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구원받았다면 이제 뭐든 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눈치 보며 지켜야 할 게 있을까?"
칼빈은 '자유'라는 말이 방종의 핑계가 되기 쉽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래도 이 가르침을 모르면 양심이 늘 불안하다고 보고 정면으로 다룹니다. 먼저 자유를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문제에서 양심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만 의지합니다. 둘째,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난 양심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녀로서 기쁘게 순종합니다. 셋째, 선도 악도 아닌 외적인 일(음식·옷·날짜)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매이지 않습니다. 이어서 칼빈은 이 자유가 사치의 핑계나 연약한 형제를 넘어뜨리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사랑과 절제의 기준을 세웁니다. 마지막으로 '양심'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사람의 법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다스릴 수 있어도 하나님 앞의 양심은 묶을 수 없다고 결론짓습니다.
1. 절별 정리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가르침의 필요성. 1-3
1.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바로 이해해야 함
칼빈은 복음을 정리하려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양심이 무엇을 하든 머뭇거리고, 온갖 문제 앞에서 의심하며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칭의(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심) 교리에 바로 이어지는 가르침이어서, 칭의가 얼마나 힘 있는 진리인지 깨닫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칼빈은 이 주제를 지금까지 미뤄 온 이유도 밝힙니다. '자유'라는 말만 꺼내도 어떤 사람은 욕망을 풀어놓는 핑계로 삼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질서와 절제가 무너질까 봐 이 개념 자체를 꺼립니다. 그렇다고 위험하니 자유를 버리자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자유를 모르면 그리스도도, 복음의 진리도, 영혼의 평안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가르침은 지키고, 흔히 나오는 어리석은 반론은 걷어 내겠다고 말합니다.
- 자유를 모르면 양심이 늘 흔들린다
- 자유는 칭의 교리 바로 다음 가르침
- 방종하는 쪽도, 겁내는 쪽도 오해
- 위험해도 버리지 말고 바로 가르친다
2. 의롭다 하심은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 없음
자유의 첫째 부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확신을 찾을 때, 신자의 양심은 율법을 넘어서야 합니다. 율법은 세상 누구도 의롭다고 봐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율법으로 따지면 소망이 없습니다. 길은 율법에서 풀려나 행위를 따지는 계산에서 벗어나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행위를 조금은 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조금'의 방식과 한계를 사람이 정할 수 없으므로, 결국 율법 전체에 빚진 자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칭의 문제에서는 율법과 행위를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만 바라봐야 합니다. 질문은 '내가 어떻게 의로워지나'가 아니라 '불의한 내가 어떻게 의롭다고 인정받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신자에게 쓸모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심판대 앞에서는 율법을 의지하지 않지만, 삶에서는 율법이 계속 가르치고 권하여 거룩을 향하게 합니다. 칼빈은 이 두 자리를 조심스럽게 구분하라고 말합니다.
- 칭의의 확신은 율법 아닌 그리스도에게서
- '조금의 행위'는 기준을 정할 수 없다
- 결국 율법 전체에 빚진 자가 된다
- 그래도 율법은 삶의 길잡이로 남는다
- 심판대 앞과 삶의 자리를 구분하라
3. 갈라디아서의 논지
칼빈은 갈라디아서의 논지 거의 전부가 이 문제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일부 해석자는 바울이 말한 해방이 구약 의식(제사·할례 같은 예배 규정)에서 풀려나는 것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칼빈은 갈라디아서 3:13과 5:1-4가 그보다 훨씬 큰 문제를 말한다고 반박합니다. 거기서는 저주에서의 속량, 그리고 할례로 의를 얻으려 하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는 경고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울이 의식 문제를 다룬 것은 사실입니다. 거짓 사도들이 이미 폐지된 옛 '그림자' 속으로 교회를 다시 끌고 들어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과정에서 더 높은 진리를 드러냅니다. 첫째, 의식이 가리키던 것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둘째, 어떤 행위로도, 의식을 지키는 것으로도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합니다. 셋째, 율법의 정죄에서 풀려나는 길은 오직 십자가뿐이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안식할 수 있습니다. 넷째, 이렇게 얻은 양심의 자유를 쓸데없이 다시 묶지 말아야 합니다.
