나님은 해를 끼치라고가 아니라 자신과 남에게 유익하라고 은사를 주셨다.

  • 성령을 나타내심은사가 성령에게서 왔음을 드러내는 표현
함께 볼 말씀행 1:4 · 요 16:7-8 · 엡 4:8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여기 열거된 은사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해석이 갈린다. 이런 특별한 은사는 초대 교회에 강하게 나타났다가 지금은 그쳤다. 그러니 그 뜻을 잘 모른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혜의 말씀'을 두고 어떤 이들은 중대한 일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능력으로 본다. 신앙의 깊은 비밀을 풀어 주는 능력, 권세가 따르는 신령한 지식,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설명하는 능력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풀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곧 형편을 바로 판단해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일하여 목적을 이루는 능력이다.

'지식의 말씀'도 확실하지 않다. 지식을 이해하고 전하거나 설교로 가르치는 능력(목사와 교사의 일)일 수 있다. 앞일을 미리 아는 능력일 수도 있다. 적용하는 힘은 크지 않아도 교리를 잘 알고 전하는 능력일 수도 있다.

  • 지혜의 말씀풀은 상황을 바로 판단해 목적을 이루는 실천적 지혜로 본다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

이 믿음은 일부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된 구원의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적을 행하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거나, 신앙 문제에 대한 큰 지식이거나, 직분을 수행할 때의 큰 확신과 담대함일 것이다.

병 고치는 은사는 의술을 쓰지 않고 이적으로 병을 고치는 능력이다.

  • 믿음구원의 믿음이 아닌, 일부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사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능력·예언·영 분별·방언·통역의 은사

능력 행함은 죄인에게 벌을 내리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 같은 이적을 행하는 능력이다.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이다. 앞일을 미리 말하는 방식도 있고, 설교와 가르침으로 성경을 풀어 주는 방식도 있다.

영들 분별함은 본래 하나님께만 속한 권한이다. 하나님은 초대 교회에 복음의 권위를 더하시려고 이것을 몇몇에게 주셨다. 이 은사는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진실한지 위선적인지 아는 능력이다.

각종 방언은 오순절의 일처럼 여러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다(행 2:4, 8). 통역이 따로 언급되므로, 방언을 하면서도 그것을 풀지 못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 영들 분별함사람의 속마음이 참된지 거짓된지 아는 능력
함께 볼 말씀행 2:4 · 행 2:8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한 성령이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다

여러 능력이 한 성령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성령은 한 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다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뜻하시는 대로 사람마다 다른 은사를 주신다.

4. 많은 지체가 이룬 한 신비의 몸12~13절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몸이 하나이듯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다

몸에는 지체가 많아도 몸은 하나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비의 몸인 교회도 그렇다. 지체가 많고 은사와 직분이 다양해도 교회는 하나이고, 모든 신자가 그 지체다.

그러므로 받은 것이 다르다고 서로 시기하거나 멸시하거나 자랑할 이유가 없다. 모두 같은 성령에게서 받았고, 함께 한 몸을 이루기 때문이다.

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한 성령으로 세례받아 한 몸이 되고 한 성령을 마셨다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같은 성례에 참여한다는 사실로 교회가 하나임을 증명한다. 여기서 '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보편 교회다. 개별 교회들은 그 보편 교회의 부분이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받아 한 몸의 지체가 되었다. 성례를 편하게 시행하려고 여러 모임으로 나뉘어 있을 뿐이다. 물 한 방울도 물이듯, 각 모임도 교회라 불리며 보편 교회를 이룬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를 두고 어떤 이들은 성령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본다. 성경이 성령의 은택을 생수로 자주 표현하기 때문이다(요 4:10, 14; 7:38-39; 사 12:3; 겔 47장). 많은 해석자들은 잔을 마시는 행위로 성찬 전체를 나타낸 것으로 본다. 풀은 앞에서 세례를 말한 뒤이므로 성찬을 가리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전 10:17).

