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내가 나중에 잘 믿고 착하게 살 걸 미리 보시고 나를 고르신 걸까?"
칼빈은 앞 장에서 '값없는 선택'을 정의했고, 이번 장에서는 그것을 성경으로 증명합니다. 출발점은 가장 널리 퍼진 반론입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의 앞날의 공로나 믿음을 미리 보시고 그에 맞춰 택하셨다는 생각입니다. 칼빈은 먼저 그리스도 자신이 아무 공로 없이 존귀를 받으셨다는 점을 듭니다. 이어 에베소서 1장('창세 전에', '거룩하게 하시려고', '기쁘신 뜻대로')으로 거룩함은 선택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님을 보이고, 로마서 9장의 야곱과 에서로 출생 전에 이미 구별이 있었음을 보입니다. 후반부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요한복음), 아우구스티누스의 증언, 토마스 아퀴나스 반박, '모두를 부르시는데 왜 일부만 택하시나' 하는 문제를 차례로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버림받는 일(유기)도 하나님의 뜻 말고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짓습니다.
1. 절별 정리
선택은 공로에 대한 예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근거함. 1-6
1. 하나님의 선택은 공로와는 관계가 없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서 앞으로 나타날 공로를 미리 보시고, 은혜에 걸맞게 살 사람은 자녀로 삼고 악하게 될 사람은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런 생각을 일반 대중뿐 아니라 각 시대의 중요한 저자들도 했다고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래도 진리는 사람의 권위로 뒤집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이 생각이 선택을 '예지(미리 아심)'라는 커튼으로 가려서 선택이 다른 데서 나온 것처럼 꾸민다고 봅니다. 첫 근거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원하시는 이에게 은혜를 값없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다른 민족보다 나은 이유도 하나님 밖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짐승이 "왜 나를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냐"고 따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분명한 예는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사람으로 잉태되신 그분이 태중에서 무슨 덕을 쌓아서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셨겠습니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값없는 선택을 비추는 가장 밝은 거울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창세 전에'와 '기쁘신 뜻대로'라는 말로 우리 자신의 가치를 따질 여지를 아예 없앱니다.
- 반대 입장: 미래의 공로를 미리 보고 택하심
- 유명한 저자들의 지지도 진리를 뒤집지 못함
-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따질 수 없는 선물
- 그리스도가 값없는 선택의 가장 밝은 거울
- '창세 전', '기쁘신 뜻'이 공로를 배제함
2. 선택이 창세 전에 이루어졌음
칼빈은 에베소서 1:4-5를 한 구절씩 뜯어 봅니다. 바울이 말하는 '택한 자'는 신자들입니다. 그러니 '택하사'를 복음이 전해지던 그 시대에 불러내신 일로만 좁히는 해석은 억지로 꾸민 논리라고 봅니다. '창세 전에'라는 말이 결정적입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고, 아담 안에서 모두 똑같은 처지에 있을 사람들을 무엇으로 구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는 것은 각 사람이 자기 자신과 상관없이 택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지체는 아니므로, 어떤 사람들이 구별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다는 말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든 덕이 선택의 결과라는 선언입니다. 그보다 더 높은 원인을 묻는다면 바울의 답은 '그 기쁘신 뜻대로'입니다. 영적인 삶을 위한 모든 복은 이 한 근원, 곧 하나님이 뜻하신 이들을 택하시고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의 은혜를 예비하셨다는 사실에서 흘러나옵니다.
