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질문: 그리스도는 누구이며 왜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신가?
- 타락 직후 하나님은 형벌을 다 집행하지 않고 찾아오셔서 은혜언약을 시작하셨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스스로 맹세하신 일방적 약속이며, 인간의 의무는 조건이 아니라 규칙이다.
- 모든 언약은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협약(pactum salutis)에 기초한다. 언약은 하나이되 약속과 성취의 두 경륜이 있어, 구약 신자도 같은 믿음·같은 중보자로 구원받았다. 시내 산 언약도 은혜언약이다.
-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을 폐지하지 않고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성취한다. 기원은 일방적이나 신자의 자발적 수용으로 쌍방적이 되고, 가족과 세대를 따라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 예수는 자신을 인자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셨고, 사도의 기독론은 원칙상 이미 공관복음에 있다. 교회는 칼케돈에서 두 본성의 분리와 혼합을 모두 물리쳤다.
- 개혁파는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는 원리로 두 본성을 구분하고, 육신이 되신 것은 성자의 위격이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선생이 아니라 내용이며, 하나님이시기에 예배의 대상이시다.
앞 장의 타락과 죄의 비참,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의 파기를 이어받는다. 다음 장에서는 이 중보자가 비하와 승귀의 상태에서 이루시는 사역으로 넘어간다.
1. 은혜언약 원서 677–684쪽
타락 직후 시작된 은혜 원서 677–678쪽
- 비참함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깨뜨린 죄다.
- 은혜는 역사적 행위인 언약의 형태를 취한다.
- 수치와 죄책은 성령이 이미 일하신 은혜의 표지다.
- 형벌 속에서도 진노와 은혜의 이중 원리가 작동한다.
- 창세기 3장의 약속은 간결한 복음이다.
이교도의 비참 이해 물리적
- 비참 = 질병·재앙·죽음 같은 물리적 불행
- 그래서 죄의 본질을 모른다.
-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도 모른다.
성경의 비참 이해 윤리적
- 비참의 뿌리 = 죄
- 죄 = 하나님과의 교제가 윤리적으로 깨진 것
- 관계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회복하실 수 있다.
회복의 은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개입하신 행위로 온다. 그 행위의 형태가 언약이다. 즉 은혜언약은 사상이 아니라 사건에서 출발한다.
- 경고창 2:17의 형벌이 그대로 집행되었다면 인류는 멸절되고 사탄이 이겼을 것이다.
- 깨어 있는 양심아담과 하와는 수치와 죄책을 느꼈다. 타락한 천사와 달리 마귀가 되지 않고 구속받을 수 있는 인간으로 남았다.
- 찾아오심하나님은 떠나지 않고 찾아와 부르신다. 뱀과 맺은 언약을 깨고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적대감을 두신다.
- 형벌과 복해산의 고통 속에 해산의 복, 땅의 저주와 수고 속에 통치의 존귀가 남는다.
- 믿음의 응답아담은 평결을 침묵으로 받고 약속을 믿어 아내를 ‘하와’라 부른다.
| 대상 | 형벌 (공의·진노) | 함께 주어진 복 (긍휼·은혜) |
|---|---|---|
| 여자 | 해산의 고통, 남편에 대한 욕망 (창 3:16) | 해산을 통한 복 (딤전 2:15) |
| 남자 | 땅이 저주받고, 수고 끝에 흙으로 돌아감 (창 3:17–19) | 그 수고가 여전히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통치를 반영함 |
| 인류 | 낙원에서 추방 (창 3:22–24) | 수고 속에 존귀함의 복이 남음 |
[344] 언약의 실체와 브리트의 의미 원서 679–681쪽
- 언약 개념을 후대 산물로 보는 비평은 순환 논리다.
- 예언자들은 족장 언약과 시내 산 언약을 전제한다.
- 브리트는 맹세·저주·상징 의식의 세 요소로 이루어진다.
- 하나님의 언약에서는 일방적 측면이 전면에 선다.
- 인간의 의무는 조건이 아니라 언약 안의 규칙이다.
- 70인역은 언약을 ‘디아데케’(유언)로 옮겼다.
(1) 근대 비평과 바빙크
근대 비평
창세기 3장에 ‘언약’이라는 낱말이 없다. 언약 개념은 신명기나 포로기 이후에 생겨 족장 역사에 덧씌워졌다.
바빙크의 답
낱말은 없어도 실체는 있다. 비평은 본문이 진짜가 아니라고 먼저 가정해 역사를 재구성하고, 그 재구성으로 반대 증거를 무효화한다. 곧 순환 논리다.
예언자들은 족장과 맺은 실제 언약 위에 서 있다(창 15:18; 17:7). 아모스는 이스라엘만 아셨다는 특별 관계를 전제하고(암 3:2), 호세아는 깨진 언약을 말한다(호 6:7; 8:1). 예언자는 새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 같은 언약 안에서 회개를 외친 자들이다.
(2) 브리트 (בְּרִית)의 세 요소
어원은 뜻을 정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쪼갠 짐승 사이를 지나는 관습(창 15:8; 렘 34:19)과 족장들의 계약(창 21:22; 26:26; 31:44)에서 당대의 일상적 계약 틀이 드러난다.
(3) 일방적인가, 쌍방적인가
이것은 낱말이 아니라 당사자가 누구인지가 결정한다. 하나님과 인간은 동등하지 않으므로 일방성이 앞선다.
-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협정이 아니라 맹세였다(창 15:8–9). 하나님 홀로 짐승 조각 사이를 지나셨다.
- 하나님은 자신을 두고, 영원히 사심과 자신의 영을 두고 맹세하신다(창 22:16; 신 32:40; 암 6:8; 렘 51:14).
- 맹세는 그 뜻이 변하지 않음을 보이려는 것이다(히 6:17).
- “순종하라”는 요구(출 19:5–6; 신 28:1 등)는 언약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니라, 은혜로 이미 들어온 자가 지킬 규칙이다.
참된 교제가 되려면 인간도 권리와 의무를 지닌 상대자여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먼저 내려오셔서 인간을 언약 안으로 들이실 때만 가능하다. 그 행위로 하나님은 인간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구원을 맹세하며 스스로 의무를 지신다. 70인역이 쌍방 계약인 ‘쉰데케’(συνθήκη) 대신 ‘디아데케’(διαθήκη, 유언)를 택한 것도 이 불변성 때문일 것이다.
[345] 언약 교리의 역사 원서 681–684쪽
- 교회는 유대교에 맞서 구별, 마르키온에 맞서 통일을 강조했다.
- 구약과 신약은 구분되나 분리될 수 없다.
- 언약 신학은 개혁파 전통에서 가장 온전히 발전했다.
- 콕세이우스의 연속적 언약 폐기는 언약의 통일성을 허물었다.
- 언약은 하나이고 두 경륜이 있다. 구약의 어떤 것도 신약에서 잃어버려지지 않는다.
언약 교리는 기독교가 유대교와 어떻게 이어지고 어디서 갈라지는지 밝혀야 했기에 교의적으로 중요해졌다. 교회는 두 전선에서 싸웠다.
