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학습 노트·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3권 5편 고해·보속·면죄부·연옥 — 거짓 회개

제3권 4장 1-39절 + 5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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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를 용서받으려면 충분히 울고, 신부님께 다 털어놓고, 착한 일로 갚아야 하나요?”
🧭흐름 한눈에

칼빈은 중세 스콜라 신학이 회개를 '마음의 통회·입술의 고백·행위의 보속' 세 단계로 나누고 이 셋을 죄 사함의 조건으로 삼은 데서 출발한다. 먼저 통회를 죄 사함의 조건으로 만들면 양심이 결코 쉴 수 없다고 보인다. 이어 사제에게 모든 죄를 털어놓는 고해가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1215년에 생긴 교회법임을 밝힌다. 그 대안으로 성경이 말하는 고백(하나님께, 회중 앞에서, 서로에게, 화해를 위해)을 제시하고, '열쇠의 권세'는 복음 선포에 매여 있다고 정리한다. 다음으로 보속은 값없는 용서와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을 부정한다고 반박하고, 죄책과 형벌의 구분, 대죄와 소죄의 구분, 다윗 같은 사례는 '형벌의 심판'과 '징계의 심판'을 나누어 설명한다. 5장에서는 보속을 보충하려고 만든 면죄부와 연옥을 같은 원리로 무너뜨린다. 결론은 하나다. 죄 사함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와 복음의 약속에서 오며, 그것을 믿는 양심은 평안을 누린다.

📜절별 정리

4장 · 고해와 통회에 관한 스콜라 신학자들의 가르침과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적 근거. 1-6

📜1. 회개에 대한 스콜라 신학자들의 가르침

칼빈은 이 책이 '짧은 교리 안내서'라서 스콜라 신학자(중세 대학에서 논리학으로 교리를 체계화한 학자들)의 회개론을 간단히 다루겠다고 밝힌다. 그들은 교부(초대 교회의 지도적 신학자)들의 문장, 예를 들어 “지은 죄를 슬퍼하고 다시는 슬퍼할 죄를 짓지 않는 것”을 가져와 회개의 정의로 삼았다. 칼빈은 그 문장들이 좋은 말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교부들은 회개를 정의하려던 것이 아니라 회개한 사람에게 다시 죄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후대 스콜라 학자들은 더 나빠서 회개를 몸을 억누르는 고행으로만 보고 마음의 새로워짐과 삶의 변화에는 침묵했다. 그러고는 회개를 통회·고백·보속 세 부분으로 나눴는데, 이는 자기들 정의와도 맞지 않는다. 그들의 정의대로라면 입으로 고백하지 않아도 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죄만 회개하고 다른 죄는 계속 지어도 되나”, “대죄는 몇 번 회개할 수 있나”, 히에로니무스의 “회개는 파선 후 두 번째 널빤지” 같은 문제에 매달리는 것 자체가 핵심을 모른다는 증거라고 칼빈은 본다.

  1. 교부의 문장은 정의가 아니라 권면이었다
  2. 스콜라는 회개를 겉 고행으로 줄였다
  3. 마음의 새로워짐에는 침묵했다
  4. 3단계 구분은 자기 정의와도 모순이다
  5. 칼빈은 논쟁을 '정의'에서부터 따진다
(성경 인용 없음)
교부 인용과 논리 비판으로만 진행한다
📜2. "마음의 통회"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이 양심을 괴롭힘

칼빈은 이 논쟁이 '나귀 그늘' 다툼(쓸데없는 말싸움을 가리키는 옛 표현)이 아니라 죄 사함이 걸린 문제라고 경고한다. 반대자들은 통회·고백·보속이 모두 있어야 죄 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어떤 조건으로 얼마나 확실하게 용서받는지 모르면 양심은 평안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게 된다. 그들은 첫 단계인 통회가 죄의 무게에 걸맞은 '충분한' 슬픔이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슬퍼야 충분한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칼빈도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도록 서로 격려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슬픔의 양을 저울질하게 하면, 빚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이 다 갚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고 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걸 어떻게 아나”로 되돌아가고, 결국 사람들은 억지로 눈물을 짜내게 된다.

  1. 죄 사함의 조건이 불확실하면 양심은 못 쉰다
  2. '충분한 통회'는 측정할 수 없다
  3. 슬픔 자체는 칼빈도 권한다
  4. 결국 억지 눈물을 짜내게 만든다
고린도후서 7:10
구원에 이르는 근심은 칼빈도 인정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3. "통회"는 죄 사함의 원인이 아님

칼빈은 이 가르침 때문에 절망하거나 가짜 슬픔을 연기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데려와 보라고 한다. 칼빈도 회개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고 말한다. 죄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개는 죄 사함의 '원인'이 아니며, 죄인은 자기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만 바라봐야 한다. 그리스도는 수고하고 짐 진 자, 마음 상한 자, 갇힌 자를 부르러 오셨고, 자기 의에 만족한 바리새인과 하나님의 진노를 잊은 오만한 자는 그 부름 밖에 있다. “충분히 통회해서 자격을 갖추면 용서받는다”와 “자기 비참을 인정하고 긍휼에 주리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며, 뒤의 것은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1. 회개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
  2. 그러나 회개는 원인이 아니다
  3. 눈물이 아니라 긍휼을 바라보라
  4. 그리스도는 '자격'이 아니라 '필요'를 부르신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짐 진 자를 부르심 — 부름의 대상은 자격이 아니라 필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사야 61:1, 누가복음 4:18
상한 자·갇힌 자를 고치러 오신 그리스도
이사야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누가복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죄인은 자기 자신의 뉘우침이나 눈물에 집착하지 말고 두 눈을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맞추어야 한다”
📜4. '고백'에 대한 스콜라 신학자들의 헛된 주장

교회법 학자(교회 법령을 다루는 법률가)들은 고해가 교회법으로 정해진 것이라 하고,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라 하며 다퉜다. 신학자들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까지 근거로 끌어왔는데, 칼빈은 아담이 오히려 고백 대신 여자 탓을 했다고 꼬집는다. 주된 근거는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제사장에게 보내신 일이다. 그들은 알레고리로 “죄는 영적 나병이니 사제가 죄를 판정한다”고 푼다. 칼빈은 레위 제사장은 고백을 들으라고 세운 사람들이 아니며, 제사장 직분이 바뀌었으니 율법도 바뀌었고 제사장의 모든 권한은 그리스도께 넘어갔다고 답한다. 알레고리를 원한다면 차라리 그리스도를 유일한 제사장으로 모시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환자들을 보내신 이유는 율법을 어긴다는 비난을 피하고, 그들을 나병환자로 선언했던 제사장들이 이제 나았다고 공식 확인하게 해서 이적의 증인이 되게 하신 데 있다(크리소스톰도 같은 해석).

  1. 고해의 근거를 두고 그들끼리도 다퉜다
  2. 나병환자 본문은 알레고리 억지다
  3. 제사장 직분은 그리스도께 넘어갔다
  4. 예수는 율법을 지키고 이적을 확증하셨다
창세기 3:9
반대자의 근거 — 칼빈은 억지 인용이라 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12
아담은 고백 대신 핑계를 댔다는 반박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마태복음 8:4, 마가복음 1:44, 누가복음 5:14, 누가복음 17:14
나병환자를 제사장에게 보내심 — 반대자의 주 근거
마태복음 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누가복음 5:14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누가복음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신명기 17:8-9
레위 제사장이 고백을 듣는 직무는 없었다
8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9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
레위기 14:2-3
제사장의 임무는 나병 판정이었음
2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3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히브리서 7:12
제사장 직분이 바뀌면 율법도 바뀐다 — 핵심 반박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마태복음 24:14, 마태복음 10:18
'증거가 되게 하라'는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증거가 된다는 뜻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10: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5. 알레고리의 해석법

두 번째 근거도 알레고리(본문 속 사물을 다른 영적 의미의 상징으로 풀이하는 해석법)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살아난 나사로를 풀어 주라고 하셨으니 사도들에게 '푸는 권한'을 주셨다는 것이다. 칼빈은 먼저 사실부터 틀렸다고 지적한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기록이 없고, 오히려 그 자리에 있던 유대인들이 직접 돌을 치우고 냄새를 맡고 그를 만지게 해서 이적을 의심할 수 없게 하신 것으로 보인다(크리소스톰도 같은 견해). 설령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 해도, 알레고리로 읽을 거라면 “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신 사람을 다시 정죄하지 말고 풀어 주라”는 뜻이 훨씬 낫다. 칼빈의 요점은 알레고리로는 교리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1.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기록이 없다
  2. 유대인들이 이적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
  3. 알레고리라면 '용서한 사람을 풀어 주라'가 낫다
  4. 알레고리로 교리를 세울 수 없다
요한복음 11:44
반대자의 근거 — 칼빈은 말씀의 대상이 유대인일 가능성을 제시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6. 성경이 가르치는 '고백'

반대자들은 세례 요한에게 온 사람들이 죄를 고백한 일과 야고보서의 “죄를 서로 고백하라”를 내세운다. 칼빈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했으니 죄인임을 인정한 사람이 세례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답한다. 야고보서는 “서로 고백하라”와 “서로 기도하라”를 묶어 말한다. 사제에게만 고백해야 한다면 사제를 위해서만 기도해야 하고, '서로'(헬라어 알렐로이스)라는 말대로라면 사제도 평신도에게 고백해야 한다. 야고보의 뜻은 단순하다. 약한 점을 서로 털어놓고 위로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칼빈은 오히려 하나님과 천사와 교회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시고 모든 입을 막으셨기 때문이다.

