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7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

25장 완성

헤르만 바빙크 『개혁파 교의학』 (새물결플러스, 단권 축약본)

글자100%
한눈에 보기

❓ 그리스도의 재림 후 만물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 주의 날은 24시간이 아니라 재림으로 시작되어 옛 시대가 새 시대로 바뀌는 전환점이다. 모든 사람이 다시 살아나 심판을 받는다.
  • 부활한 몸은 묻힌 몸과 같은 사람이지만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재형성된다. 구속은 새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다.
  • 심판 기준은 율법과 복음, 곧 말씀 전체이고 핵심은 믿음의 유무다. 악인의 영원한 형벌은 정의롭기에 하나님의 선하심과도 맞는다.
  • 세상은 없어지지 않고 불로 깨끗해져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며, 하늘의 예루살렘이 땅에 내려온다.
  • 구원받은 이들은 하나님과 매개 없이 사귀며 기쁨으로 섬기고, 마침내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신다.

앞 장들의 중간상태와 재림에 대한 기대를 이어받아 재림 이후 실제로 펼쳐지는 사건들을 전개한다. 『개혁파 교의학』의 마지막 장으로,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결론으로 교의학 전체를 닫는다.

1. 주의 날 원서 1249–1252쪽

“그리스도의 구속은 두 번째 창조나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다.” 그래서 같은 몸이 다시 산다.

  • ‘주의 날’은 열두 시간이나 스물네 시간이 아니다. 구약에서 그것은 하나님이 왕으로 백성을 찾아와 원수에게서 건지시는 때, 곧 옛 시대가 새 시대로 바뀌는 전환점이었다.
  • 신약: 초림과 함께 현 시대의 마지막 자락이 시작되었다(고전 10:11). ‘오는 시대’는 재림과 함께 열린다. 심판의 ‘시간’(호라, 본래 계절)도 육십 분보다 긴 때인 경우가 많다. 재림 때의 일은 온 세계에 미치므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신자의 부활과 변화 자체는 순식간이다(고전 15:52).
  • 부활과 최후 심판은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사건이다.
  1. 누가 일으키는가자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능력. 성부가 성자를 통해(죽은 자 가운데 처음 사신 분, 부활이자 생명)
  2. 누가 일어나는가신자와 불신자 모두, 보편적 부활(요 5:29). 그래서 일차적으로 심판 행위
  3. 참된 부활그러나 성경은 신자 공동체의 부활을 앞세운다. 몸과 영혼이 결합된 신자가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다시 지어지는 사건
  4. 순서죽은 신자의 부활 → 산 자의 변화 → 함께 공중에서 주를 만남
  • 부활한 몸은 무덤에 묻힌 몸과 같은 몸이다. 예수는 장사되신 그 몸으로 살아나셨고, 바울은 씨앗에서 알곡이 나오듯 부활체가 죽은 몸에서 나온다고 가르친다(고전 15:36).
  • 이 교리는 몸을 영혼의 감옥으로 보는 모든 이원론을 거부한다. 사람의 본질은 한 인격 안에서 몸과 영혼이 하나로 결합된 데 있다.
화장과 매장바빙크가 화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화장이 하나님의 능력을 막기 때문이 아니다. 화장은 이교에서 왔고 기독교 윤리에 맞지 않는다. 매장은 하나님의 형상, 형벌로서의 죽음, 부활 신앙과 어울린다. 그리스도인은 시신을 인위적으로 보존하지도 기계적으로 없애지도 않고, 땅의 품에 맡겨 부활의 날까지 쉬게 한다.

2. 부활체의 연속성과 차이 원서 1252–1253쪽

같은 몸이지만 같은 원자는 아니다. 형태가 씨로 남는다. 부활체는 영화롭게 재형성된 몸이다.

  • 지상의 몸과 부활체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각 사람은 자기 정체성을 지닌다. 그 방식은 알 수 없고 억측해서도 안 된다.
  • 성경은 엄밀히 ‘육’(flesh)이 아니라 ‘몸’(body)의 부활을 가르친다. 성경의 부활 사례들은 온전한 몸의 부활이었고 그리스도의 몸은 부패 전에 일어났지만, 재림 때 일어날 몸들은 완전히 썩어 다른 피조물의 일부가 된 몸들이다.
  • 그러므로 원자와 분자가 실제로 다시 모인다는 ‘육의 부활’도, 죽는 순간 부활이 일어난다는 애매한 추론도 성경의 뜻이 아니다.

