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기
❓ 교리와 신학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전했나?
- 성경은 신학 교과서가 아니라 금광이다. 교의는 교회 전체가 성경을 성찰해 캐낸 금이다. 전통을 깎아내린 하르낙도, 교회 권위를 과장한 로마 가톨릭도 아닌, 성경의 표준을 따르는 전통만 받는 종교개혁의 길이 옳다.
- 신학은 교회 내부 교육이 아니라 이교와 영지주의의 외부 공격에 맞선 변증에서 태어났다. 변증가에게 철학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었다.
- 니케아·콘스탄티노플이 삼위일체를, 에베소·칼케돈이 기독론의 경계를 그었다. 동방(성육신·신비)과 서방(십자가·법정)의 흐름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절정에 이른다.
- 중세 스콜라주의는 학문 신학을 세웠으나 유명론에서 확실성을 잃었다. 루터파는 정통주의에서 주관주의를 거쳐 종교사학파에서 교의학의 종말에 이르렀다.
- 루터파는 ‘내 구원’을, 개혁파는 ‘하나님의 영광’을 물었다. 개혁파는 17세기 신앙고백에서 정점에 올랐으나 이신론·이성주의 속에 쇠퇴하고, 20세기 초 북미에서 위기에 선다.
1. 교의의 형성 원서 73–75쪽
- 요점: 교의는 교회 전체가 성경을 성찰한 결실이며 성령 아래 진보한다.
- 성경은 신학 교과서가 아니다. 성경의 언어는 구체적인 삶을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언어이지, 주제별 체계가 아니다. 그래서 교의신학이 필요하다.
- 교의신학은 한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임무이자 열매다.
금광의 비유성경이 금광이라면 교회는 거기서 금을 캐내고 인장을 찍어 유통시킨다. 금은 성경에 있고, 다듬어 공적 형태로 내놓는 일은 교회가 한다. 교회는 채굴자이지 광산의 주인이 아니다.
하르낙 전통 과소평가
- 초기 교리 발전 = 기독교와 그리스 철학의 혼합, 예수의 단순한 복음의 부패.
- 교의의 역사를 걷어내고 산상설교의 원래 복음으로 돌아가자.
- 본질: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인류의 형제 됨, 영혼의 무한한 가치.
- 바빙크: 이 주장도 하나의 교의다. 교회의 교의를 자기 교의로 바꿨을 뿐이다.
로마 가톨릭 전통 과대평가
- 교황좌에서 선언한 가르침에 무오한 권위.
- 다만 교황이 새 계시를 받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영감이 아니라 성령의 특별한 도움을 받아 해석할 뿐이다.
- 그래서 성경과 교리 중 무엇을 상위에 둘지의 딜레마를 벗어나지 못한다.
종교개혁 바른 길
- 모든 전통이 아니라 거짓되고 부패한 전통만 거부.
- 사도신경, 처음 네 공의회의 신조, 교부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를 받았다.
- 기준: 성경에서 흘러나오고 성경의 표준을 따르는 전통만 인정.
- 교의의 역사에는 전진과 후퇴가 섞여 있지만 전체로는 진보다. 이를 보증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다. 성령은 교회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할 때까지 쉬지 않으신다(엡 3:19).
- 교의의 역사(교회가 공적으로 고백한 교리의 역사)와 교의신학의 역사(학문적 신학의 역사)는 연결되지만 같지 않다.
2. 초대교회: 변증과 두 경향 원서 75–83쪽
(1) 초기 교회의 교의 원서 75–78쪽
- 요점: 신학은 교회 내부가 아니라 외부 공격에 맞선 변증에서 시작되었다.
- 속사도 교부 시대에는 사도의 가르침을 편지와 짧은 신조로 표현했다. 관심은 분석이 아니라 거룩한 삶(사랑·온유·겸손·순종·순결·화평·일치)이었다. 기독교와 유대교·이교의 차이도 교의보다 윤리 문제로 이해되었다.
- 이교의 학문적 공격켈수스, 배교자 율리아누스. 오경·다니엘·복음서의 진정성, 계시·기적·성육신·속죄·부활·영원한 형벌을 공격. 후대 모든 반론이 이미 여기 있다.
- 혼합 시도신플라톤주의·미트라교로 옛 종교 부활, 또는 영지주의·마니교로 기독교와 이교를 섞음.
- 영지주의물질은 악, 그 기원은 낮은 신 데미우르고스(구약의 하나님과 동일시). 기독교가 역사에서 사변철학으로 바뀜.
