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제4권 교회·성례·국가

4권 12편 성례가 아닌 다섯 의식

존 칼빈 『기독교강요』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 제4권 제19장 1-37절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기독교강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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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견진, 고해, 병자에게 기름 바르기, 성직 임명, 결혼. 다 좋은 일 같은데 왜 개신교는 성례를 세례와 성찬 두 개만 인정할까?

칼빈은 앞 장들에서 세운 성례의 기준을 들고 로마 교회가 세례·성찬에 더한 다섯 의식을 하나씩 검사한다. 기준은 세 가지다. 하나님이 직접 세우셨는가, 그 의식에 하나님의 약속이 붙어 있는가, 그 명령과 약속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졌는가. 1-3절에서는 원칙을 세운다. '성례'라는 이름 문제는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고, 성례를 세울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으며, 고대 교회도 '일곱 성례'를 몰랐다. 이어 견진(4-13절), 고해(14-17절), 종부(18-21절), 신품(22-33절), 혼인(34-37절)을 차례로 다룬다. 칼빈은 각 의식에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없고, 사도 시대의 일시적 은사를 흉내 낸 것이며, 결국 세례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깎아내린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옛 교회의 좋은 관습은 되살리자고 제안한다. 신앙 교육 뒤의 공적 신앙고백, 공적 회개 뒤의 화해의 안수, 참된 장로·집사 임직이 그것이다. 결론은 "말씀이 붙지 않은 의식은 성례가 아니다"이며, 이로써 4권 14장부터 이어진 성례론이 마무리된다.

1. 절별 정리

세례와 성찬 외의 소위 성례라는 것들은 성경의 근거도, 고대 교회의 근거도 없음. 1-3

1. 일곱 성례, 특히 종부성사의 허구성

칼빈은 성례가 주님이 세우신 두 가지뿐이라는 점을 앞에서 충분히 보였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일곱 성례'라는 생각이 학교와 설교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어서 나머지 다섯을 하나씩 따져 보겠다고 밝힌다. 그는 이것이 말싸움 욕심이 아니라고 먼저 못 박는다. 그리스도인은 말을 자유롭게 써도 되고, 뜻이 경건하면 표현이 조금 부정확해도 괜찮다. 그러나 '성례'라는 말은 다르다. 일곱 성례를 주장하는 쪽은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형식"이라는 정의를 일곱 가지 모두에 똑같이 붙이고, 일곱 모두를 은혜와 의를 전달하는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스콜라 신학의 대표 교과서 『명제집』을 쓴 롬바르두스(12세기 인물로 알려짐)도 모세 율법의 의식은 실체를 전해 주지 못하니 성례라 부르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친히 세우고 약속을 붙이신 의식은 낮추면서, 사람이 만들었거나 적어도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 없는 의식은 성례로 높이는 셈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칼빈은 그들에게 정의를 바꾸든지 그 단어를 쓰지 말든지 하라고 요구한다. 종부성사처럼 명령도 약속도 없는 의식을 성례라 부르게 두면 오류를 허락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 성례는 주님이 세우신 두 가지뿐이다
  • 이름 싸움이 아니라 내용 싸움이다
  • '성례'라 부르면 은혜의 통로로 여기게 된다
  • 하나님 것은 낮추고 사람 것은 높이는 모순
  • 명령과 약속이 없으면 성례가 아니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원칙 선언과 롬바르두스 인용 중심)

2. 오직 하나님만이 성례를 세우심

칼빈은 이제 문제가 단어가 아니라 성례 자체라고 말하며, 앞에서 확증한 원리를 다시 세운다. 성례를 세울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이유는 셋이다. 첫째, 성례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으로 양심을 위로해야 하는데, 그런 확실함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다. 둘째, 성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증언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생각을 아는 상담자는 사람이든 천사든 아무도 없다. 셋째, 성례는 하나님의 언약에 찍는 도장(인장)인데, 하나님이 그 목적을 정해 주지 않으면 물질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와야 성례가 성례가 된다. 칼빈은 성례와 다른 경건한 행동을 구분하지 않으면 생기는 문제도 지적한다. 사도들이 무릎 꿇고 기도했으니 무릎 꿇기도 성례가 되고, 손 들고 기도한 예가 많으니 손 들기도 성례가 되어, 결국 성도들의 모든 몸짓이 성례가 되어 버린다.

  • 성례를 세울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다
  • 성례는 하나님의 약속에 찍는 도장이다
  • 사람은 하나님 뜻을 증언할 자격이 없다
  • 말씀이 먼저 와야 성례가 된다
  • 경건한 몸짓이 다 성례는 아니다
이사야 40:13누구도 하나님의 상담자가 아니다. 그러니 하나님 뜻을 증언할 이는 하나님뿐이다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로마서 11:34같은 원리를 바울이 다시 확인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사도행전 7:60, 9:40, 20:36, 21:5사도들도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래도 무릎 꿇기가 성례는 아니라는 반례
사도행전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사도행전 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사도행전 21: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디모데전서 2:8손 들고 기도하라는 권면도 성례가 아니라는 반례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시편 63:4, 88:9, 141:2, 143:6손 들어 기도한 성도들의 예. 모든 몸짓이 성례가 될 수는 없다
시편 63: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시편 88: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시편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시편 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행하여야만 성례가 성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칼빈, 『기독교강요』

3. 고대 교회는 "일곱" 성례를 알지 못했음

반대편이 고대 교회의 권위를 내세우면 그것은 속임수라고 칼빈은 말한다. 고대 교회의 글 어디에도 '일곱'이라는 숫자가 나오지 않고, 그 숫자가 언제 들어왔는지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은 고대 저자들이 '성례'라는 말을 넓게 써서 여러 의식과 경건 행위를 다 포함시키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표징을 말할 때 그들은 세례와 성찬 두 가지로 만족했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증인으로 세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야누아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님이 가벼운 멍에를 지우셨듯이 수가 적고 지키기 쉽고 뜻이 깊은 성례로 새 백성을 묶으셨다고 말하며 세례와 주의 몸과 피의 교제를 든다. 『기독교 교양』에서도 부활 이후 주님과 사도들이 세운 표징으로 세례와 성찬을 든다. 숫자에 관심이 많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일곱'을 말하지 않았다면 당시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곱 성례 주장에는 성경의 뒷받침도 고대 교회의 지지도 없다.

  • 고대 교회 글에 '일곱'이 나오지 않는다
  • 옛 저자들은 '성례'라는 말을 넓게 썼다
  • 은혜의 표징으로는 두 가지만 꼽았다
  • 아우구스티누스도 세례와 성찬만 든다
  • 성경도 고대 교회도 일곱을 지지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11:29-30아우구스티누스가 인용한 구절. 주님의 멍에가 가볍듯 성례도 적고 단순하다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견진례(堅振禮)는 성례가 아님. 4-13

4. 고대 교회의 관례

견진례는 세례받은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고 손을 얹어 '믿음을 굳게 한다'는 로마 교회의 의식이다. 칼빈은 먼저 그 뿌리가 된 옛 관습을 설명한다. 초기 교회에서 어른은 믿음의 내용을 충분히 배워 감독과 회중 앞에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예비 신자로 지냈다. 아기 때 세례받은 아이들은 그런 고백을 하지 않았으므로, 소년기 끝이나 청년기 초에 부모가 감독 앞에 데려가 교리문답으로 심사를 받게 했다. 이 일에 무게를 더하려고 안수, 곧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예식을 붙였다. 교황 레오는 이단에서 돌아온 사람을 다시 세례하지 말고 안수하라고 했다. 반대편은 이것을 '성령을 주는 성례'의 증거로 쓰지만, 레오는 다른 곳에서 그 뜻이 기도와 안수로 굳게 세우는 것이라고 스스로 풀이했다. 히에로니무스도 이 관습을 언급했는데, 그것이 사도 시대부터 있었다고 한 점은 틀렸다. 그래도 그는 이 축복을 감독만 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필요 때문이 아니라 감독직을 존중하는 표시라고 단서를 달았다. 칼빈은 축복으로서의 이 순수한 안수는 받아들이며, 오늘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 옛 교회는 자란 아이가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했다
  • 교리문답 심사 뒤 축복의 안수를 했다
  • 레오의 말도 기도와 안수를 뜻한다
  • 감독만 안수한 것은 존중의 표시였다
  • 칼빈은 이 순수한 안수의 회복을 바란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레오·히에로니무스 등 교부 인용 중심)

5. 견진례에 대한 로마 교회의 가르침

후대에 와서는 이 관습의 본질은 사라지고, 견진례가 하나님의 성례 가운데 하나로 세워졌다. 로마 교회는 세례로 의롭게 된 사람에게 성령을 다시 주어 은혜를 더하고, 영적 싸움을 위해 굳세게 해 준다고 가르친다. 집례할 때는 이마에 성유(축복한 기름)를 바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십자가의 표를 긋고 구원의 기름으로 견진한다"는 문구를 선언한다. 칼빈은 묻는다. 그 자리에 성령이 함께하신다고 약속한 말씀이 어디 있는가? 한 구절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끈적한 기름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물질에 말씀이 더해져야 거룩한 표징이 되니, 기름 속에 기름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하려면 그 말씀을 보여 줘야 한다. 또 성례를 섬기는 일꾼의 첫째 규칙은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는지 사람에게서 왔는지 물으셨듯이, 견진례도 하늘에서 왔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헛된 사람의 것이다.

