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학습 노트·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3권 13편 율법의 약속과 복음의 약속

제3권 제17장 1-15절 (율법의 약속과 복음의 약속의 일치)

🎬 이 편의 영상은 공개되는 날 이 자리에 들어갑니다 · youtube.com/@빛다방

❓ 성경에 “지키면 복 받는다”는 약속이 이렇게 많은데, 그래도 '오직 믿음'이 맞나요? 야고보서는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던데요?
🧭흐름 한눈에

칼빈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칭의)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내미는 성경 구절들을 하나씩 짚어 나간다. 먼저 율법의 조건부 약속(“지키면 복 주겠다”)을 다룬다. 아무도 그 조건을 채우지 못하므로 이 약속은 그 자체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복음의 값없는 죄 사함을 통해서만 효력이 생긴다고 말한다(1-3절). 이어서 하나님이 사람을 '두 번' 받으신다고 설명한다. 죄인을 처음 받으시는 것은 순전한 은혜다. 그 뒤 신자의 선행을 받으시는 것은 그 선행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용서로 덮였기 때문이다(4-5절). 후반부에서는 행위를 '의'라고 부르거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차례로 푼다. 신명기, 비느하스, 팔복 같은 복 선언, 야고보서, 로마서 2:13, 시편의 결백 호소, 완전을 비는 사도의 기도가 그 대상이다(6-15절). 결론은 이렇다. 행위의 의는 믿음으로 받는 칭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칭의에 기대어 서 있으므로 칭의를 더 빛나게 한다.

📜절별 정리

행위를 율법과 연관짓는 문제. 1-5

📜1. 궤변가들의 그릇된 논지와 그것들에 대한 반론

칼빈은 먼저 “칭의 교리가 선행을 없앤다”는 비난에는 앞에서 이미 답했다고 밝힌다. 칭의에서 행위를 떼어 놓은 목적은 선행을 하지 말라는 데 있지 않다. 행위를 믿거나 자랑하거나 구원의 근거로 삼지 말라는 데 있다. 우리 구원의 유일한 닻은 그리스도가 우리 것이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반대자들의 첫 공격은 율법의 약속이다. 성경에는 “지키면 복 주겠다”는 약속이 많은데(신명기 7:12-13, 예레미야 7:5-7), 오직 믿음이라면 이 약속들이 무효가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약속이 무효이든지, 칭의가 믿음만으로는 아니든지 둘 중 하나”라고 몰아붙인다. 칼빈의 답은 이렇다. 율법은 완전히 지키는 사람에게만 복을 약속하는데,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율법만 붙들면 복은 사라지고 저주만 남는다(신명기 27:26). 그래서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는 자유가 꼭 필요하다. 다만 이 자유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육체의 자유'가 아니다. 정죄에서 풀려났다고 양심이 확신하는 '영적 자유'다. 이 자유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을 붙잡을 때 주어진다.

  1. 칭의에서 행위를 뺀 건 선행 금지가 아니다
  2. 행위를 믿거나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다
  3. 율법은 완전히 지키는 자에게만 복을 약속한다
  4. 율법만 붙들면 남는 것은 저주뿐이다
  5. 해법은 방종이 아니라 양심의 영적 자유다
신명기 7:12-13
반대자가 드는 '지키면 복' 약속의 예
12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13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예레미야 7:5-7
같은 유형의 조건부 약속
5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신명기 11:26
율법이 복과 저주를 함께 내놓는다는 증언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신명기 27:26
다 지키지 않으면 저주라는 율법의 기준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 행위로써는 율법의 약속들을 누릴 조건을 성립시킬 수 없음

복음이 없다면 율법의 약속은 모두 헛되다. 약속이 효력을 내는 유일한 조건, 곧 완전한 순종이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자들은 하나님이 우리 행위를 '의의 일부'로 쳐주고 나머지를 긍휼로 메워 주신다고 생각한다. 칼빈은 이를 거부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한 분을 의를 이루시는 분으로 세우셔서 우리를 도우신다. 바울도 유대인 신자들과 함께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었다(갈라디아서 2:16). 이는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뜻이다. 율법이 약속한 상급을 아무리 크게 그려도, 우리는 부패해서 그 상급을 누릴 수 없다. 믿음으로 얻는 '다른 의'가 있어야만 누릴 수 있다. 다윗도 율법을 찬양하자마자 숨은 허물을 고백했고(시편 19:12),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인자하시다고 노래한 바로 다음 절에서 죄 사함을 구했다(시편 25:10-11).

