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내 사정을 다 아시는데, 굳이 기도해야 하나요?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칼빈은 먼저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고, 모든 좋은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지금까지의 결론에서 출발합니다. 그 보물을 실제로 '파내는' 길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일 수 없습니다(1-3절). 이어서 올바른 기도의 네 법칙을 세웁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집중하는 것, 둘째는 내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회개하는 것, 셋째는 내 의를 버리고 긍휼만 구하는 것, 넷째는 겸손하면서도 응답을 확신하는 것입니다(4-14절). 마지막으로 칼빈은 이 법칙을 율법처럼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점 있는 기도도 들으시고, 우리의 '더듬거림'까지 용서로 덮으십니다. 그러니 결점을 핑계 삼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고 맺습니다(15-16절).
1. 절별 정리
기도의 본질과 가치. 1-3
1. 믿음과 기도
칼빈은 앞에서 다룬 결론을 다시 짚으며 시작합니다. 사람 안에는 선한 것도,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단도 없습니다. 그러니 도움은 자기 밖에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창고를 여시고, 우리의 비참함과 가난을 씻어 내고 모든 풍성함을 주십니다. 칼빈은 이 진리를 논리 공식(삼단논법)으로는 배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 주신 사람만 마음으로 깨닫는 '감추어진 철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알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기도로 구해야 합니다. 구하지 않는 것은 보물이 묻힌 곳을 듣고도 파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도 믿음이 복음에서 나오고 그 믿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 성령께서는 '양자의 영'으로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를 용기를 주십니다. 칼빈은 앞에서 잠깐만 언급했던 이 점을 이제 자세히 다루겠다고 밝힙니다.
- 사람 안에는 스스로 구원할 힘이 없다
- 모든 풍성함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 아는 데서 멈추지 말고 기도로 구해야 한다
- 기도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다
- 성령이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
2. 기도의 절대적 필요성
하늘 아버지가 준비해 두신 풍성한 것을 얻으려면 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칼빈은 기도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교제'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기도로 하늘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의 약속을 근거로 호소합니다. 그리고 말씀만 믿고 기대한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제 경험으로 배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모든 것을 기도로 구하라고 명하십니다. 복음이 믿음의 눈에 보여 준 보화를 실제로 캐내는 일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안전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데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그분이 섭리로 일상을 돌보시고, 권능으로 붙드시고, 선하심으로 죄인인 우리를 받아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 결과 양심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내 형편을 다 아시고, 가장 좋은 것을 이룰 능력과 뜻이 있으시다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다
- 약속하신 것을 기도로 구하라 하신다
- 기도로 복음이 보여 준 보화를 캔다
- 안전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데 있다
- 기도는 양심에 평안과 안식을 준다
3. 기도가 주는 여섯 가지 유익
칼빈은 먼저 반론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시는데, 졸고 계신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알려 드려야 하는가?" 칼빈의 답은 분명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인정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릴 때, 그 영광 돌림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엘리야가 좋은 예입니다. 그는 비가 오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아합에게 전했으면서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기도하며 일곱 번이나 하늘을 살피게 했습니다. 약속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자기 믿음이 무뎌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구하지 않아도 도우실 때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해야 할 여섯 가지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①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려는 소원이 불붙고, 무슨 일이든 그분을 닻처럼 붙드는 습관이 생긴다. ② 하나님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욕심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한다. ③ 모든 은혜가 하나님 손에서 왔음을 깨달아 감사하게 된다. ④ 응답을 경험하면 그분의 긍휼을 더 사모하게 된다. ⑤ 기도로 얻은 복을 더 기쁘게 누린다. ⑥ 섭리를 체험으로 확인한다. 하나님이 때로 주무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게을러지기 쉬운 우리를 훈련하시려는 것입니다. 끝으로 "섭리가 다 돌보니 기도는 소용없다", "하나님이 어차피 원하시는 대로 주시니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어리석다고 반박합니다.
