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모일 때 신령한 은사를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하는가?
- 은사를 쓰는 첫째 목적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알아듣는 예언이 방언보다 낫다.
-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허공에 하는 말이다. 설교도 청중이 이해하는 말과 방식으로 해야 한다.
- 방언과 예언은 두세 사람이 차례로 한다. 방언은 통역하고, 예언은 다른 이들이 분별한다.
-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해야 한다.
1. 자기를 세우는 방언보다 교회를 세우는 예언을 사모하라1~5절
사랑을 끝까지 좇고, 은사 중에는 예언을 사모하라
바울은 앞 장에서 사랑이 모든 은사보다 귀하다고 길게 말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사랑을 힘써 좇으라고 강조한다.
'추구하라'로 옮긴 말은 열심히 무엇을 구할 때도 쓴다. 하지만 보통은 박해자가 사람을 집요하게 뒤쫓을 때 쓰는 말이다. 박해자가 온 힘을 다해 쫓듯이 사랑을 좇으라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이 절의 예언을 장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으로 본다. 풀은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그런 능력은 신약 시대에 극소수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풀은 이 예언을 성경을 풀어 사람들에게 전하는 능력으로 본다. 그 능력은 직접 계시로 받기도 하고, 평소의 묵상과 연구로 얻기도 한다.
장래 일을 말하는 예언도 성취되면 복음을 확증하는 데 유익했다. 그러나 성경을 풀어 주는 예언은 모든 사람에게 더 큰 유익을 준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믿는 자에게나 불신자에게나 유익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예언을 특히 사모하라고 한다.
- 추구하라박해자가 사람을 끈질기게 추격하듯 온 힘으로 좇는 것
- 예언장래 일을 말하는 것보다 성경을 풀어 전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알아듣는 이 없는 방언은 하나님께만 하는 말이다
여기서 방언은 듣는 사람 대부분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다. 헬라어 본문에는 꾸밈말이 없다. 흠정역은 '알지 못하는'을 보충해 넣었다.
고린도 교회 교사들이 헬라어만 아는 성도들 앞에서 아랍어나 스키타이어로 설교했을 리는 없다. 라이트푸트는 이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랬다면 바울은 통역하라고 하지 않고 엄히 꾸짖었을 것이다. 그래서 라이트푸트는 이 방언을 히브리어로 본다.
히브리어는 일상에서 많이 잊혔다. 그래도 구약 연구와 회당의 율법 낭독에서는 계속 쓰였다. 고린도 교회에는 유대인 개종자가 많았다. 그중에는 회중이 히브리어를 거의 모르는 줄 알면서도 실력을 뽐내려고 히브리어로 말한 자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말은 사람을 상대하는 말이 아니다. 모든 언어를 아시는 하나님만 상대하는 말이 된다.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는 자기 영만 아는 은밀한 것을 말한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람이 성령의 도구여서 자기 말을 자신도 몰랐다고 본다. 풀은 그랬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 방언듣는 이 대부분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라이트푸트는 히브리어로 본다
- 영으로 비밀을 말함말하는 자기만 아는 것을 말한다는 뜻
예언은 사람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한다
'사람에게 말한다'는 사람들이 알아듣고 유익을 얻도록 말한다는 뜻이다. '덕을 세운다'는 은혜와 지식에서 더 깊어지게 하는 것이다. '권면'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열심히 하도록 일깨우는 것이다. '위로'는 환난 중에 있는 이의 짐을 덜고 상한 마음을 붙들어 주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장래 일을 알려 주는 일보다 말씀 사역에 더 어울린다. 그래서 이 절은 예언이 말씀을 전하는 사역이라는 해석을 더 굳혀 준다.
- 덕을 세움은혜와 지식에서 더 깊어지게 함
- 권면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열심히 하도록 일깨움
- 위로환난 중에 있는 이의 짐을 덜고 상한 마음을 붙들어 줌
방언은 자기만 세우고 예언은 교회를 세운다
말이 남에게 유익하려면 듣는 사람이 그 말을 알아들어야 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믿음과 사랑을 깊게 할 수는 없다. 바울은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자기 말을 스스로 알아들을 때 자기 마음은 감화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남에게는 유익을 줄 수 없다. 모두가 알아듣는 말로 전하는 예언은 듣는 모든 사람을 세운다.
