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잘 믿으면 되지, 왜 굳이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 붙어 있어야 하나?
3권에서 칼빈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4권은 그 믿음을 낳고 키우는 '바깥의 도움'을 다루며, 첫 편에서 교회를 신자의 '어머니'라고 부른다(1–4절). 하나님은 사람 목사를 통해 가르치시기로 정하셨다(5–6절). 칼빈은 하나님만 아시는 보이지 않는 교회와 우리가 함께 사는 보이는 교회를 나누고, 보이는 교회를 알아보는 기준으로 '말씀의 순수한 선포'와 '성례의 바른 시행'이라는 두 표지를 제시한다(7–9절). 이 표지가 있으면 도덕과 교리에 결점이 있어도 그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고 고린도 교회, 선지자들, 예수님의 예로 증명한다(10–19절). 교회의 거룩함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자라 가는 중이므로 교회 안에는 평생 이어지는 죄 사함이 있다(20–22절). 마지막으로 세례 뒤에 지은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주장을 구약, 신약, 고대 교회의 예로 반박한다(23–29절).
1. 절별 정리
신자의 어머니인 거룩한 공교회. 1–4
1. 교회의 필연성
3권에서 본 대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은 믿음으로 우리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무지하고 게으르며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믿음이 생기고 자라서 끝까지 가려면 바깥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이 약함을 아시고 복음이라는 보배를 교회에 맡기셨다. 목사와 교사를 세워 권위를 주셨고, 특히 성례를 제정해 믿음을 붙들어 주신다. 우리는 아직 몸을 입고 사는 존재라서 천사처럼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수준에 맞추어 길을 내신 것이다. 칼빈은 4권의 순서를 교회(정치·질서·권한), 성례, 국가 질서로 예고하고, 교황 교회의 부패를 함께 경계하겠다고 밝힌다. 하나님이 아버지인 사람에게는 교회가 어머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신 뒤에도 마찬가지다.
- 믿음은 바깥의 도움으로 생기고 자란다
- 그 도움은 교회, 목사·교사, 성례다
- 하나님이 우리 수준에 맞추신 방식이다
- 4권의 순서: 교회 → 성례 → 국가
-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교회는 어머니다
2. 가시적 교회와 보편 교회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는 지금 눈에 보이는 교회만 가리키지 않는다. 이미 죽은 사람을 포함해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까닭은 누가 하나님의 양인지 우리 눈으로 가려낼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칼빈은 '교회 안에(in) 믿는다'보다 '교회를 믿는다'가 정확하다고 본다. 니케아 신경 등에 'in'을 붙인 예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와 옛 사도신경 해설자는 'in' 없는 형태를 지지했다. 'in'은 마음을 맡기고 신뢰하는 대상, 곧 하나님께만 쓰는 말이므로 교회·죄 사함·부활에 붙이면 어색하다. 다만 칼빈은 말다툼을 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이 조항의 핵심은 마귀가 아무리 공격해도 그리스도의 은혜는 꺼지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밀한 택하심이므로 누가 교회인지 정확히 아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한 머리 아래 다른 지체들과 연합해 있어야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는 나뉘지 않으시므로 교회도 하나뿐이다. 그래서 '공교회', 곧 보편 교회라고 부른다. 교회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때에도 하나님은 엘리야 시대의 칠천 명처럼 교회를 숨겨서 지키신다.
- 신경의 '교회'에는 모든 택자가 포함된다
- '교회 안에'보다 '교회를' 믿는다가 정확하다
-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밀한 택하심이다
- 그리스도가 하나이시니 교회도 하나다
- 황폐한 때에도 교회는 숨겨져 보존된다
3. 교회의 통일성
사도신경의 이 조항은 보이는 교회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 우리는 다른 신자들과 화목하고, 교회의 정당한 권위를 존중하고, 양 떼의 일원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중요하다. 이 구절은 고대 문헌에 대개 빠져 있지만,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는 공동체라는 교회의 정체를 잘 보여 준다. 이것이 은사의 다양함을 없애자는 뜻은 아니다. 사유재산을 없애자는 뜻도 아니다. 칼빈은 재산 소유가 분명해야 사회의 평화가 유지된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초대교회처럼 한마음 한뜻인 공동체는 분명히 인정한다. 내가 교회의 지체임을 믿으면 구원이 단단한 기반 위에 선다. 칼빈은 세상이 무너져도 교회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네 가지 든다. 하나님의 택하심, 그리스도의 견고하심과의 연결, 교회의 품에 있는 한 진리가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시온에 대한 약속이다. 교회의 하나 됨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붙드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택자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들어온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 '성도의 교통'은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는 것
- 은사의 다양성과 사유재산은 그대로 인정한다
- 교회는 하나님의 택하심 위에 서 있어 흔들리지 않는다
- 다른 지체가 받은 복이 곧 나의 위로다
- 하나 됨은 눈이 아니라 믿음으로 붙든다
4. 신자의 어머니인 가시적 교회
이제 칼빈은 보이는 교회로 초점을 옮긴다. '어머니'라는 호칭 하나만 보아도 교회를 아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잉태하고 낳고 젖을 먹여 기르듯, 교회는 우리가 죽을 몸을 벗고 천사처럼 될 때까지 돌보고 이끈다. 이것 말고 생명으로 들어가는 다른 길은 없다. 우리는 약해서 평생 교회라는 학교의 학생으로 남아야 한다. 이사야와 요엘이 말하듯 이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는 죄 사함이나 구원을 바랄 수 없다. 에스겔은 하나님께 거부당한 자는 하나님 백성의 명부에 오르지 못한다고 하고, 반대로 돌이킨 자는 예루살렘 주민으로 이름이 기록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사랑의 특별한 증거는 그분의 백성 안에만 있으므로, 교회를 떠나는 것은 언제나 치명적이다.
