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제2권 구속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2권 9편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

존 칼빈 『기독교강요』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 제2권 제11장 (2.11). 재료는 2절 중간부터 14절 끝까지. 1절은 빠져 있고, 끝에 붙은 제12장 앞부분은 다음 편 재료라서 제외함.

글자100%
한눈에 보기

구약이랑 신약이 결국 같은 하나님, 같은 구원 얘기라면,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건데?

칼빈은 앞 장(2.10)에서 구약과 신약이 본질에서 하나라고 밝혔다. 이 장에서는 그 위에서 '차이'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구약은 땅의 복으로 하늘의 유업을 보여 주었다. 둘째, 구약은 그림자였고 신약은 실체다. 셋째, 구약은 마음 밖에 쓰인 조문이었고 신약은 마음에 새겨진 영이다. 넷째, 구약은 두려움과 종노릇이고 신약은 신뢰와 자유다. 다섯째, 구약은 한 민족에게 주어졌고 신약은 모든 민족에게 열렸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그럼 하나님이 변하신 거냐"는 반론에 답한다. 하나님은 그대로이시고, 늘 변하는 사람의 형편에 맞춰 가르치는 방식만 바꾸셨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1. 절별 정리

1. (재료에 없음)

재료가 2절 중간에서 시작해서 1절 내용이 빠져 있다. 작가는 원문 2.11.1을 직접 확인해서 보충해야 한다. 이 편 안에서 확인되는 뼈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앞 장에서 구약과 신약의 일치를 이미 다루었다는 점이다(3절의 "앞에서 지적한 경륜"). 다른 하나는 차이가 "넷 또는 다섯"이라는 점이다(13절). 1절에서 칼빈은 이 차이들이 구원의 '본질'이 아니라 '시행 방식'의 차이라고 못 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본에 넣기 전에 원문으로 확인하기 바란다.

(첫 번째 차이점: 구약은 이 땅의 복을 통해 하늘의 유업을 보여 줌. 2-3) ※재료에 묶음 머리가 없어 내용에 맞춰 붙인 머리임

2. (절 제목 재료에 없음 — 내용: 가나안 땅은 하늘 유업의 모형)

재료는 이 절 중간부터 시작한다. 바울은 상속자도 어릴 때는 후견인 손에 맡겨진다는 비유를 든다. 바울은 이 비유를 주로 구약의 의식에 적용했지만, 칼빈은 지금 주제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본다. 유대인에게도 우리와 같은 유업과 같은 교회가 있었다. 다만 그들은 아직 어려서 그 유업을 직접 받아 관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인 약속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시고, 그들 수준에 맞게 땅의 약속에 담아 미리 보여 주셨다. 가나안 땅이 대표적인 예다. 가나안은 최종 목표가 아니었고, 아직 보이지 않는 참 유업을 바라보도록 훈련하는 도구였다. 하나님은 그들이 땅을 최고의 복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내가 너의 상급"이라는 더 높은 약속을 먼저 주셨다. 다윗의 시와 선지자들의 예언도 결국 땅 너머의 하늘 도성을 가리킨다.

  • 같은 유업, 같은 교회지만 '어린 시절'이었다
  • 영적 약속을 땅의 약속에 담아 보여 주셨다
  • 가나안 땅은 목적지가 아니라 훈련 도구였다
  • 아브라함의 최종 상급은 하나님 자신이었다
  • 예루살렘의 풍요 예언은 하늘 도성을 가리킨다
갈라디아서 4:1-2후견인 아래 있는 어린 상속자 비유. 구약 백성의 처지를 설명하는 틀
1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갈라디아서 4:3(참조) 땅의 상급은 '세상의 초등학문'에 속한 지나가는 것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창세기 15:1땅보다 먼저 "내가 네 상급"이라 하심. 최종 상급은 하나님 자신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시편 73:26다윗이 땅의 복 너머 하나님을 영원한 분깃으로 고백함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편 16:5여호와가 내 몫이라는 고백. 소망이 세상 너머에 있음을 드러냄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시편 142:5같은 취지. 주님이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내 분깃이심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잠언 2:21-22정직한 자가 '땅에 거한다'는 말씀도 모형으로 읽어야 함
21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22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욥기 18:17(참조) 악인이 땅에서 끊어진다는 같은 유형의 표현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이사야 35:10시온의 기쁨 예언. 이 땅의 예루살렘이 아닌 하늘 도성 이야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이사야 52:1 이하 · 60:4 이하 · 62장예루살렘의 부귀와 풍성함 예언. 같은 방식으로 해석함
이사야 52:1 이하 1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
이사야 60:4 이하 4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
이사야 62장 1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5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6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를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
시편 133:3하나님이 영생의 복을 명하신 곳, 곧 하늘 도성이 진짜 대상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최종적인 상급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었음을 보게 된다.칼빈, 『기독교강요』

