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이거 꼭 하겠습니다" 하고 서원해도 될까요? 이미 해 버린 서원이 잘못된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칼빈은 출발점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승인한 것뿐이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을 얻으려고 사람이 지어낸 서원은 받으시지 않는다. 이 원리 위에서 칼빈은 서원을 가리는 세 기준을 세운다. 누구에게 서원하는가, 서원하는 나는 누구인가, 무슨 목적으로 서원하는가. 그리고 감사·회개·조심·자극이라는 네 가지 정당한 목적과 모든 신자의 공통 서원인 세례 서원을 인정한다(1-7절). 다음으로 이 기준을 당시 가장 높임받던 수도사의 종신 서원에 적용한다. 고대 수도원과 당대 수도원을 비교하고(8-10절), '수도 생활이 더 완전하다'는 주장을 마태복음 19:21 해석으로 반박한다(11-16절). 이어 독신 서원의 오류를 디모데전서 5장 과부 사례까지 다룬다(17-19절). 마지막으로 잘못된 서원은 하나님 앞에서 무효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버려도 된다고 양심을 위로하며 마친다(20-21절).
1. 절별 정리
서원의 본질, 그리고 서원과 관련한 오류들. 1-7
1. 사람들의 불신앙과 경솔한 서원
칼빈은 탄식으로 시작한다. 그리스도가 피값으로 사 주신 교회의 자유가 사람의 전통에 짓눌려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짓 교사들이 지운 짐도 모자라서 서원으로 자기에게 더 무거운 의무를 지웠다. 칼빈은 앞에서 가르친 두 원리를 다시 떠올리라고 한다. 첫째,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 필요한 것은 모두 율법에 들어 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새 행위를 지어내지 않도록 의(義) 전체를 그리스도의 뜻에 단순히 순종하는 데 두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호의를 얻으려고 사람이 고안한 예배는 아무리 우리 마음에 들어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말씀 밖에서 하는 서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스도인이 해도 되는가, 얼마나 매이는가. 서원은 하나님께 한 약속이므로 사람 사이의 약속보다 더 진실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역사 속 사람들은 생각나는 대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서원해 왔다. 그래서 칼빈은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이 쓸데없는 트집이 아니라고 말한다.
- 서원 = 하나님께 하는 약속
- 사람과의 약속보다 더 진실하게 지켜야 함
- 말씀 밖의 자작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심
- 생각나는 대로 서원하는 것이 오랜 미신
- 앞선 원리: 율법이 충분, 의는 그리스도께 순종
2. 서원은 하나님께 하는 것임
칼빈은 서원이 정당한지 가리는 세 기준을 내놓는다. (1) 누구에게 서원하는가, (2) 서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3) 무슨 의도로 서원하는가. 첫째 기준은 우리가 상대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순종을 기뻐하신다. 사람이 스스로 만든 종교는 겉보기에 아무리 화려해도 정죄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이 받으실지 아무 증거도 없는 서원을 감히 드려서는 안 된다. 바울이 음식 문제를 두고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라고 했는데, 이 원리는 모든 행위에 적용된다. 하나님께 직접 향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소한 음식 문제에서도 이렇다면 가장 중대한 신앙 의무에서는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첫 번째 경계가 나온다. 경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양심의 확신이 없으면 어떤 것도 서원하지 말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무익한지 먼저 알려 주실 때 우리는 안전하다.
- 서원 판단 3기준: 대상·사람·의도
- 하나님은 말씀이 승인한 예배만 받으심
- 스스로 만든 종교는 화려해도 정죄됨
- 믿음의 확신 없이 하면 죄(롬 14:23)
- 말씀이 앞서 가르칠 때 안전함
3. 서원을 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둘째 기준은 서원하는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자기 힘을 가늠하고, 자기 부르심(소명)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 힘으로 무엇이든 약속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칼빈은 오랑주 공의회(529년)의 결정을 인용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드릴 수 없다. 그러므로 각자 받은 은혜의 분량을 보고 그 안에서 서원해야 한다. 나쁜 예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맹세한 자들(생사를 자기 손에 둔 경솔함)과 입다의 성급한 서원을 든다. 가장 대표적인 경솔함은 독신 서원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고, 우리 안에는 죄가 남아 있으며, 절제의 은사는 대개 기간을 정해 주어진다. 그런데 평생 독신을 서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다. 더구나 이들은 결혼을 '부정(不貞)'이라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결혼을 제정하셨고 존귀하다고 하셨으며, 그리스도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첫 이적을 행하셨다. '천사 같은 삶'이라는 자칭도 실제 그들의 삶과 맞지 않는다. 부르심을 방해하는 서원도 금지된다. 예를 들어 가장이 처자를 버리겠다는 서원, 공직에 뽑힌 사람이 평범한 시민으로 살겠다는 서원이 그렇다. 끝으로 자유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 세우셨다. 그런데 겸손하다는 칭찬을 받으려고 우리 바깥의 사물에 스스로를 매면, 그 행위를 하나님이 받으시리라 기대할 수 없다.
