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고린도전서 주석 · 매튜 풀

7장 환난의 때, 혼인과 부르심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고린도전서 7장 1~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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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환난이 닥쳐오는 때에 그리스도인은 혼인과 독신, 그리고 자기가 부르심 받은 처지를 어떻게 여기고 살아야 하는가?

  • 혼인은 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음행을 막는 치료책으로 정하셨으니,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은 혼인해야 한다.
  • 간음 외의 이유로 혼인을 깨서는 안 된다. 다만 믿지 않는 배우자가 스스로 떠나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믿는 쪽은 매이지 않는다.
  • 회심했다고 신분이나 처지를 바꿀 필요는 없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본분을 다하면 된다.
  • 임박한 교회의 환난을 생각하면,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혼자 지내며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는 편이 더 유익하다.

1. 음행을 막는 치료책으로서의 혼인1~9절

1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환난의 때에는 혼인하지 않는 편이 유익하다

고린도 교회는 많이 부패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바울을 존경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논란이 된 일들을 편지로 물었고, 혼인 문제도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혼인이 적법한지를 물은 것이 아니다. 혼인을 금하는 거짓 가르침은 그렇게 이른 시기에 나타나지 않았다(딤전 4:1-3). 그들이 물은 것은 교회가 환난에 처한 지금 혼인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좋다'는 두 가지 유익을 뜻할 뿐이다. 하나는 환난 중에 겪을 곤란을 덜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자유로운 몸으로 하나님 섬기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은 혼인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 좋다절대적 선이 아니라 환난 중에 유익하고 편하다는 뜻
함께 볼 말씀딤전 4:1-3
2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음행을 피하려면 각자 자기 배우자를 두라

헬라어를 그대로 옮기면 '음행들로 인하여'다. 복수형을 쓴 것은 육체의 정욕에서 나오는 온갖 성적 부정을 함께 가리키기 위해서다.

완전히 이길 수 없는 죄라면 그 죄로 뛰어들 것이 아니라 피하는 차선책을 택해야 한다. 이 죄가 바로 그런 경우다. 혼인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해도, 대개는 혼인하지 않으면 음행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혼인하는 것이 의무가 된다. 하나님께서 정욕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혼인을 정하셨기 때문이다.

'자기 아내', '자기 남편'이라는 말은 일부다처와 일처다부가 잘못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 음행들복수형으로, 정욕에서 나오는 온갖 성적 죄를 포괄한다
3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부부는 서로에게 동침의 의무를 다하라

'의무'로 옮긴 말은 보통 마땅한 호의를 뜻한다. 그러나 5절을 보면 여기서는 동침을 가리킨다. 모세가 출 21:10에서 말한 혼인의 의무와 같다.

바울과 모세는 모두 부부관계를 완곡하게 표현한다. 성경은 속된 사람들에게 비웃을 빌미를 줄 수 있는 말을 할 때 늘 이렇게 한다. 동침은 평상시 부부가 마땅히 할 일이므로, 바울은 '의무를 다하라'고 말해 그것이 정당한 요구임을 드러낸다.

  • 의무본래 합당한 호의를 뜻하나, 여기서는 혼인의 동침 의무
함께 볼 말씀출 21:10
4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혼인하면 자기 몸의 주장권을 배우자에게 넘긴다

3절의 이유가 여기 나온다. 혼인하면 각자 자기 몸을 주장할 권리를 배우자에게 넘겨주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 일부의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혼인한 뒤에도 동침하지 않고 생계와 살림만 서로 도우며 살아도 되는가? 바울의 대답은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5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분방은 합의 아래 잠시만, 그 뒤엔 다시 합하라

혼인할 때 서로 자기 몸의 주장권을 넘기기로 약속했다. 그러니 동침을 거부하고 따로 지내는 것은 그 약속을 깨는 속임수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서로 합의했다면 얼마 동안은 따로 지낼 수 있다. 합의한 일은 속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도나 금식 때 반드시 금욕하라고 명하신 적이 없다. 그래서 바울은 합의가 있을 때만 분방하라고 한다. 율법을 받기 전에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고(출 19:15), 거룩한 떡을 받는 조건에도 같은 내용이 있었다(삼상 21:4). 이것은 율법의 정결 규례였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의식법에서 자유하므로, 지킬지 말지는 부부가 합의해 정하면 된다.