- 변증가의 응답참된 기독교적 그노시스. 로고스를 통한 창조와 계시, 물질의 선함, 인간 의지에 있는 죄의 원인으로 이원론을 무너뜨림.
영지주의자에게 철학은
죄와 구원의 내용 자체였다.
변증가에게 철학은
형식에 불과했다. 기독교가 참된 철학이며 외부의 모든 진리 요소를 자기 안에 통일한다.
- 신학은 처음부터 철학과 동맹하며 출발했다. 변증가는 지성주의·도덕주의로 기운 약점이 있었지만, 유스티누스처럼 그리스도를 피로 죄 사함을 주는 화해자·구속자로 보려는 노력도 있었다.
(2) 초기 신학의 두 경향 원서 79–83쪽
- 요점: 초기 신학은 신앙에 선 학파와 사변을 지향한 학파로 갈라졌다.
| 구분 | 테르툴리아누스·이레나이우스 계열 | 알렉산드리아 학파 |
|---|---|---|
| 인물 |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락탄티우스, 이레나이우스, 히폴리투스 |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
| 철학 | 날카롭게 맞섬(“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냐”). 그러나 순진하게 철학을 씀 | 교회의 교리를 사변적 학문으로 바꾸려 함 |
| 신앙과 지식 | 피스티스와 그노시스를 양적으로만 구분 | 질적 차이. 신앙은 단순한 사람에게 충분하나 학식 있는 사람에게는 부족. 피스티스를 그노시스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 |
| 공헌·위험 | 테르툴리아누스가 삼위일체(trinitas), 한 본체와 세 위격, 공로, 성례 등 용어를 도입. 이레나이우스가 신학을 독자적 학문으로 처음 전개(그의 저술에 이후 모든 교의가 들어 있다) | 오리게네스: 성자의 종속, 창조의 영원성, 영혼의 선재, 영·물질 이원론, 만물의 회복. 풍유적 해석으로 성경과 맞춤. 기독교가 관념으로 녹음. 중재신학의 가장 인상적인 표본 |
- 3세기 초 기독교 신학의 토대가 놓였다. 교회는 이방 종교·유대교·영지주의·에비온주의에 맞서 독립성을 지켰다.
- 이어 내부 논쟁: 로고스와 성령이 성부와 어떤 관계인가. 교회는 역동적 단일신론과 양태적 단일신론과 싸웠다.
- 이 시기 체계적 교의학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오리게네스의 『제1원리에 대하여』와 락탄티우스의 『신학체계』뿐이다.
교훈신앙과 지식을 질적으로 가르면 신학은 철학으로 흘러간다.
3. 동방과 서방, 아우구스티누스 원서 83–90쪽
(1) 콘스탄티누스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까지 원서 83쪽
- 요점: 박해가 끝나자 외적 압박이 이단이라는 내적 압박으로 바뀌었고, 동방이 기독론을 세웠다.
- 칼케돈 공식(한 위격에 두 본성이 분리·분열 없이, 혼합·변화 없이)은 답을 다 준 것이 아니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은 것이다. 그래서 단성론(본성이 하나인가 둘인가)·단의론(의지가 하나인가 둘인가) 논쟁이 이어졌다. 기독론 논쟁은 4–8세기 동방 신학을 지배했다.
- 교리문답 교육의 요구로 신론·우주론·인간론·윤리 논문이 나왔다. 카파도키아의 세 교부(니사의 그레고리오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 바실리오스), 크리소스토모스, 위 디오니시우스, 다마스쿠스의 요한(성상숭배 옹호자).
- 동방 정교회는 러시아가 받아들이고 지지한 덕분에 살아남았다.
(2) 동방과 서방의 차이 원서 84–85쪽
| 구분 | 동방 | 서방 |
|---|---|---|
| 중심 주제 | 썩어짐에 종노릇하는 인간이 그리스도로 해방되어 불멸에 참여 | 계명을 어긴 죄인이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 섬 |
| 공명하는 사도 | 요한 | 바울 |
| 무게중심 | 성육신 | 그리스도의 죽음 |
| 그리스도론 | 그리스도의 인격, 양성의 합일 | 그리스도의 사역, 양성의 구분과 중보자의 위치 |
| 성격 | 신비적·예전적 | 정치적·법정적 |
- 분열은 시간 문제였다. 동방은 두 황제·두 수도·동등한 두 주교의 일치를 원했으나, 로마는 마태복음 16:18에 근거해 사도좌의 보편적 지위를 요구했다. 여기에 관습·의식의 차이, 특히 필리오케 논쟁이 결합해 1054년 분열이 일어났다.
