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제4권 교회·성례·국가

4권 3편 교회 정치의 역사와 교황제

존 칼빈 『기독교강요』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 제4권 4장 1-15절, 5장 1-19절, 6장 1-17절, 7장 1-30절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기독교강요』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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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교회에 '전 세계 교회의 대표 한 사람'이 꼭 있어야 할까? 원래 교회는 리더를 어떻게 세우고 헌금을 어디에 썼을까?

칼빈은 먼저 4장에서 고대 교회(대략 처음 몇백 년)가 직분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보여 준다. 교회 재산을 어디에 썼는지, 사역자를 어떻게 뽑고 세웠는지도 함께 다룬다. 결론은 고대 교회가 부족한 점은 있었어도 성경의 틀을 지키려 애썼다는 것이다. 5장에서는 이 기준을 칼빈 당시의 로마 교회에 대어 본다. 선출, 임직, 성직록(직분에 붙은 수입), 집사직, 교회 재산이 모두 이름만 남고 내용은 사라졌다고 고발한다. 6장은 이 구조의 꼭대기인 '로마 교황의 수위권'을 성경으로 검토한다. 구약 대제사장, 베드로와 열쇠, 그리스도만이 머리라는 점, 로마라는 장소 문제, 베드로의 로마 거주 문제를 하나씩 따진다. 7장은 같은 문제를 역사로 검토한다. 공의회 기록, 칭호, 재판권을 살피고, 로마의 권세가 정치권력과 손잡고 커진 과정을 추적한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교황제에는 참된 교회의 직분이 남아 있지 않다고 결론짓는다.

1. 절별 정리

4.4 고대 교회의 정치 · 교회의 사역의 제도적 발전. 1-4

1. 고대 교회는 성경의 전례를 충실히 따랐음

칼빈은 앞 편에서 성경이 말하는 교회 직분을 다루었다. 이번에는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고대 교회의 실제 모습을 살핀다. 고대 감독들은 여러 법령을 만들었다. 그래서 성경보다 더 나아간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칼빈은 그들이 말씀의 틀에 맞추려고 애썼고, 그래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한다. 고대 교회도 성경처럼 직분을 셋으로 나누었다.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교사), 생활을 살피고 바로잡는 장로, 그리고 가난한 이를 돌보는 집사다. '독경자'나 '조사' 같은 이름은 정식 직분이 아니었다. 젊은이를 미리 훈련시키는 단계였다.

  • 고대 교회는 성경을 '보여 주는 거울'로 쓸 만하다
  • 완벽하진 않았지만 말씀에서 멀지 않았다
  • 직분은 셋: 가르치는 장로·치리 장로·집사
  • 독경자·조사는 직분이 아니라 훈련 과정
  • 히에로니무스의 구분에도 수도사 자리는 없다
—이 절은 고대 교회 기록으로 설명한다(직접 인용 구절 없음)

2. 감독과 장로

고대 교회는 가르치는 사람을 모두 '장로'라고 불렀다. 도시마다 장로들이 자기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감독'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모두가 같은 지위이면 다툼이 생기기 쉬웠기 때문이다. 감독은 동료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로마 원로원의 집정관처럼 회의를 이끌고, 의견을 듣고, 결정을 실행하는 의장에 가까웠다. 히에로니무스(제롬)는 디도서를 풀이하며 감독과 장로는 원래 같은 직분이라고 말했다. 분쟁 때문에 한 사람에게 감독권을 모으게 된 것은 사람들의 합의, 곧 교회 관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도 자기가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 관례로 앞에 섰다는 것을 알았다. 그만큼 장로들과 함께 다스려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관할 지역이 넓으면 '지방 감독'을 두어 작은 일을 맡겼다.

  • 감독과 장로는 본래 같은 직분이었다
  • 감독은 분쟁을 막으려 세운 '의장'이다
  • 감독직의 우위는 하나님 명령 아닌 관례다
  • 감독도 장로회 결정에 따랐다
고린도전서 1:12'나는 바울에게, 나는 게바에게' — 분파 다툼이 감독 1인 체제를 낳았다는 히에로니무스의 설명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디도서 1:9장로들이 감독처럼 가르치고 권면하고 바로잡는 일을 했다는 근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3. 감독과 장로의 주요 임무

감독과 장로의 기본 임무는 말씀 전파와 성례 집행이었다. 예외는 알렉산드리아 한 곳이었다. 아리우스(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이단자)의 소란 이후 그곳 장로들은 설교를 금지당했다. 히에로니무스는 이 조치를 못마땅해했다. 설교하지 않는 감독은 감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교회가 이미 많이 무너졌던 그레고리우스 1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레고리우스는 설교의 소리를 내지 않는 감독은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바울의 고백을 들어, 잠잠한 감독은 남의 영혼을 죽이는 셈이라며 자신을 포함해 책망했다. 칼빈의 결론은 이렇다. 감독의 핵심 임무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먹이고,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 감독·장로의 본업은 설교와 성례다
  • 설교 안 하는 감독은 감독이 아니었다
  • 쇠퇴기의 그레고리우스도 이것을 지켰다
  • 대충 하는 것도 '잠잠함'으로 책망받았다
사도행전 20:26바울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깨끗하다'고 한 말 — 그레고리우스가 설교하지 않는 감독을 고발하는 근거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4. 대감독과 총대감독

지방마다 감독들 가운데 대감독(대주교)이 있었다. 니케아 공의회(325년)는 그보다 높은 총대감독(총대주교)도 두었다. 목적은 질서였다. 한 교회에서 풀지 못한 일은 지방 대회(지역 교회 회의)에서 다루었다. 더 큰 일은 총대감독과 대회가 함께 다루었다. 그 결정에 대한 상소는 전체 공의회에만 할 수 있었다. 칼빈은 이런 체제를 '성직계급제(hierarchy)'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성경에 없는 말이고,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서 누가 군림하려는 것을 경계하시기 때문이다. 다만 그 체제의 의도만 보면, 옛 감독들은 말씀과 다른 것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 대감독·총대감독은 질서를 위한 장치였다
  • 이런 경우는 드물었고 회의 중심이었다
  • 최종 상소처는 한 사람 아닌 공의회였다
  • '성직계급제'라는 이름은 성경적이지 않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성령께서 군림을 경계하신다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언급)

4.4 · 집사직과 교회 재산의 운용. 5-9

5. 집사직

고대의 집사직은 사도 시대와 같았다. 집사는 날마다 드리는 헌금과 교회의 연간 수입을 받아 관리했다. 그것을 사역자의 생활비와 가난한 이를 돕는 데 나누었다. 감독은 '교회 재산의 청지기'로 불렸지만 직접 돈을 주무르지 않았다. 누구를 도울지 정해 주고, 집사가 정직하게 일하는지 감독했다. 집사는 해마다 분배 내역을 감독에게 보고했다. 안디옥 공의회(341년)는 감독이 장로와 집사 모르게 교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금했다. 수입이 늘자 수석 집사를 두어 재정을 총괄하게 했다. 수석 집사에게 성경 낭독과 성찬의 잔을 맡긴 것은, 그 일이 세속 업무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임을 깨우치려는 것이었다.

  • 집사 = 헌금 접수와 구제 분배 담당
  • 감독은 지정·감독, 집사는 집행·보고
  • 감독 혼자 재정을 처리하면 안 됐다
  • 재정 일도 '신령한 섬김'으로 여겼다
—교회 법령과 그레고리우스의 서신으로 설명한다(직접 인용 구절 없음)

6. 교회 재산의 용도

고대 법령과 교부들의 글에는 '교회 재산은 가난한 자들의 재산'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 감독과 집사는 그 재물을 낭비하면 피 흘린 죄와 같다는 경고를 받았다. 하나님 앞에서처럼 공평하고 조심스럽게 나누라는 것이다. 크리소스톰,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감독들은 자신이 재물을 바르게 다루었다고 진지하게 밝혔다. 사역자가 교회 재정으로 사는 것은 성경이 인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치할 만큼이 아니라 필요할 만큼만 받았다. 자기 재산을 바치고 스스로 가난해진 장로들도 있었다. 히에로니무스는 집안 재산으로 살 수 있는 성직자가 가난한 이의 몫을 받으면 자기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 교회 재산은 원래 가난한 이들의 몫
  • 낭비는 '피 흘린 죄'로 여겨졌다
  • 사역자 생활비는 정당하나 필요한 만큼
  • 여유 있는 사역자는 받지 말아야 했다
고린도전서 9:14복음 전하는 자가 복음으로 살아야 한다 — 사역자 생활비의 정당성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6:6가르침 받는 자가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나눔 — 같은 근거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고린도전서 11:29'자기 심판을 먹고 마심' — 필요 없이 가난한 자의 몫을 받는 성직자를 경고하는 히에로니무스의 인용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7. 교회 수입의 네 가지 용도

처음에는 법령이 없어도 됐다. 감독과 집사의 깨끗한 양심이 법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탐욕을 부리는 사람이 생기자 법령을 만들었다. 교회 수입을 넷으로 나누어 성직자, 가난한 자, 건물 수리, 나그네와 국내외 가난한 자에게 쓰도록 한 것이다. 어떤 법령은 한 몫을 감독에게 배정했다. 하지만 칼빈은 이것도 같은 뜻이라고 설명한다. 감독의 개인 용돈이 아니라, 바울이 요구한 나그네 대접에 쓸 몫이었다는 것이다. 겔라시우스와 그레고리우스도 그렇게 이해했다. 감독은 검소한 의식주 외에는 쓸 수 없었다. 사치하면 동료들에게 징계를 받았고, 듣지 않으면 직분을 잃었다.

  • 양심이 무너지자 법령이 생겼다
  • 수입은 넷으로 나누었고 대부분 이웃을 위한 것
  • 감독 몫 = 개인 용돈 아닌 손님 대접용
  • 사치하는 감독은 징계, 끝내 면직
디모데전서 3:2감독은 나그네를 대접해야 한다 — 감독에게 배정된 몫의 용도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8. 교회의 재물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임

초기 교회는 성찬 기구 같은 성물을 꾸미는 데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부유해진 뒤에도 한도를 지켰다. 기근이 들자 예루살렘의 키릴루스는 교회의 그릇과 예복을 팔아 굶주린 이들을 먹였다. 아미다의 감독 아카시우스는 하나님은 먹고 마시지 않으시니 쟁반과 잔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릇을 녹여 굶주린 페르시아 사람들을 살렸다. 히에로니무스는 툴루즈의 감독 엑수페리우스를 칭찬했다. 그는 성찬을 초라한 바구니와 유리잔으로 하더라도 가난한 이를 굶기지 않았다. 암브로시우스는 성물을 깨뜨려 포로의 몸값을 치렀다가 아리우스파의 비난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금은 쌓아 두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원수에게 약탈당하느니 가난한 이를 살리는 편이 낫다. 갇힌 자를 풀어 주는 몸값이 성전의 장식이다.

  • 사람을 살리는 것이 성물보다 먼저다
  • 키릴루스·아카시우스는 그릇을 팔고 녹였다
  • 유리잔 성찬이라도 가난한 이는 굶기지 않음
  • 암브로시우스: 산 사람이 진짜 '그릇'이다
열왕기하 18:15-16성전의 금은이 앗수르에 넘어간 일 — 쌓아 둔 금은 결국 빼앗길 뿐이라는 암브로시우스의 논증
15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교회가 금을 가진 것은 쌓아두기 위함이 아니라 쓰고,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함이다.칼빈, 『기독교강요』

9. 사역자들을 위한 예비적인 훈련

초기 교회에는 정식 직분이라기보다 훈련 과정인 단계들이 있었다. 교회는 부모의 동의를 받아 어린 시절부터 젊은이를 감독 아래서 가르치고 훈련했다. 이들을 통틀어 '클레릭(clerics)'이라고 불렀다. 칼빈은 이 이름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왔다고 지적한다. 베드로는 온 교회를 주님의 몫(기업)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도 자체는 거룩하고 유익했다고 본다. 신병이 모의전으로 훈련하듯, 준비된 사람만 교회를 섬기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단계는 이랬다. 교회 문을 여닫는 '문지기', 감독을 수행하며 됨됨이를 보여 주는 '조사', 강단에서 성경을 읽으며 사람 앞에 서는 법을 배우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집사다.

  • 어릴 때부터 감독 아래서 훈련받았다
  • 문지기→조사→독경→부집사 순서로 올라감
  • 이것은 직분 아닌 '수련 과정'이다
  • '성직자'라는 호칭은 온 교회의 것이다
베드로전서 5:3맡은 양 무리, 곧 온 교회가 주님의 몫이라는 말 — 특정 계층만 '성직자'라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는 근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4 · 사역자들의 선출과 임직의 역사적 발전. 10-15

10. 사역자들의 임직 절차

사역자를 세울 때 따질 것은 셋이다. 누구를 뽑는가, 얼마나 신중하게 하는가, 누가 세우는가. 고대 교회는 앞의 둘에서 바울의 기준을 따랐다. 엄숙하게 기도하며 후보의 삶과 가르침을 시험했다. 다만 바울의 요구보다 더 엄격하게 굴어, 나중에는 독신까지 요구한 잘못이 있었다. 칼빈은 고대 교회도 비판할 것은 비판한다. 누가 세우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처음에 모든 교인의 동의가 필수였다. 키프리아누스가 독경자 한 명을 교회와 의논 없이 세운 것을 굳이 해명할 정도였다. 나중에 하위 직분은 감독과 장로에게 맡겼다. 이 단계들은 오랜 시험 기간을 거치는 데다 위험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로를 세울 때는 늘 교인의 동의가 필요했다. 임직은 정해진 때에 공개적으로 했다.