- 기도는 하나님 아닌 우리를 위한 것
- 엘리야는 약속을 믿고도 열심히 기도했다
- 기도의 유익 여섯 가지
- 주무시는 듯 보임은 우리를 훈련하심
- 섭리는 기도를 쓸모없게 만들지 않는다
올바른 기도의 법칙. 4-16
첫째 법칙: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해야 함. 4-5
4. 하나님께 합당한 순전한 정신의 상태를 지향함
첫째 법칙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세속적인 생각과 잡다한 걱정을 내려놓고 기도에 몰입해야 합니다. 칼빈은 할 수 있는 한 '정신 그 자체를 넘어서라'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근심을 전혀 느끼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근심이 기도의 열정에 불을 붙입니다. 성경의 성도들도 깊은 곳, 죽음의 문턱에서 탄식했습니다. 칼빈이 버리라는 것은 마음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리는 바깥의 잡념입니다. '정신을 넘어선다'는 말은 무아지경에 빠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눈멀고 어리석은 우리 이성이 지어내는 것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들고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 생각의 좁은 틀에 갇히지 말고, 하나님께 합당한 순전함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 첫째 법칙: 하나님께 어울리는 마음가짐
- 잡념과 세속 걱정을 내려놓고 몰입한다
- 근심은 오히려 기도의 열정을 키운다
- 이성이 지어낸 것을 그대로 들고 가지 말 것
5. 유념해야 할 두 가지 사실과 성령의 도우심
칼빈은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기도할 때 생각과 감정을 모두 모아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떠도는 경박한 마음만큼 경외와 어긋나는 것은 없습니다. 잡념 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어려울수록 더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친구와 수다 떨듯 대하는 것은 그분이 베푸신 친밀한 교제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손을 드는 동작이나 '기도를 올린다'는 성경 표현은 생각을 위로 들어 올려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둘째,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셨지만, 어리석은 욕심에까지 고삐를 풀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옛 이방인들은 욕심에 따라 수호신을 골랐습니다. 야심가는 유피테르, 탐욕가는 메르쿠리우스, 호전적인 사람은 마르스를 섬기는 식이었습니다. 칼빈은 오늘날에도 사람 앞에서는 부끄러워 못 할 욕심을 하나님께 늘어놓는 일이 흔하다고 꼬집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이런 수준에 이를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성령을 주셔서 기도의 방향을 잡고 욕심을 제어하십니다. 칼빈은 로마서 8:26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성령이 말 그대로 탄식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는 가질 수 없는 탄식과 소원과 신뢰를 우리 안에 일으키신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령이 내 마음을 붙잡아 주실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말은 불경하다고 단호히 반박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은 우리의 노력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부추깁니다.
- 생각과 감정을 모두 기도에 모은다
- 하나님을 친구와 수다 떨듯 대하지 말 것
-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구한다
- 성령이 탄식과 소원을 우리 안에 일으키신다
- 성령의 도움이 노력을 면제하지 않는다
둘째 법칙: 필요를 절감하며 통회함으로 기도해야 함. 6-7
6. 필요를 절실히 깨닫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함
둘째 법칙은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진짜로 느끼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꼭 얻고 싶다는 뜨거운 소원으로 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의무를 바치듯 정해진 형식의 기도를 차가운 마음으로 습관처럼 반복합니다. 필요를 막연하게만 느낄 뿐, 그것이 절박한 문제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칼빈은 특히 두 가지를 경계합니다. 첫째, 스스로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으면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일입니다. 속으로는 하나님 은혜 없이도 얻을 수 있다고, 혹은 이미 내 것이라고 여기면서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그보다는 덜하지만 생각 없이 중얼거리는 기도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기도만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풀린다고 여기는 태도입니다. 당장 내게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구하는 기도도 열심이 식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할 때는 그것을 주리고 목마르게 바라야 합니다.
