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바라보며 산다면서, 지금 내 월급과 연애와 일상은 어디까지 누리고 어디까지 내려놔야 할까?
칼빈은 환난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이 세상에 매달리는 우리의 집착을 끊으시고 눈을 하늘로 돌리게 하십니다(9장 1-2절). 그렇다고 삶을 미워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은 감사해야 할 선물이고, 하늘과 비교할 때에만 '유배지'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영생을 사모하면서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맡겨진 자리를 지키고, 부활 소망으로 죽음의 두려움과 악인의 형통이 주는 시험을 이깁니다(9장 3-6절). 10장은 이 소망을 기준으로 이 땅의 좋은 것들을 쓰는 법을 다룹니다. 금욕과 방종이라는 두 극단을 모두 버리고, 감사·절제·청지기 의식이라는 원칙을 세운 뒤, 마지막으로 각자의 '소명'을 하나님이 배치하신 초소처럼 지키라고 권하며 마무리합니다.
1. 절별 정리
제9장 영생에 대한 묵상 · 환난을 통해서 이 세상의 삶에 대한 과도한 애착을 버리게 하심. 1-2
1. 헛된 이 세상의 삶
칼빈은 어떤 환난이든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목적은 현세의 삶에 덜 매이고 내세를 바라는 습관을 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로는 영원한 복을 바란다고 하지만, 실제 계획과 소원과 행동을 보면 온통 이 세상 것뿐입니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의 빛에 눈이 부셔서 그 너머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쟁과 약탈, 추방과 기근, 화재 같은 재산 손실, 배우자의 부정과 자녀의 악행, 가족의 죽음, 질병을 '허용'하십니다. 이를 통해 이 세상 것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직접 보게 하십니다. 칼빈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땅에서는 싸움을 각오하고, 면류관은 하늘에서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세를 낮게 보는 마음이 먼저 서야 내세를 진지하게 사모하게 됩니다.
- 환난의 목적: 세상 집착을 끊고 내세를 보게
- 사람은 본성적으로 세상에 종처럼 매인다
- 재산·가정·건강의 흔들림을 '허용'하심
- 이 땅은 싸움터, 면류관은 하늘에서
- 현세를 낮게 봐야 내세를 진지하게 사모
2. 인생의 허망함을 애써 회피하는 인간의 악한 성향
칼빈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중간 지대가 없다고 봅니다. 세상을 낮게 보든지, 세상을 지나치게 사랑해 노예가 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환난을 겪고도 삶의 비참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우리가, 계속 잘나가기만 하면 어떻겠느냐고 묻습니다. "인생은 연기와 그림자 같다"는 말은 학자뿐 아니라 서민의 속담에도 흔한 상식입니다(시편 102편). 그런데도 사람은 이 진리를 가장 쉽게 잊고,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을 세웁니다. 장례 행렬이나 묘지를 지날 때 잠깐 철학적인 감상에 젖어도, 극장에서 치는 박수처럼 돌아서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칼빈은 말보다 실제 경험으로 이 세상의 비참함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훈련하시면, 그 부르심을 듣고 게으름을 털고 일어나 내세를 사모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 세상을 대하는 '중간 지대'는 없다
- 인생이 덧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
- 그런데 가장 쉽게 잊는 진리이기도 하다
- 장례식의 감상은 극장 박수처럼 짧다
- 그래서 말보다 경험으로 가르치신다
제9장 · 이 세상의 삶에 대한 바른 인식이 영생에 대한 묵상으로 이어짐. 3-6
3. 이 땅의 삶에 대한 감사
칼빈은 여기서 균형을 잡습니다. 현세를 낮게 보는 훈련을 하라고 해서 삶 자체를 혐오하거나 하나님께 불평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은 부패한 것이 섞여 있어도 하나님이 주신 복이고, 그 은혜를 인정하지 않으면 배은망덕이라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차 줄 영광의 '기업'을 보이시기 전에, 날마다 주시는 작은 복으로 먼저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자연도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빛 가운데 두시고, 자연을 쓰게 하시고, 살아갈 수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땅의 삶은 하늘 영광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미리 맛보게 해서 그것이 완전히 드러날 날을 사모하게 합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삶을 선물로 알고 감사하고, 그다음에 세상의 부패를 생각해서 지나친 집착을 피합니다.