  • 로마 교회는 견진으로 성령을 더 받는다고 한다
  • 성령을 약속한 말씀은 한 구절도 없다
  • 말씀 없는 기름은 그냥 기름이다
  • 일꾼은 명령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하늘에서 왔는지 증명하라
마태복음 21:25-27하늘에서 왔는가, 사람에게서 왔는가. 출처를 묻는 시험을 견진례에 적용한다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6. 사도들의 전례에 근거한 논지에 대한 반론

반대편은 사도들이 안수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칼빈은 사도들이 아무 일도 경솔하게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 그렇다면 사도들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보자고 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고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칼빈의 해석은 이렇다. 주님이 그때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 눈에 보이는 놀라운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셨고, 안수 자체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표시였다. 그 은사가 계속 주어졌다면 안수도 계속되었겠지만, 이적의 능력은 복음과 그리스도 나라의 시작을 빛내기 위한 일시적인 것이었다. 칼빈은 성령께서 지금도 교회에 계시며,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도 영원히 서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사라진 것은 안수에 따르던 이적적 능력이다. 그러니 안수해도 성령의 능력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지 않는 오늘의 견진례는 사도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 사도의 안수 때 보이는 성령 은사가 임했다
  • 안수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는 표시였다
  • 이적의 능력은 복음 초기의 일시적 선물이다
  • 성령은 지금도 교회에 계신다
  • 결과 없는 흉내는 사도를 따르는 게 아니다
사도행전 8:14-17반대편의 핵심 근거. 칼빈은 이것을 보이는 은사가 임한 특별한 사건으로 읽는다
14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6:6, 8:17, 13:3, 19:6누가가 여러 번 기록한 안수 장면들
사도행전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행전 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요한복음 7:37생수의 약속. 성령은 지금도 교회에 계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사야 55:1목마른 자를 부르는 같은 약속 (참조 구절)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한복음 4:10, 7:38그리스도가 주시는 생수, 곧 성령 (참조 구절)
요한복음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7. "구원의 기름"은 허구임

칼빈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신 일(요한복음 20:22)을 비유로 든다. 그 일을 성령을 주는 성례라고 가르치지 않듯이, 사도들의 안수도 그 시기에만 의미 있던 일이지 후대가 똑같이 따라 하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설령 안수는 사도를 따른 것이라 쳐도, '구원의 기름'은 대체 어디서 왔는가? 바울은 오히려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다. 칼빈은 기름을 '구원의 기름'이라 부르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말한다. 음식과 배가 함께 없어지듯 썩을 물질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다. 그러면 세례의 물이나 성찬의 떡과 포도주도 썩을 물질 아니냐는 반문이 나온다. 칼빈의 답은 이렇다. 성례에는 물질 자체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위에 새겨진 뜻이 있다. 효력은 오직 말씀에 있다. 물질 자체로는 썩어 없어지지만, 말씀으로 거룩해지면 우리를 영적으로 가르치는 도구가 된다.

  • 주님의 한 번의 행동이 다 규칙은 아니다
  • 기름에서 구원을 찾으라는 가르침은 없다
  • 썩을 물질은 하나님 나라와 무관하다
  • 성례의 효력은 물질이 아니라 말씀에 있다
  • 말씀이 붙어야 물질이 영적으로 가르친다
요한복음 20:22주님이 숨을 내쉬신 일. 한 번 하신 일이 성례 규칙은 아니라는 비유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갈라디아서 4:9세상의 초보적인 것들로 돌아가지 말라. 기름 의존을 반박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골로새서 2:20사람이 만든 규례에 매이지 말라는 근거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고린도전서 6:13음식과 배는 함께 없어진다. 물질 자체에는 구원 능력이 없다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고린도전서 7:31이 세상의 모양은 지나간다. 물질은 사라질 것이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8. 견진례는 세례를 욕되게 하는 마귀의 교리임

로마 교회는 세례에서는 죄 없는 상태를 위해 성령을 받고 견진에서는 은혜를 더하려고 받는다고 한다. 세례로는 새 생명을, 견진으로는 싸울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견진 없이는 세례가 완성되지 않는다고까지 한다. 칼빈은 이것이 세례를 깎아내린다고 반박한다. 바울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다고 했다.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목적은 새 생명 가운데 걷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영적 싸움을 위한 준비다. 로마 교회가 존중한다는 교회의 결정도 그들에게 불리하다. 밀레비스 공의회(5세기 초로 알려짐)는 세례가 죄 사함만을 위한 것이고 앞으로의 은혜를 돕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를 정죄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세례만 받고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본문(사도행전 8:16)도, 믿는 자가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이적적 은사를 아직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칼빈은 세례의 약속을 떼어 다른 곳에 붙이는 이 가르침을 사탄의 속임수라고 부를 만큼 심각하게 본다.

  • 세례에 이미 새 생명과 싸움이 담겨 있다
  • 견진이 세례를 완성한다는 말은 세례 모욕이다
  • 고대 공의회도 세례의 미래 은혜를 인정했다
  • 사마리아 본문은 이적적 은사 이야기다
  • 세례 약속을 떼어 옮기면 사람을 세례에서 떼어 놓는다
로마서 6:4-5세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다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로마서 6:6옛사람이 못 박힘. 세례에 이미 죽임과 살림이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사도행전 8:16반대편 근거. 칼빈은 이적적 은사 이야기로 해석한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로마서 10:10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자는 성령을 받았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도행전 2:4오순절의 성령 받음. '성령 받음'이 보이는 은사를 가리키는 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마태복음 10:20사도들 안에 이미 성령이 계셨다는 증거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갈라디아서 3:27세례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 세례로 충분하다는 핵심 근거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9. 견진례가 구원에 필수라는 논리의 허구성

반대편은 모든 신자가 세례 뒤에 주교의 안수와 기름 바름으로 성령을 받아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한다. 칼빈은 기독교에 필요한 모든 것이 성경에 정해져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주장은 참된 신앙의 모습을 성경 밖에서 찾으라는 말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그리스도의 가르침 전체를 초보로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이 말이 맞다면 사도들과 수많은 순교자들은 반쪽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들은 성유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칼빈은 그들 스스로가 자기 주장을 반박한다고 덧붙인다. 정말 구원에 필수라면 신자 모두에게 엄격하게 요구해야 할 텐데, 실제로는 많은 신자를 견진 없이 그냥 둔다. 이렇게 소홀히 한다는 것은 그들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믿지 않는다는 무언의 고백이다.

  • 신앙에 필요한 것은 성경에 다 있다
  • 견진 필수론은 사도와 순교자를 정죄한다
  •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초보로 만든다
  • 필수라면서 신자들을 그냥 둔다
  • 그 태연함이 스스로 반박하는 셈이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논리적 반박 중심)

10. 견진례의 우월성에 대한 교황주의자들의 사고

로마 교회는 견진을 세례보다 더 높여야 한다고 한다. 세례는 모든 사제가 베풀지만 견진은 주교만 베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사람이 만든 것을 하나님이 세우신 것보다 높이는 처사라며 분노한다. 일부는 수위를 낮춰, 견진이 더 높은 이유는 능력이 더 커서가 아니라 더 높은 사람이 더 귀한 부위(이마)에 베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칼빈의 첫째 답은 이렇다. 집례자의 자격으로 성례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바로 도나투스주의다. 그들도 이단으로 여기는 입장인 것이다. 둘째, 주교만의 특권이라는 근거를 물으면 사도만 성령을 주었다고 답할 텐데, 주교만 사도인가? 셋째, 그들은 주님이 잔을 사도들에게만 주셨다며 평신도에게 성찬의 잔을 주지 않는다. 같은 논리라면 잔은 주교만 받아야 한다. 이처럼 논리가 그때그때 바뀐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사도가 아닌 아나니아에게 세례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또 그레고리우스의 편지에는 이 직무를 일반 사제에게 넘긴 기록도 있다.

