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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질문: 죄란 무엇이고 어떤 벌과 결과를 낳는가?
- 죄의 핵심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종교적 반역, 곧 불법(ἀνομία, 요일 3:4)이다. 아담의 첫 죄는 작은 실수가 아니라 원리상 모든 계명을 범한 총체적 타락이었다.
- 죄는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이다. 그러나 선에 기생해 파괴하는 능동적 힘(활동)이기도 하다. 죄는 인간의 지성·의지·자유를 없애지 않고 방향만 하나님에게서 돌려놓았다. 그 기준은 죄의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법이다.
- 죄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죄·소죄 구별은 거부된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은혜를 알고도 증오하는 성령 모독죄 하나뿐이다.
- 형벌은 정의가 요구하는 보응이다. 동시에 그 연기와 완화는 은혜의 방편이다. 보응을 빼고 범죄를 질병으로만 보면 정의의 기준과 자유가 사라진다.
- 이생의 형벌은 죄책·오염·고통·죽음·사탄의 통치 다섯이다. 온 자연이 함께 탄식하지만 그리스도가 사탄을 이기셨으므로 우리 삶은 하나님 손에 있다.
앞 장이 다룬 원죄의 보편성과 전달을 이어받아, 이 장은 죄의 본질(1–3절)과 죄의 결과(4–5절)를 묻는다. 형벌이 죽음과 사탄의 통치에까지 이르므로, 이를 깨뜨릴 그리스도의 구속이 다음 주제가 된다.
1. 죄의 종교적 성격 원서 639–645쪽
- 원죄는 보편적 실재다. 그러나 죄의 본질은 그 전개 속에서야 충만히 드러난다. 그래서 첫 죄가 무엇이었는지부터 의견이 갈린다.
- 원죄는 한 가지 범죄로 줄일 수 없다. 원리상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범한 총체적 반역이다.
- 죄의 핵심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 곧 불법(ἀνομία)이다. 죄는 사람이나 사회가 아니라 하늘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성립한다.
- 율법 없는 이방인도 양심과 자연계시로 정죄된다. 고대 이스라엘도 죄를 하나님께 대한 악으로 알았다.
- 예수는 율법을 사랑으로 환원하고 마음을 겨냥하셨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하시되 그 윤리적 내용은 굳게 세우신다.
(1) 첫 죄는 무엇이었나
| 대상·입장 | 첫 죄에 대한 견해 | 근거·평가 |
|---|---|---|
| 천사(마귀)의 첫 죄 | 교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거짓말이나 질투도 후보다. | 시험의 성격에서 추론(창 3:5; 마 4:3). 딤전 3:6은 교만이 마귀를 정죄에 빠뜨렸음을 시사한다. 요 8:44는 거짓말을 후보로 보게 한다. |
| 로마 가톨릭 | 인간의 첫 죄도 교만이다. | 롬 5:19를 근거로 든다. |
| 개신교(보통의 견해) | 의심과 불신에서 시작해 교만과 탐욕이 뒤따랐다. | — |
| 바빙크 (테르툴리아누스를 따라) | 첫 죄를 한 종류로 좁히지 않는다. 불순종·의심·교만·탐욕을 모두 품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 지식과 의지를 다해 분명한 명령을 어겼다. 의식적 범죄, 위반, 불순종이다(롬 5:12). |
총체적 타락첫 죄는 사소한 일탈이나 성장의 과정이 아니다. 전인을 뒤흔든 반역과 반란이며, 진정한 의미의 타락이고, 온 세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 죄의 핵심은 불법: 세 가지 반론과 답
| 반론 | 바빙크의 답 |
|---|---|
| 아담 이후 모세까지는 공표된 법이 없었으니 죄도 없지 않았는가? | 그 시대에도 죄와 죽음이 있었으니 법도 있었다(롬 5:13–14; 4:15). |
| 모세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은 핑계할 수 있지 않은가? | 이방인도 양심과 자연계시를 통해 스스로에게 법이 된다. 그래서 핑계할 수 없다(롬 2:12–26). |
| 초기 이스라엘의 죄 개념은 비도덕적이었다. 신의 변덕을 건드린 일에 불과했다. (‘하타’가 본래 윗사람에 대한 잘못을 뜻했다는 주장: 출 5:16; 왕상 1:21; 왕하 18:14) | 창세기부터 ‘여호와께 지은 죄’라는 표현이 나온다(창 13:13; 39:9; 삼하 12:13; 시 51:4). 하나님은 행위만 아니라 마음의 성향까지 감찰하신다(창 6:5; 삼상 16:7; 렘 17:10). 죄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반역하는 마음의 문제였다. |
장별 정리는 이 근대의 주장이 영지주의·마니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덧붙인다.
(3) 율법, 예수, 복음
- 율법은 자의적 강요가 아니다할례·제사·피의 보복 같은 민족 관습을 폐하지 않고 수정·통합해 은혜언약에 쓰셨다. 그러면서도 율법은 언제나 그 이상이다.
- 시대를 고려한 규정이혼 허락처럼 마음의 완악함을 고려한 규정도 있다(마 19:8). 오늘의 기준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 교사인 율법율법은 미숙한 이스라엘을 그리스도 안의 성숙으로 이끄는 교사였다(갈 3:23–24; 4:1).
