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한 번 받은 게, 지금도 계속 넘어지는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칼빈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가는 입문 표시'로 정의하고, 목적을 둘로 나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게 하는 것이다. 먼저 세례가 믿음에 주는 세 가지 도움을 설명한다. 죄 씻음의 보증,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사는 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1-6절). 이어 요한의 세례와 사도들의 세례가 같다는 것, 구약의 홍해와 구름이 세례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보인다(7-9절). 그다음 세례 뒤에도 남는 죄와의 싸움, 공적 고백으로서의 세례를 다룬다(10-13절). 세례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집례자의 자격이나 받는 사람의 일시적 무지가 세례를 무효로 만들지 못하고,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논증한다(14-18절). 끝으로 실제 시행을 다룬다. 사람이 덧붙인 의식을 걷어내고, 교회가 세운 직분자가 베풀며,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어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데까지 나아간다(19-22절).
1. 절별 정리
세례의 목적과 세례를 통하여 얻는 세 가지 도움. 1-6
1. 세례의 목적
칼빈은 세례를 '입문의 표시'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교회의 식구가 되었다는 표라는 뜻이다. 성례(하나님이 약속을 눈에 보이는 표로 확인해 주시는 예식)에는 공통된 두 목적이 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돕는 것과 사람들 앞에서 하는 고백을 돕는 것이다. 믿음을 돕는 첫째 방식은 세례가 '죄 씻음의 보증서'라는 점이다. 칼빈은 세례를 인(印, 진짜임을 보증하는 도장)이 찍힌 문서에 빗댄다. 우리 죄가 지워져 다시는 하나님 앞에 떠오르거나 우리를 고발할 수 없다고 확인해 주는 문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군인이 지휘관의 깃발을 드는 것처럼 '내가 누구 편인지 보여 주는 표시' 정도로만 보는 사람들은 세례의 주된 목적을 놓친다.
- 세례는 교회에 들어가는 입문의 표시
- 두 목적: 믿음 돕기와 사람 앞의 고백
- 믿음에 주는 도움은 세 가지
- 첫째, 죄가 지워졌다는 도장 찍힌 증서
- 고백의 표시로만 보면 핵심을 놓친다
2. 세례가 주는 첫 번째 도움: 죄 씻음을 보증함
성경에는 세례를 '씻음'이나 '구원'과 연결하는 구절이 있다. 칼빈은 이 구절들을 '보증'의 뜻으로 읽는다. 물이 우리를 씻거나 중생(성령으로 새로 태어남)시키는 힘을 지녔다는 말이 아니다. 물은 구원의 원인이 아니고, 그 은혜를 알고 확신하게 해 주는 통로다. 바울이 말씀과 물을 함께 말한 것도 같은 뜻이다. 복음은 씻음의 소식을 전하고, 세례는 그 소식을 확인해 준다. 베드로도 세례는 몸의 때를 벗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라고 덧붙인다. 세례가 약속하는 씻음은 그리스도의 피뿐이고, 물은 그것을 그림처럼 보여 준다. 그래서 세례의 뜻을 바로 알면 물이나 다른 수단을 떠나 그리스도께만 생각이 모인다.
- 물 자체에는 씻는 힘이 없다
- 복음은 소식을 전하고 세례는 확인한다
- 진짜 '세례수'는 그리스도의 피
- 세례를 알수록 시선이 그리스도께 간다
3. 세례는 평생의 씻음을 보증하는 표
어떤 이들은 세례가 과거의 죄만 씻으므로 이후의 죄는 다른 성례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에는 평생의 죄를 한 번에 씻으려고 임종 직전까지 세례를 미루는 사람도 있었고, 당시 감독들이 이를 자주 꾸짖었다. 칼빈은 언제 세례를 받든 우리의 평생이 단번에 씻긴다고 답한다. 세례로 받은 그리스도의 순결은 나중에 지은 죄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더러움을 씻고 덮는다. 그러니 넘어질 때마다 세례를 떠올리고 죄 사함을 확신해야 한다. 다만 이것은 앞으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다. 죄에 눌려 탄식하는 사람을 위로하려는 가르침이며, 이를 계산해 죄 지을 기회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를 뿐이다.
