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인은 어떻게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 끝까지 서는가?
- 죄 용서인 칭의는 은혜언약의 첫 유익이다. 참된 용서는 정의를 없애지 않고 전제하며, 십자가에서 정의와 사랑이 만난다.
- 칭의는 윤리적 변화가 아니라 재판장의 법정적 무죄 선언이다.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고, 믿음은 근거가 아니라 받는 손이다(‘믿음 때문에’가 아니라 ‘믿음으로’).
- 로마 가톨릭은 칭의와 성화를 섞었다. 칼뱅은 빛과 열처럼 구분하되 분리하지 않는 길을 열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이자 거룩함이시다.
- 성화는 성령이 주시는 선물이자 날마다 회개하며 감당할 임무다. 선행은 공로가 아니라 은혜의 표지이고, 상급은 품삯이 아니라 자녀를 격려하는 은혜다.
- 이 땅에 완전은 없다(롬 7장). 견인도 선물이자 임무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파기될 수 없는 은혜언약이 구원을 끝까지 보증한다.
1. 용서 원서 935–937쪽
거듭남·믿음·회심은 은혜언약의 유익을 받아 누리는 조건이고, 그 유익의 맨 앞에 칭의, 곧 죄 용서가 선다. 기쁨과 평화,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모든 확신이 이 용서에 달려 있다.
성경 밖 용서 없음
- 이교: 신들을 정념을 가진 존재로 그려 선물과 기도로 달램
- 동양 종교·서양 사상: 카르마(행위에 따른 인과응보)의 냉정한 법칙. 보응만 있고 용서는 없다
- 자연도 용서를 모른다
-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은 이교보다 죄를 더 가볍게 본다
성경 정의 위의 용서
- 참된 용서는 정의를 전제하며 정의와 함께 서고 넘어진다
- 속죄 희생을 거부하면 용서의 개념과 정의의 가치를 함께 부인하게 된다
- 기독교만의 특징: 정의와 사랑을 십자가에서 한데 묶음
- 구약: 속죄제사는 부지중의 죄를 덮었지만(레 4:2) 우상숭배·안식일 모독 같은 고의적 언약 파기는 덮지 못했다(민 15:30).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더 엄히 벌을 받았다(암 3:2).
- 그럼에도 하나님은 언약적 사랑 때문에 이스라엘을 잊지 못하신다(호 11:8). 자기 이름과 명예를 맹세로 묶으셨기에 회개하는 남은 자를 구원하시고, 새 언약으로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을 약속하신다(렘 31:31). 그 의는 메시아에게서 나온다(렘 23:6).
| 구약의 용서 표현 | 뜻 |
|---|---|
| 나사 | 용납하다 |
| 살라흐 | 용서하다 |
| 키페르 | 덮다, 속죄하다 |
| 마하 | 닦아 없애다 |
| 이미지 | ‘등 뒤로 던지다’, ‘바다 깊은 곳에 던지다’ |
2. 신약의 용서와 바울의 칭의 원서 938–939쪽
- 포로기 이후 유대교는 행위로 자기 의를 만들려는 율법주의로 기울었다. 요한과 예수는 할례로 충분하지 않고,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아야 한다고 선포했다(마 6:33). 그 선물은 세리와 죄인,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주어진다.
- 예수는 직접 죄 사함을 베푸시고,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며(마 20:28),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다. 사도들의 설교는 한 가지를 반복한다: 죄 용서는 그리스도가 얻으셨고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 유익이다.
| 바울의 칭의론 | 요점 |
|---|---|
| 자랑의 배제 |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가 없다(롬 3:20). |
| 율법 자체 | 나쁘지 않다. 거룩하고 공의롭고 선하다(롬 7:12). 구원은 오직 의를 통해서만 온다는 법정적 틀을 끝까지 지킨다. |
| 진짜 갈림길 | 율법과 관련된 의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 의를 얻어 내느냐 은혜로 받느냐. 율법인가 복음인가, 행위인가 믿음인가, 공로인가 은혜인가. 구원이 선물이면 종교가 도덕의 기초가 된다. |
| 의의 수여 방식 | 우리 밖에 머무는 것도, 안에 주입된 것도 아니다. 무죄를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행위로 수여된다. 그리스도를 속죄제물로 내어 주심으로 공의를 지키면서 믿는 자를 의롭게 하셨다(롬 3:25–26). |
| 믿음 | 교리 동의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은혜를 마음으로 신뢰하고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것(갈 2:20). |
| 열매 | 두려움에서 해방, 자녀이자 후사로 입양된 확신, 의의 소망(롬 8:15–17; 갈 5:5).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면 누가 정죄하겠는가. |
3. 로마 가톨릭과 루터의 칭의 원서 940–945쪽
- 이신칭의는 바울 당시부터 율법을 무시한다는 오해를 받았다(롬 3:8; 6:1). 어떤 이에게는 죽은 믿음에 대한 야고보의 경고가 필요했고, 다른 이들은 율법주의와 금욕으로 기울었다(골 2:16).
