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역자를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며, 그들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시는 분은 누구인가?
-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종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다.
- 마음속 은밀한 일은 사람이 판단할 수 없다. 주께서 오시는 날 하나님이 드러내고 판단하신다.
- 모든 재능과 은사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를 비교하며 교만해서는 안 된다.
- 바울은 영적 아버지로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매와 온유 중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하라고 한다.
1. 사역자의 충성을 판단하실 이는 하나님이시다1~5절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종이요 비밀을 맡은 청지기다
바울은 복음 사역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바른 기준을 준다. 사역자는 종이다. 그러므로 회심과 성장의 영광은 사역자가 아니라 주인께 돌려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먼저이고, 교회와의 관계는 그다음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것만 행해야 한다. 율법이 아니라 복음의 일꾼이므로, 그들의 첫째 책무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비밀'은 감추어진 모든 것을 가리킨다. 특히 표적과 예표로 나타난 하나님의 일, 모든 사람이 분명히 알지는 못하는 신앙의 진리를 뜻한다. 그 예로 성육신, 이방인의 부르심, 죽은 자의 부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한 연합이 있다.
사역자는 이 비밀한 가르침과 제도, 곧 말씀과 성례를 맡아 교회에 베푸는 청지기다.
- 일꾼종이다. 영광은 자기가 아니라 주인 그리스도께 돌린다.
- 비밀표적과 예표로 드러난, 누구나 알지는 못하는 신앙의 진리다.
- 맡은 자말씀과 성례를 맡아 시행하는 청지기다.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다
충성은 모든 종에게 요구된다. 그러나 주인의 재산을 맡아 나누어 주는 청지기에게는 더욱 요구된다.
청지기는 주인의 지시대로, 정해진 사람에게 정해진 몫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나눌 때 충성되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이 유익한 것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다고 말한 것이 그 예다.
또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이 있다. 청지기는 이 명령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사람의 판단은 작은 일이다. 바울은 자신도 판단하지 않는다
아볼로나 게바에게 속했다고 말한 이들은 적어도 속으로 바울을 낮추어 본 것이다. 그것은 이미 바울을 판단한 것이다. 고린도전후서 곳곳에는 그들이 바울을 노골적으로 비난했을 정황이 보인다. 바울은 그런 평가를 사소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나'는 직역하면 '사람의 날에 의해'다. 흠정역 번역자들은 예레미야서에서 '재앙의 날'이 재앙의 심판을 뜻하듯, 여기서도 '날'을 심판으로 보았다. 이 해석이 일반적으로 참뜻을 드러낸다고 여겨진다. '여호와의 날'이 여호와의 심판을 뜻하는 것도 같다. 이런 쓰임은 재판에 정해진 날 출두하던 관습에서 왔을 것이다.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자기 판단에는 착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결을 하나님께 맡긴다.
- 헤메라(날)'사람의 날'은 사람의 심판을 뜻한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도 그것으로 의롭지는 않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정반대 취지로 말한다. 그러므로 이 말을 어떤 죄도 없다는 뜻으로 넓혀 읽으면 안 된다. 사역자의 직무에서 일부러 잘못한 기억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주장할 수는 없다.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지었거나, 지은 잘못을 잊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바울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그를 더 잘 아신다. 그러므로 그를 판단하실 분은 주님이시다.
이 본문은 사역자의 행실에 관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아무도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고 추론하는 것은 합당하다. 한 부분에서 거리낌이 없어도 의롭다 할 수 없다면, 전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율법은 모든 조목을 지켜야 의롭다 하고, 하나라도 어기면 정죄하기 때문이다.
주께서 오시기 전에는 마음속 일을 판단하지 말라
은밀한 것을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의 몫이다. 드러난 육체의 일은 사람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의 마음속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심판하러 오시는 때까지 그것은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위선과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덮어 둔 것도 그날에는 벗겨진다. 마음속 생각과 계획과 음모가 환히 드러난다.
그때 명령대로 바르게 행한 이들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다. 풀은 본문에 함축된 반대의 경우도 짚는다. 겉으로만 순종한 것처럼 보이고 속은 악으로 가득했던 자들은 정체가 드러나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한다.
2. 사역자들을 견주며 교만하지 말라6~7절
바울과 아볼로를 예로 들어 교만을 경계한다
바울과 아볼로는 파당이 내세우는 사역자들을 나타내려고 예로 든 이름일 뿐이다. 실제로 두 사람에게 배운 이들은 복음을 바로 배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분쟁은 고린도의 다른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바울은 그 사역자들과 추종자들이 기분 상할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직접 들지 않았다. 대신 자신과 아볼로를 따르는 자들을 꾸짖는 것처럼 말했다. 책망받아야 할 자들이 스스로 알아듣고 권면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규범을 따르라는 뜻이다. 또는 바울이 이 서신과 로마서에 쓴 대로 따르라는 뜻이다. 신자든 사역자든 마땅한 정도 이상으로 자신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롬 12:3).