홀스텐·홀츠만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전 15:50) → 바울은 몸의 부활을 부정했다.

바빙크

오독이다. 바울은 고린도의 부활 부인자들과 싸웠고 무덤의 그 몸이 일어난다고 확신했다. 다만 부활은 옛 몸의 갱생(그대로 되살림)이 아니라 재형성, 곧 썩을 몸이 불멸과 영광을 덧입는 것이다(고전 15:35–54).

구분현재의 몸부활의 몸
다스리는 원리혼이 살리는 자연적 몸영(πνευμα)이 다스리는 신령한 몸(σωμα πνευματικον)
구성피와 살더 이상 피와 살이 아니나 실체는 여전히 물질
삶성적 삶, 음식 필요성적 삶을 넘어서고(마 22:30) 음식 불필요. 타락 전 아담의 몸과도 구별
상태연약함·썩음불멸과 영광(빌 3:21)
  • 동일성은 어디에? 원자의 수가 아니라 구조와 형태. 살아 있는 동안에도 몸의 물질은 계속 바뀌지만 정체성은 유지된다.
  • 바빙크의 제안: 몸의 ‘유기적 틀’ 또는 ‘개별성의 패턴’이 죽음 후에도 남아 부활체의 ‘씨’가 된다고 보아도 불합리하지 않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물질의 궁극 요소도 모르는 우리에게 이런 무지는 낯설지 않다.
  • 부활체는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고 땅에서 난다. 영이나 혼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3. 최후의 심판 원서 1255–1259쪽

역사는 한 차례 심판이고, 참된 심판은 마지막 날에 있다. 최후 심판은 말씀 전체를 기준으로 한 그리스도의 공개적 승리다.

“세계사가 곧 세상의 심판” (실러)

  • 참인 절반: 초림은 구원하려 함이었으나(요 3:17) 이미 믿는 자에게 영생이, 믿지 않는 자에게 진노가 머문다. 역사 속에서 내재적·영적 심판이 진행 중이다.

거짓인 절반

  • 범신론에서 나온 말. 역사가 곧 심판이라면 심판은 자연 과정이 되고 선악의 대비가 사라지며, 자연 질서를 도덕 질서에 굴복시킬 하나님도 없다.
  • 성경은 하늘의 큰 상을 말하고, 피조물과 순교자와 교회가 최후 심판을 부르짖는다.

심판자와 기준

  • 심판은 성부께 돌려지되 성부가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다(요 5:22). 그러므로 각 사람과 그리스도의 관계가 영원한 운명을 가르고, 핵심은 믿음의 유무다.
  • 일차 기준은 복음(요 12:48). 그러나 복음은 율법에 반하지 않는다. 믿으라는 요구 자체가 율법에 뿌리를 두고 복음은 율법의 회복·성취다. 그러므로 기준은 율법과 복음을 합한 말씀 전체다.
  • 책에 기록된 각자의 행위에 따라(계 22:12). 행위는 마음의 생명 원리가 맺은 열매이며, 말과 마음속 은밀한 바람까지 드러난다.
  • 받은 계시의 분량이 고려된다. 주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은 자는 더 맞고, 복음을 듣지 못한 자는 율법에 따라 심판받는다(롬 2:12).

심판의 성격

  • 양심 안의 내적 사건만이 아니다. 성경은 재림·부활·심판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므로 모두 영적으로 풀 여지가 적다. 외적으로 실현되고 모든 피조물 앞에 드러나므로 특정한 장소와 시간이 필요하다.
  • 단서: 부활과 승천 사이에 40일이 있었듯, 신자의 부활·변화가 세상이 새롭게 된 뒤의 온전한 영광과 곧바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신자도 예외 없이 심판대 앞에 서지만 정죄받지 않는다. 부활과 변화가 그들의 칭의를 포함한다.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과 악한 천사들을 심판하는 일에 참여한다(고전 6:2–3).