방언도 좋지만 예언이 낫다. 통역되면 같다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러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 말을 보면 방언은 고린도 교인들이 크게 자랑하던 은사였던 것 같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바울은 예언을 원한다.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전해 사람들이 깨닫고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더 존귀한 은사이고, 사람을 참으로 크게 만든다.
예외가 하나 있다. 방언이라도 통역되면 예언처럼 교회를 세울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방언하는 자가 예언하는 자보다 못하지 않다.
풀은 이 절에서 두 교훈을 끌어낸다. 첫째, 말씀을 전하는 모든 이의 목표는 청중의 영적 성장이어야 한다. 둘째, 청중 전체가 가장 잘 알아듣는 말과 방식을 써야 한다. 평신도 앞에서 라틴어나 헬라어, 어려운 문체, 복잡한 철학적 추론으로 설교하는 것은 헛되다. 그런 설교는 이성으로도,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본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 통역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회중이 알아듣게 옮겨 주는 것
2.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분간 안 되는 악기 소리와 같다6~11절
알아듣게 하지 않으면 사도의 방언도 무익하다
바울이 방언 능력이 있다고 해서 고린도에 가서 낯선 외국어로 말한다면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계시, 지식, 예언, 가르침을 하나하나 구별한다. 계시는 구약의 모형이나 복음의 신비를 푸는 것, 지식은 역사 같은 일반 지식, 예언은 어려운 본문 해석, 가르침은 교리문답이나 실천적 가르침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넷 모두 앞 절의 통역을 뜻한다고 본다.
풀은 그런 구분이 불확실한 추측일 뿐이라고 본다. 요점은 분명하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고 통역으로 알게 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소리가 분간되지 않으면 피리인지 거문고인지 모른다
피리와 거문고는 서로 다른 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어느 악기인지 안다. 소리가 구별되지 않으면 그것도 알 수 없다.
청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로 가르치는 것도 이와 같다. 뜻이 전달되지 않아 의미 없는 소리가 되고, 듣는 이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나팔 소리가 불분명하면 아무도 전투를 준비 못 한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은 나팔 신호에 따라 돌격하거나 후퇴한다. 두 신호가 구별되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나팔은 그냥 소리만 내서는 안 된다. 그 뜻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야 한다.
알아듣기 쉬운 말이 아니면 허공에 하는 말이다
'알아듣기 쉬운 말'은 듣는 사람이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말 자체는 뜻이 분명해도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청중이 알아들을 말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에게 지식을 더해 주지 못한다. 그러면 헛수고일 뿐이다.
풀은 이 절을 설교자가 새겨야 할 말씀으로 본다. 외국어를 쓰지 않아도, 배운 사람만 아는 문체와 화법으로 설교하면 알아듣지 못할 방언을 말하는 것과 같다. 설교자만 뜻을 알고 회중 대부분이 모른다면 그것은 허공에 하는 말이다. 풀은 이것을 끔찍한 일이라고 한다.
- 로곤 유세몬"알아듣기 쉬운 말". 듣는 이가 그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말
세상의 많은 언어도 아는 이에겐 다 뜻이 있다
처음에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다. 바벨탑 이후 하나님이 언어를 흩으셔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말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는 많은 언어가 있다. 어느 언어의 소리든 그 말을 아는 사람에게는 다 뜻이 있다.
뜻을 모르면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 외국인이다
그 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 말은 뜻 없는 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다른 민족은 상대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서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서로에게 '야만인', 곧 외국인이 된다.
- 외국인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방 사람처럼 된 관계
3. 모든 은사를 교회의 덕을 위해 쓰라12~20절
은사를 사모한다면 교회를 세우려고 풍성히 구하라
이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신령한 은사를 몹시 받고 싶어 했음을 보여 준다. 불변화사 '후토스'는 '그러므로'라는 뜻이다.
헬라어로는 '영들을 사모하는 자'다. 여기서 '영들'은 성령이 주시는 신령한 은사들을, 그것을 주시는 성령의 이름으로 부른 말이다.
