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4부 구속자 그리스도

15장 종이신 구원자: 그리스도의 비하

헤르만 바빙크 『개혁파 교의학』 (새물결플러스, 단권 축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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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질문: 그리스도의 죽음은 왜 우리 대신 치른 값인가?

  • 모든 민족의 희생제사와 이스라엘의 제사는 불완전했다. 그 모두가 골고다에서 드려진 단 한 번의 완전한 제사를 가리킨다.
  • 예수는 참 하나님·참 사람인 중보자다. 둘 사이의 제3자가 아니라 자기 인격 안에서 두 당사자이시다. 영원 전부터 세워져 예언자·제사장·왕의 일을 언제나 함께 하신다.
  •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충돌하지 않는다. 성부의 사랑이 먼저 있다. 충족은 하나님의 속성에 부합한다는 뜻에서 필연이며, 용서를 막지 않고 용서의 길을 연다.
  • 잉태부터 죽음까지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하나의 순종이다. 적극적 순종과 소극적 순종이 함께 우리 대신 공의를 채운 대리충족이며, 이는 법정적 대표이고 영원한 구속언약에 뿌리를 둔다.
  • 이 순종은 성육신부터 장사까지 비하 전체에 걸친다. 지옥강하는 그가 죄의 형벌을 끝까지 당하신 죽음의 상태를 뜻한다.

1. 종교, 문화, 구속, 희생 원서 727–740쪽

총론 원서 727–729쪽

  • 구속(속박에서 건져냄) 개념은 거의 언제나 화해(깨진 관계의 회복) 개념과 결합해 있다.
  • 문화는 구속을 향한 갈망을 채우지 못한다. 이 갈망은 모든 문화의 근간인 종교로만 채워진다.
  • 희생제사는 사실상 보편적이다. 그러나 그 기원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은 아직 없다.
  • 죄가 희생제사의 성격을 속죄 행위로 바꾸었다.
  • 모든 제사장과 제사는 골고다의 희생을 가리킨다.

논증 흐름

  1. 보편적 경험사람은 어디서나 죄와 비참을 느끼고 벗어나기를 바란다. 많은 종교에서 이 바람은 장차 올 한 인물, 특히 왕과 묶여 있다.
  2. 문화의 역설문화는 성공할수록 많은 필요를 채우지만 새 필요를 낳는다. 문명이 풍성해질수록 삶은 오히려 공허해진다.
  3. 여러 구속의 길마술·신비주의·황홀경, 자연주의·율법주의·도덕주의. 그러나 거의 모든 종교에 희생제사가 있다는 사실은 따로 설명이 필요하다.
  4. 제사의 변질희생은 타락 전에도 교제를 위한 선물로 있었을 것이다. 죄가 들어오자 동기가 감사·경외에서 두려움과 죄책으로 바뀌었다.
  5. 제사장의 출현죄의식이 깊어질수록 중보자의 필요도 커졌다. 스스로 신 앞에 설 수 없게 되자 대신 서 줄 자를 찾았다.
  6. 골고다를 가리킴이스라엘에서는 직접, 다른 민족에서는 간접으로, 모든 제사와 제사장은 때가 차서 드려진 하나의 완전한 제사를 가리킨다.
희생제사 기원 가설바빙크의 평가
죄책 제거 · 감사 · 교환(do-ut-des) · 신과의 식사 교제 · 토테미즘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다. 만족스러운 설명은 아직 없다.
바빙크의 견해교제를 위한 선물로서의 희생은 타락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죄의 등장으로 속죄 제사가 제의의 중심이 되었고, 일반 제사와 속죄 제사를 뚜렷이 가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감사와 경외심이 아니라 두려움과 죄책 때문에 희생제사(와 기도)를 드린다.” — 바빙크

[375] 구약의 제사장과 희생제사 원서 730–731쪽

  • 제사장은 율법 교육·제사·축복을 맡았다.
  • 피는 생명의 운반자로서 죄를 가려 속죄한다. 그 덮는 주체는 하나님 자신이고 제사장은 대리인이다.
  • 속죄제사는 고의적이지 않은 죄에만 적용되었다.
  • 은혜언약은 희생제사보다 앞서 약속에 기초한다.
  • 구약 제사는 불완전·임시적·모형론적이었고, 모든 것이 고난받는 종을 고대한다.
구분내용
제사의 종류유월절 제사, 언약 제사, 번제와 감사제, 죄와 죄책을 다루는 속죄제와 속건제
속죄의 두 원리① 제물에 손을 얹어 죄를 전가(옮겨 지움) ② 피를 뿌림. 죽임으로 풀려난 생명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덮는다.
한계 ①고의로 지은 죄의 형벌은 죽음이었다(민 15:30).
한계 ②생각과 말의 죄, 교만과 자기 추구 같은 많은 죄에는 아무 제사도 규정되지 않았다.
한계 ③은혜언약은 제사 위가 아니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라는 약속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제사의 일차적 뜻은 백성이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불완전성제사장 자신이 죄인이다. 짐승의 피는 죄를 없앨 수 없다. 제사는 끝없이 반복되어야 했다.

이 불완전함은 자신을 제물로 드릴 고난받는 종을 가리킨다. 구약에는 고난받는 종과 기름 부음 받은 왕의 약속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님의 의는 고난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모세, 다윗, 욥, 예언자들처럼 의인이 가장 많이 고난당한다.

  • 포로기 이스라엘도 주의 종으로 고난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구속이 필요하므로 참된 종은 아니다(사 41:14; 42:19–20).
  • 길은 새 언약의 예언자, 멜기세덱 반차의 왕 같은 제사장(시 110), 겸손한 왕, 모든 제사를 쓸모없게 하실 분을 향해 열려 있었다.
  • 그러나 예수 당시 대중은 고난받는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았고, 제자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마 16:22; 눅 24:21).
정리구약 제사는 스스로 불완전함을 드러내며, 긍휼에 호소하게 하는 그림자로서 고난받는 종을 기다렸다.