  1.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
  2. '서로'는 상호 고백·상호 기도다
  3. 사제 독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4. 죄인임을 고백하는 일 자체는 필수다
마태복음 3:6
반대자의 근거 — 세례받는 이들의 고백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마가복음 1:4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했으니 고백은 당연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야고보서 5:16
반대자의 근거 — 칼빈은 '서로'의 뜻으로 반박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갈라디아서 3:22
모두를 죄 아래 가두심 — 모두가 죄인임을 고백해야 할 이유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로마서 3:19
모든 입을 막으심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3:20, 고린도전서 1:29
모든 육체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짐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4
오직 하나님만 의로우심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4장 · 비밀 고백의 기원에 대한 증거. 7-8

📜7. '고백'의 법령은 후대에 제정되었음

칼빈은 고백이 오래된 관습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자유롭게 행해지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반대자들의 기록으로도 고해를 의무로 정한 법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1198-1216 재위) 때, 1215년 라테란 공의회가 처음이다. 그리스도 부활 후 1,200년 가까이 지나서 생긴 법이니 그리스도가 세우신 것일 수 없다. 법령 문구도 조잡해서 '남녀 양성 모두'라는 표현은 조롱거리가 되었고, '자기 사제'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교회사가 소조멘(5세기 무렵 활동한 것으로 알려짐)은 이것이 감독들이 정한 교회 정책이었고, 서방 특히 로마에서 열심히 지켜졌으며, 모든 사제가 아니라 지정된 한 장로가 맡았다고 기록한다. 또 콘스탄티노플에서는 고백을 핑계로 한 추문이 드러나자 존경받던 감독 넥타리우스가 이 의식을 폐지했다. 하나님의 법이었다면 넥타리우스가 폐지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를 이단이라 부르면 동방 교회 전체를 정죄하는 셈이 된다.

  1. 고해 의무는 1215년 교회법이다
  2. 처음엔 일부 지역의 교회 정책이었다
  3. 모든 사제가 아닌 지정된 한 사람이 맡았다
  4. 넥타리우스가 폐지했다 — 하나님 법이 아니다
(성경 인용 없음)
역사 기록(소조멘)으로 논증한다
📜8. 크리소스톰의 증거

4세기 말 콘스탄티노플 감독이었던 크리소스톰도 사람 앞의 고백이 의무가 아니었음을 증언한다. 그는 여러 설교에서 “죄를 사람에게 말하기 부끄러우면 날마다 네 영혼에게, 하나님께 아뢰라”, “증인 앞에서 고백할 필요 없다”고 권했다. 또 사람은 욕하거나 소문을 낼 수 있으니 가장 좋은 의원이신 주께 상처를 보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많은 증인 앞 무대에 세우지 않겠다, 내게 은밀히 고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칼빈은 크리소스톰이 하나님의 법을 함부로 깨뜨린 것이 아니라, 사람 앞의 고백이 하나님 말씀으로 정해진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의무로 요구하지 않았다고 결론짓는다.

  1. 크리소스톰은 하나님께 고백하라고 권했다
  2. 사람 앞 고백은 의무가 아니라고 했다
  3. 하나님은 상처를 고치시는 의원이다
  4. 그는 말씀에 없는 의무를 지우지 않았다
(성경 인용 없음)
크리소스톰의 설교 인용으로 논증한다

4장 · 성경이 말씀하는 죄의 고백. 9-13

📜9.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함

이제 칼빈은 성경이 가르치는 고백을 먼저 정직하게 제시하겠다고 한다. 옛 번역자들은 '찬양하다'를 '고백하다'로 자주 옮겼는데, 반대자들은 이 실수에 기대어 시편의 “기쁨과 고백의 소리”를 고해가 마음을 북돋는다는 근거로 썼다. 칼빈은 이런 식이면 어떤 본문에서든 원하는 뜻을 뽑아낼 수 있다고 비판한다. 성경이 첫째로 가르치는 고백은 하나님께 하는 고백이다. 죄를 용서하고 잊으시는 분, 상처를 고치는 의원, 마음을 아시는 분, 죄인을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분께 털어놓으라는 것이다. 다윗과 다니엘이 그 본보기이고, 요한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사하신다고 말한다. 누구에게 자백하는가? 주님께다.

  1. 오역에 기댄 근거는 무효다
  2. 첫째 고백은 하나님께 하는 고백이다
  3. 하나님은 용서자·의원·마음을 아시는 분
  4. 다윗·다니엘·요한일서가 본보기다
시편 7:17, 시편 9:2, 시편 95:2, 시편 100:4, 시편 117:1
옛 번역이 '찬양'을 '고백'으로 옮긴 예
시편 7: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시편 9: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시편 95: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편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편 117: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시편 42:4
반대자의 근거 — 오역에 기댄 억지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히브리서 4:12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시편 32:5
숨기지 않고 자복하자 사하심 — 하나님께 하는 고백의 본보기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시편 51:1
다윗이 주의 인자에 기대어 긍휼을 구함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다니엘 9:5
다니엘의 고백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요한일서 1:9
자백하면 사하시는 하나님 — 고백의 대상은 주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사람들 앞에서 죄를 고백함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야 할 때 사람들 앞에서도 기꺼이 고백한다. 한 사람의 귀에 한 번 속삭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자기 죄와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낸다.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듣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했다. 칼빈은 이 말을 “이제 변명하지 않겠다,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드러나도 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는다.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에게 백성이 함께 죄를 고백하는 의식을 주셨다. 각 사람이 자기를 바로 보게 돕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세상 앞에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1. 하나님께 고백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숨지 않는다
  2. 귓속말이 아니라 공개적 고백이다
  3. 다윗은 변명 없이 인정했다
  4. 공적 고백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낸다
사무엘하 12:13
다윗이 사람들 앞에서 죄를 인정함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레위기 16:21
이스라엘의 공적 죄 고백 의식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11. 전체적인 죄의 고백

이런 공적 고백은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그리고 교회 전체가 같은 죄를 지었을 때 특별히 해야 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때 온 백성이 함께 고백한 것이 그 예다. 포로 생활과 성전 파괴는 백성 전체의 배반 때문이었으니, 스스로를 책망해야 해방의 은혜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중 몇 사람이 깨끗해도 병든 몸의 지체가 건강을 자랑할 수 없듯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전염병·전쟁·기근 같은 재난 때도 공적 고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기도할 때마다 죄를 고백하지 않느냐는 반론에 칼빈은, 우리의 게으름을 생각하면 공적 고백이 매우 유익하다고 답한다. 실제로 질서 잡힌 교회들은 주일마다 목사가 자기와 교인의 이름으로 고백 기도를 드리고 용서를 구한다.

  1. 공동 고백은 교회의 일상이어야 한다
  2. 공동의 죄 앞에서는 함께 고백한다
  3. 재난 때도 공적 고백을 빠뜨리지 말라
  4. 주일 고백 기도는 좋은 규례다
느헤미야 1:7
느헤미야가 백성의 죄를 함께 고백함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 9:1-2
온 백성의 공적 고백 — 공동 고백의 본보기
1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12. 사적인 고백의 두 가지 형태

성경은 사적 고백 두 가지를 인정한다. 하나는 자기 약함을 털어놓고 서로 권면하고 위로받는 고백이고, 다른 하나는 내 잘못으로 상처 입은 이웃과 화해하기 위한 고백이다. 첫째 고백은 상대를 정해 두지 않았으니 교회 안에서 적합한 사람을 골라도 되지만, 목회자가 가장 바람직하다. 하나님이 목사를 세워 말씀으로 죄를 바로잡고 죄 사함의 확신을 주는 증인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혼자서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할 때 이 방편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칼빈은 권한다. 그러나 원칙이 있다.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은 일로 양심을 묶으면 안 되므로, 이 고백은 의무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권하는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 목사는 이 자유를 지켜야 횡포와 목사를 향한 미신을 막을 수 있다.

  1. 사적 고백은 위로용과 화해용 두 가지
  2. 위로용 고백은 목회자가 가장 적합하다
  3. 혼자 못 이길 땐 이 방편을 쓰라
  4. 단, 강요 금지 — 자유가 원칙이다
야고보서 5:16
약함을 서로 털어놓고 돕는 고백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마태복음 16:19, 마태복음 18:18, 요한복음 20:23
목사가 죄 사함의 확신을 주도록 세워짐
마태복음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13. 화해를 위한 사적인 고백

둘째 사적 고백에 대해 예수께서는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하셨다. 내 잘못으로 깨진 사랑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 회복된다. 교회 전체에 상처를 줄 만큼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도 공적으로 잘못을 인정해 교회와 화목해야 하며,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순종한 사람을 다시 받아들였다. 키프리아누스(3세기 카르타고 감독)가 전하는 초대 교회 방식도 일정 기간 회개한 뒤 고백하고 안수를 받아 성찬에 다시 참여하는 것이었다. 성경은 이 밖의 고백 형식을 모르니 새 족쇄를 만들어 양심을 묶어서는 안 된다. 다만 성찬 전에 원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목사를 찾아가는 일은 칼빈도 환영한다.

  1. 예배보다 화해가 먼저다
  2. 공적 죄는 교회 앞에서 인정한다
  3. 초대 교회도 이 방식이었다
  4. 성경에 없는 형식으로 양심을 묶지 말라
마태복음 5:23-24
예물보다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 — 화해 고백의 근거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고린도후서 2:6
잘못을 인정한 사람을 교회가 다시 받아들임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4장 · 열쇠의 권세와 사죄. 14-15

📜14. 열쇠의 권세의 본질과 기능

열쇠의 권세(그리스도가 교회에 주신 '매고 푸는' 권한, 곧 죄 사함을 선언하거나 보류하는 권한)는 세 가지 고백에서 작동한다. 교회 전체가 죄를 고백할 때, 공개적인 죄를 지은 사람이 공적으로 회개할 때, 양심이 괴로운 사람이 목사에게 도움을 구할 때다. 이웃과 화해하는 고백은 미움을 없애고 화평을 이루는 것이 주목적이라 성격이 다르다. 온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할 때 그리스도의 사신인 목사를 통해 죄 사함 선언을 듣는 것은 결코 가벼운 위로가 아니다. 회중 전체를 향한 선언을 듣고도 의심이 남는 사람은 목사에게서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를 개인적으로 들을 때 확신을 얻는다. 그러나 열쇠는 복음 선포와 상관없는 별도의 권세가 아니다. 매고 푸는 권한은 언제나 말씀에 매여 있고, 복음 선포를 통해 은혜가 신자의 마음에 확증되는 일일 뿐이다.