- 둘째 법칙: 내 부족함을 진짜로 느낄 것
- 습관적·형식적 기도는 하나님을 조롱한다
- 죄인이라 느끼지 않으며 용서를 비는 거짓
- 생각 없는 중얼거림도 용납되지 않는다
-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도 목마르게
7. 항상 기도함과 회개의 필요성
"기도하고 싶은 마음과 필요가 늘 똑같지는 않지 않은가?"라는 반론을 칼빈은 인정합니다. 야고보도 고난당하면 기도하고 즐거우면 찬송하라고 구분했습니다. 시련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만날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말도 똑같이 참됩니다. 형편이 아무리 좋아도 기도가 필요 없을 만큼 부족함이 없는 순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창고에 곡식과 포도주가 넘쳐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빵 한 조각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자도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더 분명합니다. 죄와 시험이 끊이지 않는데 어떻게 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 법칙은 기도에서 외식과 거짓을 걷어 냅니다. 그래서 합당한 기도에는 반드시 회개가 따라야 합니다. 마음을 닫고 악을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귀를 닫으십니다. 입술로만 가까이하는 겉치레는 기도뿐 아니라 예배 전체에서 가증합니다. 칼빈은 경건한 사람이 자기 공로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곧 다루겠다고 밝힙니다. 그러면서도 "계명을 지키는 자가 구하는 것을 받는다"는 말씀이 쓸데없지 않다고 덧붙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 안의 잘못을 미워하며, 회개하는 거지의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 시련은 하나님을 '만날 기회'다
- 형통할 때도 쉬지 말고 기도한다
- 부자도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한다
- 합당한 기도에는 반드시 회개가 따른다
- 거지의 심정으로 기도하라
셋째 법칙: 나 자신에 대한 모든 신뢰를 버리고 겸손하게 용서를 구하여야 함. 8-10
8.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함
셋째 법칙은 하나님 앞에 설 때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모두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신뢰를 버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티끌만큼이라도 내 권리를 내세우면 교만이 생기고, 하나님은 얼굴을 돌리십니다. 거룩한 사람일수록 하나님 앞에서 더 낮아집니다. 하나님께 크게 칭찬받은 다니엘도 "우리의 의가 아니라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한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무리에 묻어가지 않고 자기 죄와 백성의 죄를 직접 고백했습니다.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도 같은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붙든 근거는 단 하나, "우리는 주의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칼빈은 외경인 바룩서도 인용합니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밝히면서도, 조상과 왕들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는 경건한 기도의 예로 듭니다.
- 셋째 법칙: 자기 신뢰를 모두 버린다
- 권리를 내세우면 하나님이 외면하신다
- 거룩한 사람일수록 더 낮아진다
- 다니엘은 주의 큰 긍휼만 의지했다
- 근거는 "우리는 주의 것"이라는 사실
9. 죄 사함을 위한 간구의 중요성
죄를 겸손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의 준비이자 시작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죄 고백은 기도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다윗은 다른 일을 구할 때도 젊은 시절의 죄까지 기억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날그날의 죄뿐 아니라 잊어버린 옛 죄까지 내어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자기가 죄 중에 태어났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핑계를 대려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죄를 다 모아 자신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형벌을 면하게 해 달라고 구할 때는 그 원인인 죄의 용서도 함께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증상만 고치려 하고 병의 뿌리는 내버려 두는 어리석은 환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시기 전에 먼저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것도 이 순서를 보여 줍니다. 무엇보다 기도는 하나님의 값없는 긍휼에 근거해야 그분께 닿습니다. 구약 시대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며 기도한 것도 사람이 스스로는 그 특권을 누릴 자격이 없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 죄 고백이 기도의 준비이자 시작이다
- 잊어버린 옛 죄까지 내어놓는다
- 형벌보다 죄의 용서를 먼저 구한다
- 증상만 고치려는 환자가 되지 말 것
- 기도는 값없는 긍휼 위에서만 닿는다
10. 자기의 의로움에 호소하는 문제
그런데 성경의 성도들이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기도도 있습니다. 다윗은 "나는 경건하오니"라고 했고, 히스기야는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이들이 공로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고백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의인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계명을 지키는 자가 받는다"는 말씀도 기도의 값을 행위 공적으로 매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에게 확신을 주시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는 말도 같습니다. 여기서 '죄인'은 의에 관심 없이 죄 속에 편히 잠든 사람을 뜻합니다. 거룩을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진실한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대개 원수와 자신을 비교하며 억울함을 호소할 때입니다. 칼빈은 이 위로의 특권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고 밝힙니다. 다만 응답의 확신은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의로움 호소는 '자녀 됨'의 고백이다
- 기도의 값을 공적으로 매기지 않는다
