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하나님이면서 사람이라는데, 그럼 둘인 거야 하나인 거야? 그리고 언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거야?
칼빈은 앞 장(13장)에서 그리스도가 참 사람이심을 확인했다. 이 장에서는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인 분이 어떻게 '한 분'인지를 다룬다. 그는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 표현을 세 가지로 나눈다. 인성에만 맞는 말, 한 본성의 성질을 다른 본성 쪽 이름으로 부르는 말(속성의 교류), 두 본성을 한꺼번에 가리키는 말(중보자의 직분)이다. 그중 셋째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가장 잘 보여 준다. 그래서 칼빈은 "중보자의 직분에 속한 일은 한 본성에만 돌리지 않는다"를 해석의 열쇠로 내놓는다. 이 틀로 두 본성을 갈라놓은 네스토리우스와 하나로 섞은 유티케스를 반박하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는 육체로 잉태되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한 세르베투스를 길게 반박한다. 결론은 이렇다. 영원부터 아들이신 말씀이 사람의 본성을 취해 한 위격이 되셨다. 그래서 그분에게 기대어 있는 우리의 '하나님의 자녀 됨'도 실제다.
1. 절별 정리
2. 속성의 교류 (발췌는 이 절 중간부터 시작. 절 제목은 정리자가 붙임)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에만 해당하는 표현이 많다. 그는 아버지의 종으로 불리고, 지혜와 키가 자라셨다.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고, 마지막 때를 모르셨으며, 스스로 말하지 않고 자기 뜻을 행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만졌다. 하나님으로서는 자랄 수도, 모를 수도, 보이거나 만져질 수도 없다. 그런데도 그리스도는 이것들을 '인성의 일'로 떼어 두지 않고, 중보자인 자기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신다. 이어서 칼빈은 '속성의 교류'를 설명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생명의 말씀을 손으로 만졌다"고 말한다. 하나님께는 피도 고난도 손에 잡히는 몸도 없다. 그러나 한 분이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시므로 인성으로 하신 일을 신성 쪽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칼빈은 이것이 엄밀히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지만 이유가 있는 표현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3:13도 같은 경우다. 땅에 계시던 예수님이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라고 하셨는데, 한 분 안에 두 본성이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한쪽의 일을 다른 쪽의 일로 말하신 것이다.
- 자람·모름·만져짐은 인성에만 맞는 말
- 그래도 예수님은 그것을 '내 일'로 받으신다
- 인성의 일을 신성 쪽 이름으로 부르는 화법
- 엄밀히는 부정확하지만 이유 있는 표현
- 근거는 '한 분'이라는 사실 하나
3. 중보자의 위격
칼빈은 그리스도의 참된 본모습이 두 본성을 함께 가리키는 구절, 특히 요한복음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고 본다. 죄를 사하는 권세, 원하는 자를 살리는 권세,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 세상의 빛, 선한 목자, 유일한 문, 참 포도나무 같은 말들이다. 이런 특별한 권한(대권)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오실 때 받으신 것이다. 창세 전에도 아버지와 함께 계셨지만 그때 이런 방식으로 받으신 것은 아니다. 또 그저 사람일 뿐인 존재에게는 결코 주어질 수 없는 권한이다. 고린도전서 15:24의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도 이렇게 읽어야 한다. 아들의 나라는 시작도 끝도 없지만, 그분은 종의 형체로 낮아져 복종하셨고 영광의 관을 받아 모든 무릎이 꿇는 자리에 오르셨으며, 마지막에는 아버지께 받은 것을 모두 돌려드려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시게 하신다. 아버지가 권세를 아들에게 맡기신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려는 것이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도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뵐 때까지 이어지는 일이다. 칼빈은 이 점을 놓친 옛 교부들이 요한복음을 흐리게 읽었다고 비판하며 해석의 열쇠를 제시한다. 중보자의 직분에 속한 일은 신성이나 인성 어느 하나에만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라는 칭호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신 분이라는 뜻이며, 주권을 아버지께 돌려드린 뒤에도 그분의 위엄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은 가려져 있는 신성이 오히려 스스로 빛나게 된다.