- 그럼에도 서방은 동방에 의존했다. 니케아에서 제4차 콘스탄티노플까지 주요 공의회는 모두 동방에서 열렸고 서방도 인정했다. 교리의 객관적 토대는 같았다. 힐라리우스·암브로시우스·히에로니무스·루피누스·카시아누스를 통해 풍유적 주해, 플라톤적 신학, 수도원주의가 서방의 유산이 되었다.
(3) 절정인 아우구스티누스 원서 86–88쪽
- 요점: 동서방 교의 발전 전체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절정에 이른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받아들인 것
동방삼위일체론과 기독론
테르툴리아누스·암브로시우스인간, 죄, 은혜, 공로 교리
신플라톤주의철학적 사유
키프리아누스교회론과 성례론
히에로니무스·힐라리우스수도원 이상
- 책으로만 모은 것이 아니라 풍부한 삶의 경험으로 내면화했다. 교의 체계는 쓰지 않았지만(가장 가까운 것이 믿음·소망·사랑을 해설한 『편람』) 그보다 깊이 신학 문제를 판 교부는 없다. 훗날 교의학 서론의 주제들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심리적 문제를 처음 꿰뚫었다.
- 출발점은 인간: 자기의식, 진리·행복·선에 대한 갈망. 자기 지식과 하나님 지식이 사고의 두 기둥이고 자연 지식은 종속된다. 인간은 하나님만을 추구할 때 안식한다. 우리를 하나님께 이끄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신앙이다.
- 세계: 한편으로 비존재, 다른 한편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지어진 예술작품.
- 죄: 영혼의 교만과 육체의 정욕, 아담 안에서 모두의 운명. 선의 결핍이자 행위를 넘어 상태, 죄 짓지 않을 수 없는 부패.
- 구원: 예정에 기원을 둔 은혜로만. 그리스도 안에서 객관적으로 계시되고, 신앙과 사랑을 주입하는 내적 은혜로 주관적으로 들어와야 한다.
긴장
그에게 은혜는 가시적 교회와 성례 안에서만 작용한다. 교회는 구원의 기관, 은혜의 시여자, 권위의 좌소, 성경의 보증인, 신자들의 어머니. 이를 예정·은혜 교리와 조화시키기 어렵다.
양쪽이 그에게 호소한다
- 로마 가톨릭: 교회·성례·권위 교리
- 종교개혁: 예정과 은혜 교리
모든 개혁은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로 돌아간다그는 한 교회가 아닌 모든 교회의 보편적 교사다. 고전적·미적 세계관을 기독교적·윤리적 세계관으로 바꾸었고, 가장 기독교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교부이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교의학자다.
(4)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중세 초기 원서 89–90쪽
- 요점: 은혜론은 약화되고, 중세 초는 수집과 모방의 시대였다.
- 은혜론은 두 방향에서 공격받았다: 펠라기우스·코엘레스티우스(자유의지), 카시아누스·레랭의 빈켄티우스(수도원 전통).
- 오랑주 공의회(529)는 선행하는 은혜는 받아들였으나 불가항력적 은혜와 배타적 예정은 명시적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펠라기우스주의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 그레고리우스 1세: 새 사상 없이 앞선 가르침을 삶에 적용. 로마 가톨릭을 외적·합법적 종교로 세우고 예전과 음악으로 게르만 민족에 신앙을 전했다. 교리 대중화의 공이 있으나 미신·금욕주의·행위 의도 퍼뜨렸다.
- 보에티우스는 그리스 철학을, 카시오도루스는 학문 방법을, 그레고리우스는 신학을 전수했다. 이시도루스는 편람으로 정리했으나 독창성이 없었다.
- 움직임도 있었다: 알퀸의 양자론 논박, 고트샬크의 이중 예정(선택과 유기), 필리오케의 신조 편입, 성상 숭배 반대의 소멸, 미사 교리의 발전.
- 에리우게나: 신플라톤주의적 유출론에 기초해 신학과 철학은 하나라고 보았다. 이성이 껍질을 벗겨 안의 사상을 찾는다. 교의가 우주와 신의 발생 과정에 대한 철학으로 바뀌었다.
4. 로마 가톨릭의 교의신학 원서 92–95쪽
- 요점: 스콜라주의는 학문 신학을 세웠으나 가톨릭 경건을 새롭게 하지 못했다.