  • 주교가 베푼다고 세례보다 높을 수 없다
  • 집례자로 가치를 매기면 도나투스주의다
  • 주교만 사도라는 근거가 없다
  • 잔 문제와 견진 문제에서 논리가 다르다
  • 사도 아닌 아나니아도 성령 사역을 했다
사도행전 9:17-19사도 아닌 아나니아를 통해 바울이 세례받고 성령 충만해졌다. 주교 독점론 반박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11. 견진례의 우월성에 대한 논지들의 유치함

견진을 높이는 또 다른 이유는 견진에서는 이마에, 세례에서는 정수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이다. 칼빈은 마치 세례의 핵심이 물이 아니라 기름인 것처럼 말한다며 어이없어한다. 성례에 사람이 만든 의식이 가득 차서 하나님께 속한 것이 빛을 보지 못한다는 비판을 다시 꺼낸다. 그들은 세례에서 물은 가볍게 여기고 기름만 중히 여긴다. 칼빈은 세례에서도 이마가 물에 젖는다고 맞받으며, 하나님이 정하신 물에 비하면 그들의 기름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단언한다. 기름이 더 비싸다는 주장에는, 그 비싼 값이 오히려 좋은 것을 망쳤다고 답한다. 세 번째 이유인 '견진이 덕을 더 키운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사도들은 안수로 보이는 은사를 나눴지만 이들의 기름은 아무 유익도 보여 주지 못한다. 칼빈은 이런 논리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비유한다. 풀려고 애쓰기보다 끊어 버리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 이마냐 정수리냐는 유치한 근거다
  • 세례의 중심은 기름이 아니라 물과 말씀이다
  • 사람의 의식이 하나님 것을 가린다
  • 덕이 자란다는 증거가 없다
  • 엉킨 논리는 풀기보다 끊는 게 낫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12. 고대에는 견진례라는 성례가 없었음

말씀의 근거가 없으니 반대편은 오래된 관례라는 주장으로 물러난다. 칼빈은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소용없다고 답한다. 성례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이 세우셨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도 아니다. 고대 저자들은 정확하게 말할 때 두 가지 이상의 성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도 안수를 언급하지만 성례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안수가 기도일 뿐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반대편은 그것이 견진이 아니라 치료나 화해의 안수를 말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이 지금도 남아 있으니 직접 확인하라고 답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분리된 무리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다시 세례를 주지 말고 안수만 하라고 했다. 세례는 반복하지 않는데 안수는 왜 하느냐는 물음에 "안수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 안수가 성령의 가장 큰 선물인 사랑의 끈 때문이라고 했다.

  • 오래된 관례가 성례를 만들지 못한다
  • 성례는 하나님이 세우셨음을 증명해야 한다
  • 고대 저자들도 안수를 성례라 하지 않았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안수를 기도라 했다
  • 돌아온 이를 사랑의 끈으로 받는 표시였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아우구스티누스 인용 중심)

13. 참된 의미의 견진이란?

칼빈은 성례라는 가면을 쓰기 전의 옛 관습이 남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다시 말한다. 그것은 세례를 해치는 '견진례'가 아니었다. 아이들과 청년기에 가까운 이들이 교회 앞에서 자기 믿음을 밝히도록 가르치는 교육 수단이었다. 그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한다. 모든 교회가 이견 없이 동의하는 핵심 교리를 간단히 정리한 교재를 만든다. 아이가 열 살쯤 되면 교회 앞에서 각 조항을 묻고 답하며 신앙을 고백하게 한다. 모르거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은 그 자리에서 가르친다. 교회가 증인이 되어 한 믿음을 함께 고백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녀 교육에 무관심한 부모가 정신을 차리고, 신자들의 믿음이 더 일치하며, 배우지 못한 사람이 줄고, 새롭고 이상한 가르침에 쉽게 휩쓸리지 않게 된다고 칼빈은 기대한다.

  • 참된 견진은 교리 교육과 공적 고백이다
  • 공통 교리를 담은 교재를 만들자
  • 열 살쯤 교회 앞에서 묻고 답하게 하자
  • 부모의 신앙 교육 책임을 일깨운다
  • 이상한 가르침에 휩쓸리지 않게 된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목회적 제안)

고해성사는 성례가 아님. 14-17

14. 고대 교회에서 고해의 관행

고해성사는 죄를 고백하고 사제에게 용서 선언을 받는 로마 교회의 의식이다. 칼빈은 이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이 너무 혼란스러워 양심이 붙잡을 확실한 것이 없다고 평한다. 회개 자체는 이미 3권에서 자세히 다뤘으므로 여기서는 고해가 성례라는 주장의 근거만 살핀다. 그 근거로 쓰인 옛 관습은 이랬다.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교회가 정한 근신 기간을 마친 사람에게 엄숙히 안수해 교회 안으로 다시 받아들였다. 이것은 용서받았다는 표시였다. 죄인은 용서의 확신을 얻고, 교회는 그의 잘못을 잊고 따뜻하게 맞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키프리아누스(3세기 북아프리카 감독)는 이것을 "평화를 주는 것"이라 불렀다. 너무 느슨해지지 않도록 카르타고 공의회와 오랑주 공의회는 주교의 권위가 개입하도록 정했다. 키프리아누스의 다른 글을 보면 주교만이 아니라 성직자 전체가 안수했다. 후대에는 이 의식이 사적인 용서에까지 퍼졌고, 12세기 교회법 학자 그라티아누스는 공적 화해와 사적 화해를 나눴다. 칼빈은 키프리아누스 시대의 관습을 거룩하고 건전하다고 보며 회복되기를 바란다. 다만 그 안수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꼭 해야 하거나 금해야 하는 일이 아닌 외적 행위에 속한다.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이 명하신 것보다 낮은 자리에 두어야 한다.

  • 옛 교회는 공적 회개 뒤 화해의 안수를 했다
  • 용서의 확신과 공동체의 환영을 표시했다
  • 주교 개입은 느슨함을 막으려는 장치였다
  • 칼빈은 옛 관습의 회복을 바란다
  • 그래도 사람이 만든 것, 하나님 명령보다 아래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키프리아누스·공의회 인용 중심)

15. 고해는 성례가 아님

로마 교회와 스콜라 학자들은 어떻게든 고해에서 성례를 찾아내려 하지만 결론은 뒤죽박죽이다. 그들 사이에는 여러 설명이 섞여 있다. 바깥으로 드러난 고해가 성례이고 마음의 통회는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라는 설명이 있다. 둘이 합쳐 하나의 성례라는 설명도 있다. 바깥 고해는 '표징일 뿐', 마음의 회개는 '실체이자 표징', 죄 사함은 '실체일 뿐'이라는 3단 구분도 있다. 칼빈은 앞에서 내린 성례의 정의를 대 보라고 한다. 고해는 주님이 우리 믿음을 굳게 하시려고 세우신 외적 의식이 아니다. 칼빈의 정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그들이 존경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들어 보라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례를 눈에 보이는 것에서 마음으로 깨닫는 데까지 오르는 계단이라고 했다. 또 한 가지를 눈으로 보고 다른 것을 깨닫기에 성례라 부른다고 했다. 고해에는 영적 열매를 보여 주는 눈에 보이는 형태가 없다. 그러니 그들이 존경하는 교부의 기준으로도 성례가 아니다.

  • 스콜라 학자들의 고해 성례론은 뒤죽박죽이다
  • 하나님이 세우신 외적 의식이 아니다
  • 성례는 보이는 것에서 깨닫는 데로 오르는 계단
  • 고해에는 보이는 표징이 없다
  • 아우구스티누스 기준으로도 성례가 아니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아우구스티누스 인용 중심)

16. 사죄 선언을 성례로 보지 않는 모순

칼빈은 반어적인 논증을 편다. 굳이 성례를 찾자면, 고해보다 사제의 사죄 선언이 더 그럴듯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죄 선언은 "당신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 사함에 대한 믿음을 확인해 주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또 그들이 즐겨 인용하는 '매고 푸는' 열쇠의 약속도 거기에 붙일 수 있다. 사죄 선언을 받고도 실제로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칼빈은 그들의 논리로는 이 반론에 쉽게 답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성찬에서도 성례적으로 먹는 것(선인·악인 공통)과 영적으로 먹는 것(선인만)을 구분하니, 사죄 선언도 그렇게 나누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성례는 택함받은 자에게만 그 효과를 이룬다고 했다. 칼빈의 요점은 사죄 선언이 성례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애쓰고도 자기 논리 안에서 더 그럴듯한 후보조차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칼빈은 그들의 교리 자체가 진리와 멀다고 앞에서 이미 밝혔다고 덧붙인다.

