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분노, 연애, 돈, 말, 속마음까지… 하나님은 왜 내 행동뿐 아니라 마음까지 문제 삼으실까?
칼빈은 앞 편에서 이어 온 안식일 계명을 마무리합니다. 의식으로서의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끝났지만,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일과 아랫사람에게 쉼을 주는 일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정리합니다. 이어 둘째 돌판(5~10계명)을 하나씩 풉니다. 계명마다 먼저 '목적'을 밝히고, 금지 명령 안에는 반대쪽의 적극적 명령이 들어 있으며, 손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룬다는 해석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합니다. 10계명에서는 의지가 동의하지 않은 순간의 욕심까지 금하여, 율법이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51~59절에서는 율법 전체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묶습니다. 이웃 사랑은 경건의 증거이고 이웃의 범위는 원수까지라고 말한 뒤, 원수 사랑을 '선택 사항'으로 낮춘 스콜라 신학과 '가벼운 죄' 구분을 반박합니다. 결론은 모든 죄가 죽음에 해당하며, 용서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1. 절별 정리
제4계명(앞 편에서 이어짐) · 안식일
31. (끝부분) 그림자는 지나가고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다
이 절의 앞부분은 앞 편에 있고, 여기서는 결론부만 다룹니다. 칼빈은 이사야 58:13-14를 들어, 선지자들이 안식일이 품은 '신비'(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쉼)를 거듭 생각하라고 외쳤다고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시면서 이 계명의 의식적 부분은 의심할 여지 없이 폐지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진리이자 실체이시므로, 그분이 나타나시자 예표와 그림자는 물러납니다. 우리는 세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참된 안식을 얻습니다(로마서 6:4-5). 이 안식은 어느 하루에 갇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완전히 죽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채워질 때까지 삶 전체에 걸쳐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날짜 자체를 신성하게 여기는 미신을 피해야 합니다.
- 안식일의 의식적 부분은 그리스도로 폐지됨
- 안식일은 그림자, 그리스도는 실체
-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 안식은 하루가 아니라 평생의 과정
- 날짜를 신성시하는 미신은 금물
32. 안식일 계명에서 지금도 유효한 두 가지
안식일을 주신 세 가지 이유 가운데 나머지 두 가지(앞 편 28절)는 그림자가 아니라 모든 시대에 똑같이 해당한다고 칼빈은 봅니다. 첫째, 정해진 날에 모여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종과 일꾼을 노동에서 쉬게 해 주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신명기와 출애굽기가 직접 말합니다. 교회 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고 매일의 경험으로도 절실한데, 날을 정해 두지 않으면 모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말한 품위와 질서도 지킬 수 없고, 질서가 무너지면 교회는 곧 혼란에 빠집니다. "날 구분을 없애려면 매일 모이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칼빈은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연약해서 매일 모이기는 불가능하고, 사랑의 원리로 보아 그 이상을 요구할 수도 없으니,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따르자고 합니다.
- 지금도 유효: 함께 모여 예배하기
- 지금도 유효: 아랫사람에게 쉼 주기
- 날을 정해야 모임과 질서가 유지됨
- 매일 모이면 좋지만 연약함을 배려
33. 주일을 지키는 올바른 자세
당시 일부 들뜬 사람들이 "날을 지키는 것은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칼빈은 우리가 날을 지키는 뜻이 유대인과 전혀 다르다고 답합니다. 영적 신비를 그림자로 나타내는 의식으로서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질서를 위한 도구로 그날을 쓸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와 로마 교회를 꾸짖은 것은, 날 자체에 영적 의미를 붙여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의 빛을 가리는 미신 때문이었습니다. 교제와 평화를 위해 날을 정하는 일을 꾸짖은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그날 연보를 모으라고 지정했습니다. 오히려 유대인의 성일이 지금의 주일보다 미신의 위험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미신을 없애려고 유대 성일을 내려놓았고, 교회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 다른 날을 정했다고 칼빈은 설명합니다.