- 세례의 효력은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 언제 받든 평생이 단번에 씻긴다
- 넘어질 때마다 세례를 기억하라
- 위로이지 죄 지을 면허가 아니다
- 임종까지 세례를 미룬 것은 오해 때문
4. 세례와 죄 사함의 관계
당시 널리 퍼진 생각이 있었다. 처음 중생할 때는 세례로 죄 사함을 받고, 그 뒤로는 회개와 '열쇠'로 받는다는 생각이다. '열쇠'란 교회가 죄 사함을 선포하는 권한을 말한다. 칼빈은 열쇠의 권세가 세례에 기대고 있어서 둘을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반박한다. 교회가 전하는 죄 사함의 내용은 결국 '그리스도의 피로 씻겼다'는 것이고, 그 씻음의 표가 바로 세례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 오해에서 고해성사라는 거짓 성례가 생겼다고 본다. 회개가 평생 하는 일이라면 세례의 능력도 평생 이어진다. 그러니 잘못 때문에 괴로울 때마다 자기 세례를 떠올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단번에 영원히 씻겼다는 믿음을 굳혀야 한다.
- 세례 뒤의 죄는 '다른 길'로? 아니다
- 교회의 죄 사함 선포는 세례에 기댄다
- 이 오해가 고해성사를 낳았다
- 세례 자체가 평생 회개의 표지다
- 괴로울 때 세례를 기억하라
5. 세례가 주는 두 번째 도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사는 표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를 두 층으로 말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욕망에 대해 죽고, 부활을 본받아 의를 향해 깨어나라는 권면이다. 더 깊은 층은, 세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죽음에 실제로 참여시키고 접붙이신다는 것이다. 나뭇가지가 뿌리에서 양분을 받듯, 바른 믿음으로 세례받은 사람은 옛 자아를 죽이는 데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힘을 느끼고, 성령이 살리시는 일에서 부활의 힘을 느낀다. 순서는 이렇다. 먼저 값없는 죄 사함과 의의 전가(그리스도의 의를 우리 것으로 쳐 주심)가 약속되고, 그다음 성령의 은혜가 우리를 새 삶으로 바꾼다.
-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표
- 단순한 본받기를 넘어선 '접붙임'
- 뿌리와 가지처럼 힘을 받아 산다
- 순서: 죄 사함과 의의 전가, 그다음 새 삶
6. 세례가 주는 세 번째 도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보증함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접붙여졌다는 증거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과 하나 되어 그의 모든 복을 함께 누린다는 증거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례를 받으신 것도 우리와 세례를 함께 나누어 연합의 끈으로 삼으시려는 것이었다. 바울은 세례로 그리스도를 옷 입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한다. 세례의 목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과,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은 서로 모순이 아니다. 동시에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도 빠질 수 없다. 씻음과 중생의 원인은 아버지께(긍휼로 중보자를 세우심), 내용은 아들께(그리스도의 피), 효과는 성령께(우리를 거룩하게 하심) 있기 때문이다. 요한과 사도들이 모두 '죄 사함을 얻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고, 사도들은 '회개'를 중생으로, '죄 사함'을 씻음으로 이해했다.
- 세례는 그리스도 자신과 하나 됨의 증거
- 예수님도 세례를 받아 우리와 나누셨다
- 원인은 아버지, 내용은 아들, 효과는 성령
- '그리스도 이름'과 '삼위 이름'은 충돌 없다
요한의 세례와 사도들의 세례, 그리고 구약에 나타난 세례의 상징물들. 7-9
7. 요한의 세례와 사도들의 세례
칼빈은 요한의 세례와 사도들의 세례가 똑같다고 본다. 베푸는 손이 다르다고 세례가 달라지지 않고, 가르침도 같았기 때문이다. 둘 다 회개와 죄 사함의 세례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였다. 요한은 이미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고백했으니 사도들이 더할 것이 없었다. 고대 저술가들 가운데는 둘을 구별하려 한 사람들이 있었다. 크리소스톰은 요한의 세례에 죄 사함이 없었다고 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의 세례에서는 죄가 '소망 가운데' 사해지고 그리스도의 세례에서는 '실제로' 사해진다고 구별했다. 칼빈은 누가복음이 요한이 죄 사함의 회개를 전했다고 분명히 말하므로, 교부의 권위 때문에 성경의 분명한 말을 약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답한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요한은 '오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도들은 '이미 나타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주었다는 것뿐이다.
