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학습 노트·제4권 교회·성례·국가
제4권 교회·성례·국가

4권 10편 성찬 1 · 성찬의 신비와 그리스도의 임재

제4권 17장 1-34절(4.17.1-34), 생명의말씀사 『기독교강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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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먹는 떡과 포도주는 그냥 '기념'일까, 아니면 거기서 진짜 예수님을 만나는 걸까?
🧭흐름 한눈에

칼빈은 하나님이 입양한 자녀를 평생 먹이시는 '아버지의 식탁'으로 성찬을 소개하며 출발한다(1-3절). 성찬은 요한복음 6장의 “내가 생명의 떡이다”라는 약속에 도장을 찍는 예식이다. 그래서 성찬은 우리를 십자가로 보내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실제로 참여하게 한다(4-10절). 이 참여는 '그냥 믿는 것'보다 크다. 성령이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땅에 있는 우리를 실제로 하나로 묶으시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칼빈은 그리스도를 떡 안으로 끌어내리는 두 입장을 길게 반박한다. 하나는 떡의 본질이 몸으로 바뀐다는 로마 교회의 화체설이고(11-15절), 다른 하나는 몸이 떡 속이나 아래에 함께 있고 어디에나 있다는 편재성 주장이다(16-31절). 마지막으로 이 임재는 이해하기보다 체험하는 하늘의 신비라고 고백한다. 또 성찬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만 믿음으로 받는 사람만 그리스도를 참으로 먹는다고 결론짓는다(32-34절).

📜절별 정리

성찬은 떡과 포도주를 통하여 신령한 양식을 제공해 줌. 1-3

📜1. 성찬의 신비

하나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자녀로 받아들이신 뒤 평생 돌보신다. 그 약속을 더 확실히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에 또 하나의 성례를 주셨다. 성례란 눈에 보이는 표시로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해 주는 예식이다. 세례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는 예식이라면, 성찬은 그렇게 얻은 생명을 계속 먹여 살리는 영적인 식사다. 우리와 그리스도가 하나로 묶인 연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떡과 포도주라는 친숙한 표징(뜻을 가리키는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그것을 보여 주신다. 떡과 포도주가 몸을 살리듯 그리스도가 영혼을 살린다는 비교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다. 목적은 단번에 드린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지금 우리의 양식임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칼빈은 사탄이 오랜 논쟁으로 이 보배를 가려 왔다고 본다. 그래서 먼저 쉽게 정리한 뒤 어려운 쟁점을 다루겠다고 밝힌다.

  1. 성찬은 자녀를 먹이는 아버지의 식탁
  2. 세례는 출생, 성찬은 계속되는 양식
  3. 떡·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표징
  4. 보이지 않는 연합을 보이게 해 줌
  5. 단번의 희생을 지금 내 것으로 확인
요한복음 6:51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이라는 성찬의 출발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고린도전서 11:24
“너희를 위하는 내 몸”, 성찬에 붙은 약속의 말씀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마태복음 26:26, 마가복음 14:22, 누가복음 22:19
같은 제정 말씀을 전하는 병행 본문
마태복음 26: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가복음 14: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누가복음 22: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누가복음 22:20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 언약을 새롭게 확인함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1:25
잔에 대한 같은 말씀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 성례가 주는 확신과 기쁨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그분의 것이 우리 것이 되었다는 증거다. 그래서 신자는 세 가지를 확신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물려받은 영생이 우리 것이고, 그분이 들어가신 천국이 우리에게서 끊어지지 않으며, 그분이 우리 죄를 대신 지셨으니 우리가 정죄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것을 '놀라운 교환'이라 부른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다.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가 하늘로 올라갈 길을 내셨다. 우리의 죽을 운명을 지고 영생을 주셨고, 우리의 약함·가난·불의를 떠안고 자신의 능력·부요·의로 우리를 입히셨다.

  1. 성찬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증거
  2. 영생·천국·죄 용서를 확신하게 함
  3. '놀라운 교환': 그는 우리 것을, 우리는 그의 것을
  4. 약함↔능력, 가난↔부요, 불의↔의
📜3. 떡과 포도주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유사성

제정의 말씀은 거짓일 수 없다. 그러니 성찬에서는 그리스도가 눈앞에 계셔서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여겨야 한다. 칼빈은 말씀의 낱말 하나하나를 읽어 낸다. “받으라”는 그것이 우리 것이라는 뜻이고, “먹으라”는 우리와 하나가 된다는 뜻이며, “너희를 위하여”는 그 몸과 피가 우리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칼빈은 성찬의 힘이 거의 전부 “너희를 위하여 주는/흘리는”이라는 말에 있다고 본다. 몸과 피가 이미 우리 구속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지금 나누어 받아도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떡이 몸을 기르고 지탱하듯 그리스도의 몸은 영혼의 유일한 양식이다. 포도주가 몸에 양분과 원기와 힘을 주듯 그리스도의 피도 영혼에 같은 유익을 준다.

  1. 받으라=내 것, 먹으라=하나 됨
  2. 성찬의 힘은 “너희를 위하여”에 있다
  3. 이미 주신 몸이라야 지금 먹는 것도 유익
  4. 떡은 영혼을 기르고 지탱하는 양식
  5. 포도주는 영혼에 원기와 기쁨을 줌
마태복음 26:26-28
“받아서 먹으라… 이것을 마시라”, 낱말 분석의 본문
26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고린도전서 11:24
“너희를 위하는”, 성찬의 힘이 실린 표현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마가복음 14:22-24, 누가복음 22:19-20
같은 제정 말씀(참조)
마가복음 14:22-24 22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누가복음 22:19-20 19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성찬에 인쳐진 약속과 신비 — 이는 설명보다 느낌을 통해서 아는 것임. 4-7

📜4. 성찬과 십자가

성찬의 주된 일은 그리스도의 몸을 그냥 내미는 데 있지 않다.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6장에서 자기 살이 참된 양식이고,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약속하셨다. 성찬은 그 약속을 인친다. '인친다'는 도장을 찍듯 확증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찬은 우리를 십자가로 보낸다. 약속이 이루어진 곳이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빼놓고 그리스도를 먹으면 바르게 먹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생명의 떡'이라는 이름이 성찬에서 빌려 온 말이라고 하지만 칼빈은 아니라고 답한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시고, 희생 제물이 되시고, 죽음으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미 생명의 떡이 되셨다.

  1. 성찬은 요한복음 6장의 약속에 찍는 도장
  2. 성찬은 우리를 십자가로 데려간다
  3. 십자가 없는 성찬은 바른 먹음이 아님
  4. 성찬이 그를 떡으로 만든 게 아니다
  5. 성육신·죽음·부활로 이미 생명의 떡
요한복음 6:55
살은 참된 양식, 피는 참된 음료라는 약속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4
먹으면 영생에 이른다는 약속(번역본 표기는 6:45, 내용상 6:54로 보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48, 50
“나는 생명의 떡”, 먹으면 죽지 않음
요한복음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한복음 6: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22
사망을 삼키심(라틴어 불가타 본문의 표현, 개역성경에는 없음)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고린도전서 15:54
사망이 이김에 삼켜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고린도전서 15:53-54
썩을 몸이 썩지 않음을 입음, 부활의 영광
53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참여함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 것으로 삼게 하는 길은 복음이고, 더 선명하게는 성찬이다. 성찬은 그리스도를 생명의 떡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런 분임을 떠올리게 하고 그 맛을 느끼게 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단번에 몸을 주셨고, 지금은 말씀과 성찬으로 날마다 그 몸을 주신다. 여기서 피해야 할 오류가 둘이다. 표징과 실체를 떼어 놓는 것, 그리고 표징을 너무 높여 실체를 흐리는 것이다. 반대 입장은 '먹는다=믿는다'로 정의한다(흔히 츠빙글리 계열의 견해로 이해됨). 칼빈은 먹는 것은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라고 답한다. 에베소서 3:17에서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심'이 믿음 그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열매인 것과 같다. 떡은 보기만 해서는 소용없고 먹어야 하듯, 영혼도 그리스도께 실제로 참여해야 산다.