- 교회는 낳고 기르고 끝까지 지키는 어머니
- 평생 교회라는 학교의 학생이다
- 어머니의 품 밖에는 죄 사함의 소망이 없다
- 하나님 백성의 명부에 이름이 오른다
- 교회를 떠나는 것은 치명적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사역자들. 5–6
5. 교회를 통한 교육, 그 가치와 의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한순간에 완전하게 만드실 수도 있다. 그런데도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자라게 하시기로 정하셨고, 그 방법으로 목사들에게 말씀 전하는 일을 맡기셨다. 그러므로 교회가 주는 영의 양식을 거부하는 사람은 굶주릴 수밖에 없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지만 복음 선포 안에서 드러난다. 구약에서 성전을 하나님의 '쉴 곳'과 '거처'라고 부른 것도, 연약한 사람이 맡은 말씀 사역에 존귀를 더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점과 주술을 금하시는 대신 선지자를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율법을 주신 뒤에는 제사장을 해석자로 두셨다. 이 방식에는 두 가지 유익이 있다. 하나는 사람의 말을 하나님 말씀처럼 듣는지 보시며 우리의 순종을 시험하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천둥처럼 직접 말씀하셔서 우리가 놀라 달아나게 하지 않고, 사람을 통해 부드럽게 이끄신다는 것이다. 설교자가 보잘것없다고 말씀까지 낮춰 보는 것은 배은망덕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외적 수단에 매여 있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이 평범한 가르침의 방식에 매어 두셨다.
반대편에는 '광신자들'이 있다. 교만이나 반감 때문에 혼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충분하다며 공적 예배와 설교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칼빈은 그들이 성도를 묶는 끈을 끊고 가르침 속에 비치는 하나님의 얼굴을 지운다고 비판한다. 교회를 갈라 양 떼를 늑대에게 던지는 배도자들은 더 나쁘다. 다윗이 성막에서 쫓겨난 일을 미칠 듯 슬퍼한 것은 공적 예배보다 큰 도움이 없기 때문이다. 성전을 '하나님의 얼굴'이라 부르면서도 '발등상'이라고도 부른 것은 미신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세운 이방 신전, 그리고 그 길로 기운 유대인들은 예배를 더럽혔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는 신을 벽 안에 가둔다는 것이 어리석다며 그리스 신전들을 불태웠다고 한다. 칼빈은 이와 대조하여,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우신 지상의 성전은 마차처럼 우리를 하늘 영광으로 들어 올리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 하나님은 즉시가 아니라 가르침으로 키우신다
- 믿음은 들음에서, 설교는 하나님이 정하신 통로
- 사람을 쓰심: 순종의 시험이자 배려
- 혼자 성경 읽기로 충분하다는 생각은 끈을 끊는다
- 공적 예배는 신자에게 가장 큰 도움이다
6. 인간의 사역과 그 한계성
당시 목회 사역의 효력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한쪽은 사역자의 위엄을 지나치게 높였다. 다른 쪽은 목사가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성령의 일을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칼빈은 두 종류의 성경 구절을 함께 보면 풀린다고 말한다. 첫째, 하나님이 설교를 쓰시고 거기에 성령을 결합하시는 구절들이다. 사도들이 열매를 맺고, 바울이 복음으로 고린도 교인을 '낳았다'고 말하며,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부른다. 둘째, 하나님이 외적 수단과 자신을 구별하시는 구절들이다. 이 구절들은 믿음의 시작과 전 과정이 하나님께만 속한다고 말한다. 심는 이도 물 주는 이도 아무것도 아니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다. 따라서 사람이 마음을 새롭게 한 공로를 자기 몫으로 돌리는 것은 망령되다. 그러나 목사의 가르침을 온유하게 받는 사람은 실제로 유익을 얻고, 하나님이 이 방식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사역을 과장하는 쪽과 깎아내리는 쪽 모두 잘못이다
- 하나님은 설교에 성령을 결합하신다
- 열매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다
- 사역자는 하나님의 동역자일 뿐 주인이 아니다
- 온유하게 들으면 실제로 유익을 얻는다
가시적 교회: 그 구성원과 표지. 7–9
7. 불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
성경은 '교회'를 두 가지 뜻으로 쓴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 실제로 있는 교회다. 양자로 입양되고 성령으로 거룩해진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만 속하며, 세상 처음부터의 모든 택자를 포함한다. 둘째는 땅 위에 흩어져서 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예배한다고 고백하는 무리다. 이들은 세례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성찬으로 교리와 사랑의 하나 됨을 증언하며, 말씀 안에서 일치하고, 그리스도가 세우신 말씀 사역을 지킨다. 이 보이는 교회에는 이름뿐인 위선자들이 섞여 있다. 야심 많은 사람, 탐욕스러운 사람,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 험담하는 사람, 행실이 더러운 사람도 있다. 이들이 남아 있는 것은 죄를 입증할 수 없거나 권징이 늘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 눈에만 보이는 것으로 믿고, 보이는 교회는 존중하며 교제를 지키라는 것이 우리가 받은 명령이다.