  • 반어법이다. 칼빈의 주장이 아니다
  • 차라리 사죄 선언이 더 성례 같다는 지적
  • 그들 논리로도 반론에 답할 수 있었다
  • 성례 효과는 믿는 자에게만 이른다
  • 애쓰고도 엉뚱한 것을 붙들었다는 비판
마태복음 18:18매고 푸는 열쇠의 약속. 그들이 사죄권 근거로 쓰는 구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6:19같은 열쇠의 약속 (참조 구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17. 세례가 진정한 고해의 성례임

칼빈은 그들이 고해의 무엇을 성례라 부르든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성례의 유일한 기초인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이 없다. 또 그 의식 전부가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들은 고해를 "배가 부서진 뒤 붙잡는 두 번째 판자"라고 부른다. 세례로 받은 깨끗함을 죄로 잃으면 고해로 되찾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이 말이 히에로니무스의 것이라고 한다. 칼빈은 이렇게 이해하면 세례가 죄 때문에 무효가 되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 죄인이 용서를 생각할 때마다 세례를 떠올리며 힘을 얻는 길이 막힌다. 히에로니무스의 거친 표현은 교회에서 쫓겨날 만큼 세례에서 떠난 사람이 회개로 세례의 의미를 회복한다는 뜻이었는데, 그들이 그것을 비틀었다. 칼빈은 오히려 세례를 회개의 성례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말한다. 세례는 참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를 확인해 주는 도장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것으로 여겨지는 글도 세례를 "믿음과 회개의 성례"라 부른다. 칼빈은 저자가 불분명한 글보다 성경 자체가 더 분명하다고 하며 '회개의 세례'를 전한 요한을 근거로 든다.

  • 고해에는 약속도 하나님의 제정도 없다
  • '두 번째 판자'는 세례를 무효로 만든다
  • 죄지은 뒤에도 세례의 약속을 기억하라
  • 세례야말로 회개의 성례다
  • 요한도 '회개의 세례'를 전했다
마가복음 1:4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 세례가 곧 회개의 성례라는 핵심 근거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누가복음 3:3같은 내용을 누가가 다시 증언한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세례를 가리켜 고해(회개)의 성례라 부른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합당한 말이라 할 것이다.칼빈, 『기독교강요』

종부성사는 성례가 아님. 18-21

18. 종부성사의 성경적 근거에 대한 반론

종부성사는 죽음이 가까운 사람에게 사제가 주교가 축복한 기름을 바르는 의식이다. 사제는 다섯 감각으로 지은 죄를 하나님이 용서하시기를 비는 문구를 외운다. 로마 교회는 이 의식이 죄를 용서하고, 필요하면 몸의 병을 덜어 주고, 그렇지 않으면 영혼을 구원한다고 가르친다. 근거는 야고보서 5:14-15다. 칼빈은 이것도 앞의 안수처럼 사도를 흉내 내는 연극이라고 본다. 마가복음 6:13에서 제자들은 첫 전도 여행 때 기름을 발라 병자를 고쳤고, 야고보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말했다. 그런데 주님과 사도들이 병을 고칠 때 진흙, 손대기, 말씀만으로 등 방법을 자유롭게 썼다. 이것은 기름에 특별한 신비가 없다는 뜻이다. 칼빈은 기름이 치료 수단이 아니라 상징이었다고 본다. 사람들이 능력을 사도에게 돌리지 않도록, 그 근원이 성령이심을 보여 주는 표시였다는 것이다. 기름이 성령을 상징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치유의 은사는 다른 이적처럼 복음 초기에 일시적으로 주어졌다가 사라졌다. 그러니 그때 기름이 일종의 성례였다 해도 그 능력을 받지 않은 오늘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 종부성사의 근거는 야고보서 5장이다
  • 사도들은 치유 방법을 자유롭게 썼다
  • 기름은 치료 수단이 아니라 상징이었다
  • 능력의 근원이 성령임을 보여 주는 표시
  • 치유의 은사는 복음 초기의 일시적 선물
야고보서 5:14-15반대편의 핵심 근거. 장로들이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는 말씀
14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6:13제자들이 기름을 발라 병자를 고침. 야고보 말씀의 배경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요한복음 9:6진흙과 침으로 맹인을 고치심. 치유 방법이 다양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마태복음 9:29손을 대어 고치심. 방법의 다양성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누가복음 18:42말씀만으로 고치심. 방법의 다양성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사도행전 3:6, 14:9-10사도들도 말씀만으로 고쳤다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사도행전 14:9-10 9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사도행전 5:12, 16사도들의 손을 통한 표적과 치유
사도행전 5: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사도행전 5: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도행전 19:12원문이 기름 치유의 예로 단 구절. 실제 본문은 손수건·앞치마 장면 (작가에게 참고)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시편 45:7기쁨의 기름. 기름이 성령과 그 은사를 상징한다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19. 기름 바르는 행위는 효력이 없음

칼빈은 성경에 나오는 다른 많은 상징은 제쳐 두고 왜 하필 기름만 성례로 만드느냐고 묻는다. 실로암 못에 병자를 담그게 하거나, 바울처럼 죽은 사람 위에 엎드리거나, 진흙과 침을 쓰는 것도 성례로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다른 것은 개별 사례지만 기름은 야고보가 명령한 것이라고 답한다. 칼빈은 야고보가 교회가 아직 그 특별한 복을 누리던 때에 맞게 말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름에도 같은 효력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경험은 그렇지 않다. 칼빈은 하나님이 지금도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며 필요할 때마다 옛날 못지않게 그들의 연약함을 고쳐 주신다고 분명히 말한다. 다만 사도들의 손으로 행하신 것 같은 눈에 보이는 이적은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일시적인 은사였고, 사람들의 감사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도 빨리 사라졌다.

  • 왜 많은 상징 중 기름만 성례인가
  • 야고보는 치유 은사가 있던 때에 말했다
  • 지금의 기름에는 그 효력이 없다
  • 하나님은 지금도 연약함을 고치신다
  • 사도적 이적은 일시적 은사였다
요한복음 9:7실로암 못. 이것은 왜 성례로 삼지 않느냐는 반문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사도행전 20:10바울이 죽은 청년 위에 엎드려 살림. 같은 반문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20. 종부성사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명령도 약속도 없음

사도들은 기름이라는 상징으로 치유 능력이 자기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것임을 증언했다. 그런데 반대편은 아무 효력 없는 기름을 성령의 능력으로 만들어 오히려 성령을 모욕한다. 성경이 성령을 기름에 빗댄다고 모든 기름이 성령의 능력은 아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모든 비둘기가 성령은 아닌 것과 같다. 칼빈은 성례가 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정리한다. 하나님이 세우셨고, 약속이 있고, 그 의식이 우리에게 전해졌고, 그 약속이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할례는 하나님이 세우셨고 약속도 있었지만 지금 교회의 성례가 아니다. 우리에게 명령되지 않았고 같은 조건의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부성사의 약속도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들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만 그 의식을 쓸 수 있었다.

  • 효력 없는 기름을 성령이라 하면 모욕이다
  • 비둘기가 다 성령이 아니듯 기름도 그렇다
  • 성례의 조건: 제정, 약속, 전달, 적용
  • 할례도 지금은 우리의 성례가 아니다
  • 종부성사의 약속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마태복음 3:16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심. 상징과 실체를 혼동하지 말라는 비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요한복음 1:32같은 장면의 증언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21. 종부성사는 야고보의 말씀을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님

칼빈은 백번 양보해 야고보의 말씀이 오늘에도 해당한다고 쳐도 종부성사는 그 말씀과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첫째, 야고보는 모든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라고 했지만, 그들은 거의 죽게 된 사람에게만 바른다. 정말 병을 덜어 줄 효력이 있다면 제때 바르지 않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둘째, 야고보는 교회의 장로들(복수)을 청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사제만 하게 하고, 복수형은 존경의 표현이라고 억지로 풀이한다. 셋째, 야고보와 마가복음 6:13이 말한 것은 보통 기름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주교가 입김을 불고 주문을 외우고 무릎 꿇어 경배한 기름만 쓴다. 넷째, 야고보가 말한 죄 사함은 기름이 죄를 씻는다는 뜻이 아니다. 고통 중인 형제를 위한 신자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다는 뜻이다. 끝으로 그들 자신의 연대기(시게베르투스의 기록)를 보면,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의 교황 인노켄티우스는 사제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면 자신과 가족에게 기름을 바르도록 허락했다.