[376] 신약의 그리스도 사역 원서 732쪽

  • 그리스도는 구약의 율법·예언·제사를 성취하신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예와 아멘이 된다(고후 1:20).
  • 세 직분이 함께 드러난다. 다윗 가문의 왕,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예언자, 죽기까지 순종하여 세상 죄를 지는 하나님의 어린양.
  • 비하 상태의 사역은 성부가 맡기신 하나의 ‘일’(ἐργον)이며 많은 ‘일들’로 나뉜다. 기적은 성부의 사랑과 보내심을 증명하고 그의 영광을 드러낸다. 가장 큰 기적은 성육신하고 부활하신 아들 자신이다.
  • 그리스도의 인격 없이는 그 유익에 참여할 수 없다. 성령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킨다.
신약이 그 죽음을 부르는 말대표 구절
새 언약의 피마 26:28; 막 14:24; 히 9:13–14
희생제물엡 5:2
속전 (λυτρον)마 20:28; 막 10:45; 딤전 2:6
값 (τιμη)고전 6:20; 7:23; 벧전 1:18–19
화목제물 (ἱλαστηριον)롬 3:25
저주갈 3:13

핵심은 ‘우리를 대신해서’(ὑπερ, 몬 1:13)라는 말에 있다. 그는 우리 자리에서 율법의 저주를 지셨다. 그 결과 죄 사함, 죄를 없앰, 양심의 씻음, 칭의, 아들 됨, 담대히 나아감 등 구원의 모든 유익을 얻으셨다. 여기서 죽음을 사랑의 확증이나 모범으로만 보는 소키누스주의와 갈라진다.

그는 빛, 길과 진리와 생명, 우리의 의와 거룩과 구속, 화평, 마지막 아담, 교회의 머리이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그와 하나 되게 하여 정결케 하고 거듭나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세상·죽음을 이긴다. 그러나 완성은 남아 있다. 새 하늘과 새 땅, 만물의 회복까지 신자는 믿음과 함께 시작된 영생을 지금 맛본다.

정리그리스도의 유익은 그의 인격과의 교제를 떠나서는 누릴 수 없다.

[377] 교회사 속 사역 교리 원서 733–735쪽

  • 사역 교리사에는 삼위일체론·기독론 같은 첨예한 논쟁이나 명쾌한 정식이 없었다. 이유는 성경 자체의 풍성함이다.
  • 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편향된 견해가 생겼다.
  • 안셀무스: 구속은 무엇보다 죄와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이다.
  • 종교개혁: 능동적·수동적 순종 전체가 사역이다. 칼뱅이 삼중직 구조로 다루었다.
  • 화목의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이 구분되었다.
죄를 보는 눈그리스도 사역에 대한 강조
죄 = 지식의 결여(무지)진리를 알리고 덕의 본을 보이는 로고스
죄 = 죄책보다 힘화해보다 구출이 앞선다
사탄에게 속전·미끼로 넘겨짐널리 퍼졌으나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는 거부했다(근거로 쓰인 구절: 욥 40:24)
죄 = 죄책, 하나님의 진노를 부름안셀무스와 종교개혁: 신인의 대속적 죽음만이 공의를 충족
  1. 교부유스티누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이레나이우스: 우리를 대신한 희생을 하나님과의 온전한 화해로 보았다. 바빙크는 이것을 최선의 설명으로 꼽는다.
  2. 교부테르툴리아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치며 법률적·속죄적 요소가 자란다.
  3. 안셀무스안셀무스 『인간이 되신 하나님』: 법률적·속죄적 강조의 절정. 대속의 죽음이 필연임을 밝혔다. 구속이 죽음과 사탄에서의 구출이기 전에 죄와 죄책에서의 구원임을 처음 분명히 보았다.
  4. 대조스코투스는 희생을 하나님의 능력 행위로, 아벨라르는 모범으로만 보았다.
  5. 종교개혁죄는 일차적으로 죄책이다. 언약의 보증인이 우리 자리에서 형벌을 지고 율법 전부에 순종하셨다. 사역은 죽음에만 있지 않고 능동적·수동적 순종 전체에 있다.
  6. 칼뱅「제네바 교리문답」과 1539년판 『기독교강요』에서 삼중직으로 다룸. 개혁파, 루터파, 로마 가톨릭도 이 틀을 따랐다.

바빙크는 사역을 주로 모범이나 신자 안의 신비적 실체로 보는 견해를 부적절하다고 판정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꾸셨다. 용서의 첫 열매로 부패·죽음·율법·사탄에서의 구원이 따른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은 주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내용으로 한다.” — 바빙크

[378] 신비주의와 소키누스주의 원서 736–737쪽

  • 에비온파·영지주의는 모범과 조명만 보았다.
  • 신비주의 분파는 ‘우리 안에’(in nobis) 계신 그리스도를 앞세웠다.
  • 스탄카루스·피스카토르의 합리주의적 공격.
  • 소키누스주의: 충족은 비성경적이고 불필요하며 불가능하다.
  • 흐로티우스의 통치적 공의 이론. 항변파는 충족 반대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흐름인물·집단그리스도와 사역에 대한 주장
신비주의 쪽에비온파예언자일 뿐. 교훈과 모범으로 죄와 싸울 힘을 준다.
영지주의신적 지혜를 지닌 영적 존재(aeon). 조명으로 물질의 올무에서 풀어 준다.
중세 이원론적·범신론적 분파사람의 참된 본성을 알려 줌. 죽음과 부활은 각 사람의 거듭남 안에서 일어난다.
칼슈타트, 프랑크, 슈벵크펠트, 바이겔 / 뵈메, 퀘이커구원은 ‘우리 안의’ 그리스도에 있다. 전가된 의를 신뢰하는 것은 위험한 오류다. 내적 빛 교리.
합리주의 쪽스탄카루스그리스도는 인성에서만 중보자다.
피스카토르적극적 순종(율법을 지키신 순종)을 부인.
소키누스주의삼위일체·신성 부인. 충족은 비성경적·불필요·불가능. 무고한 자는 죄인 대신 죽을 수 없다. 죽음은 하나님 사랑의 확증, 부활은 영생의 모범. 대속 교리는 방종을 낳는다.
흐로티우스충족을 지키려 했으나 하나님 밖에 있어 하나님도 따라야 하는 통치적 공의에서 끌어냄. 고난은 다른 이의 고난을 막는 본보기가 됨. 뉴잉글랜드 신학(에드워즈, 드와이트)과 영국 사상가들(홉스, 로크, 콜리지, 테일러, 프리슬리)로 영향이 이어짐.
항변파충족 교리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그 반대를 모두 받아들였다.

우리 안의 그리스도 in nobis

  • 신비주의 분파의 중심
  • 구원 = 내 안에서 일어나는 거듭남
  • 전가된 의는 위험한 오류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 루터·칼뱅

  • 종교개혁의 중심
  • 구원 = 우리 밖에서 이루신 대속
  • 전가된 의를 신뢰함

바빙크는 소키누스의 비판이 너무 완벽해서 후계자들은 되풀이할 뿐이었다고 평한다.

주의신비주의와 합리주의 모두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약화시켰다. ‘우리 안’만 남기면 ‘우리를 위한’ 십자가가 사라진다.