- 내 힘·부르심·자유를 함께 따져야 함
- 받은 은혜 분량 안에서만 서원
- 독신 서원은 가장 큰 경솔함
-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존귀한 것
- 부르심을 막는 서원은 절대 금지
4. 감사의 서원과 회개의 서원
셋째 기준은 의도다. 하나님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 그래서 같은 행동이라도 목적에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기도 하고 크게 싫어하시기도 한다. 포도주를 끊겠다는 서원도 그 행동 자체에 거룩함이 있다고 여기면 미신이다. 하지만 다른 바른 목적이 있으면 문제없다. 칼빈은 정당한 목적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두 가지는 과거를 향하고, 두 가지는 미래를 향한다. 과거를 향한 첫째는 감사의 서원이다. 무사히 돌아오면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는 야곱의 서원, 전쟁이나 큰 위기 앞에서 경건한 왕들이 한 화목제 서원이 그 예다. 시편의 서원 구절들도 이렇게 읽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질병이나 재난에서 건져 주셨을 때 감사의 표로 예물을 서원해 드리는 것은 경건에 어긋나지 않는다. 과거를 향한 둘째는 회개의 서원이다. 폭식이나 과음으로 잘못한 사람이 자신을 다스리려고 한동안 맛있는 음식을 끊겠다고 서원할 수 있다. 다만 칼빈은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법으로 내놓지 않는다. 스스로 유익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는 한 허용된다고 말할 뿐이다.
- 같은 행동도 의도에 따라 갈림
- 행위 자체를 거룩하게 여기면 미신
- 정당한 목적 4가지: 과거 2, 미래 2
- 감사의 서원: 야곱의 십일조 서원
- 회개의 서원: 자원할 때만, 일시적으로
5. 미래와 관련되는 서원들
미래를 향한 서원은 두 가지다. 우리를 더 조심하게 만드는 서원, 그리고 자극을 주어 의무를 다하게 하는 서원이다. 첫째 예를 보자. 그 자체로는 악하지 않지만 자기에게는 번번이 죄로 이어지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을 한동안 끊겠다고 서원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다. 칼빈은 몸치장 욕구가 강해 위험을 느끼는 사람을 예로 든다. 서원으로 스스로 재갈을 물려 흔들림을 끝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둘째 예는 경건의 필수 의무를 자꾸 잊거나 게을리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서원으로 기억을 깨우고 게으름을 쫓아내는 것도 정당하다. 칼빈은 이런 서원이 '초보 훈련'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도 연약함을 돕는 도구이니 아직 미숙한 사람에게 유익하다. 정리하면 네 목적 중 하나를 향하고 특히 외적 행위와 관련된 서원은 정당하다. 단 세 조건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 부르심과 맞는 것, 받은 은혜의 분량에 맞는 것이다.
- 조심하게 하는 서원: 약한 고리 끊기
- 자극하는 서원: 잊는 의무 일깨우기
- 둘 다 초보 훈련이지만 연약함을 돕는 도구
- 조건: 하나님 인정·부르심·은혜 분량
6. 정당한 서원들
모든 신자에게는 공통 서원이 하나 있다. 바로 세례 때의 서원이다. 우리는 요리문답과 성찬 참여로 이 서원을 다시 고백하고 확인한다. 칼빈은 성례를 계약에 빗댄다. 하나님은 긍휼과 영생을 주시고, 우리는 순종을 약속한다. 그 요점은 사탄을 버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자신을 드리고, 계명에 순종하고, 육체의 악한 욕망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서원은 성경이 증언하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요구되므로 거룩하고 유익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법에 완전히 순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행히 은혜 언약 안에는 죄 용서와 성화(마음을 거룩하게 하심)의 약속이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순종을 약속하는 동시에 용서와 도움을 구한다. 개별 서원은 앞의 세 원칙으로 판단한다. 그렇다고 칼빈이 서원을 자주 하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칼빈은 횟수나 시기를 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 조언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건전하고 일시적인 서원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서원을 너무 자주 하면 값싸져서 미신으로 떨어진다. 평생 서원을 하면 지겹게 억지로 지키다가 결국 어느 날 깨 버리게 된다.
