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질문: 죄는 어디서 왔고 왜 모두가 죄인인가?
- 죄는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작정 밖에도 있지 않은 신비다. 창세기 3장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선악을 정하려는 자율의 욕망이 낳은 역사적 타락을 증언한다.
- 죄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천사의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죄의 기원은 오로지 이성적 피조물의 의지에 있다.
- 펠라기우스·리츨·진화론·사변 철학은 죄를 개인 행위, 동물적 잔재, 하나님 안의 어둠으로 설명하려다 실패한다. 죄는 존재론적 실재가 없는 기생적 무법이고, 하나님은 죄의 작용인이 아니라 기껏해야 결핍인이다. 죄는 기원 없이 시작만 있는 부조리다.
- 죄의 보편성은 대표자 아담의 죄로 온 인류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선행적 심판, 곧 원죄에서 온다. 원죄는 모방이나 육체적 유전이 아니라 전가에 근거한 생식으로 전해지며, 열쇠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언약적 통일성이다.
- 그리스도 외에 예외는 없다. 전적 부패는 본성의 방향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신앙 고백이며, 하나님은 정죄와 함께 그리스도 안의 용서를 주신다. 죄를 작게 보면 은혜도 작게 구한다.
1. 죄의 기원 원서 589–609쪽
[307] 죄의 기원 원서 589–590쪽
- 타락한 세상도 여전히 선한 창조의 기초 위에 서 있다. 죄는 창조 직후 침투한 침입자이며, 그 기원은 신비로 남는다.
- 죄는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에서 제외되지도 않는다. 이 두 진술을 함께 붙드는 것이 개혁파의 핵심이다.
- 하나님은 단번에 인간을 죄의 가능성 너머로 옮기지 않으시고 언약적 자유의 길을 택하셨다. 아담과 후손에게 영향을 주는 시험적 명령이 죄의 가능성을 열었다.
- 창세기 3장은 진보가 아니라 타락의 이야기다. ‘선악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율을 향한 욕망이다.
| 하나님과 죄 | 성경 근거 |
|---|---|
|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 신 32:4, 욥 34:10, 시 92:15, 사 6:3, 합 1:13 |
| 하나님은 선하시며 모든 선의 원천이시다 | 시 36:9, 약 1:13, 17, 요일 1:5 |
|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정죄하고 심판하신다 | 시 5:4, 45:7, 롬 1:18 |
| 계시된 율법과 각 사람의 양심으로 죄를 금하신다 | 출 20, 신 5, 롬 2:14-15 |
|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속량하시고 백성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신다 | 롬 3:24-26, 고전 1:30 |
논증의 흐름. 하나님이 왜 죄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으셨는가? 바빙크의 답은 언약적 자유다. 명령이 없으면 순종도 불순종도 없다. 다만 가능성과 현실은 다르다. 하나님은 가능성을 허락하셨지 범죄를 일으키지 않으셨다. 인간은 자발적이고 고의적으로 시험에 실패했으므로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근대의 읽기 거부
- 창 3장은 성적 각성의 이야기
- 지적·도덕적 성장, ‘인류의 큰 걸음’
- ‘선악을 앎’은 문화적 능력
바빙크의 읽기 본문의 의도
- 이어지는 창세기는 홍수까지 악이 커지는 과정을 그린다
- 성경은 문화 자체를 악하다 하지 않는다
- ‘선악을 앎’ = 옳고 그름을 하나님 없이 스스로 정함(자기 입법), 어떤 외적인 법도 거부함
인간은 원하던 것을 얻었다(창 3:22). 그러나 그 해방은 참된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308] 뱀의 거짓말과 천사의 타락 원서 591쪽
- 죄는 간교한 뱀의 거짓말을 통해 들어왔다. 뱀 이야기를 욕망·그릇된 추론의 풍유나 신화로 읽으면 안 된다. 타락 전에는 동물이 말했다는 설명도 본문에 맞지 않는다.
- 유일하게 타당한 해석은 고대 교회의 주해를 따라 알려지지 않은 본성을 가진 영적·초지상적 힘이 침투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창 3장은 보이는 사실만 기술하고, 죄의 본질과 힘과 결과는 계시가 펼쳐지며 점차 드러난다.
- 죄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영적 존재들의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천사의 타락이 인간의 타락에 앞섰다. 두 타락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 사탄은 인류의 원수·유혹자·중상자·살인자이며 ‘큰 용’, ‘옛 뱀’이다. 더러운 영들도 사람을 일시적으로 장악한다.
| 비평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성경의 나머지가 타락에 대해 비교적 침묵하니 이야기의 기원이 늦다 | 침묵은 늦은 기원의 증거가 아니다. 황금기에서 추락했다는 이야기는 모든 민족에게 있다. |
| 타락 교리는 몇몇 구절에 기댄다 | 창 3장은 예언자부터 바울까지 성경 전체 인간 이해의 토대다. 롬 5장·고전 15장의 첫째 아담/둘째 아담 비교가 그 위에 선다. 암시 구절들(욥 31:33, 호 6:7, 사 43:27 등)이 다른 해석에 열려 있음은 인정한다. 그래서 교리를 계시 전체의 구조 위에 세운다. |
근거: 요 8:44, 요일 3:8(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 딤전 3:6, 유 6(천사의 타락과 정죄), 마 4:3, 엡 6:11, 살전 3:5, 딤후 2:26(유혹자), 계 12:9, 20:2(옛 뱀).
[309] 타락의 역사성과 이교의 견해 원서 592–594쪽
- 교회는 타락의 역사성을 주장한다. 진화론과 역사비평은 첫 사람의 완전성과 타락을 배제하는 듯 보이며, 낙원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고 말한다.
- 찰스 고어 같은 이는 창 3장의 역사성 대신 인간의 도덕의식과 경험 위에 죄 교리를 세우려 했다.
