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님께 택함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고, 같은 설교를 듣고도 누구는 믿고 누구는 안 믿는 건 왜일까?
칼빈은 하늘에 감추어진 선택이 땅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묻고, 그 답을 '부르심'에서 찾는다(1-2절). 그래서 선택을 확신하는 바른 길은 하나님의 비밀 장부를 캐는 것이 아니다. 부르심에서 시작해 부르심에서 마치고, 거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선택을 보는 것이다(3-5절). 이어 그리스도께 맡겨진 사람은 끝까지 지켜진다는 '견인'을 다룬다.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나 '많이 청함 받고 적게 택함 받는다'는 말씀이 이 확신을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설명하고, 택자에게 태어날 때부터 '선택의 씨앗'이 있다는 생각은 성경에 없다고 물리친다(6-11절). 끝으로 방향을 바꿔, 같은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마음을 더 굳게 만드는 현실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구절들을 근거로 한 반론에 하나씩 답하며 신비 앞의 겸손으로 마무리한다(12-17절).
1. 절별 정리
선택과 부르심. 1-5
1. 부르심은 선택에 근거하며 따라서 오직 은혜의 역사임
칼빈은 먼저 택한 자를 부르시는 일을 다루고, 뒤에서 악인의 눈을 어둡게 하고 마음을 굳게 하시는 일을 다루겠다고 예고한다. 선택은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어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그래서 부르심은 선택을 공적으로 확인해 주는 '인증'이라고 부를 수 있다. 택자는 선택될 때 이미 자녀로 정해졌지만, 실제로 그 복을 누리는 것은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다. 바울이 성령을 '양자의 영', '인', '기업의 보증'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복음 설교는 악인도 함께 들으므로 설교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선택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택자를 속에서부터 가르쳐 믿음으로 이끄시는 '효과적인 가르침'이 증거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하나님은 택하셨기 때문에 부르시며 구원 전체가 오직 긍휼에서 나온다고 결론짓는다. 반대편은 로마서 9:16을 '은혜가 돕고 사람이 자기 몫을 한다'는 뜻으로 읽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논리라면 '사람의 의지 없이는 긍휼도 소용없다'고 뒤집어 말해도 된다는 뜻이 되는데, 그것은 불경하다고 답한다.
- 선택은 감추어져 있고, 부르심이 그것을 드러낸다
- 부르심 = 선택의 '인증'
- 설교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는 증거가 아니다
- 하나님이 속에서 가르쳐 믿게 하시는 것이 증거다
- 택하셨기 때문에 부르신다 — 처음부터 끝까지 긍휼
2.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임
부르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봐도 그것이 은혜임이 드러난다. 부르심에는 말씀 선포와 성령의 조명(속을 밝혀 깨닫게 하심)이 함께 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지도 않던 사람들에게 먼저 말씀을 주셨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도 우상숭배 한가운데서 불려 나왔으니 유대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고 말씀이 전해진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사람에게는 더 무거운 심판이 남는다. 그래서 속지 않는 구원의 보증은 말씀이 귀에 들린 것이 아니라 성령이 마음에 일하시는 '내적 부르심'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들을 귀와 볼 눈을 주시되 사람의 감사하는 마음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 선택에 따라 주신다고 강조한다. 그러니 '나는 적어도 응답은 했다'는 자랑도 설 자리가 없다. 같은 설교를 들은 무리 가운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만 믿었다는 사도행전의 기록이 그 예다.
- 부르심 = 말씀 선포 + 성령의 조명
- 말씀은 자격 없는 자에게 먼저 주어진다
- 외적 말씀만으로는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다
- 내적 부르심이 속지 않는 보증이다
- '응답한 것'도 내 공로가 아니다
3. 믿음은 선택의 결과이지 선택의 조건이 아님
여기서 칼빈은 두 가지 오류를 경계한다. 첫째는 사람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워, 선택이 사람의 동의로 비로소 확정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뜻이 하나님의 계획보다 위에 서게 된다. 마치 하나님은 믿을 '능력'만 주시고 믿음 자체는 주시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둘째는 성령의 은혜를 깎아내리지는 않지만, 믿음으로 확인되기 전까지 선택은 불확실하고 효력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칼빈은 '우리 쪽에서 볼 때' 선택이 믿음으로 확인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선택이 복음을 받아들인 뒤에야 효력을 낸다고 말하면 결과가 원인을 끌고 가는 셈이 된다. 그렇다고 빛이 눈부시다며 선택을 생각하기조차 거부하는 것도 어리석다.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해야 하고, 가까이 있는 말씀을 두고 구름 위로 날아오르려 해서는 안 된다. 칼빈은 이를 수도관 비유로 정리한다. 말씀(복음)은 물을 실어 나르는 수도관이고 선택은 샘이다. 그러니 수도관이 샘의 영광을 가로채게 해서는 안 된다.