- 비판: "날 지키기는 유대교적이다"
- 답: 우리는 의식이 아니라 질서로 지킨다
- 바울이 꾸짖은 건 날을 신성시하는 미신
- 바울 교회도 정한 날에 모이고 연보함
34. 주일을 영적으로 지킨다는 것
옛 교회가 안식일을 주일로 바꾼 데에는 신중한 분별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이 가리킨 참된 안식이 주님의 부활로 이루어졌으니, 부활의 날이 그림자를 끝낸 것입니다. 그렇다고 칼빈이 '일곱'이라는 숫자에 교회를 묶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미신만 없다면, 교회가 권징과 질서를 위해 다른 날을 정해도 정죄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가 정리한 주일의 뜻은 세 가지입니다. (1) 평생 영원한 안식을 묵상하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하기, (2) 틈날 때마다 개인적으로 묵상하고, 교회가 정한 말씀·성례·공적 기도의 질서를 함께 지키기, (3) 아랫사람을 가혹하게 부리지 않기입니다. 반대편에는 "일곱째 날이라는 의식적 부분만 폐지되고, 7일 중 하루라는 도덕적 부분은 남는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칼빈은 이것이 날짜만 바꾸고 날을 신성시하는 생각은 그대로 둔 것이며, 오히려 유대인보다 더한 미신을 낳았다고 비판합니다. 결론은 신앙이 식지 않도록 거룩한 모임을 자주, 부지런히 갖고, 예배를 돕는 외적 수단을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 부활이 안식의 그림자를 끝냈다
- '일곱' 숫자 자체에 교회를 묶지 않음
- 주일의 뜻: 영원한 안식 묵상·공예배·배려
- '7일 중 하루는 도덕법' 주장은 거부
- 그래도 모임은 자주, 부지런히
제5계명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12)
35. 제5계명이 다루는 범위
이 계명의 목적은, 하나님이 자신이 세운 질서가 유지되기를 기뻐하시므로 그가 세운 위아래 질서를 함부로 무너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지는 하나님이 우리 위에 세운 사람들을 공경과 순종과 감사로 대하고, 멸시하거나 고집을 부리거나 배은망덕하게 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공경'은 넓은 말입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라"는 말씀에는 존중뿐 아니라 정당한 사례비를 드리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타락한 본성은 높아지고 싶어서 남 아래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부드럽고 거부감이 적은 복종인 부모 공경을 예로 드셔서, 우리가 모든 정당한 복종에 차츰 익숙해지게 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아버지', '주' 같은 자신의 칭호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셔서, 하나님의 광채가 작은 불꽃처럼 그들에게 비치게 하셨습니다.
- 목적: 하나님이 세운 질서를 지키라
- 공경 = 존중 + 순종 + 감사
- 공경엔 물질적 책임(사례)도 포함
- 부모 공경은 모든 복종의 '입문 과정'
- 윗사람은 하나님 칭호를 나눠 받은 자
36. 공경의 세 부분: 경의·순종·감사
칼빈은 이 계명을 보편 규범으로 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누군가가 우리 윗자리에 있다면, 그에게 경의와 순종과 감사를 돌리고 할 수 있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윗사람이 그런 존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의 섭리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 공경은 특히 분명한 명령이고 자연의 이치도 가르칩니다. 칼빈은 부모의 권위를 짓밟는 자를 "괴물"이라 부를 만큼 강하게 말하고, 구약 율법이 그런 자녀에게 사형을 정한 것을 근거로 듭니다. 세 부분은 율법의 부속 조항으로 확인됩니다. 부모를 저주한 자를 벌하는 조항은 '경의'를, 반역하는 자녀를 벌하는 조항은 '순종'을, 부모에게 선을 행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감사'를 보여 줍니다. 바울도 이 계명을 순종으로 해석합니다.
- 윗자리의 사람에게 경의·순종·감사
- 자격 여부보다 섭리가 근거
- 저주 금지 → 경의
- 반역 금지 → 순종
- 부모 봉양 → 감사
37. 이 계명에 덧붙은 약속
약속이 덧붙은 것은 하나님이 이 순종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며, 이 약속을 바늘 삼아 우리의 무딘 마음을 찌릅니다. 원래 약속의 뜻은, 하나님 사랑의 보증으로 주실 가나안 땅에서 오래 살며 그 복을 누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자에게는 온 땅이 복되므로 이 약속은 지금 우리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다만 오래 사는 것이 하나님 자비의 증거가 되는 한에서만 그렇습니다. 장수 자체가 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던 아들이 일찍 죽는 일도 흔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십니다. 한 평을 약속하신 사람에게 백 평을 주시듯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종들에게 장수보다 죽음을 통해 더 풍성하고 확실하게 자비를 보여 주시기도 합니다.
- 약속은 순종을 북돋우는 격려
- 원래 의미: 가나안 땅에서의 장수
- 장수는 자비의 증거일 때만 복
- 효자가 일찍 죽어도 약속은 성취
- 때로 죽음이 더 큰 자비가 됨
38. 숨은 경고, 그리고 '주 안에서'라는 한계
약속의 반대편에는 불순종하는 자녀에게 저주가 임한다는 경고가 숨어 있습니다. 율법은 그런 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했고, 사람의 재판을 피해도 하나님이 직접 벌하신다고 칼빈은 말합니다. 늙도록 사는 사람이 있어도, 복을 빼앗긴 채 비참하게 연명할 뿐이고 더 큰 심판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반드시 함께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합니다. 부모의 존귀는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것이니,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은 하늘 아버지를 공경하는 쪽으로 가는 걸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라고 부추긴다면, 우리는 그를 부모가 아니라 참 아버지께 가는 길을 막는 '남'으로 여길 완전한 권리가 있습니다. 왕이나 영주를 비롯한 모든 윗사람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들의 높음은 하나님의 높음에서 왔으니,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마땅합니다.