  • 야고보는 모든 병자, 그들은 임종자만
  • 야고보는 장로들, 그들은 사제만
  • 야고보는 보통 기름, 그들은 주문 외운 기름
  • 죄 사함은 기름이 아니라 기도의 응답
  • 옛 교황도 모든 신자에게 허락했다
야고보서 5:14-15그들이 근거로 드는 본문. 정작 그 내용과 그들의 관행이 어긋난다
14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6:13보통 기름이 쓰였다는 근거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일곱 가지의 복잡한 소위 신품 성례의 허구성. 22-33

22. 한 가지 성례인가, 아니면 일곱 가지 성례인가?

신품성사는 성직자를 세우는 로마 교회의 의식이다. 그런데 이것이 다시 일곱 계급으로 나뉜다. 문지기, 성경 낭독자, 귀신 쫓는 자, 시종(촛불 등 시중), 차부제, 부제, 사제다. 각 계급이 서로 다른 의식이고 서로 다른 은혜를 준다고 하니,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이것만으로 일곱 성례가 된다. 나머지 여섯과 합치면 성례가 열셋이 된다며 칼빈은 웃는다. 그는 이 일곱 계급이 성령의 일곱 은사에 해당하고 계급이 오를수록 은혜가 쌓인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그들은 이사야 11:2에서 일곱 은사를 읽어 내지만 이사야는 여섯 가지만 말한다. 또 성경은 다른 곳에서도 성령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므로 성령의 능력을 몇 개로 묶을 수 없다. 게다가 그들끼리도 계급이 일곱이냐 아홉이냐, 삭발을 넣느냐 대주교를 넣느냐로 의견이 다르다. 이시도루스는 노래하는 사람과 낭독자를 따로 나누고 교회법도 또 다르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 거룩한 일을 논하면 이렇게 된다고 말한다.

  • 신품성사 하나가 다시 일곱으로 나뉜다
  • 그러면 성례가 열셋이 되는 모순
  • 이사야 11:2의 은사는 여섯이다
  • 계급 수를 두고 그들끼리도 다툰다
  • 말씀 없이 논하면 혼란만 남는다
이사야 11:2일곱 은사의 근거로 쓰이지만 실제로는 여섯을 말한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에스겔 1:20'생물의 영'. 성령을 일곱 이름에 가둘 수 없다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로마서 1:4'성결의 영'. 같은 논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8:15'양자의 영'. 같은 논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23. 그리스도께 일곱 직분을 다 적용시킴

그들은 일곱 계급마다 그리스도가 직접 그 일을 하셨다고 주장한다. 성전에서 장사꾼을 내쫓으실 때와 "나는 양의 문"이라 하실 때는 문지기,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실 때는 낭독자였다는 식이다. 귀먹은 사람을 고치실 때는 귀신 쫓는 자,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는다" 하실 때는 촛불 드는 시종,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는 차부제였다고 한다. 성찬에서 떡과 잔을 나누실 때는 부제,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리실 때는 사제였다고 한다. 칼빈은 이런 글을 쓰며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었는지 놀랍다고 말한다. 특히 '시종'을 '초를 드는 사람'이라고 풀이하는 것은 근거 없는 말이다. 헬라어 '아콜루토스'는 그냥 '시중드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오래 다루면 자기도 웃음거리가 된다며 짧게 끝낸다.

  • 그리스도를 일곱 계급에 억지로 끼워 맞춘다
  • 비유와 사건을 직분 근거로 비튼다
  • '시종'은 그저 시중드는 사람이라는 뜻
  • 칼빈은 진지한 반박 대상도 아니라고 본다
요한복음 2:15성전 정화. '문지기' 근거로 억지 사용된 예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마태복음 21:12같은 사건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요한복음 10:7"나는 양의 문". 문지기 근거로 억지 사용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누가복음 4:17이사야서 낭독. '낭독자' 근거로 억지 사용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마가복음 7:32-33귀먹은 사람 치유. '귀신 쫓는 자' 근거로 억지 사용
32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요한복음 8:12"세상의 빛". '시종' 근거로 억지 사용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3:4-5세족. '차부제' 근거로 억지 사용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마태복음 26:26성찬 제정. '부제' 근거로 억지 사용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7:50십자가 죽음. '사제' 근거로 사용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에베소서 5:2자신을 제물로 드리심. 같은 논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24. 하급의 직분자들은 실제의 직무와는 전혀 관계 없음

칼빈은 이 하급 계급들의 실상을 폭로한다. 화려한 예식으로 낭독자, 노래하는 자, 문지기, 시종을 세우지만, 정작 촛불을 켜고 포도주와 물을 따르고 노래하고 교회 문을 여닫는 일은 소년이나 품삯 받는 평신도가 한다. 오히려 어릴 때 그 일을 하던 사람이 정식 시종이 되면 그 일을 그만둔다. 일은 하지 않는데 성령을 받으려고 성례로 거룩해질 필요가 있겠느냐고 칼빈은 묻는다. 시대가 악해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면, 그 거룩한 직분이 교회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귀신 쫓는 직분도 마찬가지다. 유대인 가운데 귀신 쫓는 자들은 실제로 그 일을 해서 그렇게 불렸지만, 이들이 그 일을 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칼빈은 일곱 성례 이야기가 소르본 신학자들과 교회법 학자들 외에는 어디에도 없다고 정리한다.

  • 직분 이름만 있고 실제 일은 안 한다
  • 그 일은 소년과 평신도가 대신한다
  • 일 안 하는 직분에 성령이 왜 필요한가
  • 귀신 쫓는 자도 이름뿐이다
  • 일곱 성례론은 스콜라 학자들만의 이야기
사도행전 19:13유대인 귀신 쫓는 자들. 이름은 실제 하는 일에서 나온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25. 성직자의 삭발 의식

성직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정수리를 둥글게 깎는다. 성직자는 왕처럼 자신과 남을 다스려야 하니 둥근 정수리가 왕의 권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베드로전서 2:9를 든다. 칼빈은 베드로가 온 교회에 준 칭호를 머리 깎은 몇 사람이 독차지했다고 비판한다. 거룩하라는 말씀, 그리스도의 피로 산 백성이라는 말씀,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이라는 말씀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다른 해석도 덧붙인다. 마음이 주님께 열려 있다, 벗은 얼굴로 하나님 영광을 본다, 세속을 잘라 낸다는 표시라는 것이다. 칼빈은 성소의 휘장이 이미 찢어진 지금 모든 것을 상징으로 나타내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머리카락 몇 가닥을 밀었다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가짜 표시로 겉모양을 꾸미지 말고 진짜 거룩함을 보여 주라는 것이다.

  • '왕 같은 제사장'은 온 교회의 칭호다
  • 몇 사람이 신자 모두의 칭호를 빼앗았다
  • 휘장이 찢어진 뒤 상징 놀이는 시대착오
  • 머리 모양이 거룩함을 대신할 수 없다
  • 겉모양 말고 실제 거룩함을 보이라
베드로전서 2:9왕 같은 제사장. 성직자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의 칭호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1:15-16"거룩하라"는 모든 신자에게 주신 명령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레위기 20:7같은 거룩의 명령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2같은 거룩의 명령 (참조 구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그리스도의 피로 산 것은 모든 신자다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2:5모든 신자가 거룩한 제사장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고린도후서 3:18'벗은 얼굴'. 삭발 해석에 억지로 쓰인 구절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마태복음 27:51성소 휘장이 찢어짐. 상징 시대는 끝났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26. 삭발의 근거를 나실인과 바울에게서 찾는 처사는 모순임

반대편은 삭발의 기원이 나실인(하나님께 특별히 서원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다고 한다. 칼빈은 그렇다면 자기들의 의식이 유대교에서 왔다고 고백하는 셈이라고 말한다. 또 그들은 바울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서원 때문에 머리를 깎았다는 사도행전 18:18을 든다. 칼빈은 본문상 브리스길라는 해당되지 않고, 머리를 깎은 사람이 바울인지 아굴라인지도 불확실하다고 지적한다. 바울이 깎았다고 쳐도 그것은 거룩해지려는 것이 아니었다. 믿음이 약한 유대인 형제들을 배려하려는 '사랑의 서원'이었다. 유대인에게 유대인처럼 된 것이고, 그것도 단 한 번 잠시였다. 그런데 이것을 영구 제도로 삼으면 또 하나의 유대교를 세우는 일이 된다. 남자의 머리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성직자 삭발 규정의 근거로 쓰는 것도 억지다.

