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 왜 꼭 "예수님 이름으로" 해야 하고, 혼자 기도하면 되지 왜 교회에 모여 기도해야 할까?
칼빈은 먼저 "자격 없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라고 묻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답한다(17-20절). 그리스도는 구약 대제사장이 그림자로 보여 준 유일하고 영원한 중보자다. 성도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도 그분의 중보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칼빈은 죽은 성인에게 중보를 구하던 당시 로마 교회의 관행을 반박한다. 반대자들이 내세운 성경 해석을 하나하나 따지고, 성경에 근거가 없으며 믿음은 말씀에서 나온다는 점으로 결론을 낸다(21-27절). 이어 기도를 간구와 감사로 나누어 늘 기도하라고 권한다. 그다음 공적 기도가 왜 필요한지, 무엇이 위험한지(중언부언·과시)를 말하고, 거룩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신자 자신이라고 밝힌다(28-30절). 끝으로 말과 노래는 마음에서 나올 때만 가치가 있고, 공적 기도는 모두가 알아듣는 말로 드려야 한다고 마무리한다(31-33절).
1. 절별 정리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심 · 17-20절
17.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함
자기 이름을 내걸고 하나님 앞에 설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 절망에서 우리를 단번에 풀어 주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분은 우리 편에서 변호하는 '대언자'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는 '중보자'다. 그리스도가 사이에 들어오시자, 떨며 피할 수밖에 없던 위엄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로 바뀌었다. 여기서 칼빈은 '기도의 법칙'을 세운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며,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할 때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응답의 소망을 그리스도께 두지 않으면 기도의 특권을 누릴 수 없다(앞에서 다룬 '믿음'과 바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반대로 다른 이름을 내세워 기도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헛것으로 만드는 셈이고, 그런 기도에는 응답의 약속이 없다.
- 자기 이름으로 설 자격 있는 사람은 없다
- 그리스도는 대언자이자 중보자로 주어졌다
- 위엄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로 바뀌었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할 때 응답 약속
- 다른 이름의 기도에는 약속이 없다
18.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에 의지함
칼빈은 '시대의 차이'에 주목한다. 예수님은 승천을 앞두고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라며, 승천 뒤에는 자신의 간구에 기대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구약 사람들이 중보자 없이 기도했다는 뜻은 아니다. 대제사장은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을 어깨와 가슴에 달고 홀로 성소에 들어갔고, 백성은 바깥뜰에서 기도했다. 이 장면은 두 가지를 가르친다. 첫째,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으므로 우리를 어깨에 메고 가슴에 품어 들어갈 중보자가 필요하다. 둘째, 우리 기도는 그 중보자의 피로 씻겨야 한다. 그래서 다윗도 제물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 '그날에'는 무엇이 새롭다는 말인가? 제자들이 중보자를 몰랐다는 뜻이 아니다. 승천 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더 분명하게 대언하신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은혜가 지금 더 밝게 드러났으니, 이것을 두 팔로 끌어안지 않으면 우리는 더 핑계할 수 없다.
