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아지신 그리스도는 어떻게 높아져 무엇을 하시는가?
- 그리스도에게 죽음은 비하의 끝이자 승귀의 길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승귀는 이미 십자가에서 시작된다.
- 승귀는 감춰 둔 신적 속성을 다시 쓰는 일(루터파)이 아니라 순종의 상급으로 얻은 참된 변화, 곧 중보 사역의 영광이다. 받으신 것은 신성이 아니라 주 되심(κυριοτης)이다.
- 승귀는 부활 · 승천 · 우편에 앉으심 · 재림으로 이어진다. 빈 무덤과 제자들의 믿음은 몸의 부활로만 설명된다.
- 화해(καταλλαγη)는 하나님께도 효력 있는 객관적·쌍방적 속죄다. 속죄는 의도상 택자에게 제한되지만, 온 세계가 그리스도 덕에 존속한다는 보편적 의미도 있다.
- 승귀하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예언자·제사장·왕이시다. 화해의 중보직은 종말에 끝나도 연합의 중보직은 영원하다.
1. 죽음과 비하를 통해 생명과 승귀로 원서 771–773쪽
그리스도의 죽음은 낮아지심의 마지막 지점이면서 높아지심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성경 전체가 이를 증언한다.
이방 종교 소망 없음
- 계절 순환을 신격화한 신화: 삶과 죽음이 번갈아 온다는 느낌만 준다.
- 신비종교: 자연 과정에 도덕적 해석을 입혔으나 결과는 금욕이나 방탕이었다.
이스라엘 생명의 길
- 창세기 3장부터 고난과 죽음이 생명으로 가는 길으로 제시된다.
- 소망이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에게 모아지고, 예수는 사역 초기에 자신을 그 종과 동일시하셨다.
- 천국의 법: 자기를 잃는 자가 구원받는다. 예수는 이 법을 먼저 사셨고 제자들에게도 요구하신다.
- 단서: 자기부인은 자기학대·양심의 마비·인격의 소멸이 아니다. 잃은 모든 것을 되찾는 길이다.
- 요한복음: 영광은 고난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래서 승귀는 부활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시작된다.
| 증언 | 낮아지신 분 = 높아지신 분 |
|---|---|
| 사도행전 | 죽음은 성부의 뜻이었고, 부활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 그 결과 회개·사죄·성령·영생이 주어진다. |
| 바울 | 극심한 낮아지심 때문에 하나님이 높여 ‘주’라는 이름을 주셨다. |
| 히브리서 |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 온전해지고, 멜기세덱 반차의 대제사장이 되셨다. |
| 요한계시록 | 피로 사신 어린 양이 동시에 만왕의 왕이시다. |
2. 빌립보서 2장과 두 상태 원서 774–775쪽
- 빌 2:6–11은 두 상태(비하와 승귀) 교리의 가장 중요한 토대다. 죽기까지 낮추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높이셨다.
- 교리는 한 구절에만 기대지 않는다. 구약의 주의 종과 신약 전체가 같은 그림을 그린다.
- 부활이 제자들에게 고난의 뜻을 열어 주었다. 바울은 지상 생애(다윗 혈통, 순종, 성찬 제정, 십자가)를 전하지만 신앙의 직접 대상은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다. 그분은 낮아지셨던 분과 동일하다.
- 사도신경은 ‘두 상태’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잉태부터 재림까지 구속 역사의 사실로 순서대로 고백한다.
3. 루터파의 두 상태 이해 원서 775쪽
두 상태 교리는 두 본성 교리와 구별되어야 한다. 둘을 지나치게 묶은 대표적 예가 루터파 기독론이다.
- 출발: 성찬론특정 신적 속성이 인성 자체에 주어졌다(속성의 교류).
- 비하의 설명신인이 그 속성을 가지셨지만 쓰지 않으셨다(적어도 공적으로).
- 귀결승귀 = 내려놓았던 속성의 사용 재개에 불과하다.
루터파의 결함 승귀가 너무 작다
- 승귀에서 새로 받으신 것이 없다.
- 잉태 때 이미 전능·전지·편재하므로 부활과 승천 사이에 실제적 진전이 없다.
재세례파·소키누스주의 승귀가 없다
- 영원과 시간을 이원론으로 갈라 성육신도 승귀도 불가능해진다.
