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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질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슨 뜻인가?
- 사람은 창조의 면류관이다. 동물은 땅이 산출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숙고를 거쳐 그분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다윈주의는 생명·종·정신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하는 철학이고, 인류가 한 혈통이라는 사실은 원죄·속죄·교회 보편성의 전제다.
- 사람은 형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이다. 영혼·기능·덕·몸·통치·낙원 거주까지 전인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이다.
- 형상을 형식적 자유로 줄이는 펠라기우스식 견해도, 원의를 덧붙여진 은사로 보는 로마 가톨릭도 틀렸다. 개혁파는 형상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누고, 은혜를 자연이 아니라 죄에 맞세운다.
- 아담의 온전한 상태는 아직 영광의 상태가 아니었다.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에 이르는 행위언약 아래의 출발점이었고,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 형상은 한 머리 아래 묶인 인류 전체에서 실현된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은 함께 서고 넘어진다. 이 통일성과 각 사람의 인격을 함께 지키는 것은 영혼창조설이다.
1. 인간의 기원 원서 543–552쪽
원서 543–544쪽
- 사람은 영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의 결합체다. 그래서 창조의 면류관, 곧 정점이다.
- 여섯째 날 육지동물에 이어 지어졌으므로 동물과 닮은 점이 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 창세기 1장과 2장은 서로 모순되는 두 기사가 아니다. 2장은 1장의 해설이다.
- 기독교가 반대하는 것은 발전 개념 자체가 아니라 다윈 가설이 떠받치는 자연주의와 유물론이다.
동물 창 1:24
-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땅이 산출했다.
- 사람과 어떤 모양을 공유하지만 형상은 아니다.
사람 창 1:26
- 하나님의 숙고를 거쳐 그분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 만물의 머리가 되도록 창조되었다.
- 땅에서 났으나 하나님을 향해 세워진 존재다.
| 본문 | 관점 | 사람의 자리 |
|---|---|---|
| 창세기 1장 | 창조 전체를 넓게 다룬다 | 창조의 목표이자 종점, 면류관 |
| 창세기 2장 | 하늘과 땅의 창조를 전제하고 주제별로 서술한다 | 역사의 시작,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 |
- 2장이 식물보다 사람을 먼저 말하는 듯 보여도, 그것은 에덴동산이 사람 뒤에 조성되었다는 뜻일 뿐이다(창 2:4–9).
- 돕는 배필 기사(창 2:18)는 창조 순서를 보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동물 가운데는 짝이 없고 사람과 같은 존재가 필요함을 보인다.
- 교회 역사에서 사람의 신적 기원은 한 번도 의심받지 않았다. 특별계시 밖에서는 신들이 만들었다, 땅에서 저절로 나왔다,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온갖 추측이 있었다. 오늘날 지배적인 것은 자연선택에 의한 다윈의 진화 가설이다.
- 종의 가변성, 하등에서 고등으로의 진화, 무기물에서 유기물의 발생은 증명된 사실이 아니라 유사성과 변이에 기초한 가정과 추측이다.
[280] 다윈주의에 대한 비판 원서 544–546쪽
- 다윈주의는 신자들뿐 아니라 과학자와 철학자들에게서도 거센 반대를 받았다.
- 19세기 말 지성계는 기계론에서 역동론으로, 유물론에서 범신론으로 돌아섰다. 유물론이 물질과 힘으로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바빙크의 비판은 종교적 편견이 아니라 과학 내부의 한계에서 나온다.
- ① 생명의 기원무기물의 우연한 결합이 생명을 낳았다는 주장은 파스퇴르가 무너뜨렸다. 생명의 씨가 운석을 타고 왔다는 설명은 절망의 표현이다. 많은 과학자가 생기론으로 돌아갔다.
- ② 종의 다양성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전이는 관찰된 적이 없다. 획득형질의 유전도 확실하지 않다. 아가미에서 폐로 가는 작은 변화는 생존에 오히려 장애다.
- ③ 사람의 기원화석과 발생학에 기댄 논증은 과도적 형태의 부재 앞에서 허우적댄다.
- ④ 정신적 차원의식·언어·의지의 자유·종교·도덕을 동물의 현상에서 끌어내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언어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놓인 루비콘 강이다.” — 막스 뮐러(Max Müller)
- 정신과 뇌의 관계는 담즙과 간의 관계와 전혀 다르다.
- 사회적 본능만으로는 양심, 책임, 죄의식, 처벌의 당위를 설명할 수 없다.
- 다윈주의는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실험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산물이다. 다윈 자신도 여러 견해가 사변적임을 인정했다.
- 사람을 고등동물로 보면 책임 있고 종교적·도덕적인 존재라는 자리가 무너진다. 그래서 진화론은 도리어 우리를 성경의 창조로 되돌려 놓는다.
[281] 인류의 연대 원서 547–548쪽
- 진화론은 사람의 기원만이 아니라 인류의 연대·통일성·원거주지에서도 성경과 부딪친다.
- 요점: 지질학에 기초한 계산은 가설적이며 결코 확실하지 않다. 숫자가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지질학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 근거 | 추정 또는 정보 | 바빙크의 평가 |
|---|---|---|
| 여러 고대 민족 | 인류의 나이를 아주 길게 잡고 여러 세계 시대를 말함 | 확정되지 않은 동화 같은 수치 |
| 근대 인류학 | 일만 년에서 오십만 년 이상 | 그 수치를 다시 들여온 것 |
| 다윈, 『종의 기원』 초판 | 지구 생명의 기간 3억 년(다른 이들은 더 길게) | 계속 수정됨 |
| 최근 추정 | 천만 년에서 일억 년 사이 | 인류 발생이 생명의 기원에 더 가까워짐 |
| 이집트·바빌론 연대기 | 고대 문명의 몇몇 연대 정보 | 상당히 불확실. 실타래 없이 미로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
| 이스라엘 | 주전 첫 천년기는 잘 규명, 제2천년기는 기준이 몇 개뿐, 주전 2,000년 이전은 불확실 | 참된 의미의 역사와 연대기는 이스라엘뿐 |
결론성경 연대에 대한 학자들의 합의도 요원하다. 다만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시기는 주전 5천 년에서 7천 년을 넘지 못한다. 바빙크는 과학을 무시하지 않지만, 과학이 확정하지 못한 것을 확정된 양 성경에 들이대는 태도를 경계한다.
[282] 인류의 통일성 원서 549–550쪽
- 성경은 인류의 통일성을 분명히 가르친다. 창조와 홍수 기사, 민족 계보, 예수와 바울의 말이 모두 한 인류를 전제한다(창 1:26; 10:32; 마 19:4; 행 17:26; 롬 5:12; 고전 15:21 등).
