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악명 높은 죄를 짓는 사람이 있을 때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사람이 있는데도 고린도 교회는 슬퍼하지 않고 교만했다.
- 바울은 사도의 권위로 그를 사탄에게 내주라, 곧 출교하라고 명한다. 목적은 그 영혼의 구원이다.
-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리듯 한 사람의 죄가 교회 전체를 더럽힌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을 내버려야 한다.
- 형제라 불리면서 흉악한 죄에 머무는 자와는 사귀지 말아야 한다. 교회 밖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1. 근친상간의 죄와 이를 방치한 교회를 책망함1~2절
이방인도 정죄하는 음행이 교회 안에 있다
바울은 앞 장에서 매를 들고 가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이 절은 그 이유를 밝힌다. 그는 그리스도께 교회를 다스릴 책임을 받은 사도다. 그러므로 끔찍한 죄를 짓고도 바로잡히지 않은 사람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일상 영어에서는 음행, 간음, 근친상간을 구분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음행'은 흔히 모든 불법적인 성적 부정을 아우르는 말로 쓰인다.
본성의 빛만 가진 이방인들도 이런 죄는 가증하다고 정죄한다. 바울은 이 점을 들어 죄의 무게를 더 드러낸다.
풀은 이 일을 아버지가 죽은 뒤 그 아내와 결혼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자기 아내처럼 대한 것으로 본다. 고후 7:12의 '불의를 당한 자'는 그 아버지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에는 근친상간과 간음이 함께 얽혀 있다.
- 음행성경에서는 온갖 불법적 성적 부정을 포괄하는 말이다.
- 이방인야만족만이 아니라 로마인 같은 문명화된 민족까지 포함한 이교도 전체를 가리킨다.
교만하여 슬퍼하지도, 쫓아내지도 않았다
고린도 교인들은 받은 은사 때문에 우쭐했다. 사역자들을 놓고 편을 가르고 다투느라 영혼과 교회의 유익을 소홀히 했다. 이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치리와 출교를 하지 않았다.
어떤 설명은 이렇다. 그들이 복음이 율법이 막았던 방종의 길을 열었다고 여겨, 이 사람을 교사로 세웠다는 것이다. 풀은 이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본다.
그들이 했어야 할 일은 이것이다. 먼저 이 일을 통탄하며 온 교회가 금식하고 회개 기도를 해야 했다. 범죄자가 죄를 깨닫고 용서받도록 기도해야 했다. 또 교회의 더러움을 씻기 위해 그를 교제에서 내보내야 했다.
지금은 누가 더 잘났는지 다툴 때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낮추고 교회를 정결하게 할 때였다.
2. 그리스도의 권위로 범죄자를 출교함3~5절
바울은 떠나 있으나 이미 판단을 내렸다
바울은 몸으로는 멀리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고린도 교회를 돌볼 책임을 받았고, 다른 교회들처럼 이 교회도 깊이 염려한다. 그래서 받은 권한을 사용해, 마치 그들 가운데 있는 것처럼 이 범죄자를 어떻게 다룰지 이미 결정했다.
주의 이름과 능력으로 함께 모이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는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 뜻을 구하고, 이 조치에 복을 주셔서 모두가 영적 유익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명령과 권위에 따라,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뜻이다.
이 어구가 앞에 걸리면 '그리스도의 권위로 내가 이미 판단했다'는 뜻이 된다. 뒤에 걸리면 '그리스도의 권위로 너희가 모여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뜻이 된다.
'내 영과 함께 모여'는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대로 교회가 모이고, 바울의 영도 함께한다는 말이다. '주 예수의 능력으로'는 사도와 교회에 맡겨진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위를 가리킨다.