  1. 열쇠는 세 가지 고백에서 작동한다
  2. 목사의 사죄 선언은 큰 위로다
  3. 개인적 선언은 의심을 걷어 낸다
  4. 열쇠는 언제나 말씀에 매여 있다
에베소서 4:3
화해 고백의 목적은 평안의 매는 줄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고린도후서 5:20
목사는 화목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신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요한복음 20:23
사하면 사하여짐 — 원문은 마태복음 18:18과 섞어 인용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2
개인에게 들려주는 사죄의 복음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15. 고백에 대한 로마교회의 가르침

로마 교회 법은 분별할 나이가 된 모든 사람이 해마다 최소 한 번 자기 사제에게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정한다. 고백할 확고한 의도가 없으면 용서받지 못하고, 기회가 있는데 하지 않으면 낙원 문이 닫힌다는 것이다. 근거는 마태복음 18:18의 매고 푸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들끼리도 열쇠가 하나인지(매고 푸는 권한), 둘인지(분별의 열쇠와 권한의 열쇠), 지식까지 셋인지를 두고 다툰다. 하나님만이 죄를 지우신다는 말씀 때문에 그들도 사제가 죄를 직접 씻는다고는 못하고 '선언'한다고 말한다. 자격 없는 사람을 풀면 어떻게 되느냐는 문제에는, 그리스도께서 “당사자의 공로에 맞게 판정하면 승인하겠다”는 조건을 붙이셨다고 답한다. 칼빈은 교회의 보고를 여는 새 열쇠(면죄부)를 만든 사람들보다는 이들이 그나마 온건하다고 평하며, 이 문제를 뒤에서 다루겠다고 한다.

  1. 연 1회 모든 죄 고해가 법이었다
  2. 안 하면 낙원 문이 닫힌다고 했다
  3. 열쇠 개수를 두고 그들끼리 다퉜다
  4. 그들도 사제는 '선언'할 뿐이라 인정했다
마태복음 18:18
반대자의 근거 — 사제의 매고 푸는 권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사야 43:11, 이사야 43:25
하나님만이 구원자이고 허물을 지우심 — 그들도 이 때문에 '선언'이라 말함
이사야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4장 · 고백과 보속에 관한 로마 교회의 오류와 악행에 대한 반론. 16-25

📜16. 지은 죄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음

칼빈은 교회 법으로 양심을 묶을 권리 문제는 뒤로 미루고, 모든 죄를 열거해야 용서받는다는 주장부터 반박한다. 다윗은 자기 허물을 다 깨달을 자가 없으니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죄가 머리에 넘쳐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죄의 수렁이 얼마나 깊고, 죄가 히드라(머리를 잘라도 다시 나는 그리스 신화의 괴물)처럼 끝이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하나 세지 않고 깊은 수렁에서 주께 부르짖었다. 다윗도 셀 엄두를 못 냈는데 누가 자기 죄를 다 세겠는가.

  1. 모든 죄를 다 셀 수는 없다
  2. 다윗도 숨은 허물을 인정했다
  3. 그는 세지 않고 부르짖었다
시편 19:12
자기 허물을 다 깨달을 자 없음 — 열거 불가능의 핵심 근거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편 38:4
죄가 머리에 넘쳐 감당 못 함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시편 18:5
스올의 줄이 두름 — 깊은 데서 부르짖는 다윗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시편 69:2-3, 시편 69:15-16
깊은 수렁에서 건져 달라는 기도
시편 69:2-3 2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3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시편 69:15-16 15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16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17. 고백의 요구가 주는 말할 수 없는 고통

이 법 때문에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아는 진지한 사람들이 가장 잔인하게 고통받았다. 정해진 형식대로 죄를 큰 가지·작은 가지·잎사귀로 나누고 무게를 달다 보면, 끝없는 바다에 빠진 듯 피할 곳이 없어 절망하게 된다. 그러자 “최선을 다하면 된다”, “빠뜨린 걸 회개하면 된다”는 처방이 나왔지만, 칼빈은 그것을 처음엔 달고 나중에 퍼지는 꿀 바른 독이라 부른다. “네 모든 죄를 고백하라”는 음성이 계속 귀에 울리기 때문이다. 하루 지은 죄도 밤에 다 기억 못 하는데 1년 치를 어떻게 다 떠올리겠는가. 칼빈은 서너 가지만 대충 고백하고 만족하는 위선자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다며 떠는 진실한 신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밝힌다.

  1. 진지한 신자일수록 더 고통받았다
  2. '최선을 다하라'는 꿀 바른 독이다
  3. 하루 치 죄도 다 기억 못 한다
  4. 위선자 아닌 진실한 신자가 무너진다
요한일서 3:20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심 — 진실한 신자가 떠는 이유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18. 완전한 고백으로 말미암는 극심한 폐해

칼빈은 이 법의 폐해를 둘로 정리한다. 첫째, 지킬 수 없는 법이라 사람을 절망에 빠뜨린다. 둘째, 죄 목록 작성에 매달리게 해서 마음 깊은 곳의 숨은 죄를 잊게 하고, 자기도 하나님도 모르는 위선자를 만든다. 고백의 가장 확실한 원칙은 내 죄의 깊이를 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세리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가 그 본보기다. 그렇다고 구체적 고백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쏟아 죄가 얼마나 크고 다양한지 깨닫되, 그래도 숨은 죄가 남아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고백할 의도가 있어야 용서받는다”는 주장도 거짓이다. 그리스도께 용서받은 사람 중 사제에게 고백한 이는 없고, 하나님은 돌이키는 악인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또 사죄는 믿음과 회개에 달려 있는데 사제는 그것을 알 수 없으므로, 사죄의 확실성은 사제의 판단이 아니라 말씀의 약속에 있다.

  1. 불가능한 법이라 절망만 낳는다
  2. 목록에 매달려 숨은 죄를 잊게 한다
  3. 세리의 고백이 바른 원칙이다
  4. 사죄는 사제 판단이 아닌 약속에 달렸다
누가복음 18:13
세리의 고백 — 죄의 깊이를 다 모름을 인정하는 본보기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시편 19:12
다 고백한 뒤에도 숨은 허물이 남음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에스겔 18:21-22
돌이키면 죄를 기억하지 않으심 — 고해 조건을 덧붙이지 말라
21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요한복음 20:23
말씀으로 약속된 용서가 하늘에서도 인정됨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19. 비밀 고백(고해)의 제도는 폐지되어야 마땅함

비밀 고백은 설령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해도, 쓸모없고 많은 불경과 오류를 낳았으니 없애야 한다. 그들은 사제 앞에서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죄를 막는 효과라고 자랑한다. 그렇다면 사람 앞의 부끄러움은 알고 하나님 앞의 부끄러움은 모른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는 반대 효과가 난다. 1년에 한 번 털어놓으면 된다는 생각이 “입을 씻고 악을 행하지 않았다”는 태도를 낳아 오히려 마음 놓고 죄를 쌓게 한다. 고백하고 나면 짐을 벗었다고 여기며, 사제가 들었으니 하나님은 잊으셨다고 생각한다. 넥타리우스가 한 번의 추문으로 고해를 폐지했다면, 추문이 넘치는 지금은 그것을 더 큰 경고로 받아야 한다.

  1. 고해는 유익보다 해악이 크다
  2. 사람만 부끄러워하고 하나님은 잊는다
  3. '연 1회 정산'이 죄를 쉽게 만든다
  4. 넥타리우스의 결단이 경고가 된다
잠언 30:20
입을 씻고 악을 행치 않았다 하는 태도 — 고해 후 안도감의 위험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의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20. 열쇠의 권한에 대한 헛된 논리

고해 사제들은 “그럼 주님이 열쇠를 괜히 주셨단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칼빈은 열쇠에는 중요한 목적이 있으며 출교를 다룰 때 자세히 말하겠다고 답한다. 사제들이 사도의 후계자가 아니라는 반박도 있지만 그것도 뒤로 미룬다. 핵심 반박은 이것이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주신 다음에야 사도들에게 매고 푸는 권한을 주셨다. 그러니 성령이 없으면 열쇠도 쓸 수 없다. 그들이 성령을 가졌다고 주장한다면 성령이 실수하실 수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 주께서 매신 것을 풀고 푸신 것을 매는 일을 분별없이 되풀이하는 사제들에게는 열쇠의 권한이 없다.

  1. 열쇠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2. 성령 없이는 열쇠도 없다
  3. 성령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4. 분별없는 사제에겐 열쇠가 없다
마태복음 18:18
반대자의 반문 근거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요한복음 20:22-23
성령을 주신 뒤 권한을 주신 장면 — 원문에 장절 표기는 없으나 이 논증의 배경 본문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1.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소위 사제들의 열쇠의 권한

그들은 바르게 쓰려면 지식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악한 사제에게도 권한 자체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는 약속이 참이라면, 그 권한을 가진 자는 바르게 매고 풀어야 한다. “당사자의 공로에 맞을 때만 효력이 있다”는 단서도 소용없다. 합당한 자만 매이고 풀린다는 건 칼빈도 인정하지만, 교회에는 합당함을 재는 기준인 말씀이 있다.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죄 사함을 약속하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에게 정죄를 선포하는 것이다. 무엇을 매고 풀지 모르는 권한은 상상 속 권한일 뿐이며, 그런 사제의 사죄는 “기준은 없지만 당신이 합당하면 풀어 주겠소”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은 그들의 진짜 목표가 하나님 말씀 없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었다고 본다.

