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6부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시는 성령

21장 영적 실체로서의 교회

헤르만 바빙크 『개혁파 교의학』 (새물결플러스, 단권 축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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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다스리는가?

  •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말씀으로 모인 신자들의 영적 몸이며, 전체가 부분보다 앞서는 유기체다.
  •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는 두 교회가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한 교회의 두 측면이다.
  • 참 교회의 표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표지는 절대 잣대가 아니라 판단의 근거이므로 절대적으로 참되거나 거짓된 교회는 없다.
  • 직분은 군림(magisterium)이 아니라 섬김(ministerium)이다. 베드로와 로마의 수위권은 성경에도 역사에도 근거가 없다.
  • 그리스도만이 성령과 말씀으로 다스리는 교회의 왕이시다. 교회의 권세는 강제가 아닌 영적 권세로서 가르침·다스림·자비로 나뉜다.

앞 장에서 성령이 개인에게 적용하신 부르심·중생·믿음·칭의의 유익을 받아, 그 유익이 한 공동체를 이룬다는 데로 나아간다. 교회가 말씀과 성례로 세워지고 다스려진다는 결론은 다음 장의 은혜의 방편 논의로 넘어간다.

1. 교회의 영적 본질 원서 993–997쪽

교회의 통일성은 제도의 결과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있다. 교회는 전체가 부분보다 앞서는 유기체다.

  • 인간은 본성상 사회적 존재다. 그래서 종교는 순전히 개인적일 수 없고 공통 교리와 공중 예배를 낳는다.
  • 그러나 이교는 교회 같은 독립 기관을 만들지 못했다. 이슬람은 신정국가를, 불교는 세상을 떠나는 승단을 세웠을 뿐이다.
  • 기독교회의 토대는 구약 이스라엘이다. 셋의 후손(창 4:26) → 아브라함의 할례 → 시내 산의 국가 언약. 이스라엘은 ‘에다 야웨’, ‘카할 야웨’(קָהָל)였다.
  • 포로기 이후 ‘쉰아고게’(συναγωγη)는 실제 집회를,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ια)는 하나님이 구원으로 부르신 이상적 공동체를 뜻하게 되었다.
  • 예수는 친히 자기 공동체를 에클레시아라 부르셨다(마 16:18; 18:17). 후대 편집자의 삽입이라는 비평은 근거가 없다. 승천과 오순절 뒤 신자들은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되었다.
  • 통일성은 신조·직제·총회로 후험적으로(a posteriori) 생기지 않는다. 개인이 먼저 믿고 모여 교회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바빙크는 제도가 교회를 만든다는 로마의 길과 자발적 결사로 보는 근대의 길을 함께 거부한다.
  • 단서: 지역 교회도 그리스도라는 토대 위에 선 온전한 몸이다. 가장 넓은 의미의 교회는 지상과 천상(히 12:23), 과거·현재·미래(요 17:20)의 모든 하나님 백성이다.

2. 통일성과 보편성 원서 998–1002쪽

이단 대응이 교회를 외형적 제도로 바꿨고, 종교개혁이 믿음으로 되돌렸다.

  1. 속사도 시대성도·택자·참 이스라엘·제사장이라는 자기 이해. 통일성은 친교와 환대로 드러나는 영적인 것이었다.
  2. 이단의 등장“참된 교회는 어디인가?” → 보편교회와 교제하는 교회가 참 교회. 노바티아누스파·도나투스파에 맞서며 가속. 이레나이우스: 교회가 있는 곳에 성령이 계신다. 키프리아누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3. 아우구스티누스교회를 신자의 어머니로 변호하되 ‘참된 몸’과 ‘혼합된 몸’을 구분. 그러나 거룩을 구성원이 아니라 교리·제도·은혜의 방편에서 찾아 보편교회를 부각시켰다.
  4. 중세‘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의 구분. 듣는 교회의 최고 덕은 순종이고, 교황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5. 중세의 저항알비파·왈도파·위클리프·후스는 사랑과 가난의 삶을 기준 삼아 저항했으나 실망스럽게 끝났다.
  6. 루터오직 믿음으로 받는 죄 사함에서 평안을 찾음 → 교회는 ‘성도의 교제’. 가시적·비가시적 교회 구분. 표지는 말씀과 성례의 순전한 시행.
  7. 개혁파비가시적 교회 = 하나님만 아시는 택자. 거룩한 삶과 치리도 주요 표지. 선택은 교회의 토대이나 믿음과 선행으로만 입증된다.

3. 종교개혁의 접점들; 하나님의 백성 원서 1002–1004쪽

자발적 결사도, 강제된 통일도 교회의 본질을 놓친다. 지상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현실을 이상에 희생시키면 안 된다.

흐름교회 이해바빙크의 진단
항변파·소키누스파·합리론자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 자발적 종교 모임그리스도가 제정하신 기관이라는 개념이 없다
신비주의·경건주의 분파 (재세례파, 라바디, 친첸도르프, 영국 독립주의자, 퀘이커)맹세·공무·사회적 교섭을 거부하여 세상과 분리된 영적 사람들의 교제은혜와 피조 자연을 둘로 가르는 이원론
다비 (세대주의 전천년설 창시자)모든 교회 형태는 바벨. 물러나 재림만 기다려야 한다해체 경향의 끝
러시아 교회·로마 가톨릭자신만 참 교회. 억압과 배타성으로 통일 강요강제해도 현대 교회는 동질성을 잃는다
슐라이어마허식 개신교거듭난 개인들의 결사역사를 살리려다 신적 제도로서의 교회를 잃었다

가시적·비가시적 교회를 본질/발현, 이상/현실로 나누거나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분리하는 해법도 같은 잘못이다. 어느 경우든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역사 없는 이상에 희생된다.

4. 교회에 관한 성경의 표현들 원서 1005–1008쪽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사랑이 실현된 ‘하나님의 백성’, 참 신자의 교제다.