사탄에게 내줌은 출교이며,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다
'사탄에게 내준다'는 출교를 뜻한다. 거의 모든 해석자가 이렇게 본다.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이것은 교회가 모여서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아 책망받은 조치다. 둘째, 그 목적은 범죄자를 회중에서 내보내는 것(2절)이고, 묵은 누룩을 없애 새 덩어리가 되게 하는 것(7절)이다. 셋째, 이것은 많은 사람이 함께 내리는 벌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죄인을 기적적으로 마귀에게 넘겨 고통받게 하는 사도적 권세로 본다. 풀은 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울은 교회가 그런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고 책망한 것이 아니다. 신약 어디에도 교회에 그런 권세를 맡겼다는 말이 없다.
그러면 왜 '사탄'이라는 표현을 썼는가?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출교된 자를 실제로 사탄에게 넘겨 괴롭히셨다고 본다. 다만 그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니 특별한 경우에만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사탄이 '세상 임금'이고 세상은 교회와 반대되는 영역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이 표현을 마 18:17의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본다. 풀은 이 후자를 더 낫게 본다. 출교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은혜의 방편에서 끊겨, 원수 마귀의 시험 앞에 드러나는 무서운 상태라는 것이다.
'육신을 멸한다'는 몸을 죽인다는 뜻이 아니다. 슬픔과 괴로움으로 육체의 정욕을 꺾는다는 뜻이다. 몸의 멸망은 출교의 효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징계는 그 영혼이 주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는 수단이다.
풀은 이 본문을 출교를 가장 분명히 가르치는 곳으로 본다. 직분자가 결정하더라도 온 교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출교는 사람으로서의 일상 거래가 아니라, 성찬 같은 교회 고유의 교제를 막는 것이다. 출교된 자는 원수가 아니라 형제처럼 권면할 대상이다(살후 3:14-15). 출교는 흉악한 죄에만, 기도로 그리스도의 뜻을 물은 뒤에 해야 한다. 목적은 회개이므로 교회는 그를 계속 권면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 사탄에게 내줌출교를 생생하게 표현한 말이다. 교회 밖, 곧 사탄의 영역에 놓이는 것을 뜻한다.
- 육신성경이 흔히 '육'이라 부르는 정욕과 욕심이다. 몸 자체가 아니다.
3.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6~8절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린다
고린도 교인들은 유능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자랑했다. 그러나 흉악한 죄인이 활개 치는데도 내쫓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 자랑할 것이 없다.
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부풀리듯, 교회 품에 머무는 한 죄인이 온 교회를 더럽힌다.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
'묵은 누룩' 앞에는 정관사가 있다. 이것이 강조라면 '이 묵은 누룩', 곧 근친상간을 범한 그 사람을 가리킨다. 강조가 아니라면, 각 교인에게 옛사람을 벗으라는 일반적 권면(엡 4:22)이 된다. 거짓 교훈과 마음의 부패를 누룩에 빗댄 셈이다.
풀은 전자를 택한다. 바울은 줄곧 교회 전체가 모여서 할 일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명령은 그 범죄자를 회중에서 내보내라는 뜻이다.
복음과 신앙고백에 맞지 않는 것을 버릴 때에만 참된 교회, 곧 새 덩어리가 된다. 유대인이 유월절 뒤 이레 동안 무교병만 먹었듯이(레 23:6), 교회도 누룩 없는 무리여야 한다.
유월절 의식의 효력은 끝났다. 그러나 참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고 옛사람도 그와 함께 못 박혔다. 그러므로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지켜 더는 죄를 섬기지 말아야 한다.
- 텐'묵은 누룩' 앞의 헬라어 정관사다. 강조로 보면 '이 묵은 누룩', 곧 그 범죄자를 가리킨다.
- 누룩 없는 자무교절처럼 죄와 부패가 섞이지 않은 무리를 말한다.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명절을 지키자
바울은 유월절 직후 이레 동안 지키던 무교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에서 참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다. 무교절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예표했다.
어떤 이들은 묵은 누룩과 악의를 악한 습관으로, 순전과 진실을 선한 습관으로 본다. 다른 이들은 이 추상명사들을 각각 악한 사람과 순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본다. 풀은 후자가 문맥에 더 맞다고 본다.
