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나 목사님, 큰 회의가 정한 것이면 성경에 없어도 무조건 믿고 지켜야 할까?
칼빈은 먼저 교회 권세가 어디까지인지 묻습니다. 모세, 제사장, 선지자, 사도,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까지 모두 '받은 말씀만 전한다'는 같은 법 아래 있었다는 것이 출발점입니다(8장). 이 원리에서 그는 로마 교회의 주장을 하나씩 반박합니다. 교회가 말씀 없이도 성령으로 오류 없이 새 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 그 권세가 공의회(교회 대표들의 회의)에 있다는 주장, 교회가 영혼을 묶는 법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8~10장). 그렇다고 칼빈이 공의회나 교회 규칙을 모두 버리지는 않습니다. 초기 공의회는 성경을 바르게 풀었기에 존중하고, 질서와 품위를 위한 교회 규칙은 사랑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교회는 말씀의 주인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제자이고, 영혼을 다스리는 입법자는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1. 절별 정리
제8장 신조에 대한 교회의 권세 ·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교회의 권세. 1-9
1. 교회 권세의 목적과 한계
칼빈은 교회론의 세 번째 주제로 '교회의 권세'를 다룹니다. 이 권세는 개별 감독(주교, 여러 교회를 돌보는 책임자)에게도 있고 공의회(여러 교회 대표가 모여 신앙 문제를 결정하는 회의)에도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영적 권세를 셋으로 나눕니다. 교리권, 재판권, 입법권입니다. 교리권은 다시 신조(교회가 공식으로 고백하는 믿음의 조항)를 정하는 권세와 그것을 풀이하는 권세로 나뉩니다. 칼빈은 본론에 앞서 경고합니다. 이 권세는 교회를 세우려고 주신 것이지 무너뜨리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권세를 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일 뿐이며, 교회를 세우는 길은 그리스도만 교회의 스승이시라는 사실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 생각대로 권세를 주면 곧 폭정이 되므로, 성경이 그 권세를 어떻게 그리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합니다.
- 교회 권세는 교리권·재판권·입법권 셋
- 권세의 목적은 세우는 것, 무너뜨리기 아님
-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종이고 사람들의 종
- 교회의 유일한 스승은 그리스도
- 사람 생각으로 준 권세는 폭정이 된다
2. 모세와 제사장들의 권위
성경이 제사장, 선지자, 사도에게 권위를 줄 때 그 권위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맡은 직무, 곧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내시기 전에 먼저 무엇을 말할지 가르치셨습니다. 가장 큰 선지자인 모세도 먼저 하나님께 배웠고, 받은 말씀만 전했습니다. 그래서 백성은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습니다. 제사장의 권위는 어기면 엄한 벌을 받을 만큼 강하게 보호되었지만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레위와 언약을 맺어 진리의 법을 그 입에 두셨기 때문이고,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말을 듣는 것도 "그들이 가르치는 율법의 뜻대로" 듣는 것이었습니다.
- 권위는 사람이 아니라 맡은 말씀에 있다
- 모세도 먼저 배운 뒤에 전했다
- 제사장 권위는 강했지만 조건부였다
- 조건은 '하나님의 법을 전할 때'
3. 선지자들의 권위
에스겔은 선지자를 "파수꾼"으로 그리는데, 하나님 입의 말을 듣고 대신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선지자는 스스로 아무것도 지어낼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꿈을 꾼 선지자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를 구별하고,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을 "겨"(알맹이 없는 껍질)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선지서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같은 표현이 그렇게 자주 나옵니다. 이사야는 자기 입술이 부정하다고 했고 예레미야는 자기가 아이라 말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자기 말을 했다면 더러운 것밖에 나오지 않았겠지만, 성령의 도구가 되자 입술이 거룩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나라들을 뽑고 세우는 큰 권세를 주실 때 그 이유는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 선지자는 들은 것을 전하는 파수꾼
-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말은 '겨'
- 선지자 자신의 입술은 부정하고 서툴렀다
- 큰 권세의 이유는 '내 말을 네 입에 둠'
4. 사도들의 권위
사도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불리고,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땅에서 매고 푸는 권세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라는 이름 자체가 한계를 보여 줍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므로 자기 좋은 대로 말하지 않고 보내신 분의 명령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범위를 정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자신도 이 법을 스스로에게 적용하셨습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유의 주이신 분이 이렇게 모범을 보이셨으니, 교회 권세는 무한하지 않고 말씀 안에 들어 있는 권세입니다.
- 사도의 높은 칭호도 말씀 전달에 묶임
- '사도'는 보냄받은 자라는 뜻
- 가르칠 범위는 '분부한 모든 것'
- 그리스도 자신도 받은 것을 가르치셨다
- 교회 권세는 말씀 안에 있다
5. 하나님의 계시의 다양한 방법
'하나님께 배운 것만 가르친다'는 원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같습니다. 하지만 배우는 방법은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먼저, 아들과 아들이 알려 주시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들도 거울을 보듯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같은 샘, 곧 그리스도에게서 길어 마셨습니다. 족장들에게는 하나님이 비밀한 계시를 주시고 표적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족장들은 이를 자손에게 전해야 했고, 자손들은 하나님의 내적 가르침으로 그것이 하늘에서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 원리는 같고 방법은 시대마다 달랐다
- 하나님 지식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해
- 구약 성도도 같은 샘에서 마셨다
- 족장 시대: 계시와 표적, 그리고 대대로 전수
6.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은 더 눈에 보이는 교회를 세우시려고 말씀을 글로 남기셨습니다. 그 뒤로 제사장은 그 기록된 율법에 맞는 것만 가르쳐야 했고, 더하거나 빼는 일은 금지되었습니다. 이어서 선지자들이 새 말씀을 받았지만, 그 말씀은 율법에서 나와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는 교리 면에서 율법의 해석자였고, 새로 더한 것은 앞날에 대한 예언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양심을 위로하시려고 예언과 역사도 성령의 지시 아래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칼빈은 시편도 예언서에 포함시킵니다. 이렇게 율법, 예언, 시편, 역사가 하나로 묶인 것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교사들의 표준이었습니다.
- 말씀을 글로 남겨 기준으로 삼으셨다
- 율법에 더하거나 빼지 말 것
- 선지자는 율법 해석자 + 미래 예언자
- 율법·예언·시편·역사가 구약의 표준
- 시편은 예언서로 분류
7. 아들을 통한 완전하고 영원한 계시
하나님의 지혜가 육체로 오셨을 때, 사람이 아버지에 대해 알 수 있고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전이 희미한 빛이었다면,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가 오신 뒤로는 대낮 같은 빛입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이 옛날에는 여러 사람을 통해 조금씩 말씀하셨지만 마지막에는 아들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칼빈은 이것을 '이제 계시를 계속 덧붙이지 않으시고 아들 안에서 가르침을 완성하셨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 전체를 "마지막 때", "말세"라고 부르는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만족하고 새 교리를 만들지도 받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한마디는 모든 사람의 가르침에서 우리를 떼어 아들에게만 이끄는 무거운 말씀입니다. 모든 지혜의 보화를 지닌 분이 이미 말씀하셨으니, 그 뒤에 사람이 덧붙일 것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 그리스도 이전은 희미한 빛, 이후는 대낮
- 아들 안에서 계시가 최종 완성되었다
- '마지막 때' = 새 교리를 만들지 말라는 뜻
- "그의 말을 들으라"는 사람의 가르침과 결별
- 그리스도 뒤에 덧붙일 말은 없다
8. 사도들의 사명
칼빈은 확고한 원리를 세웁니다. 율법과 선지자, 그리고 사도들의 글에 담긴 것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하고, 교회 안의 가르침은 그 말씀의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사도들도 선지자 이상의 자유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일은 옛 성경을 풀어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이는 것이었고, 그것조차 그리스도의 영이 이끄셔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라고 같은 자리에서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무지해서 깨닫지 못하자 진리의 성령을 약속하셨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성령의 일은 그리스도가 이미 가르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 = 율법·선지자·사도의 글
- 사도도 받은 것만 풀어 전했다
- 선생은 그리스도 한 분
- 성령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
9.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의 한계
베드로는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합니다. 머뭇거리는 악한 양심처럼이 아니라, 확실한 명령을 받은 종처럼 확신 있게 말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지어낸 규례를 치우고 하나님의 명령만 효력을 갖게 하라는 말입니다. 목회자들은 말씀으로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양을 먹이고 늑대를 쫓고, 필요하면 엄하게 책망하는 큰 능력을 받습니다. 다만 모든 일을 말씀 안에서 해야 합니다. 사도와 후계자의 차이도 분명합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확실한 '필사자'(받아 적은 사람)여서 그 글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후계자들은 성경에 담긴 것을 가르칠 뿐입니다. 바울조차 고린도 교인의 믿음을 주관하지 않는다고 했고, 예언하는 사람의 말도 다른 이들이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혹시 '보편 교회는 다르다'고 한다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므로 사람의 말이 믿음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답합니다. 이 원칙은 개인에게도 교회 전체에게도 똑같습니다.