- 갈라디아서는 의식 해방만의 이야기 아님
- 의식은 그리스도를 가리킨 그림자
- 어떤 행위로도 의롭다 함 못 받음
- 정죄에서의 자유는 오직 십자가로
- 얻은 자유를 다시 묶지 말 것
율법의 강요가 아니라 자유로운 양심으로 기꺼이 순종함. 4-6
4. 순종은 율법의 강요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님
자유의 둘째 부분은 첫째 부분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자유로운 양심은 율법을 지키되, 억지로 끌려가듯 하지 않고 스스로 기꺼이 하나님 뜻에 순종합니다. 율법의 멍에 아래 있으면 늘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 멍에에서 풀려나야 기쁘게 순종할 마음이 생깁니다. 칼빈은 신명기 6:5를 예로 듭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다른 모든 생각을 비우고 온 영혼을 한곳에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성장한 신자도 이 목표에서는 아직 멉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해도 육체의 욕망이 발목을 잡습니다. 율법의 기준으로 보면 그들의 모든 시도는 저주받을 것으로만 보입니다. '불완전할 뿐 조금은 선하니 받아 주시겠지' 하는 위로도 통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완전한 사랑을 요구하므로 불완전함 자체가 율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자유가 먼저, 기쁜 순종은 그다음
- 멍에 아래에선 두려움만 남는다
- 가장 성숙한 신자도 율법엔 못 미침
- '조금은 선하다'는 위로도 안 통함
- 율법은 불완전함 자체를 정죄
5. 진정한 순종의 동기
선을 행해도 저주만 돌아온다면, 그 사람이 무슨 마음으로 일에 힘을 쏟겠습니까? 그러나 율법의 엄격한 요구에서 풀려나 아버지처럼 부르시는 음성을 들으면, 기쁘게 온 마음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칼빈은 종과 자녀를 비교합니다. 종은 날마다 정해진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주인 앞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자녀는 일을 반쯤 했거나 흠이 있어도 있는 그대로 부모 앞에 내놓습니다. 부모가 그 마음과 순종을 받아 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작고 불완전한 섬김을 자비로운 아버지가 받아 주신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말라기 3:17의 '아낀다'는 말은 너그럽게 봐주고, 부족해도 탓하지 않고, 그 섬김을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노여워하실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진심 어린 섬김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심 없는 선행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 종은 할당량으로, 자녀는 관계로 산다
- 반쯤 한 일도 아버지께 내놓는다
- 불완전한 섬김도 받으신다는 확신
- 불안 속에서는 진심의 순종이 안 나옴
6.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선행을 격려함
히브리서 11장이 옛 족장들의 선행을 모두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칼빈은 로마서 6:14를 이 자유를 보여 주는 대표 구절로 듭니다. 바울은 바로 앞(로마서 6:12-13)에서 몸을 죄에 내주지 말고 의의 도구로 드리라고 권합니다. 신자들은 '우리 안에 아직 욕망과 죄가 남아 있는데요' 하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칼빈은 14절을 그런 신자들을 위한 위로로 읽습니다. 뜻은 이렇습니다. '죄가 다 사라지고 의가 가득하다고 느끼지 못해도, 남은 죄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실까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은혜로 율법에서 자유로워졌고, 너희 행위는 율법 기준으로 심판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율법 아래 있지 않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자유를 주장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 자유의 목적은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선행은 믿음에서 흘러나온다
- 로마서 6:14는 연약한 신자를 위한 위로
- 남은 죄 때문에 낙심하지 않아도 됨
- 죄 지을 핑계로 쓰면 그건 자유가 아님
'중립적인 것들'에 대한 자유에 대한 로마서의 증거. 7-9
7. 중립적인 것들에 대한 자유
자유의 셋째 부분입니다.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닌 외적인 일들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아닙니다. 쓰느냐 안 쓰느냐는 우리 자유에 맡겨져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양심이 쉬지 못하고 미신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당시 사람들은 고기·옷·휴일 같은 문제를 따지는 개혁자들을 어리석다고 여겼습니다. 칼빈은 이것이 결코 하찮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양심이 한번 이 그물에 걸리면 끝없는 미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고급 리넨이 괜찮은지 의심하기 시작하면 삼베도, 거친 삼베도 불편해지고, 결국 냅킨 없이 살아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좋은 음식과 좋은 포도주를 의심하면 검은 빵과 물조차 편히 먹지 못하고, 마침내 지푸라기 하나 밟는 것도 죄처럼 느껴집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이것을 쓰는 게 하나님 뜻에 맞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의심에 빠지면 어떤 사람은 절망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하나님 경외를 버립니다. 어느 쪽이든 양심에 걸립니다.
