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제2권 구속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2권 2편 자유의지를 잃은 사람

존 칼빈 『기독교강요』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 제2권 2장 1-27절 (존 칼빈 『기독교강요』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상, 311-347쪽 / 발췌는 1절 끝부분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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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나한테 착하게 살 힘, 하나님을 알아볼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긴 한 걸까?

칼빈은 먼저 철학자들과 교부들이 '자유의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정리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쉬워서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2-9절). 이어서 자기를 추켜세우는 생각은 뱀의 속삭임이고, 참된 겸손은 자기 힘을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기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10-11절). 그다음 "자연적 은사는 부패했고 초자연적 은사는 빼앗겼다"는 원리를 세웁니다. 이 원리에 따라 이성이 이 땅의 일(정치·기술·학문)에서는 여전히 빛나는 재능이며 그 재능은 성령의 선물이라고 인정합니다(12-17절).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일, 구원을 아는 일, 바르게 사는 법을 아는 일에서는 성령이 비춰 주지 않으면 사람은 눈먼 상태라고 성경으로 증명합니다(18-25절). 마지막으로 의지도 스스로는 선을 바랄 수 없고, 선을 향한 첫걸음부터 하나님이 하신다는 결론에 이릅니다(26-27절).

1. 절별 정리

1. 서언: 이 논의가 왜 필요한가

발췌는 1절의 끝부분만 담고 있습니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주 인용한 말을 소개합니다. 자유의지는 그것을 지키겠다는 사람들 손에서 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짓밟힌다는 말입니다. 칼빈이 서론을 길게 쓴 이유도 밝힙니다. 칼빈의 주장은 사람의 능력을 뿌리부터 뽑아야 사람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장을 위험하다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칼빈은 이 논의가 믿음에 가장 절실하고 가장 유익하다고 답합니다. 10절에서 칼빈은 이 서두의 내용을 다시 꺼냅니다. 자기의 가난과 부끄러움을 깨닫고 무너진 사람이 자기를 아는 지식에서 가장 앞선 사람이라는 내용입니다.

  • 자유의지 옹호가 오히려 그것을 망친다
  • 사람 능력이 꺾여야 하나님 능력이 선다
  • 위험해 보여도 믿음에 꼭 필요한 논의
  • 자기 가난을 아는 것이 자기 지식의 진보

자유 의지에 대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사고에 대한 비판적 논의. 2-9

2. 이성에 관한 철학자들의 사고

칼빈은 앞에서(1권 15장) 영혼의 기능을 지성과 의지로 나누었고, 이제 두 기능이 얼마나 일하는지 살펴봅니다. 먼저 철학자들의 생각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지성 안에 있는 이성이 등불처럼 판단을 비추고 여왕처럼 의지를 다스린다고 봅니다. 반대로 감각은 둔하고 땅에 붙어 있어서 바른 분별을 못 한다고 여깁니다. 욕구(의지)는 이성을 따르면 덕으로 가고, 감각에 넘어가면 정욕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결국 철학자들은 의지를 이성과 감각 사이에 두고, 의지가 스스로 어느 쪽이든 고를 자유가 있다고 봅니다.

  • 철학: 이성은 등불이자 여왕
  • 감각은 저급해 사람을 오류로 끈다
  • 감각도 이성의 채찍으로 길들일 수 있다
  • 의지는 이성·감각 중간, 선택이 자유

3. 철학자들은 의지의 자유를 주장함

철학자들도 이성이 늘 이기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압니다. 플라톤은 사람이 끈에 묶인 듯 이리저리 끌려다닌다고 했습니다. 키케로는 자연이 준 희미한 불꽃마저 나쁜 생각과 습관 때문에 곧 꺼진다고 했습니다. 정념을 사나운 말에, 이성을 마차에서 떨어진 마부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덕과 악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식 논리로는 할 수 있으면 안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 있으면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키케로가 코타의 입을 빌려 한 말도 있습니다. 사는 것은 신의 선물이지만 잘 사는 것은 우리 공로이므로 신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칼빈은 철학자들의 결론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이성은 바른 삶의 충분한 안내자이고, 의지는 자유로워서 막힘없이 이성을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철학자도 이성이 자주 진다고 인정
  • 그래도 덕과 악은 내 선택이라고 봄
  • 덕은 내 공로, 신에게 감사 불필요(코타)
  • 이성은 충분한 안내자, 의지는 자유

4. 교부들의 애매한 가르침들, 그리고 "자유의지"라는 용어의 문제

교회의 저술가들은 모두 죄 때문에 이성이 상하고 의지가 욕심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철학자 쪽으로 너무 기울었습니다. 칼빈은 초기 교부들이 인간 능력을 높인 이유를 둘로 봅니다. 하나는 무능을 솔직히 말하면 논쟁 상대인 철학자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봐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뜩이나 게으른 육체에 핑계를 주지 않으려고 해서입니다. 크리소스톰(4세기 그리스어권 교부)은 "우리 몫을 내놓으면 하나님이 나머지를 주신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히에로니무스(라틴어 성경 번역자로 알려진 4-5세기 교부)는 "시작은 우리 일, 완성은 하나님 일"이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뺀 고대 교부들이 이 문제에서 흔들리고 모순되어 확실한 근거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후대 저술가들은 더 나빠져서, 감각만 부패했고 이성은 멀쩡하며 의지도 대체로 성하다고까지 주장했습니다. 그다음 칼빈은 '자유의지'를 정의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오리게네스는 선악을 가리는 이성과 고르는 의지의 기능이라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혜가 있으면 선을, 은혜가 없으면 악을 고르는 기능이라고 했습니다. 베르나르와 안셀무스의 정의는 오히려 모호하고, 스콜라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유의지를 '선택의 능력'이라 부르며, 지성과 욕구가 섞이되 욕구 쪽으로 기운다고 했습니다.