- 오류 1: 선택이 사람의 동의로 확정된다
- 오류 2: 믿음 전까지 선택은 효력이 없다
- 믿음은 선택의 열매이지 조건이 아니다
- 확신은 말씀에서 시작한다
- 수도관(말씀)이 샘(선택)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게
4. 선택에 대한 확신을 얻는 바른 길
선택이 믿음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믿음을 통해 선택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므로 확신을 원할 때는 선택에 뒤따라오는 증표, 곧 부르심을 붙잡는 것이 가장 좋다. 칼빈은 사탄의 가장 위험한 유혹이 신자를 구원에 대한 의심으로 흔들면서, 동시에 엉뚱한 길로 확신을 찾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엉뚱한 길이란 하나님의 지혜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하늘 법정에서 내게 어떤 판결이 내려졌는지 직접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바닥 없는 소용돌이에 몸을 던지는 일이다. '네 구원은 선택에서 나오는데, 네 선택에 대해 무슨 계시를 받았느냐'는 생각은 거의 모든 사람을 괴롭히고 양심의 평안을 빼앗는다. 예정 논의를 위험한 바다에 비유하지만, 말씀 안에 머물면 그 항해는 오히려 안전하고 즐겁다. 그러니 탐구는 부르심에서 시작해 부르심에서 마쳐야 한다. 그렇다고 날마다 받는 은혜가 영원한 양자 삼으심에서 흘러나온다고 느끼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작정이 그분을 경외하는 자에게 평안의 근거라는 베르나르의 글로 이 점을 뒷받침한다.
- 확신은 선택 뒤에 오는 증표(부르심)에서
- 사탄의 유혹: 의심 + 엉뚱한 확신 찾기
- 하늘 장부를 직접 캐면 소용돌이에 빠진다
- 말씀 안에 머물면 예정은 위로의 바다다
- 일상의 은혜도 영원한 뜻의 증거다
5. 선택에 대한 확신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함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를 알고 싶으면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 아버지의 기뻐하심이 머무는 분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목적은 우리가 자녀로 입양되어 구원과 영생을 얻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선택의 확신을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서는 안 되고, 아들과 떼어 놓은 아버지에게서 찾아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는 거울과 같아서, 그분 안에서 보아야 속지 않고 자기 선택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있다면 생명책에 이름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를 가진 것이다. 그리스도는 복음 설교를 통해 이 교제를 우리에게 주시고,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거듭 약속하신다. 또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지혜이자 진리이므로, 그분의 말씀이 아버지의 숨은 뜻과 다를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기도할 때도 '제가 택자라면 들어주소서' 하고 조건을 걸어 하나님과 거래해서는 안 된다. 약속으로 만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았다
- 확신을 나 자신이나 아들 밖에서 찾지 말 것
- 그리스도 = 선택을 비추는 거울
- 그리스도와의 교제 = 생명책 기록의 증거
- 기도에서 '택자라면' 하고 거래하지 말 것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호하심 아래에서 안전함. 6-11
6. 선택의 확고함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
선택이 부르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확신을 받쳐 주는 또 하나의 기둥이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알게 하여 교회로 들이신 사람들을 끝까지 보살피신다. 아버지가 구원하려는 모든 사람을 아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 구원을 돌보시는지 알고 싶으면 그리스도께 맡겨졌는지 보면 된다. 그것도 의심스럽다면, 그분의 음성을 듣는 자가 그분의 양이라는 약속을 붙들면 된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걱정이 스며든다. '청함 받은 자는 많되 택함 받은 자는 적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하라' 같은 말씀이 있고, 실제로 끝까지 견디는 견인은 모든 사람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약속이 미래까지 보장한다고 답한다. 아버지가 주신 자를 하나도 잃지 않으시고, 아무도 그분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위해 하신 것처럼 모든 택자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시는데, 하나님의 아들의 기도가 거절될 리 없다.