- 10세기 이후 클뤼니 수도원 개혁과 십자군이 활력을 주고, 대학의 탄생이 스콜라 신학을 낳았다.
실증신학
교의를 간단한 명제로 제시하고 증명하는 데서 멈춘다.
스콜라 신학
실증신학이 멈춘 곳에서 시작한다. 교의를 기본 원리로 삼아 추론으로 교의 사이의 연관을 추적하고, 반대에 맞서 변호한다.
- 유익: 신학 연구에 큰 유익. 손실: 그리스어·히브리어 지식이 약해져 성경 연구가 경시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교의신학이 성경과 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에서 멀어져 철학 체계처럼 변했다. 안셀무스는 예외적으로 플라톤적 대화 방식으로 신앙의 이해를 추구했다.
- 롬바르두스·할레시우스에서 체계적 안내서로, 알베르투스·아퀴나스·보나벤투라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방법이 공인된 방식이 되었다.
- 둔스 스코투스와 오컴·비엘의 유명론(보편 개념은 이름일 뿐)에서 신학은 확실성을 잃었다. 보편자를 부정하면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불가능해지고, 실재는 신적 의지의 자의적 행위가 된다. 그 틈에서 회의주의와 신비주의가 자랐다.
- 신비주의와 스콜라주의는 본질적으로 적대적이지 않다. 아퀴나스는 둘을 통합했다. 관건은 건전한 신비주의와 거짓 신비주의의 구별이다. 신비적 신학의 목적은 지식 증가가 아니라 묵상·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다.
- 중세 말위클리프·후스의 저항, 콘스탄츠 공의회의 개혁 시도. 실제 개혁은 거의 없었다.
- 트리엔트 이후아퀴나스를 토대로 재편. 벨라르미누스·수아레즈 등 예수회 신학 번성. 그러나 죄·자유의지·은혜에서 아퀴나스와 달리 펠라기우스주의적이었다.
- 얀센주의 정죄바이우스와 얀센의 아우구스티누스주의가 「우니게니투스」로 정죄. 교의학의 펠라기우스주의, 윤리학의 개연주의, 교회의 교황지상주의가 승리.
- 근대이성주의·이신론 앞에서 근대 사상을 정죄하는 길을 택함.
- 19세기예수회 재건, 무염시태, 오류표, 교황 무류성, 「영원한 성부」로 신스콜라주의·토마스주의 부활.
평가토마스주의는 학문에 국한되어 가톨릭 경건을 새롭게 할 능력이 없다. 장별 정리에 따르면 오히려 개혁가톨릭주의나 아메리카주의가 자기평가의 가능성을 보인다.
5. 루터파 교의학 원서 96–99쪽
- 요점: 루터파 신학은 정통주의 → 주관주의 → 교의학의 종말로 흘렀다.
- 1521최초의 루터파 교의학자는 루터가 아니라 『보편논제』의 멜란히톤. 그러나 루터의 은혜의 복음 재발견이 신학에 새 생명을 주었다.
- 내부 논쟁멜란히톤이 예정·성찬에서 루터와 달라지자 필립주의자와 그네시오-루터파가 갈라짐. 엄격파는 상대를 숨은 칼뱅주의자로 봄.
- 정통주의「일치 신조」에서 확정. 게르하르트·크벤슈테트·홀라츠 같은 17세기 스콜라주의자들이 변호.
- 18세기인간 주관의 강조. 슈페너·프랑케의 경건주의, 친첸도르프의 감미로운 구세주 선포. 계몽주의는 자율적 이성을 성경 위에 두고, 칸트에게 종교는 덕의 수단.
- 반작용낭만주의가 감정을 신적 요소로 높임. 슐라이어마허: 감정으로 하나님을 향유하는 것이 종교, 종교적 의식이 신학의 토대. 헤겔: 역사 전체가 관념의 구현, 기독교를 역사적 기초에서 분리. 셸링: 자유, 신지학적 대립. → 모두 주체로의 전환.
- 19세기 후반고전 루터파에 대한 관심, 카프탄·제베르크의 중재신학, “칸트로 돌아가자”. 리츨: 신학 = 가치판단, 하나님 나라 = 도덕적 공동체(미국에 큰 영향).
- 19세기 말기독교의 우월성을 제쳐 두고 종교들의 보편 역사를 연구하는 종교사 방법(트뢸치). 교의학의 종말
바빙크의 판단누구도 신앙적 헌신을 제쳐 두고 모든 종교를 중립적으로 다룰 수 없다. 헌신 없는 중립적 종교 연구는 불가능하다.