  • 몸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보편 교회
함께 볼 말씀요 7:38-39 · 사 12:3 · 고전 10:17

5. 모든 지체가 몸에 꼭 필요함14~26절

14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여러 지체다

육신의 몸이 많은 지체로 이루어지듯, 그리스도의 신비의 몸도 많은 지체로 이루어진다.

15-1615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발이나 귀도 몸에 붙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 말로 보아 고린도 교회 분쟁의 큰 원인 하나는 은사와 직분의 차이였던 것 같다. 더 신령해 보이는 은사로 이름난 자들이 못해 보이는 지체를 몸에 속하지 않은 자로 업신여겼을 수 있다. 반대로 내세울 은사가 없는 지체들이 스스로 교회에 속하지 않은 것 아닌가 의심했을 수도 있다.

바울은 몸의 비유로 그런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보여 준다. 발이 손이 아니라고, 귀가 눈이 아니라고 몸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탁월한 직분이나 은사가 없다고 교회의 몸에 붙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17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냐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일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답게 잘 사는 데는 매우 유익하다. 그래서 몸에는 여러 기능을 맡은 지체가 모두 있어야 한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어느 지체도 쓸데없이 만들지 않으셨다. 바울은 이것을 27절에서 교회에 적용하는데, 여기서는 먼저 비유를 이어 간다.

18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두셨다

하나님은 필요한 지체를 갖추셨을 뿐 아니라 각각 알맞은 자리에 두셨다. 머리는 온몸을 이끌기 좋게 맨 위에, 발은 몸을 받치고 걷기 좋게 맨 아래에 두셨다.

그러므로 지체의 기능과 자리를 정하신 하나님의 지혜에 불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

19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이 어디 있겠느냐

몸은 많은 지체로 이루어진 전체이므로 한 지체만으로는 몸이 될 수 없다. 한 지체뿐이라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일을 해낼 수도 없다.

20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다

많은 지체가 저마다 기능으로 온몸을 섬긴다. 그러나 지체 수만큼 몸이 많아지지는 않는다. 몸은 여전히 하나다.

21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눈도 머리도 손발더러 쓸데없다 할 수 없다

바울은 가장 귀하고 유익한 지체인 머리와 눈을 예로 든다. 그런 지체라도 손이나 발에게 쓸데없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에 쓸데없는 것은 없다. 각 지체는 몸 전체와 다른 지체에 유익하도록 지어졌다. 손은 눈을, 발은 머리를 돕는다. 이 비유는 27절부터 교회에 적용된다.

22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약해 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요긴하다

'약하다'는 연약하다는 뜻만이 아니다. 사람 눈에 하찮고 멸시받을 만해 보인다는 뜻도 있다. 고후 12:10에서도 이런 뜻으로 쓰였다.

배와 내장, 그리고 눈도 이런 약한 지체다. 그러나 이것들이 없으면 몸은 살 수 없을 만큼 꼭 필요하다.

  • 약하다연약함과 함께 하찮아 보인다는 뜻도 지닌다
함께 볼 말씀고후 12:10
23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덜 귀히 여기는 지체를 더 귀하게 입힌다

손과 얼굴과 머리는 사람들 앞에 그대로 드러낸다. 덜 귀하고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부분은 감춘다. 드러낼 때도 다른 지체보다 더 정성껏 꾸민다.

24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를 높이셨다

하나님은 어떤 지체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게, 어떤 지체는 실제로 귀하게 쓰이는데도 귀해 보이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이런 지체와 귀해 보이는 지체를 함께 두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 부족해 보이는 지체에는 꾸밈으로 아름다움을 더하게 하셨다. 그렇게 지체들 사이에 차별이 없게 하셨다.

25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분쟁 없이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다

여기서 '분쟁'은 구분이나 차별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그 뜻은 절 후반부가 풀어 준다. 지체들은 귀함과 기능이 달라도 모두 동등한 것처럼 서로를 돌본다.

  • 분쟁구분, 차별
26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한 지체가 아프면 모두 아프고 영광도 함께한다

몸의 지체들은 하나이므로 자연스럽게 같은 감정을 느낀다. 한 지체가 아프면 모두 함께 아파하며 그 고통을 덜려고 서로 돕는다.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그 영광이 모두에게 미쳐 함께 기뻐한다.