- 교회는 점차 그리스도인의 삶을 참회와 계명 순종으로 이해했다. 세례 후의 죄는 선행으로 처리할 몫이 되었고, 은혜는 성례로 주입되는 것이 되었다.
- 트리엔트 공의회: 칭의 = 죄 사함 + 속사람의 성화와 갱신.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셨기에 용서하신다는 순서가 된다.
로마와 공유하는 점 공정한 인정
모든 유익을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공로에 돌리고,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부인하지 않는다.
갈라지는 점 차이
- 믿음 = 계시 진리에 대한 동의. 소망과 사랑 없이는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없다 → 믿음만으로는 확신이 없다.
- 칭의에 의의 윤리적 주입까지 포함 →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루터
- 참회 체계와 면벌부에 맞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했다.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시다는 말이 아니라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의다.
- 바르게 행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되었기에 바르게 행한다. 먼저 사람이고 그다음이 행위다.
- 하나님 말씀대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수동적 칭의,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고 믿는 것이 능동적 칭의이며 둘은 동시에 일어난다.
- 신자는 평생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고 칭의는 항상 진행 중이다. 그래서 거짓 안정과 낙심을 모두 경계했고, 믿음은 작은 일의 충성과 사랑의 순종으로 드러난다고 가르쳤다.
4. 루터파 칭의론의 전개 원서 945–947쪽
종교개혁은 처음부터 종교적이면서 윤리적이었다. 루터가 외적으로 주입된 그리스도의 의만으로 충분하다고 가르쳤다는 비판은 거짓이다. 루터는 의롭다는 선언과 의롭게 만드는 일을 칭의라는 하나의 주제로 다뤘다. 이후 루터파는 멜란히톤을 따라 칭의에 법정적 의미만 부여하게 되었다.
| 「일치 신조」의 고백 | 내용 |
|---|---|
| ① 도구 | 이야기를 아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만이 그리스도의 의를 붙든다. |
| ② 근거 | 과거·현재·미래의 어떤 행위나 공로와도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순종의 의를 우리에게 돌리신다. |
| ③ 경계 | 칭의 앞의 통회와 뒤따르는 선행은 칭의 조항 자체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죄를 지으려는 의도와 공존하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홀로 있지 않아 선행이 언제나 뒤따른다. |
- 17세기 이후합리주의와 경건주의의 압력 속에 예정 교리를 떠남. 은혜가 보상에, 복음이 율법에, 믿음이 행위에 자리를 내줌. 칭의가 용서와 새로워짐의 주관적 경험으로 변함.
- 슐라이어마허칭의 = 회심의 이면이자 중생의 일부. 그리스도와의 교제라는 새 생명에 의존.
- 리츨객관적 의미 회복을 위해 칭의를 선행에 앞서는 종합적 판단으로 봄. 그러나 교회에 속함으로 얻는 믿음으로 이해해 속죄적 충족에서 떼어 냄 → 다시 종교적 경험으로.
5. 개혁파 칭의론과 칼뱅 원서 948–950쪽
루터파와 개혁파는 칭의 교리의 내용에서 사실상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교리가 놓이는 자리와 무게다.
- 칼뱅은 예정을 중심에 두고 그 빛 아래서 칭의를 설명한다.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은 곧 택자다. 부르심·칭의·영화는 영원한 선택을 시간 속에서 드러내는 일이다.
- 공로 없는 칭의를 힘주어 말한 이유: ① 그리스도의 공로가 그 자체로 충분하다. ② 신자에게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필요하다. ③ 모든 자랑이 사라져야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간다.
- 칭의는 구원의 서정에서 홀로 우뚝한 항목이 아니라, 선택과 그리스도의 선물 뒤에, 성화와 영화 앞에 놓인 길목이다.
신자는 멀리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옷 입고 그의 몸에 접붙여져 하나가 된 사람이다.
6. 칭의는 법정적이고 전가된 것이다 원서 951–954쪽
교회는 칭의 교리로 서고 넘어진다. 구원에 우리가 무언가를 보태야 하든지, 구원이 전부 은혜의 선물이든지 둘 중 하나다. 행위와 덕이 기준이 되면 신자는 마지막 숨까지 불확실성에 갇히고, 그리스도의 중보는 밀려나고, 하나님의 영광은 빼앗긴다.
