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기
❓ 신학과 종교는 무엇 위에 서 있는가?
- 신학은 종교나 신앙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다. 그래서 철학이나 비교종교학에서 토대를 빌리지 않고 계시에서 출발해 자체의 제1원리를 가진다.
- 그 원리는 삼위일체적이다: 하나님(본질의 원리), 성경(외적 인식 원리), 성령(내적 인식 원리).
- 이성주의는 바깥 세계를 잃고 경험주의는 정신을 물질로 만든다. 같은 로고스가 바깥 세계와 우리 사고의 법칙을 지으셨기에 참된 앎과 학문이 가능하다(기독교 실재론).
- 종교도 객관적 계시와 주관적 경외·신앙이 구별되지만 나뉠 수 없이 묶여 있다. 의존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때 사람은 가장 자유롭다.
- 종교를 지식(헤겔)·의지(칸트)·감정(슐라이어마허) 하나로 줄이거나, 인간 욕구에서 기원을 찾는 시도는 실패한다. 참된 종교는 전인을 아우르되 지식이 먼저다.
1. 학문과 사고: 신학의 제1원리 원서 107–110쪽
- 요점: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므로 자체의 삼위일체적 원리를 가진다.
- 근대는 신학의 학문적 토대를 철학에 맡겼다. 이는 교의신학에 독자적 지위를 주지 않는 환상의 출발점이다. 트뢸치처럼 비교종교학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끌어내려는 시도도 실패한다.
- 신학의 목표: 이성적 피조물이 하나님을 알고, 앎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다(마 11:25–26).
- 그러므로 신학은 계시와 함께 시작하고 신앙에서 발현하며, 다른 분야의 원리를 빌리지 않고 자체 안에서 제1원리를 표명한다.
(1) 세 원리
제1원리(principia)는 실재의 근본 원인·근거 자체이자 그것을 알게 하는 수단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존재·인식의 원리를 구분했고 신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원형적 지식
하나님 자신의 삼위일체적 자기 지식.
모사적 지식
인간 이해에 맞게 적응된 계시 지식.
(2) 이성주의와 경험주의
| 구분 | 이성주의 (주체 지향) | 경험주의 (객체 지향) |
|---|---|---|
| 인물 |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 베이컨, 로크, 흄, 콩트, 밀 |
| 정신 | 변화무쌍한 지각에 정신적 질서를 주려는 이해할 만한 시도 | 정신은 수동적 서판, 감각만이 지식의 원천 |
| 문제 | 표상에만 접근한다고 하면 사고만이 실재라는 관념론. “눈을 광원으로 삼는 것”과 같아 사고 바깥에 실재가 없다는 결론 | 정신의 능동성과 증명되지 않은 전제의 역할을 놓침. 정밀과학 외에는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아 인문과학과 신학을 배제 |
| 귀결 | 바깥 세계를 잃는다 | 정신을 뇌로 환원하는 유물론 |
바빙크는 두 극단에서 자신을 지킨다. 선악·법·종교·도덕이 사는 비가시적 정신 세계도 감각 세계만큼 실재한다.
2. 실재론과 보편자(로고스) 원서 110–113쪽
- 요점: 동일한 로고스가 실재와 사고 법칙을 함께 창조했기에 지식과 학문이 가능하다.
- 지식론의 출발점은 일상 경험의 보편적·자연적 확신이다. 실재는 우리 생각과 무관하게 우리 바깥에 있다. “먼저 사람이 있고 그다음에 철학자가 있다”(테르툴리아누스). 사는 것이 먼저다.
- 학문적으로 증명되는 확신이 가장 근본적이거나 유일한 확신이 아니다. 보편적·직관적·자명한 확신이 먼저 있는데, 이를 ‘신앙의 확신’이라 부른다.
-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기독교 사상가들은 이성주의와 본유관념을 거부하고 감각의 우선성을 인정하는 실재론을 지지했다.
경험주의와 같은 점
- 감각 인식이 모든 지식의 출발점이다.