- 중립적인 일은 하나님 앞에서 매이지 않음
- 모르면 양심이 쉬지 못하고 미신이 됨
- 의심은 끝없이 미끄러진다
- 결과는 절망 아니면 하나님 무시
8. 자유와 하나님의 목적
바울은 무엇이든 그 자체로 속된 것은 없고, 속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 속되다고 말합니다(로마서 14:14). 외적인 것들은 모두 우리 자유에 속합니다. 하지만 미신적인 생각 때문에 꺼림칙하게 여기면, 본래 깨끗한 것도 그 사람에게는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의심하면서 하는 것은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이라 죄가 됩니다(로마서 14:22-23). 그렇다면 확신을 갖고 마음대로 행동하면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양심을 거슬러 억지로 행하면 두려움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고 답합니다. 그런 상태는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로 받는 상태가 아닙니다. 바울은 감사함으로 받을 때 모든 것이 거룩해진다고 말합니다(디모데전서 4:4-5). 감사란 선물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알아보는 마음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거리낌 없이, 주신 목적에 맞게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립니다.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의식들도 마찬가지여서 강요받을 필요는 없지만, 쓸 때는 덕을 세우는 쪽으로 써야 합니다.
- 그 자체로 속된 물건은 없다
- 의심하며 하면 그 사람에겐 죄
- 감사로 받을 때 선물이 거룩해진다
- 주신 목적대로 거리낌 없이 사용
- 사용의 방향은 덕을 세우는 쪽
9. 사치와 탐욕,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모든 부분에서 '영적인'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이 자유의 힘은 하나님 앞에서 떠는 양심에 평안을 주는 데 있습니다. 죄 용서 때문에 불안할 때, 불완전한 행위 때문에 걱정할 때, 중립적인 일이 꺼림칙할 때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왜곡이 생깁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선물을 욕망대로 쓰면서 자유를 변명거리로 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유란 사람 앞에서 드러내라고 있는 것이라며 연약한 형제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칼빈 당시에는 첫째가 훨씬 흔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호화로운 잔치와 집과 옷을 '중립적인 일'이라며 정당화했습니다. 칼빈은 그것들이 정말 중립적인 태도로 쓰인다면 인정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탐하고 자랑하고 빠져 있다면, 그 자체로는 괜찮은 것도 더럽혀진다고 답합니다. 성경은 상아·금·재물·웃음·배부름·음악·포도주 자체를 금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쾌락에 취하고 늘 새 즐거움을 찾는 데 쓰는 것은 선물을 바르게 쓰는 것과 거리가 멉니다. 그러니 무절제와 허영과 교만을 버리고, 각자의 형편에 맞게, 선물은 사치가 아니라 삶을 위해 주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겉모습보다 마음이 문제라는 뜻에서, 초라한 옷 속에 교만이 숨기도 하고 세련된 옷 속에 겸손이 빛나기도 한다는 속담도 인용합니다.