금욕 기간이 길어지면 마귀는 그들이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음행으로 유혹한다. 그러므로 기도에 필요한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시 합하라고 명한다.

함께 볼 말씀출 19:15 · 삼상 21:4
6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잠시 분방하라는 말은 명령이 아니라 권고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이 이 장 앞부분 전체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해석자들은 바로 앞 절만 가리킨다고 본다.

곧 기도나 금식을 위해 합의 아래 잠시 금욕했다가 다시 합하라는 말은 하나님께 받은 명시적 명령이 아니다. 바울이 합당하다고 판단해 권한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 사정을 따라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7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모두가 독신이기를 바라지만 은사는 각각 다르다

'나와 같기를 원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든 성도가 자기처럼 독신의 은사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울의 소원이다. 8절과 9절을 보면 그 뜻이 분명하다.

이것은 절대적인 바람이 아니다. 모두가 독신으로 지내면 바울 세대가 끝날 때 교회와 인류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고 받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는 주님께서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만 받으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마 19:10-12).

  • 은사여기서는 독신으로 지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은사
함께 볼 말씀마 19:10-12
8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미혼자와 과부는 바울처럼 지내는 것이 좋다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이라는 헬라어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배우자를 잃은 사람을 모두 포함한다. 그런데도 '과부들'을 덧붙인 것은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여기서 '좋다'는 성도들이 지금 처한 형편에서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은 언제나 선하다. 그러나 혼인처럼 우리의 자유에 맡기신 일은 사람에 따라, 또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바울은 개인 사정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공통으로 처한 상황을 두고 말한다.

바울이 결혼한 적이 있는지는 교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이때 독신이었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므로 더 따질 필요가 없다. 베드로가 결혼했다는 것은 분명하다(막 1:30).

  • 좋다성경에서 자주 '편의상 바람직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함께 볼 말씀막 1:30
9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절제할 수 없으면 결혼하는 것이 낫다

바울이 '낫다'거나 '좋다'고 한 것은 교황주의자들 말처럼 더 높은 완전에 이르는 권고가 아니다. 절제할 수 없으면 결혼하라고 명하는 것을 보면 분명하다.

이 말은 재혼이 합법임을 보여 준다. 정절을 지키기 어려운 과부에게는 재혼이 오히려 의무일 수 있다.

겉으로 음행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서 정욕이 불타오른다면, 그것을 견디기보다 결혼하는 편이 훨씬 합당하다.

  • 불 같이 타다외적 범죄가 없어도 마음속에서 정욕이 들끓는 상태

2. 그리스도께서 금하신 혼인의 파기10~11절

10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주님의 명령: 아내는 남편과 갈라서지 말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물어 온 또 다른 문제로 돌아간다. 이 절과 12-13절을 보면 그 질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간음이 아닌 이유로도 부부가 갈라설 수 있는가?

본문은 간음의 경우를 따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 말씀대로 간음의 경우에는 갈라설 수 있다.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혼인을 가볍게 여겨 사소한 일로도 이혼했다. 그래서 성도들 중에도 배우자가 믿지 않으면 이혼 사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명하는 자는 주시라'는 말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바울은 그 사역자로서 전할 뿐이라는 뜻이다. 남편이 간음했다면 아내가 갈라설 수 있지만, 그 밖의 이유로는 안 된다.

11(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갈라섰다면 재혼 말고 지내거나 화합하라

'갈라섰다'로 옮긴 코리스테는 수동형이다. 풀은 흠정역이 왜 능동으로 옮겼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 말은 스스로 떠난 경우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맞지 않는 이유로 법원 판결에 따라 이혼당한 경우도 포함한다. 유대인들은 사소한 이유로도 이혼증서를 주었다.

그런 이혼은 처음부터 무효여서 혼인의 연합이 여전히 살아 있다. 사람 눈에는 이혼했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여전히 부부다. 그러므로 다른 남자와 재혼하면 간음이 된다(마 5:32; 19:9). 그래서 바울은 남편과 다시 화합하라고 권한다.

율법에 따르면 버림받은 아내가 재혼했다면 둘째 남편이 죽어도 첫 남편에게 돌아갈 수 없다(신 24:1-4). 그러나 재혼하지 않았다면 다시 화합할 수 있다. 아내에게 한 명령을 남편에게도 똑같이 준다.