6. 개혁파 교의학 원서 99–105쪽
(1) 개혁파 교의학 원서 99–100쪽
- 요점: 개혁파 신학은 하나님의 영광을 묻는 신론적 신학으로 출발했다.
- 개혁교회는 한 나라에 묶이지 않고 여러 나라·여러 신조로 자신을 표현했으므로 역사 서술이 루터파보다 어렵다.
루터파 인간론적 질문
- “나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 행위 의를 복음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것으로 봄
개혁파 신론적 질문
-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증진될 것인가?”
- 구원의 토대를 선택의 작정에서 찾음
- 주된 관심은 우상숭배를 피하는 것
- 그래서 선택·칭의·중생·성례 교리가 더 풍부하게 발전
| 인물·지역 | 내용 |
|---|---|
| 츠빙글리 | 시작점. 주권적·은혜로운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의존. 인간주의 철학의 잔재가 남음 |
| 칼뱅 | 더 체계적이면서 철저히 성경적·실천적. 『기독교강요』는 개신교 전체가 연구 |
| 베자 | 영향력 있는 신학자, 그리스어 신약을 펴낸 성경학자 |
| 불링거 | 스위스 신앙고백서와 『취리히 합의서』로 개혁신앙을 공고히 함 |
| 확산 | 칼뱅의 영향과 망명자들을 통해 프랑스, 독일, 저지대 국가, 영국제도로 |
| 영국·스코틀랜드 | 국교회의 미온적 태도가 청교도운동을 낳음. 스코틀랜드는 녹스 아래 번성 |
| 팔츠 | 불링거의 언약 강조 위에서 독립 발전. 스위스와의 차이를 과장하는 것은 잘못 |
(2) 17세기 개혁파와 이신론 원서 100–102쪽
- 요점: 17세기 개혁파는 신앙고백에서 정점에 이르렀으나 거센 도전을 받았다.
- 칼뱅의 성경적 신학에서 좀 더 스콜라적인 신학으로 옮겨감(중세의 발전과 상응). 잔키우스·폴라누스는 교부와 스콜라에 정통.
- 정점이자 종점: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스위스 합의서.
- 도전: 이성주의, 신비주의, 재세례파, 소키누스주의, 데카르트주의, 특히 아르미니우스주의.
- 네덜란드: 콕세이우스의 언약신학이 데카르트주의와 동맹, 푸치우스가 반대했으나 그의 스콜라 신학이 가려짐. 프랑스 소뮈르: 아미랄두스의 이성주의적 보편주의.
백스터의 신율법주의 거부
신앙 자체를 칭의의 근거로 본다.
개혁파 칭의론의 핵심 바른 답
칭의의 근거는 오직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
- 비국교도·분리주의·침례교 성장. 회중교회는 사보이 선언으로 신앙고백적 토대를 얻고 존 오웬이 대표 신학자. 영국 신학은 성경적·역사적·목회적 연구에, 스코틀랜드는 러더포드 등의 교의신학에 힘씀.
이신론
오컴의 유명론, 베이컨의 경험론, 정치·교회 혼란이 종교에서 공통성을 찾게 했다. 이신론은 모든 종교의 본질을 다섯 진리로 요약했다.
- 신이 존재한다
- 신은 경배받아야 한다
- 경배는 덕으로 이어진다
- 죄를 회개해야 한다
- 행위는 보상이나 벌을 받는다
- 이 프로그램은 필연적으로 계시를 정면 공격한다. 로크(이성에 계시를 판단할 권한), 톨런드(기독교에 이성을 초월하는 것은 없다), 콜린스(믿지 않을 자유), 틴들(계시 없는 자연신학으로 충분).
- 이신론은 도드웰과 흄의 회의론으로 끝났고, 반응으로 페일리 같은 이성주의적 변증이 나왔다.
(3) 18세기 개혁파의 쇠퇴 원서 103쪽
- 요점: 이신론과 이성주의 앞에서 개혁파 신학은 모든 곳에서 쇠퇴했다.
- 이신론과 이성주의가 항변파와 소키누스주의의 옷을 입고, 종종 더 ‘성경적’ 신학이라는 이름을 내세웠다. 성경으로 돌아간다는 구호가 실제로는 이성을 앞세우는 통로가 되었다.