- 모든 신자의 공통 서원 = 세례 서원
- 성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계약 같음
- 완전한 순종 불가 → 용서와 도움을 함께 구함
- 개별 서원은 건전하고 일시적인 것만
- 잦은 서원은 값싸지고, 평생 서원은 깨짐
7. 서원과 관련된 미신
칼빈은 수백 년 동안 서원에 얽힌 미신이 세상을 괴롭혀 왔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포도주를 끊는 것 자체가 예배라고 여겨 금주를 서원했다. 어떤 사람은 금식을 서원해 자신을 묶었다. 어떤 사람은 특정한 날이 더 거룩하다는 망상으로 그날 고기를 끊겠다고 서원했다. 성지 순례를 큰 지혜로 여기고, 맨발이나 반쯤 벗은 몸으로 고생해야 공로가 더 커진다고 믿기도 했다. 앞의 원칙들로 점검하면 이런 것들은 헛될 뿐 아니라 노골적인 불경이다. 하나님은 거짓 예배를 무엇보다 미워하신다. 게다가 위선자들은 이런 일을 하고 나서 자기가 대단한 의를 얻었다고 믿는다. 경건을 겉모양에 두고, 이런 일에 덜 신경 쓰는 사람들을 멸시한다.
- 금주·금식·특정일 금육을 예배로 여김
- 고행 순례로 공로를 쌓는다는 착각
- 하나님은 거짓 예배를 가장 미워하심
- 겉모양 경건은 남을 멸시하게 만듦
수도사의 종신 서원과 수도원의 실태. 8-10
8. 고대 교회의 수도원의 실태
서원의 종류를 일일이 다룰 필요는 없다. 하지만 수도사의 종신 서원은 교회가 공인한 것처럼 높임받고 있어서 따로 다룬다. 먼저 칼빈은 "수도원은 옛날부터 있었다"는 말로 당대 수도원을 변호하지 못하게 막는다. 옛 수도원은 생활 방식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옛 수도사들은 리쿠르구스의 법으로 살던 스파르타 사람들보다 더 엄격했다. 맨땅에서 자고 물만 마시고 빵과 채소와 뿌리를 먹었으며, 가장 좋은 음식이 기름과 콩이었다. 칼빈은 이것이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바실리우스, 크리소스톰 같은 직접 겪은 증인들의 증언이라고 밝힌다. 이런 훈련은 더 큰 임무를 위한 준비였다. 수도원은 교회 직분자를 길러 내는 일종의 신학교였다. 위의 세 사람도 수도원에서 자라 감독이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같은 사실을 전한다. 그는 카프라리아 섬의 수도사들에게 교회가 부르면 교만하지도 게으르지도 말고 겸손히 응하라고 권했다. 또 아우렐리우스에게는 수도원을 이탈한 자가 아니라 남아 있는 자 중 뛰어난 자만 성직자로 세워야 한다고 썼다. 다만 모든 수도사가 직분을 목표로 하거나 그 목표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학문 없는 사람이 더 많아서 그중 합당한 사람만 뽑혔다.
- 옛 수도원과 지금 수도원은 전혀 다름
- 옛 수도사: 극도로 검소한 생활
- 수도원은 교회 직분자 양성소였음
- 아우구스티누스: 교회가 부르면 겸손히 응하라
- 합당한 자만 성직자로 뽑음
9. 고대 교회의 수도원의 실태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술
칼빈은 고대 수도원을 그린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글을 길게 소개한다. 『공교회의 도덕성에 관하여』는 마니교도의 비방에 맞서 수도사를 변호한 책이다. 『수도사들의 사역에 대하여』는 이미 변질되기 시작한 수도사들을 비판한 책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린 수도사들은 세상 유혹을 떠나 함께 살면서 기도·독서·토론에 힘썼다. 개인 소유가 없었고 남에게 짐이 되지 않았으며, 손으로 일해 먹을 것을 마련했다. 일한 것은 '원감'에게 맡기고, 원감은 '아버지'에게 보고했다. 아버지는 교만하지 않게 권면했고, 하루 끝에 모두 모여 말씀을 들었다(이집트·동방의 수도원에서는 삼천 명이 한 아버지에게 모였다). 식사는 건강에 필요한 만큼만 했고, 남는 것은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눴으며 쌓아 두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밀라노 등지에서 직접 본 모습도 있다. 견딜 수 없는 일을 강요하지 않았고, 연약하다고 고백해도 정죄하지 않았다. 특정 음식을 더럽다고 거부하지 않았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위해 삼갔다. 아플 때는 거리낌 없이 먹었다. 포도주를 안 마셔도 그것을 더럽게 여기지 않았고, 미신 때문에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더 거룩해지는 게 아니라 더 약해질 뿐"이라고 권했다. 무엇보다 형제 사랑을 지켰고, 사랑을 거스르는 사람은 내보냈다. 칼빈은 여러 자료를 모으면 더 길어지니 이 한 사람의 증언으로 대신한다고 설명한다.