  • 코리스테수동형 동사. 스스로 떠남과 부당한 판결로 이혼당함을 모두 포함한다
함께 볼 말씀마 5:32 · 마 19:9 · 신 24:1-4

3. 배우자가 믿지 않는 경우12~16절

12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믿지 않는 아내가 함께 살기 원하면 버리지 말라

'주의 명령이 아니라'는 말은, 이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정해 주신 분명한 규범은 없지만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권면한다는 뜻이다.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헬라어로 '나머지 일들에 대해서는'이다.

'믿지 아니하는'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방인으로 계속 사는 것을 말한다. 신앙 말고 다른 반목이 없다면, 아내가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서는 안 된다.

배우자를 고를 수 있는 성도가 믿지 않는 이방인을 택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둘 다 믿지 않다가 결혼 후 한쪽만 믿게 된 경우, 배우자의 불신 자체는 이혼 사유가 되지 않는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것이 사도 개인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배우자가 우상을 숭배하며 계속 배교를 유혹하면 이혼해도 된다고 본다. 풀은 위대한 사도가 분명히 명했고 그 이유까지 생각하면 달리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 믿지 아니하는기독교 신앙을 받지 않고 이방인으로 계속 사는 것
13-1413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믿는 배우자로 혼인과 자녀가 거룩하게 된다

성경에서 '거룩하게 한다'는 대개 예식이나 은혜의 주입을 통해 무엇을 세속에서 구별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르다. 믿지 않는 배우자가 은혜의 주입이나 율법 예식으로 거룩해진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해석이 갈린다. 어떤 이들은 사 13:3처럼 하나님을 위해 준비된다는 뜻으로 본다. 어떤 이들은 이혼하지 않았으니 도덕적 흠이 없다는 뜻으로 본다. 풀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고 혼인을 이어 가면 한쪽이 믿지 않아도 그 혼인 상태가 거룩하다는 뜻으로 본다.

그렇지 않다면 자녀들은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인 자녀와 같은 처지가 되어 부정할 것이다. 모든 자녀는 죄 중에 태어난 진노의 자녀라는 점에서는 부정하다. 그러나 어떤 자녀는 교회와 은혜 언약 안에 있고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깨끗하다.

'거룩하다'는 속사람이 새로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유대 민족을 '거룩한 민족'이라 부르듯 상대적으로 거룩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앞의 '거룩하게 된다'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이런 부부의 자녀도 양쪽 모두 믿는 부부의 자녀처럼 언약 아래 있고 세례를 받을 수 있다.

  • 거룩하다내적 갱신이 아니라 언약 안에 있다는 상대적 거룩
함께 볼 말씀사 13:3
15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불신 배우자가 떠나면 매이지 않는다

믿지 않는 배우자가 성도를 떠나 더 이상 부부로 살지 않으려 한다면, 떠나게 하라. 하나님의 법은 남은 성도를 묶어 두지 않는다. 억지로 데려오거나 평생 독신으로 지낼 이유가 없다.

간음 외에는 이혼 사유가 없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맞다. 간음 외의 이유로 배우자를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배우자가 스스로 떠나 혼인의 목적을 무너뜨렸다면 경우가 다르다. 돌아오게 하려고 적절한 수단을 다 쓰고 충분히 기다렸는데도 끝내 거부하면, 특히 신앙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떠났다면, 버려진 쪽은 혼인의 매임에서 자유롭게 된다.

하나님은 성도를 화평으로 부르셨다. 혼인 제도도 가정이 화평 중에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자나 혈육이 믿지 않는다고 버려서 양심의 화평을 깨서는 안 된다. 반대로 그들이 스스로 떠났다면 끝없이 괴로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 구애될 것이 없다하나님의 법이 버려진 성도를 묶어 두지 않는다는 뜻
16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함께 살면 불신 배우자를 구원할 수도 있다

불신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이 큰 유익이 될 수 있다. 믿지 않는 배우자의 영혼이 잘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갈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믿는 배우자의 가르침과 권면과 본으로 상대가 그리스도께 나아올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데도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결국 믿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성경은 누군가를 그리스도께 이끄는 도구가 되는 것을 '구원한다'고 자주 표현한다(고전 9:22; 딤전 4:16; 약 5:20). 다른 이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면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 구원하다사람을 그리스도께 이끄는 도구가 된다는 뜻
함께 볼 말씀고전 9:22 · 딤전 4:16 · 약 5:20

4. 부르심 받은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라17~24절

17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그대로 행하라

'부르셨다'는 하나님의 섭리로 각 사람이 놓이게 된 삶의 자리를 가리킨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앞 문맥에만 연결한다. 네 마음은 변했지만 배우자는 아직 이방인이라도 이혼하지 말고 본분을 다하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21-22절에서 종의 경우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그 해석은 너무 좁다.