- 바빙크: 이 시도는 성경 없이도 세상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에 서 있다. 역사 지식은 결국 신뢰할 만한 증언에 의존하며, 창 3장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원래 상태와 현재 상태에 대한 영감된 증언이다.
- 비평이 실제로 거부하는 것은 문학 형식이 아니라 사건 자체다. 그런데 이 사건과 함께 기독교 전체가 서고 넘어진다. 타락이 없으면 구속도 필요 없다.
- 진화의 증거는 부족하고, 고대 바빌론·이집트 문명 이후 오히려 퇴보가 있었다. 자연과 역사의 학문은 타락의 사실성에 대해 발언할 권리가 없다. 그렇다고 과학으로 타락을 증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 창세기의 증언은 예언자·사도·그리스도의 호소로 확증되고 양심과 경험에 들어맞는다.
고대 신화들은 황금기와 쇠퇴, 선악의 갈등, 신의 진노와 진정에 대한 공통 신앙을 보여 준다. 그러나 죄의 기원과 본질은 알지 못했다. 이교는 하나님을 더듬어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행 17:27).
| 특별계시 밖의 견해 | 죄(악)의 뿌리 | 구원·해결 |
|---|---|---|
| 유교 | 인간은 본래 선하다 | 덕스러운 삶 |
| 불교 | 고통의 뿌리는 욕망 | 열반(의식의 소멸) |
| 조로아스터교 | 영원한 악의 원리 | 이원론에 빠짐 |
| 철학자들 | 자만심, 무지, 필연, 영혼의 선재적 타락 | — |
[310] 펠라기우스·리츨·진화론 원서 595–596쪽
이신론적 견해와 범신론적 견해가 모두 기독교 안으로 들어왔다. 원죄를 지우거나 약화하는 계보는 다음과 같다.
| 입장 | 주장 | 귀결 |
|---|---|---|
| 펠라기우스 | 원죄 부정. 모든 사람이 아담처럼 자유의지로 선택한다. 타락은 각자의 죄에서 반복된다. | 교회가 거부 |
| 로마 가톨릭 | 반펠라기우스주의. 의지는 완전히 부패하지 않았고, 타락은 초자연적 은사의 상실이다. 성례의 은혜로 회복된다. | 종교개혁이 이 이원론을 거부 |
| 소키누스파·항변파 | 하나님의 형상 = 손상되지 않은 자유의지. 타고난 죄의 성향은 유죄가 아니며 속죄는 자범죄에만 필요하다. | 19세기 리츨에게서 부활 |
| 리츨 | 죄의 지식은 복음에서만 온다. 개인의 죄 행위가 죄의 상태에 앞서며(펠라기우스), 개별 죄들이 서로 강화해 집단적 ‘죄의 왕국’을 이룬다(아우구스티누스). | 원죄는 없지만 죄의 왕국은 있다 |
| 진화론과의 결합 | ‘영의 진화’: 인간은 동물 본성에서 문명으로 올라섰다. 죄는 이전 단계의 습성으로 되돌아가는 시대착오다. 타락은 관습을 어길 때마다 반복된다. | 모든 사람이 “자기 영혼의 아담[또는 하와]” |
- 리츨이 계시와 신앙에서 출발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죄의 지식이 구약의 타락과 율법이 아니라 복음에서만 온다는 결론은 잘못이다.
- 바빙크: 리츨은 양립할 수 없는 두 입장을 억지로 잇는다. 죄가 왜 그렇게 보편적이고 완강한지 설명하려면 결국 원죄가 필요하다.
- 진화론적 체계에는 영속적 규범이 없다. 관습 자체가 진화하므로 기준이 바뀌면 죄의 내용도 바뀐다.
[311] 화해 시도의 실패 원서 597–599쪽
아우구스티누스(보편성)와 펠라기우스(의지성)를 화해시키려는 시도는 여러 층에서 무너진다.
- 양립 불가성경과 진화론은 인간 기원과 원죄에 대해 서로 배타적이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근본적 연속성이 있든지 없든지, 양다리는 없다.
- 설명 불능완전한 연속성을 택하면 자유의지, 도덕의식, ‘더 나은 자아’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 신앙고백 충돌계시·속죄·유아세례 등 신앙고백 전체를 현대화한다.
- 노예화자유의지를 말하면서 인간을 동물적 본성의 노예로 그려 도덕적 향상마저 불가능해진다.
선택지 ① 감각적 본성 탓
- 죄를 감각적 본성에 돌린다
- → 책임을 흐린다
선택지 ② 의지 행위 탓
- 펠라기우스처럼 의지의 행위로만 본다
- → 죄의 심각성·완강함을 외면한다
셋째 길: 하나님 안에서
- 뵈메·셸링의 신지학: 하나님 안의 잠재력의 긴장
- 헤겔: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자체가 타락
- 불교: 존재 자체가 최대의 죄
두 선택지는 모두 어정쩡하고 비일관적이다. 성(性)에 대해 한편으로는 선하다 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정욕의 원천으로 보는 태도가 그 예다. 어정쩡함은 오래가지 못하므로 사변은 셋째 길로 간다.
[312] 육과 죄, 죄의 필연성 비판 원서 599–601쪽
- 철학은 세상이 타락 없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증거는 주지만, 타락의 방식과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 감각적 본성은 죄의 근원일 수 없다. ① 노인의 교만·시기·하나님에 대한 적대 같은 영적 죄가 젊은이의 육적 죄보다 끔찍할 때가 많다. ② 금욕주의는 해결책이 아니다. 수도자는 죄를 마음에 품은 채 수도원 문을 넘는다.
| 바울의 ‘육’(σαρξ) | 뜻 | 대표 구절 |
|---|---|---|
| ① 몸의 물질 | 인간 육체의 물질적 실체. 영·정신·마음과 대조됨 | 고전 15:39, 롬 2:28, 골 2:5 |
| ② 연약한 인간 | 땅에 속해 연약하고 일시적인 인간 전체 | 창 6:3, 시 103:14, 사 40:6, 롬 3:20 |
| ③ 마음의 방향 가장 깊은 뜻 | 성령을 떠나 죄악된 자아와 그 욕구로 향하는 죄악된 마음의 방향 | 롬 7:14, 8:3, 8:7, 고전 3:3 |
- 육과 맞서는 ‘영’은 인간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다(롬 8:9). 인간의 영도 더러워 거룩해져야 한다(고후 7:1, 살전 5:23).
