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과 회심은 무엇이며 어떻게 구원과 이어지는가
- 중생으로 심어진 새 생명은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을 아는 믿음의 지식을 얻는다. 알지도 누리지도 못하는 구원은 구원이 아니다.
- 성경의 믿음은 사도적 증언의 수용과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신뢰를 분리할 수 없게 묶는다. 가톨릭은 머리의 동의로 줄였고, 종교개혁은 확실한 지식과 확신으로 되살렸다.
- 믿음과 회심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중생이 논리적으로 앞서고, 확신은 처음부터 믿음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와 약속을 바라봄으로 얻는다.
- 회심은 죄에서 하나님께 돌이키는 마음의 변화로, 옛 자아의 죽임과 새 자아의 살림이다. 믿음은 칭의에, 회심은 성화에 관련되며 둘 다 중생의 열매다.
- 회심의 방식은 다양하다. 선행은 사죄의 원인이 아니라 열매이고, 회개는 세례로 돌아가는 평생의 일이다.
1. 믿음의 지식 원서 887–891쪽
- 중생은 사람 전체를 원칙적으로 새로 짓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새 생명도 성령으로 계속 강건해져야 한다(엡 3:16).
- 새 생명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묶여 있다. 죄가 지각을 어둡게 했으므로 지각 자체가 새로워져야 한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지각을 진리에 열어 주시는 일이 조명이다(고후 4:6).
- 믿음의 지식은 본성 위에 얹힌 초자연적 부가물이 아니다(로마 가톨릭과 다름). 믿는 일은 모든 사람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늘 하는 일이다. 중생은 새 기능을 주지 않고 믿음·소망·사랑을 포함한 모든 능력을 새롭게 해 원래의 생명 관계를 회복한다.
- 씨앗이 흙·물·빛을 필요로 하듯, 심어진 믿는 능력은 지속적인 내적 부르심에 응답할 때 믿음의 행위가 된다.
신비주의와 혼동하지 말라: 다섯 가지 반박
- 모든 지식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전제한다. 조명은 계시에, 내적 부르심은 외적 부르심에 더해져야 한다.
- 하나님의 빛 안에서 빛을 본다는 말은 우리를 자연·율법·복음의 계시로 향하게 한다.
- 자연 지식도 내용은 늘 밖에서 오며, 영적 일은 더욱 그렇다.
- 대상이 보이지 않고 영원하므로 거울에 비친 주님의 영광을 바라봐야 한다(고후 3:18).
- 새 생명은 성경을 양식으로 삼는다.
2. 성경이 말하는 믿음 원서 891–893쪽
성경에서 믿음은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의 말씀에 신뢰함으로 굴복하는 일이다. 구원이 선택하시는 사랑에서 나온 언약, 곧 약속의 형태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약속은 믿음으로만 받는다.
- 구약에는 믿음의 고유한 단어가 없다. 가장 가까운 말은 헤에민(הֶאֱמִין, 붙들다·의지하다·신뢰하다). 신실하신 하나님 한 분만 끝까지 붙드는 것이다.
- 신약에서 ‘믿다’는 곧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다른 이름, ‘믿음’은 기독교 자체와 같은 말이다(행 6:7).
| 신약 저자 | 믿음의 강조점 |
|---|---|
| 요한 문헌 | 그리스도에 관한 사도적 메시지를 받아들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지금 주어진다. |
| 바울 | 대상이신 그리스도께 집중. 율법의 행실 없이 오직 믿음으로 그분께 참여. 개인적 신뢰. |
| 야고보 | 지성으로만 보는 치우침에 맞서, 참 믿음은 선행으로 살아 있음을 입증한다. |
| 베드로 | 믿음을 그 결과인 구원과 묶는다. |
| 히브리서 | 주관적 측면. 담대함·인내·소망 촉구. |
3. 가톨릭과 종교개혁의 믿음관 원서 894–895쪽
로마 가톨릭
- 믿음 = 계시된 모든 것에 대한 지적 동의
- ‘지식 없는 믿음’과 ‘사랑으로 형성된 믿음’을 나누고 후자만 의롭게 한다고 봄
- 믿음은 지성의 일, 신뢰는 의지의 일. 신뢰는 믿음의 결과일 뿐
- 그 신뢰도 오류와 은혜 상실 가능성이 남은 추측에 근거한 도덕적 확신
종교개혁·칼뱅
- 믿음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의에 대한 개인적 확신. 성령이 지성에 계시하고 마음에 인치심
- 복음 내용의 지식을 포함하되 강조점은 그리스도 안의 약속에 대한 신뢰
- 칼뱅: 믿음의 동의는 머리보다 가슴. 지식(cognitio)이든 신뢰(fiducia)든 언제나 ‘확실한’ 지식, ‘견고한’ 확신
4. 지식과 신뢰를 잇는 문제 원서 895쪽
- 종교개혁의 믿음관도 숙제를 남겼다. 지식과 신뢰를 어떻게 결부시키고 확신을 어떻게 얻는가.