- 말씀을 전할 때는 확신 있게
- 목회자의 큰 능력도 말씀 안에서만
- 사도의 글만 하나님의 말씀
- 바울도 믿음을 주관하지 않았다
- 원칙은 개인과 교회 전체에 같다
제8장 ·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교리적 무오성의 거부. 10-16
10. 교회의 권세에 대한 로마 교회의 입장
칼빈은 이제 지난 수백 년 동안 감독을 자처한 이들이 휘둘러 온 권세를 앞의 성경적 권세와 비교합니다. 둘 사이는 그리스도와 벨리알(사탄을 가리키는 말)처럼 공통점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그들의 폭정 방법이 아니라 지금 글로 변호하는 가르침만 다루겠다고 밝힙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세계 공의회가 교회의 참모습이고, 공의회는 성령의 직접 지시를 받으므로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의회를 구성하고 이끄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므로, 결국 공의회의 권위는 그들 자신의 권위가 됩니다. 그들은 말씀에 없는 교리를 새로 만들어 신조로 받으라 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새 신조를 만들 권세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 성경적 권세와 로마의 권세는 정반대
- 논리: 공의회=교회=성령의 지시=무오
- 공의회 권위가 사실상 그들 자신의 권위
- 새 교리에 동의 안 하면 그리스도인 아님
11. 교회와 신자들 개개인에게 주어진 약속들
로마 교회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성령이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근거로 듭니다. 칼빈은 그 약속 중 상당수가 교회 전체만이 아니라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으리라"와 "보혜사를 주시리라"는 열두 사도 각자에게, 그리고 앞으로 올 제자들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교회 전체에만 묶으면 신자 개인이 얻을 위로와 확신을 빼앗는 셈입니다. 칼빈은 여러 은사가 모인 공동체에 개인보다 더 풍성한 지혜가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모두가 같은 분량을 받는다는 뜻도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속지 않고 배울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누구도 성령의 첫 열매만 맛볼 뿐이므로, 자기 연약함을 알고 말씀의 한계 안에 머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 약속은 교회 전체와 개인 모두에게
- 개인의 위로를 빼앗아선 안 된다
- 공동체 은사가 더 풍성함은 인정
- 이 땅에선 성령의 첫 열매만 맛본다
- 그러니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한다
12. 교회는 무오하지 않음
반대자들은 개인에게 부분적으로 준 것이 교회에는 완전하게 있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그럴듯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은 은사를 분량대로 나눠 몸 전체에 필요한 것이 모자라지 않게 하시지만, 교회를 겸손하게 지키시려고 필요한 만큼만 주십니다. 반대자들은 교회를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이" 하셨다는 구절과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구절을 듭니다. 앞 구절은 이미 끝난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날마다 하시는 일이며, 완성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입니다. 이를 부정하면 펠라기우스주의(사람이 이생에서 완전한 의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나, 교회에 어떤 흠도 용납하지 않던 카타리파·도나투스파와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뒤 구절은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으로 진리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안전한지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지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은사는 필요한 만큼, 겸손을 위해
- '흠 없는 교회'는 진행 중, 완성은 재림 때
- 이미 완전하다면 펠라기우스주의 오류
- '진리의 기둥'은 말씀 사역으로 보존한다는 뜻
- 진리 보존은 말씀을 지키는지에 달림
13. 말씀과 성령은 반드시 함께 역사함
칼빈은 쟁점을 정리합니다. 반대자들은 교회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므로 말씀 없이도 안전하고, 말씀 밖에서 정한 것도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칼빈은 '구원에 필요한 문제에서 교회는 오류가 없다'는 말을 조건부로 받습니다. 교회가 자기 지혜를 버리고 말씀을 통해 성령께 배울 때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차이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교회 권위를 말씀 밖에 두고, 칼빈은 말씀에 붙여 둡니다. 신부가 남편의 말에, 제자가 스승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므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멈추신 곳에서 자기 지혜도 멈춰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이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고 하시면서 그 방법을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크리소스톰도 복음에서 벗어난 것은 성령의 이름을 달아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말씀과 떼어 놓을 수 없게 묶여 계시므로, 성령을 내세워 말씀에 없는 교리를 퍼뜨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 쟁점: 교회 권위가 말씀 밖인가 안인가
- 교회 무오는 말씀으로 배울 때만 성립
- 그리스도가 멈춘 곳에서 교회도 멈춘다
- 성령의 인도 = 그리스도 말씀을 생각나게
- 성령과 말씀은 떼어 놓을 수 없다
14. 사도들의 글과 교회의 전통
반대자들은 사도들의 글만으로는 부족해서 사도들이 나중에 말로 보충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근거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이고, 그 '이를 것'이 성경과 상관없이 관습으로 전해졌다는 주장입니다. 칼빈은 이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은 아직 미숙했지만, 글을 쓸 때는 이미 성령의 인도로 모든 진리 가운데 들어간 뒤였다고 반박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왜 충만한 지식을 글로 남기지 못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도 인정해 준다면, 글에 빠진 계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대 보라고 요구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누가 감히 증명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사도들의 글에 약속된 계시의 열매가 가득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안다고 칼빈은 말합니다.
- 반대자: 사도 글 외에 구전 보충이 있다
- 글 쓸 땐 이미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 빠진 계시가 무엇인지 대 보라
- 사도들의 글에 계시의 열매가 가득
15.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함
반대자들은 교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는 말씀을 근거로, 교회의 결정에 이의를 달 수 없다고 합니다. 칼빈은 그 구절이 교리가 아니라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는 권징(교회가 죄를 다루고 바로잡는 절차)의 권위를 말한다고 답합니다. 교회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칼빈도 인정합니다. 단, 교회가 주님의 말씀에 근거해서만 말할 때입니다. 그 이상을 요구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편이 아닙니다. 칼빈이 '교회는 새 교리를 만들 수 없다'고 강하게 말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그런 권위를 주면 불경한 사람들의 핑계에 큰 창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부분은 원문이 압축되어 있지만, 취지는 이렇게 읽힙니다. 그리스도는 당시 관습대로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회) 같은 회의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으므로, 이 구절에 교리를 만드는 권세가 있다면 도시와 마을마다 교리를 만들 자유가 있다는 엉뚱한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 마태복음 18:17은 교리 아닌 권징 이야기
- 교회 말은 들어야 한다, 말씀에 근거할 때
- 사람에게 교리 제정권을 주면 위험
- 그 논리면 마을마다 교리를 만들 판
16. 교황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실례에 대한 반론
반대자들은 예를 들어 반박합니다. 첫째는 유아세례입니다. 성경의 명령이 아니라 교회 결정으로 생겼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유아세례가 교회 권위에만 기대야 한다면 초라한 논리겠지만, 성경적 근거는 뒤에서(4권 16장) 충분히 보이겠다고 합니다. 둘째는 니케아 공의회의 '동일본질'(성자가 성부와 같은 본질이라는 고백)입니다. 칼빈은 그 단어가 성경에 없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은 한 분이라 하면서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이라 부르므로, 이 고백은 성경의 뜻을 풀어낸 것입니다. 이를 성경에 없는 결정이라고 하면 마치 교부들이 근거 없이 아리우스를 정죄한 것처럼 만들어 그들을 모욕하는 셈입니다. 테오도레투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회의를 열며 '성령의 기록된 말씀에서 답을 찾자'고 했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그러니 교회가 성경에 무언가 덧붙일 수 있다는 생각은 그때 없었다는 것이 칼빈의 결론입니다.
- 유아세례는 성경적 근거가 따로 있다
- '동일본질'은 단어는 없어도 성경의 뜻
- 그것을 '성경 밖 결정'이라 하면 교부 모욕
- 니케아는 성경으로 판단하자며 시작했다
제9장 공의회들과 그 권위 · 공의회들의 진정한 권위. 1-2
1. 두 가지 예비적 발언
반대자들은 교회에 대한 주장을 곧바로 공의회로 옮기고, 그 권세를 다시 로마 교황에게 몰아줍니다. 칼빈은 본론 전에 두 가지를 밝힙니다. 첫째, 공의회를 엄하게 다루더라도 옛 공의회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는 마음으로 그 공의회들을 기리지만, 기준은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공의회를 주관하실 권리는 그리스도께 있고, 그리스도는 공의회가 말씀과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 주관하십니다. 둘째, 공의회를 적게 인용하는 것은 공의회가 반대편을 지지할까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말씀의 증거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고, 필요하면 옛 공의회들도 개혁파의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해 준다고 말합니다.
- 반대자는 교회 권세를 공의회→교황으로
- 칼빈은 옛 공의회를 진심으로 존중한다
- 공의회의 주관자는 그리스도
- 말씀 증거가 충분해서 공의회 인용이 적다
2. 참된 공의회와 거짓된 공의회
공의회 권위에 대해 성경에서 가장 분명한 약속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입니다. 이 약속은 세계 공의회만이 아니라 작은 모임에도 해당합니다. 문제는 조건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일 때만 함께하십니다. 의로운 감독들도 모일 수 있지만, 악한 감독들도 모여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음모를 꾸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그 명령을 무시하고 자기 머리로 새것을 지어내는 모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것이 아닙니다. 레위 제사장도 선지자도 사도도 하나님 입의 말을 가르쳐야 했고, 이 언약을 깨면 어떤 권위도 없습니다. 그러니 칼빈을 말씀에서 떼어 사람의 법령에 묶으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약속은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만
- 악한 감독도 모여 음모를 꾸밀 수 있다
- 말씀에 가감하는 모임은 그의 이름이 아니다
- 참 공의회를 가르는 표지가 있다
제9장 · 목자들의 타락과 공의회의 부패. 3-7
3. 교회의 존재와 목회자
반대자들은 목자들이 하나로 일치해야 진리가 있고, 공의회로 눈에 보여야 교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빈은 선지자들의 증언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고 합니다. 이사야 시대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신 교회가 있었지만, 그 파수꾼들은 눈멀고 짖지 못하는 개, 자기 이익만 좇는 목자였습니다. 호세아는 제사장직을 내세우는 이들을 새 잡는 그물이라 비꼬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하며,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한다고 했습니다. 에스겔도 선지자들을 먹이를 움키는 사자에, 제사장들을 율법을 범하는 자에 비유했습니다. 선지서에서 이보다 자주 나오는 주제는 없다고 칼빈은 말합니다.