- 네덜란드: 디 모어와 피트링가의 방대한 저작은 역사적·서술적이어서 살아 있는 변증은 아니었다. 콤리는 예외로, 경건하고 강력하게 개혁신앙을 변호했다.
- 영국교회: 이신론에 맞서 예언·기적·계시의 변증에 몰두. 필요했지만 교의신학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음.
- 스코틀랜드: 보스턴과 얼스킨 형제. 피셔의 『현대 신학의 정수』 재출간이 촉발한 매로우 논쟁. 백스터 논쟁과 같은 쟁점(신앙을 조건으로 세우는가, 전가된 의만을 근거로 삼는가)이 다시 제기됨.
(4) 부흥운동과 감리교 원서 104쪽
- 요점: 부흥운동은 복음을 개인화했으나 특정 교리를 부차화했다.
- 19세기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영혼을 두고 두 세력이 맞섬: 옵조우머·스콜턴의 현대주의 신학 vs 국제적 복음주의 부흥운동(Réveil, ‘각성’).
- 부흥운동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해 프랑스·스위스로. 기독교적 뿌리를 가진 강력한 영적 운동이지만 개인주의적·귀족적·감리교적·박애적 성격을 지녔다.
- 공통점은 이성주의적 이신론과 교조적 신앙고백주의에 대한 반발. 적극적 내용은 여러 경건주의를 골라 발전시켜 지역마다 달랐다.
- 웨슬리와 휘트필드의 설교는 복음을 개인화해 모든 사람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되게 했다.
감리교의 교리적 특징39개조 가운데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으면서, 기독교 진리 전체를 두 초점(개인의 회심,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삶)에 맞추었다. 그 결과 어떤 교리는 반대되고, 바뀌고, 부차적으로 밀려났다. 고백 전체의 균형을 중시하는 개혁파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그래도 웨슬리는 영미 개신교를 재형성하고 이후 부흥들을 간접적으로 이끌었다.
(5) 19세기 영국 교회의 논쟁 원서 105쪽
- 감리교는 ‘보통 사람들’의 현상이었다. 지도층은 고교회파와 옥스퍼드 운동 사이의 논쟁으로 뜨거웠다. 옥스퍼드 운동은 로마 교회에 친밀감을 가졌고, 기독교와 문화의 화해를 모색한 광교회파에도 친밀감을 보였다.
- 광교회파의 중심 교리는 성육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들어오셨듯 교회도 사회개혁을 주도해 세상에서 육화되어야 한다.
- 19세기 후반에는 진화론·관념론·불교·강신술까지 영국인의 종교적 감화를 두고 경쟁했다. 교회 안의 논쟁과 교회 밖의 경쟁이 겹친 시대.
(6) 북미의 개혁파 신학 원서 105쪽
- 요점: 미국 개혁파는 두 전통에서 출발했으나 20세기 초 위기를 맞았다.
뉴잉글랜드: 청교도적 칼뱅주의
- 조나단 에드워즈: 형이상학적 사고력과 깊은 경건을 결합. 머리와 가슴이 분리되지 않은 신학.
- 드와이트·테일러가 그의 신학을 펠라기우스주의적으로 수정 → ‘신 학파’.
중남부: 스코틀랜드 장로교적 칼뱅주의
- 프린스턴 근거의 ‘구 학파’: 17세기 칼뱅주의의 반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스위스 합의서, 투레티누스의 『변증신학』.
- 손웰, 브레킨리지, 대브니, 그리고 두 권의 『교의신학』을 쓴 쉐드.
- 새 창조가 아니라 옛 유산의 재생산.
- 미국 교회에는 대각성 정신을 잇는 부흥의 흐름과 현대주의 경향(유니언 신학교의 브릭스·맥기퍼트, 브릭스는 이단으로 기소)이 공존한다.
- 바빙크의 당시 전망: 20세기 초 개혁파 교회는 미국에서 위기를 맞았고 칼뱅주의의 장밋빛 미래는 도래할 것 같지 않다. 편집자 주는 20세기 미국 개혁파 신학의 상세한 검토를 다른 문헌에 맡긴다.
구조도
- 속사도 교부·변증 시대이교의 학문적 공격과 영지주의에 맞선 변증. 이레나이우스 계열 대 알렉산드리아 학파. 3세기 초 신학의 토대가 놓임.
- 313콘스탄티누스의 관용칙령. 외적 압박이 이단이라는 내적 압박으로.
- 325 · 381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구별되신다. 4세기 말 세 위격 교리가 동서방 공통이 됨.