- 두 본성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 가장 중요
- 죄 사함·심판·생명 = 중보자에게 주신 권한
- 해석 열쇠: 직분의 일은 한 본성에만 X
- 마지막 날 '중보자 직분'을 아버지께 돌림
- 그래도 위엄은 줄지 않고 더 빛난다
네스토리우스·유티케스·세르베투스의 오류 반박 (4~8절)
4. 두 본성을 섞거나 갈라서는 안 됨
앞의 구분을 잘 적용하면 여러 난제가 풀린다. 많은 사람이 어떤 표현이 신성에도 인성에도 꼭 맞지 않는다며 혼란스러워한다. 그 표현이 '하나님이자 사람인 한 위격'과 '중보자 직분'에 맞는 말이라는 것을 보지 못해서다.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은 인성의 속성에 붙잡혀 신성을 무시하거나, 신성의 속성에 붙잡혀 인성을 무시한다. 두 본성을 함께 가리키는 말에 붙잡혀 둘 다 무시하기도 한다. 결국 "하나님이니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니 하나님이 아니다", "둘 다라서 어느 쪽도 아니다"라는 말이 된다. 칼빈의 고백은 이렇다. 그리스도는 연합되었으나 섞이지 않은 두 본성의 한 분이다. 인성을 따라서도(인성 때문은 아니지만) 우리의 주이시며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네스토리우스는 두 본성을 구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갈라놓아 그리스도를 둘로 만들었다. 유티케스는 하나 됨을 지키려다 두 본성을 모두 무너뜨렸다. 그래서 둘은 각각 에베소 공의회(43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448년)와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정당하게 정죄되었다.
- 혼란의 원인은 '한 위격'을 못 본 것
- 연합되었으나 섞이지 않은 두 본성
- 네스토리우스: 갈라서 그리스도가 둘
- 유티케스: 섞어서 두 본성 모두 파괴
- 섞는 것도 가르는 것도 둘 다 안 된다
5.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심
칼빈은 같은 시대의 미카엘 세르베투스를 '치명적'이라고 할 만큼 위험한 인물로 본다. 세르베투스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질, 영, 육체, 창조되지 않은 세 요소가 섞인 존재이고, 오직 성령으로 동정녀에게서 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성육신 전 하나님 안에는 그림자 같은 형상만 있었다는 것이다. 칼빈도 동정녀에게서 나신 중보자가 참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한다. 다만 근거가 다르다. 교회의 확고한 정의는, 영원 전에 아버지께로부터 나신 말씀이 '위격적 연합' 안에서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세르베투스는 "성육신 전부터 아들이라고 하면 아들이 둘이 된다"고 비난한다. 칼빈은 사람이 되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셨다면 사람이 되면서 새로 하나님이 되기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 됨은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더 밝히 드러났지만, 독생자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하나님이 천사에게도 사람에게도 아버지이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창세 전부터 아들이셔야 그 지체인 우리의 양자 됨도 상징이 아닌 실제가 된다.
