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2부 삼위일체 하나님과 창조

9장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의 경륜

헤르만 바빙크 『개혁파 교의학』 (새물결플러스, 단권 축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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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하나님이 어떻게 세 위격으로 계시고 일하시는가?

  • 삼위일체의 씨앗은 구약의 말씀·지혜·영이라는 창조와 재창조의 삼중 원리에 심겨 있었고, 신약에서 성자의 성육신과 성령의 부어짐으로 만개했다. 교의의 모든 내용은 철학이 아니라 성경에서 왔다.
  • 교회는 니케아와 아타나시오스,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한 본질·세 위격의 교의를 세웠다. 셋을 위해 하나를 버리면 아리우스주의, 하나를 위해 셋을 버리면 사벨리우스주의다.
  • 세 위격은 나시지 않음·나심·나오심이라는 영원한 관계로 구별되며 본질은 하나다. ‘위격’은 양태가 아니라 구별된 존재라는 뜻일 뿐이다.
  • 외적 사역은 나뉘지 않지만 창조는 성부께, 구속은 성자께, 성화는 성령께 돌려진다.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반영할 뿐 대체하지 않는다.
  • 하나님은 단일하고 불변하는 경륜에 따라 선택적으로 구원하신다. 선택은 예견된 믿음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원인이다. 유기는 선택과 대칭이 아니며, 작정의 목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이다.

1. 성경에서의 거룩한 삼위일체 원서 387–389쪽

신약에서 만개한 꽃의 씨앗은 이미 구약에 심겨 있었다. 세계는 삼중 원인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1. 말씀하나님이 말씀을 발하여 세계를 존재하게 하심(창 1:3)
  2. 지혜그 말씀이 지혜로 실체화되어 세계를 지음(잠 8:22)
  3. 영하나님의 영이 피조물 안에 거하며 생기를 주심(창 1:2). 세상은 계속 영에 의지함
  • 이 삼중 원리는 창조뿐 아니라 재창조의 근간이며 구약 계시 전체를 지탱한다.
  • 주님의 사자는 야웨의 이름을 지니고 그 능력을 행하며 경배를 받는다(출 3:2). 아우구스티누스 이전 교부들은 로고스의 나타남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된 천사로 보았다. 후대 개신교는 소키누스파·항변파에 맞서 로고스로 해석했다. 바빙크: 이 차이를 과장하지 말라.
  • 영은 주관적 측면이다. 사사들의 용기, 삼손의 힘, 장인의 기술, 왕의 통치, 지혜, 거룩, 예언의 원천이다. 메시아 위에 머무시고(사 11:2) 마지막 때 모든 육체에 부어진다(욜 2:28–29).
  • 민수기의 대제사장 축도(민 6:24–26)는 사도적 축도(고후 13:13)의 구약판이다. 시 110:1 같은 구절은 하나님 안의 자기 구분을 시사한다. 다만 암시이지 완성된 교리가 아니다.

(1) 중간기 유대교와 필론의 로고스 원서 389–390쪽

외경에서 지혜가 신적 존재로 실체화되고, 필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스토아의 로고스론·구약의 지혜론을 섞었다. 유대교 신학은 메트라톤, 멤라, 셰키나, 바트 콜 같은 중간 실체를 늘려 천사론으로 흘렀다.

구분필론의 로고스성경(요한)의 로고스
출발점하나님과 세상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이원론이 아님. 말씀·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 편의 창조 제1원리
정체비창조도 창조도 아닌 ‘제2의 하나님’, 중간 존재하나님이신 말씀
성격하나님의 이성실제로 발화된 말씀, 만물을 짓고 보존하는 행위
구원구원·메시아와 무관, 영은 사라짐말씀이 육신이 됨 = 계시의 정점
귀결창조주·피조물 경계가 흐려져 영지주의·카발라로—
“필론과 요한의 공통점은 ‘로고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뿐이다.”

(2) 신약성경의 삼위일체 계시 원서 391쪽

  • 결정적 사건은 둘: 성자가 육신을 입으셨고, 성령이 부어지셨다. 성부는 만물의 창조주, 성자는 그를 통해 만물이 지어진 로고스, 성령은 창조세계를 아름답게 하고 완성하시는 영이다. 신약은 새 하나님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을 더 밝히 보인다.
  • 신약 계시는 몇 구절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삼위일체적이다: 탄생(눅 1:35), 세례(마 3:16–17), 가르침(요 10:30; 15:26).
  • 세례 명령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 28:19)에서 ‘이름’은 단수다. 구별된 세 주체가 하나의 신적 이름을 공유한다. 사도들도 세 이름을 동등하게 배열한다(엡 4:4–6).

(3) 성부와 성자의 이름과 관계 원서 392–394쪽

‘아버지’는 세 층으로 쓰인다: 만물의 창조주(일반), 이스라엘의 아버지(신정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형이상학적, 영원한 관계). 성부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요 17:3)으로 불린다는 데서 아리우스주의는 성부만 하나님이라고 결론 내리지만, 그리스도께 붙은 이름들이 이를 반박한다.