  1. 완전한 순종이라는 조건은 채워지지 않는다
  2. 행위 일부 + 긍휼 일부 = 칼빈은 거부
  3. 그리스도 한 분이 의를 이루신다
  4. 상급은 '믿음의 다른 의'로만 누린다
  5. 다윗도 율법 찬양 뒤 곧바로 죄를 고백했다
갈라디아서 2:16
율법 행위로 의롭게 될 사람이 없음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음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시편 19:12
율법 찬양 직후 숨은 허물을 고백하는 다윗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편 25:10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인자와 진리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시편 25:11
바로 이어서 큰 죄의 용서를 구함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3. 율법의 약속들이 복음을 통하여 효력을 발휘함

그러면 약속은 열매도 못 맺고 사라지려고 주어졌을까? 칼빈은 아니라고 답한다. 율법의 약속을 행위의 공로와 연결하면 아무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그 자체로만 보면 '어떤 의미에서' 폐기된 셈이다. 바울도 “행하면 살리라”(레위기 18:5)는 약속이 거기서 멈추면 없는 것과 같다고 가르쳤다(로마서 10:5, 갈라디아서 3:12). 그런데 복음의 약속, 곧 값없는 죄 사함이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약속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사람으로 만들고, 우리 행위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칼빈은 율법이 약속한 상급을 하나님이 신자의 행위에 실제로 베푸신다고 인정한다. 다만 하나님이 행위를 받으시는 이유를 늘 기억해야 하며, 그 이유는 세 가지다. ① 하나님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만 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화목하신다. ② 아버지의 너그러움으로, 가치 없는 행위에 가치를 매겨 주신다. ③ 불완전해서 사실상 죄일 수밖에 없는 행위를 용서하고 받아 주신다. 칼빈이 '궤변가'라고 부르는 상대편은 “하나님의 언약이 행위에 공로를 부여한다”는 둘째 이유만 붙잡았다. 정작 주된 이유인 나머지 둘은 버렸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1. 공로와 묶으면 율법의 약속은 무용지물
  2. 복음의 죄 사함이 그 약속을 살려 낸다
  3. 칼빈은 신자의 행위에 대한 상급을 인정한다
  4. 행위를 받으시는 이유는 세 가지다
  5. 상대편은 셋 중 하나만 보고 둘을 버렸다
레위기 18:5
대표적인 율법의 약속 “행하면 살리라”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에스겔 20:11
같은 약속의 반복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로마서 10:5
바울이 이 약속을 율법의 의로 소개함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갈라디아서 3:12
율법은 믿음이 아니라 행함의 원리라는 대비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4. 고넬료의 경우

반대자들은 베드로의 말, 곧 하나님이 각 나라에서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신다는 말을 내민다(사도행전 10:34-35). 천사가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를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고 한 말도 함께 든다(사도행전 10:31). 이를 근거로 선행이 은혜 받을 준비가 되며,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칼빈은 하나님이 사람을 '두 번' 받으신다는 점(이중 용납)을 알아야 성경이 서로 맞아든다고 답한다. 이 절에서는 첫 번째 받으심을 다룬다. 사람은 본래 자기의 비참함 말고는 하나님의 긍휼을 끌어낼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벌거벗고 악에 물든 사람을 받아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하늘의 부르심(히브리서 3:1)을 받을 자격 같은 공로는 없다. 고넬료는 이미 성령의 조명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가졌다. 성령의 열매인 의를 행하고 있었으니(갈라디아서 5:5) 이미 거룩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좋은 것은 모두 은혜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은혜를 '준비'했다는 말은 말이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받으시는 유일한 이유는, 버려진 그를 그대로 두지 않으려는 긍휼이다.

  1. 반대자: 선행이 은혜 받을 준비가 된다
  2. 칼빈: 하나님은 사람을 두 번 받으신다
  3. 처음 받으심은 공로 없는 순전한 긍휼
  4. 고넬료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이었다
  5. 은혜로 받은 것으로 은혜를 준비할 순 없다
사도행전 10:34-35
반대자가 드는 “의를 행하는 자를 받으심”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사도행전 10:31
고넬료의 기도·구제를 기억하심(반대자 근거)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히브리서 3:1
하늘의 부르심은 사람의 가치로 받는 것이 아님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갈라디아서 5:5
의는 성령의 확실한 열매라는 근거(칼빈의 인용)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5. 주께서 신자들의 선행을 기뻐하신다는 의미

이제 두 번째 받으심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멸망에서 건지신 뒤 양자로 삼아 자기 것으로 구별하신다. 그를 새로 나게 하여 새 피조물로 품으시고(고린도후서 5:17)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 베드로가 말한 '받으심'(사도행전 10:34, 베드로전서 1:17)이 바로 이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뒤에는 신자의 행위도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베드로전서 2:5). 하나님이 이 행위를 받으시는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님 자신이 그 선행의 근원이시고, 자기가 주신 선행에 은혜를 더해 인정의 표시를 보이시기 때문이다. 신자는 '귀히 쓸 그릇'(로마서 9:21)으로 택함 받았다. 하나님은 그 안에서 자기 형상의 흔적을 보시고 사랑하신다. 중생은 우리 안의 하나님 형상을 새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자는 여전히 죄인이고, 그 선행에도 육의 냄새가 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품어 주시지 않으면 구원받을 길이 없다.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인애를 베푸신다”는 말씀(신명기 7:9, 열왕기상 8:23, 느헤미야 1:5)도 이렇게 읽어야 한다.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는 데도 이유가 있다. 그분의 선하심이 조롱받지 않게 하고, 사람들이 언약을 핑계로 우쭐해 악을 품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신명기 29:19). 그러나 언약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값없는 약속이다. 다윗도 손이 깨끗해 상을 받았다고 노래하면서(사무엘하 22:21, 시편 18:20), 그 근원이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신 은혜라고 고백한다(사무엘하 22:20).