  • 카할·에클레시아는 ‘소집하다’에서 나온 말로, 목적을 위해 불려 모여 연합한 사람들이다.
  • ‘church/kerk/Kirche’는 ‘퀴리아케 [오이키아]’(주님의 집)에서 나와 원래 건물을 뜻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이 흐려졌다. ‘gemeente’는 교제의 뜻을 살리지만 공민적 용어이고, ‘kerkgenootschap’(교회 협회)은 교회를 사회 단체로 축소한다.
  • 교회와 하나님 나라: 혼동해서도 안 되고 분리해서도 안 된다. 나라는 종말론적이고 조직되지 않는다. 교회는 이 세상의 용어이며 그 복은 부르심·중생·믿음·칭의·성화·영화처럼 주로 내적·영적이다.
  • 성경의 이미지: 그리스도의 몸, 신부, 양 우리, 산 돌로 세운 성전, 하나님의 이스라엘. 포도나무 이미지는 참 신자를 나쁜 가지와 대조한다. → 믿음 없는 자는 교회 안에 있으나 교회가 아니다.
  • 성도의 교제: 한 주님·한 세례·한 성령(엡 4:4–6). 그러나 하나 됨은 획일성이 아니다. 성령은 다양성을 보존하며 은사를 나누신다.
  •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 데 쓰이고, 가장 탁월한 은사인 사랑(고전 13), 곧 믿음의 권속을 향한 새 계명의 사랑에 예속된다.

5. 가장 넓은 의미의 교회 원서 1009–1010쪽

교회의 성격은 불신자가 아니라 신자들이 결정하며, 교회는 믿음의 대상이다.

  • 가장 넓은 교회 =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았거나 받을 모든 사람. 기준이 ‘구원자를 믿는 믿음’이다.
  • 그래서 타락 전 아담과 하와, 그리고 천사는 교회의 지체가 아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지지도, 타락하지도, 구속받지도 않았다.
  • 지금 이 땅의 전투적 교회는 낙원(창 3:15)에서 재림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증인 집단(히 12:1)의 작은 일부다. 이 의식이 지상 교회에 용기를 준다.
  • 교회 안에는 늘 불신자가 섞여 있었다. 로마는 유형교회 회원 됨·교황 순복을 본질로 삼지만, 종교개혁은 가시적·비가시적 구분을 내놓았다.
  • 비가시성 = 아무도 남의 영적 상태를 판단할 무오한 기준을 받지 않았다는 뜻. ‘교회’라는 이름은 핵심인 신자들을 따라 전체를 부르는 제유법이다.

6. 유기체이자 기관인 교회 원서 1011쪽

가시적·비가시적 교회는 두 교회가 아니라 한 교회를 보는 두 눈이다.

열광주의의 오류 전부 비가시적

  • 그리스도의 몸에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만 중시, 지상 제도에 무관심.
  • 교회를 ‘선택’이나 ‘완전성’이라는 이상으로 정의 → 가시적 교회를 이루지 못한다.

로마 가톨릭의 오류 제도 = 교회

  • 위계 구조를 교회 자체와 동일시. ‘가르치는 교회’로 교회를 정의.
  • 부르심과 세례가 참 믿음의 증거가 아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 바빙크는 ‘가시적 = 제도, 비가시적 = 유기체’라는 짝짓기도 거부한다. 제도와 유기체는 둘 다 가시적 교회의 측면이고 둘 다 영적 배경을 가진다.
  • 해결: (1) 신자 안에 남은 옛 아담도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 (2) 교회는 아직 완성되어 가는 중이다.
  • 그러므로 둘의 차이는 같은 신자들을 하나님만 아시는 마음의 믿음으로 보느냐, 관찰 가능한 고백과 삶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완성 전까지 교회는 늘 신앙의 조항이다.

7. 교회의 표지들 원서 1013–1020쪽

“말씀, 오직 말씀만이 진실로 교회의 영혼이다.” 표지는 무오한 잣대가 아니라 판단의 근거다.

로마 가톨릭

  • 고대성, 주교 계승, 기적, 회원의 동질성, 교회의 번창 같은 외적 증거로 절대적 확실성 주장.
  • 그러나 결국 ‘위로부터 오는 능력의 도움’과 ‘내면의 빛’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 ‘교회 밖에 구원 없다’ → 본질상 비관용적. 무지한 자는 예외로 두어 타협.

종교개혁

  • 교회도 진리에서 떠날 수 있고 성경만이 더 높은 권위다.
  • 표지는 설교·가르침·고백·성례·삶에서 시행되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
  • 로마 안에도 ‘교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참된’ 교회와 ‘순전한’ 교회를 구분.

교회와 교황도 아무리 가시적이어도 신앙의 조항일 뿐이다. 칼뱅은 신앙의 주요 교리가 거짓으로 대체될 때만 떠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분열 앞에서 바빙크가 덧붙이는 여섯 가지

  1. 분열은 이미 사도 시대에 시작되었다(행 15:39; 갈 2:11; 고전 1:10).
  2. 위계적 억압으로 일치를 지키려는 것은 개신교 원리 자체를 부정한다.
  3. 무오한 해석이 없으므로 각자 말씀을 해석할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4. 하나님은 통일 속 다양성을 사랑하신다.
  5. 근본 조항과 비근본 조항을 구분하되, 경건에 이르는 진리에 사소한 것은 없다(딛 1:1).
  6. ‘이단’(교리의 일치를 깸)과 ‘분열’(교제를 깸)이라는 말은 신중히 써야 한다.
분열은 죄이지만세상에 조롱거리이고 그리스도의 기도와 어긋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기도는 일치가 결국 모든 신자 안에 드러날 것을 보증한다.

8. 교회의 속성들 원서 1020–1022쪽

속성은 자랑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추구할 종말론적 부르심이다.

속성로마 가톨릭개신교 (바빙크)
통일성교황직과 계급제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영적 하나됨. 분열 속에서도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점으로 드러남
거룩성성사를 통한 예전적·제의적 성결이 우선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모든 계명대로 살기 원하는 성도들의 영적 교제
보편성참 교회의 본질적 표지, 교세 과장공간·시간의 확산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을 위한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 ‘로마’와 ‘가톨릭’ 사이엔 근본적 모순 → ‘로마 교회’, ‘교황교회’가 정확한 이름
사도성감독들의 끊김 없는 사도직 계승장소와 인물의 계승이 아니라 교리의 계승
  • 무결성·무류성은 지옥의 문이 이기지 못하고(마 16:18) 세상 끝까지 보존하시겠다는(마 28:20) 약속에서 나온다.
  • 그러나 이것은 교황 무류성도, 현세적 성공도 아니다. 신약은 오히려 마지막 날의 고난을 예고한다(마 24:21–22). 약속의 내용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자들의 모임이 이 땅에 늘 있으리라는 보증이다.