  • 교부들, 철학자 비웃음과 게으름을 걱정
  • 크리소스톰: 우리 몫 + 하나님의 나머지
  • 아우구스티누스 외 교부는 흔들리고 모순
  • 후대: 감각만 부패, 이성은 멀쩡하다고 함
  • 정의는 많지만 결국 '이성+의지'의 기능

5. "자유"와 "의지"를 각각 여러 가지로 구분한 교부들의 견해들

교부들은 대체로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중립적인 일만 자유의지의 영역에 넣었습니다. 참된 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영적 거듭남에서 온다고 보았습니다. 『이방인의 부르심』의 저자는 의지를 감각적·정신적·영적 의지로 나눕니다. 앞의 둘은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고 마지막은 성령의 일이라고 합니다. 칼빈은 이 구분이 맞는지는 뒤에서 다루겠다고 미룹니다. 스콜라 신학자들은 자유를 세 가지로 나눕니다. 필연으로부터의 자유는 본성에 속해 사라지지 않고, 죄로부터의 자유와 비참으로부터의 자유는 죄 때문에 잃었다고 합니다. 칼빈은 이 구분을 받아들이되 '필연'과 '강제'를 섞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입니다. 두 개념의 차이는 다른 곳(2권 3장 5절)에서 다루겠다고 합니다.

  • 교부: 자유의지는 하나님 나라 밖의 일만
  • 참된 의는 특별 은혜와 중생에서 온다
  • 스콜라: 필연·죄·비참으로부터의 자유
  • 칼빈: 수용하되 필연≠강제 조건을 붙임

6. 두 종류의 은혜에 대한 논의

여기까지 오면 택하신 이들이 받는 특별 은혜 없이는 자유의지만으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점에 이견이 없습니다.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뉜다는 '광신자들'의 주장은 상대하지 않습니다. 남은 질문은 사람에게 선을 향한 능력이 아주 조금이라도, 은혜의 도움을 받으면 제 몫을 할 만큼은 남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페트루스 롬바르두스(『명제집』 저자)는 두 은혜로 답합니다. 하나는 선을 원하게 만드는 '역사하는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선한 의지를 돕는 '협력하는 은혜'입니다. 칼빈은 두 군데에 반대합니다. 첫째, 이 설명은 사람이 본성으로 효과는 없어도 선을 조금은 추구한다는 뜻을 깔고 있습니다. 베르나르도 같은 뜻을 비칩니다. 둘째, '협력'이라는 말은 은혜를 효과 있게 하느냐 무효로 만드느냐가 우리에게 달렸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롬바르두스는 자유의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선과 악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죄의 종이라도 강제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 특별 은혜 없이 자유의지만으론 선 불가
  • 롬바르두스: 역사하는 은혜, 협력하는 은혜
  • 반대1: 본성에 선의 씨앗이 있다는 암시
  • 반대2: 은혜의 효과가 내 선택에 달린 꼴
  • 롬바르두스의 자유 = 강제당하지 않음

7. "자유 의지"라는 용어의 부적절성

롬바르두스의 정의대로라면 '자유'는 결국 억지가 아니라 스스로 악을 행한다는 뜻일 뿐입니다. 칼빈은 그 내용 자체는 맞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것에 이렇게 거창한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고 비꼽니다. 강요받지는 않지만 의지가 죄에 묶인 '자원하는 종'을 두고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칼빈은 말싸움을 싫어하지만, 엉뚱한 뜻을 품고 오류를 끌어들이는 용어는 피하기로 합니다. '자유의지'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내가 내 지성과 의지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긴 설교에서 진리를 얻기보다 한마디 말에서 오류를 얻기가 더 쉽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교부들의 설명은 건너뛰고 단어 뜻만 붙잡아 치명적인 자기 확신에 빠졌습니다.

  • 남은 자유는 '스스로 죄짓는 자유'뿐
  • 하찮은 것에 거창한 이름을 붙인 셈
  • 사람은 자원하는 종, 이것을 자유라 할까
  • 듣는 순간 '내가 주인'이라고 오해된다
  • 한마디 말이 긴 설명보다 오류를 잘 퍼뜨림

8. "자유의지"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말을 썼지만 그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는 의지를 '노예'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의지의 자유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화를 낸 적도 있는데, 그 이유는 의지를 부정하며 죄를 변명하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이 없으면 의지는 정욕에 사로잡혀 자유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풀어 주지 않은 것은 자유로울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를 얻기 전에 자유의지를 자랑하고, 자유를 얻은 뒤에는 제 힘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이때 고린도후서 3:17과 요한복음 15:5를 듭니다. 또 의지가 자유롭긴 한데 '의로부터' 자유롭고 죄에는 종이라며 용어를 비꼬기도 합니다. 칼빈은 나쁜 뜻 없이 순수하게 쓸 수 있다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험이 크니 교회를 위해 없애는 편이 낫다고 보고, 자신은 쓰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지를 '노예'라 부름
  • 의지를 인정한 건 죄의 변명을 막으려고
  • 성령 없으면 의지는 정욕에 붙잡힘
  • 의지는 '의로부터만' 자유로울 뿐
  • 칼빈: 용어는 버리는 게 교회에 유익
고린도후서 3:17참 자유는 주의 영이 계신 곳에만 있다(아우구스티누스의 인용)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요한복음 15:5자유를 얻은 뒤에도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아우구스티누스의 인용)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은 창조함받을 때에 자유 의지라는 위대한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죄를 지음으로써 그것들을 잃고 말았다.칼빈, 『기독교강요』

9. 교부들에게서 듣는 진리의 목소리

칼빈은 교부들을 무시한다는 오해를 막으려고 이 절을 씁니다. 교부들의 말에 기대면 확신 없이 헤맨다는 것이 조언의 뜻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교부들이 모호하긴 해도 결국 공로를 성령께 돌렸다고 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주 인용한 키프리아누스의 말이 그 예입니다. 아무것도 우리 것이 아니니 아무것도 자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유케리우스(5세기 리옹의 감독)는 생명나무를 그리스도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의지의 결정'으로 풀었습니다. 크리소스톰도 사람은 본성적으로 죄인일 뿐 아니라 통째로 죄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그렇다면 선행의 공로를 하나님과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정리합니다. 교부들의 목적은 사람이 자기 덕을 믿지 말고 모든 힘을 하나님께 두게 하는 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 교부를 버린 게 아니라 기대지 말라는 뜻
  • 교부들의 목적은 결국 공로를 성령께
  • 키프리아누스: 우리 것은 없으니 자랑 말라
  • 크리소스톰: 사람은 통째로 죄
  • 그러면 하나님과 공로를 나눌 수 없다
창세기 2:9아우구스티누스·유케리우스가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를 비유로 푼 본문(교부의 해석 대상)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자기를 부추기는 모든 사고를 버려야 함. 10-11