- 하나님에 대한 적의를 ‘육의 생각’이라 부른다(롬 8:7). 육은 영적·윤리적 범주다.
- 바울은 몸의 부활을 긍정하고(고전 15) 금욕주의를 거부한다(골 2:16). 몸을 죄의 샘으로 여겼을 리 없다.
- 다만 육은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도구다(롬 6:12). 유혹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밖에서 온다(요일 2:16). 땅의 피조물인 우리의 죄는 천사의 죄와 다르다.
죄의 필연론 칸트·셸링
- 칸트: 죄는 성장에 필요한 장애물
- 셸링: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려면 자기 안의 어두운 본성을 이겨야 한다
- 마 18:7, 눅 24:26, 고전 11:19 등과 아우구스티누스·칼뱅에 호소
- 죄가 ‘우연이 아니다’라는 점에서 겉으로는 진리처럼 보임
바빙크 기생적 무법
- 필연론은 죄를 영원하게 하고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며 죄 개념 자체를 지운다
- 죄는 의지의 윤리적 행위, 존재론적 실재가 없는 기생적 무법(ἀνομια)
- 하나님이 악에서 선을 이끄심은 죄의 의도를 거슬러 지혜와 전능으로 되는 일
[313] 하나님과 죄의 관계 원서 602–603쪽
- 성경은 두 가지를 함께 선언한다. 죄는 하나님의 경륜과 통치 밖에 있지 않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는 죄가 없다.
- 하나님을 책임에서 면제하려는 소극적 ‘허용’ 개념은 부적절하다.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조차 하나님의 뜻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 개혁파는 하나님이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고(출 7:3, 롬 9:17-18), 죄악된 행동을 명하시고(삼하 16:10, 24:1), 미혹을 보내신다(살후 2:11)는 ‘난제’를 피하지 않았다.
소극적 허용론의 실패
- 하나님과 죄의 관계 문제를 풀지 못한다
- 하나님이 죄의 창시자라는 비난을 막지 못한다
- 죄를 섭리의 다스림 바깥으로 밀어낸다
개혁파의 진술
- “모든 ‘허용’은 하나님의 의지의 행위다.”
-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죄의 행위자가 아니시다. 죄를 저지르는 이는 오직 피조물이다.
| 선 | 죄 | |
|---|---|---|
| 섭리 안에 있는가 | 예 | 예 |
| 하나님과의 관계 | 성령이 사람 안에서 적극적으로 일으키심 | 하나님은 작용인(efficient cause)이 아니라 기껏해야 결핍인(deficient cause) |
| 비유 | 빛 | 빛이 어둠을 낳지 않듯 하나님은 죄를 낳지 않으신다 |
죄도 하나님의 규례를 따른다. 중력과 천체의 궤도처럼, 질병과 부패와 죽음이 생명의 반대이면서도 법칙 아래 있는 것처럼, 도덕 질서는 죄의 열매인 죽음과 파괴를 역사 속에 낳는다. 이 규범성이 하나님의 통치가 죄의 영역까지 미친다는 증거다. 죄인은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 했으나 자녀에서 죄의 종이 되었다.
[314] 하나님은 왜 죄를 작정하셨나 원서 604쪽
바빙크는 추측 대신 성경이 보여 주는 용도를 든다.
| 하나님이 죄를 쓰시는 목적 | 예와 근거 |
|---|---|
| 악인을 벌하심 | 신 2:30, 수 11:20, 롬 1:21-28, 살후 2:11-12 |
|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 | 요셉 형제들의 악행(창 45:5, 50:20) |
| 백성을 시험하고 징계하심 | 욥(욥 1:11-12), 바울의 가시(고후 12:7), 고전 10:13 |
| 자기 이름을 영화롭게 하심 | 바로(출 7:3, 롬 9:17), 롬 11:33 |
-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전능하시므로 죄를 손안의 도구로 쓰실 수 있다. 우리가 죄를 다루면 더러워지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죄를 주권적으로 다스리실 수 없었다면 애초에 용인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의 존재와 능력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지 않는 것보다 악에서 선을 이끌어내는 것을 더 좋게 여기셨다.
그럼에도 죄에 대한 통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자비와 인내, 구원의 능력이 영광스럽게 드러난다. 인간이 행위언약을 깨뜨렸을 때 하나님은 은혜언약과 영원한 아들을 주셨다. 그러므로 세상의 죄는 신앙을 빼앗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한다. 하나님은 천사와 인간을 타락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315] 가능성에서 실재로: 신비 원서 606–607쪽
- 죄의 가능성이 어떻게 실재가 되었는지는 신비다. “죄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원(origin)이 없고 단지 시작(beginning)만 있을 뿐이다.”
- 그래도 몸을 가진 인간이 죄에 이르는 심리적 경로는 살필 수 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관찰이 길잡이다.
- 생각한 생각이 정신에 떠오른다
- 상상상상이 색을 입혀 매혹적으로 꾸민다
- 욕망욕망이 그것에 끌린다
- 의지마침내 의지가 실행한다
천사에게도 인간에게도 계명 위반을 하나님과 같아지는 길처럼 보이게 한 것은 상상력이었다. 다만 이 경로는 과정을 보여 줄 뿐, 왜 의지가 그 길을 택했는지는 답하지 못한다.