- 자유는 영적 문제, 목적은 양심의 평안
- 사치의 핑계로 쓰면 자유를 왜곡한 것
- 물건은 중립, 탐욕과 자랑이 더럽힌다
- 선물은 사치가 아니라 삶을 위해 주심
- 가난과 풍부 모두에 처하는 법 배우기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연약한 형제들과의 관계, 또한 상처를 주는 문제. 10-13
10.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을 생각하여야 함
많은 사람이 자유를 남에게 보여 줘야 제대로 누리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다 무분별하게 자유를 써서 믿음이 약한 형제를 상하게 합니다. 칼빈의 예는 금요일에 일부러 고기를 먹어야 자유를 누린다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당시 로마 교회는 금요일에 고기를 금했음). 칼빈은 고기를 먹는 것 자체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생각은 버리라고 합니다. 자유는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것이지 사람 앞에서 과시해서 더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기든 달걀이든, 붉은 옷이든 검은 옷이든 하나님 앞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뒤로 평생 고기를 안 먹고 한 가지 색 옷만 입어도 자유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롭기 때문에 자유롭게 삼가는 것입니다. 연약한 형제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 자유를 쓰는 것은 큰 잘못이므로 우리가 참아야 합니다. 자유를 드러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때도 하나님이 맡기신 연약한 형제 돌봄을 포기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해야 합니다.
- 자유는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 하나님 앞에서 알면 그것으로 충분
- 삼가는 것도 자유의 한 모습
- 약한 형제를 무시하면 큰 잘못
- 드러낼 때도 약한 이를 돌볼 것
11. 상처를 주는 문제
칼빈은 사람 앞에서 자유를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정하려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여기서 '상처'는 신앙의 걸림돌을 뜻함)을 둘로 나눕니다. 내가 경솔하거나 방종하게, 질서 없이 행동해서 약하고 단순한 형제가 넘어지면, 그것은 내가 '상처를 준' 것입니다. 원인이 내 잘못에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는 악의도 잘못도 없었는데 상대가 악의로 받아들여 이유 없이 걸려 넘어지면, 그것은 상대가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연약한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앞의 경우이고, 바리새인이 걸려 넘어지는 것은 뒤의 경우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형제의 무지는 배려해야 하지만, 바리새인의 완고함까지 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갈라디아서에서 약한 자를 받고, 걸림돌을 두지 말고,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고 거듭 말합니다. 자유는 형제를 넘어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평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화평하게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바리새인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대답이 기준입니다.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이 걸려 넘어졌다고 전하자, 예수님은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 '준 상처'와 '받은 상처'를 구분
- 내 경솔함이 원인이면 내 책임
- 약한 형제의 무지는 배려 대상
- 바리새인의 완고함엔 끌려가지 않음
- 자유의 목적은 화평과 사랑의 섬김
12. 자유를 사용할 때의 지혜
누가 연약한 사람이고 누가 바리새인인지 가려내지 못하면 혼란은 계속됩니다. 칼빈은 바울이 가르침과 본보기로 그 선을 그어 준다고 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했고(사도행전 16:3), 디도에게는 할례를 거부했습니다(갈라디아서 2:3). 행동은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습니다. 디모데의 경우,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웠지만 사람들을 얻으려고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9:20-22). 중립적인 일에서는 자유를 절제해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디도의 경우는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신자의 자유를 빼앗아 종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에 한순간도 굽히지 않았습니다(갈라디아서 2:3-5). 거짓 교사의 부당한 요구로 연약한 이들의 양심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는 자유를 분명히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경우든 기준은 사랑과 이웃의 덕입니다. 이웃에게 덕이 되면 자유를 쓰고, 도움이 안 되면 삼갑니다(고린도전서 10:23-24). 반대로 바울을 흉내 내 '절제'를 내세우면서 실은 자기 안락을 지키려고 자유 이야기 자체를 막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칼빈은 이웃을 위해 자유를 쓰는 것이 삼가는 것만큼 중요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외적인 일에서 자유를 주신 이유는 사랑의 의무를 더 잘 실천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디모데는 할례, 디도는 거부, 목적은 같음