- 공동생활·노동·나눔·사유재산 없음
- 연약한 이를 정죄하지 않음
- 음식 자체를 더럽게 여기지 않음
-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해 삼감
- 형제 사랑이 공동체의 중심 원칙
10. 고대의 수도원주의와 후대의 수도원주의의 비교
칼빈의 목적은 수도원 역사를 다 다루는 것이 아니다. 비교를 통해 "고대 역사가 지금 수도원을 뒷받침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뻔뻔한지 독자가 판단하게 하려는 것이다. 첫째 차이는 경직성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씀이 자유에 맡긴 것을 의무로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옷 색깔과 모양, 음식 종류 같은 사소한 규정을 어기면 용서받지 못할 죄처럼 다룬다. 둘째 차이는 노동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남에게 얹혀 사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데 지금 수도사들은 게으름을 거룩함의 핵심처럼 여기고, 그것을 '명상의 삶'이라 부르며 천사에 가깝다고 자랑한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원한 수도원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경건을 실천하고 돕는 곳이었다. 형제 사랑이 거의 유일한 원칙이었다. 그러니 교회 전체와 갈라져 자기들끼리 뭉치는 것을 그가 칭찬했을 리 없다. 지금 수도사들은 그리스도가 모두에게 명하신 경건에 만족하지 않는다. 남보다 더 완전해지려고 새로운 경건을 만들어 낸다.
- 자유에 맡긴 것을 의무로 만든 경직성
- 노동하던 옛 수도사 vs 게으른 지금 수도사
- 옛 수도원은 모든 신자 공통의 경건을 도움
- 지금은 '더 완전한' 새 경건을 만들어 냄
- 교회 연합 vs 교회와 분리
수도사 생활의 완전함에 대한 그릇된 주장들. 11-16
11. 수도원 지상주의의 허구성
칼빈은 묻는다. 왜 수도사에게만 '완전'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하나님이 주신 다른 모든 소명에서는 그 칭호를 빼앗는가? 그들의 대답은 수도 생활 자체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에 이르는 '최고의 길'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이것을 궤변이라고 본다. 대중 앞에서, 무지한 청년들을 끌어들일 때, 특권을 주장할 때는 '완전의 상태'에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다 몰리면 "아직 완전하지 않고 다만 남보다 더 간절히 사모할 뿐"이라고 물러선다. 사람들이 수도 생활을 '천사의 삶'이라 동경하는 것을 이용해 큰 이익을 남기면서, 정작 절제 규칙은 책 속에 묻어 둔다. 칼빈은 한발 양보해 '완전을 얻는 상태'라는 이름만 인정해도 문제라고 말한다. 성경 어디에도 한 마디 언급이 없는 제도를 높이고, 하나님이 직접 명하시고 귀한 이름까지 주신 소명들을 그보다 낮추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큰 모욕이다.
- 수도사만 '완전'하다는 주장은 궤변
- 상황 따라 '완전 상태'와 '완전의 길'을 오감
- 성경에 없는 제도를 하나님이 정하신 소명보다 높임
- 모든 소명을 깎아내리는 것은 하나님 모욕
12. 그리스도의 삶의 규범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됨
수도사들은 그리스도가 일반 신자에게 지우신 것보다 더 큰 짐을 진다고 공공연히 가르친다. 원수를 사랑하라, 복수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는 복음서의 말씀을 '권고'로 분류한다. 그래서 일반 신자는 지키지 않아도 되고 자기들은 지키겠다고 약속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고대 교회가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고대 교인들은 한목소리로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에 빠짐없이 순종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말씀들을 권고가 아니라 명령으로 가르쳤다. 이 오류는 이미 앞(율법 해설 부분)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요점만 말한다. 지금의 수도원주의는 "하나님이 온 교회에 주신 규범보다 더 완전한 규범을 사람이 만들 수 있다"는 생각 위에 서 있다. 그런 기초 위에 세운 것은 무엇이든 가증하다.
