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내 몸만 봐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왜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를까?
칼빈은 "사람이 행복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이 앎을 위해 우주와 사람의 몸과 마음, 그리고 역사 속 사건들에 자신의 흔적을 분명하게 새겨 두셨습니다(1-10절). 그런데 사람은 이 증거를 보고도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증거를 '자연'이나 '운명'의 공으로 돌리고, 제각기 자기 신을 만들어 섬깁니다(11-12절). 그래서 자연이 보여 주는 증거는 사람을 하나님께 바르게 데려가지 못합니다. 대신 "몰랐다"는 핑계를 없애는 역할을 합니다(13-15절). 결론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하늘에서 자신을 알려 주셔야 하고,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 결론이 다음 장(1권 6장)의 '성경'으로 이어집니다.
1. 절별 정리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에 자신을 드러내심 · 1-10절
1. 하나님의 영광의 증표가 세상 만물에 분명히 새겨져 있음
칼빈은 복된 삶의 최종 목표가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요한복음 17:3 참조).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도 행복의 길에서 막히지 않도록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질 자체는 사람이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으신 하나하나에 영광의 표시를 새겨 두셨고, 그래서 배우지 못한 사람도 "몰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절의 앞부분은 발췌에서 빠져 있어 칼빈 원문의 알려진 흐름으로 보충했습니다. 칼빈은 시편 104편을 들어 하나님이 빛을 옷처럼 입고 하늘을 장막처럼 펴신다고 말합니다. 하늘은 그 영광이 더 밝게 빛나기에 '하나님의 보좌'라고도 불립니다. 우주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의 영광이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우주를 '보이지 않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 하고, 시편은 하늘이 온 민족에게 말한다고 하며,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분명히 보인다고 선언합니다.
- 행복의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것
- 하나님은 지으신 것마다 영광의 표시를 새기셨다
- 우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비추는 거울
- 아무리 배우지 못해도 '몰랐다'는 핑계는 안 된다
- 근거: 시편 → 히브리서 → 바울 순서로 쌓아 감
2. 하늘과 땅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의 증거
하늘과 땅에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리는 증거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칼빈은 이 증거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천문학이나 의학처럼 자세히 연구해야 보이는 깊은 증거입니다. 다른 하나는 배우지 않은 사람도 눈만 뜨면 보이는 증거입니다. 칼빈은 학문을 낮추지 않습니다. 별의 움직임과 위치, 거리를 재는 일에는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연구를 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더 높은 자리에서 봅니다. 사람 몸의 연결과 균형, 쓰임새를 살핀 고대 의사 갈렌의 연구도 같은 예입니다. 하지만 학문이 없다고 하나님의 솜씨를 못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질서 있게 움직이는 수많은 별과 사람 몸의 구조가 누구에게나 그 지혜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 증거는 '깊은 것'과 '누구나 보는 것' 두 층
- 과학 연구는 하나님 지혜를 더 깊이 보게 돕는다
- 학문이 없어도 볼 수 있으니 누구도 제외되지 않음
- 예시 1: 질서 있는 별들(천문학)
- 예시 2: 사람 몸의 구조(갈렌의 의학)
3. 사람은 하나님 지혜의 탁월한 증거
어떤 철학자들은 사람을 '소우주'라고 불렀습니다. 칼빈은 이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고 봅니다.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과 지혜를 보여 주는 놀라운 일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더듬어 찾는 마음이 있다고 말한 뒤,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찾으려고 밖으로 멀리 나갈 필요가 없고, 자기 안을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것마저 싫어하는 사람은 게으름에 대해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다윗도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다가 곧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고 외칩니다. 젖먹이의 옹알이조차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한 자들을 반박할 만큼 웅변적이라고도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시인 아라투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놀라운 선물을 주셔서 자신이 우리 아버지임을 증언하신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같은 사랑을 먼저 맛보지 않으면 아무도 기꺼이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 사람은 '소우주', 작은 우주
- 하나님을 찾으려면 먼저 내 안을 보라
- 젖먹이 옹알이도 하나님 영광을 증언
- 하나님은 선물로 아버지이심을 보이신다
- 사랑을 맛봐야 기꺼이 섬기게 된다
4.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의 배은망덕
(이 절 뒷부분은 OCR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어 읽을 수 있는 부분과 문맥으로 정리했습니다.)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일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이 있고,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이 쌓인 '창고'가 있습니다. 그러니 찬송이 터져 나와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오히려 교만해집니다. 받은 재능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며 땅에 묻어 버립니다. 더 나쁜 사람들은 본성 속에 심긴 '신에 대한 씨앗'을 거꾸로 써서 하나님의 이름을 짓누르려 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이 우연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 자리에 '자연'을 앉힙니다. 칼빈은 이런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을 신화 속 거인 키클롭스에 빗댑니다. 받은 재능을 무기 삼아 하나님께 싸움을 건다는 뜻입니다. 칼빈은 그들에게 묻습니다. 작은 알갱이들이 우연히 모였을 뿐이라면, 음식을 소화해 일부는 내보내고 일부는 피로 바꾸어 온몸이 한 지휘자 아래 있는 것처럼 움직이게 하는 일은 누가 하느냐고 말입니다.
