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고린도전서 주석 · 매튜 풀

1장 십자가의 지혜와 교회의 하나 됨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고린도전서 1장 1~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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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사람과 지혜를 자랑하며 갈라진 교회는 무엇을 붙들고, 누구를 자랑해야 하는가?

  •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끝까지 지키신다고 확신시킨다.
  • 고린도의 분쟁은 교리 문제가 아니었다. 사역자를 두고 편을 가른 것이고, 바울은 그리스도는 나뉠 수 없다고 책망한다.
  • 십자가의 복음은 세상 눈에는 어리석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다.
  • 하나님은 약하고 천한 자를 택하신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지혜·의·거룩함·속량으로 주셔서 오직 주 안에서만 자랑하게 하신다.

1.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문안1~3절

1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하나님의 뜻으로 직접 부름받은 사도 바울

우리는 보통 편지 끝에 이름을 쓴다. 바울의 서신은 맨 앞에 이름을 둔다(살후 3:17). 이를 근거로 어떤 이들은 이름이 없는 히브리서가 바울의 글이 아니라고 본다. 다른 이들은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품은 앙심 때문에 이름을 감추었다고 본다.

그는 사울로도 불렸다. 두 이름을 함께 썼는지, 회심 뒤나 로마 시민이 된 뒤 바울만 썼는지는 따질 가치가 없는 문제라고 풀은 말한다. 그는 다소 시민이요 베냐민 지파의 순수한 유대인이었다. 가말리엘 문하의 바리새인이었고, 로마 시민이었으며, 천막 만드는 일로 생업을 삼았다.

율법에 대한 열심 때문에 스데반의 죽음을 옳게 여겼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회심했다. 처음 열두 사도에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직접 부름을 받았다(행 26:12-19).

'하나님의 뜻을 따라'는 하늘에서 온 특별한 계시로 사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스스로 뛰어든 것이 아니다. 다른 사역자처럼 사람을 거쳐 부름받은 것도 아니다. 함께 이름을 올린 소스데네는 회당장이었다가 회심한 사람이다(행 18:17). 바울은 그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뜻을 따라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직접 부름받고 보냄받았다는 뜻
함께 볼 말씀살후 3:17 · 행 22:3 · 행 26:12-19 · 행 18:17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와 각처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한 몸으로 연합해 교제한다. 고린도는 지협으로 헬라 본토와 이어진 덕에 헬라 최대의 시장이 되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건너와 복음을 전했고, 회당장 그리스보와 많은 이들이 믿었다(행 18:8). 이 서신은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 때 쓴 것으로 보인다(행 20:31; 고전 16:8).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는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복음으로 이교도에게서 구별되어 믿음을 고백한 자들이다(행 15:9). 다른 하나는 참으로 중생한 자들이다. 둘 다 성도라 불린다. 앞의 사람들은 겉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뜻에서, 뒤의 사람들은 성령으로 속까지 거룩해졌다는 뜻에서 그렇다. 바울은 특히 뒤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신앙을 고백한 모든 이에게 이 편지를 썼고, 아가야 각처의 신자들도 대상에 넣었다.

'그들과 우리의 주'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는 모두의 공통된 주이시고, 기도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만 복음 교회를 이룬다. 그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은 복음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

  • 성도겉으로 구별된 고백자와 속으로 거룩해진 중생자 모두를 가리킬 수 있는 말
함께 볼 말씀행 18:8 · 행 15:9 · 행 20:31 · 고전 16:8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버지와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바울 서신에 공통된 인사다. 디모데전후서에는 긍휼이 더해져 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사랑이다. 평강은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 또는 형제 사랑과 연합이다(롬 1:7 참조). 바울은 가장 큰 영적 복인 이 둘이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와 주 예수께로부터 오기를 빈다.