- “지성은 감각상 없이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아퀴나스).
- 창조 교리: 지성은 몸, 곧 세상에 매여 있다.
경험주의와 다른 점
- 정신은 백지도, 반사만 하는 거울도 아니다. 감각 인식 자체가 의식의 능동적 행위다.
- 지성은 구체적 사건에서 보편적 판단을 끌어내므로 학문의 기관이다.
- 학문은 개별이 아니라 보편적·필연적인 것을 다룬다.
유명론 거부
보편자는 이름뿐이다. → 학문이 불가능해진다.
실재론 지지
보편자가 사물 안에(in re), 또 사물을 좇는 정신 안에 실재한다.
실재론의 신학적 근거
- 로고스의 창조동일한 로고스가 바깥의 실재와 안의 사고 법칙을 창조하셨다(요 1:3; 골 1:15).
- 외적 토대창조세계. 벨기에 신앙고백서 2조: 모든 피조물이 글자가 되는 아름다운 책.
- 내적 토대만물 안의 로고스를 알아보는 이성의 빛, 곧 지성. 하나님의 지성이 주시는 선물.
- 상응세상은 하나님의 생각이 체현된 것. 정신과 실재가 유기적으로 상응하므로 학문이 가능하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태양 비유를 빌려 하나님을 정신의 태양이라 했다. 태양이 사물을 비추고 눈도 밝히듯 하나님의 빛 안에서만 진리를 본다(시 4:6).
- 단서(토마스): 인간 이성 자체가 신적인 것은 아니다. 신적 로고스에 참여할 뿐이다.
- 결국 진리의 지식을 정신에 전달하시는 분은 성자를 통해 성령 안에서 계시하시는 성부시다.
3. 종교의 토대들 원서 114–118쪽
(1) 종교의 토대들: 언약의 두 측면 원서 114–115쪽
- 요점: 성경은 종교를 객관적 계시와 주관적 경외·신앙의 언약 관계로 제시한다.
- 종교의 본질은 학문·도덕·예술과 구별해 규정해야 한다. 어원으로는 규정할 수 없다. 락탄티우스는 religio를 religare(묶다)와 연결해 사람을 하나님께 묶는 끈으로 풀었고, 이 단어는 라틴어 성경(행 26:5; 약 1:27)을 거쳐 유럽 언어로 퍼졌다. 그러나 어원 논의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 토대가 되지 못한다.
- 성경은 종교의 일반 개념 대신 언약적 방식으로 말한다.
| 구분 | 객관적 측면 | 주관적 측면 |
|---|---|---|
| 구약 | 언약(베리트)과 신적 법령(토라). 말씀, 계명, 명령, 규례와 법도, 심판과 판단, 도리와 도, 율법 등 많은 이름은 객관적 측면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 주님을 경외함: 율법에 대한 경건한 사람의 내적 성향. 율법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되어 지성으로 숙고하고 의지로 지키며 종일 기쁨으로 삼는다. |
| 신약 | 일련의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 그분이 길이며 진리다(요 14:6). 주님의 도·가르침·복음·말씀이 모두 그리스도에게 집중된다. | 유세베이아(εὐσέβεια): 자녀가 부모에게 갖는 것 같은 거룩한 공경(참뜻은 복음에서 처음 계시, 딤전 3:16). 피스티스(πίστις): 하나님의 은혜를 어린아이처럼 신뢰함. 즉시 사랑(아가페)을 낳는다. 라트레이아·트레스케이아: 신앙에 따라 드리는 예배와 경배(롬 12:1). |
성경적 종교는 마음의 문제계명은 내면화되어야 한다. 외적 준수만으로는 부족하다.
(2) 객관적·주관적 종교의 통일 원서 116쪽
- 요점: 객관적 종교와 주관적 종교는 구별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외적 준수만 남으면
종교는 형식이 된다. 참된 경건은 결코 객관적·외적이기만 하지 않다.