  • 나실인 기원설은 유대교 모방을 고백하는 셈
  • 사도행전 18:18의 주어는 불확실하다
  • 바울의 서원은 약한 형제를 위한 사랑이었다
  • 한 번의 배려를 영구 제도로 만들 수 없다
  • 시작부터 이러니 나머지도 알 만하다
사도행전 18:18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음. 반대편 근거지만 주어도 목적도 다르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고린도전서 9:20유대인에게 유대인처럼. 바울의 행동은 사랑의 배려였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민수기 6:18나실인의 머리 깎는 규례. 유대교 의식 모방이라는 비판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민수기 6:5나실인 서원 규례 (참조 구절)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고린도전서 11:4남자의 머리에 관한 일반 가르침. 성직자 삭발과는 무관하다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27. 체발에 대한 역사적 이해

칼빈은 삭발의 실제 역사를 설명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는 멋 부리는 남자들이 머리를 길렀으므로, 성직자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머리를 짧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반대로 일부 수도사는 남과 달라 보이려고 머리를 기르기도 했다. 나중에 긴 머리가 다시 유행하고 머리를 늘 기르던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이 기독교를 받아들이자, 성직자들은 꾸민다는 인상을 피하려고 아예 머리를 밀었다. 그러다 관습의 원래 이유가 잊히자 그것을 신비로 포장해 성례처럼 떠맡긴 것이다. 하급 계급의 임직 때는 문지기는 열쇠, 낭독자는 성경, 귀신 쫓는 자는 주문서, 시종은 초와 병을 받는다. 그들은 이 의식이 보이지 않는 은혜의 원인이라고 한다. 칼빈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조차 이 계급들이 초대 교회에는 없었고 훨씬 뒤에 생겼다고 인정한다고 지적한다. 성례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기므로 천사나 사람은 성례를 만들 수 없다.

  • 삭발은 원래 꾸밈을 피하려는 생활 관습
  • 이유가 잊히자 신비로 포장되었다
  • 도구를 건네는 의식을 은혜의 원인이라 한다
  • 하급 계급은 초대 교회에 없었다
  •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만 성례를 세우신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역사적 설명 중심)

28. "사제"와 "장로"

이제 '주요' 직분인 사제, 부제, 차부제가 남는다. 이들은 말씀의 근거가 있다며 특히 '거룩한 직분'이라 불린다. 로마 교회는 사제(장로)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제단에 드려 제사하는 직분으로 본다. 그래서 임직 때 성체 그릇을 주고 두 손에 기름을 바른다. 칼빈은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직분을 가장 심하게 부패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앞의 미사 비판에서 밝혔듯이, 스스로 속죄 제사를 드린다는 사제는 그리스도를 해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맹세로 세우신 멜기세덱 계열의 영원한 제사장이며 후계자가 없다. 그분은 영원한 속죄 제사를 단번에 드리셨고 지금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지만, 그것은 찬송과 감사로 자신을 드리는 제사장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속죄 제사는 오직 그리스도의 몫이다. 반면 참된 장로 직분은 그리스도께서 명하셨으므로 칼빈도 인정한다. 안수 의식도 성경에서 왔고 바울이 영적 은혜의 증표라고 증언한다. 다만 칼빈은 이것을 세 번째 성례로 꼽지 않았다. 모든 신자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직분을 위한 특별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제사 드리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양 떼를 먹이는 일꾼을 세우라고 하셨다.

  • 속죄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끝내셨다
  •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는 후계자가 없다
  • 신자 모두는 찬송과 감사의 제사장이다
  • 참된 장로 직분과 안수는 인정한다
  • 장로는 제사장이 아니라 말씀과 목양의 일꾼
시편 110:4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장직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브리서 5:6시편 110:4를 그리스도께 적용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브리서 7:3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영원하고 후계자가 없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6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가 제사장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베드로전서 2:9같은 논점 (참조 구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레위기 5:8속죄 제사. 사제들이 자기들 권한의 근거로 끌어오는 제사 개념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디모데전서 4:14장로의 안수는 영적 은혜의 증표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마태복음 28:19복음 전파의 명령. 일꾼의 본업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가복음 16:15같은 명령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요한복음 21:15"내 양을 먹이라". 목양이 직분의 본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마태복음 28:20교회를 다스리고 지키도록 함께하시는 약속 (참조 구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9. 사제 임명과 관련된 의식들의 부당함

주님은 사도들을 보내실 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사제 임직식에서 주교가 똑같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중얼거린다. 칼빈은 이것을 생각 없이 흉내 내는 원숭이 같은 짓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은 주님의 본을 따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이 하신 일 중에는 우리에게 본으로 주신 것이 아닌 일이 많다. 주님은 나사로에게 "나오라", 병자에게 "일어나 걸으라" 하셨지만, 그들은 모든 죽은 자와 병자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주님의 숨은 그분의 신적 권능의 증거였다. 사람이 그것을 따라 하면 하나님과 겨루는 일이 되고, 효과 없이 그리스도를 욕되게 할 뿐이다. 칼빈은 사제들의 실제 삶을 비꼬면서도, 자기가 문제 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의식 자체라고 밝힌다. 그리스도께서 특정한 이적의 상징으로 하신 일을 본으로 삼은 것 자체가 잘못이다.

  • 주님의 숨은 신적 권능의 증거였다
  • 사람이 흉내 내면 하나님과 겨루는 일
  • 주님의 모든 행동이 본은 아니다
  • 나사로를 부르신 말씀도 따라 하지 않는다
  • 문제는 사람보다 의식 자체다
요한복음 20:22"성령을 받으라". 임직식에서 흉내 내는 구절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11:43"나사로야 나오라". 주님의 일 중 본이 아닌 것의 예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마태복음 9:5"일어나 걸어가라". 같은 논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요한복음 5:8같은 논점 (참조 구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30. 아론의 후계자들로 자처하는 논리의 모순

누구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아론의 자손에게서 왔다고 답한다. 칼빈은 이 답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해친다고 말한다. 구약의 모든 제사장직은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 그림자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다 담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끝났다. 히브리서가 이것을 분명히 증언한다. 그들이 모세의 의식을 그렇게 좋아한다면 왜 소와 양으로는 제사하지 않느냐고 칼빈은 묻는다. 칼빈은 그들의 기름 부음이 할례보다 더 위험하다고 본다. 유대인은 할례를 근거로 의롭다고 확신했는데, 이들은 기름 부음을 근거로 영적 은혜를 받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결국 레위 제사장을 닮으려다 그리스도를 떠나고 목자의 직분을 버린 셈이다.

  • 구약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
  •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끝났다
  • 아론의 후계를 자처하면 그리스도를 해친다
  • 의식 자체를 믿는 것은 할례 의존과 같다
  • 레위인 흉내는 목자 직분을 버리는 일
히브리서 (장절 미상)모든 제사장직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끝났다는 증언 (칼빈이 책 전체를 근거로 듦)