  1. 두 번째 받으심은 중생한 신자의 행위
  2. 하나님이 그 선행의 근원이시다
  3. 자녀 안의 자기 형상을 보고 기뻐하신다
  4. 그래도 선행은 불완전해 용서가 필요하다
  5. 언약은 의무를 지우지만 본질은 값없다
고린도후서 5:17
새 피조물로 품으심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사도행전 10:34
베드로가 말한 '받으심'의 참뜻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베드로전서 1:17
같은 '받으심'과 연결된 구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베드로전서 2:5
부르심 뒤 신자의 제사(행위)가 받아들여짐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로마서 9:21
귀히 쓸 그릇으로 택하심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신명기 7:9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 대까지 인애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열왕기상 8:23
솔로몬의 기도에 나온 같은 고백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느헤미야 1:5
느헤미야가 반복한 같은 고백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신민기 29:19
언약을 핑계로 악을 품는 자에 대한 경고
사무엘하 22:21
손의 깨끗함에 대한 다윗의 상급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시편 18:20
같은 내용의 시편 본문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사무엘하 22:20
상급의 근원은 하나님의 기뻐하심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칭의를 행위와 연관짓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살핌. 6-15

📜6. 율법의 약속들은 구약에 나타나는 은혜의 약속들과는 다름

칼빈은 먼저 용어를 정리한다. '율법의 약속'은 모세오경에 나오는 약속 전부를 가리키지 않는다. 오경에는 복음의 약속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율법의 약속이란 “조건을 지키면 그만큼 갚아 주겠다”는, 율법의 역할과 관련된 약속만을 말한다. 반면 “사랑하는 자에게 긍휼의 언약을 지키신다”(신명기 7:9 등)는 말씀은 긍휼을 베푸시는 '원인'을 말하지 않는다. 언약 안에 사는 종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려 줄 뿐이다.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경외하게 하려는 데 있다. 그래서 “지키는 자에게 복을”이라는 말씀은 양자 된 자녀가 늘 지닐 의무를 가리킨다. 그러니 양자의 권리를 내던지지 말고, 부르신 목적을 향해 더 열심을 내야 한다. 긍휼의 성취가 행위에 달린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서 자녀의 표지를 보실 뿐이다. 시편 15:1, 시편 24:4, 이사야 33:14-16이 말하는 '하나님의 산에 설 사람'의 조건도 같은 원리다. 이 조건들은 신자가 서 있는 기초가 아니다. 하나님이 신자를 교제 안으로 이끌고 지키시는 수단이다. 하나님 나라에 서게 하는 근원은 긍휼로 입양하고 계속 지키시는 것이고, 지키시는 방식은 중생과 그 열매다.

  1. 율법의 약속 = 조건 채우면 갚는 약속
  2. 모세오경 안에도 복음의 약속이 있다
  3. “지키는 자에게”는 원인이 아닌 묘사다
  4. 순종은 양자 된 자녀의 영구한 의무
  5. 근원은 입양, 방식은 중생과 그 열매
신명기 7:9
긍휼의 언약을 지키신다는 말씀(원인 아닌 묘사)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열왕기상 8:23
같은 유형의 구절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느헤미야 1:5
같은 유형의 구절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시편 15:1
주의 장막에 머물 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시편 24:4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이사야 33:14-16
공의롭게 행하는 자가 높은 곳에 거함
14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15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16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7. 성경이 율법의 행위를 의로 말씀하는 문제

더 큰 난제가 있다. 성경이 선행을 '의'라고 부르고, 그 의로 의롭게 된다고 말하는 듯한 구절들이다. 신명기 6:25는 명령을 다 지키면 그것이 우리의 의라고 한다. 이것은 조건부 율법 약속이라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전당물을 해 질 때 돌려주면 그것이 의가 된다는 신명기 24:13, 비느하스의 행동이 의로 인정되었다는 시편 106:30-31은 그렇게 넘기기 어렵다. 반대자들(칼빈은 '오늘날의 바리새인'이라 부른다)은 칼빈의 논리를 뒤집는다. “믿음의 의가 서면 행위의 의가 사라진다면, 행위의 의가 서면 믿음의 의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칼빈은 계명이 '의'로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구약의 헬라어 번역이 '법령'을 뜻하는 히브리어 '후킴'을 '의로움'(디카이오마타)으로 옮긴 것은 부적절했다고 짚는다. 그래도 이 번역 문제를 길게 따지지는 않는다. 율법에는 완전한 의가 있다. 모두 지켜도 우리는 '무익한 종'일 뿐이지만(누가복음 17:10), 하나님이 그 순종에 '의'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다. 그러나 칼빈은 그런 의를 실제로 이룬 사람은 없다고 본다. 율법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우리 육체가 연약해서다. 사가랴 부부를 '의인'이라 한 것(누가복음 1:6)도 그들의 행위 자체보다 율법의 기준을 따라 부른 표현이다. 한 계명을 지켜도 다른 계명들을 어기고, 그 한 계명마저 불완전하다. 그러니 누구도 의인이라 칭찬받을 수 없다.

