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 뭘 구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내 기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칼빈은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존재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기도의 '틀'까지 손에 쥐여 주셨다고 말합니다(34-35절). 이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부름말 하나에서 기도의 세 가지 바탕을 끌어냅니다. 입양된 자녀로서 갖는 자신감, '나의'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성, '하늘'이 일깨우는 경외와 신뢰입니다(36-40절). 앞의 세 간구(이름·나라·뜻)는 내 이익을 잊고 하나님의 영광만 바라보는 기도입니다(41-43절). 뒤의 세 간구(양식·용서·시험)는 내 필요를 구하되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구하는 기도입니다(44-47절). 끝으로 칼빈은 두 가지를 정리합니다. 주기도문은 모든 기도의 '내용 기준'이지만 글자에 매일 필요는 없습니다(48-49절). 그리고 기도 시간 정하기, 하나님께 조건 걸지 않기,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 인내하기라는 실천 문제로 기도론 전체를 마무리합니다(50-52절).
1. 절별 정리
주기도문: 전반부의 세 가지 간구에 대한 해설. 34-43
34. 주기도문이 주는 도움
앞에서 기도의 방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기도의 '형식'까지 배울 차례다. 하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 기도문을 직접 주셨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보여 준다. 아이가 걱정이 생기면 부모에게 달려가듯, 주님은 우리도 모든 필요를 들고 하나님께 가라고 가르치신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무엇을 구해야 옳은지, 무엇이 정말 유익한지 잘 모른다. 그래서 주님은 구할 것을 순서대로 정리해 주셨고, 이 기도를 따르면 엉뚱하거나 하나님이 받지 않으실 것을 구하지 않는다는 안심을 얻는다. 칼빈은 플라톤도 이 위험을 보았다고 인정한다. 플라톤은 사람이 신에게 제대로 구할 줄 몰라 오히려 해를 입는다고 보고, "바라든 말든 좋은 것은 주시고, 구하더라도 나쁜 것은 멀리해 달라"는 옛 시인의 기도를 최고로 꼽았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우리 입에 담을 말을 직접 가르쳐 주셨으니, 이 특권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한다.
- 아들을 통해 기도의 형식까지 주심
- 아이가 부모에게 가듯 모든 필요를 구함
- 우리는 무엇을 구할지조차 모름
- 이 기도를 따르면 엉뚱한 것을 구하지 않음
- 플라톤도 본 위험, 우리에겐 아들의 가르침
35. 주기도문의 주요 내용
주기도문은 여섯 간구로 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을 둘로 나누어 일곱 간구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칼빈은 동의하지 않는다. 마태가 두 구절 사이에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구절은 "시험에 눌리게 두지 마시고, 오히려 연약한 우리를 도와 넘어지지 않게 건져 주소서"라는 한 간구가 된다. 칼빈은 고대 교부들도 이렇게 보았다고 말한다. 기도 전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앞의 세 간구는 특히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것이고 뒤의 세 간구는 우리의 필요에 관한 것이다. 앞의 세 간구에서는 내 이익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가 없이 그분을 사랑하는지, 상을 바라고 섬기는지 시험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도하면 실제로 큰 유익이 따라오지만(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면 우리도 거룩해진다), 그 유익에는 아예 눈을 감아야 한다. 모세와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가 멸망하는 것까지 각오했다. 반대로 뒤의 간구에서 양식을 구할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지 않는 것은 구하지 않는다.