- '낮게 봄'은 '혐오'가 아니다
- 삶은 무시하면 안 될 하나님의 선물
- 매일의 복은 아버지 사랑의 작은 증거
- 이 땅은 하늘 영광을 위한 훈련장
- 지금의 맛보기가 완전한 날을 사모하게 한다
4. 영생을 사모함
지나친 애착이 줄어드는 만큼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이 커져야 합니다. 옛사람들 가운데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태어났다면 일찍 죽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과 참 신앙의 빛이 없다면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합니다(전도서 4:2-3 참조). 아기가 태어나면 울고 장례식에서 기뻐한 사람들도 일리는 있었지만, 참 믿음을 몰랐기에 그것은 절망에서 나온 행동일 뿐이었습니다. 신자는 하늘과 비교해서 이 땅을 봅니다. 하늘이 본향이면 땅은 유배지이고, 몸에 있는 동안 우리는 주님과 떨어져 있습니다(고린도후서 5:6). 다만 미워해도 되는 것은 이 삶이 우리를 죄에 묶어 둔다는 점 하나뿐이고, 삶 자체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삶에 지쳐 빨리 끝나기를 바라더라도, 주님 뜻이면 남아 있겠다는 각오로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삶은 주님이 배치하신 초소이니, 사는 때와 죽는 때를 주님께 맡기라고 칼빈은 권합니다(빌립보서 1:20-24, 로마서 14:8).
- 애착이 줄수록 영생 사모가 커져야 한다
- 비교의 언어: 본향과 유배지
- 미워할 것은 '죄에 묶임'이지 삶 자체가 아님
- 삶은 하나님이 배치하신 초소
- 사는 때와 죽는 때는 주님께 맡긴다
5.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함
칼빈은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죽음 이야기만 나와도 불길하다며 떠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죽는다는 말에 본성적으로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큰 위로로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의 빛이 없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썩어 가는 몸이라는 장막이 무너지면, 썩지 않는 하늘 영광으로 새로워지고 유배지에서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누구나 영원히 살고 싶지 않느냐"는 반론에 칼빈은 "맞다, 그러니 더욱 내세를 사모해야 한다"고 답합니다. 영원한 상태는 이 땅이 아니라 거기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5:2-3). 말 못 하는 피조물도 부활을 기다리는데(로마서 8:19), 성령으로 깨우침을 받은 우리가 썩어질 것에만 머무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칼빈은 길게 다투지 않고 키프리아누스의 글 「죽을 운명에 대하여」를 권합니다. 죽음 앞에서 초연했던 철학자들을 보면 부끄러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죽음과 부활의 날을 기쁘게 사모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아직 덜 자란 것이니,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가장 귀한 일로 여기고 간절히 기다리자는 것입니다(누가복음 21:28).
- 죽음 앞에서 느끼는 본성적 충격은 인정한다
- 그러나 믿음의 위로가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 '영원히 살고 싶다'는 바람은 내세에서 이뤄진다
- 말 못 하는 피조물도 부활을 기다린다
- 신자의 표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함
6. 영생을 사모함으로 얻는 위로
신자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처럼 이 땅에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같은 처지에 놓입니다(로마서 8:36).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면 신자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고린도전서 15:19). 하지만 하늘을 보면, 악인이 잘나가고 우리를 모욕하고 빼앗아도 꿋꿋이 견딜 수 있습니다. 주님이 눈물을 씻기시고 영광의 옷을 입히시고 당신의 복에 함께 참여하게 하실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이사야 25:8, 요한계시록 7:17). 반대로 악인의 번영은 수치로, 웃음은 울음으로 바뀌고, 꺼지지 않는 불의 심판을 받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공의'라고 부릅니다(데살로니가후서 1:6-9). 칼빈은 이것이 유일한 위로라고 말합니다. 이 위로가 없으면 절망에 빠지거나, 세상의 헛된 위로에 기대다 망합니다. 시편 73편 기자도 악인의 형통을 보고 미끄러질 뻔했지만, 성소에서 그들의 결국을 깨닫고서야 평안을 찾았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바라볼 때, 십자가가 마귀와 육체와 죄를 이긴다는 것이 칼빈의 결론입니다.