내면만 남으면
종교는 근거 없는 감정이 된다. 신앙은 외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 참된 종교는 전인(영혼과 육체, 생각과 마음, 온 힘)을 요구한다. 진실한 신앙·굳건한 소망·열렬한 사랑으로 섬기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린다.
- 하나님은 십계명 첫 돌판에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가장 먼저 의무로 명하셨다. 주관적 종교는 이 의무에 상응하는 내적 성향과 동기다.
- 토마스 아퀴나스: 종교를 신학적 미덕(믿음·소망·사랑)이 아니라 도덕적 미덕(분별·정의·용기·절제) 가운데 정의의 덕에 두었다. 하나님께 마땅한 헌신과 예배를 드리는 덕이라는 것이다.
(3) 경건과 의존, 참된 종교 원서 116–118쪽
- 요점: 참된 종교는 의존의 자발적 수용이며, 객관적 계시와 중생을 필요로 한다.
- 종교개혁자들은 토마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종교의 원리인 경건(습성·성향)과 종교의 행위인 예배를 선명히 구분하고, 믿음·소망·사랑을 별개의 미덕이 아니라 내적 종교의 주된 행위로 통합했다. 여기서 로마 가톨릭의 덕 체계와 갈라진다.
| 인물 | 종교 이해 |
|---|---|
| 토마스 아퀴나스 | 정의의 덕(도덕적 미덕) |
| 츠빙글리 | 믿음·삶·율법·의식·성례를 아우름. 하나님을 최고선으로 신뢰하게 하는 결합, 영혼과 하나님의 결혼 |
| 칼뱅 |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지식 → 그 지식이 가르치는 경건(사랑과 결합된 경외) → 경건에서 나오는 예배 |
| 슐라이어마허 | 절대 의존 감정. 불충분하지만 진리의 요소를 담고 있다 |
|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94답 | 바빙크가 꼽는 가장 아름다운 묘사: 유일한 참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만 신뢰하며, 모든 좋은 것을 그분에게서만 기대하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분의 뜻을 거스르기보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 |
의존과 자유
- 하나님과의 관계는 한 개념에 다 담을 수 없지만, 의존은 피조물 됨의 근본을 묘사하므로 좋은 출발점이다.
- 돌·나무·동물도 창조주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의존을 의식하고, 이성적·도덕적 피조물로서 자유를 지닌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자녀이자 형상이다.
- 의존을 부정한다고 자유로워지지 않고, 인정한다고 노예가 되지 않는다. 의존을 의식적·자발적으로 받아들일 때 사람은 최고로 자유롭다.
- 단, 의존을 주권적 능력의 차원으로만 보면 안 된다. 주권자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시다.
참된 종교에 필요한 두 가지
칼뱅의 말처럼 종교의 씨앗은 모든 사람 안에 심겨 있다. 그러나 타락으로 부패해 거짓된 객관적 계시와 만나 우상숭배·자의적 숭배를 낳는다.
- 객관적 계시밖에서 와서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알려 준다.
- 중생사람 안의 부패한 종교성이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 갱신된다.
- 신앙성령으로 영감된 성경이 성령으로 중생한 마음의 밭에서 열매를 맺는다.
4. 근대의 종교 이해 비판 원서 119–123쪽
(1) 비교종교학의 한계 원서 119쪽
- 요점: 종교 바깥의 중립적 시점은 없으며 진리 질문은 피할 수 없다.
- 종교들이 계시·제의·교리 같은 형식적 유사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재하는 것은 ‘종교 일반’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구체적 종교들이다. 일반적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는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 단서: 현상·실천·경전에 대한 역사적 비교연구 자체는 가능하고 적절하다. 그러나 그 배후의 태도와 성향을 중립적으로 시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오직 종교적인 사람만이 종교 현상을 제대로 평가한다. 음치는 음악평론가가 될 수 없다.
- 연구자는 질서를 주고, 위치와 가치를 규정하고, 성장과 퇴보를 추적해야 한다. 이는 측정기준을 요구하고, 참·거짓 판단까지 포함한다. 모든 종교는 결단을 요구한다.