- 구약 성도도 중보자 덕에 응답받았다
- 대제사장 의식은 중보자의 필요를 보여 줌
- 우리 기도는 중보자의 피로 씻겨야 한다
- 승천 후 그리스도의 대언이 더 분명해졌다
- 더 밝아진 은혜를 품지 않으면 핑계 없다
19.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중보자이심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자 통로다. 이 길을 버린 사람에게 하나님의 보좌는 진노와 심판일 뿐이다.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목자와 머리로 세우고 '인'(도장)을 치셨다. 그러므로 그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이 친 도장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서로를 위한 기도는 그리스도의 자리를 침범하는가? 칼빈은 아니라고 답한다. 성도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한 몸 지체의 사랑에서 나오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중보 없이는 어떤 기도도 소용없다는 증거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 기도할 수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이 은혜를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데 쓴다면 뻔뻔한 일이고, 자기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교회의 기도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다
- 그를 떠남은 하나님의 도장을 훼손함
- 서로를 위한 기도는 그의 중보에 기댄다
- 서로 기도는 그리스도의 중보를 해치지 않음
- 서로 기도하게 하신 은혜를 악용 말라
20.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중보자이심
스콜라 신학의 '궤변가'들은 그리스도는 '구속의 중보자'이고 성도들은 '기도의 중보자'라고 나누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아주 조금만 떼어 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중보를 과거 한때의 일로 만들고, 계속되는 중보는 그 종들에게 넘기는 셈이다. 칼빈은 성경으로 반박한다. 요한일서 2장 1절은 지금도 이어지는 대언을 말하고, 로마서 8장 34절은 하나님 우편에서 지금 간구하심을 말한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한 바로 뒤에 "중보자도 한 분"이라고 덧붙였으니, 이것은 기도를 두고 한 말이다. 바울 자신도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지만 자신을 중보자로 세우지 않았다. 만일 바울이 중보자라면 모든 사도가 중보자가 되고, '한 중보자', '한 몸'이라는 그의 말이 무너진다. 아우구스티누스도 같은 입장이었다. 다만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무릎 꿇고 빈다고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의 죽음의 능력이 하늘 성소에서 계속 효력을 내고, 그가 땅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를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다.
- '구속'과 '기도'의 중보자 구분은 궤변
- 그리스도는 지금도 계속 대언하신다
- "중보자는 한 분"은 기도 문맥의 말이다
- 바울도 기도를 부탁했지 중보자가 아니었다
- 그의 죽음의 능력이 영원한 중보가 된다
성인들의 중보기도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에 대한 반론 · 21-27절
21. 성인들의 중보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그리스도를 더럽힘
이미 죽어 그리스도 안에 사는 성인들이 혹시 기도한다 해도, 그들 역시 유일한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기도한다. 그런데 칼빈 당시 로마 교회가 퍼진 곳에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거의 제쳐 두고 성인들의 공로와 이름을 내세워 하나님께 빌었다. 성경에 근거가 없으니 칼빈은 묻는다. 도대체 누가 이것을 알려 주었는가? 그는 이 관행이 '그리스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스도는 너무 엄하다'는 불안에서 나왔다고 진단한다. 그 결과 그리스도만의 중보자 직분을 빼앗고, 그의 탄생과 십자가의 영광을 흐리게 된다. 또 형제로 오신 그리스도를 부정하니, 그를 통해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의 자비까지 버리게 된다. "공기도 끝에 '우리 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를 붙인다"는 반론도 소용없다. 죽은 자들의 공로를 그리스도의 중보와 섞는 것 자체가 그의 중보를 더럽힌다. 게다가 실제 연도와 찬가에서는 그리스도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 성인이 기도한다 해도 길은 그리스도뿐
- 성인 중보는 성경에 근거가 없다
- 그리스도는 부족하다는 불안에서 나왔다
- 그리스도를 형제로 부인하면 아버지도 잃음
- 끝에 주님 이름을 붙여도 섞으면 더럽힘
22. 성인 숭배
성인 중보를 생각하기 시작하자 미신은 멈추지 않았다. 성인마다 맡은 분야를 정해 일마다 다른 성인을 불렀고, 사람마다 자기 수호성인을 두었다. 예레미야는 성읍 수만큼 신을 세웠다고 이스라엘을 꾸짖었는데, 이제는 사람 수만큼 수호자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성인들은 오직 하나님 뜻에 마음을 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자기를 섬기는 사람만 따로 아낀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성인을 세속적으로 보는 모욕이다. 더 나아가 성인을 구원을 좌우하는 존재처럼 부르고, 바바라나 카타리나의 성상 앞에서 "우리 아버지여"를 외우고, 마리아에게 아들에게 부탁해 달라고 비는 일까지 생겼다. 칼빈은 사제들이 이익 때문에 이를 말리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고대 카르타고 공의회가 제단에서 성인에게 비는 공기도를 금했던 것을 보면,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만의 특권을 죽은 자에게 넘기는 심각한 일이다.