  1. 성찬은 이미 떡이신 분을 맛보게 함
  2. 십자가는 단번, 주심은 날마다
  3. 표징과 실체를 떼지도 섞지도 말라
  4. 먹음은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열매
  5. 떡은 봐서가 아니라 먹어야 힘이 됨
요한복음 6:51
“내가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 이 문제 전체의 요약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26 이하
'살을 먹으라'는 큰 강론, 단순한 믿음 이상을 가르침
26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에베소서 3:17
믿음과 그 효과(그리스도의 내주)를 구분하는 비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요한복음 6:48
생명의 떡 = 믿음 + 실제 참여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6. 아우구스티누스와 크리소스톰의 진술

반대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4-5세기 북아프리카의 교부)를 근거로 든다. 칼빈은 그가 “믿음으로 먹는다”고 한 말이 입이 아니라 믿음으로 먹는다는 뜻일 뿐이라고 본다. 칼빈은 그 표현을 인정하되, 그것이 완전한 정의는 아니라고 덧붙인다. 믿음으로 받을 때 그리스도는 멀리서 바라만 보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머리와 지체로 묶으시는 분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교양』 3권에서 요한복음 6:53을 비유로 풀었다. 고난에 참여하고 그 몸이 우리를 위해 상하신 것을 감사로 기억하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오순절에 회심한 삼천 명은 믿음으로 그 피를 마셨다고 했다. 크리소스톰(4세기 후반 동방 교부)은 그리스도가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그 살로 우리를 그의 몸으로 만드신다고 말했다. 믿음을 머릿속 생각으로만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성찬을 신앙고백의 표시 정도로만 보는 견해는 앞서 성례 일반(4권 14장)에서 이미 반박했다고 하며 넘어간다.

  1. 교부의 “믿음으로 먹는다”는 입이 아니라는 뜻
  2. 그 표현은 옳지만 완전한 정의는 아님
  3. 믿음은 그리스도와 몸으로 묶이는 통로
  4. 크리소스톰: 믿음은 머릿속 생각이 아님
  5. 성찬=신앙고백 표시설은 이미 반박함
요한복음 6:53
아우구스티누스가 비유로 해석한 본문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사도행전 2:41
회심한 삼천 명이 믿음으로 피를 마셨다는 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누가복음 22:20
잔에 담긴 '언약', 믿음을 세우는 약속이라는 근거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7. 성찬의 신비는 인간의 말과 생각으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음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성령에만 참여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살과 피는 말하지 않는다. 칼빈은 이것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렇게 보면 “내 살은 참된 양식”이나 “내 살을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는 말씀이 헛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반대편에는 교제를 지나치게 부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살을 유령처럼 만들어 버리는데, 칼빈은 이들을 뒤에서 길게 다루겠다고 한다. 칼빈은 이 신비가 자기 생각과 말을 넘어선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니 독자는 자기 설명을 기준으로 신비의 크기를 재지 말고 더 높이 오르려 애쓰라고 당부한다. 그럼에도 경건한 사람들이 동의하리라 믿고 최선을 다해 정리하겠다고 말한다.

  1. '성령에만 참여'는 부족한 설명
  2. 살과 피 말씀이 헛되면 안 됨
  3. 반대 극단: 교제를 부풀려 몸을 유령처럼
  4. 칼빈도 신비 앞에 압도됨을 고백
  5. 내 설명으로 신비의 크기를 재지 말라
요한복음 6:55
참된 양식·음료, 살과 피를 빼면 헛말이 됨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
살과 피 없이는 생명이 없다는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을 주는 교제와 성령의 역사하심. 8-10

📜8. 그리스도의 내주하심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만물에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시고 생명의 샘이다. 그런데 사람은 죄 때문에 그 생명에서 끊어져 사방에 죽음만 보게 되었다. 생명이 말씀 안에 있다고 들어도, 그 말씀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육체를 입고 오셨다. 보고 만질 수 있는 분이 되셨을 때 그 생명이 나타났다. 생명의 근원이 우리 육체 안에 거하시니 이제 그분은 멀리 숨어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자기가 취하신 육체에 생명의 능력을 부으셔서, 그 육체를 통해 생명이 우리에게 흘러넘치게 하셨다. 그래서 그 살이 참된 양식이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받기만 하면 된다.

  1.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생명의 근원
  2. 죄로 사람은 생명에서 멀어짐
  3. 성육신으로 생명이 가까이 나타남
  4. 그 육체가 생명을 흘려보내는 통로
  5. 마음 열고 받으면 생명을 얻는다
요한복음 1:1
태초부터 계신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일서 1:1
“생명의 말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의 근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일서 1:2
육체로 오셨을 때 생명이 나타남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한복음 6:48, 51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 세상의 생명을 위한 살
요한복음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한복음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55
그래서 살과 피가 참된 양식과 음료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9. 그리스도의 육체가 생명을 준다는 말씀의 의미

그리스도의 육체가 그 자체의 힘으로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 몸도 처음에는 죽을 몸이었고, 지금도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에게서 흘러든 생명이 그 안에 가득하기 때문에 '생명을 준다'고 말하는 것이다. 칼빈은 키릴루스(5세기 알렉산드리아 교부)와 함께 요한복음 5:26을 이렇게 읽는다. 이 구절은 태초의 신성이 아니라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가 지니신 생명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를 샘물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가 물을 마시고 밭에 대도, 물은 제 힘이 아니라 샘에서 흘러나온다. 바울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그를 머리, 우리를 “그의 살과 뼈”라고 부르는 것도 이 연합 때문이다. 바울조차 “이 비밀이 크도다”라는 탄성으로 말을 맺었다. 이런 교제를 부인하는 것은 미친 일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1. 육체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의 생명이 힘
  2. 생명은 하나님→그리스도의 육체→우리
  3.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비유
  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우리는 그 지체
  5. 바울도 설명 대신 탄성으로 맺음
요한복음 5:26
아버지가 아들에게 생명을 주심, 인성에 깃든 생명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 그의 충만함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 4:15
그는 머리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 4:16
머리에서 온몸이 연결되어 자람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고린도전서 6:15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에베소서 5:30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 가장 긴밀한 연합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에베소서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말을 넘어서는 신비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10. 성찬의 상징과 그리스도의 몸의 임재

떡과 포도주가 몸을 살리듯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영혼을 살린다. 이 비교는 그리스도가 정말 우리와 하나 되실 때만 성립한다. 하늘에 계신 몸이 어떻게 멀리 있는 우리의 양식이 되는지 믿기 어려울 수 있다. 칼빈은 성령의 능력은 우리 생각을 끝없이 넘어서니, 이해되지 않으면 믿음으로 받으라고 말한다. 성찬은 내용이 빈 표징이 아니다. 약속하신 것을 성령이 실제로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는 성찬에 나온 모든 사람에게 실체를 내미시지만, 믿음과 감사로 받는 사람만 유익을 얻는다. 고린도전서 10:16에서 떡을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라 부른 것은 표징에 실체의 이름을 붙인 표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이는 분이 아니시므로, 상징을 주실 때 실체도 함께 주신다. 그래서 신자는 주께서 정하신 상징을 볼 때마다 그 실체가 거기 있다고 믿어야 한다.