  1. 약속이 참이면 바르게 매고 풀어야 한다
  2. 합당함의 기준은 말씀이다
  3. 말씀 없는 권한은 상상 속 권한이다
  4. 목표는 말씀 없는 지배였다
마태복음 16:19, 마태복음 18:18
매고 푸는 약속 — 약속이 참이면 바르게 써야 함
마태복음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린도전서 6:9-10
교회가 말씀에 근거해 '매는' 선언의 예
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22. 열쇠의 권한의 왜곡된 사용과 올바른 사용

반론이 있다. 죄 사함이 믿음에 달려 있다면 목사도 남의 믿음을 모르니 똑같이 불확실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칼빈은 쉽게 답한다. 로마 교회는 사제가 죄를 듣고 조사해 판정해야 사죄가 성립한다고 하므로, 고백이 불완전하거나 고백자의 진심을 모르거나 사제가 무식하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몇 가지 죄만 사함받으면 하나님과 화목한가라는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 반면 개혁 교회의 가르침에서 사죄는 죄인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구하고 그 은혜를 믿느냐에 달려 있다. 목사는 말씀이 지시한 대로 전달할 뿐이므로 틀릴 수 없다. 죄인은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원칙에 따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일 때 참된 사죄를 누린다.

  1. 로마식 사죄는 사제 판단에 달려 흔들린다
  2. 개혁식 사죄는 그리스도와 믿음에 달렸다
  3. 목사는 말씀을 전달할 뿐이다
  4. 원칙: “너희 믿음대로 되라”
마태복음 9:29, 마태복음 8:13
믿음대로 되라 — 사죄의 확실성은 믿음과 약속에 있음
마태복음 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마태복음 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23. 열쇠의 권한에 대한 그릇된 주장들

칼빈은 열쇠 문제는 교회 정치 부분에서 다룰 것이라 하면서, 그들이 복음 선포와 출교에 관한 말씀을 비밀 고백 이야기로 바꿔 버렸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한다. 사적 사죄 선언은 값없는 복음 약속을 증언해 믿음을 돕는 일일 뿐이다. 권징(교회 질서를 위한 징계)에 따른 공적 고백은 은밀한 죄가 아니라 교회 앞의 공적 잘못을 다루는 일이다. 교부들이 목회자에게 짐을 내려놓으라고 권했어도 그것은 죄를 일일이 열거하는 고해가 아니었고, 롬바르드(12세기 『명제집』 저자) 일파는 위작 문서까지 썼다. 그들도 진정한 회개가 있으면 고해 전에도 용서되고 사제는 '선언'할 뿐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 '선언'을 가르침이 아니라 '의식'으로 바꾸고, 형벌과 보속이라는 또 다른 단계를 붙여 하나님이 통째로 주시는 용서를 반으로 쪼갠다.

  1. 복음·출교 말씀을 고해로 둔갑시켰다
  2. 사적 사죄는 복음 약속의 증언이다
  3. 공적 고백은 공적 잘못을 다룬다
  4. 보속을 붙여 용서를 반으로 쪼갰다
마태복음 16:19
본래 복음 선포에 관한 말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8:15-18
본래 출교·권징에 관한 말씀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요한복음 20:23
본래 복음 선포에 관한 말씀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논지의 정리

칼빈은 고해 논의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하나님이 고해를 세우셨다는 근거 구절들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사람이 만든 법을 죄 사함의 필수 조건으로 삼는 것은 횡포다. 하나님은 양심을 말씀에만 매시고 사람의 권세에서는 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이 법은 세상이 무지하던 시대에 들어왔다. 셋째, 이 법은 해롭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절망시키고, 무관심한 사람은 헛된 위안으로 더 게으르게 만든다. 넷째, 그럴듯한 변명들은 순전한 교리를 흐리게 할 뿐이다.

  1. 성경 근거는 모두 무너졌다
  2. 양심은 말씀에만 매인다
  3. 무지한 시대에 들어온 법이다
  4. 경건한 이는 절망, 무관심한 이는 나태
(성경 인용 없음)
앞선 논증의 요약
📜25. 보속에 대한 개략적인 반론

보속(지은 죗값을 자기 행위로 하나님께 갚는 일)은 회개의 셋째 요소로 제시된다. 반대자들은 죄를 그치고 삶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눈물·금식·헌금·구제로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자비로 죄책은 용서하셨지만 공의로 형벌은 남겨 두셨으니 그 형벌을 보속으로 치르라는 것이다. 칼빈은 한마디로 답한다. 죄 사함은 값없이 주어진다. 빚을 다 받고 영수증을 써 주는 사람을 '용서했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라고 하시며 용서의 근거를 오직 자기 선하심에 두신다. 모든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증언했으니 '보속'이라는 다른 이름이 설 자리는 없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신다.

  1. 보속: 행위로 형벌을 갚으라는 주장
  2. 용서는 값없이 주어진다
  3. 돈 받고 써 준 영수증은 용서가 아니다
  4.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
이사야 52:3, 로마서 3:24-25, 로마서 5:8, 골로새서 2:13-14, 디모데후서 1:9, 디도서 3:5
죄 사함이 값없음을 보여 주는 구절들
이사야 5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로마서 3:24-25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골로새서 2:13-14 13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이사야 43:25
용서의 근거는 하나님 자신 — 핵심 근거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도행전 10:4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죄 사함 — 다른 이름 배제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고린도후서 5:19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심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21
그리스도를 죄로 삼으심 — 화목의 방법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4장 ·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죄를 참되이 보속하며 양심에 평안을 베풀어 줌. 26-27

📜26.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보속을 이루셨음

반대자들은 세례 때 죄 사함은 단번에 받지만, 세례 후 지은 죄는 보속으로 회복해야 하며, 교회 열쇠 없이는 그리스도의 피가 효력이 없다고 한다. 그들의 스승 격인 사람(롬바르드로 알려짐)은 그리스도가 나무에서 죗값을 치르셨다고 고백한 뒤 곧바로 “세례 후에는 회개가 함께해서 형벌이 줄어든다”는 단서를 붙인다. 요한은 정반대로 말한다. 신자들에게 “누가 죄를 범하여도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는 화목 제물”이라고 쓴다. “단번에 화목되었으니 이제 다른 수단을 찾으라”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원한 대언자이자 화목 제물로 제시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도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보속임을 말한다. 자기 보속으로 하나님을 달래려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빼앗는다.

  1. 반대자: 세례 후 죄는 보속으로 갚는다
  2. 요한: 신자에게도 대언자가 계시다
  3. 그리스도는 영원한 화목 제물이다
  4. 자기 보속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훔친다
베드로전서 2:24
반대자도 인정한 구절 — 그리스도가 죗값을 치르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요한일서 2:1-2
세례 후 죄를 지은 신자에게도 그리스도가 대언자·화목 제물 — 핵심 반박
1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한일서 2:12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요한복음 1:29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 유일한 보속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27. 보속의 논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빼앗고 양심을 괴롭힘

지켜야 할 것은 두 가지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흐리지 않는 것, 그리고 죄 사함을 확신하는 양심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다. 이사야·베드로·바울은 모두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담당하고 저주를 받으셨다고 증언한다. “첫 세례 이후로는 각자 보속한 만큼만 그리스도 고난의 효력을 느낀다”는 이론은 이 말씀들 어디에도 없고, 오히려 죄를 지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보속에 기대라고 한다. 양심 면에서도 얼마나 보속해야 충분한지 모르니 늘 떨게 되고, 몇 가지 죄를 갚아도 나머지는 수백 번 살아도 다 못 갚는다. 또 죄 사함의 말씀들은 이제 막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거듭난 신자를 향한 것이다. 바울의 “하나님과 화목하라”나 골로새서의 화목은 세례받는 순간만이 아니라 평생 이어진다.

  1. 그리스도의 영광과 양심의 평안을 지켜라
  2. 그리스도가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
  3. 보속론은 양심을 늘 떨게 한다
  4. 화목의 말씀은 거듭난 신자에게도 계속된다
이사야 53:6
우리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심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
그가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베드로전서 2:24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로마서 8:3
육신에 죄를 정하심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갈라디아서 3:13
우리 대신 저주받으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린도후서 5:20
화목하라는 선포는 이미 신자인 이들을 향함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골로새서 1:20
십자가의 피로 화목 — 평생 지속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로새서 1:14
신자가 받은 구속 곧 죄 사함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4장 · 갖가지 구분과 반론들을 살핌. 28-39

📜28. 소죄(小罪)와 대죄(大罪)

반대자들은 죄를 소죄(가벼운 죄)와 대죄(구원을 잃게 하는 치명적 죄)로 나눈다. 대죄는 무거운 보속이 필요하고, 소죄는 주기도·성수·미사 때의 사면 같은 가벼운 방법으로 씻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음의 불경과 더러움은 소죄로 친다. 칼빈은 성경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신자의 죄는 '가볍다'고 할 수 있는데, 죽어 마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를 “모든 죄가 똑같다”는 스토아 철학의 주장이라 비난하지만, 그들 자신의 대죄들 사이에도 경중이 있으면서 모두 사망에 해당한다고 하니 비난이 성립하지 않는다. 의인도 하루에 여러 번 넘어지니, 한 죄를 갚는 동안 다른 죄가 쌓여 보속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1. 소죄·대죄 구분은 기준이 없다
  2. 모든 죄의 삯은 사망이다
  3. 신자의 죄가 '가벼운' 건 긍휼 때문
  4. 갚는 동안 죄가 더 쌓인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 — 모든 죄가 사망에 해당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에스겔 18:20
범죄하는 영혼은 죽음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로마서 8:1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 없음 — 신자 죄가 '가벼운' 이유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시편 32:1-3
죄가 사함받고 가려짐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레위기 18:5, 갈라디아서 3:12, 로마서 10:5
율법 순종이 생명의 길 — 범하면 사망
레위기 18: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갈라디아서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로마서 10: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에스겔 18:4
율법을 범하면 사망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잠언 24:16
의인도 자주 넘어짐 — 보속이 불가능한 이유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29. 죄 사함에는 형벌이 면제된다

반대자들은 죄책(죄인으로 정죄받을 책임)과 형벌(죄에 따르는 벌)을 나눠, 죄책은 긍휼로 씻기지만 형벌은 남아 보속으로 치러야 한다고 한다. 칼빈은 그들이 죄책 용서는 값없다고 하면서도 기도와 눈물로 자격을 갖추라고 가르치는 모순부터 지적한다. 그리고 증거를 늘어놓는다. 새 언약은 죄를 더는 기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에스겔은 '기억하지 않는다'가 상도 벌도 셈하지 않는다는 뜻임을 보여 준다. 성경은 죄를 등 뒤에 던지고, 구름처럼 없애고, 바다에 던지고, 가리신다고 말한다. 반대로 “허물을 주머니에 봉한다”, “죄를 철필로 기록한다”는 벌하시겠다는 뜻이니, 앞의 표현들은 형벌까지 면제한다는 뜻이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덮으셨다는 것은 보지 않으시려는 것이고, 보지 않으시면 벌하지도 않으신다”고 풀었다.