- 베푸는 손이 달라도 세례는 같다
- 둘 다 회개, 죄 사함, 그리스도의 이름
- 교부의 권위보다 성경의 분명한 말
- 차이는 '오실 분'과 '오신 분'뿐
8. 베푸는 사람이 달라도 세례는 같다
부활 뒤 성령이 더 풍성히 부어졌다는 사실도 두 세례가 다르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 기간에 제자들이 준 세례도 '그리스도의 세례'로 불렸지만, 요한의 세례보다 성령의 역사가 더 크지 않았다. 승천 뒤 사마리아 사람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했을 때 비로소 성령이 놀랍게 임했다. 고대 저술가들이 요한의 세례를 '준비 단계'로 본 것은 사도행전 19장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바울에게 다시 세례를 받았다고 읽었기 때문인데, 칼빈은 이 해석이 틀렸음을 뒤에서(18절) 보이겠다고 한다. 요한이 '나는 물로, 그분은 성령과 불로'라고 한 말은 세례의 종류를 나눈 것이 아니라 자기와 그리스도를 비교한 것이다. 요한도 사도들도 눈에 보이는 표를 섬기는 사람일 뿐이고, 속의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주신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도나투스주의자들과 논쟁하며 누가 베풀든 세례를 주관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라는 논리를 썼다.
- 성령의 풍성함은 세례의 차이가 아니다
- 사마리아: 세례 뒤 안수 때 성령이 임함
- '물과 불'은 세례 종류가 아닌 인물 비교
- 사람은 표를, 그리스도는 은혜를 주신다
9. 구약에 나타난 세례의 그림자
세례가 말하는 '죽임'과 '씻음'은 옛 이스라엘에게 이미 그림자로 나타났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홍해에서 하나님은 백성을 바로의 속박에서 건지시고, 뒤쫓던 애굽 군대를 바다에 빠뜨리셨다. 이것이 '죽임'의 그림자다. 세례는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구원받았고 우리의 '바로'인 마귀가 빠져 죽었음을 약속한다. 애굽 군인의 시체가 해변에 떠올라 겁은 주었어도 해치지 못했듯, 마귀도 위협하지만 우리를 해치지 못한다. 구름은 '씻음'의 그림자다. 구름이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었듯,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가려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보호한다. 당시에는 이 뜻이 희미했지만, 이 두 은혜 말고는 구원의 길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상속자로 삼으신 옛 조상들에게도 이 증표를 주셨다.
- 홍해: 죄의 종살이 끝, 마귀의 패배
- 해변의 시체: 위협하나 해치지 못함
- 구름: 그리스도의 피로 가려 주심
- 구약 백성에게도 같은 두 은혜가 있었다
세례 받은 신자와 원죄, 세례의 신앙고백으로서의 역할. 10-13
10. 세례와 원죄, 신자의 의
오랫동안 일부에서 퍼뜨린 가르침이 있다. 세례로 원죄(아담에게서 모든 후손에게 내려온 본성의 부패)에서 완전히 풀려나고, 타락 전 아담이 지녔을 본래의 의와 순결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 주장이 원죄도, 원래의 의도, 세례의 은혜도 모르는 것이라고 본다. 원죄는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 아래 두고, '육체의 일'을 계속 만들어 낸다. 첫째 결과에 대해 칼빈은, 아기도 아직 열매는 없어도 죄의 씨를 품고 태어나기에 정죄 아래 있다고 말한다. 세례는 신자에게 바로 이 정죄와 형벌이 완전히 씻겼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때 받는 의는 우리 안에 생긴 완전한 의가 아니다. 하나님이 긍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전가된 의'다.
