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고린도전서 주석 · 매튜 풀

3장 사역자는 도구, 자람은 하나님께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고린도전서 3장 1~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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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교회가 특정 사역자를 내세워 편을 가르는 것은 왜 어리석고 죄악된 일인가?

  • 고린도 교인들의 시기와 분쟁은 그들이 아직 육신에 속한 어린아이임을 드러낸다.
  •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일 뿐이다. 믿게 하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 유일한 터는 그리스도다. 그 위에 세우는 가르침은 복음 진리의 빛 앞에서 시험받는다.
  • 만물과 모든 사역자가 성도의 것이고 성도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자랑할 까닭이 없다.

1.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 깊은 가르침을 줄 수 없었다1~2절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였다

바울은 1장에서 꺼낸 파당 문제로 다시 돌아온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본다. 바로 앞에서 '신령한 자는 판단을 받지 않는다'고 했으니, 교인들이 '그럼 우리를 판단한 것은 잘못 아니냐'고 따질 수 있었다. 바울은 그 반론을 미리 막으려고 이 말을 한다는 것이다.

요지는 이렇다. 고린도 교인들은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완전히 육적인 욕망에 휘둘리는 자들은 아니었지만, 믿음과 거룩함에서 온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다 자란 어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로 대해야 했다.

히브리서는 이런 어린아이를 더 자세히 설명한다. 오래 배웠는데도 여전히 기초를 다시 배워야 하고, 단단한 음식 대신 젖을 먹어야 하는 자들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참 신자이지만 아직 기초 단계에 머물러 선악 분별이 미숙한 자
함께 볼 말씀고전 1:11 · 고전 2:15 · 히 5:12-14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젖만 먹일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젖'은 히브리서가 말하는 하나님 말씀의 초보를 가리킨다. 이는 성숙한 자를 위한 '단단한 음식', 곧 더 깊은 영적 가르침과 대비된다.

아기의 위가 딱딱한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듯, 갓 회심한 신자는 깊은 영적 신비를 소화하지 못한다.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게 될 때까지는 그렇다.

바울이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전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처음 갔을 때도 감당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 상태다.

풀은 고린도 교회에 참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성숙과 분별에는 한참 못 미치는 이들이 많았다고 본다.

  • 젖하나님 말씀의 기초 가르침
  • 밥(단단한 음식)성숙한 자가 소화할 수 있는 깊은 영적 가르침
함께 볼 말씀히 5:12 · 히 5:14

2. 파당과 분쟁이 육신에 속했음을 드러낸다3~4절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시기와 분쟁이 육신에 속했다는 증거다

풀은 '육신에 속한 자'를 이렇게 읽는다. 완전히 육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상당한 정도로 그렇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욕심과 부패한 성정을 하나님 뜻에 복종시켜야 하는데,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 가운데 있는 시기와 분쟁이 그 증거다. 갈라디아서는 분쟁, 시기, 당 짓기, 분열을 육체의 일로 꼽는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인을 온전하게 하는 사랑과 정반대에 선다. 바울은 다음 절에서 그 분쟁이 무엇인지 다시 짚는다.

  • 육신에 속한 자부패한 본성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지 못하고 그에 끌려가는 상태
함께 볼 말씀갈 5:19-21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뉜 것이 육의 행실이다

고린도 같은 큰 도시에서는 사역자를 골라 따르는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은사가 더 뛰어나서일 수도 있고, 자기에게 더 잘 맞아서일 수도 있다. 풀은 은사로 보면 바울이 아볼로보다 더 선호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문제는 선호 자체가 아니다. 그들은 한 사역자만 고집하며 파당을 지었다. 그리고 다른 신실한 종들을 헐뜯고 멸시하며 다투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성도답지 않게 부패한 성정이 시키는 대로 행한다고 책망한다. 그들은 사역자에 대해 바른 생각을 갖지 못했고, 합당하게 대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 사람을 따라 행함성도답지 않게 악하고 부패한 본성대로 처신하는 것

3. 사역자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일 뿐이다5~9절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바울도 아볼로도 믿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첫째 읽기는 이렇다. 바울과 아볼로는 믿음을 준 자가 아니라 도구일 뿐이다. 각 사람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다.