- 아버지가 맡기신 자를 그리스도가 지키신다
- 그분 음성을 들으면 그분의 양이다
- 경고 구절 때문에 미래가 불안해질 수 있다
- 그리스도의 약속은 미래까지 덮는다
- 택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는 거절되지 않는다
7. 선택과 견인
그리스도께 속한 듯하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일은 날마다 일어난다. 그리스도도 '멸망의 자식'만은 예외로 두셨다. 칼빈은 이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은 마음을 다한 신뢰로 그리스도를 붙잡은 적이 없다고 답한다. 그들에게도 택자와 비슷해 보이는 부르심의 표지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자가 복음에서 얻는 그 확실함은 없었다. 그러니 그런 사례 때문에 약속을 조용히 신뢰하던 마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 바울의 경고(고린도전서 10:12)는 확신 자체를 막는 말이 아니다. 교만과 남을 깔보는 육적인 자랑을 막는 말이다. 로마서 11장의 '두려워하라'도 겁내고 의심하라는 뜻이 아니라 겸손하라는 뜻이다. 게다가 그 말씀은 개인이 아니라 유대파와 이방파로 갈라져 다투던 교회에서 우쭐해진 이방인 집단을 향한 것이다. 우리 소망은 죽음 너머까지 이어지므로, 앞날을 의심하는 것은 소망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 떠난 사람은 참 신뢰로 붙든 적이 없었다
- 겉으로 비슷한 표지가 있을 수는 있다
- 경고 구절은 확신이 아니라 교만을 막는다
- '두려워하라' = 의심 말고 겸손하라
- 로마서 11장 경고는 교만한 집단을 향함
8. 일반적인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
'청함 받은 자는 많되 택함 입은 자는 적다'는 말씀은 부르심에 두 종류가 있음을 알면 풀린다. '일반적 부르심'은 바깥으로 전해지는 말씀을 통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초청하는 것이다. 이 부르심은 복음이 사망의 냄새가 되는 사람에게도 주어지고, 그들의 정죄를 더 무겁게 한다. '특별한 부르심'은 대개 신자에게만 주어진다. 성령이 속을 밝히셔서 말씀이 마음에 머물게 하신다. 다만 칼빈은 어떤 사람들은 잠시 조명을 받았다가, 은혜를 감사하지 않아 공의롭게 버려지고 더 깊은 어둠에 빠지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혼인 잔치 비유에서 초청을 거절한 이들과 길에서 불려 온 이들은 외적 부르심을 보여 준다.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난 사람은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에 들어왔지만 그리스도의 거룩함으로 옷 입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악인에게도 주어지는 외적 부르심을 자기 선택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 중생의 영과 기업의 보증이 함께하는 부르심이 증거다. 성령은 교회 안에 위선자(칼빈의 표현으로 '이스마엘 족속')가 섞여 있어도 결국 가면이 벗겨질 테니 인내하라고 격려하신다.
- 일반적 부르심: 말씀으로 모두를 초청
- 특별한 부르심: 성령이 마음을 밝히심
- 일시적 조명 후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
- 예복 없는 손님 = 거룩함 없는 고백자
- 확신의 근거는 성령이 함께하는 부르심
9. "멸망의 자식"만 버림 받음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멸망의 자식뿐'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도 앞의 원리로 풀린다. 유다는 참된 양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양 무리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스도가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하나는 마귀'라고 하실 때의 '택함'은 사도 직분으로 뽑으셨다는 뜻이다. 구원의 선택을 말씀하실 때는 '내가 택한 자들을 안다'며 유다를 분명히 제외하신다. 두 '택함'을 섞으면 스스로 혼란에 빠진다. 이어 칼빈은 그레고리우스 1세(540-604, 590년 로마 교황 취임)를 비판한다. 그레고리우스는 우리가 부르심은 알 수 있어도 선택은 확신할 수 없다고 가르치며, 오늘은 알아도 내일은 모른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두려워 떨라고 권했다. 칼빈은 그가 선택을 행위의 공로에 매달았기 때문에 사람을 낙심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한다. 자기 신뢰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로 바꿔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칼빈은 예정을 바르게 알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굳어진다는 처음의 주장을 다시 확인한다. 다만 성령이 우리 눈높이에 맞춰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인다. 에스겔 13:9가 그 예다. 이 구절은 마치 그때 비로소 생명책에 이름을 적는 것처럼 말하지만, 택자의 이름은 처음부터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은 택자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던 자들이 쫓겨난다는 뜻일 뿐이다.