4. 게헨나와 영원한 불 원서 1260–1262쪽

게헨나는 교제의 상실이자 몸과 영혼의 실제 형벌이다. 부활 후 악인이 던져지는 최종 처소다.

  1. 지명예루살렘 남서쪽 힌놈의 골짜기.
  2. 아하스·므낫세자녀를 불살라 바치는 몰렉 숭배의 자리.
  3. 요시아훼파되어 부정한 곳으로 선언(왕하 23:10).
  4. 예레미야살육의 골짜기가 되리라 예언(렘 7:32).
  5. 묵시문학악인들이 심판받기 위해 모이는 자리 → 죽은 후 악인이 영원한 불로 심판받는 곳. 의인의 처소를 ‘에덴동산’이라 부른 것과 짝을 이룬다.
  • 불은 고대부터 야웨의 진노의 상징이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고(신 4:24), 나답과 아비후·불평하던 백성·고라 무리가 불로 죽었다. 예언자들은 꺼지지 않는 불을 말했다(사 66:24). 그러므로 지옥 불은 신약이 새로 꾸민 그림이 아니라 구약 전체의 진노 계시가 완성된 것이다.
  • 신약은 게헨나를 음부·감옥·구덩이(최후 심판 이전의 중간 거처)와 구별한다. 게헨나는 부활 후 몸과 영혼이 함께 던져지는 최종 장소다. 풀무불(마 13:42)과 불못은 같은 곳의 다른 이름이다.
  • 그곳으로 가는 자: 짐승과 거짓 예언자, 사탄과 그 천사들(마 25:41), 사망과 음부, 모든 악인(계 20:14–15).

박탈 ‘바깥’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끊어진 자리(마 7:23).

형벌 ‘가장 깊은 곳’

울며 이를 가는 형벌과 멸망의 자리.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막 9:48). 두 번째 사망(계 21:8).

5. 영원한 형벌의 대안들 원서 1262–1273쪽

정의를 부인하는 선은 참된 선이 아니다. 영원한 형벌은 정의롭기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충돌하지 않는다.

  •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형벌을 완화하는 인도주의적 감성과 함께 반론이 쏟아졌다: 하나님의 선하심·정의에 맞지 않는다, 불·구더기·어둠의 이미지가 충돌한다, ‘영원한’은 끝없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기간일 뿐이다.
대안주장바빙크의 반박
가설적 보편구원론죽음 이후에도 회개가 영원히 열려 있다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와 돌아간다는 범신론적·이교적 뿌리. 죄를 불법이 아닌 진화의 한 단계로 만든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날은 없다
무조건적 보편구원론 (ἀποκαταστασις)오리게네스에서 슐라이어마허까지: 결국 모두(마귀까지) 구원된다
조건적 불멸성소키누스주의, 에드워드 화이트: 불멸은 순종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 악인은 소멸파멸을 존재의 소멸로 읽어 윤리적 죽음과 물리적 소멸을 혼동. 첫째 사망이 인간을 없애지 않듯 둘째 사망도 그렇다(계 2:11)
  1. 감정은 정의를 규정 못 한다인본주의가 형법의 잔인함을 끝낸 공로는 인정. 그러나 죄책 감각이 약해지고 정의의 기준이 하나님에게서 여론으로 옮겨 갔다. 여론이 정의를 대신하면 가야바의 논리(요 11:50)가 정의의 언어가 된다
  2. 예수의 경고누구보다 온유하신 예수께서 영원한 형벌을 가장 자주 경고하셨다
  3. 아이오니오스(αἰωνιος) 영생에도 똑같이 쓰인다(마 25:46). 둘 다 변화 없는 내세에 속한다. 형벌의 끝을 말하는 구절은 한 마디도 없다
  4. 죄의 무한성죄는 지존하신 하나님을 거스르는 반역이므로 무한하다
  5. 정의 = 선영원한 형벌이 정의롭다면 선하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정의로운 것은 곧 선하기 때문이다
단서형벌은 행위의 정도에 따라 차등이 있고(마 10:15), 그 목적은 하나님의 덕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천국은 그리스도가 건지신 지옥을 전제한다. 지옥이 없다면 구원의 위대함도 손상된다.