  1. 계명이 '의'로 불리는 건 당연하다
  2. 율법 자체에는 완전한 의가 있다
  3. 문제는 그 의를 이룬 사람이 없다는 것
  4. 하나 지켜도 나머지를 어기고 그것도 불완전
  5. 번역어 문제는 짚되 크게 따지지 않는다
신명기 6:25
명령을 지키면 그것이 의라는 말씀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신명기 24:13
전당물 반환이 의가 된다는 구체적 예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시편 106:30-31
비느하스의 행동이 의로 인정됨
30그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서서 중재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31이 일이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
누가복음 17:10
다 지켜도 무익한 종에 불과함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6
사가랴 부부를 의인이라 부름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누가복음 1:3
누가가 전해 받은 표현을 그대로 썼다는 근거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8. 하나님 앞에서 행위의 가치

두 번째 유형의 구절에는 특별한 난제가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어서 '의로 여겨졌다'는 말씀(로마서 4:3, 갈라디아서 3:6)을 믿음의 의를 보이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쓴다. 그런데 비느하스의 행위도 '의로 인정되었다'(시편 106:31)고 하니, 같은 논리를 행위에도 쓸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이로써 “믿음 없이는 안 되지만 믿음만으로도 안 되고, 행위가 의를 완성한다”는 주장이 증명되었다고 기뻐한다. 칼빈은 궤변을 버리고 성경 안에서 조화를 찾자고 청한다. 바울은 믿음으로 받는 칭의가 스스로 의가 없는 사람들의 피난처임을 알았다(로마서 5장).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에게는 행위의 의가 없고, 행위로 의롭게 될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다(로마서 3:20). 여기서 칼빈은 두 질문을 구분한다. '행위 그 자체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와 '칭의가 선 뒤 행위가 어디에 서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행위 자체로 보면 하나님 앞에 내놓을 가치가 없다. 이어서 칼빈은 칭의를 정의한다. 죄인이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으로 받아들여져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자기 것처럼 입어 하늘 심판대 앞에 확신 있게 서는 것이다. 이 칭의가 선 뒤에는 선행이 공로와 다른 방식으로 인정받는다. 불완전함이 그리스도의 완전함으로 덮이면, 그때 선행이 의로 여겨진다(로마서 4:22).

  1. 반대자: 비느하스처럼 행위도 의로 여겨진다
  2. 칼빈: 행위 자체의 가치와 칭의 뒤 자리는 별개
  3. 행위 자체로는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게 없다
  4. 칭의 =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심판대에 섬
  5. 덮임 받은 뒤에야 선행이 의로 여겨진다
로마서 4:3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짐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6
같은 아브라함 증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시편 106:31
비느하스의 행위가 의로 인정됨(반대자 근거)
이 일이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
로마서 5장
믿음의 칭의는 의 없는 자의 피난처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
로마서 3:20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가 없음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4:22
칭의 뒤 선행이 '의로 여겨지는' 방식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9.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가 행위의 의의 기초임

칼빈은 반대자에게 질문을 차례로 던진다. 다른 데서는 죄를 지으면서 한두 가지 거룩한 일을 했다고 의롭다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선행을 여럿 했는데 일부에 흠이 있다면 의롭다 할 수 있는가? 이것도 아니다. 계명을 다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신명기 27:26). 흠 하나 없는 완전한 행위가 사람에게 있기는 한가? 별도 하나님 앞에 깨끗하지 못하고(욥기 25:5) 천사도 의롭지 못하다(욥기 4:18). 그러니 어떤 선행도 그 자체로는 '의'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칭의 뒤에 따라오는 선행은 불완전해도 의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행위의 의를 내세워 믿음의 칭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는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다. 칭의가 없으면 그들이 자랑하는 행위의 의도 헛것이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 모순을 어미를 해치는 독사의 새끼에 빗대 꼬집는다. 결론은 이렇다. 행위의 의가 믿음의 칭의에 기대고 있다면, 칭의는 손상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굳건해진다. 다만 행위를 너무 높여서 행위가 칭의의 역할을 빼앗거나 믿음과 나눠 갖게 해서는 안 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자기뿐 아니라 그 행위까지 본래 가치를 넘어 의롭다 인정받는다.