[379] 근대신학의 속죄 이론 원서 738–740쪽

  • 근대신학은 법률적 충족을 우리 안의 윤리적 변화로 대체했다. 무게 중심이 우리 밖의 객관적 사건에서 우리 안의 주관적 체험으로 옮겨졌다.
  • 헤겔: 화해는 우주 과정의 필연적 순간이다.
  • 드레프스: 모든 구속은 자기구속이다.
  • 슐라이어마허는 죄책의 실재를 놓쳤다. 리츨은 하나님의 진노를 거부했다.
인물주장바빙크가 짚는 문제
셸링·헤겔 (관념론)역사적 예수보다 하나님을 떠났다 돌아가는 세계관념이 중요. 세계와 인간 자체가 고난받고 죽는 하나님. 화해는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에게 돌아가는 우주 과정의 한 순간.역사적 예수가 사라진다
드레프스모든 구속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이루는 자기구속. 중보자는 불가능.죄 용서가 도덕적 갱신 뒤에 온다. 종교가 도덕성과 자기구원의 문제가 된다.
슐라이어마허교회 용어와 삼중직까지 쓰지만 우리 안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교제만 말함죄와 죄책의 실재를 다루지 못하고 구속을 심미적 조화로만 봄
리츨역사적 예수의 순종과 소명 충성을 되살림하나님을 사랑으로만 이해하려고 심판과 진노에 관한 말을 버림
카프탄·헤르만·하르낙기독교는 윤리적 삶의 문제예수는 복음의 내용이 아니라 성부께 이르는 안내자로 축소됨
“종교의 주관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이 객관적 측면을 지배하고, 종교는 도덕성과 자기구원(self-salvation)의 문제가 된다.” — 바빙크

[380] 영어권의 도덕적 재구성 원서 740쪽

  • 근대신학은 인간의 도덕적 능력을 높이 보고 죄를 발달의 결함이나 지체로 보았다. 그러면 속죄는 실제로 필요 없고, 예수를 예언자·모범으로 따르라는 부르심만 남는다.
  • 영어권에서 속죄가 다시 강조되었으나 대리적·대속적 이해는 거부되었다. 무게 중심은 객관적 사역에서 주관적 변화로 옮겨갔다.
  • 부쉬넬: 그리스도의 고난 = 모든 것을 참는 사랑.
  • 캠벨: 고난의 원인은 공의가 아니라 사랑. 그리스도는 우리 대신 성부께 대리 회개를 드렸다. 전가도 법률적이 아니라 신비적·윤리적 방식이 된다.
  • 얼스킨·모벌리·모리스 등과 프랑스·스위스 신학도 비슷한 길을 갔다.
공통점과 긴장이 모든 시도는 형벌대속을 일절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류에게 풍성한 복의 원천이라는 믿음은 지키려 하고, 그 복을 나누려고 그리스도와 우리를 어떻게든 연합시키려 한다. 그럼에도 예수의 대리고난과 죽음에 대한 고백은 교회에 살아남아 결연히 옹호된다.

죄를 가볍게 보면 속죄도 가벼워진다. 속죄 교리에 관심이 적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죄를 가볍게 본 결과다.

2. 중보자 예수 원서 743–752쪽

총론 원서 743–746쪽

  • 예수는 참 하나님·참 사람인 완전한 중보자다.
  • ‘예수’는 ‘야웨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히브리어 표기 ‘예호슈아’).
  • 그리스도는 자기 인격 안에서 두 당사자다.
  • 두 본성 모두에서, 영원 전부터 중보자다. 구원 협약(pactum salutis): 구속은 삼위의 공동 사역이다.
  • 직분은 하나님의 임명을 포함한다. 성령으로 잉태될 때와 세례 때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이름: 예수와 그리스도

이름뜻과 쓰임
예수‘야웨가 구원이시다’. 흔한 이름이었다. 모세가 호세아를 여호수아로 바꿔 부른 것은 의도적이었다. 요셉은 천사의 명령대로 아들을 예수라 불렀다. 그가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 때문이다(마 1:21). 독특한 의미로는 그에게만 속한다.
그리스도개인 이름이 아니라 공식적인 직분의 이름. 신자들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행 11:26). 그와의 교제 속에서 신자도 예언자·제사장·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다.
중보자 (μεσιτης)반목하는 둘 사이에 서서 화해시키는 자. 욥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그런 존재를 바랐다. 신약은 이 이름을 모세와 그리스도에게만 준다(딤전 2:5). 중보자 개념은 모든 종교에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만 실현된다.
“그는 두 당사자 사이에 서지 않고, 자신의 인격 안에서 그 두 당사자시다.” — 바빙크

스탄카루스 거부됨

그리스도는 인성에서만 중보자다.

개혁파·루터파 바빙크

그리스도는 두 본성 모두에서 중보자다. 영원 전 구원 협약에서 세워졌고, 타락 직후부터 곧 구약 시대에도 직분을 수행하셨다.

‘직분’인가 ‘부르심’인가

  • 구약에서는 왕적 직분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그 왕권은 폭력과 무기가 아니라 말씀과 성령, 은혜와 진리로 다스리는 왕권이다. 그래서 왕이면서 동시에 예언자와 제사장이다.
  • 어떤 이들은 그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므로 법적인 ‘직분’ 대신 ‘부르심’이 맞다고 한다.
  • 바빙크: 직분은 부르심과 달리 통치권에 의한 임명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영예를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택함받고 세움받았다(히 5:4–6). 그래서 ‘직분’이 맞다.
  • 옛 언약의 왕들이 받은 기름 부음은 하나님의 영으로 구비됨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될 때(눅 1:35)와 세례받을 때(마 3:16)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382] 삼중직의 통일성 원서 747쪽

  • 행위를 한 직분에 엄격히 배정하는 것은 분리주의적이다.
  • 그리스도는 전 인격 안에서 세 직분이시다.
  • 시기에 따라 한 직분이 부각될 뿐이다.
  • 예언자·제사장·왕은 세 관계에 상응한다.
  • 한 직분만 인정하는 치우침을 거부한다.

많은 신학자가 직분들을 서로 구분할 수 없다며 삼중직에 반대한다. 바빙크는 그 전제를 일부 인정한다. 이적은 가르침의 표적이면서 제사장적 연민과 왕적 권세를 드러낸다(요 2:11; 마 8:17; 9:6). 중보기도에도 세 직분이 함께 나타난다(요 17:2). 그러나 구분이 어렵다는 것이 삼중직을 버릴 이유는 아니다.