- 미신은 고삐가 풀리면 멈추지 않는다
- 성인마다 분야를 정하고 수호자로 섬김
- 사사로운 애정을 돌리면 성인을 모욕함
- 성인을 구원 결정자처럼 부르게 되었다
- 하나님의 특권을 죽은 자에게 넘긴 일
23. 천사들과 성인들의 역할을 혼동함
반대자들은 성경에 천사가 기도한 예가 있고, 천사가 신자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린다는 내용도 있다며 이것을 성인 중보의 근거로 삼는다. 칼빈은 천사와 죽은 성인을 섞지 말라고 답한다. 우리를 섬기고 지키고 둘러 진 치는 일은 하나님이 천사에게 맡기신 임무이지, 죽은 성인에게 맡기신 일이 아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허가 없이는 변호인이 될 수 없다. 성경이 증언하지 않는 중보 직분을 사람이 만들어 내면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예레미야 15장 1절("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은 오히려 반대 증거다. 이 말은 죽은 모세와 사무엘이 실제로 중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런 기도의 사람이 빌어도 이 백성의 죄를 넘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에스겔 14장 14절도 같다. 노아와 욥은 이미 죽었고 다니엘은 그때 살아 있던 청년이었으니, 죽은 자의 중보를 말하는 구절이 아니다. 바울도 다윗이 기도로 후손을 도왔다고 하지 않고, 자기 세대에 하나님의 뜻을 섬겼다고 말했다.
- 성도를 돌보는 임무는 천사에게 맡겨졌다
- 성경에 없는 중보 직분은 질서를 깨뜨림
- 예레미야 15:1은 죽은 모세의 침묵을 보임
- "빌어도 용서 않겠다"는 심판의 선언일 뿐
- 다윗은 당대에 하나님 뜻을 섬겼을 뿐
24. 사망한 성인들은 이 세상과 접촉이 없음
반대자들은 묻는다. "평생 경건과 사랑으로 산 사람들이 죽었다고 그 열심을 잃겠는가?" 칼빈은 성인들의 하늘 생활을 캐묻는 호기심을 경계하면서, 그들은 흔들림 없이 하나님 나라를 사모할 것이라고 답한다. 그 나라는 신자의 구원뿐 아니라 악인의 심판도 포함한다. 그들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제의 한계 안에 머문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고 쳐도, 안식을 버리고 땅의 일에 끌려 내려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부를 이유는 더더욱 없다. 산 사람끼리 서로 기도하는 데는 주님의 명령과 약속이 있고, 서로 필요와 짐을 나누며 사랑이 자란다. 죽은 사람에게는 그런 명령도 약속도 없으며, 하나님은 그들과 우리 사이에 연결점을 남기지 않으셨다. 성인들이 하나님 얼굴의 빛을 거울 삼아 땅의 일을 본다는 주장은 말씀을 떠나 하나님의 숨은 판단을 상상으로 파고드는 일이다.