참뜻은 이렇다. 신앙을 고백하는 것과 어느 자리에서 부르심을 받았든 거기서 정직하게 사는 것은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앙을 핑계로 자기 처지에서 생기는 본분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고린도뿐 아니라 모든 교회에 해당하는 규범이다.

  • 부르셨다섭리로 각 사람이 놓인 인생의 자리
18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자든 무할례자든 그 처지를 바꾸려 말라

유대인으로 태어나 할례를 받은 뒤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은 원래 이방인인 것처럼 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방인으로 믿게 된 사람은 유대교에서 회심한 것처럼 행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마카베오1서 1:15에서 일부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환심을 사려고 할례 흔적을 없앤 일을 정죄한다고 본다. 그러나 풀은 앞의 설명이 본문의 뜻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19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할례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이 중요하다

구약 시대 할례는 율법을 지키겠다는 언약의 표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구원에 필요한 중요한 문제였다. 할례받지 않은 이스라엘 남자는 언약을 어긴 자로 회중에서 끊어졌다(창 17:10-14).

그러나 신약 시대 교회에서 할례는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다(갈 5:6).

함께 볼 말씀창 17:10-14 · 갈 5:6
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회심할 때의 신분과 처지에 그대로 머물라

회심할 때의 신분과 처지에 머물러야 한다. 다만 그 직업과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정직한 성도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마술하던 이들은 책을 불태웠고, 불법한 일을 하던 이들은 그 일을 버렸다.

요지는 이것이다. 회심 전에 합법적인 직업이나 관계 속에 있었다면 그대로 이어 가야 한다. 신앙을 핑계로 거기서 생기는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회심한 사람은 이전 직업을 절대 바꾸면 안 된다고 해석한다. 풀은 이를 억지라고 본다. 직업을 바꾸는 일은 신중한 조언과 숙고가 필요한 중대한 일이다. 그러나 섭리는 늘 변한다. 땀 흘려도 먹고살 수 없게 되었는데 이전 직업을 고집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21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종이어도 염려 말되, 자유의 기회는 이용하라

정직하게 일할 수 있는 종의 처지에서 믿게 되었다면 처지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스도의 종도 사람의 종으로 정직하게 살 수 있다.

친구들의 도움이나 주인의 동의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종으로 남아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주인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다면 남으라는 뜻으로 본다.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풀은 자유의 기회가 오면 활용하라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개는 자유인으로 사는 편이 하나님을 섬기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22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종은 주의 자유인이요, 자유인은 그리스도의 종이다

사람의 종이라는 신분이 성도의 영적 자유를 해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앞에서는 종이나 자유인이나 같다. 종도 자유인만큼 천국에 가까울 수 있다.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성도라면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종이다(골 3:11).

함께 볼 말씀골 3:11
23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값으로 사신 자이니 사람의 욕심에 종노릇 말라

바울은 고전 6:20에서 우리가 값으로 산 바 되었으니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는 같은 근거로 또 하나의 본분을 말한다.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해석이 여럿이다. 어떤 이들은 불신자에게 자기 몸을 종으로 팔지 말라는 뜻으로 본다. 어떤 이들은 눈가림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섬김을 금한 것으로 본다(엡 6:6-7). 에베소서는 성도가 사람의 종일 수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풀은 가장 유력한 해석을 이렇게 본다. 사람의 욕심에 복종하는 종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종으로서 사람을 섬기되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사람의 욕심을 따르다 하나님께 불순종해서는 안 된다.

함께 볼 말씀고전 6:20 · 엡 6:6-7
24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부르심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결혼했든 아니든, 주인이든 종이든, 할례자든 무할례자든 상관없다. 믿게 되었다고 처지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전 자리에 머무는 것이 좋다.

다만 이제는 하나님의 법 아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심을 알고, 지금 자리에서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바로 이 뜻이다.