9. 유기체와 제도로서의 교회 원서 1022–1023쪽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 교회를 모으신다.

  • 교회는 다스림 없이 존속할 수 없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 있으나, 중보자 그리스도는 주권을 넘기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행사할 때 백성을 도구로 쓰신다.
  • 그래서 교회는 수동적으로는 모인 공동체인 유기체, 능동적으로는 모든 신자의 어머니(mater fidelium)인 기관이다.
  • 슐라이어마허와 묄러는 이 구분을 ‘개신교는 유기체 우선, 로마는 제도 우선’의 잣대로 썼다. 바빙크: 교회사를 부정확하게 다룬 것이다.
  • 종교개혁이 반대한 것은 제도 교회 자체가 아니라 사제와 성사를 구원과 결합한 방식이었다. 진짜 쟁점: 그리스도가 사제의 성사 집행에 묶이시는가, 아니면 말씀과 성령으로 백성을 부르시는가.
  • 신자는 신앙 공동체를 모태로 태어난다. 신자는 산물이자 생산자다. 이렇게 종교개혁은 로마의 계급구조와 재세례파의 열광주의를 모두 피했다.

10. 사도와 특별 직분들 원서 1024–1028쪽

사도직은 끝났으나 사도의 말씀은 교회의 영원한 터다.

  • 교회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 아니라 처음부터 조직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할례 → 시내 산의 제사장직과 율법 → 요한의 세례 → 주의 만찬 → 열두 사도.
  • ‘사도’는 처음부터 직무 명칭이었다(‘거짓 사도’라는 말이 생길 정도, 고후 11:13).
  • 바울은 사도직의 신적 기원과 독립성을 주장하고, 사도직을 이방 세계로 옮겨 교회의 영속적 토대로 확정했다(롬 11:24).
직분성격
사도모든 세대의 교회가 그들의 증거에 매인다. 성령을 한량없이 받고 표적과 기사로 인침받음. 베드로는 동등한 사도들 가운데 선두
전도자은사와 함께 직분으로 임명되어 보편교회에 권위를 행사하되 사도에게 순복
예언자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임시 직분, 요한 이후 사라짐. 몬타누스주의나 츠빙글리의 ‘예언’은 신약 예언과 같지 않다
장로·집사사도들이 교회를 세우며 제정한 일반 직분. 사도직과 본질이 다르다

로마와 갈라지는 곳: 사도적 토대는 사도직이 제도로 이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사도가 그 말씀을 통해 교회의 영속적 토대가 된다는 뜻이다.

11. 장로제에서 감독제로 원서 1028–1031쪽

초기 감독의 본업은 가르침이 아니라 치리였다. 회중이 세운 장로제가 이단과 은사 중단 속에 감독제로 변했다.

  • 사도 이후의 직분자는 회중 가운데서 회중에 의해 세워졌다. 교회 운영은 아마도 회당을 본떴을 것이다. 집사직은 구제의 필요로 생겼다(행 6).
  • 딤전 5:17에 근거해: 장로(πρεσβυτερος)는 교회 안의 한 계층, 감독자(ἐπισκοπος)는 그중 다스리는 직분자. 다만 종종 같은 사람이었다(행 20:28).
  • 가르침은 처음에 특별한 직분 없이 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행했다(고전 14:26).
  1. 귀족적 장로제회중이 세운 장로들의 공동 치리
  2. 변화의 원인사도 시대 종식, 특별 은사 중단, 이단 등장 → 유능한 교사와 항구적 조직 필요
  3. 군주적 감독제전도·예언·교훈이 주교직에 귀속, 주교 = 사도 계승자
  4. 중추가르치는 교회 / 듣는 교회 = 성직자 / 평신도 구분
  • 디다케, 헤르마스의 목자, 클레멘스 1서에는 이런 체제가 보이지 않는다.
  • 이그나티우스(동방)는 감독·장로·집사를 세 직분으로 열세 번 언급하고 감독에게 거의 무제한적 순종을 요구했다. 계시록의 ‘앙겔로스’를 감독으로 읽었다. 그러나 그의 감독은 아직 전통 계승자도 제사장도 사도 계승자도 아니었다.

12. 위계제와 로마 수위성의 성장 원서 1032–1034쪽

로마 주교는 서방의 머리였을 뿐 기독교 세계 전체의 목자가 된 적이 없다. 수위성은 성경이 아니라 제국 수도의 위상에서 자랐다.

  1. 2세기 중반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생김. 로마에서 첫 주교 목록이 작성되며 계승 관념 형성. 초기 로마의 수위성은 동등한 교회들 중 첫째인 도덕적·종교적 성격(키프리아누스도 주교들의 동등성 주장).
  2. 제국 수도의 위상로마의 중심적 의미가 교회로 전가 → ‘로마’와 ‘가톨릭’은 처음부터 함께 발전했다.
  3. 레오 1세마 16:18을 근거로 로마 주교좌의 수위성을 신앙 교의로 격상.
  4. 451년 칼케돈 법규 28동방의 저항. 니케아 교회법이 콘스탄티노플을 로마 다음에 두었고, 칼케돈은 새 로마에 동일한 수위성 부여. 이유는 제국 수도라는 점이지 베드로가 아니었다.
  5. 9–15세기황제가 아니라 교황이 서방 회의를 소집·주도·비준. 수위성에 무류성이 더해짐. 그레고리우스 7세: 로마 교회는 영속적으로 오류가 없다.
  6. 1302년보니파키우스 8세의 교서 「거룩한 하나의 교회」: 구원을 위해 교황청 순복이 필수.
  7.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수위성은 베드로에게 직접 약속되어 로마 주교에게 이어지며, 믿음·도덕·통치·치리의 최고 판결권을 가진다.

13. 종교개혁의 위계제 비판 원서 1035–1038쪽

직분은 군림(magisterium)이 아니라 섬김(ministerium)이다.