천사의 타락
- 시작과 원리는 교만(딤전 3:6, 벧후 2:4): 힘과 통치에서 하나님과 같아지려 함
- 밖에서 유혹받지 않고 속지도 않았다. 스스로 타락했다
- 마귀는 거짓을 ‘제 것으로’ 말한다(요 8:44)
인간의 타락
- 흙에 속한 인간(고전 15:45)
-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호소하는 사탄의 외적 유혹에 굴복
- 교만이 배제되진 않으나 중심은 아님
- 그래서 성경은 감각적 본성과 죄를 긴밀히 묶는다. 그러나 그리스 이원론이 아니다. 인간은 흙에 속한 본성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316] 타락의 시점과 선재설 비판 원서 608–609쪽
- 타락의 시간을 창 1:1 이전의 혼돈이나 영혼의 선재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성경적·신학적·철학적 근거가 없다.
- 선재설의 매력: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한 삶을 전생의 도덕적 빚에 대한 벌로 설명하고 싶어진다. 빚을 못 갚으면 다음 존재로 넘어가므로 선재와 윤회는 짝을 이루고, 둘 다 카르마의 원리가 지배한다.
| 선재설을 쓴 이들 | 내용 |
|---|---|
| 인도·페르시아·이집트 종교, 엠페도클레스·피타고라스·플라톤, 카발라 | 선재 개념의 원천들 |
| 오리게네스 | 이성적 피조물마다 운명이 다른 까닭을 설명하려고 영혼의 선재와 타락을 받아들임 |
| 신지학자들 | 인간은 본래 남녀양성이었고 여자의 창조가 이미 일어난 타락의 증거라는 발상과 결합 |
| 19세기 진화론·심령술 | 인간의 영혼도 동물 세계에 미리 있었고 죽은 뒤 더 높은 형태로 넘어간다. 동물이 인간이, 인간이 ‘초인간’이 된다 |
바빙크는 이런 사변을 피하고 성경의 단순한 설명에 만족하라고 권한다. 죄의 가능성은 창조와 함께 주어졌으나 타락은 그 가능성과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죄는 피조물의 불순종으로 생겼으므로 피조물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선재설은 죄를 존재의 구조에 심지만, 성경은 죄를 역사 안의 반역으로 본다.
2. 죄의 보편적 확산 원서 610–637쪽
[317] 죄의 보편적 확산 원서 610–612쪽
- 첫 조상의 첫 죄는 후손과 창조세계 전체에 불행을 불렀다. “온 인류가 이 죄로 인한 죄책, 오염, 결과를 짊어진다.”
- 보편성은 세상도 대체로 인정하지만 성경이 가장 분명하다. 홍수 이전의 사악함(창 6:5, 11-12), 홍수 뒤에도 달라지지 않은 인간,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 53), 모두에게 회개를 외친 세례자 요한과 사도들(행 2:38), 온 세상이 유죄라는 바울의 논증(롬 3:19-20).
- 그래서 ‘세상’이라는 말이 새 뜻을 얻는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이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되었다(요일 5:19).
- 죄는 성인이 되어 배우는 습관이 아니다. 잉태 때부터 우리의 특징이며, 성경은 이를 ‘육’이라 부르고 우리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 한다(엡 2:3). ‘본성적’은 그렇게 창조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타락한 세상에서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 부패는 전인에 미친다. 생명의 근원인 마음이 모든 죄악의 샘이 되었고(막 7:21), 영혼은 죄책과 더러움으로 얼룩졌으며, 눈·귀·발·입과 혀까지 모든 지체가 불의의 도구가 된다. 성도도 예외가 아니다.
로마서 7장: 펠라기우스주의·다수 근대 주석
- 인간의 정신이나 영은 죄에서 자유롭다
- 죄는 육에만 깃든다
- 본문은 거듭나지 않은 자의 이야기
바빙크(아우구스티누스식 주해)
- 현재 시제는 거듭난 사람의 투쟁이다
- 율법이 거룩하다는 판단(롬 7:14)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긴다는 감사(롬 7:25)는 거듭난 자의 고백
- 7:14 이하가 비중생자만 말한다면 거듭남은 필요 없고 선행적 은혜(prevenient grace)로 충분해진다 → 죄와 은혜, 칭의와 성화의 가르침 전체가 무너진다
[318] 롬 5장과 원죄의 근거 원서 613쪽
- 죄의 보편성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서 유래한다. 창 3장에 함의되고(창 3:14 이하의 저주는 후손에게도 미침), 구약에 전제되며, 바울이 롬 5장과 고전 15장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 성경은 자주 죄의 확산을 인간의 덧없는 감각적 본성과 연결한다(욥 14:4, 막 14:38, 요 3:6 등).
- 그러나 바울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은사가 아담의 타락 결과를 훨씬 능가한다는 데 있다. 로마서 5장의 전면에 선 것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다.
| 롬 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 판단 |
|---|---|
| 각 사람의 자범죄가 죽음의 원인이라는 뜻 | 아니다 고전 15:22는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는다고 말한다 |
| 아담이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와 다스리기 시작했다는 뜻 | 그렇다 ‘죄를 지었다’는 상태가 아니라 행위를 가리킨다 |
물론 우리는 자기 죄 때문에도 심판받는다. 그러나 핵심은 우리의 죄악된 상태가 대표자 아담의 죄 때문에 인류 전체에 내려진 하나님의 선행적 심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원죄 교리다.
[319] 펠라기우스주의와 그 반박 원서 614–616쪽
- 원죄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새로 지어낸 교리가 아니다. 다만 이전 신학자들은 자유의지와 자범죄를 더 강조했고, 펠라기우스는 이들에게 기대어 자기 인간론의 급진성을 감췄다.
- 펠라기우스: 모든 사람은 순수한 영혼으로 태어난다. 죄는 모방으로만 생긴다. 은혜 없이도 선을 원하고 행할 수 있다. 남의 죄로 나를 기소함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다. 뿌리는 그리스·로마 철학과 영혼의 순수함을 믿은 유대 사상.