10. 사람의 능력을 추켜세우는 사고를 경계함

칼빈은 서두의 말을 다시 꺼냅니다. 자기의 가난과 벌거벗음을 깨닫고 무너진 사람이 자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부족한 것을 하나님 안에서 되찾는다는 것을 배운다면,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보아도 위험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주장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신성모독이 됩니다. 내 것을 하나님이 아니라 나에게서 찾으라는 생각은 첫 사람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라"고 속삭인 사기꾼에게서 왔습니다. 자기를 추켜세우는 말이 마귀의 말이니, 원수에게 조언을 구할 생각이 아니면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칼빈은 사람을 낮추는 성경 말씀과, 자기 가난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약속들을 이어서 듭니다.

  • 자기 가난을 아는 사람이 가장 진보한다
  • 하나님 안에서 되찾으면 낮아져도 안전
  • 제 몫 이상 주장 = 하나님 영광 도둑질
  • 자기를 추켜세우는 말은 뱀의 속삭임
  • 목마른 자만 물을 얻는다
창세기 3:5자기를 높이라는 생각의 출처가 사탄의 유혹임을 보여 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예레미야 17:5사람과 육신의 힘을 믿는 자는 저주받는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시편 147:10-11하나님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10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1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이사야 40:28-31장정도 넘어지지만 여호와를 바라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
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야고보서 4:6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베드로전서 5:5위와 같은 말씀(겸손한 자에게 은혜)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잠언 3:34위 두 구절의 구약 배경(참조)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이사야 44:3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겠다는 약속, 결핍을 아는 자가 받는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이사야 55:1목마른 자는 다 물로 나아오라, 같은 원리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사야 60:19해와 달처럼 귀한 것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만 빛으로 삼으라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11. 참된 겸손은 오직 하나님만을 높임

크리소스톰은 우리 철학의 기초가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더 나아가, 기독교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늘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한 수사학자가 웅변의 원칙을 세 번 물었을 때 세 번 모두 '전달'이라고 답한 이야기를 빌린 말입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겸손은 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랑만 참는 것이 아닙니다. 낮아지는 것 말고는 피할 곳이 없다고 진심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은 혼자 두면 사탄이고, 죄 말고는 제 것이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칼빈은 이것이 하나님과 권리 다툼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이해도 안 되는데 억지로 자신을 내려놓으라는 뜻도, 있는 능력을 못 본 척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사람을 눈멀게 하는 자기 사랑과 야망이라는 병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성경이라는 거울에 비춰 볼 때만 자기 모습을 바로 압니다.

  • 신앙의 첫째·둘째·셋째도 겸손
  • 겸손 = 피할 곳이 낮아짐뿐임을 아는 것
  • 우리의 낮아짐이 하나님의 높아지심
  • 있는 능력을 억지로 부정하라는 뜻은 아님
  • 버릴 것은 자기 사랑과 야망이라는 병
갈라디아서 6:3아무것도 아닌데 된 줄 아는 자기기만(참조)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야고보서 1:22-25말씀은 자기를 비추는 거울(참조)
22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사람은 성경이라는 신실한 거울에 비쳐보아야만 올바로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이다칼빈, 『기독교강요』

인간 속에 남아 있는 자연적 은사들. 12-17

12. 초자연적 은사들과 자연적 은사들의 현 상태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나온 유명한 원리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자연적 은사는 부패했고 초자연적 은사는 빼앗겼다는 원리입니다. 빼앗긴 것은 하늘의 생명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빛과 의, 곧 믿음·하나님 사랑·이웃 사랑·거룩을 향한 열심입니다. 이것들은 본성을 넘어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회복하십니다. 부패한 것은 건전한 지성과 바른 마음입니다. 이성은 사람 본성에서 떼어 낼 수 없어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약해지고 일그러졌을 뿐입니다. 요한복음 1:5가 이 두 면을 함께 보여 줍니다. 희미한 빛이 남아 사람이 짐승과 다르지만, 그 빛은 어둠에 덮여 제구실을 못 합니다. 의지도 남아 있지만 악한 정욕에 사로잡혀 바른 쪽으로 힘을 못 냅니다. 지성에는 진리를 찾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갈망은 허무에 빠져 출발선에서 시들고, 쓸데없는 호기심에 매달리느라 꼭 알아야 할 것은 소홀히 합니다.

  • 초자연적 은사(믿음·사랑·거룩)는 상실
  • 자연적 은사(이성·의지)는 남았으나 부패
  • 이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은 틀림
  • 진리를 찾는 갈망은 있지만 금세 길을 잃음
  • 헛된 것엔 호기심, 중요한 것엔 무관심
요한복음 1:5빛이 아직 비친다(이성의 흔적)와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무력함)를 함께 보여 줌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전도서 1:2사람이 지혜라 여기는 열심이 헛되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14위와 같은 결론(바람을 잡는 것)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2:11위와 같은 결론(해 아래 무익함)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자연적 은사들은 죄로 말미암아 사람에게서 부패하였으나,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람에게서 빼앗긴 바 되었다.칼빈, 『기독교강요』