- 교회가 있던 시대에도 목자들은 타락했다
- 이사야: 눈먼 파수꾼, 짖지 못하는 개
- 예레미야: 선지자부터 제사장까지 거짓
- 에스겔: 율법을 범하는 제사장들
4. 목회자들의 타락에 대한 성경의 예언
'그건 옛 유대인 이야기이고 우리 시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그랬으면 좋겠지만 성령이 반대로 말씀하셨다고 답합니다. 베드로는 옛날 거짓 선지자들처럼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 이단을 끌어들일 것이라 했습니다. 위험은 일반 사람이 아니라 '선생', '목자'라는 칭호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온다는 예언입니다.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 했고,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기가 떠난 뒤 사나운 이리가 들어오고 그들 중에서도 어그러진 말을 하는 자가 나올 것이라 했습니다. 짧은 기간에도 그렇다면 오랜 세월 동안은 더하지 않겠느냐고 칼빈은 묻습니다. 목자들은 교회의 평화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지만, 해야 할 일과 실제로 하는 일은 다릅니다.
- 신약도 거짓 선생의 등장을 예언했다
- 위험은 '목자' 칭호를 가진 자에게서
-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전에 앉는다
- 짧은 기간에도 타락, 오랜 세월은 더
5. 목자들을 분별해야 함
칼빈은 이 말이 목자들의 권위를 무작정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합니다. 목자라고 불린다고 모두 참 목자는 아니므로 살펴서 구별하자는 것뿐입니다. 교황과 주교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하면서, 그 근거로 '우리가 목자라 불린다'는 것만 내세웁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서 진리의 빛이 꺼질 수 없고 교회가 자기들과 함께 살고 죽는다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옛날 목자들의 팔을 마르게 하고 눈을 멀게 하셨는데, 그 심판이 오늘에는 없다는 듯 여깁니다. 칼빈은 그들의 말이 예레미야의 원수들이 한 말과 똑같다고 지적합니다.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예레미야를 치자"는 말입니다.
- 목자 비하가 아니라 분별하자는 것
- '목자라 불린다'는 것은 근거가 못 된다
- 옛 목자들에게 내린 심판은 지금도 유효
- 예레미야의 원수들도 같은 논리를 썼다
6. 거짓된 공의회는 진리를 거스름
선지자 시대 유대에 참 교회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사장들의 전체 회의가 열렸다면 어땠겠느냐고 칼빈은 묻습니다. 하나님은 한두 사람이 아니라 제사장 전체에게 '놀랄 것이다', '율법이 없어질 것이다', '밤이 오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실제 예가 아합 왕의 선지자 회의입니다. 사백 명이 모였지만 목적은 악한 왕에게 아첨하는 것이었고, 거짓말하는 영이 그들 입에 들어갔습니다. 다수의 뜻으로 진리가 정죄되었고, 미가야는 이단으로 몰려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예레미야와 다른 선지자들도 같은 일을 당했습니다.
- 참 교회가 있던 시대의 회의도 악할 수 있다
- 하나님은 제사장 전체를 꾸짖으셨다
- 아합의 400 선지자 회의가 대표적 예
- 다수결로 진리가 정죄되기도 한다
7. 요한복음 11:47의 공회 실례
가장 기억할 만한 예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연 공회입니다. 겉으로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교회가 있었기에 그리스도도 성전 의식에 참여하셨습니다. 정식 소집, 대제사장의 주재, 모든 제사장의 참석까지 갖췄습니다. 그런데 그 회의에서 그리스도가 정죄되고 그의 가르침이 버려졌습니다. 이것은 그 공회 안에 교회가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자들은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지만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바울은 목자들이 앞장서는 배교(믿음을 저버림)를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목자들의 회의에 있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고, 주께서 경고하셨으니 더 조심해야 합니다.
- 형식이 완벽한 공회가 그리스도를 정죄했다
- 그 공회 안에는 교회가 없었다
- '우리는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 교회 = 목자 회의라는 논리는 거부
제9장 · 공의회도 성경의 표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모든 공의회에는 인간적 연약함이 있음. 8-11
8. 공의회 권위의 근거
그렇다면 공의회에는 결정권이 없느냐는 물음에 칼빈은 "있다"고 답합니다. 모든 공의회를 정죄하자는 것도, 각자 마음대로 받거나 버리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공의회 결정을 볼 때 언제, 무슨 문제로, 어떤 의도로 열렸고, 누가 모였는지 살핀 뒤 성경으로 점검합니다. 그 과정에서 공의회 결정을 무게 있는 '잠정적 판단'으로 존중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단자 막시미누스에게 '나는 니케아를, 너는 아리미눔 공의회(아리우스파에 유리한 결정을 낸 4세기 회의)를 들이대지 말고, 둘 다 복종하는 성경으로 따지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공의회는 정당한 위엄을 갖고 성경은 그 위에 섭니다. 그래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제1차 에베소, 칼케돈 같은 초기 공의회는 성경을 순전하게 풀었기에 거룩하게 받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사정이 나빠졌고, 좋은 감독이 있어도 다수의 나쁜 의견에 밀렸습니다.
- 공의회에도 결정권은 있다
- 결정을 배경까지 살핀 뒤 성경으로 점검
- 공의회 결정은 무게 있는 잠정적 판단
- 초기 4대 공의회는 기쁘게 받는다
- 후대 공의회는 다수에 밀려 부패했다
9. 공의회들 사이의 모순
공의회끼리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일도 많습니다. '둘 중 하나는 적법하지 않다'고 말해 봐야 판단 기준이 없으니, 성경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칼빈은 성상(그리스도나 성인을 새기거나 그린 형상) 논쟁을 예로 듭니다. 레오 황제 때 콘스탄티노플 회의가 교회당의 성상을 부수라고 했는데, 얼마 뒤 이레네 황후가 소집한 니케아 회의가 이를 뒤집고 성상을 되돌렸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뒤의 결정을 따랐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상에 우상숭배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고 에피파니우스는 교회당에 성상이 있는 것을 가증하다고까지 했습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그 회의는 성상을 세우는 것만이 아니라 예배하는 것까지 허용했으니, 칼빈은 이를 사탄에게서 나온 결정이라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칼케돈은 받고 제2차 에베소는 버리는데, 제2차 에베소가 칼케돈이 정죄한 유티케스의 이단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 공의회끼리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 어느 쪽이 옳은지는 성경으로만 판단
- 성상 파괴 회의와 성상 회복 회의
- 칼케돈은 받고 제2차 에베소는 버린다
10. 공의회에서 범한 인간적인 과오들
더 순결했던 고대 공의회에도 결함이 있었습니다. 학식 있는 사람들이 눈앞의 문제에 매달려 다른 문제를 내다보지 못하거나, 큰 문제에 매여 작은 문제를 놓치거나, 요령이 부족해 속거나, 감정적으로 맞서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경우의 대표 예가 니케아 공의회입니다. 모두가 가장 존경하는 회의였고 아리우스와 맞서 믿음의 핵심이 걸린 자리였기에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비방하고, 아리우스를 향해야 할 펜을 서로에게 돌려 비난 문서를 주고받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중재하지 않았다면 서로 상처를 입혔을 것입니다. 이런 회의도 그랬다면 뒤의 공의회들에는 얼마나 많은 결점이 있었겠느냐고 칼빈은 묻습니다.
- 좋은 공의회에도 인간적 결함이 있었다
- 예견 부족, 실수, 속음, 감정 대립
- 니케아에서도 내분과 비방이 있었다
- 황제의 중재로 겨우 수습되었다
11. 공의회들의 인간적 연약함에 대한 바른 자세
로마의 교황 레오도 칼케돈 공의회의 교리는 정통으로 인정하면서, 그 회의에 야망과 경솔함이 있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반대자들도 구원에 필수가 아닌 문제에서는 공의회가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공의회의 모든 결정을 성령의 말씀이라고 요구하므로, 결국 공의회 무오를 주장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공의회의 오류를 짚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아닙니다. 칼빈은 여기서 하나의 교훈을 끌어냅니다. 성령은 경건한 공의회에도 인간적인 일이 일어나게 허락하셔서 우리가 사람을 지나치게 믿지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공의회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극단적 견해보다 낫다고 합니다. 지역 공의회는 세계 공의회의 경우로 미루어 알 수 있으므로 따로 다루지 않습니다.
