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교회는 왜 아기에게 세례를 줄까? 본인이 믿고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칼빈은 먼저 기준을 세웁니다. 유아 세례가 사람이 지어낸 것이면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것이면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1절). 이어서 세례의 핵심은 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약속이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구약의 할례와 같으므로, 아기에게 할례를 주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 세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논증합니다(2-9절). 그다음 재세례파와 세르베투스가 내세운 반론을 하나씩 다룹니다. "세례와 할례는 다르다", "아기는 믿을 수 없다", "성경에 먼저 믿고 세례받으라고 했다", "아기는 성찬도 못 받는다" 같은 주장들입니다(10-31절). 칼빈은 이 반론들이 할례에도 똑같이 적용되므로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공격하는 셈이라고 답합니다. 마지막으로 유아 세례는 자녀까지 품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눈으로 보여 주는 선물이니 감사하자고 맺습니다(32절).
1. 절별 정리
유아 세례의 의미와 아브라함 언약을 통한 그 정당성의 입증. 1-6
1. 유아 세례에 대한 공격
칼빈은 세례를 다룬 앞 장(4.15)에 이 장을 일종의 '부록'으로 덧붙입니다. 당시 일부 사람들(재세례파)이 유아 세례 문제로 교회를 심하게 흔들었고, 그 소란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아 세례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추측하고 호기심을 부리다가 만들어 낸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칼빈도 원칙에는 동의합니다. 성례가 하나님 말씀이라는 단단한 기초 위에 있지 않으면, 가느다란 실에 매달린 처지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공정한 기준을 내놓습니다. 기원을 조사해 보고 사람에게서 나왔다면 버리겠지만, 하나님의 권위가 확인되면 함부로 없애다가 그것을 세우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의가 길어지는 것은 교회의 평화와 교리의 순수함을 함께 지키기 위해서라고 양해를 구합니다.
- 이 장은 세례 장(4.15)의 '부록'
- 반대자: 유아 세례는 사람이 지어낸 것
- 칼빈도 동의: 성례는 말씀 위에 서야 함
- 기준: 사람 것이면 버리고 하나님 것이면 지킨다
- 목표: 교회의 평화와 교리의 순수함
2. 세례의 의미
칼빈은 성례를 이해하는 기본 원리부터 다시 세웁니다. 표징(눈에 보이는 의식)의 힘은 의식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 의식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과 영적인 실체에 있습니다. 그래서 물과 물 뿌리는 동작에만 눈을 고정하는 사람은 세례의 능력도, 물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세례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음받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죽음에 함께 참여해 옛 자아(육체)를 죽이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세례가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표지라는 점을 하나 더할 수 있습니다.
- 표징의 힘은 물이 아니라 약속에 있다
- 의식에만 매이면 세례를 모른다
- 의미 1: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 의미 2: 옛 자아를 죽이고 새 생명으로
- 덧붙여: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함
3. 세례와 할례의 관계
세례 이전에는 할례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둘의 공통점과 차이를 살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시기 전에 먼저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약속을 근거로 부활과 영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할례의 약속 안에는 영생이 들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로 가는 첫걸음은 죄 사함입니다. "완전하라"는 명령과 모세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는 말씀은 옛 자아를 죽이는 일, 곧 중생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이 일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고 가르칩니다. 결국 할례도 세례처럼 죄 사함과 옛 자아를 죽이는 일을 뜻했고, 그 중심에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 할례 전에 "네 하나님이 되겠다"는 약속
- 예수님이 이 약속에서 영생을 읽으심
- 할례도 죄 사함과 옛 자아 죽음을 뜻함
- '마음의 할례'가 할례의 참뜻
- 할례와 세례 모두 그리스도가 근본
4. 세례와 할례의 차이는 외형적인 의식의 차이뿐임
표징의 능력은 약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할례와 세례는 약속이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사랑, 죄 사함, 영생이 둘 모두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약속이 이루어지는 근본, 곧 그리스도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례의 핵심인 '안쪽 실체'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다른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뿐이고, 이것은 작은 차이입니다. 칼빈은 성경을 해석할 때 '믿음의 분량'에 맞추라는 바울의 원칙을 따른다고 말합니다. 할례가 유대인에게 하나님 백성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이자 충성의 맹세였듯, 세례도 우리에게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세례가 할례를 대신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같은 약속: 아버지의 사랑·죄 사함·영생
- 같은 근본: 그리스도
- 다른 것은 겉의 의식뿐(작은 차이)
- 할례도 세례도 공동체에 들어가는 첫걸음
- 결론: 세례가 할례의 자리를 대신함
5. 유아 세례의 정당성
물과 의식에만 멈추면 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영적 실체를 생각하면, 아기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됩니다. 하나님은 옛날 아기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시고, 할례가 뜻하는 모든 복에 그들을 참여시키셨습니다. 그 표징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면, 하나님이 백성을 속이신 셈이 됩니다. 그런데 그 언약은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자녀에게도 적용됩니다. 실체를 누리는 아이를 그 실체의 표징에서 뺄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표징은 말씀에 딸린 '부록'이라 말씀보다 아래에 있습니다. 말씀이 아이에게 적용된다면, 그 부록인 표징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할례는 여드레째로 날이 정해져 있었다"는 반론은 핑계일 뿐입니다. 우리는 날짜에 매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아기를 엄숙한 예식으로 언약에 받아들이기를 기뻐하신다는 점은 그대로입니다.