6. 창조의 회복 원서 1274–1279쪽

불은 정화할 뿐, 실체는 하나도 잃어버려지지 않는다. 세상은 소멸도 영속도 아닌, 불로 정화되어 재창조된다.

극단 ①

이 세상이 지금 모습 그대로 영원히 이어진다.

극단 ②

세상의 본질까지 사라지고 전혀 다른 세상이 대신 온다.

성경 (그 중간)

옛 형태가 지나가며 새 세상의 모태가 된다. 정화된 요소로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난다.

  • 구약의 “옷처럼 해지고 연기처럼 사라진다”(시 102:26)는 비유적 수사이지 무로의 환원이 아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하다’(바라)도 옛것에서 새것을 빚는 일을 가리킬 때가 많다(사 65:17).
  • 신약의 ‘없어진다’, ‘불에 녹는다’(벧후 3:10)도 같다. 홍수가 옛 세상을 멸했어도 땅을 없애지 않았듯(벧후 3:6) 불도 태우고 정화할 뿐이다. 지나가는 것은 세상의 외형이다(고전 7:31).
  • 구속의 성격과 맞물린다: 그리스도 안의 사람이 새 피조물이 되듯(고후 5:17) 세상도 새로워진다.
  • 유심론의 편파성: 오리게네스식으로 가면 심판 후 남는 것은 몸 없는 영혼뿐이다. 그러나 성육신,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재림, 모든 사람의 부활은 몸과 땅을 긍정한다. 구약의 소망은 지상적이고, 신약은 이를 영적으로 심화하되 폐기하지 않는다.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풀려난다(롬 8:21).
  • 요한의 새 예루살렘 묘사(낙원의 강과 나무, 예루살렘의 문, 지성소, 금과 보석)는 문자적 설계도가 아니다. 허구도 아니며, 내세의 실재를 달리 전할 길이 없어 현세의 이미지로 그린 영광의 표현이다.
  • 영화의 상태(status gloriae)는 타락 전 자연 상태의 단순 회복이 아니라 그보다 높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탄소가 다이아몬드가 되듯.
  • 바깥 어두운 곳에 남는 자들도 있으나, 각 나라와 족속에서 모인 공동체 안에서 온 민족이 고유한 영광을 가지고 모인다(계 21:26).

7. 영광의 상태와 복 원서 1280–1282쪽

천국을 바라는 삶은 이 땅의 부르심과 맞서지 않는다. 영광의 상태의 중심은 매개 없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 최종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종으로서 밤낮 기쁨으로 섬긴다.
  • 이 땅의 다양성은 사라지지 않고 죄와 무관하게 되어 교제에 유익하도록 변모된다.
  • 구원의 복은 모두가 동일하게 누리지만 영광에는 차등이 있다. 이 차등은 선행의 공로가 아니라 값없는 은혜언약에서 오며 그리스도의 공로로 누린다.
복의 두 측면내용
물질적·물리적 복죄의 모든 결과에서 자유: 무지와 오류, 죽음(고전 15:26), 가난과 질병, 고통과 굶주림, 연약함과 수치(고전 15:42)가 사라짐. 눈물이 없음(계 21:4)
영적 복 (더 중요하고 헤아릴 수 없이 풍성)거룩, 구원, 영광, 양자 됨(롬 8:23), 영생,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봄(고전 13:12), 그리스도를 닮아감(요일 3:2), 교제와 섬김과 찬양

피해야 할 편향 ①

이교도나 일부 천년왕국주의자처럼 물질적 복을 주된 것으로 과장.

피해야 할 편향 ②

스토아적으로 물리적 요소를 아예 배제. 성경은 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늘 묶는다. 거룩과 영광, 덕과 행복은 끝내 조화를 이룬다.

  • 동방정교회와 로마의 추상적 초자연주의: 구원을 전적으로 초월적인 것으로 보아 수도원 생활을 이상으로 여긴다. 종교개혁은 이 금욕주의를 넘어섰다.
  • 신자는 믿는 순간 사죄와 영생을 얻으므로 죄를 갚으려는 품꾼이 아니라 감사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녀다. 그 뜻은 세상 도피가 아니라 이 땅의 부르심에 충실할 때 이루어진다.
  • 그래서 내세의 삶은 이 땅의 삶과 연속성을 가진다. 그것은 덧붙여진 은사(donum superadditum)로 높여진 자의 관조도, 현재 성화의 단순한 연장도 아니다. 중심은 죄도 간극도 성경이나 자연의 매개도 없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8. 성도의 교제와 구원의 범위 원서 1283–1284쪽

작은 무리이면서 셀 수 없는 무리, 둘 다 성경의 말이다.