바울은 그들이 은사가 풍성하기를 구하되, 교회를 세우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기를 바란다. 받은 은사를 질서 있게 쓰려는 마음도 함께여야 한다. 말씀 직분과 은사의 주된 목적은 듣는 이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과 순종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다.
- 후토스"그러므로"라는 뜻의 불변화사
- 영들성령이 주시는 신령한 은사들을 가리킨다
방언하는 자는 통역할 수 있기를 기도하라
통역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한 뒤, 사람들이 알도록 옮기거나 설명해 주는 것이다.
통역하려고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이 생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히나'가 든 구절을 '기도하고 또 통역하라'로 옮기자고 한다. 풀은 이 번역이 억지스럽다고 본다. 방언하는 자가 자기 말을 몰라서 기도해야 했다고 보지도 않는다.
풀의 생각은 이렇다. 방언하는 자들은 은사로 교만해져서 통역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교만을 낮추고 통역할 마음을 얻도록 기도하라는 말일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여기서 통역이 단순한 번역을 넘어 성경을 열어 풀어 주는 일이라고 본다. 그 일은 특별한 은사였기에, 하나님의 법의 신비를 깨닫도록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했다는 것이다.
- 히나목적을 나타내는 접속사.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기도하고 또 통역하라'로 옮기자 하나 풀은 억지라 본다
방언 기도는 영은 기도해도 남에게 열매가 없다
로마 가톨릭은 이 절과 앞 절을 근거로 회중이 모르는 라틴어 예배를 정당화한다. 방언하는 자가 자기 말을 모른 채 성령의 도구가 되었다는 일부 교부의 견해를 끌어온다.
풀은 이것을 빛과 진리의 성령을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집례자에게도 회중에게도 유익이 없는 말로 예배할 수는 없다. 게다가 자기 말을 모른다면 4절의 '자기의 덕을 세운다'나 여기의 '영이 기도한다'가 참일 수 없다.
바울은 마음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 않는다.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한다. 기도하는 자신은 이해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다는 뜻이다. 남들은 그와 함께 기도할 수 없다.
- 열매를 맺지 못함자기는 이해해도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함
영으로, 또 남이 알아듣게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라
'영으로 기도한다'는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역사를 따라, 또는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열렬히 기도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과 남이 알아듣는 방식으로 기도하겠다고 한다.
'마음으로'에는 기도하는 자신이 이해한다는 능동적 뜻도 있다. 그러나 풀은 이 말이 일차로 남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수동적 뜻이라고 본다.
바울은 같은 원리를 찬송에도 적용한다. 그러므로 설교, 기도, 찬송 등 공적 모임의 모든 신앙 행위는 다른 사람이 알아듣고 유익을 얻도록 해야 한다.
- 마음으로일차로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아듣지 못하면 남이 감사에 아멘할 수 없다
여기서 '축복한다'는 기도나 찬송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뜻이다. 이 절의 뒷부분이 그것을 설명한다. '영으로 축복한다'는 속사람으로, 또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남이 모르는 방언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풀은 여기서 사도 시대 교회의 모습을 읽어 낸다. 첫째, 사역자는 회중이 다 잘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섰다. 둘째, 한 사람이 대표로 모두가 듣게 말했다. 나머지는 그 간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아멘으로 화답했다.
아멘은 대표 기도가 곧 내 기도임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말이다. 그러니 무슨 기도인지 모르면 아멘할 수 없었다.
- 아멘대표 기도가 곧 내 기도임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말
네 감사는 좋아도 남은 세워지지 못한다
자기만 아는 방식으로 감사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는 바르게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 유익도, 영적 진보도 얻지 못한다.
바울은 누구보다 방언을 더 많이 한다
바울은 방언 은사가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인들이 하는 방언을 다 합쳐도 자기가 하는 방언보다 적을 만큼 넘치게 받았다.
풀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양이 알고 따른다는 말씀을 떠올린다. 바울은 곳곳에서 자기를 본받으라고 하는 참 목자다. 반면 양 떼를 다스리는 악한 목자들의 말은 들어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대조한다.