- 내 몸은 하나님의 공장이자 보물 창고
- 받은 것을 내 것이라 하며 땅에 묻는다
- 하나님 대신 '자연'에게 공을 돌린다
- 에피쿠로스파: 우연한 알갱이들의 결합?
- 반문: 그럼 몸의 정교한 협력은 누가?
5. 창조주와 피조물을 혼동하는 오류
칼빈은 에피쿠로스 학파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가 겨냥하는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한 주장을 끌어와 영혼 불멸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권리를 빼앗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영혼이 몸의 기관을 쓴다는 점을 근거로 영혼을 몸에 묶어, 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칼빈의 반박은 이렇습니다. 하늘을 재고 별의 수와 거리, 궤도를 계산하는 일은 몸의 조직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기억하고 상상하고 과거와 미래를 잇고 놀라운 것을 발명하는 영혼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잘 때도 영혼은 유익한 생각을 하고 미래를 내다봅니다. 칼빈은 이것들이 사람 속에 심긴 '신적 지혜'와 '불멸성'의 증표라고 봅니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면서 하늘의 재판관을 인정하지 않거나, 발명의 공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릴 찬송을 가로채는 일입니다. 이어서 칼빈은 우주 전체에 하나의 영혼이 퍼져 있다는 생각(베르길리우스의 시가 대표적)과 루크레티우스를 비판합니다. 이런 생각은 경건을 낳지 못하고, 참 하나님을 쫓아내고 허구의 신을 세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이 좋은 뜻으로 "자연이 하나님이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고 칼빈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표현은 부적절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이고, 둘을 섞으면 엉뚱한 대상을 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 영혼의 능력은 몸의 조직으로 설명 안 됨
- 기억·상상·발명·꿈 = 불멸성의 증표
- 옳고 그름을 아니 하늘의 재판관도 있다
- 발명의 공을 나에게 돌리면 찬송을 훔치는 것
- '세계영혼'은 참 하나님을 허구로 바꾼다
- 자연 ≠ 하나님, 자연은 하나님이 세운 질서
6. 우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바라보게 함
그래서 우리는 자기 본성을 볼 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은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고 믿고 부르고 예배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선물을 누리면서 주신 분을 무시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넓은 하늘과 땅을 말씀으로 붙드십니다. 천둥과 번개, 폭풍을 일으켰다가 곧 잠잠하게 하시고, 땅을 삼킬 듯한 파도를 일으켰다가 가라앉히십니다. 이것이 누구의 능력인지 모르는 체만 하지 않으면, 누구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욥기와 이사야서에도 이런 찬송이 많지만, 칼빈은 창조를 다룰 때(1권 14장) 자세히 보겠다며 넘어갑니다. 발췌가 끊긴 뒷부분에서 칼빈은 이렇게 이어 갑니다(원문 대조 권장). 이 길은 교회 안 사람과 밖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분의 영원하심을 생각하게 하고, 그분이 만물을 짓고 붙드시는 이유는 오직 그분의 선하심에 있습니다.
