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1부 교의신학 서론

5장 성경

헤르만 바빙크 『개혁파 교의학』 (새물결플러스, 단권 축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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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인가?

  • 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언한다. 구약 예언자는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을 구별했고, 예수와 사도들은 구약을 점 하나까지 신적 권위로 대했다.
  • 그리스도를 참된 선생으로 받는다면 성경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도 거부할 수 없다. 교회는 정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승인했을 뿐이다.
  • 기계적 견해는 인간 저자를 붓으로 만들고, 동력적 견해는 영감을 종교적 감흥으로 축소한다. 바빙크는 성령이 저자의 개성·연구·기억을 모두 쓰시는 유기적 영감을 말한다.
  • 말씀이 육신이 되셨듯 말씀이 성경이 되었다. 성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이자 전적으로 사람의 책이며, 영감은 기록 자체에 미치는 완전 영감이다.
  • 비평의 뿌리에는 마음의 적대감이 있으므로 겸손이 필요하다. 성경은 학문 교과서가 아니라 구원의 지혜를 주되, 삶 전체에 권위를 가진다.

1. 성경의 자기증언과 정경 원서 175–184쪽

(1)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신 영감된 말씀 원서 175–178쪽

  • 요점: 영감 교리는 신약의 발명이 아니라 구약 안에서 이미 증언된다.

참 예언자

  • 하나님께 부름 받아 그분 앞에 서 있다는 자의식.
  • “야웨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로 자기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뚜렷이 나눈다.
  • 계시를 듣고 보고 심지어 삼킨다: 말씀이 밖에서 주어졌다.

거짓 예언자

  •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말한다(렘 23:16; 겔 13:2–3).
  •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 기준은 종교적 천재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았는가다.

예언자가 윤리적 유일신론을 창안했다는 비평학의 주장은 이 자의식을 무시한다.

기록의 의미

  • 하나님의 명령으로 기록했다고 밝히는 본문은 많지 않다. 그러나 기록은 계시 역사의 늦은 단계이면서도 필수 단계다.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주어졌으므로 직접 듣지 못할 후대에 전해져야 했다.
  • 예언자는 받은 것을 가감 없이 전할 의무가 있었고(신 4:2), 기록된 예언은 구두 말씀과 같은 권위였다(렘 36:10; 사 34:16).
  • 기록된 예언의 많은 부분은 구두로 전해진 적 없는 의도적 저술이며 문학적 기교를 보인다. 단순한 녹취가 아니다.

구약 각 부분

부분성격
토라시내 산 언약이 근간. 모세의 예언자·중보자 지위는 독특하다(민 12:6–8). 토라 전체가 신적 기원을 밝힌다.
예언토라에서 단순히 추론된 것은 아니지만 토라와 언약을 전제하고 언약을 갱신하는 새 계시다.
역사서근대적 엄밀한 역사가 아니라 언약과 토라에 비추어 이스라엘을 해설한 예언적 역사.
시가서앞선 객관적 계시를 삶의 종교적·윤리적 측면에 적용.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말했다(삼하 23:1–3).
  • 정경 인정은 후대 회의의 결정이 아니라 글들이 형성·보존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율법은 성소에 보관되고, 시편과 잠언은 일찍 수집되었다(잠 25:1). 후기 예언자는 초기 예언서를 토대로 삼았다(단 9:2). 외경·필론·요세푸스도 정경적 책의 권위를 증언한다.

(2) 예수와 사도들의 구약관 원서 178–179쪽

  • 요점: 예수와 사도들은 구약을 단어 하나까지 신적 권위로 대했다.
  • ‘기록되었으되’, ‘성경이 말씀하되’ 같은 정형구는 성경을 최종 심급으로 세운다.
  • 예수는 하나님 또는 성령을 성경의 원저자로 말씀하셨고(마 22:43), 히브리서도 그렇게 인용한다(히 3:7).
  • 그 권위는 단어 하나, 점 하나까지 미친다(마 5:18; 요 10:35; 갈 3:16의 ‘자손’ 단수 논증). 그러므로 권위를 윤리적 내용으로만 축소하는 근대 견해는 예수 자신의 성경관과 충돌한다.

반론

신약은 대개 70인역으로 인용하고, 인용 방식이 다양하며, 때로 원문맥과 다른 의미를 끌어낸다.