  • 성경은 목자와 양을 구분하지만 구원의 필수 중보자인 ‘성직자 계층’은 모른다. 구약도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의 기업(κληρος)이라 부른다(출 19:5–6). 신약은 모든 신자에게 성령이 부어졌다고 가르친다.
  • 신약은 감독과 장로를 공식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특별 직분 외의 일상 직분은 장로와 집사뿐이다(빌 1:1). 개혁파가 목사 중 하나를 ‘감독자’로 부른 적이 있으나 로마의 주교직과 본질이 다르다.
  • 사도직은 예수를 직접 보고 들은 자들의 한시적 직분이므로 계승되지 않는다.

반박 ① 성경

베드로가 다른 사도 위에 군림하는 수위성은 성경에 없다. 반석은 결국 그리스도 자신(고전 3:10–11)이고, 열쇠의 권세와 성령의 인도는 모든 사도에게 주어졌다(마 18:18).

반박 ② 역사

설령 수위성이 있었어도 로마 주교에게 전수된 근거가 없다. 베드로는 바울에게 책망받았고(갈 2:11), 초기 감독 명단은 그를 로마 주교로 보지 않았다. 그 전승은 빅토르 1세 때 형성되었다.

“말하자면, 영원성이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격이다.” — 바빙크, 역사적 개연성에 기댄 교황 권위에 대하여

14. 그리스도는 교회의 왕이시다 원서 1039–1043쪽

교회 질서는 아디아포라(adiaphora)가 아니며, 그리스도가 성령과 말씀으로 다스리신다.

루터파

  • 교회 정치를 비본질적 외적 문제로 여김.
  • 결과: 교회 체계를 기독교 정부에 맡김.

개혁파

  • 오순절에 성령으로 태어난 교회는 국가와 다른 고유한 체계가 필요하다.
  • 다만 성경은 교회 질서의 법전이 아니므로 환경이 세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이 확신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사랑이나 부성에서만 출발하는 신학은 이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 그리스도의 왕권은 이중적이다: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의 왕권(마 28:18)과 교회의 머리로 다스리는 은혜의 왕권(엡 1:22). 전자는 후자를 위해 쓰인다.
  • 다스림의 방식: 강제가 아니라 성령과 말씀으로. 교회·직분·말씀·성례는 그분의 도구다. 이 원리가 16세기 이래 교회의 자유와 독립을 지켰다.
  • 모든 지역 교회는 동등하고 독립적이다. 어떤 교회도 어머니 교회로 군림할 수 없어 개혁파는 관구·교구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독립주의는 아니다. 같은 믿음의 교회들과 교제할 의무가 있다.
  • 모든 신자는 기름 부음 받은 예언자·제사장·왕이다(요일 2:20; 벧전 2:9). 그래서 은사로 지체를 섬기고 교회를 세우며 개혁할 의무가 있다.
“은혜는 자연을 회복하고, 복음은 율법을 성취한다.” — 바빙크

15. 특별 직분의 제정과 세움 원서 1044–1045쪽

직분의 권위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르심에서 온다. 직분은 군림하는 권세가 아니라 섬기는 권세다.

  • 개혁파 일부는 목회자의 권위가 본래 회중에 속한다고, 현대는 직분을 교회 조직의 기능으로 본다. 바빙크: 부분적으로만 옳다.
  • 열쇠의 권세는 전체 교회에 주어졌다(마 18:17–18). 그러나 교회가 조직된 뒤에는 사도와 감독에게 주어져 목회자를 통해 행사된다. 직분은 교회를 위해 있지만 교회의 기능은 아니다.
  • 참된 종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이고, 거짓 예언자와 거짓 사도는 자기 이름으로 왔다(요 5:43). 부르심 없이 이 영예를 취할 수 없다(히 5:4). 모든 신자가 복음을 전하지만, 주님의 이름의 권세로 공적으로 하려면 특별한 사명이 필요하다.
  1. 부르심은사와 갈망을 점검하는 내적 부르심은 반드시 교회의 외적 부르심으로 확증된다
  2. 검증신학 교수들이 도울 수 있으나 권리와 책임은 교회에 있다
  3. 세움기존 직분자의 지도 아래 그리스도가 정하신 자격(딤전 3)에 따라. 하나님이 부르셨음을 회중 앞에 공적으로 선언
안수성례도 아니고 은사를 주는 의식도 아니다. 성경에는 직분과 무관한 안수도 많고, 맛디아나 바울을 세울 때는 안수 언급이 없다. 합당하지만 필수는 아니다.

16. 직분의 수와 장로교 제도 원서 1046–1048쪽

그리스도는 교사·장로·집사 세 직분으로 교회를 다스리신다. “성경은 경전이지 법전이 아니다.”

  • 사도 시대에는 특별/일반 직분, 직분/은사의 경계가 유동적이었다.
  • 주교직이 등장하자 지역 교회는 자유를 잃고, 집사직은 주교의 미사를 수종드는 일로 변질되었다. 주교만 사제를 임명하므로 주교가 곧 교회의 생산자가 되었다.
  • 루터는 설교자 직분의 회복에 만족했다. 칼뱅은 권징을 위한 장로직을 개혁교회 정치의 표지로 삼아 성경적 장로교 형태를 회복했다.
  • 교회 정치의 두 측면: 비가시적으로는 그리스도 한 분이 다스리는 군주제, 가시적으로는 민주제·군주제·과두제가 아닌 귀족제이자 장로제. ‘고귀한 자’란 재산이 아니라 영적 은사에서 뛰어난 자다.
직분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직분
교사 (말씀 사역자)교회를 가르치신다대예언자
장로교회를 이끄신다영원한 왕
집사양들을 돌보신다자비로운 대제사장

17. 교회의 영적 권세 원서 1049–1050쪽

이스라엘은 사제정치가 아니라 신정국가였다. 이스라엘에서도 종교와 시민 영역은 구분되었고 양심 강제는 낯선 것이었다.