  1. 비교가 성립하려면 진짜 연합이 필요
  2. 거리 문제는 성령의 능력이 해결
  3. 성찬은 빈 표징이 아니다
  4. 실체는 모두에게 제시, 믿는 자만 유익
  5. 상징을 받을 때 실체도 함께 받는다
고린도전서 10:16
잔과 떡은 피와 몸에 '참여함', 표징과 실체를 함께 주심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성령께서 시공간상으로 분리된 것들을 진정으로 하나로 연합시키신다”

외형적 표징과 영적 실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스콜라 학자들의 오해와 화체설의 허구성. 11-15

📜11. 성례의 실체와 표징과 효과

성찬의 신비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우리 눈에 맞춘 물질적 표징이 있고, 그것을 통해 나타나는 영적 진리가 있다. 칼빈은 이를 세 가지로 풀어 설명한다. 첫째는 실체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둘째는 그 실체에 기대고 있는 표징이다. 셋째는 효과로, 구속·의·성화·영생 같은 모든 은택이다. 실체는 약속 안에 담겨 있고, 약속은 표징 안에 담겨 있다. 칼빈은 '믿음으로 받는다'는 자기 말을 '상상이나 지식으로만 받는다'는 뜻으로 비트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스도가 먼저 자신을 우리에게 주셔야 그 은택도 우리에게 오기 때문이다. 성찬의 목적은 둘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자라는 것, 그리고 그분께 참여한 뒤 그 은택 속에서 그분의 능력을 느끼는 것이다.

  1. 성찬 = 물질적 표징 + 영적 진리
  2. 실체: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3. 효과: 구속·의·성화·영생
  4. 은택보다 그리스도 자신이 먼저
  5. 믿음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 참여
📜12. 그리스도의 임재

칼빈은 그리스도가 떡에 붙어 있다고 여기는 미신을 비판한다. 로마 교회 일부는 그리스도의 몸이 공간 안에 있어서 손으로 만지고 이로 씹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교황 니콜라스는 베렌가리우스에게 회개의 증거로 그런 내용의 고백문을 받아 쓰게 했다. 그 문구가 너무 지나쳐서, 그 고백문에 해설을 붙인 저자조차 독자가 오히려 더 큰 이단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였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몸이 다른 인간의 몸과 같은 성질에 매여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몸은 재림 때까지 하늘에 계신다. 그러니 그 몸을 떡으로 끌어내리거나 어디에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상상은 필요하지도 않다. 성령이 그리스도와 우리를 잇는 끈이자 통로이시기 때문이다. 태양이 멀리서도 빛으로 땅의 생명을 기르듯, 그리스도의 영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와의 교제를 우리에게 주신다.

  1. 떡에 그리스도가 붙어 있다는 건 미신
  2. 그리스도의 몸은 재림까지 하늘에
  3. 몸을 끌어내릴 필요가 없다
  4. 성령이 그리스도와 우리를 잇는 끈
  5. 멀리서도 생명을 주는 태양의 비유
사도행전 3:21
하늘이 마땅히 그리스도를 받아 둠, 몸은 재림까지 하늘에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로마서 8:9
그리스도는 그의 영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심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3. 떡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스콜라 학자들의 오류

스콜라 신학(중세 대학에서 논리학으로 교리를 체계화한 신학)은 좀 더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리스도가 공간적으로나 몸의 모양으로 성찬 안에 들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떡의 형태(겉모양)' 아래에서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떡의 본질은 그리스도로 바뀌었는데 흰 빛깔 같은 겉모양은 남는다는 설명이다. 이 설명은 자기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라고 칼빈은 지적한다. 롬바르드(12세기 『명제집』의 저자)는 성별 이후 그리스도의 몸이 떡의 모양 아래 가려져 있다고 썼다. 성별은 예식 중 기도로 떡과 포도주를 거룩하게 구별하는 순서다. 칼빈은 이 설명이 떡의 모양을 그리스도를 가리는 가면으로 만든다고 본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이어 주는 유일한 길인 참된 믿음에는 관심을 잃었다. 남은 것은 떡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일뿐이었다고 칼빈은 비판한다.

  1. 스콜라: 겉모양 아래 그리스도가 숨음
  2. 본질은 바뀌고 빛깔만 남는다는 설명
  3. 떡 모양이 그리스도를 가리는 가면이 됨
  4. 믿음 대신 육체적 임재에 만족
  5. 결국 떡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됨
📜14. 화체설의 허구

화체설은 성별 후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고 겉모양만 남는다는 로마 교회의 교리다. 칼빈은 이 교리가 공간적 임재를 주장하다 막다른 길에서 나왔다고 본다. 몸과 떡이 어떻게 섞이는지 설명할 수 없자, 떡의 본질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로 피했다는 것이다. 옛 교부들도 '변화'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그 뜻은 성찬의 떡이 보통 떡과 다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교부들은 성찬의 땅에 속한 부분이 떡과 포도주라고 분명히 말했다. 화체설은 고대 교회가 몰랐던 최근의 발명이다. 교부들은 세례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지만, 아무도 물이 물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논증은 이것이다. 진짜 떡이 아니면 떡에서 몸으로 넘어가는 비교가 무너지고, 성례의 본질이 사라진다. 가짜 물로는 씻음을 보증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진짜 떡이 아니라면 바울이 우리가 '한 떡'에 참여한다고 말할 근거도 없다.

  1. 화체설: 본질은 바뀌고 겉모양만 남음
  2. 교부의 '변화'는 본질 제거가 아님
  3. 세례의 물도 여전히 물이다
  4. 가짜 떡이면 비교와 보증이 무너짐
  5. 화체설은 고대 교회가 몰랐던 교리
마태복음 26:26
반대자들이 내세우는 “이것은 내 몸이니라”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요한복음 6:51
성찬은 이 약속을 눈에 보이게 증거하므로 진짜 떡이 필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고린도전서 10:17
우리는 '한 떡'에 참여함, 떡이 실제로 남아 있다는 근거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5. 화체설의 실질적인 근거와 그것에 대한 논증

칼빈은 오류의 뿌리가 성별을 마술 주문처럼 여긴 데 있다고 본다. 세례의 물은 그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 약속이 붙으면 사람에게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성찬의 떡도 말씀이 전해지는 사람에게만 거룩한 물건이 된다. 광야의 반석에서 나온 물은 이스라엘에게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징이었지만 가축도 그 물을 마셨다. 변화는 물이 아니라 사람 쪽에서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로 끌어올리려 하시는데, 떡 아래 숨은 그리스도로 사람을 부르면 그 계획을 막는 셈이다. 반대자들은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된 뒤에도 '지팡이'로 불렸다는 예를 든다. 칼빈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이적이었고 곧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성찬과 다르다고 답한다. 성경은 성찬의 떡을 끝까지 "떡"이라 부른다. 예레미야 11:19를 화체설의 근거로 쓰는 것도 원래 뜻을 비튼 해석이라고 칼빈은 지적한다.