- '복음적 권고' 구분은 잘못
- 원수 사랑·복수 금지는 모든 신자에게 명령
- 고대 교회도 모두 명령으로 가르침
- 하나님 규범보다 더 완전한 규범은 없음
13. 마태복음 19:21의 의미
수도사들이 가장 강하다고 여기는 근거는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이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태복음 19:21). 칼빈은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사는지는 일단 묻지 않고 반박한다. 첫째, 바울은 모든 것을 내주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유를 버리는 것이 완전일 수 없다. 그들이 "유일한 완전이 아니라 최고의 완전"이라고 물러서도, 바울은 사랑이 '완전의 띠'라고 말한다. 주님과 바울이 다른 말을 할 리 없으니 이 말씀을 바르게 읽어야 한다. 해석의 열쇠는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느냐다. 청년은 무슨 행위를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다. 행위를 물었으니 예수님은 율법으로 답하셨다. 율법 자체는 완전한 의를 담은 영생의 길이고, 우리의 부패만 없다면 구원을 줄 수 있다. 이 대답으로 예수님은 자기 가르침이 율법과 다르지 않음을 보이셨다. 새 규범으로 율법을 버리게 하신다는 오해도 막으셨다. 청년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의에서 한참 멀었다. 그의 숨은 상처는 재물 사랑이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찔러 스스로 깨닫게 하셨다. 그가 근심하며 돌아간 것이 그 증거다. 정말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탐욕스런 부자에게 재산을 버리라 하신 것은 야망가에게 명예를, 방탕한 사람에게 쾌락을 버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일반적인 권고로 양심이 깨지 않을 때 그 사람의 구체적인 죄를 짚어 주신 것이다. 반대자들은 이 개인 처방을 모두에게 해당하는 원칙으로 잘못 넓혔다. 칼빈은 교부 중에도 이 구절을 오해해 자발적 가난을 사모하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 완전의 핵심은 소유 포기가 아니라 사랑
- 행위를 물은 청년에게 율법으로 답하심
-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율법은 같은 길
- 청년 개인의 우상(재물)을 찌른 처방
- 개인 처방을 보편 원칙으로 만든 오류
14. 수도원의 분파주의
후대의 수도사들은 '이중 기독교'를 만들었다. 완전한 신자와 보통 신자로 나누는 두 층짜리 신앙이다. 칼빈은 이것이 교부들의 생각과 정반대라고 말한다. 수도 서원을 세례에 빗대어 '제2의 세례'라고까지 부르는 가르침은 교부 시대에 없었다. 있었다면 교부들이 신성모독으로 여겨 멀리했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고대 수도사들의 핵심은 사랑에 자신을 바친 것이었다. 지금 수도원은 이와 전혀 다르다. 수도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교회와 결별한다. 자기들만의 사역을 세우고 성례를 따로 시행해 신자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다. 고대 수도사들도 따로 살기는 했다. 그러나 별도의 교회를 세우지 않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성례와 집회에 참여했다. 지금은 사사로운 제단을 세워 스스로 교회에서 출교한 셈이고, 하나님이 평화와 사랑을 위해 세우신 일상의 사역을 멸시한다. 게다가 베네딕투스회·프란체스코회·도미니쿠스회 같은 분파 이름을 자랑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하던 분파를 그리스도를 나누는 일로 경계했는데, 그것과 같은 일이다.
- '제2의 세례'라는 주장은 신성모독
- 완전한 신자와 보통 신자로 나누는 이중 기독교
- 따로 성례를 시행해 교회와 갈라섬
- 옛 수도사는 교회 예배에 함께 참여함
- 수도회 이름 자랑은 고린도식 분파
15. 수도사들의 타락상
칼빈은 먼저 선을 긋는다. 지금까지 말한 차이는 개인의 도덕성 차이가 아니라 수도원 제도 자체의 차이다. 몇몇 수도사의 잘못이 아니라 수도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본질적인 오류를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도덕 문제도 짧게 언급한다. 분열·증오·파당·음모가 들끓는다고 하고, 순결한 곳이 열 곳 중 한 곳도 안 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검소하기는커녕 살이 쪄 있다고도 한다. 그러다 너무 심하다는 불평을 들을 테니 그만두겠다고 한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도 당시 떠돌이 수도사들을 비판했다고 덧붙인다. 그들은 순교자 유품을 팔고, 아무 뼈나 순교자 유골이라 속여 돈을 뜯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수도원에서 좋아진 사람보다 선한 사람을 못 봤고, 수도원에서 타락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도 못 봤다고 탄식했다. 칼빈은 예외도 인정한다. 지금도 선한 수도사가 몇 명은 남아 있다. 다만 그들은 숨어 지내며 다른 수도사들에게 멸시와 괴롭힘을 당한다.