- 부활·승천·우편·재림이 사실이 아니라 도덕적 이상의 표현이 된다.
4. 개혁파의 중보자 승귀론 원서 776–778쪽
개혁파의 출발점은 중보자 개념이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분만 중보직을 감당하므로,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서 두 상태에 함께 참여한다.
| 쟁점 | 루터파 | 개혁파 |
|---|---|---|
| 성육신과 비움 | 논리적으로 구분 → 튀빙겐(감추심 κρυψις)과 기센(자기비움 κενωσις) 논쟁 | 구분을 거부 |
| 속성의 교류 | 신적 속성이 인성에 주어짐 | 받지 않음 |
| 부활 전 인성 | 잠재적으로 전능·전지·편재 | 연약하고 죽을 수 있음 → 누가복음의 참된 인간적 성장 존중 |
| 케노시스 | 속성 사용의 중지 | 신적 속성을 버림이 아니라 신적 영광을 감추고 쓰지 않으심 |
승귀는 무엇인가
- 순종의 상급으로 얻으신 진정한 변화다. 빌 2:9의 διο(그러므로)가 ‘낮추셨기 때문에 높이셨다’는 인과를 보여 준다. 히브리서도 고난을 통해 온전해지신 분을 말한다.
- 받으신 것은 신성도, 삼중직도 아니다. 그는 태초부터 하나님이셨고, 영원 전부터 기름 부음을 받으셨고, 구약 시대에도 그 직분으로 일하셨다.
- 받으신 것은 퀴리오테스(κυριοτης, 주 되심의 권세)다. 부활이 아들 되심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만물 위의 주권을 행사할 능력을 주었다.
- 소키누스주의가 승귀에서 비로소 신성을 인정하려 했기에, 많은 신학자가 ‘공로’라는 말을 꺼린 것도 이해할 만하다.
5. 승귀의 단계들: 부활, 승천, 우편에 앉으심, 재림 원서 779–781쪽
개혁파 신앙고백은 지옥 강하를 낮아지심의 마지막 단계로 본다. 그래서 높아지심은 부활·승천·우편에 앉으심·재림의 네 단계다.
- 예수는 사흘 만의 부활을 미리 말씀하셨고, 생명을 버릴 권세와 다시 얻을 권세가 자신에게 있다고 하셨다.
- 하나님이 죽음의 줄을 풀어 살리셨다. 그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며 다시 죽지 않으신다. 부활은 죽음과, 죽음의 권세를 쥔 마귀에 대한 승리다.
- 제자들의 무너진 믿음을 다시 세운 것은 부활이었다. 그 빛에서 예수의 생애 전체를 읽었다. 그래서 부활의 증인이 사도직의 표지였다.
- 확실성의 근거는 예루살렘과 갈릴리의 여러 나타나심과 사도들의 증언이다. 빈 무덤 자체는 믿음의 근거가 아니지만, 실제 부활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이다.
- ‘제삼일에’와 ‘사흘 만에’는 기간 차이 없이 번갈아 쓰였다. ‘밤낮 사흘 동안’은 요나와 견주는 상징 표현이다.
| 부활 부정 이론 | 주장자 | 바빙크의 반박 |
|---|---|---|
| 기절설 | 합리주의자, 슐라이어마허 | 설득력을 잃었다. |
| 시신 도난설 | — | 설득력을 잃었다. |
| 주관적 환상설 | 위 둘을 대신한 설명 | 환상은 믿음을 전제하지 낳지 못한다. 제자들은 낙담해 보고도 믿지 않았다. 나타나심은 장소·시간·인물이 구체적이고 바울까지 이어진다. |
6. 40일·승천·우편 앉으심 원서 783–784쪽
40일의 몸: 같은 몸
- 손과 옆구리를 보이심
- 만져지심, 음식을 드심
40일의 몸: 달라진 몸
-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함
- 신비하게 나타났다 사라지심
- 연약하게 장사된 몸이 신령한 몸(σωμα πνευματικος)으로 변화
- 40일 동안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승귀하신 주와 맺을 새 교제를 준비했다. 고난의 필요성, 예언의 성취, 받으실 영광을 비로소 깨달았다.
