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학습 노트·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3권 9편 칭의란 무엇인가

제3권 제11장 1-23절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용어 정의와 문제의 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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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죄짓는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너는 의롭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흐름 한눈에

칼빈은 먼저 '칭의'라는 말의 뜻부터 정한다(1-4절). 칭의는 재판관이 무죄를 선언하듯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해 받아 주시는 일이다. 그 내용은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옮겨 주심) 두 가지다. 이어서 이 정의를 흐리는 두 입장을 반박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본질이 우리 안에 섞여 들어와 우리가 실제로 의로워진다는 오지안더의 '본질적 의'다(5-12절). 다른 하나는 믿음과 함께 거듭난 사람의 선행도 의롭게 되는 데 한몫한다는 스콜라 신학자들의 주장이다(13-20절). 마지막으로 칼빈은 칭의가 결국 '죄 사함'이며, 그 의는 우리 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 의가 전가로 우리 것이 된다는 것이다(21-23절). 이 논증 전체가 향하는 곳은 하나다. 흔들리는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평안과 확신을 얻는 것이다.

📜절별 정리

칭의와 중생: 용어의 정의. 1-4

📜1. 칭의의 교리의 위치

칼빈은 앞의 장들에서 다룬 내용을 먼저 정리한다. 믿음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 믿음의 본질과 혜택과 열매는 이미 설명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두 가지 은혜를 함께 받는다. 첫째, 그리스도의 의 덕분에 하나님과 화해하여, 하나님이 재판관이 아니라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신다. 둘째,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룩해져 깨끗한 삶을 키워 간다. 이것이 중생이다. 칼빈은 중생을 먼저 길게 다루고 칭의는 대강만 짚어 두었다.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믿음이 선행 없는 빈 믿음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성도의 선행이 어떤 성격인지를 먼저 보여 주는 일이 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칭의를 본격적으로 다루는데, 칼빈은 이것을 신앙을 떠받치는 주된 기둥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인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모르면 구원의 기초도,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기초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1.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으면 두 은혜를 받는다
  2. ① 칭의: 재판관이 아버지가 되신다
  3. ② 중생: 성령으로 거룩한 삶을 키운다
  4. 중생을 먼저 다룬 까닭: '빈 믿음' 오해 막기
  5. 칭의는 신앙을 떠받치는 주된 기둥
📜2. 칭의의 기본 개념

논의가 첫걸음부터 꼬이지 않도록 칼빈은 말뜻부터 정한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의를 역겨워하신다. 그래서 죄인으로 여겨지는 동안에는 누구도 은혜를 얻지 못하고, 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진노가 있다. 칼빈은 법정 장면으로 설명한다. 억울하게 고발당한 사람이 공정한 재판관 앞에서 무죄를 인정받으면 '의롭다 함을 받았다', 곧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삶이 하나님의 공의를 채울 만큼 완전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람은 없다. 행위로는 의가 없지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고 그 의로 옷 입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이다. 칼빈의 정의는 이렇다. 칭의란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 그분의 사랑 안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그 내용은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다.

  1. 칭의는 법정 언어, 곧 '무죄 판결'이다
  2. 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
  3. 행위로 의로워질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다
  4.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는' 것이다
  5. 칭의 = 죄 사함 +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3. 성경의 용례

칼빈은 성경에서 '의롭다 하다'가 쓰인 방식을 살펴 앞의 정의를 확인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롭다 하였다”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께 의를 보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옳으심을 인정하고 찬양했다는 뜻이다. 바리새인이 “스스로 의롭다 한다”는 말도 선행으로 의를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없는 의를 있는 척했다는 뜻이다. 히브리어에서는 정죄 판결을 받은 사람도 '죄인'이라고 부른다. 밧세바가 자신과 솔로몬이 '죄인'이 될 것이라고 한 말도 실제 죄가 아니라 죄인 취급을 받는다는 뜻이다. 칭의를 다루는 본문들, 특히 고발과 정죄에 맞서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로마서 8장은 이 말이 법정 언어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따라서 '의롭다 하다'는 고발당한 사람의 죄책을 풀어 무죄로 확인해 주는 것이다. 다만 우리 자신이 무죄여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사면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죄 사함'을 말한 직후 '의롭다 하심'을 그 설명으로 덧붙인다. 여기서 칭의가 죄 사함이며,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고, 그리스도의 은혜이고, 믿음으로 받으며, 그리스도의 보속(죗값을 갚아 채우심)이 그 바탕에 있음이 드러난다. 성전에서 기도한 세리도 공로가 아니라 값없는 사면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래서 칼빈은 죄의 고백을 '합당한 칭의'라고 부른 암브로시우스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본다.

  1. '하나님을 의롭다 함'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
  2. 히브리어 '죄인'에는 '정죄받은 자'도 포함된다
  3. 칭의는 고발과 정죄의 반대말이다
  4. 내가 무죄여서가 아니라 의를 전가받아 사면됨
  5. 세리는 공로가 아니라 사면으로 의롭게 됐다
누가복음 7:29
'하나님을 의롭다 함' = 의를 보탬이 아니라 인정·찬양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누가복음 7:35
지혜가 '옳다 함'을 얻음도 같은 뜻(합당한 찬양)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누가복음 16:15
스스로 의롭다 함 = 없는 의를 있는 척함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열왕기상 1:21
히브리어 '죄인'이 '정죄받은 자'를 뜻하는 예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
갈라디아서 3:8
믿음으로 의를 '정하신다' = 의를 전가하심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로마서 3:26
정죄받아 마땅한 자를 믿음으로 풀어 주심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8:33-34
고발·정죄와 대조되어 법정적 뜻이 분명해짐
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사도행전 13:38-39
죄 사함 다음에 '의롭다 하심'을 그 설명으로 덧붙임
38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누가복음 18:14
세리는 공로가 아니라 사면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4. 칭의와 죄 사함과 화목

단어 하나하나를 따지지 않아도, 성경이 칭의를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뜻이 분명하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거저 주신다'고 하는데, 칼빈은 이것을 칭의로 본다. 로마서 3:24의 “값없이 의롭다 하심”도 같은 일이다. 로마서 4장은 칭의를 '의의 전가'라고 부르고, 이어 다윗의 시편으로 그것을 죄 사함과 같은 것으로 설명한다. 바울은 여기서 칭의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의는 죄책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가장 분명한 본문은 고린도후서 5장이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이시는 '화목'인데, 바울은 곧바로 그 수단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죄로 삼으신” 그리스도라고 밝힌다. 그러므로 여기서 '화목하게 하다'는 곧 '의롭다 하다'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는 말씀도 성립하지 않는다.