31. 기름 붓는 의식도 근거가 없음

그들은 임직 때 바르는 기름이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표시를 남긴다고 한다. 칼빈은 기름이 영혼과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들이 늘 인용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돌려준다. 말씀이 물에서 떠나면 물은 그냥 물이고, 물을 성례로 만드는 것은 말씀이다. 그러면 기름에는 어떤 말씀이 있는가? 모세가 아론의 자손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세는 같은 자리에서 겉옷, 에봇, 흉패, 관, 수송아지 제사, 숫양 번제, 귓부리에 피 바르기 등 수많은 명령도 받았다. 다른 것은 다 버리고 기름만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칼빈은 그들이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교를 꿰매 새 종교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말씀이라는 소금이 없으니 그 기름은 썩은 냄새가 난다. 끝으로 안수에 대해서 칼빈은 참되고 합법적인 임직에서는 안수가 성례(거룩한 표징)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약속의 목적도 생각하지 않는 의식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 기름이 영혼에 표시를 남길 수 없다
  • 말씀이 떠나면 물은 그냥 물이다
  • 모세의 명령 중 기름만 고르는 선택적 모방
  • 기독교·유대교·이교를 꿰맨 종교
  • 참된 임직의 안수는 거룩한 표징으로 인정
출애굽기 30:30아론과 아들들에게 기름 부으라는 명령. 반대편 근거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출애굽기 28:41, 29:7같은 명령 (참조 구절)
출애굽기 28:41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출애굽기 29:7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레위기 8:7, 9같은 자리의 예복 명령. 기름만 고르는 모순을 보여 줌
레위기 8:7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걸쳐 입히고 에봇의 장식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레위기 8:9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 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레위기 8:13아들들의 옷 입히기 명령. 같은 논점
모세가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웠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레위기 8:14-16수송아지 제사 명령. 같은 논점
14모세가 또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끌어오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속죄제의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매 15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제단의 네 귀퉁이 뿔에 발라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피는 제단 밑에 쏟아 제단을 속하여 거룩하게 하고 16또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을 가져다가 모세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레위기 8:18-21숫양 번제 명령. 같은 논점
18또 번제의 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19모세가 잡아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20그 숫양의 각을 뜨고 모세가 그 머리와 각 뜬 것과 기름을 불사르고 21물로 내장과 정강이들을 씻고 모세가 그 숫양의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레위기 8:22-24피를 귓부리에 바르는 명령. 같은 논점
22또 다른 숫양 곧 위임식의 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23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그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르고 24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모세가 그 오른쪽 귓부리와 그들의 손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그들의 발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모세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말씀이 물에서 떠나면 그것은 그저 물일 뿐이다.칼빈, 『기독교강요』

32. 부제(집사)

칼빈은 사도 시대와 비교적 순수했던 교회의 집사직이 회복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로마 교회의 부제는 그와 닮은 데가 없다. 그는 이것이 사람의 잘못을 근거로 교리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고 미리 밝힌다. 로마 교회 교리 자체가 정한 부제의 직무를 보라는 것이다. 사제를 보좌해 성례 준비를 돕고, 헌물을 제단에 올리고, 성찬상을 차리고, 십자가를 들고, 복음서와 서신서를 읽는 일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집사의 참된 사역은 한마디도 없다. 임직 때 주교만 안수하고, 왼쪽 어깨에 기도서와 띠를 얹어 주님의 가벼운 멍에를 받았다는 표시로 삼고, 복음서 구절을 준다. 칼빈은 사도를 세운다면서 향 피우고 성상 먼지 털고 쥐 잡는 일만 맡기는 것과 같다고 꼬집는다. 그들은 부제를 '레위인'이라 부르는데, 칼빈은 그 이름이 오히려 정체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입히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부르는 것은 반대하지 않겠다고 한다.

  • 순수한 집사직의 회복은 환영한다
  • 사람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비판한다
  • 로마 교회의 부제는 예식 보조일 뿐
  • 집사의 참된 사역이 빠져 있다
  • '레위인'이라는 이름이 정체를 드러낸다
마태복음 11:30가벼운 멍에. 부제 임직식에서 띠의 의미로 끌어다 쓰는 구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33. 차부제(부집사)

옛날 차부제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을 실제로 맡았다. 그런데 로마 교회는 잔과 그릇과 물병을 나르고, 수건을 가져다 놓고, 손 씻을 물을 붓는 잔심부름을 맡긴다. 예물을 받는다는 것도 결국 그것을 삼키는 일이라고 칼빈은 비꼰다. 임직식도 그 직분에 걸맞게 주교에게서 잔과 그릇을, 부주교에게서 물병과 예식서를 받는다. 그리고 이 물건들 속에 성령이 계신다고 고백하라고 요구한다. 칼빈은 이 모든 논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의식에 약속이 있거나 약속이 의식 속에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례가 아니다. 이 의식에는 분명한 약속의 흔적이 없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으로 기록된 것도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신품에는 성례가 없다.

  • 옛 차부제는 가난한 이를 돌보았다
  • 지금은 잔심부름만 남았다
  • 물건 속에 성령이 계신다는 고백 강요
  • 약속이 없으면 성례가 아니다
  • 신품에는 하나님의 제정도 약속도 없다
—이 절에는 칼빈이 직접 단 성경 구절이 없음 (신품 논의 결론)

결혼이 성례라는 주장의 허구성과 결혼과 관련한 로마 교회의 횡포. 34-37

34. 결혼은 성례가 아님

마지막은 혼인성사다. 결혼이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라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 칼빈도 결혼이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규례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 시대 이전에는 결혼을 성례로 시행한 예가 없다. 농사, 건축, 구두 수선, 이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정당한 일이지만 성례는 아니다. 성례가 되려면 하나님의 일일 뿐 아니라, 약속을 확인하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외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반대편은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가리키는 표징이라고 한다. 칼빈은 이렇게 답한다. 그 '표징'이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굳게 하려고 주신 상징이라는 뜻이면 크게 빗나갔다. 단순히 비교 대상이라는 뜻이면 겨자씨, 누룩, 목자, 용사, 별, 심지어 '밤에 오는 도둑'까지 다 성례가 된다. 포도나무를 보며 "나는 포도나무"라는 말씀을 떠올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런 비유를 성례로 만들면 안 된다.

  • 결혼은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규례다
  • 하지만 하나님의 규례가 다 성례는 아니다
  • 성례에는 약속을 확인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 비유를 성례로 삼으면 성례가 끝없어진다
  • 비유는 떠올리되 성례로 만들지 말라
창세기 2:21-24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마태복음 19:4예수님도 창조 때의 결혼 제정을 확인하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고린도전서 15:41-42별의 영광과 부활의 비교. 비유가 다 성례면 이것도 성례
41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마태복음 13:31겨자씨 비유. 같은 귀류법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태복음 13:33누룩 비유. 같은 귀류법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이사야 40:11목자 같으신 하나님. 같은 귀류법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사야 42:13용사 같으신 여호와. 같은 귀류법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데살로니가전서 5:2밤에 오는 도둑. 이 논리라면 도둑질도 성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15:5, 15:1포도나무 비유. 좋은 묵상 재료지만 성례는 아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한복음 10:14, 10:27선한 목자 비유. 같은 논점
요한복음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35. 에베소서 5:28의 오해

반대편은 에베소서 5:32의 "이 비밀이 크도다"에서 라틴어 성경이 '비밀'을 '성례(sacramentum)'로 옮긴 것을 근거로 결혼을 성례라 한다. 칼빈은 이렇게 성경을 다루면 하늘과 땅을 뒤섞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보여 주려고 그리스도를 본보기로 든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 하나가 되셨듯이 남편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한 말을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그러고는 "이 비밀이 크도다" 하고 맺으며, 혹시 오해할까 봐 남녀의 육체적 결합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결혼을 말한다고 직접 밝힌다. 칼빈은 그 '큰 비밀'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강하신 그리스도가 스스로 약해지셔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이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하셨다는 것이다.

  • 바울은 남편 사랑의 본으로 그리스도를 든다
  • 아담의 고백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적용한다
  • '큰 비밀'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이다
  • 바울이 직접 결혼이 아니라고 밝힌다
  •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이 비밀
에베소서 5:28-32반대편의 핵심 근거. 문맥상 '큰 비밀'은 그리스도와 교회다
28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창세기 2:23"뼈 중의 뼈". 바울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적용한 아담의 고백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갈라디아서 2:20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 '큰 비밀'의 내용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36. "뮈스테리온"의 번역 문제, 그리고 모순된 결혼관

칼빈은 '성례'라는 번역어 때문에 그들이 속았다고 본다. 바울이 쓴 헬라어는 '뮈스테리온(비밀, 신비)'이다. 라틴어 번역자는 이를 그대로 두거나 '비밀'로 옮길 수 있었는데 '사크라멘툼'을 골랐다. 그러나 그 뜻은 바울의 '신비'와 같았다. 칼빈은 같은 헬라어가 디모데전서 3:9와 에베소서 1:9, 3:3에도 나오는데 왜 유독 이곳만 고집하느냐고 묻는다. 이어 칼빈은 로마 교회의 결혼관에 담긴 모순을 지적한다. 결혼을 성례로 높여 놓고 다른 곳에서는 더러움과 정욕이라 부른다. 사제는 이 '성례'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성례가 아니라 성관계만 금한다고 하겠지만, 그들 스스로 부부의 육체적 결합이 성례의 일부이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가르친다. 또 성례에서 성령의 은혜가 주어진다면서 그 결합에 성령이 늘 함께하신다는 것은 부인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 바울의 말은 '뮈스테리온', 곧 신비다
  • 번역어 하나가 오해를 낳았다
  • 같은 단어를 다른 곳에선 그렇게 안 읽는다
  • 성례라면서 더럽다고 하는 모순
  • 사제에게 '성례'를 금하는 모순
에베소서 5:32'뮈스테리온'을 '사크라멘툼'으로 옮긴 바로 그 구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디모데전서 3:9같은 헬라어가 나오는 곳. 칼빈의 비교 근거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에베소서 1:9, 3:3같은 서신 안에서 같은 단어가 나오는 곳. 칼빈의 비교 근거
에베소서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에베소서 3: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37. 결혼과 관련한 교황제의 횡포