- 불순종에는 저주의 경고가 따름
- 순종은 언제나 '주 안에서'
- 하나님 법을 어기라면 따르지 않는다
- 모든 윗사람에게 같은 원리 적용
- 윗사람의 권위는 하나님을 가리켜야
제6계명 · "살인하지 말라"(출애굽기 20:13)
39. 이 계명의 의도
이 계명의 목적은, 하나님이 인류를 하나로 묶으셨으니 각 사람이 모든 사람의 안전을 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웃의 몸을 해치는 모든 폭력과 상해가 금지됩니다. 동시에 적극적 명령도 들어 있습니다.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수단이 있으면 성실히 쓰고, 평안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해로운 것은 치우고, 위험에 처한 이웃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생각을 보시는 입법자이시므로 몸만 다루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은 마음으로 죽이는 것도 금하고, 형제를 살리려는 마음을 명령합니다. 살인은 손으로 저지르지만 분노와 화가 마음을 덮을 때 이미 잉태됩니다. 미움은 화가 이어지는 상태일 뿐이고, 화나 미움이 있으면 해치려는 마음이 반드시 있다고 칼빈은 말하며 요한일서와 예수님의 말씀으로 못 박습니다.
- 목적: 모든 사람의 안전을 돌보라
- 금지 + 적극 명령(살리고 돕기)
- 하나님은 손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
- 살인은 분노에서 잉태된다
- 미움 = 계속되는 화 = 마음의 살인
40. 이 계명의 두 근거: 하나님의 형상, 우리의 혈육
성경은 이 계명이 두 가지 근거 위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동시에 우리와 같은 살과 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해치고 싶지 않다면 이웃을 거룩하게 대해야 하고, 인류 전체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면 이웃을 내 혈육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혜에서 나오는 권면은 3권에서 다룬다고 미리 밝힙니다.) 그러므로 피를 흘리지 않았다고 살인죄를 피한 것이 아닙니다. 이웃의 안전을 해치는 일을 하거나, 시도하거나, 바라거나, 계획하는 것도 살인죄입니다. 더 나아가 능력과 기회가 있는데도 이웃의 안전을 돌보지 않으면, 그것도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몸의 안전을 이렇게까지 돌봐야 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더 귀한 영혼의 안전은 얼마나 더 힘써 돌봐야 하겠느냐고 칼빈은 묻습니다.
- 근거 1: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 근거 2: 사람은 나의 혈육
- 바라고 계획만 해도 살인죄
- 도울 수 있는데 안 돕는 것도 위반
- 몸보다 영혼을 더 힘써 돌보라
제7계명 · "간음하지 말라"(출애굽기 20:14)
41. 이 계명의 목적
이 계명의 목적은, 하나님이 정숙과 순결을 사랑하시므로 우리도 모든 부정함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삶의 모든 부분을 깨끗하고 절제 있게 꾸려 가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특히 '음행'을 콕 집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정욕은 결국 음행으로 향하는데, 음행은 몸에까지 흔적을 남기는 가장 두드러진 더러움입니다. 그 추함을 보여 주어 모든 정욕을 미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돕는 배필과 함께 살도록 지음받았고, 죄의 저주 이후로는 그 필요가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결혼을 제정하고 복을 주어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결혼 밖의 모든 결합은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은 것이며, 결혼은 무절제한 정욕에 빠지지 않게 지켜 주는 치유책이라고 칼빈은 말합니다.
- 목적: 정숙과 순결, 삶 전체의 절제
- 음행을 예로 들어 모든 정욕을 경계
- 사람은 함께 살도록 지음받음
-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고 복 주심
- 결혼 밖의 성적 결합은 금지
42. 독신은 특별한 은사
타락 이후 생긴 정욕 때문에,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로 벗어나게 하신 사람을 빼고는 결혼이 두 배로 필요해졌습니다. 그러니 각자 자신이 어느 쪽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칼빈은 동정(童貞)이 가볍게 여길 덕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능력이 아예 주어지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는 잠시만 주어집니다. 정욕과 싸워 이기지 못하고 괴로운 사람은 결혼으로 해결해야 하고, 이 치유책을 거부하고 무절제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규례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도우시면 누구나 독신으로 살 수 있다"고 소리 높였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자기 길, 곧 자기 부르심을 따라 걷는 사람을 도우신다고 답합니다. 자기 형편을 무시하고 억지로 이기려는 것은 오히려 부르심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울 모두 독신의 절제를 일부에게만 주신 은사로 말합니다.
- 독신의 절제는 일부에게 주신 은사
- 은사는 아예 없거나 잠시일 수도
- 이길 수 없다면 결혼이 길
- "하나님 도우시면 다 돼"는 오해
- 하나님은 부르심을 따르는 자를 도우심
43. 결혼이 필요한 이유
독신으로 정결하게 사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모두에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 더 매진하라고 특정한 사람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그러니 자기 능력의 분량에 맞춰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그가 정하신 본성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순결을 지키는 길은 각자 자기 기준으로 자신을 정직하게 재 보는 것뿐입니다. 결혼을 쓸데없다고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되고, 배우자 없이 살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독신을 동경해서도 안 됩니다. 몸이 편하려고 독신으로 살아서도 안 되고, 결혼의 매임에서 자유로운 만큼 경건의 의무에 더 힘써야 합니다. 독신의 은사는 대개 잠시 주어지므로, 정욕을 다스릴 힘이 없으면 하나님이 결혼을 요구하신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결혼하지 않았다고 우쭐해서도 안 됩니다. 마음속으로 정욕이 불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정숙함을 몸과 마음이 함께 깨끗한 상태로 봅니다.