  • 바울의 기준대로 삶과 가르침을 시험했다
  • 독신 요구는 성경을 넘어선 지나침
  • 처음엔 모든 직분에 교인 동의가 필수
  • 장로 임직엔 끝까지 교인 동의가 필요했다
  • 몰래 끼어들지 못하게 임직 시기를 정했다
디모데전서 3:2-7감독의 자격 기준 — 고대 교회가 시험의 기준으로 삼았으나 독신까지 덧붙인 것은 지나침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11. 감독 선출과 교인들의 동의

교인이 자기 감독을 뽑는 자유는 오래 지켜졌다. 안디옥 공의회는 교인 뜻을 거슬러 감독을 강제로 세우는 것을 금했다. 레오 1세도 "모든 사람 위에 설 자는 모든 사람이 뽑아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콘스탄티노플 회의는 넥타리우스를 세우려다 교인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안수를 미루었다. 감독이 후계자를 지명해도 교인이 승인해야 효력이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에라클리우스를 지명할 때도 그랬다. 아타나시우스가 후계자를 지명했을 때도 성직자와 관리와 교인들이 박수로 승인했다.

  • 감독은 교인들이 함께 뽑았다
  • 교인 뜻을 거스른 임명은 금지됐다
  • 후계자 지명도 교인 승인이 있어야 유효
  • 레오 1세조차 이 원칙을 강조했다
—공의회와 교부 기록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12. 라오디게아 공의회의 법령

라오디게아 공의회(363년 무렵)는 군중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칼빈은 이유가 타당했다고 본다. 큰 무리가 한뜻을 모으기는 어렵고 쉽게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계가 있는 방식이 생겼다. 성직자가 먼저 후보를 고르면 관리와 유지들이 검토해 인준하거나 다른 사람을 냈다. 그 뒤 교인 앞에 내놓았다. 교인은 앞선 결정에 꼭 매이지 않았지만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반대로 교인 의견을 먼저 듣고 성직자가 결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성직자가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고, 군중의 즉흥적인 뜻에 끌려가지도 않는다. 즉 라오디게아 법령은 교인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 군중 투표만으로는 분열이 생기기 쉽다
  • 성직자·지도층·교인이 단계적으로 참여
  • 독단도 막고, 휩쓸림도 막는 장치
  • 교인 동의 원칙은 그대로 유지됐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레오의 진술로 질서를 확인)

13. 성직자의 선출과 정치적 통치자의 인준

이 선출 방식은 그레고리우스 1세 때까지, 아마 그 뒤로도 한동안 이어졌다. 그레고리우스는 새 감독을 세울 때 늘 성직자와 관리와 교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밀라노 주민이 야만족을 피해 제노아로 피난했을 때도 그들이 모여 동의해야 선출이 유효하다고 보았다. 교황 니콜라스는 칼빈 당시로부터 500년이 채 안 된 시기에 로마 교황 선출 방식을 정했다. 추기경, 나머지 성직자, 교인 순서로 동의하게 한 것이다. 황제의 동의가 필요했던 곳은 제국의 수도인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뿐이었다. 그것도 교회가 뽑은 사람을 황제가 인준하는 방식이었다. 칼빈은 두 가지를 구별한다. 왕이 교회의 선택권을 빼앗아 마음대로 임명하는 것과, 교회가 정당하게 뽑은 사람을 왕이 인준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 그레고리우스도 교인 동의를 끝까지 지켰다
  • 교황 선출도 원래는 교인 동의를 포함했다
  • 황제 인준은 수도 두 곳에만 해당됐다
  • 인준과 임명권 강탈은 전혀 다르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14. 임직의 절차

선출 다음에는 직분에 세우는 예식이 있었다. 라틴 교회는 이것을 '서품'(직분에 세우는 예식) 또는 '축성'이라 불렀다. 그리스 교회는 '거수' 또는 '안수'라고 불렀다. '거수'는 원래 손을 들어 투표한다는 뜻이었다. 니케아 공의회의 법령에 따르면, 수도대주교(지방 수도의 대주교)가 그 지방 감독들과 모여 임직을 했다. 오지 못한 사람이 있어도 최소 세 명은 모여야 했고, 불참자는 서면으로 동의해야 했다. 모인 감독들은 후보의 교리와 행실을 다시 심사했다. 심사 없는 임직은 없었다. 키프리아누스에 따르면 인근 감독들이 선출 현장에 참석해 교인들 앞에서 감독을 뽑게 했다. 군중의 소란을 막기 위해서였다.

  • 임직 예식의 핵심은 안수였다
  • 인근 감독 최소 세 명이 함께했다
  • 임직 전에 교리와 행실을 다시 심사했다
  • 선출은 교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했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15. 수도대주교가 임직을 거행함

나중에는 선출된 사람이 수도대주교에게 직접 가서 임직받는 관례가 생겼다. 칼빈은 이것이 좋은 이유보다 야망과 옛 질서의 부패에서 나왔다고 본다. 로마의 권위가 커지자 이탈리아 거의 모든 감독이 로마에서 임직받으려 했다. 이것은 더 나쁜 관례였다. 밀라노 같은 몇몇 도시만 옛 권리를 지켰다. 임직 예식은 안수가 전부였다. 감독들이 장로와 구별되는 예복을 입은 것 말고는 다른 의식이 없었다. 장로와 집사도 감독이 장로회와 함께 안수해 세웠다. 감독이 주관했기 때문에 '감독의 일'로 불렸을 뿐이다. 그래서 옛 저자들은 "장로와 감독의 차이는 임직권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 임직이 점점 상급 도시로 몰려갔다
  • 이것은 야망과 질서 부패의 결과
  • 예식은 단순했다: 안수뿐
  • 장로와 감독의 차이는 임직권 정도였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4.5 교황제로 무너진 고대 교회 정치 · 사람들의 선택이 없이 무자격자들을 임직시킴. 1-3

1. 주교 선출에서 나타나는 부패함

이제 칼빈은 당시 로마 교회의 제도를 앞에서 본 고대 교회와 비교한다. 로마 교회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개혁자들을 누르지만, 비교해 보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먼저 누가, 어떻게 부름받는지를 보고, 다음으로 그 직무를 얼마나 성실히 하는지를 보겠다고 한다. 칼빈의 평가로는, 학식 심사는 사라졌다. 따지더라도 설교자보다 법정 변호사 같은 사람을 뽑는다. 신앙과 경건의 지식이 있는 주교는 백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 행실로 보면 고대 교회법에서는 대부분 실격이다. 열 살도 안 된 소년이 교황의 배려로 주교가 되기도 한다. 칼빈은 이 논의를 '가르침'의 한계 안에서 하겠다고 미리 밝힌다.

  • 고대 교회를 기준으로 현재를 비교한다
  • 부름(선출)부터 먼저 살핀다
  • 설교 능력 대신 법률가형 인물을 뽑는다
  • 고대 교회법이면 대부분 실격이다
  • 어린 소년이 주교가 되기까지 했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고대 교회법과 비교)

2. 주교 선출의 권한을 빼앗김

교인의 투표와 동의는 모두 사라졌다. 권한은 참사회원(대성당에 소속된 성직자 집단)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정한 사람을 교인 앞에 세웠지만, 심사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경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레오는 이런 일을 기만이라 했고, 키프리아누스는 교인 동의에 의한 선출만이 하나님의 권위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니 교황제의 선출은 적법성이 없다. 로마 교회는 시대가 부패하고 파당이 심해서 소수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 칼빈의 답은 이렇다. 약이 병보다 더 치명적이라면 왜 그 새 병은 고치지 않는가. 감독의 모습을 그린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교회법 수천 개보다 무겁다. 그런데 그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아 술꾼과 도박꾼이 주교가 되었다.

  • 선출권이 교인에게서 참사회원으로 넘어갔다
  • 교인은 심사자 아닌 구경꾼이 되었다
  • '시대가 악해서'는 변명이 안 된다
  • 약이 병보다 독하면 약을 바꿔야 한다
  • 말씀 한 마디가 교회법 수천 개보다 무겁다
디모데전서 3:1-7책망할 것이 없고 가르치기를 잘하는 등 감독의 자격 — 버려진 '최고의 법'
1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
디도서 1:7-9같은 감독 자격 목록 — 선출의 기준은 말씀이어야 한다는 근거
7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3. 주교 선출권에 대한 군주들의 개입

'치유책이었다'는 변명은 거짓이다. 옛날에도 선출 문제로 도시가 시끄러운 일이 많았지만 누구도 시민의 권한을 빼앗지 않았다. 혼란을 막는 다른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이렇게 됐다. 교인이 선출을 귀찮아해 장로들에게 떠넘겼고, 장로들은 그 틈에 권력을 쥐었으며, 새 법령으로 그것을 굳혔다. 임직 심사도 형식만 남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군주가 교황과 합의해 주교 임명권을 가져갔다. 칼빈은 이것이 새로운 손실은 아니라고 본다. 참사회원이 훔친 권리를 군주가 빼앗은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인이 원하지도 않은 사람을 궁정에서 보내 주교로 앉히는 것은 교회를 약탈하는 일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 옛 교회는 혼란 속에서도 교인 권한을 지켰다
  • 교인의 무관심이 권력 독점을 불렀다
  • 임직 심사는 껍데기만 남았다
  • 군주의 임명은 '도둑에게서 도둑질'
  • 원하지 않는 주교 파견은 교회 약탈이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4.5 · 성직 수여 및 성직록과 관련한 악행들. 4-7

4. 사제와 부제의 서품과 관련한 부패상

주교들은 사도의 계승자라 자랑하며 사제 임직권은 자기들에게만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은 장로를 세워 사람들을 가르치고 돌보게 하지 않는다. 미사의 희생 제사를 드리게 한다. 부제(집사)도 구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잔과 접시를 다루는 예식을 위해 세운다. 사제는 헬라어 '장로', 부제는 '집사'에서 온 말이다. 칼케돈 공의회는 맡을 자리 없이 임직하는 것을 금했다. 그래야 교회가 쓸데없는 비용을 지지 않고, 임직자가 승진 대신 맡은 일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는 '직분'을 '생계 수입'으로 바꿔 읽는다. 일할 곳이 아니라 먹고살 재산이 있는지만 따진다. 최근 법령이 이것을 막자, 이름뿐인 직분으로 만족하겠다고 약속하게 하는 편법까지 생겼다.

  • 장로는 가르치는 사람에서 제사장으로 바뀌었다
  • 집사는 구제자에서 예식 보조로 바뀌었다
  • 칼케돈: 맡을 자리 없이는 임직 못 한다
  • 로마는 '직분'을 '수입'으로 바꿔 읽었다
  • 규정을 피하는 편법과 사기가 넘쳤다
—칼케돈 공의회 법령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5. 성직 수여의 부패상

편법을 다 없앤다 해도, 맡을 자리 없이 장로를 세우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장로는 교회를 다스리라고, 집사는 구제물을 거두라고 세운다. 그런데 로마는 제사 드릴 사람만 세우고, 화려한 겉모습으로 교인을 속인다. 유대교 의식을 빌리거나 스스로 만든 의식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임직 전 심사는 고대의 '그림자', 곧 생명 없는 흉내일 뿐이다. 미사를 집전할 줄 아는지, 라틴어 명사를 격변화할 줄 아는지 정도를 묻는다. 성경 한 구절의 뜻을 아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나마 돈이나 연줄이 있으면 통과한다. 제단 앞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세 번 '합당한가' 물으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합당하다'고 연기한다. 이를 비판하면 처형당한다.

  • 자리 없는 임직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 심사는 생명 없는 '그림자'뿐이다
  • 성경 지식은 묻지도 않는다
  • 돈과 연줄이면 통과한다
  • 비판자는 오히려 처벌받는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6. 성직록의 비리

성직록(benefice)은 직분에 붙은 정기 수입을 말한다. 옛날에는 임직과 수입이 하나로 묶여 있었는데, 이제는 따로 논다. 추천권, 양도, 교환, 우선권 같은 온갖 경로로 직분이 오간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 서로 책망할 수도 없다. 칼빈은 고대 기준으로 보면 성직록 수여 백 건 중 성직매매(돈이나 이권으로 성직을 사고파는 죄)가 아닌 것은 한 건 있을까 말까라고 단언한다. 혈연, 부모의 영향력, 아첨으로 직분을 얻는다. '은혜'라는 뜻의 이름 자체가 이 수입을 군주의 하사품처럼 여긴다는 증거다. 법정은 성직록 소송으로 넘친다. 말도 못 하는 아이와 사생아까지 직분을 물려받는다. 그러고도 이들을 '목회자'라고 부른다.

  • 임직과 수입이 분리되었다
  • 성직록은 연줄·아첨·상속으로 오간다
  • 고대 기준이면 거의 다 성직매매다
  • '은혜(성직록)'라는 이름부터 하사품 사고방식
  • 교회 재산이 전리품처럼 다뤄졌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7. 엄청난 악행들

한 사람이 교회 대여섯 곳을 한꺼번에 차지한다. 궁정의 아이가 수도원장직 셋, 주교직 둘, 대주교직 하나를 갖기도 한다. 참사회원이 성직록 대여섯 개를 갖는 것은 흔한 일이고, 그들의 관심은 수입뿐이다.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를 정죄한다는 반론은 하지 않겠다. 그들은 이미 말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공의회 법령이 금했다는 반론도 하지 않겠다. 그들은 원할 때 그것도 무시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만은 말한다. 한 사람이 여러 교회를 차지하고, 양과 함께 있지도 않는 자를 목자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과 본성과 교회 정치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을 '교회'라는 이름으로 감싸고, 이 안에 거룩한 '계승'이 있다고 자랑한다.