  • 하나님과의 교제는 홀로가 아니라 성도 간의 교제를 통해 누려지고 높아진다.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된다(막 10:29–30). 중보자를 통해 신자는 천상의 교회와 수많은 천사들과도 교제한다(히 12:22–24).
  • 새 예루살렘에서는 언어·사회적 기준·시간과 공간의 장벽이 무너지고, 한 목자 아래 한 무리(요 10:16)가 온전히 이루어진다. 모든 성도가 함께 그리스도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린다(엡 3:18–19).

작은 무리

  • 이 땅의 신자는 ‘작은 무리’(눅 12:32).
  • 구약: 남은 자만 돌아온다.
  • 신약: 끝까지 이기는 자가 적다(마 24:13).
  • 교회 역사가 이를 확인.

셀 수 없는 무리

  • 아담에게 알려진 은혜언약, 모든 피조물을 품는 노아 언약, 아브라함 안의 모든 세대(창 12:3).
  • 은혜가 아담의 범죄보다 풍성(롬 5:12–20), 모든 무릎이 꿇음(빌 2:10–11).
  • 셀 수 없는 무리가 보좌 앞에(계 7:9), 하나님이 만유의 주(고전 15:28).
보편구원론이 아니다모든 개인이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도태되더라도 인류와 세상 자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된다는 뜻이다.

9. 하나님의 긍휼의 풍성함 원서 1284–1293쪽

구원의 수는 하나님만 아시되 그 원천은 측량 못할 긍휼이다. 그래서 개혁파는 가장 너그럽게 판단한다.

  •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인: 몇몇 교부와 아우구스티누스, 아벨라르두스, 츠빙글리는 구원의 길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늘 소수 견해였고 교회는 신앙고백에서 이를 선언하지 않았다.
영아로 죽은 아이들입장
로마 가톨릭세례 없이 죽은 아이는 유아림보(고통은 없으나 하나님을 잃은 상태)
루터파신자의 자녀는 구원받는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김
개혁파은혜언약 안에서 태어난 자녀는 천국에 들어간다. 개별 아이의 운명 단정은 삼감
  • 왜 개혁파가 가장 너그러운가? 다른 교회들은 은혜의 방편의 필수성이나 죄의 저주 교리를 완화해야만 온건해질 수 있다. 개혁파는 구원에 꼭 필요한 지식의 양을 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말씀과 성례 없이도 거듭나게 하실 수 있다고 고백했다(제2차 스위스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구원의 뿌리가 사람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긍휼에 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선택 교리 때문에 구원받는 수가 적어진다는 생각은 오해다. 다만 그 수는 하나님만 아시며, 예수도 좁은 문으로 힘써 들어가라고만 하셨다(눅 13:24). 모든 교회가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므로 차이는 오직 그 수에 관한 것이다.
  • 천국의 복락은 하나님을 알고 즐거워하는 데 중심이 있지만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나님도 일하시듯(요 5:17) 성도는 선지자·제사장·왕으로 영원히 섬기고 다스린다(계 22:3). 각자는 새 이름으로 정체성을 지킨다(계 2:17).

영광의 차등 부정

조비아누스와 소키누스주의자들: 공로 사상을 우려해 차등을 부정.

바빙크: 차등 긍정

성경은 행위에 따른 상급과 빛남의 차이를 말한다(고전 15:41; 마 20:1–16). 다만 공로가 아니다. 율법을 다 지켜도 무익한 종일 뿐이므로(눅 17:10) 상급은 언약으로 ‘주어진’ 권리이며, 그리스도의 순종이 얻은 영광을 은혜로 나누어 받는 것이다. 믿음과 고난과 선행 자체가 은혜의 선물이다(빌 1:29).

마침내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고(엡 1:10),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신다(고전 15:28).