- 세례로 '타락 전 상태' 회복? 아니다
- 원죄의 두 결과: 정죄와 육체의 일
- 세례는 정죄와 형벌이 씻겼다고 약속한다
- 이 땅에서 받는 의는 전가된 의뿐
11. 우리 안에 남은 죄와의 싸움
원죄의 둘째 결과, 곧 부패한 성향은 세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용광로가 불꽃과 연기를 계속 내고 샘이 물을 계속 뿜듯, 육체의 일을 계속 만들어 낸다. 욕망은 죽어서 몸을 벗을 때에야 완전히 사라진다. 세례가 약속하는 것은 죄가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을 핑계로 죄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이 가르침은 자기 안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낙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아직 가는 중이라고 여기고, 욕망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보며 바른 길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 육체를 죽이는 일은 세례와 함께 시작되어 날마다 이어지고, 이생을 마치고 주께 갈 때 완성되니, 그때까지 용기 있게 싸워야 한다.
- 부패한 성향은 죽을 때까지 남는다
- 약속은 죄의 '없음'이 아니라 '못 다스림'
- 죄를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주는 격려다
- 죽이는 일: 세례에서 시작, 죽음에서 완성
12. 죄와의 싸움에 대한 바울 자신의 고백 (로마서 7장)
칼빈은 지금까지의 말이 로마서 6-8장의 흐름과 같다고 한다. 바울은 값없이 받는 의를 말한 뒤 '행위를 받아 주시는 게 아니니 마음대로 살자'는 주장을 막는다.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사람은 동시에 성령으로 거듭나며 세례가 그 보증이라고 덧붙이고, 죄가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고 권한다. 신자에게 연약함이 남는 것을 알기에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위로한다. 이 말에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율법에서 풀려났다는 것이 그리스도를 붙들도록 율법의 가혹한 요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뜻임을 밝힌다. 율법의 쓰임은 우리의 부패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점도 설명한다. 그리고 중생한 자기 자신을 예로 들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한 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위로로 두려움을 이기게 한다. 결론은 이렇다. 세례로 교회에 받아들여진 사람은 믿음 안에 머무는 한, 죄가 아직 남아 있어도 죄책과 정죄에서 풀려났다.
- 로마서 6-8장이 세례와 죄 싸움의 지도
- 값없는 의는 방종의 허락이 아니다
- 율법은 우리의 부패를 비추는 거울
- 중생한 바울도 '곤고한 사람'이라 탄식
- 그래도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가 없다
13. 세례는 공적인 고백의 표지
세례의 둘째 목적은 사람들 앞에서의 고백이다. 세례를 받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기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같은 믿음으로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겠다고 동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입과 몸의 모든 지체로 드러내며, 우리의 본보기로 다른 사람들도 함께 영광을 돌리도록 깨운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지 되물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받았다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리고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그러니 그 고백을 철회하지 않는 한 오직 그리스도만 고백해야 한다.
- 둘째 목적: 사람들 앞에서의 공개 고백
- 모든 성도와 같은 믿음에 동의함
- 찬양을 마음에서 몸으로 드러냄
- 그리스도께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
세례의 주인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재세례는 부당함. 14-18
14. 세례에서 일하시는 주님
세례는 믿음을 깨우고 키우고 굳히려고 주신 것이므로, 주님 손에서 직접 받는 것처럼 받아야 한다. 표징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 죄를 씻고 그 기억까지 지우시는 분,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시키고 사탄의 지배와 욕망의 힘을 꺾으시는 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다. 칼빈은 우리 몸이 물에 씻기는 것만큼이나 참되고 확실하게 주님이 우리 영혼에 이 일을 하신다고 단언한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물질에서 영적인 것을 본다'는 성례의 법칙이다. 그렇다고 은혜가 성례 안에 갇혀 있다가 성례의 힘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성례라는 보증으로 은혜를 아낌없이 주시려는 뜻을 증언하신다. 그리고 겉모양만 보여 주시는 게 아니라 그 실체로 우리를 이끌어 실제로 이루신다.