- 주기도문은 여섯 간구(일곱 아님)
- '그러나'로 묶인 마지막 두 구절은 한 간구
- 앞 셋은 하나님의 영광, 뒤 셋은 우리 필요
- 앞 셋에서는 내 이익에 눈을 감는다
- 양식을 구할 때도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
36. "우리 아버지"
첫머리는 앞에서 말한 원리를 다시 보여 준다. 모든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한다는 원리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입양되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자기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겠는가. 하나님의 참 아들인 그리스도가 자신을 우리의 형제로 주셨으니, 믿음으로 이 복을 붙들면 그분이 본래 가지신 자녀의 자리가 입양을 통해 우리 것이 된다.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다정한 이름을 쓰게 하셔서 우리의 불신을 없애신다. 그분의 사랑은 모든 인간 부모의 사랑을 끝없이 뛰어넘어서, 땅의 아버지들이 자식을 버려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신다. 자식이 남의 손에 맡겨지면 아버지가 무정하다고 원망하듯, 우리가 하나님 말고 다른 데서 도움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가난하거나 무정한 분으로 대하는 셈이다.
- '아버지'라 부르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움
- 그리스도 안에서 입양되어 자녀가 됨
- '아버지'라는 이름이 불신을 없앤다
- 부모가 버려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심
- 다른 데서 도움 구함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셈
37. "우리 아버지" —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갖도록 격려함
"아버지는 다정하시지만 나는 매일 죄를 지으니 움츠러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 사이에서도 잘못한 아들이 직접 아버지께 가서 고백하는 것만큼 좋은 변호는 없다. 하물며 긍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어떠시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접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니 두려움 때문에 다른 대언자를 거쳐 겨우 아뢰는 것보다, 자녀가 직접 울며 탄식하는 기도를 더 들어주신다. 주님은 탕자 비유로 이 사랑을 보여 주셨다.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먼저 알아보고 달려가 끌어안았다. 하나님은 그 아버지보다 더 선하고 자비로운 분이시니, 배은망덕한 자녀라도 긍휼을 구하면 받아 주신다. 우리의 좁은 마음으로는 이 사랑을 다 헤아릴 수 없기에, 그리스도가 입양의 보증이 되시고 성령이 증인이 되셔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다. 그러니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망설여질 때마다 두려움을 고쳐 주시고 성령으로 담대하게 이끌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 죄 때문에 아버지 앞에서 움츠러들지 말 것
- 직접 나아가는 자녀의 기도를 들으심
- 탕자 비유: 용서를 구하기 전에 달려오는 아버지
- 그리스도는 입양의 보증, 성령은 증인
- 망설여질 때 성령의 이끄심을 구하라
38. "우리 아버지" — 성도 상호 간의 긴밀한 교제를 시사함
주님은 각자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고 모두 함께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으로 우리 모두가 똑같은 한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으니, 형제 사랑이 그만큼 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좋은 것이 한 아버지에게서 오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쁘게 나누고 우리를 갈라놓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형제를 돕는 가장 큰 길은 그들을 가장 좋은 아버지의 보살핌에 맡기는 기도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 가족도 사랑하듯,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백성과 가족도 사랑하게 된다. 기도할 때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무엇을 정하셨는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믿음의 가족에게는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야 하며, 결국 모든 기도는 주님이 세우신 공동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 '나의'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
- 한 아버지의 자녀로서 서로 나눈다
- 기도는 형제를 하나님 보살핌에 맡기는 일
- 모든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며 기도함
- 믿음의 가족에게는 특별한 사랑
39. 기도와 구제의 비교
공동체를 바라보라는 말이 나와 특정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럴 때에도 마음이 공동체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 기도는 혼자 할 수 있지만 그 목적이 공동체를 향하므로 공동체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칼빈은 이를 구제에 빗대어 설명한다. 모든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명령이 있어도, 우리는 아는 사람과 눈앞의 사람을 돕는 방식으로 그 명령을 지킨다. 마찬가지로 교회 전체를 마음에 두면서도 사정을 잘 아는 가까운 사람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둘은 다른 점도 있다. 구제는 필요가 눈에 보여야 할 수 있지만, 기도는 얼굴도 모르는 먼 나라 사람까지 도울 수 있다. 칼빈은 바울이 "각처에서 분노와 다툼 없이" 기도하라고 한 말씀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다툼이 기도의 문을 닫으니 한마음으로 기도하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 개인을 위한 기도도 공동체와 이어져 있다