유대주의자 연속만 강조
- 바울 당시 이방인 신자에게도 할례와 모세 율법을 요구했다(행 15; 갈 5:3).
- 성전이 무너진 뒤 나사렛파·에비온파로 갈라져 그리스도의 신성까지 부인했다.
- 교회의 대응: 두 언약의 구별성
마르키온·영지주의 단절만 강조
- 구약은 열등한 신의 종교다.
- 그리스도 안에서 전혀 다른 사랑의 신이 나타났다.
- 교회의 대응: 두 언약의 통일성
언약 신학의 흐름
- 바울 당시유대주의자들의 할례·율법 요구 → 교회는 구별을 강조
- 성전 붕괴 이후나사렛파·에비온파로 분열, 그리스도의 신성 부인
- 고대 교회마르키온·영지주의의 구약 폄하 → 교회는 통일을 강조
- 종교개혁기재세례파·아르미니우스주의자·소키누스주의자가 다시 구약을 깎아내림. 루터파와 개혁파 사이에도 차이가 생김
- 개혁파의 발전츠빙글리가 재세례파에 맞서 신구약의 본질적 일치를 변호 → 불링거·칼뱅 → 팔츠의 올레비아누스·우르시누스 → 영국 청교도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
- 개혁파 내부의 위험콕세이우스: 언약을 교의학의 지배 원리로 삼았으나 ‘연속적 언약 폐기’를 주장
- 근대스피노자·칸트·헤겔·슐라이어마허에게서 구약 경멸이 나타남
개혁파 언약 신학의 중심은 옛 언약과 새 언약(고후 3)의 관계다. 두 언약은 기원과 내용이 하나이며, 하나님 또는 로고스가 둘 다의 창시자이시다. 하나의 믿음, 하나의 구원 방법이 제시된다. 유일한 차이는 약속된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뿐이다.
2. 구속언약, 자연언약, 그리고 선택 원서 684–692쪽
구원 협약: 모든 언약의 토대 원서 684–686쪽
- 모든 언약은 구원 협약(pactum salutis, 구속언약)에 토대를 둔다.
- 슥 6:13이 아니라 히 7:22 등이 근거가 된다.
- 성자는 중보자로서 순종하고 상을 받으신다.
- 그리스도의 중보는 야웨의 사자로 구약에도 있었다.
- 삼위의 생명은 언약적 생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구약 신자도 같은 믿음, 같은 중보자로 구원받았다.
개혁파는 모든 언약의 토대를 삼위 하나님 각 위격 사이의 영원한 언약에 둔다. 구원은 한 분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서 함께 구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다.
증거 본문을 정직하게 다루기
| 본문 | 바빙크의 평가 |
|---|---|
| 슥 6:13 (“평화의 의논”) | 전통적으로 인용된 고전적 본문이지만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
| 욥 17:3 등 | 메시아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
| 히 7:22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영원히 사시는 그리스도가 새 언약의 보증인이시라는 점이 추론된다. |
학문적 엄밀성을 떠나, 이 교리는 개별 구절보다 성경의 사상 자체에 뿌리를 둔다는 것이 바빙크의 판단이다.
성경이 그리는 중보자 성자의 길
- 성부를 “내 하나님”이라 부르심시 22:2; 요 20:17
- 종으로서 일을 맡으심사 53:10; 요 6:38–40
- 순종을 완수하심요 17:4; 19:30
- 상을 받으심시 2:8; 빌 2:9–10
- 이 중보 사역은 성육신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시대 야웨의 사자를 통해 이미 중보하셨고(출 23:20–23), 신약도 이를 증언한다(고전 10:4).
- 중보자는 한 분뿐이며(딤전 2:5), 영원 전에 택정되셨고(벧전 1:20), 로고스로 선재하셨다(요 1:1).
- 그러므로 삼위의 내적 생명을 자기의식·자유·교제가 충만한 언약적 생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영원한 협약과 시간 속의 역사
이 영원한 협약은 시간 속 구원 역사와 느슨하게 연결된 것이 아니다. 창조가 삼위의 사역이듯 새 창조도 처음부터 삼위의 활동이었다. 타락 후 모든 은혜는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해, 성령 안에서 온다.
[347]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 원서 686쪽
-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모든 민족을 아우른다.
- 타락 후 종교·문화·학문이 형태를 갖췄다.
- 홍수 후 하나님은 자연과 언약을 맺으셨다.
- 이방인에게도 섭리와 자기 증거가 있었다.
- 성령은 이방인 가운데서도 생명의 조성자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택하셨지만, 구원 목적 자체는 우주적이다. 때가 차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십자가의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게 된다. 그 근거는 출발점에 있다. 타락 후 첫 약속은 인류 전체를 향한 것이었다.
- 타락 후종교가 희생제사(창 4:3)와 기도·설교(창 4:26)의 형태를 얻음. 경작·목축·도시 건설로 문화 시작(창 4:17), 예술과 학문이 일어남(창 4:20)
- 홍수 전긴 수명의 복과 나란히 형제 살인과 폭력이 자람.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판결(창 6:5)
- 홍수 후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자연과의 언약, 수명 단축, 하늘에 닿으려는 야망을 꺾고 인류를 흩으심(창 8)
- 이방 시대이방인이 제 길로 가게 두시되 완전히 버리지 않으심. 섭리로 문화적·사회적 발전, 자기 증거를 남기심(행 14:16–17; 롬 1:19). 성령은 모든 생명·능력·미덕의 조성자(욥 32:8; 시 104:30)
[348]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원서 687–689쪽
- 이스라엘에게만 특별은총이 주어졌다.
- 창조주 엘로힘이 곧 언약의 하나님 야웨시다.
- 시내 산 언약도 아브라함 언약과 같은 은혜언약이다.
- 구약의 복은 감각적 형태를 입은 영적 복이다.
- 준비 기간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상태 때문에 필요했다.
- 두 경륜은 약속과 성취, 그림자와 실체로 관련된다. 신구약 신자의 길은 같고 비춘 빛만 다르다.
(1) 이스라엘과 열방: 닮았으나 근본이 다르다
| 구분 | 이교 종교 | 이스라엘 |
|---|---|---|
| 겉모습 | 할례·제사·제사장·성전·절기·예언·기적까지 비슷한 요소가 많다 (바빙크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 |
| 은혜 | 특별은총 없음 | 특별은총(구원을 위해 베푸시는 은혜)이 이스라엘에게만 있음 |
| 방향 | 인간이 제멋대로 신을 찾음, 자의적·율법주의적 |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찾으심 |
| 하나님과 세상 | — | 오직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이 한 교리만으로 이교의 원리가 무너진다 |
| 하나님의 이름 | — | 천지를 지으신 엘로힘이 곧 언약의 야웨(창 2:4; 출 20:11). 이삭의 기적적 출생처럼 창조주는 재창조자이시다 |
(2) 시내 산 율법은 은혜와 반대되는가?