  1. 한두 선행으로 의인이 되지 않는다
  2. 흠 없는 행위는 사람에게 없다
  3. 칭의가 없으면 행위의 의도 헛것이다
  4. 행위의 의는 칭의를 오히려 굳힌다
  5. 단, 행위가 칭의의 자리를 빼앗으면 안 된다
신명기 27:26
다 지키지 않으면 저주라는 기준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욥기 25:5
별도 하나님 앞에 깨끗하지 못함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욥기 4:18
천사도 하나님 앞에 완전하지 못함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0. 행위는 칭의로 말미암아 의로 인정받음

반대자들은 행위에 '부분적인 의'가 있다고 말한다. 칼빈은 오히려 하나님이 신자의 행위를 '완전한 것으로' 인정하신다고 말한다. 다만 그 행위가 어떤 터 위에 서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행위가 하나님 앞에 인정받기 시작하는 것은 죄 사함 이후다. 그리고 죄 사함은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보시기 때문에 주어진다. 그리스도께 접붙여지면 우리 죄가 그분의 무죄하심으로 가려지고, 행위의 허물도 그분의 순결 속에 묻힌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행위까지 의롭다 함을 받는다. 결과가 원인에 딸리듯 행위의 의는 믿음에 딸려 있다. 바울은 이 점을 보이려고 다윗의 말을 인용한다. 죄를 용서받고 가림 받은 사람이 복되다는 것이다(로마서 4:7-8, 시편 32:1-2). 성경에는 행위에 복을 약속하는 구절도 많다(시편 112:1, 잠언 14:21, 시편 1:1, 야고보서 1:12, 시편 106:3, 시편 119:1, 마태복음 5:3·5·7). 이 덕목들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기 전에는 아무 유익이 없고, 죄 사함 뒤에야 설 자리가 생긴다. 그러므로 죄 사함이 가장 높고 첫째가는, 유일한 복이다. 신자를 '의인'이라 부르는 것도 거룩한 삶 때문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은 의를 다 이룬 사람이 아니라 의를 향해 애쓰는 사람이고, 그 의도 칭의의 결과다.

  1. 행위의 의는 죄 사함이라는 터 위에 선다
  2. 허물이 그리스도의 순결 속에 묻힌다
  3. 행위는 결과, 믿음은 원인이다
  4. 행위에 붙은 복도 죄 사함 뒤에야 의미가 있다
  5. 죄 사함이 첫째가는 유일한 복이다
로마서 4:7-8
복은 행위가 아니라 죄 사함에 있음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시편 32:1-2
바울이 인용한 다윗의 원래 고백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12:1
행위에 복을 말하는 구절(반론의 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잠언 14:21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의 복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시편 1:1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자의 복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의 복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편 106:3
공의를 지키는 자의 복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19:1
행위가 온전한 자의 복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의 복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죄 사함이야말로 가장 높고 첫째가는 복이요, 또한 유일한 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1. 야고보의 교훈에 대한 오해

반대자들의 가장 강한 무기는 야고보서다.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며 믿음만으로는 아니라는 말씀이다(야고보서 2:21, 2:24). 칼빈은 먼저 묻는다. 바울과 야고보를 싸우게 할 셈인가? 같은 성령이 바울을 통해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로마서 4:3, 갈라디아서 3:6). 성령이 스스로 모순될 리 없으니 두 말씀이 맞아드는 길을 찾아야 한다. 칼빈은 반대자들이 믿음을 칭의에서 뽑아내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비판한다. 양심이 평안을 얻는 일, 양심이 기댈 의의 기준을 세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야고보의 의도는 분명하다. 믿음을 자랑하면서 삶으로는 불신을 드러내는 사람들, 교회에 늘 있는 그런 사람들의 헛된 자신감을 꾸짖는 것이다. 참 믿음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자들은 두 단어를 오해한다. 첫째 단어는 '믿음'이다.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라 빈껍데기 생각에 이름만 붙여 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믿음이 있노라 하고”라고 쓴다(야고보서 2:14). 이 믿음은 마귀의 지식보다 못하고(2:19) 죽은 것이다(2:20). 그 내용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믿는 것”(2:19)뿐이다. 이런 믿음이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참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그분의 의에 참여하게 한다.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신뢰하는 확신으로 의롭게 하는 것이다.

  1. 같은 성령이 바울과 야고보를 통해 말씀하신다
  2. 야고보의 표적은 말뿐인 믿음이다
  3. 오해 1: '믿음'이라는 단어
  4. 야고보의 '믿음'은 “있노라 하는” 빈 믿음
  5. 참 믿음은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의롭게 한다
야고보서 2:21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반대자 근거)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야고보서 2:24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만으로는 아님(반대자 근거)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로마서 4:3
바울: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6
같은 바울의 증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야고보서 2:14
“믿음이 있노라 하고” — 말뿐인 믿음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19
한 분 하나님을 믿는 것뿐, 마귀도 믿음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서 2:20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12. 야고보가 의도하는 바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의미

