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은 누가,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하는가?
- 기독교 밖의 모든 종교와 철학은 자력구원적(autosoteric)이다. 성경에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의 선물이다.
- 승귀하신 그리스도는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교회 안에 거하시며 자신이 얻은 유익을 적용하신다. 구원의 획득과 적용은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 로마의 공로 체계, 루터파의 신인협력, 신비주의·경건주의·근대 사상·종교심리학은 모두 인간 주체를 중심에 두어 은혜를 흐렸다.
- 구원의 길은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라는 두 암초 사이에 있다. 바른 물음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무엇을 행하시는가’다.
- 은혜는 자연이 아니라 죄와 대립하여 본성을 회복한다. 구원의 유익은 은혜언약 안에서 부르심 · 칭의 · 성화 · 영화로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1. 구원의 방식 원서 807–809쪽
바빙크는 구원의 적용을 사람 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먼저 본다.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도록 지어졌기에 행복을 바라지만(아우구스티누스), 이성은 어두워지고 마음은 악해져 바르게 찾지 못한다.
성경 밖 자력구원
- 불교: 자기 자신을 등불과 피난처로 삼으라.
- 이슬람교: 신앙고백·기도·구제·금식·순례의 의무로 심판을 면한다.
- 행위가 제의적이든 도덕적이든 구조는 같다. 하나님의 거룩, 죄의 깊이, 은혜를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 은혜의 선물
-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을 세우시고, 백성을 택하시고,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신다.
- 율법 준수는 언약에 들어가는 앞선 조건이 아니다. 조건이 있다면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사랑뿐이다.
- 순종은 언약을 사는 값이 아니라 언약 안의 응답이다. 그러나 가볍지 않다(마음의 할례, 실제 순종).
2. 율법주의와 하나님 나라 원서 810–812쪽
- 포로기 이후 유대교는 율법주의로 흘렀다. 메시아 기대는 남았지만 죄의 속량과 새 언약의 기대는 빠지고 정의·해방·민족 통치 회복만 남았다.
- 결과는 두 극단: 바리새적 자긍심과 죄인의 절망. 율법은 감당 못할 멍에가 되었고 구원의 확신도 기쁨도 없었다.
| 예수가 선포한 나라 | 특징 |
|---|---|
| 핵심 | 은혜의 선물인 죄 용서 |
| 성격 | 정치적이 아니라 영적. 청결·온유·긍휼·겸손 |
| 범위 | 유대인을 넘어 보편적 |
| 시간 |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 씨앗과 누룩처럼 자람 |
| 들어감 | 어린아이 같은 믿음. 필요한 것은 회개와 믿음뿐 |
| 상급 | 부정하지 않으나 너무 풍성해 ‘일한 만큼’이라는 공로 개념이 무너진다. 들어가는 데 필요한 의로움 자체가 선물이다. |
그리스도는 잉태부터 부활까지 성령으로 일하셨다. 승귀 후에는 성령이 그분의 소유가 되어 그분 자신이 살려주는 영이라 불리신다(고전 15:45). 오순절에 성령은 교회를 성전 삼아 내주하기 시작하셨다. 바빙크는 이를 창조와 성육신에 이은 세 번째 위대한 사역이라 부른다. 오순절 방언은 각 민족의 모국어로 들린 것이며, 목적은 외국어 능력의 항구적 부여가 아니라 구원 사실의 각인이었다.
3. 성령의 은사와 열매 원서 813쪽
- 사도 시대의 특별한 역사(방언·예언·계시·병고침 등)는 예수가 주님이라는 고백이 세상에 받아들여지도록 특정한 시기와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 은사의 기준: 예수가 주님이라는 고백 위에 서고, 지체의 유익을 위해 쓰이고,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 사랑이 가장 탁월한 은사다.
- 바울은 무게중심을 한시적 현현에서 영적·도덕적 일상 사역으로 옮긴다. 성령 임재의 가장 큰 표지는 기적이 아니라 거룩한 공동체(행 2:42)다.