  1. '거저 받아 주심' = 칭의
  2. 로마서 4장: 의의 전가 = 죄 사함
  3. 의는 죄책의 반대 개념이다
  4. 화목하게 하다 = 의롭다 하다
  5.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를 의인 되게 한다
에베소서 1:5-6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심'(은혜로 받아 주심) = 칭의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로마서 3:24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 — 같은 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4:6-8
행위 없이 의로 여기심 = 죄를 가리시고 인정치 않으심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시편 32:1
바울이 인용한 다윗의 '복' 선언(죄 사함)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고린도후서 5:18-20
복음의 요점 = 죄를 돌리지 않으시는 화목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린도후서 5:21
화목의 수단 =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죄가 되심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됨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오지안더의 "본질적 의"의 오류에 대한 반론. 5-12

📜5. 오지안더가 주장하는 "본질적 의"의 개념

오지안더는 16세기 루터파 신학자다. 칼빈은 그가 일부러 값없는 은혜를 망치려 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본질적 의'는 칭의를 안개로 덮어, 경건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생하게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오지안더는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라는 점을 길게 증명하는데, 칼빈도 이 점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연합의 방식이다. 칼빈은 그 연합이 '그리스도의 영의 은밀한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반면 오지안더는 그리스도의 본질이 우리 본질과 섞인다고 본다. 칼빈은 이것이 하나님의 본질을 사람에게 주입하려 한다는 점에서 마니교와 닮았다고 지적한다. 오지안더는 그리스도가 영원한 하나님이요 의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의가 되신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의 죽음으로 얻은 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본질이 주입되어 우리가 본질적으로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점을 따로 강조한다. 칼빈은 삼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신성의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 전부를 얻는 것이다. 이것을 따로 떼어 내세우면 단순한 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1. 그리스도와의 연합 자체는 칼빈도 동의한다
  2. 연합은 '성령의 능력'이지 '본질의 섞임'이 아님
  3. 오지안더: 하나님 본질이 주입되어 실제로 의로워짐
  4. 칼빈: 그리스도의 순종·죽음으로 얻은 의로 충분
  5. 삼위의 내주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골로새서 2:9
신성의 충만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6. 죄 사함과 중생을 동일시하는 오지안더의 오류

칼빈은 오지안더가 '의'와 '의롭다 하다'의 뜻을 두 방향으로 넓힌다고 정리한다. 첫째, '의롭다 하다'를 '실제로 의롭게 만든다'로 읽고, '의'에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거룩함까지 포함시킨다. 둘째,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인 까닭은 제사장으로서 속죄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지안더는 묻는다.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면서 악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는가?” 칼빈은 이렇게 답한다. 그리스도를 둘로 나눌 수 없듯이 칭의와 성화도 나눌 수 없다. 하나님은 받아 주신 사람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반드시 새롭게 하신다. 그러나 태양의 빛과 열이 떨어질 수 없다고 해서 “땅이 빛으로 따뜻해지고 열로 밝아진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칭의와 성화도 함께 오지만 서로 다른 은혜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셨다고 따로 나열한다. 오지안더는 로마서 4:4-5의 '의롭다 하신다'를 '의롭게 만드신다'로 바꿔 읽고, 로마서 8:33도 왜곡한다. 그러나 그 본문의 뜻은 '고발'과 '사면'의 대조에 달려 있다. 오지안더는 아브라함이 덕을 쌓은 뒤에야 의로 인정받았다고도 하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뻐하신 것은 약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칭의에는 행위가 설 자리가 없다.

  1. 오지안더: 칭의 = 실제로 의롭게 만드는 것
  2. 칼빈: 칭의와 성화는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
  3. 비유: 태양의 빛과 열은 함께 오지만 서로 다르다
  4. 성경도 '의로움'과 '거룩함'을 따로 나열한다
  5. 아브라함은 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인정받았다
로마서 8:15
받아 주신 자에게 양자의 영을 주심 → 칭의와 성화는 함께 온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고린도전서 1:30
'의로움'과 '거룩함'이 구별된 두 은혜임을 보임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로마서 4:4-5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심' — '만드심'이 아니라 '여기심'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로마서 8:33
고발과 사면의 대조 → 칭의는 법정적 선언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7. 믿음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오류

오지안더는 믿음 자체에는 의롭게 하는 힘이 없고, 믿음이 그리스도를 받을 때에만 그런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칼빈은 이 점에 기꺼이 동의한다. 믿음이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게 한다면, 믿음은 늘 약하고 불완전하니 의도 반쪽이 되고 구원도 조각날 것이다. 정확히 말해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고, 그 일은 우리의 의가 되신 그리스도께 돌려야 한다. 칼빈은 믿음을 '그릇'에 비유한다. 우리는 자신을 비운 채 나아가 영혼의 입을 벌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한다. 그러나 오지안더의 “믿음이 곧 그리스도다”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 질그릇에 금이 들어 있다고 그릇을 보물이라 부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돈이 든 그릇이 사람을 부자로 만들듯, 믿음은 그 자체로는 값어치가 없지만 그리스도를 내어 줌으로써 우리를 의롭게 한다. 그리스도는 이 은혜의 근본 원인이요 주인이요 일하시는 분이다.