3. 이 땅의 축복과 형벌은 모형들임

그래서 구약 성도들은 지금 우리에게 맞는 정도보다 이 세상의 삶과 복을 더 높이 여겼다. 그들도 삶이 이 땅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다만 땅의 복이 자기들의 연약함에 맞춰 주신 은혜의 증표였기 때문에, 그 증표에 더 마음이 끌렸다. 하나님은 땅의 좋은 것으로 자비를 보여 주시며 영적 행복을 미리 그려 주셨다. 반대로 악인에게는 몸에 닿는 형벌로 장차 올 심판을 보여 주셨다. 이 짝을 모르는 사람들은 놀란다. 옛날에는 죄마다 즉시 무섭게 벌하시던 하나님이 지금은 훨씬 부드럽고 드물게 벌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니교도처럼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다른 신으로 상상하기까지 한다. 칼빈의 답은 이렇다. 언약이 '수건에 가려져' 있던 시기에는 하나님이 영원한 행복을 땅의 혜택으로, 영적 죽음의 무게를 몸의 형벌로 표현하셨을 뿐이다.

  • 구약 성도는 땅의 복을 지금보다 더 귀히 여겼다
  • 땅의 복은 그들 연약함에 맞춘 '은혜의 증표'
  • 땅의 형벌은 영적 죽음을 보여 주는 그림
  • 상벌 방식이 달라도 하나님은 둘이 아니다
  • 마니교식 '두 하나님' 생각은 경륜을 몰라서다

두 번째 차이점: 구약은 형상과 의식들을 통해서 실체를 표현함. 4-6

4. 옛 언약과 새 언약

두 번째 차이는 '상징'이다. 구약은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그림자를 보여 주었고, 신약은 실체 자체를 드러낸다. 이 차이를 가장 자세히 다루는 곳이 히브리서다. 히브리서는 모세 율법 준수를 없애면 신앙 전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반박한다. 논리는 이렇다. 시편 110편은 그리스도에게 영원한 제사장직이 주어진다고 예언한다. 그렇다면 날마다 사람이 바뀌던 옛 제사장직은 끝난 것이다. 제사장직이 바뀌면 언약도 바뀐다. 율법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규정할 뿐 양심을 온전하게 하지 못하고, 짐승 제사로는 죄를 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고, 그 역할은 복음의 더 나은 소망으로 이끄는 데 있었다. 칼빈은 여기서 오해를 막는다. 이 비교는 약속의 본질이 다르다는 말이 아니다. 영원한 언약은 하나이고, 그 언약을 최종 확증하는 분이 그리스도시다. 모세의 의식은 그 확증을 기다리는 동안 주어진 엄숙한 상징이었다. 의식은 언약에 딸린 부속물이지만 언약을 시행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성례처럼 '언약'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구약'은 제사와 의식에 담긴 언약 확증 방식을 뜻한다. 이 방식은 그 너머를 보지 않으면 알맹이가 없으므로, 더 나은 언약의 보증이신 그리스도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칼빈은 다른 설명도 덧붙인다. 옛 언약은 확증되기 전까지 '공중에 떠 있는' 잠정적인 상태였고, 그리스도의 피로 인쳐질 때 비로소 새롭고 영원한 언약이 되었다는 것이다.

  • 구약은 그림자, 신약은 실체
  • 영원한 제사장 오심 → 옛 제사장직 폐지
  • 제사장직이 바뀌면 언약의 시행도 바뀐다
  • 비교 대상은 약속의 본질이 아니라 시행 방식
  •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쳐져 완성됨
시편 110:4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 예언. 히브리서 논증의 전제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브리서 7:11레위 제사장직으로는 온전함이 없었으므로 새 제사장이 필요했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히브리서 7:23죽음 때문에 계속 바뀌던 제사장직은 폐지되었다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히브리서 7:21새 제사장직은 맹세로 세워져 확실하다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브리서 8:6-13제사장직의 변화와 함께 언약도 바뀌었다
6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7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
히브리서 7:19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했다. 변화가 불가피했던 이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브리서 9:9예물과 제사로는 양심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히브리서 10:1율법은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 참 형상이 아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7:22그리스도는 더 나은 언약의 보증. 의식이 그분께 자리를 내줌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누가복음 22:20"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언약이 그리스도의 피로 확정됨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5. 어린아이의 상태와 성숙한 상태