성령의 지속적 사역 ①
죄 용서의 복음을 마음에 확증하여 하나님의 자녀, 곧 의롭다 함을 받은 자임을 확신시키신다(롬 8:15–16).
성령의 지속적 사역 ②
새 생명을 창조하여 성화의 윤리적·신비적 유익을 이루신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지혜·의로움·거룩함·구속에 참여한다(고전 1:30).
순서는 로마서 3–5장 뒤에 6–8장이 오는 것과 같다. 칭의가 먼저이고 성화가 그 위에 선다.
4.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펠라기우스주의의 위협; 종교개혁 원서 815–817쪽
- 이레나이우스구원을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것을 적용하시는 성령에 긴밀히 묶었다.
- 이후 흐름복음이 또 하나의 율법이 됨. 회개는 고해로, 구원은 그리스도 고난의 외적 모방으로. 순교자와 수도사가 최고의 그리스도인.
- 펠라기우스은혜 =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보편적 도움. 받아들일지는 의지에 달림.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분이 된다. 아담의 죄와 우리 죄의 끈도 끊었다.
- 아우구스티누스의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죄에 묶여 있다. 은혜는 공로보다 앞서고, 원하지 않는 자를 먼저 찾아가 원하게 하며, 불가항력적이지만 의지를 짓밟지 않고 해방한다.
- 카르타고·에베소·오랑주교의로 굳어짐. 펠라기우스주의와 반펠라기우스주의가 함께 정죄되고 아퀴나스·보나벤투라도 따랐다.
- 로마 가톨릭뒷문으로 반펠라기우스주의를 다시 들였다는 의심. 의지는 약해졌을 뿐 자유를 잃지 않았다. 선행적 은총은 믿을 능력만 준다. 은총은 값없는 호의가 아니라 주입되어 공덕을 쌓게 하는 초자연적 자질이다.
5. 루터의 종교개혁과 루터파 원서 819–820쪽
- 종교개혁은 고해성사, 특히 면벌부 판매에서 불붙었다. 바빙크는 이를 복음을 율법으로 격하한 로마 체계의 당연한 귀결로 본다.
- 루터: 롬 1:17의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라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는 의다. 마 4:17의 회개는 참회 제도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다. 의롭게 하는 것은 성례가 아니라 믿음이다.
- 믿음으로만 의롭다면 칭의는 늘 불완전한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만 기댄다. 루터는 참회·믿음·선행을 말했고 절대예정도 가르쳤다.
6. 개혁파의 구원 서정과 회개 원서 820–821쪽
- 구원의 서정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전제한다. 이 교제는 영원 전 성부와 성자의 구원 협약(pactum salutis)에서 나온 중보자와 택자의 유대다.
- 속죄와 칭의는 그리스도 안에 객관적으로 완성되었고 그리스도의 영이 이를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적용조차 그리스도의 사역이며 구원론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다뤄야 한다.
- 아는 순서(인식론적 토대: 믿음으로 언약 안에 있음을 앎)와 존재의 순서(존재론적 토대: 은혜언약)는 다르다.
| 비교 | 루터파 | 개혁파 |
|---|---|---|
| 중생·믿음·회심 | 언약 교제에 들어가기 위한 예비 단계 | 언약 교제가 주는 유익 |
| 회개의 출발 | 루터의 오랜 죄책 끝의 평안 → 율법과 복음의 대립을 따라 참회와 믿음으로 나눔 | 칼뱅의 점진적 회심 → 체험보다 하나님 뜻에 결단으로 순종 |
| 회개의 성격 | 믿음 앞의 참회 | 믿음에서 나오며 그리스도와의 교제로만 가능한 평생의 죽임과 다시 살림. 회개와 믿음은 묶이되 섞이지 않는다. |
| 결과 | — | 칭의는 더 순수한 법정적 선언, 율법은 감사의 규칙, 하나님 영광을 위한 순종이 삶의 과업 |
칼뱅은 일부 재세례파가 새 회심자에게 며칠간 회개를 강요한 뒤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율법주의적 회개를 거부했다.