- 성인들은 안식을 버리고 땅에 매이지 않음
- 산 자의 서로 기도는 명령과 약속에 근거
- 죽은 자와 우리 사이에 연결점이 없다
- '거울 이론'은 말씀을 떠난 상상이다
- 이성을 낮추고 하나님 뜻만 바라보라
25. 족장들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도 합당치 못함
반대자들은 야곱이 후손에게 자기와 아브라함·이삭의 이름이 불리게 해 달라고 한 구절(창세기 48:16)을 근거로 든다. 칼빈은 먼저 이스라엘이 조상의 이름을 부른 뜻을 살핀다. 조상들에게 도움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종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이다. "누구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말은 이사야 4장 1절처럼 그 사람의 보호 아래 산다는 뜻이고, 조상을 뿌리로 높인다는 뜻이다. 야곱도 자기 명성을 원한 게 아니라 후손이 언약을 물려받아 복을 누리기를 바랐다. 이사야 63장에서 교회는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라고 고백하며 오직 언약의 은혜에 기댔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언약을 맺고 확증하셨으니, 기도에서 그분 외에 다른 이름을 댈 이유가 없다. 칼빈은 성인을 그렇게 많이 내세우면서 교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왜 빠졌느냐고 꼬집는다. 고대 교회에는 이런 관행이 없었고, 새로 생긴 것임을 감추려 했다는 것이다. "다윗을 위하여" 긍휼을 구하는 기도(시편 132편)도 다윗 개인이 아니라 언약을, 그리고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 '예표'로서의 다윗을 가리키므로 오히려 반대자들을 반박한다.
- 조상의 이름은 언약을 기억해 달라는 뜻
- 이름으로 불림은 그 보호와 뿌리를 뜻함
- 야곱은 후손이 언약을 잇기를 바랐다
- 언약을 확증한 그리스도의 이름이면 족함
- '다윗을 위하여'는 언약과 예표를 가리킴
26. 성인들도 우리와 똑같이 기도하였음
성경에 성인들의 기도가 응답받은 기록이 많다는 점에 끌려 그들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다. 칼빈은 간단히 답한다. 그들이 응답받은 것은 그들이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론은 "그들을 통해 빌자"가 아니라 "우리도 그들처럼 기도하자"여야 한다. 야고보가 엘리야를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도 엘리야만의 특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경건한 기도가 언제나 가진 힘을 보여 주고, 우리도 따라 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다윗도 자기가 구원받은 일을 보고 의인들이 소망을 얻으리라고 했다. 반대자들이 성인 중보의 근거로 삼는 시편 32편 6절도 하나님 자비의 열매를 말할 뿐이다. 내가 받은 은혜든 남이 받은 은혜든, 은혜의 경험은 약속을 믿는 믿음을 굳게 한다. 야곱과 다윗처럼 받은 은혜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인하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다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성인이 응답받은 건 그들이 기도해서다
- 결론은 '그들처럼 우리도 기도하자'
-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
- 남이 받은 은혜도 내 믿음을 굳게 한다
-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27. 성인들의 중보기도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에 대한 마지막 반론
칼빈은 여기서 전체를 정리한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예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다른 존재에게 비는 것은 분명한 모독이다. 또 기도는 믿음에서 나와야 하고, 믿음은 말씀에 뿌리를 둔 '기도의 어머니'다. 그러니 믿음이 말씀을 떠나면 그 순간 기도도 썩는다. 성경은 기도받는 영예를 하나님께만 돌리고, 중보는 그리스도만의 일로 보여 준다. 성경은 산 자들에게 서로 기도하라고 자주 명령하지만, 죽은 자가 기도해 준다는 말은 한 군데도 없다. 야고보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기도하라"를 한데 묶은 것도 은연중에 죽은 자를 빼는 말이다. 결국 이 미신은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만족하지 못했거나 그의 대언자 직분을 부인한 불신앙에서 나왔다. 반대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자격이 없다"는 것뿐이다. 칼빈도 그 전제는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조지나 히폴리투스 같은 성인이 나서야 한다면 그리스도께 남는 일이 없게 된다고 말한다.