다른 읽기도 가능하다.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를 사역자에 붙여 '주께서 주신 사역자들'로 보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결론은 같다. 사역의 능력과 성과는 사역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사역자들은 받은 은사도, 사역의 열매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들을 불러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려고 쓰시는 종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들이 하는 일은 그들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

  • 사역자믿음을 주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는 그리스도의 종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 주나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처음 복음을 전하는 영예를 받았다. 하나님이 그 전도에 복을 주셔서 그들이 회심했다. 바울이 떠난 뒤에는 아볼로가 와서 날마다 강론하며 그 심은 것에 물을 주었다. 아볼로는 그들의 믿음과 거룩함을 세우는 도구였다.

이 비유는 농사에서 왔다. 농부는 심고 물을 준다. 그러나 싹이 트고 꽃과 열매를 맺는 것은 농부의 손보다 다른 것에 달려 있다. 땅, 하늘에서 내리는 햇빛과 이슬과 비, 그리고 창조주가 식물 안에 넣어 두신 힘이다.

영혼도 같다. 어떤 사역자는 첫 회심에, 어떤 사역자는 덕을 세우는 데 쓰인다. 그러나 회심과 성장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 마음과 새 본성, 그리고 성령의 은혜로 오는 능력이다.

  • 심다처음 복음을 전해 회심하게 하는 일
  • 물 주다이미 믿은 이들을 가르쳐 세우는 일
함께 볼 말씀행 18장 · 행 18:24-26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사역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식물을 자라게 하는 데 하나님의 능력은 압도적이다. 그에 비하면 농부의 힘은 없는 것과 같다. 영적 경작도 마찬가지다. 영혼이 자라고 열매 맺게 하는 주된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도구인 사역자가 보태는 몫은 지극히 작다.

그러니 누군가 변화되고 자라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말고 오직 주의 이름에 돌려야 한다.

그렇다고 복음 사역이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이 식물에 본성을 주시고 비와 햇빛을 내리지 않으시면 농부의 수고가 헛되다는 뜻이다.

풀은 하나 더 짚는다. 바울은 사람이 자기 의지 속의 본래 능력으로 자란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고 말한다. 말씀을 잘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더해져야 한다. 사역자는 주된 원인이 아니라 도구적 원인일 뿐이다. 그러니 한 사역자를 다른 이들보다 떠받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 도구적 원인결과를 이루시는 하나님 손에 쓰이는 수단. 주된 원인은 하나님이다
함께 볼 말씀시 115:1
8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사역자는 하나이나 상은 수고한 대로 받는다

심든 물을 주든, 터를 닦든 그 위에 짓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모두 한가지다. 직무는 달라도 한 분 그리스도를 섬기고, 같은 일을 하며, 같은 목적을 향한다. 그러니 그들을 파당으로 가를 수 없다. 고린도 교인들도 좋아하는 사역자를 내세워 나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상은 똑같지 않다. 수고의 정도와 하나님께 영광 돌린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공한 만큼' 상을 받는다고 하지 않는다. 성공은 사역자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수고한 대로' 받는다고 말한다.

  • 한가지직무는 달라도 한 주인을 섬기고 같은 목적을 가진 동료라는 뜻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우리는 동역자,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집이다

사역자는 하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자리가 천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주된 원인으로 일하시고, 사역자는 도구로서 그분과 함께 일한다. 하나님은 마음속에 은밀히 역사하시고 사역자는 귀에 복음을 들려준다. 방식은 달라도 목적은 같다.