- 아는 이를 위한 기도는 구제처럼 정당함
- 구제는 보이는 필요에만 가능
- 기도는 모르는 먼 사람도 도울 수 있다
- 다툼은 기도의 문을 닫는다
40.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을 하나님이 하늘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계신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된다. 솔로몬은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을 담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하나님 스스로도 하늘은 보좌, 땅은 발등상이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어떤 장소에도 묶이지 않고 모든 곳에 계신다. 다만 우리의 생각이 둔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달리 떠올릴 수 없으니, 우리가 보는 것 가운데 가장 높고 장엄한 '하늘'로 그 영광을 표현했다. 그래서 '하늘'은 세 가지를 뜻한다. 하나님은 장소를 넘어 계시고, 썩거나 변하지 않으시며, 온 우주를 품고 다스리신다. 이 말을 들으면 두 가지 반응이 필요하다. 하나는 생각을 높여 하나님을 땅의 것이나 내 잣대, 내 감정에 맞추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분이니 믿고 맡기는 것이다. 정리하면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자신을 보여 주신 하나님을 확신하며 부르게 하고, 거짓 신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게 막는다. '하늘'은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께 나아가는 일이 헛되지 않다는 확신을 준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고 의인을 보신다는 확신이 없으면 기도도 의심과 혼란에 휩싸인다.
- 하나님은 하늘에 갇혀 계시지 않음
- '하늘'은 영광·불변·통치를 나타냄
- 생각을 높이되 신뢰는 깊게
- '아버지'는 확신을, '하늘'은 헛되지 않음을
- 하나님이 가까우시다는 확신이 기도의 바탕
41. 첫 번째 간구
첫 번째 간구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칼빈은 이런 간구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큰 부끄러움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배은망덕과 불경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흐려져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이 아무리 대들어도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함은 그대로 빛난다. 하나님이 알려지는 곳마다 그분의 권능, 선하심, 지혜, 공의, 긍휼, 진리가 사람을 사로잡아 찬양하게 만든다. 그러니 세상을 바꿀 힘이 없더라도 최소한 기도로는 이 문제를 품어야 한다. 이 간구의 뜻은 하나님이 마땅한 존귀를 받으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말하고 생각할 때 최고의 경외를 품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가르침)과 하시는 일(역사)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러니 그 둘을 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엄하게 대하실 때에도 너그러우실 때처럼 찬양할 때 하나님을 거룩히 높이게 된다. 또한 그 이름을 더럽히는 모든 불경과 조롱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위엄 가운데 더욱 빛나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 이 간구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
- 그래도 하나님 이름의 거룩함은 빛난다
- 바꿀 힘이 없어도 기도로는 품어야
- 말씀과 하시는 일을 둘 다 인정하기
- 엄하실 때도 너그러우실 때처럼 찬양
42. 두 번째 간구
두 번째 간구는 "나라가 임하시오며"이다. 첫 번째 간구와 내용이 거의 같지만 따로 둔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일에 무기력한 우리에게 이미 알았어야 할 것을 다시 깊이 새겨 주기 위해서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이 세상 삶을 하늘 생명보다 낮게 여기며, 하나님의 의에 자신을 드릴 때 있다. 이 나라에는 두 부분이 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육체의 욕망을 바로잡으시는 것과, 우리의 생각을 그분의 다스림에 순종하도록 빚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간구는 먼저 자기 안의 부패를 씻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왕의 지팡이(홀)와 같아서, 성령이 은밀히 일하시면 사람들이 기꺼이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하나님은 방자한 이는 누그러뜨리고 고집 센 이의 교만은 꺾으며 나라를 세우신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이 교회를 모으고 키우고 은사와 질서를 주시며, 순수한 진리의 대적을 흩으시기를 구해야 한다. 나라의 완성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미뤄져 있고, 그때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며 적그리스도와 모든 불경을 끝내실 것이다. 그때까지 이 간구는 세상의 부패에서 물러나 육을 죽이고 십자가를 지게 하며, 겉사람이 낡아져도 속사람이 새로워지니 낙심하지 않게 한다.