- 은혜는 사람을 초자연으로 끌어올리는 형이상학적 자질이 아니라, 모든 노력에 앞서 죄인을 값없이 교제로 받아들이시는 용서의 자비와 호의다.
- 성부는 유효하게, 성자는 공로로, 성령은 적용으로 의롭게 하신다.
| 단어 | 법정적 의미의 근거 |
|---|---|
| 히츠디크 (הִצְדִּיק) | 재판장이 무죄를 선고하는 행위. ‘히르쉬아’(정죄하다)의 반대말(신 25:1–2). |
| 디카이운 (δικαιουν) | 바울에게서 분명히 법정적. 롬 3:4에서는 하나님이 의롭다 함을 받는 주체이므로 윤리적 변화일 수 없다. ‘의로 여기다’와 바꿔 쓰이고 정죄·송사의 반대로 쓰인다. 윤리적 의미로 쓰인 확실한 예가 없다. 더 넓은 뜻이 가능하다고 개연적인 것은 아니다. |
칭의의 근거를 인간 안에서 찾는 입장(로마·항변파·합리주의·신비주의)에 대한 네 반박
- 하나님의 의는 복음 안에 객관적으로 계시되어 믿음보다 앞선다(롬 1:17).
- 성경은 늘 ‘믿음으로’라 하지 ‘믿음 때문에’라 하지 않는다. 믿음은 그 내용이신 그리스도 때문에 의롭게 한다(롬 3:26).
- ‘의로 여기다’는 갖지 않은 것을 돌리는 전가다. 신자의 죄는 그리스도께, 그의 의는 신자에게(고후 5:21; 롬 4:4).
- 믿음 자체가 근거라면 하나님은 율법 기준에 못 미치는 의를 받으시는 셈이고, 신자는 모든 위로를 잃는다(롬 3:31).
7. 전가된 의에 대한 반론 원서 956–957쪽
| 반론 | 바빙크의 답 |
|---|---|
|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밖에 있고 전가될 뿐이면 하나님 앞의 참모습이 아니다. 참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은 실제로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롭다 하실 수 없다. | ① 이 반론은 사실상 바울을 겨냥한다(롬 4:5; 5:16). ② 가장 좋은 유비는 양자 됨이다. 입양된 자녀는 혈연이 아니어도 정말 그 가정의 일원이며 모든 권리를 받는다. 감정이나 상상이 아니라 신분의 법적 변화다. ③ 전가는 주입보다 덜 실제적이지도 덜 필수적이지도 않다. 차이는 하나: 성화에서는 의가 윤리적으로, 칭의에서는 법률적으로 우리 것이 된다. 아직 손에 쥐지 않았다고 법적 소유가 허구는 아니다. |
- 단서 1: 법적으로 전가된 의는 성화에서 윤리적으로 효력을 내야 한다. 칭의가 성화를 대신하지 않는다.
- 단서 2: 전가된 의는 완전히 남의 것이 아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작정과 구원 협약에 뿌리를 두고, 은혜언약은 우리의 출생과 믿음보다 앞선다. 그 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의이고 그 때문에 지체들의 의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도 신자를 정죄할 수 없다(롬 8:33–34).
8. 믿음과 칭의, 칭의의 시점 원서 957–958쪽
성경은 믿음과 칭의를 아주 가깝게 묶는다(창 15:6; 합 2:4; 롬 5:1; 갈 3:22–24). 그렇다면 칭의는 영원 전인가, 시간 속인가?
영원한 칭의 주장
반율법주의자: 믿음은 영원 전 사건을 뒤늦게 인정할 뿐. 반신율법주의자: 복음과 율법이 섞일까 두려워 영원한 칭의를 시간 속 칭의의 토대로 삼음.
바빙크·개혁파
선택의 작정이 영원하다는 점은 중요하나, 칭의 자체가 영원 전에 일어났다는 말은 성경적이지 않고 시간 속 실현 문제도 풀지 못한다. 영원한 작정과 시간 속 집행을 구분한다.
- 칭의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묶을 때 굳건한 성경의 땅에 선다(롬 4:25). 복음은 믿고 회개하고 계명을 지키면 화해해 주시리라 하지 않고, 이미 화해하셨으니 들어오라고 선포한다(고후 5:19).
- 죄 용서는 믿음이 만드는 것도 행위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저장되어 믿음보다 앞서며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 쥔다. 사도신경이 죄 사함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유다.