답

그런 주해는 단어와 문장이 본래 저자가 짐작한 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선다. 신약은 구약을 쓰는 방식 자체로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자유로운 인용은 권위의 부정이 아니라 권위의 깊이를 보여 준다.

딤후 3:16 번역 논쟁

번역 후보판단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모든 성경은 또한 유익하다”‘유익하다’ 뒤에 술어가 필요한 문법적 난점
“모든 성경은 전반적으로 감동되었고 유익하다”분명히 배제
“성경 전체가 감동되었다”(15절 ‘거룩한 글들’을 받음) / “모든 성경이 감동되었다”남는 두 선택. 바빙크: 내용상 차이 없음. 어느 쪽이든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핵심 자기증언 구절은 딤후 3:16과 벧후 1:19, 21이다.

(3) 그리스도·사도와 정경 원서 179–184쪽

  • 요점: 성경의 권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도의 증언에 뿌리를 둔다.
  1. 그리스도는 참된 증인성부를 알리러 오신 로고스. 보고 들은 것만 말씀하셨다(계 3:14).
  2. 구약관은 그 가르침의 핵심구약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대하셨다.
  3. 틀렸다면?종교 생활의 핵심에서 오류를 범하신 것이니 최고의 예언자일 수 없다.
  4. 결론예수를 참된 선생으로 받는 사람은 성경에 관한 그분의 가르침만 골라 거부할 수 없다.
  • 예수는 직접 글을 남기지 않으셨다. 사도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진리의 영을 주셨다(요 17:6; 14:26). 성령은 사도의 기억·판단·성품·은사를 쓰시되 새것을 보태지 않고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을 기억나게 하셨다.
  • 오순절 이후 사도들은 자기 권리로 교회를 감독하고 주님과 같은 권위로 글을 썼다. 특히 바울은 자기 말과 글이 표현과 단어까지 하나님의 말씀이라 확신했다(고전 14:37; 살전 2:13). 그가 교회의 판단에 호소한 것은 승인이 아니라 지지를 구한 것이다. 사도의 권위는 교회에서 나오지 않았다.
  1. 처음부터사도 문서들이 각 교회에서 권위를 인정받아 회람·번역됨. 바울 서신은 다른 성경과 동등(벧후 3:16).
  2. 2세기 후반대부분이 구약과 동등한 권위를 누림.
  3. 4세기 말공의회들이 이를 공식화.
교회는 정경을 만들지 않았다이미 자리 잡은 관례를 확인하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여기서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승인에 두는 로마 가톨릭과 갈라진다.
  • 정경성의 기준을 하나로 못 박을 수 없다. 사도적 기원이 기준이면 마가복음·누가복음·히브리서가 설명되지 않고, 그리스도에 관한 글이 기준이면 다른 많은 기록(눅 1:1)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 책들은 그 자체로 권위를 가졌고, 성령이 저자와 교회를 함께 이끄셨다.
  •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 능력, 특별계시, 율법, 복음, 그리고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모든 말씀은 태양이신 그분의 광선이다.

2. 영감론의 역사 원서 184–192쪽

  1. 교부 원서 184–186쪽성경의 권위는 증명할 문제가 아니라 전제. 무오성으로 이해, ‘성령의 받아쓰기’ 이미지. 동시에 인간 저자의 요소도 인정.
  2. 중세·로마 가톨릭 원서 186–187쪽트리엔트가 영감을 전통까지 넓힘. 제1차 바티칸(1870)은 중도. 현실에서는 역사비평을 받아들이는 ‘양보론’ 증가.
  3. 종교개혁 원서 188–192쪽영감을 성경 전체로. 그러나 유기적 이해는 거의 발전하지 못함. 후대 정통주의는 기계적 과장(필경사·붓, 모음 부호까지).
  4. 근대영감을 종교·윤리 영역으로 국한 → 슐라이어마허의 역동적(동력적) 영감론: 성경은 계시가 아니라 ‘계시의 기록’.