구조도

재림 주의 날의 시작 보편적 부활 같은 몸, 영화된 몸 최후의 심판 기준은 말씀 전체 새 하늘과 새 땅 불로 정화 · 새 예루살렘이 땅에 게헨나 영원한 불 · 둘째 사망 영광의 상태 → 만유의 주 매개 없는 교제 · 섬김 · 만물 통일
재림에서 만유의 주까지: 구속은 새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다

다른 입장과 바빙크

입장주장바빙크의 답
실러·범신론세계사가 곧 세상의 심판이므로 따로 최후 심판은 없다역사 속 영적 심판은 ‘한 차례’ 심판일 뿐, 마지막 날의 참된 심판이 따로 있다
보편구원론 (오리게네스~슐라이어마허)결국 모든 사람과 마귀까지 하나님께 돌아가 구원받는다성경 어디에도 그런 날은 없다. 범신론적 기원, 죄의 윤리적 성격을 놓침
조건적 불멸성 (소키누스·화이트)파멸·사망은 악인의 완전한 소멸생명은 단순 존재, 사망은 소멸이 아니다. 윤리적 존재와 물리적 존재의 혼동
유심론장래의 복은 천상에서 영혼이 누리는 것에 한정성육신·부활·재림 신앙은 물리적 소망을 포함한다. 천상의 예루살렘은 이 땅에 내려온다
정교회·로마의 초자연주의구원은 초월적이므로 수도원적 삶이 이상적신자는 세상 도피가 아니라 이 땅의 부르심에 충실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녀
홀스텐·홀츠만바울은 몸의 부활을 부정했다(고전 15:50)바울은 무덤의 그 몸이 재형성되어 일어난다고 확신했다

오해와 바른 이해

오해

  • 몸은 영혼의 감옥이니 벗어나면 된다.
  • 부활은 죽을 때의 원자들이 재결합하는 것이다.
  • 신자는 심판대 앞에 서지 않는다.
  • 영원한 벌은 하나님의 사랑(선하심)과 모순된다.
  • 세상은 완전히 없어지고 새것으로 대체된다.
  • 구원은 영혼만 하늘에서 누리는 것이다.
  • 천국의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다.

바른 이해

  • 묻힌 그 몸이 다시 살아나 영광을 입는다.
  • 동일성은 원자 수가 아니라 구조와 형태, 유기적 틀에 있다.
  • 신자도 심판대 앞에 서지만 정죄받지 않고 오히려 심판에 참여한다.
  • 정의로운 것이 곧 선하며, 지옥이 구원의 크기를 보여 준다.
  • 불로 정화될 뿐 실체는 하나도 잃지 않는다.
  • 하늘의 예루살렘이 땅에 와 몸과 함께 누린다.
  • 안식은 선지자·제사장·왕으로 기쁨으로 섬기는 활동을 포함한다.

핵심 용어

주의 날 (יום יהוה)
재림으로 시작되어 부활·심판·세상 갱신이 일어나는, 옛 시대가 새 시대로 바뀌는 전환점.
보편적 부활
신자와 불신자 모두가 몸으로 다시 일어나는 사건. 일차적으로 심판 행위.
재창조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바로 그 세상과 인간을 다시 세우는 구속.
재형성 (re-formation)
썩을 몸이 불멸과 영광을 덧입는 부활. 단순한 갱생이 아님.
신령한 몸 (σωμα πνευματικον)
혼이 아닌 영이 다스리는 영화된 몸. 실체는 여전히 물질.
게헨나 (Gehenna)
힌놈의 골짜기에서 온 이름. 악인이 몸과 영혼으로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는 최종 장소.
보편구원론 (ἀποκαταστασις)
결국 모든 인간과 마귀까지 구원된다는 주장. 범신론적 기원.
조건적 불멸성
불멸은 순종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며 악인은 소멸한다는 주장.
아이오니오스 (αἰωνιος)
영생과 영원한 형벌이 모두 변화 없는 내세에 속함을 나타내는 말.
유심론
장래의 복을 영혼과 천상에만 한정하는 편파적 견해.
영화의 상태 (status gloriae)
타락 전 자연 상태의 회복을 넘어서는, 모든 것이 영화롭게 변화된 상태.
영광의 차등
동일한 복락 안에서 행위에 따라 은혜로 주어지는 영광의 차이. 공로가 아님.