- 세례는 주님 손에서 받듯 받아야 한다
- 물이 몸을 씻듯 확실하게 영혼에 일하심
- 은혜가 물 안에 '갇혀' 있지는 않다
- 표는 빈 그림이 아니라 실제를 이룬다
15. 믿음을 굳히고 고백을 나타내는 세례
고넬료는 이미 죄 사함과 눈에 보이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뒤에 세례를 받았다. 더 확실한 죄 사함이 아니라 더 굳센 믿음, 곧 서약을 통한 확신을 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죄를 씻으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인가? 칼빈은 세례로 주님이 약속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 소유하라는 뜻이라고 답한다. '네 죄가 사해졌음을 확신하고 세례를 받아 평안을 얻으라'는 말이다. 칼빈은 세례의 능력을 깎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겉의 수단을 통해 일하시므로 표징을 실체와 이어 놓으려는 것이라고 밝힌다. 다만 세례도 믿음으로 받는 만큼만 유익하고, 믿지 않으면 배은망덕의 증거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고백의 면에서 세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신뢰하고, 교회 안에서 모든 신자와 한 믿음과 한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보여 준다.
- 고넬료: 죄 사함 뒤 세례로 확신을 얻음
- '죄를 씻으라'는 약속을 믿음으로 받으라
- 세례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 믿음으로 받는 만큼 유익하다
- 고백: 한 몸 된 교회로 들어감
16. 세례의 가치는 집례자에게 달려 있지 않다
성례를 참 주인이신 하나님 손에서 받는 것이라면, 집례자의 됨됨이에 따라 성례의 가치가 늘거나 줄지 않는다. 편지에 필체와 도장이 확실하면 배달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상관없는 것과 같다. 이 논리로 성례의 효력을 집례자의 자격으로 재던 도나투스주의자들의 오류가 정리된다. 교황제 아래에서 우상숭배하는 사제에게 받은 세례는 무효이니 다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당시 재세례파도 같은 오류다. 우리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므로 집례자가 경건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더라도, 그는 우리를 자기의 무지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끈 것이다. 구약에서도 타락한 제사장에게 받은 할례를 다시 하지 않았고,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배교한 백성을 불러 모았을 때도 할례를 다시 베풀지 않았다. 칼빈은 세례를 순수하게 시행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사람이 더럽혔다고 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성례를 버리지는 않는다.
- 성례의 가치는 집례자 수준과 무관하다
- 편지의 효력은 배달부가 아닌 도장에
- 도나투스파와 재세례파는 같은 오류
- 사람 아닌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음
- 구약도 타락한 제사장의 할례를 인정
17. 회개가 늦어도 세례는 무효가 아니다
반대자들은 세례받고 몇 년 동안 믿음이 없었다면 그 세례가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세례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칼빈은 우리가 어리석고 믿음이 없어 오랫동안 약속을 깨닫지 못해도, 그 약속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확실하게 서 있다고 답한다. 사람이 다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칼빈도 약속을 무시하던 동안에는 세례가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못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회개를 시작하면 그동안의 무지와 완악함을 뉘우치고, 약속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음을 믿고 이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오래 죄 속에 살던 백성에게 다시 할례를 받으라 하지 않으시고 마음을 돌이키라고만 하셨으며, 그들은 회개라는 유일한 조건으로 언약에 다시 회복되었다.
- 믿음 없던 기간 때문에 세례 무효? 아니다
- 약속은 하나님 것이라 그대로 서 있다
- 그동안 유익이 없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 해법은 다시 세례가 아니라 회개와 믿음
- 구약도 '다시 할례'가 아닌 '돌이킴'
18. '바울이 다시 세례를 주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재세례파가 결정타로 내세운 본문은 사도행전 19장이다.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다시 세례를 받았으니, 바른 가르침 없이 받은 세례는 무효이고 다시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어떤 해석자들은 그들이 잘못된 추종자에게 세례받았다고 보지만, 칼빈은 그들이 받은 것이 진짜 요한의 세례였다고 본다. 그들이 성령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한 것은 성령의 존재를 몰랐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성령의 은사가 주어졌다는 소식을 못 들었다는 뜻이다. 칼빈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5절)를 물세례의 반복이 아니라, 안수할 때 주어진 눈에 보이는 성령의 은사, 곧 '성령 세례'로 읽는다. 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세례'라 부르기도 하고, 누가는 히브리식으로 먼저 요약하고(5절) 이어서 자세히 풀었다(6절)는 것이다. 무엇보다, 무지가 세례를 무효로 만든다면 세례받고 3년 동안 바른 가르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도들부터 다시 받아야 했고, 날마다 무지를 고침받는 우리는 어떤 강물도 모자랄 것이다.