- 그러나 계시 밖에서는 이 가르침이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 계시 밖 고대스토아 학파만 예외. 모든 사람을 하나의 포괄적 집단으로 보고 보편적 정의와 사랑을 말했다. 그리스인은 야만인을 멸시했고, 인도는 기원이 다른 네 계급을 만들었다.
- 르네상스 이후다수기원론, 복수 아담론, 전 아담론이 다시 나타났다.
- 18세기민족들의 다양성이 널리 알려졌다.
- 1860년 이후다윈주의가 더해지자 많은 이가 다수기원론자가 되었다.
- 역설: 다윈주의의 변이성 이론은 오히려 단일기원론을 옹호하는 데 쓰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동물에서 사람으로의 전이 기간을 너무 길게 잡아 첫 사람이 사실상 없게 만든다.
- 인종과 민족의 차이(피부색, 언어, 종교, 풍습, 남태평양·아메리카로의 확산)가 크다는 것은 바빙크도 인정한다. 성경은 이 분산이 창세기 11장의 하나님의 개입에서 비롯되었다고 가르친다.
- 그 분열에는 종교적·윤리적 의미가 있다. 고립과 언어 차이의 심화는 영적 쇠퇴로 이어진다. 언어의 혼란은 생각과 삶의 혼란이 빚은 결과다.
- 그럼에도 통일성은 보존되었다. 언어들 사이의 예상 밖 유사성, 인종 간 결혼으로 생식 가능한 자녀, 공유되는 생리적·지적·종교적·도덕적 특성이 이를 확증한다. 요한 폰 뮐러는 모든 역사가 창세기 10장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중요한가인류의 통일성은 지엽적 문제가 아니다. 원죄, 그리스도 안의 속죄,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보편성, 이웃 사랑의 기초다. 한 인류가 아니라면 한 분 구주도 의미를 잃는다.
[283] 인류의 원거주지 원서 551–552쪽
-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신 후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다(창 2:8). 그러므로 에덴(기쁨의 땅)은 낙원 자체가 아니라 동산이 조성된 지역의 이름이다.
- 낙원은 이후 에덴동산(창 2:15; 3:23), 하나님의 동산(겔 31:8–9), 여호와의 동산(사 51:3)으로 불렸고 때로 에덴과 동일시되었다(겔 28:13; 31:9).
- 네 강 가운데 힛데겔과 프라트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로 분명하다. 비손과 기혼을 두고는 늘 의견이 갈렸다.
| 견해 | 주장 |
|---|---|
| 풍유적 해석 | 에덴동산을 비유로 읽음. 에우구비누스 이전 대부분은 지리적 위치 확정을 꺼림 |
| 에우구비누스 쿠르나 가설 | 네 강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거대 강의 어귀들, 낙원은 오늘날 쿠르나 근방.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이 열렬히 수용 |
| 17세기 중반 아르메니아 가설 | 강들이 더 북쪽 아르메니아에 있었다 |
| 프리드리히 델리치 바빌론 가설 | 더 남쪽 바빌론 지역 |
| 전설로 보는 이들 | 비손과 기혼을 인더스 강과 옥서스 강으로 읽음 |
| 미하엘리스, 에발트 등 신화적 해석 | 하윌라를 전설의 황금 대륙으로 여김 |
| 대부분의 인류학자·언어학자 | 창세기 2장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거의 모든 지역에 원거주지의 명예를 부여 |
| 헤켈 등 | 다윈주의를 다수기원론과 결합해 단일한 원거주지 자체를 부정 |
교훈 1: 알 수 없는 것
추측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것은 과학이 확실성을 갖고 말할 수 없다는 표지다. 낙원의 정확한 위치 선정은 우리 능력 밖에 있다.
교훈 2: 알 수 있는 것
인종학·언어학·역사·자연과학은 아시아를 지지한다. 가장 오래된 민족, 문명, 언어가 아시아에 있다. 남은 의문이 성경의 가르침을 뒤엎지는 못한다.
“성경과 과학은 한 목소리로 우리가 사람의 원거주지를 아시아에서 찾아야 한다고 증언한다.” — 바빙크
2. 인간의 본질 원서 553–570쪽
원서 553–554쪽
- 사람은 하나님 형상의 담지자로서 본래 의롭고 거룩하게 창조되었다.
- 온 세계가 하나님의 속성을 계시하지만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며 창조의 머리요 면류관이다. 사람은 작은 신인 동시에 소우주다.
- 이교도들도 사람이 신의 소생이라 말했고 헤시오도스·오비디우스·베르길리우스는 황금시대를 노래했다. 그러나 참된 빛을 비추는 것은 성경뿐이다.
| 증언 | 본문 |
|---|---|
| 선언 | 창 1:26–27 |
| 거듭 확인 | 창 5:1; 9:6 |
| 노래 | 시 8; 전 7:29 |
| 신약의 직접 언급 | 고전 11:7; 약 3:9 (또 눅 3:38; 행 17:28) |
| 간접적이지만 결정적인 본문 | 엡 4:24; 골 3:10 — 재창조는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라 본래 모델을 따른 갱신 |
| 원형이신 성자 | 요 1:1, 14; 고후 4:4; 골 1:15; 히 1:3; 롬 8:29 |
- 형상과 모양은 서로 바꿔 쓰이며 본질적 차이가 없다. 다만 형상은 원형 개념을, 모양은 그 형상이 모든 부분에서 원체에 상응한다는 개념을 더한다.
- 동물은 사람과 어떤 모양을 공유하지만 사람의 형상은 아니다. ‘안에’와 ‘따라’라는 전치사 차이에서도 아무 결론을 끌어낼 수 없다.
- 이 말들은 하나님 안의 어떤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선언이다.
- 그 의미는 성자 안에서 충만히 드러난다. 성자는 말씀, 아들, 형상, 하나님의 각인이시다. 단서: 성자만이 절대적 의미에서 형상이시고 영원한 독생자시지만, 우리는 창조된 아들들이다.
- 성경은 형상에 피조물에 대한 통치를 포함시킨다. 재창조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어진 새 사람을 입는 것이다.
“총체적 인간이 총체적 신성의 형상이다.” — 바빙크
[285] 형상과 모양의 구별론 원서 555쪽
- 형상 논의는 부분적 정의에서 시작되었다. 합리성, 통치, 의지의 자유, 사랑이나 정의 같은 도덕적 특성.
- 그러다 형상과 모양을 구별하는 두 견해가 부각되었다.