- 신자의 이 땅 삶은 '도살장의 양' 같다
- 하늘이 없다면 신자가 가장 불쌍하다
- 그날: 눈물을 씻기시고 함께 기뻐하심
- 악인의 형통은 끝이 아니다
- 시편 73편처럼 '결국'을 보면 평안이 온다
제10장 이 세상의 삶을 사는 자세 ·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은 하나님의 선물들임. 1-2
1. 극단적인 사고의 위험성
칼빈은 앞 장의 원리에서 이 땅의 좋은 것들을 쓰는 법을 끌어냅니다. 살려면 필수품을 써야 하고, 꼭 필요하진 않아도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완전히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깨끗한 양심으로 쓰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기준은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하늘로 가는 길 위에 있으니, 그 걸음을 늦추지 않고 돕는 만큼 쓰면 됩니다. 바울이 "쓰지 않는 것처럼 쓰라"고 한 것도 이 뜻입니다(고린도전서 7:30-31). 여기에는 두 극단이 있습니다. 한쪽은 방종을 막으려고 필수품만 허락하는 사람들입니다. 경건한 동기였지만 빵과 물 외에는 거의 죄로 여길 만큼 지나쳐서, 하나님 말씀보다 더 심하게 양심을 묶었습니다. 테베의 크라테스는 재산이 자기를 망칠까 봐 바다에 던져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반대쪽은 "각자 자기 양심대로 하면 된다"며 한계를 거부하고 무절제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입니다. 칼빈은 양심을 세세한 규정으로 묶을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큰 원칙은 주고 있으니 그 한계는 지켜야 한다고 답합니다.
- 쓰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어떻게'
- 기준: 나그네의 걸음을 돕는 만큼
- 극단 1: 빵과 물만 — 말씀보다 엄격함
- 극단 2: 내 양심대로 — 방종의 핑계
- 세부 규정은 없어도 성경의 큰 원칙은 있다
2. 땅의 것들을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목적
칼빈이 세우는 원리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에 맞게 쓰면 잘못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가 아니라 유익을 주려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음식은 생명을 지탱할 뿐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도 주라고 만드셨습니다. 옷은 몸을 가리는 것뿐 아니라 아름다움과 단정함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무와 열매에도 쓰임새 외에 보기 좋은 모습과 향기가 있습니다(창세기 2:9). 시편이 포도주와 기름과 양식을 하나님의 은혜로 노래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시편 104:15).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 색깔의 조화, 금과 은과 대리석의 귀함은 모두 필요와 상관없이 우리가 즐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 기준: 만드신 분의 목적대로 쓰기
- 창조 목적에는 '필요'와 '즐거움'이 다 있다
- 음식은 맛을, 옷은 아름다움을 위해서도 있다
- 꽃의 향기, 색의 조화도 누리라고 주셨다
제10장 · 각자의 소명을 따라 성실히 섬겨야 함. 3-6
3. 하나님의 목적을 든든히 붙잡음
칼빈은 필수적인 용도만 인정하는 생각을 '비인간적'이라고 부르며 버리라고 합니다. 그 생각은 하나님 은혜의 정당한 열매를 빼앗고, 사람이 감각 없는 나무나 돌이 되지 않는 한 실천할 수도 없습니다. 동시에 정욕은 풀어 두면 끝없이 넘치니 경계해야 합니다. 정욕을 다스리는 첫 장치는 만물의 목적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만물은 우리가 그것을 지으신 분을 알고 감사하게 하려고 있습니다. 잔치와 술에 빠져 해야 할 일을 못 하거나, 옷으로 뽐내며 남을 무시한다면 그 안에 감사는 없습니다. 칼빈은 대리석과 금과 그림을 너무 사랑하다 마음이 그 물건처럼 굳어 버리고, 부엌 냄새에 취해 영적인 것은 냄새도 못 맡는 사람이 많다고 꼬집습니다. 그래서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바울의 원칙이 필요합니다(로마서 13:14).
- '필요한 것만'은 비인간적, 목석이나 가능하다
- 그러나 정욕은 풀어 두면 끝이 없다
- 시금석: 이걸 누리며 감사하고 있는가?
- 사치를 사랑하면 마음이 사물을 닮아 간다
4. 두 가지 원칙
정욕을 다스리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은 현세를 낮게 보고 영생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원칙이 나옵니다. 첫째,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처럼, 세상 물건을 쓰는 자는 다 쓰지 못하는 자처럼 살라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7:29, 31). 이렇게 사는 사람은 식탐, 집과 옷에 대한 야망, 자존심과 교만, 지나친 까다로움, 하늘을 생각하지 못하게 막는 온갖 근심과 집착을 끊어 냅니다. 둘째, 넉넉할 때는 검소하게, 가난할 때는 평안히 참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5절에서 자세히 다룸). 칼빈은 로마의 카토가 했다는 "옷에 큰 관심을 두면 덕에 크게 무관심해진다"는 말과, 몸에만 마음 쓰는 사람은 영혼에 관심이 없다는 옛 격언을 덧붙입니다. 결론적으로 신자의 자유를 철저한 규정으로 묶을 수는 없지만, 기준은 있습니다. 되도록 적게 탐하고, 사치와 넘치는 것을 끊고, 도움이 되라고 주신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게 늘 경계하는 것입니다.