- 사도행전 19장은 물세례의 반복이 아니다
- 5절은 요약, 6절은 안수와 성령의 은사
- 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세례'라고도 함
- 무지로 무효라면 사도들부터 다시 받아야
- 날마다 다시 받으면 강물도 모자란다
세례의 구체적인 시행, 여자가 세례를 베푸는 문제. 19-22
19. 세례의 시행 방식
칼빈은 겉의 형식도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단순한 모습으로 지키자고 한다.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물로 세례 주는 것이 하찮다는 듯, 사람들은 물을 축복하는 기도(칼빈은 '주문'이라 부름)를 만들고 촛불, 향유, 축사(악한 영을 쫓는 의식), 침 바르기 같은 의식을 덧붙였다. 칼빈은 이런 관습이 오래되었음을 알지만, 그리스도의 제정에 사람이 감히 더한 것은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대신 단순한 순서를 제안한다. 세례받을 사람을 회중 앞에 세우고, 온 교회가 증인으로 기도하며 그를 하나님께 드린다. 이어 신앙고백을 낭송하고, 세례의 약속을 선포하고,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기도와 감사로 마친다. 물에 완전히 잠그느냐(세 번이든 한 번이든) 뿌리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니 지역의 기후와 교회의 재량에 맡긴다. 다만 '세례를 주다'라는 단어는 물에 잠근다는 뜻이고 고대 교회가 잠그는 방식을 썼다는 점은 칼빈도 분명히 인정한다.
- 사람이 덧붙인 의식은 걷어내자
- 그리스도의 권위로 만족하는 게 가장 안전
- 회중 앞, 고백, 약속, 삼위 이름, 감사
- 잠그느냐 뿌리느냐는 교회의 재량
- 단어 뜻과 고대 관습은 '잠금'이라 인정
20. 세례는 개인이 사사로이 베풀 수 없다
세례는 성찬과 함께 교회 사역의 일부이므로 개인이 사사로이 베풀면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에게나 세례 명령을 주지 않으시고 사도로 세운 사람들에게 주셨다. 성찬도 친히 집례하시며 제자들에게 그대로 따라 하라고 하셨다. 교회 초기부터 목사가 없을 때 죽을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평신도가 세례를 주는 관례가 있었지만, 칼빈은 변호할 수 없다고 본다. 이 관례를 따른 고대 저술가들도 확신이 없었고, 아우구스티누스도 비상시 평신도 세례는 '죄가 아니거나 아주 가벼운 죄'일 것이라며 망설였다. 카르타고 공의회는 여자가 세례를 주는 것을 예외 없이 금했다. '세례 없이 죽으면 중생의 은혜를 잃지 않느냐'는 걱정에 칼빈은 아니라고 답한다. 하나님은 신자의 아기를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 것으로 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만으로 충분하다. 세례를 받지 않으면 모두 버림받는다고 하면 은혜가 율법 시대보다 줄어든 셈이 된다. 할례받는 8일째 이전에도 약속만으로 구원이 있었던 옛 백성보다 우리가 못한 처지가 되는 것이다.
- 세례는 교회의 공적 사역이다
- 명령은 사도로 세운 이들에게 주어졌다
- 비상시 평신도 세례 관행에 반대
- 세례 없이 죽어도 약속은 유효하다
- 은혜가 구약보다 줄어들 수는 없다
21. 여자는 세례를 베풀 수 없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 이전 교회의 관례를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 찾는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여자가 교회에서 가르치거나 세례를 베풀 수 없고, 남자의 직무나 사제직을 자기 것으로 주장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4세기 교부 에피파니우스도 마르키온이 여자에게 세례를 허락한 것을 크게 비판했다. 반대편은 비상시의 특별 조치와 평소의 관례는 다르다고 반론한다. 칼빈은 에피파니우스가 아무 예외도 두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에피파니우스는 여자에게 세례 권한을 주는 것을 웃음거리라고 했고, 그리스도의 어머니에게도 그 권한이 없었다고 조건 없이 말했다. 그러므로 비상 상황을 핑계로 한 관행에도 반대한 것이 분명하다고 칼빈은 본다.