알아듣는 다섯 마디가 방언 일만 마디보다 낫다
바울은 방언을 많이 하지만 사역의 목적이 남을 가르쳐 하나님의 지식을 전하는 것임을 잘 알았다. 그래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많이 말하기를 피했다. 짧게라도 알아듣는 말로 가르치는 데 힘썼다.
악에는 어린아이,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은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무엇이 더 나은지, 어떻게 쓰는 것이 바른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 점에서 아이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은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지식과 지혜에서 아이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악에 대해 순진무구하라는 뜻이다. 지식과 지혜에서는 장성한 사람처럼 명철해야 한다.
4.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다21~22절
다른 방언으로 말해도 그들은 듣지 않는다(사 28장)
여기서 '율법'은 구약 전체를 가리킨다. 다른 본문에서도 그렇다. 어떤 이들은 서기관들의 말과 구별하려고 구약을 율법이라 불렀다고 본다.
인용은 이사야 28:11~12다. 신약 기자들은 구약을 글자대로가 아니라 뜻을 따라,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는 일이 흔하다. 이사야서의 원래 뜻은 이렇다. 하나님이 가나안에서 안식을 약속하셨으나 이스라엘이 듣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 칠십 년 동안 쓸 갈대아·바벨론 말로 말씀하시겠다는 저주를 선언하신 것이다.
해석은 여럿이다. 어떤 이들은 낯선 방언과 더듬는 입술이 가르침이 아니라 조롱처럼 들린다는 점에서 같은 뜻이라고 본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 경고와 함께 신약의 방언 은사가 약속되어 있다고 본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본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알아듣지 못할 방언을 고집하면 이스라엘에 임한 심판이 그들에게도 임할 수 있다고 일깨워 방언을 자제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에 귀 기울이지도, 순종하지도 않으리라는 뜻이다.
- 율법여기서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방언은 불신자를 위한 표적, 예언은 신자도 세운다
방언은 복음이 하늘에서 왔음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다. 사도들이 각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할 때 그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복음 사역자들에게 방언을 주셨다.
방언은 표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도들이 모든 나라 말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예언이 불신자에게 아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니다. 불신자만이 아니라 신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예언은 불신자를 회심시키고 신자를 세운다.
- 표적복음의 가르침이 하늘에서 왔음을 확증해 주는 것
5. 교회 모임에서는 예언이 더 유익하다23~25절
다 방언으로 말하면 불신자는 미쳤다 할 것이다
'온 교회가 함께 모여'는 한 장소에 모인다는 뜻일 수도 있고, 같은 일로 모인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풀은 한 장소에 모인 것으로 본다.
어떤 이들은 '다 방언으로 말하면'을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뒤섞여 말하는 상황으로 본다. 풀은 다수가 차례로 방언하는 경우로 본다. 24절의 '다 예언하면'도 같은 표현인데, 그것이 동시에 떠드는 것이라면 불신자가 회심할 리 없고 역시 미쳤다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이방인은 자기들만 아는 말을 하는 신자들을 보고 정신이 나갔다고 여길 것이다.
차례로 예언하면 불신자가 책망받고 판단받는다
여기서 '다'는 회중 모두가 아니다. 바울은 앞에서 다 선지자이겠느냐고 했다. 또 많은 사람이 예언하면 불신자가 그 많은 말을 본성의 빛으로 다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몇 사람이 차례로 성경을 풀고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불신자는 질서 있게 말씀이 전해지는 모습을 보고 귀 기울여 듣는다. 그리고 죄를 깨닫는다. 자기의 악한 삶과 거짓 종교가 예언하는 모든 이에게 판단받고 정죄되는 것을 보게 된다.
숨은 죄가 드러나 엎드려 하나님이 계심을 전한다
하나님은 두 방식으로 일하신다. 특별한 섭리로 예언자에게 어떤 죄인의 숨은 일을 알려 드러내게 하신다. 또는 오늘도 흔히 보듯, 설교자가 어떤 주제를 전하게 하시고 듣는 죄인이 그것을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다.
그 결과 죄인은 죄를 고백하고 회심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신다고 밖에 나가 전한다.
이렇게 예언은 방언이 못하는 두 가지 유익을 준다. 불신자를 회심시키는 것, 그리고 회심한 이가 하나님을 증거해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한다.