견해 1 자연주의적
-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 형상 = 합리성으로 정의된 원상태
- 모양 = 순종으로 획득해야 할 거룩함
- 거룩함은 도덕적 노력의 성취물
견해 2
- 모양 = 창조 때 곧바로 받은 적극적 거룩함의 은사
- 타락 때 잃었다
-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회복된다
- 펠라기우스는 첫째 견해에 기대어 사람의 본질과 원상태를 도덕적 선택의 형식적 자유와 동일시했다. 완전에의 가능성은 상실될 수 없고 지금도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이 견해는 소키누스파, 재세례파, 항변파, 다수의 근대 신학자에게 이어졌다. 이들은 형상을 자유로운 인격, 합리적·도덕적 본성, 종교 윤리적 성향, 하나님과의 교제로의 부르심에 국한했다.
- 결과: 사람을 자발적 진보의 끝없는 과정으로 보는 진화론적 이해에 문을 열었다. 창조 때의 온전함이 사라지고 사람은 처음부터 미완성이 된다.
“능력(posse)은 하나님이 주시지만, 원함(velle)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 펠라기우스의 견해
귀결낙원은 우리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는 말이 된다.
[286] 자연주의 견해 반박 원서 556–557쪽
- 사람이 원시적 동물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견해는 성경에 정면으로 반대되고 과학적 증거도 없다.
- 결정적인 것은 역사적 증거가 아니라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다.
- 근대주의자들은 진화를 긍정하면서도 사람의 종교적·도덕적 독특성은 지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펠라기우스주의의 천진함, 도덕적 중립, 완전한 잠재성 개념으로 도피한다. 그러나 창조와 진화를 함께 품으려는 이 제3의 길은 옹호될 수 없다.
| 반박 | 내용 |
|---|---|
| ① 성경 | 최초의 사람은 몸과 정신이 다 자란 성인이자 자유로운 행위자였다. 신적 인정(창 1:31), 시험적 명령(2:16–17), 동물의 명명(2:19–20), 하와에 대한 선언(2:23–24), 유혹의 방식(3:1), 타락 후의 태도(3:7)가 보여 준다. 도덕적 중립이 아니라 적극적 선 안에 있었다. |
| ② 잠재력 이론 | 잠재력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피히테조차 첫 부부를 양육할 다른 이성적 존재를 가정해야 했다. 하나의 기적을 피하려고 수많은 기적을 가정하는 셈이다. |
| ③ 선천적 거룩함 부정 | 거룩하게 지어졌다면 선하지 않을 자유가 없었으리라는 주장이다. 이는 형상을 벌거벗은 형식적 인격성으로 줄이는 추상이다. |
| ④ 타락의 운명화 | 하나님이 저항 능력을 넘는 시험을 허용하셨다는 뜻이 된다. 타락은 비난받을 수 없는 불행, 거의 불가피한 운명이 된다. 온전한 상태와 부패한 상태의 경계가 지워진다. 형식적 형상은 타락 후에도 그대로 남으므로 타락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
핵심 원리구체적 지성과 의지를 가진 피조물에게 선을 행함(doing)은 선한 본성(being)에 달려 있다. 그래서 성경은 거룩함이 창조와 재창조 모두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친다. 거룩함을 가진 자는 그것을 더 발전시킬 수 있지만, 갖지 못한 자는 스스로 획득할 수 없다.
[287] 로마 가톨릭의 초자연주의 원서 558–559쪽
- 로마 가톨릭은 사람을 자연으로만 보는 견해에 맞서 초자연주의적 답을 내놓았다. 세례로 주입된 은혜가 지복직관에 이르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 출발점은 성경적이었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높여진다는 영광의 상태 개념이다(요 1:12; 롬 8:14–17; 요일 3:1–2).
- 성경적 출발영광의 상태 개념
- 신플라톤주의하나님과의 융합으로 변질
- 공로 교리 결합‘당연한 은덕으로’(ex condigno) 영생을 받을 만한 선행
- 결론아담의 창조된 의는 영광에 못 미친다. 본성 위에 덧붙여진 은사(donum superadditum)가 필요하다.
| 층 | 로마 가톨릭의 설명 | 드러나는 문제 |
|---|---|---|
| 자연적 은사 | 은사 없는 사람은 죄가 없지만 목적·종교·미덕이 땅에 묶인다 | 인성이 두 층으로 갈린다 |
| 원죄 이전의 은사(preternatural gift) | 죽음을 막고 정욕을 억제했다고 끼워 넣은 세 번째 은사 | 본래 아담이 죽음과 고통에 열려 있었다면 죽음은 죄의 형벌이 아니게 되고, 육과 영의 다툼도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이를 메우려는 보완책이다 |
| 초자연적 은사 | 천상의 목적과 초자연적 종교를 준다 | 『로마 교리서』는 세 은사와 세 의를 일관된 설명 없이 나열한다 |
“은혜가 자연을 고양시키고 완전하게 한다.” — 로마 가톨릭의 원리
평가로마 가톨릭의 형상 교리는 내적으로 미완성이어서 신학적 지성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출발은 성경, 도착은 철학과 공로였다.
[288] 덧붙여진 은사 비판 원서 560–561쪽
- 근본 잘못은 인생의 최종 운명을 잘못 보는 데 있다. 성경은 마지막을 신의 성품 참여, 하나님을 봄, 영생, 하늘의 복으로 그린다. 로마는 이를 신플라톤주의식 지복직관과 신비적 융합으로 바꾸었다.
| 쟁점 | 로마 가톨릭 | 성경 (바빙크) |
|---|---|---|
| 영생 | 미래의 초자연적 목적 | 이미 현재의 실재(요 3:16, 36; 17:3). 신의 성품 참여도 이 땅의 약속(벧후 1:4) |
| 하나님을 보는 길 | 공로적 행위 | 마음이 청결한 윤리적 삶(마 5:8; 히 12:10; 요일 3:6) |
| 영광의 상태 | 본성에 덧붙여진 초자연적인 것 | 생각을 넘는 은혜의 선물이지만(고전 2:9) 덧붙여진 것이라는 암시조차 없다 |
| 은혜의 맞수 | 낮은 자연 | 죄와 죄책 |
| 원죄 | 덧붙여진 은사의 상실로 가벼워짐 | 전인을 망치는 죄 |
| 영생의 성격 | 행위에 대한 보상 | 선물 |
| 신자의 삶 | 성직자·평신도, 수도사·일반인의 서열. 꼭대기에 관상 신비주의자 | 하나의 이상, 하나의 도덕법, 하나의 최종 운명, 만인 제사장직 |
| 구원과 성육신 | 본성의 고양과 신격화. 성육신은 죄와 무관하게 필연. 속죄가 성육신에 종속 | 본성의 회복. 무게 중심은 용서 |
- 벨라르미누스는 원의를 물질적 조건에서 오는 본성의 연약함을 고치려고 더해진 황금 굴레라 불렀다. 여기서 육체는 본질상 정신과 대립한다.