- 다만 고후 5:19가 화해를 죄의 비전가와 연결하기에, 죽음·부활과 칭의를 얼마나 정확히 잇는지는 개혁파 안에서도 씨름거리였다.
능동적 칭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칭의를 이루고 선언하심(획득). 특히 말씀과 성령으로 죄인을 그리스도께 이끄시는 내적 부르심에서 일어난다.
수동적 칭의
신자가 믿음으로 받음(적용). 시간의 선후가 아니라 논리적 구분이며 둘은 늘 함께 간다.
이 구분은 율법주의를 막고, 신자의 눈을 자기 성찰에서 그리스도께로 돌려 확신을 굳힌다. 믿음은 칭의의 실질적·형식적 원인이 아니라 성령이 일으키시는 확실한 지식과 굳건한 확신이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약 2:22), 믿음 자체가 가장 탁월한 행위이자 모든 선행의 원리다(요 6:29). 칼뱅의 말처럼 오직 믿음이 의롭게 하지만 그 믿음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 그래서 바울과 야고보는 충돌하지 않는다.
9. 칭의의 요소: 용서와 양자 원서 960–963쪽
바빙크는 칭의를 그리스도의 순종 전체가 신자에게 전가되는 일로 보고, 죄 용서와 영생의 권리(양자 됨 포함)의 두 부분으로 이해한다. 양자 됨을 열매로 볼지는 견해가 갈리지만 그는 칭의 안에 포함시킨다.
| 물음 | 답 |
|---|---|
| 미래의 죄까지 용서되면 방종을 부추기지 않는가? (반율법주의 우려) | 반대다. 완전한 용서야말로 날마다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게 만든다. |
| 이미 용서받은 사람이 왜 또 죄를 고백하는가? | 용서는 죄의 실제적 책임(형벌을 받아야 할 법적 책임)은 없애지만 잠재적 책임까지 없애지는 않는다. 죄의 결과(죄책감, 고통, 소외감, 양심의 평화 상실)는 남는다. 그래서 다윗도 오래전 죄를 다시 고백했다(시 51:4–5). 성령은 고백과 기도를 방편 삼아 용서받았음을 깨닫게 하신다. 신자는 의심 속이 아니라 부르심을 돌이키지 않으시는 신실하심(롬 11:29)에 기대어 자녀로서 나아간다. |
영원에 기원을 둔 칭의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의 부르심에서 실현되고 최후 심판에서 온전히 완성된다. 확실성은 믿음에 나중에 덧붙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믿음 안에 잠재해 있다. 그러므로 선행은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소유한 영생의 계시이자 인침이다.
10. 성화: 선물과 보상으로서의 거룩 원서 963–966쪽
- 하나님의 구속계획은 처음부터 성화와 영화를 포함했다.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받았고(레 19:2) 그 거룩은 종교·도덕·시민 생활·사회 전체에 적용되었다.
- 예언자들은 허물을 사하고 새 마음을 주시는 새 언약을 약속했다(렘 31:31–34). 죄 사함처럼 성화도 하나님의 사역이자 선물이다.
-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은 삶 전체를 행위와 보상의 도식으로 다뤘다. 예수는 율법의 영적 의미로 돌아가 하나님 나라의 의를 바리새인의 의와 구분하셨다(마 5:20). 하나님과 이웃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은 중생·믿음·회심으로만 가능하다.
예수의 요구
자기부인과 십자가, 모든 것과 목숨까지 내려놓을 준비. 그러나 금욕주의자가 아니셨다. 잔치에 참여하고 결혼·음식·술을 금하지 않으셨으며(마 11:19) 사랑을 율법의 성취로 보셨다.
상급 개념
핍박을 견딤, 원수 사랑, 은밀한 구제, 맡은 일의 신실함에 상급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① 자기 일을 과시하는 자는 상급을 잃고 ② 상급은 수고와 비교할 수 없이 큰 하나님의 선물이다(마 20:14–15). 나라의 복은 외형적 보상이 아니라 자녀 됨과 청결한 마음이다.
- 오순절 이후 신자는 세례로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들어가 그리스도를 의로만 아니라 거룩함(ἁγιασμος, 하기아스모스)으로 받았다(고전 1:30). 이 단어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과정을 뜻한다(히 12:14).
- 성화는 무엇보다 하나님, 특히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므로 신자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고, 육체와 싸우며(갈 5:17), 몸을 산 제물로 드린다. 모든 의무는 사랑의 실천으로 요약된다.