- 교황 레오도 칼케돈의 결함을 인정했다
- 반대자는 말로는 오류 인정, 실제로는 무오
- 성령은 사람을 과신하지 않게 하셨다
- 공의회 전면 부정도 지나치다
제9장 · 공의회의 권위는 절대적이 아님. 12-14
12. 맹종은 있을 수 없음
반대자들은 막다른 길에서 '지도자가 어리석고 악해도 인도자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은 남는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그들이 참 인도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탁월한 목자였던 여호수아도 율법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주야로 묵상하라는 명령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니 영적 인도자란 하나님의 율법에서 치우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든 목자의 말을 무조건 받아야 한다면,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라는 주님의 거듭된 명령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요한은 영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 했고, 바울은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으라 했습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므로, 대제사장이든 교황이든 어떤 칭호도 우리가 말씀으로 모든 영을 시험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 복종할 인도자는 율법에서 안 치우친 자
- 거짓 선지자를 듣지 말라는 명령이 있다
- 천사라도 말씀으로 시험해야 한다
- 맹인 인도자는 함께 구덩이에 빠진다
- 어떤 칭호도 분별을 막지 못한다
13. 공의회의 성경 해석의 의의
교회에 새 교리를 세울 권세가 없다는 것은 이미 보였으니, 이제 성경 해석의 권세를 다룹니다. 칼빈은 교리 논란이 생기면 참된 감독들의 회의를 열어 점검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기꺼이 인정합니다. 이유는 셋입니다. 목자들이 그리스도의 영께 기도하며 함께 내린 결정은 개인의 생각보다 훨씬 무게가 있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공통 견해를 세워 혼란을 막을 수 있으며, 바울도 개별 교회에 분별을 맡기면서 심각한 일은 함께 다루는 길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니케아는 아리우스를 막아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확인했고, 콘스탄티노플은 유노미우스와 마케도니우스의 혼란을, 에베소는 네스토리우스의 사상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 바실리우스, 키릴루스 같은 수호자가 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2차 에베소 회의에서는 디오스코루스가 회의를 주도해 유티케스의 이단이 이기고 플라비아누스가 쫓겨났습니다. 진리는 한 공의회에서 눌려도 교회 안에서 죽지 않고 하나님의 때에 다시 일어나지만, 공의회 투표로 정한 해석이 늘 참이라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참 감독들의 회의는 좋은 해결책이다
- 이유: 무게, 혼란 방지, 바울의 방식
- 니케아·콘스탄티노플·에베소의 공헌
- 제2차 에베소처럼 이단이 이기기도 했다
- 투표로 정한 해석이 늘 참은 아니다
14. 공의회의 성경 해석권에 대한 그릇된 주장
로마 교회가 '성경 해석권은 공의회에 있고 이의를 달 수 없다'고 하는 데는 속셈이 있습니다. 공의회가 정한 모든 것을 '성경 해석'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연옥, 성인들의 중보, 고해성사는 성경에 한마디도 없지만 교회가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성경 해석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성경과 정반대인 결정도 그렇게 불립니다. 그리스도는 모두에게 성찬의 잔을 마시라 하셨는데 콘스탄스 공의회는 평신도에게 잔을 주지 못하게 했습니다. 바울은 혼인을 금하는 것을 귀신의 가르침이라 했고 혼인을 귀히 여기라 했는데, 그들은 사제의 혼인을 금하고 이를 순전한 해석이라 합니다. 성경 자체를 교회가 승인한다는 주장은 이미 앞에서 다룬 신성모독이라 넘어가지만, 칼빈은 묻습니다. 어느 공의회가 정경(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성경 목록)을 공포했습니까? 아리우스는 왜 아직 공의회 승인을 받지 않은 요한복음의 증거에 졌습니까? 게다가 히에로니무스를 따르면 마카베오서, 토비트, 집회서는 외경(정경에 들지 않는 책)인데, 이는 로마 교회가 견딜 수 없는 결론일 것입니다.
- 공의회 결정 전부를 '해석'이라 부른다
- 연옥·성인 중보·고해성사는 성경에 없다
- 평신도 잔 금지는 그리스도 명령과 반대
- 사제 독신 강제는 성경과 어긋난다
- 정경을 공포한 공의회는 없었다
제10장 법을 제정하는 권세 · 교회법과 전통,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신자의 양심. 1-4
1. 인간의 전통
이제 교회 권세의 다음 부분인 입법권입니다. 로마 교회는 이 권세에서 수많은 인간 전통을 만들어 영혼에 올가미를 씌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남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자기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던 것과 같습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교회가 자기가 만든 법으로 양심을 묶을 수 있는가? 칼빈은 정치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일과 영적 자유를 다룬다고 밝힙니다. '인간의 전통'은 하나님 예배에 관해 말씀과 상관없이 사람이 만든 법령을 말합니다. 교회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유익한 제도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 법들을 '영적'이고 영생에 필수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침범당하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양심의 자유가 짓밟힙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유일한 왕으로, 복음을 유일한 자유의 법으로 삼아야 합니다.
- 쟁점: 교회법이 양심을 묶을 수 있나
- 인간의 전통 = 말씀 없이 만든 예배 법령
- 질서를 위한 유익한 제도는 반대 아님
- 구원 필수로 만들면 자유가 짓밟힌다
- 왕은 그리스도, 법은 복음
2. 양심을 얽어매는 로마 교회의 법들
로마 교회의 입법자들은 자기 법이 '쉬운 멍에, 가벼운 짐'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칼빈은 그들이 하나님도 자기 법도 가볍게 여기니 그 무게를 못 느끼는 것이라고 봅니다. 자기 구원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올무에 걸린 채로는 자유롭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바울은 단 한 가지 일에도 억지로 올무를 놓지 않으려 조심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유에 맡기신 일에 의무를 지우면 양심이 크게 다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들은 영원한 죽음을 걸고 법을 강요하고, 지키기 어려운 법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칼빈이 공격하는 것은 구원에 필수인 것처럼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묶는 법들입니다.
- 그들은 자기 법을 '쉬운 멍에'라 부른다
- 바울은 한 가지 올무도 놓지 않았다
- 자유의 영역에 의무를 지우면 양심이 다침
- 공격 대상: 구원 필수처럼 묶는 법
3. 양심의 본질
많은 사람이 이 문제로 헷갈리는 이유는 사람의 외적 재판과 양심의 재판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바울이 형벌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도 권세에 복종하라고 했으니, 양심이 국가 법에도 묶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풀려면 먼저 양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머리로 무엇을 파악하면 '안다'고 하듯이, 하나님의 심판을 마치 내 죄를 감추지 않고 법정에 끌어내는 증인처럼 의식하는 것을 양심이라 합니다(라틴어 양심은 '함께 앎'이라는 뜻). 양심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사람이 아는 죄를 덮어 두지 못하게 하고 결국 죄를 인정하게 만듭니다. 바울이 말한 '양심이 증거가 되어 고발하거나 변명한다'는 뜻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양심은 천 명의 증인이라 했고, 베드로는 선한 양심을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서는 마음의 평안으로 말합니다.
- 외적 재판과 양심의 재판을 구별하라
- 양심 = 하나님 심판 앞의 증인 의식
- 양심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선다
- 양심은 천 명의 증인
- 선한 양심 = 은혜 안의 평안
4. 양심의 속박과 자유
행위가 사람과 관계된다면 양심은 하나님과 관계됩니다. 선한 양심은 마음속의 순전함입니다. 바울은 교훈의 목적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 했고, 양심을 버린 사람들이 믿음에 파선했다고 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살아 있는 갈망이며 거룩하게 살려는 진실한 뜻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낌 없는 양심을 말한 것은 선한 양심의 열매가 사람에게까지 흘러가기 때문이지만, 엄밀히 양심은 하나님께만 관계됩니다. 그래서 '법이 양심을 묶는다'는 말은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도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음란을 금하는 하나님의 법은 세상에 나 혼자 살아도 내 양심을 묶습니다. 반면 본질적으로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인 일은 다릅니다. 우상 제물인 줄 알려 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하지만, 이때 묶이는 것은 겉 행동이고 내 양심은 여전히 자유롭습니다.
- 행위는 사람에게, 양심은 하나님께
- 양심 = 예배하려는 갈망, 거룩한 뜻
- 하나님 법은 혼자 있어도 양심을 묶는다
- 중립적인 일은 남을 위해 삼가되
- 그때도 내 양심은 자유롭다
제10장 · 인간의 법과 양심의 문제: 오직 하나님만이 입법자이심. 5-8
5. 인간의 법과 양심
사람의 법이 신앙적 의무감을 주려고, 곧 그것을 지키는 것 자체가 필수인 것처럼 만들어졌다면 양심에 부당한 짐을 지우는 것입니다. 양심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만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세상에도 '양심은 사람의 판단보다 높다'는 희미한 인식은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로마서 13장의 난제는 남습니다. 칼빈은 '종과 속'(개별 사례와 전체 원리)을 구별하라고 답합니다. 개별 법 하나하나가 양심을 묶지는 않지만, 우리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일반 명령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법이든 교회법이든 선하고 공정한 법은 지켜야 하지만, 그 의무는 법의 세부 조항이 아니라 전체 목적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예배 형식을 새로 정하고 자유의 영역에 의무를 지우는 법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 신앙적 의무로 만든 사람 법은 부당
- 양심은 사람의 판단보다 높다
- 우리를 묶는 건 '권세에 복종하라'는 명령
- 선하고 공정한 법은 지켜야 한다
- 예배를 새로 정하는 법은 전혀 다르다
6. 교황주의가 제정한 교회법의 부당함
로마 교회가 '교회법'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그런 법입니다. 이 법은 하나님께 드리는 필수 예배의 일부로 제시되고, 법이 많은 만큼 영혼을 묶는 올무도 많습니다. 칼빈은 앞서 율법 해설에서 짧게 다룬 이 문제를 여기서 정리하겠다고 합니다. 거짓 감독들은 자신이 주께 입법자로 임명받았다며 무엇이든 지켜야 하고, 어기면 하나님과 교회를 함께 거스르는 '이중 불순종'이라고 말합니다. 칼빈은 그들이 참 감독이라면 교회를 다스리는 데 정당하게 필요한 만큼의 권위는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 감독이라도 말씀을 떠나 자기 생각을 의무로 지울 권세는 없습니다. 사도들도 그런 권세를 몰랐고, 주께서도 목자들에게 여러 번 금하셨습니다.