  • 교회도 국가도 생래적 기관이 아니다. 본래는 가정이 유일한 기본 공동체였고 가장이 예언자·제사장·왕을 겸했다.
  • 죄 이후 살인자에 대한 사형 명령(창 9:6)이 사실상 정부의 제정이다. 죄는 시민생활과 종교생활을 갈라놓았다. 고대 어디에도 두 권위의 완전한 분리는 없었다.
  • “이스라엘에는 교회와 국가의 구분이 없었다”는 통념은 틀렸다. 모세와 아론, 사사와 제사장·레위인의 일이 처음부터 나뉘었다. 제사장은 독립적 세속 권력을 끝내 갖지 못했다. 예언자들의 자유로운 선포가 백성을 성직 계급의 지배에서 보호했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율법을 주고 다스리시는 신정국가였다. 왕도 율법 아래 있었다(신 17:14–20). 첫째 돌판 위반은 흔히 사형으로 다스렸다(신 13:1–5).
  • 단서: 율법은 일반 규칙만 주고 많은 경우를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다. 왕들의 개혁도 우상 파괴와 공적 예배 회복에 그쳤다. 포로기 이후 회당은 국가와 성전 모두에서 독립하여 토라 교육에 집중했다.

18. 열쇠의 권세와 영적 권세 원서 1051–1052쪽

열쇠의 권세는 말씀에 매인 섬김의 영적 권세다. 복음은 혁명이 아니라 영적 개혁의 힘이다.

  • 열쇠는 다스림의 표지다(사 22:22). 매고 푸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무엇’, 곧 하늘나라에서 무엇이 허락되고 금지되는지를 선언하는 권세다.
  • 여기에는 권징의 권리와 사도들에게 위임될 전방위적 권세가 포함된다. 사도의 말은 모든 세대를 구속한다(갈 1:8).
  • 성격: 독립적·주권적 통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역(διακονια). 말씀과 성령에서 떨어질 수 없는 신령하고 도덕적인 권세다. 가정·사회·국가·예술·과학의 권세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 예수는 기존 권위를 인정하시고 세금을 내셨으며, 유산 중재를 거절하시고(마 22:21), 칼을 뺀 베드로를 책망하셨다(마 26:52).
  • 그러므로 복음은 결혼·가정·주인과 종·정부와 백성의 관계를 뒤엎지 않는다. 창조 질서의 합법적 권위는 존중하되 모든 영역의 죄와 거짓에 맞선다.

19. 주교 권세와 사효적 성사 원서 1053쪽

사제직이 복음 선포와 분리된 것이 로마 교회 권세 변질의 핵심이다.

  1. 초기 교회힘은 복음 증거와 경건한 모범적 삶(딤전 2:2)
  2. 세력 획득 후주교의 성례전적·법정적 권세 강조. 신품권은 주교의 신품성사로만 주어짐
  3. 사죄의 통로 이동말씀은 예비적 의미뿐, 실제 사죄는 사효적(ex opere operato) 성사(세례·고해성사)에서만
  4. 귀결사제직은 복음 선포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20. 교황 무류성 비판 원서 1054–1056쪽

교황 무류성은 비성경적이며 논리적으로도 순환한다. 정치적·법률적으로 강한 만큼 윤리적·종교적으로는 허약하다.

  • 동방은 황제교황주의로 흘렀고, 서방은 국가로부터 독립을 지켰으나 스스로 취한 세속 권력 때문에 안에서 무너졌다. 정점은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
  • 선언 내용: 교황은 그리스도께 직접 받은 절대 주권을 가지며, 모든 신자와 주교는 믿음·도덕·권징·치리에서 복종해야 하고, 교황이 ex cathedra로 말할 때 오류가 없다.
바빙크의 비판내용
성격의 모호함로마는 교황에게 사도의 영감을 돌리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과 섭리만 말한다
ex cathedra 기준의 무의미언제 그렇게 말했는지 판단할 사람이 교황 자신뿐이다
악순환무류성을 선언한 공의회 자체가 무류하지 않다
교회국가의 시대착오1870년 교회국가 폐지 후 세속적 독립 주장 → 국가와 교회 모두에 해롭다

결국 ‘교황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ubi papa, ibi ecclesia). 교황은 구원의 중재자요 길·진리·생명으로 높여진다. 쉐이벤과 앗츠베르거의 말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신성모독이다.

21. 종교개혁과 교회·국가 원서 1057–1061쪽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모든 직분은 봉사(diakonia)의 직분이다.” 종교개혁은 말씀의 능력과 권징을 회복하되 국가와 구별했다.

  • 루터: 그리스도의 나라는 마음과 양심을 다루는 신령한 천상의 나라. 칼뱅: 교회와 국가를 영혼과 육신의 유비로 구분. 말씀과 성례의 수종이 열쇠의 권세의 전부다. 개인 고해는 가정 심방을 통한 말씀 중심의 권징으로 대체되었다.

루터파의 권징

장로 없이 목사만 시행 → 악용되기 쉬움 → 사라지거나 교인·시민 혼합 법정으로. 예전과 외적 치리를 비본질적인 것으로 국가에 맡김.

칼뱅·개혁파의 권징

권징은 생사의 문제. 제네바에서 20여 년을 싸워 1555년 출교권을 되찾음. 권징은 교회의 중심은 아니어도 교회를 서게 하는 힘줄이다.

재세례파·메노파

자연과 은혜를 대립시켜 출교를 지나치게 적용. 종교개혁은 자연과 초자연의 양적 대립을 죄와 은혜의 윤리적 대립으로 바꾸었다.

  • 개혁파: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왕이므로 교회 권세를 국가에 넘길 수 없다. 그러나 구별은 분리가 아니어서 기독교 정부에 참 교회 보호와 우상숭배 배척을 요구했다(벨기에 신앙고백서 36조).
  • 이 이론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가의 강압, 개신교 교파의 다양화 → 18세기 관용, 로저 윌리엄스 이래 종교의 절대 자유 요구. 그러나 이 원리가 순수하게 적용된 곳은 없었다.

22. 교회의 직분과 모임 원서 1062–1063쪽

교회 권세는 영적이되 전인을 향하고, 강제를 배제한다.