- 비판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제도
- 도덕적 타락은 짧게만 언급
- 아우구스티누스도 가짜 유골 장사 비판
- 선한 수도사가 남아 있음을 인정
16. 고대의 수도원주의의 부족한 점
칼빈은 비교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정리한다. 지금 수도사들은 고대 수도사들과 원숭이와 사람만큼 다르니 고대 교회를 내세워 자기를 변호할 수 없다. 그런데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칭찬한 고대 수도사들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다고 솔직히 말한다. 미신은 없었지만 지나친 겉치레와 잘못된 열심이 있었다. 모든 소유를 버리고 세상 걱정을 벗어나는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하나님은 경건한 가장이 탐욕과 야망을 버리고 자기 직업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며 가정을 다스리는 것을 더 귀하게 보신다. 사람을 떠나 홀로 명상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그리스도인의 온유에 속하지는 않는다. 사람을 미워하듯 광야로 숨어 주님이 명하신 의무를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다른 악이 하나도 없었다 해도 교회에 쓸모없고 위험한 본보기를 남긴 것만으로 작은 잘못이 아니다.
- 고대 수도사에게도 지나친 겉치레가 있었음
- 직업과 가정 속 경건을 하나님이 더 귀히 보심
- 은둔 명상은 그리스도인의 온유가 아님
- 교회에 위험한 본보기를 남김
수도사의 독신의 서원의 오류. 17-19
17. 수도사의 독신의 서원
칼빈은 수도회에 들어갈 때 하는 서원을 세 가지로 판정한다. 첫째, 행위로 하나님 호의를 얻으려고 새로 만든 예배이니 가증하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정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생활 방식을 만드니 무분별하고 불법하다. 양심을 지탱해 줄 근거가 없고,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이기 때문이다. 셋째, 수도원의 불경한 예배에 자신을 묶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악령에게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자녀를 귀신에게 바쳤다고 선지자들이 말한 것도 망령된 의식으로 참 예배를 더럽혔기 때문이었다. 독신 서원 자체도 문제다. 평생 처녀성을 지키겠다는 약속은 하나님이 결혼 없이 살 조건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구는 것이다. 예수님은 독신의 은사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러니 누구도 그 은사가 자기에게 있다고 무조건 확신할 수 없다. 칼빈의 해법은 단계적이다. 은사가 있으면 쓰라. 어려우면 주의 도우심을 구하라. 그래도 안 되면 하나님이 주신 처방인 결혼을 멸시하지 말라. 여기서 '절제한다'는 것은 몸으로 음행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순결까지 지키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독신 서원이 옛 관습이라고 한다. 칼빈은 옛날에 허용되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옛것이라고 다 규범이 되지는 않는다. 그 관습도 점점 가혹해져 서원하면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키프리아누스조차 계속할 수 없으면 불에 떨어지기보다 결혼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관용을 말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결혼을 음행보다 더 큰 죄라고까지 한다.
- 수도 서원 = 자작 예배이고 부르심 무시
- 독신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음
- 은사 있으면 쓰고, 없으면 결혼이 처방
- 절제는 몸과 마음의 순결 모두
- 키프리아누스도 결혼의 길을 열어 둠
18. 디모데전서 5장의 과부들의 경우
반대자들은 사도 시대에도 독신 서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바울이 공적 사역을 맡았다가 재혼하는 과부를 두고 "처음 믿음을 저버렸다"고 했기 때문이다. 칼빈은 교회를 섬기기로 서약한 과부들이 평생 독신을 맡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유가 달랐다. 독신 자체가 신앙적 공로여서가 아니라, 결혼의 매임 없이 시간을 다 써야 교회를 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약하고 재혼을 생각하는 것은 부르심을 내던지는 일이었다. '처음 믿음을 저버림'에 대해 칼빈은 두 해석을 소개한다. 하나는 세례 서약(자기 소명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됨)을 깨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부끄러움과 정숙을 버리고 방종하게 살아 신자 여성답지 않게 되는 것인데, 칼빈은 이쪽이 매우 합당하다고 본다. 칼빈의 답은 세 가지다. 첫째, 과부들의 독신 서약은 사역과 결혼이 양립할 수 없어서였을 뿐이다. 둘째, 서원에 묶였으니 정욕에 시달리거나 죄에 빠지더라도 결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인정할 수 없다. 셋째, 바울은 그런 위험이 대개 지나간 나이, 한 번 결혼으로 만족하고 절제의 본을 보인 사람만 택하라고 했다. 칼빈은 독신 서원을 반대하는 이유를 다시 밝힌다.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님 섬김으로 오해하고, 은사 없는 사람들이 경솔하게 서원하기 때문이다.