한 인격 안의 세 직분
예언자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냄. 하나님 → 인간을 향한 관계. 구약 시대와 지상 사역에서 부각. 필요: 진리
제사장우리 대신 자신을 제물로 드림. 인간 → 하나님을 향한 관계. 고난과 죽음에서 부각. 필요: 사랑
왕우리를 통치하고 보호함. 인류의 머리로서. 승귀 상태에서 부각. 필요: 권세
치우친 입장남기는 직분그리스도를 줄이는 모습
이성주의자예언자가르치는 자
신비주의자제사장화해시키는 자
천년왕국주의자왕다스리는 자
성경세 직분을 지속적·동시적으로 돌려 대예언자, 대제사장, 영원한 왕으로 그린다. 왕으로서 하시는 말씀에 권세가 있고, 왕적 통치에는 은혜와 진리가 가득하다.
“그에게 이 세 가지는 항상 긴밀히 결합되어 있고, 다른 것들 없이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일은 결코 없다.” — 바빙크

[383–384] 사랑·공의와 충족의 필연 원서 749–750쪽

  • 죽음은 정의만의 계시도, 사랑만의 표현도 아니다.
  • 성부의 사랑이 그리스도보다 먼저 있다.
  • 공의와 사랑 사이에 갈등은 없다.
  • 충족은 하나님의 속성에 부합하여 필연적이다.
  • 도덕법은 하나님의 본성에 기초한다. 다른 길이 있었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었다.

정의의 계시로만 볼 때 오류

하나님은 제물로 진노를 달래야 하는 이교의 신이 된다.

사랑의 표현으로만 볼 때 오류

그 죽음이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행위이기도 함을 놓친다.

영지주의와 마르키온주의처럼 구약의 진노하는 하나님과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을 가르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구약의 야웨 엘로힘은 공의롭고 질투하며 죄에 분노하지만, 동시에 은혜롭고 용서하기를 원하신다(출 34:6–7).

성부와 그리스도 사이에 대립은 없다. 성부 자신이 구원자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신다(고후 5:18–19). 그리스도가 먼저 행위로 성부를 감동시켜 사랑을 끌어낸 것이 아니다. 공의와 진노는 은혜에 반대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 그 안에 포함된다. 천둥 구름 뒤에 태양이 있듯 진노 뒤에 사랑이 있다는 델리취의 말이 이를 요약한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은혜는 다름 아니라 공의와 의의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 바빙크

그 죽음은 필연인가, 자의적인가

둔스 스코투스

죽음은 자의적이다.

바빙크

밖에서 하나님께 강제된 절대적 필연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에 부합하고 그것을 가장 찬란히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필연이다.

  1. 근거 1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을 위해 하신다.
  2. 근거 2거룩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죄를 용인하면 자신을 부인하는 셈이다.
  3. 근거 3하나님은 아버지만이 아니라 율법 수여자이자 심판자(보응자)이시다.
  4. 근거 4도덕법은 자의적 실정법이 아니라 하나님 본성에 기초하므로 파기할 수 없다(마 5:17–18).
  5. 근거 5죄는 하나님의 위엄을 거스르는 범죄로 죽음이 마땅하다(히 9:22).
  6. 근거 6다른 길이 있었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갈 2:21).
요컨대성육신과 충족은 하나님이 다시 하나님으로 인정되고 영화롭게 되시기 위한 것이었다. 진노 뒤에 감추어진 마지막 동인은 사랑이다.

[385] 충족과 용서 원서 752쪽

  • 공의와 사랑의 대립은 마르키온적이다.
  • 공의를 부정하면 은혜도 부정된다.
  • 율법을 없애면 용서가 실체를 잃는다.
  • 충족은 용서로 향하는 길을 연다.
  • 충족은 드리는 것, 용서는 받는 것이다.
반대 입장바빙크의 답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버지일 뿐 죄를 심판하는 재판장이 아니다. 기독교는 영적·도덕적 프로그램이고 율법과 심판은 국가의 영역이다.이것은 교회가 늘 거부해 온 마르키온식 대립이다. 죄가 처벌받아 마땅하지 않다면 은혜도 존재할 수 없다.
공의와 종교는 서로 맞선다.둘 다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정당하게 요구하신 것에 근거한다. 모든 종교와 도덕성은 율법을 전제한다. 죄와 상관없이도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율법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사랑의 이름으로 율법을 없애자.용서는 객관적 실체를 잃고 “벌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관적 느낌만 남는다. 성화는 자율적 자기발전이 된다. 율법주의를 거부한다면서 선행에 의한 자기구원의 부담이 되돌아오는 비극적 아이러니다.
충족과 용서는 서로 배제한다.성경은 둘을 연결한다(레 4:31; 롬 3:24–26; 히 9:22). 하나님이 충족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지엽적이다.

금전적 빚은 배상으로 풀리지만 개인적·도덕적 빚은 당사자가 치러야 한다. 그러므로 유죄인 자를 대신할 이를 허락하는 것 자체가 은혜다. 하나님은 자기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신다.

“충족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 바빙크
위로양심이 우리를 고발할 때, 그리스도의 완전한 충족은 번복될 수 없는 영원한 용서의 보증이 된다.

3.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적 죽음 원서 754–769쪽

총론 원서 754쪽

  • 사역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완전한 순종이다.
  • 고난이 순종과 분리되어 경건한 모방 대상이 되었다.
  • 잉태부터 죽음까지 전 생애가 대속적이다.
  • 충족을 고난에만 한정함은 비성경적이다.
  • 구속은 육신과 영혼, 전인의 완전한 구속이다.

좁아진 순종 개념

  • 순교자·수도사·고행자: 고난을 순종에서 떼어 묵상하고 따라 할 본보기로 삼음
  • 고난 자체가 경건의 목표가 됨
  • 그 결과 적극적 순종이 흐려짐
  • 피스카토르는 적극적 순종을 아예 부정

개혁파의 순종 개념

  • 잉태부터 죽음까지 전 생애가 대속
  • 강요가 아닌 자발적 자기부인
  • 새 인류의 머리로서 성부께 드린 제물
  •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율법 아래 나심(갈 4:4)
  • 성육신 때부터 종의 형체, 죽기까지(빌 2:7–8)

바울은 이 하나의 순종이 많은 사람을 의와 생명에 이르게 한다고 말한다(롬 5:18–19).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 함께 전체 구속의 보증이 된다. 다만 우리는 지금 그 구속을 부분적으로, 주로 죄의 책임과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만물이 총체적으로 새로워지는 것도 같은 순종의 열매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충족’(속죄) 사역을 그의 고난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성경에 완전히 반대된다.” — 바빙크

[387] 속죄 이론의 다양성과 통일 원서 755–757쪽

  • 근대신학은 소극적 순종(형벌을 담당하는 고난)을 오해하거나 부정했다.
  • 신 의식·연대 등으로 사역을 재구성했다.
  • 다양한 이미지 속에도 일관된 설명이 있다.
  •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죽음이다.
  • 보상적 성격을 부인할 때 이론은 오류가 된다. 모든 강조점을 통일된 전체로 통합해야 한다.