  1. 믿음 자체에는 의롭게 하는 힘이 없다(동의)
  2.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의는 그리스도
  3. 믿음은 비운 채 받는 '그릇'이다
  4. 그릇이 곧 보물은 아니다: 믿음 ≠ 그리스도
  5. 믿음이 약해도 구원이 조각나지 않는다
📜8.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성으로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오류

오지안더는 바깥에서 들리는 설교 말씀을 통해 안의 말씀, 곧 영원한 말씀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중보직에서 사람들을 떼어 내어 영원한 신성으로 끌고 간다. 칼빈은 그리스도를 둘로 나누지 않는다. 육체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분이 바로 영원한 말씀이시고, 그분이 영원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중보 사역을 감당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지안더처럼 신성으로 의가 되셨다고 하면 세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신성의 의는 아버지와 성령께도 똑같이 속하므로 그리스도께만 고유한 일이 아니게 된다. 둘째, 영원부터 계신 분이 '우리를 위해 의가 되셨다'는 표현과 맞지 않는다. 셋째, '하나님께로부터' 의가 되셨다는 고린도전서 1:30과도 맞지 않는다. 우리의 의가 되는 일은 중보자에게만 고유한 일이다. 오지안더가 내세우는 예레미야 본문(“여호와는 우리의 의”)은 우리의 의가 되시는 분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뜻일 뿐이다. 누군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말을 근거로 그 피가 신성의 피라고 한다면 터무니없는 것과 같다. 이사야 53:11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의롭게 하는 직분을 맡기신다. 그 이유는 아들이 의로우시기 때문이고, 그 방법은 '그를 아는 지식'이다. 칼빈은 '지식'(히브리어 다아트)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는 수동적 뜻으로 읽는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는 종의 모습을 취하셔서 의가 되셨고, 아버지께 드린 순종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 신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맡으신 직분에 따라서다. 하나님만이 의의 근원이시지만, 반역으로 멀어진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낮아진 치료책'이 필요하다.

  1. 그리스도를 둘로 나누지 않되 '직분'을 보아야 한다
  2. 신성의 의라면 아버지·성령께도 똑같이 속한다
  3. '의가 되셨다'는 말은 중보자에게만 맞다
  4. '하나님의 피'를 신성의 피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5. 종의 모습과 순종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심
고린도전서 1:30
하나님께로부터 '의가 되셨다' → 중보자의 직분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예레미야 51:10 (참조: 예레미야 23:6; 예레미야 33:16)
오지안더의 근거. 칼빈: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 우리의 의라는 뜻
디모데전서 3:16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셨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사도행전 20:28
'하나님의 피'를 신성의 피로 읽지 않듯 표현을 바로 읽어야 함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사야 53:11
아버지가 의로운 종에게 '의롭게 하는 직분'을 맡기심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빌립보서 2:7
종의 형체를 가지심 = 의가 되신 자리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립보서 2:8
아버지께 드린 순종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심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칭의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사역임

오지안더가 “이 사역은 사람의 능력을 넘으니 신성의 일”이라고 반박한다면, 칼빈은 앞부분은 인정하고 뒷부분은 틀렸다고 답한다.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피로 씻고, 진노를 풀고, 죄책을 사하는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직무를 실제로 수행하신 것은 인성을 따라서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데, 종의 모습을 취하지 않고는 순종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의는 그분의 육체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났다. 오지안더가 즐겨 인용하는 고린도후서 5:21의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라는 뜻이다. 요한복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의 영광'과 대비하는 것과 같은 용법이다. 칼빈은 이 표현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뜻하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다는 뜻이다. 오지안더가 그리스도의 속죄로 의롭게 된다는 데 동의하기만 하면 용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이라 하신 뒤 “내 살과 피”로 그 뜻을 설명하셨고, 성례도 의와 구원이 그분의 육체 안에 있음을 가르친다. 그리스도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신성을 우리에게 열어 주는 '샘'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자 사람으로서 의롭게 하신다는 것, 의롭게 하심이 삼위의 공동 사역이라는 것, 그 의가 하나님의 영원한 의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1. 참 하나님이셔야 하지만, 사역은 인성으로 하심
  2. 순종은 종의 모습 안에서만 가능했다
  3. '하나님의 의'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
  4. 그리스도는 감추인 신성을 여는 '샘'이다
  5. 삼위 공동 사역·영원한 의 자체는 부인하지 않음
로마서 5:19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의롭게 됨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빌립보서 2:7
순종은 종의 모습 안에서 이루어짐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고린도후서 5:21
의의 근원을 그리스도의 육체(속죄)에 둠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12:43
'하나님의 영광' 대 '사람의 영광'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의 용례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한복음 5:44
같은 용례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한복음 6:48
“나는 생명의 떡”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한복음 6:55
생명이 그분의 살과 피에 있다고 설명하심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10.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본질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오지안더에게 속지 않도록 칼빈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고백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 되지 않으면 이 선물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머리와 지체의 연합,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심, 곧 '신비한 연합'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저 멀리 바깥에 계신 분으로 바라보면서 의가 전가되기만 기다리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옷 입고, 그 몸에 접붙여지고, 그분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의를 함께 누린다. 따라서 “믿음을 의로 여긴다”며 칼빈 쪽을 비웃는 오지안더의 비방은 빗나갔다. 믿음은 자신을 비워 그리스도께서 채우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지안더는 이 영적인 결합을 무시하고 그리스도와 신자를 섞어 버린다. 그리고 반대자들을 '츠빙글리파'라고 부르며 공격한다. 칼빈은 그런 모욕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사적인 이익 때문에 다투는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오지안더의 주장은 두 가지로 이어진다. 성찬에서 몸을 물질적으로 먹는다고 상상하듯 하나님도 자신을 우리 안에 섞어 넣으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의(그분의 선함·거룩함 자체)를 불어넣으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내세우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베드로후서 1:4)는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일을 지금 이루어진 일처럼 읽은 것이다. 요한은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1. 연합 없이는 의도 없다(칼빈의 고백)
  2.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옷 입고 접붙여짐
  3. 연합은 영적인 결합이지 본질의 섞임이 아니다
  4. 믿음은 비워서 그리스도로 채워지는 것
  5. '신성한 성품 참여'는 장차 완성될 일
베드로후서 1:4
오지안더의 근거. 칼빈: 장래의 약속을 현재로 끌어온 오독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요한일서 3:2
우리가 그와 같이 될 것은 '그가 나타나실 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11. 구원의 확신을 흐리게 하는 오지안더의 오류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실제로 의롭다”는 주장에 더 큰 독이 숨어 있다고 본다. 오지안더는 '이중적 의'를 내세운다. 그 결과 구원의 확신은 흐려지고, 사람들은 속죄의 은혜를 붙잡지 못하며, 고요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하게 된다. 오지안더는 칭의가 '법정 용어'라는 설명을 비웃고 값없는 전가를 깔본다. 칼빈은 고린도후서 5장을 근거로 답한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으며, 그 방법은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시는 것이다. 로마서 4장의 다윗 인용은 의의 일부가 아니라 '완전한 정의'다. 오지안더는 “악한 채로 남은 자를 의롭다 하는 것은 하나님 본성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칼빈은 칭의와 중생이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고 다시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신자에게 죄의 흔적이 늘 남아 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안다. 새로워지는 일은 평생에 걸쳐 때로 아주 더디게 진행되므로, 그것을 들고 심판대 앞에 서면 누구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넘치도록 의롭다 하신다. 부분적인 의로는 양심이 평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하다가, 8장에서는 누구도 고발할 수 없고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승리를 외친다. 같은 사람 안의 이 차이가 칭의와 중생이 구별된다는 증거다. 오지안더도 결국 죄 사함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 받아 주심이 얼마나 되는지, 1파운드인지 1온스인지 끝없이 저울질하게 되어 확신을 잃는다. 값없이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자유를 비난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 죄인은 자기 밖에서,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의롭다고 여겨진다.