- 첫 간구를 다시 새기려고 따로 둔 간구
- 나라의 두 부분: 욕망 교정, 생각의 순종
- 이 간구는 내 안의 부패부터 시작
- 말씀은 왕의 홀, 성령이 순종케 하심
- 날마다 교회를 위해, 완성은 재림 때
43. 세 번째 간구
세 번째 간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다. 이 간구는 하나님 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래도 따로 덧붙인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말뜻을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곧 "모든 사람이 하나님 뜻에 복종할 때 하나님이 왕이 되신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뜻'은 모든 일을 정하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아니다. 그 뜻은 사탄과 사람들이 대들어도 결국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이 간구가 말하는 뜻은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뜻'이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듯 땅도 그 다스림 아래 들어와 교만과 악이 사라지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 간구를 드리면 우리는 내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부인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새 영과 새 마음을 지으셔서, 성령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싫어하시는 것을 미워하게 되기를 바란다. 앞의 세 간구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바라보아야 한다. 그 유익은 구하지 않아도 정한 때에 반드시 오지만, 그래도 구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자 자녀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열심 없이 입으로만 이 세 간구를 외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와 종으로 볼 수 없고, 이 일들이 이루어질 때 혼란과 멸망 속에 있게 된다.
- 셋째 간구는 '나라'에 대한 설명
- 은밀한 뜻이 아니라 순종을 부르는 뜻
- 천사처럼 기꺼이 순종하는 땅을 구함
- 내 욕심을 꺾고 새 마음을 구함
- 앞 세 간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후반부의 세 가지 간구에 대한 해설. 44-47
44. 네 번째 간구
후반부에서 우리는 내 문제로 내려오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작별하지는 않는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보다 우리에게 맞는 삶은 없기 때문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음식과 옷을 비롯해 몸이 평안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나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 빵 한 조각, 물 한 방울까지 그분께 기대하는 믿음의 연습이다. 영혼은 하나님께 맡기면서도 먹고 입을 것은 걱정하는 우리의 모습은, 영원한 생명보다 덧없는 인생을 더 크게 여긴다는 증거다. 반대로 몸의 걱정을 맡긴 사람은 구원과 영생도 더 크게 기대하게 된다. 칼빈은 이 양식을 '초물질적인 양식'이라는 영적인 의미로만 읽는 해석을 거부한다. 경건에는 이 세상 삶에 대한 약속도 있고, 주님은 우리가 둔한 것을 아시고 낮은 것(양식)에서 높은 것(용서·보호)으로 순서를 잡으셨기 때문이다. '일용할'은 끝없는 욕심을 누르고, 오늘 먹이신 아버지가 내일도 먹이신다는 확신을 준다. 창고가 가득한 부자도 하나님이 복 주셔야 그것이 양식이 되니 날마다 구해야 한다. 탐욕을 품거나 재산을 믿으면서 이 기도를 하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우리의' 양식은 정직한 수고로 얻은 것만 해당하며 속이거나 빼앗은 것은 남의 것이다. 또 '주시옵고'는 내 기술과 노력으로 번 듯한 것도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임을 고백하게 한다.