마가복음은 주께서 제자들과 함께 역사하셨다고 기록한다. 여기서는 사역자를 하나님의 동역자라 부른다. 이로써 앞 절의 말, 곧 사역자가 상을 받는다는 것이 확증된다. 하나님은 함께 일한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신다.

교인들은 자기를 사역자의 밭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다. 그들의 회심과 성장은 전적으로 하나님 덕분이다.

  • 하나님의 동역자하나님이 주된 일을 하시고 사역자는 도구로 함께 일한다는 뜻
함께 볼 말씀막 16:20 · 사 61:3 · 딤전 3:15

4. 유일한 터 그리스도, 그 위에 무엇을 세우는가10~15절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바울은 터를 닦았으니 그 위에 짓는 자는 조심하라

'은혜'로 옮긴 카리스는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복음 전하는 능력, 또는 사도로 부르신 직분을 가리킨다. 둘 다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사랑의 열매다.

지혜로운 건축자가 먼저 터를 닦듯, 바울은 이 유명한 도시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 터를 닦았다. 성경은 첫 복음 전파를 터 닦는 일로 부른다.

바울이 떠난 뒤 아볼로를 비롯한 여러 사역자가 그 위에 세워 갔다. 바울은 그들이 무엇을 세우는지 주의하라고 한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누구든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

  • 카리스"은혜". 여기서는 복음 전하는 능력이나 사도직이라는 값없는 선물
함께 볼 말씀롬 15:20 · 히 6:1 · 갈 1:8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를 놓을 수 없다

'능히'는 단순히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뜻이다.

곧 바울이 놓은 터 외에 다른 터를 놓는 것은 불법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가르침 말고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 능히능력이 아니라 정당성, 곧 '합법적으로'의 뜻
함께 볼 말씀행 4:12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금·은·보석이냐, 나무·풀·짚이냐

9절의 건물 비유가 이어진다. 터는 그리스도를 전한 사도와 선지자들의 가르침이다. 그 위에는 집이 지어져야 하는데, 재료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금과 은과 보석은 귀한 재료로 선한 가르침을 뜻한다. 나무와 풀과 짚은 값싼 재료로 악한 가르침을 뜻한다.

나쁜 재료를 여럿 든 데도 뜻이 있다. 악한 가르침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어떤 것은 영혼에 해롭고 위험하며 가증하다. 어떤 것은 거짓되고 하찮아서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한다.

  • 금·은·보석터 위에 세운 선한 가르침
  • 나무·풀·짚악한 가르침. 해로운 것부터 무익한 것까지 정도가 다르다
13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복음의 빛인 '그날'의 불이 공적을 드러낸다

각 선생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었는지 드러날 때가 온다. 시금석에 금속을 대어 진짜를 가려내듯, 모든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시험받는다.

'그날'에 대해 해석이 갈린다. 어떤 이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로 본다. 다곤이 법궤 앞에서 넘어졌듯 그릇된 가르침은 세월을 못 견딘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환난과 하나님이 원수 갚으시는 날로 본다. 실제로 거짓 신앙은 악한 날에 버티지 못하고, 복음 진리를 믿는 이는 환난 중에도 평안과 힘을 얻는다. 또 어떤 이들은 불로 만물이 살라지는 심판의 날로 본다.

풀의 판단은 이렇다. 본문은 '주의 날'이 아니라 그냥 '그날'이라고만 한다. 그리고 현세에서 가르침의 참과 거짓이 드러나는 일을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날'은 복음의 빛이 밝게 비치는 날로 보인다.

'불'도 하나님의 진노나 환난이나 최후 심판의 불이 아니다. 세상에 밝게 빛나 모든 가르침을 시험하고 거짓 가르침의 찌꺼기를 태우는 복음 진리의 불이다.

  • 그날풀은 복음의 빛이 밝히 비치는 날로 본다
  • 불거짓 가르침을 태워 없애는 복음 진리의 불
함께 볼 말씀고전 1:8 · 살후 1:8 · 벧후 3:10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남는 공적에는 상이 있다

참된 터 위에 세운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뜻에 맞으면 하나님이 그 수고에 상을 주신다.