  1. 이중적 의는 구원의 확신과 기도를 무너뜨린다
  2. 고발과 정죄의 대조 → 칭의는 법정적 선언
  3. 성화는 평생 더디다, 그것으로는 심판을 못 견딤
  4. 부분적인 의로는 양심이 평안할 수 없다
  5. 로마서 7장의 탄식과 8장의 승리가 공존한다
고린도후서 5:19
죄를 돌리지 않으심 = 화목 = 칭의의 방법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2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됨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8:33
정죄와 대조 → '의롭다 하심'의 법정적 의미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로마서 4:6-7
죄 사함이 의의 일부가 아니라 '완전한 정의'임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로마서 6:4
새 생명으로 행하는 일(중생)은 칭의와 구별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3:18
유업은 율법이 아니라 약속에서 난다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로마서 4:14
율법에서 난다면 믿음은 헛것이 된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로마서 7:24
신자 안에 남은 죄에 대한 탄식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8:38-39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확신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시편 51:4
판단은 하나님께 속하며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출애굽기 33:19
하나님은 자유롭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부분적인 의만으로는 우리의 양심이 평안을 얻을 수가 없다.”
📜12. 오지안더의 오류에 대한 최종적인 반론

오지안더가 감추지 않겠다며 자랑하는 '비밀'은 이렇다. 우리가 은혜를 얻는 것은 전가만으로가 아니다. 하나님은 의롭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인 것은 인성이 아니라 신성 때문이다. 칼빈은 이것이 결국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의롭게 하는 역할을 빼앗는 것이라고 본다. 칼빈은 오지안더의 반론들을 하나씩 다룬다. ① 고린도전서 1:30(“지혜가 되셨다”)이 영원한 말씀에만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바울이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하며 그 칭호를 '우리가 누리는 쪽'에서 적용한다고 답한다. 빛은 성육신 전에도 있었지만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으로 오시기까지 가려져 있었다. ② 의롭게 하는 일은 피조물의 능력을 넘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일이 피조물의 위엄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정에 달려 있다고 답한다. 천사는 그 일에 지정되지 않았지만,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 나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도록 지정되셨다. ③ 신성으로 의가 되신다는 것을 부인하면 그리스도의 반쪽만 남고 두 하나님을 만든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죽음으로 마귀를 멸하신 분을 생명의 주라 불러도 신성의 영광을 깎는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지를 밝힐 뿐이다. 오지안더는 성경에 '의'가 나오기만 하면 '본질적 의'로 읽는데, 다윗이 하나님의 의에 호소하는 수많은 대목도 그렇게 왜곡한다. ④ 의는 우리를 바르게 행하도록 움직이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렇게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되 아들을 통해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답한다. 그리스도는 육체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다. ⑤ 그리스도의 의는 신적 의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공로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우리가 본질적으로 의롭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답한다. 하나님이 의를 갑옷으로 입으신다는 이사야의 말도,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바깥에서 무엇을 빌려 오지 않으셨다는 뜻일 뿐 그리스도의 사역과 충돌하지 않는다. 칼빈의 결론은 강하다. '이중적 의'로 영혼들의 평안을 빼앗는 자는 그리스도께 가시관을 씌워 조롱한 자들과 같다.

  1. 결국 인성에서 의롭게 하는 역할을 빼앗는 주장
  2. '지혜가 되심'은 우리가 누리는 쪽의 말이다
  3. 칭의는 피조물의 위엄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정
  4. 신성을 깎는 것이 아니라 '경로'를 밝히는 것
  5. 이중적 의는 영혼의 평안을 빼앗는다
고린도전서 1:30
오지안더는 영원한 말씀에만 적용. 칼빈: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해 되심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골로새서 2:3
모든 보화가 '그 안에' 감추어짐 → 우리가 누리는 쪽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요한복음 17:5
아버지와 함께 가지신 영광을 우리에게 드러내심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5
성육신 전에도 빛은 비쳤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8:12
인성을 입고 오셔서 '세상의 빛'이 되심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갈라디아서 3:13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심 =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직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4:4
율법 아래 나심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히브리서 2:14
죽음으로 마귀를 멸하심 → 생명의 주라 불러도 신성 손상 없음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빌립보서 2:13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요한복음 17:19
그리스도가 육체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하심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사야 59:17
의를 갑옷으로 입으심 = 하나님이 밖에서 빌려 오지 않으심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로마서 3:25
구원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드러남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 — 위 구절과 모순 없음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마가복음 15:17
가시관을 씌운 조롱에 오지안더의 결과를 빗댐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행위가 칭의에 유효하다는 스콜라 신학자들의 가르침에 대한 반론. 13-20