7. 신비주의·합리주의·반율법주의 원서 823–824쪽
신비주의
외적 권위에 반발해 특별한 훈련으로 더 높은 지식·친밀한 교제를 구한다. 플라톤·필론·플로티노스·위 디오니시우스를 따라 세 단계:
- 정화: 금욕으로 죄와 세상에서 끊어짐
- 조명: 한 대상에 몰두하는 명상
- 연합: 대상과 하나 되는 황홀경
신과 인간을 뒤섞는 범신론으로 자주 전락한다(브라만교, 신플라톤주의, 수피즘, 에리우게나, 자유심령 형제단, 뵈메).
합리주의
예수는 따르고 본받을 선생일 뿐이다. 인간은 약해졌지만 무능하지 않아 스스로 구원을 얻는다. 복음의 부름은 지성과 의지에 대한 도덕적 영향 이상이 아니다.
반율법주의
적용을 획득과 같은 것으로 만든다. 그리스도가 죄책과 부패까지 없애셨으니 성화도 끝났다. ‘행함’을 말하면 율법주의로 몰리고, 진노도 죄도 착각이 된다. 영지주의·마니교·중세 분파·재세례파 일부·17세기 영국 독립파·니체와 무정부주의까지. 종교개혁자들은 모두 물리쳤다.
8. 율법주의와 신율법주의 원서 825쪽
소키누스주의자와 항변파의 영향으로 개신교 안에 들어왔다. 바빙크는 합리주의적 갈래와 경건주의적 갈래(9절)를 나눈다.
- 피스카토르필요한 의는 적극적 순종이 아니라 소극적 순종(형벌을 받으신 죽음)만으로 완성. 가프·로쉘 회의가 거부했으나 소뮈르 학파(카메론, 아미로)가 받아들임.
- 영국아미랄두스주의 + 아르미니우스주의 → 신율법주의 체계.
- 핵심 변화칭의의 토대가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에서 신자 자신의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의로 바뀜.
- 구조그리스도의 충족은 모두를 ‘구원받을 수 있는 상태’로 옮겼을 뿐이다. 새 율법(은혜의 율법) = 믿음·회개·진실한 순종.
17–18세기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이 논쟁에 휩쓸렸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아담과 그리스도의 직접적 전가를 부인한 것도 뉴잉글랜드 신학을 플라카이우스의 길로 이끌었다.
9. 경건주의와 감리교 원서 826–827쪽
여기서는 믿음과 순종이 아니라 믿음과 경험이 칭의의 조건이 된다. 뿌리는 개혁파 전통 안의 실천적 학파다.
- 라무스신학 = ‘바른 삶을 위한 교리’. 목적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
- 슈투름·트레멜리우스·피스카토르·퍼킨스이를 받아들임.
- 에임즈신학 = 의지에 뿌리내린 ‘하나님을 향한 삶의 교리’.
- 실천적 경건주의백스터, 빗치우스, 아 브라켈, 스콜팅하위스. 루터파에서는 슈페너, 친첸도르프.
대륙의 경건주의
지나치게 안으로 향함. 긴 참회의 사투와 고된 자기 성찰 → 믿음의 확신을 쓸모없게 만들기 일쑤.
감리교 (웨슬리·휘트필드)
준비와 사투를 배제. 회심은 의식 가운데 즉각 일어나고 구원받은 이를 셀 수 있다. 회심자는 ‘피와 불’의 군대로 조직.
10. 근대 세계에서 주체로의 전환 원서 828–830쪽
| 사상가 | 핵심 | 구원론적 귀결 |
|---|---|---|
| 데카르트 | 사고하는 존재의 확실성이 모든 지식의 토대. 명석·분명함이 참의 기준. | 주체가 출발점 |
| 스피노자 | 선악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생각의 양태 | 선악의 지식은 기쁨·슬픔의 감정 |
| 계몽주의 | 명증성이 진리의 기준. 모든 외적 권위 거부 | 계시와 은혜를 버리고 계몽과 도덕적 개선이 복됨의 길 |
| 칸트 | 순수이성을 경험 세계로 제한, 실천이성에 신앙의 자리. 본성은 악하고 거듭남이 필요하다고 인정. | 그러나 ‘해야 한다’ = ‘할 수 있다’ → 펠라기우스의 길. 자유로운 행위로 자신을 구속해야 한다. |
| 쇼펜하우어·하르트만 | 악의 현실과 은혜의 필요를 말함 | 그 은혜는 도덕적 노력을 포함하고 믿음은 전적으로 인간의 행위 |
11. 피히테·셸링·헤겔의 관념주의 원서 830–831쪽
- 공통점: 자기결정, 곧 자아가 인간 자유의 핵심.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역은 형이상학적·도덕적 이상으로 바뀐다. 신앙을 절대자 같은 지적 구성물에 종속시킨다.