  • 논점은 규칙이 “있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규칙이 어떻게 있어야 하느냐”다. 형태 없는 순수 질료는 철학의 추상이다.
  •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지만(요 18:36) 지상과 무관하지 않다. 성육신이 보여 주듯 그리스도는 세상 안에서 구원하시고, 그 나라는 누룩처럼 모든 영역에 스며든다.
  • 그리스도가 주신 권세(ἐξουσια): 복음 선포, 성례 집전, 죄 사함과 보류, 권징, 양 먹임, 구제, 복음으로 생계를 유지할 권한.
  • 기원이 다르다: 다른 영역의 권세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롬 13:1), 교회의 권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직접 온다. 그래서 교회는 지상의 어떤 권세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 ‘영적’ ≠ 비가시적·내면적. 말씀과 성례는 전인을, 구제는 몸을 향한다. ‘영적’이란 성령이 주시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사되며, 신자에게만 미치고, 강압이 아닌 믿음과 사랑으로 역사하며, 세움을 목적으로 한다는 뜻이다.
  • 로마(교회 권세의 정치화)와 재세례파(자연 파괴)의 뿌리는 하나, 곧 자연과 은혜의 지나친 반정립이다.
교회의 세 권세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상응)
가르치는 권세potestas docendi · 예언자직 · 말씀 사역자, 신앙고백
다스리는 권세potestas gubernationis · 왕직 · 장로, 권징
자비의 권세제사장직 · 집사, 구제

23. 가르치는 권세와 신앙고백 원서 1064–1065쪽

“말씀 없이는 성례가 존재할 수 없지만, 성례 없이도 말씀은 존재한다.” 성경만이 신앙고백의 최종 기준이다.

  • 교회 전체가 예언자다.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기름 부음에 참여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말씀 사역자의 가르침으로 수행되며, 직분은 은사를 억누르지 않고 이끈다.
  • 로마는 가르침을 성례 아래 둔다. 바빙크: 말씀이 늘 성례에 앞선다. 그래서 바울처럼 사역자가 매번 세례를 베풀 필요는 없다(고전 1:14–17).
  • ‘치리’와 ‘말씀과 교리의 수고’는 구분된다(딤전 5:17). 그래서 교사 칭호는 말씀 사역자에게 붙는다. 공적 선포는 신자 간의 가르침, 이방인 전도, 장로의 개인적 적용과 구별되는 독립 직무다.
  • 교회는 진리를 신앙고백으로 보존하고 직분자에게 동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성경의 충족성·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반한다’는 반론은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라는 책임의 회피다. 교회는 2세기 초부터 고백적 교회였다.
두 단서① 신앙고백은 강제가 아닌 설득과 자발적 순종의 표준이다. ② 오직 성경만이 스스로 신뢰할 만한(autopistos) 권위이며, 신앙고백은 언제나 성경으로 검증·개정될 수 있다.

24. 다스리는 권세와 장로직 원서 1067쪽

설교자는 씨를 뿌리고 장로는 열매 맺도록 돌본다. 치리의 목적은 언제나 죄인의 회복이다.

  • 넓은 의미의 다스리는 권세는 신자들이 서로 나누는 모든 돌봄(롬 15:14)이며, 그 으뜸 은사는 사랑이다.
  • 성경은 이를 ‘내 양을 치라’(요 21:15–17)로 요약한다. 정치적 지배는 모두 배제된다(고후 1:24; 벧전 5:2–3).
  • 양 치는 일은 훈련과 징계, 극단적으로 출교까지 포함한다.
  • 로마 고해제도에도 선한 면이 있다(약 5:16). 그러나 강압적 고백은 양심의 자유와 충돌하고, 은혜를 매 순간 불확실하게 하며, 죄를 결의론적으로 다루게 한다. 잘 짜인 장로 제도가 낫다. 나단·엘리야·이사야의 방문이 모범이다.
  • 교회는 김매기가 필요한 밭, 가지치기가 필요한 나무, 꼴을 먹여야 할 양떼다. 목사도 감독을 받지 않으면 직분을 오용할 위험이 크다.

25. 권징의 성경적 근거와 실천 원서 1068–1069쪽

권징(potestas disciplinae)은 처벌 장치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양육이다.

  • 히브리어 무사르(מוּסָר)와 신약의 파이데이아(παιδεια)는 연약한 것을 정성껏 기른다는 말이다. 기르는 일에 성장을 해치는 것과 맞서는 일이 들어 있어 교정·징벌의 뜻을 얻었다(히 12:5–11).
  • 교회적 형벌(추방, 스 10:8)만을 가리키게 된 것은 회당 공동체 이후다. 예수가 천국 열쇠를 주실 때 이를 염두에 두셨을 수 있다.
  1. 개인적 책망형제를 얻기 위해 단둘이
  2. 증인 대동한두 사람과 함께 권면
  3. 교회 앞 책망온 교회에 말함
  4. 이방인·세리처럼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마 18:15–17)
  • 아나니아와 삽비라, 엘루마, 고린도 근친상간자, 합당치 않은 성찬으로 인한 질병은 하나님이 직접 또는 사도를 통해 징벌하신 특별한 사도적 권위의 사례로, 일반 출교와 구분된다.
  • 모든 악인과 단절해 살 수는 없다. 다만 출교 뒤에도 회개하지 않는 이전 신자와는 교제를 삼간다(살후 3:6).
개혁파 권징의 특징세례와 신앙고백으로 회원이 된 사람만 대상 · 회중 안의 범과만 · 사적인 죄는 마 18장 원칙, 공적인 죄는 정해진 절차 · 형벌은 수찬정지 같은 영적인 것에 한정 · 출교는 최후의 처방 · 공적 고백과 돌이킴이 있으면 재입회(고후 2:5–10) · 돈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세속 형벌은 없다.

26. 자비의 사역과 집사직 원서 1070–1071쪽

집사직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자비에서 나온 독립 기관이다. 구제는 국가 복지와 섞이지 않는다.