- 승천: 사건 자체는 누가만 기록하지만 예수의 예고, 베드로의 설교, 바울 서신, 히브리서, 계시록이 거듭 말한다. 승천은 부활과 깊이 연결되지만 하나로 보면 안 된다. 그러면 40일간의 나타나심 증언을 부정하게 된다.
- 우편에 앉으심: 승천과 구별되는 단계다. ‘우편’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인간적 방식의 상징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가 계신 장소를 정하지 않았다. 뜻은 하나님만 가지실 수 있는 최고 권세와 위엄의 자리다.
- 위로: 대제사장이자 왕이신 분이 지금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마지막 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
7. 화해(속죄) 원서 785–788쪽
승귀하신 중보자가 얻으신 유익은 화해(καταλλαγη)에서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사람의 마음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효력이 있는 객관적 속죄다.
- 구약 제사는 하나님 면전에서 죄를 덮어 진노를 피하는 일이었다. 신약은 그리스도를 화목제물(ἱλαστηριον, ἱλασμος)이라 부른다.
- 그래서 화해는 쌍방적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시고 우리와 화평을 이루셨다.
- 하나님의 진노는 악한 분노가 아니고 의는 복수심이 아니다. 칼뱅의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자신의 것을 잃기를 원치 않으시고 사랑할 것을 찾으신다. 먼저 사랑하셨고, 그 사랑으로 화해시키셨다.
- 화해는 이미 완성되었다. 남은 것은 ‘하나님과 화해하라, 복음을 믿으라’는 초대뿐이다.
| 유익의 차원 | 내용 |
|---|---|
| 법정적 | 죄 용서, 칭의, 양자 됨, 하늘 유업, 구속 |
| 신비적 |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나 하늘에 앉는 연합 |
| 윤리적 | 거듭남, 성화, 씻음, 피 뿌림(몸과 혼과 영에서) |
| 도덕적 |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닮아 감 |
| 경륜적 | 옛 언약의 성취와 새 언약, 율법에서의 자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 장벽 제거 |
| 물리적 | 세상·사망·지옥·사탄에 대한 승리 |
8. 근대의 구속 개념 비판 원서 788쪽
근대에는 ‘구속’(Erlösung)과 ‘화해’가 초기 교회의 신성화(θεοποιησις, θειωσις)와 안셀무스 이후의 충족·공로라는 말을 밀어냈다.
슐라이어마허
구속 = 예수의 하나님 의식이 신자 공동체에 신비적으로 전해져 생기는 주관적 변화. 인격을 앞세운다.
리츨
예수의 생애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키고 가르침과 모범을 따르게 한다. 죄책 의식이 사라지며 화해가 이루어진다. 윤리적 면, 사역을 앞세운다.
9. 속죄 범위의 논쟁사 원서 790–791쪽
바빙크는 먼저 구속 사역의 무한한 가치와 온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한다(요 3:17; 골 1:20). 이런 우주적 표현에서 어떤 이들은 보편구원론을 끌어냈다.
- 오리게네스·펠라기우스보편구원 쪽 흐름.
- 아우구스티누스모든 사람이 구원받지는 않는다. 딤전 2:4의 “모든 사람”은 각 민족과 계층의 다양함. 교회의 주류가 되고 스콜라주의도 대체로 따랐다.
- 반펠라기우스주의선행하는 뜻(모두의 구원을 원하심)과 결과적인 뜻(믿음과 인내를 미리 보신 자만 구원하심)을 구별. 로마 가톨릭을 지배하고 루터파에도 수용. 다만 삼위일체·그리스도의 신성·충족을 고백해 펠라기우스 원리가 완전히 득세하지는 못했다.
- 소키누스주의·항변파결정적 전환. 소키누스주의는 객관적 교리 자체를 버렸고, 항변파는 끝까지 믿지 않을 자까지 포함해 모두를 위해 죽으셨다고 했다. 그러면 죽음은 누구에게도 실제 구원을 주지 못하고 가능성만 연다.
- 도르트 신조제한 속죄를 가르치면서도 희생이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에 충분하다고 선언.
- 그 후아르미니우스주의는 정죄되었으나 루터파·성공회·침례교·감리교, 개혁파 교회 안까지 퍼졌다.