- 사람을 얻으려 할 땐 자유를 절제
- 자유를 빼앗으려는 요구엔 굽히지 않음
- 기준은 '이웃에게 덕이 되느냐'
- 안락을 지키려는 침묵도 잘못
13.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
지금까지는 중립적인 일을 다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다릅니다. 누가 걸려 넘어질 염려가 있어도 해야 합니다. 사랑이 자유보다 앞서듯, 순결한 믿음이 사랑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예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라는 말씀처럼 사랑은 매우 중요합니다(마태복음 5:23-24 참조). 하지만 이웃을 위한다며 하나님을 노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칼빈은 일을 차근차근 하지 않고 소란을 일으키는 조급한 사람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불경한 일에 앞장서 놓고 '이웃이 걸려 넘어질까 봐 그랬다'고 둘러대는 사람들의 말도 듣지 말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초신자에게는 젖이 필요하다'며 해로운 생각을 심습니다.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젖을 먹였습니다(고린도전서 3:2). 그러나 고린도에 로마 교회의 미사가 있었다면, 바울이 '젖'이라며 그것을 용인했겠느냐고 칼빈은 묻습니다. 젖과 독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설령 잠시 허용한다 해도 언제까지 젖만 먹이겠습니까? 칼빈은 이들을 길게 논박하지 않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듭니다. 지각 있는 사람은 이미 이들을 싫어하고, 다른 글에서 충분히 반박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독자에게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사탄과 세상이 어떤 방법을 쓰든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꿋꿋이 나아갈 것, 그리고 어떤 위험이 와도 하나님의 명령에서 조금도 벗어날 자유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 자유보다 사랑, 사랑보다 순결한 믿음
- 해야 할 일은 오해가 있어도 한다
- '배려'를 핑계로 한 타협은 거부
- 젖과 독은 다르다
- 하나님 명령 밖으로 나갈 자유는 없다
전통과 민간 정부에 대한 자유와 양심의 문제. 14-16
14.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인간의 권위
신자는 그리스도의 권위로 이 자유를 받아, 그리스도가 풀어 주신 문제들에서 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자의 양심은 모든 인간 권위에서도 자유롭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사라지고, 양심은 그 은혜의 유익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이 자유는 사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금이나 은이 아니라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1:18-19). 칼빈은 바울의 말을 빌려, 우리 영혼을 사람에게 굴복시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되게 된다고 말합니다(갈라디아서 2:21). 갈라디아서는 여러 장에 걸쳐, 양심이 자유를 지키지 못하면 그리스도가 흐려지고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율법과 사람의 규칙에 매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상태라면 양심의 자유를 잃은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제도가 폐지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선동가와 비방자들이 마치 모든 순종이 사라진 것처럼 혼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 문제를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합니다.
- 양심은 인간 권위에 매이지 않는다
- 이 자유는 그리스도의 피로 산 것
- 양심이 묶이면 그리스도가 흐려진다
- 그렇다고 모든 순종이 폐지된 건 아님
15. 이중적인 통치
이 가르침이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사람을 다스리는 통치가 두 가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영적 통치로, 양심을 경건과 예배로 훈련하며 영혼과 관계됩니다. 다른 하나는 국가적 통치로, 사람이자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가르칩니다. 음식이나 옷, 질서 있는 공동생활에 필요한 법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행실과 관계됩니다. 이를 흔히 영적 관할권과 세속적 관할권이라 부릅니다. 둘은 각각 따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 안에 두 세계가 있고, 각 세계를 서로 다른 왕과 법이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분은 두 오류를 막습니다.