- 교회는 종종 지성 강조 쪽과, 마음의 신비나 실천적 선행에서 확신을 찾는 쪽으로 나뉘었다.
-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지식과 신뢰를 ‘이것은 물론 저것도’로 나란히 둘 뿐이다. 두 기능이 어떻게 하나의 믿음을 낳는가는 남는다.
- 고전적 세 구분 지식(notitia)·동의(assensus)·신뢰(fiducia)에 갖가지 구분이 더해지자, 믿음이 칭의를 적용하는 도구로 여겨지지 않을 위험이 생겼다.
알렉산더 콤리와 후계자들
믿음의 행위에서 성향(habitus)으로 눈을 돌림. 신자는 성향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지고 그 뒤에 믿음의 행위가 따른다.
바빙크의 평가
교리문답 21문답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문제도 풀지 못했다. 푸치우스의 말대로 씨가 나무가 아니고 계란이 닭이 아니듯, 믿음의 씨나 뿌리를 정식으로 믿음이라 부를 수 없다.
5. 확신의 문제와 실천적 경건 원서 896–899쪽
- 벨라르미누스: ‘내 죄가 용서되었다’는 확신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과 같을 수 없다. 개혁파는 이를 인정하고 의롭게 하는 믿음(칭의에 앞섬)과 죄 용서를 믿게 하는 믿음(칭의 뒤)을 구분했다. 시간이 아니라 논리의 순서다.
- 제한 속죄 때문에 복잡해졌다. 누가 택자인지 모르니 복음은 모두에게 전해지고 모두 믿을 의무가 있다. 그 사이에 ‘내 믿음은 진짜인가, 역사적 믿음일 뿐인가’라는 물음이 끼어들었다.
- 1세대 개혁자은혜의 해방을 넘치는 기쁨으로 경험. 충만한 확신. 물음이 급하지 않았다.
- 다음 세대확신 있는 그리스도인이 드물어짐. 정통에 안주하거나 평화를 못 찾는 구도자·회의론자.
- 실천론의 설교자들영국·스코틀랜드 실천론의 영향. 부패를 통탄하고 마음과 삶의 개혁 촉구. 일부는 애통·죄 고백·비참함의 자각을 그리스도를 얻는 조건으로 삼고 칭의와 거듭남을 믿음 뒤에 두었다.
- 반대 극단구원의 확실성을 믿음의 본질에 다시 넣었으나 좌로 치우쳐, 확신을 믿음의 형상적 현실유(actus formalis)로 여겼다 → 반율법주의: 믿음 = ‘너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문장(영원 전 작정에 담긴 것)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6. 근대 신학의 믿음관 원서 900쪽
| 흐름 | 믿음 이해 | 문제 |
|---|---|---|
| 18세기 신학자 대부분 (소키누스주의·아르미니우스주의와 손잡음) | 믿음 = 동의나 약간의 신뢰. 새 순종을 품고 미덕의 원천이 될 때만 의롭게 한다. | 행위를 칭의의 근거로 되돌림 |
| 슐라이어마허 | 모든 것이 나사렛 예수의 구속과 관련(타당한 반론). ‘마음의 신비주의’에서 믿음 = 그리스도의 완전함과 복됨의 적용 | — |
| 리츨 | 공관복음의 역사적 예수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역에 초점. 믿음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 본질상 사랑과 함께 | — |
| 새 견해들 공통 | 펠라기우스주의와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대립을 넘어서려 함. 믿음 =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격적 관계 | 바빙크: 통찰은 인정. 그러나 기독교적이려면 언제나 특정한 지식과 동의를 전제하고 포함해야 한다. 내용 없는 신뢰는 기독교 믿음이 아니다. |
7. 중생, 믿음, 지식 원서 901–904쪽
로마는 믿음을 ‘동의’로만 보니 정의가 단순하다. 그러나 성경의 믿음은 하늘의 그리스도와 맺는 인격적 관계·영적 유대이며, 그리스도와 모든 유익을 얻는 통로이자 구원의 주관적 원천, 삶 전체를 움직이는 원리다. 삶처럼 정의하기 어렵지만 구원의 순서 안에서 제자리는 찾을 수 있다.