- 종교개혁은 이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거부했다. 다만 원의가 어떻게 상실될 수 있었는가는 개신교도 함께 안고 가는 난제다.
한 문장은혜는 자연의 반대가 아니라 죄의 반대다.
[289] 개신교의 응답 원서 562쪽
- 개신교 신학자들은 로마의 이원론, 특히 본성 고양의 공로적 성격을 거부했다. 원죄의 심각성을 깎아내리기 때문이다.
- 그들도 실체, 본질, 속성, 은사, 심지어 초자연적 은사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뜻이 달랐다. 참 인간과 그리스도인을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나누지 않았다.
- 은혜는 본성을 창조된 자리 너머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죄와 그 결과로부터 회복하고 치유하는 것이다.
루터파
형상을 원의와 같은 것으로 보는 쪽으로 기울었다.
개혁파
사람의 본질 전체를 형상에 넣되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를 구분했다.
| 구분 | 내용 | 근거 |
|---|---|---|
| 넓은 의미 | 타락한 인류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라 불리고 그렇게 존중받아야 한다 | 창 5:1; 9:6; 행 17:28; 고전 11:7; 약 3:9 |
| 좁은 의미 | 형상의 핵심인 지식·의·거룩함은 상실되었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되찾는다 | 엡 4:24; 골 3:10 |
| 행위언약에서의 발전 | 동산의 아담과 그가 장차 되어야 할 존재 사이의 구분 | (뒤의 ‘인생의 귀결’에서 다룸) |
세 영역형상은 넓은 의미, 좁은 의미, 행위언약에서의 발전이라는 세 영역에서 다루어야 온전하다. 잃은 것과 남은 것, 그리고 되어야 할 것.
[290] 원의는 자연적이다 원서 563–564쪽
- 아담의 원의(justitia originalis)는 자연적이었는가, 초자연적이었는가. 이 물음은 신학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 개혁파: 자연적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념에서 떼어낼 수 없다.
- 로마에서는 초자연적 의를 잃고도 선하고 온전하고 무죄한 사람일 수 있다. 개신교는 이를 단호히 부정한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형상이거나, 허물과 죄로 죽은 진노의 자녀이거나 둘 중 하나다.
- 단서: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것은 분명 초자연적 선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시력을 되찾은 맹인처럼 우리는 본래 우리 것이던 참 인간성을 되찾는다.
-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롬 12:1)도 본래 인간적인 일이다. 도덕법은 모든 사람에게 같으므로 이중 도덕이나 이중 의무는 없다.
루터파 형상 = 원의
- 원의 상실 = 형상의 전적 상실
-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너무 날카롭게 가른다
- 자연과 은혜, 창조와 재창조의 연관이 가려진다
- 땅의 일에서 선을 행하는 영적 맹인을 그리스도의 은혜와 무관한 존재로 만든다
개혁파 넓은·좁은 의미
- 둘은 긴밀히 이어져 함께 충만한 형상을 이룬다
- 죄는 좁은 형상을 없애고 넓은 형상을 망가뜨려 전인을 상하게 했다
- 그러므로 은혜도 전인을 회복한다
- 가정·사회·국가·예술·학문에까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형상과 죄인 사이에 중간상태라는 것은 없다.” — 바빙크
[291] 영혼과 기능의 형상 원서 564–566쪽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거나 갖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 원형은 누구인가. 인류가 성자나 성육신하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는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양을 취하셨다(롬 8:3; 빌 2:7–8; 히 2:14).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다시 하나님처럼 된다(롬 8:29; 고후 3:18).
-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가 인류의 원형이라 말하는 편이 낫다. 다만 영혼 안에서 삼위일체의 심리적 유비를 찾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 형상은 몸보다 영혼에서, 물리적 힘보다 윤리적 덕에서 더 선명하다. 그래도 전인이 형상이라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전인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
① 영혼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되었다(창 2:7). 범신론과 유물론을 함께 피한다.
② 기능마음에서 지성과 의지라는 두 시내가 흐른다.
③ 덕창조 때 받은 지식·의·거룩함. [292]
④ 몸감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술작품. [292]
⑤ 통치다른 피조물의 주와 왕. [292]
⑥ 낙원 거주거룩함과 복됨이 함께 간다. [292]
① 영혼
- 생기는 생명의 원리이고 생령은 사람의 본질이다. 이 둘로 성경은 사람에게 독특한 자리를 준다.
- 루아흐(영)와 네페쉬(혼)는 시적 평행법으로 바꿔 쓰이는 말이다. 두 실체가 아니므로 몸·혼·영의 삼분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 그래도 이 구분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기로 영이 되었음을 일깨운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영과 구별된다(롬 8:16; 고전 2:11 등).
- 사람은 영적 존재로서 천사와 닮고 감각적 존재로서 동물과 이어진다. 천사와 동물 사이에서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합한다. 하나님은 천사가 아닌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다.
② 기능
- 영이 생명의 원리이고 혼이 그 주체라면, 마음은 성경에서 생명의 기관이다. 육체적 생명의 중심이면서 감정·욕구·의지·사고에 이르는 정신 생명 전체의 좌소다.
- 지성: 지각·지식·지혜를 품고 말로 구현된다. 의지: 감정·충동·결정을 품되 지성의 인도를 받아 행동으로 나타난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지성·의지에서 삼위일체의 유비를 보았다. 성부가 성자와 성령에게 생명을 주시듯 마음이 지성과 의지를 낳는다. 덕분에 서방 신학은 신론과 인간론의 긴밀한 연관을 발견했다.
[292] 덕과 몸의 형상 원서 567–569쪽
③ 덕: 지식·의·거룩함
- 사람은 선악에 무차별한 중립적 능력만 지닌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아는 지성, 의로운 의지, 거룩한 마음을 갖춘 성숙한 존재였다.
축소하지 말 것
원상태를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과장하지 말 것
이미 영광의 상태와 같았던 것처럼 부풀려서도 안 된다. 아담의 지식은 순수했지만 제한적이어서 자랄 수 있었다. 그는 봄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했고 미래는 특별계시로만 알았다.
- 그의 의와 거룩함도 보존되고 계발되어 행위로 옮겨져야 했다. 원의는 값없는 선물이었고 매 순간 섭리로 보존되었다.
- 성령은 타락 전에도 그 모든 덕의 장인이셨다. 그 내주는 아담에게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타락 전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처였다.
④ 몸
- 계시를 떠난 철학은 경험론과 합리주의, 유물론과 유심론 사이를 오간다. 성경은 둘을 조화시킨다. 사람의 영은 본성상 몸 안에 거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 아담은 논리적으로 먼저 흙으로 빚어지고 그 뒤 생기를 받았다(고전 15:47).