- 유다는 자리만 차지했지 참 양이 아니었다
- '직분의 택함'과 '구원의 택함'을 구별
- 그레고리우스 1세: 선택은 모른다 → 오류
- 공로에 기댄 선택론은 낙심을 낳는다
- 성경은 때로 우리 눈높이에 맞춰 말한다
10. 부르심을 받기 이전의 선택 받은 자의 모습
택자는 태어나자마자, 또 모두 같은 때에 부르심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때에 부르심을 받는다. 부르심 전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광야에서 헤매고, 똑같이 아담의 부패를 지니고 있다. 다른 점은 하나 하나님이 특별한 긍휼로 그들을 마지막 파멸에서 지켜 주신다는 것뿐이다. 그것도 그들이 본래 선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택자에게 태어날 때부터 '선택의 씨앗'이 심겨 있어서 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향이 있다고 상상한다. 그들은 흠 없이 살았던 바리새인 바울과, 구제와 기도로 인정받은 고넬료를 예로 든다. 칼빈은 바울의 경우는 일리가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고넬료는 복음을 분명히 듣지 못했을 뿐 이미 빛을 받아 거듭난 상태였다고 본다. 몇몇 예로 모든 택자를 일반화하는 것은 덕망 높던 이교도 몇 명을 들어 모든 이교도가 거룩했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바울은 에베소서와 고린도전서, 로마서에서 신자들의 과거를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 소망도 하나님도 없는 상태, 어둠으로 묘사한다. 이것을 '하나님을 몰랐다는 뜻일 뿐'이라고 축소할 수도 없다. 바울은 바로 그 과거를 근거로 거짓말과 도둑질을 그만두라고 윤리적 결론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 택자도 부르심 전엔 다른 이와 똑같다
- 다른 점: 최종 파멸에서 지켜지는 것뿐
- '선택의 씨앗' 설은 성경도 경험도 지지 않음
- 고넬료는 이미 조명받은 상태였다
- 바울은 신자의 과거를 '죽음·어둠'으로 묘사
11. "선택의 씨앗"에 관한 사고는 허구임
평생 더러운 죄 가운데 살던 사람들에게 무슨 선택의 씨앗이 싹텄다는 말인가? 만약 씨앗이 있었다면 바울은 '하나님이 너희를 그런 죄에서 지켜 주셨다'고 말했어야 한다. 베드로도 씨앗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어야 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히려 이방인의 정욕대로 산 지난 시간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인물도 있다. 믿기 전의 기생 라합, 예루살렘을 선지자의 피로 물들인 므낫세, 죽기 직전에야 회개한 십자가 위의 강도에게 무슨 씨앗이 있었는가? 그러니 성경과 상관없이 호기심으로 지어낸 생각은 버리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제 길로, 곧 멸망으로 갔다. 하나님은 택자를 건지기로 정하셨지만 정하신 때까지 미루신다. 그때까지는 그들이 용서받지 못할 모독죄에 빠지지 않도록만 지키신다.
- 씨앗이 있었다면 성경이 그렇게 말했을 것
- 라합·므낫세·십자가 강도가 반례
- 호기심이 지어낸 이론은 버려야 한다
-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멸망으로 갔다
- 하나님은 정하신 때까지 기다리며 지키신다
버림받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 12-17
12.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역사
하나님은 택자에게는 부르심을 효과 있게 하셔서 예정하신 구원을 이루신다. 버림받은 자(유기된 자)에게는 심판으로 그분의 계획을 이루신다. 그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말씀을 들을 기회 자체를 주지 않으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을 전하시되 그것으로 오히려 눈을 어둡게 하시는 것이다. 첫째의 대표적인 예로, 칼빈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약 4천 년 동안 이방 민족들에게 구원의 빛이 감추어졌던 일을 든다. 이방인이 무가치해서 그랬다고 하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중에 복음을 받은 후손들도 조상보다 나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획보다 더 깊은 원인을 찾으려는 사람은 괴로움만 얻는다. 기독교를 비판한 철학자 포르피리오스의 추종자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비난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아무도 억울하게 멸망하지 않으며, 그중 일부를 건지시는 것은 값없는 자비라고 밝히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같은 설교를 백 명이 들어도 스무 명만 믿는다. 이 차이를 '나머지가 악해서'라고만 답하면 부족하다. 믿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고쳐 주시지 않았다면 똑같이 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너를 남다르게 하였느냐'는 바울의 질문을 늘 마음에 두어야 한다.