6. 은사를 질서 있게 쓰기 위한 규범들26~33절
모일 때 은사가 다양해도 모든 것을 덕 세우려 하라
어떤 이들은 고린도 교인들이 찬송, 가르침, 계시, 방언, 통역을 한꺼번에 동시에 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풀은 그것이 큰 착각이며 이 유명한 교회를 너무 가혹하게 보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모든 은사를 대표해 다섯 가지를 든 것으로 본다. 은사를 받은 이마다 자기 은사를 회중 앞에서 쓸 시간을 얻으려고 다투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모두가 차례로 은사를 다 쓸 때까지 모임이 계속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무질서를 막으려고 규범을 준다. 첫째 규범은 이것이다. 모든 일을 듣는 이들의 믿음과 거룩한 삶에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 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섬기는 자의 첫째 목표다.
방언은 두세 사람이 차례로, 한 사람이 통역하라
방언에 관한 규범은 셋이다. 첫째, 모두 나서지 말고 한 번에 두세 사람만 한다. 둘째, 한꺼번에 하지 말고 차례로 한다. 셋째, 회중이 알아듣도록 반드시 한 사람이 통역한다.
이렇게 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방언은 성령의 이례적인 역사로 주어졌지만, 갑작스러운 감동으로 가끔 임하는 것이 아니었다. 늘 지니고 있는 은사였다. 그래서 방언하는 사람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이 19절처럼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통역자가 없으면 교회에선 잠잠하고 하나님께 말하라
방언을 쓰고 싶다면 혼자 있을 때 모든 언어를 아시는 하나님께 말하면 된다. 통역자가 없어 남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성도가 모인 자리에서는 방언하지 말고 잠잠해야 한다.
예언은 둘이나 셋이 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하라
한 모임에서 둘이나 셋만 예언한다. 한 사람이 끝나면 다음 사람이 일어나는 식으로 차례를 지킨다.
그 밖에 예언하는 자들이 더 있으면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예언이 참된지 분별하는 일을 한다.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어도 질서를 지켜야 한다
풀은 두 종류의 예언을 구분한다. 하나는 통상적인 예언이다. 교사가 모임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를 받아 성경과 진리를 회중에게 풀어 준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연구 같은 수단 없이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모임 그 자리에서 감동이나 계시를 받아 예언하는 것이다.
풀은 이 절이 주로 앞의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 두 경우를 다 포함한다 해도 요점은 같다. 그 자리에서 계시를 받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경우가 아니면 먼저 하던 이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계시를 받았다고 남의 예언을 끊어 모임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모두 배우고 권면받도록 하나씩 차례로 예언하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두 예언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배우고 위로받게 하려는 목적을 따라 차례로 예언해야 한다.
그 목적을 명심하면 예언의 은사를 스스로 다스리며 쓸 수 있다. 은사는 반드시 써야 하지만, 어느 특정한 때에 반드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언하는 자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의 제재를 받는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예언의 은사 자체, 그 은사를 쓰는 행위나 그 결과인 가르침, 또는 예언하게 하는 충동이다.
'제재를 받는다'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예언자가 자기 은사를 스스로 통제한다는 뜻일 수 있다. 또는 같은 은사를 받은 다른 이들의 판단과 검증을 받는다는 뜻일 수 있다. 대다수 해석자는 뒤의 해석을 지지한다.
성령에게서 직접 나온 은사를 어떻게 사람이 판단하느냐는 어려움이 있다. 풀은 이렇게 답한다.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제한된 분량으로 주신다. 그래서 은사를 쓸 때 언제나 인간적인 것이 섞인다. 따라서 예언이 정말 성령에게서 왔는지, 믿음의 분수대로 했는지 다른 예언자들이 분별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절을 한 사람이 말할 때 다른 이들은 잠잠하라는 자연스러운 질서로만 좁혀 해석한다.
- 제재를 받음대다수 해석자는 다른 예언자들의 판단과 검증을 받는 것으로 본다
하나님은 무질서가 아닌 화평의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앞 절의 원리를 밝힌다. 예언이 참되더라도 그만큼 확실한 진리가 있다. 무질서는 하나님에게서 올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적 모임에서 두세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은 무질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온 것도, 그분의 뜻도 아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의 영은 다른 예언자들의 제재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에 적용되는 일반 규범이다.