13. 이 땅의 것들을 이해하는 지성

지성의 노력이 늘 헛되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 땅의 일에서는 꽤 잘 해냅니다. 칼빈은 여기서 구분 하나를 세웁니다. '이 땅의 것'은 하나님과 그 나라, 참된 의와 상관없이 현재 삶에 속한 일로, 정치·경제·기술·예술 같은 것입니다. '하늘의 것'은 하나님과 그 뜻, 그리고 그 뜻에 삶을 맞추는 법을 아는 지식입니다. 사람은 본래 사회적 존재여서 모든 사람 마음에 공평한 시민 질서에 대한 생각이 심겨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사회에는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강도처럼 법을 뒤엎으려는 사람이나 남들이 금한 것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도 법이 선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욕심 때문에 미워하는 것입니다. 세부 조항에서는 다투어도 공정이라는 큰 생각에는 모두 동의합니다. 이것은 이성이 비틀거린다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누구도 이성의 빛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 이 땅의 것: 정치·경제·기술·예술
  • 하늘의 것: 하나님과 그 뜻을 아는 지식
  • 누구에게나 시민 질서의 씨앗이 있다
  • 법을 미워하는 자도 욕심 때문에 미워함
  • 세부는 다퉈도 '공정'에는 모두 동의

14. 학예와 공예에 나타나는 자연적 은사

학예(문법·논리·수학처럼 생각하는 학문)와 공예(손으로 하는 기술)에도 사람의 재능이 드러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에 맞지는 않지만, 어느 한 분야에도 재능이 없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배울 뿐 아니라 새것을 만들고 앞사람의 것을 다듬기까지 합니다. 플라톤은 이런 이해력이 전생에 알던 것을 떠올리는 '회상'일 뿐이라고 했는데, 칼빈은 틀렸다고 봅니다. 이해력의 출발점은 사람 본성 안에 심겨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보편적 능력에서 각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알아봐야 합니다. 칼빈은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보면 하나님의 빛이 없을 때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탁월한 발명이나 체계화는 소수의 몫이지만,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를 가리지 않고 주어지므로 이것도 자연적 은사입니다.

  • 거의 모든 사람에게 어떤 재능이 있다
  • 배우고, 만들고, 다듬는 능력
  • 플라톤의 '회상설'은 틀렸다
  • 재능은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
  • 신자·불신자 구분 없이 주어진 은사

15. 타락 이후에도 인간 본성 속에 남아 있는 탁월한 은사들

세속 저자들의 글에서 진리의 빛을 보면, 타락한 지성도 하나님의 은사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성령이 진리의 유일한 근원이라면 진리가 어디서 나오든 거부하거나 멸시하면 안 됩니다. 성령의 선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성령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고대 입법자, 자연을 관찰한 철학자, 수사학자, 의학자, 수학자를 차례로 들며 묻습니다. 이들을 눈멀었다거나 미쳤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옛 책을 읽으면 감탄이 나오는데, 감탄하면서 그것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입니다. 이교도 시인들조차 학문을 신들의 선물이라 고백했습니다. 성경이 '육에 속한 사람'이라 부르는 이들도 낮은 일에서는 날카롭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선을 빼앗긴 본성에도 많은 은사를 남겨 두셨습니다.

  • 성령은 모든 진리의 유일한 근원
  • 불신자의 진리를 멸시 = 성령을 멸시
  • 법·철학·의학·수학은 감탄할 선물
  • 감탄하며 출처를 부정하면 배은망덕
  • 육에 속한 사람도 낮은 일엔 예리하다
고린도전서 2:14'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영적 일엔 무지해도 세상 일엔 재능 있는 사람을 가리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6. 인간의 재능은 성령의 은사임

하나님은 인류 공동의 유익을 위해 원하시는 사람에게 성령의 탁월한 은사를 주십니다. 성막을 지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기술이 그 예입니다. 그렇다면 불경건한 자가 성령과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칼빈은 성령이 신자 안에만 거하신다는 말씀은 우리를 성전으로 구별하는 '거룩하게 하시는 영'을 가리킨다고 답합니다. 같은 성령이 만물을 채우고 움직이고 생기를 주시며, 각 피조물을 그 본성대로 유지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불신자의 학문으로 우리를 도우려 하시면 기꺼이 받아 써야 하고, 소홀히 하면 게으름의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런 재능이 있다고 복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진리의 단단한 기초 위에 서 있지 않아서 하나님 앞에서는 덧없기 때문입니다. 롬바르두스와 스콜라 학자들도 같은 취지에 동의합니다. 은사 자체는 하나님에게서 와서 더럽지 않지만, 부패한 사람에게서는 순결하지 않아 자랑거리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 브살렐의 기술도 성령이 주신 것
  • 신자 안의 성령 = 거룩하게 하시는 영
  • 같은 성령이 만물을 붙들고 움직이심
  • 불신자의 학문도 감사히 받아 쓰라
  • 재능이 있다고 복 받은 사람은 아니다
출애굽기 31:2-11성막 장인 브살렐·오홀리압의 지혜를 성령이 주셨다(원문 끝 절은 OCR 손상, 본문 내용으로 복원)
2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3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4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5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6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7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
출애굽기 35:30-35같은 내용의 반복, 기술도 성령의 은사
30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1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2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33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34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35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9성령이 신자 안에 거하신다, 이는 거룩하게 하시는 영의 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3:16신자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골로새서 2:8'세상의 초등학문', 이 땅의 학문은 영원한 복의 기준이 아님(참조)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17. 자연적 은사에 관한 소결론

칼빈은 앞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짐승이 무생물과 달리 감각이 있듯, 사람은 짐승과 달리 이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붙들지 않으셨다면 타락하자마자 본성 전체가 무너졌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예리함·판단력·재치가 다릅니다. 이 차이는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에게 주신 특별 은혜이므로 누구도 자기 것이라 주장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소명에 맞게 특별한 활동도 일으키십니다. 사사기와 사울, 다윗의 이야기에서 여호와의 영이 다스릴 사람에게 임합니다. 호메로스도 뛰어난 능력은 신이 날마다 이끌어서라고 했습니다. 재능 있던 사람이 갑자기 둔해지는 일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 손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모든 다양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이 남아 사람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합니다.