- 교회법을 필수 예배의 일부로 내세운다
- 어기면 '이중 불순종'이라 위협한다
- 참 감독에게도 필요한 만큼의 권위만
- 말씀 밖의 의무를 지울 권세는 없다
7. 다스림은 오직 하나님의 대권임
주께서는 율법에 선한 삶의 완전한 규범을 다 담으셨으므로 사람이 더할 것이 없습니다. 이유는 둘입니다. 첫째, 우리가 주님을 삶의 주인이요 인도자로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순종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야고보는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신다"고 합니다. 이사야도 여호와가 재판장이요 율법을 세우신 이요 왕이요 구원자라고 고백합니다. 영혼의 생사를 좌우하는 권세는 영혼을 다스리는 분께 있고, 누구도 이 권세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목자들에게 맡은 양 떼를 주장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진지하게 받으면 말씀과 상관없이 교회를 마음대로 하려는 모든 권세가 무너집니다.
- 율법에 삶의 규범이 다 담겨 있다
- 이유1: 주님만이 삶의 주인
- 이유2: 하나님은 순종만 요구하신다
- 입법자와 재판관은 한 분뿐
- 목자는 양 떼를 주장하지 말라
8. 사람의 법의 타당성을 판별하기 위한 지침
모든 것이 '하나님만 입법자이시니 그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면 안 된다'는 한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칼빈은 두 이유를 다시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모든 의와 거룩의 완전한 규범이라는 것, 그리고 예배의 바른 길에 관해서는 하나님만 우리 영혼에 권위를 가지신다는 것입니다. 이 두 저울에 사람의 법을 달아 보면,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일이라며 양심에 필수 의무를 지우는 법이 말씀에 어긋남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첫째 이유를 씁니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예배를 사람에게 배우지 말고, 헛된 철학과 사람의 규례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둘째 이유를 주로 써서, 양심은 하나님께만 다스림을 받고 다른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 하나님만 입법자, 영광을 가로채지 말 것
- 저울1: 하나님 뜻이 완전한 규범
- 저울2: 예배에선 하나님만 권위를 가지심
- 골로새서는 첫째, 갈라디아서는 둘째 이유
제10장 · 예배 의식에 관한 교회법들의 부당함과 어리석음. 9-18
9. 양심을 얽어매는 교회법의 부당함
칼빈은 원리를 당대에 적용합니다. 교황이 만든 교회법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의식에 관한 법과 권징에 관한 법입니다. 둘 다 공격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 법을 만든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 예배의 본질이 그 안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무지한 대중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를 승인합니다. 예배를 자기들의 의식에 묶지 않았다면, 사소한 전통을 어긴 것을 그렇게 큰 범죄로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배의 질서가 사람의 결정에 넘어가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거스른다고 한 '세상의 초등학문'(유치한 외형 규칙)을 따라 예배하게 하니, 이에 맞서는 것은 바울과 같은 편에 서는 것입니다.
- 교회법은 의식 법과 권징 법 두 종류
- 그들 스스로 예배 본질이 거기 있다 한다
- 사소한 전통 위반을 큰 죄로 여긴다
- 이에 맞서는 것은 바울의 편에 서는 것
10. 하나님의 법을 저버리는 교회법
신앙이 사람의 규칙으로 정해지면 또 다른 부패가 따라옵니다. 그리스도가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신 이유가 사람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칼빈은 당대의 뒤집힌 죄 의식을 나열합니다. 일 년 내내 악하게 산 것보다 해마다 하는 고해성사를 빠뜨리는 것이, 음행보다 금요일에 고기를 맛본 것이, 사제가 수없이 간음하는 것보다 한 번 정당하게 결혼하는 것이 더 큰 죄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진실하게 기도한 적이 없는 것보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문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면 가볍게 넘어가고 자기들의 법을 어기면 옥에 가두고 불과 칼로 죽입니다. 사소한 일로 형제를 판단하고 내쫓는 것 자체가 큰 죄인데, 그렇게 세상의 초등학문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아집니다.
- 사람 전통 때문에 하나님 계명을 폐한다
- 금요일 고기가 음행보다 큰 죄가 된다
- 사제의 결혼이 간음보다 큰 죄가 된다
- 하나님 법엔 관대, 자기 법엔 잔혹
- 초등학문이 말씀보다 높아졌다
11. 교회법의 무용성과 어리석음
교회법에는 두 가지 큰 악이 더 있습니다. 대부분 쓸모없고 때로 어리석은데도 순종을 강요한다는 것, 그리고 너무 많아서 경건한 양심을 짓누르고 그림자에 매달리게 해 일종의 유대교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지혜는 이 법들을 좋아해서 없애면 교회가 일그러질 것처럼 여깁니다. 바울은 이런 것들이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라 사람의 지혜가 친근하게 느끼고, 사람의 마음을 땅에 기게 하니 겸손해 보이며, 금욕으로 육체를 누르는 듯해서 지혜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들이 사람의 계명이라는 점만 짚고 따로 반박할 가치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거짓 예배는 사람 본성을 즐겁게 할수록 더 의심해야 하고, 거짓 겸손은 참 겸손과 쉽게 구별됩니다.
- 악1: 쓸모없고 어리석은 법을 강요
- 악2: 너무 많아 양심을 짓누름
- 지혜·겸손·금욕의 '모양'만 있다
- 사람의 계명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한 반박
- 본성이 좋아할수록 더 의심하라
12. 로마 교회의 의식들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음
교육받지 못한 대중뿐 아니라 세상 지혜로 우쭐한 사람들도 화려한 의식에 빠집니다. 그러나 경건의 기준으로 깊이 살피는 사람은 두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 의식들은 실제로 아무 쓸모가 없고, 겉의 화려함으로 사람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칼빈이 말하는 것은 로마 교회 지도자들이 큰 신비가 있는 것처럼 꾸민 의식들입니다. 그것들은 일부는 이방 종교의 광란에서, 일부는 이미 우리와 상관없게 된 모세 율법의 의식을 무분별하게 흉내 낸 것입니다. 대부분의 의식은 사람을 가르치기보다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이것이 교회의 권징이라 하지만, 실은 권징의 덧없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 화려한 의식에 많은 사람이 빠진다
- 실제로는 쓸모없고 사람을 속인다
- 이방 의식과 모세 의식의 흉내
- 사람을 가르치지 않고 무감각하게 한다
13. 로마 교회는 무수한 전통들로 신자의 양심을 억압함
두 번째 악은 수효입니다. 전통이 쌓여 교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었고, 의식에서는 유대교가 되살아나고 다른 규칙들은 경건한 사람을 괴롭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자기 시대를 두고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시되고, 축일 뒤 8일 안에 맨발로 땅을 밟은 사람이 그동안 술에 취한 사람보다 더 엄하게 벌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하신 교회가 유대인보다 더 억눌린다고도 했습니다. 칼빈은 지금은 전통이 열 배 많고 백 배 엄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규례를 꾸짖었는데, 칼빈은 이것을 거짓 교사들이 금지를 점점 넓혀 가는 모습으로 읽습니다. 먹지 말라에서 맛보지 말라로, 결국 손도 대지 말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 전통이 쌓여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 아우구스티누스도 유대인보다 억눌린다 탄식
- 칼빈 시대는 열 배 많고 백 배 엄하다
- 금지는 먹기→맛보기→만지기로 번진다
14. 의식은 그리스도를 감추지 말고 그를 드러내야 함
수많은 의식은 그리스도를 반쯤 묻어 버리고 유대교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께서 새 백성을 수는 적고 뜻은 탁월하며 지키기 쉬운 성례로 묶으셨다고 했습니다. 반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무지한 사람이 많으니 초보적인 의식이 필요하고, 강한 사람에겐 필요 없어도 약한 사람에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약한 형제를 배려해야 하지만 의식으로 뒤덮는 것은 바른 배려가 아니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은 옛 백성은 어린아이처럼 표적과 그림자로, 우리는 더 단순하게 가르치십니다. 바울 말대로 유대인은 후견인 아래 있는 어린아이였고 우리는 자유로운 성인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도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의식을 모두 없애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몇 가지 의식을 주셨고, 의식은 수가 적고, 지키기 쉽고, 품위 있고, 뜻이 분명해야 합니다.