바빙크의 답은 아니다. 십계명을 여는 말씀은 구원의 선포다.
- 구원이 먼저이고 율법은 그 토대 위에 선다. 그래서 시내 산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과 다른 종류가 아니라 같은 은혜언약이다.
- 이스라엘의 어떤 죄로도 깨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이다(신 4:31; 사 54:10; 롬 11:1–2).
- 언약의 핵심 약속: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와 네 후손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창 17:8). 모든 기대는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에 요약된다.
| 이스라엘이 받은 복 | 내용과 근거 |
|---|---|
| 일시적 복 | 땅, 자녀, 장수, 번영 |
| 영적 복: 하나님의 내주 | 출 29:45; 레 26:12 |
| 영적 복: 죄 용서 | 출 34:7; 민 14:18; 시 32; 시 103 |
| 영적 복: 아들 됨 | 출 4:22; 신 14:1; 사 63:16 |
| 영적 복: 성화 | 레 11:44; 19:2 |
(3) 왜 그리스도는 곧바로 오지 않으셨나?
하나님 안에 변화가 있어서도, 영적 복이 아직 없어서도 아니다. 인류는 하나의 종족으로서 구원받아야 했기에 점차 교육받고 성숙해야 했다. 율법 아래 미성년자 같던 이스라엘(갈 3:23–24; 4:1–2)은 죄와 심판의 자각, 구원을 향한 갈망을 통해 그리스도를 맞을 길을 예비했다.
(4) 하나의 언약, 두 경륜
| 구약의 경륜 | 신약의 경륜 | 근거 |
|---|---|---|
| 약속 | 성취 | 행 13:32; 롬 1:2 |
| 그림자 | 실체 | 골 2:17 |
| (죽이는) 조문 | (살리는) 영 | 고후 3:6 |
| 종 | 자유자 | 롬 8:15; 갈 4:1, 22 |
| 특수 | 보편 | 요 4:21; 갈 6:15; 엡 2:14 |
[349] 행위언약의 회복과 성취 원서 690–691쪽
-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을 폐지하지 않고 회복·성취한다.
- “은혜는 자연을 치유하고 온전하게 한다.”
- 그리스도는 아담이 했어야 할 순종을 이루셨다.
- 평강의 경륜에서 그리스도는 보증인이자 머리시다.
- 은혜언약은 행위언약 안에서 이미 예비되었다.
신약에서 성취된 은혜언약은 허공에 떠 있지 않다. 하나님이 자연과 모든 피조물과 맺으신 언약이 그것을 둘러싸고 떠받친다.
콕세이우스
언약이 단계마다 폐기된다.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의 점진적 파괴다.
바빙크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을 회복하고 성취한다. 순종의 요구는 지금도 영생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달라진 것은 하나님이 오시는 통로다. 이제 아담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오신다.
그리스도는 아담이 했어야 할 모든 순종을 이루셨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은 첫 아담이 망친 것을 회복하고 새 인류의 머리가 되신다.
| 구분 | 평강의 경륜 (the counsel of peace) | 은혜언약 |
|---|---|---|
| 성격 | 삼위 간의 영원한 경륜 | 시간 속에 계시되고 시행되는 언약 |
| 그리스도의 자리 | 보증인이자 머리 | 중보자 |
| 관계 | 구분되되 떼어놓을 수 없다 | |
새 언약의 근거는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 중보자의 사역, 성령께만 있다. 인간의 자랑은 설 자리가 없다. 은혜언약이 영원하고 파기될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 오로지 하나님만의 일이기 때문이다.
[350] 언약과 선택, 그 유기성 원서 691–692쪽
- 성부는 계획, 성자는 성취, 성령은 적용하신다.
- 선택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 믿음과 회개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조건’이다.
- 언약은 일방적이되 쌍방적이 되도록 계획되었다.
- 언약은 가족과 세대를 따라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 언약 안에 있으나 언약에 속하지 않는 자가 있다.
그리스도가 아담보다 뛰어나듯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을 능가한다. 삼위 하나님도 창조보다 재창조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 측면 | 선택 | 은혜언약 |
|---|---|---|
| 인간의 자리 | 전적으로 수동적 | 이성적·도덕적 본성이 온전히 발휘됨 |
| 그리는 것 | 목적지 | 선택된 자들이 목적지로 가는 길 |
| 비유 | “은혜언약은 선택의 강이 영원을 향해 흐르는 물길이다.” | |
믿음과 회개는 ‘조건’인가?
기원: 일방적
하나님은 자신이 요구하시는 것을 친히 공급하신다. 구상·계획·보존·실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수용: 쌍방적
그리스도가 보내신 성령의 가르침으로, 신자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언약에 동의한다.
그래서 믿음과 회개를 “어떤 의미에서” 조건이라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을 짓밟아 얻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전인이 새로워지고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 회복된다. 바빙크는 인간을 수동적 대상으로만 두는 입장과 조건을 인간의 공로로 보는 입장을 둘 다 피한다.
언약의 유기성
- 선택은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과 세대를 포함하는 전체와 관련된다.
- 언약은 개인에서 개인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역사적·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언제나 후손과 함께 맺어지며 창조세계 전체를 포함한다.
- 그래서 내적으로 불신앙인 사람도 이 땅에서 일시적으로 언약 백성의 일부가 된다(마 13:29; 요 15:2; 딤후 2:20).
3. 중보자 그리스도의 인격 원서 693–700쪽
보편적인 중보자 갈망 원서 693쪽
- 은혜언약에는 화해시키는 중보자가 있다.
- 중보자 사상은 모든 종교에 보편적이다.
- 성육신·신격화 사상이 여러 종교에 나타난다.
- 이교에도 ‘무의식적 예언의 경향’이 있다.
행위언약
하나님과 인간을 곧바로 연결했다.
은혜언약
중보자가 둘을 연합시키기 전에 먼저 화해시킨다. 타락으로 깨진 관계의 회복이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바빙크는 중보자 사상이 기독교만의 것이 아님을 솔직히 인정한다. 이것은 인간 본성과 종교 자체에 뿌리내린 현상이다.
[352] 메시아 대망과 종교사학파 원서 694쪽
- 메시아 대망을 주변국에서의 차용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 포로기 이전 메시아 대망의 실재가 인정된다.
- 종교사학파는 유비를 동일성으로 착각한다.
- 이스라엘의 구원자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한다.
- 이스라엘의 비전은 우주적이고 영적인 나라다.