- 보이지 않는 교회: 하나님 앞의 모든 택자
- 보이는 교회: 고백하고 세례·성찬에 참여하는 무리
- 보이는 교회에는 위선자가 섞여 있다
- 권징이 완벽하지 않아 섞임은 불가피하다
- 보이는 교회를 존중하고 교제를 지켜라
8. 인간의 판단의 한계와 하나님의 배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는 것은 하나님만의 특권이다. 일상에서도 그것이 드러난다. 가망 없어 보이던 사람이 돌아오고, 누구보다 굳건해 보이던 사람이 넘어진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려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많은 양이 밖에 있고 많은 늑대가 안에 있다고 말한다. 누가 끝까지 견딜지는 하나님만 보신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를 어느 정도 알아볼 필요가 있음을 아시고 우리 수준에 맞춰 주셨다. 완전한 확신 대신 판단의 기준을 주신 것이다. 신앙을 고백하고, 삶으로 본을 보이고, 성례에 참여하는 사람을 교회의 지체로 인정하면 된다.
-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지는 하나님만 아신다
- 겉보기와 결말이 뒤바뀌는 일이 흔하다
- 끝까지 견딜 자는 하나님만 보신다
- 대신 하나님은 판단 기준을 주셨다
- 고백·삶·성례 참여로 지체를 인정한다
9. 교회의 표지
이제 교회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해지고 들려지며, 그리스도가 정하신 대로 성례가 시행되는 곳에는 교회가 있다. 이것을 의심하면 안 된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있다"는 약속이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은 단계를 나누어 설명한다. 보편 교회는 온 나라에 흩어져 있지만 한 진리와 한 신앙으로 묶인 무리다. 각 지역의 개별 교회도 그 아래 속해 교회라는 이름과 권위를 정당하게 갖는다. 개인은 신앙을 고백하면 교회에 속한 것으로 인정되며, 실제로는 외인이라 해도 공적 절차로 출교되기 전까지는 교회에 속한다. 공동체 전체를 판단할 때는 말씀 사역이 있고 존중되며 성례가 바르게 시행되는지를 본다. 그렇다면 그 공동체는 의심 없이 교회다.
- 두 표지: 말씀의 순수한 선포와 성례의 바른 시행
- 근거는 "두세 사람" 약속이다
- 보편 교회 아래 지역 교회도 정당한 교회다
- 개인은 출교 전까지 교회에 속한다
- 공동체는 두 표지로 판단한다
교회에 이런 표지가 있는 한 아무리 다른 결점들이 있더라도 거기서 분리해서는 안됨. 10–16
10. 무시해서는 안 될 교회의 권위
말씀 선포와 성례라는 표지에는 반드시 열매가 따른다.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말씀이 받아들여지는 곳에는 효과가 있다. 복음을 경외하며 듣고 성례를 소홀히 하지 않는 곳이라면, 누구도 그 교회의 권위와 경고와 징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그 교회를 버리고 하나 됨을 깨는 것은 더욱 안 된다.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교만하게 떠나는 자를 반역자이자 배도자로 보신다. 교회의 권위가 침해받는 것을 자신의 권위가 침해받는 것으로 여기신다. 바울이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 부른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에서 지키는 자라는 뜻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그분의 몸이자 충만함이므로, 교회에서 분리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일이다.
- 두 표지에는 반드시 열매가 따른다
- 표지가 있는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지 말라
- 교만한 분리는 반역이자 배도다
-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다
-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몸이다
11. 교회의 표지의 중요성
이 두 표지를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 사탄이 무엇보다 이 표지들을 없애려 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표지를 지워서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구별을 없애기도 하고, 표지를 우습게 보게 해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사탄의 계략 때문에 말씀의 순수한 선포가 몇 세대 동안 사라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정하실 표지가 있는데도 떠나고 싶어진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유혹이다. 반대로 '교회'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모든 모임은 이 기준으로 시험해야 한다. 말씀과 성례가 없으면서 교회라고 자칭한다면 그 속임수를 경계해야 한다. 칼빈은 경솔한 분리와 이름에 속는 것을 둘 다 피하라고 말한다.
- 사탄은 표지를 지우거나 우습게 보게 한다
- 말씀 선포가 몇 세대 동안 사라진 적이 있다
- 표지가 있는데 떠나고 싶다면 그것은 유혹이다
- '교회'라는 이름만 보지 말고 표지로 시험하라
- 경솔한 분리도, 이름에 속는 것도 피하라
12. 교회의 표지를 근거로 부당한 분리를 방지하여야 함
순수한 말씀 사역과 성례가 있으면, 그 모임을 교회로 받아들일 충분한 보증이 된다. 다른 결점이 많아도 거부하면 안 된다. 교리나 성례 시행에 작은 오류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교리 조항이 모두 같은 무게를 갖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로 받는다' 같은 조항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핵심이다. 반면 죽은 영혼이 곧장 하늘로 가는지, 장소를 정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산다고만 말할지 같은 문제는 교회를 가를 이유가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무지하므로 이런 차이를 용납하지 않으면 남는 교회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작은 오류라도 아첨하며 덮자는 것은 아니다. 각 지체는 받은 은혜만큼 질서 있게 교정할 의무가 있다. 교회를 떠나지도 말고, 교회의 평화와 질서를 깨뜨리지도 말아야 한다.