- 예수: 사랑과 마음새 윤리를 세우신 것이 아니다. 율법을 사랑이라는 원리로 모으시고(마 22:37–40) 모든 죄의 근원인 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셨다(마 15:18–19). 위선의 탈을 벗기시고(마 23), 윤리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유대를 끊으셨다(막 7:15).
- 복음의 빛죄는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힘으로 폭로된다(요 8:34). 은혜가 드러난 만큼 불신앙은 더 무거운 죄가 된다(요 15:22; 16:9).
- 해방과 확립그리스도는 율법의 저주와 종의 멍에에서 해방하신다(갈 3:13). 그러나 율법의 윤리적 내용은 굳게 세우신다(롬 3:31).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한일서 3:4
2. 죄의 본질 원서 645–651쪽
- 죄는 실체가 아니다. 마니교·플라톤·범신론의 견해를 모두 거부한다.
- 죄는 선의 결핍이자 능동적 파괴의 힘이다.
- 죄는 선에 기생하며 인간의 방향만 바꾼다.
- 죄를 죄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 법에서의 이탈(왜곡)이다. 복음은 율법을 전제하며 율법이 죄 인식의 원천이다.
- 의지가 죄의 주체다. 그러나 정욕은 동의 전에도 죄다.
- 죄는 존재할 자격 없이 존재하는 수수께끼다. 하나님은 그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신다.
(1) 거부되는 견해들: 죄는 실체가 아니다
| 견해 | 죄를 무엇으로 보는가 | 유형 |
|---|---|---|
| 뵈메 | 하나님 안의 분노의 원리 | 실체적 견해 |
| 마니교 | 하나님과 나란히 맞서는 악한 힘 | |
| 물질·육체를 악으로 보는 견해 | 물질이나 육 자체 | |
| 범신론 | 발전 단계, 순수 부정이나 착각 | 범신론적 견해 |
근거는 단순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으셨으므로 그 자체로 선하다. 따라서 죄는 눈먼 것이 시력의 결여이듯 선의 결핍(privation)이다.
(2) 결핍이자 활동
결핍 privation
- 죄는 실체나 사물이 아니다.
- 있어야 할 선이 빠진 상태다.
- 눈멂 = 시력의 결여.
- 결핍 개념은 마니교적 이원론의 거부다.
활동 ἐνέργεια
- 결핍이라는 말로 끝나면 안 된다.
- 죄는 적극적으로 부패시키고 파괴하는 힘이다.
- 절름발이 개가 절뚝여도 여전히 걷는다.
- 결함이면서 동시에 행위다.
“죄는 실체나 사물이 아니라 선을 결여한 상태, 일종의 ‘활동’(ἐνέργεια)이다.” — 바빙크
(3) 결핍 개념에서 따라오는 세 가지
| 내용 | 귀결 | |
|---|---|---|
| 첫째 선에 기생한다 | 타락한 천사와 인간도 피조물로서는 여전히 선하며 하나님에 의해 존재한다. 거짓말쟁이가 진리의 옷을 입고 사탄이 빛의 천사로 가장하듯, 죄는 선의 힘을 빌려서만 움직인다. | 죄는 인간에게서 아무것도 빼거나 더하지 않았다. 사랑·지성·의지·자유는 제거되지 않고 방향이 바뀌었다. 형상은 남았으나 일그러졌다. |
| 둘째 기준은 하나님의 법 | 신성모독도 그 말과 힘 자체는 선하다. 죄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난 왜곡(deformity)이다. | 슐라이어마허와 리츨: 복음 앞에서 죄가 가장 끔찍하게 드러난다. 바빙크도 동의한다. 다만 복음은 율법을 전제하므로 죄 지식의 원천은 여전히 율법이다(롬 3:20; 7:7). |
| 셋째 의지가 주체 | 죄는 지성과 의지를 가진 이성적 피조물 안에만 있고, 의지가 그 주체다. | 그러나 죄를 의지의 행위로만 보면(펠라기우스주의) 경험과 어긋난다. 우리는 욕구가 죄인 줄 알면서도 저항할 힘이 없음을 느낀다. |
(4) 정욕 논쟁: 동의 이전의 욕구도 죄인가
아우구스티누스·로마 가톨릭 동의해야 죄
- 정욕(concupiscence), 곧 의지 이전의 악한 욕구는 의지가 동의할 때만 죄가 된다.
종교개혁 동의 전에도 죄
-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불순한 생각과 욕구도 하나님 앞에서 죄다(출 20:17; 마 5:28).
- 첫 죄가 본성을 부패시켜 죄가 이제 모든 기능 안에 자리 잡았다(창 8:21; 롬 7:15–17).
- 비자발적 죄도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의지는 나중에라도 그 죄악됨을 승인하고 즐긴다.
죄의 척도죄의 척도는 의지의 유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율법이다. 결국 죄는 존재할 권리가 없는데도 존재하는 불가해한 모순이다.
3. 죄의 다양성과 정도 원서 651–657쪽
- 성경은 악한 영들의 왕국을 말한다. 사탄이 우두머리이고 귀신들은 계급별로 나뉜다(마 12:26; 엡 6:12).
- 사탄의 죄는 기원·성격·결과에서 인간의 죄와 다르다. 악은 오직 하나님만 존재하심을 증명한다.
- 죄의 기준은 죄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이다.
- 죄의 순서: 암시 → 즐거워함 → 동의 → 실행.
- 개혁자들은 대죄·소죄 구별을 거부했다. 성령 모독죄는 인정한 은혜를 고의로 거부하는 죄다.