- 근거는 테르툴리아누스·에피파니우스 증언
- 마르키온의 여성 세례 허용은 비판받음
- '비상시 예외' 주장에 반대
- 마리아에게도 권한이 없었다는 증언
22. 십보라의 예를 따를 수 없다
반대자들은 십보라가 돌칼로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자 하나님의 사자가 물러났으니 하나님이 그 행동을 인정하셨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그런 논리라면 앗수르에서 옮겨 온 이주민들의 뒤섞인 예배도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십보라의 일은 따라 할 모범이 아닌 예외적 사건이고, 할례는 세례와 달리 제사장에게만 맡긴다는 명령도 없었다. 반면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의 사신으로 세운 바로 그 사람들에게 세례를 맡기셨으므로, 아론처럼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이 그 직분을 스스로 취하면 남의 직분을 빼앗는 것이 된다. 칼빈은 십보라가 하나님과 남편에게 화가 나 충동적으로 행했고, 위대한 선지자 모세가 곁에 있는데 스스로 할례를 행한 것도 무모했다고 해석한다. 결정적인 원리는 이것이다. 아이가 세례 전에 죽어도 천국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세례는 약속에 효력을 '만들어 주는' 도장이 아니라 약속의 효력을 '확인해 주는' 도장이며, 신자의 자녀는 약속으로 이미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기에 세례로 교회에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게으름이나 멸시 때문이 아니라면 세례가 빠져도 위험하지 않다. 그래도 주님이 맡기신 사람에게서 성례를 받는 것이 더 거룩하고, 성례를 받을 수 없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을 통해 말씀으로 받을 수 있다.
- 십보라는 예외 사건, 따를 모범이 아니다
- 결과가 좋았다고 인정받은 건 아니다
- 세례는 부르심 받은 직분자가 베푼다
- 세례는 약속을 확인해 주는 도장이다
- 멸시가 아니라면 세례가 빠져도 안전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세례를 고백의 표시로만 보는 사람들 | 세례는 군인이 깃발을 들듯 신앙을 드러내는 표일 뿐이다 | 주된 목적은 죄 씻음의 약속으로 믿음을 확증하는 것. 고백은 둘째 목적이다 | 마가복음 16:16, 사도행전 2:38 마가복음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 물 자체에 능력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 | 세례의 물이 씻고 거듭나게 한다 | 물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키는 표. 은혜는 물에 갇혀 있지 않다 | 베드로전서 3:21, 에베소서 5:26, 디도서 3:5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에베소서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 고대에 세례를 미룬 사람들 | 세례는 과거 죄만 씻으니 임종 때 받아야 평생 죄가 사해진다 | 언제 받든 평생이 단번에 씻긴다. 단, 죄 지을 면허는 아니다 |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
| 중세 로마 교회의 고해성사 | 처음 죄는 세례로, 이후 죄는 회개와 열쇠(고해)로 사해진다 | 열쇠의 권세는 세례에 기댄다. 세례 자체가 평생의 회개 표지다 | (직접 인용 없음) |
| 원죄가 완전히 제거된다는 가르침 | 세례로 원죄에서 벗어나 아담의 본래 의가 회복된다 | 정죄는 씻기지만 부패한 성향은 죽을 때까지 남는다. 이 땅의 의는 전가된 의다 | 갈라디아서 5:19, 로마서 7:24, 로마서 8:1 갈라디아서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 일부 교부(크리소스톰, 아우구스티누스) | 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의 세례와 다르다(죄 사함이 없거나 '소망 가운데'만) | 성경이 요한의 세례에 죄 사함이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차이는 오실 분과 오신 분뿐 | 누가복음 3:3, 누가복음 3:16, 사도행전 19:4 누가복음 3: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누가복음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사도행전 19: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
| 도나투스주의, 16세기 재세례파 | 자격 없는 집례자(교황제 아래 사제)의 세례는 무효다 | 세례는 사람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는다 | 마태복음 28:19, 열왕기하 18장, 열왕기하 22-23장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열왕기하 18장 1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 |