- '죄인'은 죄 속에 편히 잠든 사람
- 원수와 비교할 때 진실함을 토로한다
- 응답의 확신은 오직 긍휼에 둔다
넷째 법칙: 확실한 소망을 갖고 기도함. 11-14
11. 회개와 믿음, 그리고 두려움과 확신
넷째 법칙은 이렇게 낮아지면서도 응답을 확실히 기대하며 힘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떠는 것과 그분의 은혜를 확신하는 것은 서로 부딪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죄에 짓눌린 사람을 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뿐이라는 점에서 둘은 잘 어울립니다. 회개와 믿음은 늘 함께 갑니다. 회개는 두려움을, 믿음은 기쁨을 낳으니 기도에도 둘이 함께 있습니다. 다윗이 주의 사랑을 힘입어 성전에 들어가되 경외함으로 경배한 것이 그 예입니다. 여기서 '확신'은 걱정 하나 없는 편안한 상태가 아닙니다. 절망에 빠지려는 바로 그때 믿음이 찾아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믿음의 발자국'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과 야고보는 믿고 의심하지 말고 구하라고 가르칩니다. 의심하며 흔들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 없다고도 합니다. 바울이 "믿지 않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라고 한 것도 같은 뜻입니다. 기도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긍휼을 믿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 넷째 법칙: 응답을 확실히 기대할 것
- 회개는 두려움을, 믿음은 기쁨을 낳는다
- 확신은 근심 없는 편안함이 아니다
- 절망의 순간에 믿음이 붙들어 준다
- 기도는 복음에서 난 믿음에서 출발한다
12. 담대한 확신이 필요함
칼빈이 '반대자들'이라 부르는 이들은 응답을 확신하라는 가르침을 세상에서 가장 모순된 말이라고 여깁니다. 다른 곳의 논의로 보아 당시 구원의 확신을 부정하던 스콜라 신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칼빈은 참된 기도를 한 번이라도 해 보면 확신 없이는 기도가 안 된다는 걸 알 것이라고 답합니다.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근심이 많아 왔으니, 가치가 있다고 여기시면 도와주소서." 이런 기도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합니다. 바울이 '믿음'에 '담대함'과 '당당함'을 덧붙인 것은, 아무렇게나 기도하는 불신자와 신자를 구별하려는 것입니다. 망대에서 기다리듯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으면 기도는 헛됩니다. 바울이 기도를 권하기 전에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부터 들라고 한 순서도 이를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내 비참함과 죄를 모른 척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신자는 죄에 짓눌려 있어도 그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도는 자녀가 부모에게 하듯 죄를 털어놓고 필요를 내놓는 것입니다. 죄가 많을수록 오히려 더 나아갈 이유가 됩니다.
- 확신 없는 기도는 성경에 없다
-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다
- 망대에서 기다리듯 응답을 바라본다
- 죄의 자각이 나아감을 막지 못한다
- 자녀가 부모에게 하듯 털어놓는다
13. 기도의 동기 —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그 명령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경건의 의무 가운데 이보다 자주 명령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명령에는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약속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이 명령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명령과 약속이 이렇게 분명한데도 "감히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다"고 트집 잡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칼빈은 그들이 불순종과 불신앙의 죄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겸손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명령을 무시하고 초대를 믿지 않으며, 예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가 전부처럼 여겨지던 시대에도 제물을 물리치고, 환난 날에 부르짖는 것을 더 귀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초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나아가는 것은 건방진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으로 자신을 소개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길을 여셨습니다. 다윗도 약속을 받았기에 기도할 용기를 냈습니다. 시편에서 기도가 중간에 끊기고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묵상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 아닙니다. 식은 마음을 새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 명령에는 응답의 약속이 붙어 있다
- 거짓 겸손으로 나아가지 않음은 불신앙
- 하나님이 먼저 초대하셔서 길을 여셨다
- 기도 중 말씀을 묵상해 마음을 새롭게
14. 약속을 의지하여 기도함
이렇게 많은 약속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차갑게 반응합니다. 칼빈은 그 모습이 생수의 샘을 버리고 물 없는 웅덩이를 파는 것과 같다며 놀라워합니다. 성경은 거듭 약속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이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며, 부르기 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약속들을 늘 귀에 울리게 하라고 권합니다. 기도는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기대므로, 다른 데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삶이 족장이나 사도들에 못 미쳐도 상관없습니다. 같은 명령과 같은 믿음을 받았으니 우리도 그들의 동료입니다. 성경의 '누구든지'는 아무도 빼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함과 겸손과 믿음은 있어야 합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그리고 야곱은 약속을 근거로 담대히 구했습니다. 반대로 어려울 때 하나님께 피하지 않는 불신자는 그분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고, 결국 우상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겸손히 '내려놓는' 기도와 담대히 '올려 드리는' 기도는 모순이 아닙니다. 신자는 약속의 사다리를 오르면서도 계속 자신을 낮춥니다.