(1) 마귀의 죄와 인간의 죄
| 비교 | 마귀(사탄과 악한 영들)의 죄 | 인간의 죄 |
|---|---|---|
| 기원 | 유혹 없이 스스로 일으켰다. 천사들은 한 혈족이 아니므로 각자 개별적으로 범죄했다. | 유혹을 받아 타락했다. 한 인류로 묶여 있다. |
| 언약 | 행위언약이 없으니 은혜언약도 없다. | 은혜언약 안에서 구원의 길이 열린다. |
| 성격 | 절대적 성격. 사탄은 악의 최고 계시다. 그래도 피조물이므로 절대적으로 악할 수는 없다. 죄는 형식이지 실체가 아니다. | 의도·상황에 따라 책임의 정도가 다르다. |
| 결과 | 회복과 구원의 희망이 전혀 없다. | 용서의 길이 있다(성령 모독죄 제외). |
위로하나님은 사탄 안에서 죄에게 모든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죄는 끝내 이기지 못한다. 사탄에 대한 승리는 죄에 대한 완전한 정복이다. 죄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기를 원할 뿐이다.
(2) 인간의 죄: 책임의 정도와 무지
- 책임의 경중을 가르는 것: 의도, 첫째 돌판인가 둘째 돌판인가, 상황(환경)과 정도. 부지중의 죄는 오만방자한 죄와 같지 않다.
- 그러나 기준은 죄의식이 아니라 율법이다. 그래서 무지는 변명이 되지 못한다(호 4:6). 죄를 오래 반복해 감각이 둔해졌을 때는 더욱 그렇다.
-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르고 지은 죄도(눅 23:34; 행 3:17) 책임이 벗겨지지 않는다(롬 5:12; 딤전 1:13–15).
- 슐라이어마허는 죄가 자각될 때만 죄라고 했다. 바빙크: 틀렸다. 다만 무지는 용서를 구할 근거는 된다.
- 죄는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동시에 피조물에게로 향한다. 그래서 우상숭배·교만·자기추구·육욕으로 드러난다.
- 암시죄가 마음에 떠오른다
- 즐거워함그 생각을 즐긴다
- 동의의지가 받아들인다
- 실행행위로 옮긴다
이 “죄의 법칙”에는 육욕(감각적 욕망)과 자기추구가 늘 함께 작용한다.
(3) 대죄·소죄 구별의 거부
로마 가톨릭 대죄·소죄
- 고해성사 관행에서 대죄(지옥에 이르는 죄)와 소죄(가벼운 죄)를 나눴다.
- 소죄는 가볍다.
종교개혁자들 정도는 인정, 구별은 거부
- 죄를 죄인에게서 떼어 내 세고 달 수 있는 양으로 보면 안 된다.
-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죄로부터의 용서다.
- 마 5:22는 분노도 지옥에 마땅하다고 하므로 오히려 구별에 반대한다.
- 율법은 유기적 통일성을 지닌다(약 2:10). 사소한 위반도 원칙상 하나님께 대한 반역(불법)이다.
- 개혁자들은 이 용어를 다른 의미로 쓰기도 했다.
(4) 용서받을 수 없는 유일한 죄: 성령 모독죄
- 구약도 속죄제사가 적용되지 않는 오만방자한 죄를 말한다(민 15:30).
- 성령 모독죄는 예수가 처음 말씀하셨다(마 12:31; 막 3:29; 눅 12:10). 예수를 사탄의 대리인이라 한 바리새인의 비난이 그 예다(막 3:22).
- 이것은 단순한 불신앙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의 은혜 계시를 분명히 인정하고도 의식적·악의적으로 증오하며 거부하는 마귀적 죄다.
- 히브리서(6:4–8; 10:25–29)와 요한1서(5:16, 사망에 이르는 죄)도 이를 간접적으로 다룬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태복음 12:31
4. 죄에 대한 형벌 원서 657–665쪽
형벌의 연기: 공의와 은혜의 이중성 원서 657–658쪽
- 형벌은 타락 직후 즉시, 완전히 집행되지 않았다. 최후 심판 후에야 완전히 시행된다.
- 하나님은 삶과 역사가 이어지도록 죽음의 형벌을 연기하고 완화하셨다.
- 그래서 형벌은 이중적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정한 것이면서, 오래 참으심과 자비를 보여 주는 은혜의 방편이다.
- 창 2:17의 경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죄에 마땅한 참되고 완전한 형벌, 곧 하나님과의 교제가 파괴되는 죽음을 선언하신 것이다. 수치·두려움·저주 같은 다른 형벌들도 진짜 형벌이지만, 위협을 즉시 다 실행하지 않으셨음을 전제한다.
- 형벌은 두 방향으로 공의를 섬긴다. 과거의 범법을 보상하고 미래의 범법을 예방한다.
동해보복법 (ius talionis)
- 눈은 눈으로 갚는 법. 이스라엘에도 이집트처럼 지배적이었다.
- 자주 사리사욕에 악용되었다.
- 예수는 산상설교에서 그 남용에 맞서 사랑과 인내라는 더 높은 원리를 제시하셨다(마 5:38–42).
그러나 권리 변호는 금지되지 않았다
- 예수도 대제사장 앞에서 자기 권리를 변호하셨다(요 18:22–23).