- 하나님이 아기에게 할례를 명하셨다
- 의미 없는 표징이면 하나님이 속이신 셈
- 언약은 지금도 그리스도인 자녀에게 유효
- 표징은 말씀의 '부록', 말씀보다 아래
- 날짜 규정은 사라져도 원리는 남는다
6. 방식은 다르나 동일하게 언약을 확증함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유대인만큼이나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가 오신 뒤 하나님의 은혜가 줄었다는 말이 됩니다. 칼빈은 이것을 끔찍한 신성모독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인의 자녀가 '거룩한 씨'로 불렸듯, 그리스도인의 자녀도 같은 이유로 거룩하게 여겨집니다. 부모 중 한 사람만 믿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약은 할례로만 확인하라고 하셨는데 할례는 폐지되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있습니다. 칼빈의 답은 이렇습니다. 할례는 폐지되었지만, 언약을 확인해야 할 이유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언약도 공통이고 확인할 이유도 공통이며, 방식만 할례에서 세례로 바뀌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자녀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준 증표가 우리에게 없다면, 그리스도 이후 은혜가 더 희미해졌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 아브라함 언약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유효
- 은혜가 그리스도 이후 줄었다면 신성모독
- 신자의 자녀는 '거룩한 자'(한 부모만 믿어도)
- 할례는 사라져도 확인할 이유는 남음
- 언약·이유는 같고 방식만 바뀜
그리스도의 모범과 유아 세례의 유익. 7-9
7. 그리스도와 어린아이들
예수님은 아이들을 데려오는 사람들을 막는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안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 아버지의 긍휼을 좁히려는 것이 아니라 넓히려는 것임을 보여 주신 장면입니다. 반대자들은 세 가지로 반박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축복만 하셨지 세례는 주지 않으셨으니 기도만 해 주면 된다." 칼빈은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라는 이유를 놓치지 말라고 답합니다. 아이들이 그리스도께 나아갈 권리가 있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면, 그리스도와 하나 됨의 표지이자 교회의 문인 세례를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 "걸어올 만큼 자란 아이들이었다." 칼빈은 누가가 '젖먹이'를 뜻하는 헬라어(브레페)를 썼으니 '온다'는 '데려온다'는 뜻이라고 답합니다. 셋째, "천국은 아이 자신이 아니라 아이 '같은' 사람의 것이다." 칼빈은 그렇다면 굳이 진짜 아이들을 부르실 이유가 없다고 답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이들 자신과 아이를 닮은 사람을 함께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아이들을 막은 제자를 꾸짖음
-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 근거
- 나아올 권리가 있으면 표징도 받아야
- '젖먹이'를 가리키는 단어(누가복음)
- '이런 사람' = 아이 자신 + 아이 같은 이
8. 유아 세례는 믿음의 원칙으로 보아야 함
반대자들은 사도들이 유아에게 세례를 준 기록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온 가족이 세례받았다'는 기록 안에 아이들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아이들은 가족에서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빼야 한다면, 사도 시대에 여자들이 성찬에 참여했다는 분명한 기록도 없으니 여자도 성찬에서 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칼빈이 기대는 것은 이런 사례가 아니라 '믿음의 원칙'입니다. 어떤 성례를 왜 세우셨는지를 보면,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지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세우신 목적을 보면 아기에게도 합당하므로, 아기를 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침해하는 일입니다. 반대자들은 사도 이후 오랫동안 유아 세례가 없었다고도 말합니다. 칼빈은 고대 저술가 누구도 유아 세례의 기원을 사도 시대 아닌 다른 데서 찾지 않는다며 이를 반박합니다.
- '온 가족 세례'에 아이도 포함된다
- 기록 없다고 빼면 여자도 성찬에서 빠짐
- 사례보다 '제정 목적'으로 판단
- 목적상 아기에게도 합당
- 칼빈: 고대 교부들도 사도 시대 기원으로 봄
9. 유아 세례가 주는 유익
칼빈은 유아 세례가 쓸모없다는 생각을 막기 위해 그 유익을 정리합니다. 먼저 경고합니다.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논리는 모두 할례에도 똑같이 적용되므로, 결국 하나님의 할례 명령을 조롱하는 셈입니다. 부모가 얻는 유익은 이렇습니다. 아이에게 찍히는 표징은 "부모뿐 아니라 천 대까지 후손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약속을 확증합니다. 이것을 보며 부모는 위로를 얻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약속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냐"는 반론에 칼빈은 하나님이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눈에 보이는 증표를 주셨다고 답합니다. 그러니 약속을 믿는 부모는 아이를 교회에 데려와 그 약속이 아이 몸에 새겨지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아이가 얻는 유익도 있습니다. 교회에 접붙여져 다른 지체들의 관심을 받고, 자라서는 '내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그분이 나를 자녀로 받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열심히 예배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이 표징을 업신여기는 자를 하나님이 벌하시리라는 경고를 덧붙입니다.
- 반대 논리는 할례 명령도 공격한다
- 부모: 천 대까지의 약속을 눈으로 확인
- 하나님이 약함을 아시고 보이는 증표를 주심
- 아이: 교회의 돌봄, 자라서 더 큰 열심
- 업신여기면 은혜를 거절하는 일
재세례파의 주장에 대한 반박. 10-16
10. 세례와 할례가 서로 다르다는 재세례파의 주장
재세례파는 할례와 세례가 비슷하다는 논리에 밀리자, 둘이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뜻하는 바도, 언약도, '자녀'에 들어가는 사람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할례는 옛 자아를 죽이는 일의 상징이지 세례의 그림자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이 말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할례와 세례가 둘 다 옛 자아를 죽이는 표징이라는 점이 세례가 할례를 대신한다는 칼빈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약이 다르다'는 주장에는 강하게 반대합니다. 그 주장대로라면 하나님과 유대인의 언약은 이 땅의 삶에만 머무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유대 민족은 돼지처럼 잠시 배불리 먹다가 영원히 멸망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 재세례파: 뜻·언약·자녀가 모두 다르다
- "할례=옛 자아 죽음" → 칼빈도 동의
- 그 동의가 오히려 칼빈 주장을 지지
- 언약이 다르다는 주장은 성경 왜곡
- 구약 약속이 세속적이면 유대인은 멸망뿐
11. 할례의 약속은 영적인 약속이었음
할례가 육체적이고 '문자적인' 표징일 뿐이었다면, 세례도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에서 둘 중 하나를 더 영적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말하고, 이어서 이것을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힌 것으로 설명합니다. 할례와 세례가 같은 것을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구약 언약의 중심 약속은 영생에 관한 영적 약속이었습니다. 조상들은 그것을 영적으로 받아들여 다음 세상을 사모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땅의 복으로도 그분의 뜻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 소망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영원한 복을 약속하시고 가나안 땅을 덧붙이신 것이 그 예입니다. 칼빈은 이 내용을 2권의 구약과 신약 비교에서 이미 다루었다고 밝힙니다.