- 후반부도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구한다
-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섭리에 맡김
- '초물질적 양식' 해석은 주님 뜻과 어긋남
- '일용할': 욕심은 누르고 내일은 맡긴다
- 부자도 가난한 자도 날마다 구해야 함
- 정직한 소득도 선물, 부정한 이득은 남의 것
45. 다섯 번째 간구
다섯째와 여섯째 간구는 하늘 생명에 관한 모든 것을 담는다. 하나님이 교회의 구원을 위해 세우신 두 약속, 곧 "죄를 사하겠다"는 약속과 "법을 마음에 새기겠다"는 약속이 이 두 간구에 들어 있다. 주님은 죄를 '빚'이라고 부르신다. 우리가 그 형벌을 지고 있고, 탕감받지 않으면 절대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탕감은 하나님의 값없는 긍휼에서 오며, 그리스도가 자신을 단번에 속량물로 내주셔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자기 공로나 남의 공로로 죗값을 치른다고 믿는 사람은 이 기도를 하면서 오히려 자기를 정죄하는 셈이다. 또 이미 완전해져서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고, 연약한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린다. 신자도 하나님의 형상이 점점 회복되는 중이라 얼룩이 남아 있으니 평생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은 분노와 미움과 복수심을 지우고 상처의 기억을 기꺼이 흘려보내라는 뜻이다. 앙심을 품은 채 이렇게 기도하면 "나도 용서하지 마소서"라고 비는 꼴이 된다. 다만 우리의 용서가 하나님 용서의 원인이나 자격은 아니다. 그것은 연약한 믿음을 위한 확신의 표지이고, 용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 자리에서 빠진다는 경고다.
- 죄는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빚'
- 용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온다
- 완전주의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 용서 = 분노·복수심을 지우는 것
- 우리의 용서는 원인이 아니라 확신의 표지
46. 여섯 번째 간구
여섯째 간구는 법을 마음에 새기겠다는 약속에 이어진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에는 끝없는 싸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로 무장하고 이기기를 구하는 것이다. 시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내 욕망이나 마귀가 부추기는 악한 생각이 있고,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지만 마귀가 번쩍이게 보여 주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오른쪽에서는 부와 권력과 명예가 눈을 흐리게 해 하나님을 잊게 만든다. 왼쪽에서는 가난과 수치와 멸시와 환난이 낙심하게 해 소망을 버리게 만든다. 그래서 잘되어도 교만하지 않고 힘들어도 무너지지 않기를 구한다. 시험을 전혀 겪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아니다. 시험이 없으면 우리는 나태해지기 때문에, 다윗도 시험받기를 구했고 하나님도 택한 백성을 시험하신다. 하나님의 시험은 자녀를 연단해 강하게 하고 피할 길을 주시지만, 사탄의 시험은 넘어뜨려 망하게 하려는 것이다. '악'을 마귀로 읽든 죄로 읽든 큰 차이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싸움이 우리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싸울 수 있다면 이 기도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 된다. 야고보서 1:13("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을 들어 이 간구가 부당하다는 반론도 있다. 칼빈의 답은 이렇다. 시험의 원인과 책임은 우리 욕망에 있고, 야고보는 내 잘못을 하나님께 떠넘기지 말라는 뜻으로 말했다. 동시에 하나님은 공의롭고 은밀한 판단에 따라 사람을 사탄에게 넘기거나 시험으로 이끄시기도 하니, 이 표현은 부당하지 않다.
- 순종의 싸움엔 성령의 구체적 도움이 필요
- 오른쪽(번영)·왼쪽(환난)에서 오는 시험
- 시험이 없기가 아니라 지지 않기를 구함
- 하나님의 시험은 연단, 사탄의 시험은 파멸
- 승리는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47.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
우리 자신과 소유를 하나님께 맡기는 뒤의 세 간구도 '우리'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공적인 성격을 띠고 교회를 세우며 성도의 교제를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각자 따로가 아니라 모두 함께 양식과 용서와 보호와 구원을 구한다. 이어지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송영은 라틴어 역본에는 없다. 그래도 칼빈은 지우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여기에 우리 믿음의 고요하고 단단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격을 근거로 기도해야 한다면 아무도 입을 열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언제나 가지고 계시니, 아무리 비참해도 언제든 기도할 이유와 응답의 확신이 있다. 마지막 "아멘"은 구한 것을 얻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또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시니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망을 굳게 한다. 다니엘의 기도처럼, 응답의 근거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긍휼이다.