- 바울도 재판 과정에서 변호했다(행 22:25; 23:3; 25:10).
- 타인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되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해야 한다.
- 보복과 보응은 구약에서도 주님 자신의 일이다(신 32:35).
요점형벌의 연기는 하나님의 공의가 약해서가 아니다. 오래 참으심과 자비 때문이다.
[336] 보응과 현대 범죄학 원서 658–660쪽
- 보응은 형벌의 성경적 원리이자 기준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무죄로 여기지 않으시면서 고통받는 자에게 자비로우시다.
- 형벌을 선고할 권위는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자에게만 있다. 강한 자나 선한 자의 특권이 아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공의에 기초한다.
- 하나님과 무관하게 옳고 그름을 세우려는 시도는 공의와 도덕의 폐기로 끝난다. 기독교 세계관이 쇠퇴하자 죄책과 형벌 개념이 수정되고 끝내 추방되었다. 무신론은 정의와 도덕의 말살로 드러났다.
- 범죄의 원인도 죄악된 본성이 아니라 동물 조상의 잔재나 사회 환경에서 찾게 되었다.
| 현대 범죄학의 주장 | 바빙크의 비판 |
|---|---|
| 범죄 책임은 사회에 있다. | 개인에게서 부인한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무슨 근거로 사회에 돌리는가. 사회도 손상된 과거를 지녔으니 똑같이 면제되어야 한다. 사회 전체를 감옥에 넣을 수도 없다. |
| 범죄는 치료할 질병이다. 보복은 예수의 윤리에 어긋나고 잔인하다. | 치료로 바꿔도 환자를 범죄자처럼 다루는(‘간호’하는) 문제는 남는다. 국가가 공익에 맞지 않는 종교적·도덕적 확신까지 질병으로 다룰 수 있게 되면 자유 자체가 사라진다. |
| 형벌의 목적은 교정뿐이다. | 보응을 빼면 국가는 정의의 표준을 잃고 부적합한 임무를 떠안는다. 어떤 판사가 마음을 알아 개선을 판정하겠는가. 정의에 봉사하지 않는 형벌은 강압과 권력 의지를 부추길 뿐이다. |
현대 범죄학에서 배울 점추상적 형벌론에 맞서 범죄 행위와 범죄자 인격의 관련성에 주목한 것은 옳았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범했는지 고려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국가의 이익, 자기방어, 범죄 억제, 범죄자 개선도 보응의 구성요소로 통합될 수 있다.
“보응의 법은 … 동종(同種)의 정확한 갚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심각함에 비례하는 형벌을 요구하는 것이다.” — 바빙크
경고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때, 지상의 정의에 대한 믿음도 함께 사라진다. 형벌에서 보응을 빼면 정의는 무너지고 국가의 자의적 권력만 남는다.
[337] 형벌과 보응의 필연성 원서 661–662쪽
- 형벌의 근거는 유익이 아니라 정의다. 정의가 요구하고 범죄자가 도덕적·법적으로 빚을 졌기 때문에 형벌을 준다.
- 도덕적 세계질서는 사람이 만든 관념이 아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기초한 신적 공의의 계시다. 형벌의 목적은 정의를 회복하고 신적 공의를 유지하는 것이다.
- 형벌은 “행위의 악 때문에 가해지는 고통의 악”이다. 재산·자유·몸·생명의 박탈이다. 왜 고통이 질서를 회복하는지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의적인 것은 아니다.
- 하나님이 죄를 벌하지 않으시면 악에게 선과 같은 권리를 주어 자기를 부인하시게 된다. 그래서 죄를 벌함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필수적이다.
| 주제 | 가르침 | 성경 |
|---|---|---|
| 형벌의 출처 | 어느 정도 죄 자체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자연적 형벌 외에 구체적이고 특별한 형벌도 내리신다. | — |
| 개인 고통의 해석 | 특정 고통에서 그 사람의 개인적 죄를 끌어내지 말라. 고통의 원인은 흔히 세대, 민족, 인류의 죄에 있다. | 눅 13:4; 요 9:1 |
| 신자의 고통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고통은 형벌만이 아니라 시험·징계·양육의 도구가 된다. | 롬 8:28 |
| 신자의 죄 | 완전히 용서받은 신자의 죄도 그 자체로는 죄이며 형벌에 마땅하다. 개혁파는 반율법주의자에 맞서 신자도 계속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
| 상과 경건 | 경건한 자는 상 때문에 섬기지 않는다. 그러나 상에 무관심하지도 않다. | 고전 15:19 |
요점형벌은 오직 정의만이 존재할 권리를 가지며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시고 위대하시다는 강력한 증거다.
이생의 다섯 형벌
하나님이 이생에서 죄에 정하신 형벌은 다섯이다. 아래 [338]–[342]가 차례로 다룬다.
이생에서 죄에 정하신 형벌
① 죄책벌을 받아야 마땅한 법적 책임. 양심이 증언한다.
② 오염거룩에 반하는 생각·욕구·성향의 부패. 형상을 손상한다.
③ 고통개인의 죄가 아니어도 죄 일반의 결과. 자연도 탄식한다.
④ 죽음고통의 절정. 인간의 최종적이고 최대의 원수.
⑤ 사탄의 통치세상은 악한 자의 세력 안에.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기셨다.
[338] 첫째 형벌: 죄책 원서 663–664쪽
- 죄에는 언제나 죄책(형벌을 받아야 할 법적 책임)이 따른다. 성경과 양심이 이를 증언한다.