- 많은 의식은 그리스도를 묻어 버린다
- 그리스도는 적고 쉬운 성례를 주셨다
- 구약은 어린아이, 신약은 성인
- 의식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 기준: 적고 쉽고 품위 있고 분명하게
15. 의식들의 부패성
사람들은 의식이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죄를 씻고 의와 구원을 얻는 제사라고 깊이 믿습니다. 반대자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일도 잘못 쓸 수 있으니 의식 자체 탓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칼빈은 사람이 지어낸 행위를 그렇게 높이는 것 자체가 더 무가치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행위에 상이 있는 것은 그 행위 자체에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순종을 귀히 받으시기 때문이고, 그나마도 우리의 순종이 부족하므로 값없는 자비로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제사가 아니라 "내 목소리를 들으라"고 명하셨고, 사람의 계명으로 드리는 경배는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로마 교회의 의식은 연극이나 마술처럼 알아들을 수 없게 행해지고 가르침과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이끌지 못하는 의식은 해롭습니다. 또 많은 의식이 사제들이 돈을 벌려고 만든 것이어서, 이 부패를 끊으려면 대부분을 없애야 할 지경이라고 칼빈은 말합니다.
- 의식을 죄 씻는 제사로 여기는 오해
- 행위의 가치는 공로 아닌 순종에 있다
- 하나님은 제사보다 '내 목소리'를 원하심
- 그리스도께 이끌지 못하는 의식은 해롭다
- 돈벌이가 된 의식이 많다
16. 인간의 법을 분별하는 영구한 원리
칼빈은 지금 당대 이야기를 하지만 모든 시대에 해당하는 원리라고 말합니다. 미신이 끼어들어 사람이 지어낸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려 하면, 그런 목적의 법은 곧 큰 악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가르침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둔하게 하고 놀라게 하시겠다고 모든 시대에 선언하셨습니다. 버려야 할 인간 전통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말씀과 상관없이 사람이 만든 법 중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을 정하거나 구원에 필수인 것처럼 양심을 묶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오류가 더해지면 악이 더 분명해집니다. 너무 많아서 복음을 흐리는 것, 덕을 세우지 못하고 하찮은 것, 탐욕을 위한 것, 지키기 너무 어려운 것, 미신으로 더럽혀진 것입니다.
- 이 원리는 모든 시대에 적용된다
- 사람이 만든 예배엔 하나님의 심판
- 정의: 예배 방법을 정하거나 양심을 묶는 법
- 추가 표지: 과다·무익·탐욕·과중·미신
17. 로마 교회법은 말씀에 가감하지 말라는 금령을 무시한 것들임
반대자들은 자기 전통이 하나님께 왔다고 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오류가 없고, 그 권위가 자기들에게 있으며, 전통 대부분이 사도들에게서 왔다고 합니다. 그 예로 예루살렘 회의가 이방인에게 우상 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을 삼가라고 명한 일을 듭니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참 교회를 바라보면, 말씀의 한계를 넘어 새 법을 만드는 것은 참 교회가 아니라고 답합니다. "가감하지 말라",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는 명령은 교회에 주신 영원한 법입니다. 반대자들은 이 명령이 율법에만 해당하고 뒤에 예언과 복음이 왔다고 반박합니다. 칼빈은 예언과 복음이 율법에 '덧붙인 것'이나 '줄인 것'이 아니라 율법을 '보충한 것'이라 답합니다. 모세 때도 가감을 금하셨다면, 율법·선지자·시편·복음 전체에 가감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더 큽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 반대자: 전통은 성령과 사도에게서 왔다
- 말씀 한계를 넘는 교회는 참 교회 아님
- 가감 금지는 교회에 주신 영원한 법
- 예언과 복음은 율법의 '보충'
-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18. 로마 교회의 전통들은 사도들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
반대자들은 개혁파가 교회를 욕한다고 비난하지만, 칼빈은 오히려 교회에 '순종'이라는 가장 높은 칭찬을 돌린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말씀의 범위를 넘었다고 말하는 그들이 교회를 해칩니다. 교회와 한마음이 되고 싶다면 주께서 교회에 명하신 것에 순종하면 됩니다. 주님께 순종하면 교회와 하나가 됩니다. 이 전통들을 사도들에게 끌어 붙이는 것은 속임수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 전체는 새 규칙으로 양심에 짐을 지우지 말고 예배를 사람의 수단으로 더럽히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6장을 근거로 한 '구전' 주장은 이미 다뤘습니다. 칼빈은 의식들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조금씩 쌓였다고 설명합니다. 사도 직후 감독들이 질서를 위해 몇 가지를 정했고, 뒤로 갈수록 호기심 많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 선배보다 새것을 더 만들려 경쟁하고, 자기 고안이 사라질까 봐 더 강하게 지키게 했다는 것입니다.
- 교회를 욕함이 아니라 순종을 칭찬함
- 주님께 순종하면 교회와 하나 된다
- 사도들은 짐 지우지 말라고 가르쳤다
- 의식은 경쟁처럼 조금씩 쌓였다
제10장 · 로마 교회의 무용한 온갖 의식들은 사도들과 관계 없음. 19-22
19. 사도 시대 이후부터 무용한 의식들이 생겨났음
칼빈은 성찬을 예로 듭니다. 사도 시대에는 아주 단순하게 행해졌습니다. 사도 직후 사람들이 그 신비의 위엄을 높이려고 무언가 덧붙였는데, 이것은 정죄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어리석은 모방자들이 이것저것 이어 붙여 미사의 사제복, 제단 장식, 몸짓 같은 것들을 만들었습니다. 반대자들은 옛사람들이 온 교회가 함께 지키는 것은 사도들에게서 왔다고 믿었다며 아우구스티누스를 근거로 듭니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답합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 부활, 승천,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연례 행사 몇 가지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염두에 둔 것은 질서에 유익한 단순하고 드문 의식들이었지, 사소한 의식 하나하나를 사도적이라 강요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사도 시대 성찬은 단순했다
- 초기의 약간의 첨가는 정죄 대상 아님
- 후대에 사제복·장식·몸짓이 쌓였다
- 아우구스티누스가 든 예는 소수 절기뿐
20. 한 가지 실례: 성수
성수(축복한 물)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사도들에게서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은 로마의 어느 감독이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칼빈은 그 감독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살폈다면 이런 이상한 상징으로 세례를 흐리지 않았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는 성수의 기원이 기록보다도 더 늦다고 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시대 일부 교회는 세례와 혼동될까 봐 발 씻기기조차 하지 않았으니, 세례와 비슷한 씻는 예식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물로 세례를 반복해 떠올리는 행위는 사도적 정신이 아니라고 칼빈은 말합니다. 설령 아우구스티누스가 사도적이라 한 것을 다 인정하더라도, 경건을 위해 자유롭게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실천과 양심을 강제로 묶는 법은 전혀 다릅니다. 지금 그것들이 큰 악을 낳고 있으니 없애도 거리낌이 없고, 처음 만든 사람에게도 무례가 아닙니다.
- 성수는 사도가 아니라 후대 감독의 고안
- 날마다 세례를 반복하는 상징은 부적절
- 자유로운 실천과 강제 법은 전혀 다르다
- 악을 낳는 의식은 없애도 거리낌 없다
21. 사도행전 15:20의 사도들의 법령
반대자들은 사도와 장로들이 그리스도의 명령에 없는 법령을 만들어 이방인에게 우상 제물, 목매어 죽인 것, 피를 금했으니, 후대 교회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칼빈은 사도들이 새 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같은 회의에서 베드로는 제자들 목에 멍에를 두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곧바로 자기 권위로 금지 규칙을 만들었다면 자기 말을 뒤집는 셈입니다. 법령을 자세히 보면 첫째 요점은 이방인에게 자유를 남겨 두고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뒤따르는 예외는 새 법이 아니라 '사랑을 해치지 말라'는 하나님의 영원한 명령입니다. 둘째 요점은 형제를 넘어뜨리지 않게 자유를 쓰라는 것이고, 사도들은 당시 형편에서 무엇이 형제를 넘어뜨리는지 구체적으로 짚어 주었을 뿐입니다.