- 골로새서: 할례와 세례를 같은 선에 둠
- '그리스도의 할례' = 세례로 함께 묻힘
- 구약의 중심 약속은 영생(영적)
- 땅의 복은 영적 소망의 확인
- 영적 약속이 모든 약속의 '머리'
12. 육체적 자녀와 영적 자녀
재세례파는 '자녀'라는 말에서 차이를 찾습니다. 구약에서는 혈통으로 난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녀였지만, 지금은 그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이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받은 육체의 아기들은 말씀으로 거듭날 신약의 '영적 아기들'을 미리 보여 준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칼빈은 이 말에 진리가 희미하게 들어 있다고 인정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 영적 후손이 있고, 우리도 혈통 없이 그의 자녀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 구절에만 매달리고 다른 말씀과 비교하지 않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아브라함의 육체적 후손에게 영적인 복이 전혀 약속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큰 오류입니다. 하나님은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셨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는 모든 사람이 이 약속의 상속자입니다.
- 재세례파: 육체 아기 = 영적 아기의 그림자
- 칼빈: 진리가 희미하게 있지만 부분적
- 믿음으로 된 영적 자손은 인정
- 육적 후손에게도 영적 복이 약속됨
- 그리스도를 믿는 자 모두가 상속자
13.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임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하나님 나라는 모든 민족에게 퍼졌고, 사방에서 믿는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앉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 한동안 이스라엘 한 민족만을 택해 은혜를 주셨습니다. 할례는 이 은혜를 증명하는 표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자이심을 가르쳐 영생의 소망을 품게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 할례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할례받지 않은 신자와 할례받은 신자 모두의 조상이 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이 헐린 뒤, 이방인은 할례 대신 세례를 받으며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의식만 자랑하는 사람들을 꺾었듯, 우리도 세례에서 물만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꺾을 수 있습니다.
- 부활 후 하나님 나라가 모든 민족에게로
- 그 전엔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한정하심
- 할례 = 하나님이 구원자이심의 표징
- 아브라함은 할례자·무할례자 모두의 조상
- 이방인에겐 할례 대신 세례
14. 유대인들의 특권
재세례파는 로마서 9:7을 듭니다. 육체로 아브라함에게서 났다고 다 자녀가 아니고 약속의 자녀만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혈통이 아무 의미 없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칼빈은 바울의 의도를 살피라고 합니다. 바울은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을 낮추려고 이스마엘과 에서의 예를 들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는 유대인이 복음의 본래 상속자이며, 그 민족이 여전히 '거룩하다'고 말합니다. 우리 이방인은 원래 가지가 아니라 접붙여진 가지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장자 같은 유대인에게 먼저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은 취소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유대인을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 로마서 9장: 혈통 자랑을 꺾는 맥락
-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에 달림
- 로마서 11장: 유대인은 여전히 '거룩'
- 이방인은 접붙여진 가지
- 하나님의 부르심은 취소되지 않음
15. 약속의 문자적 성취
누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지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이 정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특별히 긍휼로 품으셨고, 그것을 할례로 인치셨습니다. 교회도 정확히 같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 조상 때문에 거룩하다고 말하고, 그리스도인의 자녀도 부모 때문에 거룩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할례받은 아기들은 영적 아기의 상징일 뿐"이라는 반대자들의 결론은 틀렸습니다. 그리스도는 조상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려고 오셨습니다. 베드로는 부활 이후에도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하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약속은 비유적으로만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도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십계명의 약속을 비유로 돌리거나 폐기되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자녀까지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십니다.
- 선택은 하나님의 자유, 그래도 후손을 품으심
- 신자의 자녀는 부모 때문에 '거룩'
- 그리스도는 조상의 약속을 이루러 오심
-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베드로의 설교)
- 약속은 비유만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도 성취
16. 세례와 할례의 차이에 대한 주장을 반박함
칼빈은 재세례파가 내세우는 차이들이 서로 모순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세례는 영적 싸움의 첫날에 받고, 할례는 옛 자아를 다 죽인 뒤인 여드레째에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곳에서는 할례는 죽이는 일을, 세례는 장례를 뜻한다고 합니다. 장례는 이미 죽은 사람에게만 치르는 것이니, 이번에는 세례가 할례 뒤에 오는 셈입니다. 칼빈은 '여드레'를 비유로 풀려면 차라리 부활(주의 첫날, 곧 여드레째)이나 평생에 걸친 자기 부인으로 보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아니면 갓난아기의 몸을 배려해 할례를 미루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그들은 "세례가 할례를 대신한다면 여자는 세례받으면 안 된다"고 트집 잡습니다. 칼빈은 할례가 남자에게만 행해졌어도 그 목적은 이스라엘 남녀 모두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었고, 여자도 할례에 함께 참여한 셈이라고 답합니다.
- '첫날 vs 여드레째' 주장은 자기모순
- 세례가 할례 앞에도 뒤에도 오는 꼴
- 여드레 = 부활 또는 평생으로 보는 게 나음
- 아기 몸을 배려한 날짜일 수도
- 할례도 여자까지 포함한 목적이었음
유아에게는 믿음의 능력이 없다는 반론에 대한 답변. 17-20
17. 유아도 그리스도 안의 생명을 누려야 함
반대자들은 아기가 세례의 뜻인 중생을 이해할 수 없고, 아기에게는 중생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거듭날 나이가 될 때까지는 그냥 '아담의 자손'으로 두어야 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칼빈은 아담 안에서는 모두 죽으므로 이 말은 아이들을 죽음에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리스도가 아이들을 데려오라 하신 것은 그분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본성상 진노 아래 있고 죄 가운데 잉태되었으며,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을 수 없고, 거듭나야 하늘에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어려서 구원받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 이해를 넘어서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했던 일이 그 증거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일반 법칙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능력을 좁은 틀에 가두지 말라는 뜻으로 듭니다.
