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은사와 행위도 사랑이 없으면 왜 아무것도 아닌가?
- 아무리 뛰어난 은사와 희생도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에서 나오지 않으면 구원에 아무 유익이 없다.
- 참된 이웃 사랑은 인도주의나 공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서만 흘러나온다.
- 사랑에는 성도가 자기를 살필 수 있는 뚜렷한 특징들이 있다.
- 예언·방언·지식과 믿음·소망은 그치지만,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
1. 모든 은사가 귀해도 사랑 없으면 헛되다1~3절
최고의 말재주도 사랑이 없으면 소음뿐이다
12장 끝에서 바울은 좋은 은사를 두고 다투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그 길을 밝힌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드러낼지 고민하고 힘쓰는 사랑의 길이다.
'사람의 방언'은 방언의 은사로 세상 모든 민족의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천사의 말'을 두고 풀은 이렇게 설명한다. 천사는 혀가 없어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서로 뜻을 나누는 방식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것을 마음에 직접 새기는 감화 방식으로 본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의 마음을 은밀히 감동시켜 뜻을 알리시곤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으신 비밀이다. 그러니 모르는 것을 받아들이고 더 캐묻지 않는 것이 옳다.
풀은 '천사의 말'을 가장 탁월한 표현 방식으로 보는 해석에 동의한다. 시 78:24에서 만나를 '천사들의 양식'이라 부른다. 천사는 먹을 필요가 없으니 이 말은 하늘에 속한 가장 좋은 양식이라는 뜻이다. '천사의 말'도 같은 뜻이다. 그래서 이 구절은 '내 생각을 가장 뛰어나고 다채롭게 전할 수 있다 해도'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 사랑과 계명 순종에서 나오는 이웃 사랑이 없으면, 요란한 소리만 내는 쇠붙이일 뿐이다. 구원에 아무 쓸모가 없다. 고린도에는 방언을 자랑하며 형제를 업신여기는 이들이 있었다. 반대로 방언이 없어 자기가 교회 지체가 아닐까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울은 가장 훌륭한 방언도 사랑 없이는 의미 없는 소음이라고 선언한다.
- 사랑(아가펜)흠정역은 'charity'로 옮겼지만 'love'가 낫다. 자선은 인도주의나 공로 의식으로도 할 수 있으나, 참된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서만 나온다.
- 천사의 말자기 생각을 가장 탁월하게 표현하는 방식.
예언·지식·이적의 믿음도 사랑 없으면 무익하다
예언의 은사는 초대 교회에 주신 특별한 능력이다. 장래 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거나, 이미 성경에 계시된 뜻을 더 풀어 적용하는 능력이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든 사람에 관한 것이든, 감추어진 신비의 가장 높은 지식까지 다 가진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믿음'은 사람을 의롭게 하고 구원하는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자연 질서를 넘는 이적을 베푸시리라 굳게 확신하는 믿음이다. 바울은 마 17:20의 주님 말씀을 넌지시 끌어온다.
구원하는 믿음을 움직이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이 없으면 가장 좋은 은사를 마음껏 펼쳐도 영원한 구원에는 아무 유익이 없다. 결국 멸망에 이를 수 있다.
-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의롭게 하는 믿음이 아니라 이적을 확신하는 믿음.
전 재산 구제와 순교도 사랑 없으면 유익이 없다
은사에 이어 이제 가장 훌륭해 보이는 행위와 사랑을 견준다. 첫째는 사람을 힘껏 섬기는 일이다. 소유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쏟아 나도 가난해질 만큼 구제하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을 온 힘으로 섬기는 듯한 일이다.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불타 죽을 줄 알면서도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스스로 몸을 내주는 것이다.
그 동기와 근거가 마음에 뿌리내린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면, 그 모든 일과 고난과 죽음은 영원한 구원에 아무 유익이 없다.
풀은 세 가지 교훈을 끌어낸다. (1) 후한 구제도 구원의 은혜라는 참된 뿌리에서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한다. (2) 신앙을 위한 큰 고난이나 참혹한 죽음도 그 뿌리 없이 나올 수 있다. (3) 하나님 사랑과 순종하려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행위나 고난은 천국에 이르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믿음과 사랑이 뿌리일 때에만 행위가 참으로 선하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
2. 사랑의 특징과 영원함에 대한 찬가4~12절
사랑은 참고 선을 행하며 시기·자랑·교만이 없다
'그 사랑이 대체 무엇이며, 내게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려고 바울은 참된 사랑의 열세 가지 특징을 든다. 여기서 '사랑'은 사랑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도 있고, 사랑이라는 성품 자체로 볼 수도 있다.
오래 참음: 나를 건드리는 형제에게 바로 화내지 않는다. 서둘러 앙갚음하지 않고 노를 억누른다. 온유: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고 기회마다 유익을 끼친다. 남을 물어뜯거나 무관심하게 차갑게 구는 것은 사랑과 정반대다.
시기하지 않음: 남이 나보다 높아지고 형통해도, 그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보아도 기뻐한다. 남 잘되는 것에 속상해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참된 뿌리가 없다. 자랑하지 않음: 잘났다고 우쭐대지 않는다. 자기 영광을 위해 약삭빠르게 굴거나 옳지 않은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교만하지 않음: 남보다 낫다고 여겨 자기를 높이지 않는다.