- 버림받은 자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짐
- 방식 1: 말씀 자체를 주지 않으심
- 방식 2: 말씀으로 오히려 눈이 어두워짐
- 아무도 억울하게 멸망하지 않는다
- 믿은 사람이 다른 것도 오직 은혜 때문
13. 말씀을 받고서 오히려 더 완악해지는 현상
하나님은 왜 어떤 이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어떤 이는 지나치시는가? 앞의 경우는 누가가 답한다. 그들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다. 뒤의 경우는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라는 것 외에 더 생각할 수 없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에 동의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악인의 뜻도 선하게 돌이키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 이유는 그분만 아신다는 것이다. 이 편이 '하나님은 스스로 원해서 손을 내미는 사람을 이끄신다'는 크리소스톰의 애매한 말보다 낫다. 크리소스톰처럼 말하면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판단이 아니라 사람의 결단에 달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루디아도 주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서야 바울의 말을 받았다. 경건이 자라는 것은 언제나 성령의 은밀한 일이다. 또 하나님은 어둠에 두기로 정하신 자들에게 말씀을 보내 그 어둠을 더 깊게 하신다. 바로, 에스겔, 예레미야, 특히 이사야 6장이 그 예다. 그리스도가 무리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만 풀어 주신 것도 같은 원리다. 깨닫지 못할 자에게 왜 가르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생각해 보라고 칼빈은 답한다. 아무리 희미한 말씀이라도 악인의 양심을 정죄하기에는 늘 충분한 빛이 있다.
- 받는 자는 '영생 작정된 자'
- 지나치시는 이유는 하나님만 아신다
- 크리소스톰의 표현은 결정권을 사람에게 넘김
- 루디아도 마음이 열려야 믿었다
- 말씀이 오히려 마음을 굳게 하기도 한다
14. 버림받은 자들의 완악함의 원인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들의 불경과 악함과 배은망덕 때문에 마땅히 당하는 일이라고 답하면 옳은 답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왜 어떤 사람은 순종하고 어떤 사람은 완악한 채로 남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이 바로에 대해 인용한 말씀, 곧 하나님이 자기 능력과 이름을 드러내려고 바로를 세우셨다는 말씀까지 올라가야 한다. 버림받은 자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분명 그들 마음의 악함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이 그 부패에 넘겨진 것은 공의롭지만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엘리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은 이유를 성경이 '여호와께서 죽이기로 뜻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완악함이 그들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요한도 완악한 자들의 책임을 면해 주지 않으면서, 성령이 맛보게 하시기 전에는 은혜를 맛보아도 맛을 모른다고 말한다. 바울은 복음을 받은 사람들을 '믿는 자'라 불렀다가 '부르심을 받은 자'로 고쳐 부른다. 믿음보다 앞서는 은혜를 제자리에 두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잔인한 장난을 친다는 불평에는 이렇게 답한다. 모든 사람은 천 가지 죄목 중 하나도 변명할 수 없는 처지이므로 악인이 받는 고통은 공의롭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가 아득히 높은 문제에서는 어느 정도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
- 완악함의 직접 원인: 사람 자신의 악
- 더 깊은 원인: 하나님의 공의롭고 숨은 판단
- 두 원인을 함께 붙든다(엘리의 아들들)
- 바울은 '믿는 자'를 '부르심받은 자'로 고쳐 부름
- 모를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겸손
15. 에스겔 33:11의 증거
반대자들은 악인이 하나님의 작정이 아니라 자기 반역 때문에 멸망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이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에스겔 33:11을 내세운다. 칼빈은 이렇게 되묻는다. 이 말씀이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의지라면, 왜 날마다 초청해도 굳어지기만 하는 사람들 대신 더 잘 받아들였을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하지 않으셨는가? 그리스도도 유대 땅에서 행한 일을 니느웨나 소돔에서 행했다면 더 큰 열매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택자와 유기자를 나누신 영원한 계획과 맞서게 읽으면 본뜻을 비튼다. 선지자의 뜻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용서의 소망을 주는 데 있다. 곧 죄인이 돌이키는 즉시 하나님은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속이시는 것은 아니다. 외적 부르심은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 핑계를 없애지만, 동시에 사람을 자기와 화목시키려는 하나님의 진짜 은혜의 증거다. 그래서 이 말씀은 신자에게는 용서의 확신을 주고, 악인에게는 그 큰 자비를 거절한 죄가 두 배로 무겁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 반론: 겔 33:11은 작정과 모순된다