- 내 본성을 볼 때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
- 선물은 누리고 주인은 무시 = 가장 어리석음
- 폭풍과 잔잔함 모두 말씀으로 붙드는 능력
- 자세한 창조 이야기는 1권 14장에서
7. 사람을 향한 섭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이 절은 제목과 끝 몇 줄만 발췌에 있습니다. 아래는 칼빈 원문의 알려진 흐름으로 보충한 것이니 원문과 대조해 주세요.) 자연의 규칙적인 움직임 말고, 사람의 일과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에게는 너그러우심을, 악한 사람에게는 엄하심을 보이십니다. 그런데 악인이 벌받지 않고 잘되며 의인이 고난받는 모습도 자주 보입니다. 칼빈은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의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죄를 분명히 벌하시면, 그것은 그분이 모든 죄를 미워하신다는 표시입니다. 많은 죄를 그냥 두시면, 그것은 또 다른 심판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발췌에 남은 끝부분에 따르면, 하나님은 비참한 죄인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십니다. 아버지의 사랑보다 큰 사랑을 깨닫게 하셔서 그들의 악함을 꺾으실 때가 많습니다.
- 사건과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보인다
- 경건한 이에게 너그러움, 악인에게 엄함
- 벌받은 죄 하나 = 모든 죄를 미워하신다는 표시
- 벌받지 않은 죄 = 또 다른 심판이 남았다는 뜻
- 자비로 죄인의 악함을 꺾으시기도 한다
8.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칼빈은 시편 107편을 거의 한 구절씩 따라갑니다. 사막에서 헤매는 사람을 지켜 길로 이끄시고, 굶주린 사람을 먹이시고, 갇힌 사람을 풀어 주시고,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을 고치시고, 파선한 사람을 항구로 돌려보내시고, 땅을 메마르게도 비옥하게도 하시고, 낮은 사람을 높이고 높은 사람을 끌어내리십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우연'이라 부르지만, 시편 기자는 이것이 섭리와 아버지 같은 자비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은 기뻐하고 악인은 입을 다물게 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이 광경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이것을 깨닫는 것이 드문 지혜라고 외칩니다. 다른 일에는 눈이 밝은 사람도 여기에는 어둡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 백 명 중 하나도 안 된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어둠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막을 수 없을 것 같던 악인의 분노와 교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데서 그것이 드러납니다. 이 절 끝부분은 발췌에서 빠져 있으니 원문과 대조해 주세요.
- 시편 107편: 구원의 여섯 장면
- 우연처럼 보이는 일 = 섭리와 자비의 증거
- 경건한 자는 기뻐하고, 악인은 입을 다문다
- 이것을 알아보는 것은 드문 지혜
- 그래도 하나님의 능력은 숨겨져 있지 않다
9. 하나님을 찾는 바른 길 — 본질이 아니라 일하심을 보라
(절 제목과 앞부분은 발췌에서 빠져 있어, 제목은 내용에 맞게 붙였습니다.) 남은 부분의 첫 줄은 마음 깊이 닿는 지식이 사람을 더 깊이 움직인다는 내용입니다. 앞부분에서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을 스치는 빈 생각이 아니라 마음에 뿌리내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가장 바른 방법과 순서는 대담한 호기심으로 하나님의 '본질'을 파고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캐낼 대상이 아니라 찬송할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알려 주시는 '일하심' 속에서 그분을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 안에 계시니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한 말이 바로 이 뜻입니다. 다윗도 먼저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다 헤아릴 수 없다고 고백한 뒤, 그분이 하신 일들을 말하며 그 위대하심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찾을 때 우리는 놀라움에 잠기고 마음 깊이 감동받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 우리는 하나님을 다 파악할 수 없고 그 크심에 압도될 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바라보며 그분의 선하심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우리가 갈 길입니다.