그 사역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된다.

함께 볼 말씀마 25:21 · 마 25:23
15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공적이 타도 터를 지킨 자는 겨우 구원받는다

참된 터 위에 세우기는 했으나 헛되고 꾸며낸 이야기를 복음과 섞은 경우가 있다. 진리가 더 밝게 드러날 때 그 가르침은 다 타 버린다. 그 사역자는 손해를 본다. 하나님의 징계일 수도 있고 명성을 잃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 터를 붙든 사람이라면, 잘못이 많아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 그는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곧 어렵게 가까스로 받는다.

교황주의자들은 이 불을 연옥의 불로 본다. 풀은 세 가지로 반박한다. 첫째, '불에서 건져지다'는 어렵게 헤쳐 나왔다는 뜻의 관용 표현이다. 영어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 둘째, 연옥은 지어낸 허구다. 셋째, 연옥이 있다 해도 그들 말대로라면 작은 죄만 씻는다. 그런데 이 불은 나무와 짚뿐 아니라 금과 은까지 모든 것을 시험한다.

  •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간신히 건짐을 받는다는 관용 표현. 연옥과 무관하다

5.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더럽히지 말라16~17절

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9절에서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 한 뒤 바울은 건축 이야기를 이어 왔다. 이제 교회 전체로 돌아와 그들을 하나님의 성전이라 부른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염두에 둔 말이다. 솔로몬이 짓고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가 다시 세운 그 성전에서 하나님은 백성을 만나 복 주시고 시은좌에서 응답하셨다. 고린도 성도들도 같은 목적, 곧 하나님을 찬송하고 신령한 제사를 드리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자기 영으로 그들 가운데 친히 거하신다. 그래서 이 거하심은 옛 성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하다.

풀은 여기서 성령의 신성을 본다. 성령이 그들 안에 계시기에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6장에서는 같은 성도를 '성령의 전'이라 부른다.

  • 하나님의 성전하나님이 성령으로 친히 거하시는 성도의 무리
함께 볼 말씀엡 1:6 · 벧전 2:5 · 고전 6:19-20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멸하신다

'더럽히다'와 '멸하다'는 헬라어로 같은 단어다. 망가뜨리다, 부패시키다, 파괴하다라는 뜻이다. 흠정역은 이 말을 대개 '부패시키다'로 옮긴다.

성전인 성도들이 더럽혀지는 길은 둘이다. 거짓 가르침에 물들거나, 유혹을 받아 방탕한 삶에 빠지는 것이다. 사역자가 그런 가르침이나 육욕을 부추기는 원리를 가르치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를 멸하신다.

옛 성전은 거룩한 용도로 구별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더럽히는 자는 멸망의 위험 아래 있었다. 성도는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별되었다. 그러니 그들을 타락시키려는 자는 더 큰 위험을 스스로 부른다.

  • 더럽히다/멸하다같은 헬라어. 부패시키고 파괴한다는 뜻
함께 볼 말씀고전 15:33 · 엡 4:22 · 계 19:2

6.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다18~20절

18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참으로 지혜로워지려면 세상 앞에서 어리석어져라

어떤 이들은 화려한 언변이나 깊은 철학적 사변으로, 또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지혜롭게 해 주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혹이다.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다.

세상이 말하는 지혜로 자신을 지혜롭다 여기는 사람은 남을 속이고 자기도 속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지혜로워 영생을 얻으려면 세상 지혜자들 눈에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 자연 이성과 철학으로 쌓은 생각들은 하나님의 계시와 맞지 않는다. 그러니 그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에 계시하신 것만 깨닫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구원에 관해 지혜로워지고 선한 일에 온전히 준비된다.

  • 어리석은 자가 되라세상 지혜를 버리고 계시된 말씀만 받는 자가 되라는 뜻
함께 볼 말씀골 2:8
19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다

하나님은 세상이 지혜라 부르는 것을 어리석게 여기신다. 그분의 판단은 틀릴 수 없으니 그것은 실제로 어리석다.