삶은 이론보다 크다객관성과 정확성으로 만족을 주는 보편적 종교학은 있을 수 없다. 종교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지나친 단순화다.
(2)–(4) 종교의 자리: 지식인가, 의지인가, 감정인가 원서 120–122쪽
종교는 인간 정신(psyche) 안에서 어디에 자리하는가? 근대는 세 가지로 답했다.
| 구분 | 지성주의 원서 120쪽 | 주의주의 원서 121쪽 | 감정 원서 121–122쪽 |
|---|---|---|---|
| 대표 | 헤겔(관념론). 앞서 영지주의 | 칸트 전통 | 슐라이어마허(낭만주의) |
| 종교의 좌소 | 지식 | 의지(도덕적 행위) | 감정(심미적인 것) |
| 주장 | 세계 전체가 정신의 전개. 종교는 지식의 한 형태로 철학이 대체한다. 하나님을 아는 인간의 정신이 하나님의 정신 자체다 | 신앙을 인간의 노력으로 달성하는 ‘새로운 순종’으로 봄. 펠라기우스주의적 충동 | 『종교론』(1799): 무한자에 대한 감정, 대상은 우주 전체. 『기독교신앙』(1821–1822): 절대 의존 감정, 하나님은 세계의 절대적 원인 |
| 인정할 점 | 지식은 종교의 질서상 우선한다 | 윤리 강조는 신앙과 행위의 관련을 일깨운다. 행함·사랑 없는 믿음은 죽은 것 | 정서는 종교에 따뜻함·내밀함·생명·능력을 준다. 마음이 종교의 중심. 후기가 전기보다 낫다(하나님이 세상과 더 구분됨) |
| 문제 | 종교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니라 정신의 자기 인식으로 흡수되고 하나님과 인간의 구분이 흐려진다. 결과는 무감각함 | 토대와 건물이 바뀐다. 종교가 도덕에 선행하고 토대가 된다 | 감정은 수동적이라 스스로 아무것도 산출하지 못한다. 참·거짓은 신앙의 범주다 |
종교와 도덕
- 종교: 하나님에 대한 의무. 도덕의 토대.
- 도덕: 이웃에 대한 의무.
- 모든 참된 도덕의 핵심에 종교가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양심을 강제하실 수 있다. 양심의 자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
종교와 예술
- 종교: 삶이고 현실이다.
- 예술: 이상이고 외양이다. 영광의 영역을 멀리서 흘끗 보게 할 뿐 시민으로 만들지 않는다.
- 예술은 죄책을 속량하지 못하고,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하며, 사나 죽으나 위로하지 못한다. 오직 종교만이 한다.
낭만주의의 큰 잘못감정이 신앙에서 떨어져 종교의 독립적 근원이 되면, 각자의 모든 감정이 그 자체로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된다.
(5) 전인을 아우르는 종교 원서 123쪽
- 요점: 참된 종교는 지식·의지·감정을 지닌 전인을 아우르되 지식이 앞선다.
- 헤겔·칸트·슐라이어마허는 모두 종교를 하나의 기능으로 축소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영혼과 육체로 된 우리 전체를 요구하신다.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 그러나 관계에는 질서가 있다. 올바른 지식 없이는 올바른 섬김도 없다. 알지 못하는 것은 갈망할 수 없고 사랑받지 못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먼저 그분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히 11:6).
- 지식은 머리에 머물지 않는다. 시편이 증언하듯 마음을 관통해 두려움과 소망, 슬픔과 기쁨, 죄책과 용서, 비참과 구원의 정서를 일으킨다.
- 지식먼저 바르게 안다
- 마음정서가 움직인다
- 의지섬김과 순종으로 흐른다
5. 종교의 기원과 참된 토대 원서 124–127쪽
(1) 종교 기원 이론 비판 원서 124–126쪽
- 요점: 종교의 기원을 인간 욕구에서 찾는 설명은 하나님을 인간의 종으로 만든다.