- 간구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 믿음은 말씀에 뿌리 둔 기도의 어머니
- 성경은 죽은 자의 중보를 말하지 않는다
- 이 미신은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
- '자격 없음'의 답은 성인 아닌 그리스도
기도의 종류: 사적인 기도와 공적인 기도 · 28-30절
28. 사적인 기도
기도는 엄밀히 말하면 구하는 것(탄원과 간구)이다. 하지만 감사와 워낙 붙어 있어서 칼빈은 둘을 함께 다룬다. 간구는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고, 감사는 받은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다. 사방의 어려움, 죄책, 끝없는 유혹 때문에 아무리 거룩한 사람도 늘 구할 이유가 있다. 또 하나님은 게으른 우리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셔서 감사할 이유도 늘 주신다. 모든 소망과 부요가 하나님께 있으니, 계획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하나님 손에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나 남을 믿고 일을 벌이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선언되어 있다. 받은 복에 침묵하는 것도, 감사가 빠진 간구도 악하다. 찬송의 제사 역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깨끗해진다. "항상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기대를 하나님께 걸고, 모든 일에 찬송하라는 뜻이다.
- 기도는 간구와 감사가 짝을 이룬다
- 끝없는 어려움이 쉼 없는 간구의 이유
- 은혜 위의 은혜가 감사의 이유다
- 감사 없는 간구, 침묵하는 복은 악하다
- 찬송도 그리스도를 통해 깨끗해진다
29. 공적인 기도의 필요성과 위험 요인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주로 개인 기도에 해당한다. 교회의 공적 기도는 쉬지 않고 할 수 없고, 교회가 합의한 질서와 시간을 따라야 한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정하는 것이며, 특별한 필요가 있으면 더 자주, 더 열심히 모일 수 있다. 예수님이 금하신 '중언부언'은 오래, 자주, 끈질기게 하는 기도가 아니다. 말을 많이 쏟아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태도와 사람에게 보이려는 과시를 말한다. 칼빈은 짧은 기도문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거나 군중 앞에서 말을 늘어놓는 당시 관행도 같은 병으로 본다. 기도의 자리는 마음이므로, 예수님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하셨다. 이 말은 다른 장소가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흩어지는 마음을 모을 고요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수님도 한적한 곳을 찾으셨지만 무리 속에서도 기도하셨다. 공적 모임의 기도를 거부하는 사람은 골방 기도도 모르는 사람이고, 골방 기도가 없는 사람의 공적 기도는 바람에 날린다. 하나님은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라 부르며 공적 기도를 존귀하게 하셨다.
- 공적 기도는 합의된 질서와 시간을 따름
- 중언부언은 말로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것
-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는 배격된다
- 골방은 마음을 모으라는 뜻이다
- 골방 기도와 공적 기도는 함께 간다
30. 교회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
하나님이 공적 기도를 명하셨으니 함께 모여 기도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 골방에서 기도한다는 핑계로 모임을 피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두세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모여 구하면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시며 공적 기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심을 보여 주셨다. 물론 겉치레가 아니라 각 사람의 속마음에서 나온 진실한 기도여야 한다. 그러나 교회 건물을 하나님이 사시는 집으로 여기거나, 건물에 신비한 거룩함이 있어 거기서 하는 기도가 더 잘 들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칼빈은 이런 생각이 여러 세기 전부터 생겼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이 참된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장소와 상관없이 영과 진리로 기도하면 된다. 옛 성전은 진리가 그림자로 가려져 있던 시대의 것이었다. 그것도 하나님을 벽 안에 가두려는 것이 아니라 참 성전을 바라보도록 훈련하려는 것이었다.
- 공적 기도를 위한 모임 장소는 필요하다
- 두세 사람의 모임 기도에도 약속이 있다
- 건물 자체에 거룩함이 있지 않다
- 신자 자신이 참된 하나님의 성전이다
- 옛 성전은 참 성전을 가리킨 그림자
기도와 노래, 그리고 언어 사용의 문제 · 31-33절
31. 기도에서 말하고, 노래하는 문제
기도 중의 목소리와 노래는 마음 깊은 감동에서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가 없다. 입술과 목구멍에서만 나오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진노를 산다. 이사야가 꾸짖은 "입술로는 공경하나 마음은 멀리 떠난" 백성이 바로 그런 모습이다. 그렇다고 칼빈이 소리 내어 기도하거나 노래하는 것을 정죄하지는 않는다. 마음에서 나온다면 오히려 강하게 권한다. 마음은 쉽게 흩어지므로 말과 노래가 마음을 하나님께 붙들어 주고, 혀는 원래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공적 기도에서 혀가 하는 중요한 일은 모두가 한 입, 한 마음, 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께 소리 낼 때 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서로 격려를 받는다.