피스카토르 (이전 시대)

적극적 순종을 충족에서 뺐다.

근대신학

소극적 순종을 오해하거나 부정했다. 그리스도의 삶은 도덕적 순종의 모범일 뿐이다. 헤겔의 영향으로 성육신 자체가 구원 행위가 되고, 슐라이어마허는 예수의 신 의식을 구원의 길로 삼았다. 다른 이들은 인간 수난과의 연대로 재구성했다.

이런 다양성은 “성경 자체가 하나의 속죄론을 갖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정당화되곤 한다. 바빙크는 이를 절반만 받아들인다. 신약은 여러 이미지로 그리며 어느 하나로는 부족하다. 또 죽음의 능력과 그 해석은 별개다. 그러나 모든 견해가 동등한 가설은 아니다. 기준은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느냐다. 전체 그림은 분명하다. 성부께 보냄 받은 그리스도가 우리 죄책을 담당하고 대속물로 목숨을 내어주셨으며 지금도 중보하신다.

신약 저자그리스도의 죽음을 그리는 관점구절
공관복음하나님 나라와 새 언약을 위한 대속물마 20:28
사도행전범죄이면서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죽음행 2:23
바울십자가는 의와 구속의 수단, 십자가의 지혜고후 5:21
히브리서단번에 자기를 드린 영원한 대제사장, 계속 중보하심히 9:26; 7:25
베드로죄를 담당하고 본을 보인 어린 양벧전 2:21–22
요한밀알과 선한 목자, 생명과 빛—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이지 그 죽음에 대한 이론이나 교리가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 바빙크
판단 기준이론이 많다는 것 자체는 오류가 아니다. 서로를 배제하거나 죽음의 보상적 성격을 부인하는 데 쓰일 때 오류가 된다.

[388] 직분과 소명, 필연적 죽음 원서 758쪽

  • 신비적·윤리적 이론은 틀렸다기보다 불완전하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반대하는 대리적-보상적 견해 없이는 서지 못한다.
  • 근대는 객관적 대속을 주관적 화해로, 대속적-보상적 견해를 연대적-회복적 견해로 바꿨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구원을 보장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만 만든 셈이 된다.
  • ‘소명’은 그리스도를 은사 많은 천재로 축소한다.
  • 예수는 처음부터 자기 사명을 아셨다.
  •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죽음이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족의 궁극적 토대다.

‘소명’ 근대 일부

그리스도를 위대한 은사를 지닌 천재로 본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설명하지 못하고, 성경이 보여 주는 그의 자기 의식에도 맞지 않는다.

‘직분’ 바빙크

하나님이 정하신 사명. 예수는 베드로의 고백 이후에야 사명을 깨달은 것이 아니다. 세례 때, 이사야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할 때(눅 4:21), 신랑을 빼앗길 것을 말할 때(막 2:20) 이미 아셨다. 요나와 놋뱀의 비유(요 3:14)도 같다.

베드로의 설교대로 그의 죽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필연이었다(행 2:23). 건져 달라는 기도도 이 필연과 충돌하지 않는다. 그는 죽음 앞에서 고뇌하고 두려워했으며 땀이 핏방울같이 되었다(눅 22:44). 버림받음의 울부짖음은 그가 하나님께 객관적으로 버림받았음을 보여 준다. 루소의 말처럼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현자의 것이라면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것이다.

단서그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서 성부와 성자 사이에 균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독생자를 보냈고(요 3:16), 십자가에서도 그는 사랑받는 아들이었다.
“이 죽음은 현자, 금욕주의자, 순교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 바빙크

[389] 대리충족과 속전 원서 760–762쪽

  • 완전한 순종은 대리충족(vicarious satisfaction)으로 이해된다. 핵심 근거는 롬 3:26이다.
  • 하나님의 요구와 그리스도의 유익은 이중적이다.
  • 그의 행위는 고난이었고 고난은 행위였다.
  • λυτρον·τιμη는 속전과 값을 뜻한다.
  • ὑπερ 등 전치사에서도 대속은 배제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우리 자리에서 형벌을 지셨다.
하나님의 요구 그리스도의 순종 우리가 얻는 유익 율법의 완전한 준수 순종하여 의를 이루라 적극적 순종 율법을 다 지키심 의와 생명의 획득 아담이 얻어야 했던 것 범법에 대한 형벌 어긴 자는 벌을 받으라 소극적 순종 형벌을 다 받으심 형벌 면제 정죄를 면함 항상 동시에 구분되나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사역: 행위는 고난, 고난은 행위
[389] 이중 요구 → 이중 순종 → 이중 유익. 두 유익은 분리되지 않지만 구분된다.

그래서 그의 순종은 아담이 걸어야 했던 길의 시작이 아니라 끝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하나의 사역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풍성해서 공의가 만족되고 율법의 요구가 채워지고 구원이 보장되었다.

근거내용
구약의 예표이삭 대신 바쳐진 숫양, 제물에 손을 얹어 죄를 옮기는 제사, 가장 강력하게는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
뤼트론 (λυτρον)속전, 갇힌 자를 풀어주는 값(막 10:45). 70인역에서 게울라, 코페르 같은 구약 속전 용어의 번역어
티메 (τιμη)값비싼 대가. 본성상 죄의 노예인 인간이 보혈이라는 값으로 풀려난다(벧전 1:18–19)
전치사 (ὑπερ, περι, δια)그 자체로는 ‘대신에’가 아니라 ‘위하여’, ‘때문에’를 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과 우리 죄를 연결하므로 대속 개념은 배제될 수 없다
바울·베드로의 증언죄 없는 그가 속죄제물이 되고 우리 대신 죄와 저주가 되셨다(고후 5:21; 갈 3:13; 벧전 2:24)
“그리스도의 충족은 대리충족(vicarious satisfaction), 보상(expiation), 대신속죄(substitutionary atonement)였다.” — 바빙크

신비적·도덕적 해석이 서려면 먼저 법정적 대속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 진술들은 그가 우리 자리에서 형벌을 지고 공의를 채웠다고 볼 때만 통일적으로 이해된다.