(1) 교부들의 성경관 원서 184–186쪽

  • 요점: 교부들은 성경의 무오한 권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 교회는 성경 없이 출발한 적이 없다. 오순절에도 손에 구약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모세와 예언자는 처음부터 신적 권위를 지녔으나, 시간이 지나며 구전에 기대는 경향이 글의 권위를 손상시켰다. 예수와 초기 교회는 유대인의 구약 존중은 공유하되 랍비 전통의 광범위한 주장은 거부했다.
  • 교부들이 성경 교의를 따로 다루지 않은 이유: 성경의 권위는 전제였다.
교부성경관
공통하나님이 저자, 기록자는 성령의 손.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보내신 편지. 쓸모없는 부분이 없다
오리게네스신적 위엄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히에로니무스음절과 부호까지 신비를 담는다
아우구스티누스정경 기록자가 실수했다고 믿지 않음. 오류처럼 보이면 사본의 결함, 번역자의 실수, 독자의 몰이해를 먼저 의심하라. 연대·역사 문제도 예외 아님
  • 그러나 교부들은 인간 저자를 지우지 않았다. 몬타누스주의(새 예언을 내세운 열광주의)에 맞서 성경의 필요성을 변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레나이우스·오리게네스·에우세비오스·아우구스티누스·히에로니무스는 저자의 사전 조사, 지적 수준 차이, 자료와 기억 활용, 문체 차이를 인정했다. 그래도 신적 권위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 이 시기의 관심은 영감 개념 정리보다 어떤 책이 정경인지 확정하는 데 있었다.

(2) 중세와 로마 가톨릭 원서 186–187쪽

  • 요점: 가톨릭은 교회 권위 덕에 양보할 수 있지만 개신교는 그럴 수 없다.
  • 신약 사도적 글이 ‘신적인 글’이라는 확신은 교회 전체의 믿음이 되었고 중세에도 논란이 없었다.
  • 트리엔트 공의회: 성경에 대한 신뢰를 확증하되 영감의 범위를 교회 전통까지 넓혔다. 개신교와의 첫 분기점.
가톨릭 내 견해영감의 범위
아우구스티누스회·도미니크회·얀센파단어까지 성령이 영향(엄격)
루뱅의 예수회축자영감 거부
일부성령의 역할을 오류 방지로만
다른 일부종교·윤리 가르침에 한정, 나머지는 오류 가능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70)교회의 승인 때문도, 오류 없는 계시를 담아서도 아니라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어 하나님이 저자이시기 때문에 정경. 영감은 하나님의 적극적 행위, 무오성은 그 결과. 그러나 신앙의 대상은 성경과 전통 모두

로마 가톨릭

교의가 교회의 권위를 토대로 선다. 그래서 성경에 대해 많이 양보해도(양보론) 체계가 무너지지 않고 근대 학문을 수용할 여유가 있다.

개신교

교회 권위라는 안전망이 없다. 성경이 유일한 권위이므로 영감론이 무너지면 교리 전체가 무너진다. 엄격한 영감론은 고집이 아니라 구조상의 필연이다. (역사 연구를 무조건 배척한다는 뜻은 아니다.)

(3) 종교개혁과 근대 신학 원서 188–192쪽

  • 요점: 완전한 영감을 지키되 기계적 과장과 근대적 축소를 모두 피한다.
  • 종교개혁자들은 영감을 적극적으로 받아 성경 전체로 넓혔다. 루터는 구원론을 잣대로 에스더·에스라·느헤미야·야고보서·유다서·요한계시록에 비판적이었고 사소한 불일치도 인정했으나, 영감 자체는 글자 하나까지 엄격히 고수했다. 칼뱅도 성경을 온전하고 문자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다. 루터파·개혁파 신앙고백이 모두 신적 권위를 고백했다.
  • 그러나 인간 저자의 온전한 참여를 살리는 유기적 이해는 거의 발전하지 못했다. 비판자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열심이 과장으로 흘렀다: 기록자 = 필경사·붓, 영감을 모음 부호와 연대·지리 세부까지, 문체 차이까지 성령의 뜻으로.
그 열의는 이해할 만하다말씀에 대한 반역의 역사가 길다. 여호야김은 바룩의 두루마리를 불태웠고(렘 36), 마르키온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을 갈랐으며, 켈수스·포르피리오스·배교자 율리아누스가 성경을 비방했다. 18–19세기 볼테르·르낭·슈트라우스·바우어로 이름이 바뀌어도 결론은 같았다: 성경은 오류와 거짓으로 가득하다.
  • 성경에 어느 정도 가치를 남기려던 신학자들은 영감을 종교·윤리 영역에 국한하거나 구원에 필수적인 것과 부수적·역사적인 것을 나누었다. 바빙크: 불가능한 구분이다. 성경에서 교리와 역사는 한 몸으로 얽혀 있고, 예수·사도·교회가 성경을 쓴 방식과도 맞지 않는다.
  • 이 이원론은 슐라이어마허의 역동적 영감론으로 이어졌다. 영감은 본문의 속성이 아니라 저자의 성품·기질 문제가 되고, 성경 기록자와 일반 신자의 영감은 정도 차이일 뿐이며, 성경은 ‘계시의 기록’으로 격하된다. 이를 떠받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과도한 몰입(성경이 오류투성이라도 그리스도의 진수는 전한다)이다. 바빙크: 불안정하고 유지될 수 없다.
  • 그래도 역사 연구와 본문비평의 유익한 통찰은 버릴 필요가 없다. 리츨과 카프탄조차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계시의 객관성을 토대로 삼았다. 계시는 인간 안이 아니라 바깥의 역사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외적·역사적 계시가 교의학의 제1원리다.