- 언어 없는 사회가 없듯 종교 없는 사회도 없다. 기원을 역사·사회·심리 요인으로만 설명하려는 시도는 늘 실패한다.
| 기원 이론 | 바빙크의 비판 |
|---|---|
| 두려움, 성직자의 기만, 인간의 나약함, 행복 추구, 무지 | 어느 것도 충분한 설명이 못 된다. |
| 다윈: 동물 안의 배아(개가 주인에게 느끼는 사랑·종속·두려움) | 개의 정신적 삶을 알 수 없고, 제사·기도 같은 제의가 동물에게 전혀 없다. 종교는 사람을 짐승과 구분하는 거의 유일한 요소다(락탄티우스). |
| 자기보존 욕구(두려움 완화 기제), 행복의 갈망(유익의 수단), 도덕적 자유의 열망, 오이켄의 ‘사람 안의 신적 생명’ | 실제 종교 경험과 어긋나는 추상 개념이고 순환논리다. 무엇을 경배하기 전에 이미 신성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
- 실제로 우리는 양육과 교육으로 종교 공동체에 들어가 신 개념을 받고, 경험과 조화되는 만큼 자기 종교로 삼는다.
- 종교는 막연한 도움의 바람이 아니라 우리보다 크고 뛰어난 특정 권세를 부르는 부름이다. 종교는 언제나 하나님과 세계를 구분한다. 자연의 힘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는 신적 존재가 경배 대상이었다.
가장 중대한 반론이렇게 ‘발견된’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종, 급할 때 돕는 자다. 이기주의가 종교의 원천이 되고, 욕구를 채울 능력이 커질수록 종교는 사라져야 한다. 이 설명들 밑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들었다는 가정이 깔려 있어 설명하려던 현상 자체를 파괴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재하시므로 종교는 계속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2) 계시와 종교성: 종교의 토대 원서 127쪽
- 요점: 하나님·계시·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뿌리박은 영속적 실재다.
- 종교는 하나님 없이 이해될 수 없고,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셔야 한다. 하나님은 종교의 대전제이며, 계시는 종교에서 인식의 외적 원리다.
- 동시에 사람에게 종교를 위한 본성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빛뿐 아니라 빛을 보는 눈도 창조하신다.
| 바깥에서 오는 것 | 안에서 응답하는 것 |
|---|---|
| 소리의 세계 | 귀 |
| 피조물의 로고스 | 사람 안의 로고스 → 학문 |
| 자연의 아름다움 | 미적 감각 |
| 하나님의 계시 | 종교적 헌신: 종교의 씨, 신성에 대한 감각(칼뱅), 종교적 감정(슐라이어마허·옵조머), 믿음(하르트만), 무한에 대한 감정(틸레) |
종교 = 중심
학문지성에 뿌리. 참으로 현세를 풍요롭게
도덕의지에 뿌리. 선으로 현세를 풍요롭게
예술감정에 뿌리. 미로 현세를 풍요롭게
종교전인을 다 포함. 목표는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누리는 영원한 복락
- 종교의 필수불가결성은 역설적으로 증명된다. 종교를 환상이라며 거부하는 순간 사람은 피조물을 자기 하나님으로 바꾼다.
-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고 경배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은 존재 첫 순간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종교적 존재였다. 종교는 나중에 별도 창조나 진화로 추가된 것이 아니다.
- 단서: 종교적 삶의 형태는 온전한 상태·죄의 상태·은혜의 상태·영광의 상태에서 각기 다르다. 그러나 타락이 종교의 본질 자체를 뒤집지는 않는다.
- 하나님·계시·종교는 성부가 성자 안에서 성령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삼위일체적 존재에 뿌리박고 있다(마 11:27; 요 16:13–14; 고전 2:10).