  • 이성은 사람의 고유한 표지
  • 하나님이 붙드셔서 본성이 무너지지 않음
  • 재능 차이 = 하나님의 특별 은혜
  • 소명에 따라 성령이 특별한 일을 일으키심
  • 하나님 형상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사기 6:34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함, 소명에 따른 특별한 능력(참조)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사무엘상 10:26하나님께 마음이 감동된 사람들이 사울을 따름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사무엘상 10:6여호와의 영이 임해 사울이 새 사람이 되리라는 예언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사무엘상 16:13다윗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됨, 통치 전체에 영향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욥기 12:24하나님이 우두머리의 총명을 빼앗으실 수 있다, 재능은 하나님 손에
만민의 우두머리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시며
시편 107:40위와 같은 내용(참조)
여호와께서 고관들에게는 능욕을 쏟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시나

중생하지 않고서는 영적인 분별은 불가능함. 18-21

18. 인간의 이성의 한계

이제 하나님 나라와 영적 분별에서 이성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봅니다. 영적 분별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구원이 걸린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사랑을 아는 지식,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삶을 다스리는 법을 아는 지식입니다. 앞의 두 가지, 특히 둘째에서는 가장 위대한 천재도 두더지보다 눈이 어둡습니다. 철학자들에게도 하나님에 관한 좋은 문장이 있지만 늘 어지러운 상상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무지를 핑계 대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을 조금 맛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길에서 번개를 만난 나그네 같습니다. 순간 들판이 다 보이지만 한 걸음도 떼기 전에 다시 캄캄해집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비로우시다는 확신을 느낀 적이 없고, 그 진리를 목표로 삼지도 않습니다.

  • 영적 분별 3가지: 하나님·구원·삶의 법
  • 앞의 둘에선 천재도 두더지보다 어둡다
  • 철학자의 좋은 문장엔 망상이 섞인다
  • 번개 맞은 밤길: 보여도 걸을 수 없다
  •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신이 없다

19. 영적 눈먼 상태에 대한 요한복음의 가르침

우리는 자기 통찰력을 너무 믿어서 하나님의 일에 눈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성보다 성경으로 증명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요한복음 1:4-5에 따르면 하나님의 빛이 비치므로 사람 영혼에 작은 불꽃은 늘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성령이 사람을 '어둠'이라 부르신 것은 영적 분별력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 혈통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아본 것도 아버지의 특별한 계시 덕분이었습니다.

  • 우리는 눈멀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한다
  • 그래서 이성보다 성경으로 증명한다
  • 작은 불꽃은 있어도 하나님은 못 알아봄
  • 성경은 사람을 '어둠'이라 부른다
  • 베드로의 고백도 아버지의 계시 덕분
요한복음 1:4-5빛은 비치나 어둠(사람)이 깨닫지 못한다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13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결과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마태복음 16:17베드로의 고백은 혈육이 아니라 아버지의 계시로 된 것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20. 영적인 분별에는 성령의 조명하심이 필수임

우리 본성에는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을 통해 택하신 자에게 주시는 것이 모두 없습니다. 칼빈은 이 점을 성경 구절을 연달아 들어 확인합니다. 시편 36:9는 주의 빛 안에서만 빛을 본다고 하고, 고린도전서 12:3은 성령 없이는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듣자,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고 탄식합니다. 칼빈은 이 말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영적 조명에 관한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모세는 기적을 눈으로 보고도 깨닫는 마음을 받지 못했다고 백성을 책망하는데, 칼빈은 이것을 하나님의 일 앞에서 사람이 '나무 막대기' 같다는 뜻으로 풉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이끌지 않으면 아무도 오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형상이시고 사명을 신실하게 다하셨습니다. 그래도 속의 스승이신 성령이 길을 보여 주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이 성령의 일을 어리석게 여기며 알 수도 없다고 결론짓습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 일이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 주의 빛 안에서만 빛을 본다
  • 성령 없이는 '예수는 주'라 못 한다
  • 기적을 봐도 깨닫는 마음은 선물
  • 아버지가 이끄셔야 그리스도께 온다
  • 육에 속한 사람은 애써도 못 깨닫는다
디도서 3:5'중생의 영'(성령)이 택하신 자에게 주시는 것(참조)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시편 36:9생명의 원천은 주께 있고 주의 빛 안에서만 빛을 본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고린도전서 12:3성령으로만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27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영적 조명)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신명기 29:3-4기적을 보았어도 깨닫는 마음은 여호와가 주셔야 한다
3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4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예레미야 24:7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주시겠다는 약속, 원래는 없다는 뜻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요한복음 6:44아버지가 이끄셔야 그리스도께 온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골로새서 1:15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보이는데도 우리가 못 본다(참조)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히브리서 1:3그리스도 안에 아버지 영광의 광채가 있다(참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요한복음 1:18그리스도가 아버지를 나타내셨다(참조)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6:45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만 온다, 성령이 듣는 귀를 주심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사야 54:7하나님이 구원으로 모으실 백성(참조)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이사야 54:13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택하신 자에게 주시는 은혜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고린도전서 1:18 이하인간 지혜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바울의 논증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고린도전서 2:14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도 알지도 못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9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눈·귀·마음을 넘어선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1:20하나님이 세상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성령의 조명하심과 말씀

바울은 사람에게 없다고 한 그 지혜를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 구합니다. 마음의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원래 눈멀어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 부르심의 소망조차 스스로는 모른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하나님이 말씀의 가르침으로 길을 안내해 무지를 고쳐 주신다고 주장합니다. 외부의 가르침만 있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다윗은 지혜가 다 담긴 율법을 갖고도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말씀은 해처럼 떠오르지만 빛들의 아버지가 볼 눈을 주셔야 유익합니다. 사도들도 최고의 스승께 배웠지만, 성령이 그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주시도록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그 이상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가 눈먼 줄도 모르니 가장 눈먼 사람입니다.