6. 교회의 여러 직분과 더 큰 은사27~31절

27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각각 지체다

교회 전체로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하나하나로 보면 그 몸의 지체다. 여기서 바울은 앞의 몸 비유를 교회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에크 메루스'를 '일부'로 본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참된 신자만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 에크 메루스'각 부분'. 어떤 이들은 '일부'로 본다
28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하나님이 교회에 세우신 여러 직분

엡 4:11에도 직분 목록이 있다. 그중 여기에 함께 나오는 것은 사도, 선지자, 교사뿐이다. 복음 전하는 자는 여기에 없다.

사도는 복음 교회의 첫 토대를 놓도록 그리스도가 보내신 종이다. 모든 교회를 돌볼 책임을 맡아 어디서나 말씀을 전하고 성례를 집례했다. 교회 질서를 정하고 치리를 지시할 권한도 있었다. 개별 교회에도 치리권이 있었다. 사도에게 그 권한이 없었다면 바울은 근친상간한 자를 내쫓지 않은 고린도 교회를 책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지자는 넓게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자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가보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앞일을 예언하거나 특별한 계시로 성경을 풀던 자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통상적 목회자로 보지만, 풀은 목회자를 교사의 범주에 넣는다. 교사는 교리를 가르치고, 목회자는 실제적으로 말씀을 전한다는 차이가 있다.

교사를 학교 책임자로 보거나 가르치는 일만 하는 사역자로 보는 이들도 있다. 풀은 개별 교회를 맡은 고정 사역자, 곧 사도들이 각 도시에 세워 둔 장로로 본다. 능력 행하는 자는 병 고침보다 더 두드러진 이적을 행한 자다.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은 뜻을 정하기 어렵다. 다만 세속 통치자는 아니다. 왕들이 교회를 보호하는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사나 과부, 치리를 돕던 자, 개척을 도운 자 등이 거론된다. 이 목록은 4-6절의 뜻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 교사풀은 개별 교회를 맡아 고정적으로 사역하는 장로로 본다
함께 볼 말씀엡 4:11
29-3029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모두가 사도이거나 방언하는 자일 수는 없다

온몸이 다 귀나 눈이나 손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모두가 사도나 선지자나 교사여서 다스리는 자만 있고 다스림 받는 자는 없을 수 없다.

그들이 경험으로 알듯, 모두가 능력을 행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방언하고 통역하는 것도 아니다.

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큰 은사를 사모하되 더 좋은 길은 사랑이다

'사모하다'는 직설법('너희가 사모한다')으로도, 명령법('사모하라')으로도 읽을 수 있다. 명령으로 읽으면, 교회에 가장 유익한 탁월한 은사를 사모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은사가 가장 귀한 것은 아니다. 구원의 은혜에서 나오는 성품이 은사보다 훨씬 귀하다. 무엇보다 사모할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다. 바울은 이 말을 짧게 하고 곧바로 사랑에 관한 강론으로 넘어간다.

  • 가장 좋은 길은사보다 귀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

복습 문제

풀은 '예수를 주라 하는 것'에 어떤 두 종류가 있다고 보는가?
하나는 유다나 가야바처럼 입으로만 하는 고백이다. 이것도 성령의 일반적 은사로 한다. 다른 하나는 성령이 새롭게 하셔야만 가능한, 믿음과 사랑과 순종이 따르는 구원에 이르는 고백이다.
13절의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를 풀은 무엇으로 보는가?
성령에 참여한다는 해석도 소개한다. 그러나 앞에서 세례를 말했으므로 성찬 참여를 가리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전 10:17).
15-16절의 몸 비유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어떤 문제를 바로잡으려 했는가?
은사와 직분의 차이로 생긴 분쟁이다. 뛰어난 자들은 다른 지체를 업신여겼고, 은사가 없어 보이는 자들은 자신이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의심했다. 바울은 그런 생각이 터무니없음을 보여 준다.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12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