- 과거 비평모든 메시아 예언을 사후예언(vaticinia ex eventu)으로 보고, 포로기 이전 문서에 나오면 후대 삽입으로 배제
- 최근의 긍정적 변화포로기 이전 메시아 대망과 오래된 종말론 개념(주의 날, 원수의 멸망, 메시아의 나타남, 나라의 완성)이 인정됨. 기적적 탄생(사 7:14; 미 5:2)과 신적 명칭(사 9:6)을 포함한 메시아상이 고유하게 인정됨
- 종교사학파의 반대 극단예언자들이 바빌로니아·아시리아·페르시아·이집트의 개념과 표현을 빌려 썼다
바빙크는 종교사학파에 일말의 진실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스라엘의 약속은 홍수 후 인류, 특히 셈족에게 주신 약속에 기초한다. 성전·제단·할례 같은 제도도 여러 민족에 비슷하게 있다. 자연의 모형론은 그리스도와 그 나라에서 실현되고, 열방의 무의식적 기대는 기독교에서 성취된다. 그러나 “종교사학파는 유비(analogy)를 동일성(identity)으로 착각하고 중요한 차이들을 간과한다.”
| 차이 | 열방의 신탁·구원자 | 이스라엘의 예언·구원자 |
|---|---|---|
| 1. 백성과의 관계 | 자기 민족의 영광만 노래 | 아브라함 선택 후 열방과 분리됨. 그래서 자기 백성을 향한 심판을 담는다 |
| 2. 구원의 내용 | 왕 같은 인물이 사회적·정치적 고통에서 구함 | 구원자(σωτηρ)가 죄와 사망에서 건져 의와 생명을 줌 |
| 3. 비전의 범위 | 국지적 | 가나안에 머물지 않고 아브라함의 복을 온 인류에게 약속. 중심은 “하나님이 그와 후손의 하나님이 되신다” |
[353] 다윗 언약과 메시아 예언 원서 695쪽
- 다윗 가문에 왕권이 머무르리라는 약속(삼하 7:8–16)
- 다윗의 자손은 이방인을 포함한 나라를 세운다.
- 메시아는 전능하신 하나님, 평화의 왕이라 불린다.
- 메시아는 왕이자 예언자요 제사장이시다.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에 새 길을 그려 준다. 그 안에 하나님의 약속과 모형론적 메시아 성취가 담긴다. 아모스·호세아·미가·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이 다윗 언약을 이어받아 반복한다. 이 약속은 단순한 왕조 존속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의 위대한 자손이 열방을 품는 나라를 세움으로써 성취된다. 유대교의 정치적 기대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 메시아의 모습 | 내용 | 근거 (장별 정리) |
|---|---|---|
| 이름 |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 하나님 자신에게 쓰이는 표현과 병행 | 사 9:6–7; 비교: 사 10:21; 신 10:17; 렘 32:18 |
| 통치 | 영원히 다스리며 의와 평강의 나라를 땅끝까지 넓힘 | 시 2; 45; 72; 슥 6:13; 9:10 |
| 기름 부음 |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은 자,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거하심 | 신 18:15; 사 11:2; 말 4:5 |
| 직분 | 왕일 뿐 아니라 예언자와 제사장 | 시 110; 렘 30:21; 슥 3 |
[354] 유대교 대망과 하나님 나라 원서 696–697쪽
- 자기의의 유대교는 구원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 묵시문학은 메시아를 인자·다윗의 자손 등으로 그렸다.
-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신앙적·윤리적이다.
- 하나님의 왕 되심과 아버지 되심은 서로를 강화한다.
- 그 나라는 찾아야 할 나라이자 받아야 할 선물이다.
- 예수의 오심은 구원과 심판의 두 순간으로 나뉜다.
당대 유대교의 대망
- 율법 준수로 의를 얻으니 구원자가 필요 없음. 기껏해야 정치적 운명을 회복할 지상의 왕
- 구약을 메시아적으로 읽음(구약에서 456개의 메시아 약속을 찾아냄)
- 묵시문학(에녹1서·솔로몬의 시편·바룩2서·에스라4서): 메시아 = 인자, 택함받은 자, 다윗의 자손, 때로 하나님의 아들, 선재하는 인간
-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의 기대(눅 1:48; 2:25)는 신약의 증언과 상당 부분 일치
예수의 하나님 나라
- 정치적이 아니라 신앙적·윤리적. 회개와 믿음과 거듭남 속에 있음(막 1:15)
- 하나님은 모든 왕 위의 하늘과 땅의 주(마 11:25)이시자, 자녀를 돌보듯 다스리시는 하늘 아버지(마 6:9)
- 그래서 나라는 가족이자 공동체(막 3:34–35)
- 반드시 찾아야 할 나라(마 6:33) + 죄 용서·의·영생을 담은 선물(눅 12:32)
순전한 종말론이 아니다: 슈몰러와 바이스 비판
슈몰러와 바이스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전적으로 종말론적 의미만 부여했다. 예수가 성경과 묵시문학의 종말론 개념을 받아들이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는 예언자들이 하나로 본 메시아의 오심을 둘로 나누신다.
| 구약 예언자 | 예수 | |
|---|---|---|
| 메시아의 오심을 하나로 봄 | 첫 오심 | 구원과 준비 |
| 둘째 오심 | 심판과 완성 | |
[355]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 원서 698–700쪽
- 예수는 처음부터 자신의 메시아 역할을 아셨다.
- ‘인자’는 참 인간이자 모든 사람 위의 분을 뜻한다.
-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이며 재림 때 완성된다.
- 인자는 고난을 거쳐 영광에 들어가는 메시아다.
- ‘하나님의 아들’은 성부의 사랑받는 외아들이다.
- 그리스도의 인격 교리는 공관복음에 이미 있다. 그리스도는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시다.
(1) ‘인자’ (Son of Man)
당시 드문 칭호였고 다니엘 7:13의 환상과 묵시문학을 떠올리게 했다. 예수는 이 말로 자신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인류와 동족인 참 인간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과 구별되어 그 위에 서신 분임을 드러내셨다. 또 이 칭호는 폭력으로 권세를 얻는 정치적 메시아라는 오해를 막고 메시아직의 참뜻을 점진적으로 심어 주었다. 바빙크는 그 뜻을 넷으로 정리한다.
- 온 인류와 이어짐다윗의 자손일 뿐 아니라 인자로서 온 인류와 이어져, 자기 생명을 많은 이의 대속물로 주신다.
- 위로부터 오신 권세성부와 끊임없이 교제하며 죄를 용서하고 영생을 주는 권세를 지니신다(막 2:10).
- 고난의 길그 권세는 폭력이 아니라 주의 종으로서 고난받고 죽는 길로만 얻어진다.
- 영광그 끝에 부활과 승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심판을 위한 재림이 있다.
나라는 아직 미래이면서(마 6:10) 이미 현재다(마 12:28; 눅 17:21). 신자는 지금 그 나라의 시민이고, 왕이신 그리스도가 그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다(계 1:6; 5:10). 완성은 재림 때다.
(2) ‘하나님의 아들’
신정적 의미
구약에서 이스라엘과 왕, 메시아에게 붙은 칭호. 귀신(마 8:29), 유대인(마 26:63), 초기 제자들(마 16:16; 요 1:49)도 이 뜻으로 썼을 것이다.
예수가 더하신 깊은 뜻
성부가 사랑하여 마지막 사자로 보내신 외아들(막 12:6; 마 3:17). 이 아들 됨이 그의 모든 생각과 행위의 원천이다.
(3) 근대 신학과 바빙크
근대 신학
소박한 윤리 교사 예수를 사도들이 신적 그리스도로 부풀렸다.