  • 바울은 깨닫는 눈을 기도로 구했다
  • 펠라기우스파: 말씀의 가르침이면 충분
  • 칼빈: 율법 있던 다윗도 눈 열기를 구함
  • 사도들도 배운 뒤 성령을 기다렸다
  • 눈먼 줄 모르는 사람이 가장 눈먼 사람
에베소서 1:17지혜와 계시의 영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서 1:18마음의 눈을 밝혀야 부르심의 소망을 안다, 원래 눈멀었다는 증거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시편 119:18율법을 가진 다윗도 눈을 열어 달라고 구했다(펠라기우스 반박)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야고보서 1:17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 볼 눈도 그분이 주신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요한복음 14:26성령이 배운 것을 생각나게 하고 가르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사도행전 1:4사도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 하심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는 인간의 이성에 성령의 조명하심이 있어야 함. 22-25

22. 본성적으로 심겨진 법이 유죄를 증거함

영적 분별의 셋째, 곧 바르게 사는 법을 아는 지식을 봅니다. 이 부분에서는 지성이 조금 더 나아 보입니다. 바울도 율법 없는 이방인이 양심으로 율법의 일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성에 새겨진 법만으로 충분히 바르게 살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칼빈은 바울이 이 말을 한 목적을 앞뒤 문맥으로 봅니다. 율법 없이 죄지은 자는 율법 없이 망한다는 말 바로 뒤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이방인이 심판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근거로 양심을 든 것입니다. 칼빈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본성의 법은 옳고 그름을 충분히 가려 주어 모른다는 핑계를 막고, 스스로 죄책을 깨닫게 하는 양심의 판단입니다. 플라톤은 사람이 무지 때문에만 죄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양심을 피하려 해도 계속 끌려가고 싫어도 눈이 뜨이므로, 무지 때문만이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 이방인에게도 마음에 새긴 법이 있다
  • 그 목적은 '핑계 못 하게' 하는 것
  • 본성의 법 = 죄책을 깨닫게 하는 양심
  • 플라톤: 죄는 무지 때문, 이는 틀렸다
  • 죄인은 양심을 피해도 끌려다닌다
로마서 2:14-15이방인도 마음에 새긴 율법과 양심이 있다
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서 2:12앞 문맥, 율법 없이 죄지은 자도 망한다, 양심은 정죄의 근거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23. 테미스티우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

테미스티우스(4세기 무렵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는 더 정확하게 봅니다. 지성은 일반 원리에서는 잘 속지 않지만, 원리를 내 구체적 상황에 적용할 때 속는다는 것입니다. 살인이 악이라는 데는 다 동의하지만, 원수를 죽이려는 사람은 그 살인을 옳다고 여깁니다. 간음한 사람도 간음은 악하다면서 자기 경우는 몰래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이 법칙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악인 줄 알면서 일부러 택하는 경우입니다. "더 좋은 것이 보이고 그게 더 좋다는 것도 알지만 나는 더 나쁜 쪽을 택한다"는 시구(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구절로 알려짐)가 그 심리를 보여 줍니다. 칼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을 예리하다고 칭찬합니다. 무절제는 감정이 판단을 흐려 자기 악행을 못 보다가 감정이 가라앉으면 후회하는 상태입니다. 방종은 죄를 알아도 습관처럼 악을 고집하는 상태입니다.

  • 원리는 알지만 내 상황에서 속는다
  • 살인·간음도 '내 경우'만 예외로 둔다
  • 알면서 일부러 악을 택하기도 한다
  • 무절제: 감정에 눈멀었다가 후회
  • 방종: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고집

24. 인간의 이성과 십계명

선악을 가리는 보편적 판단이 있다는 말을 그것이 온전하다는 뜻으로 들으면 안 됩니다. 그 능력은 핑계를 막으려고 주신 것이지, 매번 옳은 판단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완전한 기준인 하나님의 율법에 이성을 대 보면 얼마나 눈멀었는지 드러납니다. 십계명의 첫째 돌판(하나님 사랑)에서 이성은 거의 깜깜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참된 예배라고 본성 스스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은 알면서도 곧 거짓 예배 방법을 지어냅니다. 둘째 돌판(이웃 사랑)은 사회 유지와 가까워서 조금 더 압니다. 그래도 결함이 있습니다. 부당한 지배를 참는 것은 비굴하다, 억울한 일에 복수하는 것은 악이 아니다라는 것이 이성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교만을 꾸짖으시고 사람들이 수치로 여기는 인내를 명하십니다. 또 사람은 마음속 정욕을 병으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철학자들도 겉으로 드러난 악만 악으로 봅니다.

  • 양심의 판단은 핑계 막는 용도일 뿐
  • 첫째 돌판: 참된 예배를 스스로 모른다
  • 둘째 돌판: 조금 알지만 결함이 있다
  • 이성은 복수·저항을 당연시, 주님은 인내
  • 마음속 정욕은 죄로 여기지도 않는다
출애굽기 20:3-17십계명, 이성을 재는 완전한 기준(첫째 돌판의 내용)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
출애굽기 20:12-17둘째 돌판, 이성이 비교적 알지만 여전히 결함이 있는 영역
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살인하지 말라 14간음하지 말라 15도둑질하지 말라 16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25. 언제나 성령의 조명하심이 필요함

칼빈은 모든 죄를 무지 탓으로 돌린 플라톤을 반박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쪽 극단도 거부합니다. 모든 죄는 계획된 악의에서 나온다는 견해입니다. 우리는 선한 뜻을 품고도 넘어지는 일을 자주 겪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속임수에 넘어가고 장애에 부딪혀 우리를 바로 이끌지 못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무슨 일이든 스스로 생각할 능력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의지나 감정이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 자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이성의 날카로움을 자랑하는 우리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성령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에서 깨달음을 달라는 기도를 거의 열 번이나 되풀이합니다. 바울은 교회 전체를 위해 지혜를 구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비유를 듭니다. 몸의 눈은 스스로 떠서 빛을 보지만, 마음의 눈은 주님이 열어 주셔야 뜬다는 것입니다. 조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미 거듭나 성숙한 다윗도 계명에서 떠나지 않게 해 달라고 매 순간 구했습니다.