10. 영국·스코틀랜드의 도전 원서 792쪽
제한 속죄는 개혁파 내부에서도 흔들렸다.
| 그룹 | 주장 | 문제 |
|---|---|---|
| 영국 ‘중도’ (리처드 백스터; 프랑스의 카메론·테스타르·아미랄두스 구도 수용) | 작정을 둘로 나눔. 선행 작정: 믿음을 조건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속죄. 이어지는 작정: 택자에게 적용. | 겉으로는 제한 속죄를 보존하나 실제로는 보편적 조건 속죄를 먼저 세운다. |
| 매로우 사람들(Marrow Men): 제임스 호그, 토머스 보스턴, 어스킨 형제 | 희생은 모든 사람을 위한 율법적·언약적 충분성을 가지므로 누구에게나 은혜를 제공할 토대가 된다. “그리스도가 너희를 위해 죽으셨다”가 아니라 “너희를 위한 구주가 계시다”고 선포할 수 있다. | — |
| 맥레오드 캠벨 (1820년대) | 그리스도는 이웃 사랑의 계명에 완벽히 순종하고 보편적 이웃 사랑을 가르치셨으니 죽음도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 1831년 축출되었으나 큰 영향력으로 제한 속죄가 거의 포기되는 데 기여했다. |
11. 제한 속죄의 성경적 근거 원서 793–796쪽
(1) 성경의 언어
- 희생은 일관되게 “많은 사람”, “자기 백성”, “양”, “아버지께서 주신 자”, “자기 교회”, 믿는 “우리”에게 연결된다.
- 보편적으로 들리는 본문은 복음 선포가 모든 민족으로 확장되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심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소수가 아닌 큰 무리를 뜻한다.
- 우리는 그가 정확히 누구를 위해 죽으셨는지 알 필요가 없다.
(2) 구원의 구조
- 희생 = 중보기도의 토대둘의 범위는 같다.
- 중보기도는 주신 자를 위함요 17:9. 그러므로 희생도 제한적이다.
- 획득 = 적용적용은 획득의 필연적 전개. 속죄하신 자는 틀림없이 구원받는다.
선택지는 둘뿐이다. 모두를 위한 속죄이니 모두 구원된다고 하든지, 성경과 경험이 그렇지 않음을 인정하든지. 개혁파는 그리스도가 가능성만 연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의 구원을 실제로 이루셨다고 본다. 이것만이 성부·성자·성령 사역의 통일성을 지킨다.
(3) 보편속죄론의 오류
- 삼위 사이의 균열: 성부는 모두의 구원을, 성자는 모두를 위한 속죄를 원하는데 성령은 일부에게만 믿음을 준다.
- 선택과 언약에서 그리스도를 떼어 내 대리속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정의를 낮추고 자유의지를 신처럼 높인다.
- 적그리스도의 죄까지 속죄되었으니 멸망의 유일한 죄는 불신앙뿐이라는 결론. 성경 전체 사상과 상반된다.
개혁파에서는 선택과 함께 오는 복들, 곧 믿음·회개·새 마음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주어진다(빌 1:29).
12. 제한 속죄의 보편적 의미 원서 797쪽
속죄는 그 의도에서 택자를 위한 것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바빙크는 곧바로 균형을 잡는다.
한쪽 극단
공통 은혜(창조와 함께 택자와 비택자 모두에게 미치는 은혜)를 부인하는 것. 엄밀히 말해 먹고 입고 쉬는 자연적 유익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획득한 유익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른 쪽 극단
헤른후트파·경건주의자처럼 자연과 은혜, 창조와 구속의 경계를 허물어 성부 대신 그리스도를 우주의 왕좌에 앉히는 것.
- 선택과 은혜언약은 그리스도가 획득한 것이 아니라 그의 공로보다 앞선다. 성부는 창조로 재창조의 기초를 놓으시고, 두 사역은 혼동되면 안 된다.
- 그리스도는 백성에게 똑같은 것을 주시지 않는다. 은혜는 성별·나이·계층·은사의 본성적 다양함을 폐하지 않고 치유하고 온전하게 한다.
13. 승귀 상태의 삼중직 원서 798–799쪽
- 사명을 완수하고 창조세계를 충만에 이르게 하려면 낮아지심만으로는 부족하고 높아지심도 똑같이 필요하다. 근대 신학이 머무는 ‘역사적 예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 그는 과거에도 지금도 대예언자, 유일한 대제사장, 영원한 왕이시다.