바빙크
사도와 교회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가르친 모든 것은 원칙상 이미 공관복음 안에 있다. 부활은 새 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를 밝히고 확증했을 뿐이다. 사도들은 이를 확장하고 전개했다.
| 사도적 기독론의 두 축 | 내용 | 근거 예 |
|---|---|---|
| 참 사람 | 아브라함·유다 지파·다윗의 자손으로 여인에게서 나심. 피곤·갈증·슬픔·기쁨을 아심. 율법 아래서 죽기까지 순종을 배우심. 그러나 죄는 없으심 | 갈 4:4; 롬 1:3; 요 4:6; 히 4:15; 히 5:8 |
| 참 하나님 | 성육신 전부터 하나님의 본체로 계심. 만물이 그를 통해 창조됨. 전적으로 독특한 뜻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 | 요 1:1; 빌 2:6; 골 1:16; 요 20:28; 롬 9:5 |
[356] 초기 교회와 칼케돈 신조 원서 700쪽
- 에비온주의와 영지주의는 신인의 온전한 연합을 놓쳤다.
- 이레나이우스: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인 한 그리스도
- 테르툴리아누스: 혼합 없이 한 인격 안의 두 본질
- 칼케돈: 혼합·변화·분열·분리 없는 두 본성
- 신조 이후에도 신성화·신격화 경향은 남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연합되었다는 진리는 너무 풍성하고 깊다. 그래서 교회는 그것을 곧바로 의식에 담거나 모든 오류를 물리칠 공식으로 만들 수 없었다.
- 초기의 두 오류에비온주의: 예수를 특별히 뛰어난 인간으로만 봄 → 신성을 놓침. 영지주의: 신적인 것과 물질을 대립시킴 → 신적인 것이 육체와 참으로 하나 될 수 없다고 봄
- 이레나이우스‘두 본성’이라는 용어는 없었지만 핵심을 가르침. 참으로 성자이자 로고스이며 하나님 자신인 분이 사람이 되셨고, 깨뜨릴 수 없는 하나를 이루신다. 세상을 창조한 분과 태어나 죽으신 분은 동일한 한 그리스도
- 테르툴리아누스육체적·영적 두 본질, 신적·인간적 두 조건이 섞이지 않은 채 한 인격 안에 참여함
- 칼케돈 공의회네스토리우스적 분리와 유티케스적 혼합에 맞서 공식 신조 제시
- 칼케돈 이후동방: 단성론과 신성화로 기욺. 서방: 신비주의와 인간의 신격화에서 자유롭지 못함
4. 그리스도의 두 본성 원서 701–708쪽
- 로마·루터파: 속성 교류로 인성이 신격화됨
- 튀빙겐(은밀한 사용) 대 기센(사용 중지) 논쟁
- 개혁파: finitum non capax infiniti
- 성육신한 것은 성자의 본체가 아닌 현존(위격)
- 칸트·헤겔 등: 역사적 예수를 관념으로 대체
- 슐라이어마허의 하나님 의식, 리츨의 윤리적 예수
- 역사적 예수와 사도적 그리스도는 동일하다.
(1) 인성을 과도하게 높이는 경향: 로마와 루터파
칼케돈 이후에도 인성을 지나치게 높이는 흐름이 이어졌다. 바빙크는 로마와 루터파의 닮은꼴이 성찬론만이 아니라 기독론에서도 드러난다고 본다.
| 입장 | 주장 | 결과·문제 |
|---|---|---|
| 로마 가톨릭·스콜라 신학 | 신성에서 인성으로 속성들이 교류됨. 불에 달아오른 쇠처럼 인성이 처음부터 신격화되어 신적 영광·지혜·능력에 참여 | 예수가 실제로 어린아이였던 적이 없다는 생각까지 나옴 |
| 루터파 | 교류는 본성이 아니라 인격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도, 두 본성이 속성과 함께 연합·혼합된다고 봄 | 인성을 본래 경계 너머로 끌어올림 |
| 루터파 내 튀빙겐 학파 | 그리스도가 지상에서도 신적 속성을 은밀히 사용하셨다 | 인간적 성장이 겉모습이 됨 |
| 루터파 내 기센 학파 | 비하 상태에서 신적 속성의 사용을 중지하셨다 | 소유와 사용을 나눔 |
(2) 개혁파의 길
정교회·로마·루터파의 강조
신적 본성이 구원의 필수 수단이다. 그래서 신적 존재의 성육신을 강조한다.
개혁파의 강조
육체가 되신 것은 성자의 위격이다. 두 본성의 하나 됨은 위격 안에 변경 불가능하게 뿌리내린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 언약 교리에서처럼 여기서도 인격적 삶을 가장 높은 삶으로 보는 개혁파의 사상이 드러난다.
(3) 근대 기독론: 역사의 예수를 찾아서
근대 사상은 칼케돈을 그리스 이성주의의 산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새로 정의하려 했다.
- 칸트예수는 도덕적 모범일 뿐. 역사적 예수보다 이상적 그리스도가 중요
- 피히테·셸링·헤겔하나님과 인간의 하나 됨이라는 관념을 앞세움
- 슈트라우스인류 자체를 성육신한 하나님으로 봄 → 역사적 예수를 관념 뒤로 지워 버림
- 슐라이어마허사변을 거부하고 예수의 고도로 발달한 하나님 의식에서 신적 요소를 찾음. 기독론을 교의학 중심에 되돌려 놓음. 이후 ‘신인’의 생성 개념이 퍼짐
- 리츨선재·초자연적 잉태·부활·승천·재림을 거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그리스도의 존재가 아닌 직무와 가치로 해석
- 헤르만·하르낙바울과 요한을 떠나 공관복음의 ‘역사의 예수’로 돌아가자
5. 성육신의 중심성 원서 708–713쪽
- 그리스도 교리는 교의학의 중심점이다.
- 성육신은 삼위일체를 전제하며 성자의 위격이 사람이 됨
- 성육신은 필연도 우연도 아닌 영원한 작정의 일
- 계시의 역사가 마리아의 선택에서 완성된다.
- 예수는 광신도·신성모독자이거나 참 하나님의 아들
-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선생이 아니라 내용이다.
- 성령에 의한 수태: 행위언약 밖에서 나심
(1) 출발점이 아니라 중심점
신앙과 윤리의 모든 생명이 여기서 뛴다. 성육신한 말씀은 세계사의 중심 사실이다.
(2) 성육신과 삼위일체
- 성육신은 삼위일체를 전제한다. 하나님이 스스로 충족하시면서도 자신을 나누실 수 있어야 중보자가 가능하다.
- 그래서 성육신은 성부가 보내시고 성령이 잉태케 하신 삼위 전체의 일이다.