- '택하사'를 복음 전파 시대로 좁히면 억지
- 존재하기 전이니 구별할 근거가 사람에겐 없음
-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지체는 아님
- 거룩함과 모든 덕은 선택의 열매
- 최종 원인은 '그 기쁘신 뜻'
3. 거룩함은 선택의 원인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임
하나님의 작정이 다스리는 곳에서는 행위를 고려할 자리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1장이 행위를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바울은 디모데후서 1:9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행위대로가 아니라 자기 뜻과 영원 전 은혜대로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려고 택하셨다'를 '거룩해질 것을 미리 보고 택하셨다'로 바꾸면 바울의 순서가 거꾸로 뒤집힙니다. 반대자들은 "과거 공로가 아니라 미래 공로에 상을 주신다"고 둘러대지만 이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선택에서 흘러나온 거룩함이 다시 선택의 원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기쁘신 뜻', '기뻐하심을 따라'를 거듭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작정하실 때 자기 자신 외에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선택의 목적은 은혜의 찬송인데(에베소서 1:6), 선택이 값없어야만 은혜만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16과 로마서 11:35도 과거든 미래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낼 것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 거룩해지게 하려고 택하심. 순서를 지켜야 함
- '미래 공로' 핑계도 결과를 원인으로 만듦
- '기뻐하심'은 하나님 자신만 고려하셨다는 뜻
- 값없는 선택이라야 은혜만 찬송 가능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는 모든 신자에게
4. 로마서 9장의 증거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논지를 더 길게 펼칩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로마서 9:6)는 혈통으로는 모두 복을 받았어도 선택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교회'라는 이름을 독차지하고 믿음이 자기 결단에 달린 것처럼 자랑하던 유대인들을 향한 것입니다. 칼빈은 당시 교황주의자들(로마 교회 지도자들)도 같은 구실로 하나님 자리에 서려 한다고 봅니다. 바울은 언약에 따라 아브라함 자손이 거룩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중 많은 이가 언약 밖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이 모든 것 위에 있어서 그분만이 누가 자녀인지 확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두고 예지론자들은 "야곱은 합당할 자라서, 에서는 무가치할 자라서"라고 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라고 때를 강조합니다(로마서 9:11). 하나님께는 미래도 다 보이므로, 예지가 원인이었다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바울은 과거와 미래를 따지지 않고 행위 자체를 '부르시는 이'와 맞세웁니다.
- 혈통상 이스라엘 ≠ 참 이스라엘
- 경건 여부로 갈린다면 '은밀한 선택'은 군말
- '아직 나지도 않았을 때'가 예지론을 꺾음
- 바울은 행위를 '부르심'과 맞세움
- '택하심'과 '뜻'이 참된 원인
5.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서 나타나는 증거
과거든 미래든 행위가 선택에 조금이라도 역할을 한다는 사람들은 바울의 주장을 정면으로 피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출생 전의 구별이 행위가 아니라 부르심에 근거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에 무슨 미묘한 다른 설명이 있었다면 바울이 놓쳤을 리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미리 보시는 선이란 하나님이 선택의 혜택으로 주기로 정하신 것뿐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행을 원인 자리에 두지 않았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같은 부모의 자식이고 같은 태에 있었으며, 조건이 모두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형이 동생보다 나은 점은 장자권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마저 무시되고 동생에게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경우에도 일부러 장자권을 넘기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육체가 자랑할 근거를 모두 없애시기 위해서입니다.
- 바울이 '미묘한 설명'을 놓쳤을 리 없음
- 하나님이 미리 보시는 선은 그분이 주실 선뿐
- 같은 부모, 같은 태, 같은 조건, 다른 판단
- 유일한 차이인 장자권마저 동생에게
- 이삭·에브라임: 육체의 자랑을 없애심
6. 야곱의 선택의 영적인 성격
이런 반론이 나옵니다. 장자권은 땅에서 받는 하찮은 복일 뿐이니 하늘 기업에 대한 선택의 증거가 될 수 없고, 바울이 성경을 엉뚱하게 썼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바울이 성경을 왜곡하지 않았다고 답합니다. 하나님이 땅의 상징을 통해 야곱의 영적 선택을 알리셨다는 것을 바울은 똑바로 보았습니다. 장자권이 내세와 상관없다면 그것은 우스운 복입니다. 야곱은 장자권 때문에 고난과 망명과 눈물 말고는 얻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 약속도 하늘 처소에 대한 보증과 묶여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공로에서 차이가 없었고, 그 이유에 대한 바울의 답은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로마서 9:15)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자기 긍휼에서만 복 주실 이유를 찾으신다는 선언입니다. 또 바울이 말하는 '미리 아심'(로마서 11:2)은 망대 위에서 구경만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23과 베드로전서 1:2, 1:20에서 보듯 정하신 뜻과 함께 가는 앎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같은 언약 백성 안에서도 하나님은 자유롭게 일부를 특별한 보배로 구별하실 수 있습니다(출애굽기 33:19).