- 마음 없는 말과 노래는 하나님을 욕되게 함
- 마음에서 나온 말과 노래는 권장된다
- 말과 노래는 흩어지는 마음을 붙든다
- 혀는 하나님 찬양을 위해 지어졌다
- 공적 기도는 한 입으로 함께 드린다
32. 교회에서 노래하는 문제
교회에서 노래하는 일은 아주 오래되었고 사도들 사이에서도 있었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은 목소리와 마음으로 함께 노래하라고 가르치고, 골로새서 3장 16절은 서로를 세우는 신령한 노래를 권한다. 다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증언에 따르면 모든 교회가 처음부터 노래한 것은 아니다. 밀라노 교회는 암브로시우스 시대, 황제 발렌티니아누스의 어머니 유스티나가 정통 신앙을 박해할 때 노래를 시작했고, 그 뒤 서방 교회들이 따랐다(그는 이 관습이 동방에서 왔다고도 했다). 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도 성찬 때 시편 찬송을 시작했는데, 힐라리우스라는 사람이 이를 비난하자 아우구스티누스가 반박했다. 노래가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맞는 품위로 드려지면 기도에 무게와 은혜를 더하고 마음의 열심을 깨운다. 그러나 귀가 가사의 뜻보다 곡조에 끌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위험 때문에 고민했지만, 노래에서 받는 유익을 생각하며 마음을 돌렸다. 귀만 즐겁게 하려고 지은 노래는 교회의 품위에 맞지 않고 하나님을 몹시 불쾌하게 한다.
- 교회 찬송은 사도 시대부터 있었다
- 목소리와 마음이 함께 노래해야 한다
- 노래는 기도의 열심을 깨운다
- 곡조보다 가사의 뜻이 먼저다
- 귀만 즐겁게 하는 노래는 하나님께 거슬림
33. 기도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모국어로 드려야 함
공적 기도는 온 교회를 세우려고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 라틴 사람에게 헬라어로, 프랑스나 영국 사람에게 라틴어로 기도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알아듣는 일상의 말로 드려야 한다. 바울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감사하면 다른 사람이 "아멘"을 할 수 없고 덕을 세우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도 당시 로마 교회는 자신도 모르는 외국어로 길게 기도했다. 바울이 말한 '영으로 기도함'은 방언의 은사를 가리킨다. 고린도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이 은사를 깨달음과 끊어진 채 쓰고 있었다. 칼빈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마음(이해) 없이 혀만 움직이는 기도를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신다고 말한다. 오히려 마음이 뜨거워져 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개인 기도에서는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면 과시할 뜻이 없어도 한나처럼 입술이 저절로 움직이고 몸도 따라 움직인다. 무릎을 꿇거나 머리에 쓴 것을 벗는 자세는 하나님을 더 높이려는 것이다.