이제 바울이 왜 율법을 그리스도께 이끄는 '후견인'이라고 불렀는지가 분명해진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였다. 다만 아직 어려서 후견인 아래 맡겨져 있었다. '의의 태양'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으니 계시가 찬란하지 않고 깨달음이 흐릿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말씀의 빛을 받았지만 어둠 속에서 멀리 바라보는 식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추시고 신자들의 지식이 장성할 때까지, 어린 백성을 초보적인 것과 바깥 의식으로 훈련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예수님도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고 말씀하셨다. 율법과 선지자는 장차 드러날 지혜를 미리 맛보게 하고 멀리서 가리켜 주었다. 그리스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게 되자 하나님 나라가 활짝 열렸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 율법은 그리스도께 이끄는 후견인이었다
  • 빛은 있었지만 멀리, 어둠 속에서 보았다
  • 초보 훈련은 성장까지의 하나님 뜻이었다
  • 세례 요한을 경계로 하나님 나라가 열렸다
  • 모든 지혜의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드러났다
갈라디아서 3:24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후견인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4:1-2(참조) 상속자이지만 어려서 후견인 아래 있음
1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갈라디아서 4:3'어렸을 때'. 깨달음이 연약한 상태를 가리킴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에베소서 4:13(참조) 그리스도를 통해 신자들의 지식이 장성한 데 이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누가복음 16:16율법과 선지자는 요한까지, 그 뒤로는 하나님 나라 복음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마태복음 11:13(참조) 누가복음 16:16과 같은 말씀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골로새서 2:3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6. 구약의 위대한 성도들도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었음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교회 역사에 아브라함만큼 믿음이 큰 사람이 없고, 구약 선지자들은 지금도 온 세상을 비출 만큼 성령의 능력이 탁월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칼빈은 이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논지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보는 것은 하나님이 몇몇 사람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가 아니라, 백성 전체를 가르치신 '평소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의 가르침도 멀리 있는 것을 보듯 희미하고 모형을 통해 전해진다. 그들도 백성과 함께 후견인 아래 있었으니 어린아이로 분류된다. 그 시대에 시대의 희미함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선지자와 왕이 보고 싶어 했지만 보지 못한 것을 제자들이 본다고 하셨다. 베드로전서도 선지자들의 수고가 주로 우리 시대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 아브라함의 믿음, 선지자의 능력은 인정한다
  • 문제는 개인 은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소 방식'
  • 선지자의 가르침도 희미하고 모형적이었다
  • 선지자도 후견인 아래 있는 '어린아이'였다
  • 우리는 그들이 보고 싶어 하던 것을 본다
누가복음 10:24선지자와 왕들도 보고자 했으나 보지 못함 (재료의 '10:34'는 오식)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16보고 듣는 제자들의 눈과 귀가 복되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베드로전서 1:12선지자들의 섬김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세 번째 차이점: 구약은 조문에 근거하며 신약은 영에 근거함. 7-8

7. 예레미야와 바울의 논의

세 번째 차이는 예레미야 31장에 나온다. 하나님은 출애굽 때 맺은 언약과 다른 새 언약을 약속하신다. 그 법을 백성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시며, 모두가 하나님을 알게 하고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이다. 바울은 이 예언을 근거로 율법과 복음을 대조한다(고린도후서 3장). 율법은 조문, 돌판, 죽음, 정죄, 없어질 것이다. 복음은 영, 마음판, 생명, 의, 길이 남을 것이다. 바울은 예레미야를 해석하는 것이므로 두 사람의 뜻은 같다. 다만 바울이 율법을 더 거칠게 말한다. 칼빈은 그 이유를 율법 자체에서 찾지 않는다. 의식에 대한 그릇된 열심으로 복음의 밝음을 흐린 '율법 열심당' 때문이라고 본다. 또 하나 짚어 둘 것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구약과 신약을 대조하는 자리이므로 율법의 '고유한 기능'만 다룬다. 율법 곳곳에 긍휼의 약속이 있지만, 이 대조에서는 율법의 몫으로 치지 않는다. 율법의 고유 기능은 옳은 일을 명령하고, 악을 금하고, 지키는 자에게 상을 약속하고, 어기는 자를 형벌로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 마음의 타고난 부패를 고치지 못한다.