- 차이: 종이셨던 분이 이제 주와 통치자이시다. 사역은 순종의 희생제사가 아니라 왕적 통치이며, 백성을 다 모으고 원수를 발아래 두실 때까지 계속된다.
- 중보 사역은 영원에서 시작해 영원에서 완성되는 하나의 사역인데, 부활의 순간에 고난과 영광의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둘 다 구원에 동등하게 필요하다.
14. 승귀하신 그리스도의 삼중직 원서 799–803쪽
| 직분 | 승귀 상태의 사역 | 교회에 주는 의미 |
|---|---|---|
| 예언자 | 40일 동안 가르치시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감추어진 지혜의 보화를 알리신다. 목사와 교사라는 직분을 통해 교회를 세우신다. | 그리스도가 말씀과 성령으로 직접 가르치시므로 하나님께 배운 모든 신자가 예언자다. 직분은 그분을 대신하는 선생이 아니라 통로다. |
| 제사장 | 비하는 제사장 사역의 준비요 훈련이었다. 자기 피로 단번에 드리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 지금 우편에서 쉬지 않고 간구하시며 사탄·세상·우리 마음의 고소에 맞서 변호하신다. | 멜기세덱 반차의 제사장-왕이시므로 별도의 제사장 계급은 필요 없다.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 희생은 끝났으나 중보기도는 계속된다. |
| 왕 | ‘주’라는 이름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심. 은혜의 왕국에서 교회를 모으고 보호하고 다스리신다. 권세는 모든 피조물과 사탄의 영역까지 미친다. | 성경은 그를 교회의 머리라 부른다. 벧전 3:19–22는 지옥 설교가 아니라 부활해 하늘로 가신 분의 승리 선포다. |
화해의 중보자직 종말에 끝남
나라를 성부께 바치면 끝난다(고전 15:24).
연합의 중보자직 영원함
앙키라의 마르켈루스처럼 인성과 로고스의 연합까지 끝난다고 보면 안 된다. 니케아 신조: 그의 나라는 끝이 없다. 그는 영원히 예언자·제사장·왕이자 교회의 머리시다.
구조도
| 입장 | 그 입장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루터파 | 승귀는 인성이 감춰 둔 신적 속성을 다시 쓰는 것 | 그러면 승귀에 실제 단계가 없다. 승귀는 순종의 상급으로 얻은 진정한 변화다. |
| 급진적 재세례파·소키누스주의 | 부활·승천·재림은 도덕적 이상의 표현 | 구체적인 나타나심과 빈 무덤은 육체적 부활로만 설명된다. |
| 슐라이어마허·리츨 | 구속은 예수가 우리 안에 일으키는 신비적·도덕적 영향 | 그러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린다. 재창조는 창조보다 커서 참 하나님만이 중보자다. |
| 항변파 | 그리스도는 모두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여셨다 | 그는 자기 백성의 구원을 실제로 이루셨다. |
| 백스터·아미랄두스 | 모두를 위한 조건적 속죄 작정이 택자 작정보다 앞선다 | 희생과 중보기도는 하나다. 중보기도가 제한적이면 희생도 제한적이다. |
| 헤른후트파·경건주의 | 창조와 구속의 경계를 없애 그리스도를 우주의 왕좌에 | 선택과 은혜언약은 그리스도의 공로보다 앞선다. 창조와 재창조는 구별된다. |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 승귀는 감춰 둔 신적 능력을 다시 쓰는 것일 뿐이다.
- 승귀는 부활부터 시작된다.
- 승귀로 그리스도가 비로소 신이 되셨다.
- 부활은 제자들이 본 환상이다.
- 하나님 우편은 하늘의 특정 장소다.
- 구속은 예수의 감화로 우리 안에 생기는 변화다.
- 그리스도는 모두를 위해 죽어 구원의 가능성만 여셨다.
- 제한 속죄는 복음을 모두에게 전할 수 없게 하고, 세상과 무관하다.
바른 이해 ✓
- 순종의 상급으로 얻은 참된 변화, 중보 사역의 영광이다.
- 요한복음에 따르면 이미 십자가에서 시작된다.