  1. 죄책·형벌 구분은 성경과 정면충돌
  2. 새 언약: 죄를 기억하지 않으심
  3. 기억 안 함 = 형벌을 요구하지 않음
  4. 등 뒤로, 구름처럼, 바다에 던지심
예레미야 31:31, 예레미야 31:34
새 언약 — 죄를 기억하지 않으심
예레미야 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예레미야 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18:21-22, 에스겔 18:24
'기억하지 않음'이 상벌을 셈하지 않는다는 뜻임
에스겔 18:21-22 21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에스겔 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이사야 38:17
죄를 등 뒤에 던지심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이사야 44:22
허물을 구름같이 없애심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미가 7:19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심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시편 32:1-2
죄가 가려진 자의 복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사야 1:18
주홍 같은 죄가 눈같이 희어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예레미야 50:20
죄를 찾아도 없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욥기 14:17, 호세아 13:12, 예레미야 17:1
반대 표현(봉하고 기록함)은 벌하신다는 뜻 — 대조 근거
욥기 14:17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호세아 13:12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예레미야 17:1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30.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죄의 책임과 형벌을 제거함

칼빈은 묻는다. 우리 죄가 아직 형벌을 요구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인가? 그분이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는 말씀은 우리가 받을 형벌을 그분이 받으셨다는 뜻이다. 바울은 구속을 '아포루트로시스'(몸값을 치르고 풀어 줌)라 부르고, 그리스도가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다고 한다. 모세 율법도 죄에 대해 행위로 갚으라 하지 않고 오직 희생 제물로 속죄하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심판을 달래는 길이 하나뿐임을 보여 준다. 그 제사도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에 근거해서만 인정받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보속'은 호세아의 말처럼 송아지 대신 드리는 입술의 열매, 곧 감사다. 영원한 형벌과 일시적 형벌을 나누는 것도 소용없다. 하나님은 죄책을 사하실 때 형벌도 함께 면제하시기 때문이다.

  1. 그리스도가 우리 형벌을 받으셨다
  2. 구속은 몸값을 치른 해방이다
  3. 율법은 행위 아닌 제물로 속죄하게 했다
  4.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감사의 열매
  5. 죄책이 사라지면 형벌도 사라진다
베드로전서 2:24
그리스도가 형벌을 담당하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사야 53:5
우리 평화를 위한 징계를 그가 받으심 — 핵심 근거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로마서 3:24, 고린도전서 1:30, 에베소서 1:7, 골로새서 1:14
'아포루트로시스' — 값을 치른 구속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에베소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디모데전서 2:6
자기를 속전으로 주심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출애굽기 30:10, 레위기 4:1-7:16, 민수기 15:22
율법은 희생 제물로만 속죄하게 함
출애굽기 30:10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제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레위기 4:1-7:16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3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4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5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6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
민수기 15:22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호세아 14:2
수송아지 대신 입술의 열매 — 하나님이 원하시는 '보속'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에스겔 36:22, 에스겔 36:32
포로 귀환은 주의 이름을 위한 값없는 은혜 — 죄책·형벌 모두 면제
에스겔 36: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에스겔 36: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31. 형벌의 심판과 징계의 심판

반대자들도 성경을 내세운다. 다윗은 용서받았지만 아들의 죽음으로 벌을 받았고,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구제로 죄를 속하라 했다는 것이다. 잠언은 인자와 진리로 죄악이 속해지고 사랑이 허물을 가린다고 하며, 예수께서도 그 여인이 많이 사랑해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에 답하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이 두 종류임을 정리한다. '형벌의 심판'은 원수에게 진노로 갚아 멸하시는 것이고, '징계의 심판'은 멸망이 아니라 바로잡고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앞의 것은 범죄의 무게만큼 벌하는 재판관의 일이고, 뒤의 것은 자녀를 가르치려는 아버지의 일이다. 크리소스톰도 “아들과 종 모두 매를 맞지만 종은 벌로, 아들은 교육으로 맞는다”고 했다.

  1. 반대자: 다윗·다니엘·잠언·누가복음 7장
  2. 심판은 형벌과 징계 두 종류다
  3. 형벌은 재판관, 징계는 아버지의 일
  4. 종은 벌로, 아들은 교육으로 맞는다
사무엘하 12:13-14
반대자의 근거 — 용서 후에도 벌
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다니엘 4:27
반대자의 근거 — 구제로 죄를 속하라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잠언 16:6
반대자의 근거 — 인자와 진리로 죄가 속함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잠언 10:12, 베드로전서 4:8
반대자의 근거 — 사랑이 허물을 가림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누가복음 7:47
반대자의 근거 — 많이 사랑해서 용서받음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형벌을 위한 심판은 재판관의 행동이요, 징계를 위한 심판은 아버지의 행동이다.”
📜32. 두 심판의 차이점

첫째 차이는 저주가 있느냐다. 형벌의 심판에는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담기지만 신자에게는 그런 일이 없고, 징계는 오히려 하나님의 복이자 사랑의 증거다. 악인이 겪는 고난은 지옥으로 가는 통로를 미리 보는 것이며, 그들은 고난으로 변하지 않고 더 완악해진다. 주께서 종들을 엄히 징계하셔도 죽음에 넘기지 않으시니, 성도는 고난이 유익이었다고 고백한다. 성도는 징계는 달게 받되 진노의 심판은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성경이 신자에게도 '진노'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맞는 사람이 느끼는 극심한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다윗 언약대로 매로 다스리시되 인자하심을 거두지 않으시고, 은처럼 녹여 없애지 않고 알맞게 연단하신다.

  1. 신자의 징계엔 저주가 없다
  2. 징계는 사랑의 증거다
  3. 악인의 고난은 심판의 시작이다
  4. '진노'는 신자가 느끼는 고통의 표현
  5. 언약 때문에 인자하심은 그대로다
욥기 5:17, 잠언 3:11-12, 히브리서 12:5-6
징계는 복이자 사랑의 증거
욥기 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잠언 3:11-12 11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12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2:5-6 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시편 118:18
징계하셔도 죽음에 넘기지 않으심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시편 119:71
고난이 유익이었다는 고백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예레미야 10:24-25
징계는 받되 진노는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
24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25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였나이다 하니라
시편 6:1, 시편 38:1
분노로 책망하지 말아 달라는 기도
시편 6: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시편 38:1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이사야 12:1, 하박국 3:2, 미가 7:9
신자에게도 쓰인 '진노' 표현 — 고통의 표현
이사야 12: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하박국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미가 7:9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이사야 47:6, 이사야 42:24
기업을 욕되게 하셨다는 표현도 같은 뜻
이사야 47:6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이사야 42:24 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사무엘하 7:12-14
사람의 매로 징계하신다는 언약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시편 89:30-33
매로 다스리되 인자하심은 거두지 않으심 — 핵심 근거
30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31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32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33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이사야 48:10
은처럼 녹이지 않는 절제된 연단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33. 두 심판의 목적 상의 차이

둘째 차이는 목적이다. 악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시작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 것은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개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징계는 과거보다 미래를 향한다. 크리소스톰(“과거를 벌하려는 게 아니라 미래의 죄를 막으려는 것”)과 아우구스티누스(“형벌이 아니라 약”)도 같은 말을 했다. 사울에게서 나라를 빼앗은 것은 형벌의 심판이었고, 다윗의 아이를 데려가신 것은 교정을 위한 징계였다. 바울도 우리가 징계받는 것은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사야 40:2의 “충분히 벌을 받았다”도 죄 사함이 벌에 달렸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아버지의 긍휼을 기뻐할 때라는 위로다.

  1. 신자의 징계는 회개가 목적이다
  2. 징계는 과거보다 미래를 향한다
  3. 사울은 형벌, 다윗은 징계였다
  4. 징계는 정죄를 막기 위한 것
이사야 1:5-6
매를 맞고도 돌이키지 않는 백성 — 징계의 목적은 회개
5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사무엘상 15:23
사울의 폐위 — 형벌의 심판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하 12:18
다윗 아이의 죽음 — 교정의 징계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고린도전서 11:32
징계는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게 하려 함 — 핵심 근거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40:2
'충분히 벌받음'은 위로의 선언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4. 징계를 받는 신자의 자세

고통 속에서 신자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벌주는 재판관으로만 느끼면 그분의 사랑을 믿을 수 없고, 매 자체를 저주로 여기게 된다. 유익을 얻는 사람은 하나님이 죄에 노하시면서도 자기에게는 자비로운 아버지임을 아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편 88편과 90편처럼 진노에 짓눌린 탄식만 남는다. 다윗은 주께 징벌받고 교훈받는 자가 복되다고 노래한다. 불신자는 그냥 두시고 자기 백성만 엄하게 다루시는 듯 보일 때가 큰 시험인데, 다윗은 신자는 돌아오면 구원을 얻지만 악인의 끝은 구덩이라고 위로한다. 전쟁·기근·질병도 악인에게 진노의 도구로 내려질 때는 영원한 심판 못지않은 저주다.