- 기도는 공로가 아닌 약속에 기댄다
- 약속의 말씀이 늘 귀에 울리게 하라
- 같은 명령·같은 믿음, 우리도 성도의 동료
- 하나님께 피하지 않음은 우상 숭배와 같다
- 담대함과 겸손은 함께 간다
하나님은 결점이 있는 기도도 들으심. 15-16
15. 잘못된 기도에 대한 응답
그런데 성경에는 바르지 않은 기도가 응답된 경우도 있습니다. 요담은 분노와 복수심으로 세겜 사람들을 저주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삼손의 마지막 기도에도 선한 열심과 함께 격한 복수심이 가득했는데 응답되었습니다. 칼빈은 두 가지로 답합니다. 첫째, 몇몇 예외로 보편 원리를 폐할 수 없습니다. 둘째, 특정 인물에게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엘리야를 흉내 내려던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그 기도가 다 기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억울한 자의 탄식을 들으신다는 진리를 실제로 보여 주시려고, 믿음 없는 사람의 부르짖음에도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시편 107편이 그 예이고, 아합의 겉치레 회개와 사사기 백성의 가식적인 눈물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불신자에게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드러내고, 신자를 더 간절히 기도하도록 격려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과 관계된 응답이 아닙니다. 악인에게도 햇빛과 양식을 주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해, 사무엘은 버림받은 사울을 위해,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칼빈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가치 없는 자도 불쌍히 여기라는 하나님의 일반 원리에 따라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이 아니라 알려 주신 뜻을 따라 기도하며, 하나님은 그 기도를 그분의 지혜로운 방식으로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예를 흉내 내거나 핑계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한 약속이 없는 일은 조건을 달아 구해야 합니다.
- 몇몇 예외로 원칙을 폐할 수 없다
- 들으신다고 다 기쁘신 기도는 아니다
- 불신자 기도 응답은 구원과 무관하다
- 거절된 성도의 기도도 헛되지 않다
- 약속이 없으면 조건을 달아 구한다
16. 기도의 응답은 오직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통해서 얻어짐
칼빈은 앞의 네 법칙을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믿음과 회개와 열심이 완벽해야만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법칙을 완벽하게 지키며 기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도 격한 슬픔에 "나를 내버려 두소서"라고 외칠 만큼 선을 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르치려 하거나 원망해서가 아니라, 무너진 마음을 아버지 품에 쏟아 낸 것입니다. 첫째 법칙과는 분명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둘째 법칙에서도 우리는 자주 냉랭하고 산만합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면서도 마음은 땅에 붙어 있음을 느낍니다. 셋째 법칙의 죄 고백도 다윗이 말한 '상한 심령'의 십분의 일에도 못 미칩니다. 그래서 두 가지 용서를 늘 구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기도의 결점에 대한 용서이고, 다른 하나는 범한 죄의 형벌에 대한 용서입니다. 가장 큰 결함은 믿음의 연약함입니다. 성경에는 시련 속에서 "기도에 대해 언제까지 노하시렵니까"라고 울부짖는 성도들이 나옵니다. 성도의 믿음에는 의심과 두려움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더듬거림을 용납하십니다. 이것은 결점을 눈감아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철저히 돌아보고 계속 전진하라는 말입니다. 칼빈은 자기 방법으로 결점을 고치려다 오히려 더 깊은 병에 빠진 이들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목표에 다 이르지 못해도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 네 법칙을 율법처럼 몰아붙이지 말 것
- 완벽하게 기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기도의 결점과 죄, 두 가지 용서를 구한다
- 가장 큰 결함은 믿음의 연약함이다
- 결점을 핑계 말고 계속 전진한다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일반적 반론 | 하나님이 이미 다 아시니 기도는 쓸데없다 | 기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다. 믿음이 무뎌지지 않게 하고 여섯 가지 유익을 준다 | 열왕기상 18:42, 시편 121:4 열왕기상 18: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시편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
| 섭리를 이유로 한 반론 | 섭리가 모든 일을 돌보니 간구는 소용없다 | 정반대다.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에게 가까이하신다 | 시편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
| 하나님의 뜻을 이유로 한 반론 | 어차피 하나님 뜻대로 주시니 기도할 필요가 없다 | 모든 것이 그분의 뜻에서 나와도 우리는 기도로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 시편 34:15, 베드로전서 3:12 시편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베드로전서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