  1. 성별은 마술 주문이 아니다
  2. 변화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게
  3. 반석의 물은 가축도 마셨다
  4. 모세 지팡이는 보이는 이적, 비교 불가
  5. 성경은 성찬의 떡을 계속 '떡'이라 부름
출애굽기 17:6
반석에서 나온 물, 가축도 마심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고린도전서 10:4
그 반석은 그리스도, 같은 신령한 음료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출애굽기 4:2-4, 출애굽기 7:10
반대자들이 드는 지팡이-뱀 이적
출애굽기 4:2-4 2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출애굽기 7: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출애굽기 7:12
모세의 지팡이가 마술사들의 지팡이를 삼킴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출애굽기 7:15
지팡이가 원래대로 돌아옴, 눈에 보이는 이적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고린도전서 10:16, 고린도전서 11:26, 사도행전 2:42
성경은 성찬물을 계속 '떡'이라 부름
고린도전서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고린도전서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사도행전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예레미야 11:19
원수가 떡을 쓰게 함, 화체설 근거로 왜곡된 구절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시편 69:21
쓸개와 초, 같은 종류의 표현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성 개념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성찬 임재론에 대한 반론. 16-31

📜16. 또 다른 그릇된 주장

칼빈은 이제 다른 입장을 다룬다. 떡은 떡으로 그대로 남는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몸이 떡 속에 또는 떡 아래 감춰져 있다는 주장이다. 칼빈은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흔히 루터파 신학자들의 견해로 이해된다. 칼빈은 실체가 표징과 떨어지지 않으므로 떡이 주어질 때 몸도 함께 주어진다는 뜻이라면 크게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몸 자체를 떡 안에 두면 그 몸에 편재성을 붙이게 된다. 편재성은 몸이 동시에 어디에나 있다는 성질로, 몸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공간적 임재를 주장하는 셈이다. 몸에 닿거나 몸이 무언가를 감싸는 방식 외에는 참여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칼빈은 여기서 기초만 놓고 자세한 논의는 뒤로 미룬다.

  1. 떡은 남고 몸이 그 속/아래에 있다는 주장
  2. 함께 주어진다는 뜻이면 반대 안 함
  3. 몸을 떡 안에 두면 편재성이 필요해짐
  4. 결국 공간적 임재를 주장하는 것
📜17. 그리스도의 몸과 관련한 오류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과 땅을 채울 만큼 크다고 말한다. 출생, 성장, 죽음, 부활 후의 모습, 승천 후 스데반과 바울에게 나타나신 일은 모두 특별한 '경륜'에 따른 일시적인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경륜은 하나님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일을 펼치시는 방식을 말한다. 칼빈은 이것이 마르키온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마르키온은 2세기에 그리스도의 몸이 진짜 육체가 아니었다고 가르쳐 이단으로 배척된 인물이다. 또 어떤 이들은 성찬에서 주어지는 몸은 영광의 몸이라서 여러 곳에 있어도 모순이 없다고 한다. 칼빈은 첫 성찬 때 주신 몸이 곧 십자가에서 죽을 몸이었다고 답한다. 변화산 사건은 영생을 미리 맛보게 하신 것이지, 몸이 둘이라는 뜻이 아니다. 고난을 바로 앞둔 성찬에서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셨을 리도 없다.

  1. 몸이 우주만큼 크다는 주장은 마르키온적
  2. 생애 전체를 '임시 모습'으로 만들면 안 됨
  3. 첫 성찬의 몸은 곧 죽을 몸이었다
  4. 변화산은 영광의 미리 맛보기
  5. 몸이 둘이 되는 이론은 모순
사도행전 1:3, 고린도전서 15:5
부활 후 보통 몸으로 나타나심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고린도전서 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사도행전 1:9, 누가복음 24:51, 마가복음 16:19
하늘로 올라가심
사도행전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누가복음 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사도행전 7:55, 사도행전 9:3
승천 후 스데반과 바울에게 보이심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마태복음 17:2
변화산, 같은 몸에 새 영광이 덧입혀짐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이사야 53:4
맞고 고난받으실 때가 임박했다는 근거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18.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

몸을 떡에, 피를 포도주에 붙여 두면 몸과 피가 서로 갈라진다. 떡과 포도주는 따로 놓이기 때문이다. 반대자들은 '공존'으로 이 문제를 피하려 한다. 공존은 몸 안에 피가, 피 안에 몸이 함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둘을 담고 있는 떡과 포도주가 분명히 따로 있으니 이 설명은 모순이다. 칼빈의 길은 눈과 마음을 하늘로 들어 영광 중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떡으로 몸을, 포도주로 피를 받으며 온전한 그리스도를 누린다. 그리스도가 아버지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아버지의 권세로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그 다스림은 장소에 갇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어디서든 능력으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며, 자기 몸으로 그들을 먹이시고 성령으로 그 몸과의 교제를 주신다.

  1. 떡·포도주에 붙이면 몸과 피가 갈라짐
  2. '공존' 설명은 모순
  3. 눈을 하늘로 들어 온전한 그리스도를 누림
  4. 오른편=권세의 통치, 장소에 갇히지 않음
  5. 몸으로 먹이시고 성령으로 교제 주심
📜19. 그리스도의 임재를 생각할 때에 지켜야 할 두 가지 원칙

그리스도를 떡에 붙이거나 가두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 크기를 줄이거나, 쪼개서 여러 곳에 나누거나, 무한히 크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앞의 것들은 그분의 하늘 영광에 맞지 않고, 뒤의 것들은 참된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두 원칙이 나온다. 첫째, 그리스도를 땅의 물건에 묶어 하늘 영광을 손상하지 말라. 둘째, 몸이 무한하다거나 여러 곳에 동시에 있다는 식으로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 것을 붙이지 말라. 이 두 가지만 지키면 칼빈은 몸과 피에 진정으로, 실질적으로 참여한다는 표현을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칼빈은 자기 가르침이 성경과 일치한다고 확신한다. 다만 지금 공격이 거세니 더 신중하게 변론하겠다고 말한다.

  1. 원칙 1: 하늘 영광을 손상하지 말라
  2. 원칙 2: 참 인간 본성과 맞지 않는 것 금지
  3. 떡에 가두기·쪼개기·무한 확장 모두 거부
  4. 이 둘만 지키면 '실제 참여' 표현 환영
📜20. 성찬 제정시 하신 주님의 말씀

반대자들은 칼빈이 주님의 말씀에서 벗어났다고 비난한다. 그래서 칼빈은 제정의 말씀부터 해석한다. 화체설 쪽은 '이것'이 떡이 아니라 떡의 겉모양을 가리킨다고 한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손으로 떼어 주신 떡을 몸이라 부르셨고, 그 떡은 말씀 뒤에도 여전히 떡이었다고 답한다. '이다'를 '본질이 바뀐다'로 읽는 해석은 어떤 언어에도 없다. 떡이 남는다는 쪽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온건한 쪽은 '함께', '속에', '아래'가 다 같다고 하는데, 이는 단순한 문장을 다른 표현으로 바꾼 것이다. 강경한 문자주의자는 떡이 곧 몸이라고 하면서도, 떡이 곧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라는 결론은 부인한다. 칼빈은 “떡은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같은 종류의 문장이냐고 묻는다. 결국 '성례적 의미'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가와 바울은 잔을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 했으니, 떡도 몸으로 세운 언약이라는 뜻이다. 칼빈은 이 둘보다 믿을 만한 해석자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몸과의 실제 교제를 흐리려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한다.