- 반문: 그러면 왜 니느웨·소돔엔 안 하셨나
- 본뜻: 회개하는 자에게 즉시 용서하심
- 외적 부르심은 속임이 아니라 진짜 은혜
- 거절한 자의 죄는 두 배로 무거워진다
16. 디모데전서 2:4과 기타 구절들의 증거
둘째 반론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디모데전서 2:4이다. 칼빈은 먼저 문맥을 본다. 이 구절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말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이스라엘만큼 가까이하신 나라가 없다는 신명기 4:7이나, 많은 민족이 복음의 빛을 누리지 못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바울은 교회가 왕과 통치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자들이라서 기도해 봐야 소용없어 보였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계층에게도 구원의 길을 닫지 않으셨다고 덧붙인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은 개개인 전부가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이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신다는 로마서 11:32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시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말씀으로 균형을 맞춘다. 더 강해 보이는 베드로후서 3:9도 회개를 원하신다는 말을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회심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를 기꺼이 받으신다(스가랴 1:3). 그러나 하나님이 이끄시지 않으면 아무도 오지 않으며, 회개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 딤전 2:4의 문맥: 통치자를 위한 기도
- '모든 사람' = 모든 계층, 개개인 전부 아님
- 어떤 계층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 벧후 3:9도 일반적 가르침의 의미
- 회개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17. 추가적인 반론들에 대한 반박
마지막으로 칼빈은 남은 반론들에 차례로 답한다. 첫째, 보편적 약속과 작정이 모순되면 약속을 어떻게 믿느냐는 물음이다. 약속은 믿음으로 받을 때에만 효력이 있고, '모두'라는 말은 하나님의 긍휼을 찾고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밝혀 주신 사람만 찾고 구하며, 하나님은 예정하신 사람을 밝혀 주신다. 그러니 모순이 없다. 하나님이 '모두'라고 말씀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신자에게는 믿음만 있으면 죄인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안심을 주고, 악인에게는 피할 곳이 없었다는 핑계를 막는다. 둘째, '예루살렘아, 내가 몇 번이나 모으려 했더냐'는 탄식이다. 이것은 사람의 감정을 입고 하신 말씀이자 시대마다 은혜를 거절한 일에 대한 책망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사람의 악 때문에 좌절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셋째, 하나님께 두 개의 뜻이 있다는 비판이다. 칼빈은 성경이 사람의 모습을 빌려 하나님을 말하는 비유적 표현이 많다고 답한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지만 우리 눈에 여러 가지로 보일 뿐이며, 결국 그 '각종 지혜'에 놀라게 된다. 넷째, 하나님이 만인의 아버지인데 죄짓기도 전에 버리면 불의하다는 반론이다. 칼빈은 이를 경박한 논리라고 일축하고, 그렇다면 왜 한 민족만 자기 백성 삼으셨는지 답해 보라고 되묻는다. 해는 악인과 선인에게 다 비추지만 나라의 상속은 소수에게만 약속된다. 다섯째, 하나님은 지으신 것을 미워하지 않으신다는 반론이다. 칼빈은 이것을 인정하면서도, 성령 없는 유기자는 저주받을 일밖에 할 수 없으므로 정당하게 미움받는다고 본다. 여섯째,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와 '모두를 죄 아래 가두심은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는 구절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고 원하시는 대로 부르시며, 구원받는 사람의 구원이 다 긍휼의 열매라는 뜻이지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니라고 답한다. 결론으로 칼빈은 바울과 함께 이 신비 앞에서 떨며,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반문하느냐'고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사람의 정의로 재는 것은 악하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마친다.