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우니 국가의 법에도 덜 매인다는 생각, 그리고 영적으로 자유로우니 몸으로 지는 의무를 면제받는다는 생각입니다. 영적 통치에 속해 보이는 제도라도 말씀에 맞는 것과 아닌 것을 가려야 합니다. 국가 통치는 뒤에서, 교회법은 4권에서 다루겠다고 예고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13:1, 5는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권세에 복종하라고 하니, 국가법이 양심까지 묶는 것처럼 보여 어려움이 생깁니다. 칼빈은 이 문제를 풀려면 먼저 '양심'의 뜻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안다'에서 '지식'이라는 말이 나오듯, 양심은 하나님의 공의를 아는 감각입니다. 이 감각이 증인이 되어 죄를 숨기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법정에 세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자기 안의 일을 덮어 두지 못하게 추궁하고, 정죄하기까지 합니다. 칼빈은 이 양심이 보초병처럼 숨은 비밀까지 살핀다며 '양심은 천 명의 증인'이라는 옛 격언을 인용합니다. 베드로전서 3:21과 히브리서 10:2도 같은 뜻으로 읽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 때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서고, 죄책에서 풀려나 죄가 더는 우리를 고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영적 통치와 국가적 통치를 구분
- 영적 자유는 사회적 의무 면제가 아님
- 로마서 13:5가 어려움을 더한다
- 양심은 하나님 앞의 내부 증인
- "양심은 천 명의 증인과 같다"
16. 양심의 자유
행위가 사람 사이의 일이라면 양심은 하나님과의 일입니다. 선한 양심은 속마음의 진실함입니다. 디모데전서 1:5와 1:19를 보면 양심은 지성(머리로 아는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살아 있는 성향이자,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려는 순수한 열심입니다. 사도행전 24:16처럼 사람에게도 양심을 말할 때가 있는데, 선한 양심의 열매가 사람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양심은 본래 하나님과의 관계에 속합니다. 그래서 '법이 양심을 묶는다'는 말은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그 사람 자신을 하나님 앞에 묶을 때 씁니다. 예를 들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음란과 더러운 말을 버리라는 명령은 세상에 나 혼자 있어도 양심으로 지켜야 합니다. 중립적인 일은 다릅니다. 남을 넘어지게 하는 일은 삼가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양심으로 그렇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0:28-29에서 누가 제물 고기라고 알려 주면, 알려 준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합니다. 경고를 듣고도 먹으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명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내 양심의 자유는 그대로입니다. 곧 이런 법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묶지만 양심의 자유는 그대로 둡니다.
- 행위는 사람 앞, 양심은 하나님 앞
- 양심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성향
- 하나님의 도덕법은 혼자여도 지킨다
- 중립적 일은 남을 위해 자유롭게 삼감
- 겉 행동은 묶여도 양심은 자유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자유를 경계하는 사람들 | 자유를 가르치면 순종과 질서가 무너진다 | 위험하다고 버리면 그리스도와 복음과 평안을 잃는다. 가르침은 지키고 오해를 걷어 내라 | 로마서 6:14, 갈라디아서 5:13 로마서 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
| 일부 해석자 | 갈라디아서의 자유는 구약 의식에서 풀려나는 것뿐이다 | 저주에서의 속량과 칭의가 걸린 더 큰 문제다 | 갈라디아서 3:13, 갈라디아서 5:1-4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5:1-4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
| 행위를 일부 요구하는 입장 | 의롭다 함을 받으려면 행위도 어느 정도 보여야 한다 | 그 정도를 사람이 정할 수 없어 결국 율법 전체에 빚진다.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 갈라디아서 5:3, 신명기 6:5 갈라디아서 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 불완전한 선행에 기대는 생각 | 불완전해도 조금은 선하니 하나님이 받아 주신다 | 율법은 불완전함 자체를 정죄한다. 받아 주시는 근거는 아버지의 너그러움이다 | 신명기 6:5, 말라기 3:17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말라기 3: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
| 율법 무용론 | 칭의가 율법과 무관하니 신자에게 율법은 필요 없다 | 심판대 앞에선 의지하지 않지만, 삶에서는 거룩으로 이끄는 가르침이다 | 에베소서 1:4, 데살로니가전서 4:7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데살로니가전서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