- 영생 묵상이 절제의 지름길
- 원칙 1: 쓰되 쓰지 않는 것처럼
- 원칙 2: 넉넉할 땐 절제, 가난할 땐 인내
- 규정은 없지만 '적게 탐하기'가 늘 목표
- 도움이 방해가 되지 않게 경계한다
5. 세 번째 원칙
(절 제목은 '세 번째 원칙'이지만, 앞부분은 4절의 두 번째 원칙을 자세히 풀고, 뒷부분에서 세 번째 원칙을 새로 제시합니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은 궁핍을 참는 법을 배워 물욕에 시달리지 않아야 합니다. 칼빈은 검소하게 사는 것이 주님의 학교에서 많이 자랐다는 표시이고, 이 부분에 전혀 진전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다고까지 말합니다. 그 이유는 가난을 못 견디는 사람이 부유해지면 반대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허름한 옷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비싼 옷을 입으면 자랑하고, 소박한 밥에 불만인 사람은 형편이 되면 사치를 부립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비천과 풍부, 배부름과 배고픔 모두에 처하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빌립보서 4:12). 세 번째 원칙은 칼빈이 앞서 이웃 사랑을 다룰 때 이미 말한 것입니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자비로 맡겨진 것이고,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날이 옵니다(누가복음 16:2). 결산하시는 분은 절제와 검소와 단정함을 기뻐하시고 과시와 교만을 미워하시며, 사랑이 빠진 물질 사용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 가난을 못 견디면 부해져도 무너진다
- 검소함은 제자로 자랐다는 표시
- 바울의 비결: 어떤 형편에도 처할 줄 앎
- 원칙 3: 모든 소유는 맡겨진 것, 결산이 온다
- 결산 기준에는 '사랑'이 들어 있다
6. 각자가 받은 소명을 따라 행함
마지막으로 칼빈은 모든 활동에서 각자의 '소명'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들뜨고 변덕스럽고, 한꺼번에 이것저것 다 잡으려는 야망이 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혼란을 막으시려고 각자의 삶의 자리마다 할 일을 정하시고, 그것을 '소명'이라 부르셨습니다. 소명은 하나님이 배치하신 초소와 같아서,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 헤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인간의 이성이나 철학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철학자들은 폭군에게서 나라를 해방하는 일을 가장 고귀하게 여기지만, 개인이 제멋대로 폭군에게 손을 대면 하나님은 그를 정죄하십니다. 다윗이 사울을 치지 않은 것이 그 예입니다(사무엘상 24장, 26장). 소명을 따르지 않은 일은 사람 눈에 칭찬받을 만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삶도 조화를 잃습니다. 반대로 소명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모든 수고와 짐이 하나님의 감독 아래 있다는 위로를 얻습니다. 아무리 천해 보이는 일도 소명을 따라 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빛나고 귀합니다.
- 소명 = 하나님이 정해 주신 삶의 자리
- 들뜬 마음과 지나친 야망을 막는 울타리
- 하나님의 판단은 세상 기준과 다를 수 있다
- 짐도 하나님이 지우신 것이니 위로가 된다
- 천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빛난다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신앙 없는 비관론(옛 사람들) |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출생은 슬퍼하고 장례는 기뻐하라 | 신앙의 빛 없이 보면 일리는 있다. 그러나 절망에서 나온 생각이고, 신자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다 | 전도서 4:2-3, 고린도전서 15:19 전도서 4:2-3 2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
| 삶을 혐오하는 경건 | 세상은 악하니 삶 자체를 미워하고 빨리 끝나기를 바라라 | 삶은 감사할 선물이다. 미워할 것은 죄에 묶인 상태뿐이고, 부르실 때까지 초소를 지켜야 한다 | 빌립보서 1:20-24, 로마서 14:8 빌립보서 1:20-24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 죽음을 두려워하는 명목상 신자 | 죽음 이야기는 불길하니 피하자 | 본성적 충격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활의 위로로 이겨야 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은 기쁜 소식이다 | 누가복음 21:28, 디모데후서 4:8 누가복음 21: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디모데후서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 "영원히 살고 싶은 건 본능" | 누구나 사라지기 싫어하는데 죽음을 어떻게 사모하나 | 맞다. 그래서 영원한 상태가 이루어지는 내세를 더 사모해야 한다 | 고린도후서 5:2-3, 로마서 8:19 고린도후서 5:2-3 2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로마서 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