- 과부의 독신 서약은 섬김을 위한 실제적 조건
- 독신 자체를 공로로 여기지 않았음
- 서약 후 재혼은 부르심을 버리는 일
- 정욕에 시달려도 결혼 금지라는 생각은 거부
- 위험이 지난 나이의 검증된 사람만 택함
19. 수녀들의 경우
칼빈은 이 말씀을 수녀에게 적용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초대 교회 여집사(과부)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려 하나님을 달래려고 세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게으르게 여생을 보내라고 세운 것도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교회의 공적 사역을 맡고 사랑의 일을 부지런히 하라고 세운 것이다. 그들이 독신을 서약한 것도 결혼을 삼가는 것이 섬김이어서가 아니라 독신이 임무 수행에 더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젊은 나이가 아니라 위험이 다 지나간 나이에 서약했다. 바울은 육십 세 이상만 명부에 올리라고 했고, 젊은 과부들은 결혼해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 그러니 열두 살, 스무 살, 서른 살에 서약하게 하는 것은 어떤 근거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경험으로 자기 처지를 알기도 전에 어린 처녀들을 속이거나 위협해 멍에를 지우는 것은 더더욱 용납되지 않는다. 남은 두 서원(청빈과 복종)은 미신이 얽혀 있다고만 말하고 넘어간다. 사소한 트집을 잡는 인상을 피하려고 앞의 전체 반론으로 만족하겠다는 것이다.
- 여집사는 가난한 이를 섬기는 공적 사역자
- 독신은 섬김의 편의 때문이었지 공로가 아님
- 바울 기준: 육십 세 이상만
- 젊은 여성의 서약 강요는 용납 불가
- 청빈·복종 서원은 간단히 넘어감
부당하며 미신적인 서원의 폐기. 20-21
20. 부당한 서원을 했을 경우의 처신
칼빈은 목회적 문제로 넘어간다. 양심이 약한 사람들은 잘못된 서원을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괴로워한다. 깨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길까 두렵고, 지키면 더 죄를 지을까 두렵다. 칼빈의 답은 분명하다. 불법하고 부적절한 서원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없으니 우리에게도 무효다. 사람 사이 계약에서도 상대가 요구하는 것에만 의무를 진다. 그러니 하나님이 요구하지 않으신 것에 스스로 매이는 것은 어리석다. 또 우리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렇다는 양심의 확신이 있을 때만 옳다. 바울이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라고 한 것은 모든 선한 행위의 뿌리가 믿음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지해서 경솔하게 했더라도 잘못을 깨달은 뒤에는 그만두는 것이 옳다. 경솔한 서원은 구속력이 없으니 취소해야 한다. 하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서원은 말할 것도 없다. 칼빈은 하나의 원리로 양심을 위로한다. 순전한 샘에서 나오지 않고 바른 목적을 향하지 않는 행위는 하나님이 시작도 금하시고 계속하는 것도 금하신다.
- 잘못된 서원은 하나님 앞에서 무효
- 하나님이 요구하지 않으신 것에 매이지 않음
- 선한 행위의 뿌리는 믿음
- 깨달았다면 그만두는 것이 옳음
- 하나님은 잘못된 행위의 시작도 계속도 금하심
21. 독신의 서원을 폐기하는 문제
이 원리를 알면 수도원을 떠나 정직한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 받는 비난을 이겨 낼 수 있다. 그들은 '불변의 서원'을 깨뜨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칼빈의 답은 두 가지다. 첫째, 사람이 아무리 인정해도 하나님이 폐하신 서원은 구속력이 없다. 둘째, 무지할 때는 매여 있었다 해도 이제 진리를 알았으니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유롭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의 저주에서도 우리를 풀어 주었다. 그렇다면 사탄의 그물에 불과한 외적 족쇄에서는 훨씬 더 쉽게 풀어 주신다. 칼빈은 보호 논리를 하나 더 든다. 하나님은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니 불가능한 서원 때문에 파멸로 가고 있다면 거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독신 은사가 없는 사람에게 독신 서원은 지킬 수 없는 것이고, 경험도 이를 보여 준다. 겉으로 정숙해 보여도 마음속 정욕이 억눌려 있을 뿐이라면 순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결혼이라는 치유책을 주셨는데 그것을 멸시하고 서원으로 자신을 묶는 것은 완악함이다.