- 절제는 때로 바람직해도 결혼과 음식을 금하는 가르침은 배교자의 것이다(딤전 4:3). 그 자체로 부정한 피조물은 없다(롬 14:14). 은혜는 자연의 권한을 정지시키지 않는다.
- 미래의 영광은 은혜의 선물이면서 인내의 동기이고, 영광은 행실에 따라 차이가 난다(갈 6:7–8). 성화는 은혜를 무너뜨리지 않고 은혜에 봉사한다.
11. 이중 도덕과 선행의 공로 원서 967–971쪽
- 세례 후의 죄세례는 과거의 죄만 덮는다고 믿음. 영구 출교는 너무 가혹 → 무거운 죄와 가벼운 죄 구분. 유대교·스토아 영향.
- 복음이 새 법으로은혜는 세례 때까지만 유효, 세례 후 죄는 참회·고백·금식·구제로 스스로 갚음. 교회의 위계화로 교회에 순종이 모든 덕을 아우르는 덕이 됨.
- 이중 도덕보통 신자의 도덕과 ‘성인’의 도덕. 세상에서 도망치려는 분위기 속에 은자와 수도사의 삶.
- 선행의 공로‘네가 주도록 내가 준다’(do ut des)는 거래. 로마 가톨릭이 신앙 항목으로 체계화.
| 구분 | 교훈 | 완덕의 권고 (consilia) |
|---|---|---|
| 대상 | 모두에게 명령됨 | 원하는 자만 택함 |
| 내용 | 계명 | 순결·가난(마 19:21)·순종(마 16:24) |
| 의미 | 영생에 꼭 필요 | 더 빠르고 확실한 길 |
| 근거로 삼은 본문 | 오리게네스·테르툴리아누스가 고전 7:25를 오용. 로마는 공식 법으로 정한 적은 없으나 가르침과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 |
12. 성화 그리고 칭의에 대한 비판 원서 972–975쪽
- 종교개혁은 공로 체계 전체를 거부하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택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선물로 시작되므로 종교가 다시 도덕보다 앞서게 되었다.
- 믿음은 처음부터 두 얼굴을 가진다. 선물을 받는 기관이면서 밖으로 일하는 힘이다. 받는 손이자 일하는 손, 종교적이면서 도덕적이다. 그래서 칭의는 수용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 개혁파: 믿음은 중생에서 나오고 끊임없는 회개를 동반한다. 순종은 공로를 쌓기 위한 특별한 순종이 아니라 십계명에 요약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어린아이 같은 순종이다. 기도도 감사의 삶에서 중요하다.
- 칼뱅은 롬 12:1을 삶 전체의 원리로 삼았다(우리는 하나님의 것). 딛 2:12를 따라 자신에게 절도 있게, 이웃에게 공정하게, 하나님께 경건하게. 개신교에서 신학과 윤리가 통합되었다.
반대 ① 인문주의 합리론자
삶의 여러 영역을 신학의 지배에서 떼어 내려 함.
반대 ② 신비주의·재세례파·경건주의·감리교
칭의에 성화를 덧붙이라고 요구. 경건주의는 회심 방법을 정하고 작은 모임에 경건한 자를 모음. 감리교(웨슬리)는 완전 성화 교리: 칭의는 관계의 변화일 뿐, 완전 성화가 실제 변화이자 두 번째 복이며 지금 주신다고 확신하는 믿음으로 즉시 받는다(막 11:24).
완전 성화 교리는 감정적 체험, 재림 기대, 금욕적 율법주의와 기행을 낳기도 했으나 바빙크는 선교와 자선이라는 큰 열매도 인정한다.
13. 우리의 거룩함이신 그리스도 원서 976쪽
바른 성화 이해의 출발점: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신 것과 똑같은 의미로 우리의 거룩함도 되신다(고전 1:30). 그분은 심판에서 건질 만큼만 의롭게 해 놓고 나머지를 우리 손에 맡기시는 분이 아니라 완전하고 충분한 구원자다. 거룩함은 그리스도 안에 이미 완전히 준비되어 있고, 하나님은 이를 전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실제로 심으신다. 아들의 형상에 이를 때까지.