| 악인의 형통 앞에서 흔들림 | 악한 사람이 잘되는데 신앙이 무슨 소용인가 | 끝을 보라. 하나님의 공의가 고난받는 자에게 안식을, 괴롭히는 자에게 심판을 준다 | 시편 73:2-3, 시편 73:17, 데살로니가후서 1:6-9 시편 73:2-3 2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편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데살로니가후서 1:6-9 6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
| 지나친 금욕(경건한 몇몇 사람, 크라테스) | 방종을 막으려면 필수품만 써라. 재산은 버려라 | 경건한 동기지만 말씀보다 양심을 더 묶는다. 하나님은 즐거움을 위해서도 만물을 지으셨다 | 창세기 2:9, 시편 104:15 창세기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시편 104: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
| 방종(자유를 핑계로 삼는 사람들) | 각자 양심대로 쓰면 되고 한계는 없다 | 세부 규정으로 양심을 묶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의 큰 원칙(절제, 감사, 결산)은 지켜야 한다 | 로마서 13:14, 누가복음 16:2 로마서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누가복음 16: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
| 철학자들의 윤리 | 폭군에게서 조국을 해방하는 일이 가장 고귀하다 |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의 기초는 소명이다. 개인이 자기 자리를 넘어 폭군을 치면 정죄받는다 | 사무엘상 24:6, 사무엘상 26:9 사무엘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사무엘상 26: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
3. 용어
- 묵상
- 어떤 진리를 한 번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곱씹으며 마음에 새기는 것.
- 현세·내세
- 현세는 지금 이 땅에서 사는 삶, 내세는 죽음과 부활 뒤에 올 영원한 삶.
- 연단
- 쇠를 불에 달궈 단단하게 하듯, 고난을 통해 믿음을 다듬는 하나님의 훈련.
- 기업
- 하나님이 자녀에게 물려주시는 유산, 곧 장차 누릴 영원한 영광.
- 경건
-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사랑하며 두려워하는 마음과 그에 맞는 삶.
- 나그네
- 이 땅에 잠시 머물며 본향(하늘)을 향해 가는 사람이라는 신자의 정체성.
- 청지기·결산
- 내 것이 아니라 맡겨진 것을 관리하는 사람이고, 언젠가 주인에게 어떻게 썼는지 보고하게 된다는 뜻.
- 소명
- '부르심'이라는 뜻.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정해 주신 삶의 자리와 그 자리에서 할 일.
- 사인(私人)
- 공적인 직분 없이 개인 자격으로 사는 사람.
- 외경(집회서)
- 가톨릭 성경에는 들어 있지만 개신교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책. 집회서는 그중 하나.
4. 청년의 삶으로
칼빈: 하나님은 즐거움을 위해서도 만물을 지으셨다. 다만 누리면서 감사가 사라지거나 남을 깔보게 되면 경고등이다(10장 2-3절).
칼빈: 가난을 견디는 법을 못 배우면 부해져도 무너진다. 어떤 형편에서도 처할 줄 아는 것이 제자의 성장 표시다(10장 5절).
칼빈: 소명의 자리에서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천해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 빛나고, 그 짐도 하나님의 감독 아래 있다(10장 6절).
칼빈: 가정은 좋은 선물이지만 그 위에 영원한 안정을 세우면 흔들린다. 하나님은 그런 아픔도 우리 눈을 하늘로 돌리는 데 쓰신다(9장 1절, 10장 4절).
칼빈: 시편 73편 기자처럼 '결국'을 보라. 지금의 형통이 끝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가 마지막에 드러난다(9장 6절).
5. 이 편의 결론
- 환난은 이 세상에 매달리는 집착을 끊고 하늘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훈련이다.
- 이 땅의 삶은 감사할 선물이다. 하늘과 비교할 때만 '유배지'이며, 부르실 때까지 지켜야 할 초소다.
- 부활 소망은 죽음의 두려움과 악인의 형통이 주는 시험을 이기는 유일한 위로다.
- 이 땅의 좋은 것들은 필요와 즐거움을 위해 주신 선물이다. 금욕도 방종도 아니라 감사·절제·청지기 의식으로 쓴다.
- 각자의 소명을 지킬 때 삶에 질서가 생기고, 어떤 일도 하나님 앞에서 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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