  • 한 사람이 여러 교회를 겸직한다
  • 아이들이 고위 성직을 여럿 보유했다
  • 양과 함께 있지 않은 목자는 목자가 아니다
  • '교회'와 '계승'이라는 말로 악을 포장한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정죄한다고만 언급)

4.5 · 성직을 가진 수도사, 참사회원, 기타 성직자들의 부패상. 8-10

8. 수도사들의 성직 임명

이제 두 번째 기준, 곧 직무를 성실히 하는지를 본다. 로마의 사제는 수도사와 '세속 사제'(수도회에 속하지 않은 사제)로 나뉜다. 사제직을 가진 수도사는 고대 교회에 없었다. 옛날에는 수도사가 성직자가 되면 수도사를 그만두었다. 그레고리우스도 두 직분이 서로 방해된다며 겸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수도사들과 지낼 때 자신을 사제들의 치리를 받는 평신도로 여겼다. 로마는 수도사에게 사제직을 준 인노켄티우스와 보니파키우스의 법령을 내세운다. 칼빈은 교황 한 사람이 고대 법령 전체를 뒤집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성경은 장로의 일이 자기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런데 수도사 사제는 오히려 그 일을 하지 못하게 금지당한다. 이름만 사제인 셈이니 하나님을 조롱하는 일이다.

  • 사제 겸 수도사는 고대 교회에 없었다
  • 그레고리우스도 겸직을 금했다
  • 장로의 본업은 자기 교회를 다스리는 것
  • 그 일을 금지당한 '사제'는 이름뿐이다
사도행전 20:28장로는 성령이 맡기신 양 떼를 돌본다 — 교회를 다스리지 않는 사제는 직분의 본질을 바꾼 것이라는 근거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9. 세속 사제들의 부패상

세속 사제 중 일부는 성직록을 받고, 일부는 날마다 미사를 대신 드려 주거나 노래해 주고 삯을 받는다. 성직록을 받는 자리는 영혼을 돌보는 주교나 교구 사제 자리도 있다. 하지만 노래만 하고 수입을 얻는 참사회원 같은 자리도 있다. 이제는 수도원장 자리까지 아이들에게 준다. 삯을 받는 사제들은 굶주린 개처럼 사람들에게 매달려 먹을 것을 받아 낸다. 칼빈은 원칙을 이렇게 정리한다. 성경과 고대 교회법이 말하는 장로의 직분은 교회를 먹이고 그리스도의 영적 나라를 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르칠 곳도, 다스릴 사람도 없이 제단만 지키는 사제는 정당한 직분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미사로 그리스도를 바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이것은 미사에 대한 칼빈의 신학적 판단이며, 자세한 논의는 뒤로 미룬다).

  • 세속 사제 = 성직록형과 삯꾼형
  • 노래만 하는 자리도 성직록을 받았다
  • 장로의 본업 = 교회를 먹이고 섬기기
  • 가르칠 곳, 다스릴 이 없으면 직분도 없다
고린도전서 4:1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 비밀의 맡은 자 — 장로 직분의 정의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요한복음 10:1 이하참 목자와 삯꾼의 구별 — 같은 정의를 뒷받침(칼빈이 '참조'로 언급)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
고린도전서 10:20귀신에게 바치는 제사 — 미사 제사에 대한 칼빈의 판단 근거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10. 성직의 남발과 부패상

칼빈은 겉으로 드러난 악보다 제도 안에 뿌리내린 악을 다루겠다고 한다. 참사회원, 참사회장, 부속 예배당 사제처럼 일 없이 성직록을 받는 자리는 모두 같은 부류다. 설교, 권징(교인의 신앙과 생활을 살피고 바로잡는 일), 성례를 귀찮은 짐으로 여겨 던져 버렸다. 남은 것은 노래와 화려한 의식뿐이다. 그들은 관례나 오래된 교회의 허락을 내세운다. 칼빈은 참된 장로가 무엇인지 정하신 그리스도의 정의로 맞선다. 그것이 싫다면 고대 교회법으로 판단해도 결과는 같다. 참사회원은 원래 감독과 함께 교회를 다스리는 장로였어야 한다. 이런 직함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도 아니고 고대 교회의 지지도 없다. 그러니 교회의 영적 다스림 안에 자리가 없다.

  • 문제는 개인보다 제도에 뿌리박혀 있다
  • 설교·권징·성례 없는 직분은 장로가 아니다
  • 기준 1: 그리스도의 정의
  • 기준 2: 고대 교회법 — 결과는 같다
  • 후대가 만든 직함은 교회 정치에 자리 없음
—직접 인용 구절 없음('그리스도의 정의'를 앞 편 내용으로 전제)

4.5 · 주교들, 사제들, 부제들과 관련한 부패상. 11-19

11. 교회와 상관없는 주교와 교구 사제들

남은 것은 주교와 교구 담임 사제다. 칼빈은 이들이 제대로만 하면 경건하고 탁월한 직분이라고 기꺼이 인정한다. 문제는 맡은 교회를 버리고 돌봄을 남에게 떠넘기면서 목자로 불리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칼빈은 비유를 든다. 도시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고리대금업자가 농부라고 하거나, 법전을 본 적 없는 군인이 법률가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평생 교회 수입으로 살면서 교인 얼굴 한 번 보러 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 수입을 잃지 않으려고 1년에 한 번 오거나 대리인을 보내기도 한다. 교회를 농장처럼 여겨 대리 사제를 소작인처럼 둔다. 양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목자라니, 상식으로도 말이 안 된다.

  • 제대로 하면 귀한 직분이다
  • 목자는 원하면서 목양은 하지 않는다
  • 1년에 한 번 오거나 대리인을 보낸다
  • 교회를 농장처럼, 대리 사제를 소작인처럼
  • 양을 안 보는 목자는 목자가 아니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12. 그레고리우스와 베르나르의 시대의 형편

이 악의 씨앗은 그레고리우스 1세(590-604년 재위) 때에도 있었다. 그는 사제는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없다고 탄식했다. 지도자들이 아버지 대신 주인이 되려 한다고, 섬김의 직분을 군림의 직분으로 바꾼다고 꾸짖었다. 삯은 받고 일은 하지 않는다고, 이름은 있고 능력은 버렸다고 스스로를 포함해 책망했다. 칼빈은 묻는다. 그레고리우스가 대충 일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꾸짖었는데, 평생 강단에 한 번도 서지 않는 주교가 대부분인 지금을 보면 뭐라 하겠는가. 오늘날에는 주교가 설교하면 체면이 깎인다고 여길 정도다. 베르나르(12세기 클레르보의 수도원장) 때는 더 나빠졌지만, 그래도 칼빈 당시보다는 나았다.

  • 그레고리우스: 사제는 많은데 일꾼이 없다
  • 섬김을 군림으로 바꾼 것을 꾸짖었다
  • 지금은 설교하는 주교가 거의 없다
  • 설교를 체면 깎는 일로 여기게 되었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그레고리우스의 글은 추수와 일꾼 비유를 빌려 씀)

13. 교황 제도하의 교회의 실상

칼빈은 교황제의 교회 정치를 그대로 보면 도둑들의 소굴과 같다고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제도와도, 고대 교회와도, 상식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변호하니 그리스도께 더 큰 모욕이다. 그들은 자신이 교회의 기둥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고, 사도의 권세를 계승했다고 말한다. 칼빈은 묻는다. 사도들과 공통점이 무엇인가. 잠자는 동안에도 받을 수 있는 세습 명예 말고, 그들이 피하는 말씀 전파의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옛 교부들도 성직계급제를 칭송했다고 맞선다. 칼빈은 답한다. 교부들은 사도에게서 내려온 영적 다스림을 칭송했다. 무지한 주교, 아이 주교, 바벨탑보다 더한 혼란을 칭송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 성경·고대 교회·상식 모두와 어긋난다
  • '사도 계승'의 핵심은 말씀 전파다
  • 이름의 계승보다 일의 계승이 중요하다
  • 교부들이 칭송한 것은 지금의 체제가 아니다
창세기 11:9바벨의 혼잡 — 교황제 교회 정치의 혼란을 비유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14. 사제들의 부패한 행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과 땅의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 칼빈은 그 거룩함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그가 보기에 당시 성직자 집단만큼 사치와 쾌락과 속임수에 능한 무리는 없다. 그러면서 과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온 세상이 이미 지쳐 있을 만큼 알려진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도 부인 못 할 한 가지만 말한다. 고대 교회법으로 판단하면 주교와 교구 사제 백 명 중 한 명도 출교(교회의 교제에서 끊는 최고 징계)나 면직을 면하지 못한다. 그러니 로마의 보호 아래 있는 이들의 직분은 그리스도에게서도, 사도에게서도, 교부와 고대 교회에게서도 온 것이 아니다.

  • 사역자는 빛과 소금이어야 한다
  • 실제 행실은 그 반대로 악명 높다
  • 고대 교회법이면 대부분 출교나 면직감
  • 그 직분은 그리스도·사도·교부 어디서도 오지 않음
마태복음 5:13-14세상의 소금과 빛 — 사역자의 삶의 기준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부제직의 부패함

이제 부제(집사)가 나와 교회 재물을 나누는 거룩한 직무를 보여 줄 차례다. 그러나 교황제는 그런 목적으로 부제를 세우지 않는다. 제단 시중, 복음서 낭독, 노래 같은 일만 맡는다. 구제와 가난한 이를 돌보는 일은 제도상 아예 빠졌다. 부제직은 사제로 가는 계단일 뿐이다. 미사 때 봉헌물을 거두는 일 하나가 옛 모습을 흉내 낼 뿐이다. 고대에는 성찬 전에 서로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제단에 구제물을 드렸다. 사랑을 먼저 상징으로, 그다음 실제 자비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이의 대리인인 집사가 그것을 받아 나누었다. 지금 가난한 이들은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칼빈은 재물이 강도의 전리품처럼 나뉜다고 표현한다.

  • 집사의 본업(구제)이 제도에서 사라졌다
  • 부제는 사제로 가는 계단이 되었다
  • 고대 성찬엔 사랑의 나눔이 함께 있었다
  • 가난한 이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사도들이 세운 집사직을 전제)

16. 교회 수입의 운용의 부패함

고대의 재정 관습은 손상된 정도가 아니라 지워졌다. 도시의 주교와 사제는 참사회원이 되어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지금도 그 비율로 다툰다는 사실이 분배가 무질서하다는 증거다. 참사회원이 4분의 1을 가져가고, 4분의 1은 자선용이라며 주교에게 준다. 그러나 가난한 이에게 돌아가는 것은 한 푼도 없다. 원래는 적어도 절반이 그들 몫이어야 한다. 건물 유지용 몫도 어려울 때는 가난한 이를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을 앞에서 보였다. 칼빈은 그들이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한다면, 먹고 입는 것이 다 도둑질, 아니 신성모독으로 얻은 것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부제직이 도둑질 면허장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정당한 부제직은 없다.

  • 성직자가 수입의 가장 큰 몫을 챙긴다
  • 가난한 이 몫은 0, 원래는 절반 이상
  • 건물 몫도 위기엔 가난한 이에게 써야 한다
  • 재정 체계 전체가 약탈로 바뀌었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17. 교회의 화려한 치장

로마 교회는 교회의 위엄이 장엄한 화려함으로 유지된다고 말한다. 왕들이 예물을 바치고 시온이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는 예언이 그렇게 성취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그들이 유대인이 같은 구절을 그렇게 읽으면 비웃을 것이라고 반문한다. 그리스도의 영적 나라에 대한 말씀을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에 적용하는 잘못이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은 하늘의 영광을 땅의 그림으로 그렸다. 문자 그대로의 화려함이 가장 적었던 사도 시대에 그리스도의 나라는 가장 힘 있게 일했다. 그렇다면 '왕들의 예물'은 무엇인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자줏빛 옷을 벗고 교회 앞에서 회개했을 때, 경건한 군주들이 바른 교리를 보호했을 때 진짜로 성취되었다. 아퀼레이아 회의는 주의 사제들의 가난이 영광이라고 말했다. 옛 감독들은 화려함이 목자 직분과 정반대라는 것을 알았다.

  • 반론: 화려함이 예언의 성취다
  • 답: 영적 약속을 육적으로 읽은 것
  • 사도 시대는 가난했지만 가장 강했다
  • 성취는 왕들이 그리스도 앞에 겸손해진 것
  • 옛 감독들은 검소함을 영광으로 여겼다
시편 72:10-11왕들이 조공을 바침 — 로마 교회가 화려함의 근거로 든 구절(칼빈은 영적 의미로 해석)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11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이사야 52:1시온이 아름다운 옷을 입음 — 같은 반론의 근거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이사야 60:6-7스바 사람들이 금과 유향을 가져옴 — 같은 반론의 근거
6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7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18. 교회 수입의 부당한 사용

교회 장식은 성물의 본질과 사도·교부의 모범에 맞는 검소한 정도를 넘으면 잘못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치와 시대의 부패를 보여 주지 않는 것은 만족을 주지 못한다. 반대로 '살아 있는 성전'인 가난한 사람들은 수천 명이 굶어 죽어도 작은 잔 하나 팔지 않는다. 칼빈은 앞서 말한 엑수페리우스, 아카시우스, 암브로시우스가 살아 돌아온다면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묻는다. 이 재물은 그리스도께 드려진 것이니 그리스도의 뜻대로 나누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거슬러 낭비한 것을 그리스도를 위한 비용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칼빈은 사실 장식비보다 사제들의 탐욕이 더 큰 문제라고 덧붙인다. 그들은 자기 몫은 남겨 두고, 가난한 이에게 갈 몫을 성당과 조각상과 기구와 예복에 쏟는다.