- 같은 흐름: 로마 가톨릭의 초자연주의적 인간론(반펠라기우스 색채), 재세례파·소키누스주의·합리주의(원죄 거부).
- 루소(18세기): 문화가 모든 악의 근원, ‘자연으로 돌아가자’. 프랑스 혁명과 유토피아 운동은 천국을 땅에 세우려는 헛된 시도였으나, 이 꿈은 양육 지침과 낙관적 미래관으로 살아남았다.
- 리츨: 죄를 자범죄에 한정하고 ‘죄의 법’을 개인 죄들의 총합으로 본다. 공통 죄악성은 습관과 또래 압력의 결과. 어린아이의 의지가 선을 향한다며 무죄한 삶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
역사와 경험의 반박
-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에게도 자기 추구·허영·질투·교만·거짓·고집 같은 죄의 씨앗이 있다
- “죄 없는 사람은 존재한 적이 없다.”
- 나쁜 열매가 나쁜 나무를 전제하듯, 보편적 죄악된 행위는 죄악된 내적 성향을 가리킨다
- 죄는 인류 전체의 상태이자 본성의 속성이다. 인류를 개인의 합으로 보는 유명론자만이 이를 부정한다
펠라기우스주의의 딜레마
- 모방이 우발적이면 → 죄의 보편성은 수수께끼로 남는다(비현실)
- 모방이 실제 원인이면 → 원죄보다 더 끔찍한 운명론
- 스스로 더 인간적이라 하나 실상은 정반대
[320] 반펠라기우스주의 비판 원서 616쪽
펠라기우스주의는 정죄되었지만, 더 교묘한 형태가 교회 안에서 크게 자랐다. 반펠라기우스주의: 아담의 타락이 후손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의지는 약화되었을 뿐 전적으로 부패하지 않았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의지의 자유가 파괴되지 않았고 정욕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했다. 재세례파·항변파·많은 근대 신학자가 동의한다.
| 결함 | 내용 |
|---|---|
| ① 죄의 심각성 | 의지적 무법으로서 죄의 심각성을 가볍게 본다 |
| ② 죄와 죄책의 분리 | 죄와 죄책을 떼어 놓는다 |
| ③ 자유 문제 | 인간 자유의 문제도 풀지 못한다 |
| ④ 보편성 | 모방설을 거부하면 보편성에 대한 설명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병든 상태가 유죄라고 인정하는 순간 약화된 자유의지는 쓸모가 없다 |
| ⑤ 하나님의 공의 | 유아기에 죽은 아기도 사망을 겪는다. 사람이 그런 상태로 태어나게 허용하심이 공의와 어떻게 조화되는가? 이 물음에 접근조차 못 한다 |
[321] 아우구스티누스와 로마의 원죄론 원서 617–618쪽
-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는 둘째 아담 그리스도와의 대조에서 배워 보편적 원죄의 책임을 첫째 아담에게 두었다.
- 원죄 논증은 인류의 비참함에서 출발한다. 아기의 첫 울음부터 임종의 신음까지의 고통은 죄의 형벌로만 설명된다. 모두가 완전히 무죄하다면 선하고 공의로운 하나님이 그들을 죄와 사망에 처하실 수 없다.
- 아담은 사적 개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함한 존재였다. “모두가 그 한 사람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 한 사람 안에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약점
- 죄책과 오염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함
- 정욕을 성적 충동과 너무 밀접히 연결함
로마 가톨릭
- 스콜라 신학: 원의의 상실에 정욕의 요소를 더함
- 트리엔트: 아담이 의를 잃고 영혼과 육체가 더 나빠졌으며, 죄가 유전으로 각자의 것이 되어 세례로만 제거됨. 그 이상은 삼감
- 세례받은 자의 정욕은 죄가 아니고 자유의지는 약화되었을 뿐
- 결과: 무게중심이 원의 상실로 옮겨 가 타락 전후의 인간이 거의 같다. 남는 것은 ‘발가벗은 자연’으로의 복귀
[322] 종교개혁의 원죄론 원서 619–620쪽
- “원죄는 무언가의 상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본성의 전적 부패다.”
- 칼뱅: 사람 전체가 정욕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정욕은 죄의 기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죄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아무 영적 선도 행할 수 없고 모든 악으로 기울어 있다.
- 루터파 일부는 로마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나쳤다. 루터는 원죄를 ‘인간의 본질’이라 불렀고, 「일치 신조」는 인간을 돌이나 나뭇조각에 비유했다.
- 개혁파는 이런 표현을 경계하면서, 원죄는 소극적으로 원의의 상실, 적극적으로 본성의 부패이며 그 원인은 전가된 아담의 범죄라고 가르쳤다.
- 소뮈르 학파플라카이우스가 간접 전가를 주장
- 뉴잉글랜드조나단 에드워즈와 뉴잉글랜드 신학이 이를 따름. 고전적 아우구스티누스·개혁파 견해는 수명을 다한 듯 보임
- 1845년게르비누스: 유전적 죄에 대한 두려움은 유령에 대한 두려움 같은 미신
- 오늘칸트·셸링·쇼펜하우어의 철학, 유전과 인류의 연대성 이론, 역사·사회학 연구가 원죄 교리에 뜻밖의 지지를 보냄
[323] 원죄의 신비와 대표 원리 원서 621쪽
- 원죄는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무겁고 어려운 주제다. 설교에서 이보다 친숙한 것이 없지만 이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드 메스트르: 원죄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만 정작 그 자신이 가장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 “우리는 그것 없이는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 남아 있다.”
- 성경은 첫 범죄가 죄와 죽음의 원인이라 가르치고(롬 5:12, 고전 15:22) 경험이 확증하지만, 이성에게는 하나님의 자의적 처사로 보이기 쉽다.