- 믿음과 회심은 조건이 아니다복음은 하나님이 이미 화해를 이루셨으니 받아들이라는 소식이다.
- 내적 부르심그리스도 안에서 객관적으로 이루어진 구원이 각 사람에게 적용된다.
- 중생새 생명을 심으심.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듣기 전이든 듣는 중이든 논리적으로 언제나 믿는 행위보다 앞선다.
- 믿음하나님의 선물(엡 2:8; 빌 1:29). 들음에서 난다(롬 10:17).
- 인간의 자유가 사라진다는 반론은 중생을 사람의 선택에 맡기는 펠라기우스의 길을 가지 않는 한 모두에게 적용된다.
-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씀과 함께든 없이든, 의식을 통해서든 아니든, 잉태될 때부터도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실 수 있다.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되신 사실이 증거다. 유아기에 자녀를 잃은 신자에게 큰 위로다.
- 다만 개혁파는 모든 언약 자녀가 세례 전에 중생했다고 교의로 못 박지 않았다. 일어날 수 ‘있다’고 할 뿐이다. 언약 자녀는 말과 행실이 반대를 증명하기 전까지 자비의 판단으로 대한다.
- 하나님은 믿음을 늘 갑작스레 주시지 않고 심긴 생명에서 점진적으로 자라게 하신다. 방편: 성경 읽기, 부모의 권면, 교사의 가르침, 설교.
8. 믿음과 지식, 그리고 확신 원서 904–909쪽
-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능동적 믿음은 없다. 지성주의에 반발해 감정과 신뢰만 앞세우면 반대 방향의 반발만 부른다.
- 논리적으로는 역사적 지식(성경의 사실과 교리를 앎)이 믿음보다 앞서고 교육적 가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구원하는 믿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 경건주의가 형식적 지식과 체험적 지식을 구분한 것은 옳으나, 역사적 진리와 분리된 더 높은 영적 진리를 찾은 것은 잘못이다.
- 칼뱅: 믿음은 약속 위에 서고 성령이 마음에 인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실한 지식. 일반적 믿음과 특별한 믿음(fides specialis)은 유기적으로 하나다.
- 후대 신학자들은 로마식 동의로 돌아갈까 염려해 구원하는 지식(cognitio)과 역사적 지식(notitia)을 날카롭게 갈랐다. 가슴 대 머리의 대립이 되살아나고, 믿음의 행위를 시간 순 단계로 보아 피난처 찾기와 확신 사이에 자기 성찰을 끼워 넣었다.
그 위에서 믿음은 복음이 제시한 그리스도와 그 모든 유익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확신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
율법적 경건주의
끝없는 자기점검으로 확신을 찾고, 간헐적 특별 계시에서만 안도.
바빙크
확신은 나중에 덧붙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원리적으로 믿음 안에 있다. 자신을 들여다봄이 아니라 시선을 그리스도께 옮김으로 얻는다. 기초는 경험이나 선행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
신자에게도 의심과 두려움이 일어난다(막 9:24). 약속을 붙들어 이겨 낼 투쟁이다. 앎·동의·신뢰는 시간 순의 단계가 아니라 어린 신자냐 장성한 신자냐에 따라 약하거나 강한 행위들이다. 믿음은 신구약 어느 시대나 본질이 같다.
9. 회심과 회개 원서 909–911쪽
중생으로 심긴 새 생명은 지성에서는 믿음·지식·지혜로, 의지에서는 회심·회개로 나타난다.