7.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38절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고 복종하라
풀은 이 규범을 통상적인 예언, 곧 일상적으로 가르치는 일에 한정한다. 예언의 영이 어떤 여자에게 특별히 임했다면 회중 앞에서 말해야 한다고 본다. 여선지자 안나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했다. 빌립의 딸들도 회중 앞에서 예언했을 것이다.
잠잠해야 하는 이유는 여자의 본분이 복종이라는 데 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도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남자를 주관하는 일로 본다. 그래서 여자가 일상적으로 가르치는 교회에는 이 규범이 적용된다. 성령의 강력하고 특별한 감동으로 예언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율법'은 창세기 3:16으로 보인다. 남편이 아내를 다스린다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미리암과 훌다는 예언했다. 이런 특별한 경우를 빼면,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풀의 결론이다.
- 율법여기서는 창세기 3:16으로 보인다
배우려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으라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두 경우를 가리킨다. 회중을 가르치려고 말하는 것, 그리고 배우려고 모임 중에 사역자나 다른 이에게 묻는 것이다.
여자도 대표 기도에 아멘할 수 있다. 회중과 함께 찬송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다. 금지되는 것은 통상적인 예언으로 가르치는 것, 그리고 모임 중에 큰 소리로 사역자나 지체를 불러 묻는 것이다.
말씀이 너희에게서 나왔느냐, 너희에게만 왔느냐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이 누구보다 지혜롭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도의 지시를 가볍게 여길 것이 뻔했다. 바울은 이를 내다보고 그들을 찌르는 반문을 던진다.
너희가 세상의 유일한 교회냐, 처음 믿은 자냐, 복음이 너희에게서 퍼져 나갔으니 너희 말이 모든 교회의 법이냐는 것이다. 사실 고린도 교회 이전에 이미 예루살렘 등에 교회가 있었다. 복음은 다른 교회들에게서 그들에게로 전해졌다.
자칭 선지자라면 이 글이 주의 명령임을 알라
자기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그분의 뜻을 안다고 자부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는 사도인 바울도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바울이 쓴 것이 주의 명령임을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한다는 자는 그대로 두라
그래도 모른다고 하는 자는 일부러 모르는 체하는 것이다. 바울은 더 말하지 않고 자신과 그를 하나님의 판단에 맡긴다.
어떤 사본에는 '그는 알려지지 않게 되리라'로 되어 있다. 심판 날에 주께서 그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8. 은사를 자유롭게, 그러나 품위와 질서 있게39~40절
예언을 사모하고 방언을 금하지 말라
바울은 앞의 모든 말을 요약하며 은사에 관한 강론을 마친다. 그는 앞에서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했고, 이 장 내내 모두에게 더 유익한 예언을 높였다.
그러나 방언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다. 그래서 알맞은 때에 바른 방식과 질서를 따라 쓰는 것을 금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운다.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하라
교회 모임과 예배는 지극히 엄숙하다. 그러니 방언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쓸 것이 아니면 교회에서 하지 말아야 한다. 여자가 공적 모임에서 예언하는 것은 품위 없는 일이다. 여럿이 동시에 떠드는 것은 무질서다.
품위와 질서의 기준은 바울이 제멋대로 정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 본성의 빛, 모든 교회의 관례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신앙 모임의 모든 일은 이 기준으로 보아 품위 없거나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
바울의 규범은 하나님의 율법이나 본성과 이성에 근거한다. 여자의 잠잠함은 율법에, 한꺼번에 말하지 말라는 것은 본성과 이성에 근거한다. 부끄럽고 아름답지 못한 것을 명했다면 사람을 가르치는 데도, 불신자가 신자를 미쳤다 여기지 않게 하는 데도(23절) 맞지 않았을 것이다.
- 품위와 질서하나님의 율법, 본성의 빛, 모든 교회의 관례에서 나온 기준
복습 문제
풀은 이 장에서 바울이 말한 '예언'을 무엇으로 보는가?
풀은 9절에서 오늘의 설교자에게 어떤 교훈을 끌어내는가?
32절에서 예언하는 자의 영이 다른 예언자들의 제재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14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