  • 새 언약: 법을 마음에 새기신다는 약속
  • 조문 vs 영, 돌판 vs 마음판, 죽음 vs 생명
  • 바울이 율법을 거칠게 말한 건 거짓 열심 때문
  • 대조할 때는 율법의 '고유 기능'만 다룬다
  • 율법은 명령하지만 마음을 바꾸지는 못한다
예레미야 31:31-34새 언약 예언. 법을 마음에 새기고 죄를 사하심. 세 번째 차이의 출발점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린도후서 3:6-11바울이 예레미야를 해석해 율법과 복음을 다섯 쌍으로 대조함
6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8. 구약과 신약의 차이에 대해 바울이 비교하는 내용들

칼빈은 바울의 대조를 항목별로 풀어 준다. 첫째, 구약이 '조문'인 것은 성령의 역사 없이 선포되었기 때문이고, 신약이 '영'인 것은 하나님이 언약을 마음에 새기시기 때문이다. 둘째, 구약은 온 인류를 저주 아래 가둘 수밖에 없어서 죽음을 가져오고, 신약은 저주에서 풀어 은혜로 되돌리기에 생명의 도구다. 셋째, 구약은 아담의 모든 자손을 불의하다고 판결하는 정죄의 직분이고, 신약은 우리를 의롭다 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의의 직분이다. 넷째는 의식법에 관한 것이다. 구약은 사라질 것들의 형상을 담았으니 때가 되면 없어지고, 복음은 실체를 드러내니 영원하다. 예레미야는 도덕법까지 연약한 언약이라고 하는데, 이유가 다르다. 백성이 배은망덕하게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고, 그 책임은 언약이 아니라 백성에게 있다. 반면 의식법은 그 자체가 연약해서 그리스도 오실 때 폐지되었다. 칼빈은 마지막으로 반대쪽 오해도 막는다. 이런 대조가 있다고 해서 율법이 헛되었다거나 아무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차이를 말하는 목적은 넘치는 은혜를 높이는 데 있다. 같은 입법자께서 복음 선포에 영광을 더하셔서 성령으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모든 민족에서 수많은 사람을 교회로 모으신다. 옛 이스라엘에서 온 마음으로 언약을 받아들인 사람은 비율로 보면 거의 없을 만큼 적었다. 다만 숫자 자체로는 많았다.

  • 조문: 성령 없이 선포됨 / 영: 마음에 새겨짐
  • 율법은 정죄하고, 복음은 의롭다 하신다
  • 의식법은 그 자체가 약해 폐지되었다
  • 도덕법이 깨진 책임은 언약이 아닌 백성에게
  • 율법 시대가 헛되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고린도후서 3:6조문과 영, 죽음과 생명의 대조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3:9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의 대조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고린도후서 3:10-11없어질 것과 길이 있을 것. 의식법의 일시성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예레미야 31:32도덕법도 연약한 언약으로 불림. 원인은 백성의 언약 파기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 차이를 제시한 것은 넘치는 은혜를 높이 기리기 위함이었다.칼빈, 『기독교강요』

네 번째 차이점: 구약은 종노릇의 상태요 신약은 자유의 상태임. 9-10

9. 바울의 가르침

네 번째 차이는 세 번째에서 나온다. 구약은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키므로 '종노릇'이고, 신약은 신뢰와 확신을 주므로 '자유'다. 로마서 8장은 우리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12장은 불붙는 시내산의 공포와 하늘 예루살렘인 시온산을 대조한다. 갈라디아서는 이것을 더 자세히 풀어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비유로 해석한다. 여종 하갈은 율법을 받은 시내산을, 자유 있는 여자 사라는 하늘 예루살렘을 나타낸다. 종의 자식은 유업을 받지 못하고 자유인의 자식은 받는다. 이처럼 율법으로는 종이 되고 복음으로는 자유를 되찾는다. 반대자들은 이렇게 반론할 수 있다. 족장들은 우리와 같은 믿음의 성령을 받았으니 우리와 같은 자유와 기쁨을 누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칼빈은 두 가지로 답한다. 첫째, 그 자유와 기쁨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에서 왔다. 율법이 그들을 짓눌러 양심이 괴로울 때 복음으로 피했으니, 그 해방은 신약의 열매였다. 둘째, 그들이 율법의 두려움과 종노릇을 전혀 몰랐다고 볼 수 없다. 그들도 일반 백성과 똑같이 의식의 짐을 졌다. 그 의식은 후견인 아래 있음을 상징했고, 그들이 여전히 죄책을 지고 있음을 고백하게 하는 '증서'였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신 평소의 경륜으로 보면, 그들은 종노릇과 두려움의 언약 아래 있었다.