칼빈은 결혼을 성례로 만든 결과가 온갖 잘못의 소굴이었다고 평가한다. 결혼이 '영적 문제'가 되자 세속 법정은 손을 못 대고 교회가 결혼 사건을 독차지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불경하거나 사람에게 불공평한 법을 쏟아 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부모 허락 없이 미성년자끼리 한 혼인 약속은 유효하다. 7촌 이내 인척 간 결혼은 무효이며 이미 약속했어도 깨야 한다(모든 나라의 법과 모세의 규례에도 없는 촌수다). 간음한 아내를 내보낸 남편은 재혼할 수 없다. 대부와 대모는 서로 결혼할 수 없다. 사순절 전후, 세례 요한 탄생일 전 3주, 성탄부터 주현절까지는 결혼을 금한다. 칼빈은 이 진흙탕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며 논의를 마친다. 사자 가죽을 쓴 나귀의 가죽을 조금이나마 벗겨 냈다는 말로 이 장 전체를 닫는다.

  • 결혼을 성례로 만들자 교회가 결혼을 장악했다
  • 성경에 없는 혼인 규정을 쏟아 냈다
  • 부모 동의 없는 미성년 혼약도 유효로 봤다
  • 촌수 제한과 결혼 금지 기간을 지어냈다
  • 가면을 벗기는 것으로 논의를 마친다
레위기 18:6모세의 근친 금지 규례. 로마 교회의 촌수 규정은 이것과도 다르다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 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2.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로마 교회 (일곱 성례론)일곱 의식 모두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형식이며 은혜를 일으키는 원인이다성례는 하나님만 세우시며, 명령과 약속이 없는 의식은 성례가 아니다이사야 40:13; 로마서 11:34
이사야 40: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로마서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로마 교회 (전통 논증)일곱 성례는 고대 교회가 인정한 오랜 관례다고대 문헌에 '일곱'은 없고 아우구스티누스도 두 가지만 든다. 오래됐다고 성례가 되지도 않는다마태복음 11:29-30 (아우구스티누스 인용); 마태복음 21:25-27
마태복음 21:25-27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로마 교회 (견진)사도들도 안수로 성령을 주었으니 견진은 사도적 성례다그것은 복음 초기의 일시적 이적 은사였고, 지금 견진에는 그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사도행전 8:14-17; 요한복음 7:37
사도행전 8:14-17 14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요한복음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로마 교회 (견진)세례는 죄 사함, 견진은 싸울 힘을 준다. 견진 없이는 세례가 완성되지 않는다세례에 이미 죽음과 새 생명, 그리스도로 옷 입음이 있다. 견진 필수론은 세례를 모욕한다로마서 6:4-6; 갈라디아서 3:27
로마서 6:4-6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로마 교회 (견진 우월론)주교가 이마에 베푸니 세례보다 높다집례자로 가치를 매기면 도나투스주의다. 사도 아닌 아나니아도 성령 사역을 했다사도행전 9:17-19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로마 교회 (고해)고해는 '파선 뒤 두 번째 판자'다. 세례로 받은 깨끗함을 고해로 되찾는다약속도 하나님의 제정도 없다. 세례가 죄로 무효가 되지 않으며 세례가 곧 회개의 성례다마가복음 1:4; 누가복음 3:3
마가복음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누가복음 3: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로마 교회 (종부)야고보가 제정한 성례로 죄를 용서하고 병을 덜어 준다치유 은사가 있던 시대의 말씀이다. 그들의 관행은 대상·집례자·기름·효과 모두 야고보와 어긋난다야고보서 5:14-15; 마가복음 6:13
야고보서 5:14-15 14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6: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로마 교회 (신품)일곱 계급은 성령의 일곱 은사에 해당하고 그리스도도 그 일을 다 하셨다이사야는 여섯 가지만 말하며, 그리스도의 행동을 계급에 끼워 맞춘 억지 해석이다이사야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로마 교회 (사제직)사제는 아론의 후계로서 속죄 제사를 드린다그리스도는 후계자 없는 영원한 제사장이며 단번에 제사를 끝내셨다. 장로는 말씀과 목양의 일꾼이다히브리서 7:3; 요한복음 21:15
히브리서 7: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요한복음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로마 교회 (삭발)둥근 정수리는 '왕 같은 제사장'의 표시다그 칭호는 온 교회에 주어졌다. 몇 사람이 독차지할 수 없다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 교회 (혼인)바울이 결혼을 '사크라멘툼'이라 불렀다원어는 '뮈스테리온(신비)'이고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말한다. 비유를 성례로 삼으면 끝이 없다에베소서 5:32; 마태복음 13:31
에베소서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마태복음 13: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예상 반문세례의 물과 성찬의 떡도 썩을 물질 아닌가?성례의 효력은 물질이 아니라 그 위에 붙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린도전서 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3. 용어

성례
하나님이 직접 세우시고 약속을 붙이신, 눈에 보이는 표징으로 그 약속을 우리 믿음에 확인해 주는 의식이다(개혁교회는 세례와 성찬 둘만 인정).
견진례
세례받은 사람의 이마에 기름을 바르고 안수해 성령으로 믿음을 굳게 한다는 로마 교회의 의식이다.
고해성사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 선언을 받는 로마 교회의 의식으로, 칼빈 시대 로마 교회는 이를 성례로 보았다.
사죄 선언
사제가 "당신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포하는 행위다.
종부성사
죽음이 가까운 사람에게 사제가 축복한 기름을 바르는 의식으로, 칼빈 당시의 이름이다.
신품성사
성직자를 세우는 로마 교회의 의식으로, 문지기부터 사제까지 일곱 계급으로 나뉜다.
안수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거나 축복하는 행위다. 칼빈은 축복과 참된 임직의 안수는 인정한다.
성유
주교가 특별히 축복한 기름으로, 견진·종부·임직에 쓰인다.
도나투스주의
성례의 효력이 집례자의 거룩함이나 자격에 달려 있다고 본 고대의 이단적 입장이다.
뮈스테리온
'비밀, 신비'를 뜻하는 헬라어다. 라틴어 성경(불가타)이 에베소서 5:32에서 이를 '사크라멘툼(성례)'으로 옮겨 혼인성사 주장의 빌미가 되었다.

4. 청년의 삶으로

💬 교회의 입교식, 임직식, 결혼식이 성례가 아니면 대충 해도 되나? → 칼빈은 옛 교회의 좋은 관습을 되살리자고 했다. 성례로 높이지 않을 뿐, 그 자체로 귀하게 여긴다.
💬 같은 죄를 또 지었을 때 "내 세례는 이제 소용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 세례는 죄로 무효가 되지 않는다. 다시 세례의 약속을 떠올리며 회개하는 것이 칼빈이 말한 '회개의 성례'로서의 세례다.
💬 청년부 교리 공부가 꼭 필요할까? → 칼빈이 제안한 참된 '견진'은 교리를 배우고 교회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다. 그래야 이상한 가르침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고 했다.
💬 결혼은 성례가 아니라면서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나? 내 일은? → 칼빈은 결혼을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규례라 했고, 농사·건축·구두 수선·이발 같은 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정당한 일로 꼽았다. 거룩함은 '성례'라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데서 온다.
💬 목회자나 직분자는 나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운 계급인가? → '왕 같은 제사장'은 모든 신자의 칭호다. 직분은 말씀과 목양으로 섬기는 자리이지 특권 계급이 아니다.

5. 이 편의 결론

이 편이 남기는 것
  • 성례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약속을 붙이셔서 지금 우리에게 주신 것이어야 한다. 이 기준을 통과하는 것은 세례와 성찬뿐이다.
  • 견진·고해·종부·신품·혼인은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없거나, 사도 시대의 일시적 은사를 흉내 낸 것이다.
  • 이 의식들을 성례로 높이면 세례의 충분함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장직이 가려진다.
  • 성례가 아니라는 말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신앙 교육과 공적 고백, 공동체의 화해, 참된 임직, 거룩한 결혼은 칼빈도 귀하게 여긴다.
  • 핵심 원리는 하나다. 물질과 의식에 힘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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