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면서 왜 믿는 나한테도 힘든 일이 계속 생기는 걸까?
칼빈은 앞 장의 '자기 부인'을 이어받아, 그 한 부분이 '십자가를 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기 부인은 내 뜻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나를 맡기는 것이다. 출발점은 그리스도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신 아들도 평생 고난의 길을 걸었으니, 그를 따르는 사람도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1절). 이어서 우리에게 고난이 필요한 이유를 차례로 든다. 교만을 꺾고 은혜를 의지하게 하고(2–3절), 인내와 순종을 훈련하고 드러내며(4절), 죄로 기우는 본성을 미리 막는 약이 되고(5절), 지난 잘못을 바로잡는 아버지의 징계가 된다(6절). 그다음 가장 특별한 고난인 '의를 위한 박해'가 영예라고 위로한다(7–8절).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고통을 못 느끼는 스토아식 무감각도 아니고, '어쩔 수 없으니 참는' 체념도 아니라고 구분하며 마친다(9–11절). 결론은 이렇다. 아파서 울면서도 '하나님이 뜻하신 일'이라는 신뢰와 '이것이 나를 살린다'는 확신으로 감사하며 견디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1. 절별 정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함. 1-2
1.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도의 고난
칼빈은 자기 부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실 때 품으셨던 뜻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사람은 수고와 어려움이 가득한 삶을 각오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자녀를 시험하고 훈련하시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맏아들인 그리스도에게 먼저 적용되었다.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신 아들조차 봐주지 않으셨고, 예수의 생애 전체가 하나의 긴 십자가였다. 머리인 그리스도가 그 길을 갔는데 몸인 우리가 피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그는 우리에게 인내의 본을 보이려고 그렇게 하셨다. 그래서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일'로, 그가 고난을 지나 영광에 들어가셨듯 우리도 그 길로 간다고 생각하면 큰 위로가 된다. 환난이 깊을수록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확실해지고, 고난은 오히려 복이 되며 구원의 길에 도움이 된다.
- 제자의 삶에서 고난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다
- 하나님은 맏아들 예수도 봐주지 않으셨다
- 예수의 생애 전체가 십자가였다
- 고난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길이다
- 고난을 지나 영광으로 간다
2. 십자가: 신자를 낮추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함
예수는 아버지께 순종을 보이기 위해서만 십자가를 지셨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이유로 평생 십자가가 필요하다. 첫째 이유는 교만이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잘된 일을 다 자기 공으로 돌리고, 약점이 드러나지 않으면 자기 능력을 부풀려 어떤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러다 마치 은혜가 필요 없는 듯 하나님 앞에서도 교만해진다. 이 교만을 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 직접 겪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치, 가난, 질병, 죽음 같은 일이 닥치고, 우리는 무너진 끝에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그 힘으로 다시 선다. 은혜로 산다는 것을 잘 아는 경건한 사람도 고난이 없으면 자기 인내를 믿고 느슨해진다. 다윗조차 형통할 때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 하다가,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시자 무너졌다고 고백했다. 고난은 평안할 때 자랑하던 인내가 위선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렇게 낮아진 자리에서 신자는 자신을 넉넉히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다.
- 예수와 달리 우리에겐 십자가가 꼭 필요하다
- 우리는 본성적으로 자기 힘을 과신한다
- 고난은 우리의 약함을 몸으로 알게 한다
- 다윗도 형통할 때 교만해졌다
- 낮아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인내와 순종을 배우기 위해서도 필요함. 3-6
3. 십자가를 통하여 얻는 유익
바울의 말, 곧 환난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연단을 낳는다는 말이 앞의 내용을 뒷받침한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신자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버티는 동안 그 약속이 참이라는 것을 몸으로 확인한다. 이 인내조차 자기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경험이 믿음을 튼튼하게 한다. 과거에 신실하셨던 하나님이 앞으로도 그러시리라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은혜를 모르는 일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유익을 정리한다. 십자가는 내 덕성에 대한 착각을 뒤집고, 위선의 껍질을 벗기고, 위험한 자기 신뢰를 없애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만 의지하게 해서 넘어지지 않게 한다. 이렇게 이겨 낸 경험에서 소망이 자란다. 내 무능을 깨달아 나를 믿지 않게 되면 신뢰가 하나님께로 옮겨 가고, 그 은혜로 끝까지 서게 된다.