- 넓게 보면 회심은 죄악된 습관을 청산하고 바른 길로 드는 모든 종교적 변화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종교적·도덕적 의식을 살려 두셨다(롬 1:18; 2:14–15). 아이스킬로스는 악행 뒤의 후회와 회한을 포착했다.
- 모든 종교 체계가 회심을 일으키며, 종교적·윤리적·지성적·심미적 회심도 있다. 종교심리학은 종교적 회심을 여러 인격 변화 중 하나로 나열한다. 그러나 이런 균일화는 핵심에 이르지 못하고, 현상을 판별할 기준을 내놓지 못한다. 성경은 매우 특정하고 분명한 회심 개념을 준다.
| 용어 | 뜻 | 쓰임 |
|---|---|---|
| 나함 (נָחַם) | 안타까워함, 비탄, 회개 | 사람에게도 쓰이나(욥 42:6) 주로 하나님을 묘사(창 6:6–7) |
| 슈브 (שׁוּב) | 돌이킴, 되돌아옴 | 죄·악에서 돌아섬(왕상 8:35). 하나님이 진노에서 돌이키심(출 32:12), 우상에게 감에도 쓰임. 예언서에서 장소적 귀환과 영적 회심이 겹침(호 6:1) |
| 메타노이아 (μετανοια) | 마음의 내적 변화 | 죄악된 과거를 유감스럽게 여기고 결별해 더 나은 삶으로 돌이킴 |
| 에피스트로페 (ἐπιστροφη) | 돌아섬 | 내적 변화가 밖으로 드러나는 새로운 관계 |
하나님은 상한 마음과 전심의 돌이킴을 요구하실 뿐 아니라 새 언약의 날에 그것을 약속하고 주신다(렘 31:31; 겔 36:25). 포로기 이후 율법주의에서는 회심이 참회 행위로 이전 죄를 보상하고 공로를 쌓는 일로 변질되었다.
10. 메타노이아와 고해성사 원서 912–917쪽
- 요한과 예수는 회심을 겉모양으로 꾸미는 경향에 맞서 메타노이아를 요구했다. 성경의 회심 용어는 교리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회심 교리는 거듭남,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음(엡 4:22–24), 땅의 본성을 죽임, 성령을 따라 행함 등 성경 전체의 흐름에 근거한다.
- 바울은 구원에 이르는 경건한 슬픔과 사망을 낳는 세상적 슬픔을 나눈다(고후 7:10). 세상적 슬픔은 잠시 죄를 멈추게 해도 곧 되돌아간다.
- 회심의 환경은 다양하다. 유대인은 성경 설명을 듣고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면 되었고, 이방인은 허탄한 것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이켜 이전 삶과 완전히 단절해야 했다(살전 1:9).
- 신약회심은 교회 밖에서 세례로 들어온 이들에게 쓰임. 그러나 신자도 넘어지면 다시 돌이켜야 함(요일 1:8).
- 유아세례 원칙화세례 후의 죄가 큰 두려움. 중대한 죄·사소한 죄 구분, 한 번의 추가 회심 논의.
- 고해제도사제가 고백을 듣고 고행을 부과. 메타노이아를 ‘참회’로 번역한 것이 부추김.
- 11세기부터이생에서 못 채운 고행은 연옥에서 보충되고 면벌부가 이를 줄인다는 관행이 늘어남.
- 로마 가톨릭고해성사 = 대죄 후의 ‘고된 두 번째 세례’, 7성사의 하나. 사제는 증인이 아니라 사면을 선언하는 재판장. 면벌부는 영원한 형벌이 아닌 한시적 형벌만 줄인다는 구분은 일반 신자에게 생소했다.
11. 종교개혁과 개혁파의 회심론 원서 918–919쪽
로마의 사법적·성례적 체계는 평신도를 임종까지 사제에게 매이게 해 거짓 안정감이나 구원의 불확실성을 낳는다. 종교개혁은 회심을 순종의 삶 속에서 자기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에 대해 사는 이중 행위로 이해했다. 루터는 메타노이아를 회개와 죄 용서로 읽는 성경적 의미를 되찾았다. 참된 회심은 전인이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종교적·윤리적 행위다.