그리스도의 이름뜻
로고스영원부터 하나님이 자신을 충만히 알리신 분이기에 하나님을 온전히 계시하심
하나님의 아들구약에서는 이스라엘과 왕의 신정적 칭호(시 2:7). 히브리서는 이를 영원한 나심과 연결(히 1:5), 부활이 입증(롬 1:4)
하나님의 형상사람에게는 유비로, 그리스도께는 절대적으로 속함(빌 2:6; 골 1:15; 히 1:3)
먼저 나신 이 (πρωτότοκος)‘먼저 창조된’이 아니라 ‘먼저 태어난’. 만물이 그 안에서 창조되었으니 피조물의 범주에서 제외(골 1:16). ‘독생자’와 함께 영원하고 유일한 관계
열쇠: 직임과 본질의 구별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의 지위와 직임에서는 성부께 종속되시지만(보냄 받은 종, 나라를 성부께 바치심), 본질과 본성에서는 동일하시다. 그래서 신약은 그를 영원히 찬양받으실 하나님이라 부른다(롬 9:5).

(4) 성령의 이름과 신성 원서 395–397쪽

  • 성자가 성부를 증언하고 영화롭게 하듯, 성령은 성자를 증언하고 영화롭게 하신다. ‘영’은 바람과 숨이므로 성령은 전능자의 숨(욥 33:4)이시다. 그리스도의 영(롬 8:9)이자 아버지의 영이시다.
  • 인격성: 주어지고, 보내지고, 부어지고,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다(요 15:26). 살피고·판단하고·듣고·말씀하고·간구하신다(고전 2:10–11).
  • 신성: 영원성·편재·전지·전능의 속성과 창조·재창조의 사역이 돌려진다. 우리 안에 사시는 하나님(고전 3:16)이시므로 완전한 신적 영예가 마땅하다. 성령 모독은 용서받지 못한다(마 12:31–32).
교의의 재료는 전부 성경에성경은 완성된 교의를 체계적으로 주지 않는다. 그러나 신학이 교의를 구성하는 데 쓴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철학이 기여한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로고스 교리조차 신약 안에 있다.

2. 삼위일체 교의의 구성 원서 398–403쪽

  1. 속사도 교부성자를 독생자·창조주·심판자·‘하나님’으로 부름. 가현설과 에비온파를 피함. 그러나 대체로 성경 인용에 만족
  2. 변증가(유스티누스)그리스도를 ‘그 하나님’이라 부르고 인격적 선재를 주장.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 ‘성부 다음의 첫 능력’ 같은 종속설적 표현. 그래도 아리우스주의자로 보는 것은 잘못
  3. 이레나이우스영지주의의 ‘우주적 심연’, 아이온의 유출에 반대. 로고스는 위격적 말씀, 참 하나님, 나심은 영원. 그러나 한 본성과 위격 구별의 관계는 미해결
  4. 테르툴리아누스삼위일체를 성부의 위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서 이끌어낸 최초의 인물. 한 실체·한 본질·한 능력, 정도·질서·경륜에서 구별(줄기와 가지, 샘과 시내, 태양과 광선). 교의의 개념과 용어 제공
  5. 오리게네스‘영원한 나심’: 성자가 없던 때는 없다. 그러나 다시 성부의 위격에서 출발해 성부만 ‘그 하나님’, 성자는 본질에서 다른 분 → 종속론으로 회귀
  6. 니케아 공의회(325년) 원서 401–403쪽오리게네스를 따르지 않고 종속론을 거부, 성자의 완전한 신성 확정. 이제 난제는 ‘하나에서 어떻게 셋이’가 아니라 ‘셋이면서 어떻게 참으로 하나인가’
  7. 아타나시오스하나님은 아무것도 ‘되시지’ 않는다. 해는 빛 없이, 샘은 물 없이 생각할 수 없듯 성부는 성자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성자는 성부의 뜻이 아니라 존재로부터 나셨다. 다만 성부를 첫째 원리·원천이라 가르침. 카파도키아 교부들이 확증
  8. 아우구스티누스『삼위일체론』: 하나의 단순한 신적 본질에서 출발. 각 위격이 삼위일체 전체만큼 크고, 구별은 내적 관계에서 옴 → 모든 종속론 배척. “테르툴리아누스가 시작한 것을 완성했다”
  9. 400년 이후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을 담은 아타나시오스 신조. 서방과 종교개혁자들이 수용
기독교의 심장아타나시오스는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고백으로 서거나 넘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삼위일체는 하나님 안의 구분을 부인하는 유대교와, 하나 됨을 거부하는 이교 모두에서 기독교를 구별한다.

3. 반대: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 원서 404–408쪽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맥박이다.” 모든 오류는 삼위성을 보존하려고 본질의 단일성을 부인하거나, 삼위성이 유지될 수 없는 단일성을 주장하는 데서 온다.

아리우스주의 하나를 버림

  • 선구자: 양자론자 사모사타의 바울
  • 하나님은 불출생·무시작이므로 절대적으로 유일
  • 로고스는 창조의 매개자로 세상 이전에 만들어진 완전한 피조물. “그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 동일본질이 아니고 가변적. 존경은 받되 경배 대상은 아님
  • 성경 무기: 요 14:28(종속), 잠 8:22(창조), 막 13:32(제한된 지식), 빌 2:9(높여짐)