  • 구약은 두려움(종), 신약은 신뢰(자유)
  • 양자의 영으로 "아빠 아버지"라 부른다
  • 하갈은 시내산, 사라는 하늘 예루살렘
  • 족장의 자유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에서 왔다
  • 족장들도 의식의 짐은 똑같이 졌다
로마서 8:15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 신약의 자유를 보여 주는 대표 구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히브리서 12:18-22두려운 시내산과 하늘 예루살렘 시온산의 대조 (재료의 '12:18-14'는 오식)
18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22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갈라디아서 4:22-31하갈과 사라 비유. 율법은 종노릇, 복음은 자유
22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
갈라디아서 4:2-3(참조) 의식은 후견인 아래 있는 종 같은 상태를 상징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골로새서 2:14(참조) 의식은 죄책을 고백하는 '증서'였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0. 율법과 복음

앞의 세 차이(둘째·셋째·넷째)는 율법과 복음 사이의 차이다. 거기서는 율법을 '구약', 복음을 '신약'이라고 불렀다. 첫째 차이는 율법 이전의 약속까지 포함하므로 범위가 더 넓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율법 이전의 약속을 '구약'이라 부르면 안 된다고 했는데, 칼빈은 이를 매우 지각 있는 생각이라고 평가한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은혜의 말씀과 구별되는 '구약'을 말하는 예레미야와 바울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하나님께로 거듭나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으로 순종한 '약속의 자녀들'은 처음부터 새 언약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영원한 복을 바라보았고, 중보자를 믿어 성령으로 선을 행하고 죄 사함을 받는다고 확신했다. 칼빈의 논지도 같다. 창세 이래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성도는 우리와 똑같이 영원한 구원의 복을 누렸다. 강조점은 조금 다르다. 칼빈은 누가복음 16:16을 따라 복음의 '밝음'과 그 이전 경륜의 '희미함'을 구분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복음의 '확실함'과 율법의 '연약함'을 나누는 데 머문다. 족장들은 옛 언약 아래 살았지만 거기 머물지 않고 늘 새 언약을 사모했고, 실제로 그 안에 참여했다. 반대로 그림자에 만족해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지 않는 자들을 사도는 어리석다고 정죄한다. 짐승을 잡아 죄를 갚으려 하고, 몸에 물을 뿌려 영혼을 씻으려 하고, 차가운 의식 자체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그런 어리석음이다.

  • 둘째~넷째 차이 = 율법과 복음의 차이
  • 약속의 자녀들은 처음부터 새 언약에 속함
  • 모든 택한 성도는 우리와 같은 구원을 누렸다
  • 칼빈의 강조: 계시의 밝음과 희미함의 차이
  • 그리스도 없이 의식만 붙들면 어리석음이다
갈라디아서 5:6사랑으로 일하는 믿음. 약속의 자녀들이 순종한 방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로마서 9:8'약속의 자녀'. 처음부터 새 언약에 속한 이들을 가리킴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누가복음 16:16칼빈이 아우구스티누스보다 강조하는 '밝음/희미함' 구분의 근거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장절 미상)그림자에 만족한 자들을 사도가 정죄함. 재료에 장절 표시 없음

다섯 번째 차이점: 구약은 한 민족을 다루나 신약은 모든 민족을 다룸. 11-12

11.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무너졌음

칼빈은 다섯째 차이를 "덧붙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소개한다. 그리스도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은 한 민족만 구별하셔서 은혜 언약을 주셨다. 신명기는 야곱이 여호와의 분깃이며, 하늘과 땅이 모두 주님 것인데도 그 조상을 사랑하셔서 이스라엘을 택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만 이름을 알리시고 언약과 위엄과 특권을 주셨다. 다른 민족들은 자기 길로 가게 내버려 두셨고, 그들의 치명적인 병을 고칠 유일한 약인 말씀 선포도 주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사랑받는 아들이었고 다른 이들은 외인이었다. 그러다 '때가 차매' 그리스도께서 화목하게 하는 분으로 오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자비를 이스라엘 안에 가두어 두던 담을 허시고, 먼 데 있는 자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 평안을 전하여 한 백성으로 만드셨다. 이제 유대인과 헬라인,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차이가 없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 되신다. 시편의 약속대로 그분의 통치는 땅끝까지 이른다.