- 몸은 감옥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예술작품이며 영혼과 함께 사람의 본질을 이룬다(욥 10:8–12; 시 139:13–17). 땅의 장막 집인 몸은 죄로 영혼에서 찢겨 나갔지만 부활 때 다시 결합된다(고후 5:1).
- 영혼과 몸의 결합은 윤리적이 아니라 물리적이어서, 하나의 인격이 모든 활동의 주체다.
- 단서: 하나님이 몸을 가지셨다는 뜻은 아니다(요 4:24). 몸은 육이라는 물질 자체가 아니라 영혼의 도구로서의 구성과 형태의 완전함에서 형상이다.
- 물질계는 하나님의 계시이고 그 절정은 성육신이다. 성육신은 몸이 형상의 본질적 요소임을 증언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지 않으셨더라면, 하나님은 사람이 되실 수 없었을 것이다.” — 바빙크
불멸성·통치·낙원 거주
- 몸은 본래 불멸성에 참여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고(마 22:32) 죽음은 죄의 결과다(창 3:19; 롬 5:12; 6:23).
- 다만 아담의 불멸성은 조건적이었다. 죽지 않을 수 있음(posse non mori)이지 죽을 수 없음이 아니었고, 조건은 순종이었다.
- 땅에 대한 통치는 형상의 필수 부분이다(창 1:26, 28; 2:19–20; 9:2–3; 시 8:7–9). 사람은 다른 피조물의 주와 왕이다.
- 낙원 거주도 형상의 일부다(창 2:8–15). 거룩함과 복됨, 도덕 질서와 자연 질서는 함께 간다. 그래서 타락한 사람에게는 저주받은 땅이 어울린다.
[293] 소우주인 인간 원서 570쪽
- 전인이 형상이라는 말은 영혼과 몸, 모든 기능과 능력과 은사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사람 안의 어떤 것도 형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형상이 곧 사람다움을 구성한다.
- 하나님의 영적 본질, 덕과 완전함, 내적 자기구별, 창조에서의 자기전달에 대한 유한한 유비가 사람 안에 있다. 그래서 사람은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하나님 계시다.
- 성경에서 하나님과 세계, 정신과 물질은 반대가 아니다. 온 세계는 자연 전체의 요약인 사람에게서 통일과 목표와 면류관을 이룬다.
- 사람은 두 세계의 통일, 우주의 거울, 자연의 연결고리인 소우주다. 이런 뜻에서 작은 신(미크로테오스)이라 불릴 수 있다. 신격화가 아니라 유한한 유비다.
| 직분 | 사람이 하는 일 |
|---|---|
| 예언자 | 하나님을 설명하고 그 탁월함을 선포한다 |
| 제사장 | 모든 피조물을 거룩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 |
| 왕 | 만물을 공의로 다스린다 |
모형이 모든 직분에서 사람은 더 높은 분, 곧 훨씬 풍성한 뜻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성부의 독생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type)이었다.
3. 인생의 귀결 원서 571–587쪽
원서 571–572쪽
- 사람의 궁극적 결말은 창조 때 완성된 선물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였다.
- 그래서 첫 번째로 충만하고 신령한 사람은 아담이 아니라 그리스도시다.
- 원리: 자연적인 것이 먼저 오고, 영적인 것은 그 위에 세워진다.
고전 15:45–49 본성·인격의 대조
- 첫 사람: 땅의 흙으로 지어진 산 존재(생령)
- 둘째 사람: 부활로 살려 주는 영이 되심
- 아담은 영화된 신령한 몸을 갖지 못했다
롬 5:12–21; 고전 15:22 이룬 것의 대조
- 두 사람이 이룬 업적을 비교한다
- 아담 안에서 죽음, 그리스도 안에서 삶
- 아담은 그리스도보다 못하며 타락 전에도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아담이 지어질 때 이미 그리스도가 예견되어 있었다.
- 온전한 상태와 영광의 상태 사이에는 넓은 간격이 있다. 부활 후에는 배와 음식이 폐하여지고(고전 6:13), 하나님의 자녀는 결혼하지 않고 천사처럼 된다(마 22:30). 그러나 아담에게는 음식도 아내도 필요했다.
- 단서: 아담의 상태가 결함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좋은 출발점이었으되 완성은 아니었다.
행위언약 원서 572–577쪽
- 아담의 온전한 상태는 순종에 매인 잠정적·조건적 상태였다. 이것과 아담-그리스도의 병행이 신학자들을 행위언약(foedus operum) 개념으로 이끌었다. 자연언약이라고도 불렀다.
- 명시적 언급: 호세아 6:7뿐이다. 이스라엘이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는 번역이 가장 개연성이 높다.
- 결정적 근거: 로마서 5:12–21. 아담의 범죄로 죄책과 죽음이, 그리스도의 의로 칭의가 온다. 우리와 아담의 관계가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와 같다면 아담은 우리의 대표요 언약적 머리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죄짓지 않을 수 있음(posse non peccare)과 죄지을 수 없음을 구분했다. 후자는 아담에게 순종을 조건으로 약속된 것이었다.
| 입장 | 원상태 이해 | 결과 |
|---|---|---|
| 자연주의 (형상 = 의지의 힘) | 죽음은 자연스럽다 | 행위언약을 존중하지 않음 |
| 초자연주의 (원의 = 덧붙여진 은사) | 아담은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 | 타락 전 음식, 생식, 남녀양성 창조, 가시 없는 장미 같은 사변 |
| 개혁파 | 순종 조건의 언약 관계 | 행위언약을 은혜언약과 평행하게 발전시킴. 벨기에 신앙고백서·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도르트 신조에 내용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등에 형식으로 담김 |
- 단서: 지나친 스콜라적 상세화는 이 교리의 생명력을 잃게 했다.
- 반론: 창세기 1–2장에 언약이라는 단어가 없다. 답: 명칭이 의심스러워도 내용이 확실하면 된다.
왜 언약이어야 하는가
- ① 무한한 차이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무한한 차이가 있다. 종교가 주종관계 이상의 교제라면 하나님이 스스로 낮아지셔야 한다(사 57:15).
- ② 무공로우리는 하나님께 아무 권리도 공로도 없다. 다 행한 후에도 무익한 종이다(눅 17:10). 권리는 하나님이 선하심으로 주신 것이다.
- ③ 이성적 존재하나님은 사람을 이성적·도덕적 존재로 지으셨기에 강제하지 않고 설득하신다(시 100:3). 순종과 영생 사이에 자연적 관련은 없다.
“하나님 편에서는 언제나 거저 주심이 있고, 우리 편에서는 언제나 오직 감사만 있다.” — 바빙크
언약이 지키는 것언약은 참된 종교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관대함, 사람의 의존과 자유를 함께 지킨다.