  • 하늘의 그리스도는 지금도 자비를 특징으로 하는 제사장직을 수행하신다. 직분이 나뉘며 가르침은 교사에게, 치리는 장로에게, 섬김과 돌봄은 집사에게 맡겨졌다.
  • 바빙크의 솔직한 인정: 구제에서는 로마 교회가 다른 교회들보다 앞서 있다. 개혁파가 집사직을 되살리고도 역할을 규정하지 못하고 범위를 넓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 집사는 모든 지체, 특히 재물 있는 자가 탐심에 빠지지 않도록 자비를 가르치고, 개인의 은밀한 선행을 독려하고 지도한다. 큰 교회는 보조 직분자(여집사)를 둘 수 있다.
  • 대상: 가난한 자, 병든 자, 나그네, 갇힌 자, 정신적으로 약한 자, 고아와 과부, 도움받을 곳 없는 모든 궁핍한 자.
  • 제안: 집사에게 회의에서 구제 문제 투표권을, 구제는 해외의 박해받는 신자들에게까지. 연보는 회중이 주님께 드린 것을 주님의 상에서 가져다 주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분배된다.

27. 교회 회의와 노회정치 원서 1071–1074쪽

노회는 교회의 존재가 아니라 안녕(bene esse)을 위한 것이며 서열이 없다.

  • 지역 교회는 그 자체로 ‘완전한 교회’(ecclesia completa)다. 하나님의 성전·신부·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린다.
  • 그러나 완전은 고립이 아니다. 사도 선출(행 1), 집사 선출(행 6), 장로회(πρεσβυτεριον, 딤전 4:14), 할례 문제의 회합(행 15). 독립과 연합은 처음부터 함께 있었다.
  1. 초기 3세기감독·장로·집사, 때로 일반 회원까지 참여한 동등한 회의.
  2. 이후지방회의·전국회의·공의회의 서열이 생기고 권한이 주교에게 모임. 로마는 교황 승인을 공의회의 조건으로 삼고 승인된 결정에 무류성 부여.
  3. 츠빙글리·칼뱅시찰과 정기 모임.
  4. 1559년 파리최초의 개신교 총회. 공통 신앙고백과 교회 질서 합의 → 여러 나라 개혁파 교회로 확산.
  • 반발: 항변파는 노회가 필수가 아니라 보고 교회를 국가 아래 두었다. 재세례파와 독립파는 구속력 있는 노회를 거부했다. 바빙크는 회의가 분란의 원인이 된 역사도 인정한다.
  • 그래도 노회는 교리·권징·예배의 일치, 목사의 훈련과 파송, 약한 교회 돕기에 필요하다. 노회는 오히려 지역 교회의 독립을 지키고 위계를 무너뜨린다.
  • 조건: 지역 교회 대표로 구성, 상하 서열 없음,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결정적.

28. 교회와 세상, 교회와 국가 원서 1075–1078쪽

교회의 무기는 강제가 아니라 설득과 증거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

재세례파 회피

세상을 죄악된 곳으로 보아 피한다.

로마 가톨릭 금욕

자연을 저급한 질서로 보고 금욕으로 초자연으로 끌어올리려 한다. 은혜는 자연 위에 기계적으로 덧붙여진다. 보통 사람은 경계선에 머문다.

개혁파 성화·갱신

세상을 피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성화하고 갱신하려 한다.

  • 근거: 창조와 재창조는 한 분 삼위 하나님의 일이다. 만물은 그리스도를 통해 지어졌고, 중생시키는 성령은 태초에 수면 위를 운행하신 그 성령이다.
  • 은혜는 사제가 성례에 담아 나누는 물질이 아니라 창조세계 안에서 일하는 갱신의 능력이다. 일반은총(악의 억제)과 특별은총(갱신)은 두 영역의 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전에 인간이다.”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참 인간일 뿐이다. 새롭게 된 사람들을 통해 가정·학문·예술·사회·국가가 변혁된다.
  • 교회와 국가: 황제교황주의는 교회의 독립을 잃게 하고, 교황제는 세례받은 모든 이를 모든 영역에서 교황에게 복종시키려 한다. 종교개혁은 자연의 영역을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했다.
  • 교회는 말씀을 선포할 의무만 있을 뿐 정부에 강제할 권한은 없다. 기독교 정부도 자기 영역에서만 일해야 한다. 죄(sin)와 범죄(crime)를 구분하고 개인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 다만 이 경계는 민족과 시대에 따라 달라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구조도

영적 본질 카할에서 에클레시아로 역사와 개혁 제도화와 두 측면 구분 표지와 속성 말씀 하나, 종말론적 유기체·기관 교회를 통해 교회를 직분의 역사 장로제에서 교황제로 그리스도의 왕권 섬김의 특별 직분 영적 권세 가르침·다스림·자비 교회와 세상 구별되나 분리 없음 위: 교회란 무엇인가(1–9절) · 아래: 누가 어떻게 다스리는가(10–28절)
교회론의 흐름: 본질에서 다스림으로

로마와 개혁주의 교회론

주제로마 가톨릭개혁주의
교회의 하나됨교황 중심 제도머리이신 그리스도
참 교회 표지고대성·주교 계승오직 말씀
사도성인물과 자리 계승교리의 계승
직분위계와 군림섬김과 동등
권세교황 무류·강제말씀과 성령

다른 입장과 바빙크

입장주장바빙크의 답
로마 가톨릭교황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고 그 밖에는 구원이 없다교회와 교황도 신앙의 조항일 뿐. 기준은 성경, 표지는 말씀 하나
로마의 사도 계승론주교는 사도의 계승자로서 권위를 전달받는다성경은 인물의 계승을 말하지 않는다. 사도성은 교리의 계승
재세례파·분리주의교회는 세상과 분리된 영적 사람들의 교제은혜와 자연을 둘로 가른다. 교회는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
슐라이어마허·근대 신학교회는 거듭난 개인들의 결사체그리스도가 부르셔서 교회를 만드셨다
다비의 세대주의모든 교회 형태는 바벨, 물러나 재림만 기다려라지상 그리스도의 몸을 비역사적 이상에 희생시킨다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교황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는 다른 두 교회다.
  • 말씀의 표지로 교회의 참·거짓을 확정할 수 있다. 우리 교회만 참되고 다른 곳엔 구원이 없다.
  • 교회 안에 위선자가 있으면 거짓 교회다.
  • 직분은 신자 위에 군림하는 권위다.
  • 교회 질서는 비본질적이니 각자 정하거나 국가에 맡기면 된다.