3. 유기적 영감 원서 193–200쪽

(1) 성경의 자기증거: 유기적 영감 원서 193–196쪽

  • 요점: 성경은 스스로 영감되었다고 증언하며, 그 증언은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 성경은 영감을 교리문답처럼 정리하지 않지만, 삼위일체나 성육신처럼 교리를 세울 재료는 충분히 준다. 본보기는 예수와 사도들이 구약을 대한 태도다.

귀납적 입장

성경의 형성 과정·문체·역사(현상)부터 살피자. 미리 정한 교리 틀을 본문에 강요하지 말라. 우려 자체는 정당

바빙크

결정적 질문은 성경이 스스로 영감을 가르치느냐, 우리가 그것을 믿느냐다. 성경의 ‘현상’을 반대 증인으로 세워 자기증거를 뒤집을 수 없고, 학문이 심판관이 될 수도 없다. 역사비평은 성경의 발생과 구조를 밝혀 줄 수 있지만, 『일리아스』 기원 연구를 교리라 부르지 않듯 교의는 나오지 않는다. 이 방법으로 무너지는 것은 특정 이론이 아니라 영감 자체다.

θεόπνευστος (테오프뉴스토스, 딤후 3:16)

성경에 한 번만 나온다. 능동이면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는’, 수동이면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 바빙크는 네 근거로 수동을 택한다.

  1. 문법θεος와 결합된 유사 단어들이 대개 수동
  2. 벧후 1:21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말했다
  3. 신약 밖 용례모두 수동
  4. 교부이해가 일치
순서성경이 영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영감되었기에 영감을 준다.
  • 성경의 영감은 성령이 창조세계에 내재하시기에 가능하다(시 104:30; 욥 32:8). 시인·예술가의 영감은 유비가 될 수 있다. 다만 성경의 영감은 일반 섭리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특별계시의 일이다.
  • 성령은 기억을 돕고(요 14:26), 사건을 새 관점에서 비추고(요 16:12–14), 명령 없는 문제에도 판단을 이끄시되(고전 7:40) 저자의 은사를 사용하신다.

(2) 유기적 영감의 정의 원서 196–198쪽

  • 요점: 하나님이 원저자, 기록자는 도구이며, 동력적·기계적 견해는 모두 부족하다.
  • 예언자가 하나님을 대신해 말할 때 실제로 말씀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신약 그리스어는 이를 전치사로 구별한다.

하나님께는 ὑπό (휘포)

행위의 주체. 하나님이 원저자.

예언자에게는 διά (디아)

통로. 기록자는 도구이자 2차 저자(마 1:22; 눅 1:70; 행 28:25).