  1. 화체설: '이것'=겉모양? 본문과 맞지 않음
  2. '이다'가 '본질이 바뀐다'인 언어는 없다
  3. 함께/속에/아래는 말씀을 바꾼 표현
  4. 문자주의도 결국 '성례적 의미'에 기댐
  5. 누가·바울: 잔=피로 세운 새 언약
마태복음 26:26, 마가복음 14:22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마태복음 26: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가복음 14: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고린도전서 11:24
“너희를 위하는 내 몸”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마태복음 26:28, 마가복음 14:24
“언약의 피”
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가복음 14: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고린도전서 11:25, 누가복음 22:20
“내 피로 세운 새 언약”, 칼빈 해석의 열쇠
고린도전서 11: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누가복음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1. 주님의 말씀에 대한 환유법적 해석

상징과 실체는 밀접하므로 실체의 이름이 상징에 붙는다. 칼빈은 이것을 환유법이라 부른다. 환유법은 밀접하게 관련된 다른 것의 이름으로 어떤 것을 부르는 표현법이다. 성경은 이런 표현을 흔히 쓴다. 할례를 언약, 어린양을 유월절, 희생 제물을 속죄, 광야의 반석을 그리스도라 부른다. 또 언약궤를 하나님의 얼굴, 비둘기를 성령이라 부른다. 사람이 만든 표지도 그 대상의 이름으로 불리곤 한다. 그러니 하나님이 정하셔서 실체를 틀림없이 가리키는 표징이 실체의 이름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반석 안에 신령한 음료가 실제로 있었듯, 떡도 주께서 몸을 실제로 주시는 상징이다. 반대자들은 칼빈 측을 '비유파'라고 조롱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도 표징이 실체와 닮아서 그 이름을 취한다고 말했다. 그가 성찬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반론은 일반 원리를 개별 사례에 적용하지 못하게 막는 억지다.

  1. 환유법: 실체의 이름을 상징에 붙임
  2. 할례=언약, 어린양=유월절, 반석=그리스도
  3. 하나님의 표징은 실체를 틀림없이 가리킴
  4. 반석에 음료가 있었듯 떡은 몸을 줌
  5. 아우구스티누스도 같은 원리를 가르침
창세기 17:13
할례를 '언약'이라 부름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출애굽기 12:11
어린양을 '여호와의 유월절'이라 부름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레위기 17:11, 히브리서 9:22
희생 제물을 '속죄'라 부름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브리서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출애굽기 17:6, 고린도전서 10:4
반석은 그리스도, 환유법의 대표 예
출애굽기 17: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출애굽기 3:2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심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시편 84:7
언약궤 앞에 나아감을 '하나님 앞'이라 부름(번역본 표기 84:8은 히브리어 절 구분)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시편 42:2
'하나님의 얼굴'을 뵘(번역본 표기 42:3은 히브리어 절 구분)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마태복음 3:16
비둘기를 '성령'이라 부름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22. "이것은 … 이다"라는 구문의 의미

반대자들은 '이다'라는 동사가 강해서 비유로 읽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바울이 떡을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라 불렀다고 답한다. '참여함'은 몸 그 자체와 다른 것이다. 할례, 유월절, 반석에도 똑같은 '이다'가 쓰였는데, 왜 거기서는 약하다고 하는가? 요한복음 7:39 “성령이 아직 계시지 아니하더라”를 글자 그대로 읽으면, 승천 전에는 성령이 없었다는 말이 되어 성령의 영원하심이 무너진다. 디도서 3:5는 세례를 “중생의 씻음”이라 부르지만, 세례받은 모든 사람이 중생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강한 예는 고린도전서 12:12다. 바울은 몸의 비유 끝에 교회를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칼빈은 말씀의 참뜻을 깊이 살피는 쪽이 오히려 말씀을 더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 떡은 몸에 '참여함', 몸 자체와 구별
  2. 할례·유월절·반석에도 같은 '이다'
  3. 요한복음 7:39를 문자로 읽으면 모순
  4. 교회도 “그리스도”라 불린다
  5. 참뜻을 살피는 쪽이 말씀을 더 존중
고린도전서 10:16
떡은 몸에 '참여함', 같은 '이다'의 다른 표현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창세기 17:13, 출애굽기 12:11
표징을 실체로 부르는 '이다'
창세기 17: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출애굽기 12: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고린도전서 10:4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 같은 강도의 '이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요한복음 7:39
문자로만 읽으면 성령의 영원성이 무너짐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디도서 3:5
세례=중생의 씻음, 성례적 표현의 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고린도전서 12:12
교회를 “그리스도”라 부름, 결정적인 반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23. 완전한 문자적 해석은 불가능함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하나님은 '용사'가 되고, 눈·귀·손과 발판을 가진 분이 된다. 옛 신인동형론자들이 바로 그렇게 했다. 신인동형론자는 하나님에게 사람 같은 몸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다. 반대자들은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자리에서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셨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그 말이 오히려 자기 편 근거라고 받아친다. 제자들은 같은 시기에 작은 말씀에도 쩔쩔맸다. 그런 제자들이 식탁에 앉아 계신 분이 동시에 떡 속에 보이지 않게 계신다는 말을 쉽게 믿었겠는가? 제자들이 주저 없이 먹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상징에 실체의 이름을 붙이는 익숙한 표현으로 알아들었다는 증거다. 또 글자에 매이면 떡과 잔에 다른 말씀을 하신 것이 어색해진다. 몸과 피가 분리되거나, 떡이 피이고 포도주가 몸이라는 모순까지 생긴다.

  1. 문자만 고집하면 하나님에게 몸이 생김
  2. 제자들은 작은 말에도 당황했다
  3. 주저 없이 먹은 건 상징으로 이해했기 때문
  4. 위로의 말씀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분명함
  5. 문자주의는 떡=피 같은 모순을 낳음
출애굽기 15:3
하나님은 '용사', 비유적 표현의 예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신명기 11:12
하나님의 '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민수기 11:18
여호와께 '들렸다', 하나님의 귀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이사야 5:25
하나님의 '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이사야 66:1
땅은 그의 '발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요한복음 14:5-8, 요한복음 16:17
제자들이 작은 말씀에도 혼란스러워함
요한복음 14:5-8 5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한복음 16: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24. 우리의 해석이 인간의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비난에 대한 반박

반대자들은 칼빈 측이 이성에 매여 하나님의 능력을 상식 안에 가둔다고 비난한다. 칼빈은 자기 가르침이 자연과학이 아니라고 답한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살이 땅의 영혼을 먹인다는 것 자체가 이적투성이다. 땅에서 나서 죽음을 겪은 살이 영혼에 하늘의 생명을 준다는 것보다 자연을 넘어서는 일은 없다. 그러니 이 가르침을 맛본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 찬송할 수밖에 없다. 반대자들은 스스로 이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진다고 여긴다. 문제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시는가'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죄 외에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기를 원하셨다. 살의 본질은 한 장소에 있고, 크기와 형체를 가지는 것이다. 살이면서 동시에 살이 아니게 하라는 요구는 빛이면서 어둠이 되라는 억지다.

  1. 칼빈의 가르침도 이적으로 가득하다
  2. 하늘의 살이 영혼을 먹이는 건 초자연
  3. 질문은 '하실 수 있나'가 아니라 '원하시나'
  4. 그리스도는 죄 외에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음
  5. 살은 살, 영은 영,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히브리서 2:17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4:15
죄 외에는 우리와 같음(번역본 표기는 4:14, 내용상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25. 말씀은 이해와 해석이 필요함

반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 주는 말씀이 있다고 내세운다. 칼빈은 그들에게 말씀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신인동형론자나 마르키온, 마니교도도 성경 구절을 들었다고 지적한다. 교회에는 말씀을 밝히는 해석의 은사가 있으며, 그것을 내쫓을 수는 없다. 자연 질서를 뒤집는 기이한 이론을 만들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고 믿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다. 몸이 하늘에서는 보이고 땅의 떡 부스러기 속에는 숨는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 생각은 '입으로 먹는다'는 선입견에서 나왔다. “어떻게 숨어 계시는지는 우리가 알 바 아니다”라는 태도는 겸손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만이다. 칼빈 측은 말씀을 부지런히 묵상하고, 성령이 주시는 뜻에 자기 생각을 굴복시킨다. 마리아가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물은 것처럼, 어려운 문제 앞에서 '어떻게'를 묻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1. 말씀이 있다고 해석이 끝나는 건 아님
  2. 이단들도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3. 기이한 이론을 만드는 게 하나님을 시험함
  4. '알 바 아니다'는 겸손 아닌 교만
  5. 묻고 묵상하며 성령의 뜻에 굴복함
고린도전서 12:10
교회에 주신 해석의 은사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린도전서 15:47
이단들이 그리스도의 '하늘 몸' 근거로 오용한 구절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빌립보서 2:7
같은 방식으로 오용된 구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야고보서 1:21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는 자세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누가복음 1:34
'어떻게'를 묻는 것은 정당함(마리아)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26. 그리스도의 임재에 관한 해명