- 약속은 믿음으로 받을 때 효력이 있다
- '모두' = 신자에겐 안심, 악인에겐 핑계 없음
- 예루살렘 탄식은 사람의 감정을 빌린 말씀
- 하나님의 뜻은 하나, 우리에게 여럿으로 보일 뿐
- 신비 앞에서는 떨며 침묵한다(롬 9:20)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보편 약속을 근거로 한 평등론 | 약속이 모두에게 주어졌으니 모든 사람의 처지가 같다 | 부르심은 구별 없이 행해지지 않는다. 효과적 가르침은 택자에게만 있다 | 요한복음 6:44, 요한복음 6:45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
| 은혜와 노력의 분담론 | 은혜가 돕고 사람이 자기 몫을 해서 구원을 이룬다 | 그 논리라면 '의지 없으면 긍휼도 소용없다'가 된다. 구원 전체가 긍휼이다 | 로마서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 신인협력(사람이 하나님의 동역자) | 선택은 사람의 동의로 확정된다 | 그러면 사람의 뜻이 하나님 위에 선다. 하나님은 믿을 능력이 아니라 믿음 자체를 주신다 | 사도행전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
| 믿음 조건론 | 믿음으로 확인되기 전까지 선택은 불확실하고 효력이 없다 | 우리 쪽에서 믿음으로 확인할 뿐이다. 결과(믿음)가 원인(선택)을 이끌지 않는다 | 로마서 8:29-30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 하늘 장부를 직접 캐려는 태도 | 하나님의 비밀 작정을 직접 알아내야 안심할 수 있다 | 바닥 없는 소용돌이다. 부르심과 그리스도에서 시작하고 마쳐라 | 신명기 30:14, 에베소서 1:4 신명기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 조건부 기도 | "제가 택자라면 들어주소서" | 약속으로 만족하라. 선택을 조건으로 하나님과 거래하지 말라 |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 배교 사례를 근거로 한 불안 | 그리스도께 속한 듯하던 자도 떨어지니 택자도 떨어질 수 있다 | 그들은 참 신뢰로 그리스도를 붙든 적이 없다. 맡겨진 자는 하나도 잃지 않으신다 | 요한일서 2:19, 요한복음 10:27-29 요한일서 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0:27-29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
| 경고 구절을 근거로 한 확신 금지 | "넘어질까 조심하라", "두려워하라" — 확신은 교만이다 | 금하는 것은 육적 자랑이다. 두려움은 겸손이지 의심이 아니며, 로마서 11장은 교만한 이방인 집단을 향한 말이다 | 고린도전서 10:12, 로마서 11:20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로마서 11: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
| 그레고리우스 1세 | 부르심은 알 수 있어도 선택은 모른다. 그러니 두려워 떨라 | 선택을 공로에 매달아 낙심을 낳았다. 예정은 바로 알면 믿음을 굳게 한다 | 누가복음 10:20, 요한복음 13:18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3: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
| '선택의 씨앗'설 | 택자는 태어날 때부터 경건의 씨앗이 있다(바울, 고넬료가 예) | 성경도 경험도 지지하지 않는다. 신자의 과거는 죽음과 어둠이었다 | 에베소서 2:1-3, 베드로전서 4:3, 이사야 53:6 에베소서 2:1-3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베드로전서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 크리소스톰의 표현 | 하나님은 스스로 원해 손을 내미는 자를 이끄신다 | 결정권이 사람에게 넘어간다. 경건한 루디아도 마음이 열려야 했다 | 사도행전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
| 불신의 원인을 사람에게서만 찾는 설명 | 안 믿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의 악 때문이다 | 옳지만 부족하다. 믿은 사람도 똑같이 악했으니 차이는 은혜에서 온다 | 고린도전서 4:7, 사무엘상 2:25 고린도전서 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사무엘상 2: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
| 하나님 잔인론(불경한 자들, 포르피리오스 추종자들) | 하나님이 장난삼아 피조물을 괴롭힌다 | 모든 사람이 변명할 수 없는 죄인이다. 아무도 억울하지 않으며, 건지심은 값없는 자비다 | 로마서 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
| 에스겔 33:11 해석 | 하나님은 악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니 멸망은 작정과 무관하다 | 회개자에게 즉시 용서하신다는 약속이다. 영원한 계획과 맞세우면 왜곡이다 | 에스겔 33:11, 마태복음 11:23 에스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마태복음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
| 디모데전서 2:4 해석 | 하나님은 모든 개인의 구원을 원하신다 | 문맥은 통치자를 위한 기도다. '모든 사람'은 모든 계층을 뜻한다 | 디모데전서 2:1-4, 신명기 4:7 디모데전서 2:1-4 1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신명기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