📜13. 행위로 말미암는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많은 사람이 의가 믿음과 행위로 함께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칼빈은 먼저 두 의가 서로 달라서, 하나가 서면 다른 하나는 넘어진다는 것을 보인다. 바울은 율법에서 난 자기 의를 배설물로 여기고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얻으려 한다. 두 의가 반대로 놓여 있고, 그리스도의 의를 얻으려면 자기 의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넘어진 이유도 자기 의를 세우려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의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흔드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면 자기 의를 완전히 치워야 한다. 또 믿음은 자랑을 없앤다. 행위의 의가 티끌만큼이라도 남아 있으면 자랑할 여지도 남는다. 아브라함도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다. 일한 사람의 삯은 은혜가 아니라 보수다. 그러므로 '믿음 더하기 행위'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1. 행위의 의와 믿음의 의는 함께 설 수 없다
  2. 그리스도의 의를 얻으려면 자기 의를 버려야 함
  3. 유대인은 자기 의를 세우다 넘어졌다
  4. 믿음은 모든 자랑을 없앤다
  5. 삯은 보수, 의는 은혜
빌립보서 3:8-9
율법에서 난 내 의 대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로마서 10:3
자기 의를 세우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음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로마서 3:27
믿음의 법이 자랑을 없앤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로마서 4:2
아브라함도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로마서 4:4
일한 자의 삯은 은혜가 아니라 보수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14. 중생자의 행위도 의를 얻는 근거는 될 수 없음

칼빈이 '궤변가'라고 부르는 반대자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그들은 바울이 배제한 '행위'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자기 의지로 한 일일 뿐이라고 말한다. 반면 그리스도의 선물이자 중생의 열매인 '영적 행위'로는 믿음과 함께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 힘을 믿는 유대인을 꾸짖었을 뿐이라고도 한다. 칼빈은 이렇게 답한다. 바울은 율법의 의와 복음의 의를 대조하는데, 그 대조에서는 어떤 수식어가 붙든 모든 행위가 빠진다. 율법의 의는 '행하면 산다'이고 믿음의 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이다. 또 성화와 칭의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서로 다른 은혜이므로, 칭의를 말할 때는 영적 행위라도 끼어들 수 없다. 아브라함이 자랑할 것이 없었다는 말도 겉으로 드러난 덕행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그의 삶이 천사처럼 거룩했어도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기에는 부족했다.

  1. 반론: 거듭난 사람의 선행은 칭의에 한몫한다
  2. 칼빈: 바울의 대조에서는 '모든' 행위가 빠진다
  3. 율법의 의 = 행하면 산다 / 믿음의 의 = 믿는다
  4. 성화와 칭의는 다른 은혜라 섞지 않는다
  5. 천사 같은 아브라함도 공로로는 부족했다
갈라디아서 3:11-12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 대조 → 모든 행위 배제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로마서 10:5
율법의 의 = 행하는 사람이 산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로마서 10:9
믿음의 의 = 그리스도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4:2
아브라함의 영적 행위로도 자랑할 수 없음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15. 로마 교회가 가르치는 은혜

칼빈은 스콜라 신학자들이 개념을 조잡하게 뒤섞는다고 비판한다. 또 다른 이들은 '영'과 '은혜'라는 말을 가면처럼 써서 하나님의 긍휼을 가린다. 두려워하는 영혼을 평안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뿐인데도 말이다. 율법을 완전히 행하는 사람이 의롭다는 데는 칼빈도 바울도 동의한다. 다만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으니 그 길은 막혀 있다. 칼빈이 보기에 교황주의자들은 두 번 속는다. 첫째, 믿음을 '내 공로에 하나님이 상 주시기를 기다리는 양심의 확신'으로 이해한다. 둘째, 은혜를 '값없이 의를 전가하심'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도록 성령이 돕는 힘'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찾는 자에게 상 주신다는 히브리서 11:6을 읽으면서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롬바르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 마음에 사랑이 일어나 의롭게 되고, 그 사랑으로 죄가 사라져 사탄이 고발할 구실이 없어진다고 설명한다. 결국 칭의의 은혜를 '선행하게 하는 성령의 힘'으로 본 것이다. 롬바르드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르려 했지만 멀리서 따라갔을 뿐이고, 스콜라 신학은 점점 나빠져 일종의 펠라기우스주의에 빠졌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아쉬움을 표한다. 공로를 모두 하나님께 돌린 점은 훌륭하지만, 칭의의 은혜를 성화 안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1. 율법을 다 지키면 의롭다, 그러나 아무도 못 지킴
  2. 오해 ① 믿음 = 상 받기를 기다리는 확신
  3. 오해 ② 은혜 = 선행을 돕는 성령의 힘
  4. 롬바르드: 사랑이 생겨서 의롭게 된다
  5. 아우구스티누스도 칭의를 성화 안에 넣었다
히브리서 11:6
하나님은 찾는 자에게 상 주신다. 그러나 '어떻게' 찾는지를 놓침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6. 성경이 가르치는 칭의의 요점

성경은 칭의를 말할 때 우리의 행위를 아예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의 완전하심만 보라고 한다. 칼빈은 그 순서를 이렇게 그린다. ① 하나님은 죄인에게서 비참함 외에는 긍휼을 불러일으킬 아무것도 보지 못하신다. 그래서 선한 행위가 전혀 없는 그를 받아 주실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으신다. ② 하나님은 죄인이 그분의 선하심을 알아보게 하신다. 그러면 죄인은 자기 행위에 절망하고 구원을 하나님의 긍휼에 온전히 맡긴다. ③ 복음으로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했음을 깨달을 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④ 그리스도의 의 덕분에 죄 사함을 받을 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⑤ 성령으로 거듭났어도 자기 선행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자기를 위해 간직된 영원한 의만 바라본다. 칼빈은 이 순서를 더 좋게 배열할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내용이 서로 맞아 전체를 바르게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1. 하나님은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으신다
  2. 죄인은 자기 행위에 절망하고 긍휼에 맡긴다
  3. 복음으로 화목을 깨달으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
  4. 그리스도 덕분에 죄 사함 = 칭의
  5. 거듭난 뒤에도 그리스도의 의만 바라본다
📜17. 로마서 10장의 증거