- 아이를 '아담의 자손'으로 두면 죽음에 방치
- 그리스도는 생명이라 아이들을 부르심
-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에 못 들어감
- 어려서 구원받는 아이는 미리 거듭난 것
- 세례 요한: 하나님 능력을 제한 말라
18. 그리스도의 모범에 근거한 논지
그리스도는 갓난아기 때부터 거룩하셨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택하신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지은 그 몸을 입으시고, 우리를 대신해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도 그 거룩함을 우리에게 나눠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아기의 나이라고 거룩함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칼빈은 택하신 사람은 누구나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야 부름받는다고 봅니다. 반대자들은 성경이 말씀이라는 씨로만 거듭난다고 말한다며 베드로전서 1:23을 듭니다. 칼빈은 이 구절이 복음을 듣고 배운 사람에게 해당한다고 답합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유일한 씨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나님이 아기를 자기 능력으로 거듭나게 하실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 그리스도는 아기 때부터 거룩하셨다
- 모든 나이의 택자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 택자는 먼저 성령으로 거듭남
- '말씀의 씨'는 배울 수 있는 사람에게
- 하나님이 아기를 거듭나게 하실 수 있음
19. 유아에게는 지식이 없다는 반론
반대자들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아기는 들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 모세가 아이들은 선악을 모른다고 했다는 점도 듭니다. 칼빈은 바울의 말이 하나님이 보통 부르시는 방식을 말한 것이지, 다른 길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법칙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은 설교 없이 성령의 내적 조명으로도 자신을 알리십니다. 칼빈은 이렇게도 묻습니다. 어려서 죽은 아이들도 천국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보게 될 텐데, 장차 충만한 빛을 주실 아이에게 지금 희미한 빛을 비추시는 것이 왜 안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은 아기가 어른과 같은 믿음이나 같은 지식을 가진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결론 내리지 않고 열어 둡니다. 그의 목적은 큰소리로 아무것이나 단정하는 사람들의 교만을 조금이나마 누르는 데 있습니다.
- "들음에서 믿음" = 보통의 방식일 뿐
- 하나님은 성령의 내적 조명으로도 알리심
- 장차 충만한 빛 → 지금 희미한 빛도 가능
- 아기의 믿음이 어른과 같다고 단정 안 함
- 이 문제는 '미결'로 남겨 둠
20. 유아에게는 회개나 믿음의 능력이 없다는 반론
반대자들은 세례가 회개와 믿음의 성례인데 아기에게는 둘 다 없으니 세례를 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이 화살이 결국 하나님을 겨눈다고 답합니다. 할례도 회개의 표징이었고, 바울은 할례를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기에게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아기는 할례받을 때 그 뜻을 몰랐지만, 실제로 옛 본성을 죽이기 위해 할례받았고 자라서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칼빈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기는 장차 올 회개와 믿음을 위해 세례받습니다. 그 씨앗은 성령의 숨은 일하심으로 이미 아기 안에 심겨 있습니다. 디도서 3:5의 '중생의 씻음'도 같은 방식으로 풀립니다. 그런 논리라면 할례도 거듭난 사람에게만 주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분명한 명령이 없다"는 반론에는 딜레마로 답합니다. 아기 할례 명령이 정당했다면 유아 세례에도 모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할례도 회개·믿음의 표징이었다
- 그래도 하나님은 아기에게 할례를 명하심
- 아기는 '장래의' 회개와 믿음을 위해 받음
- 성령이 씨앗을 숨겨 심어 두심
- 아기 할례가 옳다면 유아 세례도 옳다
택하신 유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 21-22
21. 세례의 표징이 그것에 대한 이해보다 앞선다
칼빈은 두 경우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세례를 받고 어려서 세상을 떠나는 택한 아기는 하나님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성령의 특별한 능력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자라서 세례의 뜻을 배우는 아이는 어려서 받은 증표를 기억하며 평생 새롭게 되는 일에 더 열심을 냅니다. 바울이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다"고 한 것은 세례 전에 미리 묻혀야 한다는 조건이 아닙니다. 이미 세례받은 사람들에게 그 뜻을 알려 준 말씀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어려서 할례받은 백성에게 그 뜻을 일깨운 것도 같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씀도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위해 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3:21의 '선한 양심의 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자들은 표징이 뜻하는 실체가 시간상 언제나 먼저 와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할례도 같은 '선한 양심'에 근거했지만 아기에게 주어졌으니, 그것은 미래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유아 세례의 지금 효과는 언약을 확인하는 데 있고, 나머지 의미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따라옵니다.