- 그러나 사람이 되신 분은 신성 자체가 아니라 성자의 위격이다(요 1:14; 빌 2:6; 히 2:14–15).
| 견해 | 무엇이 사람이 되었나 / 고난받았나 | 평가 |
|---|---|---|
| 성부수난설 (patripassianism) | 성자가 아닌 신성 자체가 사람이 되어 고난받음 (성부가 고난받았다) | 교회가 늘 정죄 |
| 범신론(헤겔·셸링) | 신이 세계가 되어 고난받음 | 같은 오류를 품음 |
| 루터파 | ‘신성’이 인성을 취함을 강조 | 두 본성 혼합의 위험 |
| 개혁파 | ‘성자의 위격’이 인성을 취함 | 두 본성의 혼합을 막음 |
(3) 필연도 우연도 아니다
범신론 필연
신이 세계가 되는 것은 필연이다.
펠라기우스주의 우연
인간의 자유의지를 앞세워 구원 역사를 우연으로 만든다.
성경 영원한 작정
성육신은 필연은 아니지만 준비 없는 돌발도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신 창조가 그 전제이자 준비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세계는 타락 후에도 회복될 수 있도록 지어졌다.
“죄가 없었어도 성육신했을까” 하는 가설은 흥미롭지만 필요 없다. 영원한 작정 안에서 준비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으로 충분하다.
(4) 때가 차매: 계시의 역사와 마리아
- 타락 직후가 아님성육신은 ‘때가 차매’ 일어났다(갈 4:4; 엡 1:10).
- 긴 준비오랜 계시의 역사가 이를 준비했다.
- 마리아의 선택그 역사는 마리아의 선택에서 완성된다.
개신교의 마리아 존중
계시 역사가 마리아의 선택에서 완성되므로 개신교인도 마리아를 크게 존중한다.
로마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
무염시태·무죄·승천 교리로 이어진 숭배는 성경이 아니라 전통과 위계에서 나왔다. 과도하고 비성경적이다.
(5)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내용이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이나 인류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환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데 그리스도는 더욱 그렇다. 그의 말과 행위, 제자들의 경배를 정직하게 보면 선택이 강요된다. 그는 광신도이거나 신성모독자이거나 참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래서 그는 석가나 무함마드 같은 창시자가 아니다.
(6) 동정녀 탄생
| 쟁점 | 바빙크의 판단 |
|---|---|
| 본문비평의 공격 | 근거가 약하다. 동정녀 탄생 기사(마 1)는 원래 메시지의 일부다. |
| 이교 신화 차용설 | 유사성은 피상적이다. 오히려 신화와의 질적 차이가 사실성을 높인다. |
| 마리아의 영구 동정, 예수의 ‘형제들’ | 교리적으로 부차적이다(마 13:55; 막 6:3 등). |
| 수태의 방식 | 성령은 실체를 주입하지 않고 구름같이 덮으심으로 잉태케 하셨다(눅 1:35; 출 40:34; 눅 9:34). |
| 핵심 의미 | 성령의 수태로 그리스도는 행위언약 밖에 서서 죄와 무관하시며,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셨다(요 3:34). |
6.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원서 713–724쪽
참되고 완전한 인성 원서 713쪽
- 발렌티누스·아펠레스·재세례파의 인성 부정
- 이상적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의 분리와 같은 뿌리
- 성경은 그리스도의 성장·감정·고난·죽음을 증언
- 인성 부정의 뿌리는 이원론이다.
- 한 분 중보자, 참 신인이 복음의 핵심
| 인성 부정의 형태 | 주장 |
|---|---|
| 발렌티누스(영지주의) | 하늘의 영적 몸으로 마리아를 물이 관을 지나듯 통과했다. |
| 아펠레스 | 유령 같은 몸을 입었다가 버렸다. |
| 재세례파 | 마리아에게서 육체를 받으면서 죄가 없을 수는 없다고 여김 |
| 근대 철학(칸트·헤겔 이후) | 이상적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를 갈라놓음 → 옛 견해와 뿌리가 같다 |
성경은 그가 자라고(눅 2:52) 배고프고(마 4:2) 분노하고 슬퍼하며(요 11:35) 고난받고 죽으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육신으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를 적그리스도라 부른다(요일 2:22; 4:2–3).
[369] 두 본성 교리의 성경적 근거 원서 715–716쪽
- 성경은 신적·인간적 속성을 한 주체에 돌린다.
- 네스토리우스: 본성적 연합(ἑνωσις)이 아닌 도덕적 결합(συναφεια)
- 칼케돈: 분리·나뉨·혼합·변화 없는 연합
- 단성론과 케노시스 기독론은 거부된다.
- 두 본성 교리는 가설이 아닌 성경의 요약이다.
| 한 주체에 돌려지는 진술 | 본문 |
|---|---|
|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 요 1:14 |
|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분이 혈과 육을 지니셨다 | 히 1:3; 2:14 |
|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 | 갈 4:4 |
|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 빌 2:7 |
| 만물 위에 계신 분이 육체를 따라 조상에게서 나셨다 | 롬 9:5 |
| 신성의 충만이 육체로 그 안에 거하신다 | 골 2:9 |
좌우의 오류
신성을 깎는 쪽
네스토리우스: 영원한 아들과 마리아에게서 난 사람을 별개로 봄. 두 본성은 연합이 아니라 결합일 뿐 → 마리아를 테오토코스라 부를 수 없음. 그러면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 내주는 신자 안의 내주와 정도 차이밖에 없다. 근대 신학은 신성을 하나님과의 도덕적 결합으로 낮추어 네스토리우스를 되살린다.
본성을 흡수·포기하는 쪽
단성론: 인성이 신성에 흡수됨. 케노시스론: 성자가 신적 속성을 버림. 둘 다 하나님의 불변성과 무한성에 맞지 않아 거부된다.
양쪽 모두 한 본성을 깎아 신비를 풀려 한다.
그래서 낳은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한, 마리아를 테오토코스(θεοτοκος, 하나님을 낳은 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하다. 이는 마리아를 높이는 말이 아니라 아들이 누구신지를 말하는 고백이다.
[370] 위격적 연합의 신비 원서 716쪽
- 칼케돈 언어는 개정 가능하나 개선 시도는 모두 실패
- 기독교의 핵심인 하나님과의 교제와 직결
- 연합은 본질적으로 언약적이어야 했다.
- 위격들의 도덕적 연합이 아닌 위격적 연합
- 성자의 위격과 비위격적 인성의 연합
- 교제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교제다. 성육신이 불가능하면 그 교제를 담을 그릇이 없다.
- 죄로 깨짐죄가 교제를 깨뜨렸으므로 그리스도 안의 연합은 기존 관계의 연장이 아니라 새 시작이어야 했다.