- 431 · 451에베소·칼케돈 공의회. 한 위격 두 본성의 경계.
- 아우구스티누스동서방 교의 발전의 절정. 모든 교회의 보편적 교사.
- 529오랑주 공의회. 선행 은혜는 받되 불가항력적 은혜·배타적 예정은 채택하지 않음.
- 1054동서방 분열(사도좌 주장 + 필리오케).
- 중세 스콜라롬바르두스 → 아퀴나스·보나벤투라 → 스코투스·오컴의 유명론으로 확실성 상실.
- 1453콘스탄티노플 함락. 비잔티움 시기의 끝.
- 1521 · 종교개혁멜란히톤 『보편논제』. 루터파와 개혁파(츠빙글리·칼뱅).
- 17세기루터파 「일치 신조」 정통주의. 개혁파는 도르트·웨스트민스터·스위스 합의서에서 정점. 이신론의 도전.
- 18–19세기경건주의·계몽주의·슐라이어마허·헤겔·리츨. 개혁파의 쇠퇴, 부흥운동과 감리교.
- 19세기 말–20세기 초종교사학파(트뢸치) = 교의학의 종말. 북미 개혁파의 위기.
다른 입장과 바빙크
| 입장 | 그 입장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하르낙 | 교의는 그리스 정신의 혼입이니 산상설교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 그 주장도 교회의 교의를 자기 교의로 바꾼 것일 뿐이다. 반교의도 하나의 교의다. |
| 로마 가톨릭 | 교황의 공식 선언은 무오한 권위를 가진다 | 교황은 영감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성경과 교리 중 무엇이 상위인지 딜레마에 갇힌다. |
| 알렉산드리아 학파 | 신앙은 단순한 자의 것, 학식자는 그노시스로 올라가야 한다 | 신앙과 학문을 질적으로 가르면 신학이 철학에 녹는다. 오리게네스가 그 위험을 보여준다. |
| 유명론 | 보편자는 없고 실재는 신의 자의적 의지다 | 그러면 학문으로서의 신학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회의주의로 끝난다. |
| 백스터의 신율법주의 | 신앙이 칭의의 근거다 | 칭의의 근거는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에만 있다. |
| 트뢸치의 종교사학파 | 모든 종교를 중립적으로 연구해야 학문이 된다 | 누구도 신앙적 헌신을 떼어놓고 종교를 다룰 수 없다. 이는 교의학의 종말이다. |
오해와 바른 이해
✕ 오해
- 성경은 신학 교과서다.
- 교리는 그리스 철학이 복음을 오염시킨 것이다.
- 교회의 공식 가르침은 무오한 권위다.
- 신학은 교회 교육을 위해 생겼다.
- 신앙은 초보용이고 지식이 더 높은 단계다.
- 신비주의와 스콜라주의는 적대적이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개신교만의 교부다.
- 루터파와 개혁파의 차이는 성찬뿐이다.
- 모든 종교를 중립적으로 연구해야 학문적이다.
✓ 바른 이해
- 성경은 구체적 삶의 언어이고, 교의는 교회가 캐낸 금이다.
- 변증가는 철학을 형식으로만 썼고, 복음이 참 철학이다.
-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의 기준을 따르는 전통만 인정한다.
- 신학은 기독교를 향한 외부 공격에 맞선 변증에서 발생했다.
- 신앙과 신학은 양의 차이일 뿐 질적 차이가 없다.
- 아퀴나스는 둘을 통합했다. 참·거짓 신비주의의 구별이 관건이다.
- 가톨릭은 교회론, 개신교는 은혜론에서 그에게 호소한다. 그는 모든 교회의 보편적 교사다.
- 루터파는 구원의 길을, 개혁파는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묻는다.
- 신앙 헌신 없는 중립은 불가능하며, 교의학의 종말이다.
핵심 용어
- 교의 (dogma)
- 교회가 성경에서 캐어 공적으로 고백한 핵심 진리.
- 변증
- 기독교를 향한 비판에 이성과 논증으로 답하는 일. 신학의 출발점.
- 그노시스 (γνῶσις) / 피스티스 (πίστις)
- 지식 / 신앙. 영지주의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노시스를 피스티스보다 높게 두었다.
- 영지주의
- 물질을 악(데미우르고스의 산물)으로 보고 비밀 지식으로 구원을 말하며 기독교를 사변철학으로 바꾼 흐름.