- 일찍 죽는 택한 아기: 성령이 새롭게 하심
- 자라는 아이: 증표를 보며 더 큰 열심
- "함께 묻힘"은 세례받은 자에게 준 설명
- 표징이 실체보다 먼저 올 수 있다
- 지금은 언약 확인, 나머지는 하나님의 때에
22. 유아 세례를 공격하는 나머지 논리들
칼빈은 반대자들이 쓰는 구절이 오히려 유아 세례를 뒷받침한다고 보여 줍니다. 첫째, "세례는 죄 사함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죄인이라 죄 사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아이들에게도 죄 사함의 소망을 주신다면, 그보다 낮은 표징을 빼앗을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 에베소서 5:26의 "교회를 물로 씻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교회 전체를 말하는데, 아이들도 교회의 지체이고 천국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니 이 씻음의 증거를 아이들에게서 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셋째, 세례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아이들을 자기 몸의 지체로 인정하시니, 세례로 그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 아기도 죄인 → 죄 사함의 표징 필요
- "교회를 물로 씻어" = 교회 전체
- 아이도 교회 지체이자 천국 상속자
- 세례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짐
- 반대자의 구절이 오히려 유아 세례 지지
초기 교회의 유아 세례. 23-24
23. 사도행전의 증거에 근거한 반론
반대자들은 사도 시대에는 믿음과 회개를 먼저 고백한 사람에게만 세례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했고, 빌립은 내시에게 "마음을 다해 믿으면 세례받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그 논리대로라면 첫 구절은 회개만, 둘째 구절은 믿음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두 구절을 서로 보완해 읽어야 한다면, 다른 관련 구절들도 함께 비교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문맥이 의미를 정하는 말씀이 많습니다. 베드로와 빌립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회개와 믿음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이었습니다. 칼빈은 어른이라면 사람이 판단할 수 있을 만큼 회개와 믿음이 드러나기 전에는 세례받아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다릅니다. 옛날에도 이방인이 이스라엘에 들어오려면 먼저 언약과 율법을 배운 뒤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 반대자: 사도행전은 고백 후 세례
- 그 논리면 회개만/믿음만으로 충분해짐
- 성경은 문맥과 비교로 읽어야
- 그 청중은 이해력 있는 어른이었다
- 어른은 고백 후 세례, 아기는 경우가 다름
24.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에 근거한 논지
아브라함은 먼저 언약의 내용을 듣고 믿은 뒤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들 이삭은 아무것도 이해하기 전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칼빈은 이 차이에 문제 전체의 열쇠가 있다고 봅니다. 어른이 처음 언약에 들어올 때는 그 조건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약속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상속권'으로 언약 안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자녀를 "나를 위해 낳은 자녀"라고 부르셨습니다. 반대로 믿지 않는 부모에게서 난 불신자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합하기 전까지 언약 밖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른 회심자는 먼저 믿음과 회개가 있어야 세례를 받고, 신자의 자녀는 날 때부터 언약의 상속자이므로 세례를 받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고 요한에게 세례받은 것도 어른의 경우이며, 칼빈은 이 순서를 오늘날에도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 세례를 청하면 교회가 만족할 만한 고백을 하기 전에는 쉽게 세례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 아브라함: 믿음 → 할례
- 이삭: 할례 → 나중에 이해
- 어른은 조건을 먼저 배워야 한다
- 신자의 아기는 '상속권'으로 언약 안에
- 불신 가정 출신 어른은 고백 후 세례
성경 본문에 근거한 각종 반론에 대한 논박. 25-30
25. 세례와 중생을 연관짓는 반론
반대자들은 요한복음 3:5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을 근거로 듭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중생이라 부르셨는데 아기는 거듭날 수 없으니 세례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먼저 '물'이라는 단어만 보고 이 구절을 세례로 읽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니고데모가 육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생각하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시는 방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칼빈은 '물과 성령'을 '물 같은 성령', 곧 물처럼 씻으시는 성령으로 이해합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는 말씀이 '불처럼 일하시는 성령'을 뜻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다른 해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것이 참뜻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덧붙여, 반대자들의 읽기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물'이 '성령'보다 먼저 나오니 세례가 영적 은사보다 앞선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되받습니다.
- 반대자: 요한복음 3:5의 물 = 세례
- 칼빈: '물과 성령' = 물처럼 씻는 성령
- 근거: "성령과 불로 세례"와 같은 표현
- 칼빈도 다른 해석이 있음을 인정
- 반대자 논리면 오히려 세례가 먼저
26. 세례가 구원에 필수 조건이라는 반론
칼빈은 세례받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영원한 죽음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강하게 배격합니다. 예를 하나 듭니다. 신앙의 기초를 잘 배운 아이가 세례일 직전에 갑자기 죽었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례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죄받은 사람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세례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례를 멸시하는 것은 주의 언약을 침해하는 일이고, 칼빈은 그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세례는 필요하지만, 받을 능력이나 기회가 없어서 받지 못한 사람을 곧바로 버림받은 자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반대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세례를 못 받는 아기들은 모두 정죄받게 되는데, 이것은 "천국이 아이들의 것"이라는 말씀과 맞지 않습니다.
- '세례 없으면 무조건 지옥'을 배격
- 세례 직전 죽은 아이의 예
-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요한복음 5:24)
- 세례를 멸시하는 것은 언약 침해
- 필요하지만, 기회 없이 못 받은 건 별개
27. 세례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근거로 한 반론
반대자들이 가장 강력한 요새로 여기는 것은 '대위임령'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가르치고 그다음 세례를 주라고 하셨고, 마가복음은 "믿고 세례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예수님도 서른 살에 세례를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먼저 이 구절들을 세례를 처음 세운 장면으로 보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을 전하시던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두 구절에서 세례의 규칙을 찾을 근거가 없습니다. 이어서 단어 순서 논리의 약점을 짚습니다. 순서대로라면 마태복음 28:19-20에서는 "세례를 주고 … 가르치라"이니 세례가 가르침보다 먼저입니다. 요한복음 3:5도 '물'이 '성령'보다 먼저 나옵니다. 단어 순서로 시간 순서를 정하는 방식은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옵니다.
- 반대자: 가르침/믿음 → 세례 순서
- 이 구절이 세례 제정 장면은 아님
- 단어 순서 논리는 자기에게 불리
- 마태복음 28:20: 세례 주고 가르치라
- 요한복음 3:5: 물이 성령보다 먼저
28. 막 16:16에 근거한 논지에 대한 반론
칼빈은 말장난 같은 방어 대신 본질적인 답을 줍니다. 이 명령의 중심은 복음 전파이고, 세례는 거기에 부록처럼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보내 잃어버린 사람들을 가르쳐 하나님 나라로 모으게 하셨습니다. 그 대상은 당연히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배운 뒤 세례를 받고, 믿고 세례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는 약속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전체에 아기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이 구절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먼저 복음을 전하고 그다음 세례를 준다'는 것뿐입니다.
- 명령의 중심은 복음 전파
- 세례는 가르침에 붙은 부록
- 대상은 가르침받을 수 있는 사람
- 이 말씀에 아기 이야기는 없다
- 증명하는 것: 어른은 먼저 듣고 세례
29. 예수님의 수세(受洗)에 근거한 논지에 대한 반론
칼빈은 쉬운 비유를 듭니다. 바울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이 말씀을 근거로 아기에게 밥을 주지 말자고 한다면 모두에게 비난받을 것입니다. 특정 나이와 특정 사람에게 한 말을 모두에게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반대자들도 어른에게만 해당하는 규칙을 아기에게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서른 살에 세례받으신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복음 전파를 시작하는 가장 적절한 때에 직접 세례를 받아, 요한이 놓은 세례의 기초를 더 단단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세례가 복음 전파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서른 살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그들은 그 나이를 지키지 않고 제각각 정하느냐고 칼빈은 묻습니다. 서른 살을 고집하던 세르베투스조차 스물한 살에 스스로 선지자라고 자랑하기 시작했다고 꼬집습니다.