- 자기 분량에 맞게 생활 방식을 정하라
- 편하려고 택하는 독신은 안 됨
- 독신은 경건에 더 힘쓰라는 자유
- 다스릴 수 없다면 결혼은 의무
- 정숙 = 몸의 정절 + 마음의 순결
44. 결혼 안에서도 지켜야 할 정숙
결혼한 부부는 하나님이 그 결합에 복을 주셨음을 알기에, 방탕한 정욕으로 그것을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의 존귀함이 부부 사이의 성을 덮어 주지만, 그렇다고 결혼이 무절제를 부추기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라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칼빈은 부끄러움도 존중도 없이 행하면 자기 아내와 간음하는 것이라고 한 암브로시우스의 말에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계명을 주신 분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삼으시고 영혼과 정신과 몸의 깨끗함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문란한 옷차림, 방탕한 몸짓, 추한 말로 남의 정숙함을 흔드는 것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마음을 정욕으로 불태우는 것, 눈을 욕심대로 굴리는 것, 몸을 음란하게 꾸미는 것, 혀로 더러운 말을 하는 것 모두 정절에 흠을 냅니다.
- 결혼 안에서도 절제와 존중
- 부부라도 '다 허용'은 아님
- 옷차림·몸짓·말로 유혹하는 것도 금지
- 마음·눈·몸·혀 모두 정절의 영역
제8계명 · "도둑질하지 말라"(출애굽기 20:15)
45. 이 계명에 대한 전반적 이해
이 계명의 목적은, 불의가 하나님께 가증하므로 각 사람에게 그의 몫을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금지에는, 각 사람이 자기 것을 지키도록 성실히 도우라는 명령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칼빈의 출발점은 소유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만유의 주께서 나누어 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하나님의 분배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도둑질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힘으로 빼앗기, 속임수로 가로채기, 합법을 가장해 탈취하기, 아첨으로 선물을 뜯어내기입니다. 법정 판결로 얻은 것이라도 하나님은 달리 판단하십니다. 교활한 자의 올가미, 힘 있는 자의 냉혹한 법, 약한 자를 낚는 미끼를 다 보시기 때문입니다. 불의는 돈과 땅만이 아니라 '권리'에서도 일어납니다. 맡은 의무를 다하지 않는 청지기, 주인을 배신하는 하인,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주인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 소유는 하나님이 나눠 주신 것
- 폭력·사기·합법 위장·아첨 모두 도둑질
- 법적으로 이겨도 하나님 앞에선 다름
- 맡은 의무를 안 하면 남의 것을 취함
46. 이 계명의 올바른 적용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정직하고 합법적인 이익만 구하는 것이 이 계명을 지키는 길입니다. 불의로 재물을 늘리거나, 남의 고혈을 짜서 부를 쌓거나, 수단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아 탐욕을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조언과 협력으로 다른 사람이 자기 것을 지키도록 돕습니다. 불성실한 사람을 상대할 때는 맞서 싸우기보다 차라리 내 것을 포기할 각오를 하라고 합니다. 넉넉하면 어려운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각자 남에게 진 '의무의 빚'을 갚으라며 관계별로 나열합니다. 백성은 통치자를 존중하고 법에 순종하되 하나님의 사랑을 잃게 하는 것만은 거부합니다. 통치자는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자세로 백성을 돌봅니다. 목사는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고 삶으로 본을 보이며, 신자는 목사를 하나님의 사자로 맞고 생활을 책임집니다.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온유하게 기르고, 젊은이는 노인을 공경하며, 노인은 부드럽게 지도합니다. 종은 눈앞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섬기고, 주인은 종을 같은 주님 아래 있는 형제로 대합니다. 이 규범은 손만이 아니라 마음을 위한 것입니다.
- 만족하고 정직하게 벌라
- 불성실한 자와는 다투기보다 양보
- 넉넉함은 나누라고 주신 것
- 모든 관계에는 서로 갚을 의무가 있다
- 윗사람의 의무도 함께 명령됨
제9계명 ·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애굽기 20:16)
47. 이 계명에 대한 전반적 이해
이 계명의 목적은, 진리이신 하나님이 거짓을 미워하시므로 서로 속이지 말고 진실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거짓 혐의를 씌워 헐뜯거나 뻔뻔한 험담으로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할 수 있는 대로 진실을 말해 이웃의 명예와 소유를 지켜 주라는 적극적 명령도 들어 있습니다. 칼빈은 거짓에 두 갈래가 있다고 봅니다. 악의적 비방으로 이웃의 명예를 해치는 것, 그리고 거짓말로 이웃의 재물을 빼앗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법정 증언으로 읽든 일상의 거짓말로 읽든 큰 차이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대표적인 악행 하나를 들어 같은 종류 전체를 금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정의 거짓 맹세는 3계명에서 다뤘으니, 여기서는 이웃을 해치는 비방과 중상까지 넓혀 보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이름(명예)이 재물보다 귀하다면,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재물을 빼앗는 것보다 더 큰 해입니다.