사랑은 무례·이기심·혈기·악한 의심이 없다
무례히 행하지 않음: 누가 보아도 추하고 비열한 짓을 형제에게 하지 않는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음: 자기에게 이로운 것만 고르지 않고 형제의 유익도 헤아린다.
성내지 않음: 혈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혈기에 휘둘려 사소한 일로 형제에게 불같이 달려들지 않는다. 해를 당해도 감당할 줄 알기에 되갚으려 하지 않고 묵묵히 견딘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음'에는 두 갈래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이웃을 해칠 생각을 아예 품지 않는다는 뜻으로 본다. 풀은 이웃이 나를 해치려 한다고 경솔하게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이 더 낫다고 본다. 그러므로 형제에 관한 나쁜 소문을 쉽게 믿는 것도 사랑의 법을 어기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형제의 죄가 분명해지면 책망한다. 그러나 드러나기 전에는 의심하거나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
사랑은 남의 타락이 아니라 진리를 기뻐한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남이 죄에 빠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세상에 진리가 널리 행해지는 것을 기뻐한다. 또는 어떤 사람의 진실함과 무죄함과 의로움이 드러나는 것을 기뻐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사랑은 모든 해를 참고 좋게 믿고 바라며 견딘다
사랑은 자기가 당하는 모든 해를 참는다. 형제에 대해서는 좋은 쪽으로 믿는다. 모든 일이 잘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것은 망상에 빠진 낙관이 아니다. 신자가 감당해야 할 온갖 해악도 끝까지 견딘다.
솔로몬도 같은 뜻으로 사랑이 모든 허물을 가린다고 말했다(잠 10:12).
사랑은 내세까지 남지만 은사들은 그친다
바울은 또 다른 근거로 사랑을 높인다. 사랑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을 내세까지 가지고 가며, 거기서도 사랑은 쓸모가 있다. 내세에는 예언도 방언도 없지만,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계속된다.
이 점은 이 장의 사랑이 현세의 가난한 이를 돕는 '자선'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지식'을 두고 해석이 셋으로 갈린다. 어떤 이들은 설교로 교회에 지식을 전하는 일로 본다. 어떤 이들은 지금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해 얻는 지식으로 본다. 또 어떤 이들은 우리의 지식과 앎의 방식이 불완전하다는 뜻으로 본다. 풀은 이어지는 절들이 첫째와 둘째 견해를 지지하는 듯하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셋째 견해도 옳다고 한다.
- 떨어지지 아니하되사랑은 그치지 않고 내세까지 이어진다.
지금 우리는 조금 알고 조금 전할 뿐이다
사람의 일에서도 아는 것은 적고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의 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온전한 앎은 부활과 심판의 날에야 드러난다(요 14:20).
예언으로도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전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지식이 짧고 불완전하니, 남에게 전하는 것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천국에서 부분적 지식은 온전함에 삼켜진다
천국에 가면 더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그때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지식은 완전한 지식에 삼켜진다.
현세는 어린아이, 내세는 장성한 사람과 같다
바울은 자기를 예로 든다. 현세 신자의 상태를 어린아이에, 내세의 상태를 어른에 비긴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을 불완전하게 알아 그 수준대로 말한다. 자라면 가르침과 경험과 관찰로 얻은 지식에 맞게 말한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은 신령한 일에 대해 보잘것없는 지식만 있어 그만큼만 말한다. 천국에서는 더 온전한 지식을 얻고, 그에 따라 말하게 된다.
지금은 거울처럼 흐릿, 그때는 얼굴을 맞대듯 안다
현세와 내세의 지식 비교가 이어진다. 거울로 보면 흐리고 불완전한 상만 보인다. 그처럼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긴가민가하게 안다. 지식이 적고 조각나 있어 그것으로 무엇을 하기도 버겁다.
천국에서는 두 사람이 마주 보듯 온전한 지식을 얻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만큼 완벽하지는 않다. 그래도 온전하다 할 만큼 하나님을 알게 된다.
- 거울희미하고 불완전한 상만 보여 주는 현세 지식의 비유.
3. 믿음과 소망보다 사랑이 크다13절
믿음·소망·사랑 중 영원히 남는 사랑이 으뜸이다
현세에서 세 은혜가 일한다. 믿음은 눈과 이성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증언한다. 소망은 약속된 것들을 받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게 한다. 사랑은 그것들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 뜻에 순종하게 한다.
유익의 크기와 지속성으로 보면 으뜸은 사랑이다. '항상 있을 것'이라는 말도 주로 사랑을 두고 한 듯하다. 하나님을 뵐 때 믿음은 그친다. 예비하신 것을 영광 중에 받을 때 소망도 그친다. 사랑의 어떤 행위는 그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랑은 영원하다.
- 제일유익함과 지속성에서 사랑이 가장 크다.
복습 문제
풀은 왜 '아가펜'을 '자선'보다 '사랑'으로 옮기는 것이 낫다고 하는가?
2절의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13절에서 믿음과 소망과 달리 사랑만 영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매튜 풀 『청교도성경주석: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의 고린도전서 13장 해설을 절별로 간추려 우리말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개역개정.
Claude 정리 · 원문 대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