-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의 비유
- 어른 규칙을 아기에게 덮어씌우는 오류
- 예수님은 사역 시작에 맞춰 세례받으심
- 결론: 세례는 복음 전파와 함께 시작
- 서른 살을 고집하면서 지키지도 않음
30. 세례와 성찬
반대자들은 아기에게 성찬을 주지 않으니 세례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성경이 두 성례를 분명히 구별한다고 답합니다. 그는 고대 교회에서 아이들에게도 성찬을 주었다는 키프리아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증언을 인정하면서, 그 관습이 사라진 것은 옳은 일이라고 봅니다. 세례는 교회에 들어가는 '입문'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을 보여 주는 표지입니다. 성찬은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세례에는 나이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찬에는 자기를 살피는 것, 주의 몸을 분별하는 것, 주님을 기억하고 그 죽음을 전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아기에게는 이것을 기대할 수 없으니, 성찬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도 같았습니다. 할례는 아기에게 주었지만, 성찬에 해당하는 유월절은 그 뜻을 물을 수 있는 나이의 아이가 참여했습니다.
- 세례 = 입문, 성찬 = 성숙한 자의 음식
- 성찬엔 '자기를 살피라'는 조건이 있다
- 세례엔 그런 나이 조건이 없다
- 고대의 유아 성찬은 사라지는 게 옳았다
- 구약: 할례는 아기, 유월절은 물을 수 있는 아이
세르베투스의 반론에 대한 논박과 결론. 31-32
31. 세르베투스의 반론
칼빈은 재세례파 사이에서 존경받던 세르베투스의 논지 20개를 하나씩 짧게 반박합니다(20개 전체는 아래 '오해와 반론' 표에 정리). 그의 논지는 크게 다섯 종류로 묶을 수 있습니다. 첫째, 어른에게 한 말씀을 아기에게까지 적용하는 경우입니다(요한복음 3:36, 사도행전 11:26, 갈라디아서 3:2 등). 칼빈은 일부에게 한 말을 모두에게 적용하는 오류라고 거듭 지적합니다. 둘째, 세례를 성찬과 섞어 말하는 경우입니다. 칼빈은 세례는 문을 여는 것이고 성찬은 자기를 살필 수 있을 때 먹는 음식이라고 답합니다. 셋째, 다윗의 군사, 사람 낚는 어부, 어린 양 제물 같은 비유(알레고리)입니다. 칼빈은 같은 방식으로 반대 비유를 들어 보이고 나서, 그런 비유 놀이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넷째, 하나님이 말씀과 들음으로만 거듭나게 하신다고 못 박는 경우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중생의 시간표를 직접 가지고 계시다고 답합니다. 다섯째, 이교도 예식(트리스메기스투스, 무녀들)을 근거로 삼거나 "아이들이 장난으로 세례 흉내를 낼 것"이라고 비꼬는 경우입니다. 칼빈은 아기 할례를 명하신 하나님께 따져 보라고 답합니다.
- 세르베투스 논지 20개를 하나씩 반박
- 반복된 오류: 어른 말씀을 아기에게 적용
- 세례(입문)와 성찬(양식)을 혼동
- 알레고리 놀이로는 증명이 안 됨
- 중생의 시간표는 하나님께 있다
32. 유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에 대한 우리의 감사
칼빈은 유아 세례 논쟁 뒤에 사탄의 속셈이 있다고 봅니다. 유아 세례에서 얻는 확신과 영적 기쁨을 빼앗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흐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자가 자기 자녀까지 하늘 아버지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을 말로만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한다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죽은 뒤에도 우리 자녀를 돌보시는 아버지입니다. 그러니 다윗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사탄은 눈에 보이는 증거를 없애면 약속도 점점 잊힐 것이라고 계산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 자녀를 그분의 자녀로 받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법을 지키도록 가르칠 강한 동기를 얻습니다. 그러니 자녀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분의 가족 안에 자리를 주시고 교회의 지체로 삼으십니다.