인생의 귀결에 대한 다른 견해들 원서 577–580쪽
| 로마 가톨릭 | 루터파 | 개혁파 | |
|---|---|---|---|
| 아담의 원상태 | 덧붙여진 은사가 있어야 영광에 이름 | 이미 최고의 복을 가짐. ‘법을 벗어나’ 있었음 | 아직 최고의 삶을 갖지 않음(아우구스티누스를 따름). 죄지을 수 없고 죽을 수 없는 상태는 없었음 |
| 의도 | 영생이 은혜의 선물임을 지키려 함 | — | — |
| 결과 | 공로적 선행을 다시 들여옴 | 시험적 명령의 긍정적 취지를 놓침. 신자의 상태 = 타락 전 아담. 구원은 용서와 칭의에 머묾. 예정도 견인도 필요 없어짐. 반율법주의로 기욺 | 그리스도는 아담이 순종했더라면 받았을 것을 얻어 주시고, 여정의 끝에 두심.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 |
- 죄와 죽음의 가능성은 형상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한계다.
- 죄는 실체가 아니므로 창조의 질료(materia)를 없애지 못하고 형상(forma)만 변형시켰다. 은혜는 그 형상을 재형성한다.
“아담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자연적인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었다. 낙원은 천국이 아니었다.” — 바빙크
개혁파 견해의 귀결
- 도덕법은 아담에게 본성으로 알려진 적극적 선이었다. 시험적 명령은 그 전체를 한 번에 딜레마로 제시했다. 하나님인가 자신인가, 믿음인가 의심인가.
- 안식일 명령도 도덕법에 속한다. 아담은 6일 노동과 1일 안식 아래 있었다.
- 두 나무가 스스로 죽이거나 살리는 힘을 가졌다는 신지학적 견해는 거부된다. 생명나무는 행위언약의 성례적 표와 인이다.
- 칼뱅과 대부분의 개혁파는 창세기 9:3 전에 육식이 금지되었다는 가정을 근거 없다고 본다. 9:1–5는 창조 축복의 갱신이고 새로운 것은 피째 먹는 금지뿐이다.
- 현재 세계의 다양성을 모두 죄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혁명이 아니라 개혁을 선호한다.
인간 기원의 통일성: 운명 공동체 원서 581쪽
- 언약은 충만한 인성이 공동체 안에 있음을 일깨운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았고(창 2:18), 둘만으로도 충분치 않아 곧 번성의 복이 주어졌다(창 1:28).
- 하나님의 형상은 너무 풍성해 한 사람 안에 다 담길 수 없다. 인류 전체 안에서만 어느 정도 펼쳐진다.
- 이 인류는 개인들의 느슨한 집합이 아니라 한 핏줄에서 난 유기체다.
- 형상은 처음에 다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전개된다. 은혜의 선물(Gabe)인 동시에 순종의 사명(Aufgabe)이다. 인류 전체가 한 머리 아래 예언자·제사장·통치자로 설 때 가장 뚜렷한 하나님의 모양이 된다.
-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 성령의 전, 새 예루살렘이라는 가르침도 같은 진리를 보여 준다. 참된 종교·도덕법·최종 결말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에서 본질상 같다.
- 물리적으로 한 혈통이라는 사실(행 17:26)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동물에게도 해당된다. 필요한 것은 윤리적·법정적 통일성이다.
아담 첫 머리
우리의 죄와 죽음의 원인. 시험적 명령은 아담이 조상일 뿐 아니라 머리요 대표자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 둘째 머리
우리의 의와 생명의 원인.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담 안에서 정죄될 수 없다면, 협력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은혜에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함께 서고 넘어진다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은 함께 서고 넘어진다. 인류는 한 머리 아래 복과 저주를 함께 나누는 운명 공동체다.
[299] 영혼창조설과 영혼유전설 원서 582–585쪽
- 인류의 유기적 통일성은 인류의 기원과 번성 문제로 이어진다.
- 영혼 선재설은 배제된다. 영과 물질의 이교적 이원론에 뿌리를 두고, 인류의 통일성을 깨며, 사람과 천사의 차이를 지운다. 거시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영혼 불멸을 지키려는 이들이 이 길로 간다.
- 남는 것은 영혼창조설(creationism)과 영혼유전설이다. 개혁파는 동방 정교회·로마 가톨릭과 함께 창조설을, 루터파는 주로 유전설을 택했다. 양측의 성경적 논거는 비슷하게 강해 보인다.
| 견해 | 지지자 | 성경·논리적 논거 | 바빙크의 평가 |
|---|---|---|---|
| 영혼 선재설 | 거시 진화론과 영혼 불멸을 함께 지키려는 이들 | — | 배제 하나님의 인격적 창조를 고백하는 기독교에 설 자리가 없다 |
| 영혼유전설 | 루터파 주류 | 하와가 남자에게서 창조됨(고전 11:8; 창 2:23), 후손이 조상의 허리 안에 있음(창 46:26; 히 7:9–10), 창조가 일곱째 날에 완성됨(창 2:2), 종류대로 낳음(창 1:28; 5:3; 9:4; 요 3:6), 죄의 유전 | 불충분 영혼의 기원과 죄의 유전을 설명하지 못한다 |
| 영혼창조설 |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 개혁파 | 아담의 영혼 창조(창 2:7), 전 12:7, 슥 12:1, 민 16:22, 특히 히 12:9, 영혼의 단순성 | 지지 신비를 신비로 남겨 둔다 |
- 죄는 물질도 실체도 아니라 도덕적 죄책과 부패다. 그러므로 혈통을 통한 물질적 전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 딜레마: 정자와 난자가 스스로 활력을 갖는다면 유물론이고,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다면 이름만 바꾼 창조설이다.
- 배아가 언제 어떻게 사람이 되는지는 신비다. 점진적 진화로 설명하면 동물과 사람의 본질적 차이가 사라진다. 창조설의 장점은 그럴듯한 그릇된 설명을 시도하지 않는 데 있다.
- 괴테 같은 천재의 독특성도 유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아 창조적 요소가 필요하다.
- 단서: 하나님은 영혼을 따로 만들어 몸에 넣으시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는 자연적 생명을 적절한 때 더 높은 영적 생명으로 들어올리신다.
- 죄악된 본성은 영혼이 몸과 접촉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부모와 조상의 생명 안에서 형성되며, 인류를 짓누르는 죄의 유대 아래서 존재하게 된다.