두 번째 오해는 '의롭다 하다'라는 단어다. 바울은 이 말을 우리 불의가 기억되지 않고 의롭다 인정받는다는 뜻으로 쓴다. 야고보도 같은 뜻이었다면 “아브라함이 믿으니 의로 여기셨다”(창세기 15:6)를 인용한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야고보서 2:23). 야고보의 순서를 보면, 먼저 이삭을 바친 일로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말한다(2:21). 그다음에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한다(2:23). 결과가 원인보다 먼저 올 수는 없다. 시간 순서도 이를 보여 준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 잉태되기도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이삭이 태어날 때 이스마엘은 이미 소년이었고, 이삭을 바친 것은 그보다 더 뒤의 일이다. 그러니 둘 중 하나다. 야고보가 순서를 뒤집었거나(그럴 리 없다), '의롭다 함'을 공로로 의를 얻는다는 뜻으로 쓰지 않았거나. 칼빈의 결론은 이렇다. 야고보는 의가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의가 '드러나 선포되는' 것을 말한다. 참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순종과 선행으로 자기 의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행위 없이 의롭게 된다고 논증하고, 야고보는 선행이 없는 사람은 의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1. 오해 2: '의롭다 하다'라는 단어
  2. 바울: 의롭다 인정받음(전가)
  3. 야고보: 의로움이 드러나 증명됨(선포)
  4. 창세기 15장 칭의는 이삭 바침보다 수십 년 앞섬
  5. 빈 믿음은 못 살리고, 참 믿음은 선행으로 드러난다
창세기 15:6
아브라함이 믿으니 의로 여기심(원래 본문)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야고보서 2:23
야고보도 창세기 15:6을 인용함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야고보서 2:21
이삭을 바친 행위 — 시간상 칭의보다 훨씬 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야고보가 여기서 의를 전가 받은 사실이 아니라 의를 선포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3. 로마서 2:13의 논지

반대자들은 로마서 2:13도 든다.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칼빈이 암브로시우스의 말로 인용하는 해석이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곧 율법을 이루는 것이라 이렇게 말했다는 풀이다. 칼빈은 이 해석이 문제를 피해 가는 것일 뿐이고, 답이 훤히 열려 있으니 필요 없다고 본다. 이 구절의 문맥은 유대인의 자랑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율법을 안다고 자랑하면서 정작 율법을 가장 무시했다. 바울은 그 자랑을 무너뜨리려고, 율법에서 의를 찾으려면 아는 데서가 아니라 지키는 데서 찾으라고 경고한 것이다. 바로 앞 절도 이방인은 율법 없이, 유대인은 율법으로 심판받는다고 하여 둘 다 정죄한다(로마서 2:12). 칼빈은 율법의 의가 행위에 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한다. 다만 그것을 증명하려면 율법을 완전히 이룬 사람을 내놓아야 한다. 칼빈은 바울의 말을 이렇게 풀어 쓴다. “들었다고 자랑하지 말고 행위를 내놓아 보라.” 그런데 아무도 내놓지 못하니 결론은 거꾸로 나온다. 율법의 의는 완전한 행위에 있고 아무도 그것을 이루지 못했으니, 율법으로는 의가 생기지 않는다.

  1. 로마서 2:13의 표적은 유대인의 율법 자랑
  2. 율법의 의가 행위에 있다는 건 칼빈도 인정
  3. 단, 완전히 행한 사람을 내놓아야 한다
  4. 아무도 없으니 율법으로는 의가 생기지 않는다
  5. 암브로시우스식 우회 해석은 쓰지 않는다
로마서 2:13
행하는 자가 의롭다(반대자 근거)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로마서 2:12
이방인·유대인 모두 정죄하는 앞 문맥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4. 신자들이 하나님께 자기들의 행위를 호소하는 의미

반대자들은 시편에서 성도가 자기 의를 내세워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는 구절들을 든다(시편 7:8, 17:1, 17:3, 18:20-23, 26:1, 26:4, 26:9, 26:10-11). 칼빈은 문맥과 정황을 보면 어렵지 않다며 두 종류로 나눈다. 첫째, 삶 전체가 아니라 특정한 일에 대해서만 판단을 구하는 경우다. 칭의는 삶 전체가 의와 맞아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런 기도는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두면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정만 의로운 재판장께 아뢰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완전함이 아니라 악인과 비교해 자기 의를 말하는 경우다. 다윗이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실 것이라고 한 말(사무엘상 26:23)이 그 예다. 자기 공로대로 상 달라는 뜻이 아니라 사울의 악과 견주어 자기 무죄를 아뢴 것이다. 바울이 자기 양심의 증언을 자랑한 것(고린도후서 1:12, 사도행전 23:1)도 같다. 중상모략에 맞서 정직을 변호했을 뿐, 하나님 앞에서 그것에 기대려 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바울은 자책할 것이 없어도 그것으로 의롭게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고린도전서 4:4). 하나님만을 상대할 때 성도들은 한목소리로 고백한다. 주께서 죄를 따지시면 설 자가 없고(시편 130:3), 주 앞에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시편 143:2). 그리고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다고 노래한다(시편 63:3).

  1. 시편의 결백 호소는 두 종류로 읽는다
  2. ① 삶 전체가 아닌 특정 사안에 대한 호소
  3. ② 하나님이 아닌 악인과 견준 결백
  4. 바울도 자책할 것 없어도 그것으로 의롭지 않다
  5. 하나님 앞에선 “의인 없다”가 성도의 고백
시편 7:8
나의 의를 따라 판단해 달라는 기도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시편 17:1
의로운 호소를 들어 달라는 기도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편 17:3
흠을 찾지 못하셨다는 고백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시편 18:20-23
손의 깨끗함대로 갚으셨다는 다윗의 노래
20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21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2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3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시편 26:1
완전함에 행했으니 판단해 달라는 기도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시편 26:4
허망한 자와 함께하지 않았다는 고백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시편 26:9
죄인과 함께 거두지 말아 달라는 기도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시편 26:10-11
악인과 대비해 자기 완전함을 말함
10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11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무엘상 26:23
다윗이 사울과 견주어 무죄를 아룀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고린도후서 1:12
바울이 중상에 맞서 양심의 증언을 내세움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사도행전 23:1
바울의 같은 양심 증언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고린도전서 4:4
자책할 것 없어도 그것으로 의롭지 않음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시편 130:3
죄를 따지시면 설 자가 없음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시편 143:2
주 앞에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음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시편 63: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음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15. 신자의 완전을 바라는 사도의 기도에 근거한 주장에 대한 반론