사벨리우스주의 셋을 버림

  • 단일신론·성부수난설·양태론: 최고 지배자는 하나여야 한다
  • 성부 자신이 태어나고 고난받으셨다
  • 하나의 존재 = ‘휘오파토르’(아들-아버지)
  • 성부·성자·성령은 그 존재의 연이은 세 에너지·세 단계·세 얼굴(창조주 → 구속자 → 생명 주시는 분)
  • 역시 성경에 호소하고 그리스 철학을 씀
계열후대의 재현
아리우스 계열(종속론)성자를 ‘본질 면에서 유사한’ 분으로 둔 테르툴리아누스·클레멘스·오리게네스·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오스 → 항변파·근대 신학자 → 존 밀턴(성자·성령은 창조 전에 만들어짐) → 소키누스주의(성자는 수태 전 선재하지 않은 인간, 성령은 신적 능력) → 유니테리언주의
사벨리우스 계열(양태론)피오레의 요아힘·다비드 요리스의 세 시대론 → 세르베투스 → 뵈메·친첸도르프·스베덴보리의 신지학 → 칸트·스피노자·셸링·헤겔·슈트라우스의 철학적 삼위일체 해석

4. 삼위일체의 언어 원서 408–411쪽

그리스도 안의 절대적 자기계시와 성령 안의 자기전달은 존재론적 삼위일체 위에서만 선다. 하나님이 본래 삼위일체가 아니라면 그리스도와 성령은 중간 존재로 전락한다. 그래서 교회는 진리를 지키려 성경 밖 용어를 쓸 권리를 주장했다(아리우스주의자들은 정죄).

용어의 기능은 부정적이다새 교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계시의 진리를 지키려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경계를 표시한다. ‘성경적 신학’만 고집하는 쪽이 오히려 성경에서 더 멀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본질(하나)위격(셋)비고
동방(바실리오스의 정리)우시아 (οὐσία)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ασις) / 프로소폰 (πρόσωπον)처음엔 우시아와 휘포스타시스가 섞여 쓰임
서방(테르툴리아누스)에센티아 · 숩스탄티아페르소나더 안정적
아우구스티누스에센티아 선호페르소나숩스탄티아는 본질과 속성이 나뉜다는 인상을 주므로 피함. 세 위격은 세 실체가 아니라 세 페르소나
최종 정리하나의 본질, 상호내주(circumincessio)하는 세 위격, 세 위격적 속성

(1) ‘위격’ 개념과 근대 인격성 원서 412–413쪽

  • 삼위일체 고백의 영광: 절대적 단일성이 다양성을 밀어내지 않고 품는다. 하나님의 존재는 추상적 ‘하나’가 아니라 생명의 무한한 충만이다.
  • 프로소폰(얼굴·역할)은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적 오해를 낳아, 실재와 자존성을 뜻하는 휘포스타시스로 대체되었다. 기독론 논쟁 이후 페르소나는 자존성 + 합리성(자기의식)을 담게 되었다.
  • 근대 철학·심리학: 인격성은 유한한 존재의 방식이라 하나님께 돌릴 수 없다(→ 신은 무의식적 힘), 또는 자아는 심리 현상의 총합(→ 영웅 숭배). 보에티우스의 정의(개별적·이성적 존재)와 근대 인격성 개념은 삼신론으로 기울 위험이 있다.
  • 칼뱅: 위격은 “하나님의 본질 안에 있는 실재”. 아우구스티누스: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지 않기 위해 쓰는 말.
삼중 자기구별세 위격은 세 개별자가 아니라 신적 존재 안에서 일어나는 삼중의 자기구별이다. 인간 본성은 한 개인에 다 담기지 않아 인류 전체에서 충만해지지만, 하나님께는 하나의 전개만 있다. 하나님께는 존재함과 위격임이 다르지 않다.

5. 세 위격 간의 구별 원서 415쪽

성경은 철저히 유일신적이면서 성자와 성령을 성부와 동등하게 둔다. 위격의 차이는 오직 한 분이 아버지, 다른 분이 아들, 셋째 분이 영이시라는 데 있다. 인간에게 아버지 됨은 우연적이지만, 하나님께 아버지 됨·아들 됨·나오심은 신적 존재의 영원한 존재 방식이자 내재적 관계다. 하나님 안의 발출은 인간 본성이 개인·가정·인류로 펼쳐지는 모든 발출의 원형이다.

구별은 관계에서, 하나 됨은 본성에서“하나님의 삼위성은 단일성에서 나오고, 그 안에 존재하고, 그것을 섬긴다.” 성부는 아버지로서, 성자는 아들로서, 성령은 영으로서 하나님이시다. 본질의 차이를 말하면 아리우스주의, 위격의 구별을 지우면 사벨리우스주의다.

(1) 아버지 됨, 나심, 나오심 원서 416–422쪽

위격위격적 속성설명
성부나시지 않음 (ἀγεννησία)‘아게네토스’(시작 없음)는 세 위격 공통의 신적 속성, ‘아겐네시아’(낳아지지 않음)는 성부만의 내적 관계. ‘하나님’이 일반 이름이라면 ‘아버지’는 야웨처럼 고유한 이름. 땅의 모든 아버지 됨은 그 반영(엡 3:14–15). 아버지라 부르기를 거부하면 이신론만 남는다
성자영원한 나심성부가 영원하시면 성자의 나심도 영원. 표현은 오리게네스, 근거는 말씀·지혜·독생자·형상·본체·인 같은 성경 이름(히 1:3). 성부의 뜻이 아니라 존재에서 나심. 가장 좋은 유비는 생각과 말. “하나님께 낳으신다는 것은 말씀하신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영원하다.” 성부는 끊임없이 낳으신다
성령나오심 / 내쉬어짐성경이 성령을 숨과 바람에 잇기에(시 33:6; 요 3:8; 20:22; 행 2:2) 내쉬어짐 선호. 쟁점은 신성보다 위격성.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분은 반드시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이셔야 한다.” 삼위일체는 성령 안에서 완성된다
  • 영원한 나심이 보여 주는 것: 하나님은 경직되고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를 전달하시는 충만한 생명(생산력)이다. 부인하면 추상적 이신론에 머물거나, 빈약함을 메우려 세계를 하나님 안에 넣는 범신론으로 간다. 자기를 전달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피조물에게도 자기를 줄 수 없으니, 삼위일체 없이는 창조도 생각할 수 없다.
  • 나심과 내쉬어짐의 차이: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른다고 고백했고, 토마스는 지성과 의지의 방식으로 나누었으며, 개신교 신학자들은 확언을 주저했다.