'교만하다'는 공기주머니나 풀무처럼 바람이 들어가 잔뜩 부푼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 교만하다공기가 들어가 부풀어 오른 상태를 뜻한다.
받은 것을 어찌 받지 않은 듯 자랑하느냐
교만은 고린도 교인 다수를 지배한 죄였다. 사람은 타고났든 익혔든 남보다 나은 재능이 있거나,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으면 교만해지기 쉽다.
바울은 이 악성 종양을 누그러뜨리려 한다. 그래서 그 재능이 원래 그들 것인지, 하나님께 받은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라고 일깨운다.
남에게서 받은 것이라면 자랑할 이유가 없다. 이 원리는 모든 좋은 것에 해당한다. 재물, 명예, 자연적이거나 영적인 은사가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재물 얻을 능력도, 높아지고 낮아짐도, 성령의 여러 은사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다.
3. 자만한 고린도 교인과 멸시받는 사도들8~13절
스스로 왕이 된 듯한 고린도 교인을 반어로 꾸짖다
고린도의 교사들이나 교인들은 자신이 이미 지식과 지혜로 가득하다고 여겼다. 더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왕처럼 나라를 가진 듯 지극한 행복을 누린다고 여겼다.
바울은 그들을 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말 그렇게 되어 함께 다스리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것은 반어다. 그들은 참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다. 헛된 착각에 빠져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을 뿐이다.
사도들은 죽기로 정해진 자처럼 구경거리가 되었다
사도들은 행복하기는커녕 가장 비참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극심한 환난과 가난 속에서 죽을 자로 정해진 듯했다. 그들은 왕 노릇은커녕 세상과 천사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로마의 관습을 떠올린 표현이라고 본다. 맹수와 싸우도록 선고받은 죄수들을 먼저 군중 앞에 끌어내 보인 뒤 맹수에게 찢기게 한 관습이다.
바울의 대조는 이렇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도 세상의 인정과 부를 누린다. 그런데 처음 사도로 부름받는 영광을 얻은 사도들은 정반대 처지에 있다.
어리석고 약하고 천한 사도들, 스스로 지혜로운 너희
사도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세상의 지혜자들에게 어리석은 자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반면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그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사도들은 약해 보여서 해를 당해도 맞서지 않는다.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고 세상도 그렇게 대접한다. 그들은 존귀하게 여겨지지만, 사도들은 천히 여겨져 멸시를 받는다.
지금까지 주리고 헐벗고 매 맞으며 떠돌고 있다
바울은 하나씩 대조한다. 너희는 배부르나 우리는 굶주린다. 너희는 잘 차려입었으나 우리는 누더기를 걸쳤다. 너희는 환대받으나 우리는 매를 맞는다. 너희는 좋은 집에 사나 우리는 머물 곳이 없다. 그리스도를 고백한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과 그 파당이 이 차이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참된 신자인지 살피게 한다.
가장 충성된 사역자와 가장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처지는 언제나 환난 속의 낮은 자리였다.
손으로 일하고, 모욕에는 축복으로, 박해에는 인내로
바울에게는 교회의 부양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고전 9장). 그러나 교회에 짐이 되지 않으려고 손수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풀은 여기서 이렇게 정리한다. 사역자는 섬기는 교회에서 부양받을 권리가 있다. 교회가 이를 소홀히 하면 죄다. 그러나 교회가 그 의무를 저버리거나 너무 가난하면, 사역자가 손수 일해 생계를 잇는 것은 정당하다.
욕을 먹어도 되갚지 말고 선하게 말하며 잘되기를 빌어야 한다. 생명과 자유가 위협받는 박해도 저항하지 말고 인내로 견뎌야 한다.
바울은 이로써 그리스도인의 처지와 의무를 함께 보여 준다. 동시에 거짓 교사들이 손은 대지 않았어도 혀로 사도들을 박해했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그리고 누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았는지 견주어 보게 한다.
비방에도 권하며, 세상의 찌꺼기처럼 되었다
'비방'은 사도들의 평판을 깎으려는 온갖 험담이다. '권면'은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한 것이다. 사도들은 어떤 비방 속에서도 사랑으로 경건한 직무를 다했다.
'더러운 것'과 '찌꺼기'는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경멸스러운 것을 가리키는 두 낱말이다. 곧 배설물과 쓰레기 같은 것이다. 사도들만큼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세상이나 하나님의 뜻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고린도의 분란 교사들과 사도들의 처지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 준다. 그렇게 고난받는 사도들을 멸시하는 것은 그들이 해서는 안 될 일임을 일깨운다.
- 더러운 것·찌꺼기배설물과 쓰레기처럼 가장 경멸받는 것을 뜻한다.