- 중재신학
- 신앙과 당대 사상을 타협·화해시키려는 신학. 오리게네스가 가장 인상적인 표본.
- 필리오케 (filioque)
- 성령이 성부와 아들에게서 나온다는 조항. 1054년 분열의 한 요인.
- 반펠라기우스주의
- 은혜를 인정하되 불가항력적 은혜·예정은 거부하고 은혜와 인간 의지가 함께 구원을 이룬다는 견해.
- 스콜라주의
- 실증신학이 멈춘 곳에서 시작해, 교의를 원리로 삼아 추론으로 연관을 추적하고 변호하는 중세 학문신학.
- 유명론
- 보편 개념은 이름일 뿐이라며 보편자를 부정해 학문으로서의 신학 가능성을 흔든 입장(스코투스·오컴·비엘).
- 신율법주의
- 신앙 자체를 칭의의 근거로 보는 백스터식 견해.
- 이신론
- 종교를 다섯 진리로 줄이고 계시를 공격한 자연종교론.
- 부흥운동 (Réveil)
- ‘각성’. 19세기 국제적 복음주의 부흥운동. 개인주의적·귀족적·감리교적·박애적 성격.
- 종교사학파
- 기독교를 여러 종교 중 하나로 중립 연구하려는 방법(트뢸치). 바빙크는 교의학의 종말로 봄.
성경 근거
이 장은 역사 서술이어서 원고에 실린 성경 근거가 적다. 원고의 구절을 모두 싣는다.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엡 3:19 | 성령은 교회가 하나님의 충만으로 가득하기까지 쉬지 않고 교리의 진보를 이끄신다. |
| 마 16:18 | 로마가 사도좌로서의 주장과 보편적 지위의 근거로 삼은 구절. |
| 마 5–7 | 하르낙이 돌아가자고 한 ‘원래 복음’, 산상설교. |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3: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
복습 문제
바빙크는 전통에 대한 하르낙과 로마 가톨릭의 입장을 각각 어떻게 비판하며, 종교개혁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르낙은 교리 발전을 복음의 그리스화·부패로 보고 산상설교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그 주장 자체가 교회의 교의를 자기 교의로 바꾼 또 하나의 교의다. 로마는 교황 선언에 무오성을 두면서도 교황이 영감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을 받을 뿐이라 하여 성경과 교리 중 무엇이 상위인지 딜레마에 갇힌다. 종교개혁은 성경에서 흘러나오고 성경의 표준을 따르는 전통만 인정했다.
신학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영지주의자와 변증가에게 철학은 각각 무엇이었나?
교회 내부 교육이 아니라 이교(켈수스·율리아누스)와 영지주의의 외부 공격에 맞선 변증에서 시작되었다. 영지주의자에게 철학은 죄와 구원의 내용 자체였고, 변증가에게 철학은 형식에 불과했다.
이레나이우스 계열과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신앙과 지식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나?
이레나이우스·테르툴리아누스 계열은 피스티스와 그노시스를 양적으로만 구분하고 질적으로 나누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 학파(클레멘스·오리게네스)는 질적 차이를 두어 피스티스를 그노시스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그 결과 오리게네스에게서 기독교가 관념으로 녹는 중재신학이 나왔다.
동방과 서방 신학의 강조점 차이를 세 가지 이상 들라.
동방은 썩어짐에서 해방되어 불멸에 참여함, 요한, 성육신, 그리스도의 인격과 양성의 합일, 신비적·예전적 성격. 서방은 죄인과 공의로운 하나님의 법정적 관계, 바울,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스도의 사역과 양성의 구분·중보자 위치, 정치적·법정적 성격.
아우구스티누스를 로마 가톨릭과 종교개혁이 모두 끌어당기는 이유는?
그에게 구원은 예정에 기원한 은혜로만 가능하지만, 그 은혜는 가시적 교회와 성례 안에서만 작용한다. 그래서 로마는 교회·성례·권위 교리에서, 종교개혁은 예정과 은혜 교리에서 그에게 호소한다.
루터파와 개혁파의 궁극적 질문은 각각 무엇이며, 백스터 논쟁에서 개혁파 칭의론의 핵심은?
루터파는 인간론적으로 “나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개혁파는 신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증진될 것인가?”를 물었다. 백스터는 신앙 자체를 칭의의 근거로 보았으나, 개혁파는 칭의의 근거가 오직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에 있다고 보았다.
한 줄“교의는 성령의 인도 아래 교회가 성경을 묵상해 온 역사의 열매다.”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