-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에 뿌리내리는 지식
- 본질 캐기 ✕ → 일하심 바라보기 ○
- 하나님의 본질은 연구가 아니라 찬송 대상
- 다윗: 먼저 고백하고, 그다음 하신 일을 말함
- 결과는 놀라움과 마음의 감동
10.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목적
이렇게 얻은 지식은 두 가지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가올 생명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하나님의 너그러우심과 엄하심의 예들은 아직 미완성이고, 더 큰 것의 '서막'일 뿐입니다. 완전한 모습은 다음 세상에서 드러납니다. 경건한 사람은 모욕과 손해를 당하고 악인은 잘나가며 벌받지 않는 현실을 보면, 불의가 벌받고 의가 상받는 다음 세상이 반드시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또 신자들도 주님의 매를 자주 맞는 것을 보면, 악인은 언젠가 더 무거운 매를 맞으리라 확신하게 됩니다. 칼빈은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지금 모든 죄가 다 벌받는다면 마지막 심판에 남겨 둘 것이 없다고 여길 것이고, 어떤 죄도 벌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섭리가 없다고 여길 것이라는 내용입니다(『하나님의 도성』 1권 8장). 이 절 뒷부분은 발췌에서 빠져 있습니다. 섭리 이야기는 뒤에서(1권 16장) 더 다루겠다며 넘어가는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 지식의 목적 ① 예배 ② 내세의 소망
- 지금 보이는 것은 더 큰 것의 서막
- 악인 형통·의인 고난 → 내세 심판의 근거
- 신자가 맞는 매 → 악인은 더 큰 매
- 아우구스티누스: 일부만 벌하시는 이유
사람은 하나님을 깨닫고 경배하지 못하고 미신과 혼란에 빠짐 · 11-12절
11.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증거가 사람에게 유익이 없음
하나님은 자신과 자신의 영원한 나라를 일하심이라는 거울 속에 그렇게 분명히 그려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둔해서 그 증거에 점점 무뎌지고, 증거는 아무 유익 없이 흘러가 버립니다. 하늘과 땅을 보며 창조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우리 중에 몇이나 됩니까? 평소와 다른 일이 일어나도 사람들은 대개 맹목적인 운명 탓으로 돌립니다. 이따금 하나님을 떠올리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렴풋한 생각은 곧 육체의 헛된 상상에 빠져 진리를 썩게 만듭니다. 오류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참 하나님을 이상한 만든 것과 바꾼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무지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장 종교적이고 사려 깊다는 플라톤도 자신이 생각해 낸 '둥근 공'(구 모양의 신)에 빠져 헤맸습니다. 길을 보여 줘야 할 지도자들이 이렇게 넘어지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 증거는 분명한데 우리가 둔해서 무뎌진다
- 특별한 일도 '운명' 탓으로 돌린다
- 잠깐 하나님을 떠올려도 곧 상상으로 썩힌다
- 모두 참 하나님을 만든 것과 바꾼다
- 플라톤 같은 최고 지성도 예외가 아니다
1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인간의 미신과 철학
그래서 온 땅이 오류의 진흙탕으로 덮여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미로 같아서, 민족마다 저마다 거짓 신을 두었고 사람마다 자기 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지에 경솔함이 더해져 큰 샘에서 물이 솟듯 사람 마음에서 신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칼빈은 그 미신의 목록은 끝이 없으니 늘어놓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 절 중간은 발췌에서 빠져 있습니다. 남은 부분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신에 대한 의견이 이렇게 갈리는 것을 보고 끝없는 논쟁보다 차라리 신을 부정하는 편이 낫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칼빈은 이것이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봅니다. 더 정확히는 자기 불경건을 감추려고 사람들의 무지를 핑계로 삼은 것입니다. 무지는 하나님을 떠나는 일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칼빈은 시모니데스 일화도 소개합니다. 통치자 히에로가 "신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자, 시모니데스는 하루, 이틀씩 답을 미루다가 "생각할수록 더 희미해집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칼빈은 그가 지혜롭게 판단을 미룬 셈이라고 평합니다. 그리고 이 일화에서 결론을 끌어냅니다. 자연에게서만 배우면 확실한 것을 붙들지 못하고, 결국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게 됩니다.
- 사람 마음은 신을 만들어 내는 샘
- 의견이 갈리니 신은 없다? → 핑계일 뿐
- 무지는 하나님을 떠날 이유가 못 된다
- 시모니데스: 생각할수록 희미해진다
- 자연만으로는 '알지 못하는 신'에 이른다
오류를 고집하므로 결코 핑계할 수 없음 · 13-15절
13. 사람이 만든 그릇된 종교는 오류 속에서 하나님을 거역함
각자 자기 생각대로 종교를 만들면 순수한 신앙이 반드시 썩고, 그 사람은 한 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그들은 그럴 뜻이 아니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의도나 확신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눈먼 마음으로 하나님 자리에 다른 것을 앉히는 사람은 버림받은 자라고 성령께서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복음으로 참 예배를 배우기 전의 이방인은 '하나님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절 중간은 발췌에서 빠져 있으니 원문과 대조해 주세요. 남은 부분에 따르면, 가장 뛰어나다는 사람들도 어둠 속에서 헤매니 성령께서 사람이 만든 모든 예배를 거절하시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크세노폰의 기록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조차 "조상의 방식과 도시의 관습대로 신을 섬기라"는 아폴로 신탁을 칭찬했습니다. 칼빈은 묻습니다. 죽을 인간이 세상을 훨씬 넘어서는 일을 자기 권위로 정할 권리가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사람은 남의 판단보다 자기 판단을 따르려 하므로, 관습과 전통은 경건을 붙드는 끈으로서 너무 약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하늘에서 자신을 증언하셔야 합니다.