(2) 필리오케와 동서방의 차이 원서 423쪽

동방

  • 성령은 성자를 통해 성부로부터 나오신다
  • 성자로부터도 나와 존재를 받는다는 것은 거부
  • 통일성의 근거를 성부의 위격에서 찾음
  • 다마스쿠스의 요한: 성자와 성령은 단일한 원인(성부)에서

서방

  • 테르툴리아누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 세 위격을 단일 신성 안의 관계로 보아 성령을 성자와도 연결
  •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
  • 니케아 신조에 필리오케(filioque, ‘그리고 아들로부터’) 삽입
  • 필리오케 없이는 동일본질과 상호관계를 표현할 수 없다
교리의 한 구절이 경건의 모양을 바꾼다바빙크는 필리오케 반대를 종속론의 마지막 잔재로 본다. 성자와 성령이 서로 독립해 각자 성부께 이르는 길을 열게 되고, 그 열매로 정통주의와 신비주의, 지성과 의지가 통합되지 않고 나란히 병존하는 정교회 경건의 이원론이 생겼다.

6. 경륜적 삼위일체, 유비, 논증 원서 424–426쪽

하나님의 외향적 사역은 모두 세 위격에 공통되며 나뉘지 않는다. 그러나 본래 공통인 사역을 특정 위격에 특별히 돌리는 귀속이 있다(아벨라르두스처럼 배타적으로 보면 안 됨). “만물에 단 하나의 근원이 있을지라도, 만물은 성부로부터 나오고, 성자를 통해서 수행되고, 성령 안에서 완성된다.”

위격전치사엡 4:6(아타나시오스)원인(바실리오스)귀속되는 사역경륜의 시작
성부로부터 (ἐκ)만물 위에기원 원인창조구약
성자통해 (διά)만물을 통해수행 원인구속성육신
성령안에 (ἐν)만물 안에완성 원인성화오순절
바실리오스: 전치사의 차이는 위격의 위계가 아니라 활동의 순서다

바른 이해 ✓

시간 안의 보내심은 영원한 나심과 나오심에 기초한 내재적 관계의 반영이다. 하나님 안의 영원한 질서가 구원의 역사를 낳는다. 목적은 성부가 성자와 성령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만유 가운데 모든 것이 되시는 것이다.

오류 몬타누스 ~ 헤겔

세 경륜을 하나님 자신이 생성되는 세 시기로 본다. 경륜적 삼위일체가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대체하고, 우주생성론이 신들의 계보학이 된다.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자신의 구별이 사라진다.

(1) 삼위일체의 유비와 논증 원서 426–430쪽

유비의 종류예평가
다신론적카발라의 세피로트, 인도의 트리무르티, 게르만의 주신들, 플라톤의 우주론적 삼 원리숫자가 같을 뿐 본질과 위격의 관계를 담지 못함
자연적불꽃, 뿌리와 열매, 샘과 시내, 공간의 삼차원, 영혼의 세 기능상대적으로 더 가치 있음
논리적존재·동일성·크기(아우구스티누스·중세), 정립·반정립·종합(칸트~헤겔)근대 철학 전체의 틀이 됨
심리적·사랑아우구스티누스: 기억·지성·의지 / 사랑하는 자·사랑받는 자·사랑가장 깊다. 사변적이지만 성경과 공명. 단, 후험적 흔적일 뿐이며 사람 안의 셋은 능력이지만 하나님 안의 셋은 세 주체
신지학적뵈메·바아더·셸링: 하나님이 역사 과정 속에서 비로소 성부·성자·성령이 됨성자의 영원한 나심을 부인. 신의 기원과 우주의 기원이 섞임
“만약 당신이 사랑을 본다면, 다름 아닌 삼위일체를 보는 것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2) 삼위일체, 신앙의 중심 원서 432–433쪽

  • 교회는 성경만을 적법한 증거로, 겸손을 적절한 태도로 삼았다. 토마스도 자연적 이성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를 말렸다(신앙의 품격을 떨어뜨림).
  • 그래도 유비는 세계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품임을 떠올리게 하고, 논증은 이 믿음이 불합리하지 않음을 보인다. 이는 호기심이 아니라 종교적 필요 때문이다(롬 11:36).
  • 삼위일체는 이신론(싸늘한 추상)과 범신론(혼돈)을 함께 막는다. 하나님은 세계와 구별되면서도 자기 안에 충만한 생명을 가지신 분이다.
  • 창조 교리는 삼위일체 위에서만 선다. 나심과 나오심은 내재적 관계, 창조는 자유로운 외향적 사역이다. 영원한 산출의 생명이 없다면 창조는 우연이거나 하나님의 자기 전개가 된다.
모든 교의의 뿌리삼위일체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고, 모든 교의의 뿌리이며, 새 언약의 근본 내용이다. 전체 기독교 신앙의 체계가 이 고백과 함께 서거나 넘어진다.