- 피히테: 무게를 지성에서 의지로. 태초에 말씀이 아니라 행위가 있었다. ‘자아가 모든 것’. 구속은 자기 개선의 분투. 예수는 신적·인간적 요소의 영원한 합일을 보여 준 분.
- 셸링·헤겔: 그리스도는 주체와 객체, 유한과 무한, 하나님과 사람의 통일. 헤겔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은 ‘죽음의 죽음, 부정들의 부정’. 그러나 신앙은 결국 관념으로 올라가야 하고, 기독교의 참 내용은 철학으로 입증된다.
12. 근대신학과 두 암초 원서 832–842쪽
- 칸트 이후 ‘구속의 철학’은 형태만 얻고 알맹이는 없었다. 인간의 지성과 의지가 여전히 구원의 주체로 남는다.
- 슐라이어마허: 예수의 역사적 인격을 진지하게 다룬 진전. 그러나 은혜를 섭리와 같게 보고 칭의를 죄책 의식의 제거로 바꿨다.
- 리츨: 칭의를 중심에 두고 교회를 선택의 대상으로 강조한 공로. 그러나 진노를 부인하고 종교를 문화에 종속시켜 문화적 낙관주의를 낳았다.
- 종교심리학: 경건주의·감리교에 뿌리. 회심 = 사춘기의 자연적 발달, 잠재의식에서 익은 것의 표면화. 스탠리 홀은 인류 전체가 청소년기에 있다고까지 말한다. 바빙크는 심신의 일체성과 청소년기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물질주의적 환원은 거부한다.
구원의 서정은 ‘어떻게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만나는가’에 답한다. 개혁파는 회개·믿음·선행에서 출발해 부르심·중생·칭의·성화로 주제를 넓혔다. 성경은 모든 것이 이미 성취되었다고 하면서도 우리 삶에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두 암초가 생긴다.
13. 삼위일체적 구원의 길, 그리고 진리 원서 843–845쪽
- 그리스도가 얻으신 것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만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칭의로 죄책에서, 성화로 오염과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다.
- 비유: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 재산에 권리가 있지만 소유는 나중이다. 택자도 믿기 전부터 모든 유익에 권리가 있고 믿음으로 소유한다.
- 적용은 창조나 구속만큼 신적인 일이므로 성령은 성부·성자와 함께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시다.
- 승귀하신 그리스도가 성령을 온전히 얻으셨기에 성령은 이제 ‘그리스도의 영’이 되셨다. 성령은 분량과 때와 질서에 따라, 교회가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엡 4:13) 적용하신다.
| 펠라기우스 진영의 반론 | 바빙크의 답 |
|---|---|
| 인간의 권리와 활동을 억누르고 불경건을 조장한다. | ①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사람이 없다는 성경 증언(롬 3:20)을 뒤집으려는 것이다. ② 오해다. 적용은 도덕적 요인을 배제하지 않고 포함한다. 성령은 사람을 나뭇조각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로 대하여 조명하고 설득하고 이끄신다(롬 8:16; 갈 2:20; 빌 2:12–13). 오직 이 신론적 견해만 확신과 새 삶을 보장한다. |
14. 은혜: 로마와 종교개혁 원서 847쪽
은혜 = 공로 없이 받은 하나님의 호의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선물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성령이 내적으로 주시는 특별 은혜다. 복음 설교로 모두에게 제시되고 택자에게 유효하게 주어진다.