| 비교 | 칭의 | 성화 |
|---|---|---|
| 다루는 문제 | 죄책(법적 권세) | 오염과 죄의 도덕적 지배 |
| 성격 | 법정적 선언 (무죄 선고) | 윤리적 과정 (실제 새로워짐) |
| 시간 | 단번에 끝남 | 평생 이어짐. 이 땅에 완전은 없음 |
| 의가 우리 것이 되는 방식 | 법률적으로 전가됨 | 윤리적으로 심기고 자람 |
| 하나님의 성품 | 의로우심: 죄책과 형벌에서 자유하기를 원하심 | 거룩하심: 오염 없이 순결하게 서기를 요구하심 |
| 논리적 순서 | 앞선다 (롬 8:30) | 뒤따른다 (칭의 위에 선다) |
| 받는 것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됨 |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내주하여 자기 형상대로 새롭게 하심 |
| 능동·수동 | 능동적 칭의(하나님이 이루고 선언) / 수동적 칭의(믿음으로 받음) | 수동적 성화(받는 선물) / 능동적 성화(계속되는 회개의 임무) |
| 짝이 되는 반응 (19장) | 믿음 | 회심 |
| 완성 | 최후 심판에서 공개적으로 완성 | 영화와 겹치며 재림 때 완성 |
| 오류 | 로마 가톨릭: 둘을 섞음 · 감리교: 성화를 별도의 복으로 떼어 냄 | |
칭의와 성화는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다. 잉태부터 승천까지 그리스도를 구비시키신 그 성령으로 그리스도는 교회를 빚으신다. 성령은 확신을 주는 양자의 영이자 갱신과 성화의 영이다. 성경은 이 연합을 포도나무와 가지(요 15), 머리와 지체, 남편과 아내, 모퉁이돌과 건물로 그린다. 성화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삶으로 펼쳐지는 일이다.
14. 선물이자 임무인 성화 원서 977–978쪽
수동적 성화 선물
- 성부·성자·특히 성령의 일. 신자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엡 2:10),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입음(고전 1:2).
- 그래서 백성은 성도라 불린다(벧전 2:9).
- 이렇게 보면 성화는 영화와 겹친다(롬 8:30). 영화는 재림 때 완성되지만 지금도 진행 중.
능동적 성화 임무
- 계속되는 회개로의 부르심. 죄에 대해 죽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롬 12:1).
- 접붙임 받은 가지는 열매를 요구받는다.
- 하나님의 행위와 우리의 책임은 늘 함께(빌 2:12–13).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의 삶.
| 입장 | 선행에 대한 이해 |
|---|---|
| 율법주의자 | 구원의 필요조건 |
| 반율법주의자 | 그리스도의 희생이 완전하니 회개와 선행이 필요 없다 |
| 루터파 | 이 긴장을 특히 어려워해 격렬한 논쟁을 겪음 |
| 개혁파 | 공로가 아니라 현존의 의미에서 필요. 구원의 값이 아니라 은혜가 역사하고 있다는 표지 |
하나님과 인간, 믿음과 사랑, 기도와 행동은 맞서지 않는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 자유의 근거다. 은혜 아래 있기에 죄가 지배하지 못하고(롬 6:14),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이 힘을 낸다(갈 5:6). 이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몸은 값 주고 산 성령의 전이다(고전 6:20).
15. 선행, 완전주의, 견인 원서 980–982쪽
- 개혁파는 이교도의 미덕을 일반은총의 열매로 넉넉히 인정하지만 ‘선행’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 믿음은 칭의의 첫 단계에만이 아니라 성화의 전 과정에서 대체할 수 없다. 자기의존을 깨뜨리고 약속만 붙든다. 먼저 받은 뒤에야 줄 수 있다(빌 4:13).
- 믿음은 율법을 세우되, 율법 준수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는 끊는다.
- 현대 반율법주의는 니체에게서 가장 분명하다. 선을 악이라, 악을 선이라 부르며 도덕적 무정부를 세웠고, 역설적으로 ‘초인’만의 또 다른 이중 도덕을 낳았다. 율법주의도 결과가 비슷해, 로마의 교훈과 권고, 경건주의·감리교의 구분은 큰 교회 안에 엘리트의 작은 교회(ecclesiola)를 만들었다.
16. 완전주의 비판과 상급 원서 982–984쪽
교훈과 권고를 나누면 결국 세 결론에 닿는다: 이생에서 완전해질 수 있다, 선행에 공로가 있다, 그 공로를 남에게 넘길 수 있다. 율법주의는 이렇게 완전주의로 흐른다.
- 리츨 등은 바울이 회심 뒤 불완전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경이 교회를 제사장 나라, 세상의 빛, 죄를 지을 수 없는 자로 부르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과장이 아니라 믿음으로 고백한 표현이다(벧전 2:9–10). 같은 바울이 아직 완전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빌 3:12).