비슷한 구절이 더 있다.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고(잠언 20:7)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으며(잠언 12:28), 율례를 따르는 자는 의인이니 살리라는 말씀이다(에스겔 18:9, 18:21, 33:15). 칼빈은 이 말씀들을 부인하지도 흐리지도 않는다. 다만 아담의 자손 가운데 그런 의를 가진 사람을 한 명이라도 내놓아 보라고 한다. 없다면 길은 둘뿐이다. 망하든지, 하나님의 긍휼로 피하든지. 칼빈은 신자의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의가 영생을 향한 걸음이 된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근원은 하나님이 은혜 언약 안의 사람들을 공로로 따지지 않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품으시는 데 있다. 그래서 칼빈은 스콜라 신학자들의 '받아주시는 은혜'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이론은 행위가 본래는 구원에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받아 주셔서 구원에 맞는 가치를 얻는다고 말한다. 칼빈은 다르게 본다. 행위 자체에 결함이 있고 다른 죄로도 얼룩져 있으므로, 둘 다 용서하시지 않으면, 곧 값없이 의를 주시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 반대자들은 성도가 흠 없이 서기를 비는 사도의 기도들(데살로니가전서 3:13, 5:23 등)도 내민다. 예전에 코엘레스티우스를 따르던 사람들도 이 구절로 이생에서 완전한 의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짧게 답한다. 흠 없이 설 날을 목표로 사모해야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조금씩 나아질 뿐이고 죄의 육체를 벗고 주와 온전히 연합할 때에야 도달한다는 것이다. 성도를 '완전하다'고 부르고 싶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의를 받아들이면 된다. 그 완전함에는 자기의 불완전함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 들어 있다.