- 바빙크는 신비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다만 자의성의 인상은 걷어낼 수 있다. 열쇠: 아담 안의 유기적 통일성은 육체적인 것 이상이며 대표자 아담의 역할에서 시작한다.
육체적 비교만 하면
-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도 아담의 자손이므로 죄 없는 분일 수 없게 된다
- 실재론대로 우리가 씨앗으로 아담 안에 있었다 해도, 시험 명령을 직접 어긴 사람은 아담이다
대표 원리로 보면
- 그리스도의 의를 통한 구속은 대표 원리로만 이해된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말은 우리가 몸소 했다는 뜻이 아니다
-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그 일을 행하셨다.”
- 아담의 경우도 같다: 원죄는 혈연의 자동 유전이 아니라 대표자 안에서 내려진 심판
실재론과 언약론 원서 622–625쪽
| 실재론 | 언약론(바빙크) | |
|---|---|---|
| 강조점 | 인류의 육체적 유대(핏줄) | 육체적 통일성 위에 윤리적·언약적 통일성 |
| 옳은 점 | 천사는 각각 지음받았지만 인류는 한 혈통의 한 가족이다(행 17:26) | 실재론의 출발점을 인정한다 |
| 문제 | 아담의 죄책만 아니라 모든 조상의 죄까지 내게 쌓인다.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책임 있는 인격이라는 진리가 사라진다. 사람은 바다의 물결 하나 같은 인류의 일시적 표현이 아니다 | 대표의 원리로 개인의 인격성을 지킨다 |
일상의 유비. 가족·민족·교회·국가 같은 도덕 공동체에는 구성원을 묶는 끈이 있고(고전 12:26), 아버지·교사·군주처럼 한 사람이 전체를 대표한다. 그래서 복의 공동체와 심판의 공동체가 생긴다. 사람들은 앞선 세대의 유산은 반기면서 그 빚은 부당하다고 여긴다. 이스라엘도 죄의 연대성을 규정한 율법(출 20:5 등)을 원망했다. 하나님의 답은 권리 주장이 아니라 회개하면 새 공동체가 되도록 힘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스도는 연대성을 없애지 않고 더 나은 방식으로 회복하셨다.
유비의 한계. 위인이나 왕의 영향도 시대·장소·언어에 갇혀 있다. 인류 전체에 영원히 미치는 영향은 오직 아담과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두 사람은 인류의 통일성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운다.
[324] 죄가 죄를 낳는다 원서 626쪽
- 아담과 후손에게서 죄악된 상태가 죄악된 행위에 뒤따른다. “원죄의 오염(original pollution)은 원죄의 죄책(original guilt)에 대한 형벌이다.”
- 펠라기우스주의자는 의지가 여전히 죄를 지을 수도 안 지을 수도 있다며 반대한다. 그러나 성경은 뒤따르는 죄를 앞선 죄의 벌로 자주 다룬다(삼하 12:11-12, 사 6:9-10, 롬 1:24-28, 살후 2:11-12).
- 경험도 같다. 욕구에서 나온 의지의 행위는 다시 그 욕구를 강화하여 죄를 습관으로 만든다. 행위는 부메랑처럼 성격에 흔적을 남긴다.
| 물음 | 바빙크의 답 |
|---|---|
| 죄가 어떻게 벌일 수 있는가? | 죄는 법을 깨는 것이고 벌은 법을 지키는 것이므로 죄 자체는 벌이 아니다. 그러나 뒤따르는 죄는 죄인을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지게 하고 탐욕·공포·후회 속에 더 비참하게 만든다. 그 점에서 벌이라 불린다. |
| 결과는 행위에 비례하는가? | 아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평생의 눈물이 되기도 한다. 죄는 성향과 열정이 되어 폭군처럼 지배한다.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 된다. |
| 아담의 범죄는 실수였는가? | 아니다. 지성의 의심과 불신, 마음의 탐욕과 교만이 앞선 의식적 행위였다. 단 한 번의 범죄가 그의 본성 전체를 바꾸고 하나님의 빛과 율법에서 급격히 단절시켰다. |
아담은 어둠으로 들어가면서 온 인류를 함께 데려갔다. 우리 모두는 타락 직후의 아담과 같은 도덕적 상태로 태어난다. 왜 한 죄가 이토록 큰 결과를 낳는지는 신비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325] 전가와 유전, 원죄의 전달 원서 627–630쪽
실재론으로 보든 언약론으로 보든 아담의 범죄는 모든 후손의 죄다. 바빙크는 이를 하나님의 정하심으로 이해하라고 한다.
- 심판 (κριμα)재판장 하나님이 한 사람의 한 범죄에 내리신 심판
- 정죄 선고 (κατακριμα)모든 후손이 유죄하고 부정하며 죽어 마땅하다는 선고(롬 5:16)
- 전가 (imputation)모방(imitation)이 아니라 법적으로 돌려짐
- 생식 (generation)전가에 근거해 출생으로 ‘기원된 죄’(originated sin)가 온다
18세기
- 인간의 자연적 선을 찬양
- 악은 사회 탓
19세기(다윈주의)
- 악은 인간 안의 동물 본성에서
- 유전이 불변의 법칙이라면 존엄·자유·책임은 환상이 된다
바빙크
- 유전 현상은 몇 법칙으로 묶기엔 너무 복잡하다. 같은 부모의 자녀도 크게 다르다
- 인간은 물려받은 나쁜 성향도 넘어설 수 있는 영적·도덕적 존재
- 영혼유전설로 인간을 과거의 산물로만 보는 시도도 실패
- 도덕 세계에도 법칙이 있으나 자연 법칙과는 다르다. 사람마다 자유·책임·죄책의 정도가 다르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한다(눅 12:48). 인간은 이유를 갖고 그러나 강요 없이 행하는 인격이다.
- 원죄는 인류의 집단적 행위이자 집단적 죄책이지만, 사람을 악한 세력의 수동적 도구로 만들지 않는다.