두 오해영감을 오류를 막는 보호로 축소하지 말고, ‘오류 없음’에서 거꾸로 영감을 추론하지도 말라. 교회가 성경을 정경으로 받은 이유는 오류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저자이시고 그렇게 교회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견해성령의 역할인간 저자바빙크의 평가
기계적 영감단어까지 받아쓰게 하심붓·필경사부족 저자의 은사·개성·역사적 상황을 무시. 하나님은 사람을 나무토막처럼 다루지 않고 지성과 도덕을 지닌 존재로 다루신다
동력적 영감종교적 감흥을 일으킴사실상 저자부족 영감을 중생과 혼동, 성경을 경건 서적 수준으로. 하나님이 생각과 단어로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부정
유기적 영감저자의 개성·연구·기억을 그대로 사용온전히 자기 자신가장 적절 성경의 ‘종의 형체’를 강조하고 하나님의 점진적 교육 방식을 존중
  • 동력적 견해에 대한 답: 성령은 들은 것을 말씀하시고 장래 일을 알리시며(요 16:13), ‘하나님의 말씀들’은 늘 신적 권위의 신탁이다(롬 3:2; 벧전 4:11). 딤후 3:16도 내용보다 기원을 가리킨다.
  • 바빙크는 성경의 인간적 측면을 선명히 보게 해 준 근대 사상가들에게 오히려 감사한다. 저자의 개성을 지우거나 그를 자기 시대 밖으로 끌어내서는 안 된다.

(3) 저자의 인격과 말씀의 성육신 원서 198–199쪽

  • 요점: 말씀이 육신이 되었듯 말씀이 성경이 되었고, 저자는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다.
하나님의 일하심인간 본성을 어떻게 대하시나
창조세계를 자신에게 의존하면서도 구별된 ‘타자’로. 인간은 자유·이성·의지를 가진다. 방식은 강제가 아니라 설득
성육신로고스는 인간 본성을 갑자기 덮치지 않고 성령으로 준비해 맞는 매개체로 빚으셨다
중생·회심인간의 능력을 파괴하지 않고 죄에서 씻어 회복하신다
영감같은 원리. 성령은 예언자·사도 안에서 그들 스스로 살피고 숙고하고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그들 자신이 말한 것이다(벧후 1:21)
  • 저자들의 기질·성향·지적 수준·감정·의지는 소명 때 제거되지 않고 미리 빚어진 그대로 섬김에 동원되었다.
  • 조사(눅 1:3), 성찰, 기억(요 14:26), 자료 활용 같은 통상적 수단이 쓰였고, 시편처럼 개인 경험이 재료가 되기도 했다.
  • 그래서 성경에는 산문과 시, 서사와 드라마, 편지와 예언, 비유와 우화(삿 9:7) 등 모든 장르가 있다. 단서: 각 장르는 제 내적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시를 역사 기록의 잣대로 재지 말라.
말씀(로고스) 성령으로 준비된 인성을 취하심 육신 (그리스도) 참 하나님, 참 사람 (요 1:14) 말씀(하나님의 생각) 성령이 저자의 개성·연구·기억 사용 성경 전적으로 신적, 전적으로 인간적 유비
유기적 영감은 계시의 중심 사건인 성육신이 성경에 실현되고 적용된 것이다
인간 언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성경은 모든 경전처럼 비판·오해·연구의 대상이 되는 길을 피하지 않는다(종의 형체). 능력의 탁월함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성경은 전적으로 성령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저자의 창작 활동의 산물이다. 하나를 줄여 다른 쪽을 세울 필요가 없다.

(4) 기록 영감과 완전 영감 원서 200쪽

  • 요점: 영감은 기록 자체에 미치며, 중심과 주변을 포함해 완전하다.
  • 유기적 영감은 ‘기록에 관한’ 영감이다. 영감된 사상과 단어, 단어와 문자를 떼어낼 수 없다.
  • 성경이 인격적으로 말을 건다는 점은 중요하지만, ‘인격적’ 특성을 구실로 실제 본문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기록된 복음과 성육신하신 말씀은 분리될 수 없다. 사도적 증언을 믿을 수 없다면 그리스도를 아는 길도 막힌다.
  • 그리스도에게 권위가 있다면 그분이 성경에 대해 가르치신 것에도 권위가 있다. 영감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권위 위에서 받아들인다.
중재신학대학 강단에서는 영감을 부정하고 설교단에서는 인정한다. 머리와 가슴을 이렇게 가르면 심각한 영적 질병이 온다.
  • 그렇다고 모든 단어·문자를 낱개로 신적 의미가 있는 듯 읽자는 것은 아니다. 단어는 사상 안에, 모음은 단어 안에 있다. 본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과 글자를 주술처럼 다루는 것은 전혀 다르다.