  •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하나님의 눈앞에 있음을 알고 제자리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

5. 환난의 때, 처녀들의 혼인 문제25~38절

25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처녀에 대해, 받은 명령은 없으나 의견을 말한다

결혼한 이들과 과부들에 이어 이제 처녀에 대해 말한다. 뒤의 내용을 보면 이 권면은 처녀와 총각 모두에게 해당한다.

바울은 모든 처녀에게 해당하는 특별한 지시를 그리스도께 받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에게 최선으로 보이는 대로 권한다. 주의 자비로 맡은 일을 믿음직하게 해 온 사람으로 여겨, 자기 의견을 믿고 받아 주기를 바란다.

'충성스럽다'는 성경에서 믿을 만하다는 뜻으로 쓰인다(딤전 1:15; 딛 3:8; 벧전 4:19).

  • 충성스러운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하다는 뜻
함께 볼 말씀딤전 1:15 · 딤전 4:9 · 딛 3:8 · 벧전 4:19
26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임박한 환난 때문에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좋다'는 앞에서처럼, 개인 사정으로 죄가 되지 않는 한 임박한 환난에 비추어 일반적으로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임박한 환난'은 누구나 한 번 죽는다는 공통의 곤경이 아니다. 가정 살림의 어려움도 아니다. 물론 혼인하지 않으면 죽을 때 이별할 혈육이 적고 돌볼 가족이 적어 덜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방주 같은 교회가 세상에서 겪는 환난, 특히 초대 교회가 겪을 특별한 환난이다.

이교도의 큰 박해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미 예고하셨고, 사도들도 머지않아 박해 속에 죽게 될 것이었다. 바울은 네로 재위 10년이나 11년에 순교한 것으로 여겨진다.

  • 임박한 환난곧 닥쳐올 교회의 박해와 고난
27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매였으면 풀려 하지 말고, 놓였으면 구하지 말라

결혼이나 약혼으로 매여 있다면 상대를 버려서는 안 된다. 다만 믿지 않는 배우자나 약혼자가 스스로 떠났다면 사정해서 붙잡아 둘 의무는 없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자기 잘못 없이 하나님의 손길로 홀로 되었다면 아내를 구하지 말라. 형편상 꼭 혼인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다. 환난과 곤경의 때가 곧 오기 때문이다. 주님도 그날에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셨다(마 24:19).

  • 매였느냐결혼뿐 아니라 약혼으로 묶인 경우도 포함
함께 볼 말씀마 24:19
28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결혼은 죄가 아니나 육신의 고난이 따른다

바울이 결혼 자체를 죄로 여긴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다만 어느 시대든 결혼한 이들은 이 땅에서 괴로움을 겪는다. 환난이 가까운 지금은 더 많이 겪을 것이다.

'너희를 아끼노라'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너희를 아끼기에 할 수 있으면 독신으로 지내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이 말로 더는 너희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뜻이다.

29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때가 짧아졌으니 아내 있는 자는 없는 듯하라

앞에서는 일부에게 해당하는 말을 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말한다. '단축되었다'는 항구가 가까워져 선원들이 돛을 감아올리는 모습을 나타낸다.

'그 때'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이 세상이 존속하는 현세의 때다. 사도들은 자기 시대를 마지막 때라고 자주 불렀다. 다른 하나는 교회가 그동안 누려 온 평온한 시기다. 이 시기가 끝나고 열 번의 극심한 박해가 잇달아 닥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이 세상의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지지 말아야 한다. 결혼했거나 할 사람도 아내가 주는 만족을 한껏 누리려 하지 말고, 아내가 없는 듯 초연하게 살아야 한다.

  • 단축되다항구가 가까워져 돛을 감아올리는 모습
30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슬픔도 기쁨도 소유도 지나가는 것처럼 대하라

우는 자들은 큰 환난을 겪거나 가까운 혈육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잃은 것은 어차피 영원히 곁에 둘 수 없는 것이니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것으로 기뻐하는 자들은 그 기쁨의 시간이 짧다는 것을 생각해 절제해야 한다. 세상의 기쁨은 솥 밑에서 요란하게 타다가 금세 꺼지는 가시나무 불과 같다.

좋은 물건을 많이 가진 사람은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닌 듯 여기고, 곧 떠나갈 것처럼 사용해야 한다.