- 목적: 진리이신 하나님처럼 진실하게
- 금지: 비방, 중상, 거짓 증언
- 적극: 진실을 말해 이웃 명예 지키기
- 법정이든 일상이든 같은 계명
- 명예 훼손은 재물 도둑질보다 큰 해
48. 이 계명의 적용
칼빈은 우리가 이 죄를 얼마나 무심코 짓는지 이상할 정도라고 말합니다. 남의 잘못을 찾아 폭로하는 데서 독이 묻은 쾌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는 핑계도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진리가 허락하는 한 이웃의 명예를 깨끗이 지켜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정죄받는 '험담'이 무엇인지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바로잡으려는 책망, 악을 고치려는 고소나 법적 고발, 다른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는 공적 교정, 위험을 모르는 사람에게 미리 알려 주는 경고는 험담이 아닙니다. 험담이란 남의 명예를 깎으려는 악의와 방자한 욕심에서 나온, 미움 섞인 비난입니다. 농담처럼 포장한 쓰라린 조롱도 금지됩니다. 말재주로 칭찬받으려다 형제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입뿐 아니라 귀와 마음도 다스리시니, 험담을 즐겨 듣는 것과 경솔한 판단도 금하십니다. 근거 없는 의심에 마음 쓰지 말고,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을 공정하게 해석해 그들의 명예를 지켜 주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 남의 허물 폭로에 쾌감 느끼는 병
- "사실이니까"는 핑계가 안 됨
- 책망·고발·공적 교정·경고는 험담 아님
- 농담으로 포장한 조롱도 금지
- 험담을 듣는 귀, 의심하는 마음도 문제
제10계명 ·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출애굽기 20:17)
49. 이 계명에 대한 전반적 이해
이 계명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 영혼 전체가 사랑으로 가득하기를 원하시므로 사랑에 어긋나는 모든 욕망을 마음에서 몰아내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손해를 입힐 욕심이 일어나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이 스며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는 무엇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바라고 시도하든 이웃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난점이 하나 생깁니다. 앞에서 7·8계명이 이미 음행하려는 욕망과 속이려는 의도까지 포함한다고 했으니, 10계명은 중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칼빈은 '의도'와 '탐욕'을 구분해 답합니다. 의도는 정욕이 마음을 지배할 때 의지가 고의로 동의한 상태입니다. 탐욕은 그런 동의가 없어도, 헛되고 악한 대상에 마음이 자극받기만 해도 저절로 생깁니다. 앞의 계명들은 사랑이 의지와 행동을 다스리라고 명했고, 이 계명은 생각의 움직임까지 사랑의 목적 아래 두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 목적: 영혼 전체가 사랑으로 가득하게
- 생각·계획·바람 모두 이웃 유익으로
- 난점: 7·8계명과 중복 아닌가?
- 의도 = 의지가 고의로 동의한 욕망
- 탐욕 = 동의 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끌림
50. 이 계명의 적용
영혼의 모든 힘이 사랑에 사로잡히는 것이 옳고, 사랑에서 벗어나 헤매는 영혼은 병든 것이라는 데 누구도 반대할 수 없습니다. 형제를 무시하고 나만 추구하지 않는다면, 형제를 해치려는 욕심이 마음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사랑으로 완전히 배어 있다면 그런 상상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공상까지 정죄할 수는 없지 않냐는 것입니다. 칼빈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마음을 붙잡고 탐욕으로 찌르는 공상이라고 답합니다. 탐나는 것이 떠오르면 마음은 언제나 들썩이기 때문입니다. 이 해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 길을 열어 주었다고 밝힙니다. 하나님이 집, 아내, 종, 소, 나귀처럼 가장 마음을 끄는 것들을 예로 드신 것은 탐욕이 고개 들 틈을 없애시려는 것입니다. 둘째 돌판 전체를 정리하면, 사랑의 체계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데 뿌리를 둡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의무를 가르쳐도 열매가 없습니다. 끝으로, 이 계명을 둘로 나누는 이들을 반박합니다. "탐내지 말라"가 반복되는 것은 '집'을 먼저 말하고 그 집에 속한 것들을 나열한 것이니, 히브리인들이 하듯 한 계명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탐욕은 사랑이 비어 있다는 증거
- 마음을 붙잡고 찌르는 공상은 죄
-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을 따름
- 둘째 돌판의 기초는 하나님 경외
- 10계명은 둘이 아니라 하나
십계명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 · 51~59
51. 율법의 요체
이제 율법 전체의 목적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삶을 하나님의 순결을 닮도록 빚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에 자신의 성품을 그려 놓으셨으니, 율법대로 사는 사람은 자기 삶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온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율법의 핵심이라고 했고, 율법의 목표는 사람을 하나님께 꼭 붙어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거룩한 삶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먼저 영혼이 하나님 사랑으로 채워져야 거기서 이웃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바울도 사랑이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 곧 참된 경건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반대 입장은 율법이 걸음마 단계의 초보일 뿐이고 참된 선행으로 이끌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칼빈은 모세와 바울의 말이 더 바랄 것 없는 완전한 가르침이라며, 율법 안에서 경건과 사랑의 모든 의무를 찾는 해석이 옳다고 결론짓습니다.