- 장자권은 영적 선택을 보여 주는 땅의 상징
- 장자권으로 야곱이 얻은 건 고난뿐이었음
- 차이의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
- '미리 아심'은 구경이 아니라 정하신 뜻
- 언약 백성 안에서도 구별하실 자유가 있음
선택의 근거에 대한 반론들을 반박함. 7-11
7. 선택에 대한 그리스도의 증거
이제 최고 재판장이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무리가 완고해서 말씀이 헛돌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요한복음 6:37)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가 주셨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호 안에 들어가는 원인입니다. "믿음으로 자기를 드리는 사람만 아버지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떨어져 나가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계획은 하늘보다 확고하다는 점입니다. 택하신 자들은 본래 아버지의 자녀가 아니라 외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셔서 자기 것으로 삼으십니다(요한복음 6:44-45). 믿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 자체가 차이를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는 중보자이시면서 아버지와 함께 선택하실 권한도 주장하십니다(요한복음 13:18, 15:19). 유다는 사도로 뽑혔지만 "마귀"라 불렸습니다. 직분으로 뽑히는 것은 은혜의 표시이지만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기 몸에 접붙인 사람은 하나도 멸망하게 두지 않으십니다(요한복음 10:28-29, 17:11-12).
- 아버지가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옴
- 택한 자도 본래는 외인. 하나님이 이끄심
- 그리스도도 선택의 주권을 함께 가지심
- 사도 직분 선택 ≠ 구원 선택 (유다)
- 접붙여진 자는 하나도 잃지 않으심
8. 선택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
암브로시우스, 오리겐, 히에로니무스 같은 초대 교부들은 하나님이 각 사람이 은혜를 잘 쓸 것을 미리 보고 은혜를 나눠 주셨다고 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지만, 성경을 더 깊이 알고 나서 이 견해를 철회하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그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9:14에서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고 스스로 물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공로를 미리 보셨다"고 답하면 끝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과 긍휼로 피했습니다. 또 우리가 선해질 것을 미리 보고 택하셨다면 우리가 그분을 택할 것도 미리 보셨어야 합니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과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다른 교부들과 갈라선 것이 아니라며 암브로시우스의 말도 인용했습니다. 칼빈은 교부들을 다 빼고 봐도 결론은 같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행위'라는 한마디로 문제를 풀 수 있었지만, 그 입으로 말씀하시는 성령께서 그런 실수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답은 출애굽기 33:19, 곧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이유는 그렇게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여러 교부가 '은혜 사용 예지론'을 주장함
-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을 더 알고 철회함
- 로마서 9:14에서 바울은 '공로 예지'로 답하지 않음
- 교부를 빼고 봐도 성경의 답은 같음
- 긍휼의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
9.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묘한 논리에 대한 반박
중세 스콜라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교한 구분을 내놓았습니다. 공로에 대한 예지가 예정하시는 하나님 쪽에서는 원인이 아니지만, 우리 쪽에서 예정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따질 때는 어떤 의미에서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기로 하셨고 그 은혜로 영광을 얻을 공로를 세우게 하셨으니, 영광은 어느 정도 공로에 따라 예정되었다는 논리입니다. 칼빈은 먼저, 주님이 선택에서 그분의 선하심만 보라고 하시는데 그 이상을 찾는 것은 허세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논리로 겨룬다면 순서를 뒤집어 반박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도록 예정된 것은 생명을 얻도록 선택된 것에 딸린 '시녀(따라오는 종)'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영광에 이르게 하는 예정이 은혜를 주시는 예정의 원인이 되고, 이는 토마스와 정반대입니다. 하지만 칼빈은 이런 말싸움을 그만두자고 합니다. 말씀에 담긴 지혜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옛 교회의 한 저자도 선택의 근거를 공로에 두는 사람들은 분수 넘게 지혜로운 체한다고 했습니다.