칼빈은 앞에서 다룬 믿음과 복음의 관계를 다시 꺼낸다. 믿음은 복음이 내놓는 의를 받아들여 의롭게 한다. 의가 복음을 통해 제시되므로 행위를 따지는 일은 빠진다. 로마서 10장은 율법과 복음을 나란히 놓는다. 율법은 “행하는 사람은 살리라”고 하고, 믿음의 의는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한다. 율법은 행위에 근거해 의를 인정하고 복음은 값없이 의를 준다. 갈라디아서는 유업이 율법에서 났다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하여 둘을 맞세운다. 율법에도 약속이 있으니, 복음의 약속만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 차이는 율법의 약속은 행위를 조건으로 하고 복음의 약속은 하나님의 긍휼에만 기댄다는 점이다. “배격할 것은 자기 힘으로 쌓은 교만한 의뿐”이라는 반론에 칼빈은 이렇게 답한다. 율법의 계명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첫째 계명인 사랑도 성령이 이끌어 하게 하시지만, 성도의 사랑은 늘 불완전하므로 공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1. 율법: 행하면 산다 / 복음: 믿으면 받는다
  2. 율법의 약속은 조건부, 복음의 약속은 긍휼뿐
  3. 유업이 율법에서 나면 약속이 아니다
  4. 성령이 주신 사랑도 불완전하다
  5. 불완전한 것은 공로가 될 수 없다
로마서 10:5-6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를 맞세움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로마서 10:9
믿음의 의 = 시인하고 믿으면 구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갈라디아서 3:18
약속과 율법은 서로 배타적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로마서 8:3
율법의 계명으로는 얻을 수 없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18. 갈라디아서 3장의 증거

두 번째 핵심 본문은 갈라디아서 3:11-12이다. 하박국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를 근거로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며, 율법을 행하는 자가 그 안에서 산다. 칼빈의 논리는 이렇다. 율법의 의는 행위를 요구하는데 율법은 믿음과 다르다. 그러니 믿음의 의는 행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행위를 믿음과 섞으면 이 논증 자체가 무너진다. 로마서 4장도 같은 흐름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으니 자랑할 것이 없다. 일하는 자에게는 삯이 보수지만, 일하지 않아도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으면 그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 바울은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고 하고, 그래서 유업도 값없다고 한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은 우리가 행위를 완전히 비운 채 나아간다는 뜻이다.

  1. 율법은 행위를 요구하는데 믿음과 다르다
  2. 그러니 믿음의 의는 행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3. 믿음에 주어진 것은 은혜로 된다
  4. 유업도 믿음으로 받으니 값없다
  5. 의를 얻으려면 행위를 비우고 나아간다
갈라디아서 3:11-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다 → 믿음과 행위의 분리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하박국 2:4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바울이 인용한 원 본문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4:2-3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짐 → 자랑할 것 없음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로마서 4:4-5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 믿음이 의로 여겨짐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로마서 4:16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3:21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19. 궤변가들의 반론에 대한 반박

반대자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성경에 너무 자주 나오니 부인하지 못한다. 대신 성경 어디에도 '오직'이라는 말은 없으니 '오직 믿음'은 덧붙인 말이라고 주장한다. 칼빈은 되묻는다. 값없는 의가 아니면 믿음의 의가 아니라는 바울의 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값없는 선물이 행위와 어떻게 함께 가는가?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면 그 의는 반쪽이 아니라 완전하니, 율법이 끼어들 틈이 없다. 행위와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믿음에만 돌린다는 뜻이다. 두 번째 핑계는 오리게네스 등 고대 저자들에게서 빌려 온 것이다. 바울이 뺀 것은 의식법(제사·절기 같은 예식 규정)의 행위뿐이고 도덕적 행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칼빈은 바울이 인용한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가 의식에만 해당할 리 없다고 반박한다. 또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진노를 이루며, 살게 하는 율법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말씀들은 모두 율법 전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에서 율법은 율법 전체다.

  1. 반론 ① '오직'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2. 답: 값없는 의라면 곧 '오직 믿음'이다
  3. 반론 ② 빠지는 것은 의식법뿐이다
  4. 답: 생명·저주의 약속은 도덕법에 해당한다
  5. 칭의에서 빠지는 것은 율법 전체다
로마서 3:28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 '오직'의 뜻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4:2 이하
값없는 의만이 믿음의 의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
로마서 1:17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완전하게) 나타남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21
율법 외에 나타난 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로마서 3:24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12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산다 → 도덕법 포함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3:10
모든 일을 행하지 않으면 저주 → 도덕법 포함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로마서 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4:15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로마서 4:4-5
의는 보수가 아니라 행위 없이 얻음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로마서 3:27
믿음은 자랑을 없앤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갈라디아서 3:21-22
살게 하는 율법은 없다, 모두 죄 아래 갇힘
21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0. "율법의 행위"

그렇다면 바울은 왜 그냥 '행위'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라고 할까? 칼빈은 행위의 가치가 행위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심에서 나온다고 답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셨다면 누가 행위의 의를 내세우고, 약속하지 않으셨다면 누가 상을 요구하겠는가. 행위는 하나님께 순종을 보여 드린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바울이 아브라함의 언약 430년 뒤에야 율법이 주어졌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행위가 의롭게 하는 근거를 가지려면 하나님의 증언과 인정, 곧 율법이 있어야 하므로,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율법의 행위'뿐이다. 그러나 바울은 다윗을 인용할 때처럼 아무 단서 없이 모든 행위를 빼기도 한다. 마지막 반론은 이렇다.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니 칭의는 결국 사랑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이 의롭게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의롭게 하는 힘은 사랑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와 교제하게 한다는 데서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로마서 4:4-5의 논증이 무너진다.