로마 가톨릭
- 은혜 = 인간에게 덧붙여진 초자연적 자질
- 자연 → 초자연 질서로 고양, 신적 본성에 참여, 공로를 쌓음
- 죄 용서는 신성화에 비해 부차적
- 대립: 자연 대 초자연(물리적)
종교개혁
- 은혜는 죄와 마찬가지로 실체가 아니다
- 자연 위로 끌어올리지 않고 본성의 질서 안에서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
- 대립: 죄 대 은혜(윤리적)
- 재창조는 두 번째 창조가 아니라 재구성(re-formation)
- 그리스도는 우리를 아담의 출발점으로 되돌리지 않으신다. 소극적·적극적 순종을 다 이루어 아담에게는 아직 미래였던 실패할 수 없는 영생을 얻으셨다.
- 그러나 은혜가 주는 것은 아담이 순종으로 얻었을 것보다 많지 않다. 은혜언약은 행위언약과 방법만 다를 뿐 목표는 같다.
- 회복은 표면에 그치지 않고 존재의 중심까지 미친다. 은혜는 구원 사역의 처음이자 과정이자 마침이다.
15. 은혜의 유익들의 질서 원서 848–850쪽
- 로마는 은혜를 교회와 성례의 틀로 정리한다: 조력은총·상존은총·은총의 열매.
- 종교개혁은 처음에 회개·믿음·선행이라는 단순한 틀로 충분했다. 그러나 재세례파가 성령을 말씀에서 떼어 내고, 항변파가 개혁파는 설교를 업신여긴다고 몰아붙이자, 개혁파는 ‘부르심’을 서정의 맨 앞에 두었다. 창조·섭리처럼 재창조에서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불러내신다.
- 중생을 좁은 의미(새 생명의 씨앗을 심는 첫 사역)로 보면 믿음보다 앞선다. 그래서 부르심은 외적(말씀 선포)과 내적(성령의 효력 있는 역사)으로 나뉜다. 성령은 지성을 비추실 뿐 아니라 새 정서를 의지에 직접 불어넣으신다.
- 언약의 자녀에게는 중생이 먼저 있으므로 회심이 극적 체험 없이 점차 일어날 수 있다. 회심 시각을 아는 것이 필수가 아니다. 회심은 평생의 일이다.
일부 개혁파 신학자
칭의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믿음을 위해 일어났다. 택자는 선택의 작정 안에서 이미 의롭게 되었다. 이 객관적 칭의는 창 3:15 이후의 복음과 부활(롬 4:25)로 알려졌다.
개혁파 주류
칭의를 작정으로 소급하기를 거부. 반율법주의가 영원한 칭의를 빌미로 속죄와 율법의 규범적 사용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마코비우스조차 칭의와 영원한 작정을 구분했다.
18–19세기 교회의 세속화로 언약 자녀가 점차 믿음에 이르는 패턴이 흐려졌다. 그래서 진정한 회심을 촉구하는 경건주의와 감리교가 존재 이유를 얻었다.
16. 종교심리학의 가치와 한계 원서 851–853쪽
가치 인정
- 세계는 의식 안에서 존재하므로 의식 내용을 심리학적으로 살피는 일은 정당하다(세심함과 존중을 갖추면).
- 나이별 종교 생활, 각성과 사춘기의 관계, 무의식의 작용 연구는 시야를 넓히고 목회자·교사에게 쓸모 있다.
한계 경계
- 참된 회심과 유사 회심, 세상적 근심과 경건한 근심을 가르지 못한다.
- 왜 어떤 이는 회심하고 다른 이는 아닌지 설명하지 못한다. 고유한 기준이 없다.
- 형이상학을 부정하면 종교 현상을 망상으로 해체한다.
- 종교의 진리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윌리엄 제임스는 실용주의자로서 하나님을 알려지는 분이 아니라 사용되는 분으로 보았다. 그러나 어떤 종교가 참 ‘가치’를 내는지 묻는 순간 ‘가치는 가치로만 판단된다’는 순환에 막힌다. 결국 그는 신비주의로 돌아서 자신을 완화된 초자연주의자라 불렀다. 종교는 오직 계시에 기초할 때 참됨을 유지한다.