- 두 표지가 있으면 교회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 교리에는 핵심 조항과 비본질적 조항이 있다
- 비본질적 문제의 차이는 분리 사유가 아니다
- 작은 오류도 덮지 말고 질서 있게 고쳐라
- 떠나지도, 평화를 깨지도 말라
13. 도덕적인 결점도 분리의 이유가 될 수 없음
삶의 결점을 참는 일에서는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 이곳이 미끄러운 내리막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완전히 거룩하다고 착각하고 인간의 약함이 보이는 사람과는 모두 관계를 끊는 무리가 늘 있었다. 고대의 카타리파와 도나투스파, 그리고 당시 일부 재세례파가 그랬다. 교만보다는 잘못된 의의 열심에서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교인의 삶이 복음과 맞지 않으면 곧바로 거기에 교회가 없다고 단정한다. 칼빈은 그 비판이 정당하며 자신들의 방종과 게으름은 핑계할 수 없다고 먼저 인정한다. 그러나 비판하는 사람들도 주님이 요구하시는 너그러움을 버리고 가혹해지는 죄를 짓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는 거룩하다"고 주장하지만, 예수님은 교회를 온갖 고기가 든 그물, 가라지가 섞인 밭,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있는 타작마당에 비유하셨다. 심판 날까지 섞여 있다고 하셨으니, 흠 없는 교회를 찾는 것은 헛수고다.
- 삶의 결점을 두고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 완전주의 분파: 카타리파·도나투스파·일부 재세례파
- 의의 열심도 가혹함으로 변하면 죄다
- 교인들의 방종은 핑계할 수 없다(칼빈의 자기비판)
- 그물·가라지·타작마당: 심판 날까지 섞여 있다
14.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의 예
반대자들은 악이 이렇게 퍼진 상황은 참을 수 없다고 외친다. 칼빈은 바울의 태도로 답한다. 고린도 교회는 거의 전체가 오염되어 있었다. 분쟁, 파당, 질투, 소송과 탐욕이 있었고, 이방인도 꺼리는 음행이 묵인되었다. 바울의 이름이 모욕당했고,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까지 있었으며, 은사는 사랑이 아니라 야심을 위해 쓰였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과 갈라서거나 출교를 선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하나님의 교회', '성도'라고 불렀다. 말씀과 성례의 사역이 부정되지 않고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왜곡하던 갈라디아 교회도 바울은 '교회'라고 불렀다. 그 십분의 일의 악도 없는 모임에서 누가 감히 교회라는 이름을 빼앗겠느냐고 칼빈은 묻는다.
- 고린도 교회는 도덕·교리 모두 심하게 부패했다
- 그래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렀다
- 이유는 말씀과 성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갈라디아 교회도 교회로 인정했다
- 그보다 나은 교회를 버릴 권리는 없다
15. 악인과의 교제
반대자들은 다시 반론을 편다. 바울이 음행자를 용납한 고린도를 책망했고, 그런 사람과는 밥도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찬은 더더욱 함께할 수 없지 않느냐고 묻는다. 칼빈은 악인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큰 불경이고, 질서가 잘 잡힌 교회라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목사가 소홀하거나 지나치게 관대한 것도 잘못이며 변명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가 의무에 게으르다고 해서 개인이 곧바로 분리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 악인과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것을 피하는 것과 그를 미워해 교회의 교제를 끊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바울은 성찬 전에 남을 살피라고 하지 않고 "자기를 살피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신다고 했지 '남의 죄'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를 받고 누구를 거부할지는 개인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정당한 질서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 악인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실제로 잘못이다
- 그래도 개인에게 분리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
- 개인적 친분 피하기와 교회 교제 끊기는 다르다
- 성찬 앞에서는 남이 아니라 나를 살핀다
- 남의 부정함이 나를 더럽히지 않는다
16. 분열을 조장하는 자들의 거짓된 동기
선한 사람도 잘못된 열심 때문에 이런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까다로운 태도는 대개 참된 거룩보다 교만과 거룩에 대한 착각에서 나온다. 분리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동기가 대부분이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길게 인용한다. 권징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료가 아니라 해가 된다. 분열주의자들은 진리의 빛이 없다는 것을 감추려고 지나친 엄격함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경건한 사람은 고칠 수 있는 것은 긍휼로 고치고, 고칠 수 없는 것은 인내하며, 추수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칼빈은 네 가지를 생각하라고 권한다. 큰 회중 안에는 내 눈에 안 보이는 거룩한 사람이 많다. 병들어 보이는 사람 중에도 자기 죄를 슬퍼하며 돌이키려는 사람이 많다. 한 가지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말씀과 성례에 참여하는 것이 악인 때문에 오염될까 따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 교회를 판단하는 데는 사람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이 무한히 무겁다.
- 지나친 까다로움은 대개 교만에서 나온다
- 권징도 하나 됨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
- 고칠 것은 긍휼로, 못 고칠 것은 인내로
- 보이지 않는 거룩한 사람들이 많다
- 한 가지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교회의 불완전한 거룩은 분리의 구실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안에서 죄 사함을 시행할 기회가 됨. 17–22
17. 교회의 거룩함
반대자들은 교회가 '거룩하다'고 고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의 거룩함이 무엇인지 따진다. 그것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완전한 교회만 교회로 인정하게 되고, 결국 남는 교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깨끗하게 하여 흠 없이 세우려고 자신을 주셨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도 날마다 주름을 펴고 얼룩을 지우고 계신다. 그러니 교회의 거룩은 아직 완성이 아니라 진행 중이다. "이방인이 통행하지 못할 거룩한 예루살렘"이라는 예언도 교인 모두가 흠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거룩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아직 이루지 못한 정결함을 은혜로 덮어 주신다는 뜻이다. 거룩의 증거가 거의 안 보이는 때에도 교회는 세상 처음부터 끝까지 끊긴 적이 없다. 하나님이 다윗 언약, 시온 선택, 해와 달의 질서에 걸고 맹세하셨기 때문이다.