부활 후 그리스도의 몸이 유한하고 마지막 날까지 하늘에 있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이다. 반대자들은 '떠난다'는 말씀이 죽을 상태에서 바뀐다는 뜻일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자기 대신 성령을 보내실 이유가 없다. 성령 강림과 승천은 짝을 이루는 사건이다. 마태복음 26:11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를 가난한 처지를 계속 겪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읽는 것도 문맥에 맞지 않는다. 그 장면은 향유를 부어 주님께 존귀를 드리는 이야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가 몸으로는 떠나셨지만, 위엄·섭리·은혜로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신다고 풀었다. 칼빈은 이 은혜의 임재 안에 몸과 피의 교제를 넣는다. 단, 몸이 떡에 숨는 방식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조건에서다. 그리스도가 하늘의 어느 구역에 계시냐는 질문은 호기심일 뿐이니, 하늘에 계신다는 믿음으로 충분하다.

  1. 몸이 하늘에 있다는 건 성령의 가르침
  2. 승천과 성령 강림은 짝을 이룬다
  3. 마태복음 26:11은 몸의 부재를 말함
  4. 위엄·섭리·은혜로는 항상 함께하심
  5. 몸과 피의 교제는 성령으로 이루어짐
사도행전 3:21
마지막 날까지 하늘에 계심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요한복음 14:12, 요한복음 14:28, 요한복음 16:7
그리스도가 떠나가심, 성령을 보내실 근거
요한복음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한복음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요한복음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한복음 16:28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심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마태복음 26:11, 요한복음 12:8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몸의 부재
마태복음 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8-11
향유 사건, 존귀를 받는 문맥
8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8:20
위엄과 은혜로는 항상 함께하심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3, 사도행전 1:9
사십 일 동안 함께하시고 승천하심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마가복음 16:6, 마가복음 16:19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오른편에 앉으심
마가복음 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히브리서 1:3
위엄의 임재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요한복음 20:27
만질 수 있는 살과 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7. "승천"의 의미

승천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 가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높은 곳'이 통치의 위엄을 뜻할 뿐이라고 한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제자들 눈앞에서 공중으로 오르셨고 구름이 그 아래를 가렸다고 반박한다. 다시는 보이지 않으실 것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순간 사라지셔도 충분했다. 올라가신 방식 자체가 이제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그분을 찾으라는 가르침이다. 바울도 하늘에서 오실 구주를 기다리라고 말한다. 반대자들은 그리스도가 땅을 떠나신 적이 없고 보이지 않게 계신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그러면 천사의 말이 이중 임재를 뜻하게 된다고 반박한다. 천사들의 말은 이런 뜻이다. 그리스도가 하늘 권세를 받으셨으니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까지 기다리라. 그분이 하늘에 가신 것은 우리를 함께 모으시기 위해서다.

  1. 승천은 실제 장소 이동이다
  2. 눈앞에서 오르신 방식이 메시지
  3. 이제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찾으라
  4. 하늘에서 오실 구주를 기다린다
  5. 하늘에 가심은 우리를 모으시기 위함
사도행전 1:9
보는 데서 올려지시고 구름이 가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마가복음 16:19, 누가복음 24:51
하늘로 올려지심
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누가복음 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빌립보서 3:20
하늘로부터 구주를 기다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사도행전 1:11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심, 지금은 하늘에 계심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28. 아우구스티누스의 증언

반대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 편이라고 주장한다. 칼빈은 몇 가지 증언만으로 그가 칼빈 편임을 보이겠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찬에서 살과 피가 나누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성례'라고 부르며, 표징이 실체를 닮아서 그 이름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에서” 자기 손에 자기를 들고 계셨다는 말에도 '~처럼'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는 또 공간을 잃은 몸은 어디에도 없고,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는 어디에나 계시고, 사람으로서는 하늘에 계신다고도 했다. 십자가 표시, 세례, 성찬을 나란히 놓고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길로 말한 것을 보아도, 떡 속에 숨은 몸을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영적 임재로 함께하시려고 육체적 임재를 거두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육체적'을 '눈에 보이는'으로 바꿔 읽는 것은 궤변이다.

  1. 아우구스티누스도 '성례' 언어로 말함
  2. “어떤 의미에서”라는 단서에 주목
  3. 공간 없는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4. 하나님으로서 어디나, 사람으로서 하늘에
  5. 육체적 임재 대신 영적 임재
마태복음 26:11
육체적 임재로는 항상 함께 있지 않음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8:20
위엄과 은혜로는 항상 함께하심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7:12
영적 임재로 교회와 함께하심(참조)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29.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반대자들은 '보이지 않는 임재'를 피난처로 삼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이 보이지 않는다는 성경 구절은 하나도 없다. 떡 속에 숨지 않으면 성찬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전제 자체도 증명된 적이 없다. 이 이론대로라면 몸이 둘이 된다. 하나는 하늘에서 보이는 몸, 다른 하나는 성찬에서 보이지 않는 몸이다. 영광의 몸은 자연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은 세르베투스의 오류로 이어진다. 세르베투스는 신성이 몸을 삼켰다고 주장했고, 이렇게 되면 신성과 인성의 구분이 사라진다. 부활하신 주님은 손과 발을 보고 만져 보라고 하셨다. 바울은 우리 몸도 그분의 영광의 몸처럼 변하리라고 한다. 그분의 몸이 진짜가 아니면 우리 부활 소망도 무너진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붙잡지 말라 하신 것은 하늘에서 찾게 하시려는 뜻이었다. 스데반의 환상, 닫힌 문, 엠마오에서 사라지신 일도 몸이 어디에나 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1. 몸이 보이지 않는다는 성경 근거 없음
  2. 몸이 둘이 되는 모순
  3. 신성이 인성을 삼키면 세르베투스의 오류
  4. “만져 보라”, 부활의 몸도 참된 몸
  5. 그의 몸이 진짜라야 우리 부활도 확실
사도행전 3:21
다시 오실 때까지 하늘이 받아 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누가복음 24:39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부활의 몸의 실재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빌립보서 3:20-21
우리 몸도 그 영광의 몸처럼 변화됨
20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20:17
붙잡지 말라, 하늘에서 찾게 하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사도행전 7:55
스데반의 눈을 밝혀 하늘을 보게 하심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9:4
바울의 경우도 같음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마태복음 28:6, 요한복음 20:19
닫힌 무덤과 닫힌 문, 반대자들의 근거
마태복음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마태복음 14:25
물 위를 걸으심, 능력의 예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누가복음 24:31
엠마오에서 사라지심, 보이지 않는 몸이 아님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누가복음 24:16
제자들의 눈이 가려졌을 뿐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30. 그리스도의 편재성 개념의 허구

보이지 않는 임재를 인정해도, 몸이 동시에 어디에나 있다는 무한성이 증명되지 않으면 떡 속 임재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대자들이 끌어들인 개념이 편재성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이 인간의 몸이며, 승천으로 한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셨다고 가르친다. 반대자들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으리라”를 근거로 든다. 칼빈은 두 가지로 답한다. 첫째, 그 말씀이 몸에 대한 것이라면 성찬과 상관없이 늘 육체로 계셔야 하니, 떡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둘째, 문맥은 사명을 받은 제자들을 지키시겠다는 보호의 약속이다. 어떤 이들은 두 본성이 연합했으니 신성이 있는 곳에는 육체도 있다고 말한다. 칼빈은 이것이 두 본성을 섞어 버린 유티케스(5세기,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하나로 섞었다가 정죄된 인물)와 같다고 본다. 성경은 한 인격 안의 두 본성이 각각 고유성을 지킨다고 가르친다. “영광의 주가 못 박혔다” 같은 표현은 '속성 간의 교류'로 이해해야 한다. 스콜라 신학도 '그리스도 전체'는 어디에나 계시지만 '그리스도 안의 모든 것'이 어디에나 있지는 않다고 구분했다. 성찬에도 그리스도 전체가 임재하시지만, 그분의 육체는 하늘에 있다.