7.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륜 원서 434–438쪽

하나님의 사역
내재적 사역세 위격 사이: 성부가 생명을 성자께 주심(요 5:26), 성자를 알고 사랑하심, 성령이 깊은 것까지 통달하심
내향적 사역 = 작정하나님의 경륜(βουλή). 선택과 유기 포함. 뿌리는 영원한 예지와 예정
외향적 사역창조와 구속. 작정이 역사 속에서 실현됨
  • 구약은 작정을 추상이 아니라 역사 속 선택으로 보인다: 셋(가인이 아니라) → 노아와 셈 → 아브라함 → 이삭(이스마엘이 아니라) → 야곱(에서가 아니라, 롬 9:11–12) → 유다 → 이스라엘 → 메시아. 하나님의 선택하는 목적이 이 사실들에 앞선다. 그 경륜은 영원히 선다(시 33:11; 사 46:10).
  • 신약: 모든 일이 확정된 경륜과 예지대로 일어난다(행 2:23). 불레(βουλή)는 단순한 의지인 텔레마(θέλημα)와 구별되며 주로 구속 사역을 가리킨다. 기뻐하심(εὐδοκία), 목적(πρόθεσις), 예지(πρόγνωσις), 선택(ἐκλογή), 예정(προορισμός).
  • 롬 9장: 행위는 시간 안에 있어도 근거는 시간 밖,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심(딤후 1:9–10). 바울은 공정성을 변호하지 않고 주권에 호소한다(롬 9:15). 생명책은 개인 선택을 확증하고(계 20:12), 목표는 하늘의 유업이다(벧전 1:4).
핵심하나님은 구원을 자의적으로가 아니라 확정된 계획, 불변한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행하신다.

8. 예정론의 역사 원서 438–448쪽

(1) 펠라기우스주의의 도전 원서 438–443쪽

입장주장예정의 근거
펠라기우스타락 뒤에도 의지는 선악 사이에서 온전히 자유. 원죄는 없고 나쁜 본보기만 있음. 에베소·오랑주에서 정죄누가 믿을지 미리 아시는 예지
아우구스티누스택자는 “믿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 믿도록 선택되었다.” 로마서 연구에서 얻음. 선택은 은혜의 행위, 유기는 공의의 행위, 이유는 신비하나님의 주권적 뜻
반펠라기우스 · 트리엔트오랑주가 부패의 깊이를 분명히 하지 않자 유입. 트리엔트: 자유의지는 완전히 상실되지 않았고 주입된 은혜는 거부될 수 있다선행적·결과적 의지 구별 → 예지에 기댐
몰리나(중간지식)누가 은혜를 잘 쓸지 미리 보시고 그에 따라 베푸심예지
루터파멜란히톤의 신인협력설을 거쳐 선행적·결과적 의지. 끝까지 믿을 것으로 예견된 자를 구원 → 항변파에 근접예견된 신앙
항변파 · 아르미니우스보편 은혜, 인간이 자기 운명의 최종 결정자 → 합리주의의 길예견된 신앙
개혁파(칼뱅)모든 신앙고백서에 예정론. 종합적 방법으로 신론에서 다룸하나님의 주권적 뜻. 최대 관심은 인간론·구원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2) 타락전선택설과 타락후선택설; 항변파 원서 443–448쪽

구분타락전선택설 (supra-)타락후선택설 (infra-)
쟁점선택·유기 작정이 창조·타락 허용 작정보다 앞선다선택·유기 작정이 창조·타락 허용 작정을 뒤따른다
택하는 순서관념적·목적론적 순서(목표에서 거꾸로)역사적·인과적 순서
의존하는 본문죄와 관련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롬 9:19–21; 사 45:9; 잠 16:4)타락한 세상에 대한 자비와 공의(롬 9:15–16; 엡 1:4–12; 딤후 1:9)
장점하나님을 변호하려는 헛된 시도를 그치고 선택과 유기를 주권적 뜻에 돌림더 신중하고 덜 냉혹해 보임
약점실제 사람이 아니라 ‘가능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기 쉽고, 죄를 유기의 수단으로 삼을 위험‘허용’과 ‘예지’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함. 허용도 하나님의 의지에서 나온 유효한 행위
담고 있는 진리 454–455쪽작정들의 통일성, 죄가 하나님의 의도 안에 있음, 창조는 재창조를 위함, 아담은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지어짐작정들의 구별, 창조와 타락은 단순한 수단이 아님, 죄는 재앙
도르트 회의는 타락후선택설 쪽이었으나 타락전선택설을 정죄하지 않았다. 두 견해 모두 개혁파적이다
  • 공통점: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르는 이들(토마스주의자 포함)은 모두 일종의 이중 예정을 가르쳤다. ‘허용’은 적극적 의미다. 원죄는 유기의 근접 원인일 뿐 궁극 원인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다.
  • 칼뱅은 목회적 이유로 직접 원인(같은 죄인에게 자비와 공의)에 자주 머물렀지만 두 강조점이 번갈아 나타난다.
  • 19세기에는 범신론적·유물론적 결정론이 펠라기우스주의 자리를 대신했고, 슐라이어마허 등은 예정론을 결정론으로 읽었다. 예정을 시간 안의 행위로 줄이면 하나님과 세계의 구별이 사라진다.
경륜의 성격뜻성경
유효적지성과 의지가 하나인 분의 계획은 좌절되지 않음사 14:27
불변적바뀌지 않음히 6:17
독자적외부에 기대지 않음롬 9:20–21
유효적·원형적 원인만물을 존재하게 하고 본보기가 됨. 하나님께는 생각이 먼저, 사물이 뒤히 8:5
단일한 작정본래 하나의 세계 계획. 웨스트민스터도 단수 ‘작정’. 하나님 자신과도, 실행과도 구별됨엡 1:11