[390] 대리대속에 대한 반대 원서 762쪽

  • 소키누스주의: 대속은 비도덕적이다. 남의 죄로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없고, 하나님이 무죄한 그리스도에게 진노하실 수 없다.
  • 대속은 법정적 성격을 갖는다.
  • 충족을 양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 종교개혁은 능동적 순종을 충족에 포함시켰다.
  • 둘째 아담의 순종이 인류를 대신한다.
오해바른 이해
범신론적·물리적·영적 의미의 대속대속은 법정적이다. 법 앞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표하여 책임을 지는 관계다.
양적 이해: 치른 값과 죄의 무게를 맞바꿈속죄되는 죄는 측정 대상이 아니다. 아퀴나스의 ‘넘치는 충족’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수량화와 결별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온 세상 죄에 전적으로 충분하다고만 말했다.
로마 가톨릭: 믿음은 선행으로 보충되어야 한다그리스도가 의까지 이루셨으므로(능동적 순종 포함) 우리가 보탤 공로가 없다.
개인 간 거래머리와 지체의 대표 관계. 하나님이 둘째 아담의 순종을 온 인류를 대신한 것으로 받으셨다.

첫째 아담

인류의 대표. 그 아래서 세계는 타락하여 저주와 심판 아래 놓였다.

둘째 아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세계는 은혜로 회복되었다. 모든 의를 성취하시고,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대신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셨다.

“대리대속에 대한 반대들의 많은 부분은 심각한 오해에서 나온다.” — 바빙크

[391] 대속과 언약 원서 763–764쪽

  • 연민과 ‘함께 고난당함’이 도덕적 반대를 반박한다.
  • 대속 개념은 인간 본성에 깊이 기초한다.
  • 인간적 유비는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무력하다.
  • 그리스도는 고난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기셨다.
  • 신비적 연합은 언약적 관계 위에 선다. 대리충족은 영원한 구속언약에 기초한다.
  1. 도덕적 반대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고난당할 수 없다.
  2. 삶의 반증사랑에서 나온 연민과 함께 고난당함은 실제로 있다. 대속 개념은 제사장제도와 희생제사, 시와 신화, 비극 문학(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로미오와 줄리엣), 실제 역사에 나타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아파한다.
  3. 유비의 한계모든 인간적 유비는 그리스도의 큰 사랑 앞에서 의미를 잃는다.
  4. 연민 이상그의 희생을 인류 최대의 연민으로만 보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그는 자기 고난을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이 가하시는 심판으로 여기셨다(마 27:46; 고후 5:21).
연민과 심판연민은 공감의 깊이를 설명한다. 그러나 심판을 대신 받는 일은 설명하지 못한다.

신비적 연합(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은 전적으로 성경적이다(갈 2:20).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이의 최초 관계가 아니다. 그 관계는 언약 위에 세워졌다. 로마서 6–8장을 3–5장에서 떼어 내면 토대를 잃는다. 신비적 연합은 그리스도를 언약의 머리로 볼 때만 주장될 수 있다.

층위내용
영원삼위 하나님의 구속언약. 이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죄와 자신의 의를, 그들의 죽음과 자신의 생명을 맞바꾸신다.
역사은혜언약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희생보다 앞선다. 그는 새 언약의 보증인이자 중보자다(히 7:22; 8:6; 12:24). 그의 피는 언약의 피이자 속죄의 피다(마 26:28).
적용신비적 연합: 우리가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롬 6; 갈 2:20; 골 3:3)
“실제로 은혜언약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희생보다 앞선다.” — 바빙크

[392] 비하의 전 과정 원서 765쪽

  • 비하와 승귀는 항상 함께 보아야 한다. 그의 삶 전체가 중보자의 직분으로 섬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성육신 자체가 자기비움(κενωσις)이다. 신적 존재형식을 종의 형식과 맞바꾼 순간 비하가 시작되었다.
  • 할례와 세례도 중보자에게 필요했다.
  • 고난은 명령·순종·모범·속전·승리다.
  • 무죄 선언 후 정죄로 대리적 죽음이 드러났다. 십자가는 복음의 중심에 서 있다.
성육신 종의 형체를 취함 할례·세례 모든 의를 이루심 공생애 시험 이김·긍휼·권세 십자가 저주로 저주를 제함 장사·지옥강하 죽음의 상태 사흘 비하 = 죽기까지의 하나의 순종 빌 2:7–8 · 롬 5:19
[392]–[393] 비하의 단계. 낮아지심은 십자가가 아니라 성육신에서 시작해 죽음의 상태까지 이어진다.
단계의미
할례그를 죄인 중 하나로 표시했고, 그의 죽음을 가리켰으며, 그 죽음으로 완성되었다(눅 2:21).
세례할례만큼 필요했다. 중보자로서 모든 의를 이루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기 위함(마 3:14–15).
시험과 공생애둘째 아담으로서 시험을 받았으나 언약을 깨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행함(요 6:38). 병든 자에게 제사장의 긍휼을, 사탄과 세상에는 왕의 권세를.
고난① 성부의 명령 ② 절대적 순종의 증거 ③ 제자의 모범 ④ 죄를 위한 속전 ⑤ 세상을 이긴 승리. 근대신학처럼 모범으로만 보면 안 된다. 모범은 속전과 승리라는 객관적 사역 위에서만 성립한다.
빌라도 앞무죄로 선언되었으나 자신이 메시아라고 고백하여 정죄됨. 그의 죽음이 자기 죄가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한 것임이 드러남.
십자가저주받은 죽음이 율법의 가장 혹독한 요구를 채워 우리에게서 율법의 저주를 제함(갈 3:13). 그래서 십자가가 복음의 중심(고전 1:23; 2:2; 갈 6:14).
보혈자원하여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음을 보여 주며, 그 제물이 속죄와 화평을 가져옴(롬 3:25).
장사실제로 죽었음을 증명. 죄의 심판인 죽음의 상태에서 사흘을 보냈음을 일깨움(창 3:19).
“그리스도의 삶 전체는 중보자의 직분으로 섬기는 것이었다.” — 바빙크