- 언약적 연합그리스도는 개인들 곁의 또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의 머리요 대표, 둘째이자 마지막 아담, 중보자다.
| 아니다 | 그렇다 |
|---|---|
| 두 위격이 하나로 뭉친 것 | 성자가 우리의 인간적 본성을 취하신 것 |
| 위격들(persons)의 도덕적 결합 | 성자의 위격 안에서 본성들(natures)이 이루는 연합 |
| 자연적(natural) 혼합 | 위격적 연합(personal union) |
| 새 본성, 새 인격의 탄생 | 하나님의 본체로 계시던 그분이 이제 사람의 모습으로도 계심 |
| 자체 위격을 가진 인성 | 자체 위격이 없는 비위격적 인성이 성자의 위격에 속함 |
[371] 그리스도의 인간적 성장 원서 717–719쪽
- 루터파·로마 가톨릭 기독론에 가현설 요소
- 반작용으로 19세기 신학은 신성을 부인
- 개혁파: 은사 교류로 인간적 성장을 인정
- 그리스도는 아이로, 죄악된 육신의 모양으로 오심
- 성육신은 낮추는 덕이나 비하는 연약한 인성 때문
- 인간적 의식 이면에 하나님의 심연이 있다.
두 본성 교리에 늘 제기된 반론이 있다. 신성이 인성을 압도해 인간적 성장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바빙크는 이 반론이 일부 로마 가톨릭과 루터파 신학에는 어느 정도 맞는다고 인정한다.
| 입장 | 인성에 대한 견해 | 결과 |
|---|---|---|
| 루터파 | 속성의 교류: 신성의 속성이 인성에 전해져 인성이 전능과 편재까지 높여짐 | 두 기독론 모두 가현설(사람인 듯 보일 뿐) 요소가 남음. 이미 속성을 공유한다면 은사가 왜 필요한가 하는 모순도 생김 |
| 로마 가톨릭 | 루터파를 반대하면서도, 잉태 순간부터 인성이 성령의 은사를 충만히 받았다고 함 | |
| 19세기 신학 | 순수한 인간적 성장이 설 자리를 잃자 반작용으로 | 아예 신성을 부인 |
| 개혁파 | 은사의 교류를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도록 해석 | 신성과 함께 참된 인성을 어느 신학보다 잘 주장 |
첫 아담
- 성인으로 지어짐
- 낙원에 놓임
둘째 아담 그리스도
- 아이로 태어나심
- 유혹과 악이 가득한 세상에 오심
- 고난과 죽음을 겪는 죄악된 육신의 모양(롬 8:3), 곧 외형상 우리와 같은 육신
지적·도덕적 성장
- 그리스도는 지혜와 지식에서 자라셨고, 이 땅에서 나그네셨다.
- 아담에게나 그에게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분을 의지하고 말씀과 약속을 붙드는 행위였다(마 27:46; 히 2:17–18; 3:2).
- 그는 성부의 뜻을 온전히 아셨지만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신 것은 아니다.
- 도덕적으로도 자라셨다. 죄를 지으실 수 없었지만, 죄 없음은 유혹과 고난에 대한 응답으로 드러났다. 타락 전 상태에서는 분노·슬픔·연민이 나타날 일이 없었다.
- 그리스도는 아담에게 아직 없던 지성과 마음의 풍성한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 주셨다.
[372-373] 그리스도의 지식·거룩·능력 원서 720–724쪽
- 그리스도의 인간적 지식은 점차 증가했다.
- 지복지식이 아닌 믿음과 소망으로 행하심
- 종교적 지식에서 예수께 오류는 없다.
- 필연적 무죄성(non posse peccare)과 실제적 시험
- 주입된 거룩함은 분투를 통해 드러나야 했다.
- 인성의 능력은 제한되었고 부활 후 권세를 받으심
- 예배의 기초는 오직 그의 신성이다.
(1) 지식
교부들
그의 인간적 지식은 처음부터 완전했다. 로고스가 예수의 정신 자리를 대신한다는 아리우스·아폴리나리우스주의, 두 본성이 섞였다는 단성론에 맞서다 생긴 반작용이다. 요 1:14; 골 2:3 같은 구절은 신인 전체를 말할 뿐 성장을 다루지 않으므로, 결국 ‘적합함’(하나님과 연합된 인성이라면 마땅히 완전해야 한다는 추론)에 기댔다.
개혁파
주입된 지식도 획득된 지식도 점점 자랐다. 그는 이 땅에서 나그네였고 지복지식(scientia beata, 하늘에서 하나님을 직접 보는 앎) 없이 믿음과 소망으로 사셨다. 그의 믿음은 긍휼을 구하는 죄인의 믿음이 아니라, 타락 전 아담처럼 말씀과 약속을 붙드는 견고한 행위였다(히 12:2).
(2) 거룩: 죄 없음
| 반론 / 견해 | 바빙크의 답 |
|---|---|
| ‘투쟁으로 얻은 덕만 덕’이다 (신성을 빼놓은 전제) | 그러면 사실상의 죄 없음만 남아 중보자로서 부족하다. |
| 테오도루스·네스토리우스: 죄 지을 가능성을 안고 태어났다 | 그렇게 볼 수 없다. 순종을 배우셨어도(히 5:8) 필연적 무죄성(non posse peccare, 죄를 지을 수 없음)이 참이다. |
| 죄 지을 수 없다면 시험은 가짜인가? | 시험은 안이 아니라 밖에서 왔으나 실제였다(마 4:1–11). 죄 지을 수 없음은 강제가 아니라 윤리적 사실이었다. |
단서가 있다. 인성의 거룩은 하나님의 본래적 선함과 달리 주입된 것이다(막 10:17–18). 그래서 유혹과 분투로 드러나고 확증되어야 했다. 좋은 나무라야 좋은 열매가 맺히지만, 나무의 실함은 열매로 증명된다.
(3) 능력
- 하나님의 아들로서 전능하시나, 인성의 능력은 제한되었다.
- 중보자의 사역은 두 본성 모두에 돌려진다.
- 그러나 그는 지치셨고, 천사의 힘을 받으셨으며(눅 22:43), 부활 후에야 모든 권세를 말씀하셨다(마 28:18).
(4) 예배의 근거
구조도
| 상대 입장 | 그 입장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마르키온 | 구약은 열등한 신의 종교이며 그리스도는 다른 신을 계시했다. | 두 언약은 기원과 내용에서 하나이며, 차이는 약속된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뿐이다. |
| 콕세이우스 |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을 단계적으로 폐기해 간다. | 은혜는 자연을 치유하고 온전케 한다. 순종 요구는 여전하며 그리스도가 그것을 이루셨다. |
| 종교사학파 | 이스라엘의 메시아 대망은 주변 민족에서 빌려온 것이다. | 유비를 동일성으로 착각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한다. |
| 루터파 | 신적 속성이 인성에 전해져 인성이 본래 경계를 넘어 높아진다. |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 두 본성은 분리 없이 구분되고 인성은 실제로 자란다. |
| 리츨 학파 | 예수는 탁월한 윤리적 인간이고 신성은 직무상 가치일 뿐이다. | 공관복음의 예수도 메시아 의식과 죄 사함의 권세를 지닌다. 역사의 예수와 사도의 그리스도는 같다. |
| 로마 가톨릭 | 인성은 처음부터 신격화되었고 마리아는 숭배의 대상이다. | 그리스도는 실제로 어린아이였고 자라셨다. 마리아는 존중하되 숭배는 비성경적이다. |
오해와 바른 이해
✕ 오해
- 구약과 신약은 다른 신의 종교다(마르키온).