- 토마스: 우리 쪽에선 공로 예지가 일종의 원인
- 칼빈: 선택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만 볼 것
- 순서를 뒤집으면 토마스와 정반대 결론
- 은혜 예정은 생명 선택에 딸린 '시녀'
- 말씀의 지혜로 충분, 말싸움은 그만
10. 복음의 초청의 보편성과 선택의 특수성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론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초청하시면서 소수만 받으신다면 스스로 모순이고, 약속이 모두에게 주어졌으니 특별한 은혜의 구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 어려운 문제를 넘기고 호기심을 막으려고 이렇게 말하는 온건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칼빈은 그 의도는 칭찬하지만 문제를 피하는 것은 핑계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주장은 두 가지로 틀렸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모두를 똑같이 부르는 규칙에 매이지 않으십니다. 말씀의 기근을 보내기도 하시고(아모스 8:11), 바울이 아시아에서 전하는 것을 막으시기도 했습니다(사도행전 16:6-10). 둘째, 복음의 소리는 모두에게 가도 믿음의 선물은 드뭅니다. 이사야 53:1의 말대로 '여호와의 팔'이 모두에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지 않을 것을 아시면서 부르시는 신비 앞에서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오 깊도다!" 하고 함께 놀라자고 합니다. 바울에게 선택은 '믿음의 어머니'이고(에베소서 1:3-4, 디도서 1:1), 순서는 선택 다음에 믿음입니다(요한복음 6:39-40).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누구도 스스로 양이 될 수 없으며, 끝까지 지키신다는 약속(견인)이 선택의 변하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 반론: 보편 초청과 특별 선택은 모순
- 문제를 피하려는 선한 의도도 핑계는 못 됨
- 하나님은 똑같이 부르는 규칙에 매이지 않음
- 복음은 모두에게, 믿음은 선물로
- 선택이 믿음의 어머니, 견인이 그 보증
11. 유기(遺棄)도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음
바울은 버림받은 자들도 함께 다룹니다. 야곱이 선행 없이 은혜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에서도 아직 죄로 더럽혀지기 전에 '미움'을 받았습니다(로마서 9:13). 여기서 행위 쪽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 눈에 뻔한 것을 바울은 못 보았다고 바울을 비판하는 꼴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일부러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고 물을 때, "에서의 악한 마음에 대한 보응이다"라고 쉽게 하나님을 변호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버림받은 자들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세워진다고 말하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로마서 9:18)로 마무리합니다. 칼빈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택하신 이유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뿐이라면, 버리시는 이유도 그 뜻 외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 에서도 악을 행하기 전에 구별되었음
- 행위로 설명하면 바울을 비판하는 꼴
- 바울은 '악행 보응'이라는 쉬운 답을 안 씀
- 결론: 긍휼도 완악도 하나님의 뜻
- 하나님의 뜻 너머에서 원인을 찾지 말 것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예지 근거 선택론 (일반 대중, 여러 시대 저자들) |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미래 공로를 미리 보고 합당할 자를 택하신다 | 거룩함은 선택의 목적이자 결과다. 결과가 원인일 수 없다 | 에베소서 1:4-5, 디모데후서 1:9 에베소서 1:4-5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
| '택하사'를 시대에 한정하는 해석 | 에베소서 1:4의 선택은 복음이 전해지던 시대에 불러내신 일일 뿐이다 | '창세 전에'라고 했고, 대상은 신자 개개인이다 |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 미래 공로론 | 과거 공로가 아니라 장차 행할 공로에 선택으로 상을 주신다 | 그 미래의 거룩함도 선택에서 나온다. 과거든 미래든 하나님께 먼저 드린 사람은 없다 | 에베소서 1:4, 요한복음 15:16, 로마서 11:35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
| 혈통·소속 자랑 (당시 유대인, 칼빈이 보기엔 교황주의자도 비슷) | 언약 백성이면 곧 교회이고, 믿음은 우리 결단에 달렸다 | 이스라엘에서 났다고 다 이스라엘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선택이 자녀를 확정한다 | 로마서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