  • 모든 죄가 '계획된 악의'인 것도 아니다
  • 선한 뜻으로도 넘어지는 게 사람
  • 스스로는 바른 생각조차 못 한다
  • 마음의 눈은 주님이 열어 주셔야 뜬다
  • 조명은 한 번이 아니라 평생 계속된다
고린도후서 3:5무엇이든 스스로 생각할 만족한 능력이 없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린도전서 3:20주께서 지혜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시편 94:11위 구절의 구약 출처(참조)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창세기 6:5마음의 계획이 항상 악할 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시편 119:34계명을 배울 깨달음을 달라는 다윗의 기도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시편 119:12, 18, 19, 26, 33, 64, 68, 73, 124, 125, 135, 169같은 간구를 거듭함, 절박함을 보여 줌
시편 119:12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시편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편 119: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시편 119:26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시편 119:33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시편 119: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편 119: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편 119: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편 119:124 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내게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
시편 119:125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시편 119:135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편 119: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골로새서 1:9-12바울이 교회를 위해 지혜와 총명을 구함, 사람 능력이 아니라는 증거
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9같은 취지의 기도(참조)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시편 119:10성숙한 신자도 계속 붙들어 달라고 구함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시편 51:10잃었던 정직한 영의 회복도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사람은 선한 것에 대한 의지를 가질 수가 없음. 26-27

26. 좋은 것을 향한 본능적인 이끌림은 의지의 자유와는 관계없음

이제 자유 문제와 직접 연결된 의지를 봅니다. 앞에서 살폈듯 선택하는 능력은 지성보다 의지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자들은 만물이 본능적으로 선을 추구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지가 바르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이 욕구는 판단이 아니라 본성의 끌림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스콜라 학자들도 자유의지는 이성이 여러 가능성을 따져 볼 때만 작동한다고 인정합니다.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은 짐승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오히려 짐승처럼 판단 없이 끌림을 따라갑니다. 칼빈은 두 용어를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욕구'는 의지의 결단이 아니라 본능적 끌림이고, '선'은 덕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상태입니다. 영원한 복을 싫어할 사람은 없지만 성령 없이는 아무도 그것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돌과 금속이 완성된 상태로 향하는 성질이 있다고 해서 자유의지가 있는 게 아니듯, 평안을 바라는 마음도 자유의지의 증거가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바른 이성으로 선을 정한 뒤 그것을 택하고 추구하느냐입니다.

  • '좋은 것을 원함' ≠ 자유의지
  • 그 끌림은 짐승에게도 있다
  • 여기서 '선'은 덕이 아니라 '내게 좋음'
  • 영원한 복을 성령 없이 사모하진 않는다
  • 질문은 '바른 선을 택하고 추구하느냐'

27.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선한 것을 사모할 수 없음

어떤 이들은 의지가 효력 있게 되는 것은 은혜 덕분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영혼에 선을 바라는 미약한 기능이 원래 있다고 암시합니다. 스콜라 학자들은 오리게네스 등에게서 이 견해를 빌려 왔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을 거듭나지 않은 '순수 본성 상태'의 사람에게 적용합니다. 칼빈은 이것이 바울의 논지를 비튼 해석이라고 봅니다. 그 본문은 신자가 늘 겪는 육과 영의 싸움을 말하며, 영은 본성이 아니라 거듭남에서 옵니다. 바울이 "내 속 곧 내 육신에"라고 범위를 좁힌 것,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한 것이 거듭난 사람의 말이라는 증거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처음에는 이 구절을 본성에 관한 것으로 보았다가 나중에 철회했습니다. 만일 은혜 이전에 선을 향한 충동이 있다면 고린도후서 3:5와 창세기 8:21에 뭐라고 답하겠느냐고 칼빈은 묻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니, 사람 전체가 죄 아래 있다면 그 꼭대기에 있는 의지도 가장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은혜 전에 의지가 먼저 움직인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신다는 말씀이 의미를 잃습니다. 다윗이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기도한 것도 시작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 '선을 바라는 미약한 씨앗' 주장을 거부
  • 로마서 7장은 거듭난 신자의 싸움
  • 아우구스티누스도 옛 해석을 철회
  • 죄짓는 자는 죄의 종, 의지도 묶였다
  • 원하는 마음부터 하나님이 행하신다
로마서 7:18-19스콜라 학자들이 본성 상태로 오해한 본문, 칼빈은 신자의 갈등으로 읽음(원문은 7:18로 표기했으나 인용 문장은 7:19)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갈라디아서 5:17육과 영의 싸움, 같은 주제의 짧은 서술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7:20악을 행하는 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 거듭난 자의 고백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서 7:22-23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함, 중생자임을 확정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고린도후서 3:5선한 생각조차 스스로 품을 수 없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창세기 8:21사람 마음의 계획은 어려서부터 악하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 8:34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 의지도 묶여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빌립보서 2:13원하는 것도 행하는 것도 하나님이 행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시편 51:10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는 기도, 시작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2.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이 논의를 꺼리는 사람들(1절)사람의 능력을 뿌리 뽑는 가르침은 위험하다오히려 믿음에 가장 절실하고 유익하다. 하나님 안에서 되찾는다면 낮아져도 위험하지 않다예레미야 17:5, 이사야 40:28-31
예레미야 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이사야 40:28-31 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철학자들(2-3절)이성은 충분한 안내자이고, 의지는 이성과 감각 사이에서 자유롭게 고른다. 덕은 내 공로다이성은 이 땅의 일엔 빛나지만 하나님과 구원 앞에서는 눈멀었다. 덕을 내 공로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 영광을 훔치는 일요한복음 1:5, 고린도전서 2:14
요한복음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크리소스톰·히에로니무스 등 초기 교부(4절)우리 몫을 내놓으면 하나님이 나머지를 주신다. 시작은 우리, 완성은 하나님게으름을 막으려는 선한 의도였지만 그릇되고 모호하다. 교부들의 참 목적은 공로를 성령께 돌리는 것요한복음 15:5, 빌립보서 2:13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후대 저술가들(4절)감각만 부패했고 이성은 멀쩡하며 의지도 대부분 성하다거듭남은 영혼 전체의 새로워짐이다. 이성과 의지 모두 부패했다창세기 6:5, 고린도후서 3:5
창세기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고린도후서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페트루스 롬바르두스(6절)역사하는 은혜와 협력하는 은혜. 사람이 은혜와 협력한다본성에 선의 씨앗이 있다는 암시이고, 은혜의 효과가 내 선택에 달린 꼴이 된다빌립보서 2:13, 시편 51:10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시편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롬바르두스·스콜라의 용어(6-7절)강제당하지 않으니 '자유의지'가 있다내용(억지 아닌 자발적 죄)은 맞지만, 하찮은 것에 거창한 이름을 붙여 오해를 낳는다. 용어를 버리자요한복음 8:34, 고린도후서 3:17
요한복음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광신자들'(6절)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뉜다상대할 가치가 없다며 짧게 물리친다. 특별 은혜는 택하신 이들이 중생으로 받는다(칼빈이 이 자리에서 구절을 들지 않음)
불신자 재능을 깎아내리는 태도(15-16절)불경건한 자의 학문은 성령과 무관하니 멸시해도 된다성령은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다. 진리를 멸시하면 성령을 멸시하는 것이다. 다만 재능이 구원의 복은 아니다출애굽기 31:2-11, 로마서 8:9
출애굽기 31:2-11 2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3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4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5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6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7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펠라기우스주의자(21절)하나님은 말씀의 가르침으로 무지를 고쳐 주신다(외적 가르침이면 충분)율법을 가진 다윗도 눈을 열어 달라 구했고, 사도들도 성령을 기다렸다. 내적 조명이 필요하다시편 119:18, 요한복음 14:26
시편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플라톤(22절)사람은 무지 때문에만 죄를 짓는다양심이 있어 싫어도 죄를 안다. 알면서 택하기도 한다로마서 2:14-15
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반대 극단(25절)모든 죄는 계획된 악의에서 나온다선한 뜻으로도 넘어진다. 이성 자체가 속고 길을 잃는다고린도후서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철학자들의 '선 추구' 이론(26절)모든 존재가 선을 원하니 의지는 자유롭다그것은 짐승에게도 있는 본능적 끌림일 뿐이다. 영원한 복은 성령 없이 사모하지 않는다(칼빈이 이 자리에서 구절을 들지 않음)
스콜라 신학자들(27절)로마서 7장처럼 본성에도 선을 원하는 미약한 기능이 있다로마서 7장은 거듭난 신자의 갈등이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해석을 철회했다로마서 7:18-23, 갈라디아서 5:17, 창세기 8:21
로마서 7:18-23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창세기 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3. 용어