  • 그리스도 이전에는 한 민족에게만 언약
  • 다른 민족은 말씀 없이 자기 길로 감
  • 때가 차매 그리스도께서 담을 허셨다
  •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백성이 되었다
  • 그리스도의 통치는 땅끝까지 이른다
신명기 32:8-9민족들 가운데 야곱을 주님의 분깃으로 택하심
8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신명기 10:14-15온 우주가 주님 것인데 이스라엘 조상을 사랑해 택하심
14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사도행전 14:16지난 세대에는 모든 민족이 자기 길로 가게 두셨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갈라디아서 4:4'때가 차매'. 전환점의 시기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에베소서 2:14막힌 담을 허셨다. 다섯째 차이의 핵심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에베소서 2:17먼 데와 가까운 데 모두에게 평안을 전하심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에베소서 2:16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갈라디아서 3:28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이가 없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6:15할례나 무할례나 상관없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골로새서 3:11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시편 2:8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땅끝까지 소유로 주심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편 72:8바다에서 바다까지 다스리심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스가랴 9:10(참조) 시편 72:8과 같은 통치 범위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2. 이방인들을 부르심

이방인을 부르신 일은 신약이 구약보다 뛰어나다는 뚜렷한 증표다. 선지자들이 이미 여러 번 분명하게 예언했지만, 그 성취는 메시아 왕국이 올 때까지 미뤄졌다. 그리스도께서도 사역 초기에는 이방인에게 직접 손을 뻗지 않으셨다. 구속을 이루시고 낮아지심의 때를 마친 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을 때 비로소 그 일을 이루셨다. 그래서 가나안 여인에게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만 보내졌다고 하셨고, 첫 전도 여행 때 제자들을 이스라엘 밖으로 보내지 않으셨다. 사도들도 막상 이방인에게 가야 할 때는 이 일이 너무 새롭고 낯설어서 크게 꺼렸다. 두려움 속에 시작했고 실수도 있었다. 오랜 세월 이스라엘을 특별히 대하신 하나님이 갑자기 그 구별을 무효로 하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이방인 몇이 부름받았지만, 그들은 아브라함 집안에 접붙여져 '덧붙여졌을' 뿐 유대인과 동등해지지는 않았다. 이제 공개적인 부르심으로 이방인이 유대인과 동등해졌고, 죽은 유대인들의 자리를 대신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만세 전부터 감추어진 비밀이라고 부르고, 베드로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 이방인 부르심 = 신약이 뛰어나다는 증표
  • 예언되었으나 성취는 그리스도 높아지신 뒤
  • 예수님도 처음엔 이스라엘에 한정하셨다
  • 사도들조차 낯설어 꺼리고 두려워했다
  • 덧붙여짐이 아니라 '동등해짐'이 새로웠다
빌립보서 2:9-10낮아지심을 마치고 높아지신 뒤에 이방인 부르심이 이루어짐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마태복음 15:24가나안 여인에게: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만 보내심을 받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마태복음 10:5-6첫 파송 때 이방인과 사마리아로 가지 말라 하심 (재료는 10:5로 표기)
5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골로새서 1:26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에베소서 3:9(참조) 같은 '감추어진 비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1:12(참조)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경륜의 차이를 근거로 하나님의 공의와 일관성에 대하여 제기하는 반론들에 대한 반박. 13-14

13. 방식은 다양하나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심

칼빈은 교리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만큼은 이 네 가지 혹은 다섯 가지 차이로 충분히 다루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교회 다스림, 가르치는 방식, 예식과 의식이 이렇게 크게 바뀐 것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짧게 답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늘 한결같으신 하나님이 이렇게 큰 변화를 허락하시고, 한때 명령하고 칭찬하신 것을 나중에 물리치시는 것은 맞지 않는다. 칼빈은 시대마다 알맞은 형식을 쓰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변덕스러운 분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답한다. 농부가 겨울과 여름에 식구들에게 다른 일을 시켜도 일관성이 없다고 하지 않는다.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어린 자녀, 청소년, 성인에게 각각 다르게 가르쳐도 변덕쟁이라고 하지 않는다. 바울도 유대인을 어린아이에, 그리스도인을 장성한 자에 비유했다. 하나님의 한결같음은 모든 시대에 같은 가르침을 주시고 처음부터 같은 예배를 요구하셨다는 데서 드러난다. 바뀐 것은 바깥 형식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변하신 것이 아니라, 늘 변하는 사람의 역량에 하나님이 맞춰 주신 것이다.