| 베드로후서 3:9 해석 |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 일반적 가르침의 의미다. 회심은 하나님 손에 있다 | 디모데후서 2:25, 예레미야 31:18-19 디모데후서 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예레미야 31:18-19 18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19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
| 약속과 작정의 모순론 | 보편 약속과 선택이 충돌하니 약속을 믿을 수 없다 | 약속은 믿을 때 효력이 있고, 믿음은 조명에서, 조명은 선택에서 온다 | 출애굽기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 예루살렘 탄식을 근거로 한 반론 | 그리스도도 모으려 했으나 실패하셨다 | 사람의 감정을 빌린 표현이자 책망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좌절되지 않는다 | 마태복음 23:37, 이사야 65:2 마태복음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65: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
| 이중 의지 비판 | 칼빈은 하나님께 두 개의 뜻을 둔다 | 뜻은 하나이고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보일 뿐이다 | 에베소서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
| 만인의 아버지론 | 죄짓기 전에 버리는 것은 불의하다 | 그러면 왜 한 민족만 택하셨는지 답해 보라. 해는 모두에게 비추지만 상속은 소수에게 | 마태복음 5:45, 마태복음 25:34 마태복음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태복음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
| 하나님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신다 | 하나님은 지으신 것을 미워하지 않으신다 | 인정한다. 그러나 성령 없는 유기자는 정당하게 미움받는다 | (장절 미상) |
| 차별 없음 · 모두에게 긍휼 | 은혜는 모두에게 차별 없이 임한다 |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고 원하시는 대로 부르신다. 구원받은 자의 구원이 모두 긍휼이라는 뜻이다 | 로마서 10:12, 로마서 9:24, 로마서 11:32 로마서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로마서 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로마서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
3. 용어
- 선택
- 하나님이 영원 전에 어떤 사람들을 자기 자녀로 구원하기로 값없이 정하신 일.
- 유기(버림받음)
-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지 않고 그 죄에 대해 공의롭게 심판받도록 두신 일.
- 일반적(외적) 부르심
- 설교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복음의 초청.
- 특별한(내적) 부르심
- 성령이 마음속을 밝히셔서 그 초청을 실제로 믿게 하시는 부르심.
- 조명
- 성령이 마음의 눈을 밝혀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하시는 일.
- 양자 됨
- 원래 자녀가 아니던 사람을 하나님이 법적으로 자녀 삼으시는 일.
- 인(印)과 보증
- 성령이 '이 사람은 내 것'이라는 도장이자, 장차 받을 유산의 계약금이 되신다는 성경의 그림.
- 견인(堅忍)
- 참으로 택함 받은 신자는 하나님이 붙드셔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는 가르침.
- 신인협력
- 구원을 하나님과 사람이 나눠서 이룬다고 보는 생각. 칼빈은 이를 거부한다.
- 눈높이 표현(신인동형적 표현)
- 성경이 우리가 이해하도록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에 빗대어 하나님을 말하는 방식.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영원 전의 선택은 시간 속의 부르심으로 드러나고, 부르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값없는 은혜다.
- 선택의 확신은 하나님의 숨은 계획을 캐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부르신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다.
- 그리스도께 맡겨진 사람은 끝까지 지켜지며, 경고 구절은 확신이 아니라 교만을 막는다.
- 같은 말씀에도 믿지 않는 사람의 일차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다. 동시에 그 뒤에는 공의롭지만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이 있다.
- '모든 사람'을 말하는 구절들은 예정과 모순되지 않는다. 마지막은 신비 앞의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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