-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
- 인내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다
- 하나님의 약속이 참임을 몸으로 확인한다
- 과거의 신실하심이 미래의 소망이 된다
- 나를 불신할 때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
4. 십자가의 연단
고난의 또 다른 목적은 인내를 시험하고 순종을 훈련하는 것이다. 순종할 힘도 하나님이 주셔야 생긴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신 은사가 속에 감춰져 있지 않고 분명히 드러나기를 기뻐하신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같은 능력을 말한다. 성경이 하나님이 '시험하신다'고 할 때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이미 주신 인내와 절개를 겉으로 드러내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외아들을 바치기를 거부하지 않아 경건을 드러냈다. 베드로는 불 속에서 금의 순도가 확인되듯 믿음도 환난으로 증명된다고 가르쳤다. 은사가 쓰이지 않고 사라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쓸 기회를 주시는 것이 옳다면, 고난도 정당하다. 고난이 없으면 인내도 없기 때문이다. 또 신자는 십자가로 순종을 배운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면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도 역경을 견디라고 권하면서 "신을 따르라"는 옛 격언을 인용했다. 칼빈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하물며 우리가 하늘 아버지께 모든 일에서 순종해야 한다면, 그분이 쓰시는 훈련 방법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 성경의 '시험'은 주신 은사를 드러내는 일이다
- 아브라함의 믿음은 시험에서 드러났다
- 금처럼 믿음도 불로 증명된다
- 고난이 없으면 인내도 없다
- 뜻대로 안 될 때 순종을 배운다
5. 십자가: 영적 질병을 치료하는 도구
순종이 얼마나 절실한지는 우리 본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육체'는 기회만 생기면 하나님의 멍에를 벗으려 한다. 여기서 육체는 몸이 아니라 죄로 기운 본성을 뜻한다. 칼빈은 이를 말에 비유한다. 혈기 넘치는 말을 며칠만 풀어 두면 다시 길들일 수 없고, 전에 잘 따르던 주인의 말도 듣지 않게 된다. 이스라엘은 배부르고 살찌자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렸다. 우리도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감사로 받지 않고 방종의 기회로 악용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재산, 명예, 재능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십자가로 미리 막으신다. 사람마다 병이 다르고 그 정도도 다르니 처방도 다르다. 하늘의 의사이신 하나님은 어떤 이는 부드럽게, 어떤 이는 더 아프게 치료하신다. 그러나 목적은 모두를 낫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병들어 있기에 손대지 않고 두시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 본성은 늘 하나님의 멍에를 벗으려 한다
- 풍요는 하나님을 잊게 하기 쉽다
- 십자가는 교만을 미리 막는 약이다
- 사람마다 처방이 다르다
- 하나님이 그냥 두시는 사람은 없다
6. 십자가: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은 앞으로 올 약함을 막으실 뿐 아니라 지난 잘못도 바로잡으신다. 그래서 어려움이 오면 먼저 지난 삶을 돌아보아야 하고, 그러면 내 잘못이 그런 징계를 받을 만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칼빈은 '죄를 지었으니 참자'가 인내의 주된 이유는 아니라고 말한다. 성경이 더 나은 이유를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게 하려고 징계하신다. 그러니 괴로움 속에서도 아버지의 긍휼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괴롭게 하시되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그때에도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 징계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대는 손길이고, 징계가 없다면 친아들이 아니다. 불신자는 매를 맞을수록 더 완고해지지만, 신자는 자유인의 아들답게 돌이켜 회개한다. 칼빈은 이 주제를 앞에서 이미 다뤘다며 짧게 마친다.
- 고난 앞에서 먼저 내 삶을 돌아본다
- 그러나 '죄의 값'이 주된 이유는 아니다
- 징계의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구원이다
- 징계는 친자녀라는 표시다
- 신자는 매 앞에서 돌이킨다
박해와 기타 재난 가운데서 십자가를 지는 일. 7-8
7. 의를 위한 고난
'의'를 위해 박해받을 때는 아주 특별한 위로가 있다. 여기서 의는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을 말한다. 그런 박해는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군사로 인정하시고 구별하신다는 뜻이므로 영예다. 칼빈은 의를 위한 박해를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사탄의 거짓에 맞서 진리를 지키는 일, 악한 사람에게서 선하고 죄 없는 사람을 지키는 일 등 어떤 모양이든 옳은 편에 서다가 세상의 미움을 사는 것을 다 포함한다. 그 결과 생명, 재산, 명예가 위험해지더라도 후회하거나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그런 사람이 복되다고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칼빈은 가난, 추방, 모욕, 투옥, 그리고 죽음이 그 자체로는 불행임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가 함께하면 그 모두가 행복으로 바뀐다. 세상에서 집을 잃으면 하나님 가족의 환대를, 수치를 당하면 하나님 나라의 더 높은 자리를, 죽임을 당하면 곧바로 영생을 얻는다는 식으로 대비해 보인다. 그러니 육체의 판단 대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만족하자고 권한다.