  • 은혜값없이 거저 주시는 사랑
  • 평강하나님과의 화목, 또는 형제 사랑과 연합
함께 볼 말씀딤전 1:2 · 딤후 1:2 · 롬 1:7

2. 그들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4~9절

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미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더 주시기를 구함

앞의 인사를 은혜가 없어서 빈 말로 오해하지 않게 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받은 은혜를 먼저 감사한다.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아 더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더 받을 수 있고 더 받아야 한다. 그래서 감사와 기원이 함께 간다.

그리스도는 믿음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다. 은혜의 시작과 자람과 온전함이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은혜는 사랑이신 아버지께로부터 흘러나오지만,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온다.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5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모든 언변과 지식에 풍족하게 된 교회

바울은 영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온갖 은혜와 좋은 은사를 뜻한다. 현세의 것으로 넓혀서는 안 된다. '풍성함'이라는 은유는 에베소서에서도 쓰인다(엡 1:7; 3:8).

'언변'으로 옮긴 말은 '모든 말씀'으로도 옮길 수 있다. 말씀으로 보면 바울과 아볼로가 전한 복음의 가르침이다. 언변으로 보면 받은 지식을 기도와 영적 대화에서 잘 표현하는 능력이다.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남에게 유익을 끼친다.

어떤 이들은 '지식'을 예언의 은사로 본다. 풀은 복음의 신비와 하나님의 깊은 일을 깨닫게 하신 것으로 보는 편이 낫다고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비추어 알게 하시고, 그 지식을 잘 전하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

  • 모든 일현세의 것이 아니라 영적 은혜와 은사 전부
함께 볼 말씀엡 1:7 · 엡 3:8
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증거인 복음이 그들 가운데 견고해짐

'그리스도의 증거'는 복음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에 대해 증언하신 것과 사도들이 그분에 대해 증언한 것을 담고 있다. 복음은 하나님의 증거, 주의 증거로도 불린다(고전 2:1; 딤후 1:8).

어떤 이들은 이것을 성령의 은사로 본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증인이시기 때문이다(요일 5:8). 다른 이들은 사도의 이적으로 확증된 것으로 본다. 풀은 바울이 앞 절의 풍성한 지식과 언변 때문에 복음이 확증되었다고 말한다고 본다. 그 지식이 제대로 전해져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에게 유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증거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증언을 담은 복음
함께 볼 말씀고전 2:1 · 딤후 1:8 · 요일 5:8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은사에 부족함 없이 주의 재림을 기다림

각 사람이 모든 은사를 다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저마다 받은 은사가 모여 교회 전체에 은사가 갖추어졌다는 뜻이다(고전 12:7-8). 은사가 완벽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른 교회에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이 심판하러 다시 오실 주의 날을 기다린다고 말한 것은 격려다. 지금까지 해 온 대로 계속하라는 뜻이다.

  • 나타나심심판하러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
함께 볼 말씀고전 12:7-8
8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주께서 끝까지 책망할 것 없는 자로 세우심

견고하게 하시는 분은 앞의 주 예수일 수도 있고, 9절의 미쁘신 하나님일 수도 있다. 그분이 그들 안의 은혜를 끝까지 붙드신다.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넘어지더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본분을 다하게 하신다.

그 결과 그들은 주의 날에 책망할 것 없는 자로 나타난다. 주께서는 그들을 마치 죄지은 적 없는 자처럼 받아 주신다. 이로써 자신이 믿음을 완성하시는 분임을 스스로 증명하신다.

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아들과 교제하도록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심

미쁘심은 참된 것만 말씀하시고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뜻이다. 곧 믿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주요 속성이다(고전 10:13; 살전 5:24).

바울은 믿는 자를 끝까지 지키신다는 약속과 연결해 이 속성을 상기시킨다. 이 약속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택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신 자들의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은혜의 자리로 부르셨다. 미쁘신 분이므로 시작하신 은혜를 중간에 버리고 떠나지 않으신다. 이것이 8절 확신의 또 하나의 근거다.