영감 개념이 줄어든 역사

  1. 모음 부호·구두점
  2. 단어
  3. 생각
  4. 주제
  5. 종교적-윤리적 내용
  6. 인격
  7. 영감 자체 부정→ 기독교 신앙의 거부

성경에는 중심과 주변이 있다. 모든 구절과 책이 신앙의 핵심에 똑같이 가깝지 않고 가치도 같지 않다. 그러나 주변도 하나님의 사고 범위 안의 부분이다. 그래서 성경의 영감은 완전(plenary) 영감이다.

4. 반대와 답변 원서 201–208쪽

(1) 비평적 반대와 겸손 원서 201–204쪽

  • 요점: 반대의 뿌리는 마음의 적대감이며, 신앙은 겸손한 투쟁으로 시작된다.
  • 역사비평의 반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배후의 영적·윤리적 적대감도 놓치면 안 된다.
  • 성경이 그리스도 안의 계시의 기록이라면,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려고 세워지신 그리스도(눅 2:34)가 받은 반대를 성경도 받는다. 성경은 마음의 생각을 판별한다(히 4:12). 종이 상전보다 높을 수 없듯 그리스도의 시녀인 성경은 그분이 받은 비방에 동참한다.
의무성경이 우리를 판단하지, 우리가 성경을 판단하지 않는다. 의문을 품는 것이 곧 불신앙은 아니지만 겸손은 모두의 의무다. 적대감은 오늘의 비평에만 있지 않고 죽은 정통주의의 형식적 신앙에도 있다(약 1:25; 눅 12:47). 각 사람은 먼저 적대감을 내려놓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고후 10:5).
기독교의 첫째·둘째·셋째 계율은 겸손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칼뱅이 인용, 파스칼도 이성에게 겸손을 외침)
  • 신자도 모든 의심에서 해방되지는 않는다. 성경에는 의심을 일으키는 요소와 풀리지 않을 난제가 있다. 생각을 복종시키는 일은 평생의 전투이고, 투쟁 없는 신앙은 없다.
  • 위로: 난제 대부분은 새 발견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예수와 사도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했다.
  • 모든 반대가 풀린 뒤에 믿겠다는 사람은 결코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롬 8:24; 요 20:29). 모든 학문도 신앙에서 출발한다. 음식의 유래를 다 알기 전엔 먹지 않겠다면 굶어 죽는다. 불신앙은 불가사의를 줄이지 못하고 불안만 키운다.

(2) 반론에 대한 답변 원서 204–208쪽

  • 요점: 유기적 영감은 성경의 인간적 특성과 신적 권위를 함께 설명한다.
반론바빙크의 답
책마다 문체·언어·개성이 다르고, 자료 수집·기억·경험에 의존한 흔적이 있다유기적 견해가 바로 이것을 설명한다. 계시는 위에 머물지 않고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의 삶 속으로 내려온다. 성령은 개성을 지우지 않고 유지하고 거룩하게 하셨다.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전하게 한다.
성경의 자연과학과 역사 서술은 근대 학문 기준에 맞지 않는다성경의 목적은 이스라엘 역사나 팔레스타인 지리가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딤후 3:15). 그러나 학문과 무관하지 않다: 창조·타락·인류의 통일성·홍수는 다른 학문에도 근본적이며 성경은 삶의 모든 영역에 권위를 주장한다. 다만 사실들은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신학적 목적으로 전달되고(바로니우스), 관찰과 일상 경험의 언어로 말한다. 저자들에게 당대를 넘는 과학 지식은 필요 없었다.
성경의 역사 서술은 근대 방식과 다르다옳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사건의 실제성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거룩한 역사도 역사이지 전설이나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다. 기대만큼 정확하지 않아도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
아직 연구가 남은 문제바빙크는 영감 교리가 아직 완전히 발전하지 않았다는 단서를 단다. 부자와 나사로가 실존 인물인가, 욥기·전도서·아가에 역사적 가치를 얼마나 둘 것인가, 예언은 사실적인가 상징적인가는 각각 연구가 필요하다.

성경은 일상의 사소한 일도 다룬다(딤후 4:13). 인간적인 방식으로 말하기에 오히려 인류를 위한 책이 되며,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는 생명의 말씀으로 영원히 있다.