| 성령을 기다리자는 주장 (칼빈은 이름을 밝히지 않음) | 성령이 마음을 붙잡아 주실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 불경한 말이다. 성령은 우리의 게으름을 미워하고 애쓰게 하신다 | 로마서 8:26, 고린도전서 14:15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
| 욕심대로 구하는 태도 (옛 이방 수호신 숭배와 비교) |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나님께 빌면 된다 | 마음은 토하되 그분의 뜻 안에서 구해야 한다 | 시편 62:8, 요한일서 5:14 시편 62: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요한일서 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
| 형식주의 | 정해진 기도를 반복하기만 하면 진노가 풀린다 |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회개 없이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 이사야 29:13, 이사야 1:15 이사야 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사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
| 공로 사상 | 성도가 자기 의를 호소하니 행위가 응답의 근거다 | 그것은 '자녀 됨'의 고백이다. 응답의 확신은 오직 긍휼에 둔다 | 다니엘 9:18, 요한일서 3:22 다니엘 9: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요한일서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 확신을 부정하는 쪽 ('반대자들', 당시 스콜라 신학자로 보임) | 응답을 확신하는 것은 모순이고 교만이다 | 의심하는 기도는 성경에 없다. 담대함은 겸손과 함께 간다 | 히브리서 4:16, 에베소서 3:12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에베소서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
| 거짓 겸손 | 나 같은 사람이 감히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다 | 명령과 약속을 무시하는 불순종이자 불신앙이다. 하나님이 먼저 초대하셨다 | 시편 50:15, 마태복음 7:7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 예외 사례를 근거로 한 주장 | 분노나 복수의 기도도 응답되니 원칙은 필요 없다 | 예외로 원칙을 폐할 수 없다. 들으신다고 다 기쁘신 것도 아니다 | 사사기 16:28, 누가복음 9:55 사사기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누가복음 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2) |
| 지나친 엄격주의 | 네 법칙을 완벽히 지켜야만 들으신다 | 완벽한 기도는 없다. 하나님은 결점을 용서로 덮으시되 우리는 계속 전진해야 한다 | 시편 39:13, 시편 51:17 시편 39: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
3. 용어
- 삼단논법
- 두 전제에서 결론을 끌어내는 논리 공식. 칼빈은 그리스도 안의 풍성함은 이런 논리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고 말한다.
- 양자의 영
- 우리를 하나님의 입양된 자녀로 확인해 주시는 성령. 그래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 섭리
- 하나님이 세상과 우리 삶의 모든 일을 돌보고 다스리시는 것.
- 경외
-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 갖는 존경과 두려움. 무서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마음이다.
- 외식
- 속마음 없이 겉으로만 경건한 척하는 것.
- 회개
- 죄를 죄로 인정하고 미워하며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
- 중생
-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거듭남'이라고도 한다.
- 공적(공로)
-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을 자격이 되는 내 선행. 칼빈은 기도의 응답이 이것에 달려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 긍휼
- 받을 자격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은혜.
- 외경
- 성경과 함께 전해졌지만 개신교가 정경(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책들. 바룩서가 여기에 속한다.
4. 청년의 삶으로
칼빈의 답: 기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안 하면 믿음이 무뎌진다(3절).
칼빈의 답: 마음은 다 쏟아 놓되, 사람 앞에서도 부끄러울 욕심은 내려놓아라. 약속되지 않은 일은 "주의 뜻이라면"이라는 조건을 달아라(5절, 15절).
칼빈의 답: 창고가 가득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빵 한 조각도 못 먹는다. 형통할 때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7절).
칼빈의 답: 죄 고백이 바로 기도의 시작이다. 근거는 내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니, 오히려 그래서 나아가라(9절, 12절).
칼빈의 답: 완벽하게 기도한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더듬거림도 받으신다. 다만 그걸 핑계 삼지 말고 계속 애써라(5절, 16절).
5. 이 편의 결론
- 모든 좋은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기도는 그 보물을 실제로 캐내는 믿음의 주된 활동이다.
- 올바른 기도의 네 법칙은 경외와 집중, 절실함과 회개, 자기 의를 버리고 긍휼만 구함, 겸손 속의 확신이다.
- 기도의 근거는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 두려움과 확신, 겸손과 담대함은 모순이 아니라 함께 간다.
- 하나님은 결점 많은 우리 기도를 용서로 받아 주신다. 우리는 그 은혜에 기대어 계속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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