[393] 지옥강하 조항의 해석 원서 767–769쪽

  • 사도신경의 ‘지옥에 내려가시고’ 조항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본래 초기 교회에서 이미 죽은 이들, 특히 구약 성도를 염려하는 신자들의 위로로 나타났다.
  • 유일하게 주의할 본문 벧전 3:18–22는 죽음과 부활 사이를 말하지 않는다.
  • 음부(hades)는 처음에 일반적 사후 세계를 뜻했고 나중에야 ‘지옥’의 뜻을 얻었다. 실제 고통의 장소로 내려가셨다는 생각은 성경에도 초기 저작에도 없다.
  • 림보·루터파·근대 해석은 지지받지 못한다.
  • 조항은 죽음과 부활 사이 죽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칼뱅·하이델베르크의 설명을 보충한다.
벧전 3:18–22 해석내용
아우구스티누스·개혁파 전통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가 노아를 통해 말씀하셨다.
음부 설교 해석음부(하데스)에서 설교하셨다.
천사 해석‘옥에 있는 영들’은 타락한 천사다.
입장지옥강하의 뜻바빙크의 반박
정교회·로마 가톨릭선조들의 림보(구약 성도가 머물던 곳)에서 경건한 자들을 천국으로 이끌었다요 8:56; 히 10:20; 11:40; 12:22도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루터파사탄에게 승리를 선포하러 내려가셨다그 선언 자체는 성경에 근거가 있어도 이 조항의 설명은 아니다. 조항은 승귀가 아니라 비하의 단계를 가리킨다
근대 해석복음을 못 들은 이들에게 전도하셨다같은 이유로 맞지 않는다. 벧전 3:19–22는 기껏해야 노아 시대 사람들에게 선포했다는 것뿐, 모든 잃어버린 자로 확장할 수 없다
천사 해석타락한 천사들에게 선포20절의 여덟 영혼과의 대조로 반박된다
칼뱅·「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십자가 위의 지옥 같은 고통모순되지 않는다. 바빙크의 해석이 이를 보충하고 확장한다
바빙크관련 구절(행 2:27, 31; 롬 10:7; 엡 4:9), 말의 기원, 신경 안의 위치를 함께 보면, 조항은 그가 죄의 형벌을 끝까지 당하시려고 죽음과 부활 사이에 머무신 죽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십자가 위의 영적 고통

칼뱅·하이델베르크가 강조한 지옥 같은 고통. 비하의 필수 부분.

죽음의 상태

죽음과 부활 사이에 머무심. 이 역시 비하의 필수 부분. 두 곳 모두에서 그는 완전한 순종을 이루셨다.

그는 죽음의 쓰라림을 끝까지 맛보아 죽음의 권세를 가진 자를 멸하셨고, 한 번의 제사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히 10:14).

“그리스도가 지옥으로 내려가신 것은 이로써 우리가 거기에 다시 가지 않도록 하려 함이다.” — 바빙크

구조도

1. 종교, 문화, 구속, 희생 — 무엇을 가리키는가 보편적 갈망 희생제사·제사장 출현 구약 제사 불완전한 모형, 종 고대 신약 성취 언약의 피·속전·화목제물 교리사 안셀무스 vs 근대 2. 중보자 예수 — 누가, 왜 중보자 두 본성, 영원 전 협약 삼중직 한 인격, 동시 수행 사랑·공의 충돌 없음, 충족은 필연 충족과 용서 충족이 용서의 길을 엶 3. 순종적 죽음 — 무엇을 이루었는가 전 생애 순종 잉태부터 죽음까지 이론의 통일 보상적 성격이 기준 대리충족 법정적 대표, 구속언약 비하 전체 장사·지옥강하까지 종이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몫의 값을 다 치르셨다
15장 논증 흐름: 희생이 가리키는 분(1) → 그분이 누구이며 왜 죽어야 했는가(2) → 그 순종이 무엇을 이루었는가(3)
다른 입장그 입장의 주장바빙크의 답
소키누스주의충족은 비성경적·불필요·불가능. 무고한 자는 죄인을 위해 죽을 수 없다.대속은 법정적이며, 유죄인 자를 대신할 자를 허락하는 것 자체가 은혜다. 공의 부정은 은혜 부정이다.
흐로티우스충족은 다른 이의 고난을 막기 위한 모범적 고난(통치적 공의).공의는 하나님 밖의 법이 아니라 그 본성에 기초하므로 모범으로 축소할 수 없다.
슐라이어마허·리츨화해는 우리 안의 변화. 하나님은 사랑일 뿐 심판자가 아니다.죄책의 실재를 놓치면 용서는 객관적 실체를 잃고 자기구원의 부담이 되돌아온다.
신비주의 분파(칼슈타트 등)구원은 우리 밖이 아니라 우리 안의 그리스도에 있다.신비적 연합은 성경적이지만 언약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법정적 대속 위에서만 선다.
피스카토르적극적 순종은 충족에 속하지 않는다.잉태부터 죽음까지 단 하나의 순종이다. 행위는 고난이고 고난은 행위였다.
부쉬넬·캠벨고난의 원인은 공의가 아니라 사랑. 그는 대리 회개를 바쳤다.그리스도 자신이 고난을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기셨다.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1. 그리스도는 사랑의 모범일 뿐, 대속은 불필요하다.
  2. 하나님은 사랑뿐, 진노와 심판은 없다.
  3. 성부는 진노하고 성자가 그를 달랬다.
  4. 충족과 용서는 서로 배제한다.
  5. 속죄는 십자가 고난만으로 이뤄졌다.
  6. 대속은 죄의 무게만큼 값을 치른 거래다.
  7. 직분은 시기별로 나뉘어 수행된다.
  8. 지옥강하는 실제 지옥에 가셨다는 뜻이다.

바른 이해 ✓

  1. 모범론도 법정적 대속 없이는 설 수 없다.
  2. 공의를 지우면 용서의 실체도 사라진다.
  3. 성부의 사랑이 먼저 있고 성자를 보내셨으며 둘 사이에 균열은 없다.
  4. 충족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5. 잉태부터 죽음까지 전 생애가 하나의 순종이다.
  6. 양적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순종을 인류 대신 받으신 법정적 사건이다.
  7. 부각되는 직분은 달라도 세 직분은 항상 동시에 결합되어 있다.
  8. 죄의 형벌을 끝까지 진 죽음의 상태를 뜻한다.