철학자들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내건다. 참된 지혜란 가장 높은 목표에 가장 좋은 수단으로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지혜는 기껏해야 현세의 행복을 좇는다. 가장 높은 목표에 이르게 하지도 못하고, 현세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수단도 못 된다. 그러니 어리석다는 평가는 마땅하다.

세상 지혜자들이 판단과 행동에서 잘못을 범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나님이 엘리바스의 입을 통해, 지혜로운 자를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이 세상 지혜현세의 행복만 좇는 지혜. 최고 목표에도, 최선의 수단에도 이르지 못한다
함께 볼 말씀욥 5:13
20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주께서 지혜자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나님은 시편 기자를 통해서도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궁리하고 계획하고 추론하는 것은 모두 헛되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턱없이 모자란 수단으로 좇기 때문이다.

함께 볼 말씀시 94:11

7. 그리스도의 사람은 사람을 자랑하지 않는다21~23절

21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만물이 너희 것이니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고, 사역자들은 모두 똑같이 그분의 일꾼이다. 구원을 시작하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에 비하면 사역자의 몫은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너희는 사역자의 밭이나 집이 아니다. 하나님이 일꾼들을 써서 가꾸시는 하나님의 밭과 집이고, 더 나아가 그분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러니 '나는 바울 편, 나는 아볼로 편' 하며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라.

더구나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다. 그런데 왜 한 사역자만 자랑하는가? 재산 전체를 물려받은 공동 상속자가 다른 집과 땅은 무시하고 집 한 채만 자랑하는 것과 같다.

함께 볼 말씀고전 3:5 · 고전 1:12
22-2322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만물은 너희 것,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

바울은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 만물은 믿는 자의 것이다. 둘째,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사람을 자랑할 이유가 없다.

만물 가운데 먼저 사역자를 든다. 바울도 아볼로도 게바도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종이다. 그러니 믿는 자는 누구나 그들의 수고를 자기 유익을 위해 누릴 권리가 있다. 세계도, 생명과 사망도, 지금 것과 장래 것도 하나님이 섭리로 믿는 자의 유익을 위해 다스리신다. 그러니 성도는 그것들을 마음 편히 누릴 수 있다.

성도는 바울이나 아볼로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다. 신부를 맞는 이는 신랑이고, 사역자는 신랑의 친구일 뿐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신성으로는 영원히 나신 아들이시고, 인성으로는 율법 아래 나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종이요 메시아요 중보자이시다. 만물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주셨다. 세상 사람도 창조주께 받은 것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접붙임 받지 않았으니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한 사역자와의 관계를 자랑하는 것은 헛되다. 모든 신실한 사역자는 교회 전체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다만 한 목회자가 특정 회중을 맡는 것을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회중은 자기 사역자를 공경해야 한다. 다만 다른 신실한 사역자를 멸시하며 파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 게바베드로
함께 볼 말씀요 3:29 · 고전 1:12

복습 문제

바울은 왜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는가?
회심과 성장을 이루는 주된 원인은 하나님이고 사역자는 도구적 원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사역자를 다른 이보다 높이는 것은 어리석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풀은 13절의 '그날'과 '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여러 해석이 있지만, 풀은 본문이 '주의 날'이 아니라 '그날'이라고만 한다는 점을 든다. 그래서 '그날'을 복음의 빛이 밝히 비치는 날로, '불'을 거짓 가르침을 태우는 복음 진리의 불로 본다.
15절의 '불 가운데서 받은 구원'이 연옥을 가리키지 않는 이유는?
이 말은 가까스로 건짐 받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연옥은 지어낸 허구다. 또 그들 말대로라면 연옥은 작은 죄만 씻는데, 이 불은 금과 은까지 모든 공적을 시험하기 때문이다.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3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