바른 이해

  •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
  • 완성되어 가는 한 교회를 믿음과 고백·삶의 두 측면에서 본 것이다.
  • 표지는 무오한 기준이 아니라 건전한 판단의 근거다. 순전함의 정도 차이지 절대적 참·거짓은 없다.
  • 교회의 성격은 불신자가 아니라 신자들이 결정한다.
  • 직분은 섬김이며 그리스도만 교회의 왕이시다.
  • 성령이 사도의 증거 위에 세운 교회는 고유한 질서를 가진다.

핵심 용어

카할·에클레시아 (קָהָל, ἐκκλησια)
하나님이 불러 모으신 백성의 모임.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 교회의 성경 명칭.
유기체
전체가 부분보다 앞서 하나로 살아 있는 몸. 보편교회가 지역 교회와 개별 신자보다 앞선다.
가시적·비가시적 교회
두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만 아시는 믿음과 우리가 보는 고백·삶이라는 한 교회의 두 측면.
전투적 교회
지금 이 땅에서 싸우며 순례하는 교회. 가장 넓은 교회의 작은 일부.
교회의 표지
참 교회를 판단하는 근거. 유일한 표지는 순전하게 시행되는 하나님의 말씀.
신자들의 어머니 (mater fidelium)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해 신자를 모으시는 기관으로서의 교회.
가르치는 교회·듣는 교회
로마가 성직자와 평신도를 나누는 개념. 감독제의 중추.
군주적 감독제
한 감독이 장로단 위에 서는 교회 정치.
교황 수위권
로마 주교가 온 교회를 다스린다는 주장.
감독 (magisterium) / 섬김 (ministerium)
교회 직분은 군림하는 감독이 아니라 섬김이다.
아디아포라 (adiaphora)
성경이 명하지도 금하지도 않은 임의 사항. 교회 질서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사효적 성사 (ex opere operato)
행해진 행위 자체로 은혜가 생긴다는 교리.
열쇠의 권세
무엇이 허락되고 금지되었는지 선언하는 권세. 말씀과 성령에 매인다.
권징 (potestas disciplinae)
무사르·파이데이아. 양육하며 바로잡는 일로, 영적 형벌에 한정된다.
완전한 교회 (ecclesia completa)
그 자체로 부족함 없이 온전한 지역 교회.
노회 (bene esse)
교회의 존재가 아니라 안녕을 위해 필요한, 위계 없는 교회들의 회의.
autopistos
스스로 신뢰할 만함. 오직 성경만이 그런 권위다.

성경 근거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에베소서 1:22–23
구절이 장에서의 쓰임
마 16:18예수가 친히 자기 공동체를 교회라 부르심. 반석은 베드로의 고백(레오 1세는 로마 수위성의 근거로 끌어옴)
엡 1:22–23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통일성의 기초, 은혜의 왕권
히 12:23; 요 17:20교회는 천상의 백성과 장래 신자까지 포함
엡 4:4–6한 주, 한 세례, 한 성령으로 하나 됨
고전 13모든 은사는 가장 탁월한 사랑에 예속됨
딤전 5:17장로 계층과 다스리는 감독자, 치리와 말씀의 수고의 구분
벧전 5:3; 마 20:25–26맡겨진 양 떼 위에 군림하지 말라. 직분은 섬김
마 18:18열쇠의 권세는 모든 사도에게 주어짐
마 18:15–17권징의 단계적 절차
요 21:15–17‘내 양을 치라’, 다스리는 권세의 요약
딤전 3:15진리의 기둥과 터, 신앙고백의 정당성
요 18:36; 고후 10:4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강압이 아닌 영적 무기

복습 문제

교회가 ‘전체가 부분보다 앞서는 유기체’라는 말은 무슨 뜻이며, 바빙크는 이로써 어떤 두 길을 거부하는가?
교회의 통일성은 신조·직제·총회로 나중에 생기거나 개인들이 모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모으고 다스리시는 머리 그리스도께 기초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제도가 교회를 만든다는 로마의 길과 신자 개인의 자발적 결사로 보는 근대의 길을 함께 거부한다.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의 관계를 바빙크는 어떻게 정리하는가?
택자와 위선자로 나뉜 두 교회가 아니라, 같은 신자들을 하나님만 아시는 마음의 믿음으로 보느냐 관찰 가능한 고백과 삶으로 보느냐의 차이, 곧 완성되어 가는 한 교회의 두 측면이다. 신자 안의 옛 아담도 교회에 속하지 않으며, 완성 전까지 교회는 신앙의 조항이다.
참 교회의 표지에 대한 로마와 종교개혁의 차이, 그리고 표지의 성격은?
로마는 고대성·주교 계승·기적·동질성·번창 같은 외적 증거를 내세운다. 종교개혁은 설교·성례·고백·삶에서 시행되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표지로 본다. 표지는 무오한 절대 기준이 아니라 건전한 판단의 근거이므로 절대적으로 참되거나 거짓된 교회는 없다.
베드로·로마 수위권에 대한 바빙크의 두 단계 반박은?
① 성경에는 베드로가 다른 사도 위에 군림하는 수위성이 없다. 반석은 그리스도 자신이고 열쇠의 권세는 모든 사도에게 주어졌다. ② 설령 있었어도 로마 주교에게 전수된 역사적 근거가 없다. 베드로는 바울에게 책망받았고 초기 명단은 그를 로마 주교로 보지 않았으며, 그 전승은 빅토르 1세 때 형성되었다.
교회의 권세가 ‘영적’이라는 말의 뜻과 세 가지 권세는?
비가시적·내면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성령이 주시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사되며 신자에게만 미치고, 강압이 아닌 믿음과 사랑으로 역사하며 세움을 목적으로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상응해 가르치는 권세(말씀 사역자), 다스리는 권세(장로·권징), 자비의 권세(집사·구제)로 나뉜다.
노회는 왜 필요하며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
교회의 존재(esse)가 아니라 안녕(bene esse)을 위해 필요하다. 교리·권징·예배의 일치, 목사의 훈련과 파송, 약한 교회 돕기를 가능하게 하고 지역 교회의 독립을 지키며 위계를 무너뜨린다. 지역 교회 대표로 구성되고, 상하 서열이 없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결정적이어야 한다.
한 줄“교회는 그리스도가 말씀과 성령으로 모으고 다스리시는 신자들의 몸이다.”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