구조도

  1. 자기증언예언자·예수·사도의 증언
  2. 교회의 승인정경을 창조 아닌 수용
  3. 역사의 굴곡교부·가톨릭·개혁·근대
  4. 유기적 영감기계도 동력도 아님
  5. 성육신 유비말씀이 성경이 되다
  6. 완전 영감기록 자체가 영감됨
  7. 반대와 겸손마음의 적대감 내려놓기
  8. 반론 답변구원의 지혜, 전 영역 권위
기계적 영감 성령: 단어까지 받아쓰게 저자: 붓·필경사 인간 요소 무시 (후대 정통주의) 유기적 영감 성령: 개성·연구·기억 사용 저자: 온전히 자기 자신 하나님 = 원저자(ὑπό) 기록자 = 도구(διά) 전적으로 신적·인간적 동력적 영감 성령: 종교적 감흥 저자: 사실상 저자 말씀 계시 부정 (슐라이어마허·근대) 신적 요소만 성육신 유비 · 완전 영감 인간적 요소만
바빙크는 양쪽 극단을 모두 거부하고 유기적 영감을 제시한다

다른 입장과 바빙크

입장그 입장의 주장바빙크의 답
로마 가톨릭(트리엔트·양보론)영감은 전통에까지 미치고 교회 권위가 교의를 떠받친다성경은 그 자체로 권위를 갖는다. 영감론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므로 양보할 수 없다.
후대 개신교 정통주의기록자는 성령의 붓이며 영감은 모음 부호에까지 미친다하나님은 사람을 나무토막이 아닌 지적·도덕적 존재로 다루신다. 개성과 문체는 지워지지 않는다.
슐라이어마허·근대 신학영감은 저자의 성품의 문제이며 성경은 계시의 기록일 뿐이다영감을 중생과 혼동한다. 성경은 영감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영감되었기에 영감을 준다.
귀납적 비평성경론은 성경의 형성과 현상을 연구한 결과 위에 세워야 한다역사 연구는 통찰은 주지만 교의를 낳지 못한다. 성경론은 성경의 자기증언 위에서만 선다.
중재신학강단에서는 영감을 부정해도 설교단에서는 시인할 수 있다머리와 가슴의 분리는 영적 질병을 낳는다. 그리스도의 권위는 그의 성경관에도 미친다.
난제 유보론모든 불일치가 해결될 때까지 믿음을 유보해야 한다난제 대부분은 모든 시대가 알았고, 모든 학문도 신앙에서 출발한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오해와 바른 이해

✕ 오해

  • 교회가 정경을 결정해 성경에 권위를 주었다.
  • 오류가 없으니까 영감된 것이다.
  • 성령이 받아쓰게 했으니 인간 저자의 흔적은 없다.
  • 영감은 저자가 받은 종교적 감동이다.
  • 교리만 영감되고 역사·지리는 오류 가능하다.
  • 성경은 학문과 무관한 신앙 책이다.
  • 성경 역사는 교훈을 위한 전설이다.
  • 모든 난제가 풀린 뒤에 성경을 믿겠다.

✓ 바른 이해

  • 교회는 이미 권위 있는 책을 승인·수용했을 뿐이다.
  • 하나님이 저자이시기에 영감되었고, 무오는 그 결과다.
  • 성령은 저자의 개성·문체·연구를 그대로 사용하셨다.
  • 영감은 기록 자체에 미치며 중생과 구별된다.
  • 성경에서 교리와 역사는 얽혀 있어 나눌 수 없다.
  • 구원의 지혜가 목적이되 창조·타락 등 전 영역에 권위를 가진다.
  • 근대적 정밀성과 다르지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역사다.
  • 그렇게는 신앙에 못 이른다. 학문도 믿음에서 출발한다.

핵심 용어

영감
성령이 저자를 움직여 그 글을 하나님의 말씀 되게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일.
테오프뉴스토스 (θεόπνευστος)
딤후 3:16. 바빙크는 수동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으로 읽는다.
유기적 영감
성령이 저자의 성품·은사·연구·기억을 그대로 사용해 기록하게 하심. 말씀의 성육신의 적용.
기계적 영감
저자를 받아쓰는 붓·필경사로 보고 인간적 요소를 무시하는 견해.
동력적(역동적) 영감
영감을 저자의 종교적 감흥·성품 정도로 보는 근대 견해(슐라이어마허).
완전 영감 (plenary)
중심과 주변을 포함해 성경 전체에 미치는 영감.
정경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인·수용한 권위 있는 책들의 목록.
ὑπό / διά
하나님께는 행위 주체(휘포), 예언자에게는 통로(디아). 원저자와 도구의 구분.
양보론
영감을 일반적으로 긍정하면서 급진적 역사비평의 결론을 수용하는 가톨릭 내 경향.
종의 형체
성경이 인간 언어와 역사의 한계를 입은 모습.
계시의 기록
성경을 계시 자체가 아닌 계시에 대한 기술로 보는 근대 견해.
로고스
‘말씀’. 계시자이자 계시 내용이신 그리스도. 모든 말씀은 태양이신 그분의 광선.