- 세르베투스: 동정녀 잉태 때문에만 아들
- 칼빈: 영원 전에 나신 말씀이 인성을 취함
- 이미 하나님이셨으니 '새로' 된 것 아님
- 독생자 없이 하나님은 누구의 아버지도 아님
- 머리가 아들이어야 지체의 양자 됨도 실제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자이심
칼빈은 세르베투스에게 되묻는다. 아들 됨이 육체로 오실 때 시작되었다면 그리스도는 인성에 따라 아들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러면 두 본성 모두에 따라 아들이라는 것인가? 칼빈도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은 상태에서 '아들'로 불리신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신자들은 양자 됨과 은혜로 아들이 된 것이고, 그리스도는 본성으로 참되고 유일한 아들이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형제들 가운데 어떻게 '독생자'일 수 있겠는가. 이 존귀는 중보자의 위격 전체에 미친다. 그러니 동정녀에게서 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바치신 분이 참 아들이시다. 다만 그 근거는 신성에 있다. 로마서 1:3-4에서 바울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를 따로 말하는 것은, 아들 됨이 육체 아닌 다른 데 근거한다는 표시다. 어머니에게서 '다윗의 자손'이라 불릴 근거를 받으셨듯, 아버지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근거를 받으셨다. '인자'(사람의 아들)가 아담의 후손인 인성을 가리키는 히브리식 표현이듯, '하나님의 아들'은 신성과 영원한 본질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 우리는 은혜로 아들, 그분은 본성으로 아들
- 그래서 그분만 '독생자'
- 로마서 1:3-4는 두 본성을 따로 말함
- 인자 = 인성, 하나님의 아들 = 신성
- 그래도 존귀는 위격 전체에 미친다
7. 세르베투스의 논리 반박
세르베투스 측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다", 천사가 잉태될 아기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렀다는 구절을 근거로 든다. 아들이라 불린 시점이 잉태 때이니 그때부터 아들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그 논리대로라면 '말씀'도 육체로 오실 때부터 말씀이 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요한이 '손으로 만진 생명의 말씀'이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에서 나올 분의 근본이 영원에 있다고 한다. 칼빈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둘로 나누는 네스토리우스 편이 아니라고 분명히 하면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서 육체를 받으셨고 그 육체 안에서 독생자이시며 형제로서 우리를 아들 되게 하신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비추는 거울이다. 사람으로서는 받을 수 없는 존귀를 모태에서부터 받으셨기 때문이다. 다만 위격의 하나 됨을 생각하다가 두 본성을 섞어 신성을 지워서는 안 된다. "성육신 전에는 상징적으로만 아들"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때 묘사가 희미했을 뿐 그분이 영원한 아버지께로부터 나신 말씀으로서 영원한 하나님이셨다고 답한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아들과 관계가 없었다면 '아버지'로 불리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칼빈은 잠언 30:4도 보조 증거로 들지만 큰 무게를 두지 않는다고 스스로 밝힌다. 반대자들이 이레나이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를 끌어대는 것도 부당하다. 두 교부 모두 보이지 않던 아들이 나중에 보이게 나타났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 '잉태 때 아들 칭호'로 시작점을 못 정함
- 그 논리면 '말씀'도 그때 생긴 셈
- 미가: 그 근본은 영원에 있다
- 성육신 전엔 희미했을 뿐 없던 게 아님
- 교부들도 영원한 아들을 고백
8. 세르베투스 가르침 전반에 대한 반박
'육체로서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들의 근거를 따져 보면 결국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잉태되었다'는 것 하나뿐이다. 칼빈은 이것을 옛 마니교도와 비교한다. 마니교도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구절로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의 본질에서 나왔다고 가르쳤다. 둘 다 본성의 구별을 지워 버리고, 영원한 지혜의 나심을 없애며, 중보자에게서 신성을 빼고, 참 사람 대신 '사람 같은 모습'만 남긴다는 것이다. 세르베투스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아들은 처음에 하나의 관념이었고, 말씀은 겉으로 빛나는 광채일 뿐이며, 말씀이 씨 노릇을 해서 아들이 났고, 그리스도의 육체는 하나님과 같은 본질이어서 육체가 하나님으로 바뀌었다. 그는 창조 첫날의 빛과 불기둥·구름기둥에 나타난 세 요소로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어졌다고도 했다. 칼빈은 말씀이 씨라면 개나 돼지도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또 육체가 곧 신성이라면 어떻게 신성의 성전일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무엇보다 이 주장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에서 참 사람으로 나신 구속자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구원의 소망을 꺼뜨린다. 세르베투스가 기대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는 네스토리우스도 유티케스도 지지하지 않는다. 요한의 목적은 두 본성이 한 위격을 이루었음을 밝히는 데 있다. 칼빈은 자세한 반박은 별도의 책(1554년 『삼위일체에 관한 정통 신앙 변호』)에서 했다고 밝히고, 이런 사례를 보며 진지하고 겸손한 태도를 지키라고 독자에게 권한다.