17. 개혁파 구원 서정의 윤곽 원서 854–856쪽
- 성경의 구원 용어는 집합적 개념이라 한 단계보다 완성된 사실 전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학문 사전처럼 쓸 수 없지만, 삼위일체 교리에서처럼 신학은 숨은 개념과 관계를 밝혀 질서 있게 서술할 수 있다.
- 모든 유익은 영원한 선한 뜻과 선택하는 사랑에 뿌리를 둔 은혜언약의 유익이다. 성부가 주시고, 성자가 객관적으로 획득하시고, 성령이 적용하신다.
- 성령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에게서 취하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자신을 묶으신다. 그래서 로마처럼 행위가 끼어들 자리도, 신비주의처럼 말씀 없는 직접 체험도 없다.
- 유익들은 유기적이다. 중생 없이 나라에 못 들어가고, 믿음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며, 거룩함 없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앞선 것을 받지 않으면 뒤따르는 것을 얻지 못한다.
- 부르심과 복음 설교모든 유익에 앞선다(성령이 말씀에 자신을 묶으시므로). 믿는 이들에게도 설교는 계속된다.
- 중생에서 성령의 직접 사역믿음보다 앞선다.
- 믿음과 회개엄밀한 중생에서 나와 부르심에 동반된다.
- 칭의객관적 속죄에 근거하며 회개와 성화에 앞선다. 신율법주의와 갈라지는 지점.
- 성화견인보다 앞선다.
- 영화종말론으로 미룰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에 속한다.
구조도
구원의 서정이 걸어온 길
- 성경의 출발구원은 은혜의 선물
- 아우구스티누스은혜가 공로에 앞섬
- 로마의 변질주입 은총과 공로
- 종교개혁오직 믿음·은혜 회복
- 주체로 전환경건주의·근대 사상
- 쌍둥이 암초율법주의·반율법주의
- 삼위일체적 길성령의 적용하는 은혜
- 네 가지 유익부르심·칭의·성화·영화
| 입장 | 그 입장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펠라기우스주의 | 은혜는 보편적 도움일 뿐, 결정은 의지에 있다 | 은혜가 의지에 달리면 은혜가 아니다. 은혜는 원치 않는 자에게 먼저 와서 원하게 한다. |
| 로마 가톨릭 | 은혜는 주입된 초자연적 자질로 사람을 고양해 공로를 쌓게 한다 | 은혜는 실체가 아니라 죄의 종노릇에서 본성을 해방하는 호의다. 은혜는 자연이 아니라 죄와 대립한다. |
| 루터파 | 은혜는 저항할 수 있고 잃었다 다시 얻을 수 있다 | 그러면 인간의 저항이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무효화한다. 적용도 작정과 언약에서 나온 그리스도의 일이다. |
| 반율법주의 | 다 이루셨으니 회개도 성화도 필요 없고 죄는 착각이다 | 승귀하신 그리스도께는 적용하실 일이 남아 있다. 이를 부정하면 성령을 부정하는 범신론이 된다. |
| 경건주의·감리교 | 의식적 회심 체험이나 순종이 칭의의 조건이다 | 죽은 정통에 대한 대응으론 옳았으나 주체를 은혜보다 앞세워 신자를 나누는 새 율법주의가 된다. |
| 종교심리학 | 회심은 사춘기의 자연 발달이자 잠재의식의 표면화다 | 심신의 일체성과 청소년기의 중요성은 인정하나 회심을 생물·심리 원인으로 환원함은 거부한다. |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 구원은 결국 내가 애써 얻어야 한다.
- 그리스도가 다 하셨으니 사람은 할 일이 없다.
- 개혁파 견해는 인간의 활동을 억압한다.
- 은혜는 사람을 자연 너머 초자연으로 끌어올린다.
- 회심은 사춘기의 자연스러운 심리 현상일 뿐이다.
- 회심은 반드시 극적이고 시점이 분명해야 한다.
- 회개는 믿음 전에 치러야 할 율법적 준비다.
- 은혜언약은 행위언약과 목표가 다르다.