  1. 하나님을 재판관으로만 보면 사랑을 못 믿는다
  2. 노하셔도 아버지이심을 붙들라
  3. 징벌받고 교훈받는 자가 복되다
  4. 악인만 편해 보일 때가 큰 시험이다
베드로전서 4:17, 예레미야 25:29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됨 — 고통 중의 위로
베드로전서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예레미야 25:29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시편 88:16
진노에 짓눌린 탄식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시편 90:7-9
진노 가운데 지나가는 날들
7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시편 94:12-13
징벌받고 교훈받는 자가 복됨 — 핵심 근거
12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35. 다윗의 예

다윗에게 내린 벌은 하나님이 살인과 간음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보여 주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도록 가르치려는 것이었지, 죗값을 치르는 보속이 아니었다. 인구조사 죄 뒤의 전염병도 값없이 용서하신 뒤 후대에 본보기를 세우고 다윗을 낮추기 위한 것이었다. 인류에게 내린 저주를 은혜받은 뒤에도 겪는 것 역시 죄를 경계하고 참된 복을 사모하게 하려는 것이며, 지금 겪는 모든 재난을 죄의 형벌로 보는 것은 어리석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맞게 다루시고, 징계에도 꿈쩍 않는 완고한 백성은 책망하신다. 칼빈은 왜 그들이 다윗 한 사례에만 매달리느냐고 묻는다. 세리, 베드로(암브로시우스: 눈물은 있어도 보속은 없다), 중풍병자 모두 벌 없이 값없이 용서받았다. 규칙은 특별한 한 사례가 아니라 반복되는 많은 사례에서 끌어내야 한다.

  1. 다윗의 벌은 가르침이지 보속이 아니다
  2. 모든 재난을 죄의 형벌로 보지 말라
  3. 완고하면 징계가 길어진다
  4. 세리·베드로·중풍병자는 값없이 용서받았다
사무엘하 24:15
인구조사 후 전염병 — 본보기와 낮추심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창세기 3:16-19
인류의 공통 저주 — 경계와 사모함의 목적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5:3
징계에도 돌이키지 않는 백성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호세아 7:8
뒤집지 않은 전병 같은 에브라임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누가복음 18:14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2:61
베드로의 용서 — 보속 기록 없음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마태복음 9:2
중풍병자의 용서 — 벌 없음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6. 다니엘과 솔로몬의 예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에게 의와 구제로 죄를 속하라 한 것은 하나님께 형벌을 갚으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 외에 다른 속량물은 없기 때문이다. 그 뜻은 “백성을 억압하던 불의를 이제 긍휼과 공의로 바꾸라”는 것, 곧 사람을 향한 삶의 전환이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린다”도 대구법(두 구절을 짝지어 대조하는 히브리 시의 표현)으로 미움과 사랑의 열매를 대조한 말이며, 사람 사이에서 서로 허물을 덮어 준다는 뜻이다. 베드로도 같은 뜻으로 인용했다. “인자와 진리로 죄악이 속해진다”도 죄 사함의 원인이 아니라 참된 회개의 모습을 말한다. 선지자들이 의식 대신 사랑을 요구한 것, 히브리서의 선행 제사, 예수께서 바리새인에게 구제하라 하신 것도 보속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깨끗함이 무엇인지 가르친 것이다.

  1. 다니엘: 불의를 공의로 바꾸라는 뜻
  2. 잠언: 사람 사이에서 허물을 덮어 줌
  3. 원인이 아니라 회개의 모습이다
  4. 그리스도의 피 외에 속량물은 없다
다니엘 4:27
사람을 향한 삶의 전환을 요구함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잠언 10:12
대구법 — 사람 사이의 사랑을 말함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베드로전서 4:8
베드로도 같은 뜻으로 인용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잠언 16:6
죄 사함의 원인이 아닌 회개의 모습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히브리서 13:16
선행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누가복음 11:39-41
구제하라 — 참된 깨끗함을 가르치심
39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37. 누가복음에 나타난 한 여인의 예

바리새인은 예수께서 그 여인이 죄인인 줄 모르고 받아들이셨다고 생각해서 선지자가 아니라고 여겼다. 예수께서는 빚 탕감 비유로 그 여인이 이미 용서받은 사람임을 보여 주셨다. 비유에서 빚진 자는 많이 사랑해서 탕감받은 것이 아니라 탕감받았기 때문에 많이 사랑한다. 그러므로 “사랑함이 많기 때문”은 나타난 결과를 보고 원인을 아는 논증(귀납적 논증)이며, 사랑은 죄 사함의 증거다. 실제 원인은 예수께서 직접 밝히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에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용서받고, 사랑으로 그 긍휼에 감사하고 증언한다.

  1. 바리새인은 여인을 여전히 죄인으로 봤다
  2. 탕감받아서 사랑한 것이다
  3. 사랑은 원인이 아니라 증거다
  4. 원인은 믿음이다
누가복음 7:36-50
사건 전체의 문맥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
누가복음 7:41-43
빚 탕감 비유 — 탕감이 먼저, 사랑은 그다음
41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누가복음 7:47
반대자의 근거 — 사랑은 용서의 증거로 읽어야 함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7:50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함 — 실제 원인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주님은 그 여인의 사랑을 죄 사함의 원인이 아니라 죄 사함의 증거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38. 고대 교부들의 증거

교부들 글에 보속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지만 칼빈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교부들 다수가 이 문제에서 실수했거나 지나치게 엄하게 말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오늘의 보속론처럼 조잡한 뜻으로 쓴 것은 아니라고 본다. 크리소스톰은 “긍휼을 구하면 심문이 없고 용서를 받는다”고 했고, 아우구스티누스 이름으로 전하는 『교회의 교의』는 보속을 “죄의 원인을 끊는 것”, 곧 다시 죄짓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으로 본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비를 “죄 사함의 치료책”이라 부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의 몸만이 유일한 희생이며, 세례 전 죄든 그 뒤 연약해서 지은 죄든 모두 그 희생으로 사함받기에 교회가 날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며” 기도한다고 분명히 했다.

  1. 교부도 실수할 수 있다
  2. 그러나 뜻은 지금 보속론과 달랐다
  3. 보속 = 다시 죄짓지 않도록 조심함
  4. 세례 후 죄도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사함
마태복음 6:12
교회가 날마다 드리는 죄 사함의 기도 — 유일한 희생에 기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39. 스콜라 신학자들이 교부들의 가르침을 왜곡시킴

교부들이 말한 보속은 하나님께 치르는 값이 아니었다. 출교(교회 교제에서 내보내는 징계)된 사람이 다시 받아들여질 때 진심으로 뉘우쳤음을 교회 앞에 보여 주는 공적 표시였다. 금식 같은 일을 행해 하나님께가 아니라 교회에 '보속'했다는 뜻이었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 지침서』도 그렇게 쓴다. 오늘의 고해와 보속은 이 옛 관습에서 나왔지만 좋은 형식을 흔적도 없이 망가뜨렸다. 교부들 글에 작은 얼룩이 있었다면 스콜라 학자들은 그것을 완전히 더럽혔다. 롬바르드가 내세운 증거 대부분은 아우구스티누스 이름이 붙은 『회개에 대하여』라는 위작 모음집에서 나왔다. 칼빈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일일이 들추기보다 가르침으로 유익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며 4장을 마친다.

  1. 교부의 보속은 교회 앞의 회개 표시
  2. 하나님께 치르는 값이 아니었다
  3. 스콜라가 좋은 관습을 망가뜨렸다
  4. 근거 문헌 다수가 위작이다
마태복음 3:7
'독사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빌려 왜곡을 꾸짖음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5장 · 면죄부 교리의 오류와 그 악영향. 1-5

📜1. 면죄부의 해악

면죄부(죄에 따르는 형벌을 덜어 준다는 교회의 증서)는 보속론에서 나온다. 반대자들은 우리 보속의 모자란 부분을 면죄부가 채워 주며, 그것은 그리스도와 순교자들의 공로를 교황이 교서로 나눠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칼빈은 이것이 반박할 가치도 없을 만큼 어처구니없고 이미 쇠퇴하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단히 다루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교황 측이 몇 푼에 구원을 팔고, 거둔 돈이 방탕하게 쓰이는 것을 보면서도 면죄부를 사들였다. 지각 있는 사람들조차 '경건한 사기'라 여기며 혹시 유익할까 해서 따랐다. 칼빈은 이것이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깊은 무지 속에 있었는지 보여 준다고 말한다.

  1. 면죄부는 보속론의 보충 장치다
  2. 그리스도·순교자 공로를 교황이 나눈다는 주장
  3. 돈으로 구원을 사고팔았다
  4. 알면서도 사들인 것은 무지의 증거다
(성경 인용 없음)
실태 고발로 시작한다
📜2. 성경의 가르침과 면죄부의 가르침

많은 사람이 면죄부 장사꾼들의 속임수는 알게 됐지만 그 뿌리의 불경은 아직 보지 못한다. 반대자들은 그리스도·사도·순교자의 공로를 '교회의 보고'(공로를 쌓아 둔 창고)라 부르고, 로마 주교가 그것을 관리하며 기간별로 나눠 준다고 한다. 교황은 영구나 수년짜리를, 추기경은 100일, 주교는 40일짜리를 발부한다는 식이다. 칼빈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가 모자라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한다는 말이므로 그 피를 가장 욕되게 한다고 본다. 그리고 성경과 면죄부를 하나씩 맞대어 보인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이름·피·한 번의 제사로 죄 사함과 깨끗함과 온전함을 말하는데, 면죄부는 베드로·바울·순교자의 피로 그것을 얻는다고 말한다.