그리스도와 교제한다는 것은 그분과 하나 되고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날마다 성령으로 그분의 은혜를 공급받으며 산다는 것이다(요일 1:3).

  • 미쁘심참된 것만 말하고 말한 것을 지키심, 곧 믿을 만하심
  • 교제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성령으로 그 은혜를 날마다 받으며 사는 것
함께 볼 말씀고전 10:13 · 살전 5:24 · 요일 1:3

3. 하나 되라는 권면10절

10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같은 말과 마음과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위로, 그분의 뜻에 따라 권한다는 뜻이다. 또는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사랑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서로 화목하라고 자주 권하셨으니, 그분을 사랑한다면 들어야 한다.

같은 말을 하라는 것은 교리에서 하나가 되라는 뜻이다. 분쟁이 없게 하라는 것은 정서와 견해에서 나뉘지 말라는 뜻이다. 마지막 구절은 이 둘을 다시 강조한다.

마음의 하나 됨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든 민족을 넘어 지켜야 할 필수 의무다. 정욕이 막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 기본 진리에서의 하나 됨은 교회가 이미 상당히 이루었다. 그러나 세부 명제까지 모두 일치하는 것은 힘써야 하되 기대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모든 이에게 같은 은혜의 방편과 같은 역량을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 파당과 분쟁에 대한 책망11~16절

11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글로에의 집 사람에게서 분쟁 소식을 들음

바울은 이 편지를 쓴 한 이유와 앞 절에서 간곡히 권한 이유를 밝힌다. 글로에 집안사람에게서 들은 소식 때문이다. 글로에는 지명이 아니다. 고린도에 살던 한 집안 가장의 이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분쟁이 무엇이었는지는 다음 절부터 말한다.

12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바울·아볼로·게바·그리스도로 갈라선 파당

'각각'은 글자대로는 모두를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수나 몇몇을 뜻한다. 고전 14:26도 그렇다. 그러니 히 2:9의 '모든 사람'만 붙잡고 만인구원론을 증명하려는 자들은 더 나은 본문을 찾아야 한다.

이 분쟁은 신앙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를 더 존경하느냐로 갈라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이는 바울로, 어떤 이는 아볼로나 베드로로 회심시키셨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세 사람의 은사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행 18:24, 28).

신자는 어떤 사역자를 더 좋아할 수 있다. 하나님이 더 높이시는 사역자를 더 존경하는 것도 옳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다른 사역자를 멸시해서는 안 된다. 가르침과 행실로 부르심에 걸맞게 사는 모든 사역자에게 합당한 공경을 드려야 한다.

  • 각각글자로는 '모두'지만 여기서는 '다수·몇몇'
함께 볼 말씀고전 14:26 · 히 2:9 · 행 18:24 · 행 18:28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그리스도는 나뉠 수 없다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분도, 너희를 구원하신 분도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다. 세례도 그분 이름으로 받았다. 베드로도 바울도 자기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머리가 하나뿐인데 몸이 나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4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 세례 주지 않음을 감사

그리스보가 세례받은 일은 행 18:8에 나온다. 그는 회당장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이유는 다음 절에서 말한다.

함께 볼 말씀행 18:8
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나님의 섭리로 바울은 몇 사람에게만 세례를 주었다. 그래서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것처럼 말하고 다닐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다. 바울은 이 점을 감사한다.

16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스데바나 집도 기억해 덧붙임

14절을 말한 뒤 스데바나 집에도 세례를 준 일이 생각나 덧붙인 것이다. 이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였다(고전 16:15).

'그 외에는 알지 못한다'는 말은 고린도에서 세례를 준 다른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러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다.

함께 볼 말씀고전 16:15

5. 세상에는 어리석으나 믿는 자에게는 능력인 복음17~25절

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말의 지혜가 아니라 십자가로 복음을 전함

세례는 바울의 주된 일도, 주께서 그를 보내신 주된 목적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리스보나 가이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세례는 대개 다른 사역자들이 베풀었을 것이다. 베드로 혼자 세례를 주었다면 하루에 삼천 명이 더해진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행 2:41).