- 뒤의 세 간구도 '우리'의 공적 기도
- 송영은 라틴어 역본에 없어도 지우지 말 것
- 확신의 근거는 아버지의 나라·권세·영광
- '아멘'은 간절한 소망과 확신의 표현
- 응답의 근거는 우리 자격이 아닌 하나님
주기도문의 적절성,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문제. 48-49
48. 주기도문의 규범성
하나님께 구해야 하고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가르쳐 주신 이 기도의 틀(규범) 안에 들어 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우리의 선생으로 정하신 분이고, 우리가 들어야 할 유일한 분이다. 그분은 처음부터 아버지의 영원한 지혜였고, 사람이 되어서는 '기묘자, 모사'로 오셨다. 그러니 이 기도는 완전하며, 이 기도와 상관없는 이질적인 것을 덧붙이는 것은 불경하다. 이 기도를 넘어선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자기 지혜를 보태려 하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욕심을 따라 헤매며, 믿음 없이 기도하니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야 서는데 그런 기도에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은 2~3세기 북아프리카 교부 테르툴리아누스가 이 기도를 "합법적인 기도"라고 부른 것을 좋게 평가한다.
- 구할 모든 것이 주기도문 틀 안에 있다
-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정하신 유일한 선생
- 이 기도에 이질적인 것을 더함은 불경
- 말씀 없는 기도는 믿음 없는 기도
- 테르툴리아누스: '합법적인 기도'
49. 주기도문은 그 표현이 아니라 내용을 따라야 함
그렇다고 주기도문의 단어 하나도 바꾸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에는 표현이 전혀 다른데도 같은 성령이 주신 유익한 기도가 많다. 칼빈이 말하려는 것은 이 기도에 요약된 내용 밖의 것을 구하거나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말은 달라도 뜻은 주기도문과 같아야 한다. 성경의 모든 기도와 경건한 사람들이 마음에서 드리는 기도는 주기도문과 일치한다. 다만 완전함에서는 어떤 사람의 기도도 이 기도에 미치지 못한다. 이 기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필요한 것도, 사람의 행복에 필요한 것도 빠짐없이 들어 있고 짜임새가 정확해서 고칠 데가 없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지혜가 직접 가르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 글자 하나하나에 매일 필요는 없다
- 성경의 기도들은 표현 달라도 같은 성령에게서
- 기준은 표현이 아니라 내용과 뜻
- 완전함에서는 어떤 기도도 못 미침
- 주기도문은 하나님 지혜의 가르침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붙인 장절이 없다. '성경 여기저기의 여러 기도'를 일반적으로 언급할 뿐이다.)
기도와 관련한 기타 문제들. 50-52
50. 기도 시간을 정하는 문제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문제
앞에서 말했듯 우리는 늘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약하고 게으르니 도움과 자극이 필요하고, 그래서 각자 기도 시간을 정해 두는 것이 좋다. 칼빈은 아침에 일어날 때, 일을 시작하기 전, 식사 전과 후, 잠자리에 들 때를 예로 든다. 그러나 시간을 미신처럼 지켜서는 안 된다. 그 시간만 지키면 의무를 다했고 나머지 시간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기면 안 된다는 말이다. 정해진 시간은 약한 우리를 훈련하고 깨우는 도구일 뿐이다. 또 나나 남이 괴로울 때는 곧바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일이 잘될 때는 지나치지 말고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해야 한다. 끝으로 하나님께 시간과 장소와 방법을 지정해 드려서는 안 된다. 주기도문이 내 문제를 구하기 전에 먼저 "뜻이 이루어지이다"를 구하게 하는 것은, 내 뜻에 고삐를 매어 하나님을 조종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 약하니까 정해진 기도 시간이 유익
- 시간을 미신처럼 지키지는 말 것
- 괴로울 땐 즉시 간구, 잘될 땐 감사
- 하나님께 시간·장소·방법을 정하지 말 것
- '뜻이 이루어지이다'가 내 뜻의 고삐
51. 인내로 기도함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섭리의 다스림을 받으면, 기도에서 인내를 배우고 욕심을 누르며 주님을 기다리게 된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늘 함께 계시고, 응답이 없어 보여도 정하신 때에 기도를 버리지 않으셨음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러니 당장 응답이 없어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 열을 내며 기도하다가 곧바로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이 화나셨다"고 단정하고 기도를 그만둔다. 신자는 그러지 않고 마음을 고르게 지키며 성경이 권하는 인내를 붙든다. 시편을 보면 다윗과 신자들은 지쳐서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을 때에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또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욕심으로 졸라서는 안 된다. 조건을 걸고 하나님을 내 욕심을 채워 주는 종처럼 묶으려다가, 들어주지 않으시면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진노 가운데 그 요구를 허락하시기도 한다. 고기를 달라고 원망한 이스라엘은 고기와 함께 진노를 삼켰다.