- 의를 위한 박해는 하나님 군사의 영예다
- 복음 전도뿐 아니라 진리·약자 보호도 포함
- 가난·모욕·죽음은 그 자체로는 불행이다
-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는 복으로 바뀐다
- 세상의 판단 말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자
8. 십자가를 지며 당하는 고난
성경이 이렇게 풍성하게 위로하니, 의를 위한 고난을 기꺼이 받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이다. 특히 이런 십자가는 신자에게 가장 어울리고, 베드로 말대로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통해 우리 안에서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 칼빈은 깨끗하게 산 사람에게 억울한 오명이 백 번 죽는 것보다 더 쓰리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에게 박해뿐 아니라 비방도 따른다고 미리 일러두었다. 그리고 평판이 좋든 나쁘든 자기처럼 꿋꿋이 가라고 권했다. 그런데 칼빈은 곧바로 선을 긋는다. '기쁨으로 진다'는 말은 고통에 무감각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아픔이 없다면 인내도, 용기도, 절제도 쓸 데가 없다. 신자는 쓰라림을 다 느끼면서 싸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그를 붙들어 지나친 행동을 삼가게 하고(인내), 슬픔에 눌려도 하나님의 위로 안에서 쉼을 얻는다(활기).
- 의를 위한 고난은 기꺼이 받아야 한다
- 억울한 오명은 죽음보다 쓰리다
- 평판이 좋든 나쁘든 꿋꿋이 간다
- '기쁨으로'는 '무감각하게'가 아니다
- 아픔을 느끼며 싸우는 것이 인내다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철학자들이 말하는 인내. 9-11
9. 십자가와 고통
인내를 배우는 신자는 고통을 느끼는 본능과 계속 싸운다. 바울은 이 싸움을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눌리지만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인내는 아무것도 못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상적인 사람을 돌처럼 슬픔도 기쁨도 흔들지 못하는 존재로 그렸다. 칼빈은 그런 사람이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너무 딱딱한 인내를 내세우다 오히려 인내를 삶에서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신음하고 우는 것, 심지어 걱정하는 것까지 죄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칼빈은 이것을 실제 삶보다 공상에 마음을 쏟는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본다. 예수는 말씀과 본으로 이런 생각을 물리치셨다. 자기 아픔과 남의 아픔에 우셨고, 제자들도 울 것이라 하셨고, 애통하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다. 칼빈은 묻는다. 우는 것이 죄라면, 겟세마네에서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시고 "죽게 되었다"고 고백하신 예수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 인내는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 스토아식 '돌 같은 사람'은 허상이다
- 우는 것·걱정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 예수도 우시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셨다
- 눌려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인내다
10. 십자가와 인내
칼빈이 이 말을 덧붙이는 이유가 있다. 슬픔을 없앨 수 없다고 절망해 아예 인내를 포기하는 사람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인내를 무감각과 같은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결국 사람들을 그런 절망으로 몰아간다. 성경이 칭찬하는 성도의 인내는 다르다. 아픔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고통 중에도 영적 기쁨이 있고, 근심 중에도 하나님의 위로로 힘을 얻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속 갈등은 남는다. 본능은 괴로움을 피하려 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 뜻에 순종하려 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하신 말씀이 이 본능을 보여 준다. 베드로가 억지로 끌려가 죽었다면 칭찬받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다가올 죽음이 두려웠지만, 자기를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누르고 기쁨으로 죽음을 맞았다. 우리도 아프면 탄식하며 건강을 바라고, 가난에 속상하고, 모욕에 아프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운다. 그러나 결론은 늘 '주님이 뜻하셨으니 따르자'여야 한다. 이 생각이 눈물 속에서도 기쁘게 견디게 한다.
- 슬픔이 남는다고 인내를 포기하지 말 것
- 아픔과 영적 기쁨은 함께 있을 수 있다
- 본능과 순종 사이의 갈등은 정상이다
- 베드로도 두려움을 이기고 죽음을 맞았다
- 결론은 늘 '주님 뜻이니 따르자'
11. 철학자들의 인내와 그리스도인의 인내
견디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칼빈은 철학자의 인내와 그리스도인의 인내를 비교한다. 철학자들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순종하는 데까지 거의 가지 못했다. 그들이 든 이유는 '피할 수 없으니 참는다'뿐이었다. 칼빈은 이것이 '하나님을 이길 수 없으니 굴복한다'는 말과 같다고 지적한다. 그런 섬김은 빠져나갈 길이 생기면 곧 끝난다. 반면 성경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는 공의와 공평이다.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없이는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은 완전한 질서로 일하신다. 우리 허물을 보면 더 무거운 매도 마땅하고, 날뛰는 본성은 길들여져야 하며, 하나님의 진리는 고난을 무릅쓰고 지킬 가치가 있다. 그러니 불평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서는 일이 된다. 교훈은 "굴복할 수밖에 없으니 굴복하라"가 아니다. "대항은 불법이니 순종하라, 참지 못함은 반역이니 참으라"가 된다.