본문이 가르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악을 미워하고 순전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회가 악한 자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회중을 깨끗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풀은 본문이 일차로 강조하는 것을 후자로 본다.
- 명절유월절 뒤 이레 동안 지키던 무교절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예표한다.
- 순전함과 진실함풀은 순전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본다.
4. 흉악한 죄인을 회중에 두지 말라9~13절
전에 쓴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 했다
바울은 전에도 고린도 교회에 편지로 지시한 것 같다. 그 편지는 오늘 전해지지 않는다. 바울이 성경에 남은 것보다 더 많은 편지를 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편지들이 보존되지 않았다고 해서 성경의 온전함이 손상되지는 않는다.
'사귄다'는 그들의 어둠의 일에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과 친밀하게 어울리는 것까지 포함한다.
- 음행하는 자들성적으로 부정한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다.
세상의 죄인과 아예 상종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이 권면은 교회 밖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여기의 '세상'은 요 15:19, 17:14에서처럼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뜻한다.
바울은 근친상간에 대한 권면을 다른 흉악한 죄들로 넓힌다. 여기 든 죄들은 다 열거한 목록이 아니라 대표적인 예다.
그런 자들과 일절 상종하지 않으려면 세상과의 모든 거래를 끊어야 한다. 풀은 이것이 당시보다 더 기독교화된 오늘의 세상에도 그대로 해당한다고 덧붙인다.
- 탐하는 자들돈을 너무 사랑해 속이고 억눌러서라도 돈을 모으는 자들이다.
- 속여 빼앗는 자들정해진 것보다 부당하게 더 많이 걷거나 받아내는 자들이다.
- 우상 숭배하는 자들나무나 돌로 만든 형상에 절하는 자들이다.
형제라 하면서 흉악한 죄에 사는 자와는 먹지도 말라
'함께 먹지도 말라'가 성찬만 가리키는지, 일반 식탁까지 포함하는지를 두고 당시 논쟁이 있었다. 함께 먹는 것이 친밀한 사귐을 뜻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바울은 여섯 가지 예를 든다. 음행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모욕하는 자, 술 취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다.
그런 자와는 성찬의 상에서 함께 먹지 말아야 한다. 의례상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필요하게 어울려 먹거나 교제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위해 상을 베푸신 적이 없다. 어떤 교회도 그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도 묵은 누룩을 없애려 하지 않는 교회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일상적인 친교까지 금한다면 성찬의 교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금지된다.
- 탐욕을 부리는 자수단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으거나, 남에게 줄 것을 주지 않는 자다.
- 우상 숭배를 하는 자이방 이웃이 두렵거나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신전에 드나드는 자다.
- 모욕하는 자혀를 함부로 놀려 남의 명예를 깎는 자다.
- 술 취하는 자주정 여부와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독주를 무절제하게 마시는 자다.
밖이 아니라 교회 안 사람들을 판단하라
이방인을 다스리는 것은 바울의 소관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세상이 아니라 교회를 맡기셨다.
교회 안 사람들은 스스로 교회에 들어와 그 치리에 복종하기로 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살피고 판단하는 것은 교회의 책무다.
밖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니 이 악한 자를 내쫓으라
교회 밖 사람들은 교회에 다스림을 맡긴 적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 아래 있고, 하나님이 섭리로 다스리고 심판하신다.
교회는 맡겨진 일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이 범죄자도 결국 하나님께 심판받겠지만, 교회는 받은 권세로 그를 회중에서 내보낼 의무가 있다.
이 결론은 7~8절의 뜻을 분명히 해 준다. 개인이 자기 정욕을 버리는 것도 선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다. 그러나 그 절들의 요지는 모든 교회가 흉악한 죄인을 회중에서 제거할 의무를 진다는 데 있다.
복습 문제
풀은 '사탄에게 내준다'는 말을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육신은 멸하고'가 몸을 죽인다는 뜻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풀은 7절의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를 개인의 성화 권면보다 무엇으로 보는가? 그 근거는?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5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