  • 반론: 명령을 바꾸시면 일관성이 없다
  • 농부 비유: 계절 따라 일이 달라도 법칙은 하나
  • 아버지 비유: 나이 따라 가르치는 법이 다름
  • 가르침과 예배의 요구는 처음부터 같았다
  • 변하는 쪽은 사람, 하나님은 거기 맞추심
갈라디아서 4:1-3유대인은 어린아이, 그리스도인은 장성한 자. 아버지 비유의 성경적 근거 (재료는 '4:1 이하')
1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오히려 그는, 언제나 가변적이어서 항상 변화하는 사람의 역량에 자기 자신을 맞추신 것이다.칼빈, 『기독교강요』

14. 하나님께서 그의 지혜로 모든 일을 행하심

반대자들은 다시 묻는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셨다면 이런 차이가 어디서 생기는가? 처음부터 상징 없이 분명한 말씀으로 영생을 알리시고, 분명한 성례와 성령을 주시고, 온 땅에 은혜를 부어 주실 수도 있지 않았는가? 칼빈은 이 질문이 하나님께 왜 세상을 더 일찍 만들지 않으셨느냐고, 왜 낮과 밤과 계절이 번갈아 오게 하셨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고 답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일을 지혜롭고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의심하면 안 된다. 이유를 모를 때가 많아도 경건한 사람은 그렇게 믿는다. 우리에게는 감춰져 있어도 하나님께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교만이다. 다음 반론은 이렇다. 예전엔 짐승 제사와 레위 제사장 제도를 기뻐하시다가 이제는 싫어하시니 이상하다. 칼빈은 그런 겉모양의 것들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한 적은 없다고 답한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그것들을 정하셨다. 의사가 젊은 환자와 늙은 환자에게 다른 치료법을 쓴다고 해서 예전 치료법을 버렸다고 비난할 수 없다. 치료는 계속되고 나이에 맞게 방법만 바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직 오시지 않은 그리스도를 보여 줄 표지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보여 줄 표지는 달라야 한다. 그리스도 오신 뒤로 부르심은 모든 사람에게 넓어졌고 성령의 은혜도 더 풍성해졌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원하시는 만큼, 원하시는 때에 말씀을 펴시는 것을 누가 부당하다 하겠는가? 세상의 배은망덕 때문에 그 지식을 거두셨다가 긍휼로 다시 회복하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반론은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성경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유치한 중상일 뿐이다.

  • "처음부터 분명히 하시지"는 창조 시점 트집과 같다
  • 이유를 몰라도 하나님은 지혜롭고 의로우시다
  • 감춰진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교만이다
  • 제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구원을 위한 것
  • 의사 비유: 치료는 같고 처방만 다르다

2.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마니교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3절)구약의 하나님은 즉시 엄벌하고 신약의 하나님은 부드럽다. 그러니 서로 다른 신이다상벌 방식이 다른 것은 경륜 때문이다. 땅의 형벌은 영적 죽음의 무게를 보여 준 그림이다이 절에는 직접 인용 없음. 바탕은 갈라디아서 4:1-2
모세 의식을 고수하는 사람들 (히브리서가 반박한 이들, 4절)모세 율법 준수를 없애면 신앙 전체가 무너진다영원한 제사장 그리스도가 오셔서 제사장직과 언약 시행이 바뀌었다. 율법은 그림자다시편 110:4, 히브리서 7:19, 히브리서 10:1
시편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브리서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브리서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율법에 거짓 열심을 품은 사람들 (바울 당시, 7절)의식에 매달리는 것이 신앙의 열심이다그 열심이 복음의 밝음을 흐렸다. 그래서 바울이 율법을 날카롭게 말한 것이지 율법 자체를 깎아내린 것이 아니다고린도후서 3:6-11
6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반대 방향의 오해 (8절)율법 시대는 헛수고였고 아무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아니다. 차이를 말하는 목적은 넘치는 은혜를 높이는 것이다. 비율로 적었을 뿐 사람 수는 많았다이 대목은 직접 인용 없음
칼빈이 상정한 반대자들 (9절)족장들도 같은 성령을 받았으니 우리와 같은 자유와 기쁨을 누렸다그 자유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에서 왔다. 또 그들도 의식의 짐을 똑같이 졌다갈라디아서 4:2-3, 골로새서 2:14
갈라디아서 4:2-3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골로새서 2: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리스도 없이 율법만 고수하는 사람들 (10절)짐승 제사, 몸에 물 뿌리기, 의식 자체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그림자에 만족하고 그리스도를 보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이다(장절 미상) 사도의 정죄
하나님의 일관성을 조롱하는 사람들 (13절)한 번 명령하신 것을 나중에 물리치시면 일관성이 없다농부와 아버지 비유. 가르침과 예배는 같고 바깥 형식만 사람에게 맞추셨다갈라디아서 4:1-3
1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같은 반대자들 (14절)처음부터 상징 없이 분명하게 계시하실 수 있지 않았나창조 시점이나 계절을 트집 잡는 것과 같다. 이유를 몰라도 하나님은 지혜롭고 의로우시다직접 인용 없음
같은 반대자들 (14절)제사를 기뻐하시다가 지금은 싫어하시니 이상하다제사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한 적은 없다. 사람 구원을 위한 처방이었다(의사 비유)직접 인용 없음