- 반대자: 사도들도 새 법을 만들었다
- 베드로는 멍에를 두지 말라고 했다
- 법령의 핵심은 이방인의 자유 보장
- 예외는 '사랑을 해치지 말라'는 옛 명령
- 당시 형편에 맞춘 구체적 적용일 뿐
22. 사도들의 법령의 의의
칼빈은 비유를 듭니다. 아직 덜 세워진 교회의 목회자가 약한 신자들이 자랄 때까지 금요일에 공개적으로 고기를 먹거나 성일에 공개적으로 일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그 일들은 미신과 상관없는 중립적인 일이지만, 약한 형제를 실족시키면 죄가 됩니다. 이 목회자는 새 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형제를 실족시키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른 것입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주께서 약한 형제를 해치지 말라 하셨고, 이것들을 먹으면 형제가 상처받으니 먹지 말라"고 말한 셈입니다. 바울도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약한 사람의 양심을 위해 자유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또 반대자들 자신도 이 사도 법령을 폐지했는데, 실족 위험이 사라졌고 법은 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법이 사랑을 위한 적용이었지 하나님의 율법에 새것을 더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 약한 형제를 위해 잠시 자유를 삼가는 것
- 그것은 새 법이 아니라 사랑의 명령
- 바울도 같은 원리로 가르쳤다
- 반대자들도 이 법령을 폐지했다
- 그 자체가 '사랑의 적용'이라는 고백
제10장 · 인간이 만든 예배의 전통과 의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정죄를 받음. 23-26
23. 인간이 만든 예배는 말씀에서 떠난 것으로 하나님께 가증함
반대자들은 법령이 백 배 불의해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류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 명령에 복종하는 것뿐이라는 이유입니다. 칼빈은 주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자유로 우리를 이끄신다고 답합니다. 이것은 몸이 억압을 참는 정도가 아니라, 양심이 노예가 되고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빼앗기는 문제입니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의 법으로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계명으로 경외하는 백성에게 기이한 일을 행해 지혜자의 지혜를 없애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에 옮겨 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몰라 사자에게 해를 입었고, 뒤에 율법의 의식을 따랐지만 자기 신들도 섬겼기에 '여호와도 경외하고 자기 신도 섬겼다'는 말이 거듭 나옵니다. 경건한 왕들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칭찬받습니다. 반대로 아하스는 다메섹의 제단을 본떠 더 화려하게 하나님께 제사하려 했지만 가증하게 여겨졌고, 므낫세는 하나님이 이름을 두신 예루살렘에 새 제단을 세워 죄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 불의한 법도 따르라는 요구를 거부
- 그리스도의 피로 산 양심의 자유
- 사람 법으로 예배하면 그의 나라를 빼앗음
- 아하스의 화려한 제단도 가증했다
- 좋은 의도도 하나님 명령을 대신 못한다
24. 하나님께서 인간이 만들어낸 예배를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이유
사람의 계명으로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이 왜 그렇게 엄하게 대하시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칼빈은 신앙 문제에서 하나님의 명령에만 기대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이유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법에 복종하며 예배하는 사람들은 겸손해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겸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법을 자기들이 만들고 그것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의 전통과 "자의적 숭배"(하나님 가르침 없이 사람이 고안한 예배, 원어 에텔로트레스케이아)에 속지 말라고 급히 경고했습니다. 우리의 지혜는 어리석게 되고 하나님만 지혜로우셔야 합니다. 창조주보다 피조물의 권위를 높이는 곳에서는 이교보다도 더 미신으로 더럽혀진 신앙이 나옵니다. 사람의 마음이 지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을 닮은 육적이고 어리석은 것뿐입니다.
- 사람 법을 지키는 겸손은 겉모양뿐
- 실은 하나님께 법을 만들어 드리는 교만
- 자의적 숭배에 속지 말라
- 사람이 지어낸 예배는 사람을 닮는다
25. 사무엘과 마노아의 예
미신을 옹호하는 이들은 사무엘이 율법을 벗어나 라마에서 제사를 드렸는데도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사무엘이 유일한 제단을 버리고 다른 제단을 세운 것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당시 언약궤가 머물 장소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 자기가 살던 곳을 제사하기 편한 곳으로 정한 것뿐입니다. 거룩한 선지자가 하나님 예배에 새것을 덧붙이려 했을 리 없습니다. 마노아의 제사는 매우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개인으로 드렸지만 순간적인 충동이 아니라 하늘의 감동을 받아 드렸고, 하나님의 승인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기드온은 마노아 못지않은 인물이었지만 자기 생각으로 만든 에봇이 자신과 집안과 온 백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사람이 마음대로 새것을 만들어 예배하는 것은 참 거룩함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 사무엘: 언약궤 장소 미정 시기의 일
- 새 예배를 더하려던 것이 아니다
- 마노아: 하늘의 감동을 받은 특수 사례
- 기드온의 에봇은 온 백성을 무너뜨렸다
26. 바리새인의 누룩에 대한 주님의 경계
반대자들은 그리스도가 바리새인들이 지우는 짐도 견디라고 하셨다며 마태복음 23:3을 듭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도 하셨고, 마태는 그 누룩이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에 섞은 사람의 가르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그들의 가르침을 피하라는 명령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23장도 왜곡하지 않고 읽으면 다른 뜻이 아닙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강하게 꾸짖으시기 전에, 그들의 삶은 본받지 말되 모세의 자리에 앉아 율법을 해석할 때 가르치는 것은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교리를 멸시하는 선생들의 나쁜 본을 따르지 말라는 경계였습니다. 칼빈은 권위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합니다. 교회에는 참 목자인 아들들도 있고 이익을 좇는 삯꾼도 있지만, 삯꾼을 통해서도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릴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면 들어야 하지만, 자기 법을 가르치면 듣지도 행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 누룩 = 말씀에 섞은 사람의 가르침
- 그들의 가르침을 피하라는 명령
- 모세의 자리에서 율법을 가르칠 때만 행하라
- 삯꾼을 통해서도 목자의 음성은 들린다
- 자기 법을 가르치면 듣지 말라
제10장 · 정당한 교회법의 필요성과 그 올바른 시행을 위한 지침. 27-32
27. 교회 질서 유지를 위한 법의 필요성
양심이 사람의 전통에 묶이고 헛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들은 일부 무지한 사람들은 교회 질서를 세우는 정당한 규칙까지 다 없애려 합니다. 칼빈은 이 반대쪽 오류도 다룹니다. 두 종류의 법이 비슷해 보여서 속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간 사회든 평화와 화합을 위해 조직이 필요하고, 공공의 예의와 인간다움을 위해 지켜야 할 절차가 있습니다. 교회는 특히 그렇습니다. 질서가 있어야 잘 유지되고 화합 없이는 교회가 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는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사람의 성향은 제각각이어서 분명한 규칙과 형식이 없으면 어떤 공동체도 버틸 수 없습니다. 이런 규칙이 사라지면 교회는 근육이 풀린 몸처럼 무너집니다. 단, 이 규칙을 구원에 필수로 여겨 양심을 묶거나, 경건이 그 규칙을 지키는 데 있는 것처럼 예배와 엮어서는 안 됩니다.
- 반대 극단: 모든 교회 규칙을 없애자
- 사회도 교회도 질서와 절차가 필요하다
- 품위 있게, 질서 있게
- 규칙이 없으면 교회는 무너진다
- 단, 구원 필수나 경건 자체로 여기지 말 것
28. 정당한 교회법들을 구별하는 표지
불경한 법과 정당한 법을 가르는 확실한 표지가 있습니다. 정당한 법의 목적은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다입니다. 신자들의 모임에서 모든 일을 품위 있게 행하는 것, 그리고 공동체를 인간다움과 예의의 끈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법이 공공의 품위를 위한 것임을 알면, 사람이 만든 것으로 예배를 재는 미신이 사라집니다. 법이 일상의 쓸모를 위한 것임을 알면, 전통이 구원에 필수라는 생각에서 오는 양심의 공포가 사라집니다. 이런 법은 서로 사랑을 북돋우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품위의 목적은 경건을 돕고 거룩한 일에 맞는 진지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질서의 목적은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 받는 사람이 각자 자리에서 순종을 배우고 교회에 평화를 주는 것입니다.
- 표지: 목적이 품위와 공동체의 예의
- 품위를 위한 법임을 알면 미신이 사라진다
- 일상의 쓸모를 알면 양심의 공포가 사라진다
- 정당한 법은 사랑을 북돋울 뿐
29. 정당한 교회법들의 실례
품위는 허황된 즐거움이 아닙니다. 로마 교회 의식의 극적이고 화려한 장식은 열매 없는 사치의 가면일 뿐입니다. 칼빈이 말하는 품위는 거룩한 일에 맞는 장식으로, 신자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경건하게 거룩한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고, 무엇보다 그리스도께 곧바로 이끌어야 합니다. 질서도 반짝이는 화려함이 아니라 혼란, 무례, 고집, 소란, 다툼을 없애는 데 있습니다. 바울이 든 예로는 주의 성찬을 술자리와 구별하는 것,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공적인 자리에 나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무릎 꿇기, 성례를 위엄 있게 행하기, 장례를 품위 있게 치르기도 여기에 듭니다. 또 기도·설교·성례 시간 정하기, 설교 때 조용히 하기, 함께 찬송하기, 성찬 날짜 정하기, 여자가 교회에서 가르치지 못하게 한 바울의 금지, 그리고 요리문답 교육, 책벌, 출교(교회 회원 자격을 정지하는 최종 권징), 금식이 있습니다. 결국 정당한 교회법은 의식에 관한 것과 권징·평화에 관한 것 두 종류입니다.
- 품위 ≠ 화려한 사치
- 참 품위는 그리스도께 곧바로 이끈다
- 질서 = 혼란과 다툼을 없애는 것
- 예: 시간 정하기, 찬송, 성찬, 요리문답
- 정당한 법: 의식 / 권징·평화
30. 정당한 교회법들과 관련한 위험 요소
여기에는 두 위험이 있습니다. 거짓 감독들이 이것을 핑계로 자기들의 폭압적인 법을 정당화할 위험, 그리고 앞서 말한 악을 너무 경계한 나머지 거룩한 규칙에 아무 자리도 남기지 않을 위험입니다. 칼빈은 사람이 만든 법 중 하나님의 권위에 기초하고 성경에서 근거를 얻은, 그래서 사실상 '신적인' 법만 인정한다고 밝힙니다. 기도할 때 무릎 꿇기를 예로 듭니다. 이것은 사람의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도가 명한 품위와 질서의 일부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것이고, 사도가 큰 틀만 주신 것을 구체적으로 정했다는 점에서 사람의 것입니다. 주께서는 의와 예배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말씀에 담으셨으므로 그 부분은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권징과 의식은 시대마다 맞는 형식이 다르므로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으셨고, 일반 원칙만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필요에 따라 전통을 바꾸거나 없애거나 새로 세울 수 있습니다. 다만 경솔하게 새 전통을 만들면 안 되며, 무엇이 덕을 세우는지는 사랑이 가장 잘 판단합니다.