- 결정적 근거: 롬 7:7–25. 바울은 현재 시제를 쓴다. 회심 전 회상으로 읽으면 사도를 배우로 만드는 셈이다. 거듭난 사람 안에도 죄와 은혜의 긴장이 지속된다.
- 신자는 날마다 용서를 구하고, 죄가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인다(요일 1:8; 약 3:2). 동시에 성경은 율법의 요구를 낮추지 않는다(마 5:48). 완전주의자들은 죽을 죄와 가벼운 죄, 상대적·절대적 완전을 구분해 도덕법의 수준을 낮춘다.
- 종교개혁의 답: 행위가 불완전하다면 공로성은 전부 사라진다.
- 감리교가 성화를 별도의 믿음 행위로 얻는 고립된 유익으로 본 것도 오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와 그의 유익 전체를 한 번에 받는 단일 행위다.
상급이 아닌 것 ✕
영생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품삯. 경제적 문자주의. 임금 노동.
상급인 것 ✓
이미 상속자가 된 자녀를 격려하고 위로하시려는 하나님의 표현. 아버지를 돕는 아들의 섬김. 참된 믿음으로 행한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자 은혜의 선물이다.
17. 성도의 견인 원서 986–988쪽
견인(참 신자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도 성화처럼 선물이자 임무다. 신약은 죽기까지 신실하라 권고하고(계 2:10) 배교를 경고하며 무거운 형벌을 예고한다(고전 10:12; 히 6:4–8). 그래서 많은 전통이 은혜를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견인을 고백했고, 개혁파만이 이 교리를 지지하며 믿음의 확신과 연결했다.
| 배교 경고 본문을 읽는 법 | 내용 |
|---|---|
| 무지의 고백 | 그들이 참으로 거듭났는지, 실제로 은혜를 잃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요한: 변절자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다(요일 2:19). |
| 결과와 수단 | 결과의 확실성이 수단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는다. 바울은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선원들이 배에 남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했다(행 27:31). 확실한 결말과 신실하라는 권고는 작정 안에서 함께 묶여 있다. |
| 회개 불가능한 죄 | 강퍅함의 심판이 따르는 유일한 죄, 곧 성령 훼방죄를 가리킨다(요일 5:16). |
견인을 부정하면
- 은혜를 잃게 하는 죄와 아닌 죄를 구분해야 하고 결의론에 기대게 된다.
- 신자는 확신을 잃고 기쁨 속에서 성화에 힘쓸 수 없다.
- 임종까지 인간의 의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력이 된다.
성경의 가르침
- 은혜언약은 순종의 의무를 수반하지만 인간의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맹세에 기초한다.
- 결혼(엡 5:31–32)이나 유언(히 9:17)처럼 파기될 수 없다.
- 신자는 이미 영생을 소유하므로(요 3:16) 잃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실 수도 없고 버리시지도 않는다.
구조도
- 바울 당시이신칭의가 반율법적이라 오해받음. 야고보의 경고, 반작용의 금욕적 율법주의.
- 속사도 이후세례 후 죄 문제 → 율법주의, 이중 도덕, 선행의 공로.
- 트리엔트칭의 = 죄 사함 + 속사람의 성화와 갱신.
- 루터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의. 의인이자 죄인.
- 멜란히톤·「일치 신조」법정적 칭의. 믿음은 홀로 있지 않다.
- 칼뱅예정의 빛 아래 칭의. 빛과 열처럼 구분하되 분리하지 않음(오시안더 비판).
- 17세기 이후합리주의·경건주의 → 칭의의 주관화. 웨슬리의 완전 성화.
- 슐라이어마허·리츨칭의가 다시 종교적 경험으로.
| 입장 | 그 입장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로마 가톨릭(트리엔트) | 칭의는 죄 사함이자 속사람의 성화와 갱신이다 | 선행을 칭의 안에 넣으면 순서가 뒤집힌다. 성경의 ‘의롭다 하다’는 선언이지 변화가 아니다. |
| 루터 | 신자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며 칭의는 늘 진행 중이다 | 실질은 같다. 다만 칼뱅처럼 예정 아래서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되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 |
| 항변파·합리주의 | 불완전한 믿음을 하나님이 의로 여겨 주신다 | 그러면 하나님이 율법의 기준을 포기하시는 셈이다. 믿음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
| 전가 비판자 | 밖에 있는 의를 전가한다면 허구다 | 양자는 법적 신분 변화로 실제 가족이 된다. 전가는 주입만큼 실제적이고 필수적이다. |
| 반율법주의 | 칭의는 영원 전에 이미 일어났다 | 영원한 작정과 시간 속 집행을 구분해야 한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묶인다. |
| 경건주의·감리교·완전주의 | 칭의 뒤 별도의 완전 성화 체험이 있다 | 그리스도가 이미 우리의 거룩함이시다. 로마서 7장은 신자가 평생 싸움 중임을 보인다. |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 칭의는 하나님이 나를 착하게 만드시는 것이다(죄 사함 + 내적 갱신).