'말의 지혜'는 수사학과 논리학으로 복음을 꾸미는 것이다. 또는 이성적 논거로 복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십자가 교훈의 권세가 사라진다. 계시에 대한 지적 동의만 남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믿음인 것처럼 되어 버린다.

하나님의 뜻을 전할 때 품위 있는 표현은 필요하다. 그러나 겉치레 말이나 철학적 사변으로 계시의 권세를 가려서는 안 된다. 바울은 이로써 모든 신실한 사역자가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 말의 지혜수사·논리로 복음을 꾸미거나 이성적 논거로 증명하려는 방식
함께 볼 말씀행 2:41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는 멸망자에게 미련, 구원받는 자에게 능력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단순하게 전하면 어떤 이들에게는 어리석게 들린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할 자들이다. 또는 적어도 지금 멸망의 길에 있는 자들이다.

영원히 구원받을 자, 또는 지금 구원의 길에 있는 자에게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이 복음을 구원의 능력이 흐르는 통로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롬 1:16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 십자가의 도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단순히 전하는 말씀
함께 볼 말씀롬 1:16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지혜자의 지혜를 멸하신다

이사야가 당대 유대인 지혜자에게 한 말은 이방 지혜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지혜를 멸하시고 그들의 명철을 우매하게 만드신다.

그러니 세상 철학자들이 복음을 어리석다고 여기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세상 지혜를 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통상적인 섭리다.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지혜자·서기관·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바울은 사 33:18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끌어온다. 지혜 있는 자는 이방의 지혜자다. 선비는 율법에 정통한 유대인 서기관이다. 변론가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며 논쟁하는 자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구원의 길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또 바울은 묻는다. 사역자들이 십자가를 전해 사람들을 죄에서 돌이키는 동안, 그들은 철학과 도덕 가르침으로 무엇을 이루었는가?

하나님은 영혼 구원에서 세상 지혜를 헛되고 무익하게 하셨다. 십자가를 전하는 일에 세상의 박사나 위대한 랍비를 한 사람도 택하지 않으셨다. 그들에게서 배울 것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으면 영혼에 아무 쓸모가 없음을 깨우치신다.

  • 선비율법에 정통한 유대인 서기관
함께 볼 말씀사 33:18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심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견해가 갈린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로 보아 '지혜이신 분이 오셔서 전하실 때'로 읽는다. 어떤 이들은 1:24와 2:7을 근거로 복음으로 본다. 풀은 하나님이 지혜로운 목적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로 본다.

중생하지 않은 세상은 이해력과 추론 능력에 결함이 있다. 그래서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것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세상이 미련하게 여기는 전도를 구원의 방편으로 정하셨다. 그리고 그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 하나님의 지혜풀은 세상을 지혜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봄
함께 볼 말씀고전 1:24 · 고전 2:7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유대인은 표적을, 헬라인은 지혜를 구함

유대인에게는 참된 계시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았음을 확증할 이적만 요구했다(마 12:38; 요 4:48). 표적 없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헬라인은 이방인 전체를 대표한다. 특히 학식 있는 자들은 이성적 인과 논증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려 했다. 그렇게 증명되지 않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멸시했다.

  • 헬라인이방인 전체를 대표하는 말, 특히 학식 있는 자들
함께 볼 말씀마 12:38 · 요 4:48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유대인에 걸림, 이방인에 미련

사역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세상의 구주라고 전한다. 그분은 자기 죄가 아니라 자기 백성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유대인에게 이것은 걸림돌이다. 그들은 이방의 압제에서 건져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메시야를 기대했다. 또 자기들이 못 박은 이를 구주로 믿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가장 박식한 헬라인들은 영원히 찬송받으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여겼다.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그리스도는 능력이요 지혜

감사하게도 모든 유대인이 걸려 넘어진 것도, 모든 헬라인이 미련하게 여긴 것도 아니다.