- 논쟁 뒤엔 확신을 빼앗으려는 사탄의 속셈
- 자녀의 보호를 눈으로 확인하는 기쁨
- 우리가 죽은 뒤에도 자녀를 돌보시는 아버지
- 받아 주셨다는 사실 → 자녀 교육의 동기
-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자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재세례파 | 유아 세례는 사람이 만든 제도다 (§1) | 기원을 따져 보면 하나님의 언약과 명령에 뿌리가 있다 | 창세기 17:7, 12 창세기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세기 17: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
| 재세례파 | 할례는 날짜(여드레째)가 정해져 있었다 (§5) | 날짜 규정은 사라져도 아기를 언약에 받아들이시는 뜻은 남는다 | 창세기 17: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
| 재세례파 | 언약 확인은 할례로만 하라 하셨는데 할례는 폐지되었다 (§6) | 확인의 방식만 바뀌었고 언약과 확인할 이유는 같다 | 창세기 17:14, 고린도전서 7:14 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고린도전서 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
| 재세례파 | 예수님은 아이들을 축복만 하셨으니 기도만 해 주면 된다 (§7) |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면 그리스도와 하나 됨의 표지도 받아야 한다 | 마태복음 19:13-15 13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
| 재세례파 | 걸어올 만큼 자란 아이들이었다 (§7) | 누가는 '젖먹이'라는 말을 썼다 | 누가복음 18: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
| 재세례파 | 천국은 아이 '같은' 사람의 것이다 (§7) | 진짜 아이를 부르셨으니, 아이 자신과 아이 같은 이를 함께 가리킨다 | 마태복음 19: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
| 재세례파 | 사도들이 아기에게 세례 준 기록이 없다 (§8) | '온 가족' 세례에 아이도 포함된다. 기록 없다고 빼면 여자도 성찬에서 빠진다 | 사도행전 16:15, 32 사도행전 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사도행전 16: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
| 재세례파 | 사도 이후 오랫동안 유아 세례가 없었다 (§8) | 칼빈: 고대 저술가들은 모두 사도 시대 기원으로 본다 | (교회사 증언) |
| 반대자 | 약속만으로 충분하니 표징은 필요 없다 (§9) | 하나님이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눈에 보이는 증표를 주셨다 | 출애굽기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 재세례파 | 할례와 세례는 뜻·언약·자녀가 모두 다르다 (§10) | 둘 다 옛 자아를 죽이는 표징이고, 언약도 같다 | 골로새서 2:11-12 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
| 재세례파 | 구약 약속은 세속적이고 할례는 문자적 표징이었다 (§10-11) | 구약의 중심 약속은 영생이었고 땅의 복은 그것을 확인했다 | 창세기 15:1, 18 창세기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
| 재세례파 | 이제 아브라함의 자녀는 영적 자녀뿐, 육적 아기는 그림자다 (§12, 15) | 영적 자손은 인정하지만 육적 후손에게도 영적 복이 약속되었다 | 창세기 17:7, 사도행전 2:39 창세기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사도행전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
| 재세례파 | 육체의 자녀가 다 자녀는 아니다 (§14) | 혈통 자랑을 꺾는 맥락일 뿐, 바울은 유대인이 여전히 거룩하다고 한다 | 로마서 9:6-13, 로마서 11:16, 29 로마서 9:6-13 6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 로마서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로마서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 재세례파 | 세례는 싸움 첫날, 할례는 여드레째다 (§16) | 할례=죽음, 세례=장례라는 자기 말과 모순된다 |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
| 재세례파 | 할례를 이어받았다면 여자는 세례받으면 안 된다 (§16) | 할례도 남녀 모두를 거룩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 (구절 인용 없음) |
| 재세례파 | 아기는 중생을 이해 못 하니 아담의 자손으로 두라 (§17) | 그러면 죽음에 방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기도 거듭나게 하실 수 있다 | 고린도전서 15:22, 요한복음 3:3, 누가복음 1:15 고린도전서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누가복음 1: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
| 재세례파 | 중생은 말씀의 씨로만 된다 (§18) | 가르침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다 |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 재세례파 |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아기는 못 듣는다 (§19) | 그것은 보통의 방식이지 하나님을 묶는 법칙은 아니다 | 로마서 10:17, 신명기 1:39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신명기 1:39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
| 재세례파 | 세례는 회개와 믿음의 성례다 (§20) | 할례도 회개·믿음의 표징이었지만 아기에게 주어졌다. 아기는 장래의 회개와 믿음을 위해 받는다 | 로마서 4:11, 예레미야 4:4 로마서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레미야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
| 재세례파 | 분명한 명령이 없는 것은 권위가 없다 (§20) | 아기 할례 명령이 정당했다면 유아 세례도 정당하다 | 창세기 17: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
| 재세례파 | 세례는 '선한 양심의 간구'다 (§21) | 표징이 실체보다 먼저 올 수 있다. 할례가 그랬다 |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
| 재세례파 | 세례는 죄 사함을 위한 것이다 (§22) | 아기도 죄인이니 오히려 그 표징이 필요하다 | 에베소서 5:26, 고린도전서 12:13 에베소서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 재세례파 | 사도행전에서는 고백 뒤에 세례를 주었다 (§23) | 그 청중은 어른이었다. 어른은 고백이 먼저지만 아기는 다르다 | 사도행전 2:37-38, 사도행전 8:37 사도행전 2:37-38 37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행전 8:37 (없음) |
| 재세례파 | "물과 성령으로 나야" → 세례는 중생한 자에게만 (§25) | '물과 성령' = 물처럼 씻는 성령. 그 논리대로면 세례가 오히려 먼저다 | 요한복음 3:5, 마태복음 3:11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
| 세례 필수론 | 세례받지 못하면 모두 정죄받는다 (§26) | 기회 없이 못 받은 사람은 정죄되지 않는다. 다만 멸시는 언약 침해다 |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 재세례파 | 대위임령은 가르침 → 세례 순서다 (§27-28) | 제정 장면이 아니다. 순서로 읽으면 "세례 주고 가르치라"가 된다. 대상은 들을 수 있는 어른이다 | 마태복음 28:19-20, 마가복음 16:16 마태복음 28:19-20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 재세례파 | 예수님도 서른 살에 세례받으셨다 (§29) | 사역 시작에 맞춘 것이다. 그들도 서른 살을 지키지 않는다 | 누가복음 3:23, 데살로니가후서 3:10 누가복음 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데살로니가후서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
| 재세례파 | 아기에게 성찬을 안 주니 세례도 주지 말라 (§30) | 세례는 입문, 성찬은 자기를 살필 수 있는 자의 양식이다 | 고린도전서 11:28-29, 출애굽기 12:26 고린도전서 11:28-29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출애굽기 12: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