| 재세례파 | 세례 뒤 몇 년간 믿음이 없었다면 그 세례는 헛것이다 | 약속은 하나님 것이라 그대로 서 있다. 필요한 것은 회개와 믿음이다 | 로마서 3: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
| 재세례파 | 바울이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세례를 주었다 | 사도행전 19:5는 안수 때 받은 성령의 은사, 곧 성령 세례다 | 사도행전 19:5-6, 사도행전 1:5, 사도행전 11:16 사도행전 19:5-6 5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사도행전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1: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
| 고대부터 이어진 예식 관습 | 축복 기도, 촛불, 향유, 축사, 침 등을 더해야 세례가 온전하다 | 그리스도가 정하신 것에 사람이 더한 것은 거부한다. 단순한 순서면 충분하다 |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 비상시 평신도·여성 세례를 허용한 관행 | 세례 없이 죽으면 구원을 잃으니 누구라도 급히 베풀어야 한다 | 세례는 교회의 공적 직무다. 약속만으로 충분하므로 세례 없이 죽어도 제외되지 않는다 | 창세기 17:7, 마태복음 28:19, 히브리서 5:4 창세기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히브리서 5: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
| 여성 세례를 옹호하는 반대자들 | 십보라의 할례 뒤 하나님이 물러나셨으니 인정하신 것이다 | 결과로 인정을 추론할 수 없다. 예외 사건이며 충동적 행동이었다 | 출애굽기 4:25, 열왕기하 17:32-33 출애굽기 4: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열왕기하 17:32-33 32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
3. 용어
- 성례
- 하나님이 말씀으로 주신 약속을 물, 빵, 포도주 같은 눈에 보이는 표로 확인해 주시는 예식. 개신교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 인정한다.
- 인(印)
- 문서가 진짜임을 보증하는 도장. 칼빈은 세례를 약속에 찍힌 하나님의 도장으로 본다.
- 중생
- 성령으로 새로 태어남. 칼빈은 회개, 곧 평생에 걸친 새로워짐을 포함해 넓게 쓴다.
- 전가
-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 것으로 '쳐 주시는' 것. 우리 안에서 생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여겨 주시는 의다.
- 원죄
- 아담에게서 모든 사람에게 내려온 본성의 부패. 우리를 정죄 아래 두고 죄의 열매를 계속 맺게 한다.
- 열쇠의 권세
- 교회가 복음으로 죄 사함을 선포하고 권징하는 권한.
- 고해성사
-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고 사죄 선언과 보속을 받는 로마 교회의 예식. 칼빈은 성경이 세운 성례가 아니라고 본다.
- 도나투스주의
- 4-5세기 북아프리카에서, 박해 때 배교한 성직자가 베푼 성례는 무효라고 주장하며 갈라져 나간 무리.
- 재세례파
- 16세기 종교개혁 때 유아세례와 기존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신앙고백 뒤 다시 세례를 준 운동. '다시 세례 주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별명이다.
- 축사(逐邪)
- 악한 영을 쫓아내는 의식. 중세 세례 예식에 덧붙어 있었다.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세례는 교회에 들어가는 입문의 표이며, 주된 목적은 죄 씻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삶,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약속해 믿음을 굳히는 것이다.
- 물에는 힘이 없지만 세례는 빈 상징도 아니다. 하나님이 그 표를 통해 약속하신 것을 실제로 이루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받는 만큼 누린다.
- 세례의 효력은 평생 이어진다. 남은 죄와의 싸움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는 없다.
- 세례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집례자의 자격이나 받는 사람의 일시적 무지 때문에 무효가 되지 않고, 다시 받을 필요가 없다.
- 세례는 단순하게, 교회가 세운 직분자가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성례에 묶여 있지는 않으므로, 멸시 때문이 아니라면 세례 없이 죽어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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