- 성경에서 죄를 가리키는 말이 자연스레 죄책의 뜻을 띨 만큼 죄·죄책·형벌은 하나로 얽혀 있다(창 4:13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 죄책을 직접 가리키는 말: 구약의 아샴(אָשָׁם), 신약의 오페일레마(ὀφείλημα, 빚, 마 6:12).
- 율법을 범한 자는 오히려 율법의 요구에 더 단단히 매인다. 하나님은 율법을 벗어난 모든 자에게 저주를 선언하신다(신 27:26; 갈 3:10). 저주는 복의 반대로서 사람을 파멸·죽음·심판·사탄에게 넘긴다.
- 모든 사람이 죄책이 있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롬 3:19).
사람의 복과 저주
그저 바람에 그친다.
하나님의 복과 저주
언제나 수행적이어서 그 뜻한 바를 반드시 이룬다.
죄책과 양심
- 이 객관적 죄책은 양심을 통해 인간 의식에 비친다. 그러나 죄책과 죄의식은 같지 않다.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숨은 죄가 있고(시 19:12), 모르고 지은 죄 역시 죄다(롬 1:19–21; 딤전 1:13–15).
- 그래도 죄책은 정도 차이는 있어도 의식에 반영되어 수치심 같은 보편적 감정으로 나타난다.
-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은 자기가 지금과 다른 존재여야 하며 율법에 온전히 맞아야 한다는 의식을 여전히 지닌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함을 스스로 고백한다. 이 증언이 양심이다.
- 양심은 인간 타락의 주관적 증명이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죄책을 증언하는 증인이다. 인간은 양심 안에서 자신을 정죄하며 자신에 맞서 하나님 편을 든다.
요점양심이 정확할수록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죄책이 옳음을 더욱 승인한다.
[339] 둘째 형벌: 오염 원서 665쪽
- 오염이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반하는 생각·욕구·성향의 부패다. 죄책이 우리를 형벌에 묶는다면, 오염은 우리를 더럽힌다.
-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죄의 양면이다. 하나가 있는 곳에 다른 하나도 있다.
- 언약의 동맹자 지위는 끝났고 에덴과 생명나무는 닫혔다.
- 개혁파는 형상을 둘로 구별한다. 좁은 의미의 형상(참된 의와 거룩)은 상실되었고, 넓은 의미의 형상은 손상되었으나 존속한다. 타락한 인간도 여전히 형상의 담지자다.
- 죄인은 인간이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삶 전체가 왜곡되어 죄를 섬긴다.
죄의 다양한 모양과 ‘죄의 왕국’
- 우리는 모두 부패한 한 인류에 속하고 죄는 본질상 같다. 그러나 모양은 다양하다. 개인·가정·세대·계층·민족마다 특징적인 죄가 있다.
- 동양과 서양, 시골과 도시, 문명국과 미개국, 20세기와 이전 세기에서 죄의 양상이 다르다. 특정 시대·집단에서 살인·자살·사생아 출산 같은 범죄가 섬뜩한 규칙성을 보이기도 한다.
- 그래서 원죄 외에도 집단적 죄책과 집단적 범행이 있다. 사람들이 서로 이어져 있듯 죄악된 성향과 행위도 이어진다.
- 바빙크는 이를 단일한 생의 원리로 움직이면서도 피조계만큼 다양하게 표현되는 죄의 왕국이라 부른다.
요점죄는 우리를 벌받게 할 뿐 아니라 더럽히며,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얽혀 있다.
5. 고통과 죽음 원서 666–673쪽
고통: 죄 일반의 결과 원서 666–669쪽
- 죄가 들어오자 인간은 피조물을 다스리던 통치권과 본래의 영광을 잃었다.
- 모든 고통이 특정 개인의 죄에서 직접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고통은 ‘죄 일반’, 곧 인류 전체의 죄가 낳은 결과다. “죄가 없었다면 고통도 없었을 것”이 성경 전체의 전제다(레 26:14; 신 28:15).
- 이성 없는 피조물도 인간의 죄 때문에 허무와 썩어짐에 매여 탄식하며 해방을 기다린다(롬 8:19–22).
- 성경은 비관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고통을 숨기지 않는다. 욥기, 시편, 전도서, 애가가 고통을 절절한 비탄으로 그린다. 이성은 이 고통을 설명하지도 덜어 주지도 못한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로마서 8:22
근대 사상 고통 = 존재의 구조
- 셸링: 만물이 시원적 혼돈(모든 것에 앞선 어둠)에서 나왔으므로 악은 피조물의 불가피한 몫이다.
- 불교: 살려는 의지 자체가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
- 자연과학: 생존 경쟁을 보여 주어 고통이 자연스러워 보이게 한다.
- 결국 고통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게 된다.
바빙크 고통 = 죄로 저주받은 세상의 현실
네 가지로 반론한다(아래).
- 첫째, 죄가 낳은 고통을 빼 보라죄가 직간접으로 초래한 고통만 걷어 내도 극심한 고통 대부분이 사라진다. 고통의 문제는 아주 작아진다.
- 둘째, 남는 고통도 저주를 드러낸다지진·홍수·기근·열차 사고 같은 고통은 남는다. 예수는 그 원인을 개인의 죄에 돌리지 말라고 하셨다(눅 13:4; 요 9:1).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죄로 온 세상이 저주 아래 있음을 드러낸다. 다만 땅의 저주는 은혜로 복이 되었다. 자연과의 고된 투쟁이 힘과 발전의 자극이 되었다.