  • 장식은 검소한 한도 안에서만
  • 사람이라는 '산 성전'을 버려두었다
  • 옛 감독들이 보면 허락하지 않을 것
  • 그리스도께 드린 것은 그리스도의 뜻대로
  • 구제비가 장식비로 삼켜진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19. 성직자들의 보유 재산

교회 땅과 재산에서 나오는 수입은 주교와 수도원장이 거의 다 차지한다. 검소함의 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군주처럼 하인을 거느리고 궁전과 옷과 연회로 치장한다. 하나님은 감독에게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마을과 땅과 나라 전체를 손에 쥐었다. 말씀을 무시한다 해도 고대 법령이 있다. 감독은 교회 가까운 작은 집에서 검소한 살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히에로니무스는 네포티아누스에게 가난한 이와 나그네를 식탁에 자주 맞으라고 했다. 그리고 감독의 영광은 가난한 이에게 베푸는 데 있고, 자기 부를 좇는 것은 수치라고 했다. 칼빈은 지나치게 몰아세우지 않겠다고 하며 목적을 밝힌다. 정당한 집사직이 사라졌으니 그들이 교회의 질서를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 성직자가 군주처럼 산다
  • 성경은 감독의 탐욕을 금한다
  • 고대 법령: 작은 집, 검소한 살림
  • 감독의 영광은 가난한 이에게 베푸는 데 있다
  • 결론: 그들에게 정당한 집사직은 없다
디도서 1:7감독은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 — 성직자의 재산 축적을 정죄하는 근거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4.6 로마 관구의 수위권 · 베드로의 수위권 가설 반박. 1-7

1. 로마 관구에 굴복해야 한다는 주장

지금까지 칼빈은 고대 교회의 질서가 교황제 안에서 이름과 가면만 남았음을 보였다. 이유가 있다. 로마는 그런 교회에서 나간 개혁자들에게 분열의 죄를 씌우기 때문이다. 이제 그 구조의 꼭대기인 로마 관구(관할 교구, 곧 로마 주교의 자리)의 수위권(다른 모든 교회 위에 서는 첫째 권위)을 다룬다. 앞의 직분들은 고대에 있다가 부패한 것이었다. 그런데 수위권은 그리스도도 고대 교회도 세운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뤄 두었다. 로마의 논리는 이렇다. 교회의 하나 됨을 붙드는 거의 유일한 끈은 로마에 복종하는 것이다.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온 교회를 다스리지 않으면 교회는 머리 잘린 몸이다. 칼빈은 이 주장의 본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 수위권 = 로마 주교가 모든 교회 위라는 주장
  • 앞 직분들은 '부패', 수위권은 '처음부터 없음'
  • 로마: 교황 없으면 교회는 머리 없는 몸
  • 이 논리로 개혁자들에게 분열죄를 씌운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문제 제기)

2. 구약의 대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모형임

문제는 이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교회 위에 머리로 서는 체제가 꼭 필요한가. 말씀 없이 이것을 강요하면 교회에 부당한 법을 지우는 것이다. 그러니 로마가 먼저 그리스도께서 이 제도를 세우셨음을 증명해야 한다. 로마는 구약의 대제사장을 근거로 든다. 칼빈의 답은 둘이다. 첫째, 한 나라에서 유익했던 제도를 온 세상에 넓힐 이유가 없다.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하는 민족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배 장소 한 곳과 대제사장 한 명을 두어 백성을 묶으셨다. 참된 신앙이 온 땅에 퍼진 지금, 동서방을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모순이다. 둘째,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의 모형(미리 보여 준 그림자)이다. 제사장직이 바뀌면 권세도 넘어간다. 그 권세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넘어갔다. 그리스도는 대리자나 계승자 없이 홀로 그 직분을 가지신다. 그 제사장직은 가르침뿐 아니라 십자가의 화목과 지금도 계속되는 중보에 있다.

  • 입증 책임은 수위권을 주장하는 쪽에 있다
  • 대제사장은 한 나라를 위한 제도였다
  •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
  • 그 직분은 그리스도께만 넘어갔다
  •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는 계승자가 없다
히브리서 7:12제사장직이 바뀌면 율법도 바뀐다 — 대제사장의 권세는 그리스도께 넘어갔다는 근거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3.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도 교황의 수위권과는 관계없음

대제사장직은 한시적이었으니 영구한 법이 될 수 없다. 신약에서 로마가 내세우는 근거는 베드로 한 사람에게 하신 두 말씀뿐이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와 '내 양을 먹이라'다. 이것이 근거가 되려면 두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 양을 먹이라는 명령이 온 교회를 다스리는 권세라는 것, 그리고 매고 푸는 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 자신이 나중에 모든 장로에게 똑같이 양 무리를 먹이라고 권면한다. 받은 것을 동료들과 동등하게 나눈 것이다. '매고 푸는 것'의 뜻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밝히셨다. 죄를 사하거나 그대로 두는 것이다. 바울도 복음 사역자가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고, 거부하는 자에게 벌을 선언한다고 말한다.

  • 로마의 신약 근거는 베드로 구절 둘뿐
  • '양을 먹이라'는 다스림 아닌 목양 명령
  • 베드로 자신이 모든 장로에게 같은 명령
  • 매고 풂 = 복음으로 죄를 사하거나 두는 것
마태복음 16:18'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 로마의 핵심 근거 구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21:15-17'내 양을 먹이라' — 로마의 두 번째 근거 구절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전서 5:2베드로가 장로들에게 양 무리를 치라고 권면 — 그 명령이 베드로 독점이 아님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요한복음 20:23죄를 사하면 사해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음 — '매고 풂'의 뜻을 그리스도께서 밝히심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린도후서 5:18화목하게 하는 직분 — 푸는 일의 실제 내용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고린도후서 10:6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함 — 매는 일의 실제 내용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4. 열쇠에 대한 왜곡된 주장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약속하셨다. 칼빈은 '열쇠'와 '매는 방식'의 뜻에만 합의하면 논쟁은 끝난다고 본다. 복음이 하늘을 열어 주니 '열쇠'는 적절한 비유다. 믿는 자는 하나님과 화목하여 풀리고, 믿지 않는 자는 더 단단히 매인다. 교황이 이 뜻만 가져간다면 아무도 부러워하거나 다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익은 없고 수고만 많은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리스도는 같은 권세를 다른 곳에서 모든 사도에게 주셨다. 로마는 베드로가 공통의 것에 더해 따로 받은 것이 있다고 맞선다. 키프리아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반대로 풀이했다. 한 사람을 통해 모두에게 주신 것은 하나 됨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베드로는 사도 전체, 곧 교회를 대표해 받았다.

  • 열쇠 = 복음으로 하늘을 여는 일
  • 믿음은 풀고, 불신앙은 맨다
  • 같은 권세가 모든 사도에게 주어졌다
  • 베드로는 '하나 됨'의 대표로 받았다
  • 키프리아누스·아우구스티누스도 그렇게 봄
마태복음 16:19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약속 — 논쟁의 중심 구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8:18같은 매고 푸는 권세를 제자들 모두에게 주심 — 베드로 독점이 아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요한복음 20:23부활 후 모든 사도에게 죄 사함의 권세를 주심 — 같은 근거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6:16베드로가 대표로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고백 —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표' 해석 근거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5. 베드로의 특권

'너는 베드로라'는 말씀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기록은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은 바울과 베드로가 모든 신자에게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는 모퉁잇돌이시고, 신자들은 그 위에 세워지는 산 돌로서 서로 연결된다. 칼빈은 베드로가 교회를 세운 첫 사람들 중 하나이고 첫 신자 중 하나라는 영예는 인정한다. 열심과 가르침과 용기에서 뛰어났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에서 다른 이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 논리라면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께 온 안드레가 베드로 위에 있어야 한다. 사도들은 모임에서 베드로가 먼저 말하도록 양보했다. 하지만 '순서의 영예'와 '권세'는 전혀 다르다.

  • 신자 모두가 그리스도 위의 '산 돌'이다
  • 베드로의 첫 신자 영예는 인정한다
  • 뛰어남 ≠ 다스리는 권세
  • 대변인 역할 ≠ 지배 권한
마태복음 16:18베드로에게만 하신 말씀이라는 로마의 주장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에베소서 2:20-21그리스도가 모퉁잇돌, 그 위에 성전이 지어짐 — 모든 신자에게 해당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베드로전서 2:5-6신자는 보배로운 돌 위의 산 돌 — 베드로 자신의 설명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에베소서 4:16몸이 마디마다 연결됨 — 서로 하나 됨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골로새서 2:19머리에 붙어 몸이 연결되고 자람 — 같은 근거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요한복음 1:40-42안드레가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께 옴 — 로마 논리의 모순을 보여 줌
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사도행전 2:14 이하오순절에 베드로가 대표로 설교 — 대변인 역할의 예
14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
사도행전 4:8 이하공회 앞에서 베드로가 대표로 말함 — 같은 예
8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
사도행전 15:7 이하예루살렘 회의에서 베드로가 발언 — 같은 예
7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

6. 교회의 터

"이 반석 위에"라고 하셨으니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는 해석을 칼빈은 반박할 가치도 없다고 본다. 로마는 몇몇 교부도 그렇게 풀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 전체가 반대하는데 교부의 권위로 하나님께 맞설 수는 없다. 베드로는 자기와 동료들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다. 그리스도는 바로 그 반석, 곧 이 고백의 대상이신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 바울의 말대로 교회의 터는 그리스도 하나뿐이고 아무도 다른 터를 놓을 수 없다. 칼빈은 교부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필요하면 기꺼이 인용하겠지만, 이렇게 분명한 문제로 독자를 지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개혁 진영의 다른 저자들도 이미 충분히 다루었다.

  • '교회는 베드로 위에'는 근거 없는 해석
  • 교부 몇 명의 해석이 성경보다 앞설 수 없다
  • 반석 =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
  • 교회의 터는 그리스도 하나뿐이다
  • 교부는 존중하되 성경 아래 둔다
마태복음 16:18'이 반석 위에' — 해석의 대상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6베드로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 반석의 내용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린도전서 3:11닦아 둔 터 외에 다른 터를 둘 수 없음, 그 터는 그리스도 — 칼빈 해석의 결정적 근거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교회의 터는 오직 하나밖에 없고칼빈, 『기독교강요』

7. 베드로와 사도들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증거

가장 좋은 해결책은 성경 자체다. 베드로의 직분과 처신, 사도들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모두 모아 보면 답이 나온다. 베드로는 열두 사도 중 하나였고, 그들의 주인이 아니라 동료였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는 의견을 내고,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결정을 맡기고, 그 결정에 따랐다. 목회자들에게 편지할 때도 명령하지 않고 동료로서 권면했다. 이방인과 어울렸다는 비난을 받자 해명했다.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보내자 순종해 갔다. 보내는 쪽이 윗사람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거의 두 장에 걸쳐 자신이 베드로와 동등한 사도임을 밝힌다. 그가 베드로를 찾아간 것은 복종하러가 아니라 가르침이 일치함을 보이러 간 것이었다. 베드로는 교제의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바울이 베드로의 잘못을 면전에서 책망했을 때 베드로는 받아들였다.

  • 베드로는 주인이 아니라 동료였다
  • 회의 결정에 따르고 비난에 해명했다
  • 사도들이 베드로를 '파송'했다
  • 바울은 베드로와 동등함을 주장했다
  •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했다
사도행전 15:5-12예루살렘 회의에서 베드로는 한 발언자였음
5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
베드로전서 5:1 이하'함께 장로 된 자'로서 권면 — 동료의 태도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
사도행전 11:3-18비난에 대해 베드로가 해명함
3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
사도행전 8:14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냄 — 베드로가 윗사람이 아님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갈라디아서 1:18바울이 베드로를 방문 — 복종이 아닌 교제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갈라디아서 2:8같은 하나님이 베드로와 바울 모두에게 역사하심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11-14바울이 베드로를 면전에서 책망함 — 권위 서열이 없었다는 결정적 증거
11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4.6 · 교회의 통치권은 오직 그리스도께 있음. 8-10

8. 교회의 통치권

베드로가 사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고 인정해도 문제가 남는다. 한 사람의 예를 보편 원칙으로, 한 번 있었던 일을 영구한 제도로 만들 수는 없다. 열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의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집정관 없는 원로원이 없고, 의장 없는 위원회는 없다. 하지만 열두 명 중의 첫째가 수십만 명 중의 첫째일 필요는 없다. 아무도 온 땅을 다스릴 능력은 없다. 로마는 벌이나 두루미도 우두머리가 하나라고 말한다. 칼빈은 그 예를 받아들이되 결론을 뒤집는다. 온 세상의 벌이 한 왕을 뽑지는 않는다. 무리마다 우두머리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예가 증명하는 것은 교회마다 감독이 있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호메로스의 "통치자가 많은 것은 좋지 않다"는 말도 한 나라에 왕이 둘일 수 없다는 뜻이지, 세계 단일 군주를 말한 것이 아니다.

  • 한 사람의 예를 영구 제도로 만들 수 없다
  • 작은 모임의 의장은 자연스럽다
  • 세계 단일 지도자는 누구도 감당 못 한다
  • 벌·두루미 예 = 교회마다 감독 하나
  • 군주제 칭송도 세계 지배를 뜻하지 않는다
—상식과 자연의 예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9.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

세상이 한 군주 아래 있는 것이 좋다고 가정해도 교회가 그래야 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교회에는 유일한 머리 그리스도가 계시다. 신자는 그분의 다스림과 그분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서로 연결된다. 그러니 '교회에 머리가 없다'며 한 사람을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께 큰 모욕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몸에 포함시키면서 머리의 영예는 그리스도께만 드린다. 각 지체에게는 제한된 분량과 기능만 준다. 로마는 그리스도가 머리이셔도 땅에 그분의 대리 머리가 있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칼빈은 답한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그런 대리자를 세우셨다는 것을 증명하라. 성경 어디에도 그런 지명이 없다. 오히려 여러 구절이 머리 됨을 그리스도께만 돌린다.