- 거룩을 정확히 정의하지 않으면 교회가 남지 않는다
- 교회의 거룩은 완성이 아니라 진행 중이다
- 주님이 날마다 주름과 얼룩을 지우신다
- 예언의 거룩은 은혜로 덮어 주시는 정결함이다
- 교회는 역사에서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18. 선지자들의 모범
이사야, 예레미야, 요엘, 하박국은 예루살렘의 부패를 처절하게 묘사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할 정도였다. 신앙은 멸시받고 더럽혀졌으며, 도둑질, 사기, 살인이 흔했다. 그런데도 선지자들은 새 교회를 세우거나 따로 제단을 쌓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곳에 말씀을 두시고 예배 의식을 정하셨으므로, 악인들 가운데서도 깨끗한 손을 들어 기도했다. 그 의식 때문에 자신이 더럽혀진다고 생각했다면 차라리 백 번 죽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하나 됨을 지키려는 열심이 그들을 분리에서 막아 주었다. 거의 모든 사람의 큰 악을 보면서도 떠나지 않은 선지자들에 비하면, 교인들의 도덕성이 내 기준에 못 미친다고 떠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 선지자 시대의 예루살렘은 극도로 부패했다
- 그래도 선지자들은 새 교회나 제단을 만들지 않았다
- 하나님이 정하신 말씀과 예배가 그곳에 있었다
- 하나 됨을 지키려는 열심이 분리를 막았다
- 나의 도덕 기준을 분리의 잣대로 삼지 말라
19.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모범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에도 바리새인들의 불경과 온갖 방탕이 퍼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같은 성전에서 같은 의식에 참여했다. 깨끗한 양심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악인과 함께 있어도 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지자와 사도의 예로 부족하다면 적어도 그리스도의 권위에는 굴복해야 한다. 칼빈은 키프리아누스를 인용한다. 교회에 가라지가 있어도 떠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알곡이 되려고 힘써야 한다. 질그릇을 깨뜨리는 일은 주님께만 속하고, 쭉정이를 가려내는 일을 자기가 하겠다는 것은 교만이다. 칼빈은 두 원칙으로 정리한다. 첫째, 말씀과 성례가 있는 교회의 외적 교제를 마음대로 깨는 사람은 변명할 수 없다. 둘째, 다른 사람의 악은 내가 그곳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막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집례자가 부정하다고 성례가 경건한 사람에게 덜 순결하거나 덜 유익해지지도 않는다.
- 예수님과 사도들도 같은 성전 예배에 참여했다
- 깨끗한 양심은 악인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는다
- 쭉정이를 가려내는 일은 주님만의 일이다
- 표지가 있는 교회의 교제를 깨는 것은 변명할 수 없다
- 성례의 효력은 집례자의 깨끗함에 달려 있지 않다
20. 죄 사함과 교회
반대자들은 작은 흠만 있어도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바른 교사들이 "평생 죄의 짐을 지고 탄식하며 주님의 용서로 피하라"고 가르치면, 그 가르침이 사람들을 완전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화를 낸다. 칼빈은 완전을 향해 게으르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권면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땅의 경주 중에 이미 완전하다고 자신하는 것은 마귀가 심은 생각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사도신경도 교회를 고백한 다음에 죄 사함을 고백한다. 이사야가 말하듯 죄 사함은 그 성의 시민, 곧 교회의 가족에게 주어진다. 죄 사함 없이도 교회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성도의 교제 안에서 긍휼을 약속하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죄 사함은 우리가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우리가 세례라는 표로 교회에 들어가는 것도, 먼저 씻겨야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 이 땅에서 완전하다고 자신하는 것은 마귀의 생각이다
- 사도신경의 순서: 교회 다음에 죄 사함
- 죄 사함은 교회 가족에게 약속되었다
- 죄 사함은 교회에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 세례는 씻김으로 가족이 됨을 보여 준다
21. 교회의 지체들에게 임하는 죄 사함의 은혜
하나님은 죄 사함으로 우리를 교회에 받아들이실 뿐 아니라, 같은 죄 사함으로 우리를 교회 안에 붙들어 두신다. 용서가 한 번뿐이라면 곧 쓸모없어질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평생 자기 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이 늘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이 자기 가족에게 특히 이 은혜를 약속하시고, 날마다 화목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신 것은 헛되지 않다. 그러므로 평생 죄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우리는 끊임없는 용서로 지탱되지 않으면 한순간도 교회 안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통해 죄를 이미 용서받았고, 지금도 날마다 용서받는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 죄 사함은 들어갈 때도, 머무를 때도 필요하다
- 용서가 한 번뿐이라면 소용이 없다
- 날마다 화목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이유다
- 끊임없는 용서 없이는 한순간도 교회에 못 있는다
- 용서받았고, 날마다 용서받는다
22. 주께서 교회에게 주신 열쇠
이 은혜를 베푸시려고 주님은 교회에 '열쇠'를 주셨다.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를 주신 것은 처음 회심하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신자들 가운데서 이 일을 계속하게 하신 것이다. 바울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 사역자에게 맡겨졌고, 그들이 계속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한다고 말한다. 장로와 감독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복음의 용서의 약속으로 양심을 붙들어 줄 때, 우리 죄가 교회의 사역을 통해 계속 용서받는다. 약한 사람이 많아서 개인적인 위로도 필요하다. 바울이 집집마다 다니며 가르친 것도 그 예다. 칼빈은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아무리 거룩한 신자도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죄 사함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둘째, 이 은혜는 교회에 속해 있어서 교회와의 교제 밖에서는 누릴 수 없다. 셋째, 이 은혜는 목사의 복음 선포와 성례를 통해 주어지며, 열쇠의 권세는 주로 여기서 드러난다. 권징과 관련된 공적 화목은 뒤에서 따로 다루겠다고 말한다.