- 셋째, 자연도 타락에 동참했다. 그러나 신중하게인간이 창조의 중심이므로 자연 전체가 타락에 묶였다. 그러나 죄는 실체가 아니므로 사물의 실체를 늘리거나 줄일 수 없다. 새 종은 없다. 가시와 엉겅퀴는 새로 창조되지 않았고(창 1:11), 야생 동물도 타락 전부터 있었다(창 1:24). 같은 기능과 힘이 다른 방향으로 작용했고, 돌봄을 잃은 자연은 퇴화했다. 바빙크는 다윈이 보여 준 동물의 먹이 적응 사례가 이 점에서 유익하다고 본다.
- 넷째, 창조는 이미 타락을 고려했다하나님은 타락을 미리 보시고 경륜 안에 두셨다. 그래서 타락 전 상태는 더 높은 영광으로 오르거나 허무에 떨어질 수 있는 임시적 상태였다.
요점고통은 존재의 본질이 아니라 죄로 저주받은 세상의 현실이다. 은혜가 그것을 복으로 바꾼다.
[341] 고통의 절정, 죽음 원서 670쪽
| 근래 신학자들의 주장 | 바빙크가 인정하는 진리 | 바빙크의 답 |
|---|---|---|
| 성경은 몇몇 구절을 빼고는 죽음을 죄의 형벌로 보지 않는다. | 구약에서 의인과 악인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고통과 죽음의 목적에서 갈린다. 의인에게 고난은 연단이다(시 119:71). 인간이 흙으로 지어진 유기체이기에 죽음이 그 생체와 함께 간다는 표현도 있다(창 3:19). | 그렇다고 죽음이 자연스럽고 필연적이 되지는 않는다. 성경 어디도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신약은 죄와 죽음의 연관을 분명히 가르친다(롬 5:12; 6:23; 고전 15:22). 죽음은 마지막에 폐기될 원수다. |
경험의 증언과 과학의 한계
- 죽음에 대한 공포는 모든 생명체에 타고난 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
- 공포를 이기고 편안히 죽은 이들도 있었고, 낭만주의는 죽음에 감상적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그래도 모두가 죽음에서 비정상적인 힘을 느끼고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났다.
- 자연과학이 죽음을 자연적이라 말하면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주장이다. 많은 과학자가 물질과 에너지는 불멸하고 단세포 원생동물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들로 된 유기체는 왜 죽는가.
- 과학은 죽음이 왜 필연적인지 모른다. 죽음의 수수께끼는 생명의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은 채 남는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 6:23
요점죽음은 창조의 질서가 아니라 죄의 결과다. 인간에게 언제나 최종적이면서 최대의 원수였다.
[342] 마지막 형벌: 사탄의 통치 원서 671–673쪽
- 사탄이 인간을 유혹해 타락시킨 이래 세상은 악한 자의 세력 안에 있다(요일 5:19). 성경은 그를 이 세상 임금(요 12:31), 이 세상 신(고후 4:4)이라 부른다.
- 범죄한 천사들은 심판 때까지 갇혀 있으나(벧후 2:4) 권세를 잃은 것은 아니다. 특히 이방 나라들 위에 권세를 행사한다.
- 에덴사탄이 인간을 유혹해 타락시킨다. 세상이 악한 자의 세력 아래 놓인다.
- 성육신사탄이 총력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공격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사탄과 벌인 공개적 전투였다. 그때는 사탄의 시대였다(눅 22:53).
- 십자가그리스도가 승리하시고(골 2:15; 히 2:14) 교회를 흑암의 통치에서 건지신다(골 1:13).
- 교회의 시대사탄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다(벧전 5:8). 교회는 중단 없이 싸우도록 부름받는다(약 4:7).
- 마지막 때사탄이 극렬히 공격하다가 제압되어(살후 2:8) 불 못에 던져진다(계 20:10).
반대쪽 극단: 미신
질병·흉년·역병·죽음 같은 자연적 악을 모두 사탄에게 돌리는 것은 이교의 미신이다. 교회는 이 점에서 한결같지 못했다.
| 시기·집단 | 악령에 대한 태도 |
|---|---|
| 어떤 교부들 |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와 담당 귀신이 함께 있다고 보았다. |
| 중세 | 마귀가 늑대인간으로 변신하고, 몽마로 사람을 덮치며, 피로 인친 계약을 맺게 한다고 믿었다. |
| 개신교 | 로마 가톨릭의 미신적 요소를 거부했다. 그러나 마녀재판 같은 악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
| 종교개혁의 공헌 | 악령의 실재를 인정하면서 섭리와 그리스도의 승리를 강조했다. 예수가 주님이시므로 사탄의 권세는 섭리에 굴복한다. |
| 합리주의 이후 | 미신을 뿌리 뽑으려 했으나, 미신은 자기설·최면술·텔레파시·강신술·점성술 같은 새 모습으로 불신 영역에서 되살아났다. |
- 미신은 지적 발전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성경을 성실히 따르는 신앙으로만 극복된다.
- 마귀의 존재를 믿는 것은 두 가지를 함께 지킨다. 죄의 끔찍한 심각성, 그리고 인간 구속의 가능성.