  •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그리스도시다
  • 모든 지체는 제한된 분량과 기능만 받는다
  • 대리 머리는 그리스도의 지명이 있어야 한다
  • 성경에는 그런 지명이 없다
에베소서 4:16온 몸이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연결되어 자람 — 머리는 그리스도 한 분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1:22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심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에베소서 4:15머리이신 그리스도까지 자람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 5:23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골로새서 1: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 2:10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0. 교회의 하나 됨

바울은 살아 있는 교회를 여러 번 그리지만 한 사람의 우두머리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승천하셔서 눈에 보이는 임재는 거두셨지만, 만물을 채우시려고 올라가셨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에 계신다. 어떻게 계시는가. 바울은 그분이 세우신 사역자들(사도, 목사, 교사)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대리자 한 사람이 정말 있었다면 바로 여기서 말했어야 했다. 바울은 하나 됨을 말하며 몸도, 성령도, 소망도, 주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라고 나열한다. 그런데 '교황도 하나'라는 말은 없다. 그는 사역자 가운데 일인 통치를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각 지체가 받은 분량대로 기능한다고 강조한다. 로마는 하늘의 질서와 땅의 계급제를 비교하기도 한다. 칼빈은 하늘의 일은 함부로 아는 체하면 위험하고, 땅의 교회 정치는 말씀이 그린 모양만 따라야 한다고 답한다.

  • 그리스도는 사역자들을 통해 지금도 임재하신다
  • 에베소서 4장에 '교황'은 없다
  • 하나 됨 = 하나님과 그리스도 믿음 안에서
  • 사역은 공동의 것, 각자 분량대로
  • 교회 정치는 말씀의 설계도만 따른다
사도행전 1:9승천으로 보이는 임재를 거두심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에베소서 4:10만물을 충만케 하려 오르심 — 여전히 교회에 계심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7각 사람에게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심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에베소서 4:11사도·선지자·복음 전하는 자·목사와 교사를 주심 — 임재의 통로, 대리자 한 명은 없음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에베소서 4:4-5몸·성령·소망·주·믿음·세례가 하나 — '교황 하나'는 빠져 있음
4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에베소서 4:16각 지체가 분량대로 기능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4.6 · 베드로의 수위권을 인정해도 그것은 로마의 영구한 수위권과 무관함. 11-13

11. 베드로의 수위권과 로마의 수위권

수위권이 베드로에게 있었고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왜 하필 로마 주교가 온 세상을 다스려야 하는가. 장소에 대한 언급 없이 베드로에게 주어진 것을 무슨 권리로 한 장소에 묶는가. 로마는 베드로가 로마에 살다가 거기서 죽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칼빈은 그리스도를 예로 든다.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시고 거기서 죽으셨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도 한 장소에 그런 영광을 주지 않으셨는데, 베드로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같은 논리라면 이스라엘은 모세가 사역하고 죽은 광야 한복판에 수위권의 자리를 두었어야 한다.

  • 베드로의 권위에는 장소 조건이 없다
  • '거기서 죽었으니'는 근거가 못 된다
  • 그리스도도 예루살렘에 수위권을 주지 않으셨다
  • 그 논리면 광야가 본부여야 한다
신명기 34:5모세가 모압 땅(광야)에서 죽음 — '죽은 곳에 권위' 논리의 모순을 보여 줌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12. 수위권이 안디옥으로부터 로마로 옮겨졌다는 주장

로마는 베드로의 첫 관구는 안디옥이었지만, 베드로가 로마로 옮기면서 수위권도 옮겨 갔다고 말한다. 교황 마르켈루스 이름으로 된 편지는 이것이 주님의 명령이었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주님께서 언제 그런 계시를 하셨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법적으로 따진다. 그 특권은 사람에게 붙은 것이거나, 장소에 붙은 것이거나, 둘이 합쳐진 것이다. 사람에게 붙었다면 장소와 상관이 없다. 장소에 붙었다면 사람이 떠나도 안디옥에 남아야 한다. 둘이 합쳐진 것이라면 그 사람이 없을 때 장소만으로는 권리가 없다. 어느 쪽을 골라도 로마의 근거는 무너진다.

  • '안디옥→로마 이전설'에는 계시가 없다
  • 특권은 사람·장소·결합 중 하나다
  • 셋 중 무엇을 골라도 로마는 근거가 없다
—논리 분석(직접 인용 구절 없음)

13. 교회들의 서열

수위권이 안디옥에서 로마로 옮겨 갔다면, 안디옥은 적어도 2위여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베드로의 제자에 불과한 마가가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안디옥보다 앞섰다. 교회의 서열이 세운 사람의 위엄으로 정해진다면 다른 교회들은 어떻게 되는가. 바울은 야고보, 베드로, 요한을 기둥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요한의 에베소와 야고보의 예루살렘이 2위와 3위여야 한다. 그런데 총대주교 관구 가운데 예루살렘은 꼴찌였고 에베소는 아예 끼지도 못했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도 무시되었다. 그러니 로마는 그 서열이 엉터리였다고 인정하든지, 아니면 '세운 사람의 영예에 따른 서열'이 영구 원칙이 아니라고 인정해야 한다.

  • 이전설대로면 안디옥이 2위여야 한다
  • 실제론 마가의 알렉산드리아가 앞섰다
  • '기둥' 사도들의 교회도 대접받지 못했다
  • 서열은 사도 계보 원칙이 아니었다
갈라디아서 2:9야고보·게바·요한이 기둥 — 사도 계보로 서열을 정하면 에베소·예루살렘이 앞서야 한다는 반증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4.6 · 베드로의 로마 거주는 근거가 없고, 바울의 거주가 분명히 드러남. 14-15

14. 베드로의 로마 거주에 대하여

베드로가 로마 교회를 다스렸다는 주장도 근거가 약하다. 유세비우스는 25년을 다스렸다고 하지만, 칼빈은 성경의 연대로 반박한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음 후 20년 가까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그 뒤 안디옥에 갔다.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네로 통치 말기까지는 칼빈의 계산으로 37년쯤이다. 20년을 빼고 남은 기간을 안디옥과 로마가 나눠야 하니 로마 기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더 분명한 증거도 있다. 바울은 로마에 가기 전에 로마서를 썼는데, 거기에 베드로 이야기가 전혀 없다. 16장에서 아는 신자들의 이름을 길게 나열하며 문안하면서도 베드로는 빠져 있다. 베드로가 로마 교회를 다스리고 있었다면 그럴 수 없다.

  • 25년 재임설은 성경 연대와 맞지 않는다
  • 베드로는 오래 예루살렘에, 이후 안디옥에
  • 로마서에 베드로 언급이 없다
  • 긴 문안 명단에도 베드로는 없다
갈라디아서 1:18회심 3년 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만남 — 베드로의 예루살렘 체류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갈라디아서 2:1 이하14년 후에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있음 — 같은 근거
1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
갈라디아서 2:11이후 베드로가 안디옥에 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로마서 15:25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로마서를 씀 — 집필 시점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로마서 16:3-16긴 문안 명단에 베드로가 없음 — 베드로가 로마를 다스리지 않았다는 증거
3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

15. 베드로의 로마 감독직은 그 근거가 희박함

바울이 죄수로 로마에 왔을 때 형제들이 마중했지만 베드로 이야기는 없다. 로마에서 쓴 바울의 편지들에도 베드로가 있다는 암시가 없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디모데만큼 신실한 사람이 없고 모두 자기 일만 구한다고 탄식한다. 디모데후서에서는 첫 재판 때 모두가 자기를 버렸다고 말한다. 베드로가 그때 로마에 있었다면 바울이 베드로를 복음을 버린 사람으로 고발하는 셈이 된다. 칼빈은 저자들이 모두 동의하니 베드로가 로마에서 죽었다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오래 로마 감독이었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후계자가 리누스냐 클레멘트냐부터 기록이 엇갈리고, 마술사 시몬 이야기 같은 꾸며 낸 전설이 섞여 있다. 무엇보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다. 그러니 이방인인 우리는 오히려 바울의 사도직에 더 주목하는 것이 성령의 뜻에 맞다.

  • 바울의 로마 행적에 베드로가 없다
  • 베드로가 있었다면 바울을 버린 셈이 된다
  • 로마에서 죽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 오랜 로마 감독설은 근거가 희박하다
  • 이방인의 사도는 바울이다
사도행전 28:15-16바울의 로마 도착과 형제들의 영접 — 베드로 언급 없음
15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빌립보서 2:20-21디모데 같은 이가 없고 모두 자기 일을 구함 — 베드로 부재의 정황
20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후서 4:16첫 변명 때 모두 나를 버림 — 베드로가 있었다면 그도 버린 셈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갈라디아서 2:7-8베드로는 할례자(유대인), 바울은 무할례자(이방인)의 사도
7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9베드로와 바울의 교제의 악수 — 역할 분담의 확인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4.6 · 로마 교회가 칭송을 받았으나 전 교회에 대한 수위권은 없음. 16-17

16. 초기 로마 교회의 위상

이제 고대 교회의 증언을 본다. 로마는 처음부터 모두가 로마의 수위권을 지켜 왔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먼저 고대 저자들이 로마 교회를 크게 존중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유는 셋이다. 첫째, 로마 교회가 베드로의 사역으로 세워졌다는 생각이 퍼져 서방에서 '사도의 관구'로 불렸다. 둘째, 제국의 수도라서 학식과 경험이 많은 사람이 모였다. 셋째, 동방과 아프리카 교회가 논쟁으로 늘 시끄러울 때 로마는 비교적 조용했고 전해 받은 교리를 굳게 지켰다. 그래서 쫓겨난 경건한 감독들이 로마를 피난처로 삼았다. 칼빈은 이 세 가지가 로마가 받은 칭송의 실제 이유라고 본다.

  • 로마 교회 존중은 칼빈도 인정한다
  • 이유 1: 베드로 설립 전승
  • 이유 2: 제국 수도의 인재와 경험
  • 이유 3: 안정성과 교리 보존
  • 존중의 이유는 '권한'이 아니라 '신뢰'였다
—역사적 설명(직접 인용 구절 없음)

17. 교부들은 로마 관구의 수위권에 대해서 몰랐다

존중했다고 해서 수위권을 준 것은 아니다. 히에로니무스는 네포티아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회 하나 됨의 여러 예를 들며 교회 질서를 말한다. 각 교회에 감독과 수석 장로와 수석 집사가 있다는 것이다. 로마 장로인 그가 '한 머리가 모든 교회를 잇는 끈'이라고 말했다면 논지에 가장 잘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이 없다. 키프리아누스는 하나 됨을 이렇게 그렸다. 감독직은 하나이고 각 감독이 그 일부를 맡는다. 태양의 빛살은 많아도 빛은 하나요, 가지는 많아도 줄기는 하나요, 시내는 많아도 샘은 하나다. 칼빈은 이렇게 읽는다. 전체를 맡은 감독은 그리스도뿐이고, 사람 감독들은 각자 한 부분을 맡는다. 그러니 로마 수위권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결국 '한 사람 머리 아래의 하나 됨'은 교부들이 몰랐던 원리다.

  • 존중 ≠ 수위권
  • 히에로니무스의 하나 됨 목록에 교황이 없다
  • 키프리아누스: 감독직은 하나, 각자 일부를 맡음
  • 전체 감독은 그리스도뿐이다
  • '1인 머리'는 교부들이 몰랐던 원리
—교부 증언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4.7 로마 교황제의 기원과 성장 · 고대의 로마 관구의 위상. 1-4

1. 니케아와 에베소 공의회에서의 로마 관구의 위상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전에는 로마 수위권의 증거가 없다. 니케아는 총대주교들 가운데 로마 주교에게 높은 자리를 주고 주변 도시 교회를 맡겼다. 하지만 각 총대주교의 경계를 나눴을 뿐, 로마를 모든 교회의 머리로 세우지 않았다. 칼빈은 그 증거로 로마 주교 율리우스의 대리인들이 네 번째 자리에 앉았다는 점을 든다(칼빈의 서술에 따름). 에베소 공의회(431년)에서 교황 켈레스티누스는 회의를 이끌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를 자기 대리로 지명했다. 칼빈은 이것을 자기 이름을 맨 앞에 올리려는 술수로 본다. 제2차 에베소 회의(449년)에서는 레오의 사절이 있었는데도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코루스가 회의를 주재했다. 로마 측은 이 회의가 정통 회의가 아니었다고 반박할 것이다. 칼빈은 로마 사절도 처음에는 정식 회의처럼 자리에 앉아 상석을 다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 니케아 이전엔 수위권 증거가 없다
  • 니케아는 로마를 '주요 지도자 중 하나'로 봄
  • 로마 대리인은 상석에 앉지 않았다
  • 에베소에서 로마는 대리 지명이라는 우회로를 씀
  • 449년 회의도 로마가 주재하지 않았다
—공의회 기록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2. 칼케돈, 콘스탄티노플, 카르타고, 아퀼레이아 공의회에서의 로마 관구의 위상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는 로마 사절이 상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것은 황제의 특별한 배려였다. 레오 자신도 그 자리가 원래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앞선 에베소 회의의 동방 주재자들이 물의를 일으켰으니 무게 있는 의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요청했다. 특별 요청이었다는 것 자체가 통상적인 법은 아니었다는 증거다. 그 뒤 제5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년)에서는 레오의 후계자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메나스의 주재를 받아들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참석한 카르타고 회의는 카르타고의 아우렐리우스가 주재했고, 교황의 권위를 두고 논란도 있었다. 아퀼레이아 회의(381년)는 이탈리아에서 열렸는데도 로마 주교가 오지 않았다. 암브로시우스가 주재했고 교황은 언급조차 없었다. 그 시절에는 밀라노가 로마보다 더 유명했다.

  • 칼케돈의 로마 상석은 특별 예우였다
  • 레오도 '내 권리'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 553년엔 콘스탄티노플이 주재했다
  • 카르타고·아퀼레이아도 로마가 주재하지 않음
—공의회 기록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3. 초기에는 로마 주교의 교만한 칭호들이 없었음

'수석 주교' 같은 칭호가 언제 끼어들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키프리아누스는 로마의 코르넬리우스를 '형제', '동료 주교'라고만 불렀다. 다음 로마 주교 스테파누스에게는 대등한 입장에서 교만과 무지를 꾸짖기까지 했다. 카르타고 공의회는 '사제의 왕'이나 '수석 주교'라는 칭호를 금하고, '수석 관구의 주교'라는 호칭만 허락했다. 더 오래전 기록에서 로마 주교는 '형제'로 불리는 것에 만족했다. '최고의 교황'이나 '지상 교회의 유일한 머리' 같은 칭호는 들어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로마 장로였던 히에로니무스도 이렇게 말했다. 주교는 로마에 있든 작은 도시에 있든 공로와 사제직이 같다. 부유함이나 가난함이 주교를 높이거나 낮추지 않는다.