- 섭리에 순종하면 기도의 인내를 배운다
- 즉시 응답 없다고 '진노'라 단정 말 것
- 다윗은 허공에 말하는 듯해도 멈추지 않음
- 조건 걸고 하나님을 묶으려 하지 말 것
- 진노 가운데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다
52. 기도의 응답
오래 기다려도 기도의 결과를 감각으로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도 믿음은 우리가 알맞은 응답을 받았다고 확신하게 해 준다. 하나님은 어려움을 맡기면 돌보시겠다고 여러 번 확실히 약속하셨기에, 가난 속에서도 풍성함을, 환난 속에서도 위로를 주신다. 모든 일이 틀어져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시다가 심판 날에 밝히 드러내실 것이다. 또 하나님은 응답하실 때에도 언제나 우리가 요구한 모양 그대로 주시지는 않는다. 칼빈은 요한일서 5:15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 같아도 깊은 뜻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소원을 그대로 들어주지 않으실 때에도 기도에는 귀 기울이고 계시니, 말씀을 붙든 소망은 실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자는 인내 없이는 설 수 없다. 하나님은 백성을 극한까지 몰아 오래 진흙탕을 뒹굴게 하신 뒤에야 은혜를 맛보게 하실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한나의 노래처럼 하나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신다. 그래서 신자는 소망을 확신하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 느낌이 없어도 믿음은 응답을 확신한다
- 요구한 모양 그대로 주시지는 않는다
- 소원을 안 들어주셔도 기도엔 귀 기울이심
- 하나님은 극한까지 몰아가기도 하신다
- 확신 속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일곱 간구로 나누는 해석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따로 일곱째 간구다 | 마태가 '그러나'로 묶었으니 한 간구다. 고대 교부들도 그렇게 보았다 | 마태복음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 장소적 이해(오해) | 하나님은 하늘이라는 곳에 계신다 | '하늘'은 장소가 아니라 영광·불변·통치를 나타내는 말이다 | 열왕기상 8:27, 이사야 66:1 열왕기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이사야 66: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
| 다른 대언자를 거치는 기도 | 죄인이니 직접 못 가고 누군가를 거쳐야 한다 | 아버지가 직접 구하라 하셨다. 그리스도가 보증, 성령이 증인이다 | 누가복음 15:20, 로마서 8:15 누가복음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
| 은밀한 뜻과 혼동(오해) | 어차피 모든 일이 하나님 뜻대로 되니 셋째 간구는 무의미하다 | 이 간구의 '뜻'은 기꺼운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뜻이다 | 시편 103:20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
| '초물질적 양식' 해석 | 영적인 자녀가 몸의 필요를 구하는 건 합당치 않다 | 경건에는 금생의 약속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빵 한 조각에도 나타난다 | 디모데전서 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 공로·보속(로마 교회) | 자기나 성인의 공로로 죗값을 갚을 수 있다 | 죄는 갚을 수 없는 빚이다. 그리스도가 값없이 갚으셨다 |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 완전주의자('새 교사들') | 신자는 이미 완전하니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 나라를 구하는 것이 곧 죄 폐지를 구하는 것이다 | 주님은 평생 용서를 구하라 하셨다. 전반부는 목표, 후반부는 연약함이며 둘은 조화된다 | 요한일서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 용서를 공로로 보는 오해 | 내가 남을 용서해야 하나님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긴다 | 우리의 용서는 원인이 아니라 확신의 표지이자 경고다. 용서의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다 | 마태복음 6:12, 이사야 43:25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사야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
| 자기 힘·자유의지 신뢰 | 시험과의 싸움은 내 힘과 선택으로 이길 수 있다 | 그렇다면 이 간구는 조롱이 된다. 원수는 우는 사자이고 승리는 하나님께 달렸다 | 베드로전서 5:8, 시편 60:12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시편 60: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