- 선택지는 둘뿐이다. 인류 밖의 한 마귀냐, 인간 모습을 한 무수한 마귀냐.
- 하나님 나라에 체계적으로 맞서는 영적 싸움은 실재한다. 그 지휘권은 이 세상 임금에게 있다. 그는 역사의 끝에 다시 나타나지만 완전히 정복될 것이다.
요점영적 싸움은 실재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그 결말은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
정리: 다른 입장과 바빙크
| 입장 | 그 입장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로마 가톨릭 (정욕론) | 정욕은 의지가 동의할 때만 죄가 된다. | 의지 이전의 불순한 욕구도 하나님 앞에서 죄다. 척도는 의지가 아니라 율법이다. |
| 로마 가톨릭 (대죄·소죄) | 죄는 대죄와 소죄로 나뉘고 소죄는 가볍다. | 율법은 하나의 전체라 작은 위반도 반역이다. 죄를 죄인에게서 떼어 세고 달 수 없다. |
| 펠라기우스주의 | 죄는 의지의 행위일 뿐이다. | 경험과 어긋난다. 죄는 의지 밖에서도 우리를 지배한다. |
| 슐라이어마허 | 죄는 자각할 때만 죄로 존재한다. | 무지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다만 무지는 용서를 구할 근거는 된다. |
| 현대 범죄학 | 범죄는 치료할 질병이며 책임은 사회에 있다. | 개인에게서 부인한 책임을 사회에 돌림은 모순이다. 보응이 빠지면 정의와 자유가 사라진다. |
| 반율법주의 | 신자는 더 이상 율법에 매이지 않는다. | 신자의 죄도 그 자체로 벌받아 마땅하다. 계속 용서를 구해야 한다. |
| 셸링·불교 | 고통은 창조와 삶 자체에 속한 필연이다. | 죄가 낳은 고통을 빼면 문제는 아주 작아진다. 자연재해도 인류의 죄로 인한 저주를 드러낸다. |
| 근대 신학 | 성경은 죽음을 죄의 형벌로 보지 않는다. | 구약도 죽음을 자연스럽다 하지 않고, 신약은 죄와 죽음을 분명히 잇는다. |
구조도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 죄는 물질이나 육체 같은 실체, 하나님과 맞서는 독립된 실체다.
- 욕구에 동의해야만 비로소 죄가 된다.
- 모르고 지은 죄는 죄가 아니다.
- 작은 죄(소죄)는 가벼우니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 범죄는 벌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 개인의 고통은 그 사람의 죄 탓이다.
- 신자는 더 이상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
- 죽음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이다.
- 질병과 불행은 다 사탄이 일으킨 것이다.
바른 이해 ✓
- 죄는 선의 결핍이자 선에 기생하는 왜곡된 활동이다.
- 의지 이전의 그릇된 욕구도 하나님 앞에 죄다.
- 죄의 기준은 죄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이다.
- 율법은 유기적 전체다. 사소한 위반도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 정의가 보응을 요구하며, 이것이 약자와 자유를 지킨다.
- 고통은 죄 일반의 결과다. 그러나 개인의 죄를 곧장 도출할 수는 없다.
- 신자의 죄도 그 자체로 벌받아 마땅하므로 계속 용서를 구한다.
- 죽음은 죄의 형벌이며 인간 최대의 원수다.
- 악령은 실재하나, 자연적 악을 사탄에 돌림은 미신이다. 삶은 하나님 손에 있다.
핵심 용어
- 불법 (ἀνομία)
- 하나님이 말씀 안에서 계시하신 율법을 어기는 것. 성경 전체에서 죄의 본질적 성격(요일 3:4).
- 결핍 (privation)
- 죄는 실체가 아니라 있어야 할 선이 빠지고 부패한 상태. 동시에 능동적으로 파괴하는 힘이다.
- 활동 (ἐνέργεια)
- 죄는 실체가 아닌 ‘활동’이다. 절름발이 개의 절뚝거림도 여전히 걸음이듯, 결함이면서 행위다.
- 왜곡 (deformity)
- 행위를 죄악되게 만드는 것, 곧 하나님의 법에서 이탈함. 말과 힘 자체는 선하다.
- 정욕 (concupiscence)
- 의지의 동의 이전에 일어나는 그릇된 욕구와 생각. 종교개혁은 이것도 하나님 앞에서 죄라고 보았다.
- 대죄와 소죄
- 로마 가톨릭이 고해성사 관행에서 나눈 죄의 구분(지옥에 이르는 죄 / 가벼운 죄). 개혁자들은 거부하고 다른 의미로 썼다.
- 성령 모독죄
-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은혜의 계시를 분명히 인정하고도 의식적·악의적으로 증오하며 거부하는 죄. 용서받지 못할 유일한 죄.
- 보응
- 범죄의 심각함에 비례해 되갚는 형벌의 성경적 원리이자 기준.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요구한다.
- 동해보복법 (ius talionis)
- 눈은 눈으로 갚는 고대의 형벌 원칙. 예수는 그 남용에 맞서 사랑과 인내를 제시하셨다.
- 죄책 (아샴 אָשָׁם / 오페일레마 ὀφείλημα)
- 하나님의 의와 충돌해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죄의 면. 하나님 앞에 진 객관적 빚.
- 하타
- 죄를 가리키는 구약 용어. 본래 윗사람에 대한 잘못을 뜻했다는 근대의 주장이 있으나,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여호와께 지은 죄’를 알았다.