9. 섭리, 그리고 예정에 대한 반대들 원서 449–452쪽

  • 물리적 세계에 대한 경륜이 섭리(보존과 통치)다. 이를 인정하면 경륜이 도덕 세계와 인간 행위에도 미침을 인정해야 한다. 자연과 도덕은 유기적 전체여서, 하나님의 통치가 끝나고 인간의 독립이 시작되는 지점을 지정할 수 없다.
  • 주권과 자유를 경쟁 관계로 두면 하나님은 세계에서 쫓겨난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자유를 파괴하지 않고 만드시고 지키신다.
  • 예지(πρόγνωσις)는 수동적 인지가 아니다. 히브리어 야다(암 3:2)처럼 대상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 결정이며, 목적·예정·선택과 한 묶음이다(롬 8:29).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행 13:48).
  • 하나님이 택자를 확실히 아신다면 예지는 곧 예정이고, 모르신다면 예지도 무너진다. 그래서 예정은 교회 전체의 교의다.
  • 되살아난 펠라기우스주의(딤전 2:4; 벧후 3:9에 기댄 조건적 작정)는 실제 은혜가 특정적으로 주어진다는 역사와 맞지 않는다. 충분한 은혜를 다 주셨다면 왜 몇몇에게만 효과가 있는가? 결국 공로 개념을 끌어들이고, 조건적 예정은 작정이 아니라 불확실한 소원이 된다.
“이론상으로는 펠라기우스주의를 추종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실천함에 있어서, 특히 기도에 있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다.” — 바빙크

10. 예정과 유기 원서 452–459쪽

(1) 두 선택설의 공통점과 한계 원서 452–455쪽

두 견해는 각기 다른 본문에 기대고 나머지를 공정히 다루지 못하므로 둘 다 편향되어 있다. 그러나 일치점은 크다: 죄와 타락이 작정에 포함되고,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며, 궁극 원인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다. “개혁파 신학자들이 ‘죽음으로의 예정’을 추정했을지 모르지만, 그 어떤 개혁파 신학자도 감히 ‘죄로의 예정’을 말하지는 않았다.”

두 견해의 공통 오류바빙크의 대안
택자에게 자비, 유기자에게 공의를 보이는 것을 만물의 최종 목적으로 삼음궁극 목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
시선이 개인에게만 머묾선택의 참 대상은 새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회복된 인류
창조·타락·구원을 서로를 위한 수단의 사슬로만 묶음세계사 전체가 작정의 전개. 끝에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인류, 회복된 창조
  1. 하나님의 경륜세상 모든 국면에 대한 영원한 설계. 가장 포괄적
  2. 예정그중 이성적 피조물의 영원한 상태와 거기 이르는 단계·수단
  3. 이중 예정영생으로의 선택과 영벌로의 유기 모두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 의지

(2) 이중 예정의 불가피성 원서 455–457쪽

  • 성경은 영원한 작정으로서의 유기를 직접 말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역사의 부정적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능동적 의지를 읽는다: 가인 거부, 가나안 저주, 이스마엘 추방, 에서를 미워하심(롬 9:13), 바로를 강퍅하게 하심(출 4:21), 보지 못하게 하심(사 6:9), 거짓말하는 영(왕상 22:23), 그리스도를 원수의 손에 넘기심(행 2:23).
  • 그러나 인간의 죄악됨을 지우지 않는다. 바로도 스스로 강퍅해진다(출 8:15). 죄에 넘겨지는 이들은 그럴 만한 자가 된 이들이다(롬 1:32).
  • 칼뱅주의는 죽음을 천사로 꾸미고 죄를 연약함으로 축소하는 눈가림을 거부하며, 이 세상을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 부르지도 않는다. 칼뱅처럼 “무시무시한 작정”이라 말한다. 다만 무시무시한 것은 작정 자체가 아니라 성경과 역사에 드러나는 그 실재다.
해결책이 아니라 안식으로의 초대맹목적 의지에 세계를 맡기는 염세주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신자는 만주의 주 앞에 무릎 꿇으며,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또한 우리의 자비로운 아버지시라고 믿는다.

(3) 유기와 선택의 비대칭 원서 458–459쪽

선택

  • 은혜의 행위
  •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 예정의 정점

유기

  • 선택과 같은 방식으로 예정의 일부가 아니다
  • 작정과 실행을 구분. 실행은 인간의 죄책을 통해 실현
  •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겔 18:23; 33:11)
  • 유기자도 생명·건강·양식(마 5:45), 오래 참으심(롬 9:22), 복음의 부름(요 3:16)을 받는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무죄한 자를 저주하셔도 불의하지 않다고까지 말했다(바빙크는 섣불리 정죄하지 않음). 그러나 칼뱅과 개혁파 거의 전부는 공의와 무관한 ‘절대적 통치’를 거부했다. “어느 누구도 경솔하게 유기자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 은혜의 수단은 오용될 수 있지만(태양이 따뜻하게도 태우기도 하듯) 그 자체는 유기의 방편이 아니라 구원의 방편이다. 선택과 유기는 이 땅에서 교차하며, 둘 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수단이다.