- 공적 기도는 모두가 아는 말로 드린다
- 알아듣지 못하면 "아멘"도 덕도 없다
- 마음 없이 혀만 움직이는 기도는 헛되다
- 개인 기도에서 소리는 필수가 아니다
- 몸의 자세는 하나님을 높이기 위함이다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스콜라 신학자(칼빈은 '궤변가'라 부름) | 그리스도는 구속의 중보자, 성도는 기도의 중보자다 | 그리스도의 중보는 지금도 계속된다. "중보자는 한 분"은 바로 기도를 두고 한 말이다 | 요한일서 2:1; 로마서 8:34; 디모데전서 2:1-5 요한일서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로마서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디모데전서 2:1-5 1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 로마 교회(칼빈 당시) | 죽은 성인의 이름과 공로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다 | 성경에 근거가 없고, 그리스도만의 중보자 직분을 빼앗는다 | 요한복음 14:6; 골로새서 1:20; 로마서 10:14, 17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로마서 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 로마 교회 | 공기도 끝에 "우리 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를 붙이니 문제없다 | 성인의 공로를 그리스도의 중보와 섞는 것 자체가 그 중보를 더럽힌다 |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 당시 대중 신앙 | 성인마다 맡은 분야가 있고 각자 수호성인을 둔다 | 성읍마다 신을 세운 옛 우상숭배와 같고, 성인을 세속적으로 보는 모욕이다 | 예레미야 2:28; 11:13 예레미야 2:28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예레미야 11:13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도다 |
| 성인 중보 옹호자 | 천사가 기도하고 기도를 올리니 성인도 그렇다 | 그것은 천사의 임무다. 죽은 성인과 천사를 섞으면 하나님의 질서가 깨진다 | 히브리서 1:14; 시편 91:11; 시편 34:7 히브리서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시편 91: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편 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
| 성인 중보 옹호자 | "모세와 사무엘이 섰다 할지라도"는 죽은 자의 중재를 전제한다 | 오히려 죽은 모세가 중재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심판의 선언일 뿐이다 | 예레미야 15:1; 에스겔 14:14 예레미야 15: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에스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
| 성인 중보 옹호자 | 경건하게 살던 성인들이 죽은 뒤 사랑을 잃겠는가 | 그들은 안식 중에 하나님 나라를 사모할 뿐이다. 죽은 자를 부르라는 명령도 약속도 없다 | 전도서 9:5-6; 야고보서 5:16 전도서 9:5-6 5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6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야고보서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
| 성인 중보 옹호자 | 성인들은 하나님 얼굴의 빛을 거울 삼아 땅의 일을 본다 | 말씀을 떠나 하나님의 숨은 뜻을 상상으로 파고드는 일이다 | 로마서 8:6-7; 에베소서 4:17 로마서 8:6-7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에베소서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
| 성인 중보 옹호자 | 야곱이 조상의 이름을 부르게 했다 | 조상의 도움이 아니라 언약을 기억해 달라는 뜻이다 | 창세기 48:16; 이사야 63:16 창세기 48: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사야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
| 성인 중보 옹호자 | "다윗을 위하여" 구하는 기도가 있다 | 다윗 개인이 아니라 언약과 그리스도의 예표를 가리킨다 | 시편 132:1, 10 시편 132:1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시편 132:10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옵소서 |
| 성인 중보 옹호자 | 응답받은 성인의 기록이 많으니 그들을 의지하자 | 그들은 기도했기에 응답받았다. 우리도 그들처럼 기도하면 된다 | 시편 22:4-5; 야고보서 5:17-18; 시편 32:6 시편 22:4-5 4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야고보서 5:17-18 17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시편 32: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
| 성인 중보 옹호자 |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자격이 없으니 성인이 필요하다 | 자격 없음은 맞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주어졌다. 성인을 세우면 그리스도께 남는 일이 없다 | 히브리서 4:16; 디모데전서 2:5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 골방을 핑계 삼는 태도 | 집에서 혼자 기도하면 되니 공적 기도는 필요 없다 | 공적 기도를 거부하는 자는 골방 기도도 모른다. 모임 기도에도 약속이 있다 | 마태복음 18:19-20; 이사야 56:7 마태복음 18:19-20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사야 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
| 건물 숭배(여러 세기 전부터 생긴 생각) | 교회 건물에서 하는 기도가 더 거룩하고 더 잘 들린다 | 신자 자신이 성전이다. 옛 성전은 그림자였다 | 요한복음 4:23; 사도행전 7:48-49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사도행전 7:48-49 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
| 기도문 반복·과시 관행 | 같은 기도를 많이 반복하거나 말을 늘어놓을수록 좋다 | 말로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것은 중언부언이다. 기도의 자리는 마음이다 | 마태복음 6:5-7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
| 로마 교회의 라틴어 예배 | 회중이 몰라도 정해진 거룩한 언어로 기도한다 | 공적 기도는 교회를 세우려는 것이니 모두가 아는 말로 해야 한다 | 고린도전서 14:15-17 15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
| 카르타고의 힐라리우스(아우구스티누스 시대) | 성찬 중에 시편을 노래하는 새 관습은 잘못이다 | 아우구스티누스가 반박했다. 품위를 지킨 노래는 거룩하고 유익하다 | 고린도전서 14:15; 골로새서 3:16 고린도전서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
3. 용어
- 중보자
- 둘 사이에 서서 관계를 이어 주는 분. 칼빈에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 대언자
- 법정에서 우리 편을 들어 대신 말해 주는 변호인. 요한일서 2장 1절에서 그리스도를 부르는 말이다.