  1. '교회의 보고'라는 공로 창고 개념
  2. 기간별로 나눠 파는 구조였다
  3. 그리스도의 피가 모자라다는 말이 된다
  4. 성경 vs 면죄부, 하나하나 정반대다
사도행전 10:4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 ↔ 순교자를 통한 죄 사함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요한일서 1:7
예수의 피가 깨끗하게 함 ↔ 순교자의 피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고린도후서 5:21
그리스도가 죄가 되심 ↔ 순교자 피의 보속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13
오직 그리스도만 십자가에 ↔ 바울도 우리 위해 죽었다는 주장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사도행전 20:28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심 ↔ 순교자 피가 또 다른 값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4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케 ↔ 순교자로 온전케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요한계시록 7:14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음 ↔ 성인의 피에 씻음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3. 면죄부와 순교자들의 공로에 대한 반대 증거들

로마 주교 레오 1세(440-461 재위)조차 "성도들의 죽음은 귀하지만 그것으로 세상이 화목된 적은 없다, 의인들은 면류관을 받았을 뿐 주지 않았다, 각자 자기 죽음을 죽었지 남의 빚을 갚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순교자가 죄 사함을 위해 피 흘리는 일은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흉내 내라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라고 주신 은혜라고 했다. 반대자들은 순교자들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공로를 쌓았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피와 섞여 교회의 보고가 되었다고 하며, 근거로 골로새서 1:24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를 든다. 칼빈은 이것이 그리스도를 여러 성인 중 하나로 만든다고 본다. 순교자의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진리를 증언하고 교회의 믿음을 강하게 했으니 이미 충분한 열매가 있다. 그들의 승리가 교회에 싸울 열심을 일으켰다면 교회는 이미 충분한 유익을 얻은 것이다.

  1. 레오 1세: 의인은 면류관을 받을 뿐
  2. 각자 자기 죽음을 죽었다
  3. 순교자 공로가 남는다는 주장은 모독
  4. 순교의 열매는 이미 충분하다
시편 116:15
성도의 죽음은 귀함 — 그러나 화목의 값은 아님(레오의 인용)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골로새서 1:24
반대자의 근거 — '남은 고난'을 공로 보충으로 읽음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4. 바울의 '남은 고난'에 대한 바른 이해

골로새서 1:24의 '남은 고난'은 그리스도의 구속·화목 사역에 모자란 부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인 신자들이 이 땅에서 견뎌야 할 고난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고난을 자기 것으로 여기시며, 지체 안에서 날마다 고난받으신다. '교회를 위하여'는 교회를 구속한다는 뜻이 아니라 세우고 자라게 한다는 뜻이다. 바로 뒤에서 바울은 자기 사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 곧 복음 전파라고 밝힌다. 아우구스티누스도 고난은 머리로는 그리스도만의 것이고 몸 전체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것이며, 사도는 값을 치른 사람이 아니라 그 값을 전한 사람이라고 했다. 바울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은혜가 죄보다 넘친다고 가르치며, 모든 성도는 오직 그 은혜로 구원받았다.

  1. '남은 고난'은 신자가 겪을 고난이다
  2. 그리스도는 지체의 고난을 자기 것으로 여기신다
  3. '교회를 위하여'는 세우고 자라게 함
  4. 사도는 값을 전한 사람이지 치른 사람 아님
골로새서 1:24
바른 해석의 대상 본문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서 1:25
바울의 직분은 말씀을 이루는 것 — 구속 아님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2:10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해 참음 — 교회를 세우는 고난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6
사도의 환난은 교회의 위로를 위함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요한복음 10:7
그리스도는 양의 문 — 아우구스티누스 인용 속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로마서 5:15
은혜가 죄보다 넘침 — 모자람이 없음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사도행전 15:11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5. 면죄부의 기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복음의 말씀으로 전해지게 하셨는데, 교황은 그것을 납 봉인과 양피지 증서에 담아 나눠 준다. 그러니 복음과 면죄부 중 하나는 거짓이다. 바울은 화목의 말씀이 일꾼들에게 맡겨져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라” 간청하신다고 하며, 그리스도와의 교제(코이노니아)도 복음 안에서 주어진다고 한다. 면죄부는 은혜를 말씀에서 찢어 내는 것이다. 칼빈은 그 기원을 이렇게 본다. 옛 교회는 참회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보속을 부과했고, 사람들이 감면을 청하자 교회 권위로 덜어 준 것을 '면제'(indulgence)라 불렀다. 그런데 보속을 하나님께 치르는 값으로 바꾼 것처럼, 이 감면도 하나님 앞의 형벌을 면해 주는 처방으로 바꿔 버렸다.

  1. 은혜는 말씀으로 전해진다
  2. 면죄부는 은혜를 말씀에서 떼어 낸다
  3. 복음과 면죄부 중 하나는 거짓이다
  4. 기원: 교회 징계 감면이 변질된 것
고린도후서 5:18-21
화목의 말씀이 일꾼에게 맡겨짐 — 은혜의 통로는 복음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9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복음 안에서 주어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5장 · 연옥 교리에 대한 반론. 6-10

📜6. 연옥 교리에 대한 반박의 필요성

칼빈은 연옥(죽은 신자의 영혼이 남은 죗값을 치르며 정화된다고 하는 곳)이 이미 뿌리째 넘어졌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다툼만 일으키니 언급하지 말자고 하지만 칼빈은 동의하지 않는다. 연옥은 하나님 말씀 없이 호기심으로 만들어졌고, 사탄이 꾸민 가짜 '계시'와 왜곡된 구절로 지탱되며, 하나님이 금하신 죽은 자에게 묻는 일과도 닿아 있다. 한때는 덜 중요한 문제로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리스도의 피 밖에서 죄 사함을 찾는 지금은 침묵하면 위험하다. 연옥은 결국 죽은 뒤에도 영혼이 죄를 보속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니 보속이 무너지면 연옥도 함께 무너지고, 그리스도의 피가 유일한 보속인 이상 연옥은 십자가를 무효로 만드는 모독이다.

  1. 침묵하자는 의견에 칼빈은 반대한다
  2. 연옥은 말씀 없이 만든 가르침이다
  3. 연옥 = 죽은 뒤의 보속
  4. 보속이 무너지면 연옥도 무너진다
신명기 18:11
죽은 자에게 묻는 일 금지 — 하나님의 은밀한 영역을 넘지 말라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7. 연옥에 대한 소위 복음서의 증거에 대한 반론

첫 근거는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반대자들은 이것이 어떤 죄는 오는 세상에서 사해진다는 암시라고 한다. 칼빈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죄책인데, 그들은 연옥에서 형벌을 치른다고 하니 서로 맞지 않는다고 답한다. 더 근본적으로, 예수께서는 이 죄가 결코 용서받지 못함을 강조하시려고 지금 양심이 겪는 심판과 마지막 날의 공적 심판을 함께 말씀하셨을 뿐이다. 둘째 근거는 “고발자와 화해하라, 한 푼도 남김없이 갚기 전엔 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비유다. 칼빈은 재판관은 하나님, 고발자는 마귀, 옥은 연옥이라는 풀이를 거부한다. 이 말씀은 법 조문만 고집하지 말고 정의와 화평을 추구하라는 권면이다.

  1. 성령 거역 말씀은 용서 불가를 강조
  2. '오는 세상'은 최후 심판을 가리킨다
  3. 그들의 죄책·형벌 구분과도 안 맞는다
  4. 고발자 비유는 화평의 권면이다
마태복음 12:32, 마가복음 3:28-29, 누가복음 12:10
반대자의 근거 — 칼빈은 용서 불가의 강조로 읽음
마태복음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가복음 3:28-29 28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25:32-33
양과 염소를 나누는 최후 심판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마태복음 5:25-26
반대자의 근거 — 칼빈은 화해 권면으로 읽음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8. 빌립보서, 계시록, 그리고 마카베오서의 증거들에 대한 반론

반대자들은 '땅 아래 있는 자들'도 무릎 꿇는다는 빌립보서 2:10을 두고, 영원히 버림받은 자들은 예배하지 않으니 이들은 연옥 영혼이라고 한다. 칼빈은 이 구절이 참된 예배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의 통치에 굴복한다는 뜻이므로, '땅 아래'는 심판대 앞에서 떨며 굴복할 마귀들일 수 있다고 답한다. 바울도 같은 예언을 심판대 앞의 굴복으로 설명한다. 요한계시록 5:13의 '땅 아래' 피조물은 이성 없는 피조물까지 온 세상이 창조주를 찬양한다는 뜻이다. 마카베오하는 정경(교회가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한 성경 목록)이 아니므로 근거가 못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유대인들이 이 책을 율법·선지서·시편에 넣지 않았다고 했고, 히에로니무스는 교리 증명에 쓸 수 없다고 했으며, 저자 스스로 부족한 표현을 양해해 달라고 한다. 게다가 그 본문도 속죄 값이 아니라 부활 소망을 칭찬할 뿐이며, 율법의 제사는 그리스도 이후 폐지되었다.

  1. '땅 아래'는 굴복할 마귀일 수 있다
  2. 계시록은 온 피조물의 찬양이다
  3. 마카베오서는 정경이 아니다
  4. 그 본문도 부활 소망을 말할 뿐이다
빌립보서 2:10
반대자의 근거 — 칼빈은 통치에 대한 굴복으로 읽음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야고보서 2:19
귀신들도 믿고 떪 — 마귀도 굴복함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로마서 14:10-11, 이사야 45:23
바울 자신의 해설 — 심판대 앞의 굴복
로마서 14:10-11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사야 45: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요한계시록 5:13
온 피조물의 찬양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시편 19:1
하늘이 창조주의 영광을 선포함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누가복음 24:44
율법·선지서·시편 — 아우구스티누스가 정경 범위를 말하며 인용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마카베오하 12:43 (외경)
반대자의 근거 — 정경 아님
마카베오하 15:39 (외경)
저자 스스로 양해를 구함 — 영감된 책이 아니라는 근거
📜9. 고린도전서 3장의 증거에 대한 반론

반대자들이 가장 강한 근거라고 여기는 것은 고린도전서 3:12-15다. 공적이 불로 시험받고, 공적이 불탄 사람도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이”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연옥 불로 읽는다. 고대 저자 다수는 이 불을 환난과 십자가로 풀었는데, 칼빈은 그것이 연옥보다는 낫지만 더 정확한 뜻이 있다고 본다. 먼저 칼빈은 사도와 성도도 연옥을 거치느냐고 반문하는데, 그들은 아니라 하겠지만 바울은 '각 사람'의 공적을 시험한다고 한다(아우구스티누스의 논지). 또 이 불은 사람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을 시험해 상을 가리는 것이다. 칼빈의 해석은 이렇다. 나무·풀·짚은 사람이 지어낸 가르침, 불은 성령의 시험, '그날'은 주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때다. 공적이 불타는 사람은 기초인 그리스도는 지키되 덜 중요한 문제에서 자기 생각을 섞은 교회 건축자들이며, 그 지어낸 것은 사라져도 성령의 은혜로 깨끗해져 구원받는다.