| 야고보서 1:13 반론 |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다 | 시험의 책임은 우리 욕망에 있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은밀한 판단으로 시험에 넘기기도 하신다 | 야고보서 1:13, 야고보서 1:14 야고보서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야고보서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 주기도문을 넘어선 기도 | 이 기도에 없는 것도 마음대로 구해도 된다 | 하나님 지혜에 내 지혜를 보태는 것이다. 말씀 없는 기도는 믿음 없는 기도다 | 마태복음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
| 문자주의(오해) | 주기도문의 단어를 한 글자도 바꾸면 안 된다 | 기준은 표현이 아니라 내용이다. 성경의 기도들도 표현이 다양하다 | (칼빈이 장절을 붙이지 않음) |
| 기도 시간 미신 | 정한 시간만 지키면 기도 의무는 끝이다 | 시간은 약함을 훈련하는 도구일 뿐,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 (칼빈이 장절을 붙이지 않음) |
| 조건 거는 기도 | "이것을 해 주시면…" 하며 하나님을 내 법칙에 묶는다 | 하나님은 종이 아니다. 진노 가운데 허락하기도 하신다 | 민수기 11:18, 민수기 11:33 민수기 11: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민수기 11: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
| 즉시 응답 요구 | 바로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이 화나신 것이니 기도를 그만둔다 | 인내하라. 하나님은 요구와 다른 모양으로도 응답하신다 | 시편 22:2, 요한일서 5:15 시편 22: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요한일서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
3. 용어
- 간구
- 하나님께 무엇을 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 주기도문은 여섯 개의 간구로 되어 있다.
- 입양(양자 됨)
- 본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우리가 그리스도 덕분에 법적으로 자녀의 신분을 얻는 것.
- 섭리
- 하나님이 세상과 우리 삶을 지금도 돌보고 다스리신다는 가르침.
- 하나님의 은밀한 뜻
- 모든 일을 정하고 이끄시는, 우리에게 다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계획. 셋째 간구의 '뜻'과는 구별된다.
- 자기 부인
- 내 욕심과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는 태도.
- 송영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짧은 찬양 문구. 주기도문 끝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를 말한다.
- 보속(만족)
- 죄의 벌을 자기 행위나 다른 사람의 공로로 일부 갚는다는 로마 교회의 생각. 칼빈은 이를 거부한다.
- 완전주의
- 신자가 이 땅에서 이미 죄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
- 유기된 자
- 하나님이 구원으로 택하지 않고 그대로 두신 사람을 가리키는 개혁신학 용어. 다음 편 예정론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 적그리스도
-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 칼빈은 재림 때 주님이 이를 멸하신다고 본다.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주기도문은 무엇을 구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주신 기도의 '내용 기준'이다. 단, 글자에 매이라는 뜻은 아니다.
- "우리 아버지"라는 부름은 그리스도 안에서 입양된 자녀의 담대함과, 모든 성도를 품는 공동체성을 함께 가르친다.
- 앞의 세 간구는 내 이익을 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뒤의 세 간구는 내 필요를 구하되 그 필요조차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구한다.
- 양식은 섭리에, 죄는 값없는 은혜에, 시험과의 싸움은 하나님의 능력에 맡긴다. 그리고 응답의 확신은 우리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권세·영광에서 나온다.
- 기도는 정한 시간으로 훈련하되 하나님께 조건을 걸지 않고,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인내하며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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