“영혼유전설이 자신의 논리를 밀고 나갈 때, 그것은 유물론에 빠지거나, 아니면 영혼창조설을 이름만 바꿔서 몰래 다시 들여온다.” — 바빙크
[300] 영혼창조설을 지지하는 이유 원서 585–587쪽
- 두 견해 모두 풀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도 교회들이 갈린 까닭은 사람의 본질과 운명을 보는 눈의 차이에 있다.
| 차이 | 루터파 → 유전설 | 개혁파(로마 가톨릭과 함께) → 창조설 |
|---|---|---|
| ① 사람의 본질 | 형상을 원의 같은 몇몇 도덕적 성질에 가둔다. 몸이 신학적으로 무시되고, 사람과 천사·동물의 경계가 흐려진다 | 영과 몸이 서로를 위해 지어진 인간 본성 전체에서 형상을 찾는다. 죄인이 되어도 동물이 되지 않고, 구원받아도 천사가 되지 않는다. 창조설은 범신론과 유물론을 함께 막는다 |
| ② 인류의 통일성과 원죄 | 타락으로 영적·도덕적 통일성이 사라져 육체적 혈통만 남는다. 죄가 혈통을 따라 번지는 얼룩이나 오염처럼 이해된다 | 통일성은 육체적이면서 도덕적이다. 언약적 머리 됨만이 우리의 연대를 설명한다. 혈통과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함께 작용해야 성립한다 |
| ③ 사람의 운명 | 아담은 필요한 것을 다 가졌으므로 더 오를 필요가 없다. 행위언약도 창조설도 자리가 없다 | 목표는 영생과 하나님을 바라봄이고, 순종의 길로만 얻어진다. 그 결정이 아담의 손에 맡겨졌다(로마는 여기에 당연한 공로라는 비성경적 개념을 끌어들임) |
- 쉐드의 실재론(온 인류가 아담 안에 실제로 하나의 본성으로 있었다는 설명)도 아담의 죄에 대한 우리의 연대나 그리스도 안의 새 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 이 구도에는 두 요소가 함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한 언약적 머리 아래 있다는 것, 그리고 각자가 온전한 인격과 도덕적 힘을 지닌다는 것. 혈통만 말하면 죄는 책임 없는 숙명이나 질병이 된다.
- 온전한 상태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영광의 상태를 위한 준비다(고전 15:28).
“우리가 아담 안에서 저주받을 수 없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무죄 선고를 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 바빙크
결론인간은 영원히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이다. 영혼창조설만이 인류의 유기적 통일성과 각 사람의 인격을 함께 존중한다.
정리: 다른 입장과 바빙크의 답
| 입장 | 주장 | 바빙크의 답 |
|---|---|---|
| 다윈주의 | 사람은 고등 원숭이에서 자연선택으로 진화했다 | 종의 전이는 관찰된 적 없고 언어·도덕은 설명 못 한다. 증명 불가한 가정일 뿐이다 |
| 펠라기우스·근대 신학 | 형상은 선택의 형식적 자유, 거룩함은 노력으로 얻는다 | 선을 행함은 선한 본성에 달린다. 거룩함은 창조·재창조 모두에서 선물이다 |
| 로마 가톨릭 | 원의는 본성에 덧붙여진 초자연적 은사다 | 성경은 덧붙여진 것을 모른다. 은혜는 자연이 아니라 죄와 대립한다 |
| 루터파 | 형상은 원의와 같아 타락으로 전부 상실됐다 | 그러면 자연과 은혜의 연관이 가려진다. 넓은 의미의 형상은 훼손되어도 남는다 |
| 항변파·합리주의 | 창 1–2장에 언약이란 말이 없으니 행위언약은 없다 | 명칭이 의심스러워도 내용이 무사하면 된다. 언약은 참된 종교의 본질이다 |
| 영혼유전설 | 죄와 심리 특성의 유전은 영혼이 전해짐을 뜻한다 | 죄는 실체가 아니라 도덕적 부패다. 끝까지 밀면 유물론이나 위장 창조설이 된다 |
구조도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 사람은 동물에서 진화한 고등동물일 뿐이다.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다’. 형상은 이성이나 선택의 자유일 뿐이다.
- 거룩함은 순종과 도덕적 노력으로 얻는 성취물이다.
- 원의는 본성에 덧붙여진 초자연 은사이고, 원죄는 그 은사를 잃은 것뿐이다.
- 타락 후 형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 몸은 영혼의 감옥이다.
- 타락 전 낙원은 곧 천국이었다.
- 순종하면 당연히 영생의 권리가 생긴다.
바른 이해 ✓
- 의식·언어·도덕은 동물에서 나올 수 없다. 다윈주의는 실험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다.
- 사람 자체가 형상이다. 지식·의·거룩함을 갖춘 전인이 형상이다.
- 거룩함은 창조와 재창조 모두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다.
- 원의는 본성에 속한다. 형상과 죄인 사이에 중간 상태는 없고, 죄는 전인을 망친다.
- 넓은 의미의 형상은 남고 좁은 의미의 형상만 잃었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
- 몸도 하나님의 예술작품으로 형상에 속하며 부활 때 재결합된다.
- 온전한 상태는 영광의 상태가 아니다. 아담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출발점이었다.
- 행위와 보상 사이에 자연적 관련은 없다. 하나님 편은 언제나 거저 주심이다.
핵심 용어
-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צֶלֶם · דְמוּת)
- 전인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닮아 비추는 존재 방식. 두 말은 서로 바꿔 쓰이며 본질적 차이가 없다. 형상은 원형을, 모양은 원체와의 상응을 부각한다.
- 넓은 의미의 형상
- 타락 후에도 남는 영혼·기능·몸 등 인간성 전체. 그래서 타락한 사람도 형상으로 존중받는다(창 9:6; 약 3:9).
- 좁은 의미의 형상
- 지식·의·거룩함. 타락으로 잃었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엡 4:24; 골 3:10).
- 원의 (justitia originalis)
- 창조 때 받은 본래의 의.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로 매 순간 섭리로 보존되었다. 개혁파는 이를 자연적이라 본다.
- 덧붙여진 은사 (donum superadditum)
- 피조된 본성에 더해져 지복직관에 이르게 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초자연적 은혜.
- 원죄 이전의 은사 (preternatural gift)
- 아담을 고통과 죽음에서 지키고 정욕을 억제했다는 로마 가톨릭의 세 번째 은사.
- 당연한 은덕으로 (ex condigno)
- 신자가 영생을 받을 만한 공로적 선행을 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개념.
- 능력과 원함 (posse · velle)
-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고 원함은 우리에게 달렸다는 펠라기우스의 구분.
- 죄짓지 않을 수 있음 (posse non peccare)
-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아담의 상태. 죄지을 수 없는 상태와 구별되며, 후자는 순종을 조건으로 약속되었다.