- 율법의 목적: 하나님을 닮은 삶
- 율법대로 살면 하나님 형상이 드러남
- 율법 =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
- 하나님 사랑에서 이웃 사랑이 흘러나옴
- 율법은 초보가 아니라 완전한 가르침
52. 둘째 돌판만 말씀하실 때가 있는 이유
예수님과 사도들은 율법을 요약하면서 첫째 돌판을 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 말씀을 두 돌판 모두에 억지로 적용합니다. 예컨대 마태복음 23:23에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 율법의 더 중한 것이라 하실 때, 칼빈은 '믿음'이 사람 사이의 신실함을 뜻한다고 봅니다. 이것을 하나님을 향한 경건으로 읽어 율법 전체로 넓히는 것은 어리석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사람이 자기 의를 증명할 때 드러내야 할 행위를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에게도 둘째 돌판의 계명들만 대답하셨습니다. 첫째 돌판에 대한 순종은 보통 마음의 의도에 있거나 의식(儀式)에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고, 위선자들은 의식에만 바쁩니다. 참된 의를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것은 사랑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선지자들도 회개를 촉구할 때 늘 믿음, 공의, 긍휼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 경외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경외의 진짜 증거를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마 23:23의 '믿음' = 사람 사이 신실
- 부자 청년에겐 둘째 돌판만 말씀
- 경건은 안 보이고 의식은 위장 가능
- 사랑의 행동이 참된 의를 드러냄
- 선지자들도 경외의 증거를 요구
53. 믿음과 사랑
그렇다면 의의 본질이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는 것보다 사람들과 정직하게 사는 데 있다는 말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칼빈은 결코 아니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지 않으면 모든 면에서 사랑을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랑은 그 사람의 경건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 유익도 끼칠 수 없으니, 하나님은 우리의 의무를 자신에게 한정하지 않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도록 훈련시키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의 온전함을 사랑에 두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가르침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는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반복한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서는 믿음과 예배를 첫째에 두고 사랑을 그 아래에 둡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정의와 공평을 명하는 것은, 그것을 실천해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을 증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경건보다 사랑이 앞선다는 뜻은 아님
- 사랑은 경건의 증거
- 하나님은 이웃 섬김으로 우리를 훈련
- 사랑이 율법을 이룬다
- 순서상 믿음·예배가 먼저, 사랑은 그 열매
54. 이웃에 대한 사랑
우리가 붙들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형제들에게 가장 열매 맺을 때, 하나님의 뜻과 율법에 가장 잘 맞는 삶이 됩니다. 율법 어디에도 "네 몸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 하라"는 규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사랑에 지나치게 기울어 있어서, 율법이 그것을 새삼 부추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계명을 지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덜 애쓰는 사람이 가장 선하게 살고, 자기 이익만 좇는 사람이 가장 추하게 삽니다. "네 몸과 같이"라는 표현은, 자기 사랑만큼 강렬한 것이 없으니 그 강렬한 마음을 이웃에게 돌리라는 뜻입니다. 일부 궤변가들은 "기준이 되는 것이 기준을 적용받는 것보다 앞선다"는 논리로 자기 사랑을 1순위, 이웃 사랑을 2순위에 둡니다. 칼빈은 이를 일축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랑을 규범으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본성의 부패로 이미 자리 잡은 자기 사랑의 열심을 이웃에게로 넓히라고 하신 것입니다.
- 형제에게 열매 맺는 삶이 가장 바른 삶
- 율법에는 '나를 위한' 규정이 없다
- 자기 사랑은 이미 넘친다
- '네 몸같이' = 그 열심을 이웃에게
- 자기 사랑 1순위론은 궤변
55. 이웃 사랑의 범위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이웃'이 가장 먼 사람까지 포함한다고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니 사랑의 계명을 가까운 사람에게만 한정해서는 안 됩니다. 칼빈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친밀한 책임을 지고 돕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혈연, 친분, 이웃 관계가 가까울수록 서로 더 큰 책임을 나누는 것은 인류 공통의 습관이고, 하나님의 섭리가 그쪽으로 이끈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만큼은 예외 없이 온 인류를 품어야 합니다. 야만인과 헬라인,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친구와 원수의 구별이 없습니다.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보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만 바라보면 사랑보다 미움이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불변의 원리를 세웁니다. 그 사람의 성품이 어떻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그 사람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이웃은 가장 먼 사람까지
- 가까운 이를 먼저 돕는 것은 정당
- 그러나 사랑의 마음은 온 인류에게
- 사람을 하나님 안에서 보라
-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사람을 사랑
56. 스콜라 신학자들의 잘못된 논리
"원수를 갚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스콜라 신학자들은 이를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권고'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이 권고를 수도사들에게 지워, 스스로 서원해서 지키는 그들이 일반 그리스도인보다 더 의롭다고 보았습니다. 그 이유로 이 명령들이 은혜의 법 아래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너무 무겁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칼빈은 이것을 흉악한 무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이웃 사랑의 법을 그렇게 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그런 구분이 없고, 오히려 원수 사랑을 요구하는 명령이 흔합니다. 원수가 배고프면 먹이고,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거나 짐에 눌리면 도우라고 합니다. 원수의 짐승에게는 선을 베풀면서 원수 자신에게는 선의를 보이지 말라는 말이냐고 칼빈은 묻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다"는 말씀도 영원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 구절들을 율법에서 지우든지, 하나님을 그저 조언자 정도로 깎아내리는 짓을 그만두든지 해야 한다고 결론짓습니다.