- 열쇠는 신자들 가운데서 계속 쓰이는 권세다
- 사역자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다
- 공적 설교와 개인적 위로 모두 필요하다
- 죄 사함은 교회와의 교제 안에서 누린다
- 열쇠는 주로 복음 선포와 성례로 행사된다
교회 내에서 허물을 용서한 사실을 보여 주는 실례들. 23–29
23. 신자는 언제나 죄 사함을 구해야 함
옛날 노바티아누스파와 당시 일부 재세례파는 세례받은 사람이 천사처럼 순결한 새 삶으로 거듭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세례 뒤에 넘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무자비한 심판에 맡겨 버렸다. 처음 거듭날 때 받은 용서 외에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칼빈은 이 생각이 교회에서 '유일한 구원의 닻'을 빼앗는다고 본다. 첫 번째 반박은 주기도문이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의 빚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주님은 주실 것만 구하라고 하시니, 이 기도는 헛되지 않다. 그들 자신도 이 기도를 하면서 빚진 자임을 고백하는 셈이다. 또 주님은 형제를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주님 자신의 자비를 닮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죄를 깨닫고 부르짖을 때마다 용서하신다.
- 노바티아누스파·일부 재세례파: 세례 후 죄는 용서 없음
- 칼빈: 그것은 구원의 닻을 빼앗는 주장이다
- 주기도문은 날마다 용서를 구하게 한다
- 주님은 주실 것만 구하라고 하셨다
- 일흔 번씩 일곱 번은 주님의 자비를 반영한다
24. 구약 시대의 범죄한 신자들에게 베푸신 긍휼: 율법서의 증거
교회의 '갓난아기' 시절인 족장 시대를 보자.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를 받았고 좋은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동생 요셉을 죽이려 했다가 팔아넘겼다.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사람들에게 지나친 복수를 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고, 유다는 며느리와 관계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버림받지 않고 이스라엘의 지파 우두머리가 되었다. 다윗은 이미 거듭났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던 왕이었는데도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용서받았다. 율법과 선지서에는 이런 긍휼의 약속이 셀 수 없이 많다. 모세도 배도했다가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다시 모으시겠다고 약속했다.
- 야곱의 아들들은 살인 음모와 인신매매를 저질렀다
- 르우벤과 유다의 성적 범죄도 있었다
- 그래도 지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 거듭난 다윗의 간음과 살인도 용서받았다
- 모세: 배도했다 돌아오면 다시 모으신다
25. 구약 시대의 범죄한 신자들에게 베푸신 긍휼: 선지자들의 증거
선지서에는 온갖 죄로 얼룩진 백성을 긍휼히 여기겠다는 약속이 가득하다. 가장 무거운 죄인 배도는 하나님과 교회의 이혼으로 불린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것을 덮는다. 예레미야는 다른 남자에게 간 아내도 남편이 다시 받겠느냐고 묻고는, 하나님은 "돌아오라"고 부르신다고 전한다. 하나님은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고 돌이켜 살기를 원하신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며, 범죄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백성이 포로지에서 회개하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용서해 달라고 구했다. 율법이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정한 것도 하나님이 백성이 계속 죄를 지을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 배도라는 '이혼'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덮는다
- 예레미야: 음행한 아내 같은 백성도 "돌아오라"
- 하나님은 죄인이 돌이켜 살기를 원하신다
- 솔로몬: 범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 매일 제사는 계속되는 죄를 위한 처방이다
26. 신약 시대의 범죄한 신자들에게 베푸시는 긍휼
그리스도가 오셔서 은혜가 충만해졌는데, 그 때문에 구약의 용서가 사라졌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멸망시키러 오신 셈이 된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게 나타났고 하나님과 사람의 화목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너그러움은 끊긴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해졌다. 예가 있다. 베드로는 "나를 부인하면 나도 부인하겠다"는 경고를 듣고도 저주까지 하며 세 번 부인했지만 용서받았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징계하면서도 형제로 권하라고 했다. 마술사 시몬에게도 베드로는 기도하면 용서받을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 그리스도 이후 용서는 사라지지 않고 더 풍성해졌다
- 용서가 없다면 그리스도가 멸하러 오신 셈이 된다
- 베드로의 세 번 부인도 용서받았다
- 징계받는 사람도 형제로 권면한다
- 마술사 시몬에게도 소망이 열려 있었다
27. 죄악된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
교회 전체가 한동안 가증한 죄에 사로잡혔을 때도 바울은 저주하지 않고 자비로 이끌었다. 갈라디아 교회의 잘못은 가볍지 않았고, 고린도 교회도 악행이 가득했다. 하지만 두 교회 모두 하나님의 긍휼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바울은 음행과 방탕에 빠진 바로 그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하나님은 참 솔로몬이신 그리스도와 그 지체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자손이 법을 어기면 매로 벌하시되 인자하심은 거두지 않겠다고 하셨다. 사도신경의 순서도 같은 것을 가르친다. 교회가 세워지고, 그다음에 죄 사함이 덧붙여진다.