- 개혁파는 처음부터 참회(μεταμελεια)와 회심(μετανοια)을 정도가 아닌 본질에서 구별했다. 회심은 새 생명 안에서 일어나고, 믿음에서 나오며, 좁은 의미의 중생에서 발생한다.
| 구분 | 내용 |
|---|---|
| 성향적 회심 | 하나님의 중생 은혜로 주입된 성향 |
| 실제적 회심 | 중생한 사람이 말씀과 성령의 도움으로 그 능력을 발휘하는 활동. 항변파는 순서를 뒤집어 은혜와 자유의지의 협동 산물로 봄 |
| 최초의 실제적 회심 | 처음 돌이킴 |
| 두 번째 회심 | 타락 후 다시 돌이킴 |
| 지속적 회심 | 평생 이어지는 회심 |
12. 죽임과 살림 원서 920–921쪽
루터파 회심론
- 회심 = 통회·믿음·선행의 세 부분
- 통회 = 율법이 일으킨 양심의 두려움, 믿음이 이를 잠재워 평안을 줌
- 문제: 통회가 늘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고, 새 순종이 믿음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불분명. 유기적 연결이 없다.
개혁파 회심론 (칼뱅)
- 참회(poenitentia)가 아니라 온전한 회심(resipiscentia)
- 믿음은 회심에 포함되지 않고 구분되며, 둘 다 중생의 열매
- 롬 6장을 따라 회심 = 옛 자아의 죽임(mortificatio)과 새 자아의 살림(vivificatio). 우르시누스 등이 따름
| 죽임과 살림의 두 층위 | 행위의 주체 |
|---|---|
| 중생의 구성요소로서 | 전적으로 하나님의 행위, 사람은 수동적 |
| 실제적 회심의 양상으로서 | 중생하여 믿음과 사랑의 덕을 받은 사람의 행위 |
13. 회심의 다양성과 언약 자녀 원서 922–923쪽
- 참된 회심은 본질이 같지만 방식과 시간은 다양하다. 선교지에서는 회심이 큰 희생을 요구해 외적 돌아섬이 내적 변화의 분명한 증거였다. 교회가 특권을 얻자 명예롭지 못한 동기의 회심도 생겼다.
- 그렇다고 하나의 규범적 양식을 정해 강요하거나 성령의 사역을 재촉하면 안 된다. 성경은 진심으로 죄를 슬퍼하고 전심으로 은혜를 구하라고 할 뿐이다. 회심 시점을 알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삶의 개선이다.
부흥운동의 정당한 점
신자의 자녀가 믿는 것을 당연시하는 유혹, 기성교회의 무관심에 반발한 것.
체계화의 문제
모든 사람에게 참회의 분투, 약진, 절망 뒤의 갑작스러운 평화를 요구하면 언약의 약속을 의심하고 세례의 의미를 약화시킨다. 가정에서 평안히 진행되는 성령의 사역과 교육을 무시하고, 아이들을 불안하고 내성적으로 만든다.
- 자녀의 회심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춘기는 의존에서 독립으로 가는 위기이며, 이때 받은 세례와 그것이 요구하는 새로운 순종에 응답해야 한다. 견신례·공적 신앙고백·성찬 참여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도 그래서다.
- 너무 어린 나이에 위기를 인위적으로 일으키지 말고 성령의 고요한 인도에 맡겨야 한다. 천국은 씨앗처럼 드러나지 않게 자란다(막 4:27). 실체는 언제나 죄를 미워해 피하고 하나님을 사랑해 섬기는 두 가지다.
14. 부흥운동과 죄에 대한 슬픔 원서 924–926쪽
- 어떤 이들은 은혜의 보편적 제시를 거부하고 회심하지 않은 자에게 율법과 지옥만 전했다. 경건주의와 감리교는 비참함이 은혜에 반드시 앞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많은 신자가 죄에 신음하면서도 기쁨과 감사의 삶에 이르지 못했다.
- 급조된 위기감은 경련·히스테리·통곡을 낳았다. 웨슬리와 휘트필드는 받아들였으나 에드워즈는 영적 역사에서 난 정서와 상상의 인상에서 난 정서를 신중히 구분했다.
- 에드워즈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을 말해 두려움에 빠진 죄인에게 위로를 전함.
- 피니인간은 자발적 죄인이라는 전제에서 지금 결단하라는 의무를 선포.
- 무디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사랑과 선물을 강조.