| 방종주의 | 율법 아래 있지 않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 | 그런 사람은 자유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 자유의 목적은 선행을 격려하는 것이다 | 로마서 6:12-14 12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
| 사치하는 부유층 | 호화로운 잔치·집·옷은 중립적인 일이다 | 물건은 중립이지만 탐욕과 자랑이 그것을 더럽힌다 | 디도서 1:15, 이사야 5:8-12, 빌립보서 4:12 디도서 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이사야 5:8-12 8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11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빌립보서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 자유 과시형 | 자유는 사람 앞에서 드러내야 제대로 누리는 것이다(예: 금요일 육식) | 자유는 하나님 앞에서 누린다. 삼가는 것도 자유이며 약한 형제를 배려하라 | 로마서 14:13, 고린도전서 8:9 로마서 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고린도전서 8: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
| 안락 지키기형 | 바울처럼 절제해야 하니 자유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 | 이웃의 덕을 위해 자유를 써야 할 때가 있다. 자유를 빼앗으려는 요구엔 굽히지 말라 | 갈라디아서 2:3-5, 고린도전서 10:23-24 갈라디아서 2:3-5 3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0:23-24 23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
| 타협하는 '배려'론 | 초신자에겐 젖이 필요하니 미사 같은 관행도 당분간 용인하자 | 젖과 독은 다르다. 믿음이 사랑보다 앞서므로 하나님 명령을 벗어날 수 없다 | 고린도전서 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
| 선동가·비방자 | 인간 제도가 폐지되었다면 모든 순종이 사라진 것이다 | 영적 통치와 국가적 통치를 구분하면 시민으로서의 의무는 그대로다 |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
| 이름 밝히지 않은 급진적 주장 | 영적으로 자유하니 사회적·육체적 의무도 면제다 | 두 통치는 따로 보아야 한다. 영적 자유가 국가 질서로 옮겨지지 않는다 | 로마서 13:1, 로마서 13:5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로마서 13: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
| 로마서 13:5에서 생기는 난제 | 양심을 따라 복종하라면 국가법이 양심도 묶는 것 아닌가 | 양심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법은 겉 행동을 묶어도 양심의 자유는 남는다(자세한 논의는 4권) | 로마서 13:5, 고린도전서 10:28-29 로마서 13: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고린도전서 10:28-29 28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
3. 용어
- 그리스도인의 자유
- 그리스도 덕분에 신자의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정죄와 불필요한 속박에서 풀려난 상태.
- 칭의(의롭다 하심)
- 죄인이 자기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
- 율법의 멍에
- 율법의 요구를 다 채워야 받아들여진다는 압박. 소에게 씌우는 나무틀에 빗댄 말이다.
- 의식(儀式)
- 제사·할례·절기처럼 구약에서 예배와 관련해 정해진 규정. 칼빈은 이를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 '그림자'로 본다.
- 중립적인 것
-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닌 외적인 일(음식·옷·날짜 등). 신학에서는 흔히 헬라어로 '아디아포라'(차이 없는 것)라고 부른다.
- 미신
- 하나님이 정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 앞의 의무나 금기로 여겨 두려워하는 태도.
- 덕을 세우다
- 다른 사람의 신앙이 자라고 든든해지도록 돕는다는 뜻. 건물을 세우는 이미지에서 온 말이다.
- 상처를 주다 / 받다
- 여기서 '상처'는 서운함이 아니라 신앙의 걸림돌을 뜻한다. 내 잘못으로 남이 넘어지면 '준 것', 남이 악의로 넘어지면 '받은 것'이다.
- 영적 통치와 국가적 통치(관할권)
- 양심과 예배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겉 행실과 사회 질서를 다스리는 국가의 통치를 구분한 말.
- 양심
- 하나님의 공의를 아는 내면의 감각. 증인처럼 내 죄를 숨기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세운다. 라틴어 conscientia는 '함께 앎'이라는 뜻이다.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세 겹이다. 칭의에서 율법을 넘어서는 자유, 억지가 아니라 기꺼이 순종하는 자유, 중립적인 일에 매이지 않는 자유다.
- 이 자유는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영적인 것이다. 목적은 떨고 있는 양심의 평안과 선행의 격려이지, 욕망의 핑계가 아니다.
- 자유를 쓰는 기준은 사랑과 이웃의 덕이다. 약한 형제를 위해서는 삼가고, 자유를 빼앗으려는 요구에는 굽히지 않는다.
- 순서는 자유보다 사랑, 사랑보다 순결한 믿음이다. 하나님 명령을 벗어날 자유는 없다.
- 양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속한다. 사람의 법은 겉 행동을 다스릴 수 있어도 하나님 앞의 양심은 묶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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