구조도
- 신학의 원리하나님·성경·성령
- 앎의 토대같은 로고스가 세계와 사고를 창조
- 종교의 두 면객관적 계시 + 주관적 신앙
- 축소 비판지성·의지·감정 하나가 아니다
- 기원 비판인간 욕구는 설명하지 못한다
- 삼위일체 토대계시에 응답하는 종교성
다른 입장과 바빙크
| 입장 | 그 입장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이성주의·관념론 | 우리는 표상만 알 수 있으니 사고만이 유일한 실재다. | 눈을 광원으로 삼는 꼴이다. 실재는 우리 바깥에 있고, 사는 것이 철학보다 먼저다. |
| 경험주의·유물론 | 정신은 백지이며 감각과 정밀과학만이 지식이다. | 지성은 능동적으로 보편을 파악하는 학문의 기관이고, 정신의 비가시적 세계도 실재한다. |
| 헤겔(지성주의) | 종교는 지식의 한 형태이며 철학으로 대체된다. | 지식이 앞서지만 종교는 지식으로 축소되지 않고 전인을 아우른다. |
| 칸트 전통(주의주의) | 종교는 의지에 자리한 도덕적 행위다. | 신앙과 행위의 연결은 옳으나 종교가 도덕에 선행한다. 하나님만이 양심을 강제하신다. |
| 슐라이어마허(감정) | 종교의 본질은 절대 의존 감정이다. | 의존은 좋은 출발점이지만 감정은 수동적이다. 참과 거짓은 신앙의 범주다. |
| 종교기원 자연주의 | 종교는 두려움·행복 욕구 등 인간 필요에서 생겨났다. | 그렇게 발견된 신은 인간의 종이다. 하나님이 실재하시기에 종교는 계속된다. |
오해와 바른 이해
✕ 오해
- 신학은 신앙이나 종교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 종교의 본질은 감정이다. 뜨거운 감정이 있으면 그 자체로 참된 신앙이다.
- 종교는 결국 도덕적 행위다. 바른 행동만 하면 충분하다.
- 종교는 두려움·욕구가 만든 환상이다.
- 종교 밖 중립 시점에서 모든 종교를 비교해 본질을 찾을 수 있다.
- 하나님께 의존하면 자유를 잃는다.
✓ 바른 이해
-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며 계시에서 시작한다.
- 감정은 중요하나 수동적이다. 참·거짓은 신앙이 결정하고, 종교는 전인을 요구한다.
- 종교는 도덕의 토대이며 하나님께 대한 의무가 먼저다.
- 그런 신은 인간의 종일 뿐이다. 참 하나님은 실재하신다.
- 중립 시점은 없고 진리 질문은 피할 수 없다.
- 의존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때 가장 자유롭다.
핵심 용어
- 제1원리 (principia)
- 실재의 근본 원인·근거, 그리고 그것을 알게 하는 수단. 한 학문이 기대는 가장 밑바탕의 출발점.
- 본질의 원리 (principium essendi)
- 신학의 존재 근거이신 하나님, 만물의 제1작용인.
- 외적 인식 원리
- 지식이 밖에서 주어지는 통로. 신학에서는 성경(계시).
- 내적 인식 원리
- 지식을 안에서 받게 하는 빛. 신학에서는 성령의 조명.
- 원형적 / 모사적 지식
- 하나님 자신의 삼위일체적 자기 지식 / 인간 이해에 맞게 적응된 계시 지식.
- 실재론
- 실재는 우리 바깥에 있고 보편자가 사물 안에(in re), 정신 안에 실재한다는 입장.
- 유명론
- 보편자는 이름뿐이라며 보편의 실재를 부정하는 입장. 학문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 로고스 (λόγος)
-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신 성자. 바깥 실재와 사고 법칙의 공동 근원.
- 신앙의 확신
- 학문적 증명에 앞서는 보편적·직관적·자명한 확신(예: 실재가 바깥에 있다는 확신).
- 유세베이아 (εὐσέβεια)
-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공경. 자녀가 부모에게 갖는 태도와 통한다.
- 피스티스 (πίστις)
- 은혜를 어린아이처럼 신뢰하는 신앙. 주관적 종교의 핵심. 아가페를 낳는다.
- 라트레이아·트레스케이아
- 신앙에 따라 드리는 예배와 경배.