- 죽지 않을 수 있음 (posse non mori)
- 순종을 조건으로 한 아담의 조건적 불멸성. 확정된 불멸성과 구별된다.
- 행위언약 (foedus operum)
- 본성으로 알려진 도덕법에 기초한, 타락 전 하나님과 아담의 언약 관계.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을 약속했다. 자연언약이라고도 불렸다.
- 온전한 상태 / 영광의 상태
- 타락 전 아담의 상태는 온전했지만 잠정적이었다. 영광의 상태는 그 너머의 목표다.
- 소우주 · 작은 신 (미크로테오스)
-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를 한 몸에 모은 사람. 신격화가 아니라 유한한 유비를 가리킨다.
- 모형 (type)
- 장차 올 분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 아담은 타락 전에도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 질료와 형상 (materia · forma)
- 죄는 실체가 아니므로 창조의 질료를 없애지 못하고 형상만 변형시켰다. 은혜는 그 형상을 재형성한다.
- 선물과 사명 (Gabe · Aufgabe)
- 하나님의 형상은 은혜의 선물인 동시에 인류 전체가 시간 속에서 이루어 갈 순종의 사명이다.
- 단일기원론 (monogeneticism) / 다수기원론
- 인류가 하나의 기원에서 나왔다는 견해 / 여러 조상에서 나왔다는 견해.
- 자연선택
- 자연이 생존과 번식에 가장 적합한 종을 선택한다는 다윈의 진화 메커니즘.
- 영혼창조설 (creationism)
- 하나님이 각 사람의 영혼을 창조하신다는 견해. 이미 있는 자연적 생명을 적절한 때 영적 생명으로 들어올리신다. 사람의 독특성과 인류의 도덕적 통일성을 지킨다.
- 영혼유전설
- 영혼이 부모에게서 전해진다는 견해. 루터파가 주로 받아들였다.
- 영혼 선재설
- 영혼이 몸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견해. 이교적 이원론에 뿌리를 둔다.
성경 근거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세기 1:26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4
| 구절 | 이 장에서의 쓰임 |
|---|---|
| 창 1:26–27 |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 형상에 통치까지 포함된다 |
| 창 2:7 | 하나님의 생기로 사람이 생령이 됨. 영혼창조설의 논거 |
| 창 9:6; 약 3:9 | 타락 후에도 사람은 형상으로 존중된다(넓은 의미의 형상) |
| 행 17:26 | 온 인류가 한 혈통. 다만 물리적 혈통만으로는 부족하다 |
| 엡 4:24; 골 3:10 | 새 사람은 의·거룩함·지식으로 회복됨. 재창조는 본래 모델을 따른 갱신 |
| 골 1:15; 롬 8:29 | 성자가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우리가 닮아야 할 분이다 |
| 고전 15:45–49 | 본성의 관점에서 땅의 첫 사람과 살려 주는 영인 둘째 사람을 대조 |
| 호 6:7 | ‘아담처럼’ 언약을 어김. 행위언약의 유일한 명시적 언급 |
| 롬 5:12–21 | 아담과 그리스도, 두 언약적 머리. 행위언약에 결정적 |
| 눅 17:10 | 다 행한 후에도 무익한 종. 언약은 공로가 아닌 거저 주심 |
| 히 12:9 | “모든 영의 아버지”. 영혼창조설이 특히 호소하는 본문 |
| 고전 15:28 |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실 영광의 상태. 온전한 상태는 그 준비 |
복습 문제
바빙크가 다윈주의를 ‘철학의 산물’이라 부르는 근거는? 그가 반대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파스퇴르), 종의 다양성(종의 전이 미관찰), 사람의 기원(과도적 형태 부재), 의식·언어·도덕 같은 정신적 차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실험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산물이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발전 개념 자체가 아니라 그 가설이 떠받치는 자연주의와 유물론이다.
인류의 통일성이 ‘지엽적 문제가 아닌’ 이유는?
인류의 통일성은 원죄, 그리스도 안의 속죄,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보편성, 이웃 사랑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한 인류가 아니라면 한 분 구주도 의미를 잃는다.
펠라기우스적 견해와 로마 가톨릭의 덧붙여진 은사 교리는 각각 무엇이 문제인가?
펠라기우스는 형상을 도덕적 선택의 형식적 자유로 줄여, 거룩함을 노력의 성취물로 만들고 진화론적 인간관에 문을 연다(낙원이 뒤가 아니라 앞에 놓임). 로마 가톨릭은 인성을 자연과 초자연 두 층으로 나누어 은혜를 죄가 아니라 자연에 맞세운다. 그 결과 원죄가 은사의 상실로 가벼워지고 영생이 보상이 되며 신자들 사이에 서열이 생긴다.
개혁파가 형상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눈 까닭은? 루터파와 무엇이 다른가?
타락한 인류도 여전히 형상으로 불리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르침(넓은 의미)과, 지식·의·거룩함은 잃었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되찾는다는 가르침(좁은 의미)을 함께 지키기 위해서다. 루터파는 형상을 원의와 같게 보아 원의 상실을 형상의 전적 상실로 보았고, 자연과 은혜의 연관을 가렸다. 개혁파는 둘이 함께 충만한 형상을 이룬다고 보아 은혜가 전인과 삶 전체를 회복한다고 본다.
아담의 온전한 상태가 ‘영광의 상태’가 아니었다는 근거와, 이것이 행위언약과 어떻게 이어지는가?
고전 15:45–49에서 아담은 땅의 흙으로 된 생령이고 신령한 몸을 갖지 못했다. 부활 후에는 음식과 결혼이 없지만 아담에게는 둘 다 필요했다. 그는 죄짓지 않을 수 있고 죽지 않을 수 있었을 뿐(posse non mori), 죄지을 수 없고 죽을 수 없는 자는 아니었다. 이 잠정적·조건적 상태와 아담-그리스도 병행(롬 5:12–21; 호 6:7)이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을 약속한 행위언약 개념으로 이어진다.
바빙크가 영혼유전설보다 영혼창조설을 택하는 이유 세 가지는?
① 사람의 독특성: 형상을 인간 본성 전체에서 찾으므로 사람은 천사·동물과 영원히 구별되고, 창조설은 범신론과 유물론을 함께 막는다. ② 인류의 통일성과 원죄: 통일성은 육체적이면서 도덕적이며 언약적 머리 됨만이 우리의 연대를 설명한다. 유전설은 죄를 물질적 오염처럼 만든다. ③ 사람의 운명: 영생은 순종의 길로 얻어지며, 모든 사람이 한 언약적 머리 아래 있으면서 각자 온전한 인격을 지녀야 한다. 아담 안에서 저주받을 수 없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무죄 선고도 받을 수 없다.
한 줄“전인이 하나님의 형상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고 완성된다”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