  1. 행위의 가치는 하나님의 인정에서 나온다
  2. 율법이 있어야 행위의 의를 따질 수 있다
  3. 그래서 '율법의 행위'라고 말한다
  4. 바울은 단서 없이 '모든 행위'도 뺀다
  5. 참 믿음은 사랑으로 일하지만 힘은 그리스도께
갈라디아서 3:17
언약 430년 뒤에 율법 →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었음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로마서 4:6
단서 없이 '행위 없이' 의로 여기심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시편 32:1-2
바울이 인용한 다윗의 복 선언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갈라디아서 5:6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 칼빈도 인정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로마서 4:4-5
보수 받을 행위가 없을 때에만 믿음의 의가 성립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만 죄 사함을 얻음. 21-23

📜21. 칭의와 죄 사함

이제 칼빈은 첫머리의 정의로 돌아간다. 믿음의 의는 하나님과의 화목이고, 그 화목은 죄 사함에 있다는 것이다. 출발점이 되는 원리는 이렇다. 사람이 죄인인 동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문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가 아니라 우리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은혜를 다시 얻기까지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라고 한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자기와 연합된 자로 받아들이시려면, 그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꾸셔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행위로 판단하신다면 화목한 자들도 여전히 죄인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자들이 의인으로 여겨지는 것은 죄 사함으로 모든 흠이 씻겼기 때문이다. 이 의를 한마디로 '죄 사함'이라 부를 수 있다.

  1. 죄인인 동안 하나님의 진노가 머문다
  2.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다
  3. 받아 주시려면 의인으로 바꾸셔야 한다
  4. 행위로 판단하면 우리는 여전히 죄인
  5. 그래서 칭의는 한마디로 '죄 사함'이다
이사야 59:1-2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1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로마서 5:8-10
화목 전의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22. 칭의와 죄 사함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성경적 증거

고린도후서 5장은 이 두 가지를 잘 보여 준다. 하나님은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신다. 이어서 사신이 전하는 핵심은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죄가 되셔서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의'와 '화목'을 구분 없이 써서 둘이 서로를 품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 의를 얻는 방법은 죄가 우리에게 돌려지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 4장에서는 다윗의 '복' 선언을 '의'로 바꿔 읽는다. 복이 죄 사함에 있다고 하니 그 복을 의 말고 달리 정의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구원의 지식이 죄 사함에 있다고 노래한다. 바울의 안디옥 설교 역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붙여서 같은 것으로 보여 준다. 그러니 신자가 행위가 아니라 값없이 받아들여져 의롭게 된다는 말은 낯선 표현이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땅에 사는 성도의 의는 덕의 완전함보다 죄 사함에 있다고 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그리스도가 죄 사함으로 우리의 의가 되시니 긍휼로 용서받은 자만 의롭다고 했다.

  1. 바울은 '의'와 '화목'을 구분 없이 쓴다
  2. 의를 얻는 방법 = 죄를 돌리지 않으심
  3. 다윗의 '복' = 바울의 '의'
  4. 사가랴: 구원의 지식은 죄 사함에 있다
  5. 아우구스티누스·베르나르도 같은 고백을 했다
고린도후서 5:19
죄를 돌리지 않으심으로 화목하게 하심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21
사신이 전하는 핵심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됨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4:6-8
'복'을 '의'로 바꿔 읽음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시편 32:1-2
죄 사함 받은 자의 복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누가복음 1:77
구원을 아는 지식 = 죄 사함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사도행전 13:38-39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같은 것으로 묶음
38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23.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 덕분이다. 사람이 스스로 의로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로 그에게 옮겨졌기 때문에 의롭다는 뜻이다. 그래서 칼빈은 이런 생각을 물리친다. 그리스도의 의로 성령을 나눠 받고, 그 성령이 우리 안에 만든 의 때문에 의롭다 인정받는다는 생각이다. 자기 밖에서 의를 찾으라고 배우는 사람은 자기 안에 의가 없는 사람이다. 고린도후서 5:21이 말하듯 우리의 의는 우리 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고, 우리는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로서 그 의를 소유한다. “율법의 요구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셨다”(로마서 8:4)는 말씀도 이와 모순되지 않는다. 전가로 얻은 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는 말씀도 그리스도의 순종이 마치 우리 순종처럼 우리 것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칼빈은 암브로시우스의 해석을 소개한다. 장자의 자격이 없던 야곱이 형의 옷을 입고 형의 냄새를 풍기며 아버지께 축복받은 장면을 이 의의 그림으로 읽은 것이다. 우리도 맏형이신 그리스도의 순결 아래 숨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선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에게서 나고, 그분의 완전하심이 우리의 허물을 덮어야 한다.