- 종교의 씨앗
- 모든 사람 안에 심긴 신성 감각(칼뱅). 타락으로 부패했다.
- 절대 의존 감정
- 슐라이어마허가 말한 종교의 본질. 불충분하지만 ‘의존’이라는 진리의 요소를 담는다.
성경 근거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롬 11:36 | 신학의 목표는 하나님을 알고 영화롭게 하는 것. |
| 마 11:25–26 |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다. |
| 고전 8:6 |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고 그를 위해 있다. |
| 요 1:3 | 로고스가 우리 바깥의 실재를 창조하셨다. |
| 골 1:15 | 로고스가 만물의 근원이시다. |
| 시 4:6 | 진리의 빛을 비추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
| 출 20:1 | 언약은 이스라엘 종교의 토대인 신적 제도. |
| 요 14:6 | 신약의 객관적 계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집중된다. |
| 딤전 3:16 | 경건의 참뜻은 복음에서 처음 계시되었다. |
| 롬 12:1 | 신앙에 따라 드리는 예배(라트레이아). |
| 히 11:6 |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먼저 그가 계심을 믿어야 한다. 지식이 먼저다. |
| 마 11:27 | 아들과 아들이 계시해 주기로 택한 자만 아버지를 안다. 삼위일체적 계시. |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태복음 11:27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복음 1:3
복습 문제
신학의 세 원리는 무엇이며, 왜 ‘삼위일체적’이라 하는가?
하나님은 본질의 원리(만물의 제1작용인), 성경은 외적 인식 원리(외적·도구적 작용인), 성령은 내적 인식 원리(내적 조명)다. 성부가 로고스이신 성자를 통해 성령 안에서 자신을 피조물에게 전달하시기 때문에 삼위일체적이다.
이성주의와 경험주의는 각각 어떤 결과에 이르며, 바빙크의 실재론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이성주의는 표상만 안다고 하다가 사고만이 실재라는 관념론에 이르러 바깥 세계를 잃는다. 경험주의는 정신을 수동적 백지로 보아 인문학과 신학을 배제하고 정신을 뇌로 환원하는 유물론에 이른다. 바빙크의 실재론은 동일한 로고스가 바깥의 실재와 안의 사고 법칙을 함께 창조하셨다는 데 근거한다.
성경은 종교의 객관적·주관적 측면을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어떻게 표현하는가?
구약에서 객관적 측면은 언약과 토라(율법·계명·규례 등), 주관적 측면은 주님을 경외함이다. 신약에서 객관적 측면은 그리스도의 인격, 주관적 측면은 유세베이아(경건)와 피스티스(신앙)이며 예배는 라트레이아·트레스케이아로 표현된다.
“의존을 받아들일 때 가장 자유롭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의존하지만 사람은 그 의존을 의식하고 이성적·도덕적 자유를 가진 하나님의 형상이다. 의존을 부정한다고 자유로워지거나 인정한다고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의존을 의식적·자발적으로 받아들일 때 최고로 자유롭다. 이때 하나님은 단지 주권적 능력이 아니라 은혜로운 하늘 아버지시다.
헤겔·칸트·슐라이어마허의 종교관은 각각 무엇이며, 바빙크의 대안은?
헤겔은 종교를 지식(철학으로 대체될 지식의 형태)으로, 칸트 전통은 의지의 도덕적 행위로, 슐라이어마허는 감정(무한자에 대한 감정, 절대 의존 감정)으로 보았다. 바빙크는 참된 종교가 지식·의지·감정을 지닌 전인을 아우르되 관계의 질서에서 지식이 앞선다고 본다.
종교의 기원을 인간 욕구에서 찾는 이론에 대한 가장 중대한 반론은?
그렇게 발견된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종, 급할 때 돕는 자에 불과하며 이기주의가 종교의 원천이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들었다는 가정은 설명하려던 종교 현상 자체를 파괴한다. 하나님이 실재하시기에 종교는 계속 존재한다.
한 줄“신학과 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 계시 위에 서 있다.”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