- 믿음이 크면 더 의롭게 된다. 믿음 자체가 의롭다 인정받는 근거다.
- 칭의 뒤 믿음으로 즉시 완전 성화를 받는다.
- 용서받았으니 선행은 선택이다.
- 선행은 영생을 얻기 위한 공로이고, 상급 교리는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 견인은 내가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바른 이해 ✓
- 칭의는 무죄 선언이고, 착해지는 것은 성화다. 둘은 구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
- 믿음은 받는 수단이고, 근거는 믿음의 내용이신 그리스도의 의다.
- 성화는 평생 과정이며 이 땅에 완전은 없다.
- 선행은 조건은 아니나 참 믿음에 반드시 뒤따른다.
- 선행은 이미 받은 영생의 증거이자 은혜의 표지이고, 상급은 자녀를 격려하는 은혜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지키시고 우리는 그 안에서 힘쓴다.
핵심 용어
- 칭의 (죄 용서)
- 은혜언약의 첫째 유익. 하나님이 죄인을 무죄로 선언하시는 법정적 행위.
- 히츠디크 (הִצְדִּיק) · 디카이운 (δικαιουν)
- 재판장이 무죄를 선언하는 법정적 행위를 뜻하는 히브리어·헬라어.
- 전가
- 자기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의를 법적으로 그에게 돌려 줌. 주입만큼 실제적이다.
- 능동적 · 수동적 칭의
-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고 선언하심(획득) / 믿음으로 받음(적용). 시간이 아닌 논리적 구분.
- 양자 됨 (υἱοθεσια)
-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후사가 되는 법적 신분. 바울에게서 법정적, 요한에게서 윤리적.
- 성화 (ἁγιασμος)
- 그리스도와 성령이 신자를 거룩하게 하시는 평생의 과정. 선물(수동적)이자 임무(능동적).
- 이중 도덕
- 일반 신자와 ‘성인’을 나누는 두 단계 윤리.
- 완덕의 권고 (consilia)
- 교훈을 넘어 순결·가난·순종을 더 높은 길로 권하는 가르침.
- 두 번째 복
- 칭의 뒤 믿음으로 즉시 받는다는 감리교의 완전 성화.
- 완전주의
- 이 땅에서 죄 없는 완전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
- 보상 (reward)
- 영생의 품삯이 아니라 상속자인 자녀를 격려하는 하나님의 표현.
- 성도의 견인
- 하나님이 시작하신 은혜의 역사를 끝까지 지탱하고 완수하시는 선물. 신자에게는 임무이기도 하다.
성경 근거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사 43:25; 시 25:11 |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 이름을 위해 죄를 지우신다. |
| 롬 4:5 |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신다. 전가의 근거. |
| 롬 3:25–26 | 공의를 지키시며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심. ‘믿음 때문에’가 아니라 ‘믿음으로’. |
| 롬 4:25 | 칭의는 그리스도의 죽음·부활에 묶여 있다. |
| 롬 8:33–34 |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면 누구도 정죄 못함. |
| 롬 8:15–16 | 성령이 우리가 자녀임을 증거하신다. 양자 됨과 확신. |
| 약 2:22 | 참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된다. 바울과 야고보는 충돌하지 않는다. |
| 고전 1:30 |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이자 거룩함이시다. 칭의와 성화는 분리될 수 없다. |
| 빌 2:12–13 | 하나님의 행위와 우리의 책임이 함께 간다(성화의 두 측면). |
| 롬 7:7–25 | 거듭난 자 안의 죄와 은혜의 긴장. 완전주의 비판. |
| 빌 1:6 | 시작하신 선한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신다. 견인의 근거. |
복습 문제
“참된 용서는 정의를 전제한다”는 말의 뜻과 그것이 속죄 교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칭의가 윤리적 변화가 아니라 법정적 선언이라는 성경적 근거 두 가지를 들라.
‘믿음 때문에’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구분이 왜 중요한가?
전가가 ‘허구’라는 비판에 바빙크는 어떤 유비로 답하는가?
칭의와 성화의 차이를 세 가지 이상 들고, 둘이 분리되지 않는 이유를 말하라.
배교를 경고하는 본문이 있는데도 견인을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