성경 근거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베드로후서 3:13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5:28
구절이 장에서의 쓰임
고전 15:52신자의 부활과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요 5:29신자와 불신자 모두 다시 살아난다(보편적 부활)
고전 15:36, 50씨앗처럼 죽은 몸에서 나옴, 썩을 혈과 육은 나라를 받지 못함(재형성)
요 5:22; 12:48심판 권세는 그리스도께, 일차 기준은 복음
롬 2:12받은 계시에 따라 심판이 달라짐
마 25:46영생과 대비되는 영원한 형벌(아이오니오스)
계 20:14–15; 21:8불못, 두 번째 사망
벧후 3:6, 10, 13홍수처럼 불도 정화할 뿐,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롬 8:21피조물도 썩어짐에서 해방된다
계 21:2, 26천상의 예루살렘이 내려오고 민족들이 영광을 가지고 모임
고전 15:28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신다

복습 문제

‘구속은 새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라는 원리가 부활과 세상의 미래에 각각 어떻게 적용되는가?
부활에서는 무덤에 묻힌 바로 그 몸이 영화롭게 재형성되어 일어난다(몸을 영혼의 감옥으로 보는 이원론 거부). 세상에서는 이 세상이 무로 돌아가거나 다른 세상으로 대체되지 않고, 홍수 때처럼 불로 정화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이 된다. 실체는 하나도 잃어버려지지 않는다.
부활체의 동일성은 어디에 있는가? ‘육의 부활’과 ‘몸의 부활’의 차이는?
원자의 수가 아니라 구조와 형태, 곧 몸의 유기적 틀(개별성의 패턴)에 있으며 그것이 부활체의 ‘씨’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은 원자가 다시 모인다는 ‘육의 부활’이 아니라 ‘몸의 부활’을 가르친다. 부활체는 영이 다스리는 신령한 몸이며 실체는 여전히 물질이다.
“세계사가 곧 세상의 심판”이라는 말의 참과 거짓은?
참인 면: 믿는 자에게는 이미 영생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진노가 머물러 역사 속에서 내재적·영적 심판이 진행 중이다. 거짓인 면: 범신론에서 나온 말로, 심판을 자연 과정으로 만들고 선악의 대비와 도덕 질서를 세우실 하나님을 없앤다. 역사는 한 차례 심판이고 참된 심판은 마지막 날에 있다.
최후 심판의 기준은 무엇이며, 신자는 심판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심판은 그리스도를 통해 행해지고 핵심은 믿음의 유무다. 일차 기준은 복음이지만 복음은 율법의 회복·성취이므로 기준은 율법과 복음을 합한 말씀 전체이며, 받은 계시의 분량이 고려된다. 신자도 심판대 앞에 서지만 정죄받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과 악한 천사들을 심판하는 일에 참여한다.
보편구원론과 조건적 불멸성에 대한 바빙크의 반박을 정리하라.
보편구원론은 범신론적·이교적 기원을 가지고 죄를 불법이 아닌 진화의 단계로 만들며 성경에 그런 날이 없다. 조건적 불멸성은 파멸을 소멸로 읽어 윤리적 죽음과 물리적 소멸을 혼동한다. 둘 다 죄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거스르는 반역이라는 점을 놓친다. 또 예수께서 영원한 형벌을 가장 자주 경고하셨고, 아이오니오스는 영생에도 쓰이며, 정의로운 것은 곧 선하므로 영원한 형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충돌하지 않는다.
개혁파가 이교도와 영아의 구원에 대해 ‘가장 너그러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교회들은 은혜의 방편의 필수성이나 죄의 저주 교리를 완화해야만 온건해질 수 있지만, 개혁파는 구원에 필요한 지식의 양을 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말씀과 성례 없이도 거듭나게 하실 수 있다고 고백했다. 구원의 뿌리가 사람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측량할 수 없는 긍휼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수는 하나님만 아신다.
한 줄“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새로워져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신다.”

책의 저작권은 저자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빛다방 학습·심화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개인 학습용 정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