31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세상 것은 목적대로만 쓰라, 세상은 지나간다

세상 물건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써야 한다. 그러나 쓸 시간이 길지 않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주신 목적대로만 써야 한다. 다른 용도로 악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여러 장면으로 이루어진 연극 무대와 같다. 지금 장면은 잠시 있다 사라지고 곧 다른 장면이 이어진다. 오늘의 왕이나 고관이 내일은 거지가 되는 것이 인생이다.

  • 외형연극 무대의 장면처럼 잠시 있다 바뀌는 세상의 모습
32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미혼자는 어떻게 주를 기쁘게 할지에 전념한다

환난의 때에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혼자 지내라고 권하는 이유가 있다. 결혼하면 남녀 모두 마음이 나뉘고 여러 염려에 휘말린다. 그런 염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

영적인 마음으로 경건에 뜻을 둔 사람이 결혼하지 않으면 세상일의 얽매임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본분과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

33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기혼자는 아내를 기쁘게 할 세상일을 염려한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염려할 일이 따로 생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부부는 여러 일로 서로를 기쁘게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일들이 죄는 아니다. 그러나 시간을 꽤 많이 빼앗는다. 미혼자는 그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지만 기혼자는 그럴 수 없다.

34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여자도 같다, 미혼은 주의 일, 기혼은 남편을 생각한다

남자에게 한 말이 여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경건에 힘쓰는 미혼 여성은 모든 시간과 기회를 하나님 섬기는 데 쓸 수 있다. 결혼한 여성은 가족을 돌보고 남편을 기쁘게 하는 데 시간과 힘을 들이게 된다.

32-34절의 요지는 이것이다. 결혼하면 남편이든 아내이든 하나님 섬기는 일 외의 여러 일에 매여, 미혼자처럼 하나님만 섬기는 데 전념할 수 없다.

35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올무가 아니라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다

이 권면은 너희 유익을 위한 것이다. 이 땅에서 염려에 얽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본분을 온 마음으로 다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우지 않으신 짐을 새로 지워 너희를 덫에 걸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치에 합당하게'로 옮긴 유스케몬은 본래 좋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세상 평판이 좋다는 의미로 '존귀한'이라 옮겨지기도 하고(막 15:43; 행 13:50; 17:12), 고전 12:24에서는 '아름다운'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여기서는 넓게 '유익한' 정도의 뜻이다. 결혼 자체는 결코 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히 13:4). 그래서 이 말은 고전 6:12의 쉼페론과 같은 뜻이다.

'주를 섬긴다'로 옮긴 말은 직역하면 주 곁에 꼭 붙어 앉아 있다는 뜻이다.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그 반대는 일하다가 자꾸 불려 나가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교회 형편이 어려운 지금, 독신으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은 가정의 염려로 마음이 나뉘지 않도록 결혼하지 않는 편이 유익하다.

  • 유스케몬본래 '좋은 모습'. 여기서는 '유익한'이라는 넓은 뜻
  • 쉼페론'유익'. 이 절의 유스케몬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함께 볼 말씀고전 12:24 · 히 13:4 · 고전 6:12 · 막 15:43
36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딸을 그냥 둠이 부당하면 결혼시켜도 죄가 아니다

'합당하지 못하다'에는 모든 사람에게 부당한 것이 있고, 특정한 경우에 부당한 것이 있다. 여기서는 후자다. 단지 보기 흉하다는 뜻이 아니라, 복음의 일반 원칙을 그 사람의 형편에 적용해 보니 합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약혼녀'로 옮긴 말은 결혼하지 않은 여자, 곧 처녀를 뜻한다. 풀은 이것을 아버지와 미혼 딸의 경우로 본다. 딸이 혼기가 지났고 사랑하는 남자와 혼인하기를 원한다. 허락하지 않으면 딸이 자포자기하거나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은 이 두 조건, 곧 딸을 그냥 두는 것이 부당하다는 판단과 혼기가 지났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럴 때 딸을 시집보내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그들'이라는 복수형은 결혼이 두 사람 사이의 일이기 때문이다. 결혼 자체는 죄가 아니다. 다만 환난 중에 섬김에 제약이 따르고 염려가 더해질 뿐이다. 9절의 말씀처럼, 덜 유익한 것과 분명한 죄 중에서는 마땅히 전자를 택해야 한다.