11. 선택, 예정의 정점 원서 460–462쪽

  • 선택은 구원에만 있지 않다. 수천 송이 꽃이 지고 몇 열매만 남듯 자연과 역사는 불평등으로 가득하다. 이차적 원인은 중요하지만 가장 깊은 ‘왜’에는 답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만 쉴 수 있다.
  • 이 뜻은 조건에 매이지 않는 절대적 뜻이다. 선택은 예견된 신앙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신앙의 원인이다(행 13:48; 엡 1:4–5). 트리엔트·몰리나·항변파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 엄밀히 그리스도는 선택의 원인이 아니라 대상이다. 성부의 사랑이 성자를 보내심보다 앞선다(요 3:16). 동시에 그리스도 자신이 중보자이자 교회의 머리로 선택받은 자다(사 42:1; 벧전 1:20).
  •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은 교회와의 유기적 연합이지만, 교회는 늘 특정 개인들로 이루어지므로 개인 선택도 있다(갈 1:15; 계 3:5).
성전의 청사진선택은 하나님이 모든 시대에 걸쳐 지으시는 성전의 청사진이다. 창조와 타락, 아담과 그리스도가 이 건물에 기여하며, 건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선택은 은혜를 따라 시행되고, 따라서 가장 비참한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다.”

구조도

존재론적 삼위일체 (내재적 관계) 성부 나시지 않음 성자 영원한 나심 성령 나오심(필리오케) 한 본질 구별은 관계에서, 하나 됨은 본성에서 경륜적 삼위일체 (외적 사역의 귀속) 성부로부터 — 창조 기원 원인 · 구약 성자를 통해 — 구속 수행 원인 · 성육신 성령 안에서 — 성화 완성 원인 · 오순절 반영 외적 사역은 나뉘지 않는다 · 대체가 아니라 반영 하나님의 경륜(작정): 단일하고 유효하며 불변하는 세계 계획 경륜 ⊃ 예정 ⊃ 이중 예정 · 유기는 선택과 비대칭(죄책을 통해 실현) 선택: 예정의 정점, 신앙의 원인 목표 =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
영원한 내적 관계가 외적 사역의 질서를 낳고,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단일한 경륜 안에 있다
입장그 입장의 주장바빙크의 답
아리우스주의성부만 하나님이고 성자는 완전한 피조물이다‘먼저 나신 이’는 피조물에서 제외하며, 직임의 종속은 본질의 동등을 해치지 않는다
사벨리우스주의(양태론)성부·성자·성령은 한 하나님의 연이은 세 양태다세 위격은 각자 구별된 존재이며, 경륜적 질서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반영일 뿐이다
필론과 중간기 유대교로고스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제2의 하나님이다말씀과 지혜는 하나님 편의 창조 원리이며, 요한과는 용어만 같다
동방 정교회성령은 성자를 통해 성부에게서만 나온다필리오케 없이 동일본질과 상호관계를 표현할 수 없고, 그 반대는 종속론의 잔재다
근대 철학·심리학인격성은 유한자의 것이라 하나님께 돌릴 수 없다삼위일체의 ‘위격’은 본질 안의 실재이지 세 개별자가 아니다
항변파선택은 하나님이 미리 보신 신앙에 근거한다선택은 신앙의 원인이며, 경륜은 유효하고 불변한 단일 계획이다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 삼위일체는 그리스 철학이 만든 교리다.
  • 성자는 창조된 최고의 피조물이다(아리우스). / 성자가 종속되니 본질도 낮다.
  • 성부·성자·성령은 한 분의 세 모습일 뿐이다.
  • 성경 밖 용어는 성경에 반한다.
  • 삼위는 역사 속에서 차례로 생겨난 세 시기다.
  • 하나님은 믿을 사람을 미리 보고 택하셨다.
  • 유기도 선택과 같은 방식의 예정이다.
  • 타락전·후선택설 중 하나만 개혁파적이다.

바른 이해 ✓

  • 모든 내용은 성경에서 왔고 철학의 본질적 기여는 없다.
  • 성자는 성부의 존재에서 영원히 나신 참 하나님이다. 종속은 중보자 직임의 것이다.
  • 세 위격은 양태가 아니라 구별된 실재다.
  • 용어는 진리를 이단에서 지키는 경계 표시다.
  • 시간 속 보내심은 영원한 관계의 반영일 뿐이다.
  • 선택이 믿음의 원인이지 결과가 아니다.
  • 유기는 죄책을 통해 실현되고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 둘 다 개혁파적이나 각기 일방적이다.