- 위험1: 폭압적 법의 핑계로 악용
- 위험2: 거룩한 규칙까지 다 없앰
- 무릎 꿇기는 사람의 것이자 하나님의 것
- 예배·구원은 말씀만, 형식은 일반 원칙으로
- 바꿀 수 있되 사랑을 안내자로
31. 정당한 교회법들의 시행 지침
이런 원칙으로 세운 규칙은 자유로운 양심으로, 미신 없이, 기꺼이 지켜야 하며 멸시하거나 소홀히 하거나 고집스럽게 어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양심의 자유는 어디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칼빈은 이 규칙들이 영구한 법이 아니라 사람의 연약함을 돕는 기본 장치라고 답합니다. 모두에게 필요하지는 않지만, 서로 묶여 사랑을 키우도록 모두가 지킵니다. 신앙이 머리 수건에 달린 것이 아니므로, 이웃을 도우러 급히 뛰어가는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못해도 명령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잠잠해야 할 곳도 있지만 말하는 것이 맞는 곳도 있습니다. 병으로 무릎을 꿇지 못하는 사람은 서서 기도해도 되고, 수의나 운구할 사람이 없다고 장례를 미뤄 시신이 썩게 둘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일의 기준은 지역 관습, 인정, 중용입니다. 모르거나 잊어서 어긴 것은 죄가 아니지만, 멸시해서 어기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예배 날짜, 시간, 어떤 시편을 부를지는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지만, 평화를 위해 정해 두어야 합니다. 이런 일로 혼자 지혜로운 척 다투는 사람은 바울의 말에 만족해야 합니다.
- 자유로운 양심으로 기꺼이 지킨다
- 규칙은 연약함을 돕는 장치, 영구법 아님
- 사랑과 상황에 따라 예외가 있다
- 몰라서 어김은 죄 아님, 멸시는 안 됨
- 날짜·시간은 평화를 위해 정해 둔다
32. 오류를 방지하여야 함
이 순수한 사용에 오류가 끼어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규칙의 유익이 분명하고, 수가 아주 적고, 신실한 목회자의 가르침이 함께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 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첫째, 각자 자유를 지키면서도 품위와 사랑이 요구하는 만큼 스스로 자유를 제한합니다. 둘째, 규칙을 지키되 미신에 빠지지 않고, 남에게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고, 의식이 많을수록 예배가 낫다고 여기지 않고, 외적 형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교회를 멸시하지 않습니다. 셋째, 영구한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므로 교회 규칙의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것임을 기억하고, 필요하면 거리낌 없이 바꾸거나 없앱니다. 칼빈은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고 좋은 이유로 생긴 의식이라도, 미신이 너무 깊이 엉겨 붙어 있으면 없애야 할 때가 있다고 당대의 경험을 들어 말합니다.
- 유익이 분명하고, 수는 적게, 가르침과 함께
- 자유를 지키며 사랑으로 스스로 제한
- 의식이 많다고 예배가 나은 것 아님
- 형식이 다른 교회를 멸시하지 않는다
-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것, 바꿀 수 있다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로마 교회 | 세계 공의회는 성령의 지시를 받으므로 오류가 없다 | 그리스도는 '내 이름으로', 곧 말씀을 따라 모인 곳에만 함께하신다. 형식이 완벽한 회의도 진리를 정죄했다 | 마태복음 18:20, 열왕기상 22:6, 요한복음 11:47 마태복음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열왕기상 22:6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요한복음 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
| 로마 교회 | 성령이 모든 진리로 인도한다는 약속은 교회 전체에 주신 것이다 | 그 약속은 개인에게도 주셨다. 성령의 인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다 | 요한복음 14:16-17, 요한복음 14:26 요한복음 14:16-17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 로마 교회 | 교회는 흠 없고 진리의 기둥이므로 무오하다 | '흠 없음'은 날마다 진행 중이고 완성은 재림 때다. '진리의 기둥'은 말씀 사역으로 진리를 지킨다는 뜻이다 | 에베소서 5:26-27, 디모데전서 3:15 에베소서 5:26-27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디모데전서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
| 로마 교회 | 사도들은 글 외에 말로도 가르침을 전했고 그것이 전통이다 | 글을 쓸 때 사도들은 이미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빠진 계시가 무엇인지 대 보라 | 요한복음 16:12-13 12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 로마 교회 | 교회 말을 안 들으면 이방인처럼 여기라 했으니 교회 결정에 이의를 달 수 없다 | 그 구절은 교리가 아니라 권징의 권위다. 교회 말은 말씀에 근거할 때 들어야 한다 | 마태복음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
| 로마 교회 | 유아세례와 '동일본질'은 성경이 아닌 교회 결정에서 나왔다 | 유아세례는 성경적 근거가 있고, '동일본질'은 성경의 뜻을 풀어낸 말이다 | (칼빈이 직접 단 장절 없음) |
| 로마 교회 | 인도자가 악해도 복종하라는 말씀이 있다 | 참 인도자는 율법에서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다. 맹인 인도자를 따르면 함께 빠진다 | 히브리서 13:17, 여호수아 1:7-8, 마태복음 15:14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수아 1:7-8 7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마태복음 15: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
| 로마 교회 | 성경 해석권은 공의회에 있고 그 해석은 이의 불가다 | 그들은 성경과 반대되는 결정까지 '해석'이라 부른다 | 마태복음 26:27-28, 히브리서 13:4 마태복음 26:27-28 27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히브리서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
| 로마 교회 | 교회법은 영적이며 구원에 필수이고, 어기면 하나님과 교회를 거스르는 이중 불순종이다 | 영혼의 입법자는 하나님 한 분이다. 사람은 양심에 의무를 지울 수 없다 | 야고보서 4:12, 이사야 33:22 야고보서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이사야 33:22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 |
| 로마 교회 | 무지한 사람을 위해 많은 의식이 필요하다 | 약한 자를 배려하되 의식 홍수는 답이 아니다. 신약 백성은 성인처럼 단순하게 배운다 | 갈라디아서 4:1-3, 요한복음 4:23 갈라디아서 4:1-3 1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 로마 교회 | 사도들도 예루살렘 회의에서 새 법을 만들었다 | 그것은 '형제를 실족시키지 말라'는 영원한 사랑의 법을 당시 형편에 적용한 것이다 | 사도행전 15:10, 고린도전서 8:9 사도행전 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고린도전서 8: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
| 로마 교회 | 사무엘과 마노아도 정해진 방식 밖에서 제사했다 | 사무엘은 언약궤 장소가 없던 때였고, 마노아는 하늘의 감동을 받은 특수한 경우다 | 사무엘상 7:17, 사사기 13:19, 사사기 8:27 사무엘상 7: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사사기 13: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사사기 8: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
| 로마 교회 | 그리스도가 바리새인이 지우는 짐도 지키라 하셨다 | 율법을 가르칠 때만 들으라는 뜻이고, 그들이 섞은 사람의 가르침은 누룩이니 피하라 하셨다 | 마태복음 23:2-3, 마태복음 16:12 마태복음 23:2-3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16: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
| 로마 교회 | 양심 때문에도 권세에 복종하라 했으니 사람의 법도 양심을 묶는다 | 우리를 묶는 것은 개별 법이 아니라 '권세에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일반 명령이다 | 로마서 13:1, 로마서 13:5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로마서 13: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
| 일부 무지한 사람들(반대 극단) | 사람이 만든 전통이 문제라면 교회 규칙을 다 없애야 한다 | 질서와 품위를 위한 규칙은 필요하다. 다만 구원 필수나 경건 자체로 여기지 않는다 | 고린도전서 14:40, 고린도전서 11:16 고린도전서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 고린도전서 11: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
3. 용어
- 공의회
- 여러 교회의 대표(주로 감독)가 모여 신앙과 교회 질서를 결정하던 회의.
- 신조
- 교회가 공식으로 고백하는 믿음의 조항.
- 무오성
- 틀릴 수 없다는 성질. 로마 교회는 공의회와 교회에 이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 교황주의자(로마교회주의자)
- 칼빈이 교황의 권위를 앞세우는 당시 로마 교회 측을 부르는 말. 16세기 논쟁 용어다.
- 인간의 전통
- 하나님 예배에 관해 말씀과 상관없이 사람이 만들어 양심에 지운 규칙. 모든 관습을 뜻하지 않는다.
- 양심
-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자기 죄를 아는 내면의 증인.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 있다.
- 중립적인 일
-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닌 일. 흔히 '아디아포라'라고도 한다.
- 권징
- 교회가 죄를 다루고 바로잡는 질서와 절차. 책벌, 출교 등이 포함된다.
- 정경과 외경
- 정경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성경 목록이고, 외경은 거기에 들지 않는 책들이다.
- 자의적 숭배
- 하나님의 가르침 없이 사람이 스스로 고안한 예배(골로새서 2:23).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받은 말씀만 전했다. 교회 권세도 말씀 안에 있다.
-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는 완성되었고, 교회는 새 교리를 만들 수 없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일하신다.
- 공의회는 존중하되 성경으로 점검한다. 공의회도 서로 모순되고 틀릴 수 있다.
- 영혼의 입법자는 하나님 한 분이다. 예배를 새로 정하거나 구원 필수처럼 양심을 묶는 법은 버려야 한다.
- 질서와 품위를 위한 교회 규칙은 필요하다. 수를 적게,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사랑으로 지키고 필요하면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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