  1.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로 내 것이 된다
  2. 우리 안에 생긴 의 때문에 인정받는 것이 아님
  3. 자기 밖에서 의를 찾는다 = 안에는 의가 없다
  4. 그리스도의 순종이 내 순종처럼 여겨진다
  5. 그림: 형의 옷을 입은 야곱(암브로시우스)
고린도후서 5:21
우리의 의는 우리 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8:3-4
율법의 요구가 '우리 안에' 이루어짐 = 전가로 얻은 의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5:19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 것으로 여겨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창세기 27:27
형의 옷 냄새를 맡고 축복한 이삭 — 전가의 그림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보시다시피, 우리의 의는 우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오지안더(본질적 의)하나님의 본질이 우리 안에 섞여 들어와 우리가 실제로, 본질적으로 의로워진다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사실이지만, 본질이 섞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밀한 능력으로 맺어지는 영적 결합이다골로새서 2:9; 요한일서 3:2
골로새서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오지안더'의롭다 하다'는 '의롭게 만들다'이고, 칭의는 중생을 포함한다칭의와 성화는 분리되지 않으나 구별된다(태양의 빛과 열). 성경도 둘을 따로 나열한다고린도전서 1:30; 로마서 8:15; 로마서 4:4-5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4:4-5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오지안더악한 채로 남은 자를 의롭다 하는 것은 하나님 본성에 맞지 않는다신자 안에 죄가 남는 것은 사실이며 성화는 더디다. 그래서 완전한 의는 전가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값없이 사하실 자유가 있다로마서 7:24; 로마서 8:33-39; 출애굽기 33:19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8:33-39 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출애굽기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오지안더그리스도는 인성이 아니라 신성으로 우리의 의가 되신다참 하나님이셔야 하지만, 의롭게 하는 사역은 중보자로서 인성(종의 모습·순종·죽음)을 따라 이루셨다빌립보서 2:7-8; 로마서 5:19; 이사야 53:11
빌립보서 2:7-8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로마서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사야 53: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오지안더믿음이 곧 그리스도다믿음은 그리스도를 받는 그릇이지 보물 자체가 아니다(질그릇 비유, 직접 인용 구절 없음)
스콜라 신학자·로마 교회(칼빈은 '궤변가'라 부름)바울이 배제한 것은 거듭나기 전의 행위이고, 중생자의 영적 행위로는 의롭게 된다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를 대조할 때는 어떤 행위든 모두 빠진다. 천사 같은 아브라함의 행위도 부족했다갈라디아서 3:11-12; 로마서 10:5, 9; 로마서 4:2
갈라디아서 3:11-12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로마서 10: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로마 교회(교황주의자)은혜는 선행하도록 돕는 성령의 힘이고, 믿음은 공로에 상 주시기를 기다리는 확신이다칭의의 은혜는 값없이 의를 전가하심이다. 율법을 다 지킬 자가 없으니 공로의 길은 막혔다히브리서 11:6; 로마서 8:3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로마서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바르드(12세기, 『명제집』으로 알려짐)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안에 사랑을 일으키고 그 사랑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은혜를 성화와 혼동했다. 성령이 주신 사랑도 불완전해 칭의의 원인이 될 수 없다로마서 10:5-9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궤변가들'오직'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으니 '오직 믿음'은 덧붙인 말이다의가 값없고 행위와 관계가 끊겼다면 그것이 곧 '오직 믿음'이다로마서 3:21, 24, 28; 로마서 1:17
로마서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궤변가들(오리게네스 등 고대 저자에게서 빌림)칭의에서 빠지는 것은 의식법의 행위뿐, 도덕적 행위는 아니다생명의 약속과 저주의 경고는 도덕법에 해당한다. 빠지는 것은 율법 전체다갈라디아서 3:10, 12; 로마서 3:20; 로마서 4:15
갈라디아서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궤변가들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니 칭의는 결국 사랑에 달려 있다참 믿음은 사랑으로 일하지만, 의롭게 하는 힘은 그리스도의 의와 교제하게 하는 데서 나온다갈라디아서 5:6; 로마서 4:4-5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로마서 4:4-5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아우구스티누스(칼빈이 존경하는 교부)공로를 모두 하나님께 돌리지만, 칭의의 은혜를 성령으로 새로워지는 성화 안에 포함시킴출발점은 훌륭하나 칭의와 성화를 구별해야 한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다 받을 수는 없다(15절, 직접 인용 구절 없음)
📖용어
칭의(稱義)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고 받아 주시는 일. 재판관의 무죄 판결과 비슷하다.
법정적칭의가 사람 안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결·선언'이라는 뜻.
전가(轉嫁)남의 것을 내 것으로 '쳐 주는' 것.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 것으로 여겨 주심을 말한다.
죄 사함죄의 책임과 형벌을 묻지 않고 용서하시는 것. 칼빈은 칭의의 핵심을 여기서 찾는다.
화목원수였던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 칼빈은 '의롭다 하다'와 같은 뜻으로 본다.
중생·성화성령이 사람을 안에서부터 새롭게 하고 점점 거룩하게 하시는 평생의 과정. 칭의와 함께 오지만 구별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성령으로 신자가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하나 되는 것. 그리스도의 모든 은혜가 이 통로로 온다.
본질적 의하나님의 본질 자체가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실제로 의롭게 한다는 오지안더의 주장.
중보자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화해를 이루시는 분.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직분이다.
율법의 행위율법이 명령하는 행위 전체. 칼빈은 제사 같은 의식만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도 포함한다고 본다.
💬청년의 삶으로
  • 직장에서 성과로 평가받다 보니 하나님 앞에서도 '실적'을 쌓아야 할 것 같다. → 칼빈: 일한 자의 삯은 보수다. 하나님 앞의 의는 보수가 아니라 은혜로 받는 판결이다(로마서 4:4-5).
  • 같은 죄를 또 지었다. 내가 정말 구원받은 걸까? → 칼빈: 성화는 평생 더디고 신자에게도 죄가 남는다. 그러나 칭의는 부분이 아니라 완전하다. 그래서 탄식과 확신이 함께 있을 수 있다(로마서 7:24; 8:33).
  •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나를 더 받아 주실까? → 칼빈: 성령이 하게 하신 사랑도 불완전하다. 봉사는 받아 주심의 '조건'이 아니라 받아 주신 사람에게서 나오는 순종이다.
  • 연애나 가족 관계에서 '조건을 채워야 사랑받는다'는 불안이 있다. → 칼빈: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비참함 말고는 볼 것이 없을 때, 받아 주실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으셨다.
  • 그럼 대충 살아도 되는가? → 칼빈: 칭의와 성화는 태양의 빛과 열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받아 주신 사람에게는 반드시 새롭게 하는 성령을 주신다.
✅이 편의 결론
  • 칭의는 하나님이 죄인을 의인으로 여겨 사랑 안으로 받아 주시는 법정적 선언이다.
  • 그 내용은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다. 우리의 의는 우리 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다.
  • 칭의와 성화는 함께 오지만 구별해야 한다. 섞으면 은혜가 흐려지고 구원의 확신이 무너진다.
  • 거듭난 사람의 선행이든 도덕법이든 어떤 행위도 칭의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오직 믿음'이다.
  • 이 교리의 목적은 흔들리는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평안과 확신을 얻는 데 있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존 칼빈 『기독교강요』(생명의말씀사)의 논증 구조를 우리 말로 정리한 것입니다(원문 미전재).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기준입니다. youtube.com/@빛다방