성경 근거

구절이 장에서의 쓰임
딤후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숨)으로 되었다. 핵심 자기증언.
벧후 1:21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하나님께 받아 말했다.
렘 23:16거짓 예언자는 자기 마음의 말을 전한다.
마 5:18성경의 권위는 일점일획까지 미친다.
요 10:35성경은 폐하지 못한다.
마 1:22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예언자는 도구다(ὑπό / διά).
살전 2:13사도의 말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 14:26성령이 사도들의 기억을 도우신다.
요 1:14말씀이 육신이 되셨듯 말씀이 성경이 되었다.
고후 10:5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겸손한 투쟁.
딤후 3:15성경의 목적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후서 3:16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베드로후서 1:21

복습 문제

구약 예언자들의 자의식은 영감 교리에 대해 무엇을 보여 주는가?
예언자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야웨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로 자기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구별했다. 계시를 듣고 보고 삼킨다는 표현은 말씀이 밖에서 왔음을 뜻하며, 거짓 예언자는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말하는 자였다. 기록된 예언도 구두 말씀과 같은 권위를 가졌다. 영감 교리는 신약 이전에 구약 안에 이미 있다.
그리스도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리스도는 참되고 충성된 증인이시며, 구약을 점 하나까지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대하는 것은 그분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이 점에서 틀리셨다면 종교의 핵심에서 오류를 범하신 것이니 최고의 예언자일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를 참된 선생으로 받는 사람은 성경에 관한 그분의 가르침만 골라 거부할 수 없다. 또 신약은 그분이 세우고 성령을 주신 사도들의 증언이다.
“교회는 정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승인했다”는 말의 근거는?
사도의 권위는 교회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도 문서들은 처음부터 교회에서 권위를 인정받아 회람되었고, 2세기 후반 대부분이 구약과 동등한 권위를 누렸으며, 4세기 말 공의회는 이미 자리 잡은 관례를 확인했을 뿐이다. 정경성의 기준을 사도적 기원 등 하나로 정할 수 없고, 그 책들은 그 자체로 권위를 가졌다.
로마 가톨릭은 ‘양보론’이 가능한데 개신교는 왜 엄격한 영감론을 붙들 수밖에 없는가?
가톨릭에서 교의는 교회의 권위를 토대로 서므로 성경에 대해 양보해도 체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개신교에는 교회 권위라는 안전망이 없고 성경이 유일한 권위이므로, 영감론이 무너지면 교리 전체가 무너진다. 이는 고집이 아니라 구조상의 필연이다.
기계적·동력적·유기적 영감을 비교하고, 유기적 영감을 성육신에 빗대어 설명하라.
기계적 견해는 저자를 받아쓰는 붓으로 보아 인간 요소를 무시하고, 동력적 견해는 영감을 저자의 종교적 감흥으로 보아 중생과 혼동하며 말씀 계시를 부정한다. 유기적 영감은 하나님이 원저자(ὑπό)이고 기록자는 도구(διά)이되, 성령이 저자의 기질·연구·기억을 그대로 쓰셔서 저자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다고 본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듯 말씀이 성경이 되어, 성경은 전적으로 신적이며 전적으로 인간적이다.
성경이 학문 교과서가 아니라면 학문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성경의 목적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며, 관찰과 일상 경험의 언어로 말하므로 저자들에게 당대를 넘는 과학 지식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창조·타락·인류의 통일성·홍수 같은 사실은 다른 학문에도 근본적이며, 성경은 삶의 모든 영역에 권위를 주장한다. 그 사실들은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신학적 목적으로 전달된다.
한 줄“성경은 성령이 사람을 통해 쓰신 온전한 하나님 말씀이자 인간의 글이다.”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