- 믿음과 회개를 행해야 언약에 들어갈 수 있다. 믿음과 회개는 언약 체결의 조건이다.
- 시내 산 언약은 행위언약이다.
- 구약 성도는 다른 길로 구원받았다.
-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만 있다.
- 예수는 도덕적 모범, 윤리적 선생일 뿐이다(칸트·리츨).
- 칼케돈 신조는 그리스 철학의 산물이다.
- 속성 교류로 인성이 처음부터 신격화되었다(로마·루터파).
✓ 바른 이해
- 언약은 하나이며 경륜만 둘이다. 구약은 신약에서 성취된다.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친히 주신다. 기원은 일방적이며, 믿음과 회개는 언약에 포함된 자가 따를 규칙이다.
- 출애굽 구원이 토대인 은혜언약이다.
- 같은 믿음, 같은 중보자, 같은 언약으로 구원받았다.
- 현재적 실체이며 재림 때 완성된다.
- 복음서의 예수도 죄 용서 권세를 지닌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 성경이 증언하는 두 본성을 간추린 것이다.
- 유한은 무한을 담지 못한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인간답게 자라셨다.
핵심 용어
- 은혜언약
- 타락 후 하나님이 긍휼로 맺으신 구원의 약속 관계. 하나님의 맹세와 긍휼에 기초하므로 깨질 수 없다.
- 행위언약
- 아담과 맺은, 순종으로 생명에 이르는 처음 언약. 은혜언약은 이를 폐지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성취한다.
- 브리트 (בְּרִית)
- 맹세·저주·상징 의식으로 이루어진 언약. 일방적인지 쌍방적인지는 낱말이 아니라 당사자의 성격이 정한다.
- 디아데케 (διαθήκη)
- 70인역이 언약을 옮긴 말(‘유언’). 쌍방 계약인 ‘쉰데케’ 대신 택한 것은 언약의 불변성 때문일 것이다.
- 구원 협약 (pactum salutis, 구속언약)
- 모든 언약의 토대인, 삼위 하나님 위격들 사이의 영원한 언약.
- 평강의 경륜 (the counsel of peace)
- 그리스도가 보증인이자 머리가 되시는 영원한 경륜. 은혜언약(그리스도가 중보자)과 구분되되 분리되지 않는다.
- 두 경륜 (dispensations)
- 하나인 언약이 구약과 신약에서 취하는 두 시행 방식. 약속과 성취, 그림자와 실체, 조문과 영, 종과 자유자, 특수와 보편.
- 연속적 언약 폐기
- 콕세이우스의 견해. 은혜언약을 행위언약의 점진적 파괴로 보아 언약의 통일성을 허물었다.
- 특별은총
- 구원을 위해 베푸시는 은혜. 이스라엘과 열방의 근본적 차이.
- 사후예언 (vaticinia ex eventu)
- 일이 일어난 뒤에 쓴 예언. 과거 비평이 메시아 예언을 배제한 근거.
- 유비와 동일성 (analogy / identity)
- 종교사학파는 열방과 이스라엘의 닮음(유비)을 같음(동일성)으로 착각했다.
- 인자 (Son of Man)
- 단 7:13을 연상시키는 칭호. 온 인류와 동족인 참 인간이면서 모든 사람 위에 계신 분.
- 위격적 연합 (personal union)
- 성자의 위격 안에서 신성과 비위격적 인성이 이루는 연합. 위격들의 도덕적 결합도, 자연적 혼합도 아니다.
- 본체와 현존 (substance / subsistence)
- 우리 본성을 입은 것은 성자의 본체(바탕이 되는 신적 실체)가 아니라 현존(개별 인격적 존재)이다.
- 유한은 무한을 포함할 수 없다 (finitum non capax infiniti)
- 인성이 신적 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개혁파 원리. 두 본성을 분리 없이 구분한다.
- 속성 교류
- 신성의 속성이 인성에 옮겨진다는 로마·루터파 견해.
- 은사 교류
- 성령의 은사가 인성에 주어져 실제로 자라게 함. 개혁파는 이를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도록 해석했다.
- 본성적 연합과 도덕적 결합 (ἑνωσις / συναφεια)
- 네스토리우스는 두 본성의 관계를 연합이 아니라 결합으로 보았다.
- 테오토코스 (θεοτοκος)
- ‘하나님을 낳은 이’. 네스토리우스는 거부했으나, 낳은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한 적절한 칭호.
- 성부수난설 (patripassianism)
- 성자가 아닌 신성 자체가 사람이 되어 고난받았다는 정죄된 견해.
- 케노시스론
- 성자가 신적 속성을 버렸다는 견해. 하나님의 불변성·무한성에 맞지 않아 거부된다.
- 지복지식 (scientia beata)
- 하늘에서 하나님을 직접 보는 앎.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이것 없이 믿음과 소망으로 사셨다.
- 죄 지을 수 없음 (non posse peccare)
- 강제가 아닌 윤리적 성격의 필연적 무죄성. 유혹과 분투로 드러나야 했다.
성경 근거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창 2:17 | 경고된 형벌이 다 집행되기 전, 타락 직후에 은혜가 시작됨 |
| 창 15:8–9 | 아브라함 언약은 협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 |
| 히 6:17 | 하나님이 맹세로 뜻의 변치 않음을 보이심 → 언약의 일방성·불변성 |
| 출 19:5–6 | 언약의 의무는 조건이 아니라 언약 백성의 규칙 |
| 출 20:2 | 출애굽 구원의 선포가 율법의 토대 → 시내 산 언약도 은혜언약 |
| 히 7:22 | 그리스도가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구원 협약의 근거 |
| 골 2:17 | 구약은 그림자, 몸은 그리스도의 것 → 두 경륜 |
| 고전 15:45 | 타락 전 아담도 그리스도의 모형 → 은혜언약은 행위언약 안에서 예비됨 |
| 막 1:15 | 회개와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 나라 선포 |
| 단 7:13 | ‘인자’ 칭호의 묵시적 배경 |
| 갈 4:4 | 때가 차매 아들이 여자에게서, 율법 아래 나심 |
| 눅 1:35 |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심 → 행위언약 밖에서 나심 |
| 딤전 2:5 | 하나님과 사람 사이 중보자는 한 분, 참 신인 |
복습 문제
은혜언약을 ‘일방적’이라고 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그렇다면 “순종하라”는 요구는 무엇인가?
교회가 유대주의자와 마르키온에 맞서 각각 강조한 것은? 바빙크의 결론 공식은?
바빙크는 콕세이우스의 어떤 점을 비판하며, 은혜언약과 행위언약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종교사학파의 ‘차용설’에 바빙크는 어떻게 답하는가? 세 가지 차이를 들어 보라.
칼케돈 신조의 네 부정은 각각 어떤 경향을 겨냥하는가? 그리고 개혁파는 로마·루터파와 무엇이 다른가?
성령에 의한 동정녀 수태가 중요한 이유와,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