- 갈라디아와 고린도는 심하게 범죄한 교회였다
- 그래도 긍휼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 바울은 저주하지 않고 회개를 촉구했다
- 매로 벌하시되 인자하심은 거두지 않으신다
- 사도신경: 교회 다음에 죄 사함
28. 하나님의 긍휼은 자의로 범한 죄도 용서함
노바티아누스의 오류가 성경에 비추어 드러나자, 조금 더 사려 깊은 사람들은 입장을 바꾸었다. 모든 죄가 아니라 알면서 일부러 지은 죄만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르고 지은 죄만 용서받는 셈이 된다. 칼빈은 율법이 모르고 지은 죄의 제사와 알고 지은 죄의 제사를 따로 정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짐승의 제사로도 고의적인 죄를 속하게 하셨다면, 그리스도의 희생은 성도의 고의적인 죄에도 충분하다. 그리고 예를 든다. 율법을 잘 알고 날마다 간음자와 살인자를 재판한 다윗이 그 죄를 몰랐겠는가? 족장들이 형제 살해를 옳다고 여겼겠는가? 고린도 교인들이 음행과 분쟁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했겠는가? 경고를 받은 베드로가 부인이 죄인 줄 몰랐겠는가? 그러니 우리의 악의로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 수정된 주장: 고의로 지은 죄만 용서 없다
- 율법은 고의로 지은 죄를 위한 제사도 정했다
- 그리스도의 희생은 고의적인 죄에도 충분하다
- 다윗·족장·고린도·베드로는 다 알고 지었다
- 하나님의 긍휼을 우리가 막지 말라
29. 고대 교회의 실례
반대자들은 고대 교부들을 내세울 수 있다. 교부들은 날마다 용서받는 죄를 육체의 약함에서 나온 가벼운 잘못으로 보았다. 그리고 큰 죄에 대한 엄숙한 공적 회개는 세례처럼 반복할 수 없다고 했다. 칼빈은 이것을 오해하지 말라고 한다. 교부들이 넘어진 사람을 절망시키려 했거나, 일상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작다고 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신자가 의심하고, 함부로 맹세하고, 화내고, 욕하는 등 온갖 죄를 짓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가벼운 잘못'이라는 말은 교회에 알려져 큰 혼란을 일으키는 공적 범죄와 구분하려는 표현이었다. 공적 범죄자에게 사면을 어렵게 한 것도, 하나님이 용서하기 어려워하신다고 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경솔하게 죄짓지 않게 하려는 교육적 조치였다. 그러나 우리의 유일한 규범인 성경은 더 너그럽다. 징계받는 사람이 지나친 근심에 빠지지 않게 하라고 가르친다. 칼빈은 이 점을 앞에서 자세히 다루었다고 말한다.
- 교부들의 '가벼운 잘못'은 공적 범죄와 구분하려는 말
- 일상의 죄를 하찮게 본 것이 아니다
- 엄격한 공적 회개는 교육적 조치였다
- 하나님이 용서를 어려워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 성경은 더 너그럽다: 지나친 근심에 빠지게 말라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교회 안에(in) 믿는다' 표현 (니케아 신경 등 일부 전통) | 하나님처럼 교회도 '믿고 의지하는' 대상으로 고백한다 | '믿고 의지함'은 하나님께만 쓰는 말이다. 교회는 '믿는다'가 정확하다. 다만 말다툼은 원치 않는다 | (교부 증언 중심, 직접 구절 없음) |
| 교황 교회 (4권 전체의 경계 대상) | '교회'라는 이름과 외형이 참 교회의 증거다 | 이름이 아니라 말씀과 성례라는 표지로 시험하라. 표지가 없으면 속임수다 | 마태복음 18:20, 에베소서 2:20 마태복음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
| 광신자(혼자 신앙파) | 혼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충분하다. 설교와 공적 집회는 쓸데없다 | 하나님은 사람의 가르침으로 키우기로 정하셨다. 그것을 거부하면 성도를 묶는 끈이 끊긴다 | 에베소서 4:10-13, 로마서 10:17 에베소서 4:10-13 10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 사역 과장 | 목사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 |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다. 사역자는 동역자일 뿐이다 | 고린도전서 3:7, 고린도전서 15:10 고린도전서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 사역 축소 | 목사의 가르침에 효력이 있다고 하면 성령의 일을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다 | 하나님은 설교에 성령을 결합해 실제로 열매를 맺게 하신다 | 고린도전서 4:15, 고린도후서 3:6 고린도전서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린도후서 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
| 카타리파·도나투스파·일부 재세례파 | 완전히 거룩하지 않은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 교회는 심판 날까지 선인과 악인이 섞인 그물이요 밭이다 | 마태복음 13:24-30, 마태복음 13:47-50 마태복음 13:24-30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 마태복음 13:47-50 47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
| 잘못된 의의 열심 | 교인의 삶이 복음과 안 맞으면 거기엔 교회가 없다 | 비판은 정당하지만 분리는 가혹함이다. 심하게 부패한 고린도도 바울은 교회로 불렀다 | 고린도전서 1:2, 갈라디아서 1:2 고린도전서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갈라디아서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
| 사소한 교리 차이로 분리 | 모든 교리에서 일치해야 함께할 수 있다 | 핵심 교리와 비본질적 문제를 구분하라. 오류는 떠나지 말고 질서 있게 고쳐라 | 빌립보서 3:15, 고린도전서 14:30 빌립보서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고린도전서 14: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
| 악인과 함께하는 성찬은 더럽다 | 밥도 같이 먹지 말라 했으니 성찬은 더더욱 안 된다 | 교회의 소홀함은 잘못이지만 분리 권한은 개인에게 없다. 성찬에서는 자기를 살핀다 | 고린도전서 11:28-29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
| 성례 효력은 집례자에게 달림 | 부정한 사람이 시행하면 성례가 더럽혀진다 | 남의 부정함이 경건한 사람의 양심과 성례의 유익을 해치지 않는다 | (예수님과 사도들의 성전 참여, §19) |