  1. 불은 연옥 불이 아니다
  2. 바울은 '각 사람'의 공적을 말한다
  3. 나무·풀·짚 = 사람이 지어낸 가르침
  4. 불 = 성령의 시험
  5. 건축자는 정화되어 구원받는다
고린도전서 3:12-13
반대자의 근거 — 칼빈은 가르침을 시험하는 성령의 불로 읽음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고린도전서 3:13
'그날'은 주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날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고린도전서 3:15
불 가운데 받은 구원 — 지어낸 것에서 정화됨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0. 교부들의 증거에 대한 반론

반대자들은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1,300년 넘게 이어져 온 관습이라고 한다. 칼빈은 바울이 자기 시대에도 엉뚱한 재료로 짓는 자가 있다고 경고했다고 답하며, 어떤 말씀과 계시와 선례가 있느냐고 묻는다. 성경에는 장례 기록이 많지만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한 번도 없다. 교부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슬픔을 달래고 사랑을 표현하려는 인간적 마음,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해 예식을 하는 이교도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신자는 확신 없이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되고, 기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성경은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라는 더 나은 위로를 준다. 고대 교회는 연옥을 불확실하다고 여기며 주저했지만 지금은 신앙 조항으로 요구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경건한 이는 죽는 즉시 안식한다고 가르쳤으니 기도는 말씀이 명한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

  1. 오래된 관습이 말씀을 대신할 수 없다
  2. 성경에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없다
  3. 교부들은 인간적 정 때문에 그랬다
  4. 주 안에서 죽은 자는 이미 쉰다
  5. 기도는 말씀의 범위 안에서
고린도전서 3:11-15
바울 시대에도 엉뚱한 재료로 짓는 자가 있었다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로마서 14:23
믿음(확신)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죄 — 기도엔 확신이 더 필요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요한계시록 14:13
주 안에서 죽은 자는 복되고 쉰다 — 참된 위로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스콜라 신학회개 = 통회 + 고백 + 보속, 셋 다 있어야 죄 사함자기 정의와도 모순. 회개는 필요하지만 죄 사함의 원인은 아니다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스콜라 신학(통회)죄 무게만큼 '충분한' 통회가 있어야 한다측정할 수 없어 양심이 절망한다. 눈물이 아니라 긍휼을 보라고린도후서 7:10, 이사야 61:1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이사야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로마 교회(고해의 근거)나병환자를 제사장에게 보내심, 나사로를 풀라 하심 → 사제의 고해권알레고리 억지. 제사장 직분은 그리스도께 넘어갔다히브리서 7:12, 누가복음 17:14
히브리서 7: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누가복음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로마 교회“죄를 서로 고백하라” = 사제에게 고해'서로'는 상호 고백·상호 기도다야고보서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로마 교회(라테란 공의회, 1215)연 1회 모든 죄를 사제에게 고해해야 하며 안 하면 낙원 문이 닫힌다후대 교회법이며 폐지된 전례도 있다. 죄를 다 열거할 수는 없다시편 19:12, 에스겔 18:21-22
시편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에스겔 18:21-22 21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로마 교회(열쇠)사제가 죄를 듣고 조사·재판해 사한다열쇠는 말씀과 복음 선포에 매여 있다. 사죄의 확실성은 약속과 믿음에 있다마태복음 9:29, 요한복음 20:23
마태복음 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개혁 측을 향한 반론죄 사함이 믿음에 달렸다면 목사도 남의 믿음을 모르니 불확실하다목사는 말씀을 전달할 뿐이라 틀릴 수 없다. 받아들이는 믿음에 약속이 확실하다마태복음 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스콜라 신학(보속)죄책은 용서받아도 형벌은 남아 행위로 갚아야 한다용서는 값없고 형벌도 함께 면제된다. 그리스도가 형벌을 지셨다이사야 43:25, 이사야 53:5
이사야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스콜라 신학세례 후 지은 죄는 보속과 열쇠로만 회복된다세례 후에도 그리스도가 대언자이자 화목 제물이시다요한일서 2:1-2
1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스콜라 신학대죄는 무거운 보속, 소죄는 가벼운 보속으로 씻는다모든 죄의 삯은 사망. 신자의 죄가 가벼운 건 긍휼 때문이다로마서 6:23, 로마서 8:1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 교회다윗의 벌·다니엘의 구제·잠언·누가복음 7장이 보속의 근거다신자의 고난은 형벌이 아니라 징계. 구제는 회개의 모습, 사랑은 용서의 증거고린도전서 11:32, 누가복음 7:50
고린도전서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로마 교회(면죄부)그리스도와 순교자의 공로가 '교회의 보고'에 쌓여 교황이 나눠 준다그리스도의 피만으로 충분하다. '남은 고난'은 교회를 세우는 고난이다요한일서 1:7, 히브리서 10:14
요한일서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히브리서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로마 교회(연옥)마태복음 12:32, 고린도전서 3:15, 마카베오하 12:43이 연옥을 가르친다
마태복음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문맥 왜곡이거나 정경이 아니다. 불은 성령의 시험이다고린도전서 3:13, 요한계시록 14:13
고린도전서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온건론자연옥은 다툼만 일으키니 언급하지 말자그리스도의 피 밖에서 죄 사함을 찾는 한 침묵할 수 없다사도행전 10: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교부 권위 주장교부들도 보속과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말했다교부도 오류가 있고 뜻도 달랐다. 기준은 말씀이다로마서 14:23, 마태복음 6:12
로마서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용어
스콜라 신학중세 대학에서 논리학을 써서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 한 신학 전통이다.
통회·하등통회통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나오는 깊은 뉘우침, 하등통회는 주로 벌이 두려워서 하는 불완전한 뉘우침을 가리키는 중세 용어다.
고해(비밀 고백)사제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하나하나 털어놓고 사죄 선언을 받는 의식으로,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연 1회 의무가 되었다.
보속지은 죄에 따르는 형벌을 눈물·금식·구제 같은 자기 행위로 하나님께 갚는다는 개념이다.
열쇠의 권세그리스도가 교회에 주신 '매고 푸는' 권한으로, 칼빈은 이것을 복음을 선포해 죄 사함을 선언하는 일로 이해한다.
알레고리본문 속 사물을 다른 영적 의미의 상징으로 풀어 읽는 해석법이다.
죄책과 형벌죄책은 죄인으로 정죄받을 책임, 형벌은 그 죄에 따르는 벌로, 로마 교회는 둘을 나눠 형벌은 남는다고 보았다.
형벌의 심판·징계의 심판원수를 멸하는 재판관의 심판과, 자녀를 바로잡는 아버지의 심판을 구분한 칼빈의 용어다.
면죄부·교회의 보고교회의 보고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가 쌓였다는 창고, 면죄부는 그 공로로 형벌을 덜어 준다는 교회 증서다.
연옥·정경연옥은 죽은 신자가 남은 죗값을 치르며 정화된다는 곳이고, 정경은 교회가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한 성경 목록이다(마카베오서는 개신교 정경에 없다).
💬청년의 삶으로
  • 잘못한 뒤 “나 아직 덜 반성했나?” 하며 자책이 끝나지 않을 때 → 칼빈: 회개는 필요하지만 용서의 원인은 내 눈물의 양이 아니다. 시선을 하나님의 긍휼로 옮기라(§2-3).
  • 교회 리더나 목사님께 내 죄를 꼭 다 털어놔야 하나? → 칼빈: 혼자 감당이 안 될 때는 목회자를 찾는 것이 좋은 방편이지만, 의무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유가 원칙이다(§12).
  • 가족·연인·동료에게 상처를 줬는데 기도만 하면 될까? → 칼빈: 예배보다 화해가 먼저다.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13, 마태복음 5:23-24).
  • 헌금·봉사·선행을 늘려서 죄책감을 덜어 보고 싶을 때 → 칼빈: 그것은 보속이다. 용서는 값없이 주어지고, 선행은 용서받은 사람의 감사와 사랑의 열매다(§25, §37).
  • 취업 실패나 이별 같은 힘든 일이 “벌 받는 건가?” 싶을 때 → 칼빈: 신자의 고난은 갚으라는 형벌이 아니라 아버지의 징계이며 미래를 향한다. 다만 모든 고난을 특정한 죄의 벌로 단정하지 말라(§33-35).
✅이 편의 결론
  • 죄 사함은 내 통회·고백·보속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 덕분에 값없이 주어진다.
  • 고백은 하나님께, 회중 앞에서, 서로에게, 화해를 위해 하는 것이며 사람이 만든 의무로 양심을 묶어서는 안 된다.
  • 열쇠의 권세는 복음 선포에 매여 있고, 사죄의 확실성은 말씀의 약속과 믿음에 있다.
  • 하나님은 죄책과 함께 형벌도 면제하시며, 신자가 겪는 고난은 형벌이 아니라 아버지의 징계다.
  • 면죄부와 연옥은 보속론의 연장일 뿐이므로, 보속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진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존 칼빈 『기독교강요』(생명의말씀사)의 논증 구조를 우리 말로 정리한 것입니다(원문 미전재).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기준입니다. youtube.com/@빛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