4. 영적 아버지의 경고와 본받으라는 권면14~16절
부끄럽게 하려 함이 아니라 자녀처럼 권하려 함이다
바울은 그들의 잘못을 낱낱이 들추어 얼굴을 붉히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도들을 무시하고 고난을 더한 일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그는 그들을 사랑하는 자녀로 여긴다. 그래서 사도를 어느 정도 존중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임을 일깨운다. 그 본분을 넘어 사도를 업신여긴 것이 죄임을 알게 하려고 이 글을 쓴다.
스승은 많아도 복음으로 낳은 아버지는 하나다
이 본문의 큰 교훈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처음 회심하게 하시려고 쓰신 사역자를 공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신자를 가르치고 온전하게 하시려고 많은 사역자를 쓰신다. 그러나 처음 죄를 깨닫고 변화되게 하실 때는 특정한 사역자를 쓰신다. 그가 본래 의미의 영적 아버지다.
바울은 중생의 원인들을 보여 준다. 주된 원인은 그리스도 예수시다. 도구는 복음을 전한 사역자다. 수단은 복음의 가르침과 전도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하나님은 사역자를 도구로 쓰시고, 사역자는 정해진 말씀과 전도를 쓴다. 그러나 마음을 실제로 바꾸는 것은 그리스도의 감화력이다. 이 원인들이 함께 중생을 이룬다.
- 낳았다사역자가 복음으로 회심의 도구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적 아버지라 부른다.
아버지로서 나를 본받으라고 간곡히 권한다
바울은 영적 아버지로서 명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고 거룩함을 높이는 일에서 자신을 본받으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고전 11:1이 이 뜻을 더 풀어 준다.
거룩한 삶은 참된 사역자에게 꼭 필요하다. 사람들은 사역자의 말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역자는 양 무리와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것은 잘해도 삶이 엉망인 사람은 선한 사역자가 아니다. 그런 이는 본받으라고 말할 수 없다.
5. 디모데를 보냄과 바울의 방문 예고17~21절
신실한 아들 디모데가 바울의 길을 상기시킬 것이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났다. 그의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인 유니게, 아버지는 헬라인, 외할머니는 로이스였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장로회의 안수를 받아 사역자가 되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바울이 그의 영적 아버지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바울에게서 복음을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그를 믿음 안의 참 아들이라 부른다. '신실하다'는 말은 그가 주의 일에 충성되었기 때문이다.
디모데는 바울이 각 교회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에게 상기시킬 것이다. 또 교회 질서를 세우려고 어떤 규범을 주었는지, 교인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했는지 알려 줄 것이다.
- 나의 행사바울이 각 교회에서 가르친 것과 살아온 모습이다.
바울이 오지 못하리라 여기며 교만해진 자들
고린도의 교사와 교인 가운데 일부가 기고만장해졌다. 그들은 바울이 면목이 없거나 감히 대면할 엄두가 나지 않아 오지 못할 것처럼 말을 퍼뜨렸다. 바울은 그 소문을 전해 듣고 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가서 말이 아닌 능력을 보겠다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로마로 가려 했다.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실 수 있음을 알았기에 '주께서 허락하시면'을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서둘러 가려 했지만, 또 한 통의 편지를 쓴 뒤에야 갈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여정을 계획하거나 약속할 때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이 좋다. 하나님이 계획을 바꾸실 수 있고, 그 뜻에 순종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다. 늘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 걸음을 세고 정하신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가서 자신을 비방하는 교사들의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그들의 언변이나 철학적 논리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영적 생명과 능력이 있는지 볼 것이다. 곧 그 가르침과 삶이 사람을 복음의 목표로 이끄는지, 진리에 맞는지, 실제 유익을 끼치는지 살필 것이다.
- 능력언변이 아니라 영적 생명과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안의 하나님 나라 또는 한 사람의 마음속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유창한 언변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사역자를 보내신 것이 아니다. 전파되는 복음, 곧 미련해 보이는 전도에 능력으로 역사하여 마음을 하나님께 복종시키려고 보내셨다.
가르침의 능력은 사역자의 거룩한 삶에서 드러난다. 그의 삶에 영적 병이 보이면 사람들은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고 말하게 된다.
마음속 하나님 나라는 말로 드러나지 않는다.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욕심과 부패를 꺾고 하나님 뜻에 순복하게 할 때 드러난다.
- 하나님의 나라교회 안 또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임한 하나님의 통치다.
매를 들고 갈까, 사랑과 온유로 갈까
아버지는 잘못한 자녀를 바로잡으려고 매를 들고 갈 수도 있다. 화낼 일이 없으면 오직 사랑과 온유로 갈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 이제 고린도 교인들이 선택해야 한다.
'매'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스리도록 맡기신 권징이다. 바울은 그것으로 누구를 벌하기보다, 사랑과 온유로 가서 함께 교제하며 기뻐하기를 바란다.
- 매그리스도께서 교회 치리에 쓰도록 맡기신 권징이다.
복습 문제
바울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하면서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6절에서 바울이 파당의 실제 지도자 대신 자신과 아볼로의 이름을 든 까닭은?
15절에서 풀이 정리한 중생의 원인 세 가지는 무엇인가?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4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