  1. 편재성은 떡 속 임재를 위한 억지 개념
  2. 마태복음 28:20은 몸이 아닌 보호의 약속
  3. 두 본성을 섞으면 유티케스의 오류
  4. 한 인격, 두 본성, 각자 고유성 유지
  5. 그리스도 전체는 어디나, 육체는 하늘에
마태복음 28:20
반대자의 근거, 문맥상 보호의 약속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13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속성 교류로 읽어야 함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18
아버지 품속의 독생자, 같은 방식으로 읽음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고린도전서 2:8
영광의 주가 못 박히심, 속성 교류의 대표 예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골로새서 2:9
신성이 육체로 거하심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31.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마지막 정리

그리스도의 육체가 떡 속에 없으면 성찬에 임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다. 그렇게 보면 우리를 그리스도와 묶으시는 성령의 역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반대자들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내려오셔야만 임재하신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를 자기에게로 들어 올리셔도 똑같이 임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니 쟁점은 임재 여부가 아니라 방식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떡 속에 두고, 칼빈 측은 그분을 하늘에서 끌어내리지 않는다. 떡 껍질 속에 없으면 성찬에서 그리스도가 빠진다는 비난은 버려야 한다. 성찬은 하늘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1. 떡 속에 없어도 임재는 있다
  2. 내려오심 대신 우리를 들어 올리심
  3. 쟁점은 임재 여부가 아니라 방식
  4. 성령의 역사에 자리를 내어 드려라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이 참여하는 육체적 임재의 참된 본질. 32-34

📜32. 그리스도의 임재는 하늘의 신비임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느냐고 묻는다면, 칼빈은 자기 생각과 말을 넘는 비밀이라고 부끄럼 없이 고백한다. 그래서 논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쉬겠다고 말한다. 주님이 자기 살과 피가 내 영혼의 양식이라고 하셨으니, 나는 영혼을 드려 그것을 먹는다. 주님이 정말 주시고 내가 정말 받는다는 것을 칼빈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의 하늘 위엄에 어울리지 않거나 참된 인성과 부딪치는 생각은 거부한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적이어서 세상의 이성에 매이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이 신비는 사람이 행하지만 하나님이 이루시고, 땅에서 행하지만 하늘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임재는 영생의 확신과 함께 우리 몸도 영원히 살리라는 확신을 준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살이 우리 영혼과 섞인다는 생각은 거부한다. 그 살에서 생명을 불어넣으신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믿음의 유비에도 맞는다.

  1. 이해보다 체험하는 신비
  2. 정말 주시고 정말 받는다
  3. 하늘 위엄·참된 인성과 맞는 것만
  4. 살이 섞이지 않고 생명을 불어넣으심
  5. 우리 몸의 부활까지 확신하게 함
요한복음 6:53 이하
살과 피가 영혼의 양식이라는 선언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누가복음 24:26
그리스도가 영광에 들어가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로마서 12:3, 로마서 12:6
믿음의 분량, 해석은 믿음의 유비에 맞아야 함
로마서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요한일서 4:2-3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시인해야 함
2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그런 일은 이해하기보다는 체험하는 것이라 하겠다.”
📜33. 영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그리스도의 몸에의 참여

우리가 알 수 없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성령께 잘못하는 것이다. 칼빈은 이 신비가 지난 사백여 년 동안 바르게 높여졌다면 교회의 분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단번에 주신 몸이 어떻게 우리 것이 되는가'다. 그런데 반대자들은 '몸이 떡 속에 어떻게 숨는가'에만 매달렸다. '영적으로 먹는다'는 말은 실제로 먹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방식이 영적이라는 뜻이고, 그 이유는 성령이 연합의 끈이시기 때문이다. 이 혼란에서 불신자도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다는 생각이 나왔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 살을 먹을 수 없다고 답한다. 주시는 것과 받는 것은 다르다. 몸과 피는 모두에게 진정으로 주어지지만, 단단한 바위가 빗물을 받지 못하듯 불신자는 받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11:27의 정죄도 성찬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한 연합의 보증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1. 영적으로 먹음 = 성령으로 실제로 먹음
  2. 핵심 질문: 그 몸이 어떻게 내 것이 되나
  3. 주시는 것과 받는 것은 다르다
  4. 바위에 떨어진 빗물처럼 불신자는 못 받음
  5. 정죄는 연합의 보증을 짓밟았기 때문
요한복음 6:56
먹는 자는 그 안에 거함, 먹음과 연합은 분리되지 않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마태복음 13:7
반대자의 근거(가시밭), 일시적 믿음의 이야기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태복음 13:4-5
길가와 돌밭, 불신의 완악함이 막음
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요한복음 4:6-15
우물가에서 생명을 퍼냄, 성찬의 도움
6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
고린도전서 11:27
몸과 피를 범하는 죄, 멸시 때문에 받는 정죄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34. 불신자들의 성찬 참여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증언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이 악해도 성찬이 가리키는 은혜가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고 가르쳤다. 반대자들은 이 말을 '악인도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다'는 뜻으로 끌어간다. 칼빈은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말로 보여 준다. 그는 영원히 사는 사람은 보이는 성례가 아니라 그 능력을 받은 사람, 이로 씹지 않고 마음으로 먹는 사람이라고 했다. 모세와 아론과 비느하스는 만나를 영적으로 이해하고 맛보았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표징을 입으로 씹어도 영적으로 먹은 것이 아니다. 유명한 말도 남겼다.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신 떡을 먹었고, 유다는 주님의 떡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는 “입이 아니라 마음을 준비하라”고 했고, 성례는 택함 받은 사람에게만 그 효과를 낸다고 했다. 키릴루스도 녹은 밀랍에 밀랍을 부어 섞이듯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야 살과 피를 받는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몸은 그 능력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성례로만 먹는 사람은 참되게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약속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바위가 비를 받지 못해도 하나님은 계속 비를 내리신다.