- 내 방식대로 만든 종교 = 하나님에게서 이탈
- '좋은 뜻이었다'는 의도는 변명이 안 된다
- 복음 이전의 이방인은 '하나님 없는 사람'
- 소크라테스: 조상과 도시의 관습대로 섬겨라
- 칼빈: 관습은 약한 끈,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셔야
14. 하나님의 영광이 자연에 밝히 드러나 있으나 사람은 자기 길을 고집함
창조 세계는 창조주의 영광을 위해 수많은 등불을 켜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등불만으로는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합니다. 불꽃이 번쩍이기는 해도 더 온전한 빛이 오기 전에 꺼져 버립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세상을 '보이지 않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부르면서 "믿음으로" 세계가 말씀으로 지어진 줄 안다고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분명히 드러나 있어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내적 조명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볼 눈이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분명히 보인다고 말한 것도 사람의 분별력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핑계할 수 없다는 뜻일 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곳에서는 비와 열매로 자신을 증언하셨는데도 민족들이 제 길로 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증언이 필요 없는 분이면서도 갖가지 친절로 사람을 이끄시지만,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치명적 오류를 계속 범합니다.
- 자연의 등불은 밝지만 길을 끝까지 비추진 못함
- 히브리서 11:3의 열쇠는 '믿음으로'
- 볼 눈은 하나님의 내적 조명으로 생긴다
- 로마서 1:19의 뜻: 깨달을 수 있다 ✕, 핑계 못 함 ○
- 비와 열매로 증언하셔도 사람은 제 길로 간다
15.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변명의 여지가 없음
(이 절 앞부분은 발췌에서 빠져 있어 칼빈 원문의 알려진 흐름으로 보충했습니다. 원문과 대조해 주세요.) 우리에게 하나님을 순수하게 알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그 둔함의 잘못이 우리 안에 있으니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말 못하는 피조물이 큰 소리로 증언하고, 눈 없는 피조물이 보여 주고, 이성 없는 피조물이 가르치는데, 귀가 없다, 눈이 없다, 머리가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바른 길을 가리키는데도 헤맨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칼빈은 균형을 잡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씨앗을 썩힌 책임은 분명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피조물의 단순한 증언만으로 우리가 충분히 배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은 우주를 보며 신적인 것을 조금 맛본 뒤 곧 참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꿈과 환상을 세워 의와 지혜와 능력을 엉뚱한 것에 돌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날마다 하시는 일을 악의적으로 판단해 그분께 돌아갈 찬송까지 빼앗습니다.
- 둔함의 잘못은 우리 안에 있다
- 말 못하는 피조물도 증언하니 핑계 불가
-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 그래도 자연의 증언만으로는 충분히 못 배운다
- 다음 장(1권 6장) '성경'이 필요한 이유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에피쿠로스 학파 (4절) | 세상과 몸은 작은 알갱이들이 우연히 모여 생긴 것이고, 신은 관여하지 않는다 | 소화와 영양 분배처럼 몸이 한 지휘자 아래 있듯 협력하는 일은 우연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받은 재능으로 하나님께 대드는 배은망덕이다 | 이 대목엔 직접 인용 없음. 편 전체 근거는 로마서 1:19-20 |
|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끌어온 학자들 (5절) | 영혼은 몸의 기관에 묶여 있어 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 천체 계산, 기억, 상상, 발명, 꿈 같은 영혼의 능력은 몸의 조직을 넘어선다. 이것이 불멸성의 증표다 | 직접 인용 없음 |
| 세계영혼설 (베르길리우스 등, 5절) | 하나의 영이 우주에 퍼져 만물에 생기를 주고, 만물은 신의 일부다 | 경건을 낳지 못한다. 참 하나님을 쫓아내고 허구의 신을 세운다 | 직접 인용 없음 |