- 근거는 '동정녀 잉태' 하나뿐
- 마니교처럼 본성 구별을 지움
- 육체가 신성이면 '성전'이 될 수 없다
- 결국 다윗의 자손 구속자를 빼앗음
- 요한복음 1:14 = 두 본성, 한 위격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혼란스러워하는 독자들(4절) | 어떤 표현은 신성에도 인성에도 안 맞으니 모순이다 | 그 표현은 '한 위격', '중보자 직분'에 맞는 말이다 | 요한복음 5:21-23 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
| 일부 옛 교부(3절) | 요한복음의 표현을 신성이나 인성 한쪽으로만 풀었다 | 중보자 직분의 일은 한 본성에만 돌리지 않아야 바로 읽힌다 | 고린도전서 15:24, 15:28 고린도전서 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고린도전서 15: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
| 네스토리우스 | 두 본성을 따로 세워 사실상 두 그리스도를 만듦 | 동정녀에게서 나신 분이 곧 하나님의 아들, 한 분이다 | 누가복음 1:32, 1:43 누가복음 1: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누가복음 1: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
| 유티케스 | 하나 됨을 위해 두 본성을 섞음 | 섞으면 두 본성 모두 무너진다. 몸은 신성이 거하는 성전이다 | 요한복음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 세르베투스 ① |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났기 때문에만 아들이다 | 영원 전에 나신 말씀이 인성을 취했기에 아들이다 | 누가복음 1:35, 로마서 1:3-4 누가복음 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로마서 1:3-4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 세르베투스 ② | 성육신 전부터 아들이라 하면 아들이 둘이다 | 이미 하나님이셨으니 사람이 되며 새로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다. 한 분이다 |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 세르베투스 ③ | 잉태된 아기를 '아들'이라 부르니 그때부터 아들이다 | 그러면 '말씀'도 그때 시작된 셈이다. 그 근본은 영원에 있다 | 요한일서 1:1, 미가 5:2 요한일서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
| 세르베투스 ④ | 성육신 전에는 상징적으로만 아들이었다 | 묘사가 희미했을 뿐 영원한 말씀이었다. 아들 없이는 '아버지'라는 이름도 없다 | 에베소서 3:14-15 14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
| 세르베투스 ⑤ | 말씀은 씨이고 육체가 하나님으로 바뀌었다 | 그러면 모든 피조물이 아들이다. 육체가 신성이면 성전일 수 없고 참 사람 구속자도 사라진다 |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 마니교 | 하나님의 숨으로 사람 영혼이 하나님 본질에서 나왔다 | 같은 혼동이다. 창조된 것과 하나님의 본질을 구별해야 한다 | 창세기 2:7(오용), 잠언 8:22 이하 잠언 8:22 이하 22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 |
| 반대자들의 교부 인용 | 이레나이우스·테르툴리아누스도 우리 편이다 | 두 교부는 보이지 않던 아들이 나중에 보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교부 문헌) |
3. 용어
- 본성
- 무엇으로서 존재하는가.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으로서의 본성(신성)과 사람으로서의 본성(인성)이 다 있다.
- 위격
- '누구'인가에 해당하는 인격적 주체.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가진 한 분(한 위격)이다.
- 위격적 연합
- 두 본성이 섞이지도 갈라지지도 않고 한 위격 안에 묶여 있다는 뜻. 네스토리우스를 반박하려고 쓰기 시작한 말이다.
- 속성의 교류
- 한 본성의 성질을 다른 본성 쪽 이름으로 부르는 성경의 화법. 예: "하나님의 피".
- 중보자
-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둘을 화해시키는 분. 그 일을 하려면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어야 한다.
- 대권
-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특별한 권한. 여기서는 죄 사함·심판·생명을 주는 권한.
- 독생자
- 본성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유일한 분. 우리는 은혜로 입양된 자녀다.
- 양자 됨
- 원래 자녀가 아니던 사람이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것.
- 인자
- '사람의 아들'이라는 히브리식 표현. 칼빈은 아담의 후손인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킨다고 본다.
- 성육신
-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과 영혼을 취해 사람이 되신 일.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그리스도는 연합되었으나 섞이지 않은 두 본성을 가진 한 분이다.
- 성경 표현은 인성의 말, 교류의 말, 중보자 직분의 말로 나눠 읽어야 한다.
- 중보자의 일은 신성이나 인성 한쪽이 아니라 한 분 전체의 일이다.
- 그분은 잉태 때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아들이시다.
- 그래서 그분 안에 있는 우리의 자녀 됨도 실제이고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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