- 크리스천 사이언스정반대 극단. 죄 = 마음 치료로 극복할 마음의 오류(범신론적).
- 종교심리학은 회개가 의로워질 능력이 남아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바빙크는 일부 인정하되 회개와 단순한 후회를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 진정한 회개는 자연인에게 불가능하며 성령의 중생하는 권능이 필요하다.
- 죄의 지식은 율법에서 오지만(모든 죄는 율법을 기준으로 한 불법), 죄의 참된 본성을 깨닫는 것은 복음 때문이다. 그래서 죄의 깨달음도 믿음의 열매다. 율법은 훈육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복음은 그 빛을 율법 위에 비춘다.
15. 죄의 고백, 참회, 형벌 원서 928–934쪽
| 로마 가톨릭의 요소 | 바빙크의 비판 |
|---|---|
| 뉘우침(attrition): 지옥 형벌이 무서워 생기는 불완전한 후회. 통회(contrition): 죄 자체를 미워하는 온전한 회개 | 두려움의 참회는 회심 전에 올 수 있으나 참된 회심의 일부가 아니다. 통회를 엄격히 정하면 소수만 얻고, 뉘우침으로 족하면 사면의 최소치를 따지는 결의론이 생긴다. 복음 정신에 어긋나며 신자만 불안하다. |
| 사제 앞 사적 고백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 이후 해마다 의무) | 가톨릭 신학자들도 성경에 직접 없음을 인정한다. 성경의 고백 대상은 하나님과 공동체다. 사제를 재판관으로 세우는 것은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만 속한 권세를 빼앗는 것이다. 열쇠의 권세는 말씀 사역이며 권세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에 있다. |
| 충족 행위: 사면 뒤에도 남는 형벌을 기도·금식·구제로 갚음(그 가치는 연옥 형벌 경감) | 은혜는 대죄로 언제든 잃을 수 있고 사제는 형벌이 얼마나 줄었는지 알 수 없어 확신이 사라진다. |
- 용서받고도 고난을 겪은 신자들(아담과 하와, 미리암, 모세와 아론, 다윗, 고린도 신자)의 고난은 형벌이 아니라 거룩함에 참여시키는 징계다(히 12:5–11; 고전 11:32).
- 그리스도가 모든 죄를 대속하셨으니(히 10:14) 선행은 사죄의 원인이 아니라 열매다.
- 회개는 파선 뒤의 ‘두 번째 널빤지’가 아니라 세례로 돌아가는 일이며, 루터와 칼뱅이 말했듯 평생 이어진다. 다만 타락한 신자의 회개는 특정한 죄에 집중된 특별 회심으로 최초 회심과 구분된다.
고백의 실천적 유익 때문에 루터파 일부가 사적 고백을 유지했고 일부 개신교도도 회복을 바란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과 직무의 왜곡과 묶여 있음을 아는 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구조도
| 입장 | 그 입장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로마 가톨릭의 믿음관 | 믿음은 계시 전체에 대한 지적 동의이고 신뢰는 그 결과다 |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이며 확신은 결과가 아니라 처음부터 믿음 안에 있다. |
| 반율법주의 | 믿음은 ‘네 죄가 용서되었다’는 문장을 받아들이는 것 | 믿음은 문장이 아니라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를 받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선다. |
| 실천적 경건(실천론자) | 비참함의 자각과 애통이 그리스도를 얻는 조건 | 믿음과 회심은 조건이 아니다. 죄의 슬픔은 필수지만 방식과 기간은 규정할 수 없다. |
| 로마 가톨릭 고해성사 | 사제가 재판장으로 사면하고 충족 행위를 부과한다 | 사적 고백은 성경에 없다. 열쇠의 권세는 말씀의 사역이고 고난은 징계다. |
| 루터파 회심론 | 회심은 통회·믿음·선행의 세 부분 | 세 요소의 유기적 연결이 없다. 회심은 죽임과 살림이며 믿음과 구분된 중생의 열매다. |
| 부흥운동·경건주의 | 누구나 참회의 분투와 돌파의 위기를 겪어야 참 회심 | 체계화는 언약의 약속과 세례를 약화시킨다. 성령의 고요한 인도를 존중해야 한다. |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 믿음은 교리에 머리로 동의하는 것이다.
- 확신은 믿음 뒤에 자기 점검으로 따로 얻는다.