  1. 은혜는 무효화되지 않지만 받지 못할 수 있음
  2. 이가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다
  3. 유다는 '주님의 떡'만 먹었다
  4. 입이 아니라 마음을 준비하라
  5. 바위가 못 받아도 비는 계속 내린다
요한복음 6:54, 요한복음 6:51, 요한복음 6:50
먹는 자는 죽지 않음, 마음으로 먹는 자에 대한 말씀
요한복음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출애굽기 16:14 이하
만나, 영적으로 이해하고 맛본 사람들의 예
14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
고린도후서 12:7
사탄의 사자가 바울을 온전케 함, 유다의 경우와 대조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1:29
분별하지 못하고 먹는 자의 심판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6:15
그리스도의 지체이면서 창녀의 지체일 수 없음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6:56
참으로 먹는다는 것은 서로 안에 거하는 것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나머지 제자들은 주님이신 떡을 먹었으나 유다는 주님의 떡을 먹었다”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성찬=고백의 표시 (흔히 츠빙글리 계열로 이해됨)성찬은 신앙을 고백하는 표시이고, 먹는 것은 곧 믿는 것이다먹는 것은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열매다. 실제로 그리스도께 참여해야 산다에베소서 3:17, 요한복음 6:55
에베소서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요한복음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성령에만 참여한다는 견해교제는 성령과의 교제일 뿐, 살과 피는 말할 필요 없다그러면 살과 피에 대한 말씀이 헛말이 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와의 교제를 주신다요한복음 6:53, 요한복음 6:55, 로마서 8:9
요한복음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 교회 일부 (베렌가리우스 고백문)그리스도의 몸을 손으로 만지고 이로 씹는다몸은 재림까지 하늘에 있다. 성령이 거리를 넘어 연결하신다사도행전 3:21, 로마서 8:9
사도행전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스콜라 신학·화체설성별로 떡의 본질이 몸으로 바뀌고 겉모양만 남는다진짜 떡이 아니면 표징과 실체의 비교가 무너진다. 교부들도 떡이라 했고, 세례의 물도 물로 남는다고린도전서 10:16-17, 고린도전서 11:26, 사도행전 2:42
고린도전서 10:16-17 16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린도전서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사도행전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화체설 옹호(모세 지팡이)지팡이가 뱀이 되어도 지팡이로 불렸듯, 떡도 겉모양 때문에 떡이라 부른다그것은 눈에 보이는 이적이었고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성찬과 비교할 수 없다출애굽기 7:10, 출애굽기 7:12, 출애굽기 7:15
출애굽기 7: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출애굽기 7: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출애굽기 7: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화체설 옹호(예레미야 본문)예레미야 11:19의 '떡 속 나무'가 십자가와 성찬을 가리킨다원수가 떡을 쓰게 했다는 원래 뜻을 비튼 알레고리다예레미야 11:19, 시편 69:21
예레미야 11:19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시편 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떡 속/아래/함께 임재 (흔히 '공재설'이라 불림, 루터파 입장으로 이해됨)떡은 남고 몸이 그 속에 감춰져 함께 있다몸에 편재성을 붙이게 되어 참된 인성과 하늘 영광을 손상한다사도행전 3:21, 누가복음 24:39
사도행전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누가복음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편재성(두 본성 연합 근거)신성이 있는 곳에는 연합된 육체도 있다두 본성을 섞은 유티케스의 오류다. 한 인격 안에서 각 본성은 고유성을 지킨다고린도전서 2:8, 골로새서 2:9, 마태복음 28:20
고린도전서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골로새서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엄격한 문자주의“이것은 내 몸이다”를 비유로 읽으면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다성경은 성례에서 늘 환유법을 쓴다. 누가와 바울이 직접 “피로 세운 언약”이라 풀었다고린도전서 10:4, 고린도전서 10:16, 누가복음 22:20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린도전서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누가복음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성으로 하나님 능력을 제한한다”는 비난하나님은 몸을 어디에나 있게 하실 수 있다질문은 하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원하시느냐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몸이기를 원하셨다히브리서 2:17, 히브리서 4:15
히브리서 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승천=위엄의 상징일 뿐그리스도는 땅을 떠나지 않고 보이지 않게 계신다눈앞에서 오르신 것은 실제 이동이다. 이제 하늘에서 찾고 기다려야 한다사도행전 1:9-11, 빌립보서 3:20
사도행전 1:9-11 9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영광의 몸은 자연을 초월부활한 몸은 여러 곳에 동시에 보이지 않게 있을 수 있다부활의 몸도 만질 수 있는 참된 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활 소망도 무너진다누가복음 24:39, 빌립보서 3:20-21
누가복음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빌립보서 3:20-21 20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불신자도 몸을 먹는다성찬에 주어진 것은 몸이므로 악인도 몸을 먹는다몸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만 믿음 없이는 받지 못한다. 유다는 떡만 먹었다요한복음 6:56, 고린도전서 11:27
요한복음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고린도전서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용어
성례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표시를 붙여 약속을 확인해 주시는 예식(개신교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
표징과 실체표징은 떡과 포도주처럼 뜻을 가리키는 눈에 보이는 물건이고, 실체는 그것이 가리키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인친다도장을 찍듯이 약속이 틀림없다고 확증한다는 뜻.
성별예식에서 말씀과 기도로 떡과 포도주를 거룩한 용도로 구별하는 순서.
화체설성별 후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고 겉모양만 남는다는 로마 교회의 교리.
편재성(遍在性)그리스도의 몸이 동시에 어디에나 있다는 주장(번역본에 '偏在性'으로 적힌 곳은 오기).
환유법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의 이름을 빌려 부르는 표현법(예: 할례를 '언약'이라 부름).
속성 간의 교류그리스도는 한 인격이므로, 한 본성에 속한 일을 다른 본성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다는 교부들의 원리.
믿음의 유비성경의 한 구절은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믿음의 큰 틀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리.
스콜라 신학중세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으로 교리를 정교하게 체계화한 신학.
💬청년의 삶으로
  • 신앙이 머리로 아는 지식뿐인 것 같아 메마를 때 → 칼빈은 “먹는다”를 지식 이상의 실제 참여로 본다. 떡은 봐서가 아니라 먹어야 힘이 되듯, 성찬은 그리스도를 맛보게 하는 자리다.
  • 일과 돈 문제로 지치고 가진 게 없다고 느낄 때 → '놀라운 교환'은 그리스도가 내 가난과 약함과 불의를 지고 자기 부요와 능력과 의를 입히셨다는 영적 확신이다. 성찬은 그 교환이 내 것임을 확인시킨다.
  • 바쁜 직장 생활 속에 예수님이 멀게 느껴질 때 →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있지만, 그분은 능력과 성령으로 어디서든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먹이신다(18절). 거리는 성령이 이으신다.
  • 기분이 가라앉아 성찬이 아무 느낌 없을 때 → 성찬의 진실성은 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다. 몸과 피는 진정으로 주어지고, 내 몫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33절).
  • 겉으로만 교회를 다니는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성찬을 받을 때 → 칼빈은 겉으로 받는 것과 마음으로 받는 것을 구분한다. 성찬 앞에서 묻는 질문은 “입이 아니라 마음을 준비했는가”이다(34절). 남을 판단하기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 편의 결론
  • 성찬은 하나님이 입양한 자녀를 평생 먹이시는 식탁이며, “너희를 위하여” 단번에 주신 십자가의 몸과 피를 지금 내 것으로 확증한다.
  • 성찬에서 그리스도는 실제로 주어진다. 그러나 그분의 몸은 재림까지 하늘에 있고, 성령이 그 거리를 넘어 우리를 그분과 하나로 묶으신다.
  • 화체설과 편재성은 그리스도를 떡으로 끌어내리려다 참된 인성과 하늘 영광을 함께 해친다. “이것은 내 몸이다”는 성경 전체의 성례 언어(환유법)로 읽어야 한다.
  • 성찬은 모두에게 진정으로 제시되지만 믿음으로 받는 사람만 그리스도를 참으로 먹는다. 이것은 이해하기보다 체험하는 하늘의 신비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존 칼빈 『기독교강요』(생명의말씀사)의 논증 구조를 우리 말로 정리한 것입니다(원문 미전재).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기준입니다. youtube.com/@빛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