자유의지
사람이 선과 악 중 어느 쪽이든 스스로 고를 수 있다는 생각을 담은 말. 칼빈은 오해를 부른다며 쓰지 않겠다고 했다.
자기 능력(아우텍수시온)
그리스 교부들이 쓴 말로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라는 뜻. 칼빈은 라틴어 '자유의지'보다 더 뻔뻔한 표현이라고 봤다.
스콜라 신학
중세 대학에서 논리적 질문과 답으로 신학을 체계화한 학풍. 롬바르두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대표적이다.
필연과 강제
필연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이고, 강제는 '밖에서 억지로 시킴'이다. 칼빈은 사람이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죄를 짓는다고 본다.
자연적 은사 / 초자연적 은사
자연적 은사는 이성·의지처럼 사람 본성에 속한 능력으로, 남아 있으나 부패했다. 초자연적 은사는 믿음·하나님 사랑처럼 본성을 넘어 주어진 것으로, 죄로 빼앗겼다.
중생
성령이 사람을 속에서부터 새로 태어나게 하시는 일. 거듭남이라고도 한다.
조명
성령이 마음의 눈을 밝혀 하나님의 일을 깨닫게 하시는 일.
역사하는 은혜 / 협력하는 은혜
롬바르두스의 구분. 앞의 것은 선을 원하게 만드는 은혜, 뒤의 것은 그 의지를 돕는 은혜다.
펠라기우스주의
5세기 초 아우구스티누스와 논쟁한 펠라기우스를 따르는 입장. 사람이 하나님의 내적 도움 없이도 선을 택할 수 있다고 본다.
본성의 법
모든 사람 마음에 새겨진 옳고 그름의 감각. 칼빈은 이것이 '핑계를 막는 양심의 판단'이라고 정의한다.

4. 청년의 삶으로

💬 "넌 할 수 있어, 너 자신을 믿어"라는 자기계발 문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 칼빈: 내 힘을 부풀리는 말은 "하나님같이 되리라"던 속삭임과 닮았다. 부족함을 하나님 안에서 채운다고 알 때 낮아져도 안전하다(10절).
💬 직장에서 신앙 없는 동료가 나보다 일도 잘하고 윤리적일 때, 어떻게 봐야 할까? → 칼빈: 그 실력과 공정함은 성령이 주신 선물이니 인정하고 배우라. 다만 재능이 곧 구원의 복은 아니다(15-16절).
💬 연봉·스펙·재능 비교로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올라올 때는? → 칼빈: 재능 차이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특별 은혜이니 누구도 자기 것이라 주장할 수 없다(17절).
💬 연애나 돈 문제에서 "다른 사람이면 잘못이지만 내 경우는 사정이 달라"라고 생각할 때는? → 칼빈: 원리는 알면서 내 상황에만 예외를 두는 것이 바로 이성이 속는 지점이다(23절).
💬 교회에서 한 번 크게 깨닫고 나면 이제 알아서 잘 믿을 수 있을까? → 칼빈: 성숙한 다윗도 매 순간 붙들어 달라 기도했다. 성령의 조명은 평생 계속 필요하다(25절).

5. 이 편의 결론

이 편이 남기는 것
  • 사람은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죄를 택하는 '자원하는 종'이다. 그래서 '자유의지'라는 말은 오해를 부르니 쓰지 않는 편이 낫다.
  • 이성과 의지는 남아 있다. 이 땅의 일(법·학문·기술)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빛나는 은사다.
  • 하나님을 아는 일, 구원을 확신하는 일, 하나님 뜻대로 사는 법을 아는 일에서 사람은 성령의 조명 없이는 눈멀었다.
  • 선을 원하는 마음부터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그래서 공로는 하나님과 나눌 수 없다.
  • 이 사실을 아는 겸손이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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