- 신성과 삼중직은 영원 전부터 있었고, 주 되심의 권세가 선포되었다.
- 환상은 믿음을 낳지 못하고, 빈 무덤은 몸의 부활로만 설명된다.
- 인간적 상징이며 최고 권세와 위엄의 자리를 뜻한다.
- 참 하나님이신 중보자가 우리 대신 드린 객관적 화목제사다.
- 자기 백성의 구원을 실제로 이루셨고, 획득과 적용은 하나다.
- 쟁점은 의도이며 복음의 부름은 모두에게 이른다. 그리스도 때문에 세상이 존속하고 만물의 구속이 십자가의 열매다.
핵심 용어
- 비하와 승귀 (두 상태)
-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빌 2:6–11에 근거한 중보자의 연속된 두 상태.
- 케노시스 (κενωσις, 자기비움)
- 신적 속성 포기가 아니라 신적 영광을 감추고 쓰지 않으심. 루터파 내 기센 학파는 ‘자기비움’, 튀빙겐 학파는 ‘감추심’(κρυψις)으로 속성 사용 중단을 설명했다.
- 속성의 교류
- 성찬론에서 나온, 신적 속성이 인성 자체에 주어졌다는 루터파 교리.
- 퀴리오테스 (κυριοτης)
- 승귀로 받으신, 부활로 공개 선포된 주 되심의 권세. 모든 피조물 위의 주권.
- 신령한 몸 (σωμα πνευματικος)
- 연약함 가운데 장사된 몸이 영광과 권능으로 변화된 부활의 몸.
- 화해 (καταλλαγη)
- 화목제물로 이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쌍방적·객관적 화평. 복음의 내용.
- 화목제물 (ἱλαστηριον)
- 하나님 면전에서 죄를 덮어 진노를 그치게 하는 제물, 곧 그리스도 자신.
- 구속 (Erlösung)
- 근대 신학이 그리스도 사역의 열매를 주관적 변화로 묘사한 용어.
- 선행하는 뜻 / 결과적인 뜻
- 모두의 구원을 먼저 원하시되, 믿음과 인내가 예견된 자만 구원하신다는 반펠라기우스적 구별.
- 제한 속죄
- 하나님의 의도상 택자를 위해 드려져 그들의 구원을 실제로 이루는 속죄.
- 매로우 사람들 (Marrow Men)
- 희생의 율법적·언약적 충분성이 보편적 제공의 토대라고 한 스코틀랜드 신학자들.
- 공통 은혜
- 창조와 함께 택자와 비택자 모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호의.
- 연합의 중보자직
- 화해의 중보자직이 종말에 끝난 뒤에도 영원히 남는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
성경 근거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빌 2:6–11 | 낮추셨기에 높이셨다. 두 상태 교리의 토대이자 ‘그러므로’(διο)의 근거. |
| 요 12:24, 32 | 한 알의 밀, 들려야 함. 십자가에서 이미 시작된 승귀. |
| 롬 1:4 |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공개 선포됨. |
| 고전 15:20 |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하심. |
| 고전 15:42–45 | 신령한 몸, 살려주는 영이 되심. |
| 롬 3:25 |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 |
| 고후 5:18–21 | 사랑에서 나온 완성된 화해와 초대. |
| 요 10:11; 요 17:9 | 희생은 ‘양’을 위한 것, 중보기도는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위한 것. |
| 딤전 2:4 | “모든 사람” = 큰 무리. 제한 속죄와 양립. |
| 히 7:25 | 항상 살아 계셔서 간구하심. 희생과 중보기도의 범위가 같다. |
| 고전 15:24–28 | 나라를 성부께 바치고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심. |
복습 문제
빌 2:9의 ‘그러므로’(διο)는 승귀에 대해 무엇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가 승귀로 받으신 것은 무엇인가?
바빙크가 루터파의 승귀 이해에서 지적한 두 결함은?
주관적 환상설이 부활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화해가 ‘쌍방적’이라는 말의 뜻과, 그것이 근대 구속론과 갈라지는 지점은?
제한 속죄의 두 번째 근거인 ‘구원의 구조’ 논증을 설명하라.
‘화해의 중보자직’과 ‘연합의 중보자직’은 어떻게 다른가?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