| 야곱·에서 예지 해석 | 야곱은 합당할 자라서, 에서는 무가치할 자라서 그렇게 정해졌다 | 바울은 '아직 나지도 않고 선악을 행하기 전'을 강조했다. 예지가 원인이라면 이 말은 무의미하다 | 로마서 9:11-13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 장자권은 땅의 복일 뿐 | 장자권으로 하늘 기업을 말할 수 없으니 바울이 성경을 왜곡했다 | 땅의 상징으로 영적 선택을 알리신 것이다. 장자권으로 야곱이 얻은 건 고난뿐이었다 | 로마서 9:11-13, 에베소서 1:3 로마서 9:11-13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
| '구경꾼 하나님'식 예지 이해 | 하나님은 망대 위에서 누가 믿을지 지켜보기만 하신다 | 성경의 '미리 아심'은 '정하신 뜻'과 함께 가며, 구원을 이루시는 주인의 앎이다 | 사도행전 2:23, 베드로전서 1:2, 베드로전서 1:20 사도행전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베드로전서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전서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
| 자발적 헌신론 | 믿음으로 스스로를 드리는 사람만 아버지의 것으로 인정된다 | 택한 자는 아들에게 주어지기 전부터 아버지의 것이다. 아버지가 이끄셔야 온다 | 요한복음 6:37, 요한복음 6:44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
| 직분 = 구원 보장 | 예수님께 뽑혀 사도가 되었으면 구원도 보장된다 | 직분으로 뽑히는 것은 은혜의 표시지만 구원 보장은 아니다 (유다) | 요한복음 6:70, 요한복음 13:18 요한복음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13: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
| 초대 교부들 (암브로시우스·오리겐·히에로니무스, 초기 아우구스티누스) | 하나님은 각자가 은혜를 잘 쓸 것을 미리 보고 은혜를 나누신다 | 아우구스티누스도 성경을 더 알고 철회했다. 바울은 '불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공로로 답하지 않았다 | 로마서 9:14-15, 출애굽기 33:19 로마서 9:14-15 14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출애굽기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 토마스 아퀴나스 (스콜라 신학) | 하나님 쪽에선 아니어도 우리 쪽에선 공로 예지가 일종의 원인이다 | 선택에선 하나님의 선하심만 볼 것. 논리로 따져도 영광 예정이 은혜 예정의 원인이라 할 수 있어 정반대가 된다 | (직접 인용 없음. 에베소서 1:5 전제) |
| 보편 초청 모순론 (온건한 의도의 사람들 포함) | 모두를 부르면서 소수만 택하면 모순이니 특별 선택은 없다 | 하나님은 똑같이 부를 의무에 매이지 않으신다. 복음은 모두에게, 믿음은 선물로 주어진다 | 아모스 8:11, 사도행전 16:6-10, 이사야 53:1 아모스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도행전 16:6-10 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이사야 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
| 유기의 행위 원인론 | 에서는 장차 악할 것을 보셨기 때문에 버림받았다 | 바울은 악행 보응이라는 쉬운 답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결론지었다 | 로마서 9:11, 로마서 9:18 로마서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로마서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
3. 용어
- 선택
- 하나님이 구원하실 사람을 영원 전에 자기 뜻대로 정하신 일.
- 유기(遺棄)
- '버려둠'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고 지나치신 일을 가리키는 말.
- 예지(豫知)
- '미리 아심'. 칼빈의 반대자들은 이것을 '미리 보고 반응하심'으로 이해했고, 칼빈은 '정하신 뜻과 함께 가는 앎'으로 읽는다.
- 예정
- 하나님이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미리 정하신 일로, 선택과 유기를 함께 묶어 부르는 말.
- 값없는
- 받는 사람의 자격이나 대가와 상관없이 순전히 선물로 주어진다는 뜻.
- 공로
-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된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선행.
- 작정
- 하나님이 영원 전에 확정하신 결정.
- 견인(堅忍)
- '굳게 참고 견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끝까지 붙들어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는 가르침.
- 영화(榮化)
- 구원의 마지막 단계로, 신자가 하나님의 영광에 완전히 참여하게 되는 일.
- 펠라기우스주의
- 5세기 무렵 펠라기우스를 따르던 흐름. 사람이 은혜 없이도 스스로 선을 택할 수 있다고 보아 아우구스티누스가 맞서 싸웠다.
4. 청년의 삶으로
5. 이 편의 결론
- 선택은 하나님이 미래 공로나 믿음을 미리 보신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서 나온다.
- 거룩함·믿음·모든 덕은 선택의 원인이 아니라 선택에서 흘러나오는 열매다.
- 야곱과 에서는 출생 전, 행위 이전에 구별되었다. 이것이 공로설을 가장 분명하게 반박한다.
- 복음의 초청은 모두에게 가지만 믿음은 선택된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지키신다.
- 유기 역시 하나님의 뜻 너머에서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바울(로마서 9:18)과 칼빈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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