핵심 용어

삼중 원인
하나님의 말씀·지혜·영. 구약에서 창조와 재창조의 세 신적 원리.
동일본질 (ὁμοούσιος)
성자·성령이 성부와 같은 본질을 가짐.
위격 (ὑπόστασις, persona)
세 위격이 양태가 아니라 구별된 자기 존재를 가진다는 뜻. 신적 존재 안의 삼중 자기구별.
본질 (οὐσία, essentia)
삼위가 온전히 공유하는 하나의 신적 존재.
나시지 않음 (ἀγεννησία)
성부에게만 해당하는 위격적 속성.
영원한 나심
성자가 성부의 뜻이 아니라 존재에서 영원히 나심. 하나님의 생산적 충만.
나오심(내쉬어짐)
성령의 위격적 속성. 성부와 성자로부터 숨처럼 나오심.
필리오케 (filioque)
‘그리고 아들로부터’. 니케아 신조에 삽입된 서방의 구절.
상호내주 (circumincessio)
세 위격이 서로 안에 거하심.
경륜적 삼위일체
창조·구속·성화에서 드러나는 위격의 질서.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반영.
양태론 / 종속론
세 위격을 한 존재의 연이은 세 모습으로 봄 / 성자·성령을 본질상 성부보다 낮게 둠.
경륜 (βουλή)
시간 안의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단일하고 유효하며 불변함.
예지 (πρόγνωσις)
수동적 사전 인지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 결정(야다).
타락전 / 타락후선택설
선택·유기 작정이 창조·타락 허용 작정에 논리적으로 앞서는가 / 뒤따르는가.
이중 예정
영생으로의 선택과 영벌로의 유기 모두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 의지.
유기
하나님이 구원에서 지나치심. 작정은 하나님의 뜻에 기초하나 실행은 죄책을 통해 실현.

성경 근거

구절이 장에서의 쓰임
창 1:2–3; 잠 8:22말씀·지혜·영, 창조의 삼중 원인
민 6:24–26대제사장 축도에 담긴 삼중 계시(고후 13:13의 모범)
마 28:19세 주체가 하나의 이름(단수) 안에 계시됨
골 1:15–16먼저 나신 이는 피조물이 아니심, 만물이 그 안에서 창조됨
요 15:26성령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인격이심
요 5:26성부가 생명을 성자께 주심, 로고스 안에 생명
엡 4:6성부는 위에, 성자는 통해, 성령은 안에(아타나시오스)
롬 11:36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와 돌아감 → 삼위일체의 종교적 중요성
롬 9:11–15행위 이전의 선택, 하나님의 긍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
행 13:48; 엡 1:4–5선택이 믿음을 낳는다
겔 33:11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심 → 유기의 비대칭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태복음 28:19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한복음 15:26

복습 문제

바빙크는 필론의 로고스와 요한의 로고스가 어떻게 다르다고 보는가?
필론은 하나님과 세상의 이원론에서 출발해 로고스를 비창조도 창조도 아닌 ‘제2의 하나님’, 하나님의 이성으로 보며 구원·메시아와 무관하다. 성경의 말씀과 지혜는 중재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편의 창조 제1원리이고, 실제로 발화된 말씀이며, 요한에게는 말씀의 성육신이 계시의 정점이다. 둘이 공유하는 것은 용어뿐이다.
테르툴리아누스,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 교의 형성에서 각각 무엇을 기여하거나 놓쳤는가?
테르툴리아누스는 삼위를 성부의 위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서 이끌어낸 최초의 인물로 개념과 용어를 제공했다. 오리게네스는 ‘영원한 나심’을 말했지만 다시 성부의 위격에서 출발해 종속론으로 돌아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의 단순한 신적 본질에서 출발해 구별을 내적 관계에서 찾고 모든 종속론을 배척하여 테르툴리아누스가 시작한 일을 완성했다.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는 각각 무엇을 위해 무엇을 버렸는가?
아리우스주의는 삼위성을 보존하려고 본질의 단일성을 버려, 성자를 세상 이전에 창조된 완전한 피조물로 보았다(“그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사벨리우스주의는 단일성을 지키려고 삼위성을 버려, 성부·성자·성령을 한 존재(휘오파토르)의 연이은 세 양태로 보았다.
삼위일체론에서 ‘위격’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며, 근대의 인격성 개념과 어떻게 다른가?
세 위격이 양태가 아니라 각자 구별된 존재를 가진다는 뜻일 뿐이다(칼뱅: 하나님의 본질 안에 있는 실재). 세 위격은 세 개별자가 아니라 신적 존재 안의 삼중 자기구별이다. 근대 개념은 인격성을 유한한 존재의 방식이나 심리 현상의 총합으로 보아, 하나님께 적용하면 부정되거나 삼신론으로 기운다.
경륜적 삼위일체와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관계를 설명하고, 몬타누스~헤겔 계열의 오류를 말하라.
외적 사역은 나뉘지 않지만 창조는 성부께(로부터, 기원 원인), 구속은 성자께(통해, 수행 원인), 성화는 성령께(안에서, 완성 원인) 귀속된다. 이 질서와 시간 속 보내심은 영원한 나심·나오심이라는 내재적 관계의 반영이다. 몬타누스~헤겔 계열은 이를 하나님 자신이 생성되는 세 시기로 보아 경륜적 삼위일체로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대체하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자신의 구별을 없앴다.
타락전·후선택설에 대한 바빙크의 평가와, 유기가 선택과 비대칭인 이유는?
둘 다 개혁파적이지만 각기 다른 본문에 의존해 일방적이며, 자비와 공의의 계시를 최종 목적으로 삼고, 개인에게만 시선을 두며, 창조·타락·구원을 수단의 사슬로 묶는 공통 오류가 있다. 궁극 목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이다. 유기는 선택과 같은 방식의 예정이 아니며, 작정과 실행이 구분되어 실행은 인간의 죄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선택은 기뻐하시지만 유기는 기뻐하지 않으시고, 유기자에게도 공통의 복과 복음의 부름을 주신다.
한 줄한 본질 세 위격 하나님이 영원한 계획으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신다.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