- 유전 과학은 교리를 지지할 수는 있으나 세우거나 무너뜨리지 못한다. “원죄는 오늘날 우리에게 유전이라고 알려진 것과 동일시될 수 없다.”
- 원죄는 종의 본질이 아니다(중생과 성화로 제거됨). 개인이 얻은 특성도 아니다(중생한 부모도 진노의 자녀를 낳음).
[326] 그리스도만이 예외: 마리아론 원서 630–631쪽
죄의 보편적 지배에서 벗어난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아담에게서는 인격이 본성을 부패시켰고, 그 뒤 모든 사람은 부패한 본성이 인격을 부패시킨다.
| 로마 가톨릭의 주장 | 바빙크의 답 |
|---|---|
| 1854년 피우스 9세: 마리아는 잉태 첫 순간부터 원죄의 오염에서 보존되었다(무염시태). 몽소승천도 함께 간다 | 성경은 이를 보증하지 않으며 선언은 설득력이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 외에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단호히 가르친다 |
| 근거 본문: 창 3:15, 아가의 여러 구절, 눅 1:28·41·48, 계 12장. 모형: 노아의 방주, 비둘기, 불타는 떨기나무 | 남용이며 논거의 빈약함만 보여 준다 |
| 마리아의 특정한 죄악된 언행은 기록되지 않았다 | 사실이다(막 3:21, 요 2:3-4도 그렇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했다(눅 1:47). 구주가 필요하다는 고백은 죄인의 고백이다 |
| 마리아는 복되다 | 복됨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지 무죄해서가 아니다(눅 1:28, 48) |
|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미리 적용받아 보존되었다 | 아퀴나스조차 정경에 그런 전승이 없다고 인정했다. 남는 근거는 마리아에게 돌린 중보직에서 나온 ‘적절함’의 추론뿐: “마리아는 죄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마리아는 죄가 없다.” |
[327] 전적 부패의 의미 원서 632–637쪽
예외가 없다면 죄는 인간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인을 지배한다. 몸과 영혼, 마음과 정신, 모든 기능이 오염되었다.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하고(창 6:5, 8:21, 렘 17:9),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엡 2:1). 그래서 거듭남이 하나님 나라의 전제이고(요 3:3), 구원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요 6:44, 15:5, 빌 2:13). 이 혹독한 교리는 네 가지로 설명된다.
도덕주의자들
- 로슈푸코, 파스칼, 홉스, 칸트, 셸링, 쇼펜하우어도 인간의 악을 같은 목소리로 증언한다.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더 가혹하다
- 그러나 이기심을 인간의 본질로 보아 사람을 깎아내린다
하나님
- 정죄하시며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는 사랑을 주신다
- 죄는 본질이 아니므로 제거될 수 있다
-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후예들은 사람이 행하는 많은 것을 선하고 아름답다고 기꺼이 인정할 수 있다
정리: 원죄론의 역사 흐름
- 바울롬 5장·고전 15장: 둘째 아담과의 대조로 보편적 원죄의 책임을 첫째 아담에게 둠
- 아우구스티누스 이전원죄를 알았으나 자유의지와 자범죄를 더 강조
- 펠라기우스원죄 부정, 순수한 영혼, 모방에 의한 죄 → 교회가 정죄
- 아우구스티누스“우리 모두는 그 한 사람 안에 있었다.” 다만 전달 방식 설명 부족, 정욕을 성적 충동과 연결
- 반펠라기우스·스콜라의지는 약화되었을 뿐. 원의의 상실에 정욕의 요소를 더함
- 트리엔트 공의회원죄는 유전으로 각자의 것이 되고 세례로 제거됨. 정욕 자체는 죄가 아님
- 종교개혁원죄 = 본성의 전적 부패(칼뱅). 루터파 일부의 과한 표현(‘인간의 본질’, 「일치 신조」). 개혁파: 원의 상실 + 본성 부패, 원인은 전가
- 소키누스파·항변파자유의지는 손상되지 않음, 속죄는 자범죄에만
- 소뮈르·뉴잉글랜드플라카이우스의 간접 전가, 에드워즈가 따름
- 18세기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자’, 악은 사회 탓
- 1845년게르비누스: 유전적 죄는 미신
- 1854년피우스 9세의 마리아 무염시태 선언
- 19세기리츨의 ‘죄의 왕국’, 다윈주의의 동물 본성론. 동시에 철학·유전·사회학이 원죄 교리를 다시 지지
구조도
- 자율의 욕망타락의 핵심
- 피조물의 의지죄는 하늘에서, 의지에서 시작
- 설명의 실패펠라기우스·리츨·진화론·사변
- 통치 아래의 무법하나님은 결핍인일 뿐
- 보편적 확산잉태부터 온 인류에
- 아담의 대표성원죄 교리의 역사
- 언약적 통일성원죄의 전달
- 그리스도만 예외전적 부패의 의미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 죄는 몸과 감각적 본성에서 나온다.
- 원죄는 없고 각자 따라 하다 죄짓는다.
- 죄도 성장에 필요하니 결국 하나님 탓이다.
- 하나님이 작정하셨으니 죄의 원인도 하나님이다.
- 타락은 의지를 조금 약하게 했을 뿐이다.
- 원죄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병이다.
- 로마서 7장은 거듭나지 않은 자의 이야기다.
- 전적 부패는 인간이 돌처럼 무능하다는 뜻이다.
바른 이해 ✓
- 죄는 하나님을 떠난 마음의 방향이다. 노인의 영적 죄가 더 무섭다.
- 아담 안에서 온 인류가 정죄되어 죄인으로 태어난다.
- 하나님은 죄의 원인이 아니며 선은 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하나님은 작용인이 아닌 결핍인이며, 행위자는 피조물뿐이다.
- 본성 전체가 부패해 스스로 영적 선을 행할 수 없다.