- 말씀 없이 마음속에서 직접 하나님을 안다.
- 믿음과 회심은 구원의 조건이다.
- 회심은 정해진 위기를 거쳐야 진짜다.
- 회심은 고행으로 죗값을 갚는 일이며, 선행이 죄 용서를 얻게 한다.
바른 이해 ✓
- 지성·의지·감정을 아우르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인격적 신뢰다.
- 확신은 처음부터 믿음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얻는다.
- 지식의 내용은 언제나 성경 계시에서 온다.
- 조건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화해를 받는 중생의 열매다.
- 방식과 시간은 다양하며 회심 시점을 알 필요도 없다.
- 회심은 마음의 돌이킴이며, 그리스도가 다 대속하셨으니 선행은 사죄의 열매다.
핵심 용어
- 조명 (enlightenment)
- 성령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지각을 진리에 여시는 일.
- 믿음의 지식
- 이 땅에서 믿음을 통해서만 얻는 불완전한 하나님 지식.
- 헤에민 (הֶאֱמִין)
- 구약에서 믿음에 가장 가까운 말. 붙들고 의지하고 신뢰함.
- 지식 (notitia) · 동의 (assensus) · 신뢰 (fiducia)
- 믿음의 요소에 대한 고전적 세 구분. 시간 순의 단계가 아니다.
- 믿음의 성향 (habitus fidei)
- 중생으로 심어져 신자를 그리스도께 접붙이는 믿음의 씨·뿌리. 행위에 앞선다.
- 특별한 믿음 (fides specialis)
- 나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믿는 믿음. 일반적 믿음과 유기적으로 하나.
- 나함 (נָחַם) · 슈브 (שׁוּב)
- 구약의 회개어: 안타까워함 / 돌이켜 되돌아옴.
- 메타노이아 (μετανοια) · 에피스트로페 (ἐπιστροφη)
- 마음의 내적 변화 / 그 결과로 밖으로 드러나는 돌아섬.
- 죽임 (mortificatio)과 살림 (vivificatio)
- 칼뱅이 롬 6장을 따라 정의한 회심의 두 면. 옛 자아를 죽이고 새 자아를 살림.
- 최초·두 번째·지속적 회심
- 처음 돌이킴, 타락 후 다시 돌이킴, 평생 이어지는 회심.
- 뉘우침 (attrition) / 통회 (contrition)
- 형벌의 두려움에서 나오는 불완전한 후회 / 죄 자체를 미워하는 온전한 회개(로마 가톨릭의 구분).
- 충족 행위
- 로마 가톨릭에서 죄의 한시적 형벌을 갚는 기도·금식·구제.
성경 근거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고후 4:6 | 하나님이 성령으로 마음의 눈을 밝히심(조명). 믿음은 그리스도를 아는 빛. |
| 창 15:6 |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약속의 형태. |
| 롬 10:17 |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말씀에서 난다. |
| 엡 2:8; 빌 1:29 |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믿는 것 자체가 은혜로 주어짐. |
| 요 6:44 | 아버지가 이끄셔야 그리스도께 온다. 중생이 믿음보다 앞섬. |
| 막 9:24 | 신자에게도 불신의 싸움이 있음. |
| 고후 7:10 | 경건한 슬픔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세상적 슬픔은 사망을. |
| 시 51:17 | 하나님은 깨지고 상한 마음을 원하심. |
| 롬 6 | 옛 자아의 죽임과 새 자아의 살림. |
| 히 12:5–11 | 신자의 고난은 형벌이 아니라 아버지의 징계. |
복습 문제
바빙크가 믿음의 지식이 ‘초자연적 부가물’이 아니라고 하는 뜻은?
로마 가톨릭과 종교개혁은 믿음과 신뢰의 관계를 어떻게 다르게 보는가?
콤리의 ‘성향’ 이론에 대한 바빙크의 평가는? 그리고 바빙크 자신은 성향을 어떻게 쓰는가?
확신은 어디서 오는가? 실천적 경건주의와 바빙크를 비교하라.
개혁파는 회심과 믿음을 어떻게 구분하며, 각각 무엇과 짝을 이루는가?
회개를 ‘세례로 돌아가는 평생의 일’이라 부르는 이유는?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