| 완전주의자 | "평생 용서를 구하라"는 가르침은 완전에서 멀어지게 한다 | 완전을 향해 달리되, 이 땅에서 완전하다고 자신하는 것은 마귀의 생각이다 | 에베소서 5:25-27, 이사야 33:14-24 에베소서 5:25-27 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33:14-24 14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15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16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7네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에서 보며 광활한 땅을 눈으로 보겠고 18네 마음은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해 내리라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계량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19네가 강포한 백성을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깨닫지 못하는 자니라 … |
| 노바티아누스파·일부 재세례파 | 세례 뒤에 지은 죄는 용서가 없다 | 주기도문과 구약·신약의 예가 계속적인 용서를 증언한다 | 마태복음 6:12, 시편 89:30-33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시편 89:30-33 30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31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32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33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
| 수정된 노바티아누스주의 | 모르고 지은 죄는 용서되지만 고의로 지은 죄는 안 된다 | 율법도 고의로 지은 죄의 제사를 정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충분하다 | 레위기 6:1-7, 사무엘하 12:13 레위기 6:1-7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3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4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5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6그는 또 그 속건제물을 여호와께 가져갈지니 곧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고 갈 것이요 … 사무엘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
| 고대 교부의 엄격한 회개 제도 (반대자들이 근거로 쓸 수 있음) | 큰 죄의 공적 회개는 한 번뿐이다 | 공적 범죄를 막으려는 교육적 조치였다. 성경은 더 너그럽다 | 고린도후서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
3. 용어
- 가시적(보이는) 교회
-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와 성찬에 참여하는, 지금 눈에 보이는 교회 공동체로 위선자도 섞여 있다.
- 불가시적(보이지 않는) 교회
- 세상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사람의 모임으로, 하나님 눈에만 보인다.
- 공교회(보편 교회)
- 'catholic'의 번역으로 '온 세상에 하나뿐인 교회'라는 뜻이며 로마 가톨릭이라는 교파 이름이 아니다.
- 성도의 교통
-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는 관계를 말한다.
- 교회의 표지
- 참 교회를 알아보는 기준으로, 칼빈은 말씀의 순수한 선포와 성례의 바른 시행 두 가지를 든다.
- 성례
- 그리스도가 정하신 눈에 보이는 은혜의 표로, 여기서는 세례와 성찬을 가리킨다.
- 열쇠의 권세
- 그리스도가 교회에 주신 '죄를 매고 푸는' 권세로, 칼빈은 주로 복음 선포와 성례를 통해 행사된다고 본다.
- 권징·출교
- 권징은 교회가 잘못한 교인을 바로잡는 치리이고, 출교는 그 가장 무거운 단계로 교회의 교제에서 내보내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맞추심(수용)
- 하나님이 우리의 약한 수준에 맞추어 사람과 눈에 보이는 수단을 통해 다가오시는 방식이다.
- 노바티아누스파·도나투스파
- 3세기와 4세기 무렵의 엄격주의 분파로, 각각 '배교자 재수용 거부'와 '죄 있는 성직자의 성례 무효'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청년의 삶으로
칼빈의 답: 하나님은 사람의 가르침과 공적 예배로 키우기로 정하셨다. 혼자 하는 묵상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은 성도를 묶는 끈을 끊는다(§5).
칼빈의 답: 그 비판은 정당하다. 하지만 말씀과 성례가 있는 한 교회는 교회다.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같은 성전에 계셨다(§13–14, §19).
칼빈의 답: 하나님은 질그릇 같은 사람을 일부러 쓰신다. 성례와 말씀의 유익은 사역자의 깨끗함에 달려 있지 않다(§5–6, §19).
칼빈의 답: 핵심 교리와 비본질적 문제를 구분하라. 오류는 떠나기 전에 질서 있게 바로잡는 것이 먼저다(§12).
칼빈의 답: 다윗도 베드로도 알고 지은 죄를 용서받았다. 교회 안에는 평생 이어지는 죄 사함이 있다(§21, §23–28).
5. 이 편의 결론
-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에 맞추어 교회를 '어머니'로 주셨고, 평생 그 학교에서 배우게 하신다.
- 누가 택자인지는 하나님만 아시지만, 우리는 말씀 선포와 성례라는 표지로 보이는 교회를 알아본다.
- 표지가 있는 교회라면 도덕과 교리의 결점 때문에 떠나서는 안 된다. 섞임은 심판 날까지 계속된다.
- 교회의 거룩은 진행 중이고, 그래서 교회 안에는 들어갈 때도 머무를 때도 죄 사함이 있다.
- 세례 뒤의 죄, 알고 지은 죄도 회개하면 용서받는다. 용서를 막는 엄격주의는 성경과 어긋난다.
✏️ 본문을 드래그하면 형광펜(노랑·초록·분홍)과 밑줄을 칠할 수 있고, 칠한 곳을 누르면 메모를 적을 수 있습니다. 위의 가−/가+ 로 글자 크기를 바꿉니다. 모두 이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원문 미전재 ·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 PDF · quritan.com 판 · youtube.com/@빛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