- 스콜라: 원수 사랑은 선택적 '권고'
- 수도사가 지키면 더 의롭다고 봄
- 근거: 그리스도인에겐 너무 무겁다
- 칼빈: 구약에도 원수 사랑 명령이 흔함
- 하나님은 입법자이지 조언자가 아님
57. 원수 사랑은 권고가 아니라 계명이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며, 그래야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크리소스톰도 이 말씀의 의무적 성격을 보고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을 권고로 보면 수도사만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들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세리와 이방인의 무리로 떨어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간음과 도둑질 금지가 원수에게도 적용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계명들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에 포함시키니, 원수도 친구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나옵니다. 교부들도 한결같이 이것을 계명으로 보았고, 그레고리우스 때까지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너무 무겁다"는 주장에 칼빈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려운 계명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연약한 우리에게는 가장 작은 계명까지 다 어렵지만, 우리는 주 안에서 행할 뿐입니다. 은혜의 법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 밖에서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고 성령으로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뜻입니다.
- 원수 사랑은 하나님 자녀의 표지
- 권고로 보면 교회가 세리의 무리가 됨
- 바울: 원수 사랑도 이웃 사랑에 포함
- 어려움은 모든 계명이 마찬가지
- 은혜 = 율법이 마음에 새겨짐
58. '소죄' 구분이 부당한 이유
스콜라 신학자들은 첫째 돌판을 거스르는 은밀한 불경건이나 10계명을 직접 어기는 것을 '소죄'(가벼운 죄)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소죄를 의지가 고의로 동의하지 않았고 마음에 오래 머물지 않는 욕망이라고 정의합니다. 칼빈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 마음에서 빠져 있지 않다면 그런 욕망이 스며들 수조차 없다고 단언합니다.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생각해 보면, 잠깐이라도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영혼에 빈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으니, 영혼의 전부가 하나님 사랑에 모이지 않으면 이미 불순종한 것입니다. 욕망이 마음에 들어왔다면 이미 탐심의 죄를 지었고 율법을 어긴 것이며,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저주가 따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 마음대로 무게를 다는 거짓 저울을 버리고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저울로 재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죄의 삯은 사망이라며 그런 구분을 모릅니다. 늘 위선으로 기우는 우리에게 이런 '진통제'를 주어 게으른 양심을 더 잠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칼빈은 경고합니다.
- 스콜라: 동의 없는 욕망은 가벼운 죄
- 칼빈: 욕망은 영혼의 빈 구석에서 나옴
- 온 마음 사랑에 못 미치면 이미 불순종
- 성경의 저울로 죄의 무게를 재라
- '가벼운 죄' 개념은 양심을 마취시킴
59. 모든 죄는 죽을 죄다
예수님은 계명 중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가장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율법 위반을 사형 판결과 무관한 듯 가볍게 말하는 이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명령의 내용만이 아니라 명령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따져 보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주신 계명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을 어겨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을 침범하는 일이 사소할 수 있느냐고 칼빈은 묻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이미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죄가 죽을 죄라는 사실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어떤 죄든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반역이고, 반드시 진노를 부르며, 예외 없이 심판이 선고됩니다. 성도의 죄가 용서받는 것은 그들이 성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죄 사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 작은 계명 위반도 하나님 권위 무시
- 계명보다 '계명 주신 분'을 보라
- 모든 죄는 반역이고 심판 대상
- 용서는 성도라서가 아니라 긍휼 때문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주일 준수를 비난한 일부 '들뜬' 사람들(33절) | 날을 지키는 것은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 | 의식이 아니라 교회 질서를 위한 방편으로 날을 쓴다 | 고린도전서 14:40, 고린도전서 16:2 고린도전서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 고린도전서 16: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
| '7일 중 하루는 도덕법'이라는 주장(34절) | 일곱째 날 지정만 폐지되고 7일 중 하루는 남는다 | 날짜만 바꾸고 날을 신성시하는 미신은 그대로 둔 것이다. 그림자는 그리스도로 끝났다 | 골로새서 2:16-17, 갈라디아서 4:10-11 골로새서 2:16-17 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갈라디아서 4:10-11 10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
| 날 구분 자체를 없애자는 생각(32절) | 매일 모이면 특정한 날이 필요 없다 | 그럴 수 있다면 좋지만 연약함과 사랑의 원리 때문에 정한 날이 필요하다 | 고린도전서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 |