  • 키프리아누스는 로마 주교를 '형제'라 불렀다
  • 카르타고 회의는 '수석 주교' 칭호를 금지
  • '최고 교황' 같은 칭호는 고대에 없었다
  • 히에로니무스: 어디 있든 주교는 똑같다
—교부 증언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4. '전세계적 주교'란 칭호에 대한 그레고리우스 1세의 태도

그레고리우스 1세 때 콘스탄티노플의 요한이 '전세계적 주교'를 자처하면서 분쟁이 일어났다. 그레고리우스는 자기 권리를 빼앗겼다는 이유로 반대하지 않았다. 그 칭호 자체가 불경하고 신성모독이며 적그리스도(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 자리를 빼앗는 세력)의 앞잡이 노릇이라고 반대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누군가 전세계적 주교로 불리면 온 교회가 함께 무너진다. 한 총대주교가 '전세계적'이 되면 나머지는 총대주교 칭호를 빼앗긴다. 자기를 높여 형제의 명예를 깎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칼케돈에서 레오에게 이 칭호가 주어졌다고 말했는데, 칼빈은 이것을 오해로 본다. 회의 법령에 그런 내용이 없고, 명예를 좋아한 레오가 그 증거를 언급하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자기 전임자들도 형제들을 부정하게 될까 두려워 이 칭호를 거절했다고 강조했다.

  • 그레고리우스는 '전세계적 주교' 칭호를 정죄
  • 이유는 권리 다툼이 아니라 칭호의 불경함
  • 그 칭호는 다른 모든 주교를 부정한다
  • 형제를 깎는 자기 높임은 비그리스도적
  • 칼케돈 수여설은 그레고리우스의 오해
—그레고리우스의 서신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누구든지 ‘전세계적 주교’라 칭함을 받으면 그것은 타락이요칼빈, 『기독교강요』

4.7 · 로마 교황의 권위의 제한성: 황제 및 다른 주교들과의 관계. 5-10

5. 로마의 막강한 재판권의 기원

이제 재판권(분쟁을 판결하고 처리하는 권한)을 본다. 로마는 처음부터 다른 교회를 통제하려 했다. 칼빈은 그 권세가 어떻게 커졌는지 추적한다. 4세기 아리우스파 분쟁 때 정통 신앙의 수호자 아타나시우스가 쫓겨나 로마로 갔다. 로마 주교 율리우스의 도움을 받아 서방 주교들을 자기 편에 세웠다. 도움이 절실했던 경건한 사람들은 로마에 최대한 권위를 인정해 주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악한 사람들이 로마의 권위를 키웠다. 정당한 징계를 받은 자들이 로마로 상소했고, 로마는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특권처럼 여겨 탐욕스럽게 받아 주었다. 이단자 유티케스가 정죄받자 레오는 정죄한 플라비아누스를 몰아세웠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일이 잦아서, 결국 바다 건너 상소를 금하는 법령까지 만들었다.

  • 처음엔 박해받는 정통파가 로마를 의지했다
  • 나중엔 징계 피하려는 자들이 로마로 갔다
  • 로마는 개입을 특권처럼 여겼다
  • 레오는 유티케스 편에 서는 실수를 했다
  • 아프리카는 바다 건너 상소를 금했다
—역사적 서술(직접 인용 구절 없음)

6. 고대의 로마 관구의 권세의 특징

교회 권세는 넷이다. 주교를 세우는 권한, 회의를 소집하는 권한, 상소를 듣는 권한, 견책하는 권한이다. 먼저 임직권을 보면, 고대 공의회들은 모두 해당 지역이 주교를 세우게 했다. 로마 주교는 자기 관할 안에서만 임직했다. 나중에 이탈리아 주교들이 로마의 인허를 받는 관례가 굳어졌지만, 수도대주교 관구들은 이것을 굴욕으로 여겨 거부했다. 로마는 사람을 보내 참석만 시켰을 뿐 주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예의와 교제의 표시였는데, 자발적이던 것이 점점 의무처럼 변했다. 신앙고백 문서도 마찬가지다. 총대주교들은 임직하면 정통 신앙을 밝히는 문서를 서로 주고받았다. 로마도 이 문서를 받기만 하지 않고 보냈다. 이것은 로마가 우두머리가 아니라 동등한 교제 안에 있었다는 증거다.

  • 교회 권세 4가지: 임직·소집·상소·견책
  • 임직은 지역 교회의 일이었다
  • 로마의 참석은 예의에서 의무로 변했다
  • 신앙고백 문서를 로마도 주고받았다
  • 그것은 '동등한 교제'의 표시였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7. 주교들 상호 간의 훈계와 견책

견책도 서로 주고받았다. 이레나이우스는 로마 주교 빅토르가 사소한 문제로 교회를 어지럽히자 강하게 꾸짖었다. 빅토르는 그 꾸짖음을 받아들였다. 로마 주교도 필요할 때 다른 주교들을 일깨우고 꾸짖었다. 키프리아누스는 스테파누스에게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지역) 주교들을 경계하라고 권했다. 그 근거는 로마의 상위 권위가 아니라 '형제의 교제 안에서 서로 권면할 책임'이었다. 스테파누스가 갈리아를 관할했다면 "당신 수하니 막으시오"라고 했을 것이다. 온화한 키프리아누스가 교만해진 스테파누스를 혹독하게 꾸짖기도 했다. 이를 보면 로마 주교는 자기 지역 밖을 재판할 권한이 없었다.

  • 이레나이우스가 로마 주교를 꾸짖었다
  • 로마 주교는 그 책망을 받아들였다
  • 권면의 근거는 '형제의 교제'였다
  • 로마는 자기 지역 밖 재판권이 없었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8. 공의회 소집의 권한

지역 회의를 소집하는 것은 각 수도대주교의 임무였다. 로마 주교에게 특별한 권한은 없었다. 세계 공의회는 황제만 소집할 수 있었다. 주교가 소집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따르지 않고 소란이 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사가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율리우스는 동방 주교들이 자신을 안디옥 회의에 초청하지 않았다고 훈계했다. 교황 모르게 법령을 만들 수 없다는 교회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것이 온 교회에 적용되는 신앙 법령에 관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로마의 오랜 역사와 위상을 존중해, 로마 주교가 빠진 채 보편적 신앙 법령을 통과시키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과 온 교회 위에 군림하는 것은 다르다. 칼빈은 로마 주교가 주요 주교 중 하나였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모든 주교를 다스렸다는 주장은 거부한다.

  • 지역 회의는 수도대주교가 소집했다
  • 세계 공의회는 황제가 소집했다
  • 로마 동의 원칙은 '존중'이지 '통치' 아님
  • 로마 = 주요 주교 중 하나, 통치자 아님
—직접 인용 구절 없음

9. 상소와 관련한 부패상

마지막은 상소권이다. 상소를 받는 쪽이 최고 결정권을 가진다. 로마는 상소를 받으려 했지만 선을 넘을 때마다 웃음거리가 되었다. 갈리아 주교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오랜 논쟁이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참석한 밀레비스 회의가 바다 건너 상소한 자들을 출교하자 로마는 니케아 법령이라며 문서를 내밀었다. 아프리카 교회는 로마가 자기 일을 스스로 변호하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 도시들의 사본을 확인했다. 그 결과 그런 조항이 없었다. 로마가 사르디카 회의 문서를 니케아 문서로 바꿔치기한 것이 드러났다. 칼빈은 카르타고 주교 이름으로 된 위조 편지도 그런 예로 든다. 그 편지는 전임자 아우렐리우스가 로마에 불복했다며 정죄하는 내용이다. 그라티아누스(교회법 모음집을 엮은 학자)는 상소 금지 법령에 '로마 상소는 예외'라는 단서를 붙였다. 하지만 그 법령은 바로 로마 때문에 만든 것이었다.

  • 상소권 = 최고 결정권
  • 갈리아와 아프리카는 로마 상소권에 저항
  • 로마가 내민 '니케아 법령'은 바꿔치기였다
  • 위조 편지로 권위를 꾸몄다
  • '로마는 예외'라는 단서는 앞뒤가 바뀐 것
—역사적 서술(직접 인용 구절 없음)

10. 로마 교황의 위상에 대한 결정적인 역사적 증거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 카사이 니그라이의 도나투스가 카르타고 주교 카이킬리아누스를 고발했다. 카이킬리아누스는 심문도 받지 않은 채 정죄되었다. 사건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넘어갔고, 황제는 로마 주교 멜키아데스에게 이탈리아, 갈리아, 스페인의 주교들과 함께 재판하게 했다. 로마에게 상소 재판권이 원래 있었다면, 멜키아데스가 왜 자기 직권이 아니라 황제의 명령으로 재판했겠는가. 또 왜 다른 주교들을 붙였겠는가. 재판 결과 카이킬리아누스가 이겼다. 도나투스가 다시 상소하자 황제는 아를의 주교에게 재심을 맡겼다. 수위권이 있었다면 로마의 판결을 다른 주교가 다시 심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만든 사람은 로마가 자기들의 후원자라고 자랑하는 바로 그 콘스탄티누스였다.

  • 로마 주교는 황제의 위임으로 재판했다
  • 다른 지역 주교들이 함께 판결했다
  • 로마 판결을 아를의 주교가 재심했다
  • 당시 로마에 최고 재판권은 없었다
—역사적 사건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4.7 · 로마 관구의 부상. 11-16

11. 거짓 조작과 월권행위

로마의 권리를 주장하는 교황 서한과 칙령은 많다. 하지만 칼빈은 그 대부분이 조금만 읽어도 출처가 의심스러운 유치한 문서라고 본다. 예를 들어 그라티아누스가 아나클레투스의 것이라며 실은 해석이 있다. '게바'가 '머리'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은 어두운 시대에 사람들을 속이던 연기 같은 것이다. 레오의 편지처럼 진짜 문서 중에도 로마를 크게 높이는 것이 있다. 레오는 학식과 말재주가 있었지만 영광과 권력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문제는 당시 교회들이 그 주장을 받아들였느냐인데, 많은 이가 거부감을 보였다. 레오는 데살로니가, 아를, 세빌리아 주교를 대리로 지명했다. 그러나 늘 조건을 달았다. 각 주교의 일상적 재판권, 수도대주교의 상소 심리권, 지역 회의의 권한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 '대리'는 불화를 중재하는 일에 그쳤다.

  • 로마 권리 문서 상당수는 위조다
  • '게바=머리' 같은 억지 해석이 섞였다
  • 진짜 레오 서한도 당시 교회의 반발을 샀다
  • 레오의 '대리'도 지역 권한을 침해하지 못함
—직접 인용 구절 없음

12. 그레고리우스 1세 때의 로마 관구의 위상

그레고리우스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제국이 흔들리고, 갈리아와 스페인과 일리리쿰과 이탈리아와 아프리카가 전쟁과 재난으로 무너졌다. 주교들은 신앙만이라도 지키려고 로마와 더 굳게 손잡았다. 그래서 로마의 위상과 세력이 크게 커졌다. 하지만 마음대로 명령하는 절대 권력과는 달랐다. 지역 주교들이 다스리지 못하는 완악한 자들을 누를 수 있을 만큼 존경받는 정도였다. 그레고리우스는 자기 권리를 요구하는 만큼 남의 권리도 지켜 준다고 말했다. 잘못한 주교는 사도의 관구 아래 놓이지만, 잘못이 없으면 모두가 겸손 안에서 동등하다고 했다. 그가 교정권을 주장하자 동의하는 이도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비잔티움 주교 사건에서도 그는 황제의 명령을 받아서만 재판했다.

  • 위기 속에 주교들이 로마와 결속했다
  • 로마 위상은 커졌으나 절대 권력은 아님
  • 잘못이 없으면 모든 주교가 동등하다
  • 그레고리우스도 황제 명령으로 재판했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13. 그레고리우스 1세의 주교의 직무

당시 로마 주교의 권한은 완악한 주교들을 막는 특별 조치였다. 그것도 다른 주교를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돕기 위한 것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자신도 모든 주교에게 교정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인정했다. 아퀼레이아 주교와 교리 논쟁이 일어났을 때는 황제의 명령으로 로마에 오라고 했다. 그리고 혼자 재판하지 않고 회의를 열어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직분이 부담스러웠다. 주교가 되고 오히려 세상일에 더 휘말려 하늘의 일로 마음을 올릴 수 없다고 탄식했다. 폭풍 치는 깊은 바다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도 그는 설교와 목회를 했다. 민간 행정은 삼갔고, 황제에게 복종했으며, 꼭 필요할 때만 다른 교회 일에 관여했다.

  • 로마의 개입은 '돕기 위한 예외'였다
  • 그레고리우스는 교정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혼자 재판하지 않고 회의에 맡겼다
  • 세상일에 묶이는 것을 깊이 탄식했다
  • 그래도 설교와 목회는 놓지 않았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그레고리우스의 탄식은 시편의 표현을 빌린 것이나 장절은 밝히지 않음)

14.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수위권 다툼

같은 시기 콘스탄티노플 주교가 로마와 우위를 다투었다. 황제의 자리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가자, 그 교회도 로마 다음가는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요구가 생겼다. 사실 로마가 첫째 자리를 얻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도 제국의 수도라는 사실이었다. 그라티아누스의 문서에는 루키우스와 클레멘트의 이름으로 된 칙서가 있다. 옛 정치 중심지에 총대주교를 두었다는 내용이다. 내용은 어리석지만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교회 조직을 기존 행정 구역에 맞췄던 것이다. 토리노 공의회는 행정 중심지가 바뀌면 수도대주교 권한도 따라간다고 정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는 로마의 쇠락을 걱정해 바뀌지 않는다는 반대 법을 냈다. 칼빈은 한 사람의 견해보다 회의의 권위가 앞선다고 본다. 그리고 인노켄티우스의 조치 자체가 원래 원칙이 행정 질서를 따르는 것이었음을 증명한다고 지적한다.