- 중보기도
-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비는 기도. 칼빈은 성도끼리의 이런 기도를 권하지만, 그것도 그리스도의 중보에 기대어 드린다고 말한다.
- 성인(聖人)
- 로마 교회가 특별히 거룩하다고 공인한 죽은 신자. 이 편의 논쟁은 이들에게 중보를 구하는 관행에 관한 것이다.
- 교황주의
- 칼빈이 당시 로마 교회의 가르침과 체제를 비판하며 부른 말.
- 궤변가
- 칼빈이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을 비꼬아 부른 말. 스콜라 신학은 논리적 구분과 논증을 중시한 중세 대학의 신학이다.
- 예표
- 뒤에 올 실체(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인물이나 사건. 이 편에서는 다윗과 구약 대제사장이 그렇다.
- 외식자
-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경건한 척하는 사람.
- 중언부언
- 같은 말을 되풀이하거나 말을 많이 늘어놓는 것. 칼빈은 말로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태도라고 풀이한다.
- 연도(連禱, litany)
- 성인의 이름 등을 차례로 부르며 짧은 간구를 반복하는 기도문.
4. 청년의 삶으로
아니다. 서로를 위한 기도는 명령이고 사랑의 표현이다. 다만 모두가 그리스도께 기대어 드리는 기도라는 점을 기억하라(19절).
자격은 원래 아무에게도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위엄의 보좌를 은혜의 보좌로 바꾸셨다(17절).
계획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 손에 맡기라. 받은 월급에도 감사가 따라야 한다(28절).
골방 기도 없는 공적 기도도 헛되지만, 골방을 핑계로 모임을 피하는 것도 안 된다. 둘은 함께 간다(29-30절).
노래는 기도를 깨우는 좋은 도구다. 그러나 곡조보다 가사의 뜻이 먼저다(32절).
5. 이 편의 결론
- 기도는 내 자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 위에 서 있고, 그분 안에서 모든 약속이 '예'가 된다.
- 그리스도는 유일하고 지금도 일하시는 중보자이며, 성도의 서로를 위한 기도는 그분께 기대어 드려진다.
- 죽은 성인의 중보는 말씀에 근거가 없으므로 믿음에서 나온 기도가 될 수 없다.
- 간구와 감사는 짝이고, 골방 기도와 공적 기도도 짝이다.
- 말과 노래는 마음에서 나와야 하고, 공적 기도는 모두가 알아듣는 말로 드려야 한다.
✏️ 본문을 드래그하면 형광펜(노랑·초록·분홍)과 밑줄을 칠할 수 있고, 칠한 곳을 누르면 메모를 적을 수 있습니다. 위의 가−/가+ 로 글자 크기를 바꿉니다. 모두 이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원문 미전재 ·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 PDF · quritan.com 판 · youtube.com/@빛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