| 윗사람의 자격을 따지는 생각(36·38절) | 공경할 만한 사람만 공경하면 된다 | 자격보다 섭리가 근거다. 단, 하나님 법을 어기라면 따르지 않는다 | 에베소서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 행동 중심의 도덕(39·40절) | 피를 흘리지 않으면 살인이 아니다 | 분노·미움·계획, 돕지 않는 방관도 살인죄다 | 마태복음 5:22, 요한일서 3:15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 독신 강요·과신(42절) | 하나님이 도우시면 누구나 독신으로 살 수 있다 | 독신은 일부에게 주신 은사다. 하나님은 부르심을 따르는 자를 도우신다 | 마태복음 19:11-12, 고린도전서 7:7, 고린도전서 7:9 마태복음 19:11-12 11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고린도전서 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고린도전서 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
| 결혼 안의 방종(44절) | 부부 사이에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 결혼 안에서도 존중과 절제가 필요하다 | (장절 없음, 암브로시우스 인용) |
| 법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45절) | 판결로 얻은 재산은 정당하다 | 하나님은 합법을 가장한 간계와 압제도 보신다 | 로마서 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
| '사실이면 괜찮다'(48절) | 사실을 말한 것이니 험담이 아니다 | 진리가 허락하는 한 이웃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책망·고발·경고와 험담은 구분된다 | 잠언 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
| 10계명 중복론(49절) | 10계명은 7·8계명과 겹친다 | 의지가 동의한 '의도'와 저절로 일어나는 '탐욕'은 다르다 | 출애굽기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
| 10계명을 둘로 나누는 이들(50절) | "탐내지 말라"가 두 번 나오니 두 계명이다 | '집'을 먼저 말하고 그 구성 요소를 나열한 것이니 한 계명이다 | 출애굽기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
| 율법 초보론(51절) | 율법은 걸음마 단계일 뿐 참된 선행으로 이끌지 못한다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담은 율법은 완전한 가르침이다 | 신명기 10:12-13, 디모데전서 1:5 신명기 10:12-13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디모데전서 1: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
| 마태복음 23:23 해석(52절) | '믿음'은 하나님 경건이니 율법 전체를 가리킨다 | 문맥상 사람 사이의 신실함이다 | 마태복음 23:23, 마태복음 19:18-19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19:18-19 18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
| 자기 사랑 우선론(54절) | 기준인 자기 사랑이 이웃 사랑보다 앞선다 | 이미 넘치는 자기 사랑의 열심을 이웃에게 돌리라는 뜻이다 | 레위기 19:18, 고린도전서 13:5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고린도전서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
| 스콜라 신학(56·57절) | 원수 사랑은 수도사용 '권고'이고 일반 신자에겐 너무 무겁다 | 모든 하나님 자녀의 계명이다. 은혜는 율법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 누가복음 6:27-28, 마태복음 5:45, 레위기 19:18, 예레미야 31:33 누가복음 6:27-28 27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예레미야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 스콜라의 '소죄' 개념(58·59절) | 동의 없는 순간적 욕망은 가벼운 죄이고 죽을 죄가 아니다 | 모든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 사망에 해당한다. 용서는 긍휼로만 받는다 | 로마서 6:23, 에스겔 18:4, 마태복음 5:19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에스겔 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마태복음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
3. 용어
- 의식적 부분(의식법)
- 제사, 절기, 특정한 날 지키기처럼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던 상징적 규정을 말합니다.
- 그림자와 실체
- 구약의 제도는 그리스도를 미리 비춘 그림자이고, 그리스도가 그 몸(실체)이라는 성경의 표현입니다.
- 주일(主日)
- 주님이 부활하신 날, 곧 그리스도인이 모여 예배하는 일요일입니다.
- 경륜
-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며 질서를 세우시는 계획과 방식입니다.
- 둘째 돌판
- 십계명 가운데 사람에 대한 의무를 다룬 5~10계명입니다(첫째 돌판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인 1~4계명).
- 은사(恩賜)
-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능력입니다. 이 편에서는 독신으로 깨끗하게 사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 의도와 탐욕
- 칼빈의 구분으로, 의도는 의지가 고의로 동의한 욕망이고 탐욕은 동의 없이도 마음에 일어나는 끌림입니다.
- 스콜라 신학
- 중세 대학에서 발달한, 철학적 논리로 교리를 체계화한 신학입니다.
- 권고(복음적 권고)
- 스콜라 신학에서 모두의 의무는 아니지만 더 높은 완전을 원하는 사람(주로 수도사)이 지킨다고 본 가르침입니다.
- 소죄(小罪)와 죽을 죄
- 로마 교회가 죄를 나눈 방식으로, 소죄는 쉽게 용서받는 가벼운 죄이고 죽을 죄(대죄)는 은혜를 잃게 하는 무거운 죄입니다.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안식일의 그림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끝났지만,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일과 약한 자에게 쉼을 주는 일은 지금도 유효하다.
- 5~10계명은 금지 속에 적극 명령을 담고 있고, 손의 행동을 넘어 마음 깊은 곳의 욕심까지 다룬다.
- 율법 전체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며, 이웃 사랑은 경건의 증거이고 그 범위는 원수까지다.
- 원수 사랑은 일부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 자녀의 계명이다.
- 모든 죄는 사망에 해당하며, 성도가 용서받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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