핵심 용어

비하 (state of humiliation)
성육신부터 죽음·장사까지 그리스도가 낮아지신 상태. 승귀와 늘 함께 보아야 한다.
자기비움 (κενωσις)
신적 존재형식을 종의 형식과 맞바꾼 성육신. 비하의 출발점.
희생제사
신의 호의를 얻으려 선물을 바치고 그것을 신 앞에서 없애는 종교적 행위. 죄 이후 속죄 행위로 성격이 바뀌었다.
중보자 (μεσιτης)
반목하는 둘 사이에 서서 화해시키는 자. 그리스도는 제3자가 아니라 자기 인격 안에서 두 당사자다.
구원 협약 (pactum salutis)
성자가 영원 전부터 중보자로 세워진 삼위의 협약. 학습노트는 이를 ‘구속언약’으로 부르며, 대리충족은 이 영원한 구속언약에 기초한다.
직분 (office)
부르심과 달리 통치권에 의한 임명을 포함하는 자격. 그리스도는 스스로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세움받았다.
삼중직
그리스도가 한 인격 안에서 동시에 행하시는 예언자·제사장·왕의 직분. 시기별로 부각될 뿐 분리되지 않는다.
대리충족 (vicarious satisfaction)
그리스도가 우리 자리에서 순종과 형벌로 하나님의 공의를 채우심. 보상(expiation), 대신속죄(substitutionary atonement)와 함께 쓰인다.
적극적·소극적 순종
율법을 다 지키신 순종과 형벌을 다 받으신 순종. 구분되지만 항상 동시에 일어나는 한 사역의 두 면.
속전 (λυτρον)
감옥이나 올무에서 누군가를 풀려나게 하는 값. 70인역에서 게울라·코페르의 번역어.
값 (τιμη)
값비싼 대가. 신자는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값으로 되찾아졌다.
화목제물 (ἱλαστηριον)
죄를 덮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제물(롬 3:25).
통치적 공의 (governmental justice)
흐로티우스가 충족을 끌어낸, 하나님 밖에 있어 하나님도 따라야 하는 공의. 고난을 본보기로 바꾼다.
우리 안에 (in nobis)
구원을 신자 안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 신비주의 분파의 표어. 종교개혁의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와 맞섰다.
형벌대속
그리스도가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심. 근대의 도덕적 재구성들이 일절 거부한 내용.
대리 회개
캠벨의 개념.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성부께 회개를 드렸다는 설명. 속죄를 법적이 아닌 도덕적·영적인 것으로 만든다.
신비적 연합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 성경적이지만 언약적·법정적 대속 위에 선다.
지옥강하 / 음부 (hades)
그리스도가 죄의 형벌을 끝까지 당하시려고 죽음과 부활 사이에 머무신 죽음의 상태. 음부는 처음에 일반적 사후 세계를 뜻했다.

성경 근거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로마서 5:19
구절이 장에서의 쓰임
레 17:11피가 생명을 담아 속죄를 이룬다 [375]
사 53:10고난받는 종이 자신을 속건제물로 드린다. 대리 고난의 가장 강력한 묘사 [375][389]
막 10:45 (마 20:28)그의 목숨은 많은 사람을 풀어 주는 속전(λυτρον) [376][389]
롬 3:25–26화목제물. 충족이 곧바로 용서의 길을 연다. 순종이 대리충족임을 가르치는 핵심 구절 [376][385][389]
갈 3:13우리 대신 저주가 되어 율법의 저주를 제함 [376][392]
딤전 2:5중보자라는 이름이 그리스도께 주어짐 [중보자 예수]
요 3:16성부의 사랑이 먼저 아들을 보내심. 하나님의 사랑이 공로의 토대 [383–384][388]
히 9:22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 [383–384][385]
롬 5:18–19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롭게 됨 [순종적 죽음]
빌 2:7–8성육신 자체가 자기비움, 죽기까지 순종 [순종적 죽음][392]
고후 5:21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 대신 죄로 삼으심 [389][391]
벧전 3:18–22지옥강하와 관련해 주의할 유일한 본문이나 해석이 어렵다 [393]

복습 문제

구약 제사가 불완전했다고 바빙크가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속죄 제사는 고의 아닌 죄에만 적용되었고(고의로 지은 죄는 죽음), 생각·말·교만 같은 많은 죄에는 제사가 없었다. 제사장 자신이 죄인이고, 짐승의 피는 죄를 없앨 수 없으며, 제사는 끝없이 반복되어야 했다. 또 은혜언약은 제사보다 앞선 약속에 기초한다. 그래서 구약 제사는 임시적·상징적·모형론적이며 고난받는 종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두 당사자 사이의 제3자가 아니다”라는 말의 뜻은? 스탄카루스와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로서 자기 인격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 두 당사자 자신이다. 스탄카루스는 그가 인성에서만 중보자라고 했으나, 개혁파와 루터파는 두 본성 모두에서 중보자이며 영원 전 구원 협약(pactum salutis)으로 세워졌다고 보았다.
삼중직을 ‘시기별로 나뉜 직분’으로 보면 왜 잘못인가?
시기에 따라 예언자(지상 사역), 제사장(고난과 죽음), 왕(승귀)이 부각될 뿐, 그리스도는 전 인격 안에서 세 직분을 언제나 동시에 행사하신다. 이적과 중보기도에도 세 직분이 함께 드러난다. 이성주의자·신비주의자·천년왕국주의자처럼 한 직분만 남기면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자·화해시키는 자·다스리는 자 중 하나로 줄이게 된다.
충족은 어떤 의미에서 ‘필연’이며, 왜 용서와 충돌하지 않는가?
밖에서 강제된 절대적 필연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속성(거룩, 공의, 율법 수여자·심판자, 본성에 기초한 도덕법)에 부합한다는 의미에서 필연이다. 충족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유죄인 자를 대신할 이를 허락하는 것 자체가 은혜이며, 충족은 용서의 길을 연다. 공의를 부정하면 은혜도 부정된다.
적극적 순종과 소극적 순종은 어떤 관계이며, 피스카토르와 근대신학은 각각 무엇을 놓쳤는가?
율법을 다 지키신 순종(적극적)과 형벌을 다 받으신 순종(소극적)은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고 항상 동시에 일어난다. “행위는 고난이었고 고난은 행위였다.” 피스카토르는 적극적 순종을 충족에서 뺐고, 근대신학은 소극적 순종(형벌 담당)을 오해하거나 부정했다.
지옥강하에 대한 림보·루터파·근대 해석을 바빙크는 어떻게 반박하고, 무엇을 바른 뜻으로 보는가?
림보 설명은 요 8:56, 히 11:40 등으로도 지지받지 못한다. 루터파의 승리 선포와 근대의 ‘못 들은 자에게 전도’ 해석은 조항이 승귀가 아니라 비하의 단계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맞지 않는다. 천사 해석은 벧전 3:20의 여덟 영혼과의 대조로 반박된다. 바른 뜻은 그가 죄의 형벌을 끝까지 당하시려고 죽음과 부활 사이에 머무신 죽음의 상태이며, 이는 칼뱅·하이델베르크의 ‘십자가 위의 지옥 같은 고통’ 설명을 보충한다.
한 줄종이 되신 그리스도가 전 생애의 순종으로 우리 몫의 값을 다 치르셨다.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