둘째는 우리 구원이다. 하나님은 이 십자가가 우리 구원이 된다고 확신시켜 위로하신다. 그러니 억지로가 아니라 그 유익을 생각하며 감사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본성은 쓰라려도 영적 기쁨이 함께 차오르고, 기쁨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온다.
- 철학자의 인내: 피할 수 없으니 참는다
- 체념한 순종은 출구가 보이면 끝난다
- 성경의 이유 ①: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
- 성경의 이유 ②: 고난이 내 구원에 유익
- 결과: 아파도 감사와 기쁨이 나온다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고난을 피하려는 마음(본문이 겨냥하는 일반적 기대) |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라면 힘든 일을 면하게 해 주셔야 한다 | 가장 사랑받은 아들 예수도 평생 십자가를 지셨다. 머리가 간 길을 몸도 간다 | 마태복음 16:24, 히브리서 5:8-9, 사도행전 14:22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히브리서 5:8-9 8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사도행전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
| 자기 힘에 대한 과신(인간 본성) | 나는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 형통할 때 생기는 착각이다. 고난이 약함을 드러내 은혜를 의지하게 한다 | 시편 30:6-7 6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
| 고난을 죄의 값으로만 보는 시각 | 힘든 일은 내 죄값이니 그걸 인정하고 참으면 된다 | 삶을 돌아보는 건 맞지만 주된 근거는 아니다. 징계의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구원이다 | 고린도전서 11:32, 히브리서 12:8 고린도전서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 세상(육체)의 판단 | 옳은 일 하다 잃으면 손해고 비참한 것이다 | 그 자체로는 불행이지만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복이 된다. 하나님 군사의 영예다 | 마태복음 5:10, 사도행전 5:41 마태복음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사도행전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
| 스토아 철학자 | 지혜로운 사람은 돌처럼 슬픔에도 기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 그런 사람은 없다. 너무 딱딱한 인내는 결국 인내를 없앤다. 예수도 우셨다 | 마태복음 5:4, 누가복음 22:44, 마태복음 26:38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누가복음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마태복음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
| 스토아를 닮은 그리스도인 | 우는 것, 걱정하는 것은 믿음 없는 죄다 | 예수의 눈물과 두려움과 고민이 반증이다. 갈등 속에서 순종하는 것이 인내다 | 요한복음 16:20, 마태복음 26:37, 요한복음 21:18 요한복음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마태복음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요한복음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 세네카(4절, 부분적 인정) | 역경 앞에서 "신을 따르라" | 이교 철학자도 이렇게 말했다면, 하물며 하늘 아버지의 훈련은 더욱 받아들여야 한다 | (본문에 성경 인용 없음, 4절의 '더 작은 것에서 더 큰 것으로' 논증) |
| 철학자들의 체념적 인내(11절) | 피할 수 없으니 그냥 참는다 | 강요된 굴복은 출구가 생기면 끝난다. 하나님의 공의와 우리 구원 때문에 기꺼이 받는다 | (11절에는 직접 인용 없음) |
3. 용어
- 십자가(신자의 십자가)
-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삶에서 겪는 고난 전체를 말한다. 예수께서 죄를 대신 지신 십자가와는 구분된다.
- 자기 부인
- 내 뜻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이 장은 그 일부로 십자가를 다룬다.
- 육체
- 칼빈에게 이 말은 몸이 아니라 죄로 기울어 하나님 없이 자기를 믿으려는 인간 본성을 뜻한다.
- 덕성
- 사람이 스스로 가졌다고 여기는 좋은 성품과 능력이다.
- 시험
- 이 장에서는 죄로 꾀는 '유혹'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믿음과 인내를 드러내고 증명하시는 일이다.
- 연단
- 불로 금을 정제하듯 시련을 통과하며 검증되고 단단해진 상태다.
- 징계
- 아버지가 자녀를 바로잡는 훈육이다. 영원한 형벌인 '정죄'와 다르다.
- 섭리
-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을 뜻대로 다스리고 이끄신다는 가르침이다.
- 스토아 철학
-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 학파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을 이상으로 삼았다.
- 공평(equity)
- 하나님의 다스림이 공정하고 합당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옳다는 것이다.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고난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다. 예수가 먼저 그 길을 가셨다.
- 고난은 교만을 꺾고, 인내와 순종을 훈련하고 드러내며, 본성을 치료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아버지의 손길이다.
- 의를 위한 고난은 특별한 영예다. 세상이 불행이라 부르는 것도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복이 된다.
-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무감각도 체념도 아니다. 아파서 울면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우리 구원을 믿고 감사로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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