  1. “온전히 행하면 산다”는 말씀은 참이다
  2. 그런 의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3. 신자의 불완전한 의도 영생을 향한 걸음
  4. 스콜라의 '받아주시는 은혜' 이론은 거부
  5. 완전은 목표이고, 이생은 조금씩 자라는 길
잠언 20:7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잠언 12:28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음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에스겔 18:9
율례를 지키는 자는 의인이니 살리라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18:21
악인도 돌이켜 지키면 살리라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에스겔 33:15
같은 취지의 반복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데살로니가전서 3:13
거룩함에 흠 없기를 비는 기도(완전론자 근거)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흠 없이 보전되기를 비는 기도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골로새서 1:22
흠 없이 세우시려는 목표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에베소서 1:4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택하심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고린도전서 1:8
끝까지 책망할 것 없는 자로 세우심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로마 교회 신학자들(칼빈이 '궤변가'라 부름)율법의 “지키면 복” 약속이 유효하니 칭의는 믿음만으로 되지 않는다완전히 지킨 사람이 없어 약속은 그 자체로 효력이 없다. 복음의 죄 사함을 통해서만 효력이 생긴다신명기 27:26, 갈라디아서 2:16, 레위기 18:5
신명기 27: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레위기 18: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같은 입장하나님이 행위를 의의 일부로 쳐주고 나머지는 긍휼로 채우신다의를 이루시는 분은 그리스도 한 분이다. 행위의 몫은 없다갈라디아서 2:16, 시편 25:11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시편 25: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같은 입장하나님의 언약(약정)이 행위에 공로의 가치를 준다받아 주시는 세 이유 중 하나만 본 것이다. 행위 자체가 먼저 용서받아야 한다시편 143:2, 시편 19:12
시편 143: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시편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같은 입장(고넬료 해석)기도와 구제 같은 선행이 은혜 받을 준비가 된다고넬료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처음 받으심은 순전한 긍휼이다사도행전 10:31, 사도행전 10:34-35, 갈라디아서 5:5
사도행전 10: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도행전 10:34-35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갈라디아서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같은 입장('오늘날의 바리새인')성경이 행위를 '의'라 부르고 비느하스의 행위도 의로 인정했으니 믿음에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계명은 의가 맞지만 아무도 다 이루지 못했다. 신자의 행위는 칭의 뒤 덮임을 받아 의로 여겨진다신명기 24:13, 시편 106:31, 누가복음 17:10, 로마서 4:22
신명기 24:13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시편 106:31 이 일이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
누가복음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로마서 4: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같은 입장행위에 복을 약속하는 구절이 많으니 복은 행위로 온다죄 사함이 첫째가는 유일한 복이다. 다른 덕목은 그 뒤에야 의미가 있다로마서 4:7-8, 시편 32:1-2
로마서 4:7-8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시편 32:1-2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같은 입장(야고보서 해석)야고보는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만으로는 아니라고 했다'믿음'은 말뿐인 믿음, '의롭다'는 의가 드러남을 뜻한다. 바울과 모순되지 않는다야고보서 2:14, 야고보서 2:19, 야고보서 2:21-23, 창세기 15:6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서 2:21-23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같은 입장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바울도 말했다유대인의 율법 지식 자랑을 깨는 말이다. 완전히 행한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율법으로는 의가 없다로마서 2:12-13
12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같은 입장시편의 성도들이 자기 의를 따라 판단해 달라고 기도했다특정 사안에 대한 호소이거나 악인과 견준 결백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이 없다고 고백한다사무엘상 26:23, 고린도전서 4:4, 시편 143:2
사무엘상 26:23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고린도전서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시편 143: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코엘레스티우스 추종자(펠라기우스 쪽, 5세기 초 무렵)사도의 기도대로 이생에서 완전한 의를 이룰 수 있고 이뤄야 한다완전은 사모할 목표이고 이생은 조금씩 자라는 길이다(아우구스티누스)데살로니가전서 3:13, 골로새서 1:22
데살로니가전서 3: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로새서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믿음만 자랑하고 삶은 방치하는 사람들(야고보가 겨냥한 이들)믿는다고 고백했으니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칼빈도 반대한다. 말뿐인 믿음은 죽은 것이고, 언약은 거룩한 삶의 의무를 지운다야고보서 2:14, 야고보서 2:20, 신명기 29:19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신명기 29:19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
📖용어
칭의죄인이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일.
전가남의 것을 내 것으로 쳐 주는 것. 그리스도의 의가 내 계좌로 옮겨진다고 생각하면 쉽다.
공로내가 한 일 때문에 마땅히 받을 자격이 생긴다는 생각.
율법의 약속 / 복음의 약속앞의 것은 “다 지키면 갚아 주겠다”는 조건부 약속, 뒤의 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값없이 죄를 용서하겠다는 약속.
이중 용납하나님이 죄인을 처음 받으시는 것(순전한 은혜)과, 그 뒤 신자의 선행을 받으시는 것(용서로 덮은 뒤)을 구별하는 칼빈의 설명.
중생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 칼빈은 우리 안의 하나님 형상이 새로워지는 일로 본다.
양자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신 것. 자녀의 권리와 함께 자녀다운 삶의 의무가 따른다.
스콜라 신학중세 대학에서 발전한 논리 중심의 신학. 칼빈은 당대 로마 교회 신학자들을 자주 '궤변가'라 부른다.
받아주시는 은혜행위가 본래는 부족해도 하나님이 받아 주시기로 해서 구원에 맞는 가치를 얻는다는 스콜라 이론. 칼빈은 이를 거부한다.
칠십인역구약을 헬라어로 옮긴 옛 번역. 칼빈이 7절에서 말하는 '헬라어 성경'이 이것이다.
💬청년의 삶으로
  • 회사에서는 성과로 평가받는데, 하나님 앞에서도 실적을 쌓아야 할까? → 하나님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받으시고, 그 뒤 내 불완전한 일을 용서로 덮어 기뻐하신다(3·5절).
  • 헌금이나 봉사를 많이 하면 하나님께 점수를 따는 걸까? → 고넬료의 선행은 은혜를 받으려는 준비가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의 열매였다(4절).
  • 연애 상대나 친구가 “나 믿어”라고 말만 하고 삶은 그대로라면? → 야고보가 꾸짖은 것은 말뿐인 믿음이다. 참 믿음은 순종과 선행으로 드러난다(11-12절).
  • 가족이나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내 결백을 하나님께 말해도 될까? → 시편 기자처럼 특정한 일에서 억울함을 아뢸 수 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내 삶 전체는 “의인이 없다”는 고백 위에 선다(14절).
  • 교회에서 열심히 섬겨도 여전히 부족한 내 모습에 지칠 때는? → 완전은 사모할 목표이고 이생은 조금씩 자라는 길이다. 불완전함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성도의 완전함에 속한다(15절).
✅이 편의 결론
  • 율법의 약속은 참되지만, 아무도 조건을 채우지 못하므로 복음의 죄 사함을 통해서만 열매를 맺는다.
  • 하나님은 죄인을 순전한 긍휼로 먼저 받으시고, 그 뒤 신자의 선행을 용서로 덮어 기뻐하시며 상급도 주신다.
  • 행위를 '의'라 부르는 구절들은 모두 믿음의 칭의를 전제한다. 행위의 의는 칭의를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굳힌다.
  • 바울과 야고보는 싸우지 않는다. 바울은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를, 야고보는 '참 믿음은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말한다.
  • 신자의 의는 이생에서 늘 불완전하므로, 끝까지 하나님의 긍휼만 피난처로 삼는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존 칼빈 『기독교강요』(생명의말씀사)의 논증 구조를 우리 말로 정리한 것입니다(원문 미전재).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기준입니다. youtube.com/@빛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