  •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와 우위를 다투었다
  • 로마의 첫째 자리는 '수도'였기 때문
  • 교회 조직은 행정 구역을 따라 짰다
  • 수도가 바뀌면 교회 서열도 바뀌는 게 원칙
  • 인노켄티우스의 반대 법이 오히려 이를 증명
—직접 인용 구절 없음

15. 콘스탄티노플에 관한 공의회의 결정에 대한 레오의 반발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이 새 로마가 되었으니 로마 다음의 위엄을 가진다고 정했다. 칼케돈에서 비슷한 결정을 하자 레오는 격렬히 항의했다. 600명이 넘는 주교의 결정을 무시하고, 니케아의 결정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칼빈은 그것이 야망 때문이라고 본다. 교회 조직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이니 니케아 법령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정작 손해를 볼 알렉산드리아의 프로테리우스와 다른 동방 총대주교들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레오의 지위는 그대로였는데도 그만 반대했다. 그는 로마가 쇠락하면 콘스탄티노플이 2위에 만족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다보았다. 항의는 실패했고, 후계자들은 결국 콘스탄티노플을 2위로 인정했다.

  •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을 2위로 정했다
  • 레오 혼자 격렬히 반대했다
  • 교회 조직은 시대 따라 바뀔 수 있다
  • 정작 당사자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 레오의 반대는 실패, 후계자들이 수용
—직접 인용 구절 없음

16. 콘스탄티노플 주교의 교만과 그레고리우스의 태도

그레고리우스 때 콘스탄티노플의 요한이 '전세계적 총대주교'를 주장했다. 자기 관할을 제국의 경계와 같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단호히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같은 칭호를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칭호를 쓰는 사람은 누구든 악하고 불경하다고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율로기우스가 편지에서 그를 '전세계적 교황'이라 부르자 그레고리우스는 하지 말라고 했다. 형제를 깎는 것은 자기 명예가 될 수 없고, 형제들의 생명과 활력이 자기 명예라고 했다. 칼빈은 그 태도가 옳고 존귀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요한은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비호를 받아 뜻을 굽히지 않았고, 후계자 키리아쿠스도 마찬가지였다.

  • 콘스탄티노플이 '전세계적' 칭호를 주장
  • 그레고리우스는 반대하되 자신도 거부했다
  • '전세계적 교황'이라는 호칭도 금했다
  • 형제들의 명예가 곧 나의 명예
  • 칼빈은 그레고리우스의 태도를 존귀하다 평가
—직접 인용 구절 없음

4.7 · 왕위 찬탈자들과의 협력에 의한 로마 관구의 수위권의 확립과 강화. 17-18

17. 로마 관구의 수위권의 확립

마우리키우스 황제가 살해당한 뒤 포카스 황제가 보니파키우스 3세에게 로마가 모든 교회의 머리라는 특권을 주었다(7세기 초 무렵). 그레고리우스는 전혀 구하지 않던 것이다. 포카스가 왜 로마에 호의를 베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칼빈은 그가 로마에서 별 충돌 없이 황제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곧 그리스와 아시아가 로마와 갈라졌고, 갈리아도 원하는 만큼만 복종했다. 갈리아가 완전히 굴복한 것은 페팽 때였다. 교황 자카리아스는 페팽이 적법한 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도록 도왔다. 그 대가로 갈리아 교회에 대한 재판권을 얻었다. 칼빈은 이것을 강도들이 약탈품을 나누는 것에 비유한다. 그 뒤 교황의 노력으로 황제가 된 샤를마뉴(800년 대관)가 교황권을 더 강화했다.

  • 찬탈 황제 포카스가 로마에 '머리' 특권 부여
  • 그레고리우스는 원하지 않던 것이었다
  • 동방은 곧 로마와 갈라졌다
  • 페팽의 왕위 찬탈을 돕고 갈리아를 얻음
  • 샤를마뉴가 교황권을 더 강화했다
—역사적 서술(직접 인용 구절 없음)

18. 베르나르 시대의 교회의 부패상

그 뒤로 상황은 날마다 나빠졌다. 로마의 횡포가 커진 데는 다른 주교들의 무지와 게으름도 한몫했다. 용기가 있어도 지식이 없어 막지 못했다. 베르나르는 이렇게 탄식했다. 야심가, 탐욕스러운 자, 성직을 사고파는 자, 첩을 둔 자들이 각지에서 로마로 몰려와 교황의 권위로 직분을 얻으려 한다. 사람들은 입법자의 입보다 손을 본다. 그 손에 돈과 일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의 목숨이 부자들의 길에 뿌려졌다. 화려하게 꾸민 목자가 있는 그곳은 양의 초장이 아니라 마귀의 초장이다. 특히 그는 교회들의 공통된 불평을 전했다. 수도원장이 주교를 건너뛰고, 주교가 대주교를 건너뛰어 로마로 직행해 질서가 찢긴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다는 것으로 권력은 증명되지만 의는 없다. 문제는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해야 하느냐이다.

  • 다른 주교들의 무지와 게으름도 책임이 있다
  • 베르나르: 로마는 돈과 야심의 시장이 되었다
  • 양의 초장이 아니라 마귀의 초장
  • 지역 질서를 건너뛰는 로마 직행이 교회를 찢었다
  •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는 다르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

4.7 · 후대의 교황주의의 주장은 그레고리우스와 베르나르의 원리들과 모순임. 19-22

19. 오늘날의 교황들의 주장

칼빈은 레오와 그레고리우스 시대에 로마가 높은 지위와 넓은 재판권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의 교황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세속 영토 문제는 나중에 다룬다고 한다). 오늘날 교황은 지상 교회의 최고 머리이자 온 세계의 주교로 정의된다. 교황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명령은 자신들이 하고 나머지는 복종한다. 교황의 결정은 베드로의 음성이다. 교황이 없는 지역 회의는 효력이 없다. 어느 교회의 성직자든 임명하고 로마로 소환할 수 있다. 교리, 입법, 질서, 재판의 최종 결정권이 모두 교황 한 사람에게 있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교황이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황제도 왕도 성직자도 백성도 그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면 그가 교회를 망치고 목회직을 강도질로 바꾸어도 아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것은 오만의 극치다.

  • 고대 로마의 위상은 지금과 비교도 안 된다
  • 교리·입법·재판 최종권을 1인이 독점
  • 교황 없는 회의는 무효라고 주장
  • 교황은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고 주장
  • 견제 없는 권력은 오만의 극치
—교령집 내용을 소개(직접 인용 구절 없음)

20. 교황권 확립을 위하여 거짓 문서들을 사용함

로마는 이런 칙령에 무게를 실으려고 고대 교황들의 이름을 빌렸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꾸미려는 것이다. 그러니 앞에서 본 고대 공의회의 인정보다 더 많은 것을 교황에게 주는 문서는 모두 후대에 만든 것이다. 심지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나스타시우스가 '로마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이 옛 규칙'이라고 증언하는 칙서까지 만들었다. 로마의 경쟁자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그레고리우스 9세 교령집, 클레멘트 교령집, 마르티누스 문서 같은 후대 교회법 모음은 더 노골적이다. 그 결과 '교황은 오류가 없다', '교황은 공의회보다 높다', '교황은 모든 교회의 주교요 지상 교회의 최고 머리다' 같은 말이 신탁처럼 통하게 되었다.

  • 고대 교황 이름을 빌린 위조 문서들
  • 고대 공의회 이상의 권리는 모두 후대 창작
  • 경쟁자 이름까지 빌린 조작
  • 후대 교회법 모음은 더 노골적이다
  • '교황 무오', '공의회 위 교황'이 신탁처럼 통함
—직접 인용 구절 없음

21.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정죄

칼빈은 지나치게 몰아치지 않겠다고 한다. 키프리아누스가 "아무도 자기를 주교 중의 주교라 하지 말라"고 한 말이나, 카르타고 회의가 '수석 주교' 칭호를 금한 법령을 더 쌓을 수도 있지만 넘어간다. 다만 한 가지를 묻는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거듭 정죄한 '전세계적 주교'라는 칭호를 어떻게 변호하는가. 그레고리우스의 말을 인정한다면, 교황을 전세계적 주교로 만드는 것은 그를 적그리스도로 선포하는 셈이다. 그레고리우스는 '머리' 칭호도 거부했다. 베드로는 몸의 주요 지체였을 뿐이고, 모든 지체는 한 머리 아래 있다고 했다. 율로기우스가 '명령을 받았다'고 쓰자, 그레고리우스는 '명령'이라는 말을 빼 달라고 했다. 자신은 명령한 적이 없고 유익한 것을 제안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무제한의 재판권이 다른 교회들의 폐허 위에 자기 자리를 세우는 일이라고 정리한다.

  • '전세계적 주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정죄한 칭호
  • 그 칭호를 쓰면 그레고리우스 기준으로 적그리스도
  • 그레고리우스: 베드로도 '주요 지체'일 뿐
  • '명령'이라는 말조차 거절했다
  • 무제한 재판권은 남의 폐허 위에 세운 집
—교부와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증언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22. 부패한 교황제의 현실

칼빈은 로마의 후견인들에게 지금의 교황제를 변호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레고리우스와 베르나르가 탄식한 시대보다 백 배는 더 부패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세상일에 묶여 '깊은 바다'에 빠졌다고 탄식했다. 그래도 그는 설교하고, 가르치고, 바로잡고, 교회를 다스리고, 글을 썼다. 그가 '바다'라고 한 것이 그 정도였다면 지금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지금은 설교도, 권징도, 교회를 향한 열심도, 영적 활동도 없고 세상일뿐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가장 질서 있는 체제라고 찬양한다. 성도들이 정죄한 것을 거룩하다고 하며 그들의 증언을 교황제 변호에 쓴다. 칼빈은 이것을 카이사르의 독재를 변호하려고 로마 공화정의 자유를 찬양하는 것에 비유한다.

  • 지금은 그레고리우스·베르나르 때보다 훨씬 부패
  • 그레고리우스는 탄식하면서도 목회는 했다
  • 지금은 설교도 권징도 없이 세상일뿐
  • 성도들의 증언을 정반대로 쓰고 있다
  • 독재를 변호하려 자유의 찬사를 빌리는 격
—직접 인용 구절 없음

4.7 · 후대의 교황제를 고발함. 23-30

23. 로마에 과연 교회와 주교의 직분이 존재하는가?

칼빈은 마지막 논증을 편다. 로마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베드로가 머리로 지명되었고, 그 영광을 로마에 두었고, 고대 교회가 인정했고, 교황이 만인을 판단하고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는 것까지 전부다. 그래도 로마에 교회와 주교가 없다면 모든 주장은 쓸모없다. 교회가 아닌 것은 교회들의 어머니일 수 없고, 주교가 아닌 자는 주교들의 으뜸일 수 없다. 교회는 분명한 표지(말씀 선포와 성례)로 알아본다. '주교'는 직분의 이름이니 그 일을 해야 한다. 주교의 임무는 셋이다.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 성례를 시행하는 것, 권면하고 바로잡아 권징 아래 두는 것이다. 교황은 이 중 무엇을 하는가, 하는 척이라도 하는가. 칼빈은 그런 사람을 어떻게 감독으로 인정하느냐고 묻는다.

  • 모든 주장을 인정해도 남는 질문이 있다
  • 교회가 아니면 교회들의 어머니일 수 없다
  • 주교가 아니면 주교들의 으뜸일 수 없다
  • 주교 임무: 가르침·성례·권징
  • 교황은 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앞 편의 직분론을 전제(직접 인용 구절 없음)

24. 로마의 배교(背敎)

감독은 왕과 다르다. 왕은 책무를 다하지 못해도 칭호를 유지하지만, 감독은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판단해야 한다. 칼빈은 교황이 감독들의 으뜸이라는 주장을 부인한다. 감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황에게는 감독의 특징이 하나도 없고 반대되는 것만 가득하다. 칼빈의 판단으로는 세상에 넘치는 왜곡된 교리와 미신과 우상 숭배 가운데 로마에서 나오지 않았거나 로마의 힘을 빌리지 않은 것이 없다. 교황들이 복음을 미친 듯이 박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다스리면 자기 왕국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배교(참된 신앙을 버리고 떠남)가 있는 곳에 사도의 관구가 있을 수 없다. 복음을 박해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일 수 없다. 베드로가 세운 것을 무너뜨리는 자는 베드로의 후계자일 수 없다. 로마는 옛날에는 교회들의 어머니였지만, 적그리스도의 자리가 된 뒤로 그 본질을 잃었다.

  • 감독은 칭호가 아니라 일로 판단한다
  • 교황에게는 감독의 특징이 없다
  • 복음 박해는 자기 권력을 지키려는 것
  • 배교가 있는 곳에 사도의 관구는 없다
  • 로마는 옛날엔 어머니였으나 본질을 잃었다
—직접 인용 구절 없음(그리스도의 명령을 전제)

25. 로마 교황은 적그리스도임

칼빈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부르는 것이 비방이 아니라 바울의 말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했다. 다니엘은 안티오쿠스의 모습으로 신성 모독이 가득한 나라를 그렸다. 칼빈은 여기서 두 가지 특징을 읽는다. 첫째, 이것은 몸보다 영혼에 대한 폭정이며 그리스도의 영적 나라를 거스른다. 둘째,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름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가면으로 쓴다. 바울은 배교가 먼저 온다고 했다. 이는 배교가 교회 전체에 퍼질 때 가증한 보좌가 서고, 그때 많은 이가 흩어진 채 참 신앙을 지킨다는 뜻이다. 또 불법의 비밀이 바울 시대에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 적그리스도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말한 핵심 표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자기를 높이는 것이다. 칼빈은 교황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만 속한 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고 보고, 교황을 그 나라의 지도자라고 결론짓는다.