- 양심
- 인간 타락의 주관적 증명.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죄책을 증언하며 자신에 맞서 하나님 편을 드는 증인.
- 오염
- 하나님의 거룩함에 반하는 생각·욕구·성향의 부패. 하나님과의 주관적 교제를 손상한다.
- 좁은 의미·넓은 의미의 형상
- 좁은 의미(참된 의와 거룩)는 타락으로 상실, 넓은 의미는 손상되었으나 존속한다.
- 죄의 왕국
- 단일한 생의 원리로 움직이면서도 개인·집단·시대마다 다양하게 표현되는 죄의 연대. 집단적 죄책과 범행을 포함한다.
- 반율법주의
- 신자는 더 이상 율법에 매이지 않는다는 주장. 개혁파는 신자도 계속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맞섰다.
성경 근거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요일 3:4 | 죄의 본질은 불법, 곧 하나님 법의 위반이다. |
| 롬 5:12 | 아담의 첫 죄는 의식적 범죄·불순종이었다. 한 사람의 죄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왔다. |
| 롬 2:12–26 | 율법 없는 이방인도 양심과 자연계시로 정죄된다. |
| 마 15:18–19 | 예수는 모든 죄의 근원인 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신다. |
| 마 5:28 | 마음의 음욕도 이미 죄다. 동의 이전의 욕구도 죄라는 근거. |
| 약 2:10 | 율법은 유기적 통일성을 지닌다. 대죄·소죄 구별에 반대한다. |
| 마 12:31 | 성령 모독만이 용서받지 못할 죄다. |
| 눅 13:2–3, 4; 요 9:1–3 | 고통이 곧 개인의 죄 때문은 아니다. 특정 고통에서 개인의 죄를 끌어내지 말라. |
| 롬 8:19–22 | 이성 없는 피조물도 인간의 죄로 허무에 매여 함께 탄식한다. |
| 롬 6:23 |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와 죽음은 연결되어 있다. |
| 요 12:31; 고후 4:4 | 사탄은 이 세상 임금, 이 세상 신이다. |
| 골 2:15 |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이기셨다.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한일서 3:4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로새서 2:15
복습 문제
바빙크는 아담의 첫 죄를 교만이나 불신 한 가지로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테르툴리아누스를 따라 원죄는 한 가지 범죄로 줄일 수 없고 원리상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범한 것이라고 본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 지식과 의지를 다해 분명한 명령을 어겼다. 그래서 첫 죄는 불순종·의심·교만·탐욕을 모두 품은 총체적 반역이자 타락이다.
죄가 ‘결핍’이라는 말과 ‘활동’이라는 말은 어떻게 함께 성립하는가?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지으셔서 선하므로 죄는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이다. 그러나 죄는 선에 기생해 적극적으로 부패시키고 파괴하는 힘이기도 하다. 절름발이 개가 절뚝여도 여전히 걷듯, 죄는 결함이면서 동시에 행위(ἐνέργεια)다. 그래서 죄는 인간의 능력을 없애지 않고 방향만 하나님에게서 돌려놓았다.
정욕 문제에서 로마 가톨릭과 종교개혁은 어떻게 다른가?
로마 가톨릭(과 아우구스티누스)은 정욕이 의지가 동의할 때만 죄가 된다고 했다. 종교개혁은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불순한 욕구도 하나님 앞에서 죄라고 했다. 첫 죄가 본성을 부패시켜 죄가 모든 기능 안에 자리 잡았고, 죄의 척도는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이기 때문이다.
개혁자들이 대죄·소죄 구별을 거부한 근거는? 그리고 용서받지 못할 유일한 죄는 무엇인가?
죄를 죄인에게서 떼어 세고 달 수 있는 양으로 보면 안 되고, 죄인에게는 모든 죄의 용서가 필요하다. 마 5:22는 분노도 지옥에 마땅하다고 하며, 율법은 유기적 통일성을 지녀(약 2:10) 사소한 위반도 반역이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성령 모독죄다. 그리스도 안의 은혜 계시를 분명히 인정하고도 의식적으로 증오하며 거부하는 마귀적 죄다.
범죄를 질병으로 보는 현대 범죄학에 대한 바빙크의 비판과 인정은?
비판: 개인에게서 부인한 자유의지와 책임을 사회에 돌리는 것은 모순이다. 치료로 바꿔도 환자를 범죄자처럼 다루는 문제가 남고, 국가가 종교적·도덕적 확신까지 질병으로 다루면 자유가 사라진다. 보응을 빼면 국가는 정의의 표준을 잃는다. 인정: 범죄자의 인격과 상황을 고려한 점은 옳고, 억제·개선 등도 보응의 구성요소로 통합될 수 있다.
이생의 다섯 형벌은 무엇이며, 죄책과 오염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죄책, 오염, 고통, 죽음, 사탄의 통치다. 죄는 하나님의 의와 충돌하는 점에서 죄책이고 거룩과 상반되는 점에서 오염이다. 죄책은 하나님과의 객관적 관계를 깨뜨리고(행위언약 파기) 우리를 형벌에 묶는다. 오염은 주관적 교제를 손상하고(형상 파괴) 우리를 더럽힌다.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죄의 양면이다.
한 줄“죄는 하나님께 맞선 불법, 그 값은 죽음이나 삶은 하나님 손에 있다”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