- 전가에 근거해 생식으로 전해지는 하나님과의 교제 상실이다.
- 율법을 거룩하다 여기는 거듭난 자의 투쟁이다.
- 본성의 근본 방향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신앙 고백이다.
핵심 용어
- 시험적 명령
- 아담과 후손에게 영향을 주며 죄의 가능성을 연 하나님의 명령. 명령이 없으면 순종도 불순종도 없다.
- 언약적 자유
- 시험 명령 아래 순종을 스스로 택할 수 있던 인간의 길. 하나님은 단번에 죄의 가능성 너머로 올리지 않고 이 길을 택하셨다.
- 자율 (autonomy)
- 선악을 하나님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외적인 법을 거부하는 것. 타락의 핵심 욕망.
- 육 (σαρξ, 사르크스)
- ① 몸의 물질 ② 연약하고 일시적인 인간 ③ 가장 깊게는 성령을 떠나 죄악된 자아로 향하는 마음의 방향.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도구.
- 무법 (ἀνομια, 아노미아)
- 존재론적 실재 없이 선에 기생하는 죄의 본질. 하나님의 법을 벗어남.
- 작용인 / 결핍인 (efficient / deficient cause)
- 선은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일으키시지만, 죄에 대해 하나님은 기껏해야 결핍인이다. 빛이 사라지면 어둠이 생기듯 빠짐으로 생기는 원인.
- 기원과 시작 (origin / beginning)
- 죄는 참된 기원 없이 시작만 있다. 설명된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다.
- 원죄
- 대표자 아담의 죄로 인류 전체에 내려진 하나님의 선행적 심판. 죄책과 본성의 부패를 함께 포함한다.
- 원의
- 타락 전 인간이 지녔던 본래의 의로움. 로마는 원죄를 그 상실로 축소하고, 개혁파는 원의 상실(소극)과 본성 부패(적극)를 함께 말한다.
- 원죄의 죄책 / 오염 (original guilt / pollution)
- 오염은 죄책에 대한 형벌로 뒤따르는 죄악된 상태. 둘은 언제나 함께 간다.
- 심판 / 정죄 선고 (κριμα / κατακριμα)
- 한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후손에 대한 정죄 선고를 포함한다(롬 5:16).
- 전가 (imputation)
- 대표자의 행위를 그가 대표하는 이들의 것으로 법적으로 셈하는 것. 원죄는 모방(imitation)이 아니라 전가에 근거한 생식(generation)으로 온다.
- 기원된 죄 (originated sin)
- 아담에게서 기원하여 우리 모두의 경험이 된 죄.
- 간접 전가
- 부패하게 태어나므로 원죄가 전가된다는 소뮈르 학파 플라카이우스의 견해. 에드워즈와 뉴잉글랜드 신학이 따랐다.
- 실재론
- 온 인류가 육체적으로 아담 안에 있었다고 보는 견해. 출발점은 옳으나 개인의 인격성을 잃게 한다.
- 윤리적·언약적 통일성
- 육체적 통일성에 더해진, 대표 원리에 따른 인류의 연합.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 이를 유지한다.
- 반(半)펠라기우스주의
- 타락으로 의지가 약화되었을 뿐 전적으로 부패하지 않았다는 견해.
- 선행적 은혜 (prevenient grace)
- 앞서 돕는 은혜. 롬 7장을 비중생자의 이야기로 읽으면 거듭남 없이 이것만으로 충분해진다.
- 선재설
- 영혼이 몸 이전에 존재했고 거기서 타락했다는 설. 윤회·카르마와 짝을 이룬다. 바빙크는 근거 없다고 본다.
- 무염시태
- 마리아가 잉태 첫 순간부터 원죄의 오염에서 보존되었다는 로마 가톨릭 교리(1854년 피우스 9세).
- 전적 부패
- 삶의 모든 영역과 기능이 하나님을 떠난 방향으로 기운 상태. 악의 극대화가 아니라 근본 방향의 문제이며, 윤리적 무능이다.
성경 근거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창 3:22 |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처럼 스스로 선악을 정하려 했다([307]) |
| 요 8:44 |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을 ‘제 것으로’ 말한다. 천사는 스스로 타락했다([308], [315]) |
| 롬 8:7 | 하나님에 대한 적의가 ‘육의 생각’이다. 육은 영적·윤리적 범주([312]) |
| 창 50:20 | 하나님은 형제들의 악을 백성의 구원에 쓰신다([314]) |
| 시 51:5 | 죄는 잉태 때부터 우리의 특징이다([317], [327]) |
| 엡 2:3 |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317]) |
| 롬 7:14, 25 | 율법을 신령하다 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거듭난 자의 투쟁([317]) |
| 롬 5:12 |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 아담의 죄로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318], [323]) |
| 고전 15:22 |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는다. 롬 5:12를 자범죄로 읽지 못하게 하는 근거([318]) |
| 롬 5:16 | 한 범죄의 심판(κριμα)이 모두의 정죄(κατακριμα)를 포함한다([325]) |
| 롬 11:32 | 한 사람 안에서 모두를 가두시고 모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실재론과 언약론) |
| 눅 1:47 | 마리아도 하나님을 자기 구주로 기뻐했다([326]) |
복습 문제
바빙크는 창세기 3장의 ‘선악을 안다’를 무엇으로 해석하며, 어떤 근대 해석을 거부하는가?
하나님과 죄의 관계에서 ‘소극적 허용’ 개념이 부족한 이유와 바빙크의 대안은?
바울의 ‘육’(σαρξ)은 왜 몸을 죄의 근원으로 보는 근거가 될 수 없는가?
천사의 타락과 인간의 타락은 어떻게 다른가?
롬 5:12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를 각자의 자범죄로 읽을 수 없는 이유와 원죄의 정의는?
실재론만으로 원죄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와, 개혁파가 플라카이우스의 간접 전가와 다른 점은?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