| 세르베투스 ① | 완전한 상징은 완전한 사람을 요구한다 | 세례의 완전함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다 | (구절 인용 없음) |
| 세르베투스 ② | 상징은 기념용이니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 그것은 성찬에 해당하는 말이다 | 고린도전서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
| 세르베투스 ③ | 믿지 않는 자는 진노 아래 있다 → 아기는 정죄 | 복음을 거부하는 자에 대한 경고다. 그리스도가 축복한 아이는 자유롭다 | 요한복음 3:36, 마가복음 10:16 요한복음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마가복음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
| 세르베투스 ④ | 육이 먼저고 영이 나중이니 자랄 때까지 기다려라 | 하나님은 즉시 치유하실 수 있다. 신자의 자녀는 은혜로 거룩하다 | 고린도전서 15:46, 고린도전서 7:14 고린도전서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고린도전서 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
| 세르베투스 ⑤ | 다윗은 힘센 군사만 데려갔다(알레고리) | 하늘 잔치엔 다리 저는 자도 초대된다. 비유로는 증명 못 한다 | 사무엘하 5:8, 누가복음 14:21 사무엘하 5: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누가복음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
| 세르베투스 ⑥ | 사도는 사람 낚는 어부지 아이 낚는 어부가 아니다 | 그물엔 온갖 고기가 모인다. '사람'은 아이도 포함한다 | 마태복음 4:19, 마태복음 13:47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
| 세르베투스 ⑦ | 영적인 것은 영적인 사람에게 맞는다 | 바울은 가르침에 관해 말했다. 아이는 양자 됨으로 거룩하다 | 고린도전서 2:13-14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
| 세르베투스 ⑧ | 새사람이면 영적 양식(성찬)을 먹어야 한다 | 자기를 살필 수 있을 때까지는 양자 됨의 상징으로 충분하다 | 고린도전서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
| 세르베투스 ⑨ | 그리스도는 모든 백성을 성찬에 부르신다 | 기념할 준비가 된 자만 부르신다. 영혼은 다른 방식으로도 먹는다 | (구절 인용 없음) |
| 세르베투스 ⑩ | 청지기는 때에 맞게 양식을 준다, 추수 때다 | 아기 때가 적절하지 않다는 근거가 없다 | 마태복음 24:45, 요한복음 4:35 마태복음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요한복음 4: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
| 세르베투스 ⑪ | 초대교회에선 그리스도인 = 제자였다 | 어른 이야기다. 아이는 하나님 가족이지 외인이 아니다 | 사도행전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
| 세르베투스 ⑫ | 성찬에 참여 못 하면 형제가 아니다 | 회심한 강도도 성찬 없이 형제였다 | 마태복음 19:13-15, 누가복음 23:40-43 마태복음 19:13-15 13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누가복음 23:40-43 40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 세르베투스 ⑬ | 양자의 영은 들음으로 받는다 | 일상적 방편일 뿐, 하나님은 숨은 방식으로도 접붙이신다 | 로마서 8:15, 갈라디아서 3:2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라디아서 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
| 세르베투스 ⑭ | 고넬료는 성령 받고 세례받았다 | 하나의 사례일 뿐, 세례가 먼저인 경우도 있다 | 사도행전 10:44-48, 사도행전 8:12 사도행전 10:44-48 44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사도행전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
| 세르베투스 ⑮ | 말씀 받은 자는 '신'인데 아기는 불가능하다 | 시편 82편의 '신'은 직분을 맡은 통치자를 가리킨다 | 요한복음 10:34-35, 시편 82:6 요한복음 10:34-35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시편 82: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
| 세르베투스 ⑯ |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았으니 새사람이 아니다 | 배울 수 없는 때에는 하나님이 중생의 시간표를 가지신다 |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 세르베투스 ⑰ | 갓 난 양과 염소는 제물로 쓰지 않았다 | 처음 난 것은 태어날 때부터 거룩했다 | 출애굽기 13:2, 출애굽기 12:5 출애굽기 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출애굽기 12: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
| 세르베투스 ⑱ | 요한이 준비시킨 자만 그리스도께 나아간다 | 요한의 임무는 일시적이었다. 예수님이 안으신 아이들은 그런 준비가 없었다 | 마가복음 10:13-16 13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
| 세르베투스 ⑲ | 이교 문헌상 정결례는 어른만 했다 | 그리스도의 세례를 이교 예식에 맞추는 것이다 | (구절 인용 없음) |
| 세르베투스 ⑳ | 아이들이 장난으로 세례 흉내를 낼 것이다 | 아기 할례를 명하신 하나님께 따져 보라 | (구절 인용 없음) |
3. 용어
- 성례
- 하나님의 약속을 눈에 보이게 확인해 주는 교회의 예식으로, 개혁교회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를 말한다.
- 표징
- 눈에 보이는 의식(물, 떡과 잔)으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약속이 중요하다.
- 인(印, 인침)
- 도장을 찍어 문서를 확증하듯, 하나님이 약속을 확실하게 보증해 주시는 것이다.
- 언약
- 하나님이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스스로 맺으신 약속의 관계다.
- 할례
- 구약에서 아브라함 언약의 표로 남자아이에게 여드레째 행한 의식으로, 칼빈은 세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본다.
- 중생
-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 육체를 죽이는 일(mortification)
- 죄로 기우는 옛 자아를 날마다 부인하고 꺾는 일이다.
- 재세례파
- 16세기에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어려서 세례받은 사람에게 다시 세례를 준 운동이다.
- 알레고리(풍유)
- 성경의 사건이나 인물을 숨은 상징으로 풀이하는 해석 방식이다.
- 양자 됨(입양)
- 본래 자녀가 아닌 우리를 하나님이 자녀로 받아 주시는 것이다.
4. 청년의 삶으로
칼빈: 표징이 이해보다 먼저 올 수 있다. 자라서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나를 받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열심을 내라는 증표다(§9, §21).
칼빈: 핵심은 물이 아니라 약속이다. 그리고 부모는 그 약속을 믿고 자녀를 가르칠 책임을 진다(§2, §32).
칼빈: 한쪽 부모만 믿어도 자녀는 거룩하다(고린도전서 7:14). 언약은 믿는 부모를 통해 자녀에게 미친다(§6, §15).
칼빈: 기회 없이 못 받은 사람이 정죄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례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언약을 업신여기는 일이다(§26).
칼빈: 세례받은 아이는 교회의 몸에 접붙여져 다른 지체들의 관심과 돌봄을 받는다. 그 '다른 지체'가 바로 나다(§9).
5. 이 편의 결론
- 세례의 힘은 물이 아니라 약속에 있고, 그 약속은 구약 할례의 약속과 같다.
- 하나님이 아기에게 할례를 명하셨으므로, 같은 언약의 표인 세례도 신자의 자녀에게 준다.
- 어른 회심자는 믿음과 회개를 고백한 뒤 세례받고, 신자의 자녀는 언약의 상속자로서 세례받는다.
- 아기는 장래의 회개와 믿음을 위해 세례받으며, 그 씨앗은 성령이 숨겨 두신다.
- 유아 세례는 자녀까지 품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눈으로 보여 주는 선물이니, 감사하며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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