  • '적그리스도'는 바울의 말을 적용한 것
  • 영혼에 대한 폭정, 영적 나라를 거스름
  • 교회의 이름을 가면으로 쓴다
  •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고 끝나지 않는다
  • 핵심 표지: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자기를 높임
데살로니가후서 2:4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함 — 적그리스도의 핵심 표지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다니엘 7:25지극히 높으신 이를 대적하는 말 — 신성 모독하는 나라의 모습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요한계시록 13:5과장되고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는 짐승 — 같은 모습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3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음 —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배교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데살로니가후서 2:7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함 — 적그리스도는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음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26. 교황제는 교회의 질서와 정반대 됨

모든 것이 뒤집혔는데 로마의 영광이 어떻게 서 있겠는가. 관구 자체가 없는데 말이다.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심판을 위해 예루살렘 교회를 펠라로 옮기셨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또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수위권을 한 장소에 못 박고, 복음의 원수라도 옛 수석 관구를 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감독의 직분은 도장 속에 있지 않고, 더구나 협잡과 사기의 소굴에 있지 않다. 그런데 교황의 '영적 통치'는 그런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로마 교회는 이미 세속 법정으로 변했다는 누군가의 말이 적절하다. 칼빈은 여기서 사람들의 악행이 아니라, 교황 제도 자체가 교회 질서와 정반대라는 것을 보이고 있다고 분명히 밝힌다.

  • 하나님은 교회를 옮기실 수도 있다
  • 장소를 차지했다고 대리자가 되지 않는다
  • 감독직은 도장이나 행정에 있지 않다
  • 로마 교회는 세속 법정이 되었다
  • 비판 대상은 사람보다 제도 자체
—유세비우스의 기록을 근거로 듦(직접 인용 구절 없음)

27. 교황들의 사악한 행위와 이단적인 신앙

칼빈은 실제 인물로 넘어가 당시 교황들(율리우스, 레오, 클레멘트, 파울루스)을 비꼰다. 그들이 믿음의 기둥이라지만, 신앙을 조롱한 이교 풍자 작가 루키아노스 수준으로만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다. 이어 칼빈은 교황과 추기경단 사이에 '은밀한 신학'이 있다고 고발한다.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은 거짓이며, 내세와 부활은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칼빈 스스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서를 단다. 그런데도 로마 신학자들은 누가복음 22:32를 근거로 교황은 오류가 없다고 자랑한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는 말씀이다. 칼빈은 이것을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뻔뻔한 조롱이라고 본다(이 부분은 16세기 논쟁의 격한 표현이다. '작가에게' 참고).

  • 당시 교황들의 신앙을 강하게 비판한다
  • '은밀한 불신앙'이 있다고 고발한다
  • 칼빈도 '모두가 그렇진 않다'고 단서를 단다
  • 교황 무오의 근거로 누가복음 22:32를 쓴다
  • 칼빈은 그 사용을 조롱이라 본다
누가복음 22:32'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 로마가 교황 무오의 근거로 쓰는 구절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28. 교황 요한 22세의 오류

그 불신앙이 식탁이나 침실에서만 오가 감춰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교황 무오를 주장하려면 요한 22세(14세기)를 교황 명단에서 지워야 한다. 그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죽어 부활 날까지 죽어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추기경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파리 대학 교수들이 프랑스 왕을 움직였고, 왕이 교황과의 교제를 끊겠다고 압박하자 그는 입장을 철회했다. 칼빈은 당시 사람인 장 제르송이 이것을 증언한다고 말한다. 이 사례는 베드로의 자리에 오른 모든 사람이 베드로가 아님을 보여 준다. 칼빈은 하나를 더 지적한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모두 후계자에게 적용된다면 '사탄아 물러가라'도 적용되어야 한다. 로마가 누가복음 22:32를 내밀면 개혁자들은 마태복음 16:23을 내밀 수 있다.

  • 요한 22세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죽는다고 주장
  • 추기경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 외부 압력으로 철회했다
  • '베드로 자리 = 베드로'가 아니다
  • 그 논리면 '사탄아 물러가라'도 상속된다
누가복음 22:32로마의 교황 무오 근거 — 요한 22세 사례로 반박됨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마태복음 16:23'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모두 상속한다면 이것도 해당된다는 반례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9. 교황들의 부패한 도덕성

칼빈은 처음 문제로 돌아간다. 그리스도와 성령과 교회를 한 장소에 묶어 두고, 그곳을 다스리는 자라면 마귀라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께 모욕이며 상식에도 어긋난다. 교황들은 오랫동안 신앙이 없거나 신앙의 원수였다. 그러니 자리를 차지했다고 대리자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는 우상이다. 도덕으로 보아도 그렇다. 감독의 임무는 사람들의 방종을 권징으로 억제하는 것인데, 교황들은 로마의 방종을 눈감아 준다. 그들 자신과 측근과 추기경단도 온갖 악에 빠져 있다. 칼빈은 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결론을 짓는다. 로마가 한때 교회들의 머리였어도, 지금은 교회의 새끼발가락에도 낄 자격이 없다.

  • 장소에 그리스도를 묶는 것은 모욕이다
  • 자리가 대리자를 만들지 않는다
  • 감독은 방종을 억제해야 하는데 눈감아 준다
  • 지도층 자신이 부패해 있다
  • 한때 머리였으나 지금은 발가락 자격도 없다
데살로니가후서 2:4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함 — 장소를 차지한 자가 오히려 우상일 수 있음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30. 추기경직의 문제성

추기경이 언제부터 그렇게 커졌는지 칼빈도 모른다. 그레고리우스 때 '추기경'은 로마만이 아니라 여러 교회의 감독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더 이전 저자들에게는 이 칭호가 아예 없다. 지금은 추기경이 감독보다 훨씬 높지만, 옛날에는 로마의 장로도 다른 장로들처럼 감독 아래 있었다. 카르타고 회의에 로마 대표로 온 장로는 맨 끝자리에 앉았다. 그레고리우스 때 로마 회의에서도 장로는 끝자리에서 서명했고, 집사는 서명할 자리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왕과 황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칼빈은 지금의 로마가 고대 관구의 이름을 빌려 자기를 지키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고 정리한다. 남은 것은 색깔과 빈 껍데기뿐이다. 칼빈은 그레고리우스의 탄식과 말라기의 경고로 끝맺는다. 사제직이 안에서 무너졌으니 밖에서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이런 체제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까지 자기 아래 두려 하는가.

  • 옛 '추기경' = 여러 교회의 감독을 부르던 이름
  • 로마 장로·집사는 원래 말석이었다
  • 지금은 왕과 황제급이 되었다
  • 고대 이름을 빌렸을 뿐 실체는 전혀 다르다
  • 말라기: 길을 떠난 제사장은 멸시당한다
말라기 2:8-9레위의 언약을 깨고 길을 떠난 제사장은 백성 앞에서 멸시당함 — 타락한 성직 체제에 대한 경고
8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9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로마 교회시대가 부패해 감독 선출권을 소수(참사회원)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약이 병보다 독하면 약을 바꿔야 한다. 기준은 말씀이다(4.5.2-3)디모데전서 3:1-7; 디도서 1:7-9
디모데전서 3:1-7 1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
디도서 1:7-9 7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 교회옛 교부들도 성직계급제를 칭송했다교부들이 칭송한 것은 말씀을 섬기는 사도적 질서지 지금의 체제가 아니다(4.5.13)창세기 11:9(비유)
로마 교회교회의 화려함이 위엄이며 예언의 성취다영적 약속을 육적으로 읽은 것이다. 사도 시대는 가난했지만 가장 강했다(4.5.17)시편 72:10-11; 이사야 60:6-7(로마의 근거를 칼빈이 영적으로 해석)
시편 72:10-11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11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로마 교회구약에 대제사장이 있었듯 교회에도 한 수장이 필요하다한 나라를 위한 임시 제도이고, 그리스도의 모형이므로 그 권세는 그리스도께 넘어갔다(4.6.2)히브리서 7: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로마 교회교회는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다반석은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다. 교회의 터는 하나뿐이다(4.6.6)마태복음 16:16-18; 고린도전서 3:11
마태복음 16:16-18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로마 교회열쇠권은 베드로 개인에게 특별히 주어졌다같은 권세가 모든 사도에게 주어졌다. 베드로는 하나 됨의 대표였다(4.6.3-4)마태복음 18:18; 요한복음 20:23; 베드로전서 5:2
마태복음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베드로전서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로마 교회자연(벌·두루미)과 군주제처럼 우두머리는 하나여야 한다무리마다 우두머리가 있을 뿐이다. 이 예가 증명하는 것은 교회마다 감독이 있어야 한다는 것뿐이다(4.6.8)직접 인용 구절 없음
로마 교회그리스도는 하늘의 머리, 교황은 땅의 대리 머리다그리스도가 그런 대리자를 지명한 기록이 없다. 바울의 교회론에도 없다(4.6.9-10)에베소서 4:4-16; 에베소서 1:22; 골로새서 1:18
에베소서 4:4-16 4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그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
에베소서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로마 교회베드로가 로마에 살다 죽었으니 로마가 수위권의 자리다그리스도도 예루살렘에 그런 영광을 주지 않으셨다. 로마 장기 재임설은 성경과 맞지 않는다(4.6.11, 14-15)신명기 34:5; 갈라디아서 1:18; 로마서 16:3-16; 디모데후서 4:16
신명기 34: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갈라디아서 1: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로마서 16:3-16 3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
디모데후서 4: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로마 교회처음부터 모든 공의회와 교회가 로마 수위권을 인정했다공의회 서열, 칭호, 재판 기록 모두 반대를 보여 준다. 근거 문서 상당수는 위조다(4.7.1-11)역사 기록으로 논증(직접 인용 구절 없음)
로마 교회교황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요한 22세가 실제로 오류를 범했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다 상속하면 '사탄아'도 상속된다(4.7.27-28)누가복음 22:32; 마태복음 16:23
누가복음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마태복음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로마 교회교황은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그레고리우스 자신은 교정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견제 없는 권력은 오만이다(4.7.13, 19, 21)교부 증언(직접 인용 구절 없음)
칼빈 비판자교황을 적그리스도라 부르는 것은 비방이다바울이 말한 표지(성전에 앉아 자기를 높임)를 적용한 것이다. 비판 대상은 사람보다 제도다(4.7.25-26)데살로니가후서 2:3-4, 7
데살로니가후서 2:3-4 3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3. 용어

감독(주교)
여러 장로 가운데 뽑혀 회의를 이끌던 사람이다. 칼빈은 본래 장로와 같은 직분이었다고 본다.
장로(사제)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직분이다. 로마 교회의 '사제'라는 말도 헬라어 '장로'에서 왔다.
집사(부제)
헌금을 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던 직분이다. 로마 교회에서는 예식을 돕는 직분으로 바뀌었다.
관구(see)
한 감독이 맡은 관할 지역, 또는 그 감독의 자리를 말한다.
수위권
로마 주교(교황)가 모든 교회 위에 첫째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이다.
성직록
성직에 붙어 나오는 정기 수입이다. 칼빈 당시에는 일보다 수입이 목적이 되었다.
성직매매
돈이나 연줄, 이권으로 성직을 사고파는 죄다.
참사회원
대성당에 소속된 성직자 집단이다. 칼빈은 이들이 감독 선출권을 가로챘다고 비판한다.
공의회·대회
공의회는 여러 지역 교회 대표가 모이는 큰 회의, 대회는 한 지방의 교회 회의다.
적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대적하면서 교회의 이름을 가면처럼 쓰고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는 세력을 말한다.

4. 청년의 삶으로

💬 교회 리더를 뽑을 때 내 한 표가 정말 의미가 있을까? → 칼빈: 고대 교회는 교인의 동의 없이 감독을 세우지 않았다. 선출을 귀찮아해 떠넘긴 것이 권력 독점의 시작이었다(4.5.3).
💬 내 헌금은 어디에 쓰이고, 꼭 알아야 할까? → 칼빈: 교회 재산은 원래 가난한 이들의 몫이다. 집사는 해마다 내역을 보고했고 감독 혼자 처리할 수 없었다. 투명한 재정은 신앙의 문제다(4.4.5-7).
💬 회사에서 직함만 있고 일은 안 하는 상사, 교회에도 있다면? → 칼빈: 직분은 이름이 아니라 일이다. 설교하지 않는 감독, 양을 보지 않는 목자는 그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다(4.5.11, 4.7.23).
💬 리더의 잘못을 지적해도 될까, 반항일까? → 칼빈: 이레나이우스는 로마 주교를 꾸짖었고, 바울은 베드로를 면전에서 책망했다.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않는 지도자는 성경에 없다(4.6.7, 4.7.7).
💬 예배당 인테리어와 이웃 돕기 중 무엇이 먼저일까? → 칼빈: 기근 때 교회 그릇을 녹여 사람을 살린 감독들을 본으로 든다. 산 사람이 진짜 '성전의 장식'이다(4.4.8, 4.5.18).

5. 이 편의 결론

이 편이 남기는 것
  • 고대 교회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성경의 직분 구조와 교인 동의 원칙, 가난한 이 중심의 재정을 지키려 애썼다.
  • 칼빈 당시 로마 교회는 선출, 임직, 재정, 집사직이 모두 이름만 남았다. 문제는 개인의 악행보다 제도 자체에 있었다.
  • 교회의 유일한 머리와 터는 그리스도이시다. 베드로는 사도들의 동료였고, 열쇠권은 모든 사도의 복음 사역에 주어졌다.
  • 역사적으로도 로마의 수위권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존중에서 시작해 위조 문서와 정치권력과의 결탁으로 커졌다.
  • 직분은 자리나 계보가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고, 성례를 행하고, 돌보는 실제 일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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