  • 약혼녀헬라어로 '처녀'. 풀은 미혼의 딸로 본다
  • 합당하지 못하다복음의 원칙을 특정한 사람의 사정에 적용했을 때 부당하다는 뜻
37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확고한 뜻과 권리로 딸을 그대로 두어도 잘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모든 사정을 따져 보았다고 하자. 딸이 죄에 빠질 염려가 없고, 부양할 여력도 있다. 생각이 확고하고 흔들림이 없으며, 딸도 꼭 혼인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형편에서 처녀로 두기로 했다면 잘하는 것이다.

그러나 딸이 혼인을 원한다면 아버지에게는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없다. 아무리 딸의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도 억지로 막을 수 없다. 부모에게 혼인을 허락하지 않을 권한은 있어도, 평생 혼인하지 못하게 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딸도 아버지의 결정에 기꺼이 따르는 경우라면, 처녀로 두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환난을 생각하면 결혼시키는 것보다 더 잘하는 일이다.

  • 자기 뜻대로 할 권리딸도 동의하여 아버지가 결정할 수 있는 형편
38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결혼시켜도 잘하나, 시키지 않으면 더 잘한다

자녀를 결혼시킬지에 대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하나의 규범은 없다. 부모와 자녀의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충분히 따져 보고 딸도 동의해 결혼시킨다면 죄가 아니니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나 교회의 현재 형편을 생각해, 딸이 하나님 섬기는 일에 온 힘을 다하도록 결혼시키지 않는다면 더 잘한 것이다.

결혼 여부는 그 자체로 중립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형편에서 유익한 쪽을 택해야 한다.

6. 과부의 재혼에 대하여39~40절

39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남편이 죽으면 재혼은 자유이나 주 안에서만 하라

바울은 이 장 내내 혼인에 관한 여러 질문을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과부의 재혼을 다룬다. 먼저, 첫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재혼할 수 없다. 예외는 남편의 간음으로 법적으로 이혼했거나, 믿지 않는 남편이 스스로 떠난 경우뿐이다.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와 재혼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주 안에서만'은 이교도만 피하라는 말이 아니다. 세례를 받고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지만 참 믿음에 어긋난 사람도 피하라는 뜻이다. 저주받을 신념을 품은 자, 속되게 사는 자, 우상숭배하듯 예배하는 자, 이단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 사람과 재혼하는 것도 주 안에서 시집가는 것이 아니다.

  • 주 안에서만불신자뿐 아니라 참 믿음에서 먼 명목상 신자와의 재혼도 피하라는 뜻
40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과부는 그냥 지냄이 더 복되다, 나도 성령을 받았다

정욕 때문에 음행에 빠질 염려가 없고, 남편 없이도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과부라면 혼자 지내는 편이 더 복되다는 것이 바울의 생각이다.

그런 과부는 더 거룩하게 살며 천국 길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다. 또 세상 염려와 산만함을 피하고,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데 더 마음을 쏟을 수 있어 복되다.

끝으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내 말과 다르게 가르치는 너희 교사들만 성령을 받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아 말하고 있음을 생각해 달라.

복습 문제

고린도 교인들이 혼인에 대해 바울에게 물은 것은 혼인이 적법한가 하는 것이었는가?
아니다. 혼인을 금하는 가르침은 그렇게 일찍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가 환난에 처한 때에 혼인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물었다. 바울의 '좋다'는 환난 중 곤란을 덜고 하나님을 더 자유롭게 섬길 수 있다는 유익을 뜻할 뿐이다.
14절에서 믿는 부모의 자녀가 '거룩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속사람이 새로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유대 민족을 '거룩한 민족'이라 부르듯 상대적으로 거룩하다는 뜻이다. 곧 그 자녀가 교회와 은혜 언약 안에 있고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15절에서 풀은 믿는 배우자가 어떤 경우에 혼인의 매임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보는가?
믿지 않는 배우자가 스스로 떠나 혼인의 연합을 깨뜨린 경우다. 돌아오게 하려고 적절한 수단을 다 쓰고 충분히 기다렸는데도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특히 신앙에 대한 적개심으로 떠났다면, 남은 성도는 자유롭다. 다만 성도 쪽에서 간음 외의 이유로 배우자를 버릴 수는 없다.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7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