바른 이해 ✓
-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은혜의 선물이다.
- 승귀하신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구원을 적용하고 계신다.
- 성령은 이성적 존재를 조명·설득하며 의지를 무효화하지 않는다.
- 은혜는 죄와 대립하며 본성을 회복할 뿐 새 실체를 더하지 않는다.
- 심리학은 회심이 무엇인지 모르며 오직 계시가 답한다.
- 언약의 자녀는 점차 믿음에 이를 수 있고 회심은 평생 계속된다.
- 칼뱅: 회개는 믿음에서 나오는 평생의 죽임과 다시 살림이다.
- 방법만 다를 뿐 동일한 보화인 영생을 목표로 한다.
핵심 용어
- 구원의 서정 (ordo salutis)
- 그리스도의 유익이 성령으로 신자에게 적용되는 질서. “어떻게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하는가”에 답한다.
- 구원의 적용 (applicatio salutis)
- 승귀하신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획득한 유익을 교회에 나누시는 신적 사역.
- 자력구원적 (autosoteric)
- 행위나 의식으로 스스로 구원을 얻으려는, 기독교 밖 모든 종교와 철학의 성격.
- 펠라기우스주의 / 반펠라기우스주의
- 은혜를 의지에 달린 보조적 도움으로 보는 견해 / 은혜가 시작하되 인간이 협력·거부할 수 있다는 견해.
- 신인협력설 (synergism)
- 멜란히톤 이후 루터파에 들어온, 저항할 수 있는 은혜와 인간의 협력 사상.
- 구원 협약 (pactum salutis)
- 영원 전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맺어져 중보자와 택자의 유대를 이루는 협약.
- 율법주의 (nomism) / 반율법주의 (antinomianism)
- 구원의 서정이 그 사이를 지나야 하는 쌍둥이 암초.
- 신율법주의
- 믿음·회개·진실한 순종이라는 새 은혜의 율법을 칭의 근거로 삼는 견해.
- 죽임 (mortification)과 다시 살림 (vivification)
- 칼뱅이 말한, 믿음에서 나와 평생 계속되는 회개의 두 측면.
- 주입된 은총
- 로마 가톨릭이 말하는, 성례로 심기는 초자연적 자질.
- 조력은총 · 상존은총 · 은총의 열매
- 로마 가톨릭이 은혜의 유익을 교회·성례의 관점에서 정리한 위계.
- 재구성 (re-formation)
- 은혜가 새 실체를 더하지 않고 죄로 망가진 본성을 회복함.
- 종교심리학
- 회심을 심리 발달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학문.
성경 근거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창 15:6 |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의로 여겨짐. 구약의 의는 하나님을 의지함에서 온다. |
| 겔 36:26 | 새 마음과 성령을 약속한 새 언약. |
| 막 10:15; 마 6:33 | 어린아이처럼 받는 믿음, 나라의 의로움 자체가 선물. |
| 고전 15:45 | 승귀하신 그리스도가 살려주는 영이 되심. |
| 행 2:42 | 성령 임재의 표지인 거룩한 공동체. |
| 롬 1:17 |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의(루터). |
| 롬 8:16 |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임을 증언하심. |
| 빌 2:12–13 |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되 우리도 구원을 이룸. 적용은 강압이 아니다. |
| 엡 4:13 | 성령이 교회를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하심. |
| 롬 8:30; 고전 1:30 | 부르심·칭의·영화의 사슬, 그리스도 안에 모든 유익이 함께 있음. |
복습 문제
구약의 ‘의로운 자’가 자기 의를 근거로 호소하는 본문들을 바빙크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개혁파와 루터파의 구원 서정은 중생·믿음·회심의 위치에서 어떻게 다른가?
‘두 암초’는 무엇이며 각각 무엇을 잃게 하는가?
로마 가톨릭과 종교개혁의 은혜 이해는 어떤 대립 구도에서 갈리는가?
개혁파가 ‘부르심’을 구원 서정의 맨 앞에 둔 이유는?
구원의 유익 네 가지를 그리스도의 삼중직과 연결해 말하라.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