| "자연이 하나님이다"라는 표현 (5절) | 경건한 뜻으로 쓰면 괜찮지 않은가 | 뜻은 좋을 수 있지만 부적절하다. 자연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이고, 섞으면 피조물을 섬기게 된다 | 직접 인용 없음 |
| 우연·운명론 (8, 11절) | 인생의 일은 우연이나 운명으로 일어난다 | 우연처럼 보이는 일이 섭리와 자비의 증거다. 깨닫는 것이 드문 지혜일 뿐이다 | 시편 107:4-43 4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 |
| 악인 형통의 문제 (7, 10절) | 악인이 잘되고 의인이 고난받으니 하나님의 다스림은 없다 | 일부를 벌하심은 모든 죄를 미워하신다는 표시이고, 남겨 두심은 내세 심판이 있다는 증거다 | 발췌에는 직접 인용 없음 (아우구스티누스 인용) |
| 플라톤 (11절) | 신은 완전한 구 모양이다 | 가장 사려 깊은 철학자도 자기가 만든 생각에 빠져 헤맸다 | 직접 인용 없음 |
| 의견이 갈리니 신을 부정하자 (12절) | 신에 대한 의견이 너무 달라 차라리 신이 없다고 하는 편이 낫다 | 불경건을 감추려는 핑계다. 무지는 하나님을 떠날 이유가 못 된다 | 직접 인용 없음 |
| 시모니데스의 판단 유보 (12절) | 생각할수록 신은 희미해지니 판단을 미룬다 | 자연만으로는 확실한 것을 붙들 수 없다는 증거다 | 사도행전 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
| 소크라테스와 아폴로 신탁 (13절) | 조상의 방식과 도시의 관습대로 신을 섬기면 된다 | 인간은 하늘의 일을 정할 권위가 없고, 관습은 약한 끈이다. 하나님이 친히 증언하셔야 한다 | 직접 인용 없음 |
| "좋은 의도였다" (13절) | 하나님을 떠날 뜻은 없었다 | 의도와 상관없이 하나님 자리에 다른 것을 앉히면 하나님에게서 떠난 것이다 | (장절 미상, 에베소서 2:12로 보임) |
| 자연만으로 충분하다 (14-15절) | 자연을 잘 관찰하면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다 | 자연은 핑계를 없앨 뿐 바른 길로 끝까지 이끌지 못한다. 믿음과 내적 조명이 필요하다 | 히브리서 11:3, 로마서 1:19, 사도행전 14:16-17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로마서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사도행전 14:16-17 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
3. 용어
- 소우주(小宇宙, microcosm)
- 사람 한 명 안에 우주의 놀라움이 압축되어 있다는 뜻의 옛 철학 표현입니다.
- 섭리(攝理)
- 하나님이 만물과 사람의 일을 계속 돌보고 다스리시는 일입니다. 1권 16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 신성·신격(神性·神格)
-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성질, 곧 신다움입니다.
- 경건(敬虔)
-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그분께 마음을 드리는 태도입니다.
- 불멸성(不滅性)
- 영혼이 몸이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성질입니다.
- 에피쿠로스 학파
- 세상이 작은 알갱이(원자)의 우연한 결합으로 생겼고 신은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본 고대 그리스 철학 학파입니다.
- 세계영혼
- 하나의 신적 영혼이 우주 전체에 퍼져 만물을 살린다는 고대 사상입니다. 오늘날 범신론(모든 것이 신이라는 생각)과 비슷합니다.
- 신탁(神託)
- 고대 신전에서 신의 뜻이라며 내려 주던 말입니다.
- 미신(迷信)
- 하나님이 알려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어낸 생각으로 섬기는 신앙입니다.
- 일반계시
- 자연과 양심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을 가리키는 후대의 신학 용어입니다. 칼빈이 이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이 장의 내용을 설명할 때 흔히 씁니다.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하나님은 우주와 사람의 몸과 마음, 역사 속 사건에 자신의 흔적을 분명하게 새겨 두셨다.
- 하나님을 찾는 바른 길은 그분의 본질을 캐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을 보며 찬송하는 것이다.
- 사람은 이 증거를 '자연'이나 '운명', 자기 공로로 돌리고 제각기 신을 만들어 섬긴다.
- 그래서 자연의 증거는 우리를 하나님께 끝까지 이끌지 못하고, 핑계만 없앤다.
- 하나님이 하늘에서 친히 자신을 알려 주시고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한다. 이것이 다음 장의 '성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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