복음의 외적 부르심만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이고 실효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민족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와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로 드러났다.

  • 부르심을 받은 자외적 부르심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실효적 부르심을 받은 자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하심이 사람보다 낫다

세상이 미련하다고 부르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있다. 그중 가장 하찮아 보이는 것도 사람이 생각해 낸 가장 지혜로운 것보다 무한히 지혜롭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편은 사람 눈에 가장 강해 보이는 방편보다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데 더 강하다.

그러므로 전도가 사람을 회심시키는 힘은 하나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분이 정하신 거룩한 방편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이 방편은 보통 충성된 일꾼의 사역과 함께 간다. 그 일꾼은 사람에게 부름받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준비된 사람이다.

6. 자랑을 없애시려 약한 자를 부르시는 하나님26~29절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지혜자·권세자가 많지 않다

하나님이 약해 보이는 방편으로 큰일을 하신다는 증거를 찾는가? 멀리 갈 것 없이 너희 자신을 보라. 고린도 교회는 이름난 지혜자나 문벌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회당장 그리스보와 소스데네처럼 그런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지체 대부분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미련한 자·약한 자를 택해 지혜자·강자를 부끄럽게

하나님은 바로 그들 가운데서 세상이 미련하게 여기는 이들을 택하셔서 지혜자를 부끄럽게 하셨다. 약하게 여겨지는 이들을 택하셔서 강하다고 이름난 자들을 당혹스럽게 하셨다.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없는 것들을 택해 있는 것들을 폐하심

하나님은 세상 눈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택하신다. 그리고 세상에서 크게 존경받는 자들을 없는 것처럼 만드신다.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만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이렇게 택하셔야 그분이 유명한 자를 고르신다고 말할 사람이 없어진다. 그리고 모든 은혜가 값없이 거저 주어진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게 된다.

7. 우리의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속량이신 그리스도30~31절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혜·의·거룩함·속량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심겨졌다.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말은 창조되었다는 뜻만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받고 거듭났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주된 방편이시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영광의 광채이시다(골 1:15; 히 1:3; 고후 4:6). 그분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 14:9).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를 폐하셨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에게 지혜가 없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그들의 지혜가 되셨다. 원인으로 보면 그리스도는 지혜의 원천이시다. 내용으로 보면 지혜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과 교제하는 데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자기 의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들의 의가 되셨다(롬 8:3-4). 그리스도가 거룩함이 되셨기에 믿는 자는 성령으로 새로워지고 성결해진다.

'구원함'은 속량을 뜻한다. 롬 8:23이 말하는 몸의 속량, 곧 몸의 부활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다(요 11:25).

  • 속량함개역개정의 '구원함', 몸의 속량 곧 몸의 부활
  • 지혜그리스도가 그 원천이요, 그분을 알고 교제하는 것이 그 내용
함께 볼 말씀골 1:15 · 롬 8:3-4 · 롬 8:23 · 요 11:25
31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시는 목적이 있다. 사람이 자기 지혜나 의나 거룩함이나 속량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주 안에서만 자랑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사람에게 지혜나 의나 거룩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두 받은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복습 문제

풀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무엇 때문에 생겼다고 보는가?
신앙(교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회심에 쓰인 사역자나 사역자들의 은사가 달라서, 누구를 더 존경하느냐로 갈라진 것이다(12절).
바울이 '말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수사나 이성적 논증으로 꾸미면 십자가 교훈의 권세가 사라진다. 계시에 대한 지적 동의만 남고, 그것이 참 믿음인 것처럼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17절).
30절의 '구원함(속량함)'은 풀에 따르면 무엇을 가리키는가?
롬 8:23이 말하는 몸의 속량, 곧 몸의 부활이다.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다(요 11:25).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1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