- 하나님이 폐하신 서원은 사람이 붙들 수 없음
- 진리를 안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 율법 저주에서 풀어 주신 십자가가 근거
- 불가능한 서원에 머물면 파멸
- 결혼이라는 치유책을 멸시하지 말 것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중세 대중 신앙 | 금주·금식·특정일 금육·고행 순례 서원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로다 | 하나님은 말씀이 승인한 예배만 받으신다. 행위 자체에 거룩함을 두면 미신이다 | 골로새서 2:23, 로마서 14:23 골로새서 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로마서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
| 로마 교회(독신 서원) | 독신은 '천사 같은 삶'이고 결혼은 '부정'하다 |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존귀한 것이다. 평생 독신 서원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다 | 창세기 2:18, 히브리서 13:4, 요한복음 2:2, 6-11, 신명기 6:16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히브리서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요한복음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한복음 2:6-11 6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신명기 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
| 수도원 옹호자 | 수도원은 고대 교회부터 있었으니 정당하다 | 고대 수도원은 노동·나눔·사랑·교회 연합·직분자 양성의 장이었다. 지금과 전혀 다르다 | 디도서 1:15(아우구스티누스 인용), 고린도전서 6:13 고린도전서 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
| 수도회·스콜라 신학 | 수도 생활은 '완전의 상태', 적어도 '완전에 이르는 최고의 길'이다 | 성경에 없는 제도를 하나님이 정하신 소명보다 높이는 것은 하나님 모욕이다 | (11절 직접 인용 없음) 로마서 14:23 원리 |
| 스콜라 신학(복음적 권고) | 원수 사랑·복수 금지·맹세 금지는 일반 신자에겐 '권고'일 뿐이다 | 고대 교회 모두 이를 명령으로 가르쳤다. 온 교회에 주신 규범보다 더 완전한 규범은 없다 | 마태복음 5:33-48 33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
| 수도원 옹호자 | "소유를 팔아 주라"(마태복음 19:21)가 완전의 길이다 | 완전은 사랑에 있다. 이 말씀은 재물에 묶인 청년 개인의 죄를 짚은 처방이다 | 고린도전서 13:3, 골로새서 3:14, 마태복음 19:16-22 고린도전서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마태복음 19:16-22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 |
| 후대 수도원주의 | 수도 서원은 '제2의 세례'다 | 교부들도 몰랐던 신성모독이다. 따로 성례를 시행하는 것은 교회 분열이다 | 고린도전서 1:12-13, 고린도전서 3:4 고린도전서 1:12-13 12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고린도전서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
| 로마 교회 | 독신 서원은 옛날부터 행해진 관습이다 | 허용된 적은 있지만 옛것이 다 규범은 아니다. 키프리아누스도 결혼의 길을 열어 두었다 | 마태복음 19:11-12, 고린도전서 7:9 마태복음 19:11-12 11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고린도전서 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
| 로마 교회 | 바울이 과부의 재혼을 '처음 믿음을 저버림'이라 했으니 사도 시대에도 독신 서원이 있었다 | 섬김을 위한 실제적 서약이었고 육십 세 이상만 해당했다. 젊은이는 결혼하라고 했다 | 디모데전서 5:9, 디모데전서 5:11-14 디모데전서 5: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디모데전서 5:11-14 11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2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3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
| 수도원 측 비난 | 수도원을 떠나 결혼한 사람은 하나님과 교회에 한 서원을 깬 배신자다 | 하나님이 폐하신 서원은 구속력이 없다. 진리를 안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다 | 갈라디아서 3:13, 로마서 14:23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로마서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
3. 용어
- 서원(誓願)
-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거나 삼가겠다고 엄숙히 약속하는 것.
- 자의적 예배
- 하나님이 명하지 않으셨는데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예배나 경건 행위.
- 은혜의 분량
- 하나님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눠 주신 은사와 능력의 정도.
- 소명(부르심)
-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삶의 자리와 역할(가정·직업·직분 등).
- 독신의 은사(금욕의 은사)
- 결혼하지 않고도 정욕에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능력. 칼빈은 대개 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봄.
- 수도원주의
- 세상과 떨어져 공동 규칙과 서원 아래 사는 수도 생활 제도.
- 종신 서원
- 수도회에 들어갈 때 평생 지키기로 하는 서원(독신·청빈·복종).
- 복음적 권고
- 중세 신학에서 일부 예수님 말씀을 '모두의 계명'이 아니라 '더 완전해지려는 사람에게 권하는 것'으로 나눈 개념. 칼빈은 이를 거부함.
- 은혜 언약
-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 용서와 성화를 약속하시고 우리는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관계.
- 오랑주 공의회
- 529년 프랑스 오랑주에서 열린 회의. 사람의 선은 모두 하나님 은혜에서 온다고 결정함.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하나님은 말씀이 승인한 예배만 받으신다. 서원도 이 기준으로 판단한다.
- 정당한 서원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부르심에 맞고, 은혜의 분량 안에 있으며, 감사·회개·조심·자극이라는 바른 목적을 향한다. 그리고 건전하고 일시적이어야 한다.
- 모든 신자의 공통 서원은 세례 서원이다. 우리는 순종을 약속하면서 동시에 용서와 도움을 구한다.
- 수도사의 종신 서원, 특히 독신 서원은 자작 예배이자 은사를 무시한 경솔함이다. 완전은 소유 포기가 아니라 사랑에 있다.
- 잘못된 서원은 하나님 앞에서 무효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버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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