3. 용어

구약/신약(이 편에서)
성경 책 39권, 27권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을 '시행하신 방식'의 옛것과 새것을 가리킨다.
경륜
하나님이 계획을 따라 역사 속에서 일을 차근차근 이끌어 가시는 방식이다.
모형(예표)
나중에 올 진짜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이다. 예를 들어 가나안 땅은 하늘 유업의 모형이다.
그림자와 실체
의식과 제사는 그림자, 그리스도는 그 그림자를 드리운 실제 몸이다.
후견인
어린 상속자가 클 때까지 맡아 돌보는 보호자다. 율법이 이 역할을 했다.
초등학문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기초 과목처럼, 바깥 의식으로 하는 초보 훈련을 말한다.
조문과 영
조문은 마음 밖에 쓰인 명령이고, 영은 성령이 마음에 새기시는 하나님의 법이다.
의식법과 도덕법
의식법은 제사·정결 규례처럼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임시 규정이고, 도덕법은 십계명처럼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법이다.
양자의 영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사람답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성령이다.
마니교
3세기 무렵 마니가 시작한 종교로, 선한 신과 악한 신이 따로 있다는 이원론을 가르쳤다.

4. 청년의 삶으로

💬 돈·직장: "믿으면 하나님이 일도 돈도 잘 풀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

칼빈의 답: 구약의 땅의 복은 하늘 유업을 보여 주는 그림이었다. 아브라함의 최종 상급도 땅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다(창세기 15:1).

💬 죄책감과 신앙: "교회 다니는데 늘 하나님이 무섭고, 혼날 것 같아요."

칼빈의 답: 두려움은 종노릇의 언약에 속한다. 신약의 성도는 양자의 영을 받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로마서 8:15).

💬 교회 생활: "규칙은 잘 지키는데 마음은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아요."

칼빈의 답: 명령만으로는 마음의 부패를 고치지 못한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법을 마음에 새기신다(예레미야 31:33).

💬 관계·공동체: "국적도 배경도 다른 사람들과 정말 한 교회일 수 있나?"

칼빈의 답: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을 허시고 한 백성으로 만드셨다(에베소서 2:14).

💬 이해 안 되는 하나님: "하나님은 왜 꼭 그렇게 하셨을까, 납득이 안 돼요."

칼빈의 답: 이유가 감춰져 있어도 하나님은 지혜롭고 의롭게 일하신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교만이다(14절).

5. 이 편의 결론

이 편이 남기는 것
  • 구약과 신약은 같은 구원, 같은 유업, 같은 교회다. 다른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보여 주신 방식이다.
  • 구약은 어린아이 시절이었다. 땅의 복, 그림자, 조문, 두려움, 한 민족이라는 틀 안에서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 신약은 성숙의 때다. 실체이신 그리스도, 마음에 새겨진 법, 자녀의 자유, 모든 민족의 부르심이 열렸다.
  •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다. 늘 변하는 사람의 형편에 맞춰 가르치는 방식을 바꾸셨을 뿐이다.

✏️ 본문을 드래그하면 형광펜(노랑·초록·분홍)과 밑줄을 칠할 수 있고, 칠한 곳을 누르면 메모를 적을 수 있습니다. 위의 가−/가+ 로 글자 크기를 바꿉니다. 모두 이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원문 미전재 ·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 PDF · quritan.com 판 · youtube.com/@빛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